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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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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3일 10시 42분 등록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 30대 이 후 마음을 다스리는 16가지 이야기

1. 저자에 관해서

융 학파의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156〕프로이드는 꿈이 금지된 소망을 숨기고 수용되지 못하는 충동이 의식세계로 나오는 것을 가려주거나 제외시킨다고 주장한다. 융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꿈은 억압에 대항하고 개인이 회피하는 문제를 끄집어냄으로써 무의식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프로이드는 대개 젊은이들과 함께 일했고 그들로부터 그의 이론을 이끌어내었다. 그러나 젊은 남녀는 전형적으로 고통스러운 문제를 부정하고 회피하며, 그들의 꿈은 이런 억압을 반영한다. 반면 융은 노년층과 함께 일했고 그때에 젊은 시절 억압했던 문제들이 무의식으로부터 나타났다. 그래서 융과 프로이드의 꿈 이론은 인생의 다른 단계에 적용되는 한 모순되지 않는다.

그는 옛날이야기와 신화를 통해서 인간의 심리현상을 해명하고 이를 심리치료에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여러 권의 책도 저술했다. 그에 따르면 옛날이야기나 동화 신화 등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의 의식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일종의 주문처럼 작용하여 독특한 작용과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의 저서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에서는 중년의 시기를 고통을 겪은 이후의 ‘치유의 힘’을 ‘돌무덤’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내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어 나감으로써 상담과정에 적용한 다양한 치료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특히 그는 자기 꿈의 세계를 비롯한 다양한 상황에의 이야기 즉 동화나 신화, 그리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에의 동화나 또는 자신의 감정을 들어내 놓게 함으로써 각자가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성장 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그는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정신 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중년을 위한 책〈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을 비롯하여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를 심리학적 분석을 곁들이면서 풀어낸 〈젊은 여성을 위한 심리동화〉, 〈영웅의 진실〉, 〈어른스러움의 진실〉등이 있다.

그의 꿈 이야기
「꿈속에서 나는 아주 커다란 깃털을 가진 새들 주위를 날고 있다. 새들은 커다란 황새나 왜가리의 크기 정도였지만 무지개 빛 깃털이 금이나 보석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새들과 같이 나는 것은 마술적인 경험이었고 우리는 평야와 들판을 미끄러져 날면서 세상을 꼭대기에서 조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꿈들은 아주 큰 실망으로 끝나곤 했다. 새들은 밑으로 날아 자신들의 둥지로 향했는데 그곳은 대개 도시의 빌딩이나 전화선 꼭대기의 초라한 장소였다. 새들은 점점 아래로 향할수록 깃털의 찬란한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때로는 새들로부터 벗어나 다시 하늘로 돌아가 보려고 해보았지만 결과는 항상 땅으로 냉혹하게 떨어지는 것뿐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새들을 따라 그들의 둥지로 향해야만 했다.」
저자는 이를 〈마법의 상실〉로 풀어내었다. 이에 나의 꿈 이야기를 비추어 볼 때 나 또한 중년에 찾아온 마법에의 상실에 대한 꿈을 자주 꾸곤 한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동일 선상에 놓여있다. 〈첼로를 멋지게 연주하고 나 자신도 감격해 하는, 첼로 연주 후에 오는 그 기쁨은 황금 깃털을 반짝이며 공중을 나는 새의 느낌이다. 그러나 꿈이 끝 날 무렵이면 줄이 끊어져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는 상황을 접 한다〉
나의 꿈도 〈마법의 상실〉로 풀어낼 수 있는가. 중년을 훌쩍 넘어선 나의 다음 시기인 ‘노년의 생’을 작가가 이끌어 가는 방식대로 묵묵히 따라가 보는 여행이 기대된다. 그러나 가끔은 그에게 질문도 던지리라. 의식의 세계에서 잠시 빠져나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가져보자고.

