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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8일 21시 26분 등록
‘역사 속의 영웅들’을 만나다!



#1. 프롤로그

깜짝 선물처럼 주어진 일주일의 여유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조금 편안하게 읽었다. 한꺼번에 몰아서 집중해서 읽지 않고, 일상 생활과 함께 읽었다. 학원 가기 전 햄버거를 씹으면서,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아이스크림과 과자와 함께 읽었다. 이 책은 그런 편안함과 참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이 책은 ‘수많은 성인(聖人), 정치가, 발명가, 과학자, 시인, 예술가, 음악가, 연인, 철학자들이 살아서 말하고 가르치고 조각하고 노래하는, 정신의 나라, 하늘의 도시’에 관한 이야기였다. 윌 듀런트가 우리와 ‘함께 걸으면서 삶, 사랑, 전쟁, 시, 사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관용, 지혜, 깊어진 삶에 대한 더 많은 사랑의 위대하고 고귀한 전망’의 세계로 초대하는 듯한 책이었다.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깨달은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지혜로운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 같은 이 책을 읽으며, 난 웃기도 했고, 가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주어진 여유로운 휴식이자 즐거운 책 읽기였다.

#2. 저자에 대하여



윌 듀란트(Will Durant)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그리고 작가이다. 그는 스스로를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칭했으며, 이에 걸맞게 ‘철학 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와 총 11권에 이르는 대작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로 유명하다.

그는 1885년 11월 5일, 미국 메사추세스 주 노스 아담스(North Adams)에서, 프랑스-캐나다계 퀘벡 이주민인 조셉 듀란트(Joseph Durant)와 메리 앨라드(Mary Allard)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그가 종교인으로서의 삶의 살기를 원했다. 그는 뉴저지주 커니(Kearny)에 위치한 카톨릭 교구 부속학교에서 수녀들에게서 수업을 받았으며, 교리를 매우 충실히 공부했으므로 모두들 그가 사제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1900년, 저지 시의 성 베드로 학교(St. Peter's Academy and College)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는 18세가 되던 해, 저지 시의 공공 도서관에서 다윈, 헉슬리, 스펜서 등의 매력적인 무신론자들의 작품을 만나게 되고, 종교에 대한 그의 믿음과 헌신은 상처를 입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종교인으로서의 길을 갈 수 없음을 깨달았고, 그가 사제가 되리라 굳게 바라던 부모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1905년, 그는 종교에 대한 굳센 믿음 대신 사회주의에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1907년, 대학을 졸업한 후 듀란트는 뉴욕 이브닝 저널의 신참 리포터로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매일 성범죄 현장을 뒤쫓는 일은 비록 사회주의로의 전향을 결심했지만 여전히 도덕적인 신학 청년이었던 그에게는 잘 맞지 않는 일이었다. 같은 해 가을, 그는 뉴저지, 사우스 오렌지(South Orange)의 세톤 홀 대학에서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와 기하학 등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09년, 듀란트는 같은 대학의 부속 신학교에서 그의 비밀 조직과 함께 토마스 아퀴나스와 칼 마르크스를 통합하려는 연구를 시작한다.

마침 세톤 홀 대학은 훌륭한 도서관을 갖추고 있었고, 그는 사서로 일하며 여러 책들을 열심히 탐독했다. 이 때 그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 위대한 사상가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철학자 ‘스피노자’였다. 스피노자의 대표작 ‘에티카(Ethics Geometrically Demonstrated _ 기하학적으로 증명된 윤리학)’는 그에게 철학자의 진실한 삶, 가르침과 실천의 통합, 세계를 이해하려는 치열한 노력 등의 모범을 제시해주었다.

듀란트는 이제껏 자신이 믿어왔던 신념으로 인해 자신이 평생 살게 될 불성실한 삶에 몸서리를 쳤으며, 그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허황됨을 깨닫게 된다. 아마 ‘교회의 총애를 받다가 진리의 길을 가기 위해 파문 당했던’ 스피노자의 삶에서 그의 길을 발견하고, 용기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마침내 1911년, 그는 달랑 4권의 책과 40달러를 손에 들고 신학교를 떠나게 된다.

신학교의 편안한 삶을 버린 대신, 맨하탄에서 그 시대의 급진적인 물결을 헤쳐나가기로 결심한 그는 같은 해, 페러 모던 스쿨(Ferrer Modern School)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유주의 교육을 실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곳에서 견문을 넓히기 위해 가게 된 유럽 여행에서, 그의 학생이었던 에이리얼 듀란트(본명, Chaya Kaufman)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1913년,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교사직을 사임한 그는, 생계를 위해 5~10달러를 받는 강의를 시작하고, 앨던 프리맨(Alden Freeman)의 도움을 받아 콜럼비아 대학교의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곧 그의 딸 에델(Ethel)이 태어나고, 새로운 생명의 신비로움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철학 또한 서서히 변화하게 된다. 젊은 날의 이상과 음울함은 삶에 대한 찬양과 감탄으로 바뀌어 간다. 그리고 딸의 탄생과 함께 그의 부모들과도 다시 화해하게 된다.

젊은 날의 그는 역사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브리즈반(Brisbane)의 인간의 과거를 철학적으로 이해하려는 가르침에 따라 영국의 역사가, 버클(Henry Thomas Buckle)의 책 ‘Introduction to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n England’를 접하게 된 그는 이에 깊은 감동을 받고, 버클이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과업을 자신이 마저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1917년, 그는 첫번째 저서 ‘Philosophy and the Social Problem’을 내고, 박사 학위를 따고, 콜럼비아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하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수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자, 자신의 자리를 사임한다. 동시에 그는 한 교회(Labor Temple)에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철학, 문학, 과학, 음악, 예술의 역사에 대한 강좌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훗날 그의 ‘철학 이야기’와 ‘문명 이야기’의 밑거름이 된다.

1921년, 유명한 ‘Little Blue Books’ 시리즈의 발행인인 줄리어스(E. Haldeman-Julius)가 우연히 그의 수업을 듣게 되고, 그의 강의를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다른 일들로 바빴던 듀란트은 처음에 이 제안을 거절하지만, 줄리어스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에게 선금을 주며 철학자 한 명씩에 대한 소책자를 쓰게 만들었고, 이렇게 11권의 소책자가 모여 1926년 마침내 ‘철학 이야기’가 탄생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성공으로 경제적인 자유를 얻게 된 듀란트는 버클의 책을 읽은 뒤 가슴에 품고만 있었던 문명의 역사에 대한 저술을 마침내 시작할 결심을 한다. 또한 ‘철학 이야기’로 명성을 얻은 그는 잡지 등에 기고를 하게 되고, 이런 에세이들을 묶여 나중에 ‘The Pleasures of Philosophy.’란 이름으로 재출간되는 The Mansions of Philosophy’ (1929)를 출판한다.

이후, 그는 아내 에이리얼과 함께 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 이야기인 ‘문명 이야기’의 집필에 집중하고, 1935년, 출판된 첫 번째 책인 ‘Our Oriental Heritage’에서 시작해서 1975년, 11번째 책인 ‘The Age of Napoleon’으로 시리즈가 마무리되는 약 50년의 세월 동안 그의 긴 여행은 계속된다. 그 중 제10권, ‘Rousseau and Revolution(1967)’은 그에게 퓰리처 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으며, 1977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포드 대통령으로부터 ‘자유 훈장(Medal of Freedom)’을 수상한다.

그는 ‘문명 이야기’를 통해 ‘통합된 역사’를 보여주기를 원했다. 단지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기술된 역사가 아닌, 전문가의 관점이란 이름으로 각각의 부분으로 쪼개어진 역사가 아닌 그 당시 존재했던 그대로의 ‘전체적인 그림’으로서의 역사를 담아내고자 했다. 듀란트의 글을 빌려보자.

“나는 역사가 전체로써 보기를 원한다. 나는 통합된 전체로 짜인, 연관성 있는, 상호 의존적인,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한 시대의 남자와 여자의 모든 활동들을 보기를 원한다. 나는 과거가 모두 함께, 그러했던 모습으로 보기를 원한다.

(I want to see history written as a whole; I want to see all these activities of men and women in one age woven into unity, shown in their correlations, their interdependence, their mutual influences; I want the past presented as it was -- all together.)”

또한 그는 역사와 문명에 대한 자신의 이러한 관점을 담아내고자 했다.

“과거가 죽은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그 어떤 일도 과거에 일어난 일들의 영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현재는 단순히 과거가 쌓여진 것이며, 이 순간의 시간에 집중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 역시 당신의 과거이다. 당신의 얼굴은 당신의 자서전이며, 지금의 당신은 지나온 시간들 속의 당신이다. 잊혀진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당신의 유전 형질, 당신을 둘러싼 환경의 모든 요소들의 영향, 당신이 만난 모든 사람들, 당신이 읽었던 모든 책들과 당신의 모든 경험,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의 기억과 몸, 성격과 영혼 속에 축적되어 있다. 그래서 도시도, 국가도, 민족도 그것의 과거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 없이는 그 무엇도 온전히 이해될 수 없다.

