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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8일 03시 56분 등록
읽은 책 : 歷史란 무엇인가(1961 영국에서 출판). 탐구당(2004) 길현모 번역(1966)
글쓴 이 : Carr, Edward Hallet (1892년~1982년)

[저자에 대하여]

1892년 런던의 중류계급 가정에서 출생.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1916년 이후 영국 외무부에서 근무, 1936년부터 웨일즈 대학의 국제 외교학 교수로 학계에 투신하기 시작하였다.
1919년 파리 평화회의의 영국대표 파견단으로 베르사이유 조약문서의 작성에 관여했다.
1920년대에는 라토비아의 영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며 러시아문학과 러시아의 삶에 매료되어 몇 편인가의 글을 썼다. 1941년부터 1946년까지는 더 타임스의 논설위원을 지냈다.
옥스퍼드대 베일리얼 칼리지 정치학 튜터(Tutor)를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 펠로우, 옥스퍼드 대학 베일리얼 칼리지 명예연구원을 지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저자는 소련인들의 장렬한 행동에 감동하여 1944년 말경, 1917년부터 소비에트 정부가 독일의 침입에 어떻게 견디어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역사전부에 걸쳐 현재까지의 소비에트 연방사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 결과로서 그의 역작 소련사가 출판되었다. 소련사에서 카의 시각은 세가지 기간을 비추고 있는데 양대 세계대전과 레닌, 스탈린 시대로 되어있다.

또한, 196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역사를 주제로 한 대중 강연과 방송 원고를 묶어 만든 책, “역사란 무엇인가”는 카의 명성을 전 세계적으로 떨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이 발행된 이후 현재까지도 역사를 배우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되어있는데 지난 2001년, 런던 역사연구회에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현재적 의미와 한계를 논하기 위해, 그리고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런던 역사연구회는 2001년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그 내용을 잠깐 소개한다.

“이렇듯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학자 9인이 여기에 모여 서로의 의견을 발표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굿바이 E. H. 카-원제: What is History Now?》이다. 심포지엄의 개최 목적이자 책의 출간 목적은 첫째, 카의 저작 출간 40주년을 기념하고 재평가하는 것, 둘째, 그동안 전개된 역사학의 발전과 변화를 탐색하고 설명하는 것, 셋째 그 결과물을 폭넓은 독자층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심포지엄이 이틀에 불과했고, 그 많은 논의를 한 권의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지만 다양한 역사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늘날 역사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펼쳤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저서
도스토예프스키: Fyodor Dostoevsky(1931),
마르크스: Karl Marx (1934)
미하일 바쿠닌: Mikhail Bakunin(1937)
위기의 20년: Twenty Years’ Crisis, 1919~1939 (1939)
Conditions of Peace (1942)
서구세계에서의 소비에트의 충격: The Soviet Impact on the Western World (1947)
새로운 사회 : The New Society (1951)
볼셰비키 혁명 :The Bolshevik Revolution,1917~1923, 3vols.(1950~53)
소비에트 역사: History of Soviet Russia(1950~1978)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 (1961) 등등

길현모

1923년 평북 희천 출생, 서울대 사학과 출신의 민석홍(작고), 양병우(작고), 노명식 교수 등과 함께 광복 이후 국내 서양사학계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자, 전해종(동양사), 이기백(작고, 한국사), 이보형• 차하순(서양사) 교수와 ‘서강학파’의 전성시대를 연 주역이기도 하다.
특히, 군부독재를 비판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한 차례씩 해직의 아픔을 겪기도 했던 선생은 끝까지 꼿꼿함을 꺾지 않고 1983년 한림대 교수로 복직,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군부독재가 자리를 잡아가던 1966년, 자유주의 지식인이었던 서강대 사학과 재직 중 선생이 1966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한 것으로도 유명한 데 역사 이론에 관한 학술서나 교양서가 거의 없었던 시절, 꼼꼼하게 번역된 이 책은 지식인, 대학생 사이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선생은 실증사학의 대명사인 랑케 사학을 비판하는 논문과 자본주의 이행논쟁 등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남겼다. 광복 이후 1세대 서양사학자로 꼽히는 길현모 서강대 명예교수는 향년 84세로 2007년 1월에 타계하셨다.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들]

1. 역사가와 사실

John Acton: 물론 우리세대에 완전한 역사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재래의 인습적인 역사를 청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전도상에서 우리들이 도달한 지점을 알려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5p
사회관: 빅토리아 시대 후기의 긍정적인 신념과 명철한 자기자신.

