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써니
  • 조회 수 2230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07년 5월 28일 04시 37분 등록
깜짝 휴가로 인해 달콤하고 유익한 한주를 보냈다. 이번에 읽은 역사속의 영웅들은 저자 윌 듀런트의 눈으로 본 세계사여서 내용이 방대하였는데 비교적 안정된 마음으로 여유롭게 읽게 되어 무엇보다 다행이다. 다만 좀 더 나은 리뷰를 올려봐야겠다는 애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 버린 느낌이지만 말이다.

1. 저자에 대하여

윌 듀런트 Will Durant : 1885~ 1981. 11.7
스스로를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칭하는 그는 1885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났다. 1917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이 대학에서 강의 하다가, 1935년 이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하였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총 11권의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를 저술하였고, 1926년에는 이미 우리에게도 친숙한 책인『철학 이야기(The Story of Philosophy)』를 완성하였다. 이밖에『Transition』,『The Pleasures of Philosophy』,『Adventures in Genius』,『Interpretation of Life』,『The Lessons of History』등의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윌 듀런트는 생애의 마지막까지, 역사 과목을 위한 경이로운 입문서가 될 이 책에 새로운 자료를 첨부하였다. 처음 그는 이 책을 23개의 장으로 구성하려 했지만, 운명은 21개의 장에서 이 책을 끝맺게 하였다. 그가 스물한 번째 장을 완성했을 때 그의 아내 에이리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1981년 말 듀런트 자신도 심장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1981년 10월 25일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13일 만인 11월 7일, 그의 심장도 멈추었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그의 아흔여섯 생애를 마감한 것이다.

듀런트의 사망과 더불어 그의 개인 기록들이 사라졌고 일부는 친척들에게 다른 일부는 수집가들과 문서고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윌 듀런트가 이것을 끝내고 21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2001년 겨울, 우연히 이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여 들어가는 말에서 존 리틀에 의하면 이 책은 윌 듀런트가 남긴 마지막 유언서라는 것이다.

풀리처 상 수상 작가인 윌 듀런트는 죽기 4년 전에 그의 마지막 작품의 작업을 시작하였다.
아내와 딸과 힘을 합쳐서, 높은 찬사를 받은 그의 대작『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을 축약한 판본을 내 놓으려는 시도였다. 완성까지 50년이 걸린 이 대규모 기획에서 듀런트는 아내 에이리얼의 도움을 받아 총11권의 책으로 110세기(11,000년) 이상의 시대에 대한 통합된 개관을 제시하였다. p7

역사는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 p9

내게 있어 역사란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삶과 현실의 광범위한 전망을 - 당신의 태도를 현실이나 삶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 가는 전망 말이다. p10
역사는 시간 속의 사건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p10

듀런트는 한동안 이 책을 위해 23개의 장을 완성하려고 생각하였지만 운명의 계획은 달랐다. 그가 21장을 완성했을 때 아내 에이리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1981년 말 듀런트 자신도 심장병으로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p11

윌 듀런트 같은 퓰리처 상 수상 작가의 최종 원고를 찾아낸 것은 그의 글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진정 하나의 사건이다. 듀런트는 많은 상을 탄 저술가 이상의 인물이었다(그는 미국 정부가 시민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자유 메달도 받았다). 그는 명성보다는 명료성을 위해 싸운 철학자였다. 눈부시고 힘찬 산문으로 글을 썼으며, 또한 인류는 충분한 영감을 받기만 하면 신들과 동일한 위대성의 수준으로 올라 갈 수 있다고 여겼던 사람이다.
니체와 똑같이 <모든 철학은 역사에(그 힘을 )빼앗겼다>고 느꼈던 듀런트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본성이 진정 어떤 것인지 찾아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p12

윌 듀런트의 마지막 저서인 이 책은 단순히 날짜와 인물과 사건을 모아놓은 것만은 아니며, 또한 그의 주요 저작인『문명 이야기』의 요약만도 아니다. 이것은 미래 세대의 도덕적 함양과 이익을 위해 과거의 유산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다.『역사속의 영웅들은 <정신의 나라>가 제공하는 축복을 향한 윌 듀런트의 마지막 유언이다. p13

옮긴이 안인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독일 밤베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외국어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1995년 실러의『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로 제2회 ‘한독번역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논문으로「실러 드라마 연구: 부자 갈등을 통해 본 신구 대립」,「‘바이마르 고전주의’의 미적 교육 프로그램」,「실러의 비극 ‘메리 스튜어트’의 극적 구조에 대하여」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실러의『발렌슈타인 3부작』,『빌헬름 텔』과 슈테판 츠바이크의『광기와 우연의 역사』,『스코트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폭력에 대한 양심』,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하인리히 뵐플린의『르네상스의 미술』, 오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등이 있다.



2. 내 마음 속에 들어온 글귀

제1장 문명이란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는 생물학의 한 단편(斷篇)이다.

심리학, 철학, 정치적 능력 그리고 이상향들은 이 생물학 법칙과 화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는 땅을 경작하는 농부로 정착 생활을 한 것보다 40배나 긴 세월을 사냥꾼으로 살았다. 97만 5천 년의 이 세월 동안 인류의 기본적인 성향이 만들어졌고 아직도 그대로 남아 매일 문명에 도전하고 있다. p15

아이들은 오두막에서는 자산이었고, 뒷날에는 사냥 패거리에서의 자산이었다.

남자는 대단히 빛나는 존재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따지면, 자궁이며 인간 종족의 주류인 여자에게 공물을 바치는 존재다. p16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는 집과 정착 생활에 적응하였다. 여자들은 먼저 양, 개, 나귀, 돼지들을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남자를 길들였다.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인 동물로, 마지못해 부분적으로만 문명화되었다. 남자는 천천히 여자에게서 사회적 특질을 배워 익혔다.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 p17

대중의 의견은 형용사와 모욕적인 취급을 통해 부도덕을 억제하고, 칭찬과 장려와 권력을 통해 좋은 행실을 격려해 주었다. p19

제2장 공자와 추방당한 신선

자연에서 모든 사물은 소리 없이 작용한다. 이들은 존재 속으로 들어오지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 기능을 모두 완수하지만 아무런 요구도 없다. 모든 사물은 똑같이 자기 맡은 바 일을 다 하고 물러난다. 사물은 절정에 도달하면 모두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 원래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휴식, 혹은 사명의 완수를 뜻한다. 이런 귀환은 영원한 법칙이다. 이 법칙을 아는 것이 곧 지혜이다. p29

여기서 노자는 거의 예수와 같은 어조로 말하고 있다.
네가 다투지 않으면 지상의 그 누구도 너와 다툴 수 없을 것이다. ....... 손해를 친절로 갚아라. ....... 나는 선한 사람을 선하게 대하며 선하지 않은 사람을 선하게 대한다. 이와 같이 하면 모두가 선해진다. 나는 진실한 사람에게 진실하며 진실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진실하다. 그러면 모두가 진실하게 된다. .......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이 ....... 가장 강한 것을 이긴다.
이런 가르침은 현자에 대한 노자의 개념에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중국인의 사유는 성자가 아니라 현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선의가 아니라 지혜를 주로 이야기한다. 중국인들의 이상(理想)은 경건한 헌신이 아니라 성숙하고 고요한 마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심지어 도(道)와 지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지혜란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모범과 경험으로만 전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아는 것이 많을 경우 그는 이것을 감추려 한다. <그는 자신의 명석함을 완화시키려 하며 스스로 다른 사람들의 몽매함과 같아진다. 그는 학식 있는 사람보다는 단순한 사람들과 더 마음이 맞으며 초심자의 모습을 보고 화를 내지 않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부나 권력에 가치를 두지 않고, 불교에서 말하는 최소의 수준으로 소망을 줄인다. p30

네가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뼈까지 진흙이 되고 말았다. ....... 너의 자부심과 야망을 없애라. 애착과 극단적인 목적을 다 없애라. 네 품성은 이것들로부터 얻을 것이 없다. p31

슬픈 어조로 그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만큼 덕을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적이 없노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기본 철학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널리 교육을 펼쳐서 도덕성과 사회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대학』이라 불리는 책에 있는 이 두 구절은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요약해 놓은 것이다.

「제국(온 세상)에 최고의 미덕을 펼치기 원했던 옛사람들은 먼저 자기 나라의 질서를 잡았다. 나라의 질서를 잘 잡기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가족을 단속하였다. 가족을 단속하기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을 다스렸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였다. 마음을 바르게 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생각을 신중히 하였다. 생각을 신중히 하기를 원하면서 그들은 먼저 지식을 최대한 넓혔다. 지식을 넓힌다는 것은 사물을 탐구하는 것이다.
사물을 탐구하자 지식이 완전해졌다. 지식이 완전해지자 생각이 신중해졌다. 그들의 생각이 신중해지자 마음이 바르게 되었다. 마음이 바르게 되자 그들은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다스리게 되자 가족을 단속할 수 있었다. 가족을 단속하게 되자 나라가 바르게 통치되었다. 나라가 바르게 통치되자 온 세상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되었다.」p33

써니: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지식인 자크 아탈리는 앞으로 인류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그의 저서「인간적인 길」에서처럼 인간적인 길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위정자들의 바른 정책에 대해 간곡히 설파하였다. 정책은 단순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과 전술의 수준이 아닌 보다 진실한 지구촌을 향한 성실한 대안과 희생을 통한 헌신적인 모색, 인간적인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성에 대한 권고이며, 인간이 바지 입은 원숭이라는 사실을 잊은 권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독교처럼 이것은 추구할 목표와 올라갈 사다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철학에서 황금률의 하나이다. 곧 개혁은 집(가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섭공(葉公)이 그의 안부를 물었을 때 그는 제자인 자로(子路)를 시켜 이렇게 대답하게 하였다.
「그는 열렬히 지식을 구하느라 먹는 일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지식을 얻은) 기쁨에 취하여 근심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나이 먹는 것도 알아채지 못합니다.」p34

제3장 붓다에서 인디라 간디까지

우파니샤드
인도에서는 문명은- 앞에서 이미 문명이란 문화 창조를 촉진시키는 사회 질서라도 정의한 바 있다- 고고학자들이 파낼 수 있는 한 오래된 것이다. p41

