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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9일 17시 54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 윌 듀란트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자칭했던 윌 듀란트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났다. 뉴저지 주의 제수이트파 가톨릭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1907년 뉴저지 주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시턴 홀 대학에서 라틴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쳤는데,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 온 프랑스계 캐나다인이었기에 수준높은 프랑스어는 구사했을 것이다. 1911년에는 자유주의적 교육을 실천하는 페레 모던 스쿨의 선생님으로 재직하게 된다. 1913년에 학교를 떠난 뒤 장로교 교회에서 강의를 시작했는데 이 것이 그의 대작 『문명 이야기』의 기초가 된다. 이후 학업을 다시 시작한 윌 듀란트는 1917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이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1935년 이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했다.

철학자 윌 듀란트

오늘의 책이 『역사 속의 영웅들』이 역사에 관한 책이기는 하지만, 그는 철학 교수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책도 고전이 된 철학 입문서 『철학이야기』이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철학의 즐거움과 효용성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아주 힘있게 표현하고 있다. 첫문장에서부터 철학에 향한 그의 사랑스런 감정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서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There is a pleasure in philosophy, and a lure even in the mirages of metaphysics, which every student feels until the coarse necessities of physical existence drag him from the height of thought into the mart of economic strife and gain."
철학에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형이상학의 신기루에도 매혹이 있다. 모든 학생들은 물리적 존재의 거친 요구가 그들을 사상의 높이로부터 경제적 투쟁과 획득의 시장으로 끌어내릴 때까지 이 즐거움을 느낀다.

사회인이 되어 경제적 활동에 대한 압박을 느낄 때까지 모든 학생들도 철학의 즐거움을 느낀다는 저자의 주장이 21세기의 모든 학생들에게도 유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철학은 즐거움이다. 나는 철학이 실재를 바꾸는 못하지만, 관념을 바꿈으로서 실재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나는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윌 듀란트는 철학은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고 말했다. “과학은 우리에게 지식을 주지만 우리에게 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철학뿐이다.”

그는 『철학이야기』의 서문에서 철학에 대한 무용론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고, “철학자의 책에서 발견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는 키케로의 말을 직접 인용하기도 하였다. 어떤 철학자들은 상식만 빼고는 모든 지혜를 다 갖추고 있다는 뼈있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이러한 무용론에 대한 반박을 시작했다. 특히 과학과 철학과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이 믿고 있는 철학의 효용성을 주장했다. 그는 진정 철학의 유익함과 즐거움을 믿은 철학자였다.

“과학은 분석적 묘사이고, 철학은 종합적 해석이다. 과학은 전체를 부분으로, 유기체를 직관으로, 애매함을 이미 알려진 것으로 분석하기를 희망한다. 과학은 사물의 가치나 이상적인 가능성에 대해, 그것들의 전체적이고 최종적인 풍요성에 대해 묻지 않는다. 과학은 현 상태와 그 작용을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며, 있는 그대로의 사물의 본질과 과정으로 단호하게 그 시야를 제한한다. (중략)
과정을 관찰하고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과학이라면, 목적을 비판하고 조화시키는 것이 철학이다. (중략) 철학이 없는 과학, 전망과 가치판단이 없는 사실들은 재난과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해내지 못한다. 과학은 우리에게 지식을 주지만, 우리에게 지혜를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철학뿐이다.“

영향력 있는 저술가, 윌 듀란트
- 역사를 쓰는 철학자

1926년에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철학이야기』를 발표했다. 철학 입문서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 볼테르, 칸트, 니체 등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그들과 삶과 연관시켜 쉽고 체계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존 듀이는 이 책의 의미를 대중성과 학문적 깊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고 평했다. “듀란트는 철학자의 사상을 일반 사람들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했다. 따라서 이 책은 틀림없이 철학의 대중화를 시도한 책이지만 단순한 대중화에 그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매우 학문적이다.”

1930년 이전에 쓰여진 책이기에, 30년대 이후 현대 철학의 주요한 흐름(실존주의나 현상학)을 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분명 이 책은 고전적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입문서’라는 말에 철학에 완전 문외한들에게까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배경지식이 없는 나는 조금은 어려운 책으로 느껴졌었다.)

윌 듀란트는 『철학이야기』 외에도 『역사 속의 영웅들』과 『문명 이야기』등의 책을 발표하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하였다. 『문명 이야기』는 아내 에어리얼의 도움을 입고서도 총 11권이 완성되기까지 50년이나 걸린 대작으로 11,000년 이상의 시대에 대하여 통합적으로 개관한 책이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으로, 죽기 4년 전에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하여 결국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책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영웅이라 불릴 만한 의미를 남긴 정치가, 철학자,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세계사의 주요 흐름을 잘 짚어낸 유익한 책이다. 듀란트에게 역사는 ‘예를 통하여 가르치는 철학’이었다. 역사는 듀란트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역사를 공부한다. 과학을 통해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 역사는 시간 속의 사건들을 탐구하여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고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가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그는 『문학이야기』라는 책을 쓰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 유진 오닐, 앙드레 지드,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등 20세기의 위대한 작가들에 대한 문학론이자 그들의 삶을 통해 교훈을 제시한 인생론을 담았다. 그가 『철학이야기』에서 한 편의 문학 작품 같은 유려한 글을 선사하는데, 이러한 문학적인 표현의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에 대한 물음이 이 책을 통하여 해결될 것이다.

