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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1일 05시 48분 등록
역사란 무엇인가
E.H.Carr


Ⅰ. 저자
Edward Hallett Carr (1892.6.28 - 1982.11.3)

- 런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the Marchant Taylors' School와 캠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교육받았다.
- 1916년~1936년 - The Vritish Foreigh and Commonwealth office에서 일함.
- 1919년 : 파리 평화회의에 참석
- 1953년 ~ 1955년 : 옥스퍼드 Calliol College에서 정치학을 가르쳤고, 캠브리지의 Trinity College 교수가 됨.

주요 저서
- The Twenty Years' Crisis (1939)
- Fyodor Dostoevsky 전기 (1931)
- Karl Marx 전기(1934)
- Mikhail Bckunin 전기 (1937)
- 2차 세계 대전 중에 러시아의 영웅들에 깊은 인상을 받아 History of Societ Russia(러시아 역사)(1950-1978)를 집필했다.
- What is History?(1961)


Ⅱ.내가 저자라면

내가 저자라면 나는 이런 어려운 책은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읽기가 좀 힘들었고, 그와 더불어 이해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고, 이해하는 만큼만을 쓴다는 전제를 한다면 나는 이런 어려운 책을 쓰지 못할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책 읽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첫 번째로는 이유로는 철학적인 문제에 대한 답으로 여러 역사학자나 철학자의 말을 인용한데에 있다. 철학의 명제란 것이 사유할 원래 시간을 많이 필요로하는 것들이다. 그것을 하다보니 왜 구절을 인용했는지 놓쳐버린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이런 것들은 나중에 줄친 것 만을 따로 읽을 때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두 번째 이유로는 결론이 앞이 아닌 뒤에 나온다는 것이다. 그 목표 점을 찾기 위해 ‘정’ ‘반’ ‘합’을 두루 거친다. 그러니 어디쯤이 ‘정’이고 어디쯤이 ‘반’인지 언제 결론에 도달한지 모르겠다. 책에서는 그것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았고, 저자의 말투에서도 그것을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세 번째 이유로는 한 문단의 길이가 길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자꾸 놓친다는 것이다. 지면상으로는 문단이 나누어져 있는데, 의미로는 아직 한 가지 이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에서 쉬어가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독서를 저자와의 대화라고 여긴다면 저자의 말에 나는 어디쯤에서 취임새를 넣고, 어디 쯤에서 내 의견을 이야기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이야기를 들은 후에 머리 속에서 정리할 시간도 가져야 하는데 언제 해야할지 모르겠다. 강연으로 들었다면, 잠깐의 숨 멈춤이나 고르기, 목소리의 높고 낮음으로 분간할 수 있었겠지만 지면은 그런 배려를 하지 않았다.
네 번째는 이유로는 매우 현학적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내 개인의 문제일 수 있다. 저자는 여러 사람의 생각을 인용했고 역사적 사실을 나열했는데, 불행하기게도 나는 그들을 모르고, 유럽사도 모른다는 데 있다. 그러니, 그것이 왜 그 자리에 쓰였는지, 적절한 예인지를 모르고 읽는다는 것이다.

Ⅲ. 1페이지 써머리
책은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우리가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것들일 것이다.
1장 ‘역사가와 사실’에서는 역사가는 어떤 것을 기록하는 가라는 질문에 사실과 역사의 관계를 설명한다. 사건의 사실과 역사로 기록된 사실에는 차이가 있다. 역사가가 개입되어 거기엔 가치가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역사책을 고를 때 저자를 먼저 살펴야 한다.

2장 ‘사회와 개인’에서는 역사가가 역사를 보는 관점은 자신이 속한 사회를 벗어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역사가와 역사가가 속한 사회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 자체는 역사의 산물이 된다. 우리는 역사가가 속한 사회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역사가가 기술한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에서는 역사와 과학, 도덕이 어떤 점이 다르고 어떤 점이 같은 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각각의 차이점을 이렇게 열거했다. (1)역사는 전적으로 특수한 것을 취급하나 과학은 일반적은 것을 취급한다. (2)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3) 역사는 예견할 수 없다. (4) 역사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5)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내포한다. (p95)
공통점은 아래와 같다.
‘관찰자와 그 대상과의 사회 과학자와 그 자료와의, 역사가와 그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인 것이고 부단히 변화한다.’(p109)
‘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모두가 동일한 연구의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과 그 환경에 관한 연구, 다시 말해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과 인가에 대한 환경의 작용을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구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즉 자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p133)’

4장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에서는 우연의 요소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취할 것인가, 인관관계의 규명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역사가는 무한한 대해로부터 자기목적에 의의를 가지는 사실들을 골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다수의 인과연쇄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의의있는 것들을, 아니 그것들만은 빼낸다.(p165) 그리고 그 의의있는 가치의 추구와 관련이 있다.

