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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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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15일 20시 28분 등록
저서: 유러피언 드림(EUROPEAN DREAM), 주식회사 민음사 출판(2005) 옮긴이 :이원기
저자: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 저자에 관해서

편협(偏狹) : 한쪽으로 치우쳐 도량이 좁고 너그럽지 못함
이중적 시선
“변화하려는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보는 이중적 시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고쳐야 할 것과 고치지 않고 오래 써야 할 것을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고쳐야 할 것은 반드시 해체하고 제거해야 하며, 남겨야 할 것은 철저히 보존해야 한다. 그리고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을 분명히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란 결국 모순과 대립이 함께 ‘가장 잘 살 수 있는’ 공생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구본형 -코리아티니 192p)

Jeremy Rifkin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지나치리만큼 애착과 찬사를 보내고 있음이 사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실천성에 높은 점수를 둔 상태이기 때문에 나의 편협된 생각이 곳곳에 나타날 수 있다. 말하자면 그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이중적 시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그의 저서 ‘Beyond Beef’ 나 ‘The Hydrogen Economy’ 등에서 나는 그의 이야기에 90% 이상의 긍정의 표를 던지면서 그가 이야기 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존중과 자연과의 관계성을 중시함과 동시에
이론적 실천가임에 그를 찬사해 마지않는다.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치열한 반대운동을 벌여서 식품업계로부터‘식품의 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고 일부에서는 그를 ‘사이비 저술가’ 또는 기껏해야 ‘영향력 있는 선동가’로 치부당하는 것도 ‘인류의 삶’에 대한 그의 지나친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라 이야기 하고 싶다. 그의 저서 ‘유러피언드림’에서도 그의 세계 환경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음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환경과 삶의 질을 이야기 할 때는 말만은 노인의 잔소리라고 판단될 정도로 문장이 길어지고 장황해짐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또한 얼마나 개인적 편견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종의 비평가나 미디어의 평가)에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러한 ‘개인의 시각의 차이가 판단에 있어서 얼마나 다른 결과, 또는 처방을 가져올 수 있나’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의 시간을 가지는 의미에서 개인적 경험을 잠깐 언급해 보고자 한다.
지난 여름방학 때 견디기 힘든 어지럼증과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기어가다시피 한 적이 있다. 검사결과는 심각한 빈혈증세이며 가슴통증 또한 빈혈에서 비롯되었다는 진단결과였다.
처방은 빈혈치료제와 균형 잡힌 식사,( 평소 육식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상태며 본인 먹거리로 빈혈이나 영향 결핍 상태에 있는 것은 당연지사라는 소견을 2번 이상 들었음 )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들었다. 이러한 본인의 건강 상태에서 한의원에서의 진단과 처방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건강이나 전체적 혈의 흐름 상태가 이나마 유지되고 있음은 ‘ 채식위주의 식단’때문이라는 것이다

194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제레미 리프킨은 펜실베니아의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학사를 취득하고 터프스 대학의 플레츠 스쿨에서 국제 관계학 석사 취득했다. 베트남 반전운동 참여를 계기로 인생관이 달라진 리프킨은 70년대부터 워싱턴 DC에서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벌인다. 1977년 현재 그가 활동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경제동향연구재단’(Foundation on Economic Trends)을 세웠다. 또한 와튼 스쿨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의 교수이기도 하며 17권의 방대한 저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인문학을 비롯한 자연과학, 사회과학의 영역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자본주의와 과학문명을 비판해 왔다 또한 그는 부인 캐롤 그룬왈드 리프킨과 함께 채식운동과 녹색생활운동도 열정적으로 펼치는 가운데 강의와 저술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단순한 이론가를 넘어 실천가의 모습 그 자체다.
2003년 11월에 서울의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그를 헨리 데이빗 소로우와 관련지어 생각해 본다면 내가 지향하는 삶은 ‘소로우적 삶’이다 그러나 한 개인의 힘이 얼마만큼 강력한 힘을 발할 수 있는가는 제레미 리프킨을 통해서 깨닫는다. 그의 정열과 성실함, 그리고 세상을 향한 지극한 사랑은 추종을 넘어선 그에 대한 나의 광신이다.

