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2007년 5월 28일 06시 03분 등록
[역사속의 영웅들] 아쉬운 영웅들의 이야기

이 책은 나에게 두 가지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고 나 스스로도 이 점을 닮고 싶다.

첫째, 저자는 아흔 여섯의 나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쓰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한평생을 같은 일을 하다가 같이 생을 마감했다는 점은 위대한 역사가 이전에 개인적인 인생에 있어서도 참으로 행복한 삶이다.

둘째, 20년이 지난 후에 이 유작 원고가 발견되어 다시 책으로 되살아났다는 점이다. 긴 시간을 흘렀어도 그를 좋아하는 사람에 의해 영원히 없어질 수 있었던 글이 되살아났다는 것은 한 역사가의 삶도 훌륭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만, 위대한 역사가인 영웅의 눈으로 쓴 <역사속의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음미할 줄 모르는 나의 처지가 답답할 따름이다.


1. 저자에 대하여


미국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윌 듀란트(Will Durant)는 1885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프랑스계 캐나다인으로 태어났다. 1917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이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1935년 이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였다. 스스로를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칭하는 그는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총11권의 『문명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를 저술하였고, 1926년에는 이미 우리에게도 친숙한 책인 『철학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를 완성하였다. 이밖에 『Transition』, 『The Pleasures of Philosophy』, 『Adventures in Genus』, 『Interpretation of Life』, 『The Lessons of History』등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자는 생애의 마지막까지 역사 과목을 위한 경이로운 입문서가 될 이 책에 새로운 자료를 첨부하였다. 처음 그는 이 책을 23개의 장으로 구성하려 했지만 운명은 21개 장에서 이 책을 끝맺게 하였다. 그가 21장을 완성했을 때 그의 아내 에이리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198년말 저자 자신도 심장병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1981년 10월 25일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3일 만인 11월 7일, 그의 심장도 멈추었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그의 아흔 여섯 생애를 마감한 것이다.


2.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들


[8] 나는 죽음의 신이 우리를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점점 흐려지는 기억력, 불안정한 걸음걸이 그리고 다리에 새로 생긴 경직 등의 형태로 그가 명함을 남기고 갔으니 말이지.

[9] 듀란트의 견해로는 <역사는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

[10] 내게 있어서 역사란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삶과 현실의 광범위한 전망을 - 당신의 태도를 현실이나 삶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가는 광범위한 전망 말이다. 예를 들면 그것은 당신을 더욱 이해력 있고 용서를 잘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줄까? 당신은 적어도 두 가지 방식으로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과학을 통해서이다. 그것은 외계 현실의 모든 양상을 물들이고 있는 다양한 과학을 공부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공간속의 사물보다는 오히려 시간 속의 사건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나는 첫 번째 방식(과학)은 포기하였다. 그것이 지나치게 외적이고 수학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서 그리고 다른 사물들 안에서 내가 찾아낸 생명의 요소에는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나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려 한다고 말했다. 과학을 통해서는 그것을 찾아낼 수가 없다. 역사는 시간 속의 사건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결론적으로 나는 자신이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12] 그는 명성보다는 명료성을 위해 싸운 철학자였다.

[12] 니체와 똑같이 <모든 철학은 역사에 (그 힘을) 빼앗겼다>고 느꼈던 듀런트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곳이 바로 인류의 본성이 진정 어떤 것인지 찾아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3] 윌 듀런트의 모든 저술의 주제는 문명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특정한 사상을 발전시켰다는 것 그리고 이 사상의 효능에 대한 평결은 이미 역사의 법정에서 내려졌다는 것이다.

[13] 윌 듀런트의 마지막 저서인 이 책은 단순히 날짜와 인물과 사건을 모아놓은 것만은 아니며, 또한 그의 주요 저작인 『문명이야기』의 요악만도 아니다. 이것은 미래 세대의 도덕적 함양과 이익을 위해 과거의 유산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

[13]『역사 속의 영웅들』은 이 <정신의 나라>가 제공하는 축복을 향한 윌 듀란트의 마지막 유언이다.

[15] 인류역사는 생물학의 한 단편(斷片)이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종들 중의 하나이고,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싸움과 살아남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들의 경쟁에 종속된다. 심리학, 철학, 정치적 능력 그리고 이상향들은 이 생물학 법칙과 화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6] 남자는 대단히 빛나는 존재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따지면, 자궁이며 인간 종족의 주류인 여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존재다.

[17]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는 집과 정착 생활에 적응하였다. 여자들은 먼저 양, 개, 나귀, 돼지들을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남자를 길들였다.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인 동물로, 마지못해 부분적으로만 문명화되었다. 남자는 천천히 여자에게서 사회적 특질을 배워 익혔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절(친족과 가까워지는 것), 절제, 협동, 공동체 활동 등이다. 이제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자질이 미덕이 되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바로 문명의 시작이다. 즉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자연과 문명사이의 깊고도 끈질긴 갈등도 함께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의 길고도 긴 사냥 단계에서 아주 깊숙이 뿌리를 내린 개인적 본능과, 최근의 정착 생활을 통해 생겨났지만 아직도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이다.