5장 ‘진보로서의 역사’에서는 방향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역사가들은 역사가 과거보다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얘기한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방향이 전체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는 것, 즉 인류는 나쁜 상태로부터 좋은 상태로, 저급한 상태로부터 고등한 상태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런 의식의 반영이 현재의 역사관이라고 얘기한다.

6장 ‘넓혀지는 지평선’에서 저자는 미래사회와 미래역사에 대한 자신의 신명을 표명했다.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하여 자기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적용해온 긴 투쟁이 과정이다. 인간은 나아가서는 사회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조하기 시작했다. 주체와 객체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Ⅳ. 인용
1. 역사가와 사실
그들은 과거에 관한 지식은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의 정신을 통하여 전달된 것이고 또한 그들의 처리과정을 겪어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것은 절대로 변질될 수 없는 원소적이고 비인간적인 원자와 같은 것으로 형성되었다고는 보지 않는 것이다. (p6)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려 할 때에 우리들의 답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라는 보다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답의 일부를 이루게도 되는 것입니다. (p7)

그래드그라인드(Mr. Gradgrind)는 “내가 바라는 것은 사실이다.... 인생에 필요한 것은 사실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p7)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Wie es eigentlich gewesen)을 보여주는 데 있을 따름이다.” - 랑케 (p8)

그는 과실의 알맹이는 딱딱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육의 부분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먼저 사실을 틀림없이 입수하라, 그리고나서 해석이라는 유동하는 모래 속으로 위험을 걸고 뛰어들어라 - 이것이 역사에 대한 경험적인 상식학파의 궁극적인 지혜입니다. 이는 “사실은 신성하며 의견은 제멋대로이다”라는 위대한 자유주의 저널리스트 C.P.스코트의 격언을 상기시킵니다. (p10)

(역사와 역사상의 사실을 보는 관점에 대해서 두가지의 고찰이 필요하다.)...(p11~12)
첫째로, 역사가의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와 같은 사실들이 아니라는 문제입니다.
둘째로 고찰해야 할 점은, 기초적 사실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 자체에 어떠한 자격이 있어서 그리 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들의 아프오리한 결정에 좌우된다는 점입니다.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 - Alfred Edward Housman 영국의 고전학자 (p11)

오늘날 모든 저널리스트들은 여론을 움직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적절한 사실들을 골라내고 배열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p12)

사실이란 역사가들이 그것을 찾아줄 때에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고, 어떠한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그리고 어떠한 순서와 전후 관련 속에서 이야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역사가인 것입니다. (p12)

“사실은 자루와 같은 것이다. 그 속에 무엇인가를 집어 넣어 주기 전에는 절대로 설 수 없다.”

오늘날에 와서도 고대사나 중세사에 마음이 끌리게 되는 매력의 하나는 손 닿는 범위 내에서 모든 사실을 처리할 수 있다는 환각을 우리들에게 주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p15)

“우리들이 책으로 읽는 역사는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결코 사실 그것은 아니고 오히려 인정된 판단의 체계에 불과하다.” - Geoffrey Barraclough 영국의 역사가 (p17)

“무지는 역사가의 제1요건이다. 무지는 단순화하고 명확화하고 추리고 버린다.” - Lytton Strachey 영국 전기작가 (p18)

근대사가는 소수의 중요한 사실들을 발견하여 그것을 역사상의 사실로 만들고, 동시에 중요치 않는 많은 사실들을 비역사적 사실로서 추려내야 한다는 이중의 임무를 띠고 있습니다. (p18)

어떤 문서라 할지라도 그 문서의 필자가 생각하고 있던 이상의 것을 우리들에게 말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즉 그가 일어났다고 생각한 일, 그가 일어나야만 한다고 생각한 일, 그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 혹은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해 줄 것을 바랐던 일, 아니 심지어는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자기 스스로만이 생각했던 일, 이러한 것이 그 전부입니다. (p20)

영국의 역사가들이 역사철학의 문제에 몰두하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그들이 역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의미란 논의의 여지가 없는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p27)

역사가들은 에덴 동산을 거닐었고, 몸을 가리워줄 한 가닥의 철학도 지니지 않은 채 벌거숭이로 부끄럼없이 역사의 신 앞에 섰던 것입니다. (p27)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 - Benedetto Croce 이탈리아의 철학자, 역사가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것입니다.(p28)