다음에 보여주는 방대한 저서가 그의 삶의 방향을 보여 줄 것이다.
〈 저 서 〉
The European Dream (Tarcher/Penguin, 2004) 유러피안 드림
The Hydrogen Economy (Tarcher/Putnam, 2002)수소혁명
The Age of Access(Tarcher/Putnam, 2000) 소유의 종말
The Biotech Century(Tarcher/Putnam, 1998)바이오테크 시대
The End of Work(Tarcher/Putnam, 1995) 노동의 종말
Biosphere Politics: A New Consciousness for a New Century (Crown Publishers, Inc., 1991) 생명권 정치학
Time Wars: The Primary Conflict in Human History(Henry Holt and Company, 1987)
Voting Green (with Carol Grunewald Rifkin)(Doubleday, 1992)
Beyond Beef: The Rise and Fall of the Cattle Culture
(Dutton Books, 1992) 육식의 종말
The Green Lifestyle Handbook: 1001 Ways You Can Heal the Earth (Editor)
(Owl Books, 1990)
Declaration of a Heretic(Routledge and Kegan Paul, 1985)
Algeny(Viking Press, 1983)
Entropy: A New World View (with Ted Howard)(Viking Press, 1980) 엔트로피
Emerging Order: God in the Age of Scarcity (with Ted Howard)
(Ballantine Books, 1979)
The North Will Rise Again: Pensions, Politics and Power in the 1980s (with Randy Barber)(Beacon Press, 1978)
The North Will Rise Again: Pensions, Politics and Power in the 1980s (with Randy Barber)(Beacon Press, 1978)
Who Should Play God? The Artificial Creation of Life and What it Means for the Future of the Human Race (with Ted Howard)(Delacorte Press, 1977 )

2. 나를 잠시 머물게 한 글귀


〔12〕유러피언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척보다는 삶의 질을, 무제한적 발전보다는 환경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 가능한 개발을, 무자비한 노력보다는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심오한 놀이를, 재산권보다 보편적 인권과 장녀의 권리를, 일방적 무력행사보다 다원적 협력을 강조한다.

〔31〕청교도들과 그 이후 도착한 다른 억압받은 종파와 교단의 신자들은 미국의 거대한 황무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들이 정복하고 되 찾아야할 파괴된 자연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을 신앙과 인내심을 통해 황무지를 개척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새로운 에덴동산을 건설하는 하나님의 사자로 여겼다.

〔48〕즉시 만족에 대한 욕구는 과도한 자신감과 권리 의식과 합쳐져 정서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자아 도취형인간은 대개 살면서 겪게 되는 좌절을 잘 감당하지 못하며 반사회적 행동을 표출하기 쉽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가질 권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을 얻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52〕미국인들의 공공의식을 유발하는 요인 가운데 많은 부분이 개인주의와 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대다수 유럽 국가의 경우 시민사회는 훨씬 세속적인 목표를 추구하며 ‘개인의 자선’이라는 기독교 개념보다는 공동체의 복지에 대한 ‘집단책임’이라는 사회주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79〕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이 개인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보장해 주느냐는 문제에 있어서는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처음부터 무료 교육의 기회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회적 지원이 거의 없이 시장에서의 성공과 실패에 관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했다. 반면 유럽인들은 치열한 적자생존의 시장에서 균형을 잡는 책임이 사회에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뒤쳐지는 사람이 없도록 불운한 사람들을 사회가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드림은 둘 다 나름대로 강점과 약점을 갖고 있다. 종종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반면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냉혹하며 어려운 동포들에 대한 적절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희한하게도 유럽인들은 미국의 충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의 지적을 무시한다.

〔82〕대다수 미국인들에게는 유럽은 느긋하게 쉬고, 감각을 일깨우고, 원기를 회복하고 ,정서를 풍부하게 하는 곳이다. 초여름 저녁 스위스 바젤의 라인 강을 따라 걸으면서 남녀와 가족들이 튜브를 타고 빠른 물살 위를 떠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겨울이면 추위를 피해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언덕 마을에 있는 14세기 교회의 어두컴컴하고 따뜻한 예배당을 찾는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추억들인가?
그러나 소득과 지출, 투자와 수익, 생계수단 등의 ‘현실 세계’와 관련된 문제에 관한한 미국인들은 유럽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일본과 동남아시아 신흥국가들에 주목한다.

〔103〕유럽에서 일반적인 가정을 방문하면 가구나 첨단 기기가 미국의 일반 가정에 있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가구나 기기는 품질이 아주 우수하며 보수도 잘 되고 있다. 개인의 외모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아는 유럽의 남자와 여자들은 미국에 있는 내 일부 친구들처럼 많은 옷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갖고 있는 옷은 아주 고급이며 그 옷을 입고 외출하면 멋져 보인다. 그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는 ‘스타일’때문인 듯 하다. 사실 모든 것에서 가장 변덕스럽고 모호한 것이 스타일이다. 유럽에서는 누가 얼마나 가졌느냐보다는 삶을 어떻게 즐기느냐가 더 중요하다. 대다수 유럽인들은 이 점에서 매우 확실하다.

〔110〕반면 EU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빈곤층이란 소득이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평균 소득의 절반 미만인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기준으로 따지자면 미국 아동의 22퍼센트가 빈곤 상태에 살고 있다.