Sir George Clark : 다음 세대에 속한 역사가들은 그와 같은 장래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업적이 계속 극복되어 나가리라 본다. 6p
사회관: 비트 제너레이션의 당혹과 어지러운 회의주의.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려 할 때에 우리들의 답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라는 보다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답의 일부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7p

경험주의적 지식론은 주체와 객체와의 완전한 분리를 전제합니다. 사실은 감각적인 인상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관찰자에게 부딪쳐오는 것으로써 관찰자의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수동적이며 자료를 받아들인 다음에야 거기에 관찰자의 동작이 가해진다는 것입니다. 8p

사실은 자기 스스로가 말한다고들 흔히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물론 이것은 참말이 아닙니다. 사실이란 역사가들이 그것을 찾아 줄 때에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고 어떠한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그리고 어떠한 순서와 전후 관련 속에서 이야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역사가인 것입니다. 12p

역사적 사실로서의 그 지위는 결국 해석의 문제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이라는 요소는 역사의 모든 사실 속에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15p

요컨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과거상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미리 선택되고 미리 결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우연적 계기에 의해서보다도 오히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어떤 특수한 견해의 감화 밑에서 그런 견해를 밑받침해주는 사실이어야만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입니다. 16p

베라클루 교수는 자신도 중세사가로서의 수련을 쌓은 사람입니다만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책으로 읽는 역사는 사실 그것은 아니고 오히려 인정된 판단체계에 불과하다.” 17p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라고 Croce는 언명했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28p

크로체는 옥스퍼드의 철학자이며 역사가인 콜링우드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콜링우드의 관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역사철학이 취급하는 것은 “사실 그 자체”나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상”의 그 어느 하나만이 아니고 “상호관계하에 있는 그 兩者입니다”. 29p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 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떠한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 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인 것입니다. 31p

여러분이 역사책을 읽을 때에는 항상 역사가의 머리 속에서 오고 가는 사색의 음을 잡아내야 합니다……..일반적으로 역사가란 자기가 원하는 종류의 사실을 손에 넣게 되는 것입니다. 33p

역사가는 자기가 쓰고 있는 인물과의 어떠한 심적인 접촉을 가질 수 없는 한 역사는 쓰여질 수 없는 것입니다……………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들은 비로소 과거를 볼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이해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가도 자기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고 인간생존의 諸조건에 의해서 시대에 붙잡혀 있는 존재입니다. 34p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한다는 것도 아니요, 과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다는 것도 아니요,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써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36p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을 못 가진 역사가는 뿌리를 박지 못한 무능한 존재입니다. 역사가 없는 사실이란 생명 없는 무의미한 존재입니다. 이리하여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나의 물음에 대한 나의 제1답은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이 되겠습니다. 즉, 역사가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43p

2. 사회와 개인

사실 우리가 복잡하고 발달된 사회라고 할 때에 그것은 각 개인의 상호의존관계가 진보되고 복잡한 형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사회라든가 교육이라든가 하는 국민적 배경의 차이로부터 오는 국민성의 차이를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성”이라는 포착하기 어려운 실체는 국가에 따라, 세기에 따라 그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지배적인 사회 조건이나 관습에 의하여 형성된 하나의 역사적 현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48p

개인주의의 숭배는 근대의 역사적 신화 중에서도 가장 널리 보급된 것입니다……..그러나 내가 여기서 밝히고 싶었던 것은 근대 세계의 발전에 수반되었던 개인화의 증대라는 것도 전진하는 문명의 통상적인 한 과정에 불과했었다는 점입니다. 49p

요컨대 역사가도 하나의 개인입니다. 딴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하나의 사회현상이며 자기가 속해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사회의 대변인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격 하에서 역사가는 역사적 과거의 諸사실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52p

위대한 역사란 분명히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젼이 현재의 諸문제에 대한 통찰에 의하여 빛을 받을 때에만 씌어지는 것입니다. 54p

지금의 나의 목적은 두 개의 중요한 진실을 밝히는 데에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첫째로는 역사가가 문 제에 접근하는 입장부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 입장 자체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역사가는 역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역사의 산물인 것입니다. 59p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고 어떤 종류의 역사를 쓰지 못하는가 하는 것처럼 그 사회의 성격을 뜻 깊게 암시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65p