[18] 남자들이 물려받은 사냥꾼 천성에도 불구하고 문명은 어떻게 성장하였나? 문명은 이 천성을 질식시키려 하지 않았다. 어떤 경제 체제도 축적 본능에 호소하지 않고는, 그리고 훌륭한 보상을 통해 더 우수한 능력을 이끌어내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문명은 받아들였다. 어떤 개인도 어떤 국가도 자기 보존을 위해 싸우려는 의지가 없이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19] 공동체 생활은 이렇게 보호해주는 사회 질서의 우산 아래에서 확장되었다. 문학이 번성하고 철학이 발전하며 예술과 과학이 성장하고, 역사가들은 국민과 종족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록하였다.

[19] 문명이란 문화적 창조를 격려하는 사회 질서다.

[21]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연속 장면의 한 가지는 이교적인 방종의 시대에 이어 청교도적인 억제와 도덕적 규율의 시대가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21] 보르지아 가문 사람들(교황 알렉산드로스 6세와 그 아들 체사레 보르지아)이 설치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용병대장들의 폭력과 성적인 문란함은 마지막에 교회의 정화와 도덕성 회복이라는 결과에 도달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의 무아지경은 크롬웰 치하의 청교도주의로 넘어갔다가, 다시 그 반작용으로 찰스 2세 치하 영국의 무종교 상태로 바뀌었다. 프랑스 혁명 10년 동안 정부, 결혼, 가족이 붕괴되었던 일은 결국 나폴레옹 1세 치하에서 법과 규율과 부모 권위의 회복으로 끝이 났다. 바이런과 셸리의 낭만적 이교주의와 뒷날 조지 4세가 되는 웨일스 왕자의 방종한 행동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단정함으로 넘어갔다. 이런 전례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자녀의 손자들이 청교도가 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22] 그러나 역사에는 방종과 그 반대 사이의 이러한 진자 운동보다 더 즐거운 전망이 있다.

[23]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악을 향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업적과 우리가 물려받은 장엄한 유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26] <사람들은 짐승과 같았다. 몸에 두른 옷이라고는 자신의 가죽뿐이고 날고기를 먹고 어미는 알지만 아비는 알지 못하였다.> 아니면 오늘날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것이다. <밍크 코트를 입고 덜 익힌 스테이크를 좋아하고 남자들은 공짜 사랑을 즐겼다.>

[30] 철학적인 비활동 상태인 무위(無爲)는 사물이 나아가는 자연의 흐름에 개입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 무위는 모든 분야에서 지혜로운 사람의 표지(마크)이다. 국가가 무질서해졌을 때 할 일은 국가를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원래의 정상적인 의무로 되돌리는 일이다.

[42] 가르침은-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구루들에 의해 전수되고 있다-이해와 깨달음의 세 단계를 보여준다. 첫 번째 단계는 끈질지게 지속적으로 내면을 관찰하는 일이다. (중략) 어떤 형태나 내용이나 개체성을 가진 것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면을 들여다보라. 마침내 그런 조작들 뒤에 숨어 있는 마음 자체를 느낄 때까지 그리고 의식 자체의 의식을 느낄 때까지 계속해라. 구루들은 이러한 근원적인 실체를 아트만(자아)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로 모든 사물에는 우리 자신의 내면과 마찬가지로 내적이고 생명이 있고 비물질적인 힘의 숨결이 있다. 이것이 없다면 사물은 혼이 없고 동작이 없고 죽어있을 것이며 어느 것도 살거나 자라지 못한다. 이들 살아있는 모든 힘의 총합이 브라마(범천)이다.
세 번째로 아트만과 브라마는 원래 하나다.
「거기 그 무화과 열매 하나를 가져와라」
「여기 있습니다. 선생님」
「그것을 쪼개라」
「쪼갰습니다」
「거기 무엇이 보이느냐?」
「아주 작은 씨앗들이 보입니다. 선생님」
「그 중 하나를 쪼개봐라」
「쪼갰습니다」
「거기 무엇이 보이느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친애하는 그대여, 네가 감각하지 못하는 이 가장 섬세한 정수- 바로 이 가장 섬세한 정수에서 이 큰 나무가 자라 나온다. 내 말을 믿어라. 이 가장 섬세한 정수야말로 온 세상의 혼이다. 그것이 실체다. 그것이 아트만이다. 타트 트밤 아시- 그것이 바로 너다. 슈웨타케투야 」
「선생님, 내가 더욱 많은 것을 이해하도록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그렇게 되어라」

[48] 죄라는 것은 이기심과 개인적인 이익이나 쾌락을 찾는 일이다. 영혼이 모든 이기심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영혼은 되풀이해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해탈이란 죽음 뒤의 하늘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심을 극복한 고요한 상태이다.