그는 문학, 역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쓴 저술가였다. 그것도 위트와 비유를 통하여 글을 유려하게 썼던 훌륭한 저술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철학 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황문수역, 문예출판사
『역사 속의 영웅들(Heroes of History)』안인희역, 황금가지
『철학의 즐거움(The Pleasures of Philosophy)』안동림역, 현암사
『20세기 문학이야기(Interpretation of Life)』이경수역, 문예출판사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
『Transition』
『Adventures in Genius』
『The Lessons of History』

■ 『역사 속의 영웅들』을 읽고

이 책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름들이 모두 영웅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서도 이들이 역사에 얼마나 큰 유산과 자취를 남긴 인물인지 알지 못했다. 이들이 영웅이라는 생각은커녕, 저자가 시시콜콜하게 역사의 조연을 끄집어내고 있는 줄 알았다. 마치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의 구석에 처박힌 사소한 연도를 시험문제로 출제하여 나를 못마땅하게 만든 역사 선생님처럼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수두룩했고, 특히 그리스 고대사 쪽에서의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5장 ‘구약 성서의 철학과 시’를 읽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기독교인이기에 성서에 대한 지식은 주워들은 것이 조금 있었나보다. 5장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사무엘, 다윗, 솔로몬,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라, 욥 등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구약 성서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구약 성서에서 잠깐 등장했다가 곧 퇴장하는 조연들이 아니라, 성경 한 권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웅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5장 뿐 만 아니라, 다른 모든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도 시시콜콜한 조연이 아닌 의미심장한 주연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책의 앞부분으로 돌아가, 4장을 훑어보았다. 영화 <미이라> 시리즈 때문에 낯익은 이름들이 많았다. 영화의 영향으로 정확히 판단할 수가 없어서 나는 다른 챕터를 읽어보기로 했다. 7장을 읽어나가면서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내가 알고 있었던 인물이 있는지 체크하였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야 만인이 다 아는 철학자들었지만(물론, 그 이름만 안다), 페리클레스, 소포클레스, 엠페도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은 도무지 어떤 인물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그저 조금 뛰어난 사람인지, 아니면 영웅이라 할 만한 인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누구인지 검색해가며 읽었다. 결과는 금방 드러났다. 이들은 모두 영웅이었다. 어디에선가 이름만 들어본 듯한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아테네 제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아테네를 그리스의 정치·문화의 중심으로 만든 유명한 BC 5세기에 활동했던 정치인이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서, 에우리피데스라는 이들은 정말 처음 들은 듯한데, 이들 3명은 그리스의 3대 비극시인으로 불리는 유명한 극작가들이다. 이들의 연극은 시대를 뛰어넘은 고전으로 지금도 여전히 읽혀지고 있다.

아!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 하며 저자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던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존 리틀은 이 책의 들어가는 말에서 이렇게 썼다. “듀란트는 현대 독자에게 흥미와 이익이 된다고 생각되는 임시 명단을 역사에서 추려냈다. 이 생각은 단순한 나열을 넘어선 중요성을 가진 것이었다.”
책의 삼분의 일을 읽어가고 있는 지금 존 리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듀란트가 적어내려 간 구약 성서의 인물들이 핵심 인물임을 생각하니, 갑자기 이 책의 모든 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그냥 가볍게 읽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모두 역사 속에 자기 이름을 남긴 중요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인물을 나열한 단순한 책이 아니었다. 리틀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역사상의 위대한 남녀의 업적과 삶에 대해 보통 사람이 듀란트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던 것이다.

역자의 말처럼 복잡하기 짝이 없는 역사의 발전 과정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이 책에 없다. “인류 문명을 발전과정을 따라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걸으면서 몇 마디 말로 예리하게 각 시대의 핵심을 찌른다. 이미 역사의 수많은 흥망성쇠를 관찰했던 이 눈길은 인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나 절망을 넘어 담담한 관찰자의 냉정함을 보인다.”(p.500) 그의 걸음이 클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핵심만을 담을 수 있는 그의 해박한 지식 덕분일 것이다. 그의 담담함은 이미 『문명 이야기』라는 대작을 쓰며 얻은 내공일 것이다.

그는 영웅들의 위대함에 눈이 멀어 그들을 찬양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그들의 약점까지도 객관적으로 담담히 서술한다. 짧지 않은 문명의 서사시를, 가볍지 않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간결하게 서술하기 위하여 그가 읽었을 텍스트의 양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니 이 책에 대한, 그리고 윌 듀란트에 대한 신뢰가 생겨났다. 그의 다른 책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이 책의 ‘12장 네로와 아우렐리우스‘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전에 『로마인 이야기』를 조금 읽은 덕에 로마사에 대하여 조금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그리스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있었더라면 이 책의 첫부분을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을 하나 하나 새롭게 공부해 보고픈 욕심이 생겨난다. 사람은 변하지 않고, 그렇기에 역사를 들여다보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지혜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윌 듀란트가 50년 동안이나 문명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뽑아 낸 영웅들이니 무식한 어느 청년이 공부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을까!

내가 저자라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엘슨은 “항상 과거를 돌아보라. 그러면 뭔가 배울 수 있을 것이다”라는 조금은 식상한 말을 했는데, 이 말은 진리이긴 하다. 과거 중에서도 인류사에 엄청난 유산을 남긴 나라부터 보는 것이 현명하다면, 역사 공부의 순서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국민들에게는 자기 나라의 역사가 제일 중요하겠지만,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역사를 가진 5개 나라가 있다. 그리스, 로마, 이스라엘, 영국, 미국이 그 5개 나라이다.

윌 듀란트는 이 책에서 그리스 3개 챕터(6~8장), 로마 4개 챕터(9~12장), 이스라엘 3개 챕터(5, 13, 14장), 영국에 대해서는 1개 챕터(21장)를 썼다. 그 외의 춘추천국시대의 중국 1개 챕터, 이집트 1개 챕터, 그리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대하여 깊이 있게 다뤘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한 국가의 역사가 아닌 점을 감안한다면, 분량면에서 분명 그리스, 로마, 이스라엘을 비중 있게 다룬 것이다. 영국은 비록 한 챕터이지만, 다른 챕터에 비하여 비교적 많은 분량인 40페이지를 할애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5개 나라 중에 미국이 빠졌다. 굳이 에릭 홉스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20세기는 미국의 세기였다. 나에게 이런 기대를 할 권리가 없지만, 저자에게 20세기 미국의 역사를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가 저자가 되어 윌 듀란트가 못다한 이 책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영광스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1개 챕터를 할애하여 산업혁명을 다루고, 2개 챕터를 할애하여 20세기의 미국사에 대하여 덧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3개 챕터를 덧붙여 이 책을 완성하는 것을 나만의 프로젝트로 실행해 봐야겠다.


