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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8일 10시 52분 등록
1. 작가 및 역자 소개

가. 저자 소개
E.H. Carr는 1892년 런던에서 출생하여 런던의 머천트 데일러즈 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였다. 1916년에 영국의 외무성에 들어가 1936년까지 외교와 언론 분야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 외교관으로 출발한 Carr는 소련에 편입되지 않았던 라트비아공화국에서 근무하면서 소련에 대한 높은 관심을 갖고, 후에 학계에 들어오면서 소련의 역사를 연구하게 된다. 1936년 20년의 외무부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웨일스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국제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1941년부터 1946년까지는 "더 타임스" 의 부편집인을 역임하였고, 1933년부터 1955년까지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베일리얼 칼리지의 정치학을 강의하였다. 1955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가 되었고, 1966년에는 베일리얼 칼리지의 명예연구원이 되었다. 거의 평생을 소련에 대한 역사 연구를 1945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거의 30년간 이 책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모두 합쳐 14권이며, 그 외 "낭만의 망명객", "20년간의 위기, "평화의 조건", "새로운 사회". 소련의 충격과 서구세계" 등이 있다.

저자를 연구하면서 나와 같은 분야는 다르지만 같은 공무원으로 출발을 했다는 점과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20년을 근무했다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개인적인 얘기이지만, 공무원을 하다가도 역사가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인생의 다양성과 우연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외교관이라는 신분으로 근무 하면서 체험한 역사적 사실과 국제 정치학을 배우고 경험하면서 느낀 국가간 관계 등 역사의 현장에서 다양한 사건과 관계 속에서 사실과 이론, 개인과 사회, 영국과 세계, 근대와 현대 등 다양한 객체들의 상호 관계를 통한 조화와 어느 한곳에 치우지지 않은 학자로서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Carr에 대한 소개는 많았지만, 이 책의 맨 뒷부분에 있는 역자후기에서 나온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저자의 한마디 한마디에 저자의 귀중한 체취가 배어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는 마치 능숙한 길잡이와 같이 같은 솜씨를 가지고 우리들의 역사 사고를 인도하며 도중에서 직면하게 될 여러 문제점과 곤란성을 파헤쳐 나간다. 따라서 공허한 논리를 이어 붙여서 이러한 불가피한 문제점을 덮어씌우거나 회피한다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가장 타당한 실용적인 방도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데에 힘을 기울이로 있는 것이다.”

낙관적인 가치관을 견지하면서도 날카로운 비평의 정신을 가지고, 그것이 역사 속에서 하나의 이론으로 묻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제대로 보고 역사 속에서 지혜를 얻고 세상의 발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싶었다.

나. 역자 소개

스승님의 역자가 특히 중요하는 첨언에 역자가 특히 중요하다고 하셔서 다른 역자의 책과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하여 두 가지 결론을 얻었다. 첫 번째는 역사에 대한 학자이면서 진정한 길을 걸어온 역사가의 번역서라는 점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시절에 군부독재를 비판해서 한 차례씩 해직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꼿꼿함을 꺾지 않았다. 1980년 5월에 발표한 군부독재에 대한 지식인 134명의 명단에도 길현모 선생님이 들어갔으며, 공동선언문의 마지막 내용도 그 의미가 심장한글로 다가왔다. “오늘의 난국은 국민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만 극복될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의 이 정당한 요구가 외면되고 강권정치가 자행된다면 과도정권은 국가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역사적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를 보는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셨다. 월간중앙 1974년 1월호에 민족과 문화-문화 방향의 도착(倒錯)이라는 기고문을 보면서 그 이유를 좀더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옛날의 우수했던 우리역사만 생각하고 민족사관을 고집하는 병폐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후대들에게 선진 국민들의 문화 이념을 겸허하게 배워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평생을 서양역사를 연구하면서 현실과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살아온 학자의 역서를 읽으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싶었다.