[52] 시골 사람들의 친절함이 도시의 군중 사이로 서둘러 지나가는 익명의 존재 사이에 자리잡은 은밀한 불신이나 적대감보다 더 낫다. 간디를 이끌었던 생각은 고대 방식의 단순함에 만족하는 사람들의 그것이었다.

[58] 어째서 파라오들과 다른 사람들은 피라미드를 건설했던가? 이집트 사람들은 자기 속에 <카>라고 부르는 자기와 똑같은 영적인 짝이 들어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육체가 굶주림, 폭력, 부패를 이기고 보존된다면 원래의 자기 모습 그대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왕의 시체는 특별한 조심성으로 향료 처리되어 미라로 만들어졌다.

[73] 이 책의 의도는 문명의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의해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고 그 예를 살펴보는 것이다.

[85] 우리가 누구이기에-순간의 안개 속에 있는 티끌들-우주를 이해하겠는가? 철학은 전체의 빛 속에서 부분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큰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이 그 최초의 교훈이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라는 것은 아마도 건강, 아름다움, 진실, 지혜, 도덕성, 행복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가 될 것이다.

[95] 에페소스, 그 곳의 아르테미스-디아나 신전은 고대 세계의 일곱 기적의 하나였다. 이 에페소스에서 플라톤보다 300년 전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신비로운 경구를 사용해서 변화의 철학을 설명하였다. 이 것은 헤겔, 다윈, 스펜서, 니체 등에게 영감을 준 사상이었다.
두 가지 생각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변화가 보편적이라는 것과 에너지는 파괴할 수 없이 영속한다는 생각이었다.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언제나 현재의 존재이기를 중지하고 새로운 다른 것으로 된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리고 <흐르는 강의 동일한 물 속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쉬지 않고 중지하지 않는 <과정>이다.

[95] 개별적인 영혼은 생명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꽃의 일시적인 혀일 뿐이다. 인간은 이 불꽃 속에서 변하는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불을 붙여 밤에 내놓은 촛불과 같다.> 신은 영원한 불이고, 유동적인 세계의 어디에나 존재하는 에너지이다. 이런 보편적인 변화 속에서 무엇이든 시간이 흐르면 정반대의 것이 될 수 도 있다. 선은 악이 될 수 있고 악이 선이 될 수도 있다. 삶은 죽음이 되고 죽음은 삶이 된다. 이러한 대립은 동일한 사물의 두 가지 측면이다. 힘은 대립하는 두 요소의 긴장이다.

[96] <싸움은 정의다.> 개인들, 그룹들, 기관들, 국가들, 제국들의 경쟁은 자연의 최고 법정이며 거기서 나오는 판결에 대해서는 항의할 길이 없다.

[101] 스파르타는 스스로를 북쪽에서 오는 <야만인>들의 침략에 대항한 수문장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 시민과 노예들은 군사 훈련에만 열중해 인간성과 삶의 우아함을 위한 공간이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해군에 의해 보호를 받는 아테네 사람들은 사색과 아름다움에 헌신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극장을 철학의 목소리로 만들고 사원을 신들에 대한 찬양으로 만들었다.

[103]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기원전 7세기가 끝나갈 무렵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부의 격차가 절정에 도달해서 아테네 시는 정말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전제 정치 말고는 도시를 소동에서 자유롭게 해줄 어떤 방책도 불가능해 보였다>라는 것이다.

[104] 이렇게 위태로운 순간에-역사상 자주 언급되곤 한다- 한 사람이 나타나 말이나 행동에서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타협하게 만들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사회적인 무질서를 피했을 뿐 아니라 이후의 아테네 역사에도 중요한 새롭고 더욱 인간적인 정치와 경제 질서를 만들어냈다. 솔론의 평화로운 혁명은 역사상 용기를 주는 하나의 기적이었다.

[104] 솔론은 몸뚱어리에 가진 것이 없는 자신을 지혜로운 마음으로 달랬다. 부자 중에서도 가장 부자인 사람은 <재산이라고는 위장, 허파, 두 발밖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소유물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소년이나 소녀의 피어나는 매력 그리고 변화하는 삶의 계절과 화해하는 생활이다>

[107] 아리스토텔레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훌륭한 제자였던 셈이다. 전통에 따르면 델포이 아폴론 신전에 써 있던 모토 - <무엇이든 지나치지 말라>는 그의 말이라고 전해진다.

[111] 페리클레스, 아스파시아, 아낙사고라스, 소크라테스 등이 함께 디오니소스 극장에 앉아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을 관람하였다면, 아테네는 그리스 생활의 절정과 통합을 생생하게 목격한 것이다. 한 국민의 역사에서 정치 지도력, 예술, 과학, 철학, 문학, 종교, 도덕 등이 책의 여러 페이지에 흩어져서 각기 따로따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상을 지닌 하나의 작물로 짜여져 나타난 시대였다.

[113] 아테네 법은 동성애를 금지하였지만 여론은 그것에 관대하였다. 플라톤은『파이드로스』에서 인간의 사랑을 논하지만 그것은 동성애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향연』의 토론자들은 동성애를 남녀간의 사랑보다 더 높은 것으로 만들고 있다.