〔112〕유럽 집행위원회는 행복도를 측정하기 위한 다른 수많은 지표를 참조하고 있다. 거기에는 사회결속력 강화 정도, 사회 배타성 약화 정도, 사회적 자본 성장 정도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지속 가능한” 경제를 원한다. “지속 가능한 경제”란 ‘후세대가 자신의 욕구에 부응할 수 있는 능력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서 현재의 욕구에 부응하는 것’을 말한다.

〔114〕유러피언 드림은 과거에 대한 부인이라기보다는 과거를 바탕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꿈은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뒤에 무엇을 남겨 두고 떠나는지 올바로 알아야 한다. 모든 여정에는 목적지뿐만 아니라 출발점도 반드시 있다. (중략) 새로운 길에는 길잡이가 필요하듯이 유럽의 새 꿈이 나갈 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유럽이 걸어온 옛 길을 다시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125〕실용지식이 글로 쓰 여진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말을 통해 의사가 전달되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가까이 있어야 했다. 속성상 구술문화는 더욱 친밀하고 공동체 성격을 띤다.

〔130〕봉건 유럽에서는 땅이 사람을 소유했지 사람이 땅을 소유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정해진 신분을 부여받고 태어났으며 공동체를 위해 그 신분에 해당하는 의무를 다해야 했다. 당시 기독교인들의 삶은 그보다 넓은 무대에서 펼쳐진 드라마였다. 공간은 대형 사다리로 인식되었다. 사다리의 맨 아래 가로대에는 세상에서 가장 신분이 낮은 생명체가, 맨 위에는 하나님이 존재했다. 모든 생명체는 삶의 사다리에서 고유의 가로대를 할당 받았고 자신보다 위에 있는 모든 이를 섬겨야 하며 아래에 있는 모든 이에게 베풀어야 했다. 계급과 신분이 세습에 의해서 결정 되던 사회였다.(중략) 르네상스 초기의 미술에 원근법이 도입되면서 인간의 공간개념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사람’의 시선이 위쪽의 하늘에서부터 멀리의 ‘풍경’으로 옮아갔다. 원근법으로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세계를 보게 되었다.

〔132〕베이컨은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고 그 근본부터 바꿔 놓을 수 있다‘면서 이런 신과학의 목표는 ”우주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을 확립하고 확장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베이컨이 자연을 이용하는 방법론을 제공했다면 자연을 자원으로 변환하기 위한 개념적 틀을 제공한 사람은 17세기의 위대한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였다.

〔145〕신흥 부르조아 계급은 자신들의 삶을 철저히 짜여진 일과의 연속으로 축소시켰다. 일하는 시간, 저녁식사 시간, 오락 시간, 등 모든 것이 정확히 정해졌다. 대금 지불, 계약, 근무, 식사, 등 모든 일이 기한과 정해진 시간을 따라야 했다. 그때부터 어느 누구도, 어떤 것도 달력이나 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154〕미국인들은 공간과 시간을 더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에 비해 덜 느긋하다. 유럽에서는 ‘meander(우회적으로 이야기 하다.),
ponder(묵묵히 생각하다.), muse(묵상하다.) 같은 어휘가 존중받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생산적인 것들을 행복하게 생각하며 게으름을 도덕적인 문제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유럽인들은 게으름을 탐내고 부러워한다. 그들은 느긋하게 장미꽃 향기를 맡으려 한다. 유럽인 친구들은 내게 인생을 진짜 즐기려면 모든 욕심을 포기하고 제3자의 입장에서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냥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은 재산과 행복을 운명에 맡길 생각이 별로 없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행복이란 스스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노력해서 다가가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내가 아는 유럽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거나 믿지 않는다.

〔169〕역사에서 시대가 흘러가는 과정도 개인이 일생의 여정을 따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일생은 전체에서 자아를 분리해 나가는 과정이다. 먼저 유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함으로써 어머니와 분리된다. 그 다음 청소년기에는 가족과 분리되고, 성인 초기에 는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 되려고 애쓴다. 그러나 이 분리 과정의 각 단계에는 개인이 점차 넓어지는 사회적, 환경관계에 새롭게 동화 하려는 노력이 따른다. 다시 말해 인생여정은 점점 강해지는 개인화 노력과 더욱 커지는 사회적 의무사이에서 미묘하게 균형을 맞춰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172〕미국인들은 자율적 개인 개념을 통해 종교적인 동시에 세속적일 수 있고, 신앙 지향적이면서 합리성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두개의 상반되는 세계를 동시에 사는 것은 삶의 목적에 혼란을 줄 수 있다. 종교 개혁적 측면은 영원한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공통을 경험할 것을 강조하지만 계몽주의적 실용적, 합리적 측면은 바로 이 세상에서 인류 발전의 이름으로 행복을 추구하라고 유혹하기 때문이다.

