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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9일 17시 38분 등록
#1. 프롤로그

지금까지 역사는 내게 큰 기쁨을 주지 못했다. 역사는 단지 숫자와 장소에 불과했다. 여러 개의 사건들의 연속이었으며, 수많은 인물들의 등장이었다. 그뿐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났으며, 또 그런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같은 것은 내가 배운 교과서엔 없었다. 혹 있다손 치더라도, 그 행간을 살펴보려는 노력은 미처 하지 못했다. 5월의 주제인 ‘역사’를 받아 들고, 내 방의 책장을 잠시 살펴보았지만 역사에 대한 책은 부끄럽게도 한 권도 없었다. 역사는 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백지 상태에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집어 들었다. 길현모 선생님의 번역본은 두께는 얇으나 글자는 작았고, 또 한자가 섞여 있어 첫눈에 그리 만만해 보이지가 않았다. 어쨌던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1장의 마지막에 도달하자 그의 유명한 역사에 대한 정의가 등장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낡은 교과서가 다시 머리 속에서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조금씩 흥미가 붙기 시작했다. 나와 역사와의 재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 저자에 대하여



1) E. H. 카(Carr)

E. H. 카의 간단한 약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본명은 Edward Hallett Carr이다. 1892년 6월 28일, 영국 런던에서 출생하여 런던의 머천트 테일러즈 스쿨(Merchant Taylor's School)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를 졸업했다. 그 후 1916년에서 1936년까지 약 20년 동안 외무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36년에는 웨일스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교수로 국제정치학을 강의하며, 1941년부터 1946년까지 런던타임스의 부주필(副主筆)로서 언론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어 1948년, 국제 연합의 <세계 인권선언> 기초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고, 1953년부터 1955년까지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이후 1955년부터는 모교인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의 고급연구원으로 활동하며 후진들에게 역사학을 가르쳤다.

E. H. 카는 영국이 낳은 20세기의 대표적 사학자이다. 평생 동안 폭넓은 저술활동을 통해, 국제정치 연구에 학문적 기초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그는 기념비적인 저작 ‘소련사(History of Soviet Russia)’로 유명한데, 이 책에 대해서 ‘가디언(Guardian)’지는 ‘금세기에 영국인 역사가에 의해서 쓰여진 가장 중요한 저작들 중의 하나’라고 했으며 ‘더 타임스’지는 "탁월한 역사적 업적"이라고 했다.

그는 1945년부터 ‘소련사’를 쓰기 시작하여, 거의 30여 년간 그 일에 매달렸다. 그것은 한 권의 개요집인 ‘러시아 혁명ː레닌에서 스탈린까지(The Russian RevolutionːLenin to Stalin)’를 포함하여 총 14권으로 되어 있는데, ‘볼셰비키 혁명, 1917~1923(The Bolshevik Revolution, 1917~1923)’, ‘공백기, 1923~1924(Interregnum, 1923~1924)’, ‘일국 사회주의, 1924~¬1926(Socialism in One Country, 1924~1926)’ 등 연도별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또 다른 저작으로는 국제정치에서 ‘힘’의 요소를 중요시하고 유토피아주의와 현실주의를 융합시킬 필요성을 주장한 ‘20년간의 위기 1919~1939(The Twenty Years' Crisis, 1919~1939)’ (1939), 국제정치에 관한 ‘평화의 조건(Conditions of Peace)’ (1942)과 ‘내셔널리즘과 그 이후’ (1945), 그의 실용주의적 역사관을 잘 보여주는 ‘새로운 사회(The New Society)’ (1951), 역사 철학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 (1961), 그리고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From Napoleon to Stalin and Other Essays)’ (1980) 등이 있다. 인류역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그는 1982년 11월 3일 케임브리지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E. H. 카가 1961년 1월부터 3월에 걸쳐 모교 케임브리지 대학 강단에서 같은 제목의 역사를 주제로 한 대중 강연과 방송 원고를 묶어 같은 해 가을에 출판한 책이다. 이 책의 출판은 카의 명성을 전 세계적으로 떨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 담긴 카의 역사관은 ‘역사는 역사가가 몸담고 있는 사회와 시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역사 해석은 불변의 객관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그 사실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요약된다.

이 책은 1966년, 길현모 선생님의 번역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는데, 국내 역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당시 운동권 대학생들의 마음까지 움직였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천재나 영웅이 아닌, 사회와 시대를 통해 역사는 움직인다’와 같은 카의 진보적 역사관은 분단과 독재, 반공 이데올로기로 왜곡된 현실에 불만을 품은 젊은 세대에게 역사를 진보적으로 바라보고 미래에 대한 믿음을 확신하게 하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 서적 중 ‘역사란 무엇인가’의 위치는 단연 독보적인데,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된 판본 수가 10개 이상이며, 역사 이론 분야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는 그의 역사에 대한 유명한 정의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역사학은 물론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읽어낼 수 있는 카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우선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과거의 사실과 현재의 의미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 ‘중용’의 역사학자이다. 그렇지만 이성의 힘과 과학의 힘을 믿는, 남들이 모두 아니라고 할 지라도, 그럼에도 인류는 진보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 마지막 남은 ‘빅토리아 시대’의 낙관주의자이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200여 페이지의 짧은 글에 담아내고, 쉽고 단정한 문체로 들려주며, 무엇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유명한 정의처럼 간결하게 핵심을 압축해서 전달하는 뛰어난 작가이다.