(It is a mistake to think that the past is dead. Nothing that has ever happened is quite without influence at this moment. The present is merely the past rolled up and concentrated in this second of time. You, too, are your past; often your face is your autobiography; you are what you are because of what you have been; because of your heredity stretching back into forgotten generations; because of every element of environment that has affected you, every man or woman that has met you, every book that you have read, every experience that you have had; all these are accumulated in your memory, your body, your character, your soul. So with a city, a country, and a race; it is its past, and cannot be understood without it.)”

“아마도 현재의 비관론은 개인과 경제 생활, 정치적인 집단 사이의, 종교적 교리 사이의, 정부들 사이의 전쟁 등과 같이 충돌의 거친 물결로 역사를 바라보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극적인 측면이다. 그것은 역사가의 눈과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뜨거운 증오와 어두운 피로 가득 찬 분쟁의 미시시피강으로부터 일단 시선을 옮겨 보면, 우리는 좀 더 조용하지만 보다 영감을 자극하는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여인들은 아이를 기르고, 남자들은 집을 짓고, 농부들은 땅에서 식량을 일궈내고, 직공들은 편리한 삶을 만들어내고, 정치가들은 전쟁 대신 평화를 구축하고, 교사들은 야만인들을 시민으로 바꾸고, 음악가들은 우리의 가슴을 화성과 리듬으로 길들이고, 과학자들은 차근차근 지식을 쌓아 올리고, 철학자들은 진리를 탐색하고, 성인들은 사랑의 지혜를 설교한다. 역사는 종종 피의 강물로 그려져 왔다. 그러나 문명의 역사는 강둑 안에서 일어난 일들의 기록이다.

(Perhaps the cause of our contemporary pessimism is our tendency to view history as a turbulent stream of conflicts - between individuals in economic life, between groups in politics, between creeds in religion, between states in war. This is the more dramatic side of history; it captures the eye of the historian and the interest of the reader. But if we turn from that Mississippi of strife, hot with hate and dark with blood, to look upon the banks of the stream, we find quieter but more inspiring scenes: women rearing children, men building homes, peasants drawing food from the soil, artisans making the conveniences of life, statesmen sometimes organizing peace instead of war, teachers forming savages into citizens, musicians taming our hearts with harmony and rhythm, scientists patiently accumulating knowledge, philosophers groping for truth, saints suggesting the wisdom of love. History has been too often a picture of the bloody stream.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s a record of what happened on the banks.)”

그는 자신의 말처럼 ‘역사를 쓰는 철학자’였다. 듀란트는 이처럼 동양과 서양, 종교, 예술, 철학 등을 역사를 통해 한데 엮음으로써 전체를 바라보는 통합적인 관점을 제시하고자 노력했고, 역사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자신의 깨달음을 철학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저술과 교육을 통해 일반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했다.

또한 그는 책과 현실을 조화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는 글을 쓰는 작가였지만 단지 저술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미국 노동자들의 더 나은 작업 환경과 평등한 임금, 여성의 참정권 등을 위해 투쟁했으며, 그의 생각들을 현실에 적용하고자 노력했다. 1945년 3월 22일의 ‘상호 의존 선언(The Declaration of Interdependence)’은 이러한 그의 노력의 일환이었다.

‘문명 이야기’를 쓴 위대한 역사가였지만, 일상에서는 웃음을 잃지 않고, LA 다저스의 야구팬이었으며, 따뜻한 스승이자 소탈하고 쾌활한 생활인이었던 그는, 65년을 부인과 함께 저술 활동을 하며,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범적인 인생을 산 할아버지였다. 그의 지혜로운 책 뿐만 아니라, 행복하고 충실했던 삶 또한 우리의 앞길을 따뜻하게 비춰준다.



듀란트는 1981년 11월 7일,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아내 에이리얼이 세상을 떠난지, 13일만이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까지 ‘역사 속의 영웅’을 위한 새로운 자료를 첨부하였다. 그의 사후에 2권의 책이 출판되었는데, 하나는 ‘The Greatest Minds and Ideas of All Time(2002)’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지금부터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써내려 간, 원래 23개의 장으로 구상했지만 21개의 장에서 아쉽게 끝맺어야 했던, 역사를 위한 경이로운 입문서 ‘역사 속의 영웅들(Heroes of History)’ 속으로 들어가보자.


#3. 가슴 속에 들어온 인용문

들어가는 말 _ 윌 듀런트가 남기 마지막 유언

(9) <역사는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

(10) 내게 있어서 역사란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삶과 현실의 광범위한 전망을-당신의 태도를 현실이나 삶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가는 광범위한 전망 말이다. … 당신은 적어도 두 가지 방식으로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과학을 통해서이다. … 다른 하나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공간 속의 사물보다는 오히려 시간 속의 사건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 나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려 한다고 말했다. 과학을 통해서는 그것을 찾아낼 수가 없다. 역사는 시간 속의 사건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허락해주신다면 결론적으로 나는 자신을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12) 그는 명성보다는 명료성을 위해 싸운 철학자였다. 눈부시고 힘찬 산문으로 글을 썼으며, 또한 인류는 충분한 영감을 받기만 하면 신들과 동일한 위대성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여겼던 사람이다.

니체와 똑같이 <모든 철학은 역사에 (그 힘을) 빼앗겼다>고 느꼈던 듀란트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곳이 바로 인류의 본성이 진정 어떤 것인지 찾아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3) …… 수많은 성인(聖人), 정치가, 발명가, 과학자, 시인, 예술가, 음악가, 연인, 철학자들이 살아서 말하고 가르치고 조각하고 노래하는, 정신의 나라, 하늘의 도시….

제1장 _ 문명이란 무엇인가

(15) 인류 역사는 생물학의 한 단편(斷片)이다. 인간은 수없이 많은 종들 중의 하나이고,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싸움과 살아남기에 가장 적합한 존재들의 경쟁에 존속된다. 심리학, 철학, 정치적 능력 그리고 이상향들은 이 생물학 법칙과 화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6) 욕심이나 싸움을 좋아하는 기질 그리고 아무 때라도 짝짓기를 할 수 있는 능력 등은 이 사냥꾼 시절의 미덕이었다. 바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자질은 아직도 남자의 기본 성격으로 남아 있다. 문명 세계에서도 남자들의 주요 기능은 밖으로 나가 가족을 위해 먹을 것이나 혹은 필요할 때 먹을 것으로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을 벌어오는 일이다. 남자들은 대단히 빛나는 존재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따지면, 자궁이며 인간 종족의 주류인 여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존재이다.

(16-17) 문명을 위한 최초의 토양인 농업은 아마도 여자가 발전시켰을 것이다. … 그녀의 실험이 성공하자 배우자는 자신과 다른 남자들이 함께 힘을 합쳐 외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다면, 자신도 불확실한 사냥이나 유목의 행운에 목숨과 먹이를 거는 대신 여자들과 함께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는 집과 정착 생활에 적응하였다. 여자들은 먼저 양, 개, 나귀, 돼지들을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남자를 길들였다.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인 동물로, 마지못해 부분적으로만 문명화되었다. 남자는 천천히 여자에게서 사회적 특질을 배워 익혔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절(친족과 가까워지는 것), 절제, 협동, 공동체 활동 등이다. 이제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자질이 미덕이 되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바로 문명의 시작이다. 즉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

(17) 그러나 이와 더불어 자연과 문명 사이의 깊고도 끈질긴 갈등도 함께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의 길고도 긴 사냥 단계에서 아주 깊숙이 뿌리를 내린 개인적 본능과, 최근의 정착 생활을 통해 생겨났지만 아직도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이다.

(17)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직도 자연 상태, 즉 사냥꾼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군사적 팽창은 음식, 연료, 혹은 원료를 위한 사냥에 해당한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국민의 먹는 방법이다. 국가는 곧 우리 자신이며 조직과 방어를 위해 증진된 우리의 추진력이다. 국가는 우리가 가졌던 욕심과 호전성의 본능을 원시인처럼 드러낸다. 국가는 아직 불안하다. 국가의 탐욕은 미래의 필요와 결핍에 대한 방어다. 오직 외부에 대한 안전을 느낄 경우에만 국가는 내부의 필요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18) 남자들이 물려받은 사냥꾼 천성에도 불구하고 문명은 어떻게 성장하였나? 문명은 이 천성을 질식시키려 하지 않았다. 어떤 경제 체제도 축적 본능에 호소하지 않고는, 그리고 훌륭한 보상을 통해 더 우수한 능력을 이끌어내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은 문명은 받아들였다. 어떤 개인도 어떤 국가도 자기 보존을 위해 싸우려는 의지가 없이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어떤 사회나 종족, 종교도 번식하지 않고는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축적의 욕심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산발적 도둑질, 대규모 강도질, 정치적 부정 부패 등이 널리 퍼질 것이고, 부(富)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집중되어 마지막에는 혁명을 부를 것이다.

(20) 남자와 여자는 천천히 절제, 친절과 예의, 도덕적 양심과 미적 감각 등을 발전시켰다. 이런 것들은 만질 수는 없어도 소중한 우리 유산의 은총이다. 문명이란 문화적 창조를 격려하는 사회질서다.

(22) 그러나 역사에는 방종과 그 반대 사이의 이러한 진자 운동보다 더 즐거운 전망이 있다. 나는 저 볼테르와 기본(Gibbon)의 비관적 결론, 즉 역사는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의 기록>이라는 결론에 동의하지 않겠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 말이 맞고 또한 수억 가지의 비극들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생명의 흐름을 이끌어온 것은 평범한 가족의 건강함과, 남자들과 여자들의 노동 그리고 사랑이다.