그러나 자기는 어디까지나 한 개인이지 사회현상은 아니다라고 소리쳐 항의하는 역사가보다는 자기위치를 주도하게 의식하고 있는 역사가일수록 그러한 위치를 초월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또한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달라짐에 따라서 사회와 관점이 자기들과 어떻게 달라지는가 하는 차이점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보다 유능하다는 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입장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란 자기가 그러한 조건 속에 얼마나 깊이 사로 잡혀있는가를 자각할 수 있는 감수성 여하에 달렸다고 봅니다…………”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십시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사회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러한 이중의 視点下에서 역사가를 보는 눈을 길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66p

역사에 있어서의 창조력을 개인적인 천재에게 돌리고 싶어하는 욕망은 역사적 의식의 원시적 단계의 특징입니다. 67p

인간을 개인으로 보는 견해가 인간을 집단의 일원으로 보는 견해보다 덜 잘못되었다거나 많이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고 있는 것은 이미 양자를 명확히 구분하려는 태도에 있는 것입니다. 70p

내 자신으로서는 신의 섭리, 세계정신, 自明한 天命, 어마어마한 간판을 내걸은 역사등, 하여간 諸사건의 방향을 인도한다고 생각되어 온 일절의 추상적인 요소를 불신합니다. 나로서 무조건 찬성하고 싶은 것은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견해입니다.
“역사가 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한 없는 財富를 지니는 것도, 전투를 하는 것도 역사 자체는 아니다. 모든 것을 행하고 차지하고 싸우고 하는 것은 인간, 즉 현실의 살아있는 인간이다.” 74p

역사가에게 맡겨진 일은 행위의 배후에 있는 것을 해명한다는 일입니다만 행위자 개인의 의식적인 사상이나 동기는 이와는 전혀 상치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79p

그들의 역사상의 역할은 그들을 따른 대중들의 힘에 의한 것이며 그것은 하나의 사회현상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지 그렇지 않다면 아무런 중요성도 없는 것입니다. 80p

내가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인을 역사 밖에 앉혀 놓고서 그들은 위대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을 역사에 강요한다는 식으로 보는 견해입니다……오늘날에 있어서도 헤겔의 고전적인 기술에는 다시 손을 댈 여지조차 없습니다.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82p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使役人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83p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의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인 것입니다. 84p

3. 역사와 과학과 도덕

역사에 있어서의 시대 구분이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필요한 가설 혹은 사상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역사 해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한에 있어서만 유효한 것이며 그 유효성도 해석 여하에 딸린 것입니다. 92p

類推란 부주의한 인간에게는 함정과도 같은 것… 94p

◆과학과 역사 사이에는 근본적인 구분이 설정될 수 있다는 것이며 이와 같은 차이점으로 봐서 역사를 과학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에 대한 반론 요약과 카의 검토. 95p~130p

(1) 역사는 전적으로 특수적인 것을 취급하나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취급한다.
*우선 언어를 사용한다는 그 자체부터가 역사가로 하여금 과학자나 마찬가지로 일반화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전쟁, 혁명..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
*역사가란 언제나 자신의 증거를 이용하기 위해 일반화를 이용하는 법이다.
*사실과 해석 사이를 분리시킬 수 없듯이 이 양자도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양자 중의 하나만을 우위에 올려 놓을 수도 없다.

(2)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다. 즉 어떤 한 경우의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딴 대목의 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일반화를 시도할 때에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러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복돋아 주는 데 있다.

(3) 역사는 예견할 수 없다.
*역사에 있어서 예언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서는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사이의 차이점에 놓여진다. 역사가에게는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행동은 아닐지라도 미래 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는 특정한 사건에 대한 예언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특정된 것이란 단일한 것이고 거기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끼어들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사회과학자나 역사가의 추론이 그 정밀성에 있어서 자연 과학자의 추론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고 혹은 이런 점이 못하다고 해서 그것을 단순히 사회과학의 큰 후진성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인간이란 어떤 점으로 보나 가장 복잡한 자연적 존재이고 따라서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는 자연 과학자들이 직면하는 곤란과는 성질을 달리하는 諸곤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밝혀놓고 싶은 것은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들은 그 목적과 방법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뿐입니다.