2) 길현모 선생님

올해 1월에 돌아가신 길현모 선생님은 사부님의 스승이시다. 나는 그 사실을 자료를 조사하다가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자 올해 초, 사부님이 홈페이지에 올린 장문의 글 한편이 떠올랐다. ‘아, 사부님 인생의 중요한 길목마다 서 계시던 그분이 바로, 길현모 선생님이시구나!’

향년 84세로 별세하신 길현모 선생님은 1923년 평북 희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학과에서 서양 사회경제사를 전공한 뒤, 미국 하버드대학교 엔칭 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1963년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부임한 선생님은 전해종(동양사), 이기백(한국사), 이보형 / 차하순(서양사) 교수와 함께 역사학계의 ‘서강 학파’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1980년 지식인 성명을 주도하다 해직된 뒤, 1983년부터 한림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셨다.

1966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국내에 처음 번역하고, 소개한 선생님은 랑케 사학을 비판하는 논문과 자본주의 이행 논쟁 등에 대한 논문 등 다수의 중요한 논문을 남기셨다. 저서로는 ‘서양사학사론’(공저, 1977), ‘18세기 유럽의 사회와 문화’ (공저, 1975), ‘역사의 이론과 서술’ (공저, 1975)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근세 초기에 있어서의 영국 도시경제의 변혁’ (1954), ‘Gentry 논쟁’ (1958), ‘생활 수준 논쟁의 의의와 문제점’ (1967), ‘산업혁명시대의 인구증대에 관한 해석’ (1968), ‘산업혁명시대의 인구문제’ (1968), ‘랑케 사관의 성격과 위치’ (1975), ‘크로체의 역사이론’ (1977), ‘역사학과 사회 과학’ (1979), ‘민족주의 사학의 과제’ (1988), ‘신사학의 문제점:영•미사학계의 동향을 중심으로’(1991) 등이 있다.

길현모 선생님은 ‘자유와 평등의 이념으로 빛나는 조국을 가지고 싶어했던’ 학생들과 함께, 1980년의 ‘지식인 성명’을 주도했던 행동하는 지식인이셨으며, 우리나라 서양사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계의 대학자이셨다. 학생들에게는 ‘역사 속의 한 인물, 한 장면’을 ‘두꺼운 먼지 속에서 벌떡 일어나 앉’게 만들었던 놀라운 선생님이셨으며, 무엇보다 사부님을 꿈꾸게 하고, 또 역사 학자의 길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했던 ‘어두운 밤 달빛 같은 분’이셨다.

사부님께서는 ‘친구 같은 진정한 스승이셨으며, 스승 같은 진정한 친구’이셨던 길현모 선생님을 만난 것에 대해 이렇게 감사한다. ‘마음으로 존경할 수 있는 분을 만날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이란 얼마나 행운이던가!’ 그리고 이제 나도 사부님의 달빛이셨던 길현모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달빛 같은 영감’을 주신 선생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사부님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의 기회 또한 주어진 것이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스스로 모색하라. 헌신하고 모든 것을 걸어라. 그러나 그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 앞에 다른 길이 나오면 슬퍼하지 말고 새 길로 가라.
어느 길로 가든 훌륭함으로 가는 길은 있다.’

이제 사부님의 달빛이셨던 그 분을 떠나 보내며, 나도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훌륭함으로 가는’ 그 길을 걸어가리라 다짐해본다. 언젠가 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별 빛 같은 영감을 주는 스승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3. 내 가슴에 들어온 글귀

1. 歷史家와 사실

(7)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려 할 때에 우리들의 답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라는 보다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답의 일부를 이루게도 되는 것입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 ……인생에 필요한 것은 사실 뿐이다」

(9) 죠지 클라크卿조차도 역사에 있어서의 「사실이라는 굳은 핵」과 「이를 감싸고 있는 이론의 여지가 많은 해석이라는 果肉과를 대조시키고 있읍니다만, 아마도 그는 과실의 알맹이는 딱딱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육의 부분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11)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 역사가를 정확하다고 해서 칭찬한다는 것은, 잘 말린 목재를 썼다거나 잘 혼합된 콘트리이트를 썼다고 해서 건축가를 칭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그의 일의 필요조건이지 본질적인 기능은 아닌 것입니다.

(12) 사실은 자기 스스로가 말한다고들 흔히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참말은 아닙니다. 사실이란 역사가들이 그것을 찾아 줄 때에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고, 어떠한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그리고 어떠한 순서와 전후 관련 속에서 이야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역사가인 것입니다.