(22-23) 이 소란스럽고 더러운 강 위에, 부조리함과 고통 한가운데에 진짜 신의 도시가 감추어져 있다. 이 도시에서는 과거의 창조적 정신이 기억과 전통의 기적에 의해 아직도 살아서 작용하고 모습을 다듬고 형태를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거기서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함께 철학을 가지고 논다. 셰익스피어가 매일 새로운 보물을 가져온다. 키츠는 아직도 나이팅게일 소리에 귀를 기울리고, 셸리는 서풍(西風)에 실려 떠다닌다. 니체가 거기서 미친 듯 떠들어대며 폭로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빵을 함께 나누자고 우리를 부른다. 이들과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그리고 그들이 가져다준 선물이 인간 종족의 엄청난 유산이다. 씨줄과 날줄로 짜인 역사라는 피륙(천)을 이어가는 황금의 전통이다.

우리는 도전해오는 악을 향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업적과 우리가 물려받은 장엄한 유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제2장 _ 공자와 추방당한 신선

(26) 처음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존재였다. <사람들은 짐승과 같았다. 몸에 두른 옷이라고는 자신의 가죽뿐이고 날고기를 먹고 어미는 알지만 아비는 알지 못하였다.> 아니면 오늘날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것이다. <밍크 코트를 입고 덜 익힌 스테이크를 좋아하고 남자들은 공짜 사랑을 즐겼다.>

(29) 자연이란 자연의 활동성이며 전통적 사건의 고요한 흐름이고, 계절과 하늘의 웅대한 행진이며 질서다. 그것은 모든 시내와 바위와 별에 새겨져서 드러나는 <길(道)>이다. 그것은 공평하고 인간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인 사물의 질서다. 우리가 지혜를 지니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행동의 법칙은 이 질서를 따라야 한다(스피노자도 주장한 것). 이 사물의 법칙은 바로 우주의 도(道), 즉 길이며 행동의 법칙은 삶의 도, 즉 길이다. 노자에서 두 길은 하나가 된다. 탄생, 삶, 죽음의 리듬을 지닌 인간의 삶은 우주 리듬의 일부다.

(30) 나는 진실한 사람에게 진실하며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진실하다. 그러면 모두가 진실하게 된다. …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을 이긴다.

(33) 제국(온 세상)에 최고의 미덕을 펼치기 원했던 옛사람들은 먼저 자기 나라의 질서를 잘 잡았다. 나라의 질서를 잘 잡기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가족을 단속하였다. 가족을 단속하기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렸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였다. 마음을 바르게 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생각을 신중히 하였다. 생각을 신중히 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지식을 최대한 넓혔다. 지식을 넓힌다는 것은 사물을 탐구하는 것이다.

사물을 탐구하자 지식이 완전해졌다. 지식이 완전해지자 생각이 신중해졌다. 그들의 생각이 신중해지자 마음이 바르게 되었다. 마음이 바르게 되자 그들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다스리게 되자 가족을 단속할 수 있었다. 가족을 단속하게 되자 나라가 바르게 통치되었다. 나라가 바르게 통치되자 온 세상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되었다.

(40) 모든 혼란은 일시적일 뿐이다. 마지막에는 무질서가 치유되고 독재 정권과 더불어 균형을 이루고, 낡은 장애물들은 거칠게 쓸려나가고 새로운 성장이 나타날 것이다. 죽음과 양식(樣式)처럼 혁명이 쓰레기를 제거하고 불필요한 것을 도려낼 것이다. 많은 것들이 죽어야 할 순간에 혁명이 나타난다. 중국은 전에도 이미 여러 번이나 죽었다. 그리고 여러 번이나 다시 태어났다.

제3장 _ 붓다에서 인디라 간디까지

(42) <우파>는 <가까이>, <샤드>는 <앉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하나 혹은 여러 명의 학생들이 구루, 곧 선생님 앞에 앉는다는 의미이다. 가르침은-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구루들에 의해 전수되고 있다-이해와 깨달음의 세 단계를 보여준다. 첫번째 단계는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내면을 관찰하는 일이다. 감각, 소원, 기억, 추론, 사색 등을 무시해라. 이 모든 지적 작업을 옆으로 밀쳐내라. … 마침내 그런 조작들 뒤에 숨어 있는 마음 자체를 느낄 때까지 그리고 의식 자체의 의식을 느낄 때까지 계속해라. 이것이야말로 모든 현상들-모든 지각과 따라서 모든 사물들-이 토대로 삼는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실체다. 구루들은 이러한 근원적인 실체를 아트만(자아)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영어의 <혼(Spirit)>, <영감(Inspire)> 등과 마찬가지로 <숨결>을 뜻했던 말로 보인다.

(43) 두번째로 모든 사물에는 우리 자신의 내면과 마찬가지로 내적이고 생명이 있고 비물질적인 힘의 숨결이 있다. 이것이 없다면 사물은 혼이 없고 동작이 없고 죽어 있을 것이며 어느 것도 살거나 자라지 못한다. 이들 살아 있는 모든 힘의 총합이 브라마(범천)이다. 생명과 생각 뿐 아니라 모든 형태와 힘도 바로 그것에 의존한다. 브라마는 삼라만상 모두에 스며들어 있는 정수(精髓)로 비물질적이고 성(性)의 구별이 없고, 비개인적이며 만질 수 없는 것이다. …

세번째로 아트만과 브라마는 원래 하나다. 우리 속에 들어 있는 비개체적 영혼 혹은 힘은 세계의 비인격적 영혼과 동일한 것이다.

(43-44) 「거기 무화과 열매 하나를 가져와라」「여기 있습니다, 선생님」「그것을 쪼개라」「쪼갰습니다」「거기 무엇이 보이느냐?」「아주 작은 씨앗들이 보입니다, 선생님」「그 중 하나를 쪼개봐라」「쪼갰습니다」「거기 무엇이 보이느냐?」「아무것도 안보입니다」「친애하는 그대여, 네가 감각하지 못하는 이 가장 섬세한 정수-바로 이 가장 섬세한 정수에서 이 큰 나무가 자라 나온다. 내 말을 믿어라…. 이 가장 섬세한 정수야말로 온 세상의 혼이다. 그것이 실체다. 그것이 아트만이다. 타트 트밤 아시-그것이 바로 너다, 슈웨타케투야」「선생님, 내가 더욱 많은 것을 이해하도록 하시는군요」「그렇다면 그렇게 되어라」

(46)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모든 소망을 접고 오직 모두에게 좋은 일만 할 수 있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망상인 개체성(나 자신이라는 의식)은 극복되고 영혼은 마침내 의식이 없는 무한성과 합쳐질 수 있게 된다. 모든 개인적 소망을 말끔히 걷어낸 마음속에 어떤 평화가 나타나는가!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말끔하게 정화시키지 못한 마음이 무슨 평화를 알겠는가? 행복이란 이교도들이 믿듯이 이승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믿듯이 저승에서도 가능하지 않다. 평화는 열망이 없는 냉정한 평온함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이 해탈(니르바나)이다.

(48) 죄라는 것은 이기심과, 개인적인 이익이나 쾌락을 찾는 일이다. 영혼이 모든 이기심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영혼은 되풀이해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해탈이란 죽음 뒤의 하늘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심을 극복한 고요한 상태이다. … 욕심에 시달리는 우리의 자아는 실제로는 분리된 존재나 힘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강물 위에 이는 순간적인 잔물결이고, 바람에 날리는 운명의 올가미 속에 얽혔다 풀어졌다 하는 작은 매듭일 뿐이다. 우리 자신이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본다면, 전체의 틀 안에서 우리 자신을 개선하고 우리의 소망을 바꾼다면, 우리의 개인적인 실망과 패배, 비탄과 고통, 피할 수 없는 죽음 등이 더는 이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무한성의 넓이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마지막에 우리는 해탈, 곧 이기적이지 않은 평화를 찾을 것이다.

(49) … 신을 생각지 않았던 붓다는 신이 되고 말았다.

(52) 간디를 이끌었던 생각은 고대 방식의 단순함에 만족하는 사람들의 그것이었다.

미래를 향한 전망이 대개 그렇듯 이 또한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 가장 친절한 영혼과 가장 평화로운 정착지도 가혹하고 강한 사람의 처분에 맡겨지기 마련이다. 다윈이 거듭 그리스도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제4장 _ 피라미드에서 이크나톤까지



(59) 피라미드에는 야만적으로 원시적인 요소가 있다. 그토록 난폭하게 엄청난 크기를 만들어낸 일과 영원성을 향한 공허한 갈망이 그것이다.

(72) 고대의 땅에서 온 여행자들 만났네. / 그가 말하길, / 몸통없는 거대한 돌다리 두개가 사막에 서 있다 하네. … / 그 옆에는 모래에 반쯤 파묻힌 채 부서진 얼굴 하나가 놓여 있는데 / 찌푸린 눈살, 주름진 입술, 차가운 명령의 비웃음은, / 이것을 만든 조각가가 그 정열을 잘 읽었음을 보여 준다네. / 그 정열은 이 생명 없는 물체에 새겨진 채 아직도 남아 있네. / 그것을 조롱하는 손길과 그것을 키운 마음, / 받침대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다네. /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 강한 이들여, 내 이룬 것들을 보고 절망하라!> / 그밖에 남은 것은 없다네. / 거대한 잔해가 무너진 주위로 끝도 없이 헐벗은 채로 / 외롭고 평평하게 모래만 너르게 펼쳐져 있을 뿐.