(4) 역사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은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인간 행동의 諸 형태를 추진하고 자기의 연구대상인 인간이 왜 그렇게 행동하려고 했는가를 밝힐 필요가 있다. 이리하여 역사학과 사회과학에 있어서만 특유한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사이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역사가의 모든 관찰 속에는 불가피하게 역사가의 관점이라는 것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관찰과정 자체가 관찰대상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 역시 진리이다.
*관찰자와 그 대상과의 사회과학자와 그 자료와의, 역사가와 그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인 것이고 부단히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역사와 사회과학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과학은 그 전부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엄격한 분리를 선언하는 어떠한 지식이론과도 양립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사회과학이 포함하는 인간이란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고 연구자인 동시에 연구대상이기 때문이다.

(5)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내포한다.
*나의 개인적 소견으로는 역사의 통합성이라는 것과 역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좌우하는 어떤 초역사적인 힘—그 힘이 선택 받은 백성의 신이건, 그리스도교의 신이건, 自然神論者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건, 헤겔의 세계정신이건 간에—을 믿는다는 것과는 조화되기 어렵다고 여겨진다. 나는 역사가란 자기 문제를 신의 조화력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고 풀어나가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역사란 말하자면 죠카 없이 노는 트럼프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8역사가들은 자기 책 속에 나타나는 개인들의 사생활에 도덕적 관습을 내리기 위해 옆길로 비켜 나설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따로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적인 행위가 아니라 공적인 행위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고 할 때에는 보다 중대한 애매성이 나타나게 된다.
*과거의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건, 사고, 제도, 정책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고 하는, 보다 어렵기는 하지만 보다 이득 있는 문제로 눈을 돌리자. 역사가의 중요한 판단은 이런 것이다. 개인에 대한 도덕적인 단죄를 열을 올려서 주장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무의식중에 집단이나 사회전체를 위한 구실을 마련할 수가 있다.
*오늘날 독일 사람들은 히틀러의 개인적인 부도덕성에 대한 단죄를 환영하고 있지만 이것은 히틀러를 낳아놓은 사회에 대한 역사가들의 도덕적 판단의 만족할만한 대용물이다. 러시아인, 영국인, 미국인들도 스탈린이나 네빌 챔벌레인이나 맥카시에 대한 공격에 잘 합세하지만 그들 역시 자기들의 집단적 과오에 대한 희생물에 불과하다.
*막스웨버는 “자본주의가 노동자들과 채무자들을 몰아넣고 있는 주인 없는 노예제”라는 것을 말하면서 역사가는 도덕적 판단을 제도에 내릴 것이지 그것을 만든 개인에 대해서 내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당한 태도이다.
*역사적 사실이란 어느 정도까지는 해석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며 역사적 해석은 언제나 도덕적 판단—만일 여러분이 보다 중립적인 어감을 좋아하신다면—가치판단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우리들의 곤란점의 시초에 불과하다. 역사란 하나의 투쟁과정이어서 그로부터 나타나는 여러 결과는 우리들이 그것을 좋게 판단하건 나쁘게 판단하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간접적인 경우보다는 직접적인 경우가 많지만—일부 집단이 타 집단을 희생시켜가지고 성취한 것이다.
*우리들은 사회 속에 태어났고 역사 속에서 태어났다. 우리들에게 받는 것도 자유요, 거부하는 것도 자유인 입장권이 제공될 경우란 있을 수 없다. 역사가는 고난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자 이상의 결정적인 대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 역시 결국에 가서는 작은 惡과 보다 큰 善이라는 명제 위에 주저앉게 마련이다.
*추상적인 도덕 개념에 특수한 역사적 내용이 담겨져 나가는 과정이 하나의 역사적 과정이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단 한가지 요점은, 추상적인 초역사적인 기준을 세워놓고서 그것에 의하여 역사적 행동을 판가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기준을 설정하려는 시도가 비역사적이고 역사의 본질 그 자체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가들이 그 직책상 끊임없이 추궁해야 할 諸문제에 대해서 도그마틱한 해답을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사전에 받아 들이는 역사가란 눈가림을 하고 일에 착수하자는 것이며 말하자면 자기 직무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역사란 운동이고 운동이란 비교를 내포하는 것이다. 역사가들이 도덕적 판단을 표현할 때에 “선” 혹은 “악”등의 타협성 없는 결정적인 용어보다는 “진보적”이라든가 “반동적”이라든가 하는 비교하는 성질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회로부터 遊離되고 역사로부터 유리된 추상사적 기준이나 가치란 추상적인 개인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제대로 된 역사가라는 것은 모든 가치의 역사적인 被制約性을 가려볼 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역사를 초월한 객관성을 요구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역사의 간격을 메꾸기 위한 또 하나의 해결 방도는, 과학자나 역사가나 그 목적하는 바는 동일하다는 보다 깊은 이해를 촉진한다는 것입니다……….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모두가 동일한 연구의 틀린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과 그 환경에 관한 연구, 다시 말해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과 인간에 대한 환경의 작용을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구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즉 자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역사가도 그 밖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왜냐”라는 의문을 부단히 추궁하는 동물입니다. 133p