[114] 교육받은 여성이 적었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 사이에 틈이 생겨났고 남자들은 집 밖에서 아내에게는 허락하지 않던 매력을 구하였다.

[114] 그리스 사회는 남성만의 단성 사회였다.

[115] 아테네 사람은 교육받은 망설임 같은 것을 참지 못하였고 정보가 풍부하고 지적인 대화를 문명의 최고 스포츠처럼 우러러보았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생각에 동의하였다.

[117] 그리스 사람들은 예술이란 삶에 종속된 것이며, 삶은 모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이라고 생각하였다. 실용성이 없는 아름다움에 반대하는 건강한 공리주의 성향을 가졌다.

[122] 보통 한 시대의 철학은 다음 시대의 문학이 된다. 한 세대 동안 사색이나 탐구의 영역에서 논쟁이 이루어진 사상이나 문제들은 이어지는 세대에 가서 연극, 허구, 시 문학의 배경이 되곤 한다.

[124]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이후로 이 「오레스테이아」3부작은 그리스 문학의 최고봉을 이룬다. 셰익스피어조차도 이것에 맞먹을 수는 없었다.

[134] 부의 한가운데서 빈곤이 늘어났다. 영리한 사람들에게 돈을 벌 기회를 준 다양성과 교역의 자유는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전보다 더 빨리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잃어버릴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한다. <아테네는 두 도시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도시와 부자들의 도시가 되어 서로 전쟁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법령 제정이나 혁명을 통해 부자들을 약탈할 음모를 꾸몄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항해 방어 조직을 만들었다. 지식인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섰다. 그들 중에는 플라톤처럼 부자도 섞여서 공산주의 사상을 드러냈다.

[145] 소크라테스 : 이런 나라에서 무정부 상태가 커져서 개인의 집에까지 퍼지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 수준으로 떨어지고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수준에 서서 부모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선생은 학생을 겁내서 그들에게 알랑거리고 학생들은 선생을 멸시한다.
아데이만토스 :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소크라테스 : 어떤 일이 과도하게 커지면 흔히 반대 방향으로 반작용이 일어난다. …국가나 개인에게서 자유의 과도함은 오직 노예상태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과격한 자유 형식에서 가장 나쁜 폭정 형태가 생겨난다.

[147] 가족과 학교에서 권위가 자유를 대신해야 한다.

[148] 플라톤의 인기있는 <대화>들은 살아남아 우리를 즐겁게 하고 기술에 관련된 그의 논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진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기있는 작품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기술에 관련된 논문들만 남아서 그 집중된 가르침의 대가로 힘든 주목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농담중 하나이다.

[148]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들어오지 마시오.> 플라톤이 죽은 다음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했던 헤르메이아스의 궁정으로 갔다.

[149] 아리스토텔레스는 학생들을 모아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탐구하도록 했다. 외국인들의 관습, 그리스 도시국가의 구성, 파티아 경기 및 아테네 디오니소스제의 그리스 출신 우승자들의 연대기, 동물의 기관과 습성, 식물의 특성과 분포, 학문과 철학의 역사 등이었다.

[149] 과학 분야에서 그는 관찰, 보고서, 실험 등을 이용하였으며 과학 탐구를 위한 그룹을 조직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50] 행동의 목적은 행복이지만 행복의 비결은 미덕에 있다. 그리고 최고의 미덕은 지성이다. 이것은 현실, 목표, 수단에 대한 조심스런 관찰이다. 통상적으로 <미덕>이란 두 극단 사이에 있는 황금의 중간(황금률)을 뜻한다. 정치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들 간의 타협의 기술이다. 모든 사람은 불평등하게 만들어졌다. 부자연스런 평등이 강요되면 상류층은 즉각적으로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불평등이 부자연스러운 정도가 되면 하류층이 반항할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금권정치>를 선호하였다. 이것은 귀족 정치와 민주주의를 혼합한 형태이다. 그에 따르면 재산 소유자들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지고, 수가 많은 중간층이 권력의 중심 및 균형의 축을 이루어야 한다.

[151] 잠과 생식활동은 자기가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며 잠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을 싫어하였다.

[155] 정력이란 천재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통제의 능력이다.

[161] 모든 신들과 인간을 지배하는 신은 유피테르(주피터)였다.

[168] 한니발은 신체가 어려움을 견디고, 입맛은 곤궁을 견디고, 생각은 사실을, 혀는 침묵을 견디도록 자신을 훈련하였다. 적군(로마)의 역사가인 리비우스에 따르면 그는 <전쟁터에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에 떠나는 사람이었다.

[176] 죽음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저승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죽음을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저승이란 없다. 지옥은 이승에서 고통을 받는 것으로 그것은 무지, 정열, 싸움을 좋아함, 욕심에서 온다. 천국은 이승의 <현명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신전>에 들어있다. 미덕이란 신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즐거움을 조심스럽게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 인도된 능력과 감각이 함께 조화롭게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진정한 부는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결혼은 좋지만 정열적인 사랑은 명료함과 이성을 빼앗아간다. 이렇게 에로틱한 어리둥절함은 결혼이나 사회나 문명을 위한 건강한 기초가 될 수 없다.