"역사상의 사실이란 어떤 역사가에 있어서나 자신이 이를 창조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 미국의 역사가 Carl Becker (p28)

“역사가가 연구하는 과거는 죽어버린 과거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현재 속에 살이 있는 과거인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행위하는 것은 그 후에 놓은 사상을 역사가가 이해할 수 없는 한 그에게 있어서는 죽은 것, 즉 무의미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모든 역사는 사상의 역사”라는 것이며 또한 “역사는 역사가가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사상을 자신의 마음 속에 재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p30)

(제1의 문제점)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곡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인 것입니다. (p30)

사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십시오.(p32)

여러분이 역사책을 읽을 때에는 항상 역사가의 머리 속에서 오고가는 사색의 음을 잡아 내야 합니다. 만일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면 여러분이 음치이거나, 역사가 족이 둔재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p33)

(제2의 문제점) 역사가는 자기가 취급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p33)

(제3의 문제점)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들은 비로소 과거를 볼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이해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역사가도 자기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고, 인간생존의 제조건에 의해서 시대에 붙잡혀 있는 존재입니다. (p34)

언어의 사용 자체가 그의 중립을 허용 안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언어에만 한정된 문제도 아닙니다.(p35)
--> 과거의 억매이지 않기 위해 새로운 단어를 쓴다고 해도, 혹은 과거에 더욱 접근하기 위해 과거의 것을 몸에 걸치고, 그때의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우리의 선택은 역시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현재를 눈으로 과거를 보아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 문장이다.

자신을 ‘과거의 영대소유권’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말을 택하고 싶습니다.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하는 것도 아니요,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써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p36)


보는 각도가 틀릴 때마다 산의 모양이 틀리게 나타난다고 해서 산에는 개관적인 모양이라는 것이 없다든가, 무한한 모양이 있다든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p38)

만일 역사가가 자기가 연구하는 역사시대를 자기시대의 눈을 통해서 봐야 하고 과거의 문제를 금일의 문제의 열쇠로써 연구해야 한다면, 역사가는 순전히 프라그마틱한 사실관에 빠지게 되어 일전의 목적에 대한 적합성이야말로 적당한 해석의 기준이라고 주장하게 되지 않겠습니까.(p38)

“우리에게 있어서는 의견의 허위성이 곧 의견에 대한 반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생명을 북돋아주고 생명을 보존해 주고 종족을 보존해 주고 더 나아가서는 종족을 창조해 주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p39)

읽는 것은 씀으로 해서 인도되고 방향이 제시되고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즉, 쓰면 쓸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의 의미와 관련성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p41)

만일 여러분이 양자(in put 와 out put)를 떼어놓으려고 한다든가 일자를 타자보다 우위에 놓으려고 한다면 여러분은 두 이단 중의 하나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즉, 의미도 중요성도 없는 가위와 풀의 역사를 쓰게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선전소설이나 역사소설을 써서 역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저작물의 장식물로서만 과거 사실을 이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p41)

이상 역사상의 사실과 역사가의 관계를 검토해온 우리들은 두개의 위험지점 사이를 간신히
항행하고 있는 지극히 위태로운 상태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p42)

제1답은 즉,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p43)

2. 사회와 개인

사회와 개인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에 필요한 보충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도 자체만으로서 전체를 이루는 섬일 수 는 없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요 본토의 일부분이다.” - John donne 영국시인 (p45)

“인간은 같이 모아 놓는다 해도 다른 종류의 실체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 J.S. Mill 고전적인 개인주의자(p45)

위대한 역사란 분명히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변이 현재의 제문제에 대한 통찰에 의하여 빛을 받을 때에만 씌여지는 것입니다.(p54)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그리고 이룩되지 못한 평화가 자유주의의 파산을 명시한 후로 이에 대한 반동은 두 가지 형태 즉 사회주의냐 보주주의냐 중의 하나를 취하여 나타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이미어는 보수적인 역사가로 등장한 것입니다. (p56)

1848년 유럽혁명에 대한 투철한 연구였습니다. 즉 실패한 혁명, 자유주의에의 부풀어오른 희망의 전유럽에 걸친 좌절, 무력에 직면했을 때의 사상의 공허성과 군대와 맞섰을 때의 민주주의자들의 공허성을 실연해 보인 그 혁명을 말입니다. 네이미어는 이 굴욕적인 실패를 ‘인텔리의 혁명’이라고 부르면서 정치라는 진지한 일에 사상이 침입한다는 것이 무익하고 위험하다고 하는 교훈을 되풀이 강조하였습니다. (p58)