(12) 「사실은 자루와 같은 것이다. 그 속에 무엇인가를 집어 넣어 주기 전에는 절대로 설 수 없다」

(17) 「우리들이 책으로 읽는 역사는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결코 사실 그것은 아니고 오히려 인정된 판단의 체계에 불과하다.」

(18) 「무지는 역사가의 제1요건이다. 무지는 단순화하고 명확화하고 추리고 버린다.」

(28)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라고 크로체는 언명했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29) 역사철학이 취급하는 것은 「사실 그 자체」나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상」의 그 어느 하나만이 아니고 「상호관계하에 있는 그 兩者입니다」

(30) 이와 같은 의미에서 「모든 역사는 사상의 역사」라는 것이며 또한 「역사는 역사가가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을 자신의 마음 속에 재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31)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 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 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인 것입니다.

(32-33) 여러분이 역사책을 읽을 때에는 항상 역사가의 머리 속에서 오고가는 사색의 음을 잡아내야 합니다.

(33) 사실이란 결코 생선 가게의 판자 위에 놓인 생선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광대한 때로는 접근할 수도 없는 대해를 헤엄쳐 다니는 고기와도 같은 것입니다. 역사가가 그것을 잡아내려면 일부는 우연에도 있겠지만 주로 바다의 어떤 장소를 골라서 고기잡이를 하는가, 그리고 그가 어떤 고기잡이 도구를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33) 역사란 ‘이론의 여지가 많은 사실이라는 과육에 싸인 해석이라는 굳은 핵’

(36) 나는 오히려 자신을「과거의 영대소유권」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말을 택하고 싶습니다.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한다는 것도 아니요, 과거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다는 것도 아니요,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써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38) 보는 각도가 틀릴 때마다 山의 모양이 틀리게 나타난다고 해서 山에는 객관적인 모양이라는 것이 본래부터 없다든가, 무한한 모양이 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40) 내 경우에는 우선 기본사료라고 생각되는 것을 조금만 읽기 시작하면 근질증을 참을 수 없어서 그대로 쓰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 다음부터는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동시에 병행되어 나갑니다. … 읽는 것은 씀으로 해서 인도되고 방향이 제시되고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 즉, 쓰면 쓸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의 의미와 관련성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43) 즉,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2. 사회와 개인

(45) 「인간은 아무도 자체 만으로서 전체를 이루는 섬일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요. 본토의 일부분이다.」

(45) 「인간은 같이 모아 놓는다 해도 다른 종류의 실체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49) 「정신적인 개인이 되고 그러한 존재로서의 자각은 가지게 되었다」

(52) 우리는 가끔 역사과정을 「행진하는 행렬」과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는 대단히 훌륭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가들이 홀로 솟은 암벽 위에서 아래 경치를 내려다보는 독수리나 사열대에 선 중요인물과 같은 위치에 자신을 놓고 생각한다는 위험성이 없는 한에 있어서 말입니다. 이것은 당치도 않은 이야깁니다. 역사가도 행렬의 한구석에 끼어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보잘것없는 인물에 불과합니다.

(54) 위대한 역사란 분명히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젼이 현재의 諸문제에 대한 통찰에 의하여 빛을 받을 때에만 씌어지는 것입니다.

(59) 언젠가 마르크스도 말한 것처럼, 교육자 자신이 우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 요샛 말로 한다면 세뇌자의 머리 자체가 우선 세뇌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역사가는 역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역사의 산물인 것입니다.

(63) 흐름 속에 있는 것은 사건만이 아닙니다. 역사가 자신도 역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책을 집어들 때에는 표지에 적혀 있는 저자명을 찾아 본다는 것 만으로서는 충분치 못합니다. 출판 시일이나 집필 시일도 아울러 유의하셔야 합니다. – 경우에 따라서는 그 쪽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만일 똑 같은 강물 속에 사람은 두 번 다시는 들어설 수 없다는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두 책을 쓸 수 없다는 말도 똑 같은 이치에서 진실일 것입니다.

(66)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입장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란 자기가 그러한 조건 속에 얼마나 깊이 사로 잡혀 있는가를 자각할 수 있는 감수성 여하에 달렸다고 봅니다.

(73) 오늘날 누구나 잘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언제나 꼭 아니 일반적인 경우에도 자기가 충분히 인식한 동기나 기꺼이 시인한 동기에 의해서만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무의식적인 동기나 시인 안 하는 동기에 대한 통찰을 배제한다는 것은 한 눈을 억지로 감고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81) ‘비상한 인물에게는 시대가 적합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오늘날 같으면 크롬웰이나 레스 같은 인물들도 존재조차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82)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 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83)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상호과정은, …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금일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와의 대화인 것입니다.

3. 역사와 과학과 도덕

(86-87) 즉, 우선 사실을 수집하라, 그리고 나서 이를 해석하라는 방법 말입니다.

(90) 우리들은 경험적 자료, 즉 ‘사실’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의 힘을 빌려서 원리에 대한 증거를 얻고, 다음으로는 이 월리를 토대로 하여 경험적 자료를 선택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90) 왜냐하면, 그 결과는 다시 동일한 장소에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리와 사실, 이론과 실제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발견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92) 지금까지 착잡한 현실 속에서 우리들을 이끌어 준 안쾌한 공식을 잃어버렸을 적에 …… 우리들은 새로운 발판을 발견할 때까지, 즉 수영을 배울 때까지는 事實의 大海 속에 빠져들어갈 때와도 같은 기분을 맛보게 된다.