[177] 사회를 조직한 것이 인간에게 자신보다 훨씬 강한 동물들을 이기고 살아남을 힘을 주었다. 인간은 잎사귀나 나뭇가지의 마찰로부터 불을 발견하였고, 몸짓을 언어로 발전시켰으며 새에게서 노래를 배웠다. 또한 동물을 길들여 이용하였고 결혼과 법으로 자신을 길들였다. 하늘을 관찰하고 시간을 측정하고 항해술을 익혔다. 역사는 국가와 문명이 일어나고, 번성하고, 시들고, 죽는 과정이다. 그러나 각 국가나 문명은 거꾸로 관습, 도덕, 법, 예술 등 문명의 유산을 전달해준다. <달리면서 생명의 램프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달리기 선수들처럼>

[181] 이런 부의 집중은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때로는 혁명을 불러온다. 이미 아테네에서 그런 경우를 한 번 보았다. 그 때는 솔론이 사건을 평화롭게 해결하였다.(기원전 594년). 이제 기원전 133년에 그와 비슷한 위기가 로마에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치적 해결이 실패하고 약 1백년에 걸친 계급투쟁이 나타났으며 로마 공화국은 수치스러운 종말에 이르게 된다.

[190] 농업에 기반을 둔 정권에서 빈곤은 가족이나 개인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위안을 구하였다. 도시에서 빈곤은 계급과 집단의 조건이 되고 그것은 사회적 폭동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계급투쟁은 점점 더 가혹해지고 마침내 모든 도덕적 제약을 흔들었다.

[242] 나는 그가 행했다고 하는 대부분의 기적들이 암시에 의한 자연적인 결과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영혼에 미친 강하고 확고한 정신의 영향이라고 말이다.

[244] 많은 사람들은 이 하느님 나라를 공산주의 유토피아라고 해석하고 그리스도를 사회주의 혁명가로 보았다. 복음서는 이런 견해에 대해 어느 정도 증거를 제공한다.

[245]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겠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가 19장 26절) 이 말은 세계사를 요약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시장 경제를 아주 훌륭하게 요약해 놓은 말이다.

[245]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기적인 욕심, 잔인성, 정욕 등을 없앨 수 만 있다면 유토피아는 저절로 올 것이다. 이것이 모든 혁명 가운데 가장 깊은 혁명이 될 것이고, 이런 혁명에 견주어보면 다른 혁명은 단순히 계급간의 쿠데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스도는 이런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였다.

[246] 이러한 도덕적 이상은 새로운 것이었던가? 그것을 배열한 방식이외에 새로운 것은 없다. 그리스도 설교의 핵심적인 주제는-다가오는 심판과 왕국-이미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100년이나 된 것이었다.

[266] 자유는 안전이 만들어내는 사치품이다.

[266] 아마도 이 시대의 시 문학에 자극을 준 것은 이러한 접근 불가능성이었을 것이다. 성취된 욕망을 낭만적으로 그려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방해가 없으면 문학도 없다.

[270] 모든 보편적 개념들은 분류와 사유를 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274] 중세 사람들은 종교에 모든 것을 걸었다. 로마 문명은 그 신들의 죽음 혹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혼란으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했다.

[275] 중세의 영혼은 자라나는 세포처럼 두 가지 역사적 유기체로 발전하였다. 남부 유럽에서는 고전적, 에피쿠로스적, 이교적 르네상스이고, 북부 유럽에서는 초기 기독교적, 스토아적, 청교도적 종교 개혁이다. 중세의 영혼은 이제 두 개의 강력한 문화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문명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중세의 역사적 업적은 완성되었다.
그 죽음이 곧 그 완성이었다.

[281] 르네상스는 고대의 문학만을 복원시킨 것이 아니라 그 쾌락주의적 자유로움도 똑같이 복원시켰다.

[284] 르네상스는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들고 나서야 비로소 프랑스, 도이치 지역,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페인 등지에서 꽃피어났다. 르네상스란 시간상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과 사유의 방식이다. 그것은 상업, 전쟁, 사상의 통로를 통해 이탈리아에서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295] 플라톤 아카데미는 공식적인 대학이 아니라 플라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일정하지 않은 간격을 두고 로렌초의 시내 궁전이나 카레지에 있는 피치노의 별장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플라톤의 대화편 하나를 몽땅 혹은 일부를 낭송하고 그 철학을 토론하였다.

[297] 오직 배움의 정확성과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순진한 믿음의 영역에서만 과격성을 띠었다.