지금의 나의 목적은 두개의 중요한 진실을 밝히는 데에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첫째로는 역사가가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부터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 입장 자체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언젠가 마르크스도 말한 것처럼, 교육자 자신이 우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 요샛말로 한다면 세뇌자의 머리 자체가 우선 세뇌되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역사가는 역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역사의 산물인 것입니다. (p58)

1936년에 출간된 <역사주의의 성립 Die Enstehung des Historismus)>의 마이네케는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정당하다’는 주의라고 생각되는 역사주의를 거부하고, 역사적 상대와 초이성적인 절대자 사이를 불안하게 동요하면서 절망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p60)

만일 똑같은 강물 속에 사람은 두 번 다시는 들어설 수 없다는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두 책을 쓸 수는 없다는 말도 똑같은 이치에서 진실일 것입니다. (p63)

역사는 타 시대의 부당한 영향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시대의 부당한 영향으로부터의, 그리고 환경의 압제와 우리가 숨쉬는 대기의 압력으로부터의 구제자이어야만 한다. (p65)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 ․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십시오. (p66)

인간을 개인으로서 취급하는 것은 전기이고 인간을 전체의 일원으로서 취급하는 것을 역사라고 구분한다는 것도 그럴 듯한 일이겠고, 또한 좋은 전기는 나쁜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도 그럴 듯해 보입니다. (p71)

'인물 개개인에게서 촉발된 관심처럼 역사를 보는 눈에 오류와 불공평을 초래하는 일은 없다' - 액튼 (p71)

오늘날 누구나 잘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언제나 꼭 아니 일반적인 경우에도 자기가 충분히 인식한 동기나 기꺼이 시인한 동기에 의해서만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무의식적인 동기나 시인 안 하는 동기에 대한 통찰을 배제한다는 것은 한 눈을 억지로 감고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p73)

‘정치란 대중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수천 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있는 곳에서 중요성을 지닌 정치가 시작되는 곳은 바로 그러한 곳이다.’ - 레닌 (p75)

이름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은 많고 적고 간에 무의식적인 행동을 함께 하고 있는 개인들이며, 그들에 의하여 하나의 사회적인 힘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p76)

큰 움직임이라는 것은 소수자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라는 상투어를 내놓는다고 해서 당활할 필요는 없습니다.. 유력한 운동에는 반드시 소수의 지도자가 있고 다수의 추종자가 있는 것입니다만 이것은 다수자가 운동의 성공에 있어서 긴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역사에 있어서는 수라는 것이 중요합니다.(p76)

인간의 개인 행동은 왕왕 행동자 자신은 물론 딴 어떤 개인도 의도하지 않았고, 욕구하지도 않았던 결과를 초래하는 수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치된 견해를 표명해 왔습니다. (p76)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행동하지만 사실은 신의 목적을 위한 무의식적인 봉사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p76)

“역사적 사건에는 무엇인가 아무도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역사 코스를 비틀어 놓는 성질이 있다.” - 버터필드 (p77)

역사상의 사실은 확실히 여러 개인에 관한 사실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이 고립해서 행한 행동에 관한 사실도 아니요, 또한 진실한 것이건 상상적인 것이건 개인들이 자기 행동의 동기였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동기에 관한 사실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 있는 개인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이며 또한 개인 행동으로 하여금 왕왕 행위자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의 아니 때로는 반대로의 결과까지를 초래하게 하는 사회적인 힘에 관한 사실인 것입니다. (p79)

뛰어난 반역자이며 동시에 개인주의자였던 인물을 골라 볼까요. 자기 시대의 사회와 국가에 니체보다도 더 난폭하고 철저하게 반항했다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니체는 유럽 사회의 , 아니 특히 독일 사회의 순수한 산물이었으며 중국이나 페루 같은 나라에서는 도저히 나타날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니체 개인이 표현하고 있었던 사회적인 힘이 얼마나 강하게 유럽적인 것이었는가, 아니 특히 독일적인 것이었는가는 동시대 사람들보다도 그가 죽고 나서 한 세대 뒤에 이르러서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p80)

리비스 박사는 위대한 저술가는 ‘인간의 자각을 북돋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읍니다만.... (p82)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상호과정은, 나는 그것을 현재와 과거의ㅘ의 대화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만,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ㅣㅣ 대화가 아니라 금일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와의 대화인 것입니다. (p83)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p84)

3. 역사와 과학과 도덕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요,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다.” - 뷰리Bury (p87)

