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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8일 13시 06분 등록
들어가며...

9년 전의 일이다. 내가 다녔던 교회의 청년부 목사님께서는 가끔씩 이런 말씀을 하셨다.
“기독 청년들은 두 배의 (열심으로)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에서의 모임이 있는 날에는 와서 열심히 섬기고, 그 외 주중에는 아침 6시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자리 잡고 공부해라.”
이 말씀을 다시 떠올리니, 대학 시절로 다시 돌아가 몇 십 권의 책만이라도 진지하게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목사님께서는 위와 같이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몇 권의 책을 예로 들어 꼭 읽어보라고 하셨다. 내 기억으로는 많은 책을 언급하시지는 않았다. 그런데, 늘 등장하는 두 권의 책이 있었는데,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와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나는 그 목사님을 퍽 좋아하고 따랐는데, 왜 그 때의 이 말씀을 따르지 않았을까? 9년이 지난 뒤에서야 나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뒤늦은 만남에 후회하게 되는 것은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다. 좋은 책과의 만남에서도 ‘보다 일찍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하고 후회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 때 읽어봐야 이해도 못했을 거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그 책을 읽을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다”고 숙명론 비슷한 말을 한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 말은 열정적으로 살아 온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그 책을 읽으려고 손에 들었다가 지력의 부족으로 다시 내려놓은 열심 인생들 말이다. ‘게으름’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그럴듯한 배려보다는 따끔한 질책이 필요할 것 같다. “야, 이희석, 넌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겠어?”

누군가가 나에게 진지하게 조언하거나 추천한 책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 누군가가 신뢰있는 인물이라면, 꼭 그 조언을 받아들이고 그 책들을 읽어볼 일이다. 최근 누군가가 나에게 공부를 좀 더 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추천받은 책들 중 읽지 못한 책들이 여러 권 있다. 『철학이야기』, 『영혼의 기도』, 『자발적 복종』그리고 수십 권의 연구원 필독서들.

보다 열심히 살아가야 할 요즘이다.


■ 저자에 대하여

● 에드워드 핼리트 카 (Edward Hallet Carr)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카는 1892년 런던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캠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하고 1916년부터 1936년까지 영국 외무부에서 근무했다. 1919년에는 영국 대표단 일원으로 파리평화회단에서 베르사유조약 초안 작성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러시아의 문학과 문화에 매료되어 러시아인의 삶에 관한 다양한 글을 썼다. 1936년부터 1946년까지 웨일스 대학의 국제정치학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1939년 첫 저서인 『위기의 20년』을 출간했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는 「타임스」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파시즘에 맞서는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매료된 카는 1917년 혁명 이후부터 당시까지의 소비에트의 역사를 다루는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하여 28년 동안(1950~1978) 14권짜리의 대작 『소련사』를 완성했다. 이 책은 소비에트의 사회, 역사, 경제 등 모든 역사를 다룬 포괄적인 역작이다. 당시 가디언(Guardian)은 이 책에 대하여 “20세기 영국학자가 쓴 가장 중요한 저작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을 하였다. 이 외에도 도스토예프스키와 마르크스, 바쿠닌에 대한 뛰어난 전기도 집필했으며, 『새로운 사회』 『볼셰비키 혁명』등을 썼다. 그의 수많은 저술 중 가장 잘 알려진 『역사란 무엇인가』는 그의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1961년 출간된 『역사란 무엇인가』은 40년 넘게 전 세계적으로 역사학 입문서로 각광을 받았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구본형 선생님의 은사였던 길현모 교수님이 1964년 첫 번역 출간한 이래 지금까지 대학의 역사학도와 일반 지성인들의 필독서로 자리를 지켜왔다. 군사독재 하에서 불온서적의 목록에 오르기로 하고, 1990년대에는 국사 교과서의 서두에까지 등장하였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6차 교육과정)나 세계사교과서(6차․7차 교육과정) 초두에 카의 역사 이론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가 6차 개편을 하기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만, 이를 테면 나 같은 사람들만 카의 역사 이론을 접하지 못한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열린 ‘조지 매콜리 트리벨리언 강좌’의 강연 결과물을 묶어 출간한 책이다. 이 강연은 영국사의 대가이며 자유주의적 역사가였던 전임 학장 트리벨리언(1876~1962)을 기념한 것이었다. 하지만, 카는 역사학 교수가 아니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의특별연구원을 역임했지만, 어느 대학의 사학과에서 교수직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학술 단체의 역사 분야 석좌직을 역임한 적도 없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여 년간 영국 외무부에서 소비에트 관련 업무를 봤으며, 영국의 일간지인 「타임스」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또한 30년 동안 러시아 혁명을 연구하였다. 국제적 경력과 풍부한 학식으로 카는 국제관계를 강의하기도 했다.

이화여대 조지용 교수는 이런 특이한 배경으로 인해, 그의 역사이론이 다른 역사학자의 이론보다 도구주의적이며 실용적인 색채가 강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역사란 무엇인가』가 전세계적인 호평을 얻게 되었다고 평했다. 카는 랑케와 랑케의 비판자들 사이의 중재와 조합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그의 역사의식은 1960년대 이후 역사학과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쳐왔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랑케는 이념이나 신념, 철학이나 종교에 의해 왜곡되는 역사를 거부하고 정확한 사료를 토대로 과거의 사실, 그 자체가 진실로 어떠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라고 말했다.)