<우파>는 <가까이>, <샤드>는 <앉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하나 혹은 여러 명의 학생들이 구루, 곧 선생님 앞에 앉는다는 의미이다. 가르침은 -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구루들에 의해 전수되고 있다- 이해와 깨달음의 세 단계를 보여준다. 첫 번째 단계는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내면을 관찰하는 일이다. 감각, 소원, 기억, 추론, 사색 등을 무시해라. 이 모든 지적 작업을 옆으로 밀쳐내라. 이들은 외부의 사물을 다루기 위해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행동을 그리고 행동에 대한 생각을 옆으로 밀쳐내라. 어떤 형태나 내용이나 개체성을 가진 것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면을 들여다보라. 마침내 그런 조각들 뒤에 숨어 있는 마음 자체를 느낄 때까지 그리고 의식 자체의 의식을 느낄 때까지 계속해라. 이것이야말로 모든 현상들- 모든 지각과 따라서 모든 사물들- 이 토대로 삼는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실체다. 구루들은 이러한 근원적인 실체를 아트만(자아)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영어의 <혼(Spirit)>, <영감(inspire)> 등과 마찬가지로 <숨결>을 뜻했던 말로 보인다. p42

두 번째로 모든 사물에는 우리 자신의 내면과 마찬가지로 내적이고 생명이 있고 비물질적인 힘의 숨결이 있다. 이것이 없다면 사물은 혼이 없고 동작이 없고 죽어있을 것이며 어느 것도 살거나 자라지 못한다. 이들 살아 있는 모든 힘의 총합이 브라마(범천)이다. 생명과 생각뿐 아니라 모든 형태와 힘도 바로 그것에 의존한다. 브라마는 삼라만상 모두에 스며들어 있는 정수(精髓)로 비물질적이고 성(性)의 구별이 없고, 비개인적이며 만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뿐인 신으로 다신교인 힌두 만신전의 모든 신들은 바로 브라마의 부분적인 양상이며 시적 표현들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에나 있는 실체의 다양한 생명력을 유한한 인간이 감지할 수 있도록 그렇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세 번째로 아트만과 브라마는 원래 하나다. 우리 속에 들어 있는, 혹은 나무나 돌 안에도 들어 있는 비개체적 영혼 혹은 힘은 세계의 비인격적 영혼과 동일한 것이다. 우파니샤드 구루들 중 가장 사랑스런 인물 야즈나발키야가 제자인 슈웨타케투에게 이것을 설명하는 말을 들어보자. p43

「거기 그 무화가 열매 하나를 가져와라」
「여기 있습니다, 선생님」
「그것을 쪼개라」
「쪼갰습니다.」
「거기 무엇이 보이느냐?」
「아주 작은 씨앗들이 보입니다, 선생님」
「그 중 하나를 쪼개봐라」
「쪼갰습니다.」
「거기 무엇이 보이느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친애하는 그대여, 네가 감각하지 못하는 이 가장 섬세한 정수-바로 이 가장 섬세한 정수에서 이 큰 나무가 자라 나온다. 내 말을 믿어라....... 이 가장 섬세한 정수야말로 온 세상의 혼이다. 그것이 실체다. 그것이 아트만이다. 타트 트밤 아시- 그것이 바로 너다. 슈웨타케투야」
「선생님, 내가 더욱 많은 것을 이해하도록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그렇게 되어라」 p44

붓다
그는 마야 왕비의 옆구리를 열고 자궁으로 들어가서 그곳에 열 달 동안 머물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더러운 물질로 더럽혀지지도 않고>,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와 같았으며><보석처럼 빛이 났다>. 그런데도 그는 아버지가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 근처 카릴라바스트의 왕이었다. 소년 시절 그는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온갖 사치를 다 누렸다. 고통과 슬픔에서 보호를 받았고 5백 명의 아름다운 처녀들 중에서 아내를 골랐으며 행복한 아버지가 되어 부와 평화를 누리며 살았다. p44
써니: 도대체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와 같았다는 것이 무슨 표현일까? 아주 자연스럽게 보통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순산을 하였다는 뜻일까. 전후 문맥으로 봐서는 그렇게 느껴진다.
신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 동안 있다가 단군을 낳았다는 단군신화 등의 예에서 -특이 사항이 아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설정에 가깝다.
성적인 결합을 거치지 않은 신비감은 있지만 어쨌거나 인간과 똑 같이 자궁에서 10달간을 다 채우고 나왔고 나올 때에도 별다른 특이 징후가 없이 말갛게 순조로이 그야말로 일반적인 옥동자를 생산했다는 정도로 생각이 되니까. 다만 왠지 모를 빛이 느껴졌다는 뜻으로 생각되니 말이다. 꿈섭이처럼.^^

그는 탄생이 바로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째서 탄생은 그치지 않는가? 카르마(업)의 법칙이 새로운 탄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영혼은 새로 얻은 삶에서 전생의 악행을 보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완전한 정의와 지치지 않는 인내와 모두에게 친절한 삶을 살 수가 있다면, 또 영원한 일에 생각을 결부시키고, 시작되고 소멸되는 일에 마음을 두지 않으면 어쩌면 재탄생을 면제받을 수도 있다. 즉 악의 원천 자체가 말라버리게 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모든 소망을 접고 오직 모두에게 좋은 일만 할 수 있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망상인 개체성(나 자신이라는 의식)은 극복되고 영혼은 마침내 의식이 없는 무한성과 합쳐질 수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모든 소망을 접고 오직 모두에게 좋은 일만 할 수 있다면, 인간의 기본적인 망상인 개체성(나 자신이라는 의식)은 극복되고 영혼은 마침내 의식이 없는 무한성과 합쳐질 수 있게 된다. 모든 개인적 소망을 말끔히 걷어낸 마음속에 어떤 평화가 나타나는가!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말끔하게 정화시키지 못한 마음이 무슨 평화를 알겠는가? 행복이란 이교도들이 믿듯이 이승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믿듯이 저승에서도 가능하지 않다. 평화는 열망이 없는 냉정한 평온함에서만 가능하다. 그것이 해탈(니르바나)이다. 그렇듯 7년 동안 명상을 한 다음 고타마는 해탈을 설교하기 위해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p46

<화난 사람을 친절함으로 이기도록 해라.> 그는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선으로 악을 이겨라. ....... 미움으로 미움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미음은 오로지 사랑으로만 중단된다.> 그는 내일을 걱정하지 않았고 숭배자들이 주는 음식으로 만족하였다.
그는 도덕적인 우화들을 통해 가르쳤다. 아니면 「다섯 계율」처럼 간결한 5행시를 이용하였다.
살아 있는 존재를 죽이지 말라;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지 말라;
거짓된 말을 하지 말라;
취하게 하는 음료를 마시지 말라;
음란하지 말라.

「여자들에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선생님?」
「아난다야, 그들을 바라보지 말아라」
「만일 그들을 보아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과 이야기를 하지 말아라」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라, 아난다야」p47

써니: 남성은 근본적으로 절제가 되지 않는 다는 말은 참말일까? 아니 여자에게도 해당은 될 수 있다. 이성과 본능 혹은 욕망은 절제해야 하는 것이지 절제하게 되는 것만은 아니니까. 그렇더라도 남성에 있어서 그것이 그토록 힘든 일일까?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체력에서 강해서 이렇게 교육하였을까. 여성보다 성에서 참을성(분별력)이 없기 때문일까.
남성은 힘에는 강하지만 유혹에는 약한 것일까. 정말 속성이 정신보다 먼저 지배할까. 아니면 도처에서 - 생활방식이나 교육, 전통 등등에 익숙한 결과일까. 생식구조라는 어느 과학교사의 말은 아직까지도 그다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성이 바뀌지 않는 한 풀지 못하는 숙제가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 자연적으로 성적 전환이 따른다. 그럴 때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고개 숙인 남자와 그제야 완숙해진 여인의 경우의 성적 역할 변화는?
결국 공격성은 모두에게 있는 것이고 똑 같은 생체리듬에 시간차만 남는다?

죄라는 것은 이기심과, 개인적인 이익이나 쾌락을 찾는 일이다. 영혼이 모든 이기심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영혼은 되풀이해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해탈이란 죽음 뒤의 하늘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기심을 극복한 고요한 상태이다. 붓다의 말에 따르면 마지막에 우리는 도덕적 개인주의와 심리적 개인주의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다. 욕심에 시달리는 우리의 자아는 실제로는 분리된 존재나 힘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강물 위에 이는 순간적인 잔물결이고, 바람에 날리는 운명의 올가미 속에 얽혔다 풀어졌다 하는 작은 매듭일 뿐이다. 우리 자신이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본다면, 전체의 틀 안에서 우리 자신을 개선하고 우리의 소망을 바꾼다면, 우리의 개인적인 실망과 패배, 비탄과 고통, 피할 수 없는 죽음 등이 더는 이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무한성의 넓이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분리된 자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마지막에 우리는 해탈, 곧 이기적이지 않은 평화를 찾을 것이다. p48

제4장 피라미드에서 이크나톤까지

시인왕
이집트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태양을 지상의 모든 생명체의 아버지로 여겨 숭배하였다. p65
아몬 신을 섬기는 고급 사제가 숫양을 죽여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을 보고 반감이 생겼다. 또한 승려들이 마법의 부적을 팔고, 자신들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몬 신이 주었다는 가짜 예언을 사용하는 것이 싫었다. p66

아톤은 지상의 모든 종족을 먹이고 통치한다. 그것은 살아 있는 신성(神性)의 개념으로 모든 사물을 살아나게 만드는 창조적인 힘이다. 태양신의 열기는 생명의 따뜻함이고 사랑의 열정이다. 그것은 모든 식물을 먹이고 열매 맺게 하고 모든 동물에게 힘을 주고 <여자 속에서 남자- 아이를 만드는> 존재다. 태양신은 모든 종족과 모든 형태의 성장을 위한 신이다.
p70

제5장 구약 성서의 철학과 시

한 민족의 탄생
바빌론 사람들은 과학과 의학을 발전시켰고, 함무라비 왕은 기원전 1940년경에 대단히 이성적인 법전을 만들었다. p74

예언자들
너희들 스스로를 씻고 깨끗이 하여라. 정의를 찾고 억압받은 과부룰 변호해 주어라.(이사야 3장 14절~15절, 5장 8절, 10장 1절 이하) p80