제5장 _ 구약 성서의 철학과 시

(77) 다윗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요소들을 지닌 놀랍고도 확실한 남자이며, 내면에 많은 야만성의 면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한 문명의 모든 약속을 보여주는 남자이다.

(83) <불의가 그토록 자주 승리한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정의와 사랑의 신이 다스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83) 그는 지상의 존재란, 피할 길 없는 죽음을 매일 연기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사람이란 결국 여인에게서 태어나는 것, 그의 수명은 하루살이와 같은데도 괴로움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꽃처럼 피어났다가 찍혀 나가고 맙니다. 그림자처럼 흘러가다가 지속되지 않습니다. … 나무는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찍혀도 다시 피어나 움이 거듭거듭 돋아납니다. …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별수없고 정신만 놓으면 그만입니다. 늪에서도 물이 마르고 강줄기도 말라버릴 수 있듯이 사람은 누우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습니까?

(85) 이것은 행복한 결말이다. 길들여지고 기쁨이 없는 결말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가 누구기에-순간의 안개 속에 있는 티끌들-우주를 이해하겠는가? 철학은 전체의 빛 속에서 부분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큰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이 그 최초의 교훈이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라는 것은 아마도 건강, 아름다움, 진실, 지혜, 도덕성, 행복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가 될 것이다.

(86) 그는 역사를 공부하였으나 이것 또한 헛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역사는 동일한 것을 큰 규모로 되풀이하고 있으며 성서의 족보처럼 탄생과 죽음의 기록일 뿐이기 때문이다.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 가쁘게 가고…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흘러내리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아직 목숨이 붙어 살아 있는 사람보다 숨이 넘어가 이미 죽은 사람들이 복되다고 하고 싶어졌다. … 명예가 값진 기름보다 좋고 죽는 날이 태어난 날보다 좋다. … 사람이란 본래 짐승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 다 같은 곳으로 가는 것을! 다 티끌에서 왔다가 티끌로 돌아가는 것을! … 모든 것이 헛되다.

(88)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쳐주시니,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이, 신나게 치닫는 용사와 같이 / 하늘 이 끝에서 나와 하늘 저 끝으로 돌아가고 / 그 뜨거움을 벗어날 자 없사옵니다. (시편 19편)

(89-90) 내 임은 유향 꽃송이, 온 밤을 내 젖가슴에 묻고 지내셔도 좋으리. / 내 임은 엔가디 포도원에 핀 헨나 꽃송이어라. / 그대 내 사랑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비둘기 같은 눈동자. / 나는 샤론에 핀 수선화, 산골짜기에 핀 나리꽃… / 포도주 잔을 들고 내 곁에 머물러요, 사과로 나를 위로해 주어요, / 나는 사랑으로 병들었으니… / 들판을 뛰노는 노루 사슴 같은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 이 사랑이 잦아들기까지 제발 방해하지 말아다오. / 흔들어 깨우지 말아다오… / 임은 나의 것, 나는 임의 것, / 임은 나리꽃밭에서 양을 치시네. / 선들바람이 불기 전에 / 땅거미가 지기 전에, / 임이여, 돌아오셔요. / 노루처럼, 날랜 사슴처럼 / 베델산으로 돌아오셔요… / 임이여, 어서 들로 나갑시다. / 이 밤을 시골에서 보냅시다. / 이른 아침 포도원에 나가 / 포도나무 꽃이 피었는지 / 석류나무 꽃이 망울졌는지 보고, / 거기에서 나의 사랑을 임에게 바치리다.

(90-91) 건강한 신체의 즐거움이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겠으나, 그것이 욥의 비명에 어떻게 답변을 하겠는가? 아니면 육체적 결합이나 동물적 생존보다 더 큰 중요성읠 갈구하는 영혼의 갈망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모파상이 <진실한 사랑에서는 영혼이 육체를 감싸안는다>고 말했을 때 그는 좀 더 섬세한 헌신을 생각하였다.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에고를 가장 많이 넓혀주고, 살아 있고 평화로운 모든 것들에 대해 마음과 팔을 활짝 여는 일이다. 영혼이 행복하면 그 사랑도 커진다.



제6장 _ 페리클레스에 이르는 길

(104) 부자 중에서도 가장 부자인 사람은 <재산이라고는 위장, 허파, 두 발 밖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소유물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소년이나 소녀의 피어나는 매력 그리고 변화하는 삶의 계절과 화해하는 생활이다>.

(107) <인간을 위해 지속적인 정의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강하거나 영리한 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법이든 피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법은 거미줄과 같아서 작은 파리는 잡지만 큰 벌레는 뚫고 도망친다>

제7장 _ 아테네의 황금 시대

(115) 페리클레스 시대의 풍요 속에서도 가장 심오한 사람들-철학자가 아니라 극작가들-의 사색은 아름다움의 짧음 그리고 죽음의 끈질김에 의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121)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로 자신의 시대를 시작하였다. 그는 에우리피데스의 집에서 솔직한 불가지론을 설파하였다. <신에 관해 말을 하자면 나는 그들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제8장 _ 플라톤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134) 부의 한가운데서 빈곤이 늘어났다. 영리한 사람들에게 돈을 벌 기회를 준 다양성과 교역의 자유는,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전보다 더 빨리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잃어버릴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한다. <아테네는 두 도시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도시와 부자들의 도시가 되어 서로 전쟁을 한다.>

(144) 역사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날짜는 바뀌어도 사건은 언제나 똑같다.

(145-146) 소크라테스: 이런 나라에서 무정부 상태가 커져서 개인의 집에까지 퍼지게 된다. … 아버지는 아들 수준으로 떨어지고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수준에 서서 부모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 선생은 학생을 겁내서 그들에게 알랑거리고 학생들은 선생을 멸시한다.
아데이만토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소크라테스: 어떤 일이 과도하게 커지면 흔히 반대 방향으로 반자용이 일어난다. … 국가나 개인에게서 자유의 과도함은 오직 노예 상태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 가장 과격한 자유 형식에서 가장 나쁜 폭정 형태가 생겨난다.

(147) 아테네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가 자유에 대해 그토록 할 말이 적게 되었을 때 철학은 새로운 종교를 위해 무르익은 것이고 그리스는 새로운 왕을 위해 무르익었다.

(155) 그가 이렇게 인생의 절정기에 죽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나이가 더 들었더라면 분명 환멸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오래 살았다면 그는 아마도 패배와 고통을 통해 인생의 깊이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처음 시작할 때처럼-전쟁보다 정치를 더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많은 시도를 하였다. 그렇게 엄청나게 커진 왕국을 유지하고 감시하려는 노력은 그의 빛나는 정신을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다. 정력이란 천재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통제의 능력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온통 정력이었다. … 그를 보면 (나폴레옹을 보듯이) 경탄하게 된다. 그가 혼자 힘으로 세계의 절반에 맞섰기 때문이고, 또한 그는 한 개인의 영혼 안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제9장 _ 로마 공화국

(168) 그는 신체가 어려움을 견디고, 입맛은 곤궁을 견디고, 생각은 사실을, 혀는 침묵을 견디도록 자신을 훈련하였다. 적군(로마)의 역사가인 리비우스에 따르면 그는 <전쟁터에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에 떠나는> 사람이었다.

(176) 영혼(아니마)이란 <생명의 호흡>이다. 이것은 신체 곳곳에 아주 섬세한 물질처럼 퍼져 각 부분을 움직이게 해준다. … 생명은 자유로이 간직하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임시로 빌린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잘 이용해야 한다. 우리의 힘을 다 쓰고 나면 우리는 잔칫상에서 일어나는 손님처럼 우아하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생명의 식탁을 떠나야 한다.

죽음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저승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죽음을 두렵게 만든다. … 미덕이란 신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즐거움을 조심스럽게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 인도된 능력과 감각이 함께 조화롭게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진정한 부는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178) 동과 서의 끝없는 싸움, <부드러운 마음>과 위안을 주는 신앙 대 <거친 마음>과 유물론적 과학의 끝없는 싸움 속에서 루크레티우스는 거의 혼자 자기 시대의 갈등을 가장 멀리까지 밀고 나갔다.

제10장 _ 로마의 혁명

(183) 들판의 짐승과 하늘의 새들도 굴과 숨을 곳을 갖는데 이탈리아를 위해 싸우다 죽은 남자들은 오직 빛과 공기밖에 가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 장군들은 병사들에게 조상의 무덤과 성소(聖所)를 위해 싸우라고 격려합니다. 이런 호소는 무의미하고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제단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조상의 무덤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와 사치를 주기 위해 싸우다 죽습니다. 여러분은 세계의 주인이라 불리지만 여러분 자신의 땅이라 부를 한 조각 땅도 없습니다.