두 번째로 느낌은 처음이라는 단어였다. 1966년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국내에 처음 번역이라는 것이고 한 광복이후 첫 세대의 서양학자라는 점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처음 한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다른 번역서가 군사정권이 끝나고 한참만에야 나온 것을 보면 어두운 시절을 지켜주는 등대 같은 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연히 어떤 블러그에서 친구들과 하숙방에 모여서 선생님의 번역서를 보면서 밤을 지새우는 토론을 했다는 내용도 보았다. 지금도 많이 우리 정당한 역사를 찾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서슬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이러한 책이 있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을 알고 새로운 변화의 기회를 가지게 된 것도 이 책의 사회적인 의의가 아닌가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보니 역사적 사실을 말해주는 스승님 사진과 스승님의 스승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지나간 역사를 내가 몰랐던 부분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2. 나에게 다가온 책

역사학과 역사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하여 한번도 접해보지도 않았고, 배운 것이 학생시절 배운 듬성듬성한 역사지식과 몇 편의 위인전을 읽은 편협된 지식을 가진 내가 이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역사를 평가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이렇게 힘이 들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역사가 그만큼 중요한 학문임을 새로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Carr가 바라본 입장을 나는 중용(中庸)이라고 보았다. 우선 역사가와 사실이라는 부분에서도 역사적인 사실에 무게를 둔 랑케의 실증주의와 현재의 역사가에 중점을 콜링우드의 역사관 사이에서 절묘한 중용의 묘를 찾는다. 실증주의 역사가들의 견고한 주장인 ‘사실들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축척하는 것이 역사의 기초라는 사실, 사실이란 스스로 말하며,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는 다는’ 신념은 근절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크로체, 콜링우드의 주관적 상대주의를 옹호한 것도 아니다. 역사가는 자신이 다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상상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실을 과거와 현재의 대화의 매개체로 보았고, 사실과 역사가를 상호작용의 관계로 보았다.

사회와 개인에서도 이러한 균형이 나타난다. 역사가가 개인과 사회의 대립적인 존재가 아닌 역사가가 그 시대와 상호작용하는 산물이라고 보았다. 역사가는 개인으로만 작용하지 않고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맺고 있어서, 역사를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역사가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환경을 연구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또한 독립된 개인이 과거와 현재를 보는 것이 아닌 현재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의 대화라고 보았다.

역사와 과학, 그리고 도덕과의 관계도 분야는 다르지만 과학과 역사학 사이에는 기본적 차이가 있다고 믿으면서도 그 차이가 역사학을 과학의 이름으로 부른 것은 옳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고 믿는 사람들의 의견에 반론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의 특수성에 반한 과학의 일반성 등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서 주장한다. 결론에 가서는 역사학을 자연과학의 일부로 보지 않으면서도 그 설명 추구의 기본 목적에서 또 질문하고 답하는 기본적인 절차에서 역사학과 과학의 동일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본다. 역사가도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역사라는 것이 이것도 옳지 않고 저것도 옳지 않고 하면서도 중간의 것을 취하기도 하고 균형을 잡기도 하지만, 시종일관 이러한 균형을 찾아가기는 쉽지가 않았다. 역사라는 것을 속 시원하게 말해줄 듯하다가 다른 문제로 뛰어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물론 역사라는 것이 한마디로 요약을 한다던가, 어떤 특정한 이론으로 대입해서 풀 문제는 아니라고 보면서 역자 후기에서 Carr의 사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서 조금 안심이 되었다. “격동하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사관과 달관을 몸소 구현하고 있는 선각자를 목도할 때에 학문에 대한 우리들의 신뢰와 용기는 다시 한번 새로워짐을 느끼게 된다.”

3. 내마음에 들어온 글귀

<1. 역사가와 사실>

<8>
주문이라는 것은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것 역시 자력으로 생각한다는 거치장스러운 부담을 덮어주는 성질을 내포한 말이었습니다.

<10>
먼저 사실을 틀림없이 입수하라. 그러고나서 해석이라는 유동하는 모래속으로 위험을 걸고 뛰어들어라.

<17>
우리들이 책으로 읽는 역사는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결코 사실 그것은 아니로 오히려 안정된 판단의 체계에 불과하다.