〔205〕미국의 민주주의는 헐값이나 무료로 차지할 수 있는 땅이 넓다는 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비로 그런 조건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형성했고 그 기본 특징을 이루고 있다.

〔205〕미국사회의 특이한 점은 민주주의 체제라기보다는 방대한 대륙의 자원을 발견하고 개발하고 자본화하는 하나의 거대한 회사처럼 보인다.

〔206〕개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부를 축척하는 것이 성공의 주요 척도인 한, 그 대가가 무엇이든 그 결과 문명이 어떻게 되든 물질적인 풍요가 구호인 한, 개척자들에게 소중했던 보통 사람에 대한 믿음과 그것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한다. 그런 사회가 세우는 최상의 목표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8〕재산의 개념이 소유에서 접근성으로 바뀌는 것은 민족국가의 통치 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계몽주의 사상가와 경제학자들은 사유재산제도가 국가에 합법성을 부여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주요 임무는 국민들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그러나 지금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상거래 관계는 영토로 규정되는 정치 단위 내부의 거래 보다는 범국가적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성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사유재산 관계가 새로운 상거래 관계에 흡수된다면 민족국가 자체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227〕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주권을 가졌다고 선언하면서 느꼈던 도취감에서 깨어나자 ‘시민’을 더 제한적으로 정의하는데 합의했다. “재산을 가지고 있고 교육을 받은 남자에게만 정치적 권리를 준다.”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18-19세기에 새로운 민족국가로 태어난 대다수의 나라들이 그런 식으로 시민을 정의했다. 국가의 존재이유가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에 재산을 가진 남자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것은 당시로서는 합당해 보였다.

〔240〕거래방식이 시장 교환모델에서 네트워크 모델로 바뀌는 데는 거래 비용과 마진도 중요한 작용을 한다. 시장교환경제에서는 판매자가 마진에서 수익을 얻으며, 마진은 거래 비용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내가 인터뷰한 대다수의 기업경영자들은 새로운 통신과 생산기술, 그리고 거래 비용을 줄이는 새로운 조직 기법의 도입 때문에 마진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 비용이 제로에 저근하면 마진도 거의 사라진다. 그럴 경우 시장 교환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없다.

〔249〕네트워크 시스템에서는 유형 재산이든 지적 재산이든전부 생산자의 소유로 남아 있으면서 사용권만 공유된다. 지식, 정보, 노하우도 재산의 형태로 그에 따라 시장 경제 모델 아래서 사유 재산 제도의 특성이었던 명확한 영역이 사라지면서 서로를 구분하던 경계지대가 공동 영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명확한 승자와 패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시장경제에서와 달리 네트워크 모델에서는 협동 작업의 결과 요즘 말하는 윈-윈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

〔251〕네트워크 시스템은 비즈니스 모델을 초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네트워크 시스템의 개념은 우리가 시장 경제 체제에서 합당한 행동과 행복한 삶을 하지만 네트워크는 신뢰를 기본으로 한다. 시장은 사리를 추구하지만 네트워크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시장은 서로간의 거리를 두는 거래를 하지만 네트워크의 거래는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시장은 경쟁의 장이지만 네트워크는 협력의 장이다.

〔271〕EU의 정통성은 영토의 지배나 과세 권한, 또는 경찰 및 군 동원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을 기반으로 규정과 법령, 그리고 지방, 지역, 국가, 국제, 세계 차원의 여러 행위자들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 과정에 의해서 움직이는 행동규범에 있다.

〔274〕나는 EU 헌법을 처음 보면서 만약 그것이 미국에서 비준을 받아야 한다면 대다수 미국인들은 그 내용의 많은 부분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EU헌법의 구석구석에는 미국의 독립 선언서와 미국 헌법의 권리 장전에서 차용한 취지 등 미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265쪽에 이르는 EU 헌법에 담겨있는 핵심 개념과 사상은 현대 미국인들의 정서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미국인들이 그것을 본다면 믿을 수 없다거나 심지어 기피까지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274〕EU의 헌법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새로운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EU 헌법은 너무 답답하고 심지어 부담스러운 점도 있으며, 프랑스나 미국의 헌법처럼 감동적인 수사는 없지만 인류의 존재 전체를 포괄하는 권리와 책임을 규정함으로써 인권을 세계적인 의식 차원으로 넓힌 최초의 법이다. 〕EU 헌법은 그 초점이 국민이나 영토, 국가보다는 인류 전체와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보편주의를 지향한다. 〕EU 헌법의 핵심을 요약한다면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괄성을 증진하며, 인권과 자연의 권리를 옹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며,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하고 ‘심오한 놀이’를 위해 인간의 정신을 해방 시키며,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고, 세계적 의식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U 헌법 전체에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 있는 이런 가치와 목표는 태동하는 유러피언 드림의 기초를 상징한다.