1.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 앞세우고 싶은 글귀 ---

[157] 중년의 여행은 근본적으로 내적 탐험이며 무의식으로의 순례여행이다. 그 여행은 내면을 향한 심리적인 것이고 세상의 모험을 통해 물질적 보상을 찾으려고 헌신하는 청춘의 영웅적 탐구와는 완전히 다르다.

[158] 중년의 이야기와 현실적 삶에서 죽음이 비록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남녀가 받아들여야 하는 필연적인 결과만은 아니다. 똑같이 강력하게 받아들이기에 아마도 더 어려운 힘이 있다. 〈그것은 운명이다.〉

머리말

〔13〕중년의 이야기들에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역이란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외상들을 단순히 풀어버리기 보다는 보다 크고 중요한 과제인 〈완전한 인간이이 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켜 준다.

〔16〕옛날 이야기란 일상의 걱정들이 내적 성찰을 방해할 수밖에 없는 중년에 들어서는 특히 중요하다. 이야기란 독자들에게 자신의 믿음과 이성적인 생각들을 유보하고 자신만의 무의식으로 가는 명확한 통로가 될 수 있다.

〔16〕프로이드나 융의 단어로 얘기하자면, 옛날이야기란 일종의 꿈과 같다. 그러나 옛날 이야기는 꿈보다 훨씬 더 중요한 여러 장점들을 갖고 있다. 꿈들은 너무나 각 개인별로 특별하기 때문에 꿈꾼 사람만의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옛날이야기들은 범세계적이고 누구나 공감하는 매력을 지닌다. 이는 옛날이야기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탓이다. 이런 과정에서 순수하게 개인적으로 특이한 요소들은 제거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들만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옛날이야기는 인간의 기본적인 화젯거리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17〕중년에 관한 이야기들은 놀라울 정도로 페미니즘적이다. 중년에 관한 이야기들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지신들의 재능을 이용해서 엄청난 사회적인 저항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18〕 중년의 이야기들은 종종 자신들의 문제를 반성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당황하고 혼란시키지만 결국에는 치료의 효과를 가져온다.

〔21〕첫 번째 규칙은 옛날이야기들을 해석하려고 들기 이전에 우선 귀를 열고 그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다.

〔23〕중년의 이야기들은 보다 일반적인 주제들을 강조하는데, 이런 문제들의 많은 부분은 중년의 이야기들이 빠뜨리는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유래한다.

〔25〕 중년의 이야기는 내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지난 몇 년 동안 나에게는 하나의 길잡이였으며 기쁨이고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해 썼던 이야기들에서 전세계에 산재한 이야기들과 비슷한 이미지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는 또한 중년의 이야기들과, 몇 년 전부터 내 꿈에 나온 내용들이 놀랄 만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했다. 내가 치료를 하면서 만난 중년들의 공상과 꿈에서도 역시 동등한 극적인 유사점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실생활의 거울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중년의 이야기들을 매일의 경험들을 향상시킨다. 이런 이야기들은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중년의 장애물들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1부 : 서른 이후, 젊음의 마법을 풀어 놓다.

[33]마법의 정령들이 사라진 것은 성인들이〈일〉때문에 〈놀이〉를 포기하고〈책임〉 때문에 〈순수〉를 버리게 될 수밖에 없는 경험들을 상징하고 있다.

[36]『신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모든 짐승들이 30년은 당연히 살도록 명한다. 하지만 짐을 나르는 것이 벅차다고 많이 알려진 당나귀는 자신이 일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오래 살도록 청한다. 하느님은 그가 18년을 더 살도록 허락한다. 반면에 개는 늙는 것이 두려워 30년 중에 몇 년은 오히려 감해 주도록 청한다. 하느님은 그렇게 하도록 명한다. 원숭이 역시 늙는 것이 두려워 더 빨리 죽도록 청했고 하느님은 친절하게도 10년을 감해준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나타나서 30년은 너무 짧다고 말한다. 하느님은 당나귀에게서 18년을 빼앗아 주었지만 사람은 여전히 만족을 못하자 개와 원숭이로부터 나이를 빼앗아 준다.