<25>
사실과 문서 자체만으로서 역사가 이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자체속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귀찮은 문제에 대한 기성답변이 미리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26>
19세기란 서구의 인텔리들에게는 자신과 낙관의 분위기에 찬 안쾌한 시기였습니다. 사실들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에 관한 거추장 러운 의문을 제기한다거나 답한다거나 하는 경향도 자연 미약했던 것입니다. 랑케는 자시가 보살피기만 하면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 신의 섭리가 보살펴 줄 것이라고 경견하게 믿고 있었고, 부르크하르트도 시니시즘이라는 좀더 근대적인 격조를 가지고서 「우리들은 영원한 지혜를 탐구하는 목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7>
영국의 역사가들이 역사철학의 문제에 몰입하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그들이 역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의미란 논의의 여지가 없는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28>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 라고 크로체는 언명했습니다. 이말이 뜻하는 바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29>
콜링우드의 관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역사철학이 취급하는 것은 「사실 그 자체」나 사실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상」의 그 어느 하나만이 아니고 「상호관계 하에있는 그 양자입니다.」

<31>
우리들이 역사 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속에서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 라는 문제보다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인 것입니다.

<33>
여러분이 역사책을 읽을 때에는 항상 역사가의 머릿속에서 오고가는 사색의 음을 잡아내야 합니다. 만일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면 여러분이 음치이거나 역사가 쪽이 둔재이거나 둘중의 하나의 일일 것입니다.

<37>
콜링우드는「 가위와 풀의 역사」에 반대하고 또한 역사를 단지 사실의 편찬이라고 보는 견해에 반대한 나머지 역사를 인간이 머릿속에서 짜내는 것으로 본다는 위험성에 접근하고 말았습니다.

<41>
즉 쓰면 쓸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의 의미와 관련성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42>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형성하고 자기의 사실에 맞추어서 해석을 형성하고 하는 끊임없는 관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자중 어느 한쪽만을 우위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43>
사실을 못가진 역사가는 뿌리를 박지 못한 무능한 존재입니다.

<43>
즉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49>
그때까지는 「민족, 민중, 당파, 가족, 단체 등의 일원으로서의 자각밖에 없었던 」인간이 이때에 와서 마침내는 「정신적인 개인이 디고, 그러한 존재로서의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50>
그것은 개인 그 자체와 사회 그 자체와의 투쟁이 아니라 사회속에 있는 개인집단 상호간의 투쟁인 것이며, 각 집단은 자기편에 유리한 사회정책을 추진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사회정책을 저지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52>
역사가도 하나의 개인입니다. 딴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하나의 사회현상이며,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사회의 대변인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격하에서 역사가는 역사적 과거의 제 사실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54>
위대한 역사란 분명히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전이 현재의 제 문제에 대한 통찰에 의하여 빛을 받을 때에만 씌어지는 것입니다.

<59>
첫째로는 역사가가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부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는것이고, 둘째로는 그 입장 자체는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65>
그러나 자기는 어디까지나 한 개인이지 사회현상은 아니다 라고 소리쳐 항의하는 역사가보다는 자기위치를 주도하게 의식하는 역사가일수록 그러한 위치를 초월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또한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달라짐에 따라서 사회와 관점이 자기들과 어떻게 달라 지는가 라는 차이점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보다 유능하다는 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66>
역사가를 연구하게에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십시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러한 이중의 시점 하에서 역사가를 보는 눈을 길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67>
역사에 있어서의 창조력을 개인적인 천재에게 돌리고 싶어하는 욕망은 역사적 의식의 원시적 단계의 특징입니다.

<70>
인간을 개인으로 보는 견해가 인간을 집단의 일원으로 보는 견해보다 덜 잘못되었다던가, 많이 잘못 되었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고 있는 것은 이미 양자를 명확히 구분하려는 태도에 있는 것입니다.

<74>
역사는 상당한 정도까지 수에 관한 문제라는 것입니다. 카알라일은 「역사란 위대한 인물들의 전기다」라는 불행한 주장에 대해서 책임져야 할 사람입니다.