〔274〕꿈은 과거의 업적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을 반영한다. 그런 견지에서 EU의 헌법은
앞으로 채워져야 할 미래를 상징한다. 아울러 고매한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 위선과 모순들이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EU 헌법 입안자들이 동경하고 살고 싶어 하는 세계의 비전과 그 여정을 감독할 수 있는 규칙들을 문서화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297〕그렇다면 EU는 도대체 무엇인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EU는 무대를 설치하고 대화를 유도하며 쇼를 감독하는 교섭정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EU는 하나의 장소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다. EU가 통일된 여권, 국기, 본부 등 국가의외형적 상징들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가장 뛰어난 특징은 불확정성이다.

〔303〕시민사회는 시장과 정부 사이에 위치한 영역이다. 시민사회는 개인의 문화생활과 그가 속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활동을 아우른다. 거기에는 종교, 예술, 교육, 건강, 스포츠, 공공 오락, 연예, 사회 및 환경 운동, 지역사회 참여, 그리고 공동체의 유대감과 사회적 결속을 형성하는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 시민사회는 문화를 가능한 모든 형태로 재생산하기 위한 만남의 장이다. 그곳의 사람들이 사회적 자본을 창출하고 행동 규범을 확립하기 위해 ‘심오한 놀이’에 차여하는 장소다.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내재적 가지다. 시민사회는 문화의 표현을 위한 포럼이며 가장 원초적인 영역이다.

〔305〕사회에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도 대부분의 경우 문화 의식에 의해 결정되었다. 예를 들어 1831년 유럽인들은 클로로포름을 발견해 그것을 수술에 사용했다. 그로부터 수세기 전에 중국인들은 침술을 마취에 사용했다. 유럽인들은 왜 침술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현실에 대한 유럽인들과 중국인들의 생각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중국문화는 정황, 전체적 사고, 상반되는 것의 상보성,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했기 때문에 침술 같은 발명을 하기가 쉬웠다. 반면, 유럽인들은 환원주의, 분석, 냉철함을 중시했기 때문에 클로로포름 같은 것을 발견하기가 쉬웠다. 그렇다고 문화 의식이 특정 기술의 진화를 사전에 결정짓는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문화 의식이 사람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며, 그 결과 각 집단의 사고방식에 새로운 발견이 나온다는 의미다.

〔314〕유럽피언 드림이 흥미진진하면서도 문제가 많은 이유는 하나의 지붕아래 보편적 인권과 편협한 문화의 권리 둘 다를 수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족국가의 목표와는 크게 다르다. 민족국가의 경우 국민의 재산권 자유를 보호하고 다양한 하부 그룹들을 단일 국가 정체성에 통합하고 동화시키는 것이 목표다. 다문화주의와 인권을 동시에 수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화적 공동체는 가족과 친족, 그리고 공통의 종교에 뿌리를 두며 대개 물리적 환경, 즉 영토를 기반으로 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다양한 인권 운동들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양한다. 그들의 민족문화가 아니라 개인의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들의 배경은 영토가 아니라 ‘생물권’ 전체다.

〔329〕유럽피언 드림의 가장 어려운 시험은 이민 문제가 될 것이다. 문화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말로는 부르짖기 쉽지만 외부인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자신들의 공간과 부를 나눠 갖기는 결코 쉽지 않다.

〔331〕새로운 유럽피언 드림은 그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꿈이다. 초기 아메리칸 드림에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도록 선택받은 젊은이들의 비전과 열정이 담겨 있었지만 유럽피언 드림에서는 그런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유럽피언 드림에서는 신앙보다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 목표는 주도권 차지가 아니라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며,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개인의 변화라는 겸허한 꿈을 이룰 기회를 갖는 미래 세계를 추구하는 꿈이다. 한마디로 말해 유럽피언 드림을 이끄는 힘은 젊음의 혈기가 아니라 노련하고 성숙한 지혜다.

〔347〕그런 필요성에서 대두된 정치 개념이 보편적 인권이다. 일부 보편적 인권 주창자들은 인권 보호가 궁극적으로 이타주의에서 비롯되며 온정 하나만으로 유발될 수 있다고 오해한다. 물론 이타주의와 온정이 인권 보호에 어느 정도 역할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권에는 다른 면도 있다. 취약성에 대한 인식과 안전의 필요성에서 비롯되는 면이 있다. 민주주의에 관한 저명한 이론가인 영국의 데이비드 비덤은 “보편적인 인간애뿐만 아니라 공동 위협에 대한 노출도 인권이 보편적이라는 주장을 정당해 준다.”고 말했다.