[298] <인간이 소우주라는 사실은 학교에서 듣는 진부한 소리다. 인간의 몸은 땅의 원소들과, 천상의 정신과, 식물의 혼과, 하등 동물의 감각과, 이성과, 천사의 정신과, 신과의 유사성이 뒤섞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피코는 신이 아담에게 들려주는 말로 인간의 제한 없는 능력에 대한 신의 증언을 말하고 있다. <나는 너를 천상의 존재도 지상의 존재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네가 너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고 스스로 극복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너는 짐승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신과 비슷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298] 인간은 자기가 되고자 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 이것은 신의 최고의 선물이요, 인간이 받은 최고의 놀라운 축복이다. 짐승은 어미의 몸에서 나올 때 제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최고의 정신(천사들)은 시작부터 영원히 지속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다. 하느님 아버지는 인간에게만 탄생의 순간부터 모든 가능성과 모든 삶의 씨앗을 주셨다.

[300] 평온한 마음과 여가를 품위있게 즐기는 것보다 더 소망스러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모든 선량한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위대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일이다. 공적인 일들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쉴 날이 오기를 고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휴식도 나라의 일에서 나의 관심을 완전히 떼어놓지는 못한다. 내가 걸어야 했던 그 길이 힘들고 위험으로 가득 차고 배신으로 둘러싸인 굴곡 많은 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303] 레오나르도는 무엇보다도 손으로 말의 편자를 구부릴 수 있는 힘으로 유명하였다. 아주 훌륭한 검객이었고 말타기와 말을 다루는 데 대단히 뛰어났다. 스케치와 그림그리기, 글씨 쓰기 등을 모두 왼손으로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읽을 수 없도록 하려는 욕망보다 왼손잡이였기에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거꾸로 썼다.
스케치를 잘하기 위해 그는 자연에 있는 모든 사물을 호기심, 끈기, 조심성을 가지고 탐구하였다. 그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은 과학과 예술은 그렇게 동일한 기원을 가진 것이었으니 곧 세밀한 관찰이었다.

[304] 레오나르도는 그림을 시작하면서 너무 풍부한 상상을 하였고, 세부적인 것들에 실험적으로 빠져들면서 자기를 잊었다. 원래의 주제를 넘어 인간, 동물, 식물, 건축 형태, 바위, 산, 강, 구름, 나무들의 끝도 없는 모습을 신비스러운 명암으로 바라보았다. 그림의 기술적인 완성보다는 그 철학에 빨려 들어갔고, 의미를 드러내느라 바빠 이 인물들에게 색을 주는 일처럼 덜 중요한 작업은 다른 사람들 손에 넘긴 것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노동을 하고 나서, 그는 자신의 손과 물질이 구체화시킨 꿈의 불완전함에 절망해서 떠나갔다. 이것은 몇 가지 예외를 빼고는 마지막까지 레오나르도의 성격과 운명으로 남을 특징이었다.

[307] 그의 말에 따르면 미술은 구상과 도안의 문제이지 실질적인 실천의 문제가 아니었다. 실행은 그보다 못한 정신의 작업이었다. 아니면 그는 자신의 끈질긴, 마지막에는 끈질기지 못한 손길이 실현할 수 없을 정도의 섬세함, 중요성, 완성도 등을 생각했다가 절망에 빠져서 노력을 포기하였다. 그는 너무 빨리 한 가지 일이나 주제에서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에 관심이 있었다. 그에게는 하나의 통합하는 목표, 주도하는 이념이 없었다. 이 <보편인(universal man)>은 빛나는 부분들을 이어 붙여놓은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많은 능력을 지녔기에 그들을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308] 그의 기본 원칙은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베끼기보다는 자연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 화가여, 보라, 그대가 들판에 나가거든 여러 사물에 주의를 돌리고 차례로 하나씩 자세히 바라보고 별 가치가 없는 것들 중에서 여러 가지를 골라내라.>

[308] <언제나 인물이 그 머리를 가슴과 같은 방향으로 향하지 않게 만들라.> 레오나르도 자신의 작품에 나타나는 우아함의 한 가지 비밀이 이것이다. <인물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게 만들어라.>

[310]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실행이 아니라 구상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사리가 덧붙인 말에 따르면) <천재적인 사람들은 일을 가장 적게 할 때 가장 많이 일한다.>

[321] <하루를 잘 보내면 그 잠이 달다. 그렇듯이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음이 달다.>

[340]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문명이란 소수의,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원래의 정당성을 넘어 과대하게 찬양하는 것이 될 것이다.

[350] 그러나 일주일은 개혁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고 하드리아누스의 13개월 동안의 짧은 재임 기간도 충분하지 못했다. 악덕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지만 여전히 살아남았다. 개혁은 수많은 관리들에게는 지겨운 일이었고, 그래서 어두운 저항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하드리아누스가 빨리 죽기만을 바랐다. 교황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개선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탄식하였다.

[373] 로마 카톨릭 교회는 역사상 가장 특기할 만한 조직의 하나이다. 그 기원, 목적, 방법, 흥망성쇠, 잘못, 업적 등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면 다른 어떤 주제나 제도의 연구보다 인간의 본성과 가능성에 대해 많은 빛을 던져줄 것이다.

[392] 인류가 어리석음 덕분에 그 존재를 이어가고 있다.