<76>
유력한 운동에는 반드시 소수의 지도자가 있고, 다수의 추종자가 있는 것입니다만 이것은 다수자가 은동의 성공에 있어서 긴요지하 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역사에 있어서는 수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79>
사회속에 있는 개인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이며 또한 개인행동으로 하여금 와왕 행위자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의 아니 때로는 반대의 결과까지를 초래하게 하는 사회적인 힘에 관한 사실인 것입니다.

<83>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내지는 그 사역인 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한다 는 점입니다.

<84>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의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인 것입니다.


3. 역사와 과학과 도덕

<97>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99>
놀랍게도 비슷한 사건도 상이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일어나면 전연 틀린 결과를 낳게 된다. 이와 같은 사건의 진행을 각각 따로 연구한 다음에 이를 서로 비교해본다면 이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쉽사리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초월한다는 것을 최대의 덕으로 삼는 역사철학의 이론이 제공하는 열쇠를 가지고서는 결코 이상과 같은 이해에는 도달할 수 없다

<102>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한경우의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딴 대목의 사건과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일반화를 할 때에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러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화를 거부하고 역사는 특수만을 취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란 논리적으로 봐서 분명히 역사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104>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별코 단순한 일반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을 비추어서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북돋아 주는데 있습니다.

<107>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인간이란 어떤 점으로 보나 가장 복잡한 자연적 존재이고 따라서 인간 행동에 대한 연구는 자연 과학자들이 직면하는 곤란과는 성질을 달리한다는 제 곤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내가 밝혀 놓고 싶은 것은 역사가와 자연과학자들은 그 목적과 방법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점뿐입니다.

<108>
역사가의 모든 관찰 속에는 불가피하게 역사가의 관점이라는 것이 들어가게 마련이고, 역사에는 어디까지나 상대성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칼·만하임의 말에 의하면 경험을 가다듬고 수집하고 정리하는 유별조차도 관찰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 다는 것입니다. 관찰과 정자체가 관찰 대상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 역시 진리인 것입니다.

<109>
관찰자와 그 대상과의 사회 과학자와 그 자료와의, 역사가와 그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인 것이고 부단히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점이야말로 역사와 사회과학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114>
그것은 신의 섭리였다 라는 말을 가지고 역사의 모든 문제에 답한다는 것은 연구하는 사람들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우리들은 세속자나 인간세계의 드라마에 대해서 그것을 완전히 처리한 다음이 아니고서는 보다 넓은 사고를 끌어들인 자격이 없는 것이다

<115>
나는 역사가란 자기 문제를 신의 조화력 같은 것에 의지하지 않고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역사란 말하자면 죠카없이 노는 트럼프 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116>
역사가들은 자기 책속에 나타나는 개인들의 사생활에 도덕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옆길로 비켜나설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따로 할일이 있는 것입니다.

<118>
우리들의 법정(법률적인 것이건 도덕적인 것이건) 은 살아서 활동하는 위험 인물들을 재판하기 위한 현재의 법정이기 때문에 그 밖의 사람들은 이미 자기 시대의 법정에 출두하여 두 번 다시는 유죄나 무죄의 판결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큰 차이를 잊고 그들을 고발한다. (중략) 역사를 쓴다는 구실하에 마치 재판관이나 된 것처럼 역서는 유죄판결을 내리고 저기서는 무죄판결을 내린다는 식으로 법석을 떨면서,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직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감각이 결여되어 있다고 인정되는 것이다.

<121>
이미 본 바와 같이 역사적 사실이란 어느 정도까지는 해석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역사적 해석은 언제나 도덕적 판단 - 만일 여러분이 보다 중립적인 어감의 용어를 좋아하면 - 가차판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122>
결국은 지는 편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역사에는 재난이 따라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위대한 역사시기에는 승리와 더불어 희생이 있는 법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한 쪽의 증대된 행복을 지방의 희생 앞에 놓고 결산할 수 있는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131>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요구를보다 엄격히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132>
사학이란 고저보다도 훨씬 어렵고 어떠한 과학에도 못지 않을 만큼 딱딱한 학과라는 점입니다. 하여간 이상의 구제책은 역사가들 자신부터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보다 강한 신념을 가져야 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33>
연구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즉 자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133>
역사가도 그 밖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왜냐’ 라는 의문을 부단히 추궁하는 동물입니다.