철학자들
나 설교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으며 하늘 아래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아보아 지혜를 깨치려고 무척 애를 써보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괴로운 일을 주시어 고생이나 시키신다는 것을 알기에 이르렀다. 하늘 아래 벌어지는 일을 살펴보니 모든 일은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었다. ....... 어차피 지혜가 많으면 괴로운 일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지는 법이다.(전도서 1장 12절~ 18절) p86

시인들
하느님 그리고 우주와 화해해라. 또한 사랑으로 너의 삶을 밝게 만들어라. 한 가지 답변은 시편에 들어 있고 다른 답변은 아가서에 들어 있다. p86

제6장 페리클레스에 이르는 길

에페소스, 그곳의 아르테미스- 디아나 신전은 고대 세계의 일곱 기적의 하나였다. 이 에페소스에서 플라톤보다 300년 전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신비로운 경구를 사용해서 변화의 철학을 설명하였다. 이것은 헤겔, 다윈, 스펜서, 니체 등에게 영감을 준 사상이었다.
두 가지 생각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변화가 보편적이라는 것과 에너지는 파괴할 수 없이 영속한다는 생각이었다.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언제나 현재의 존재이기를 중지하고 새로운 다른 것으로 된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그리고 <흐르는 강의 동일한 물속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쉬지 않고 중지하지 않는 <과정>이다. 여기서 헤겔이 1830년에 상세히 설명한 철학의 절반가량이 한두 문장 안에 축약되어 나타나 있다.

개별적인 영혼은 생명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꽃의 일시적인 혀일 뿐이다. p95

솔론
솔론의 평화로운 혁명은 역사상 용기를 주는 하나의 기적이었다. pp104

소문과 중상모략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것처럼 보였다. p106

<인간을 위해 지속적인 정의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강하게 영리한 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법이든 피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법은 거미줄과 같아서 작은 파리는 잡지만 큰 벌레는 뚫고 도망친다.>고 덧붙였다.
<무엇이든 지나치지 말라>
<나는 항상 배우는 가우데 나이가 들었다.> p107
써니: 인간을 위해 지속적인 정의를 만들어내는 일보다 보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더 중요함을 깨우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보다 정의롭게 공익을 나누려는 마음 자세가 기본이 되어야 함을 일컫는다. 그렇다. 제도의 미흡함보다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든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드는 다수의 사람들을 아무리 좋은 법안을 시행해 나간다고 하더라고 제도적으로 실현해 나가기란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솔론의 사상은 또한 동양의 중용사상과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다. 그것이 변화에 대한 고루하지 않은 처세를 이끌고, 혜안을 넓히며 살아갈 수 있는 현명한 삶을 가꾸어 나가게 되는 것이란 자각을 일깨운다.

제7장 아테네의 황금시대

사람들
플라톤은『파이드로스』에서 인간의 사랑을 논하지만 그것은 동성애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향연』의 토론자들은 동성애를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 높은 것으로 만들고 있다. p113

그리스 사회는 남성만의 단성(單性)사회였다. 그래서 여성의 정신과 매력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프랑스 계몽주의에 주었던 것과 같은 흥분, 우아, 자극 등이 결핍되었다. p114

페리클레스 시대의 풍요 속에서도 가장 심오한 사람들- 철학자가 아니라 극작가들- 의 사색은 아름다움의 짧음 그리고 죽음의 끈질김에 의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p115

그리스의 연극
사람들이 상상했던 신과 인간에 대한 강력한 고발이다.「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이후로 이「오레스테이아」3부작은 그리스 문학의 최고봉을 이룬다. 셰익스피어조차도 이것에 맞먹을 수는 없었다. p124

제8장 플라톤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예술
미술은 계속 번창하였다. 플리니우스1세는 이렇게 썼다. <코스의 아펠레스는 자신의 앞과 뒤에 오는 모든 화가들을 능가하였다.> 그는 아주 뛰어난 것이 분명하다. 그는 경쟁자를 칭찬한다는 드문 행동을 감행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쟁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프로토게네스가 가난하게 산다는 말을 듣고 아펠레스는 그를 찾아 로도스 섬으로 항해하였다. ....... 아펠레스는 다시 찾아왔다가 또 다시 집을 비운 경쟁자의 기술에 경탄하였다. 그런데도 두 선 사이에 세 번째 선을 아주 섬세하고 미묘하게 그려 넣었다. 프로토게네스가 돌아와 그것을 보더니 아펠레스가 자신 보다 낫다고 인정하였다. 그는 항구로 뛰어가서 스승을 붙잡고 환영하여 맞아들였다. p141

기원전 5세기는 알몸의 남자와 옷을 입은 여자를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그 유형을 이상화시켰다. 이 세기에는 전쟁터에서 지내는 남자의 삶을 감정 없는 산문처럼 주조하거나 끌로 새겼다. 기원전 4세기는 인간의 개성, 감정, 고통을 돌에 새겨보려 하였다. 남성 조각상에서는 머리와 얼굴이 아주 중요했고 몸은 그보다 덜 중요했다. 성격 탐구가 나타나면서 형태 숭배를 대신하였고 돌로 만든 초상화가 유행하였다. 신체는 뻣뻣하고 반듯한 자세를 포기하고 막대기나 나무에 편하게 기댔다. 명암의 살아 있는 작용이 나타나도록 표면이 입체적으로 다듬어졌다. 시키온의 리시스트라토스는 사실성을 열망한 나머지 그리스 사람들 중에서
처음으로 얼굴에 대고 석고 틀을 만들었다.
감각적인 아름다움의 표현은 프락시텔레스에서 거의 완벽함에 도달하였다. 온 세상은 그가 프뤼네(당대의 유명한 기생)에게 구애를 하였으며 그녀의 아름다움에 영원성을 부여했다는 것을 안다. 그의 아버지와 아들도 조각가였다. 따라서 그가 가문의 전통인 이 끈질긴 기술의 절정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청동과 대리석 두 가지 모두를 작업하였다. 그리고 대단한 명성을 얻었기에 열 개도 넘는 도시가 그의 기술을 얻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p143

역사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날짜는 바뀌어도 사건은 언제나 똑같다. p144
써니 : 무자비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가장 느리게 진화하는 종이다. (구본형의 사람에게서 구하라. p81)
과거가 우리를 구해 줄까? 어림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과거 속에 미래로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수없이 증명해 준 아이러니다. ( p7)
훌륭한 리더는 과거로부터 배운다. 그러나 과거에 갇히지 않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꾼다. 왜냐하면 과거가 새로운 가정과 전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이룩한 꿈의 역사였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p18)
역사는 우리가 현재의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연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가장 커다란 교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혁신의 능력”이다. 즉 지금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가정과 전제의 발굴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맞서야 하는 첫 번째 적은 언제나 우리들 자신이다. 그리고 우리를 구해 주는 첫 번째 친구도 우리들 자신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창조적으로 증오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언제의 습관과 사고 속에서 전혀 새로운 변종과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p19)

플라톤
소크라테스: 이런 나라에서 무정부 상태가 커져서 개인의 집에까지 퍼지게 된다. ....... 아버지는 아들 수준으로 떨어지고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수준에 서서 부모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 선생은 학생을 겁내서 그들에게 알랑거리고 학생들은 선생을 멸시한다.

아데이만토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소크라테스: 어떤 일이 과도하게 커지면 흔히 반대 방향으로 반작용이 일어난다. ....... 국가나 개인에게서 자유의 과도함은 오직 노예 상태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 가장 과격한 자유 형식에서 가장 나쁜 폭정 형태가 생겨난다. p145

『국가론』의 두 번째 책에서 플라톤은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생각하지만 인간이 천성적으로 개인주의적이고, 욕심이 많고, 이따금 사람을 죽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은 실용성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두 번째로 좋은 국가의 초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모두에게 공개된 교육 체계를 만들고, 교육적 맷돌의 가장 힘든 시련을 거쳐 살아남은 50세 이상의 <보호자들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이다. 플랕톤의 말에 따르면 이들 보호자들은 재산을 가져서는 안 되고, 돈도 아내도 없이 소박한 삶과 높은 철학에 헌신해야 한다. 이들은 공산주의의 섬이 되어 사방을 둘러싼 자유로운 기획의 바다를 통치해야 한다. 그들은 우생학의 원칙에 따라 모든 짝짓기와 결혼을 감독한다. <남성과 여성 중에서 최고의 사람은 가능한 한 자주 최고의 상대와 맺어져야 한다. 열등한 사람은 열등한 사람끼리 결합한다. 그들은 한 종류의 결합에서 태어난 후손들을 양육하고 다른 종류의 결합이 만든 후손은 양육하지 않는다. 이것만이 대중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p146
써니: 생식적인 면에서 우생학적 방법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그러나 변.경에서 사부를 모시고 공부하게 된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다는 믿음에 쐐기를 박아주는 구절이다. 우생학의 원칙에 따라 변.경의 추종자들과 어울리는 것은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까. 편협성을 뛰어넘고 다양함이 정도를 거닐 수 있으면 그도 확실한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철학자들이 왕이 되기 전까지, 혹은 이 세상의 왕들과 왕자들이 철학의 정신과 힘을 갖기 전까지는 ....... 도시들과 인간 종족은 사악함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p146
써니: 오늘날 우리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는 지도자층의 철학의 궁핍에서 연유한 것일까.
틀리지 않는 견해로 여겨진다.

그의 새로운 생각은, 외국의 사상에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내륙 깊숙이 자리잡은 농촌 공동체였다.
여성은 교육, 경제, 정치 분야에서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p147

써니: 이때에 이미 남녀의 기회균등에 대해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평등권은 보장되지 않음은 무슨 연유일까? 힘과 지배의 논리였나, 반대로 남성들이 더 철저하게 여성을 감시하고 감독하려 들었던 것일까.