(93) 우리들은 자기의 길을 의식하면서 걸어나가야만 한다. 우리들은 타당해 보이는 부분적인 가설들을 시험해봐야 하며, 발전적인 수정의 여지가 항상 남아있도록 잠정적인 근사치를 가지고 만족해야만 한다.

(94) 즉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로부터 또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을 찾아서 점진적으로 전진하며, 해석을 매개로 하여 사실을 추출하고 다음으로는 추출된 사실을 가지고 해석을 테스트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96) ‘이 세상에는 명칭 이외에는 보편적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같은 명칭을 가진 사물도 그 하나하나는 모두가 개별적이고 단일한 것이다.’

(99-100) 놀랍도록 비슷한 사건도 상이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일어나면 전연 틀린 결과를 낳게 된다. 이와 같은 사건의 진행을 각각 따로 연구한 다음에 이를 서로 비교한다면 이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쉽사리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초월한다는 것을 최대의 덕으로 삼는 역사철학의 이론이 제공하는 열쇠를 가지고서는 결코 이상과 같은 이해에는 도달할 수 없다.

(102) 역사학이 사회학적인 것이 되면 될수록, 사회학이 역사적인 것으로 되면 될수록 쌍방을 위해서 더욱 이롭다는 것뿐입니다.

(102)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104)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에 비추어서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북돋아 주는데 있습니다.

(108) 역사가의 모든 관찰 속에는 불가피하게 역사가의 관점이라는 것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109) 관찰자와 그 대상과의 사회 과학자와 그 자료와의, 역사가와 그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인 것이고 부단히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110) 하여간 물리학에 있어서의 이러한 불확정성과 역사에 대한 우리들의 예언의 능력을 결부시켜 가지고 그 사이에 의미심장한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의혹을 금할 수 없습니다.

(110) 즉 ‘관찰자’와 그 대상-주체와 객체-은 다 같이 관찰의 최종 결과 속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112) 사회과학은 그 전부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엄격한 분리를 선언하는 어떠한 지식 이론과도 양립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사회과학이 포함하는 인간이란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고 연구자인 동시에 연구대상이기 때문입니다.

(115) 나는 역사가란 자기 문제를 신의 조화력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고 풀어나가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역사란 말하자면 죠카없이 노는 트럼프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122) ‘관습의 완강한 지속력은 혁신과 같이 난폭한 것’입니다.

(125)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이 혜택을 거둔다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129) 사회로부터 遊離되고, 역사로부터 유리된 추상적 기준이나 가치란 추상적인 개인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132-133) 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모두가 동일한 연구의 틀린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과 그 환경에 관한 연구, 다시 말해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과 인간에 대한 환경의 작용을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즉 자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133) 역사가도 그 밖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왜냐’라는 의문을 부단히 추궁하는 동물입니다.

4. 역사에 있어서의 因果關係

(135)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입니다. 역사가는 내차 첫 번 강연의 마지막 대목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왜냐’ 라는 물음을 부단히 추궁하는 것이며, 해명의 희망이 있는 한 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역사가 – 아니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위대한 사상가 – 란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혹은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왜냐’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140) 과학은 ‘다양성을 향하여’ 그리고 ‘통합성과 단일성을 향하여’ 동시적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고, 이 이중적인 그리고 명백히 모순되는 과정이야말로 지식에 대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말의 진실성은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41) ‘과학에 있어서의 모든 전진은 최초에 관찰된 조잡한 획일성을 벗어나서 원인과 결과의 보다 큰 분화에로, 그리고 관련되었다고 인정되는 원인의 범위의 부단한 확대에로 우리들을 이끌어 나간다.’

(146) ‘인간사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154) ‘혁명이나 전쟁을 예견한다는 일은 가능하다. 그러나 가을철 산오리 사냥의 결과를 예견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154) 역사에 있어서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가들의 중심 구명대상이 되고 있는 인과연쇄를 중단하면서-말하자면 그것과 충돌하면서- 또 하나의 인과연쇄가 나타날 때에 그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161) 제대로 된 역사가라면, 지금까지 우연사로서 취급되어 오던 사건도 그것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는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도 있고 적절한 의의를 부여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는 경우를 흔히 체험하는 것입니다.

(163) 역사가의 세계란 과학자의 세계와 같은 현실세계를 사진 찍어 놓은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많고 적고 간에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정복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작업상의 모델과 같은 것입니다.

(165) 역사는 현실에 대한 인식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인과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69) ‘가치관념과 떨어져 가지고서는 역사 속에서 인과관계를 추구할 수가 없다. … 인과관계를 추구하는 배후에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항상 가치의 추구가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169) 현재의 빛 속에서 과거에의 이해를 깊이하고 과거의 빛 속에서 현재에의 이해를 깊이 한다

(170) 현재란 것은 과거와 미래와를 갈라 놓는 가공적인 선이라는 개념적 존재에 불과합니다. … 과거도 미래도 모두가 동일한 시간선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과거에의 관심과 미래에의 관심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알기 쉬운 이치라고 생각됩니다.