<4.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135>
역사가는 내가 첫 번 강연의 마지막 대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왜냐’는 물음을 부단히 추구하는 것이며, 해명이 희망이 될 수 있는 한 쉴수는 없는 것입닏. 위대한 역사가는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혹은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때 ‘왜냐’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138>
경제학자 마샬은 언젠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느 한 원인의 작용만을 중시하고 이 원인과 껴묻혀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 밖의 제 원인을 무시해 버린다는 일만은 여하한 일이 있어도 삼가야만 한다.”

<140>
모든 원인중의 원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지어야 하겠다는 직업적인 강박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주제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어떠한 원인을 내세우는가에 따라서 어떠한 역사가인가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41>
그러나 역사가가 원인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원인을 단순화해나가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145>
결정론이란 모든 일에는 하나 혹은 몇 개의 원인이 있고 원인들 중 하나 혹은 몇 개에 변화가 없는한 그 일에도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결정론이란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행위에 관한 문제입니다. 행동에 원인이 없고, 따라서 행동이 결정지어져 있지 않은 인간이란 지난 강연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사회밖에 존재하는 개인처럼 하나의 추상에 불과합니다.

<149>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가 자유의지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의에 의한 행동에는 원인이 없다고 하는 당치도 않은 가설을 거부한다는 것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가피성이라는 문제도 역사가에게는 큰 골칫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153>

현대사의 두통거리는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모두 남아 있었던 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여지가 기정사실에 의하여 모두 끝나버렸다고 보는 역사가들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곤란하다고 여긴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감정적이고 비역사적인 반동입니다.


<155>
그것은 우리가 다루는 인과연쇄가 자신의 견해로서는 이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딴 인과연쇄에 의해서 언제든지 단절될 수도 있고 빗나갈 수도 있는 것이라면 역사에 있어서의 원인과 결과의 일관된 연속성은 어떻게 발견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라는 문제입니다.

<159>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은 기막힌 비유를 들어서 우연이 상쇄되고 말소된다는 이론을 재강조 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전 과정이란 역사법칙이 우연을 통해서 굴절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용어를 빌린다면 역사법칙은 우연의 자연도태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161>
내가 믿는 바로는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는 문제의 해결은 전연 다른 사고방식 속에서 찾아ㅘ야 하는 것입니다.

<162>
제 원인의 상하관계, 하나 혹은 한 묶음의 원인이 그 밖의 원인에 대해서 지니는 상대적 의의, 이러한 것이 역사가의 해석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는 문제를 푸는 단서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163>
역사가의 세계란 과학자의 세계와 같은 현실세계를 사진 찍어놓은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많고 적고 간에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정복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작업상의 모델과 같은 것입니다. 역사가는 과거의 경험, 즉 자기가 입수할 수 있는 한에 있어서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골라내가지고 그로부터 행동지침으로서 유용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입니다.

<165>
결국 역사란 역사적 의의라는 견지하에서의 선택과정인 것입니다. 탈코트 피아슨의 말을 다시 한번 빌려본다면 역사는 현실에 대한 인식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인과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68>
역사에 있어서 인과의 문제를 다루어 나가는데 열쇠의 역할을 다해주는 것은 틀림없이 목적이라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목적개념은 불가피하게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전번 강연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역사에 있어서의 해석은 언제나 가치판단과 떼놓을 수 없는 것이고 인과관계는 해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170>
현재란 것은 과거와 미래와를 갈라놓는 가공적인 선이라는 개념적 존재에 불과합니다. 현재를 논할 때에 나는 이미 현재와 다른 시간적인 차원을 몰래 침입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170>
훌륭한 역사가들 역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건 말건,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입니다.