역사는 하나의 과학이며 동시에 진보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단 카는 모더니즘 역사관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역사란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라는 19세기적 견해가 카에 의하여 수정 보완되었다면, 이제 카의 지적 세계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비판적 성찰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카 이후 전개된 역사학의 발전과 변화를 탐색한 책들이 최근 10년 동안 여러 권 등장하였다. 예를 들면, 『역사란 무엇인가』 출간 40주년을 기념해 런던 역사연구소가 개최한 심포지엄의 발표 논문들을 엮은 『굿바이 E.H.카』나 카의 모던 역사학을 비판한 연구서인 김기봉 교수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등의 책이다. 김현식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카의 모던 역사학 이론을 보다 신랄하게 비판하고 카의 공과를 면밀히 재음미하며 인간적인 역사 이론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저명한 학자도 당대의 시대 상황과 이데올로기를 벗어나기란 힘들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1960년 후반부터 벌어진 세계사의 주요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에 저술된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선 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의 제2판을 위해서 상당한 자료를 수집했으나, 1982년 타계 당시에는 겨우 그 새로운 판을 위한 서문밖에 써 두지 못했다고 한다. 아쉬운 일이다. (제2판의 서문은 김택현 교수가 번역한 까치출판사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수록되어 있다.)

카는 1982년 11월 3일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한 때, 편집을 맡았던 「타임스」의 부고 기사를 끝으로 E.H.카의 리뷰로 넘어간다.
“카의 저작들은 그의 태도만큼이나 예리했다. 냉정한 외과의사의 메스로, 그는 우리 시대의 가까운 과거를 샅샅이 해부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카는 여러 세대의 역사가들과 사회 사상가들에게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 내가 저자라면..

책의 첫 장부터 낯선 학자들의 이름과 주장이 줄줄이 이어진다. 카는 역사에 대한 다양한 고찰을 시도하는데, 이미 굉장한 ‘인기’를 얻었던 이론까지 거침없이 박살내 버린다. 결국은 박살낸 셈이지만, 박살내는 방법은 아주 고상하다. ‘그것은 틀렸다’라는 표현이나 반대를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설명해가는 식이다. 카의 박식함이 드러나는 대목이지만, 무지한 내게는 독해의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아하, 이런 거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인 내용이 사실은 카가 반대하기 위해 내세운 명제임을 뒤늦게 이해하고서는 텍스트에 더욱 집중해가며 읽어야 했다.

나는 이 책이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고서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역사의 의미와 역사가의 역할 등, 다시 말해 역사철학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하여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 점은 다른 분들이 잘 언급하셨으리라 생각하고, 나는 이 책으로 얻은 깨달음이 당시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었는지를 살펴본다.

이 책이 출간된 당시의 유럽의 지성계는 정체성의 위기라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중세의 신 중심 세계관을 탈피한 그들에게 이제 ‘이성’은 모든 힘의 근원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17세기 이후의 자연과학의 발달로 이성의 꽃은 만발하였고, 인간은 자신들을 맹신하였다. 이제 그들에게 역사는 끊임없는 진보의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역사학은 이런 진보를 확인하는 학문이었던 것이다.

이성의 힘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었고, 과학기술은 인류에게 보다 밝고 편리한 미래를 제공해 주리라고 생각했었던 낙관적인 진보주의는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현실 앞에 인류는 할 말을 일어버렸다. 또한 기술의 발달은 환경의 파괴를 불러왔다.
중세시절, 신을 따르던 인류가 이성의 위대함을 발견하여 3, 4세기 동안 이성을 쫓아왔다. 끊임없는 진보를 안겨다 줄 것만 같았던 이성은 이제 막다른 골목길의 마지막까지 달려온 것으로 느껴졌다.

이것이 『역사란 무엇인가』가 출간된 당시의 유럽 지성계의 상황이었다. 뒷걸음치는 역사를 연구할 필요가 있는가? 역사적 사실들이 진보의 내용이 아니라, 퇴보를 드러낸다면 어떤 의미를 끄집어낼 수 있는가? 등의 회의가 그들을 감쌌던 것이다. 그들에게 역사는 이제 더 이상 진보의 과정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할 말이 필요했다. 하지만, 할 말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막다른 골목길을 벗어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때, 카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주었고,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역사가 카는 이러한 지성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역사학의 본질을 재규명햇다. 그리하여 역사학을 배워야 할 가치가 있는 과학적인 학문으로 부활시키는 작업을 했다. 카에게 역사학은 사실만을 밝히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역사는 그의 비유처럼 사실을 오려내고 붙이는 ‘가위와 풀의 역사’가 아니다. 역사가의 판단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를 만날 때에 비로소 ’역사‘가 된다는 것이 카의 견해였다. 이는 역사학의 본질이 상대적이고 주관적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 책에서도 카의 신념이 등장한다. 카는 진보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주장한다.

카는 역사가 진보의 과정임을 입증할 수 없다고 해서, 역사의 전개가 진보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된다고 해서, 허무주의로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카의 주장은 이렇다. 역사가 진보의 과정을 입증하지 못한다고 해서 역사학이 가치를 잃은 것은 아니며, 역사학은 과거를 밝힘으로 현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다시 그 현재를 출발점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 역사학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카의 작업은 성공적이었고, 반향은 세계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시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에서는 역사의 인과성, 과학성보다는 언어적 사고를 중요시한다. 언어는 권력이며,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세계를 이해한다. 이 ‘언어로의 전환’이 포스트모던니즘 역사학의 첫 번째 화두이다. 지금까지는 과거 사실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언어로의 전환은 그 과거 사실을 가리키는데 사용된 매개체인 언어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카의 이 저서를 다시 쓴다면(제발 이런 일이 지금은 발생하지 않기를...), 포스트모더니즘 세계관을 면밀히 연구하여, 카가 당대의 지성인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던졌던 것처럼, 21세기의 지성인들에게 수십 년간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 싶다.
또한 카는 역사의 진보에 대한 신념을 드러내었는데, 역사와 문화도 그 시대의 세계의 세계관일진데, 카의 신념도 그의 세계관에서 산물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역사를 내가 가진 세계관으로 바꾸어 표현해 보고 싶다. 나는 ‘역사의 진보’보다는 ‘역사의 유목적성과 유의미성’을 믿는다. 내가 보는 역사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직선적으로 성장하긴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진보의 과정은 아니다. 나의 이러한 역사관을 보다 타당성 있게 제시해 보고 싶다.