과학자들이 언명하는 공리라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정의 즉 영어상의 약속의 위장에 불과한 것이 아닌 다음에는 장차의 사고를 결정시키고 조직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가설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검증되고 논박을 받을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p89)

과학자들의 발견이나 새로운 지식이 획득도 정밀한 포괄적인 법칙을 확립함으로써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역구분야를 열어줄 여러 가설을 설정함으로써 이룩된다는 것은 이미 인정된 사실입니다. (p89)

(1)역사는 전적으로 특수한 것을 취급하나 과학은 일반적은 것을 취급한다. (2) 역사는 교훈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3) 역사는 예견할 수 없다. (4) 역사는 불가피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5) 역사는 과학과는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내포한다. (p95)

지질학에 있어서도 똑같은 두개의 지층은 있을 수 없고, 동종의 동물이라 해도 똑같은 두 마리의 동물이 있을 수 는 없고, 두개의 원자도 동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동일한 두 역사적 사건이 없다는 것도 이와 다를 것은 없습니다. (p96)

우선 언어를 사용한다는 그 자체 부터가 역사가로 하여금 과학자나 마찬가지로 일반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p96)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 있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p97)

역사를 읽는 사람 역시 역사를 쓰는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일반화의 상습자들입니다. (p98)

놀랍도록 비슷한 사건도 상이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일어나면 전연 틀린 결과를 낳게된다. 이와 같은 사건의 진행을 각각 따로 연구한 다음에 이를 서로 비교한다면 이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쉽사리 찾아낼 수 있다. (p99)

어떤 한 경우의 사전에서 얻어낸 교훈을 딴 대목의 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일반화를 할 때에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러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p102)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에 비추어서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북돋아 주는데 있습니다. (p104)

“경험을 가다듬고 수집하고 정리하고 하는 분리조차도 관찰자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 칼 만하임(p108)

관찰자와 그 대상과의 사회 과학자와 그 자료와의, 역사가와 그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인 것이고 부단히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p109)


관찰자와 그 대상 - 주체와 객체 - 은 다 같이 관찰의 최종 결과 속에 들어간다. (p110)

"그것은 신의 섭리였다는 말을 가지고 역사의 모든 문제에 답한다는 것은 연구하는 사람들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우리들은 세속사와 인간세계의 드라마에 대해서 그것을 완전히 처리한 다음이 아니고서는 보다 넓은 사고를 끌어들일 자격이 없는 것이다." - M.C, D'Arcy (p114)

역사란 하나의 투쟁과정이어서 그로부터 나타나는 여러 결과는 우리들이 그것을 좋게 판단하건 나쁘게 판단하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 간접적인 경우보다는 직접적인 경우가 많습니다만 - 일부 집단이 타집단을 희생시켜가지고 성취한 것입니다. 결국 지는 편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p122)

역사는 모든 여신들 가운데서도 아마도 가장 잔인한 여신일 것이다. 전쟁에서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경제발전에 있어서도 이 여신은 시체의 산을 넘어서 승리의 전차를 몰고 달린다. 불행하게도 너무나도 우둔한 우리 남녀들은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난에 시달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진보를 위한 용기를 불러일으키려고 하지 않는다. (p125)

역사가는 과학자와는 달리 취급하는 자료의 성질상 도덕적 판단의 문제 속에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 이 사실은 역사가 가치라고 하는 초역사적인 규준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 되지는 않을까요. (p126)

역사란 운동이고, 운동이란 비교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p128)

평등, 자유, 정의, 자연법 등의 가상적인 절대자들에게도 그 실제내용은 시대가 벼하고 대륙이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모든 집단은 역사에 뿌리 박은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집단은 이질적인 불합당한 가치의 침입데 대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으며,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부르조아적이고 자본주의적이라든다, 비민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라든다 혹은 좀더 조잡한 경우에는 비영국적이고 비미국적이라든다 g는 치욕적인 별명으로 낙인을 찍어 놓는 것입니다. 사회로부터 유리되고 역사로부터 유리된 추상적 기준이나 가치란 추상적인 개인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제대로 된 역사가라는 것은 모든 가치의 역사적인 피제약성을 가려볼 줄 아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자지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역사를 초월한 객관성을 요구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p129)

과학자, 사회과학자, 역사가는 모두가 동일한 연구의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과 그 환경에 관한 연구, 다시 말해서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과 인가에 대한 환경의 작용을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구의 목적은 동일합니다. 즉 자기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증대시킨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p133)


4.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역사가는 ...‘왜냐’라는 물음을 부단히 추궁하는 것이며, 해명의 희망이 있는 한 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역사가 - 아니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위대한 사상가 - 란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혹은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왜냐’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p136)