4. 역사에 있어서의 因果關係

그가 어떠한 원인을 내세우는 가에 따라서 어떠한 역사가인가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40p

역사가에게는 과거를 이해하겠다는 충동이 있기 때문에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해답을 단순화하고 어떤 해답을 딴 해답에 종속시키고 諸사건의 혼돈과 諸원인의 혼돈 속에 질서와 통합성을 도입한다는 일을 동시에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역사가가 원인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원인을 단순화해 나가는 작업을 해야만 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역사도 이러한 이중적인, 분명히 상반되는 과정을 통해서 전진하는 것입니다. 142p

인간 행동은 원칙적으로 확실히 분별할 수 있는 원인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전제 없이는 일상 생활을 불가능할 것입니다. 147p

역사에 있어서는 어떤 일이건 그것이 틀린 결과를 초래하려면 선행되는 원인 자체부터가 달랐어야만 했다는 定則的인 의미에서가 아니라면 불가피한 일이라곤 없는 것입니다. 150p

현대사의 두통거리는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모두 남아있었던 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여지가 기정사실에 의하여 모두 끝나버렸다고 보는 역사가들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곤란하다고 여기는 점에 있습니다. 153p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가들의 중심 구명대상이 되고 있는 인과연쇄를 중단하면서—말하자면 그것과 충돌하면서—또 하나의 인과연쇄가 나타날 때에 그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즉 그것은 우리가 다루는 인과연쇄가 자신의 견해로서는 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딴 인과연쇄에 의해서 언제든지 단절될 수도 있고 빗나갈 수도 있는 것이라면 역사에 있어서의 원인과 결과의 일관된 연속성은 어떻게 발견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154p~155p

역사적 사건이 융성과정에 처해있는 것이 아니라 퇴락과정을 거듭하고 있는 집단이나 국민에게 있어서는 역사의 기회나 우연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이 우세한 법입니다. 시험의 결과란 결국 제비 뽑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은 열등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역사의 법칙을 이러한 요소의 침입으로부터 막아보려고 했던 최초의 인물은 분명히 몽테스키외였습니다. 그는 로마인들의 위대성과 몰락을 다룬 저작 속에서 “만일 전투의 우연한 결과와도 같은 하나의 특수 원인이 한 국가를 멸망시켰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단 한번의 전투로 말미암아 국가의 몰락이 초래될만한 일반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158p

역사가의 원인에 대한 관계는 역사가의 사실에 대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원인은 역사과정에 대한 그의 해석을 결정하는 동시에 그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합니다. 諸원인의 상하관계, 하나 혹은 한 묶음의 원인이 그 밖의 원인에 대해서 지니는 상대적 의의, 이러한 것이 역사가의 해석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는 문제를 푸는 단서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162p

역사가는 과거의 경험, 즉 자기가 입수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골라내 가지고 그로부터 행동지침으로서 유용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입니다. 163p

역사에 있어서의 해석은 언제나 가치 판단과 떼놓을 수 없는 것이고, 인과 관계는 해석에서 떼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169p

현재란 것은 과거와 미래와를 갈라놓는 가공적인 선이라는 개념적 존재에 불과합니다. 현재를 논할 때에 나는 이미 현재와는 다른 시간적인 차원을 몰래 침입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도 미래도 모두가 동일한 시간선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과거에의 관심과 미래에의 관심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알기 쉬운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170p

훌륭한 역사가들 역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건 말건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입니다. 170p

5. 진보로서의 역사

아시아의 고대문명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희랍과 로마의 고전문명은 근본적으로 비역사적인 것이었습니다. 172p