따라서 인간은 첫 30년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들의 본래 인생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에 당나귀에게서 빼앗은 18년을 더 살기 때문에 쉬지 않고 일하고 채찍질을 당하며 일상의 짐을 지고 살아야 한다. 다음의 12년은 개에게서 받았기 때문에 불 곁에 앉아 웅얼거리고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숭이로부터 받은 나이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좋은 대로 행동을 한다.』

[38]의식의 사고가 답을 찾지 못할 때, 잠자면서 어딴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내부의 요정들이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39]젊은이들의 특징인〈발작적인 창조의 불꽃〉은 계속되는 일의 습관으로 진화해서 성숙하고 기댈만한 기술로 변하는 것이다. 만약 젊은이들의 창조성이 99퍼센트의 영감이라고 한다면 성숙한 창조성은 99프센트의 땀이다. 마법의 요정은 바로 부지런한 구두장이가 되는 것이다.

〔46〕신성한 마법은 젊은이들의 이상과 비전을 상징한다. 그런 야망은 세계 평화에 대한
희망, 진정한 사랑에 대한 낭만적인 꿈, 운동경기에서 챔피온이 되는 것 등의 여러 가지 형태를 지니게 된다.

〔47〕〈젊은이들은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포기한다.〉

〔50〕젊은 시절의 마법을 상실한다는 것은 단순이 마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적인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서 가족으로 또 다음 세대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회로 변하는 것뿐이다.

〔53〕어부는 그의 부주의함 때문에 또 다른 고통을 받는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죽는데, 이는 마법을 계속할 경우 오히려 이 점 때문에 그 자신이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젊음의 마법을 지워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인생의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지 못 한것이다. 그는 성실을 수용할 수도 없었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

〔53〕젊음의 마법은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멀리 떠나보내는 것이다.

〔55〕바다에서 나온 아름다운 인어는 무의식으로부터 나온 창조적인 통찰을 상징하고 있다. 이들 영감들은 마치 인어처럼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황홀하게 한다. 이런 창조적인 순간이 지난 후에는 새로운 과제가 떠오르게 된다. 고상한 영감과 비전을 보다 구체적인성과물로 바꾸는 작업이다.

〔59〕〈중년의 이야기〉들은 자녀들이 세계에 닻을 내려 부모로서의 과제를 맞힌 후 부모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반성을 보면서 개인적인 성취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심리적인 과제들에 대해 미리 그려보는 것이다.

〔60〕넷이란 숫자는 융이 지적한 대로 완전성, 완성 그리고 전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지구에서는 동서남북이라는 네 개의 극이 있어서 완전한 세계를 이룬다. 전통적으로도 땅, 공기, 불, 물이라는 네 개의 원소가 있어서 세계를 창조했다고 생각했다. 완전함과 통합은 인생의 후반부의 가장 중심적인 과제이다. 넷이란 숫자가 노년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사실은 따라서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60〕다섯은 중년에만 있는 특별한 숫자이다. 다섯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넷이 완전성과 완성을 상징한다면 다섯이란 넘침을 의미한다.

제2부 서른 이후, 남자가 가는 길과 여자가 가는 길

〔73〕또한 놀랄만한 점은 중년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매우 확실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다른 이야기들이 성 정체성의 전통적인 관습에 대해 의의를 제기 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젊은이들이니까 그러하리라〉고 기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청소년들이 관습적인 가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76〕이런 과정을 거치기 위해 소년들은 보통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그들은 어머니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의존성과 친밀성의 영역을 거부한다. 이들 감정들은 여성적인 것과 동일하게 생각되고 따라서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79〕중년이 되면 보통 주부들이 남편을 리드하면서 그간에 익숙해 졌던 습관들을 빠른 속도로 깨 버린다. 그녀의 변화는 남편까지도 더욱 성숙하도록 강요한다.