“우리들은 어느 한 원인의 작용만을 중시하고 이 원인과 껴묻혀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 밖의 제원인을 무시해 버린다는 일만은 여하한 일이 있어서 삼가야만 한다.” (p138)

진정한 역사가라면 자기가 작성한 여러 원이의 목록을 앞에 놓고서는, 그것을 질서지어야 하겠다, 제원인의 상호관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거기에 상하관계를 설정하겠다, 혹은 (역사가들이 즐겨 쓰는 말투를 따른다면 ‘결국에 가서는’, ‘궁극적으로는’ 어떤 원인과 어떤 종류의 원인을 최종 원인, 즉 모든 원인 중의 원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지어야 하겠다는 직업적인 강박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p140)

그가 어떠한 원인을 내세우는가에 따라서 어떠한 역사인가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p140)

결정론이란 모든 일에는 하나 혹은 몇 개의 원인이 있고, 원인들 중 하나 혹은 몇 개에 변화가 없는 한 그 일에도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p145)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는 공리는 우리들의 주위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능력의 하나의 전제조건입니다. (p146)

인격이란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원인의 많은 것은 확실하게 가려질 수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 소에는 행동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는 과거와 현재의 연관이 닿는 원형이 형성될 수도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147)

인간 행도의 어떤 것은 자유롭고 , 어떤 것은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모든 인간 행동이 그것을 보는 견지에 따라서 자유롭기도 하고 결정되어 있기도 한 것입니다. (p148)

그것이 어떠한 외부적 강제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인격적 강제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니만큼, 그에게는 도덕적 책임이 있었읍니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성인은 자기 자신의 인격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이 사회생활의 하나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입니다. (p149)

원인과 도덕적 책임과는 다른 카테고리에 속한 것입니다. (p149)

현대사의 두통거리는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모두 남아 있었던 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역지가 기정사실에 의하여 모두 끝나버렸다고 보는 역사가들의 태도를 받아들이기 곤란하다고 여긴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감정적이고 비역사적인 반동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소위 말하는 ‘역사적 불가피성’의 학설에 대한최근의 반대운동을 가장 크게 조장해온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감정에서 빠져나와야 하겠고, 또한 다시는 여기에 걸려들지 않아야만 하겠습니다. (p153)

“혁명이나 전쟁을 예견하는 일을 가능하다. 그러나 가을철 산오리 사냥의 결과를 예견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 트로츠키 (p154)

만일 안토니오가 빠져들어갔다는 데에는 아무런 원인도 없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클레오파트라의 미색에 대한 공연한 실례가 될 것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남성이 매혹된다는 것과의 관련성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언제나 볼 수 있는 가장 정상적인 인과연쇄의 하나입니다. (p154)

원인도 없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그(몽테스키외)는 로마인들의 위대성과 몰락을 다른 저작 속에서 “만일 전투의 우연한 결과와도 같은 하나의 특수한 원인이 한 국가를 멸망시켰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단 한버의 전투로 말미암아 국가의 몰락이 초래될 만한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p158)

"만일 우연의 여지가 없었다고 하면 세계역사란 대단히 신비스러운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물론 우연이란 것도 전반적인 발전 경향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고 결국에 가서는 딴 형태의 우연에 의해서 상살되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 진행의 지속은 ‘우연’에 의하여 좌우될 수도 있는 것이고, 이러한 우연 속에는 운동의 시발을 이루는 선구적 인물의 우연적인 성격이 포함된다."- 마르크스 (p157)

이상과 같이 마르크스는 세 가지 관점에서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1)첫째로 우연이란 극히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역사진행의 지속을 초해할 수는 있으나, 그것을 근본적으로 변경시킬 수 없다는 점이 암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로는, 하나의 우연은 딴 우연에 의해서 상살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에 가서는 말소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3)셋째로는, 우연은 특히 인물의 성격 속에 뚜렷이 예증된다는 것입니다. (p159)

우연이란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물에 대한 별명에 불과하다. (p160)

역사라는 것은 역사가가 사실을 선택정리해 가지고 역사적 사실로 만듦으로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하한 사건이건 모두가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의 구분은 엄격한 것도 아니요, 불변한 것도 아닙니다. 즉, 어떤 사실이건 일단 그 적합성과 중요성이 인정되기만 하면 역사적 사실의 지위로 승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p161)

역사는 현실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인과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가가 사실의 무한한 대해로부터 자기목적에 의의를 가지는 사실들을 골라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다수의 인과연쇄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의의있는 것들을, 아니 그것들만은 빼는 것입니다. (p165)