■ 내 마음에 들어온 글 귀

들어가는 말

[9] 듀란트는 현대 독자에게 흥미와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임시 명단을 역사에서 추려냈다. 그의 명단은 공자에서 이태백과 에이브러햄 링컨을 걸쳐 월트 휘트먼에 이르는 것이었다. 이 생각은 단순한 나열을 넘어선 중요성을 가진 것이었다. 그것은 역사상의 위대한 남녀의 업적과 삶에 대해 보통 사람이 윌과 에이리얼 듀란트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이 될 것이다.

[9] 듀란트의 견해로는 <역사는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

[10] 당신은 적어도 두 가지 방식으로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과학을 통해서이다. 그것은 외계 현실의 모든 양상을 물들이고 있는 다양한 과학을 공부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공간 속의 사물보다는 오히려 시간 속의 사건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10] 나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알아내기 위해 역사를 공부한다. 과학을 통해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 역사는 시간 속의 사건들을 탐구하여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고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가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12] 니체와 똑같이 <모든 철학은 역사에 그 힘을 빼앗겼다>고 느꼈던 듀란트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곳이 바로 인류의 본성이 진정 어떤 것인지 찾아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3] 윌 듀란트의 모든 저술의 주제는 문명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특정한 사상을 발전시켰다는 것 그리고 이 사상의 효능에 대한 평결은 이미 역사의 법정에서 내려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귀 담아 듣기 위한 시간을 낸다면 말이다.

제1장 문명이란 무엇인가

[17] 자연과 문명 사이의 깊고도 끈질긴 갈등도 함께 시작되었어. 인류 역사의 길고도 긴 사냥 단계에서 아주 깊숙이 뿌리를 내린 개인적 본능과, 최근의 정착 생활을 통해 생겨났지만 아직도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이다.

[21] 현재 우리의 이교적인 방종이야말로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증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종은 보통 그 반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연속 장면의 한 가지는 이교적인 방종의 시대에 이어 청교도적인 억제와 도덕적 규율의 시대가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22] 역사에는 방종과 그 반대 사이의 이러한 진자 운동보다 더 즐거운 전망이 있다. 나는 저 볼테르와 기본(Gibbon)의 비관적 결론, 즉 역사는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의 기록>이라는 결론에 동의하지 않겠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그 말이 맞고 또한 수억 가지의 비극들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생명의 흐름을 이끌어온 것은 평범한 가족의 건강함과, 남자들과 여자들의 노동 그리고 사랑이다. 또한 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같은 정치가들의 지혜와 용기도 있다. 자신들을 둘러싼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굴하지 않는 노력도 있다. 또 덧없는 아름다움에 지속적인 형식을 부여하고, 미묘한 의미를 밝히려는 예술가들과 시인들의 끈질김과 기술도 있다. 그리고, 우리를 고귀함으로 안내하는 예언자들과 성인들의 환상도 있다.

[23] 우리에게 도전해 오는 악을 향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업적과 우리가 물려받은 장엄한 유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묘사한 불행한 왕을 변조해서 우리 여기에 앉아 고귀한 여자들과 위대한 남자들의 용감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로 하자.

제2장 공자와 추방당한 신선

[25] (중국 문명과 고대 중국 위인들의) 이야기가 아직도 우리의 지성을 풍요롭게 해주고 우리 인간성을 깊게 만든다는 사실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새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 중국 문명과 중국 역사를 제대로 한 번 공부해 보고 싶은 간절함을 계속 지니고 있는데, 연구원이 끝나면 꼭 실천으로 옮기자.

[26] 전설은 이렇듯 역사가 카알라일처럼 역사를 영웅들의 연속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수많은 세대에 걸쳐 끈질기게 이루어진 발전을 몇몇 뛰어난 개인의 업적이라고 서술하였다.

[29] 노자는 루소가 현대 사상에 메아리를 만들어낸 것만큼이나 자연과 문명을 예리하게 구분하였다. 자연이란 자연의 활동성이며 전통적 사건의 고요한 흐름이고, 계절과 하늘의 웅대한 행진이며 질서다. 그것은 모든 시내와 바위와 별에 새겨져서 드러나는 <길(道)>이다. 그것은 공평하고 인간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인 사물의 질서다. 우리가 지혜를 지니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행동의 법칙은 바로 이 질서를 따라야 한다.(스피노자도 주장한 것)

[30] 중국인의 사유는 성자가 아니라 현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선의가 아니라 지혜를 주로 이야기한다. 중국인들의 이상은 경건한 헌신이 아니라 성숙하고 고요한 마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심지어 도와 지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지혜란,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모범과 경험으로만 전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33] 공자는 좋은 본보기를 통치의 첫 번째 원칙으로 여겼다.

[33] 슬픈 어조로 그는(공자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만큼 덕을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노라>고 말하고있다. 그의 기본철학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널리 교육을 펼쳐서 도덕성과 사회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33] 제국(온 세상)에 최고의 미덕을 펼치기 원했던 옛사람들은 먼저 자기 나라의 질서를 잘 잡았다. 나라의 질서를 잘 잡기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가족을 단속하였다. 가족을 단속하기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렸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렸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였다. 마음을 바르게 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생각을 신중히 하였다. 생각을 신중히 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지식을 최대한 넓혔다. 지식을 넓힌다는 것은 사물을 탐구하는 것이다.
→ 윌 듀란트의 말처럼 이것은 완전한 시나리오이며, 모든 사람들이 이 시나리오를 따를 수는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순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다만, 사물 탐구 → 지식 넓힘 → 신중한 생각 → 마음 바르게 하기 → 자기를 다스리기의 순서는 기억하자.