■ 내 마음에 들어온 글 귀

1. 歷史家와 사실

[6] 권위있는 학자들이 이처럼 맹렬하게 대랍히고 있는 대목에는 연구해 볼 만한 분야가 있는 법입니다.

[7]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 할 때에 우리들의 답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라는 보다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답의 일부를 이루게도 되는 것입니다.

[7] 19세기는 사실을 존중한 대단한 시대였습니다.

[8] 1830년대에 랑케는 역사의 도덕화를 규탄하는 정당한 항의를 제기하여 역사가의 임무는 「그것이 진정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을 따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8] 과학으로서의 역사라는 것을 열심히 주장한 실중주의자들도 그들의 강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사실 숭배를 조장했습니다. 그들은, 우선 사실을 확인하라, 그리고 나서 거기서 결론을 끌어내라고 주장했습니다.

[11] 나는 「정확성은 의무이지 미덕은 아니다」라는 하우스만의 말을 상기하게 됩니다. 역사가를 정확하다고 해서 칭찬한다는 것은, 잘 말린 목재를 썼다거나 잘 혼합된 콘크리트를 썼다고 해서 건축가를 칭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그의 일의 필요조건이지 본질적인 기능은 아닌 것입니다.

[12] 사실이란 역사가들이 그것을 찾아줄 때에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고, 어떠한 사실에 발언권을 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그리고 어떠한 순서와 전후 관련 속에서 이야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도 역사가인 것입니다.

[12]「사실은 자루와 같은 것이다. 그 속에 무엇인가를 집어넣어 주기 전에는 절대로 설 수 없다.」

[13] 시저가 루비콘이라는 작은 강을 건넜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역사가들이 자기들의 이유에 따라 결정한 것이지, 그 전에나 그 후에 수백만의 딴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13] 역사가란 불가피하게 선택적이게 마련입니다. 역사가의 해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립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굳은 핵을 믿는다는 것은 전후가 전도된 오류입니다.

[15] 역사적 사실로서는 그 지위는 결국 해석의 문제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이라는 요소는 역사의 모든 사실 속에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16] 그것은 우연적 계기에 의해서보다도 오히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어떤 특수한 견해의 감화 밑에서 그런 견해를 밑받침해주는 사실이어야만 보존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입니다.

[17]「우리들이 책으로 읽는 역사는 사실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결코 사실 그것은 아니고 오히려 인정된 판단의 체계에 불과하다.」

[27] 영국의 역사가들이 역사철학의 문제에 몰입하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그들이 역사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사의 의미란 논의의 여지가 없는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28]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이다」라고 크로체는 언명했습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현재의 문제의 관점 하에서 과거를 본다는 데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재평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사가가 가치의 재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기록될 만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입니다.

[30] 「역사는 역사가의 경험이다. 그것은 역사가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고 역사를 쓴다는 것만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30]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복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 라는 문제인 것입니다.

[32] 만일 콜링우드의 말과 같이 역사가는 자기 극중 인물의 마음의 움직임을 사상 속에 재연해야만 한다면 다음 차례로서는 독자가 역사가의 마음의 움직임을 재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독서에 대한 지혜도 얻을 수 있다. 사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하등 심원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런 일쯤은 대학생들도 일상 실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만일 어떤 머리 좋은 학생이 성쥬드(St. Jude) 대학의 대학자 죤스(Jones)의 책을 읽어보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에 그는 성쥬드 대학의 친구를 만나서, 죤스 신부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가 항상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가 라고 물어볼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 역사책을 읽을 때에는 항상 역사가의 머리 속에서 오고가는 사색의 음을 잡아내야 합니다. 만일 아무것도 들을 수가 없다면 여러분이 음치이거나, 역사가 쪽이 둔재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33] 역사가는 자기가 취급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34]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들은 비로소 과거를 볼 수도 있고 과거에 대한 이해도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36]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써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40] 가끔 나에게 역사가들이 역사를 서술할 때에 어떻게 진행시켜 나가는가를 물어봅니다. 내 경우에는 우선 기본 史料라고 생각되는 것을 조금만 읽기 시작하면 근질증을 참을 수 없어서 그대로 쓰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부분이 처음 부분이어야 한다는 법도 없고 어디거나 상관없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읽는 것과 쓰는 것은 동시에 병행되어 나갑니다. 한편으로는 읽어가며 한편으로는 써 붙이고, 깎아내고 다시 쓰고, 지워버리고 하는 것입니다. 읽는 것은 씀으로 해서 인도되고 방향이 제시되고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즉, 쓰면 쓸수록 내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더욱 잘 알게 되고, 내가 찾아낸 것의 의미와 관련성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41] 역사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경제학자들이 인풋트와 아우트풋트라고 부르는 이 두 개의 과정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고 실제에 있어서는 단일 과정의 두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42] 역사가는 사실의 천한 노예도 아니요, 억압적인 주인도 아닙니다.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는 평등의 관계에 있는 것이며, 말하자면 기브 앤드 테이크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42]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맞추어서 사실을 형성하고, 자기의 사실에 맞추어서 해석을 형성하고 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종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자 중의 어느 한 쪽만을 우위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43]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가 아울러 내포되는 것입니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43]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2. 사회와 개인[47] 단순한 사회는 복잡하고 발달한 사회보다도 획일적입니다. 그 의미는 그러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다양한 기능이나 직업의 다양성을 요구하거나 그러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일이 훨씬 적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의 개별화의 증대라는 것은 발달된 근대사회의 불가피한 산물이며 이와 같은 경향은 사회활동 전체를 위에서 밑바닥까지 물들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47]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가 필요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48] 개인숭배라는 것은 르네상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때까지는 「민족, 민중, 당파, 가족, 단체 등의 일원으로서의 자각밖에 없었던」인간이 이 때에 와서 마침내는「정신적인 개인이 되고 그러한 존재로서의 자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9] 근대 세계의 발전에 수반되었던 개인화의 증대라는 것도 전진하는 문명의 통상적인 한 과정에 불과했었다는 점입니다.

