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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3일 13시 16분 등록

(그림을 클릭하면 좀 더 큰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은 1528년 경에 태어나 1569년에 이르기까지 약 40년 남짓한 생을 살았던 네델란드의 화가입니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적어 태어난 날과 장소도 확실치 않지만, 한 자료에 따르면 브라반트주 브레다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P. 쿠크, 이어서 H. 코크의 제자가 된 뒤,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유학하였고, 이탈리아 유학중 알프스의 풍경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1553년 귀국한 그는 안트베르펜에서 활동하였으나, 1563년 결혼한 뒤에 브뤼셀로 옮겨 이곳을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민간전설, 습관, 미신 등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지만, 브뤼셀로 옮긴 뒤부터는 농민 반란 하의 사회의 불안과 혼란, 그리고 에스파냐 본국의 가혹한 압제에 대한 격심한 증오 등을 종교적 제재로 제작한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구도를 단순화하고, 인물의 수도 줄이며 극적인 요소를 배제하여, 수수하고 사실적으로, 때로는 비유적으로 농민생활의 실상을 묘사하는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대지(大地)와 숙명적으로 깊숙히 결부되어 있고 그 숙명 속에서 소박하고 우직하게 생활하는 농민을 휴머니즘의 정신과 예리한 사회비판의 눈으로 묘사하여, 최초의 농민화가로 일컬어졌으며<농민 브뢰겔>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두 아들도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살았던 16세기는 종교개혁과 농민 반란 등으로 유럽 각지에서 전쟁이 끊어지지 않은 위기의 시대였고, '봉건영주들이 반란자들을 미친개 때려잡듯 무자비하게 진압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혼란 속에서 개인들은 신앙과 신념의 위기를 겪었고, 무엇보다도 굶주림으로 생명의 위기를 겪었던 때였습니다.

1559년에 그린 위 작품,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은 바로 그런 갈등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왼편에는 사육제가 펼쳐지고 있고, 오른 편에는 사순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 대해서는 닐스 요켈이란 작가가 재미있게 풀어놓았습니다. 지금부터 그의 설명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장터 풍경이 소란스럽다. 안트베르펜의 한복판에 있는 광장에 장터가 열렸다. 바닷가에서 말을 타면 불과 다섯 시간이면 닿는 거리다. 어린아이 재잘대는 소리, 거지가 "한 푼 줍쇼." 구걸하는 소리, 장사꾼이 "싸게 드려요." 호객하는 소리에 귀가 멍멍하다. 나귀 목에 달아놓은 방울 소리, 마차 바퀴 구르는 소리, 문살 삐걱대는 소리, 떼 지어 부르는 노랫소리도 들린다. 이렇게 사람들 모여 사는 소리가 왁자지껄한 장터 분위기를 자아낸다. 길모퉁이에는 모닥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방금 구워낸 구수한 빵 냄새가 코에 달라붙는다. 고기 굽는 냄새, 생선 지지는 냄새가 허기진 장돌뱅이의 발을 멈추게 한다. 어느새 군침이 고인다.

그림 오른편 뒤쪽에는 교회가 하나 보인다. 그 뒤로 보이는 나무는 무척 앙상하다. 잎사귀가 하나도 없다. 아직 귀 끝이 시린 2월의 어느 날이다. 사람들은 두툼한 옷을 단단히 여미었다. 쟁쟁거리는 음악 소리와 방울 소리, 종소리가 축제의 흥을 돋우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오직 주린 배를 채우는 일뿐이다. 달걀 껍질, 생선 뼈, 고깃점을 발라낸 닭 뼈, 돼지 뼈, 소 뼈다귀가 길바닥에 나뒹군다.

(중략)

도시마다 무슨 거지, 앵벌이 들이 그렇게 많았을까?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꽤 여유가 있어 보인다. 도시에 사는 시민들인가 보다. 거지들에게도 행운이 닥칠 때가 있다. 어쩌다 일진 좋은 날이면 맘씨 좋은 사람을 만나 동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림 오른편 뒤쪽의 교회 광장에 거지들이 떼거지로 몰려왔다. 돈푼을 적선하라고 아우성이다. 이전에는 교회 광장의 앞자리를 차지하면 하루 끼니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져서 인심도 예전 같지 않았다. 교회를 드나드는 신자들이 거지들을 냉랭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두어 해 전까지만 해도 신부님의 강론이 달랐다. 가난하고 헐벗은 이웃에게 베푸는 은전이 하늘나라에서 백배 천배로 돌아온다고 했다. 신부님의 거룩하신 말씀에 부자들이 앞다투어 거지들에게 동전을 던져주었다.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이란 놈이 터지자 루터, 칼뱅, 츠빙글리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말을 바꾸었다.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이야 칭찬할 만하지만, 아무리 푼돈을 나누어주어도 그것만으론 천국에 못 간다는 요지였다.