[33] 이것은 완전성에 대한 권고이며, 인간이 바지 입은 원숭이라는 사실을 잊은 권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독교처럼 이것은 추구할 목표와 올라갈 사다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철학에서 황금률의 하나이다. 곧 개혁은 집(가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제3장 붓다에서 인디라 간디까지

[48] 해탈이란 죽음 뒤의 하늘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심을 극복한 고요한 상태이다. 붓다의 말에 따르면 마지막에 우리는 도덕적 개인주의와 심리적 개인주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욕심에 시달리는 우리의 자아는 실제로는 분리된 존재나 힘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강물 위에 이는 순간적인 잔물결이고, 바람에 날리는 운명의 올가미 속에 얽혔다 풀어졌다 하는 작은 매듭일 뿐이다 우리 자신이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본다면, 전체의 틀 안에서 우리 자신을 개선하고 우리의 소망을 바꾼다면, 우리의 개인적인 실망과 패배, 비탄과 고통, 피할 수 없는 죽음 등이 더는 이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무한성의 넓이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마지막에 우리는 해탈, 곧 이기적이지 않은 평화를 찾을 것이다.

제4장 피라미드에서 이크나톤까지

[59] 피라미드에는 야만적으로 원시적인 요소가 있다. 그토록 난폭하게 엄청난 크기를 만들어낸 일과 영원성을 향한 공허한 갈망이 그것이다.

[60] 이집트의 기술은 1800년 이전에 나온 세계의 어떤 기술보다 우수한 것이었다. 이집트 기술은 나일 강에서 홍해에 이르는 수로를 건설하고, 1천 톤에 이르는 오벨리스크를 운반하였다.
→ 르네상스 이전 유럽의 수준만큼 발전되었다는 이집트 기술력의 원천은 뭘까?

[62] 이집트 조각을 고전 그리스의 그것과 동일하게 취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리스 조각품 중에서 카이로 박물관에 있는 섬록암으로 만든 카프레의 흉상보다 더 섬세한 것은 알지 못한다.

제5장 구약 성서의 철학과 시

[73] 이 책의 의도는 문명의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의해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고 그 예를 살펴보는 것이다.

[78] 그들(예언자들)은 원래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들이었다기보다는 현재를 고발하는 사람들이었다.

[80] 이사야는 괴로워하지만 절망하지는 않는다. 그는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의 위안을 보여준다. 미래에 구원자가 나타나 박애와 평화의 시대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위로해 준다.

[83] 칼라일은 욥기를 가리켜 <역사상 기록된 가장 위대한 문헌의 하나다. 성서나 혹은 성서 바깥에 이와 동일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글이 쓰인 적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학자들은 이 기록이 기원전 500년에서 300년 사이에 나왔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기본서이다. 모든 신학 체계를 괴롭히는 어두운 질문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곧 <불의가 그토록 자주 승리한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정의와 사랑의 신이 다스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하는 질문이다.

[85] 철학은 전체의 빛 속에서 부분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큰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이 그 최초의 교훈이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라는 것은 아마도, 건강, 아름다움, 진실, 지혜, 도덕성, 행복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가 될 것이다.

[86] 그렇다면 구약 성서의 시인들에게서 욥기와 전도서에 대한 어떤 대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시인들은 두 가지 답변을 내준다. 하나님과 그리고 우주와 화해하라. 또한 사랑으로 너의 삶을 밝게 만들어라. 한 가지 답변은 시편에 들어 있고 다른 답변은 아가서에 들어 있다.

[88] 나는 시편보다 언어나 상상력이 더 훌륭한 것을 알지 못한다.

[91]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에고를 가장 많이 넓혀주고, 살아 있고 평화로운 모든 것들에 대해 마음과 팔을 활짝 여는 일이다. 영혼이 행복하면 그 사랑도 커진다.

제6장 페리클레스에 이르는 길

[98] 피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 이전에 그리스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였다.

[100] (그리스의) 각 도시국가들은 상업, 산업, 과학, 철학, 문학, 미술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고대 그리스>의 문화에 나름대로 이바지하였다. 식민 도시와 본토에서 그리스 시문학과 산문 문학, 수학과 형이상학이 태어났다. 식민 도시라는 촉수가 없었다면, 우리가 물려받은 세속의 유산 중에서 가장 소중한 유산인 그리스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06] 솔론은 도덕과 관습이라는 아슬아슬한 영역을 위해서도 법을 내놓았다. 지속적인 게으름은 범죄에 해당하고, 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은 시민 의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106] 치안을 방해하는 소동이 일어났을 때 중립을 지키는 사람들은 시민권을 잃어버린다는 조항도 있었다. 공공의 일에 무관심한 것은 국가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우리는 우리가 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아니오, 라고 말해야 할 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진리와 진실, 정의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 나는 강자 앞에서 강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만약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 강할 수 있었을까? 공포의 실재를 이겨내지는 못했으리라. 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리어 그 날의 만행을 잊은 채 살아오지는 않았으리라. 그런데, 공공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야 할 국가가 공공의 적이 되어 미친 난봉꾼이 된 그 날에 솔론이 있었다면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107] 솔론은 자신의 법안이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이런 비난을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법을 주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법을 주었다.> (중략) 그리스 사람들은 그를 일곱 현자의 한 사람에 포함시켰다.