역사과정이 향해나가는 고올을 설정함으로써 전연 새로운 요소—목적론적 사관—를 도입한 것은 유태인들이었으며 다음에는 그리스도 교도들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역사는 의미와 목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만 그 대신 현세적인 성격을 상실했습니다. 역사의 고올에 도달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역사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역사 그 자체가 護神論이 된 것입니다. 중세의 사관을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르네상스는 인간 중심의 세계와 이성의 우위라는 고전적인 관점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러나 고전적인 비관적 미래관을 이를 버리고 그 대신 유태적, 그리스도교적 전통에 유래한 낙관적 미래관을 받아들였습니다. 173p

그 후 근대적 역사서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계몽시대의 합리주의자들이 유태적, 그리스도교적인 목적론을 답습함과 아울러 그 고올을 현세화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역사과정 그 자체의 합리적 성격을 회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는 지상에 있어서의 인간 지위의 완성이라는 고올을 향한 진보라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진보의 신앙이 절정에까지 도달한 것은 영국의 번영과 힘과 자신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습니다. 175p

진보의 개념에 관한 검토 1. 178p~179p

자연에 있어서의 진보의 근원: 생물학적 유전,
유전에 의한 진화는 몇 천 년이나 몇 백만 년을 단위에서 측정가능. 현대인이라 해서 5000년 전의 조상들보다 큰 뇌를 가지고 있다거니 보다 큰 선천적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함.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의 근원: 사회적 획득.
세대를 단위로 하여 측정가능. 획득 형질의 전승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의 기초가 된다.
역사는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한다.
(사고의 효능은 여러 세대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자기 경험과 결부시켜 몇 배나 커졌음)

진보의 개념에 관한 검토 2.

우리들은 진보에 일정한 시작이 있다거나 마지막이 있다는 생각을 가져선 안 된다…………문명이란 결코 발명된 것은 아니며 때때로 극적인 비약이 수반되었다고 여겨지는 무한히 서서로운 발전과정인 것이다………….역사가에게 있어서는 진보의 종국은 이미 진화된 것일 수는 없다. 그것은 아직도 한없이 먼 곳에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지표는 우리들의 前進途上에서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다……역사의 내용도 우리들의 경험을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179p~182p

진보의 개념에 관한 검토 3.

적어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역전이나 이탈, 중단이 없이 일직선으로만 전진해 나온 진보라는 것을 믿은 일을 없었다는 것, 따라서 가장 급각도의 역전이라 해도 반드시 진보에 대한 믿음에 치명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점이다………….결국 우리가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진보란 모두가 시간에 있어서나 장소에 있어서나 결코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주목할 만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182p

따라서 한 집단에게는 몰락의 시대로 보이는 것이 딴 집단에게는 새로운 전진의 시작이라고 보인다는 일이 극히 흔하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진보란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183p

진보의 개념에 관한 검토 3.

진보를 믿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진보라는 것은 추상적인 말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 목적은 역사 진행의 과정 속에서 그 때 그 때마다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의 외부에 어떤 출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나는 전진 과정에 있어서만 비로소 증명될 수 있는 그러한 목표를 향한 무한한 진보—즉 필요성이나 想定에 따른 한계점이라는 제약을 벗어난 진보—의 가능성이라는 것 만으로서 만족하기로 한다. 187p

우리들의 방향감각, 우리들의 과거에 대한 해석은 우리들이 전진함에 따라 부단히 수정되고 부단히 진화되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191p

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할 때에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그것은 그 역사가가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러한 능력은 지난 강연에서도 말씀 드린 바와 같이 그 일부는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 그러한 위치에 말려들어가 있는가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즉 말하자면 완전한 객관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에 달린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 역사가는 자신의 비젼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그 안목이 전적으로 목전의 자기 위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보다는 과거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영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4p

역사가란 승자건 패자건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람들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자기 사회를 어느 정도 조직하는 데 성공한 민족만이 원시의 야만 단계를 넘어서서 역사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한 시대에 적합했던 것도 다음 시대에는 변태적인 것이 되고 그로 말미암아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199p~200p

역사에 있어서의 객관성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목전에 놓인 어떠한 고정 불변의 판단 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놓여있는 그리고 역사코스의 진전과 더불어 발전하는 그러한 기준에만 의존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나의 주장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것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만 의미와 객관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205p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6p

정적인 세계에서는 역사란 무의미한 것입니다. 역사는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요--만일 여러분이 낡아빠진 말이라고 탓하시지 않는다면—진보입니다………..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진보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208p