5. 진보로서의 역사

(171) 역사를 해석하겠다는 열망은 너무나 뿌리깊은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어떠한 건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신비주의나 시니시즘에 빠져들어가게 된다.

(182) 역사가에게 있어서는 진보의 종국은 이미 진화된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한없이 먼 곳에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지표는 우리들 前進途上에서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184) 인간은 조상들의 경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언제나 꼭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란 자연계에 있어서의 진화와는 달리 습득된 자산을 토대로 한다는 것, 이것은 역사의 한 전제입니다.

(187) 진보를 믿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 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190) 역사에 있어서의 절대자는 우리가 출발해온 과거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니요, 현재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모든 사고는 상대적인 것일 수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 生成途上에 있는 어떤 것이며, 우리가 전진해 나가는 미래 속에 있는 어떤 것, 우리가 그것을 향해서 전진해 나감에 따라서 비로소 모양을 취하기 시작하는 것, 또한 전진도상에 있는 우리들이 그 조명하에서만 과거에 대한 해석을 점차로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그러한 어떤 것입니다.

(193)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한다’

(193) 우선 그것은 그 역사가가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4) 둘째로는 그 역사가는 자신의 비젼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그 안목이 전적으로 목전의 자기 위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보다는 과거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영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4) 역사는 과거의 諸사건과 점차적으로 우리들 앞에 출현하게 될 미래의 諸목적과의 대화라고 말씀 드렸어야 했을 것입니다.

(200) ‘보편타당성을 요구하는 조직적 방법이나 원리만을 중시하고…… 가장 효과적인 것을 돌보지 않는다는 데에서 실패가 초래된다.’

(204-205) 역사는 그것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만 의미와 객관성을 지니게 되는 것

(207) 역사적 진리의 영역은 이러한 양극 –가치를 떠난 사실이라는 북극과, 사실이 되고자 애쓰는 가치 판단이라는 남극- 의 중간지대의 어디엔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208)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6. 넓혀지는 지평선

(210-211)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하여 자기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해온 긴 투쟁 과정입니다.

(219) 지금은 자기 의식의 시대입니다. 역사가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225) 우리가 새로운 타입의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성공적으로 양성해 낼 수 있는가에 따라서 자료의 기술적인 발달도 완성되어 나갈 것입니다.

(228) 이성에의 호소가 주가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지성의 아래쪽을 노린다’는 방법이 주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244) ‘누가 뭐라건 나 자신은 변함없이 낙관주의자입니다. 루이스 네이미어경이 나에게 政綱이나 理念은 피하라고 훈계할 때에, 오크쇼트 교수가 나에게, 우리들은 어떠한 특정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중요한 일은 아무도 보오트를 뒤흔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뿐이다라고 말 할 때에, … 트레바 로퍼 교수가 떠들어대는 急進主義者들의 콧등을 내려칠 때에, 모리슨 교수가 공정한 보수정신으로 집필된 역사를 옹호할 때에,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 ‘그래도 역시 – 그것은 움직인다.’


#4. 내가 저자라면

지난 5월 4일 밤, 3기 연구원들과 함께 사부님 댁을 방문했다. 그 곳에서 우린 와인을 마시며, 순대와 떡볶이를 먹으며, 컵라면을 끓여 먹으며, 커피를 마시며 즐겁게 놀았다.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깊어가는 봄날 밤을 즐겼다. 그때, 정확하게 기억할 순 없지만, 사부님께선 이런 논지의 말씀을 하셨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수용의 폭이 좁다. 정상과 이상을 나누는 경계가 지나치게 명확하다. 누구나 자신의 범위, 일종의 상자를 가지고 있지만,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상자가 더욱 작은 듯 하다. 그 범위를 넓혀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해서 기존의 낡은 것들을 계속 깨뜨려 나가야 한다.’

그 때, 이 책의 절반 정도를 읽은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단지 지나간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구나. 과거를 되돌아 보는 것만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비추어 보는 것이구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낡은 벽들을 허무는 작업이구나. 새로운 창문을 여는 작업이구나. 그럼 ‘역사란 무엇인가’도 단지 역사 철학에 대한 책만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학문하는 사람의 태도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의 문제에 대한 책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들과 함께 나는 이 책의 나머지 절반을 읽어 나갔다.

E. H. 카의 글은 단정하고, 간결했으며, 때로는 마음을 사로잡는 상큼한 정의로 나를 기쁘게 했다. 가끔 수많은 인용문들로 인해, 잠시 길을 놓치기도 했지만 대세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그렇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은 이순간, ‘넓혀지는 지평선’이란 희망찬 용어와, ‘그래도 역시 - 그것은 움직인다’ 라는 당당한 태도가 내 가슴을 울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남았다. 이번 리뷰의 ‘내가 저자라면’은 바로 그 ‘석연치 않음’에 대한 탐구이다.