〔361〕그러나 만약 모든 개인과 그룹이 독특한 정체성과 상호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 인정받고 포함해 줄 것을 요구하는 다른 사람이나 그룹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다시 말해 연약성과 취약성,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투쟁 속에서 자신의 투쟁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세계관이 다르며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공감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 네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따름으로써 가능하다. 어쩌면 “남이 네게 하기를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마라”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373〕1차 대전 이전까지 미국의 외교 정책은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확장주의였고 세계적으로는 고립주의였다. 미국은 1차 대전에도 전쟁발발 3년 뒤이며 종전 1년 전인 1917년이 되어서야 뛰어들었다. 2차 대전에서도 미국은 전쟁 발발 2년 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이 있고 난 뒤에야 연합군에 합류했다.

〔380〕미국과 EU, 해묵은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드림이 궁극적으로 엇갈리는 부분은 바로 주권문제다. 글로벌화 된 세계에서 사람들은 과연 어떤 권위를 최고로 인정할 것인가? 미국은 국가의 권위를 최고로 인정하는 과거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국민에게 모든 권리를 부여하고, 국제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을 결정하는 주체가 국가 자체라야 하며 그보다 더 높은 권위는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틀 안에서 국민들은 시민적, 정치적, 사회적 권리를 부여받으며, 그런 권리를 통해 재산을 확보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유럽피언 드림은 훨씬 세계적이다. EU 회원국들이 어느 정도 의 주권은 유지하지만 그들 나라의 국민들은 국가의 법보다 상위에 있는 보편적 인권규약의 구속을 받는다.

〔392〕합법적으로 무기를 소유하는 군인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그러나 평화유지군은 인도주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

〔397〕유럽이 안보를 위해 자국의 젊은이들과 예산을 기꺼이 제공하지 않는 다면 유럽에서 독립적인 대군을 구축하겠다는 이야기는 허풍에 불과하다. 막연한 희망만으로 항모 전단의 장비와 인력을 조달하거나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거나, 세계의 압제자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는 없다.

〔407〕리스는 자신의 주장이 불러올 반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물었다. “ 이제 우리는 계몽주의 사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의무를 져야 하지 않는가?” “속박 없는 과학 탐구와 실험, 기술 적용 때문에 현재의 삶이나 존재 자체에 종언을 고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런 자유를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인정해야 하는가?”

〔421〕EU는 이미 ‘예방원칙’을 확립함으로써 리스크와 취약성 공유에 대한 유럽인들의 새로운 시각과 개인의 무한한 기회에 기초하는 미국인들의 기존 시각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글로벌 세계에서 과학과 기술에 대한 EU의 규제 정책에 핵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예방원칙’이다. 유럽의 정치 엘리트 대다수와 많은 대중들은 그 원칙을 선호한다. 반면 그 원칙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미국의 정치인들과 대중은 유럽보다 훨씬 적다.

〔427〕미국에서는 환경 문제가 부차적 이슈에 불가하지만, 유럽의 경우 환경정책은 EU 탄생의 초석 가운데 하나였다.

〔437〕그에 따라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요소들을 분석해야 된다는 옛 개녀믄 사라지고, 그 대신 각 요소를 알려면 먼저 그 요소와 전체와의 관계부터 알아야 KS다는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새로운 과학은 ‘시스템 이론’이라고 불렀다.(중략)
시스템 이론은 전체가 그 구성요소의 총합보다는 더 크다고 주장한다. 각 구서 요소간의 관계가 전체를 활성화0시킴으로써 질적으로 다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435〕지구화학적 물질과 생명체 간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과 피드백은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작용함으로써 지구의 기후와 환경을 유지하고 생명체를 보호한다. 그렇다면 지구 자체가 생명체와 다름없는 것이다.

〔438〕지금 우리세계에는 새로운 과학이 등장하고 있다. 그 신과학 온동을 ‘제2의 계몽주의’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신과학의 원칙과 가정은 네트워크적 사고방식과 더 잘 어울린다. 기존 과학의 특성이 분리, 활용, 해제, 단순화였다면 신과학의 특성은 참여, 보충, 통합, 전체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기존 과학이 자연을 물체로 보았다면 신과학은 자연을 관계로 파악한다. 기존 과학이 자연을 생산적으로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신과학은 자연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데 중점을 둔다. 기존 과학이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추구했다면, 신과학은 자연과의 연대를 추구한다. 옛 과학이 자연에서 독립하는 자율성을 중시했다면 새로운 과학은 자연에 다시 참여하는데 초점을 둔다.

〔455〕남아메리카를 흐르는 강들은 여러 국가가 공유ㅏ고 있다. 산맥들도 마찬가지다. 19세기의 정치인들이 지도에 선을 그었다고 해서 강과 산이 거기서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환경은 모든 인류와 동식물의 공동 재산이다. 한 국가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이웃 국가 뿐만 아니라 국경을 초월해 많은 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461〕글로벌화 되고 있는 세계에서 방향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류에게 EU가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지역적으로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세대는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지속 가능성, 심오한 놀이,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평화에 중점을 두는 유러피언 드림에 점점 매력을 느끼고 있다.