[472] 감정은 지성에 종속되고 패배는 희망에 극복되고, 삶의 흥망성쇠는 미래의 인간 정신의 승리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전망 속에 파묻혔다.

[487]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능력은 한 점에서 만난다. 과정을 모르는 경우에는 결과도 산출될 수 없다. 자연이 명령을 내리므로 우리는 그것에 따라야 한다.

[487]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지식은 단순히 뒤범벅이며 소화되지 않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쉽게 믿는 태도, 수많은 우연 그리고 맨 처음에 흡수된 유치한 관념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다. 그러므로 출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에서 온갖 전 개념, 선입견, 억지, 이론 등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488] 과학에는 마법의 모자란 없다. 마법의 모자에서 나온 모든 것은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우선 그 안으로 집어넣어져야 한다. 단순히 우연한 관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료의 <단순한 열거>를 통해서가 아니라, <실험을 통해 찾아진 …경험>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

[488] 경험의 진짜 방법은 우선 촛불을 켜는 것이다(가설). 이어서 촛불을 수단으로 삼아 길을 비추고, 비로소 적절한 경험을 시작해서 …그것으로부터 공리를 이끌어낸다(<첫번째 결실>, 잠정적 결론). 그리고 이렇게 확정된 공리로부터 다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실험 자체가 판정을 내려야 한다.

[489] 베이컨의 생각에서 궁극적 목적은 과학의 방법을 인간 성격에 대한 엄격한 분석과 단호한 개조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정신에 대해 바다에 부는 바람과 같은 작용을 하는 본능과 감정의 연구를 촉구하였다.

[491] 학문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문을 도덕성에 종속시켰다. 학문의 확장이 자비심에 아무런 득도 가져오지 못한다면 인간성에는 아무런 이득도 없을 것이라 하였다. <정신의 모든 미덕과 존엄성에서 선의가 가장 위대한 것이다.>

[501] 여기서 역사는 영웅의 역사이다. 영웅이란 역사상 위대한 정치가나 장군만이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와 예술가, 시인까지 포함한다. 이 모든 영웅들은 한결같이 위대함과 더불어 인간적인 약점을 지녔다. 듀런트는 이들의 위대성을 깎아내리지는 않지만 슬그머니 미소를 띤 채 약점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501] 위대하든 평범하든 상관없이 한 인간을 오로지 훌륭하게만, 또는 나쁘게만 서술할 수 있겠는가? 위대한 인물이 지녔던 인간적인 약점은 그 인물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위대성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이들이 지닌 약점을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 허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위대했으며 마찬가지로 약점투성이인 우리 또한 위대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3. 내가 저자라면

책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의 의도는 문명의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의해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고 그 예를 살펴보는 것이다. ‘역사는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라는 역사를 쓰는 철학자의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다.

이 책은 서양의 역사를 대상으로 한다. 1장은 11권 대작 『문명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을 쓴 저술가답게 문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 4대 문명 발상지(2장-5장)를 돌아가면서 관찰한다. 서양의 역사와 문화의 뿌리인 고대 그리스(6장-8장)와 로마시대(9장-12장)가 간략하면서도 알기 쉽게 개관한다. 그리고 서양 정신에서 또 하나의 뿌리가 되는 기독교의 성장(13장-14장), 유럽에서 기독교 중세가 시들면서 피어난 근대의 꽃은 알프스 남쪽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15장-17장)로 북부 유럽에서는 종교 개혁(18장-19장)으로 나타난다. 개신교 종교 개혁에 맞선 가톨릭 종교 개혁(20장), 이어서 이성의 시대가 다가옴을 알리는 세익스피어와 베이컨의 시대(21장)로 끝을 맺는다.

단순히 서양사만을 소개한 것은 아니다. 사상과 예술의 흐름도 볼 수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부드러움도 느끼게 한다. 역사와 문학에 문외한은 나에게 이 점이 오히려 큰 부담과 벽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 벽을 깨고자 시작한 일이지만 오랫동안 세워진 벽이라 깨기가 아니 넘기가 무척 힘들다.

그러나 의외의 소득들도 있다. 첫째, 역사를 보는 또 다른 관점도 발견한 점이다. 사회 변혁에서도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부가 지나치게 한편으로 쏠리면 반드시 혁명의 기운이 생긴다.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연속 장면의 한 가지는 이교적인 방종의 시대에 이어 청교도적인 억제와 도덕적 규율의 시대가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p 21)

"보르지아 가문 사람들(교황 알렉산드로스 6세와 그 아들 체사레 보르지아)이 설치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용병대장들의 폭력과 성적인 문란함은 마지막에 교회의 정화와 도덕성 회복이라는 결과에 도달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에서의 무아지경은 크롬웰 치하의 청교도주의로 넘어갔다가, 다시 그 반작용으로 찰스 2세 치하 영국의 무종교 상태로 바뀌었다. 프랑스 혁명 10년 동안 정부, 결혼, 가족이 붕괴되었던 일은 결국 나폴레옹 1세 치하에서 법과 규율과 부모 권위의 회복으로 끝이 났다. 바이런과 셸리의 낭만적 이교주의와 뒷날 조지 4세가 되는 웨일스 왕자의 방종한 행동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단정함으로 넘어갔다. 이런 전례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자녀의 손자들이 청교도가 되리라고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p 21)

둘째,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매춘만큼 동성애도 오래전부터 성행하였고 그것도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다는 점이다. 최근 동성애와 성 전환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커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로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되었다.