가족과 학교에서 권위가 자유를 대신해야 한다. p147

부모와 선생과 법에 복종하는 것은 초자연적 신앙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신들을 섬겨야 하고 어떻게 섬길 것인지 국가가 결정해야 한다. 종교나 국가에 적대적인 사상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문학과 학문과 예술은 검열을 받아야 한다. 국가 종교에 의문을 가진 사람은 감옥에 가두고 저항하면 사형시킨다. p147

아테네의 가장 유명한 철학자가 자유에 대해 그토록 할 말이 적게 되었을 때 철학은 새로운 종교를 위해 무르익은 것이고 그리스는 새로운 왕을 위해 무르익었다. p147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과는 더불어 논다면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더불어 일을 해야 한다.

플라톤의 인기 있는 <대화>들은 살아남아 우리를 즐겁게 하고 기술에 관련된 그의 논문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진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기 있는 작품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기술에 관련된 논문들만 남아서 그 집중된 가르침의 대가로 힘든 주목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농담 중 하나이다. p148

알렉산드로스 대왕
그는 그리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 지역을 페르시아에서 해방시킨다는 아버지의 계획을 충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승리할 때마다 계획이 자꾸만 커졌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아킬레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으며, 필립의 부정을 보고 자기 아들의 진짜 아버지는 암몬 신이라는 소문을 흘렸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이러한 영웅과 신의 후계라는 말을 완전히 부정한 적이 없다. 그는「일리아드」구절들을 읽고 또 읽어서 수백 구절을 완전히 마음으로 익혔다. p151

이렇듯 완벽함과 힘을 갖춘 젊은이가 성숙한 판단력이나 교육받은 정신을 발전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많은 적군은 쉬운 타협을 확신하고서 그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피 속에 암호랑이의 사나움이 들어 있어서 주기적인 잔인성의 발작에 속수무책이었다. p152

그의 장수들이 누구에게 제국을 넘기겠는가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장 강한 사람에게.>

그가 이렇게 인생의 절정기에 죽은 것은 좋은 일이었다.

정력이란 천재의 절반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통제의 능력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온통 정력이었다.

그에게는 -이런 기대를 할 권리가 우리에게 없기는 하지만 -카이사르의 조용한 성숙이나 혹은 아우구스투스의 섬세한 지혜가 없다. 그를 보면 (나폴레옹을 보듯이) 경탄하게 된다. 그가 혼자 힘으로 세계의 절반에 맞섰기 때문이고, 또한 그는 한 개인의 영혼 안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이 잠재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p155

그는 자기 피 속에 흐르는, 미치게 만드는 야만의 유산에 맞서 싸웠다. 또한 모든 전쟁과 학살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의 빛을 더 큰 세계로 가져가겠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p156

제9장 로마 공화국

이 장(章)에서는 로마 공화국의 역사를 살펴보기 전에 가족, 종교, 규율이 어떻게 로마인의 성격을 만들어냈는지 간단하게 분석해 보자. 그리고 계층과 세대 간의 갈등이 어떻게 로마 정부를 만들어 냈는지, 또한 어떻게 로마가 지중해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는지 살펴보자. p157

사람들
움브리아, 사비네, 라틴족으로 로마와 그 주변에서 농사를 짓고 싸움을 하였다. 이들은 중부 유럽에서 건너온 튼튼한 이주민으로 알프스 산을 올라 호수지역에 -마조레, 코모, 가르다-퍼져 살다가 비옥한 강 골짜기로 흘러들었다. 일부는 소아시아에서 건너온 모험가들이고 원주민과 섞여 고대 토스카나의 기묘한 종족에 투르리아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고 다양한 그리스 종족도 이탈리아라 불리는 마법 장화 속에서 생동하는 정착지를 만들었다. p 158

문명의 분수(噴水)이며 주주인 사회 질서는 가족, 사제, 학교, 법률 그리고 국가의 여러 부분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초기 공화국 시대의 가족의 질서는 거의 절대적인 아버지의 권한에 기초하고 있었다. 아버지만이 법 앞에 권리가 있었다. 아내의 지참금도 남편의 것이 되었다. 아내가 범죄로 고발되면 남편의 판단과 형벌에 맡겨졌다. 남편은 아내가 바람을 피웠거나, 혹은 자기 포도주 창고의 열쇠를 훔쳤다는 이유로 그녀를 죽일 수도 있었다. 아이들에 대해서는 생사의 권한을 가졌고 노예로 팔 수도 있었다. 노예에 대한 권한은 한계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보다 문서가 더욱 엄격하였다. 실제에서는 이러한 권한이 부모와 자식간에 존재하는 깊고 자연스러운 사랑(pietas)과 존경심을 가로막지 않았다. 로마 사람들의 무덤 조각상도 그리스나 우리의 그것처럼 사랑에 넘친다.

가족 위에는 보호자, 입법자, 도덕적 힘 등의 역할을 하는 여러 신들이 있었다. 신들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상상되지 않았지만 모든 일, 삶의 모든 국면과 시기를 지배하는 초자연적 힘을 지닌 영(靈)으로 생각되었다. p159

문지방 위쪽에는 보이지 않지만 유능한 야누스의 신이 있었다. 두 얼굴을 가진 이 신은 기만하는 존재가 아니라 문을 드나드는 것을 감시하는 신이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가 자신을 낳았지만 어머니 속에는 새 생명을 잉태할 능력을 가진 유노 여신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 역시 아이를 낳을 힘을 가진 영을 자기 속에 지니고 있다. 아마도 또한 자신의 정령, 혹은 유노를 지녔다. 그들은 수호 정령과 그의 영혼인데, 인간의 껍질 속에 들어간 신적인 핵심이다.

그것은 버크가 혁명기의 프랑스 사람들에게 상기시켰듯이 가족이란 지금 살아 있는 몇 명의 개인들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전에 가족이었다가 지금은 죽은 조상들과 앞으로 올 후손들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영적인 다수와 시간을 초월한 단합 속에서 가족의 일부를 구성하는 존재들이었다. 로마에서는 가족이 국가를 다스렸다. p160
써니: 결국 조상들의 삶의 경험과 교훈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의 후손까지를 염려하고 기원하는 통합적인 사랑, 인간적인 길로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들의 조각처럼 갈고 닦고 모색하며 계획과 실천을 아우르는 공동체의 탄탄한 기반에서 자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의 가장 깊은 경건함과 가장 진지한 숭배는 생명의 어머니이고, 죽은 자들의 고향이며 솟아나는 씨앗 속에 감추어진 마법의 힘인 대지를 향하였다.

모든 신들과 인간을 지배하는 신은 유피테르 (주피터)였다. p161

이 종교가 로마인의 도덕성에 도움을 주었을까? 어떤 점에서 보면 부도덕한 것으로 보인다. 그 의식들은 신들의 선의가 아니라 선물과 형식으로 보상을 해주었음을 알려준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물질적 혜택이나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였다. 그런데도 종교는 개인, 가족, 국가에서 질서와 힘을 위해 좋은 작용을 하였다. 아이가 의심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신앙심은 규율, 의무, 예의 등을 그의 성격 안에 만들어 넣었다. 종교는 가족에게 신의 보장과 후원을 보내주었다. 또한 부모와 자식들에게 절대로 스러지지 않는 상호 존경심과 경건함을 불어넣어 주었다. 공공 생활의 모든 국면을 종교적 엄숙함으로 덮어주고, 국가를 신들과 친근하게 융합시켜 신앙심과 애국심을 하나로 만들었다. 애국심은 역사상 알려진 다른 어떤 사회보다 더 강한 정열이 되었다. 종교는 가족과 힘을 합쳐 강철 같은 성격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이 500년 동안 로마가 고대 세계를 통치할 수 있게 해주었다. p 162

통치
평민이란 귀족, 가사, 노예를 제외한 나머지 로마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은 농부, 노동자, 무역인, 기술자, 선생, 은행가 등이었다. 일부는 부유하고 일부는 권력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난하였다. 모두들 로마의 법이 자신들에게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카이사르 이전 대부분의 로마 역사는 이들 평민 계층이 권력을 얻기 위한 싸움의 역사이다. p164

루크레티우스
영혼(아니마)이란 <생명의 호흡>이다. 이것은 신체 곳곳에 아주 섬세한 물질처럼 퍼져 각 부분을 움직이게 해준다. 그것은 몸과 더불어 성장하고 나이를 먹다가, 몸이 죽으면 원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생명은 자유로이 간직하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임시로 빌린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잘 이용해야 한다. 우리의 힘을 다 쓰고 나면 우리는 잔칫상에서 일어나는 손님처럼 우아하게 감사를 표시하면서 생명의 식탁을 떠나야 한다. 죽음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저승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죽음을 두렵게 만든다. 그러나 저승이란 없다. 지옥은 이승에서 고통을 받은 것으로, 그것은 무지, 정열, 싸움을 좋아함, 욕심에서 온다. 천국은 이승의 <현명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신전>에 들어있다.

미덕이란 신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즐거움을 조심스럽게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 인도된 능력과 감각이 함께 조화롭게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진정한 부는 마음의 평화를 지니고 단순하게 사는 것이다. > 결혼은 좋지만 정열적인 사랑은 정신에서 명료함과 이성을 빼앗아간다. 이렇게 에로틱한 어리둥절함은 결혼이나 사회나 문명을 위한 건강한 기초가 될 수 없다. p176
써니: 결혼에서 정열을 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정열적인 사랑이 정신에서 명료함과 이성을 빼앗아 갔던 것은 나의 경우 정말 명백하다. 에로틱한 어리둥절함이 결혼이나 사회나 문명을 위한 건강한 기초가 될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한 것 또한 옳다. 내게 부족했던 점은 아마도 조용한 성숙과 섬세한 지혜의 결핍이었으리라.

루크레티우스는 문명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고대의 일화를 멋지게 요약해서 들려준다.