6. 넓어지는 지평선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자연적 과정—계절의 순환이라든가 사람의 일생이라든가 하는—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의식적으로 관여하고 또한 인간이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수한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부르크하르트는 역사는 “의식의 각성에 의하여 생겨난 자연과의 결렬”이라고 말했습니다.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하여 자기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해 온 긴 투쟁 과정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근대는 이러한 투쟁을 혁명적으로 넓혀놓은 시기입니다. 211p

프로이드가 한 일은 인간 행위의 무의식적인 근원을 의식과 합리적인 탐구 앞에서 폭로함으로써 우리들의 지식과 이해의 범위를 넓혀 주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것은 이성의 영역의 확대이며 자신과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해 나갈 인간 능력의 증대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혁명적인 그리고 진보적인 업적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218p

프로이드는 특히 역사가에게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그것은 두 가지 의미에서입니다. 첫째로는 인간 행위는 사람들이 그러한 행위의 동기는 이런 것이었다고 주장하거나 믿거나 하는 동기를 가지고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이러한 오랜 환상에 최후의 못을 박은 사람이 프로이드였다는 것입니다…………………다음으로 프로이드는 마르크스의 업적을 보완하면서 역사가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을 권했던 것입니다.즉 자기 자신과 역사에 있어서의 자신의 위치를—아마도 이것은 숨은 동기에 속하겠습니다만—문제나 시기의 선택을 이끌어준 동기를, 그리고 자신의 시각을 결정해준 국가적, 사회적 배경을, 과거관을 형성해 주는 미래관을 음미하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드의 저작이 나온 이후로는 역사가는 자기가 사회와 역사를 떠나서 초연히 서 있는 개인이라고 생각할 구실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219p

아마도 산업혁명이 초래한 가장 광범한 사회적 결과는 사고능력이 있고 이성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증대해 나갔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224p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의식이 대부분의 인구 속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소수의 선진국가에 있어서도 겨우 200년밖에 안된 일입니다.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 역사에 등장한 민족들, 즉 이미 식민지 통치자나 인류학자들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가들의 대상이 된 민족들, 이러한 민족들로서 구성된 전체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조차도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해진 것입니다. 234p

인간 세계의 진보라는 것은 과학에 있어서나 역사에 있어서나 사회에 있어서나 인간이 자기자신을 현존방식의 단편적 개량에만 국한 시킨다는 태도 하에서는 성취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로 목전의 제도와 그 토대를 이루고 있는 陰陽의 前提에 대하여 이성의 이름으로서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다는 대담한 각오를 통해서만 이룩된 것입니다. 243p

그러나 중요한 일은 지금에 와서는 이 변화라는 것이 성취, 기회, 진보 등으로서 생각되지 않고 공포의 대상으로서 생각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43p

[내가 저자라면]

사람이 사는 공간을 한 점으로 본다면 수직적으로 횡적으로 끝없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과정을 일컬어 “깨어있다” 라는 표현을 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가, 어디서 어떻게 와서 지금 이 자리에 이런 모습으로 머물며 또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러한 물음이 한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난다면 그것은 정체성 탐구의 시간일 수도 있고 좀 크게 보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인식하며, 인간의 기원에서부터 오늘 날까지의 변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역사를 되돌아 보는 깨어있는 시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H.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이제 막 역사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말 그대로 역사란 이런 것이다 라는 설명을 통해 그 기본 자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절대로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내용만큼은 지극히 간결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상대를 차근차근 설득시키며 강의하는 문체와 일반인에게도 보급될 정도의 구성이니만큼 아카데미즘적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완독하게 된다면 카아의 역사에 대한 입장과 더불어 이 책이 4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부단하게 읽히는 이유에 대해 납득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역자였던 길현모 선생은 다음과 같이 저자의 진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우리들의 가치와 관점이 항상 시대와 더불어 유동해 나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未曾有의 변동기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때문에 역사를 보는 우리들의 눈은 언제나 상대적이고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한계와 상대성을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한 여지 위에서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역사사고의 객관성과 유효성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를 철저하게 추구해나가는 지혜와 박력 속에서 저자의 진가가 빛나고 있는 것이다. 246p