(187) 그의 상상력과 감정은 언제나 지성의 통제 아래 있었다. 그는 절반은 사자, 절반은 여우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안에 있는 여우가 사자보다 더 위험하다는 평이었다. 평생의 절반을 전쟁터에서 보내고, 삶의 마지막 10년은 내전으로 보냈으며,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유머 감각을 유지하였고, 자신의 잔인성을 2행짜리 경구시로 우아하게 감싸고, 로마를 자신의 웃음으로 가득 채우고, 적을 10만 명쯤 만들고, 자신의 목표를 모두 달성하였으며, 그러고도 침대에서 죽었다.

(193) 사치하는 계층 아래 다수의 빈곤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기원전 71년 영웅적인 스파르타쿠스에 의해 노예 반란으로 터져나왔다. 그리고 기원전65년에는 루키우스 카틸리니가 지휘하는 평민의 궐기로 나타났다. …

국가가 몇몇 강력한 사람들의 지배 아래 들어갔습니다. … 모든 영향, 지위, 부가 이제 그들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위험, 패배, 고발, 빈곤만 남았습니다. … 우리에게 생명의 숨결 말고 무엇이 있습니까? … 다른 사람들의 오만의 노리개가 된 다음 부서지고 수치스런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장렬하게 죽는 편이 더 낫지 않습니까?

(198) 그래도 갈리아는 카이사르를 통해 부조리하지만 아름다운 라틴어를 쓰는 라틴 땅이 되었다. 로마 병사들이 쓰던 거친 라틴어가 변해 라신느(프랑스 고전주의 작가)와 아나톨 프랑스(프랑스의 작가)가 쓰는 음악적인 프랑스어가 되었다. 최악의 것이 타락해서 최선의 것이 된 것이다.

(199) 혁명의 세기는, 협소하고 이기적인 귀족 정치를 몰아냈지만 어떤 다른 통치 방식도 그 자리를 대신하지 못하였다. 실업, 매수, 빵과 소동은 평민 의회를 망가뜨려 형태는 일그러지고 정열에만 이끌리는 폭도의 무리로 바뀌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통치할 능력도 없었으니 제국을 통치할 능력은 더욱 없었다. 민주주의는 플라톤이 표현한대로 붕괴되었다. 즉, 자유는 방종이 되었고, 혼란 상태는 자유의 종말이 오기를 구걸하였다.

(200) 기원전 49년 1월 10일에 그는 1개 군단을 거느리고 알프스 이남 갈리아의 남쪽 경걔선을 이루는 작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행군해 가는 도로변의 도시들은 하나씩 그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어떤 도시들은 떼를 이루고 그를 환영하였다. 키케로는 이렇게 썼다. <도시들은 그를 신처럼 환영하였다.>

(203) 용서받은 일을 용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205) 그렇게 해서 정치에 대해 플라톤이 말한 것들이 완전한 순환을 겪었다. 즉 독재관 통치에서 왕조, 이어서 귀족 정치, 이어서 공화제, 이어서 독재관, 이어서 왕조…….

제11장 _ 로마 제국

(208) 그는 이렇듯 항거하기 힘든 선행을 수없이 베풀었다. 또한 변화에 단계를 두고 예의를 다함으로써 변화를 쉽게 만드는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214) 명료함, 직접성 그리고 유용함과 즐거움을 뒤섞을 것 등이 강조되어 있다. 예술은 예술가와 그 수용자의 감정을 전제로 한다. <나를 울게 하려면 당신 자신이 먼저 슬픔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예술은 감정만은 아니다. 그것은 훈련된 형식으로 나타나는 감정이다. <평온함 속에서 기억된 감정>인 것이다.

(219) <나는 내 맡은 역을 다하였으니 여러분은 손뼉을 쳐서 박수로 나를 무대에서 쫓아내 주시오.>

제12장 _ 네로와 아우렐리우스

(223) 벌거벗은 어머니의 시체를 보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어머니를 가진 줄 몰랐었네.>

(225) 그는 단검으로 자신의 목을 찌르려 하였다. 그의 손이 떨렸다. 노예에서 풀려난 자유민이 그를 도와 칼날을 그의 몸에 찔러 넣었다. 그는 죽으면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내 속에서 어떤 예술가가 죽는 것인가!>

(226) <누구든 세계 역사에서 인류의 조건이 가장 행복하고 번성했던 시대를 꼽으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아마도 지체 없이 네르바 황제의 등극(96년)에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죽음(180년)까지의 시대를 꼽을 것이다. 이 황제들의 통치 기간은 아마도 대규모 국민의 행복이 통치의 확고한 목적이 되었던 역사상 유일한 시대일 것이다.>

(232) 그는 다음의 일들에 감사하고 있다. <내가 젊음의 꽃을 유지했던 일을, 시간이 되기도 전에 남자가 되는 부담을 떠맡지 않고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연기할 수 있었던 일을……그리고 내가 축복을 필요 않았던 일을.>

(234) 모든 것은 보편적 이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그는 느꼈다. 그것은 우주 전체에 내재된 논리이다. 각각의 부분은 자신의 소박한 운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음의 평정>(안토니누스의 최후의 암호)이란 <보편적 자연(본성)에 의해 너에게 할당된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모든 것은 <나와 조화를 이루고 그대 우주(전체)와 조화를 이룬다. 나에게 있어 그 어떤 것도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늦은 것도 없으며 그것은 그대 우주(전체)에 적합한 시간이다.>

제13장 _ 인간 그리스도

(238) 우리는 우선 예수 탄생의 장소와 시대를 느끼려 해보아야 한다. 자신들을 흡수한 로마 제국에 대해 그의 나라와 민족이 가졌던 관계, 정복당한 민족의 고통 그리고 종교, 법, 문학, 철학 등의 자랑스런 유산, 해방을 향한 정열적인 희망, 또한 자유와 정의와 영광의 왕국이 도래할 것에 대한 그들의 꿈을 느껴야 한다. 이런 요소들 모두가 함께 민감하고 이해심 깊은 정신에 작용해서 목수 아들을 이루었고 그를 십자가형으로 이끌고 갔다.

(242-243) 나는 그가 행했다고 하는 대부분의 기적들이 암시에 의한 자연적인 결과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영혼에 미친 강하고 확고한 정신의 영향이라고 말이다. …그에 대한 믿음이 그들에게 강장제가 된 것이다. 신앙을 가지고 그를 건드리면 약한 사람들은 힘을 얻고 병든 사람들은 나았다. 우리는 강하고 신념을 가진 여자나 남자의 생각과 의지 속에 들어 있는 힘에 대해 어떤 한계도 둘 수 없다.

(243) 그러니까 <역사는 비약하지 않는다>.

(245)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겠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가 19장 26절) 이 말은 세계사를 요약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시장 경제를 아주 훌륭하게 요약해 놓은 말이다.

(245) 그는 현존하는 경제 질서를 공격하지 않았다. 반대로 <폭행을 써서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 하는 열렬한 사람들을 질책하였다. (마태오 11장 12절) 그가 생각한 혁명은 훨씬 더 깊은 종류의 혁명이었다. 그런 혁명이 없다면 모든 개혁은 오로지 표피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기적인 욕심 잔인성, 정욕 등을 없앨 수만 있다면 유토피아는 저절로 올 것이다. 이것이 모든 혁명 가운데 가장 깊은 혁명이 될 것이고, 이런 혁명에 견주어보면 다른 혁명은 단순히 계급 간의 쿠데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스도는 이런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였다.

(250) 요한복음은 예수가 이 말에 이어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다>고 말하였다. <진리가 무엇인가?>하고 총독이 물었다. 복잡하고 시니컬한 로마의 문화와 유대인의 충직한 이상주의 사이에 놓인 깊은 차이를 보여주는 질문이었다.

제14장 _ 기독교의 성장

(265) 국가와 교회는, 그들 생각에 사람들이 도덕적, 정치적 무정부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법과 도덕의 복합적인 구조를 무너뜨리려 하는 이단자들에 대한 무시무시한 공격에서 서로 힘을 합쳤다. 위기에 몰린 정부는 거의 모두 종교 재판 관청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국가에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의견이나 행동에 대해 종교 재판과 동일한 형벌을 내렸다.

자유는 안전이 만들어내는 사치품이다.

(269)「Lasciate ogni speranza, voi ch’entrate!」(여기 들어서는 그대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 단테의 ‘신곡’은 모든 기독교 문학에서 가장 이상하고 가장 무시무시하고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272) <지혜를 향한 첫번째 열쇠는 자주 부지런히 질문하는 것이다. ... 의심을 통해 우리는 탐구에 이르고, 탐구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그는 오직 기독교도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비이성적인 것이라 해서 거부하였다. 그는, 신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신다고 주장하였다. 이단은 폭력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억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274) 중세사람들은 종교에 모든 것을 걸었다. 로마 문명은 그 신들의 죽음 혹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혼란으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들었다.

(275) 중세의 영혼은 자라나는 세포처럼 두 가지 역사적 유기체로 발전하였다. 남부 유럽에서는 고전적, 에피쿠로스적, 이교적 르네상스이고, 북부 유럽에서는 초기 기독교적, 스토아적, 청교도적 종교 개혁이다. 중세의 영혼은 이제 두 개의 강력한 문화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문명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중세의 역사적 업적은 완성되었다.

그 죽음이 곧 그 완성이었다.