제7장 아테네의 황금 시대

[111] 페리클레스, 아스파시아, 아낙사고라스, 소크라테스 등이 함께 디오니소스 극장에 앉아 에우리피데스의 연극을 관람하였다면, 아테네는 그리스 생활의 절정과 통합을 생생하게 목격한 것이다. 한 국민의 역사에서 정치 지도력, 예술, 과학, 철학, 문학, 종교, 도덕 등이 책의 여러 페이지에 흩어져서 각기 따로따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상을 지닌 하나의 작물로 짜여져 나타난 시대였다.

[113] 아테네 법은 동성애를 금지하였지만, 여론은 그것에 관대하였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인간의 사랑을 논하지만 그것은 동성애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향연』의 토론자들은 동성애를 남녀간의 사랑보다 더 높은 것으로 만들고 있다.

[114] 그리스 사회는 남성만의 단성 사회였다. 그래서 여성의 정신과 매력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프랑스 계몽주의에 주었던 것과 같은 흥분, 우아, 자극 등이 결핍되었다. (중략) 종교에 바탕을 둔 도덕성은 빠져 있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정직함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했겠지만 행동은 언제나 달랐다.

[114]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는 권력이 곧 정의라고 말하였다.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역사가의 한 사람인 투키디데스는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그의 의견에 동종하고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 사람들은 동물에게 친절하고 인간에게 잔인하였다.

[115] 아테네 사람은 교육받은 망설임 같은 것을 참지 못하였고 정보가 풍부하고 지적인 대화를 문명의 최고 스포츠처럼 우러러보았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생각에 동의하였다.

[115] 아테네 사람들은 너무나 똑똑해서 선량해지기 어려웠다. 그들은 악덕을 싫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순성을 멸시하였다. 어떤 민족도 이보다 더 큰 상상력이나 혹은 더 생생한 혀를 가진 적이 없었다. 명료한 사색과 그것의 산물인 명료한 표현이 아테네 사람들에게는 신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117] 그리스 사람들은 예술이란 삶에 종속된 것이며, 삶은 모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이라고 생각하였다. 실용성이 없는 아름다움에 반대하는 건강한 공리주의 성향을 가졌다. 쓸모와 아름다움과 선은 플라톤 철학에서처럼 그리스인의 생각 속에는 서로 아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었다.

[119] 페리클레스 시대 아테네는 철학의 <소중한 즐거움>(플라톤의 말)이 교육받은 계층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부자들은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 방식으로 집의 대문을 활짝 열었다. 철학자들은 대우를 받고 똑똑한 논의는 튼튼한 사람이 올림픽 경기에서 인기를 얻듯이 갈채를 얻었다.

[122] 보통 한 시대의 철학은 다음 시대의 문학이 된다. 한 세대 동안 사색이나 탐구의 영역에서 논쟁이 이루어진 사상이나 문제들은 이어지는 세대에 가서 연극, 허구, 시 문학의 배경이 되곤 한다. 그러나 그리스에서 문학은 철학의 뒤를 쫓아가지 않았다. 시인들 자신이 철학자들이었고 자신들의 사유를 행하였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지적인 선봉에 섰다.

[122] 사변적 사색의 깊이에 예술적 형식의 탁월함이 덧붙여졌기 때문에 아테네 황금 시대 문학은 셰익스피어와 몽테뉴가 나타나기 전에는 건드릴 수 없을 정도의 높이에 도달하였다.

[124]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이후로 이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그리스 문학의 최고봉을 이룬다. 셰익스피어조차도 이것에 맞먹을 수는 없었다.

[125] 고전적인 것에 경탄하고 낭만적인 것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에우리피데스가 더 좋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다. 이성은 감정에 밀리고, 불의를 미칠 듯이 미워하고 더 온전한 세상을 꿈꾼다. 그가 쓴 75개의 연극 중에서 18개만 남아 있지만 거의 모두가 미신, 억압, 전쟁 등에 반대하는 그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128] 죽은 다음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에서도 인기를 누렸다. 그가 그토록 열렬히 주장햇던 사상들은 다음 몇 세기 동안 주도적인 개념이 되었다. 헬레니즘 시대는 에우리피데스를 소포클레스와 함께 그리스가 배출한 가장 지적인 자극이라고 여겼다. (에우리피데스는 거의 당대의 인물이 되었다.)

[129] 기원전 431년에 아테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27년 동안 계속되면서 빈곤과 잔인성을 전파하고 그리스 정신을 어둡게 만들었다. 투키디데스는 이 전투에 참여해서 그것을 하나하나 기록하였다. 세계 문학의 고전에 속하는 기록이다.

제8장 플라톤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134] 부의 한가운데서 빈곤이 늘어났다. 영리한 사람들에게 돈을 벌 기회를 준 다양성과 교역의 자유는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전보다 더 빨리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잃어버릴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렇게 말한다. <아테네는 두 도시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도시와 부자들의 도시가 되어 서로 전쟁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법령 제정이나 혁명을 통해 부자들을 약탈할 음모를 꾸몄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항해 방어 조직을 만들었다. 지식인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섰다. 그들 중에는 플라톤처럼 부자도 섞여서 공산주의 사상을 드러냈다.

[136] 철학은 시민의 성실한 마음을 찾아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지성을 함양해서 신의 계율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독하는 신성에 대신하게 되었다.

[144] 역사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날짜는 바뀌어도 사건은 언제나 똑같다.

[145] 소크라테스 : 어떤 일이 과도하게 커지면 흔히 반대 방향으로 반작용이 일어난다. ……국가나 개인에게서 자유의 과도함은 오직 노예상태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과격한 자유 형식에서 가장 나쁜 폭정 형태가 생겨난다.

[147] 가족과 학교에서 권위가 자유를 대신해야 한다.[148] 플라톤의 인기있는 <대화>들은 살아남아 우리를 즐겁게 하고 기술에 관련된 그의 논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진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기있는 작품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기술에 관련된 논문들만 남아서 그 집중된 가르침의 대가로 힘든 주목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농담중 하나이다.