1) 책의 재해석

지금부터 ‘역사란 무엇인가’를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해석해보고자 한다. 이건 단지 그의 글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니, 지나친 단순화가 있을 지라도 너그러이 용서해주기 바란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歷史家와 사실
2. 사회와 개인
3. 역사와 과학과 도덕
4. 역사에 있어서의 因果關係
5. 진보로서의 역사
6. 넓혀지는 지평선

1장 ‘역사가와 사실’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정의로 마무리된다. ‘즉,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이 유명한 정의를 2개의 원 사이의 관계로 나타내보면 다음과 같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과거의 사실들과 현재의 역사가가 부여한 의미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며, 객관과 주관 사이의 절묘한 균형잡기이다. 바로 역사는 과거도, 현재도 아닌 그 대화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모순 속의 조화, 과거와 현재의 평등 관계, 두 개의 원 사이의 주고 받음 속에 바로 역사가 있다.

2장 ‘사회와 개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상호과정은, …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금일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와의 대화인 것입니다.’ 이 말을 다시 그림으로 나타내보면 다음과 같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단지 한 명의 고립된 개인이나, 개인을 무시한 사회를 연구하는 것이 아닌, 개인과 사회의 힘 사이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과거의 ‘사회 속의 개인’과 현재의 ‘사회 속의 개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를 통해 그는 단순한 영웅주의를 거부하며, 역사가 또한 사회 속에 존재하는 시대의 산물임을, 그리고 그런 자신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 역사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한다.

이처럼 팽팽한 균형을 이루던 그의 수평적인 역사 감각은 3장에서 서서히 무언가 다른 것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개인의 신념이 조금씩 반영되어 나가는 것이다. 3장에서 그는 역사와 과학을 거의 같은 것이라 말하고, 절대적인 선과 악은 없지만 ‘진보적’과 ‘반동적’이란 표현처럼 운동 방향은 존재한다고 말한다.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한 3장을 굳이 도식화시켜 본다면 다음과 같다.



그에게 있어 과학과 역사는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연구 방법이나 세상을 보는 관점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것이며, 이에 덧붙여 역사는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것이다.

4장.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를 통해 카는 자신이 가진 역사의 방향성에 대한 믿음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부터 그의 역사론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 그 이상의 것으로 변해간다. 이 장에서 그는 우연론을 비판하며 ‘역사가는 원인을 다양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단순화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는 말을 통해, 모든 사건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음을, 그리고 역사가의 역할은 그 다양한 원인 중 탐구 목적에 맞는 최선의 원인, 즉 ‘유용성’이 큰 원인을 찾아내어 인과관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그의 역사 철학에는 과거와 현재라는 수평적인 축에 새로운 시간의 축이 추가된다. ‘왜?’라는 질문에 ‘어디로’라는 물음이 덧붙여짐으로써 등장하는 새로운 축은 바로 ‘미래’라는 수직 축이다. 그가 생각하는 훌륭한 역사가는 바로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이다.



5장. 진보로서의 역사에서 그가 믿고 있는 그 방향성의 정체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그것은 바로 E. H. 카의 ‘진보에 대한 확신과 이성에 대한 굳은 믿음’이다. 그에게 역사는 최종 ‘행로가 그려진 지도’는 아니지만,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이라는 나침반과 같은 길잡이는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지식의 전수’를 통해 끊임없이 발전해나가는데, 때문에 ‘역사는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요, 진보’이다. 그러기 위해선 역사가에게는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과 ‘자신의 비젼을 미래에 투사하는 능력’과 ‘과거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영속적인 통찰력’이 필요하다.

마지막 장, 넓혀지는 수평선에서 카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뜨거운 신앙을 고백한다. ‘누가 뭐라건 나 자신은 변함없이 낙관주의자입니다. 루이스 네이미어경이 나에게 정강이나 이념은 피하라고 훈계할 때에, 오크쇼트 교수가 나에게, 우리들은 어떠한 특정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중요한 일은 아무도 보오트를 뒤흔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뿐이다라고 말 할 때에, … 트레바 로퍼 교수가 떠들어대는 급진주의자들의 콧등을 내려칠 때에, 모리슨 교수가 공정한 보수정신으로 집필된 역사를 옹호할 때에,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 ‘그래도 역시 – 그것은 움직인다.’

정리해보면,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1장과 2장에서의 차분하고 수평적인 역사적 시선은 3장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의 대화’ 이상의 믿음의 영역으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 수평적 관계와 수직적 관계의 충돌 속에, 객관과 주관의 충돌 속에 이 책의 미덕과 단점이 공존한다. 그의 역사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감을 믿는 것이다.

이런 그의 역사 철학을 하나의 이미지로 축약해보면 ‘미래’라는 하늘을 향해 똬리를 틀며 나아가며 드넓은 지평선을 바라보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꼬리를 가진 거대한 뱀’과 같은 것이다.