[51] 지금 나는 방정식의 양쪽에 있는 개인과 사회적 요소와의 비중을 물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역사가는 어느 정도까지가 단독의 개인이고 어느 정도까지가 자신의 사회 및 시대의 산물이겠습니까.

[52]우리는 가끔 역사과정은 「행진하는 행렬」과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는 대단히 훌륭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가들이 홀로 솟은 암벽 위에서 아래 경치를 내려다보는 독수리나 사열대에 선 중요인물과 같은 위치에 자신을 놓고 생각한다는 위험성이 없는 한에 있어서 말입니다. 이것은 당치도 않은 이야깁니다. 역사가도 행렬의 한구석에 끼어서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보잘것없는 인물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행렬이 굴곡하여 혹은 우로 돌고 혹은 좌로 돌고 때로는 거꾸로 되돌아오고 함에 따라 행렬 각 부분간의 상대적인 위치도 항상 변해가게 마련입니다.

[54] 위대한 역사란 분명히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비전이 현재의 諸문제에 대한 통찰에 의하여 빛을 받을 때에만 씌여지는 것입니다.

[58] 지금의 나의 목적은 두 개의 중요한 진실을 밝히는 데에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첫째로는 역사가가 문제에 접근하는 입장부터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의 연구를 충분히 이해할 수도 없고 평가할 수도 없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그 입장 자체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뿌리박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59] 언젠가 마르크스도 말한 것처럼, 교육자 자신이 우선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 요즘 말로 한다면 세뇌자의 머리 자체가 우선 세뇌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역사가는 역사를 쓰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역사의 산물인 것입니다.

[59] 격동기의 역사가들 중에는 그 저작 속에 하나의 사회와 하나의 사회질서가 반영되지 않고 여러 질서의 계기가 반영되고 있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63] 나의 목적은 역사가의 연구가 자기가 그 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회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인가를 분명히 하자는 데에 있을 뿐입니다. 흐름 속에 잇는 것은 사건만이 아닙니다. 역사가 자신도 역시 그 속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책을 집어들 때에는 표지에 적혀 있는 저자명을 찾아본다는 것 만으로서는 충분치 못합니다. 출판시일이나 집필시일도 아울러 유의하셔야 합니다. 만일 똑 같은 강물 속에 사람은 두 번 다시는 들어설 수 없다는 철학자의 말이 옳다면, 한 역사가가 두 책을 쓸 수 없다는 말도 똑같은 이치에서 진실일 것입니다.

[65] 한 사회가 어떤 종류의 역사를 쓰고, 어떤 종류의 역사를 쓰지 못하는가 하는 것처럼 그 사회의 성격을 뜻 깊게 암시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66] 시대가 다르고 나라가 달라짐에 따라서 사회와 관점이 자기들과 어떻게 달라지는가 라는 차이점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보다 유능하다는 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입장을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란 자기가 그러한 조건 속에 얼마나 깊이 사로 잡혀 있는가를 자각할 수 있는 감수성 여하에 달렸다고 봅니다.

[66] 역사가를 연구하기에 앞서서 우선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십시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러한 이중의 시점 하에서 역사를 보는 눈을 길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66] 인물 개개인에게서 촉발된 관심처럼 역사를 보는 눈에 오류와 불공평을 초래하는 것은 없다.

[73] 오늘날 누구나 잘 아시다시피 사람들은 언제나 꼭 아니 일반적인 경우에도 자기가 충분히 인식한 동기나 기꺼이 시인한 동기에 의해서만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무의식적인 동기나 시인 안 하는 동기에 대한 통찰을 배제한다는 것은 한 눈을 억지로 감고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77] 역사적 사건에는 무엇인가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역사 코스를 잡아 비틀어 놓는 성질이 있다.

[78] 역사상의 사실은 확실히 여러 개인에 관한 사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이 고립해서 행한 행동에 관한 사실도 아니요, 또한 진실한 것이건 상상적인 것이건 개인들이 자기 행동의 동기였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동기에 관한 사실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 속에 있는 개인들의 상호관계에 관한 사실이며 또한 개인행동으로 하여금 왕왕 행위자 자신의 의도와는 별개의 아니 때로는 반대의 결과까지를 초래하게 하는 사회적인 힘에 관한 사실인 것입니다.