[148]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들어오지 마시오.> 플라톤이 죽은 다음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했던 헤르메이아스의 궁정으로 갔다.

[149] 아리스토텔레스는 학생들을 모아 거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탐구하도록 했다. 외국인들의 관습, 그리스 도시국가의 구성, 파티아 경기 및 아테네 디오니소스제의 그리스 출신 우승자들의 연대기, 동물의 기관과 습성, 식물의 특성과 분포, 학문과 철학의 역사 등이었다.

[149] 과학 분야에서 그는 관찰, 보고서, 실험 등을 이용하였으며 과학 탐구를 위한 그룹을 조직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50] 행동의 목적은 행복이지만 행복의 비결은 미덕에 있다. 그리고 최고의 미덕은 지성이다. 이것은 현실, 목표, 수단에 대한 조심스런 관찰이다. 통상적으로 <미덕>이란 두 극단 사이에 있는 황금의 중간(황금률)을 뜻한다. 정치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들 간의 타협의 기술이다. 모든 사람은 불평등하게 만들어졌다. 부자연스런 평등이 강요되면 상류층은 즉각적으로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불평등이 부자연스러운 정도가 되면 하류층이 반항할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금권정치>를 선호하였다. 이것은 귀족 정치와 민주주의를 혼합한 형태이다. 그에 따르면 재산 소유자들에게만 선거권이 주어지고, 수가 많은 중간층이 권력의 중심 및 균형의 축을 이루어야 한다.

[151] 잠과 생식활동은 자기가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며 잠에게 시간을 내주는 것을 싫어하였다.

[155] 정력이란 천재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통제의 능력이다.

제9장 로마 공화국

[161] 모든 신들과 인간을 지배하는 신은 유피테르(주피터)였다.

[168] 한니발은 신체가 어려움을 견디고, 입맛은 곤궁을 견디고, 생각은 사실을, 혀는 침묵을 견디도록 자신을 훈련하였다. 적군(로마)의 역사가인 리비우스에 따르면 그는 <전쟁터에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에 떠나는 사람이었다.

[176] 죽음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저승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죽음을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저승이란 없다. 지옥은 이승에서 고통을 받는 것으로 그것은 무지, 정열, 싸움을 좋아함, 욕심에서 온다. 천국은 이승의 <현명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신전>에 들어있다. 미덕이란 신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즐거움을 조심스럽게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 인도된 능력과 감각이 함께 조화롭게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진정한 부는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결혼은 좋지만 정열적인 사랑은 명료함과 이성을 빼앗아간다. 이렇게 에로틱한 어리둥절함은 결혼이나 사회나 문명을 위한 건강한 기초가 될 수 없다.

[177] 사회를 조직한 것이 인간에게 자신보다 훨씬 강한 동물들을 이기고 살아남을 힘을 주었다. 인간은 잎사귀나 나뭇가지의 마찰로부터 불을 발견하였고, 몸짓을 언어로 발전시켰으며 새에게서 노래를 배웠다. 또한 동물을 길들여 이용하였고 결혼과 법으로 자신을 길들였다. 하늘을 관찰하고 시간을 측정하고 항해술을 익혔다. 역사는 국가와 문명이 일어나고, 번성하고, 시들고, 죽는 과정이다. 그러나 각 국가나 문명은 거꾸로 관습, 도덕, 법, 예술 등 문명의 유산을 전달해준다. <달리면서 생명의 램프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달리기 선수들처럼>

제10장 로마의 혁명

[181] 이런 부의 집중은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때로는 혁명을 불러온다. 이미 아테네에서 그런 경우를 한 번 보았다. 그 때는 솔론이 사건을 평화롭게 해결하였다.(기원전 594년). 이제 기원전 133년에 그와 비슷한 위기가 로마에 나타났다. 그러나 여기서는 정치적 해결이 실패하고 약 1백년에 걸친 계급투쟁이 나타났으며 로마 공화국은 수치스러운 종말에 이르게 된다.

[190] 농업에 기반을 둔 정권에서 빈곤은 가족이나 개인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위안을 구하였다. 도시에서 빈곤은 계급과 집단의 조건이 되고 그것은 사회적 폭동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계급투쟁은 점점 더 가혹해지고 마침내 모든 도덕적 제약을 흔들었다.

제12장 네로와 아우렐리우스

[226] 그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2세기에 아우구스투스 이후 로마 역사에서 가장 스토아적이고 헌신적인 통치자들이 갑자기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226] 누구든 세계 역사에서 인류의 조건이 가장 행복하고 번성했던 시대를 꼽으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아마도 지체 없이 네르바 황제의 등극(96년)에서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죽음(180년)까지의 시대를 꼽을 것이다. 이 황제들의 통치 기간은 아마도 대규모 국민의 행복이 통치의 확고한 목적이 되었던 유일한 시대일 것이다.

[233] 자연 속에서 질서의 표지와 형태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에 어떤 신비로운 지적 존재가 우주에 개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든 것은 보편적 이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그는 느꼈다.

제13장 인간 그리스도

[242] 나는 그가 행했다고 하는 대부분의 기적들이 암시에 의한 자연적인 결과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영혼에 미친 강하고 확고한 정신의 영향이라고 말이다.

[244] 많은 사람들은 이 하느님 나라를 공산주의 유토피아라고 해석하고 그리스도를 사회주의 혁명가로 보았다. 복음서는 이런 견해에 대해 어느 정도 증거를 제공한다.

[245]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겠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가 19장 26절) 이 말은 세계사를 요약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시장 경제를 아주 훌륭하게 요약해 놓은 말이다.