<5. 진보로서의 역사>

<179>
그러나 그의 사고의 효능은 그 동안의 여르ㅓ 세대의 경험을 배우고 그것을 자기 경험과 결부시킴으로 해서 몇 배나 커졌습니다. 획득형질의 전승이라는 것을 생물학자들은 부정합니다만,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184>
인간은 조상들의 경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란 자연계에 있어서의 진화와는 달리 습득된 자산을 토대로 한다는 것, 이것은 역사의 한 전제입니다.

<193>
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할 때에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그것은 역사가가 자신의 사회적·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략) 즉 말하자면 완전한 객관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에 달린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 역사가는 자신의 비전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그 안목이 전적으로 목전의 자기 위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보다는 과거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영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4>
나는 지난 강연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오히려 역사는 과거의 제사건과 점차적으로 우리들 앞에 출현하게 될 미래의 제 목적과의 대화라고 말씀드려야 했을 것입니다.

<206>
우리가 사실을 알려고 할 경우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나 따라서 우리가 입수하는 해답 같은 것은 모두가 우리들의 가치체계의 후견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소산인 것입니다.

<207>
역사가란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의 양자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양자를 분리할 수 없습니다.

<208>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진보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6. 넓혀지는 지평선>

<211>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하여 자기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해온 긴 투쟁 과정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근대는 이러한 투쟁을 혁명적으로 넓혀놓은 시기입니다.

<218>
프로이드는 특히 역사가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만, 그것은 두가지 의미에서입니다. 첫째로는 인간행위는 사람들이 그러한 행위의 동기는 이런 것이었다고 주장하건, 믿거나 하는 등기를 가지고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이러한 오랜 환상에 최후의 못을 박은 사람이 프로이드였다는 점입니다. 다름으로 프로이드는 마르크스의 업적을 보완하면서 역사가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을 권했던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과 역사에 있어서의 자신의 위치를 문제나 시기의 신택을 이끌어준 동기들, 그리고 자신의 시각을 결정해준 국가적·사회적 배경을, 과거관을 형성해 주는 미래관을 음미하라는 것입니다.

<221>
자유방임으로부터 계획에로의, 무의식으로부터 자기 의식에로의, 객관적인 경제법칙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의하여 자기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신념에로의 전환이 이룩된 것입니다.

<224>
이상과 같이 합리적 과정을 적용하여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사물의 처리를 개선해 나갈 인간 능력을 높이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은 20세기 혁명의 중요한 한 측면이라고 생각됩니다.

<233>
내가 말한 20세기 혁명에 있어서의 이성의 확대라는 요인은 역사가에게는 특별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성의 확대란 본질상 이때까지는 역사의 외부에 머물고 있었던 집단과 계급, 국민과 대륙이 역사의 내부에 출현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34>
완전한 의미에 있어서 역사에 등장한 민족들, 즉 이미 식민지 통치자나 인류학자들의 대상이 아니라 역사가들의 대상이 된 민족들, 이러한 민족들로 구성된 전체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조차도 오늘날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해진 것입니다.

<239>
그러나 역사가들이 문제 삼아야 할 일은, 첫째로는 액튼의 입장을 확인한다는 일이고, 둘째로는 그의 입장과 현대의 사상가달의 입장과를 비교한다는 일이고, 셋째로는 그의 입장의 어떠한 요소가 오늘날 아직도 유용한가를 검토해본다는 일입니다.

<244>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 그것은 움직인다.