[81] ‘비상한 인물에게는 시대가 적합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오늘날 같으면 크롬웰이나 레스 같은 인물들도 존재조차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82] 한 시대의 위인이란 시대의 의지를 표현하고, 시대의 의지를 전해주고, 그것을 완성하는 인간을 말한다. 그의 행위는 시대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그는 곧 자기 시대를 실현하는 것이다.

[83] 위대한 인물은 항상 현존하는 세력의 대표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기존권위에 도전하는 방법을 통하여 그가 그 창조를 돕는 세력의 대표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와 같이 기존 세력에 업혀서 위대하게 된 인물들보다는 크롬웰이나 레닌과 같이 자기를 위대하게 만들어준 세력 그 자체의 형성을 조력한 위인들의 창조력이 보다 높이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자기 시대보다도 너무 앞섰기 때문에 그 위대성이 후대에 가서야 겨우 인정받게 된 위인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사역인(使役人)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83] 역사가와 그의 사실과의 상호작용이라는 상호과정은 나는 그것을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만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금일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와의 대화인 것입니다.

[84] 과거는 현재의 빛에 비쳐졌을 때에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현재도 과거의 조명 속에서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의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인 것입니다.

3. 역사와 과학과 도덕
[85] 과학은 사회에 대한 인간지식도 증진시킬 수 잇을 것인가 라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당시의 일입니다. 그 후로 사회과학의 개념, 그리고 사회과학의 일부인 역사의 개념은 19세기를 통하여 점차로 발전해 나갔고, 자연계의 연구에 적용된 과학의 방법은 인간문제를 연구하는 데에도 적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86] 과학은 이미 정적인 것, 무시간적인 것을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와 발전 과정을 취급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90] 우리들은 경험적 자료, 즉「사실」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것의 힘을 빌려서 원리에 대한 증거를 얻고, 다음으로는 이 원리를 토대로 하여 경험적 자료를 선택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90]「순환적」이라는 말보다도 「상호적」이라는 말이 보다 적절했을 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결과는 다시 동일한 장소에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리와 사실, 이론과 실제 사이의 상호작용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발견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91] 역사가들이 연구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가설의 지위와의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93] 죠르쥬 소렐(1847~1922)은 40대에 이르러서 사회문제에 관한 저작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기술자로서 일해 온 사람입니다만, 그는 어떤 상황 하에서는 과도한 단순화라는 모험을 무릅쓰고라도 특정한 요소를 분리해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93] 우리들은 자기의 길을 의식하면서 걸어 나가야만 한다. 우리들은 타당해 보이는 부분적인 가설들을 시험해봐야 하며, 발전적인 수정의 여지가 항상 남아 있도록 잠정적인 근사치를 가지고 만족해야만 한다.

[94] 즉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로부터 또 하나의 단편적인 가설을 찾아서 점진적으로 전진하며, 해석을 매개로 하여 사실을 추출하고 다음으로는 추출된 사실을 가지고 해석을 테스트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96] 우선 언어를 사용한다는 그 자체부터가 역사가로 하여금 과학자나 마찬가지로 일반화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97] 역사가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 속에는 일반적인 것입니다.

[97] 역사가란 언제나 자신의 증거를 시험하기 위해서는 일반화를 이용하는 법입니다.

[99] 역사는 일반화 위에서만 생장할 수 있습니다.

[100]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가인 이상 사실과 해석과를 분리시킬 수 없듯이 이 양자도 서로 때놓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양자 중의 하나만을 우위에 올려놓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102] 결국 내가 할 말은 역사학이 사회학적인 것으로 되면 될 수록, 사회학이 역사적인 것으로 되면 될 수록 쌍방을 위해서 더욱 이롭다는 것뿐입니다. 양자간의 경계선을 넓게 개방하여 상호간의 교류를 크게 펴 놓읍시다.

[102] 일반화라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즉 어떤 한 경우의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딴 대목의 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104]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단순한 일방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과거의 빛에 비추어서 현재를 배운다는 것은 동시에 현재의 빛에 비추어서 과거를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간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양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북돋아 주는데 있습니다.

[105] 역사가에게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가는 특정된 사건에 대한 예언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특정된 것이란 단일한 것이고, 거기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109] 관찰자와 그 대상과의 사회 과학자와 그 자료와의 역사가와 그 사실과의 상호관계는 연속적인 것이고 부단히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점이야말로 역사와 사회과학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128] 추상적인 초역사적인 기준을 세워놓고서 그것에 의하여 역사적 행동을 판가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편 모두가 이러한 기준 속에 자기들의 역사조건과 원망에 알맞은 특수한 내용을 담아 넣고 보게 마련인 것입니다.

4. 역사에 있어서의 因果關係[135]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입니다. 역사가는 내가 첫 번 강연의 마지막 대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왜냐’라는 물음을 부단히 추궁하는 것이며, 해명의 희망이 있는 한 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역사가 - 아니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위대한 사상가 - 란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혹은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왜냐’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137] 역사란 과거의 여러 사건을 원인과 결과라는 정연한 질서 하에 정돈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만은 공인된 학설이었습니다.
[140] 과학은 ‘다양성을 향하여’ 그리고 ‘통합성과 단일성을 향하여’ 동시적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이고, 이 이중적인 그리고 명백히 모순되는 과정이야말로 지식에 대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말의 진실성은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가는 그 연구를 넓히고 심화함에 따라서 「왜냐」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더욱 더 많이 축적해 나가는 것입니다.