[245]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기적인 욕심, 잔인성, 정욕 등을 없앨 수 만 있다면 유토피아는 저절로 올 것이다. 이것이 모든 혁명 가운데 가장 깊은 혁명이 될 것이고, 이런 혁명에 견주어보면 다른 혁명은 단순히 계급간의 쿠데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스도는 이런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였다.

[246] 이러한 도덕적 이상은 새로운 것이었던가? 그것을 배열한 방식이외에 새로운 것은 없다. 그리스도 설교의 핵심적인 주제는-다가오는 심판과 왕국-이미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100년이나 된 것이었다.

제14장 기독교의 성장

[266] 아마도 이 시대의 시 문학에 자극을 준 것은 이러한 접근 불가능성이었을 것이다. 성취된 욕망을 낭만적으로 그려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방해가 없으면 문학도 없다.

[274] 중세 사람들은 종교에 모든 것을 걸었다. 로마 문명은 그 신들의 죽음 혹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혼란으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했다.

[275] 중세의 영혼은 자라나는 세포처럼 두 가지 역사적 유기체로 발전하였다. 남부 유럽에서는 고전적, 에피쿠로스적, 이교적 르네상스이고, 북부 유럽에서는 초기 기독교적, 스토아적, 청교도적 종교 개혁이다. 중세의 영혼은 이제 두 개의 강력한 문화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문명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중세의 역사적 업적은 완성되었다. 그 죽음이 곧 그 완성이었다.

제15장 르네상스 Ⅰ

[281] 르네상스는 고대의 문학만을 복원시킨 것이 아니라 그 쾌락주의적 자유로움도 똑같이 복원시켰다.

[284] 르네상스는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시들고 나서야 비로소 프랑스, 도이치 지역,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페인 등지에서 꽃피어났다. 르네상스란 시간상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과 사유의 방식이다. 그것은 상업, 전쟁, 사상의 통로를 통해 이탈리아에서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295] 플라톤 아카데미는 공식적인 대학이 아니라 플라톤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일정하지 않은 간격을 두고 로렌초의 시내 궁전이나 카레지에 있는 피치노의 별장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고 플라톤의 대화편 하나를 몽땅 혹은 일부를 낭송하고 그 철학을 토론하였다.

[297] 오직 배움의 정확성과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순진한 믿음의 영역에서만 과격성을 띠었다.

[298] <인간이 소우주라는 사실은 학교에서 듣는 진부한 소리다. 인간의 몸은 땅의 원소들과, 천상의 정신과, 식물의 혼과, 하등 동물의 감각과, 이성과, 천사의 정신과, 신과의 유사성이 뒤섞인 것이다.> 그러고 나서 피코는 신이 아담에게 들려주는 말로 인간의 제한 없는 능력에 대한 신의 증언을 말하고 있다.

[298] 인간은 자기가 되고자 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 이것은 신의 최고의 선물이요, 인간이 받은 최고의 놀라운 축복이다. 짐승은 어미의 몸에서 나올 때 제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최고의 정신(천사들)은 시작부터 영원히 지속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다. 하느님 아버지는 인간에게만 탄생의 순간부터 모든 가능성과 모든 삶의 씨앗을 주셨다.

[300] 평온한 마음과 여가를 품위있게 즐기는 것보다 더 소망스러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모든 선량한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위대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일이다. 공적인 일들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쉴 날이 오기를 고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휴식도 나라의 일에서 나의 관심을 완전히 떼어놓지는 못한다. 내가 걸어야 했던 그 길이 힘들고 위험으로 가득 차고 배신으로 둘러싸인 굴곡 많은 길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303] 레오나르도는 무엇보다도 손으로 말의 편자를 구부릴 수 있는 힘으로 유명하였다. 아주 훌륭한 검객이었고 말타기와 말을 다루는 데 대단히 뛰어났다. 스케치와 그림그리기, 글씨 쓰기 등을 모두 왼손으로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읽을 수 없도록 하려는 욕망보다 왼손잡이였기에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거꾸로 썼다.스케치를 잘하기 위해 그는 자연에 있는 모든 사물을 호기심, 끈기, 조심성을 가지고 탐구하였다. 그의 마음을 깊이 사로잡은 과학과 예술은 그렇게 동일한 기원을 가진 것이었으니 곧 세밀한 관찰이었다.

[310]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실행이 아니라 구상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바사리가 덧붙인 말에 따르면) <천재적인 사람들은 일을 가장 적게 할 때 가장 많이 일한다>

[321] <하루를 잘 보내면 그 잠이 달다. 그렇듯이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음이 달다.>

제16장 르네상스 Ⅱ

[340]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문명이란 소수의,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원래의 정당성을 넘어 과대하게 찬양하는 것이 될 것이다.

[350] 그러나 일주일은 개혁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고 하드리아누스의 13개월 동안의 짧은 재임 기간도 충분하지 못했다. 악덕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지만 여전히 살아남았다. 개혁은 수많은 관리들에게는 지겨운 일이었고, 그래서 어두운 저항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하드리아누스가 빨리 죽기만을 바랐다. 교황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개선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탄식하였다.

제17장 르세상스 Ⅲ

[373] 로마 카톨릭 교회는 역사상 가장 특기할 만한 조직의 하나이다. 그 기원, 목적, 방법, 흥망성쇠, 잘못, 업적 등을 객관적으로 연구하면 다른 어떤 주제나 제도의 연구보다 인간의 본성과 가능성에 대해 많은 빛을 던져줄 것이다.

제18장 종교 개혁 Ⅰ/ 위클리프와 에라스무스

[392] 인류가 어리석음 덕분에 그 존재를 이어가고 있다.

제20장 가톨릭 종교개혁

[444] 이탈리아가 개신교가 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 그리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자신을 상상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연극으로 데려가는 신앙,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추락한 인간이 구원받는다는 믿음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일이 드물었다.