제15장 _ 르네상스 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중심으로

(282) 돈은 문명의 뿌리다. ... 그것은 중산층의 힘이 커지면서 나타난 세속주의 덕분이었다. 또한 대학과 지식과 철학의 성장 덕분이었으며, 역사와 법을 연구해서 정신이 현실적으로 예민해진 덕분이었다. 더 폭넓은 세상과의 만남을 통해 정신이 확장된 덕분이었다. ... 자유로워진 감각은 자연, 여자, 남자, 예술에 드러난 아름다움에서 노골적인 즐거움을 얻었다. 새로 얻은 자유는 놀라운 1세기 동안(1434년~1534년) 그들을 창조적으로 만들고 나서 도덕적 혼란, 통합되지 않은 개인주의 그리고 민족의 굴종 등으로 그들을 파멸시켰다. 르네상스는 두 가지 규율(중세와 종교 개혁) 사이의 막간극이었다.

(284) 르네상스란 시간상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고 사유의 방식이다.

(298) <나는 너를 천상의 존재도 지상의 존재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네가 너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고 스스로 극복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너는 짐승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신과 비슷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Adoration of the Magi by Leonardo da Vinci

(307) 오랜 시간을 들여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노동을 하고 나서, 그는 자신의 손과 물질이 구체화시킨 꿈의 불완전함에 절망해서 떠나갔다. 이것은 몇 가지 예외를 빼고는 마지막까지 레오나르도의 성격과 운명으로 남을 특징이었다.

어쩌면 그는 구성, 색채, 혹은 도안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으로 모든 예술 작품을 시작했다가 해결책이 발견되는 순간 작품에 대한 흥미를 잃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실행은 그보다 못한 정신의 작업이었다. 아니면 그는 자신의 끈질긴, 마지막에는 끈질기지 못한 손길이 실현할 수 없을 정도의 섬세함, 중요성, 완성도 등을 생각했다가 절망에 빠져서 노력을 포기하였다. 그는 너무 빨리 한가지 일이나 주제에서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에 관심이 있었다. 그에게는 하나의 통합하는 목표, 주도하는 이념이 없었다. 이 <보편인(universial man>은 빛나는 부분들을 이어 붙여놓은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많은 능력들을 지녔기에 그들을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Virgin of the Rocks by Leonardo da Vinci

(308) <오 화가여, 보라, 그대가 들판에 나가거든 여러 사물에 주의를 돌리고 차례로 하나씩 자세히 바라보고 별 가치가 없는 것들 중에서 여러 가지를 골라내라> ... <언제나 인물이 그 머리를 가슴과 같은 방향으로 향하지 않게 만들라.> ... <인물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게 만들어라.>

(310) <천재적인 사람들은 일을 가장 적게 할 때 가장 많이 일한다>.

(314) <정열에 빠진 가엾은 애인들아! 자연은 맹목적으로 당신들의 신경이 우리의 육체를 향하여 부조리한 갈망으로 타오르게 하고, 당신들의 두뇌가 우리의 매력을 아주 분별 없게 이상화하도록 만들어주고 있으니... 그래야 당신들은 부모가 되는 것이겠지! 이보다 더 웃기는 일이 있을까? 하지만 우리도 덫에 걸리기는 마찬가지. 우리 여자들은 당신들의 그런 열중보다 더 호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니. 그래도 사랑스런 바보들이여,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전히 기쁜 일이고, 사랑을 받을 때면 삶이 되살아난다.>

(317) 그러나 지식을 향한 정열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귀한 특성이다. 전쟁과 범죄에 충격을 받고, 능력의 이기심과 빈곤의 영속성에 낙담하고, 수많은 민족들과 세대들이 미신과 경박한 믿음을 가지고 삶의 짧음과 품위 없음을 잊기 위해 겉만 꾸미는 것에 마음이 슬퍼질 때, 인류의 정신과 마음 속에 3천년 동안이나 비행의 꿈이 간직되어 있음을 보게 되면 어딘지 구원받은 느낌이 든다. 다이달루스와 아카루스의 이야기에서 레오나르도의 실패한 암중 모색과 다른 수많은 시도들을 거쳐 마침내 우리 시대의 빛나면서도 비극적인 승리에 이르기까지 계속된 비행의 꿈 말이다.

(320) 그는 물질에서 정신을 보았고, 영혼을 믿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영혼은 오로지 물질을 통해 그리고 변경시킬 수 없는 법칙과 조화를 이루어야만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구절에서는 겸손과 열렬함으로 신에게 말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신을 자연, 자연의 법칙, <필연성>과 동일시하였다. 마지막까지 신비적인 범신론이 그의 신앙이었다.

(321) <하루를 잘보내면 그 잠이 달다. 그렇듯이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음이 달다.>

(322) 그는 <르네상스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토록 강하고 격하던 시대를 대표하기에는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신사적이고 내성적이고 섬세하였다. 그리고 <보편인>도 아니었다. 그의 다양성 안에는 정치가나 행정가의 자질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한계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르네상스 그리고 아마도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업적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원천으로부터 한 사람이 왔었다는 것, 그가 인류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주었다는 사실에 경탄하게 된다.

제16장 _ 르네상스 Ⅱ 로마


La disputa del sacramento - fresco by Raffaello Sanzio


The School of Athens - fresco by Raffaello Sanzio

(332) 이들 ‘성체 논쟁’과 ‘아테네 학당’은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다. 이교적 고대와 기독교 신앙은 하나의 방에서 조화롭게 함께 살았다. 구상, 구도, 조화 등의 측면에서 이들 경쟁하는 두 벽화를 능가하는 화가는 오로지 미켈렌젤로, 틴토레토, 베로네제 뿐이었다. 그들 누구도 페리클레스의 그리스와 레오 10세의 로마 사이에 이루어진 결혼을 이토록 훌륭하게 표현하지 못하였다.

(338) <도로 입어야 할 옷을 벗을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340-341) 평범한 보통 사람은 밭을 갈고 수레를 끌거나 짐을 지고 동이 틀 무렵부터 어스름이 질 때까지 일을 하였고, 저녁이면 생각을 위한 근육이라곤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을 대신해서 생각을 하도록 하였다. 자신들이 그들을 대신해서 일을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344) 그러나 이미 회의(懷疑)의 화살이 위대한 신앙의 영혼을 뚫고 지나갔고, 중세 신비주의 고딕 양식의 영광은 축적된 금에 의해 그 빛이 흐려졌다.

(345) 아마도 그래 봤자 정치 무대가 넓어진 것일 뿐 그 음모와 주인공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핵심적인 관심은, 영향의 기술, 권력의 장기 게임인 정치였다.

제17장 _ 르네상스 Ⅲ 베네치아의 일몰



Fête champètre by Giorgione,

(366) 음악은 이미 끝난 것일까, 아니면 아직 시작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상관없다.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 만남에 나타난 고요한 감정의 깊이이다. 수도사의 근육은 아주 섬세하고 그의 감정은 음악에 의해 고양되어 있다. 모든 악기가 고요해진 뒤로도 오랫동안 음악을 듣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상화되지 않고 심오하게 현실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이 얼굴은 르네상스 회화가 이룩한 기적의 하나이다.


Pieta by Michelangelo


David by Michelangelo


The Last Judgment by Michelangelo

(371-372) 우리는 미켈란젤로에게 찬사를 바친다. 길고 고통스런 생애 동안 그는 계속해서 창작하였고, 미술의 모든 주요 영역에서 걸작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이 이른바 살과 피를 찢고 나온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의 정신과 마음에서 터져나온 것으로 한 가지를 완성한 다음이면 그는 출산의 고통으로 약해진 시간을 견디곤 했다. 그것들이 수십만 번의 망치질과 끌과 연필과 붓을 움직여서 형태를 얻은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것들은 불멸의 주민처럼 하나씩 아름다움이나 중요성의 지속적인 형태들 가운데 자기 자리를 차지하였다.

우리는 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악과 선, 고통과 사랑스러움, 파괴와 숭고함을 뒤섞은 듯이 보이는 우주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거나, 혼돈에 질서를, 사물에 의미를, 형태나 생각에 고귀함을 부여하는 지적인 의지를 보면, 우리는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삶과 법칙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느낌을 얻는다

제18장 _ 종교 개혁 Ⅰ 위클리프와 에라스무스

(383) 기독교의 역사에서 이렇듯 마리아 막달레나가 성모에게 거듭 승리를 거두는 일은, 중세 기독교가 유연한 그리스도의 모습 위에 견고하게 구축한 도덕적, 독단적 구조를 파먹곤 하였다.

(392) 이 작은 책자는 인류가 어리석음 덕분에 그 존재를 이어가고 있다는 말로 시작된다. 제 정신이라면 어떻게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평생 동안의 일부일처제라는 대가를 지불하겠는가? 삶의 사실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거나 미래를 안다면 누가 행복할 수가 있겠는가? 남
자와 여자들이 멈춰 서서 제대로 생각을 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끝장이다. 그러나 과학과 철학은 사람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당하고 인류의 치명적인 무지에는 거의 아무런 손상도 입히지 않는다.