‘합리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이다.’ - 헤겔 (p167)

역사에 있어서 인과문제를 다루어 나가는 데 열쇠의 역할을 다해주는 것은 틀림없이 목적이라는 개념입니다. (p168)

"가치 개념과 떨어져 가지고서는 역사 속에서 인과관계를 추구할 수가 없다. ... 인과관계를 추구하는 배후에는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항상 가치의 추구가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 마이네케 (p169)

역사는 전통의 계승과 더불어 시작되며, 전통이란 과거의 관습과 교훈을 미래에 전달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한 것도 미래 세대의 복지를 위해서였습니다. (p170)

훌륭한 역사가들 역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건 말건 미래라는 것을 뼈 속 깊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입니다. (p170)

5. 진보로서의 역사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는 다아윈의 혁명이 일어나 가지고서야 모든 난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결국 자연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진보한다는 결과가 나온 셈입니다. (p178)

획득형질의 전승이라는 것을 생물학자들은 부정합니다만,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p179)

우리들은 진보에 일정한 시작이 있다거나 마지막이 있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겠습니다. (p179)

진보를 믿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p187)

나는 인간의 완성이라든가, 장차에 도래할 지상의 파라다이스라든가 하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신앙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솔직히 언명합니다. (p187)

문명사회라는 것은 모두가 미래 세대를 위한 희생을 현존 세대에게 강조하는 법입니다. (p187)

“역사가에서 있어서는 유일한 절대자는 변화이다.” - H. Butterfield
“타성과 운동, 정과 동, 이러한 기본 카테고리에 의하여 역사의 사회학적 연구는 시작된다.... 역사는 다만 상대적인 의미에서 밖에는 타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타성과 변화의 어느 쪽이 우선적인가가 결정적인 문제인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 실제적인 것은 절대적인 요소인 변화이고, 타성은 주관적이고 성대적인 요소이다. (p190)

헤겔은 절대자에게 세계정신이라는 신비적인 외의를 입혔고, 역사 코오스를 미래 속에 투사하지 않고 현재 속에서 끝내게 한다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과거에 대해서는 연속적인 진화과정을 인정하면서도 미래에 대해서는 부당하게도 이를 거부했습니다. (p192)

보통 우리들은 어떤 역사가들을 객관적이라고 칭찬하기도 하고 혹은 한 역사가를 딴 역사가보다 객관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대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다. 분명 그것은 단지 사실을 올바르게 입수한다는 뜻이 아니라 올바른 사실을 선택한다, 혹은 다시 말해서 올바른 의미 기준을 적용한다는 뜻이겠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그것은 그 역사가가 자신의 사회적․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그 일부는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 그러한 위치에 말려들어가 있는가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 즉 말하자면 완전한 객관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에 달린 것입니다. 둘째로는 그 역사가는 자신의 비젼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그 안목이 전적으로 목전의 자기 위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보다는 과거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영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193)


역사서술을 진보하는 과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발전해 나가는 제 사건의 진전에 대해서 부단히 넓혀지고 깊어지는 통찰을 마련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p195)

“몰락에 처한 시대에는 모든 경향은 주관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모든 일이 새 시대를 향해서 결실해 나가는 시대에는 모든 경향은 객관적인 것이 된다.” - J. Juixinga, Men and Ideas(1959) (p196)

과거 200년간에 걸쳐서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역사가 일정한 방향을 따라서 진행된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방향이 전체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는 것, 즉 인류는 나쁜 상태로부터 좋은 상태로, 저급한 상태로부터 고등한 상태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읍니다. (p197)

역사 진행에 대한 방향감각뿐만이 아니라 역사 과정에 있어서의 자신의 선호관념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존재’와 ‘당위’, ‘사실’과 ‘가치’ 사이에 설정되었던 대립은 해소되었습니다. (p197)

역사란 대체로 사람들이 한 일을 기록하는 것이지 사람들이 하지 못한 일에 대한 기록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그것은 불가피하게 성공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p198)

‘가장 유용한 것’이라는 기준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 적용이 용이하다거나, 자명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그 때 그때의 순간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에 유용한 기준도 아니고 현존하는 것은 모두가 정당하다는 견해에 굴복하는 기준도 아닙니다. ..... 역사는 소위 ‘지연된 성공’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오늘의 명백한 실패도 내일에는 중요한 공헌을 하게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p203)