2) 책의 재구성

이 책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해보면서 나는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카도 잠시 언급하긴 했지만 과연 ‘과거와 현재가 완전히 구분되어 존재하는 것일까?’ 또 그의 말처럼 ‘사실은 산처럼 그 곳에 서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광대한 … 대해를 헤엄쳐 다니는 고기’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이다. 무엇보다 ‘사고가 목적 지향적이며, 꼭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도 내겐 큰 의문이다. ‘우리는 보다 나은 것을 위해 나아가야 하는가?’ 그렇다면 ‘보다 나은 것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런 의문들과 함께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1. 모든 것은 여기에 존재한다.

과연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인가? 그렇다면 그 과거는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그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는 과연 ‘산’처럼 그 곳에 존재하는 과거일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도대체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아마 그 과거가 진짜 원래의 ‘산’인지 아닌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든 과거는 바로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 안에서만 존재한다. 여기서 바로 모든 현상(Phenomenon)에서 본질(Substance)를 찾고자 하는, 이것과 저것 사이의 ‘거리 두기’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무산된다. 모든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곳에만 있을 뿐이다. 객관적인 모양의 ‘산’이 아닌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양이 나타나는 ‘산’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는 또 어디에 존재하는가? 미래 또한 현재가 아닌 다른 곳에 객관적으로, 초월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현재 속에 미래의 가능성들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결국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세 영역의 모호한 접점, 즉 그림의 별표 안, 바로 ‘여기’에만 존재한다.



2.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

결국 과거, 현재, 미래의 절대적인 구분은 존재하지 않으며, 객관적인 과거의 사실도, 고정되어 있는 미래의 방향도 바로 현재의 편린들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을 바로 보는 시선과 ‘왜’라는 질문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역설적이게도 모든 문제는 문제를 바라보는, ‘왜’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나침반을 구하고자 하는 ‘현재의 자신’에게로 귀결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도 아닌, 과거와 미래의 대화도 아닌, 바로 현재의 역사가, 자기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이며, 질문이며, 대화이다.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의 끊임없는 자아 발견과 자기 극복의 과정이며, 존재했던 것들과 존재할지도 모르는 과거와 미래의 흔적들을 우리 안에 되살려내는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과거와 미래는 바로 사회 속의 나, 현재 속의 나 속에,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 모두는 우리 시대의 역사가이다.

3. 모순이 진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과연 옳은 길인가? 답은 과거와 미래에도, 주관과 객관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오직 현재 속에만 존재하지만, 또한 모든 곳에 존재하다. 그 모순 속에 바로 답이 있다. 흔들림 속에 방향이 있다. 우리는 현실이라는 모순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비록 최선의 정답이 아닐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곳은 진보일수도, 퇴보일수도, 보수일수도 급진일수도 있지만 그게 바로 오늘의 나이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균형의 세계 속에서만 살 수는 없다. 나날이 밝아오는 진보의 희망 속에서만 살수도 없다. 때로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속에서 답을 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들에서 답을 찾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언가를 세우고, 깨뜨리고, 부서지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답은 미래의 진보가 아닌, 현재의 모순 속에 있다.

4. 넓혀지는 지평선

나는 내가 보는 만큼만 볼 수 있다. 틀을 깨지 못하면 습관대로 살 수 밖에 없다. 알지 못하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과 시대의 한계를 넘어, 우리 자신의 지평을 끊임없이 넓혀나가야 한다. 꽃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 안에 있다. 별은 현재에 있다. 바로 이 곳에 있다. 역사는 단지 한 사람의 영웅의 것이 아니다. 사회의 것 또한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의 것이다. 천 개, 수천 개, 수 억 개, 무한의 영혼들이 엉키고 설킨 채 만들어가는 것이다.

당신의 가슴 속에 있는 불꽃을 찾아라. 자신의 역사를 일으켜 세워라. 가슴 뛰는 이야기를 써라. 웅장한 산은 바로 이 곳에 있다. 대양을 헤엄치는 은빛 물고기들은 바로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 펄떡 펄떡 용트림치는 당신의 상상력 속에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넘어, 객관과 주관의 함정을 피해, 이성과 진보라는 미래로 나아가는 매끈한 흐름 같은 것이 아니다. 현실의 아픔 속에서 피고 지는 꽃송이들, 명멸하는 불빛들과 반짝이는 영혼들의 만남이다. 헤어짐이다. 깨어지고 부서짐이다. 모순이란 현실의 똥 통 속에서 몸을 일으켜 자신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무한의 뱀들의 힘찬 꿈틀거림이다.

꽃은 여기에 있다. 내 안에 있다.

#5. 에필로그



이제 시점을 시간에서 공간으로 조금 바꿔보자. 옆에서 나무를 보는 듯한 수직의 흐름이 아닌 하늘에서 바라보는 듯한 수평의 단면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생각했던 수직의 역사가 과거에서 미래로 구불구불 나아가는 뱀과 같은 모습이었다면, 수평의 역사는 아마 잭슨 플록의 그림과 같은 것이 될지도 모른다. 수많은 영혼들의 만남과 부딪힘이 담겨 있는, 힘찬 몸짓이 느껴지는 삶의 현장이 될 것이다. 그 곳에는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 있다. 민중들이 있다. 영웅도 있고, 범인도 있고, 패자도 있고 승자도 있다.