제19장 _ 종교 개혁 Ⅱ 루터와 공산주의자들

(414) 나는 이 문서에서 진짜 적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신전에 앉아 로마를 통치하고 있다고 선언하겠다. 로마는 자주빛 옷을 입은 바빌론이요, 로마 교황청은 악마의 회당이다. ... 로마 법학자들의 분노가 이렇게 계속된다면 황제들과 왕들과 제후들은 힘과 무기로 무장하고서 세계의 질환 부위를 공격하고 이 일을 말씀이 아니라 칼로 해결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 우리가 도둑을 교수대로, 강도를 칼로, 이단을 불로 처형한다면 어째서 이들 지옥의 지배자들, 이들 추기경과 교황들 그리고 로마라는 소돔의 온갖 하수구를 공격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리고 그들의 피로 우리 손을 씻어내지 않는단 말인가 ?

(417) 그러므로 친애하는 레오여, 그대를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반신(半神)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라. ... 당신은 하인들 중의 하인이다. ... 당신을 기독교 세계보다 더 높이 들어올리는 사람들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성서를 해석할 권한을 부여하는 사람들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당신의 이름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사악함을 교회 안에 심으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프구나, 당신의 선배들이 재임하는 동안에 악마는 벌써 그들을 통해 많이 밀려 들어왔다. 줄여 말하자면 그대를 높이는 사람은 아무도 믿지 말고 그대를 낮추는 사람을 믿으시라. ...

12월 11일 루터는 교황의 통치를 부인하기 전에는 어떤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수도사가 교황을 파문한 것이다.

(420-421) 폐하와 귀족들께서 간단한 답변을 원하시므로 나는 쓸데없이 구별하지 않고 대답하겠다. ... 내가 성서의 증언에 의해서나 명백한 이성에 의해 유죄로 인정된 것이 아닌 한(나는 교황과 공회의의 권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들은 서로 모순되니까), 나의 양심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를 뿐이다. 나는 어느 것도 취소하지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다. 양심에 거슬린다는 것은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아멘.

(422-423)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루터의 반란이 성공한 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수도사와 사제들이 독신, 빈곤, 외국의 권위적인 힘에 대한 복종 등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 신약 성서가 일반에 보급된 것이 종교 당국이나 정치 당국에 타격이었다. (루터는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성서를 도이치어로 번역하였다.) 신약 성서는 성직자의 세속성, 사도들의 공산주의, 가난하고 억압받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공감 등을 밝혀 주었다. 이런 점에서 신약 성서는 이 시대의 과격파들에게는 진짜로 ‘공산당 선언’에 해당하였다.

(423-424) <모든 것은 공유되어야 하고, 기회가 요구하는 데 따라, 모두의 몇 가지 필요에 따라 분배되어야 한다. ... 일단 이 사실을 진지하게 일깨운 다음에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떤 제후, 백작, 남작이든 가리지 말고 목을 베거나 매달아야 한다.> 뮌처는 노동자와 농부들을 조직해서 군대를 만들고 수도원 안에 무거운 대포를 만들었다. 그의 외침은 이랬다. <앞으로, 불이 뜨거울 때 앞으로! 너의 칼을 언제까지나 피로 따뜻하게 하라!>

제20장 _ 카톨릭 종교 개혁

(448) <그것은 여러 번이나 나의 심장을 관통하였다. 그러다가 나의 내장에 닿았다. 고통이 너무나 생생해서 나는 큰 소리로 신은 소리를 냈는데, 그것은 또한 아주 달콤한 것이어서 나는 거기서 빠져 나오고 싶지 않았다.>

제21장 _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446) 그렇듯 시간마다 우리는 익어가고 / 그렇듯 시간마다 우리는 썩어가고 / 그래서 이야기 하나가 열린다. (2막 7장)

(446) 세계란 <잡초를 제거하지 않은 정원이 자라 씨앗을 맺는 것. 사물들은 소요라는 자연 속에 사납게 우거져> 있을 뿐(1막 2장)이다.

(447) 꺼져라, 꺼져, 짧은 불꽃아! / 삶이란 가련한 그림자일 뿐, 가련한 배우는 / 주어진 시간 동안 무대에서 점잔 빼거나 속을 태우지, / 그러고 나면 끝이야. 그건 바보가 들려주는 이야기, 아무 뜻도 없는데 소리와 분노로 가득 찬 이야기. (5막 5장)

(487-488) 자연의 하인이며 해석자인 인간은 자연의 경과에 대해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에서나 생각 속에서 오로지 자신이 관찰한 것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넘어서면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능력은 한 점에서 만난다. 과정을 모르는 경우에는 결과도 산출될 수 없다. 자연이 명령을 내리므로 우리는 그것에 따라야 한다.

17년 뒤에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모든 것을 의심함으로써 철학을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마찬가지로 베이컨도 여기서 대혁신을 위한 첫발자국으로서 <지성을 배제>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지식은 단순히 뒤범벅이며 소화되지 않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쉽게 믿는 태도, 수많은 우연 그리고 맨 처음에 흡수된 유치한 관념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다.

그러므로 출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에서 온갖 전(前) 개념, 선입견, 억지, 이론 등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심지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등을 돌려야 하며, 우리의 생각에서 <우상들(idols)>, 혹은 시대의 망상과 오류를 쓸어버려야 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개인적 판단의 특성이나 아니면 전통적인 신념, 우리 그룹이 가진 도그마에서 나온 것들이다. 우리는 소망스런 사유의 논리적 기만을 없애버려야 한다. 명료하지 않은 생각의 온갖 부조리함을 쓸어버려야 한다. 겨우 몇 개의 공리와 원칙들로부터 수많은 항구적인 가치들을 이끌어내라고 제안하는 저 당당한 연역적 사고 체계를 싹 쓸어내야 한다.

(489) 경험의 진짜 방법은 우선 촛불을 켜는 것이다(가설). 이어서 촛불을 수단으로 삼아 길을 비추고, 비로소 적절한 경험을 시작해서… 그것으로부터 공리를 이끌어낸다(<첫번째 결실>, 잠정적 결론). 그리고 이렇게 확정된 공리로부터 다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실험 자체가 판정을 내려야 한다.

(492) 그는 치안 불안과 폭동의 주요 원인인 부의 집중을 막으라고 경고하였다. 이런 폭동의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치유책 혹은 예방은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다해 물질적 원인을… 곧 결핍과 빈곤을 제거하는 것이다. … 이런 목적을 위해 무역을 열고, 균형을 잡고, 제조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도움이 된다. 게으름을 몰아내고, 사치 규제법을 통해 낭비와 과도함을 억눌러야 한다. … 무엇보다도 좋은 정책이란 국가의 재물과 돈이 소수의 손길에 모이지 않게 하는 일이다. … 돈은 (옮겨 심은 나무를 위한) 뿌리 덮개 같은 것이어서 골고루 펴서 뿌리지 않는다면 좋은 것이 아니다.

(496) 베이컨의 정신은 탐조등처럼 우주를 돌면서 공간의 모든 구석과 비밀을 호기심에 넘쳐 살펴보고 있다. 르네상스의 즐겁고도 확장된 열광이 그의 안에 고스란히 있었다. 미친 듯이 신세계를 향해 항해해 나갔던 콜럼부스의 흥분과 자부심이 그대로 있었다. 수탉 로빈이 새벽을 알리는 즐거운 외침을 들어보라.

… 이제 잠시 쉬면서 내가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니 이 글은 내게는-우리가 자기자신의 글을 판단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악사들이 악기를 조율할 때 내는 소리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소음을 낸 것일 뿐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듣기에 좋은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음악이 더욱 달콤하게 여겨질 이유가 된다. 그래서 나는 뮤즈의 악기들을 조율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뒷날 더 나은 손길이 그것을 연주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 시대가 세번째 학문의 시대가 되고 있는 바, 앞선 시대들의 조건을 생각해보면, 모든 질적 측면에서 우리 시대 지력의 탁월함과 생생함이 분명한 것으로 여겨진다. … 나는 이 세번째 시대가 그리스 학문과 로마 학문의 시대를 훨씬 능가하리라는 신념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 나의 노력들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이 노력들을 비난함으로써 스스로를 아니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려 한다면, 이들은 다음과 같이 고대인의 끈질긴 요구를 할 것이다. <원한다면 나를 쳐라, 다만 내 말을 들어라>하고 말이다. 사람들이 그것들을 비난하게 내버려둬라, 다만 그것들을 관찰하고 무게를 달아보라.

(498) 그는 모든 과학을 위하여 깃발을 들어올리고 그것을 다음 세기의 가장 열렬한 정신들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원했건 아니건 그가 요구하였던 기획-자연 탐구를 위한 포괄적인 기구, 지식의 세계적인 확장과 보급-은 현대의 가장 심오한 드라마의 씨앗을 이미 품고 있었다. 오늘날 카톨릭이건 개신교이건 기독교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과학 및 철학의 확산과 힘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 현대의 드라마는 베이컨을 통해 세계를 향하여 그 프롤로그를 말했던 것이다.


#4. 내가 저자라면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배운 날카로운 역사관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자면, 이 책은 꼼꼼하게 잘 짜인 조직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덤성덤성해 보이는 구성의 여백 사이에 반짝이는 수많은 보물들이 숨어 있었다. 특히, 이 책의 1장은 역사와 철학, 인류와 문명에 대한 깊은 혜안을 가진 자 만이 쓸 수 있는 그 무엇이었다. 그 누가 남자와 여자의 특성과 문명의 핵심을 이렇게 짧은 글 안에 담아낼 것인가?