[141] 역사가에게는 과거를 이해하겠다는 충동이 있기 때문에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해답을 단순화하고 어떤 해답을 따 해답에 종속시키고, 제사건의 혼돈과 특정된 제원인의 혼돈 속에 질서와 통합성을 도입한다는 일을 동시에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141] 역사가가 원인을 다양화하는 동시에 원인을 단순화해 나가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142] 두 개의 매력적인 함정에 대해서 논해야만 하겠습니다. 그 하나는 「역사에 있어서의 필연」이라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헤겔의 간계」라는 표딱지가 붙어있고, 다른 하나는 「역사에 있어서는 우연」이라는 것으로서, 여기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표딱지가 붙어 있습니다.

[145] 결정론이란 모든 일에는 하나 혹은 몇 개의 원인이 있고, 원인들 중 하나 혹은 몇 개에 변화가 없는 한 그 일에도 변화가 있을 수 없는 신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148] 사실은 모든 인간 행동이 그것을 보는 견지에 따라서 자유롭기도 하고 결정되어 있기도 한 것입니다.

[158] 역사적 사건이 융성과정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니라 퇴락과정을 거듭하고 있는 집단이나 국민에게 있어서는 역사의 기회나 우연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론이 우세한 법입니다. 시험의 결과란 결국 제비 뽑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 라는 생각은 열등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60] 어떤 일을 운이 나빴다고 기술해버리는 것은 그 원인을 캐낸다는 귀찮은 의무를 면하려고 할 때 즐겨 쓰는 방법입니다.

[161] 제대로 된 역사가라면, 지금까지 우연사로서 취급되어 오던 사건도 그것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보다 대국적인 견지에서는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도 있고 적절한 의의를 부여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는 경우를 흔히 체험하는 것입니다.

[161]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의 구분은 엄격한 것도 아니요, 불변한 것도 아닙니다. 즉, 어떤 사실이건 일단 그 적합성과 중요성이 인정되기만 하면 역사적 사실의 지위로 승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역사가들이 원인을 취급하는 마당에 있어서도 다분히 유사한 절차가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가의 원인에 대한 관계는 역사가의 사실에 대한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원인은 역사 과정에 대한 그의 해석을 결정하는 동시에 그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합니다. 제원인의 상하관계, 하나 혹은 한 묶음의 원인이 그 밖의 원인에 대해서 지니는 상대적 의의, 이러한 것이 역사가의 해석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는 문제를 푸는 단서를 제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163] 인간정신은 관찰된 사실을 모아놓은 잡물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서 그 중에서 「부적절한」것은 버리고 「적절한」것만을 골라내 가지고 이어붙이고 모양을 만들어서, 마침내는 지식이라고 하는 논리적이고도 합리적인 바느질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63] 역사가의 세계란 과학자의 세계와 같은 현실세계를 사진 찍어 놓은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많고 적고 간에 현실세계를 이해하고 정복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작업상의 모델과 같은 것입니다.
[165] 역사란 역사적 의의라는 견지 하에서 선택과정인 것입니다. 역사는 현실에 대한 인식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는 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인과적 자세에 있어서의 선택체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65] 역사적 의의에 대한 규준이 되는 것은 자신의 합리적인 설명과 해석의 원형 속에 인과 연쇄를 맞추어 넣는 역사가의 능력이라고 하겠습니다.

[168] 역사에 있어서 인과의 문제를 다루어 나가는데 열쇠의 역할을 다해주는 것은 틀림없이 목적이라는 개념입니다.
[169] 현재의 빛 속에서 과거에의 이해를 깊이하고 과거의 빛 속에서 현재에의 이해를 깊이한다[170] 현재란 것은 과거와 미래와를 갈라놓는 가공적인 선이라는 개념적 존재에 불과합니다. … 과거도 미래도 모두가 동일한 시간선상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과거에의 관심과 미래에의 관심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은 알기 쉬운 이치라고 생각됩니다.

[170] 역사는 전총의 계승과 더불어 시작되며, 전통이란 과거의 관습과 교훈을 미래에 전달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록이 보존되기 시작한 것도 미래 세대의 복지를 위해서였습니다.

[170] 역사가는 ‘왜냐’라고 묻는 동시에 ‘어디로’라고 묻는 법입니다.

5. 진보로서의 역사[171] 역사를 해석하겠다는 열망은 너무나 뿌리 깊은 것이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어떠한 건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신비주의나 시니시즘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173] 역사 과정이 향해 나가는 골을 설정함으로써 전연 새로운 요소 - 목적론적 사관 -를 도입한 것은 유태인들이었으며, 다음에는 그리스도 교도들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역사는 의미와 목적을 지니게 되었습니다만 그 대신 현세적인 성격을 상실했습니다.

[175] 자연적 자원에 대한 인간의 힘과 인류의 복지를 위한 그 지적 이용방법은 장래에 있어 무한히 발달할 것으로 본다.

[175] 우선 내 자신만 해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교육받고 자랐다는 점, 그리고 나보다도 15년쯤 연장자인 버트란트 러셀의 「나는 빅토리아시대의 낙관주의가 한창 무르익었을 당시에 자라났고 .... 아직도 - 나에게는 그 당시의 안쾌했던 어딘가 희망에 찬 기분이 남아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찬성이라는 점을 미리 인정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178] 진화를 진보와 동일시하는 다윈의 혁명이 일어나 가지고서야 이러한 모든 난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결국 자연도 역사와 마찬가지로 진보한다는 결과가 나온 셈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보의 근원인 생물학적 유전과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의 근원인 사회적 획득과를 혼동함으로써 보다 중대한 오해를 터놓게 된 것입니다.