그럼,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세계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이 시대의 패권을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역사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민중들의 이야기로 구성된 미국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 가자! 아메리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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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윤
2007.05.08 09:41:45 *.227.22.57
도윤아~ 브라보! 너랑 같이 북리뷰팀에 속하게 되서 마음이 든든허이!~ 시간 없다더니 언제 이리 꼼꼼히 방대한(?) 작업을 다했누? 1, 2장과 나머지 장들을 수평과 수직으로 설명한 내용이 마음에 잘 와닿네. 많이 배웠어. 고마우이~

참! 그리고 우리 북리뷰팀 모임은 다음주 월요일이 좋을 듯 한데, 현재까지 상황은 어떤가? 나중에 전화로 얘기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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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08 15:05:49 *.249.167.156
종윤이형, 모이는 날짜는 담주 월요일로 정했고, 장소는 희석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장소 결정되는대로 연락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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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5.09 19:22:37 *.115.33.218
볼수록 신기하네, 지나니 그대의 진가가 나타나내, 전에 부탁한 그림 인쇄해보니 절반밖에 인쇄가 되질 않는데 왜 그런가. 그그림을 보며 종교의 씁슬함을 보았고, 과거의 여행에 도움이 되었네, 고맙네...

졸업후가 상상이 가네 그리고 열심히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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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10 09:48:02 *.249.167.156
초아 선생님,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라면 다행입니다! 끝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림 인쇄는 다음과 같이 한번 해보세요..

1. 그림을 한번 클릭하시면 큰 그림이 나옵니다.
2. 오른쪽 클릭을 하면 뜨는 메뉴 중에서 '그림 인쇄'를 누르세요.
3. 그러면 연결되어있는 프린터 창이 뜰겁니다.
4. 프린터 창에서 기본 설정을 클릭한 뒤, 레이아웃(또는 용지 인쇄 방향)을 세로->가로로 설정해주세요!
5. '가로'에 체크하신 후 확인을 누르시고, 인쇄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옆에서 알려 드리면 좋은데, 이렇게 부족한 설명 밖에 못드려서 죄송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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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0 10:20:43 *.75.15.205
역사학도 이셨고 학교에 남고 싶으셨으면서 어떻게 IBM이라고 하는 가장 미국적인 기업에서 20여 년 간이나 근무하셨느냐는 나의 질문에 사부님께서는 단호히 당신은 학자가 못되신 다고도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정원을 바라보며 배란다에서 와인을 마실 때까지만 해도 이해를 잘 못했는데, 나중에 안채로 들어가서 사부님의 일상의 행함을 느끼면서, 그저 그 공간을 잠시 느끼면서말야, 많이 덜어내시며 사신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그리고 그러한 사소함이 얼마나 많은 욕심을 가차없이 버리시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어. 난 그날 밤 참 좋아. 흐릿한 달빛도 좋고, 마치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인왕산자락 불빛도 좋더라. 더 좋은 것은 이렇게 좋은 곳에 살지만, 우리들과 함께 하실 때, 당신 집이 더욱 좋게 느껴지신다는 그 말씀, 집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그치? 우리도 그렇게 오래 모이면서 살 수 있겠지? 커다란 잔에 와인 마시다가 라면국물 찾는 우리만의 COREANITY 를 뿜어내며... 도윤아, 사랑해. 너만의 열린 COREANITY도 기대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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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0 13:32:40 *.99.241.60
언제나 시원시원한 설명과
도식을 포함한 명쾌함을 느끼고 갑니다.
어렵게만 느꼈던 부분도 많이 누그러지고
새롭게 다시 책을 보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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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11 16:28:38 *.249.167.156
써니누나, 저도 그날 밤의 한 조각을 가슴 속에 품고 살고 있는 듯 합니다. 그 봄밤의 풍경을 한번 담아내보고 싶은데, 어느새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영훈형님, 잘 지내시죠! '한결'은 빨리 진행을 못해서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일들로 조금 정신이 없어서.. 오늘에서야 겨우 의견을 구하는 메일을 보냈네요^^ 그리고.. 리뷰가 도움이 되셨다면 천만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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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신
2007.05.13 15:15:03 *.27.82.103
리뷰가 늦어졌네요.. ^^;;

이제는 미래이야기에서 역사이야기로 넘어 가네요~
학교 다닐 때부터.. 국사 등등 역사과목을 저도 도윤님과 똑같은 이유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수직적역사가 아닌 수평적역사로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잭슨 플록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의미가 다시금 새롭게 다가옵니다.

"당신의 가슴 속에 있는 불꽃을 찾아라. 자신의 역사를 일으켜 세워라. 가슴 뛰는 이야기를 써라. 웅장한 산은 바로 이 곳에 있다. 대양을 헤엄치는 은빛 물고기들은 바로 당신의 마음 속에 있다. 펄떡 펄떡 용트림치는 당신의 상상력 속에 있다."

이 구절에 가장 가슴에 와닿고 매일매일 실천하고픈 이야기입니다.^^

잭슨 플록의 저 그림.. 뒤엉킴이 인생의 숙제이자 해답처럼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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