〔465〕아시아 지역의 연합을 형성하려는 시도에서 가장 불확실한 요인은 중국이다. 중국은 국토의 크기 때문에 이웃 나라들을 위협하거나 지배함으로써 과거 역사에서 자주 그랬듯이 종주국 역할을 하려고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과 한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가 형성되면 이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을 견제할 수 있을지 모른다.

〔438〕니벳스는 “ 동양인들의 경우 하나의 일을 이해하려면 그 반대의 일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면 전체는 서로 반대되는 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다. 서로 반대되는 힘, 즉 양과 음이 합쳐져 서로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470〕나 개인적으로는 유럽이 미국의 극단적 개인화와 아시아의 극단적 집산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그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 유럽인들은 개인적인 자유와 집단적 책임 둘 다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다.

〔479〕아기가 최초로 어머니와의 일체감을 잃어버리면서 느끼는 죽음의 두려움이 지금까지는 인류의 진보 대부분을 이끌었다. 프로이드, 브라운 등의 심리학자들의 눈에는 문명의 역사란 우리의 ‘죽음의 본능’을 외부 세계에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486〕이제 젊은 세대는 자연 세계를, 이용되어야 하고 소유되어야 하는 물질의 저장소가 아니라 접근법을 얻어야 하는 수많은 관계들의 집합체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구세대는 자기 자신을 재산처럼 생각하고 물질적인 성공에 집착하지만, 젊은 세대는 자기 자신을 수많은 네트워크 관계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과정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490〕인류의 미완성 임무는 지구를 구성하는 더 큰 생명 공동체에 대한 ‘개인적 책임의식’의 확립이다.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려면 인류와 동식물, 그리고 생물권에 대한 책임의식이 개인적으로 느껴져야 하고 집단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윤리와 도독은 모드가 개인적인 책임을 느끼는 세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

〔496〕미국인들은 인류와 지구를 위해 집단책임의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가져야 한다. 유럽인들은 개인의 행위와 관련해 개인적 책임감을 좀 더 가져야 한다. 미국인들은 좀 더 신중하고 조절된 전망을 가져야 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좀 더 희망적이고 낙관적이 되어야 한다.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 양쪽의 정수를 공유하면 우리는 서로 손 잡고 인간 의식의 제3단계로 활기차게 나아길지 모른다.

3. 내가 저자라면
내게 상상력을 부추긴 것은 어머니였지만 내 꿈의 실현에 필요했던 미국적 현실주의와 실용주의를 가르쳐 준 것은 내 아버지였다 “ 얘야,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일을 이루려고 꿈을 꾸지만 몽상가와 실행가의 차이는 극기력과 근면성 여부란다.” 아버지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늘 나름대로 생각한 성공 요인들의 비율을 제시했다. (P 22)

얼마 전 ‘리치우먼’에서 킴 기요사키를 만났다. 일, 사랑, 인생에 있어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으면 리치우먼이 되라는 말에 솔깃해서 그녀와의 대화를 시작한 것이었다. 사랑 빼고는 그녀의 말에 대부분 수긍을 표한 상태라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그녀를 만났던 것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이야기를 서두에 두는 것은 제레미 리프킨의 ‘유럽피언 드림’과의 만남 후 나의 생각이 다소 수정되었음을 그녀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평소에 미국적 삶의 방식을 좋아했다. 지나친 실용주의는 배제하고 자율성과 극기력, 그리고 근면성을 통한 부의축척, 그리고 아낌없는 기부.
여기서의 자율성은 나의 어린 시절이 지나친 ‘관계 속에서 행동하기’에 대한 역반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고 극기력과 근면성, 그리고 부(富)의 축척과 기부는 세뇌와도 어머니의 끝임 없는 당부의 말씀에서 비롯됨이라.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저자에 대한 일방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던 터라 유럽피언 드림을 읽으면서 객관적 시각을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표현하고 싶다. 하기야 그에 대한 애정 없이는 500페이지 분량을 뛰어 넘는 책에 선뜻 손을 내밀기가 어려웠겠지만 그의 의도된 이야기에 바탕을 둔 정보의 나열에도 별 지루함 없이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관심사와 그가 궁극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은 말을 이미 눈치 챘기 때문이다.

〔12〕유러피언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척보다는 삶의 질을, 무제한적 발전보다는 환경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 가능한 개발을, 무자비한 노력보다는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심오한 놀이를, 재산권보다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권리를, 일방적 무력행사보다 다원적 협력을 강조한다.