4. 내가 저자라면

우선 강연을 책으로 옮겨 놓다 보니 6장 넓어지는 지평선을 제외한 나머지 5개의 장은 내용이 너무 방대하였다. 강연을 정리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강연을 내용을 논리에 맞게 글로 옮기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각 장마다 몇 개의 단락으로 구분하여 주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특히 3장의 역사와 과학과 도덕에서 역사와 과학의 다섯 가지 구분의 문답 형식으로 논점은 간단하지만 너무 길게 씌어져 있어, 중간 중간 행간을 잃어버렸다. 중요한 단락마다 구분을 하여 중간 중간 끊어지는 단절을 보충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간간히 편집상의 오타와 목차의 오류이다. 119p, 121p, 123p의 상단 머리말의 숫자가 잘못 되었고, 간간히 보이는 오타와 희미한 글자를 바로잡아 주었으면 명저를 읽은 재미가 한층 더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다양한 역사가들의 인용문구가 들어온다. 자칫 역사라는 것이 주관적인 흐름과 일방적인 개념의 설명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각 역사가의 이론들과 칼 포퍼 같은 철학자의 이론들도 끌어와서 설명을 했다. 유명한 석학들의 이론이라서 정당성을 찾기는 쉬웠지만, 부분을 들어서 전체를 설명한다는 것에 어려움도 있었고,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되는 느낌도 들었다. 또한 반대되는 이론을 설명할 때에 저자가 직접 정리한 내용이 아닌 또 다른 사람의 이론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비판에 대해 쉽게 흘려버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큰 흐름에서 다양한 사례는 풍부한 사고와 논지를 정확하게 해주는 감초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 6장 넓어지는 지평선에 대한 아쉬움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이론으로 현대사회가 아직 미완성이며, 역사는 이러한 혁명적 변화의 한 부분에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면에서 다양한 전환이 시도되고 있다고 보았다. 저자가 말하는 그 이성이 발전하는 단계가 50여년이 지났을 때에 본 책의 강연을 하였다. 그렇다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첫 번째 답변에 대한 두 번째 답변이 기다려진다. 김택현 교수가 번역한 까치글방 “역사란 무엇인가“의 부록에서 RW 데이비드의 논문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개정판을 만들다가 끝내 만들지는 못했지만, 부록에 소개된 논문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역사적 발전상이 구성되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으로 왜곡되고 찌그러진 우리의 역사는 미래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정작 우리들이 우리나라의 과거와 더 깊고 처절한 대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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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09 11:48:05 *.75.15.205
사부님께서는 언제 어떻게 한 말씀 해주시려는지요. 분단의 역사...
모호함과 이중적 시선을 어떻게 조율해 나가야 할런지요. 현실적 참여와 비판은... 20년간 당신의 공직생활이 가져다 준 해답은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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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5.09 13:46:44 *.114.56.245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입니다만 한동안 '인용문에 대한 효과'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 신문을 비롯해서 인용문으로 글머리를 여는 것을 자주 접하거든요. 저도 가끔 시도한 것이지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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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5.09 19:30:17 *.115.33.218
황소 영훈이다. 지금 대학원에 진학해도 젊은애한데 지질않겠다. 글을 읽으면 큰 바위를 보는 느낌이다. 점점 속이차고 여물어간다.

그리고 농장 개관은 언제 할 것인데?
안할 건가. 그렇게 큰 사업을 벌렸으면 막걸리에 고시례는 해야지.

그리고 직장은 어떤가 곤란하면 메일로 보내게. 비밀은 보장함세 비밀도 없게지만...
글잘읽고 나가네 다음만나면 뱅곤이하고 막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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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0 08:53:52 *.99.241.60
가장 어렵게 읽은 책이고 아직도 명쾌하게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많이 남아있어서 옆에 계속 두고 싶은 책으로 놓고 열심히 보겠습니다.

써니님/ 아직 제 역사는 만들어가고 있고, 뒤를 돌아다보는 것은
조금 더 있다가 시도해볼 작정입니다.

최정희 선생님// 인용문에 대하여는 저도 참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특히 본문속에서 나오는 칼 포퍼, 마르크스, 헤겔 등은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그 사상을 요약해서 비판하는 글은 더욱 더 어렵더라구요. 나의 형편없는 글읽기 역사에 대한 준엄함 비판과 반성과 참회로 마음을 다시 잡았습니다.

초아선생님.
농장개관은 잘 되고 있고,
고시레는 곧 하도록 하겠습니다.
직장이나 여러 문제는 소전이라는
호 덕분에 많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찾아보니 제가 할 일도 많고,
기여할 부분도 많고
스스로 변화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서울에 오시면 뱅곤하고 꼭 막걸리를
준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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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11 09:54:00 *.75.15.205
고시레 할때 써니 빠뜨리면 동티난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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