〔83〕융통성이 중년에 요구되는 큰 덕성이라면 젊은 시절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젊은 영웅들이나 여자 주인공들은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을 필요로 하지 융통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84〕자기 표현을 자유롭게 하면 할수록 그 방식은 훨씬 순화 될 것이고 억압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86〕많은 동화에서 여성의 계략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반면, 중년의 이야기에서는 여성의 현명함은 칭찬받을 만한 것으로 그려진다. 사실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교활해 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경우가 많다.

〔103〕오늘날, 중년의 여성들은 자녀들을 세상에 내 보낸 다음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사회가 만든 여러 가지 장애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성들이 놀랄 만큼 성공을 거둔다. 이것은 단순히 현대 페미니즘의 결과는 아니다. 이 과정은 오히려 무의식의 원형이다.

〔106〕성스러운 새는 부인의 진정한 자기 , 즉 자신의 깊은 존재를 상징한다. 외적인 억압에도 불구하고 내적인 그녀는 자신에게 진실했으며 그녀의 통합성을 지켜 나갔다. 따라서 내적인 그녀 자신의 상징이 겉으로 표현된 것이다.

〔110〕결국 남자가 자기 욕구를 채워 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 했을 때만이 여성들은 숨어있는 자신들의 힘과 재능을 발견해 내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 일어나는 것이다.

〔113〕역설적으로 과도함이 오히려 자아 통합과 개성으로 이끌어준 것이다. 숫자5는 중년의 중요한 과제인 불균형과 실수를 조화와 자아 정체성으로 변환시킴을 잘 요약해 주고 있다.

〔114〕많은 연구에서 중년기가 되면 심리적인 양성성이 늘어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성성이란 나이 들면서도 행복할 f수 있는 성공적인 심리 특성과 비례한다는 것이다.

〔125〕인간의 고통스런 중년의 대 항해는 마치 연옥과 같다. 그리고 이런 위기는 씻겨 나간다. 고통은 오래된 방식의 사고와 행동을 태워 버리고 새로운 길을 위하여 깨끗하게 청소된다. 여기서 새로운 요소들의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 가는 것은 여성적인 것이다.

〔129〕 중년의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이런 젊은이들의 원형적이 공상들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여성들이 그들의 힘을 중년에 재선언하고 남성들은 고통을 겪는 지혜를 배운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3부 서른 이후, 운명을 받아들이다.

〔135〕중년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의 세월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나이를 생각할 때 시작하는 것이다.

〔131〕죽음의 문제는 중년이야기에서 특별한 것이다. 청소년 이야기는 죽음을 가볍게 다루고 젊은 영웅들은 대개 죽음의 신을 피하거나 속인다. 노년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도 역시 죽음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노년의 이야기들은 단순히 삶의 한 사실로 다룰 뿐, 삶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와’과 같은 중년의 이야기에서 죽음의 공포는 실제의 삶에서 중년의 위기를 유발하고 죽음의 공포가 크면 클수록 고통은 더 강렬해 진다.

〔139〕현대 심리학은 이런 동화의 내면을 확인 시켜준다. 생식 능력이 잇는 개인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걱정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이 자기 본위에만 쌓여 있는 한 죽음은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죽음은 자아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151〕두 가지 이야기는 모두 통찰력이 있다. 죽음과의 조우는 개인으로 하여금 평범한 일상의 삶을 긍정적으로 만든다. 숭고한 정신적 수양이나 세상을 버리는 것 대신 죽는다는 것은 중년의 남녀에게 세속적인 질서를 긍정하도록 촉구한다.
[165]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에 의해 계획된 것과 같은 운명을 거부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연과 행운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중년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는 종종 단순한 불운인 반면, 성공은 일을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적기적소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165] 운명과 행운은 개인의 통제를 능가하는 단순한 힘이다. 죽음은 이러한 힘의 으뜸가는 예이다.