역사는 국가의 문명이 일어나고, 번성하고, 시들고 죽는 과정이다. 그러나 각 국가나 문명은 거꾸로 관습, 도덕, 법, 예술 등 문명의 유산을 전달해 준다. <달리면서 생명의 램프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달리기 선수들처럼.> <모든 고대 문헌 중에서 가장 놀라운 작품>을 돌아보면 우리는 아마 맨 먼저 그 단점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내용이 뒤죽박죽이지만 실은 시인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교정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p177
써니: 맨 먼저 단점을 보게 되는 이유 역시 우리의 진보에 대한 욕구에서 시발하는 것이리라. 교정도 못하고 일찍 죽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시인이 시를 멈춘다는 것은 역사의 가동력(과정)을 잃게 하는 것이요, 교정할 것이 남아있음으로 해서 현대는 물론 후대의 시인들의 몫이 지속가능하게 문헌에서조차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최소한 잘나고 못난 것조차 모든 시인들이 다 죽은 후에나 걸러지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몇 대 후손에 이르기까지 길이길이 보존될 혁혁한 혁명을 세울 이 과연 몇 이나 될까. 겨우 두어 달 남짓 책 읽고, 쓰기도 전에 너무 많은 시각차에서 오는 편중은 글쓰기의 시작을 두렵게 이끌고 더운 여름 뙤약볕 세례로 인한 질식 할 것 같은 공포를 자아내기도 했다면 그저 우스운 광경에 지나지 않을 것인가.

제10장 로마의 혁명

한때 땅을 경작하던 튼튼한 농부들이, 로마들 미워하는 포로 노예들로 대체되었다면 대체 로마는 무엇하러 군대를 가진단 말인가? 로마는 자기 땅을 소요하고 경작하는 장영농 대신, 빈곤에 괴로워하는 도시 프롤레타리아들을 데리고 대체 어떻게 정치적 안정을 얻을 수가 있단 말인가? p182

여러분은 세계의 주인이라 불리지만 여러분 자신의 땅이라 부를 한 조각 땅도 없습니다.

원로원은 이 제안을 사유 재산 압수로 여겨 거부하고 독재권을 원한다는 이유로 티베리우스를 고발하였다. p183

도덕의 붕괴
사업가들은 귀족 정치와 민주 정치가 거의 차이가 없다고 여겼다. 그들은 어차피 이 두 가지가 모두 금권 정치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큰 부자인 아티쿠스는 양쪽 모두에게 기부금을 냈다. 어차피 어느 쪽이든 자신의 지갑을 싫어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한 일이었다.

카이사르는 통치 기간 동안 여성들에게 아이를 많이 낳을 경우 국가가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오로지 가난한 사람들만이 누리는 쾌락이었다. p192

써니: 지금의 우리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인구가 점점 줄고 있고 노년층은 늘어만 간다. 정부에서 갖가지 회유책을 써보지만 그다지 효용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름의 소신이 있어 다자녀를 양육하는 부모가 TV프로그램 아침마당에 나와서 격하게 울분을 터트리며 하는 소리가 있었다.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네 식구를 보면서 괜히 아무것도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왜 저리 애를 많이 나았을까” 혀를 끌끌 찬다는 것이다. 그들 부부가 정부 정책에 득을 보자고 아이를 많이 낳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선택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걱정이나 해 주는 척 쓸데없이 말로만 심난해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으며, 제발 자신들의 시각에 맞춰서 상대를 혹평하지 말아주기를 아주 간곡히 당부하는 것이었다.

이렇듯 남의 일임에도 간과하지 않음은 불을 보듯 뻔하게 느껴지는 현재 우리의 나라살림과 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전제로 함에 공감이 안 가는 바도 아니니 모두들 그냥 그런가보다 말을 아낄 뿐이다. 선심 정책용으로 지자체별 도토리 키 제기식의 일시적 남발이 아닌 근본 대책을 간구하고 그것이 장래까지 안전하게 미칠 수 있도록 꾸준히 발전해 나갈 것을 믿도록 정부를 이끌고 나가야 만이 날로 증가하는 노년층인구비와 그로 인한 사회 역기능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고, 보다 젊은 층의 인식이 도모되어야 의욕적인 출산이 가능해질 것이다. 청년 실업이 즐비한 상황에다 제 몸 추리기도 힘든 판에 아이를 어떻게 낳아 평생을 감당하겠는가.

카이사르
용서받은 일을 용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p203

제11장 로마 제국(기원전 27년~180년)

제12장 네로와 아우렐리우스

네로
벌거벗은 어머니의 시체를 보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어머니를 가진 줄 몰랐었네.> p223

그는 죽으면서 이렇게 탄식하였다. <내 속에서 어떤 예술가가 죽는 것인가!> p225

쇠퇴
기원전 149년 검열관 카토의 죽음이 스토아 로마의 절정을 이루었듯이 네로의 죽음은 쾌락주의 로마의 절정을 이루었다. p225

관습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 다양한 혈통, 신앙, 목적, 방식 등의 대 소용돌이 속에 종족의 단일성과 활력이 뒤섞인 것 등이, 밖에서 들여온 로마의 부(富)와 힘을 합쳐 로마의 도덕 생활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오비디우스, 호라티우스, 마르티알리스 등의 무모한 쾌락주의, 네로의 오락과 범죄 그리고 로마 황후들의 부정행위 등으로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놀라운 일은 2세기에 아우구스투스 이후 로마 역사에서 가장 스토아적이고 헌신적인 통치자들이 갑자기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p226

철학자 왕들
안토니누스는 법보다는 모범으로 통치하기로 결심하였다. 자신에게 일절 사치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모든 행정 업무를 스스로 떠맡았고 누구든 자기에게 쉽게 접근하도록 해주었다. 머지않아 제국 전체가 그를 환영하였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이념이 현실이 되었다. p232

다뉴브 강을 따라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이따금 전투가 멎는 틈을 이용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명상록」이라고 알려진 작은 책을 그리스어로 집필하였다. 원래는 <그 자신에게>라는 제목이었다. p233

모든 것은 보편적 이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느꼈다. 그것은 우주 전체에 내재된 논리이다. 각각의 부분은 자신의 소박한 운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에게 있어 그 어떤 것도 너무 빠른 것도 너무 늦은 것도 없으며 그것은 그대 우주(전체)에 적합한 시간이다.

이 세상에서 훌륭한 기질이란 그것이 진지하기만 하다면, 아무것도 그것을 이길 수가 없다. 정말로 선한 사람은 불행에 대해 면역력이 있다. 어떤 재앙이 덮쳐도 그의 영혼은 그대로 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논리나 배움이 아니라 이해와 받아들임이다.

죽음에 대해서도 그것을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로 받아들여라.

너는 부분으로 존재하였다. p234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승리가 오로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p235

제13장 인간 그리스도

인간의 아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요한 8장 7절)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서 동정 어린 부드러움을 보았다. 그것은 확고한 헌신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강하고 신념을 가진 여자나 남자의 생각과 의지 속에 들어 있는 힘에 대해 어떤 한계도 둘 수 없다. P242

기쁜 소식 (복음)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기적인 욕심, 잔인성, 정욕 등을 없앨 수만 있다면 유토피아는 저절로 올 것이다. 이것이 모든 혁명 가운데 가장 깊은 혁명이 될 것이고, 이런 혁명에 견주어보면 다른 혁명은 단순히 계급간의 쿠테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리스도는 이런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였다.

그의 업적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덕성의 윤곽을 드러냈다는 점에 있었다. P245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P247

제14장 기독교의 성장

어두운 측면
지유는 안전이 만들어낸 사치품이다. p266

중세의 노래들
방해가 없으면 문학도 없다. 음유 시인들은 새벽의 사랑 노래와 저녁의 사랑 노래에 뛰어났다. 그들은 낮엔 유혹하고 밤엔 비탄에 빠졌다.
도이치 지역 음유 시인들은 연가 시인(Minnesinger)들이었다.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테(포겔바이데란 새의 목초지라는 뜻이다) 는 유명한 발라드「보리수나무 아래서(Unter den Linden)」를 만들었다. 나무를 로맨스를 위한 우산으로 본 것이다. 12세기 말, 13세기 초에 기사 문학은 성스러운 잔[聖杯]을 찾는 주제로 삼았다. 이것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다는 성스러운 잔을 말하는 것으로 아리마태아의 요셉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내리는 피 몇 방울을 이 잔에 받았다고 한다. p266

「Lasciate ogni speranza, voicb'entrate!」(여기 들어서는 그대들이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의『신곡』은 모든 기독교 문학에서 가장 이상하고 가장 무시무시하고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p269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실재론이란 보편적 단어 혹은 분류를 나타내는 단어들이-남자, 군중, 돌, 여자, 책 등과 같은 - 객관적으로 실재하고 있으며 개념의 실질적인 개체들이 실재하는 것처럼, 거기에 덧붙여진 실재 존재라는 의미였다.
군중은 군중 속에 들어 있는 각 개인과 똑같이 실재하는 존재이며 따라서 나름의 논리와 특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아벨라르는 그것을 부인하였다. 아니, 우리 정신의 바깥에는 특수한 개별적인 남자들, 특수한 개별적인 사물들 말고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보편적 개념들은 분류와 사유를 위한 도구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녀는 거의 어린아이 같은 신뢰로 그에게 몸을 맡겼던 것으로 보인다. 머지않아 그녀는 임신했다. p270

아벨라르의 자전적인 글「불행한 이야기」를 믿어도 된다면 <그녀는 ‘나의 아내’라고 불리기보다는 ‘나의 정부(情婦)’라고 불리는 편이 훨씬 더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벨라르는 자신이 파멸하였음을 깨달았다. 그는 엘로이즈에게 수녀의 의상을 입고 맹세도 하라고 말하고 자신도 수도사의 맹세를 하였다.