“여자들은 먼저 양, 개, 나귀, 돼지들을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남자를 길들였다.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인 동물로, 마지못해 부분적으로만 문명화되었다. 남자는 천천히 여자에게서 사회적 특질을 배워 익혔다. 가족에 대한 사랑, 친절(친족과 가까워지는 것), 절제, 협동, 공동체 활동 등이다. 이제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자질이 미덕이 되었다. 내 생각에 이것이 바로 문명의 시작이다. 즉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었다. 인류의 지혜가 담겨 있는 한편의 옛날 이야기 책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역사를 쓰는 철학자’가 친절하게 들려주는 역사의 ‘우파니샤드’이다. 듀란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책의 의도는 문명의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의해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고 그 예를 살펴보는 데’에 있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헤겔의 이런 말이 나온다.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 말처럼 이 책은 역사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 시대의 정수이자 집약체인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살펴보고자 하는 책이다. 존 리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류 역사에서 핵심적인 인물과 사건에만 초점을 맞춘’ 책이다. 이처럼 역사에 대한 입문서의 성격을 띠고 있기에 시작은 편안했지만, 그 끝맺음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철학, 역사를 만나다’에서 저자 안광복은 말한다. “철학은 파편처럼 흩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의미 있게 엮어주는 날실이고, 역사는 허공에 떠도는 사변들을 현실로 풀어 주는 씨실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문학과 예술은 이런 날실과 씨실로 엮인 천을 살아서 꿈틀거리게 만드는 수액이자 생명이다. 이 책의 이야기들 속에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문사철(文史哲)의 지혜가 아롱아롱 맺혀있었다.

자신의 깨달음을 후손들에게 반드시 전해주려는 따뜻한 마음씨로 써내려 갔을 이야기들 속에는 영혼을 꿈틀거리게 할 문학, 정신의 체계를 구축해 주고 뼈대가 되어줄 철학,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주는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시편의 구절들은 감성을 일깨웠고, 그라쿠스 형제의 가슴 아픈 혁명 이야기는 마음을 울렸다. 자유와 평등, 계급 간의 갈등이 단지 어제, 오늘의 문제만이 아님을 알았고, 수천 년 전의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위대한 사람들의 죽음 또한 평범한 죽음일 뿐임을, 각각의 시대가 변화하는 길목에서 ‘위대한 문명은 다른 문명에 정복당하기 전에 이미 내재적으로 붕괴되어 있었다’고 말한 듀란트가 옳았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한편으로, 이 책은 나를 무척이나 헤매 다니게 만들었다.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헤매고 하고, 곧잘 삼천포로 빠지게 만들었다. 나는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의 언저리를 맴돌았고, 르네상스의 화가들의 그림을 다시 찾아보려 인터넷과 책을 헤맸고, 내가 떠나왔던, 그러나 아직도 떠나지 못한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적 혁명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를 읽고 싶게 만들었고, 음악을 듣고 싶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그 ‘헤맴’에 바로 이 책의 진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거대한 세계의 입구이다. 지성과 감성의 실마리이다. 이 책을 펼쳐보라. 그러면 인류 문명의 놀라운 이야기들 속에서 당신의 관심사와 연결된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실마리를 따라가보라. 더욱 새로운 것들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미 우리 인류가 문명의 동굴을 통해 헤맸던 발자취와 그 아픔과 기쁨과 경이와 깨달음의 순간 순간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고민하던 것, 생각했던 것, 꿈꾸던 것, 그토록 바라던 것들이 이미 앞서간 그들이 걸어갔던 길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문명 이야기’라는 대작이 있기에 존재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지혜는 그저 얻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책을 쓸 것인가? 열심히 보고, 듣고, 배우는 수 밖에 없다. 갈고 닦고, 들이 파는 수 밖에 없다. 그들이 간 길의 끝까지 일단 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곳, 그 막다른 길에서 한 걸음 더 내디뎌야 한다.

이 책의 역자 안인회의 표현을 빌어, 이 책을 읽음으로써 헤매고 다녔던 시간들을 여기에서 일단락하려 한다.

자, 눈 있는 이여, 보라! 귀 있는 자여, 들어라! 감각을 가진 자여, 느껴라! 이 얼마나 이상한 세상이던가. 아름다운 세상이던가. 온 몸이 소스라치듯 무서운 세상이던가. 그러나 또 얼마나 행복한 세상이던가.

오늘은 바로 어제가 만든 내일이다.

지성을 가진 자들이여, 생각하라! 무엇보다 아직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이들이여, 앞 선 자들이 걸어온 그 길을 소홀히 지나치지 마라.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라. 느끼고, 감동하라. 그 길은 피와 땀의 길이다. 눈물과 고난의 길이다. 흙과 삶의 길이다. 희망과 혁명의 길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우리가 걸어갈 길이다.

내일은 바로 오늘이 만든 꿈들이다. 미래는 오늘 걸어온 길의 끝이자, 또 다른 가능성의 시작이다. 무엇보다 뜨거운 가슴이 있는 자들이여, 사랑해라! 즐겨라! 그리고 꿈꾸어라. 바로 그 인간과 삶의 보잘것없음에, 아무 것도 아님에 희망이 있다. 막다른 길의 끝에서 광대한 무한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명심하라.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바로 그들이 그토록 꿈꾸던 소중한 미래임을. 자, 이제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펼쳐라. 당신이 바로 그 찬란한 역사의 서장(序章)이다.


#5. 에필로그


Benedictus de Spinoza

이 책으로 시작된 헤맴의 끝에서 젊은 윌 듀란트를 뒤흔들었던 철학자 스피노자를 만났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결론적으로 의지와 지성은 같은 것이다.”

‘철학 이야기’에서 윌 듀란트는 스피노자의 주석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열정은 이행이며 모든 감정은 완전성과 힘을 향한, 또는 완전성과 힘으로부터 비롯되는 운동이다.”, “우리는 상상력과 이성에 의해 경험을 예견으로 변화시켜 미래의 창조자가 되고, 이 때 우리는 과거와 같은 노예는 아니다.”

이리 저리 떠돌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는 듯한, ‘어떤 하나’에로 합쳐지는 듯한 놀라운 감동의 순간이었다. 내가 고민하던 신의 모습이 그 곳에 있는 듯 했다. 마음의 비밀과, 우리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지, 그 길의 시작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 했다.

실마리 하나를 얻은 느낌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어봐야겠다. 철학자가 맑은 정신으로 보았던 깨달음의 그 길을 시인, 워즈워스는 이렇게 노래한다.

“석양 빛에 / 망망한 대해에, 생동하는 바람에, / 푸른 하늘에, 인간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것- / 그것은 모든 사고하는 존재를 움직이고 / 사고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밀고 나가며 / 모든 사물을 통해 굽이쳐 흐르는 / 운동과 영혼일지니.”

-윌리엄 워즈워스, 틴턴 사원(Tintern Abbey)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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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5.28 10:57:31 *.48.34.49
짝짝짝......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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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5.28 11:10:33 *.227.22.57
작짝짝......나도 감동.

이 책은 거대한 세계의 입구이다. 지성과 감성의 실마리이다. 이 책을 펼쳐보라. 그러면 인류 문명의 놀라운 이야기들 속에서 당신의 관심사와 연결된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실마리를 따라가보라. 더욱 새로운 것들이 나올 것이다.

이 부분 때문에라도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는데... ㅎㅎ

다시 북적거리기 시작하는 게시판을 보니 좋네. 그치? 수고했어. 다음에 사부님께서 주실 휴식을 향해 수면부족에 시달려 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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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5.28 11:38:59 *.99.120.184
책을 정말 즐겁고 재미있게 읽은 모양이네. 수고했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나에게 좋은 길잡이 될 것 같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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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2007.05.28 12:25:43 *.103.132.133
다 번역해 냈구나.
정말 행동하는 만큼 보이는구나.

우... 책보다 더 재밌다.. 크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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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28 15:46:40 *.249.167.156
감사합니다! 밤을 지새운 보람이 조금은 있네요^^

왜 과제는 꼭 마지막 날이 되어야 손에 잡히는 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오늘도 날이 밝아오는 걸 보면서야 글을 겨우 마무리했네요.. 졸음이 쏟아지는 월요일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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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5.28 21:22:24 *.142.243.87
웬일...
도윤씨 땜에 못살아..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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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5.28 23:53:10 *.202.137.105
아주 여유롭게 재미있게 읽은 티가 물씬 난다.
다만 뒷 부분에 힘이 떨어진다.
도윤아, 다음에는 내가 저자라면에 좀 더 힘을 쏟아라.
우선순위는 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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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29 09:47:02 *.72.153.12
글에 힘이 있네요. 치열함과 성실함이 들어 있기 때문이겠죠.
자극 많이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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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29 13:35:00 *.249.167.156
민선누나, 나 때문이 아니라 승완이형 때문이겠죠..^^;;

병곤이형, 말씀하신대로 이번 책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또 이 책을 시작으로 다른 책들을 들추기도 했구요^^ '내가 저자라면'은 아마 제가 한 수 접고 들어간 탓인 듯 합니다. 그 책을 쓰기 위해 저자가 기울였을 평생의 노력과 연륜에서 나오는 지혜를, 지금 감히 넘어설 엄두를 내기가 어렵더군요. 좀 더 힘을 쏟겠습니다!

정화누나, 부끄럽게스리^^ 농땡이도 좀 들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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