길현모 선생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번역되자마자 역사학과 학생은 물론 19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고 하는 데 그 이유는 카아가 보여준 철저한 사회과학적 접근법과 역사적 필연성, 진보에 대한 확신 그리고 역사를 실천해 나가는 인간 주체성에 대한 강조들이 이들의 세계관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카아는 역사책을 읽고자 할 때 책 속의 내용보다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결국 오늘의 인간이 현존하는 사실에 의거해 그것이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사실의 재구성을 거쳐 역사서술이 시작되니 그 바탕에 존재하는 역사가 개인의 사상이 상당히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며 수 많은 사실 중에 역사가에게 선택된 사실만이 역사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다가올 내일과 먼 미래까지 유추해 보는 것, 그래서 지난 역사에서 의미 지어진 어떤 사실들을 해석하고 그러한 사실들에 의미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 그것이 말하고 있는 진리를 깨달아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해 가려는 노력을 행하는 이들을 역사가인 것이다.
이 부분에서 김춘수의 꽃이란 시가 떠올랐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이란 수 많은 꽃들 중에 선택된 특별한 꽃일 것이다.

이 책의 3장에서 역사와 과학간의 구분을 놓고 그 차이와 일치점에 대해 기술되어있는데 카아의 역사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느낄 수가 있었다.
“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모두가 동일한 연구의 틀린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과 그 환경에 관한 연구, 다시 말해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과 인간에 대한 환경의 작용을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구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즉 자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역사가도 그 밖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왜냐”라는 의문을 부단히 추궁하는 동물입니다.”133p
이러한 기술을 통해 비생산적인 논리를 극복하며 아주 실용적이면서 한 발 앞서 나아가고자 하는 그의 자세가 돋보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문명의 기원이라는 것이 어느 날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부분이었다. 문명발생의 중심지라고 정의된 역사교과서의 서술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카아의 설명은 그것을 한 마디로 그럴 수는 없다는 시각이었다. 또한 모든 문명의 발달 과정도 동일선상의 연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번 자크 아탈리의 호모노마드 첫 장의 기술에서 인류의 조상도 역시 순서대로 발달해 오지 않았다는 것처럼 그간의 막연함이 명쾌하게 해소되는 신선함도 있었다.

프로이드와 마르크스를 보는 시각에서 군더더기가 없는 점도 매력적이다.
그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오늘날의 그 대단하고 유명한 이들에 대한 서술이 화장기 없는 맨 얼굴처럼 그들이 진정 추구하고자 했던 사상만을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영웅이나 위인에 관한 부분에서 한사람만으로 이루어진 역사는 있을 수 없다는 말도 인상적이다.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말에서 내가 그동안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구나하며 웃었다.늦었지만 이제라도 내 머리속에서 역사에 관한 시각이 재구성된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아의 부드러우면서 냉철하고, 유동적이면서 확고한 그의 역사관에 고개를 숙이며 새롭게 정립된 나의 역사관의 탄생을 기뻐하며 글을 맺는다.

“훌륭한 역사가들 역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건 말건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입니다.” 1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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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08 09:36:50 *.249.167.156
지난 금요일 봄밤의 번개 이후, 저는 은남 누님의 리뷰를 가장 기다렸습니다. 카의 책에 푹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죠. 그 느낌 그대로 카를 읽어내신 듯 하네요. 역사의 향기, 이성의 향기에 흠뻑 취한 모습이 그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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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5.08 22:37:08 *.48.42.253
도윤님 리뷰엔 비할 바가 못되지요.ㅎㅎ 겸손포즈..
네, 재밌게는 읽었어요, 잘 쓰지는 못했지만..
읽는 건 좋은데 분석은 어려운거, 이것도 연습해야 되는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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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5.09 19:15:39 *.115.33.218
전에 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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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0 11:00:30 *.75.15.205
도윤 말처럼 당신이 제일 먼저 리뷰를 올릴 줄 알았지. 읽다보니 당신은 그때 이미 다 읽었던 거더라고. 두 번 읽지 않았나 싶네. 늘 명쾌하게 끌고가지. 참 아쌀한 여자야. 한다면 하지... 보기 좋아, 근데 언제 열까? ... 아니야, 사랑해. 징그럽지? 그래도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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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5.12 05:55:36 *.48.43.83
초아샘 다녀가셨군요.. 역시 샘도 저를 꼽으셨었군요.ㅎㅎㅎ

써니님. 그 때 거반 마지막 읽을 때라 질문이 좀 있었구먼..명쾌했다고라?히히 탱큐! 이번 책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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