다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자 그는 제자들과 함께 트루아 근처에 천막과 작은 교회를 짓고 운둔하였다. 그리고 그곳을 <위로해 주시는 성령>이라고 불렀다. 제자들의 충실한 애정이 고독과 절망 한가운데 빠진 그의 생애 안으로 성령의 위안처럼 찾아왔다는 사실을 말하려 하는 것 같다. p271

지혜를 향한 첫 번째 열쇠는 자주 부지런히 질문하는 것이다. ....... 의심을 통해 우리는 탐구에 이르고, 탐구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기 때문이다.「기독교 신학」에서 그는 오직 기독교도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비이성적인 것이라 해서 거부하였다. 그는 신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신다고 주장하였다. 이단은 폭력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억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 그리고 인노켄티우스 2세가 이미 상스 주교 회의 판결을 인정하고 그에게는 항구적인 침묵과 수도원 유폐라는 형벌을 부과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p272

그녀는 위로해 주시는 성령의 뜰 안의 그의 곁에 묻혔다. p273
써니: “그녀는 거의 어린아이 같은 신뢰로 그에게 몸을 맡겼던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은
마치 장미가시에 찔린 사랑을 연상케 한다. 너무나 선명하고 순결한, 선홍의 핏빛처럼 다가오는 치명적인 사랑의 선율이다. 너무 절절해서 일상의 무해무덕한 아내이기보다 차라리 정부(情婦)라고 해야 좋을 것 같다고 작가 스스로 느끼게 하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뜨거운 불같은 사랑을 연상하게끔 한다. “그러나 아벨라르는 자신이 파멸하였음을 깨달았다.” 의 부분에서와 같이 불행을 예감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혼연일체로 이루어진 가혹한 에로스의 사랑, 그리고 아벨라르의 자전적인 글「불행한 이야기」를 끝내 뒤집고야 마는 엘로이즈의 희생과 헌신의 사랑. “그녀는 위로해 주시는 성령의 뜰 안의 그의 곁에 묻혔다.”에서 그녀는 마침내 신의 자비로 죽어서도 기어이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 내고야 만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 온전한 신앙생활이었고 신앙이 곧 사랑이었다. 그래서 짧고 험난한 사랑을 길고 숭고한 사랑으로 순명함과 동시에 변화경영(신의 시기와 고난을 아름다운 결말로 대미를 장식함)에 이르고야 만 것이리라. 이토록 아름다운, 눈이 멀 것만 같은 사랑이야기에 처음으로 감동해 본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나는 아벨라르의 신앙관에 동의한다. 내가 바라고 원하고 믿는 신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신이다. 이성을 주었고 그러기에 자발적으로 신에게 복종하여야 한다는 논리에 나는 울어나는 동조를 할 수 없다. 신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일체의 모든 것을 주관하셨다면 나의 모든 것을 다 주관해야만 한다. 갈라놓고 선택하고 시험하는 것은 신답지 않다. 나를 세상에 내놓을 것을 허락하였다면 나의 죽음까지 아니 살아생전에 윤택함과 평화로움까지 모두 책임을 져야하지 않을까. 믿기만 하라는 억지보다 보다 공정한 삶으로 우리들 앞에 떳떳이 나타나야 한다. 열정뿐만이 아니라 재능도 허락하고 사회의 악과 부조리, 형평과 평화로움에 신자체가 우리보다도 보다 더 헌신해야 한다. 당신이 저지른 응분의 대가를 똑같이 치러야 하지 않는가. 생명만 주관하고 나 몰라라 던져놓고 깨우쳐라 한다는 것은 직무유기요 책임회피에다가 태만이 아닌가. 내 아버지도 그리하지 않았는데 만인의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리 편협할 리가 없다고 본다. 나는 신이 방치한 반항아일까. 언제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날이 있으리라. ^^

중세의 업적
중세의 영혼은 자라나는 세포처럼 두 가지 역사적 유기체로 발전하였다. 남부 유럽에서는 고전적, 에피쿠로스적, 이교적 르네상스이고, 북부 유럽에서는 초기 기독교적, 스토아적, 청교도적 종교 개혁이다. 중세의 영혼은 이제 두 개의 강력한 문화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문명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중세의 역사적 업적은 완성되었다. 그 죽음이 곧 완성이었다. p275

제15장 르네상스 ┃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중심으로

페트라르카와 복카치오
그래서 르네상스는 발생 초기부터 이미 죽은 다음 천국의 불확실한 즐거움 대신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과 모험을 선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는 고대의 문학만을 복원시킨 것이 아니라 그 쾌락주의적 자유로움도 똑같이 복원시켰다. 1천 년 동안이나 초자연적인 신앙에 기초한 도덕적 규율의 시간을 보낸 다음 부분적으로는 이교적인 방식으로 감각이 자유롭게 되었다. p281

메디치 집안이 통솔한 피렌체(1378~1492)
-경제적 기반
그러나 르네상스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고대의 부활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했다. 냄새나는 부르주아의 돈 말이다. p281

돈은 문명의 뿌리이다. 상인들과 은행가들의 기금과 교회의 기금이 필사본들을 사들일 돈을 지불하였고, 이 필사본들이 고대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정신과 감각을 자유롭게 만든 주요한 힘은 그런 사본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산층의 힘이 커지면서 나타난 세속주의 덕분이었다. 또한 대학과 지식과 철학의 성장 덕분이었으며, 역사와 법을 연구해서 정신이 현실적으로 예민해진 덕분이었다.

르네상스는 두 가지 규율(중세와 종교 개혁)사이의 막간극이었다.

어째서 이런 봄의 깨어남을 북부 이탈리아가 가장 먼저 경험하게 되었던가? 그곳에서 고대 로마의 샘은 완전히 고갈된 적이 없었다. 도시들은 고대의 구조와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고 이제 고대 로마의 법을 새롭게 만들었다. p282

이탈리아는 고대문명과 무역이 이루어지던 지중해를 지휘하면서 그곳을 가로지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p283

르네상스란 시간상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과 사유의 방식이다. 그것은 상업, 전쟁, 사상의 통로를 통해 이탈리아에서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에서 맨 먼저 탄생한 것과 아주 동일한 이유로 피렌체에서 맨 먼저 탄생하였다. p284

-로렌초의 죽음
평온한 마음과 여가를 품위 있게 즐기는 것보다 더 소망스러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모든 선량한 사람이 원하는 것이지만 위대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일이다. p300
써니: 구본형 변하경영연구소의 위대함이 바로 이것일 수 있다. 종국에 그러한 삶에 이르기 위하여 애쓰며 치열하게 살아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사람이 원하지만 위대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이 단순한 진리에 한 발작이라도 다가가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일체의 모든 것이 집결 되기란 참으로 쉽지 않기에 과정을 밟으며 노력해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버리지 않고 얻을 수 없는 진리, 내 놓지 않고 담을 수 없는 지혜를 탐구하러 모인 이 자리를 마음껏 즐기고 싶다. 이것마저 내게는 욕심일 것인가.

어쩌면 그는 구성, 색체, 혹은 도안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으로 모든 예술 작품을 시작했다가 해결책이 발견되는 순간 작품에 대한 흥미를 잃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술은 구상과 도안의 문제이지 실질적인 실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너무나 빨리 한 가지 일이나 주제에서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에 관심이 있었다. 그에게는 하나의 통합하는 목표, 주도하는 이념이 없었다. 이 <보편인(universal man)>은 빛나는 부분들을 이어 붙여놓은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많은 능력들을 지녔기에 그들을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p307
써니: 나는 재능도 없지만 열정마저도 부족해서 너무 빨리 혹은 너무 여러 가지 생각에 빠지는 취약점을 갖고 있다. 하나의 통합하는 목표와 주도하는 이념이 부재가 내 좌충우돌 천방지축 뒤죽박죽인 인생과 무관치 않으리라.
뜨끔하나 반드시 해결해 보고픈 나의 일생일대의 문제요, 극복해야만 할 과제이다. 하면 이 가슴의 통증이 다소나마 사라지게 되고 나도 한 번쯤 제대로 살아볼 수 있으련만.

-발명가
그러나 지식을 향한 정열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귀한 특성이다. p317

-과학자
사유의 가장 순수한 형태인 수학에 열광적으로 몰두하였다. p318
식물에 간한 테오프라투스의 위대한 테스트를 읽고서 그는 <자연사>쪽으로 마음이 끌렸다.
그는 사람과 동물의 팔다리를 나란히 배치해서 탐구함으로써 현대 비교 해부학을 거의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갈레누스의 낡은 권위를 배제하고 진짜 몸을 이용해서 작업하였다. 인체해부를 말로가 아니라 이 분야에서 행해진 이전의 모든 것을 능가하는 드로잉으로 설명하였다. 이 주제로 책을 쓸 계획을 가졌고, 그러기 위해 수많은 삽화와 기록들을 나겼다. <30구 이상의 인체를 절개하였다>고 주장하였으며, 태아, 심장, 폐, 골격, 근육, 내장, 눈, 두개골, 두뇌 그리고 여성의 핵심적인 기관에 대한 드로잉들은 이런 주장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특이한 드로잉과 기록들로- 최초로 자궁을 과학적으로 묘사한 사람이며 또한 태아를 포함한 세 개의 막을 서술하였다. 그는 오늘날 하이모어 뼈라고 알려진, 턱을 받치는 뼈의 공동(空洞)을 그려낸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사람의 육체적 삶을 분석하고 정신적 삶을 조사할 계획을 가졌다. <오, 내가 인간의 신체를 묘사한 것과 동일한 정열로 인간 습관의 심리학을 설명하는 것을 신께서 허용해 주시기를!>
이 많은 영역에 대한 탐구에서 레오나르도는 이따금 철학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오, 놀라운 필연성이여! 최고의 이성을 가지고 그대는 모든 효과가 그 원인에서 나온 직접적인 결과이게 하는구나. 모든 자연의 활동은 취소할 수 없는 법칙으로, 가능한 한 가장 빠른 과정으로 그대에게 복종한다. p319
써니: 이해가 되기도 하고 자연의 질서 앞에 생물로서 속수무책의 무기력한 마음이 들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 인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나약함)이여.......