지옥 불에 떨어질 죄를 돈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거지들은 잘난 설교 덕택에 굶어 죽을 판이었다. 돈이 아무리 많은 사람도 거지에게 눈길을 주지 않게 되었다. 개미가 탑을 쌓는다고, 푼돈도 들어오지 않으니 깡통에 찬바람이 불게 된 건 당연했다.

그러나 사육제 기간은 사정이 달랐다. 허리끈 풀고 너나없이 부어라 마셔라 하는 축제에서는 거지들도 모처럼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거지들도 기다리는 축제였다. 그런데 즐거운 사육제의 밤을 맞이하기 전에 지킬 일이 있었다. 사순절의 금식제였다. 금식제 기간에는 음식을 끊고 단식하면서 굶주림을 겪어야 했다. 물론 금식의 규율을 나 몰라라 지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터 악사, 어릿광대, 가면 쓴 남자는 금식제에 아랑곳없이 먹고 마시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왼편에 파란 차일 지붕을 내민 집들이 보인다. 왼편의 무리를 이끄는 사람은 술통을 탄 뚱보이다. 뚱보는 사육제의 진영을 이끄는 장수다. 일하기는 죽기보다 싫고 놀고 먹는 일에 혈안인 게으름뱅이들이 모여서 뚱보 장수를 선두에 세우고 뒤따른다. 게으름뱅이들은 파란색 옷을 입고 있다. 파랑은 어리석음을 뜻하는 색이다.

이들과 맞서 부지런하고 경건한 사람들이 그림 반대편에 모였다. 이들은 사순절의 진영이다. 교회가 그들의 본거지이다. 검은 옷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수녀들,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시민들, 낯빛 좋은 아이들이 교회에서 나온다. 이들은 빨간 나무판자에다 초록 바퀴를 단 끌차를 따른다. 경건한 사순절의 행렬이다. 끌차 위 높은 의자에 젓가락처럼 빼빼 마른 할머니가 앉았다. 할머니는 사순절의 군대를 지휘하는 장수다. 할머니를 따르는 아이들은 돼지고기나 소시지에 한눈을 팔지 않는다. 교회가 정한 대로 딱딱하게 마른 빵을 불평 없이 씹는다.

할머니는 뚱보를 향해서 보란 듯이 삽을 내민다. 나무로 깎은 삽 머리에는 말라붙은 청어가 두 마리 얹혀 있다. 단식 기간이니 돼지고기를 치우고 청어를 먹으라는 뜻이다. 생선은 상관없지만 기름진 육식은 멀리해야 한다고 교회에서 가르쳤기 때문이다.

우물가를 둘러보자. 바구니에 생선을 담아서 파는 사람이 보인다. 허기를 참기 어려우면 빵과 찐 생선을 먹어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들짐승과 날짐승 고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가축은 물론이고 가공한 육류도 멀리해야 했다. 달걀과 우유도 금지 품목이었다. 맥주도 못 마시게 했다. 몸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들은 사순절을 반겼다. 그러나 먹보와 술고래에게는 사순절의 금식제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딴 사람 눈치 안 보고 술통을 끼고 앉아서 코끝이 빨개질 때까지 예사로 퍼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그림 왼편과 오른편에서 사육제와 사순절의 군대가 마주쳤다. 몇 발자국만 다가서면 서로 부딪칠 것 같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른다. 한바탕 싸움이 일어날 기세이다.”

이처럼 브뤼겔은 그림을 통해 사육제와 사순절의 대립을 통해 그 당시의 갈등을 드러내고, 먼 곳에서 바라보는 듯한 한 눈에 들여다 보이는 광장의 풍경을 통해 16세기 네델란드의 생활상을 담아냈습니다.

그렇다면 자크 아탈리는 이 그림 안에서 또 어떤 음악의 풍경을 발견한 것일까요? 아쉽지만 그 음악 여행은 여러분 각자에게 맡기겠습니다.



* 참고 자료 : 야후 백과사전, 시대의 우울(최영미), 브뢰겔 (닐스 요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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