[168] 결국 석공은 그의 예전 자리로 되돌아갔고, 한계성을 지닌 원래의 위치를 긍정한다. 그런 일은 그의 다섯 번째 소망에서 일어났음을 명심해라. 이는 중년의 이야기에서 ‘다섯’이라는 숫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석공은 새롭고 넓은 시각을 가지고 옛 직업으로 되돌아온다. 커다란 그림을 흘낏 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작은 자리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중년의 이야기는 운명과 행운의 문제를 결정짓는 것이 이러한 폭넓은 이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한 통찰력은 지혜이다.
연구결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년에 반성적이고 철학적인 태도를 발전시켜 나간다고 확인해 준다. 성숙함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며 이것은 종종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직관을 향한 변화와 관련된다.

[169] 중년에 운명과 행운을 수용한다는 것은 자유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171] 팻은 자기 의지력의 한계를 느껴 체념했고 운명과 화해했다.

[173] 심리분석가들은 젊음을 부러워하는 것이 젊은이와 자녀에 대한 중년의 중요한 문제임을 강조한다. 중년의 오이디푸스적 질투를 이기지 못하고 베풂의 미덕을 발전시키는데 실패한 사람은 자신의 괴로움과 분노로 소모되고 만다.

[185] 운명은 그것 자체로는 중년의 질투를 해결하지 못한다. 운명이 부여하는 것은 다소 비극적이고 철학적인 관점이다. 인간의 통제력을 능가하는 힘의 수용이다. 중년의 비극적 통찰의 발전은 남녀가 인생의 어두운 면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

[189] 나는 「운명을 이기려는 왕」이야기로 중년에 일어나는 반전에 대한 나의 논의를 결론지으려 한다. 즉, 성역할과 운명의 반전이다. 우리가 논의한 이야기들은 대립되는 것들에
관한 것이다: 남성과 여성, 삶과 죽음, 힘과 우명이 그것이다.
제4부 서른 이후 삶을 깨닫다.

[193] 젊은이들과 중년은 세상을 대하는데 대조적인 태도를 취한다. 젊은 사람들의 세련되고 미적인 감각과, 중년의 거칠지만 효과적인 실용주의가 그것이다. 이것은 젊은 시절에 대개 익히는 책 속의 이상과 인생의 성숙함에서 오는 실용성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197] 실질적인 삶의 문제에 부딪쳤을 때 중년의 성인들은 젊은이보다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중년의 개인은 어떻게 추상적인 이성을 사용하는지 알며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왜냐하면 순수한 이성은 실제의 삶에 있어서 실용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숙한 성인은 책에서 배우는 것과 삶에서 배우는 것을 그별하며 후자가 더 실리적이라는 것을 안다.

[200] 세련되고 미적인 감각과, 거칠지만 효과적인 실용주의 그것이다. 이것은 젊은 시절에 대개 익히는 책 속의 이상과 성숙함에서 오는 실용성의 차이로 비유할 수 있다. 순수한 아름다움과 절대적 진리는 젊은이와 여성을 고무시키지만 중년에는 그 결과가 비록 미덥지 않더라도 일 그 자체가 요구하는 해결방식을 택하게 된다.