[455] 이 세상 어디에서라도 '즉석에서 망설이거나 핑계를 대지 않고 현재의 교황이나 그 후계자들이 영혼의 이익이나 신앙의 전파를 위해 자신들에게 어떤 일을 명령해도 행한다'

제21장 세익스피어와 베이컨

[472] 감정은 지성에 종속되고 패배는 희망에 극복되고, 삶의 흥망성쇠는 미래의 인간 정신의 승리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전망 속에 파묻혔다.

[487]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능력은 한 점에서 만난다. 과정을 모르는 경우에는 결과도 산출될 수 없다. 자연이 명령을 내리므로 우리는 그것에 따라야 한다.

[487]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지식은 단순히 뒤범벅이며 소화되지 않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쉽게 믿는 태도, 수많은 우연 그리고 맨 처음에 흡수된 유치한 관념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다. 그러므로 출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에서 온갖 전 개념, 선입견, 억지, 이론 등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488] 과학에는 마법의 모자란 없다. 마법의 모자에서 나온 모든 것은 관찰이나 실험에 의해 우선 그 안으로 집어넣어져야 한다. 단순히 우연한 관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료의 <단순한 열거>를 통해서가 아니라, <실험을 통해 찾아진 …경험>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

[488] 경험의 진짜 방법은 우선 촛불을 켜는 것이다(가설). 이어서 촛불을 수단으로 삼아 길을 비추고, 비로소 적절한 경험을 시작해서 …그것으로부터 공리를 이끌어낸다.

[489] 베이컨의 생각에서 궁극적 목적은 과학의 방법을 인간 성격에 대한 엄격한 분석과 단호한 개조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정신에 대해 바다에 부는 바람과 같은 작용을 하는 본능과 감정의 연구를 촉구하였다.

[491] 학문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문을 도덕성에 종속시켰다. 학문의 확장이 자비심에 아무런 득도 가져오지 못한다면 인간성에는 아무런 이득도 없을 것이라 하였다. <정신의 모든 미덕과 존엄성에서 선의가 가장 위대한 것이다.>

옮긴이의 글

[500] 어차피 복잡하기 짝이 없는 발전 과정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여기 없지만 절대로 짧지 않은 인류 문명을 발전과정을 따라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걸으면서 몇 마디 말로 예리하게 각 시대의 핵심을 찌른다. 이미 역사의 수많은 흥망성쇠를 관찰했던 이 눈길은 인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나 절망을 넘어 담담한 관찰자의 냉정함을 보인다.

[501] 문명을 떠받치는 다섯 기동으로 꼽은 항목들은 기억할 만한 것들이다. 즉 가족, 종교, 교육(학교), 법, 대중의 의견(여론) 등이다. 이 기둥을 바탕으로 그의 관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501] 이 모든 영웅들은 한결같이 위대함과 더불어 인간적인 약점을 지녔다. 듀란트는 이들의 위대성을 깎아내리지는 않지만 슬그머니 미소를 띤 채 약점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역사나 사실을 바라보는 이러한 냉정함이 우리에게는 낯설다. 우리는 서로 모순을 이루는 형용사를 얼른 이해하지 못한다.

[502] 위대한 인물이 지녔던 인간적인 약점은 그 인물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위대성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이들이 지닌 약점을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 허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위대했으며 마찬가지로 약점투성이인 우리 또한 위대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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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5.30 10:31:26 *.114.56.245
저도 세상을 바라볼 때 음악이나 교육의 열쇠구멍으로 처다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음악가나 교육자들은 저에게 익숙하구요. 역사속의 영웅에서도 우리가 낯선 영웅들과 익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이번 독서에서 꽤 많은 사람과(역사속 인물)새로 사귀기 시작했거든요. 좋은 글( 마음에 다가온 느낌 그대로 적어나간 점)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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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2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를 읽고 (비참한 삶과 함께하는 지은이의 활약) 산골소년 2007.06.06 2225
871 -->[re]책을 읽는 일과 저자를 이해하는 일에대하여 [2] 구본형 2007.06.04 2206
870 『한국사신론』을 읽고 [1] 현운 이희석 2007.06.04 2232
869 [독서12] 한국사신론/이기백 [2] 素田 최영훈 2007.06.06 2997
868 [12]한국사 신론(이기백) [6] 써니 2007.06.04 2651
867 (012) 한국사 신론 / 이기백 [2] 校瀞 한정화 2007.06.04 2332
866 (12) '한국사신론'을 읽고 [4] 時田 김도윤 2007.06.04 2296
865 리뷰(12) 해방전후사의 인식 - 한길사 [1] 최정희 2007.06.04 2328
864 [한국사신론] 사회변혁의 작용과 반작용 [6] 余海 송창용 2007.06.04 2423
863 [리뷰012] 한국사신론, 이기백 [3] 香山 신종윤 2007.06.14 2927
862 한국사 신론/이기백 [3] 香仁 이은남 2007.06.04 2563
861 한국사 신론 / 이기백 [3] 好瀞 김민선 2007.06.03 3184
860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3] 이야기 2007.05.29 2553
859 (10) 역사속의 영웅들 : 윌 듀런트 [2] 박소라 2007.05.28 2372
» 『역사 속의 영웅들』을 읽고 [1] 현운 이희석 2007.05.29 1893
857 (11) 역사속의 영웅들 - 윌 듀란트 [1] 박승오 2007.05.28 2132
856 (11) ‘역사 속의 영웅들’을 만나다! [9] 時田 김도윤 2007.05.28 2218
855 [역사속의 영웅들] 아쉬운 영웅들의 이야기 [2] 余海 송창용 2007.05.28 2358
854 (011) 역사 속의 영웅들 / 윌 듀런트 [2] [1] 校瀞 한정화 2007.05.28 2448
853 [독서11]역사속의 영웅들/Will Durant [2] 素田 최영훈 2007.05.30 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