[179] 역사는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181] 변화만 빨랐고 진보는 늦었던 과거 4백년간에 걸쳐서, 자유가 보존되고 지켜지고 넓혀지고 마침내는 이해되기에 이르렀던 것은 폭력과 끊임없는 악의 지배에 항거하기 위하여 하는 수없이 취해졌던 약자들의 집단적 노력에 의한 것이다.

[182] 역사가에게 있어서는 진보의 종국은 이미 진화된 것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한없이 먼 곳에 있는 것이고, 그에 대한 지표는 우리들 前進途上에서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는 것입니다.[183] 사실 내가 만일 역사의 법칙이란 것을 만들어 내겠다고 애써 본다면, 어떤 시기에 문명의 발전을 위해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집단 - 계급, 국가, 대륙, 문명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만 - 은 다음 시기에는 같은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취지의 것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집단에는 전시기의 전통과 이해와 이데올로기가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다음 시기의 요구 조건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당연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집단에게는 몰락의 시대로 보이는 것이 딴 집단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전진의 시작이라고 보인다는 일이 극히 흔하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진보란 모두에게 평등하고 동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184] 인간은 조상들의 경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언제나 꼭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란 자연계에 있어서의 진화와는 달리 습득된 자산을 토대로 한다는 것, 이것은 역사의 한 전제입니다.

[185]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진화는 기술의 발달에 비해서 결정적으로 뒤늦어지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요.

[185] 역사에는 전환점이 있습니다. 지도적 역할이나 주도권이 그럴 때마다 한 집단이나 지역으로부터 타집단, 타 지역으로 넘어갔습니다. 근대 국가가 일어나고 중심세력이 지중해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던 시기나 프랑스혁명의 시기 등은 근대에 있어서의 그 현저한 예였습니다.

[187] 진보라는 것은 추상적인 말입니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 목적은 역사진행의 과정 속에서 그때그때마다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의 외부에 어떤 출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87] 문명사회라는 것은 모두가 미래 세대를 위한 희생을 현존 세대에게 강조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희생을 미래의 보다 나은 세계라는 명목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이를 신의라는 명목 하에 합리화하는 태도와 대조되는 세속적인 합리화라고 하겠습니다. 뷰리의 말에 「후세를 위한 의무라는 원리는 진보의 관념의 직접적인 소산이다.」

[188] 사회과학 - 역사를 포함한 - 은 주체와 객관을 따로 떼어놓고 관찰자와 관찰 대상고의 사이에 엄격한 분리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지식이론과는 조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양자간의 상호관계와 상호작용의 복잡한 과정을 정당하게 다루어 나갈 새로운 모델이 필요합니다. 역사 사실은 완전히 객관적일 수는 없습니다.

[190] 역사가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절대자는 변화이다.

[193] 미래만이 과거를 해석할 열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만 우리들은 역사에 있어서의 궁극적 객관성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가 미래를 조명하고 미래가 과거를 조명한다는 것은 역사의 합리화인 동시에 역사의 설명입니다.

[193] 우리가 어떤 역사가를 객관적이라고 할 때에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그것은 그 역사가가 자신의 사회적, 역사적 위치에서 오는 제한된 시야를 넘어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로는 그 역사가는 자신의 비전을 미래에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그 안목이 전적으로 목전의 자기 위치에만 국한되어 있는 역사가들보다는 과거에 대한 더욱 깊고 더욱 영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4] 과거를 취급하는 역사가들도 미래에 대한 이해에 접근해야만 비로소 객관성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195] 역사 서술을 진보하는 과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발전해 나가는 제사건의 진전에 대해서 부단히 넓혀지고 깊어지는 통찰을 마련해 나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거에 대한 건설적인 견지」를 가져야 한다는 말에 대한 나의 해석인 것입니다.

[196] 과거 200년간에 걸쳐서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역사가 일정한 방향을 따라서 진행된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 방향이 전체적으로 옳은 방향이라는 것, 즉 인류는 나쁜 상태로부터 좋은 상태로, 저급한 상태로부터 고등한 상태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204]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1920년대의 역사가가 1880년대의 역사가보다도 객관적 판단에 가깝다는 것, 오늘날의 역사가가 1920년대의 역사가보다도 더 가깝다는 것, 아마도 기원 2000년의 역사가는 더욱더 객관적 판단에 접근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역사에 있어서의 객관성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목전에 놓인 어떠한 고정 불변의 판단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놓여있는, 그리고 역사 코스의 진전과 더불어 발전하는 그러한 기준에만 의존하고 생존할 수 있다는 나의 주장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것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일관된 연관성을 확립할 때에만 의미와 객관성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206]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과 가치에 관한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단서는 보통 우리들이 「진리」라는 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사실의 세계와 가치의 세계의 양쪽에 걸쳐 있는 말로서 양쪽의 요소에 의하여 성립되고 있습니다.

[207] 역사적 진리의 영역은 이러한 양극 - 가치를 떠난 사실이라는 북극과, 사실이 되고자 애쓰는 가치 판단이라는 남극 - 의 중간지대의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란 사실과 해석, 사실과 가치의 양자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208] 역사는 본질상 변화요, 운동이요 - 만일 여러분이 낡아빠진 말이라고 탓하시지 않는다면 - 진보입니다. 이리하여 나의 결론은 진보를 가리켜서 「역사 서술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가설」이라고 말한 액튼의 말에 되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08]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6. 넓혀지는 지평선[210~211] 부르크하르트는, 역사는 「역사는 의식에 각성에 의하여 생겨난 자연과의 결렬」이라고 말햇습니다. 역사는 인간이 이성을 활용하여 자기 환경을 이해하고 환경에 작용해온 긴 투쟁 과정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근대는 이러한 투쟁을 혁명적으로 넓혀 놓은 시기입니다.
[214] 애담 스미드와 헤겔의 제자인 마르크스는 세계가 합리적인 자연법칙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사고방식 하에서 출발하였습니다.