1920년대의 역사가가 1880년대의 역사가보다도 객관적 판단에 가깝다는 것, 오늘날의 역사가가 1920년대의 역사가보다도 더 가깝다는 것, 아마도 기원 2000년의 역사가는 더욱더 객관적 판단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놓여 있는, 그리고 역사 코스의 전전과 더불어 발전하는 그러한 기준에만 의존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나의 주장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것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만 의미와 객관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p204)

예전 강연에서 나는 자유, 평등, 정의 등과 같은 가치를 나타내는 말들의 역사적 내용이 변화해 나간다는 점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한 바 있습니다. (p205)

인간과 환경과의 투쟁을 극적으로 과장하여, 사실과 가치와의 사이에 허위의 대립과 분열을 설정해서는 안 됩니다.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할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p206)

역사가란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의 양자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p207)

역사는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요 - 만일 여러분이 낡아빠진 말이라고 탓하시지 않는다면 - 진보입니다. (p208)

우리들의 역사관은 우리들의 사회관의 반영입니다. 이제 나는 출발점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미래사회와 미래역사에 대한 나의 신념을 표명하겠습니다. (p208)

6. 넓혀지는 지평선

역사라는 것은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자연적 과정 - 계절의 순환이라든가 사람의 일생이라든가 하는 - 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의식적으로 관여하고 또한 인간이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수한 사건의 연속이라고 생각할 때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p210)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하여 자기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해온 긴 투쟁 과정입니다. (p211)

이와는 반대로 앞날을 내다보는 원망과 불안은 걸어 나온 과거에 대한 통찰을 북돋아주는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무한한 역사의 쇠사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p211)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의 사고를 다시 사고할 수 있는 존재로서, 즉 관찰활동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있고, 따라서 인간은 동시에 사고와 관찰의 주체와 객체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지위를 처음 확립한 사람입니다. (p211)

헤겔의 세계정신은 한손으로는 섭리를, 또 다른 손으로는 이성을 꽉 붙잡고 있습니다. (p213)

“철학자들이 해온 일은 세계를 다르게 해석한다는 일뿐이었지만, 참말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킨다는 일이다.” - 마르크스

마르크스와 프로이드의 저작이 나온 이후로는 역사가는 자기가 사회와 역사를 떠나서 초연히 서 있는 개인이라고 생각할 구실을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기 의식의 시대입니다. 역사가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p219)

자유방임으로부터 계획에로의, 무의식으로부터 자기 의식에로의, 객관적 경제법칙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이간은 자신의 행도에 의하여 자기 자신의 경제적 운명의 지배가다 될 수 있다는 신념에로의 전환이 이룩된 것입니다. (p221)

인간이 이성의 의식적인 활용을 통해서 환경을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을 변조한다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p223)

교육은 개인의 능력과 기회를 넓히고 따라서 개별화의 증대를 촉진함에 있어서 불가결한 강력한 수단입니다만, 그 반면에 이익집단의 수중에 있어서는 사회의 획일성을 촉진시키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가도 합니다. (p226)

역사 과정 속에서 발견된 모든 발명, 혁신, 신기술은 여하한 것을 막론하고 긍정적인 면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면을 아울러 지녀왔다는 점입니다. (p229)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반대가 새로운 발견과 발명의 진행을 가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또한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p229)

그것(400년간의 영어 사용세계의 역사)을 세계사의 중심부로 취급하고 그밖의 것은 모두를 변두리 부분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우나마 왜곡된 관찰입니다. (p236)

그것(오늘날 요청되는 두가지 요소)은 변화를 역사에 있어서의 발전적 요인으로 본다는 감각과 이성은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라는 믿음입니다. (p239)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동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 “그래도 역시 - 그것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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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09 12:06:43 *.75.15.205
그 움직임은 요술일까 마술일까? 다음 혹은 우리 앞에 펼쳐질 세상은 역사가의 사관에 입각한 주관적 왜? 어디로? 에서 벗어나 누군가? 이런한? 으로 바뀔 수는 없을까? 우리 속의 나와 우리 속의 너는 무슨 차이일까, 외계인 당신 혹은 어떤 천재에게서는 배울 수 없을까? 정화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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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0 08:58:58 *.99.241.60
저도 정화님처럼 어려운 부분에서의 좌절감과
길을 따라 죽 가다가 갑자기 나오는 갈래길,
이길 저길로 헤매다가 길을 잃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보니
복잡한 미로 속에 갇혀있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암튼 역사는 그렇게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 대한 기본바탕위에서 보아야 하고 그것이 진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네요.

앞으로 책을 옆에다 두고 한장씩 정독하고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도 조금씩 찾아보면서 아주 느리면서도 정확한 책읽기를시도해 볼 계획입니다.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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