<하루를 잘 보내면 그 잠이 달다. 그렇듯이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음이 달다. > p321
써니: 의심의 여지가 없는 문구다. 이제라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란 말이 있다.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도 정말 중요하다. 이제는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야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살아온 모든 날들에 이렇게나마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삶은 이전보다 아름다워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제16장 르네상스 ∏
로마
붕괴
-포위된 지성
이탈리아 르레상스가 다른 어디서나 마찬가지로 문명이란 소수의, 소수에 의한,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원래의 정당성을 넘어 과대하게 찬양하는 것이 될 것이다. p340

제 17장 르네상스 3
베네치아의 일몰

제 18장 종교개혁┃

위클리프와 에라스무스
모든 기독교도가 해로운 탐욕의 예를 본받고 있음은 명백한 일이며 또한 악명 높은 일이기도 하다. 성직 계급은 왕자들과 왕들보다 더욱 화려하게 연회를 베풀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왕과 의회는, 루터와 헨리 8세보다 2세기나 앞서서 한 사제가 가톨릭교회의 신학과 정치적 요구를 공격하는 것을 보고 모두들 미소 지었다. p376

1381년 파리 대학교에서 가르치던 도이치 신학자 하인리히 폰 랑켄슈타인은「평화의 조정」이라는 논문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교황들 이외의 다른 힘만이 현재의 위기에서 교회를 구원할 수 있으며, 어찌할 바 모르는 기독교에 도덕 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p384

종교 개혁가 및 인문주의자들의 판단도 비슷한 것이었지만 그는 진짜 기독교의 정수인 신약 성서가 독단과 세월에 의해 어둡게 되고 가려졌다고 보았다.
파리에 머물면서 그는「아다지아」(주로 고전작가들에게서 뽑은 818개의 인용문)를 출간하였다. 이것이 호평을 받은 것에 용기를 얻어 그는 판을 거듭하였다. 그때마다 인영이 늘어나 총 3,260항목에 이르렀다. p391

토마스 모어와 함께 머물던 1511년에 그는 가장 유명한 책「어리석음 예찬(우신예찬)」을 7일 만에 썼다. 이 책은 그의 생전에 40판을 거듭하였다. 뒷날 1632년에 밀턴은 이 책이 캠브리지에서 <모든 사람의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았다.
이 작은 책자는 인류가 어리석음 덕분에 그 존재를 이어가고 있다는 말로 시작된다. .......
삶의 사실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거나 미래를 안다면 누가 행복할 수가 있겠는가?
이어서 이 작은 책자는 기독교 신앙과 실천을 비웃는다. 무(無)에서 세계를 창조한 일, 이브의 순진한 죄, 세대에 세대를 이은 잔혹한 형벌, 동정녀 출산, 미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성체로 바뀌는 일 등을 비웃었다. p 392

써니: 영성이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지거나 정치와 결탁하거나 개인 혹은 소수들의 이익집단으로 둔갑하면 어딘가에서 곪아터지거나 헛된 망상이 될 수도 있다. 삶과 사회가 변화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곳과 무소불위의 힘을 지니거나 자랑하는 곳도 이 집단이라고 생각된다. 이데올르기적 냉전의 시대도 종말을 고하는 이즘에도 끔직한 착취와 기만이 남아 있는 이기적 집단화로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곳도 이들 집단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착하고 순한 사람들이 특히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자칫 오류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교회들과 사찰이 시대적 소명을 다하며 개혁의 칼자루를 휘둘러 악습을 철회하고 참되고 바른 영성으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자신의 펜이 만들어낸 그 뾰족한 독침을 그토록 너그럽게 참아준 교회와 완전히 단절하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p 395

제19장 종교 개혁 ∏
루터와 공산주의자들

루터의 성장기(1483~1517)
탐닉에 빠질 정도로 건장하고, 보기에도 정상적인 본능의 삶을 살도록 만들어져 있었지만, 집과 학교에서 인간은 천성적으로 죄가 있으며 죄는 전능하시고 형벌을 내리시는 하느님을 화나게 만든다는 신념을 주입받았기에 그는 자연의 충동과 자신이 습득한 신념을 화해시킬 수가 없었다. 그가 배운 하느님은 사랑보다는 공포의 하느님이었다. 예수도 팔복을 내리는 <온화하고 다정한 예수>가 아니라 죄인을 영원한 지옥의 불로 위협하는 최후 심판의 그리스도였다. 어느 날 그는 천둥 번개가 치는 폭풍우 속에서 은신처를 갈망하는 가운데 성 안나에게 자신이 구원을 받으면 수도사가 되겠노라고 맹세하였다. p409

성 바울로가 쓴 로마서에서(1장 17절) <올바른 사람은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구절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에서 그는 하느님은 창조 이전에 이미 어떤 영혼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도록, 그리고 다른 영혼은 영원한 저주를 받도록 정해 놓으셨으며, 선택받은 사람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고난의 공로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 것이라는 생각을 찾아냈다. 하느님에 의해 구원을 받도록 선택된다는 것 그리고 개인의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서 세운 공덕의 힘을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을 수 있다는 이러한 생각은 루터 신학과 그 추종자들 신학의 근간이 되었다. p410 *****

승리한 개신교(1525~1555)
에라스무스는 놀라고 슬퍼하면서 유럽이 신학과 전쟁으로 찢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루터 반란의 초기 국면을 후원하였지만 그것이 유럽의 사회적 기둥의 하나인 가톨릭교회의 붕괴를 가져오려고 했을 때 그로부터 멀어졌다. 그는 루터를 위해 길을 여는데 동참하였다. 그의「어리석음 예찬」은 당시 유럽을 통해 수천 부가 전파되면서 수도사와 신학자들을 비웃었고 루터의 둔중한 폭발을 위한 폭발 지점을 제공하였다.

가톨릭교도들이 그가 낳은 알을 루터가 부화시킨 것이라고 비난하자 그는 동의하였다. <그래요, 하지만 내가 낳은 알은 암탉이었는데, 루터가 부화시킨 것은 싸움닭이었단 말이오.> 그는 기독교가 적대적 진영으로 분열되는 것을 보고 유럽이 1세기나 후퇴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도이칠란트에서는 17세기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루터가 그에게 지속적인 우정을 호소하였을 때(1519년 3월 18일)그는 루터에게 전쟁의 개를 풀지 않게 조심하라는 답변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프리드리히 선제후에게 이 반란자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가난한 학자들이 그렇듯이 그는 교황의 연금과 영국의 한가한 사제직을 기억하고 자신의 평화를 지켰다. p441

제20장 가톨릭 종교 개혁(1517~1563)

성 테레사
한동안 그녀는 미사와 집단적인 기도, 그리고 고해성사가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 그녀의 낭만적 상상력은 이제 종교적 황홀경으로 바뀌었다. 성찬식을 할 때 그녀의 성찬용 빵을 받으면 정말로 그리스도가 자기 혀를 건드리고 이어서 자기 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p447

써니: 올해 초 정월에 새해에는 정말 다르게 살아볼 요량으로 신년 구상을 하면서 2박3일간의 피정을 다녀왔다. 용인에 있는 성심원이라는 곳으로 특히 묵상과 기도를 2박3일 동안 거의 쉴 틈 없이 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동참해 보는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일었다.
제법 긴 시간동안의 냉담이었고 회계라고 치면 너무 많아서 차라리 아무할 말도 없을 것 같은 죄인 된 마음과 그래도 한 말씀 혹시나 들려주신다면 좋으련만 하고 기대를 하면서...

역시나 응답을 받고 오지는 못하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마음을 열고 열절히 기도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아직 너무나 미흡하고 부족해서 나에게 어떤 말씀도 주실 수 없다는 것, 이제부터는 진실로 내가 알아서 가야만 한다는 것, 목이 터져라 불러보는 애달픈 나와 나를 내어주신 세상의 주인에게 화해와 용서를 청하는 그리고 혜안을 얻고 싶은 바람을 목이 다 쉬도록 울부짖었다. 나는 신을 영접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 깜깜함 속에 느낀 것은 차가운 바람뿐 이었다. 내 주위로 뜨거운 불길이 아닌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 쳤다. 내가 너무 발광을 떨었는지 안수하시는 분들과 회장님까지 내 곁에서 나를 보호하셨는데 끝내 예수님을 만나지는 못하였다. 다녀와서 거의 한달 간은 목이 쉬어 소리도 잘 안 나왔다. 자주 가고 싶은데 그렇게는 여의치 못하여 자주 가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깨달은 몇 가지가 있다. 나는 교회에 어떤 모습으로든 남아 있을 만큼 신실하지도 굳건하지도 튼실하지도 않은 자유분방함을 원하는 지극히 속인이라는 것, 말씀에 순명하는 삶을 살지는 못하리라는 현주소 그리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궁금증과 세상에 대한 미련과 인간적인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다는 것 등등을 몇 가지 추려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유일하게 선택하고 남게 된 변.경...

나는 이곳에서 내가 살아온 모든 날들을 집결해 내고 싶은 당치않은 바람을 꿈꾸고 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쏟아진다. 11번째인데 늘 책을 읽을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부끄러울 때도 있고, 새삼 오호! 그렇구나. 깨달을 때도 있고,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를 때도 있지만 어느 구절, 어느 면에서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고,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다.

날마다 노력한다면서 날마다 도루아미타불로 만들고 말지만 이 과정을 하면서 바람을 가져본다. 쓰자, 읽고 쓰고, 읽고 쓰고 반복하다보면 산을 오를 때처럼 조금은 덜 숨차리라. 헛디디고 놀라고 넘어지고 깨어지면서 짜증나고 울분하고 그 잘난 인간들의 군상에 노여워도 하면서 보편적 균형감을 찾기보다 우선 나를 살아내는 것이 더 관건이다.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자 라고 하는 대한민국 어느 아지매의 주장이 새삼 정겹다.

테레사의 발작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짧지만 고통스러운 마비로 변하였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침대에 묶이고 말았다. 그녀는 모든 의약품을 거부하고 오로지 기도에만 의존하기로 결심하였다. 3년 동안 고통 받으며 기도하였다. 그런 다음 1540년 어느 날 아침에 깨어나자 마비가 풀려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걷고 매일 같이 수녀원 식사에 동참하였다. 그녀의 치유는 기적이라고 찬양되었고 그녀 자신도 그렇게 믿었다. p448

테레사의 규칙은 명랑하고 단호하게 사랑하는 것이었다. p449
써니: 참으로 단순하고 간결한 믿음이다.