셋째, 비범한 사람들은 너무 많은 능력을 지녔기에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평범한 사람은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할 수 있어 자신의 재능에 맞는 목표만 잘 설정한다면 오히려 비범한 사람들보다 훌륭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때 그 목표가 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위대한 영웅들의 업적만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약점 또한 털어놓음으로써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지만 왜 영웅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위인으로서 바라보기에 힘든 부분도 많았다. 위인이란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일차적 변화를 일으킨 사람이란 관점에서 볼 때 그에 대한 설명이 미진했던 부분이 다소 있었다. 그것은 분명 역사에 대한 나의 무식에서 나온 이해의 부족일 것이다.

둘째, 책은 읽는 동안 많은 영웅이 등장하다 보니 영웅에 대한 호기심이 반감되었고 느낌에 대한 기복도 심하였다. 재미있다가도 이름이나 사건의 나열로 지겨워질 때도 많아 책에 집중할 수 없어 가독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저자가 책을 쓰는 스타일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내용을 수정하는 단계를 거치지 않은 유작이라 그런 면이 나타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셋째, 동양의 문명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저자가 서양인이라는 한계가 나타났다. 시나 사상에 대한 느낌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이태백의 시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번역에 재번역을 함으로써 나타나는 한계도 있어 시를 음미하기는커녕 독자로 하여금 오히려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역사적 영웅들에 대한 업적을 유머와 유려한 필치로 느낄 수 있었고 장대한 인류의 역사를 저자의 깊은 통찰력을 통해 단숨에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사와 예술에 대한 짧은 나의 지식으로 인해 그 깊은 맛을 느낄 수 없어 많이 아쉬웠다. 다음에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올리고 역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글을 통해 느껴보면서 지금의 아쉬움을 달래야 하겠다.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악을 향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업적과 우리가 물려받은 장엄한 유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p 23)

IP *.211.61.245

프로필 이미지
최정희
2007.05.30 12:59:28 *.114.56.245
아니예요. 답답해 하실필요가 없어요. 서두 첫 몇 줄이 벌써 저를 감동시켰는데요. 작은 울림이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것 .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 반짝이는 보석을 충분히 찾으셨습니다. 가는 5월의 향기가 좋네요.
프로필 이미지
송창용
2007.05.30 15:47:46 *.99.120.184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연구원들의 글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제가 너무 큰 것을 바래서 작은 울림을 무시하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72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를 읽고 (비참한 삶과 함께하는 지은이의 활약) 산골소년 2007.06.06 2225
871 -->[re]책을 읽는 일과 저자를 이해하는 일에대하여 [2] 구본형 2007.06.04 2206
870 『한국사신론』을 읽고 [1] 현운 이희석 2007.06.04 2232
869 [독서12] 한국사신론/이기백 [2] 素田 최영훈 2007.06.06 2997
868 [12]한국사 신론(이기백) [6] 써니 2007.06.04 2651
867 (012) 한국사 신론 / 이기백 [2] 校瀞 한정화 2007.06.04 2332
866 (12) '한국사신론'을 읽고 [4] 時田 김도윤 2007.06.04 2296
865 리뷰(12) 해방전후사의 인식 - 한길사 [1] 최정희 2007.06.04 2328
864 [한국사신론] 사회변혁의 작용과 반작용 [6] 余海 송창용 2007.06.04 2423
863 [리뷰012] 한국사신론, 이기백 [3] 香山 신종윤 2007.06.14 2927
862 한국사 신론/이기백 [3] 香仁 이은남 2007.06.04 2563
861 한국사 신론 / 이기백 [3] 好瀞 김민선 2007.06.03 3184
860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3] 이야기 2007.05.29 2553
859 (10) 역사속의 영웅들 : 윌 듀런트 [2] 박소라 2007.05.28 2372
858 『역사 속의 영웅들』을 읽고 [1] 현운 이희석 2007.05.29 1893
857 (11) 역사속의 영웅들 - 윌 듀란트 [1] 박승오 2007.05.28 2132
856 (11) ‘역사 속의 영웅들’을 만나다! [9] 時田 김도윤 2007.05.28 2218
» [역사속의 영웅들] 아쉬운 영웅들의 이야기 [2] 余海 송창용 2007.05.28 2357
854 (011) 역사 속의 영웅들 / 윌 듀런트 [2] [1] 校瀞 한정화 2007.05.28 2448
853 [독서11]역사속의 영웅들/Will Durant [2] 素田 최영훈 2007.05.30 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