[214] 마르크스의 결론적인 견해를 종합해보면 역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삼자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 하에서 일관된 합리적인 전체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즉 그 하나는 객관적인, 주로 경제적인 법칙을 따라서 전개되는 사건의 진전이며, 그 둘은 이에 대응하며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서 이룩되는 사상의 발전이며, 그 셋은 이에 따른 계급투쟁의 형태하의 실천이라는 것이며, 이것이 혁명의 이론과 실천에 조합과 통합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219] 지금은 자기 의식의 시대입니다. 역사가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222]인간세계에 대한 이성의 적용의 전진을, 그리고 자신과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할 인간능력의 증대를 반영하는 것으로서, 만일 필요하다면 낡은 표현을 빌려서 이것을 진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고 봅니다.

[222] 오늘날에 와서는 과학조차도 객관적인 자연법칙을 탐구하고 확립한다는 것보다도 자연을 자기 목적에 이용하고 자기 환경의 변형을 가능케 할 유용한 가설을 짜내는 데에 더욱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이성의 의식적인 활용을 통해서 환경을 변형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을 변조한다는 일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24] 이성의 확대라는 이러한 현상은 내가 지난 강연에서 개별화라고 부른 과정 - 문명의 발전에 수반된 개인의 기능과 직업과 기회의 다양화 - 의 한 국면에 불과합니다.

[224] 만일 개별화 과정에 대한 학문적인 실례를 원하신다면 과거 50~60년 동안에 나타난 역사나 과학이나 그 밖의 모든 개개 학문 분야에 있어서의 무한한 분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결과로 얼마나 엄청난 수의 다양한 개별적인 전문화가 초래되었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226] 교육은 개인의 능력과 기회를 넓히고 따라서 개별화의 증대를 촉진함에 있어서 불가결한 강력한 수단입니다만 그 반면에 이익집단의 수중에 있어서는 사회의 획일성을 촉진시키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239] 액튼의 세대는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고 있는 두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즉, 그것은 변화를 역사에 있어서의 발전적 요인으로 본다는 감각과 이성은 변화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라는 믿음입니다.

[243]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실은, 영어사용세계의 인텔리나 정치 사상가들이 이성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점보다도, 부단히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주도한 감각이 감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243] 중요한 일은 지금에 와서 이 변화라는 것이 성취, 기회, 진보 등으로서 생각되지 않고 공포의 대상으로서 생각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44]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래도 역시 그것은 움직인다.

[244] ‘누가 뭐라건 나 자신은 변함없이 낙관주의자입니다. 루이스 네이미어경이 나에게 政綱이나 理念은 피하라고 훈계할 때에, 오크쇼트 교수가 나에게, 우리들은 어떠한 특정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중요한 일은 아무도 보오트를 뒤흔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 뿐이다라고 말 할 때에, … 트레바 로퍼 교수가 떠들어대는 急進主義者들의 콧등을 내려칠 때에, 모리슨 교수가 공정한 보수정신으로 집필된 역사를 옹호할 때에, 나는 격동하는 세계, 진통하는 세계를 내다보며 위대한 과학자의 낡은 말귀를 가지고 대답할 것입니다. : ‘그래도 역시 – 그것은 움직인다.’

[246] 역사이론을 풀어나가는 저자의 태도는 지극히 대중적이다. 아무리 깊은 본질적인 문제를 다루어나갈 때에도, 이론을 위한 이론이라든가, 추상을 위한 추상이라든가 하는 일체의 고답적인 요소를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247] E.H.카의 사관이 일견 미온적이고 유동적인 것 같으면서도 그 핵심에 믿을 수 있는 확고한 신념과 낙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이상과 같은 상대성에 철한 사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격동하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사안과 달관을 몸소 구현하고 있는 선각자를 목도할 때에 학문에 대한 우리들의 신뢰와 용기는 다시 한 번 새로워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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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5.08 12:45:06 *.249.167.156
와, '저자에 대하여' 부분이 좋다.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조목 조목 짚어주는 느낌이네. '내가 저자라면'도 착실하고^^ 수고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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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09 07:19:30 *.72.153.12
카는 저자가 속한 시대상황을 아는 것을 강조했는데, 현석님의 리뷰에서 카가 글을 쓸 당시의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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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5.09 10:47:28 *.75.15.205
당신이라면 21세기의 소수의 선택받은 지성인이 아니라 보다 평범한 다수의 민중을 향해 새로운 역사를 쓸수 있을 것이라고 바래요. 그리고 당신이 모색하는 그런 포스트모더니즘적 역사관을 하루라도 빨리 우리에게 펼쳐놔 주기를 ...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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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자식
2007.05.09 21:55:45 *.109.237.110
희석님의 글이 점점 힘을 싣고 가는 느낌이에요.
잘 읽었어요.
그나저나 이거 읽고 나니.
나도 이책 안 읽으면 후회할 것 같은 불안함이 엄습하네요...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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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5.10 13:23:41 *.99.241.60
저자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도 좋았고,
더 좋은 부분은 미로속을 걸었던 길이
정리된 글을 읽고 조금씩 보이는것 같다.

잘 읽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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