위에 언급된 내용은 유러피언드림이라기 보다는 제레미 리프킨드림 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저자는 유러피언 드림을 이야기 하면서 과학, 철학, 경제, 자유, 종교, 자연 등에 대한 거대한 담론을 서슴치 않는다. 그의 저서나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미루어 보면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때로는 노인네의 말 많음이나 자기 관심사에 대한 지나친 언급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저자는 유러피언 드림과 아메리칸 드림을 수평선상에 두고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 끝임 없이 불러들이고 쉬게 하고를 반복한다. 저자는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를 메이플라호를 타고 처음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온 청교도들, 구대륙의 신분적 차별과 억압을 피해 온 그들에게 두었다. 이 에 바탕을 둔 아메리칸 드림의 중심가치는 경제 성장과 개인의 부, 그리고 고립된 섬 같은 자유로움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에 미국사회는 철저히 개인주의고 국가 권력으로부터는 최대한 벗어나려고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것은 모든 것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결정되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이다.
한 편 유러피언드림은 ‘소속’에서 출발한다. 소속은 관계성의 인정이며 개인주의를 넘어선 세계주의의 출발점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언급한다.
그러나 저자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내가 그를 따라가면서 적잖은 혼란을 겪음과 동시에 염려스러운 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느낀 것은 지금 토플러의 ‘부의 미래’의 한 부분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몇몇 학자와 대담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 한계가 모호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만큼 이야기의 유형이나 흐름이 산만하고 장황함이 ‘부의 미래’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음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찌했던 꼭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지금부터다.
유러피언 드림과 아메리칸드림에 관한 그 긴 이야기 끝에 나는 ‘과연 이 유러피언드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이다. 그는 물론 미국인이기에 지극히 미국적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 그 중심도 미국이다. 나아가서는 미국의 근본인 유럽이 그의 중심세계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생각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더듬어 볼 때, 아메리칸 드림의 뒤에는 ‘인디언’들의 삶은 삶이 아님을 전제했던 미국인들의 오만함에 대한 비판의 손길이 더 매섭게 갔어야 했다. 물론 여기서의 거대한 조류는 미국이라는 대륙과 유럽이라는 대륙의 이야기 핑퐁이지만 그가 끝임 없이 이야기 하고 있는 전 생명체로의 따뜻한 시선과 세계시민으로서의 삶의 방향을 언급한 것에 비한다면 말이다. 그의 세계주의는 유럽과 미국중심의 세계다 이야기 말미에 물론 그 중심점을 옮겨보는 시도를 했지만 어찌했던 그는 유럽이나 미국의 축에 서 있다. 그러면
우리 나라 중심축에서 바라본 유리피언드림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그를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 나의 마음을 잠시 쫒아 그가 마음에서 이야기한 유럽피언드림의 중심이 이 세상 곳곳임을 믿고 싶다
그리고 킴 기요사키에게도 다음 글귀를 전하고 싶다

〔154〕미국인들은 끊임없이 생산적인 것들을 행복하게 생각하며 게으름을 도덕적인 문제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유럽인들은 게으름을 탐내고 부러워한다. 그들은 느긋하게 장미꽃 향기를 맡으려 한다. 유럽인 친구들은 내게 인생을 진짜 즐기려면 모든 욕심을 포기하고 제3자의 입장에서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냥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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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4.16 09:16:55 *.99.241.60
시간차로 책을 봐서 일주일이 지난후
리프킨이 주는 의미가 새롭습니다.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 48장 유럽의 잃어버린 교훈에서
고정근무시간제라는 함정에 빠져있다고 비판을 하더군요.
패스트 푸드의 미국, 슬로우 푸드의 유럽..
아시아와 비교도 재미있었습니다.
기술강박관념을 가진 아시아가 최신기술을 채택하려고
맹렬히 달리는 동안
기술공포증을 가진 서유럽은 기술의 개발과 적용을 저지하기 위한
장벽설치에 여념이 없다.
마지막으로 유럽은 새로운 부창출 시스템으로 전환하라는 메시지를
아직 받아보지 못한 것 같다 고 하더군요

시간내어서 다시한번 미래학자들의 다양한 책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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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윤
2007.04.17 10:42:24 *.249.167.156
리프킨을 읽고, 토플러를 읽으니 곳곳에 리프킨과는 다른 생각과 비판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통점은 천상 미국인이라는 것입니다. '서구의 시각에서 보는 미래'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제가 느낀 공통점이네요..

모두가 유럽의 위기를 말하는 시점에 리프킨은 미국의 정신적 고향인 유럽으로 돌아가서 '유러피안 드림'을 꿈꾸네요! 그 백일몽이 현실이 될지, 몽상으로 끝날지는 두고봐야 할테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더 넓은 세계가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토플러보다는 리프킨이 더 끌립니다. 물론 그의 '복고주의' 성향을 논외로 한다면 말이죠.. 아직은 적당한 것 보다는 극단적인 것이 끌리는 나이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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