폐의 출혈이 그녀를 멈추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고통과 악의 세계를 떠나 그리스도의 영원한 친구가 되기 위해 떠난다고 확신하고 즐거운 심정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p450

제21장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학문의 대혁신
17년 뒤에 데카르트는『방법서설』에서 모든 것을 의심함으로써 철학을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마찬가지로 베이컨도 여기서 대혁신을 위한 첫발자국으로서 <지성을 배제>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지식은 단순히 뒤범벅이며 소화되지 않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쉽게 믿는 태도, 수많은 우연 그리고 맨 처음에 흡수된 유치한 관념들로 이루어진 덩어리다. p487

그러므로 출발점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에서 온갖 전(前)개념, 선입견, 억지, 이론 등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 심지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등을 돌려야 하며, 우리의 생각에서 <우상들(idols)>, 혹은 시대의 망상과 오류를 쓸어버려야 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개인적 판단의 특성이나 아니면 전통적인 신념, 우리 그룹이 가진 도그마에서 나온 것들이다. 우리는 소망스런 사유의 논리적 기만을 없애버려야 한다. 명료하지 않은 생각의 온갖 부조리함을 쓸어버려야 한다. 겨우 몇 개의 공리와 원칙들로부터 수많은 항구적인 가치들을 이끌어내라고 제안하는 저 당당한 연역적 사고체계를 싹 쓸어내야 한다. p488

정치가의 철학
베이컨의 지혜는 세속적인 것이다. 그는 형이상학을 신비주의나 무분별의 영역으로 떠넘겼다. 솟구치는 야망조차도 단상(斷想)에서 전체를 향해 도약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결정론적 유물론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회의주의 철학자들을 더 좋아하였다. 그리고 유물론자인 데모크리토스를 찬양하였다. 그러나 육체와 영혼의 날카로운 분리를 받아들이고, 지식이란 <타고난 유물론자>라는 베르그송의 말을 미리 말하고 있다. p490

그녀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생물학을 미리 앞질러 거부하였다. 조심스런 양면 감정으로 그는 자신의 철학을 <마치 소금 치듯이>종교로 (양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특히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학식이 있는 시대이다. 어려움과 불운은 인간의 정신을 종교로 이끌기 때문이다.
써니: 그래서 특히 영성은 바른 인도자를 따라야 하리라. 앞으로는 더욱 비중이 커질 수도 있을 텐데 종교만이라도 깨끗하게 남아준다면 얼마나 위안이 될까.

학문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문을 도덕성에 종속시켰다. 학문의 확장이 자비심에 아무런 득도 가져오지 못한다면 인간성에는 아무런 이득도 없을 것이라 하였다. <정신의 모든 미덕과 존엄성 중에서 선의가 가장 위대한 것이다. > p491

미덕은 온건한 형태로 실천되어야 한다. 사악한 사람이 경솔하게 선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 시치미를 떼는 것은 문명을 위해서는 아닐지라도 성공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다. 사랑은 광기요, 결혼은 올가미다. <아내와 자식들을 가진 사람은 덧없는 것을 가진 사람이다. 그들은 큰 기획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성직자의 독신제에 대해서는 교황들과 같은 의견이었다. <독신 생활은 성직자와 잘 어울린다. 먼저 웅덩이를 가득 채워야 한다면 자비심이 지면을 적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우정은 사랑보다 낫지만 결혼한 남자들은 불안정한 친구이다. p492
써니: 우정이 사랑보다 낫다는 구절에 귀가 솔깃한다.

첫 번째 치유책 혹은 예방은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다해 물질적 원인을 ....... 곧 결핍과 빈곤을 제거하는 것이다. ....... 이런 목적을 위해 무역을 열고, 균형을 잡고, 제조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도움이 된다. 게으름을 몰아내고, 사치 규제법을 통해 낭비와 과도함을 억눌러야 한다. ....... 무엇보다도 좋은 정책이란 국가의 재물과 돈이 소수의 손길에 모이지 않게 하는 일이다. ....... 돈은 (옮겨 심은 나무를 위한) 뿌리 덮개 같은 것이어서 골고루 펴서 뿌리지 않는다면 좋은 것이 아니다.

써니: 아직 가보지는 못하였는데 강남에서는 소주가 만원이란다. 서민의 술인 줄만 알았는데 다른 술값은 제법 제멋대로 올려도 소주 값을 그리 비싸게 받는 줄은 미처 몰랐다. 옆에서 복분자라고 그건 3만원이라며 아우성들이다. 술값이 그 정도면 밥값은 말할 것도 없다.
5만원 이래야 별로 먹을 것도 없는 것, 그래저래 술 마시고 밥 먹는데 1인당 돈 십만 원은 홀라당 날아갈 판이다. 그렇게 먹어주는 사람도 있어야 경제가 돌아가긴 할 것이다. 있는 사람들이 쓰는 경우야 그렇다 하지만 없으면서도 따라가야 할 경우에 삶이 개갈 나질 않을 밖에.
그런데 그보다 심각한 경제상황 요즘은 돈이 있는 사람들이 제조업에 손을 대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 죄다 돈 좀 있으면 요식업에 손을 대니 어쩌나. 그래도 먹는장사뿐이라며...
하기야 한두 푼 들여서 하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차릴 만한 목돈을 들여 요식업에 손을 대고 있으니 돈을 쓸 곳만 있지 생산될 일들은 점점 없어지고 청년들은 임시적으로 아르바이트나 하다가 나이 들게 되면 더 이상 갈 곳을 못 찼고 주저앉게 되니 참으로 어이없다.
이러니 돈은 점점 소수에게 몰릴 뿐이다.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이런 사태를 해결해 나가야 하리라. 정 어려우면 1인 기업을 지원해서라도.

<그들의 논의는 너무 높이 있어서 별로 빛을 내지 못하는 별들과 같다.> P493

옮긴이의 글 - 안인희

귀 있는 이여, 들어보라
이들이 지닌 약점을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고 허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위대했으며 마찬가지로 약점투성이인 우리 또한 위대해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P502

귀 있는 이여, 들어보라. P503



3. 내가 저자라면

1] 윌 듀런트가 남긴 마지막 유언
황금가지에서 출판한 이 책의 겉표지를 벗기니 하얀 소복을 차려입은 듯한 양장 표지가 나온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미이라 같은 표지에 흠짓 놀라게 된다. 그것도 흰색의... 역사란 무덤을 파헤쳐 남겨진 겉들에 의해서만 살펴보게 되는 순백의 여백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여백은 우리에게 남겨진 몫인가. 어떻게 채우든 그대로를 접하든 그것은 독자의 몫이란 말인가. 나름의 궁금증을 품은 채 미이라를 걷어내듯 책을 읽어 나간다.

그런데 제법 의도가 연결이 된다. 이 책은 윌 듀런트의 마지막 작품인 동시에 그가 남기는 유언과도 같다는 것 또한 이 책「역사속의 영웅들」은 이 <정신의 나라>가 제공하는 축복이라는 점이다. 임종까지 끌고가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미완의 유서....

윌 듀런트의 모든 저서의 주제는 문명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 특정한 사상을 발전시켰다는 것 그리고 이 사상의 효능에 대한 평결은 이미 역사의 법정에서 내려졌다는 것이다.
철학적 주제와 관련된 이론적인 추상 개념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인류의 유산은 그런 원칙이 바람직한 결과를 냈느냐, 아니면 바라지 않는 재앙으로 떨어졌느냐에 대한 구체적 예를 가지고 있다. p13

세계의 역사를 통해서 보는 여러 다양한 사건들과 그 속을 함께 걸어온 면면들- “수많은 성인(聖人), 정치가, 발명가, 과학자, 시인, 예술가, 음악가, 연인, 철학자들이 살아서 말하고 가르치고 조각하고 노래하는, 정신의 나라, 하늘의 도시.......” 등을 문명이라는 구조 속에서 그것들을 형성하고 주장하며 만들어가는 모습들을 파악하고 모색하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문명을 지배하고 이끌어온 신랄하고 밀접하게 남겨진 역사가 고스란이 소개되어 있어 흥미를 더한다. 시대를 이끌어온 사상이 녹아들고 스며들며 전개되는 것이어서 이해의 폭도 넓고 쉽게 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2] 1인칭 화법을 사용하며 역사에 탐구적인 자세로 임하다.
윌 듀런트는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라고 말하면서 이 공동체를 바르게 형성해 나가기위한 도덕과 규범, 가족과 종교, 법과 여론 등 다방면의 보편적 진리를 위한 철학과 처세 등에 대한 여러 영웅들의 견해를 상세히 기록해 나가며 마치 현재의 사건처럼 사실적 묘사와 처리로
IP *.70.72.121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5.28 04:45:34 *.70.72.121
남은 내용 뒤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
프로필 이미지
플러스전사
2007.05.28 16:40:42 *.84.6.38
중간 중간에 써니의 생각을 넣어가면서 써니식으로 읽으셨군요.
항상 성실한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52 [11] 역사속의 영웅들 : Will Durant [2] 써니 2007.06.02 2059
» [11] 역사속의 영웅들 : Will Durant [2] 써니 2007.05.28 2230
850 [011] 역사, 위대한 떨림/D. H. 로렌스 file [3] 香山 신종윤 2007.05.28 2534
849 Movements in European History- D.H. Lawrence file [5] 海瀞 오윤 2007.05.28 2091
848 역사 속의 영웅들 / Will Durant [1] 好瀞 김민선 2007.05.28 1847
847 역사 속의 영웅들/윌 듀런트 [3] 香仁 이은남 2007.05.28 2197
846 책의 향기를 다시 돌려준 Will Durant -HEROES OF HISTORY [6] [1] 최정희 2007.05.27 2371
845 김훈, 남한산성을 읽고 [3] [13] 산골소년 2007.06.02 3823
844 &lt;남한산성&gt; 을 읽고 [8] 정재엽 2007.05.19 2672
843 (010) We, the People /리오 휴버만 [1] 校瀞 한정화 2007.05.14 2316
842 『전환 시대의 논리』를 읽고 [7] 이희석 2007.05.14 3577
841 가자, 아메리카로! 리오 휴버만 [5] [2] 香山 신종윤 2007.05.14 2420
840 [독서10]가자 아메리카로/Leo Huberman [3] [2] 素田최영훈 2007.05.14 2120
839 (10) '가자, 아메리카로!'를 읽고 [7] 時田 김도윤 2007.05.14 3768
838 [가자, 아메리카로!] 미국사의 경영학적 재해석 [2] 송창용 2007.05.15 2053
837 가자, 아메리카로(10) [3] 최정희 2007.05.14 2127
836 [10]가자, 아메리카로! (대기업의 전설) [4] [2] 써니 2007.05.14 2115
835 가자, 아메리카로!/리오 휴버만 [4] [2] 香仁 이은남 2007.05.14 2187
834 (10) 가자, 아메리카로! - 리오 휴버만 [2] 박승오 2007.05.14 1987
833 가자, 아메리카로! / Leo Huberman [1] 好瀞 김민선 2007.05.13 2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