[201] 남자와 여자는 약간 다른 방법으로 지혜를 발전시킨다. 남자들은 대개 젊은 시절 추상적이고 지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과학과 철학에 강하게 끌리며 젊은이의 팽창적이고 장엄한 정신을 반영하는 절대적 진리에 관해 습관적으로 이야기 한다.
남성은 성숙해 가면서 실리적이고 일상적인 정서적 지식의 중요성과 그들 자신의 이해의 한계를 인식한다.
반면에 여성들은 보완적 유형을 쫒는다. 그들은 대개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강조를 두고 시작하여 나중에 그들 통찰력의 더 넓고 우주적인 중요성을 인지한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여성이 그들의 추상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데 억압을 받아 왔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고등 지식교육의 기회에서 배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206] 악에 대한 관용은 중년의 미덕이다. 몇 년간 삶을 경험한 후에 남자와 여자는 고통스럽게 괴로움과 악을 깨닫고 종종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닫는다. 중년의 지혜는 바로 이러한 비극적 통찰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210] 동화속의 영웅들은 항상 악과 싸워 승리한다. 그들에게 있어 인생의 어두운 면이란 정복될 수 있고 조정될 수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악의 힘을 부정한다.

[215] 중년이 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도덕적 판단이 틀릴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윤리적 원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남녀는 도덕적 모호성에서 커다란 관용을 보이며 어떠한 도덕적 문제에 대해 어떠한 올바른 대답이 있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선과 악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갖는다. 전형적인 유형과는 반대로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관용적이고 덜 도덕적으로 경직된다.

[216] 다른 사람의 일에 참여하지 말라는 솔로몬의 충고는 중년들이 종종 느끼는 유혹, 즉 자신이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태도와 상충된다. 솔로몬의 충고는 권위의 극적ㅁ에 있는 남녀에게 세상에는 그들이 이해하고 관장할 수 없는 많은 상황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222] 유머란 그저 웃어넘기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지혜인 것이다. 유머는 중년의 여성과 남성이 인생의 비극적인 면을 다루는데 큰 힘이 된다.

[226] 바람피우는 중년의 남녀에 관한 고정관념은 사실에 근거한다기보다는 공포의 감정에 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런 공상은 매우 깊숙한 의식의 밑바닥을 관통하는 것이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만큼 강렬한 것이다.

[227] 젊은이들의 이야기와 노인들의 이야기는 중년의 이야기와 비교가 되는데, 대개는 감동적이고 가슴이 따뜻하고 도덕적인 어조가 담겨있지만 유머스럽지는 않다.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영웅적인 투쟁에 영광을 보내고 따라서 악당들이나 다양한 역할들에게서 재미를 찾아낼 만한 여유가 없다. 노인들의 이야기는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보다 초월적이고 성스러운 계시를 다르고 있기 때문에 유머란 그저 깜박이는 정도로 짧게 다룰 뿐이다. 중년의 이야기들은 그런 부담이나 억제가 없다. 그들은 왕에서부터 농부까지 우스개로 만들어 버린다.

[228] 유머는 성숙의 징표다. 유머는 깊은 공감력, 자기 확신, 그리고 창조적 재능과 비례한다. 한사람이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보다 많은 유머를 사용한다. 한 사람의 심리적 행복감이 클수록 유머 감각도 늘어난다.

〔243〕치유는 정말 놀랍게도 노인들에 대한 옛날이야기에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노인에게 질병이 훨씬 더 일반적인 상황임에도 노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치유보다는 초월에 관심이 더 많다. 노인들은 몸을 고치는 대신 신체적인 관심을 넘어서는 승화와 정신적인 통찰을 얻게 된다. 노인들은 물질적 세계로부터 후퇴하게 되는 것이다. 중년들은 세상의 책임을 같이 져야 하기 때문에 그런 호사스러움을 가질 수가 없다.

〔245〕자기 반성과 재생이라는 치유의 과정은 사실 정화의 경험이다. 단테는 그의 『신곡』에서 이 점에 대해 강조한 바처럼, 중년에 지옥으로 떨어진 후 자기 자신을 정화하는 긴 여행을 떠난다. 거기서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러나 그들은 놀랍게도 그 고문들을 매우 기쁘게 참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왜 희망을 갖게 되었는지 묻자, 정화의 의식에 동참한 이들은 그들의 고통이 그들을 성장하고 발전하게 하여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다.

〔253〕중년의 개인들은 오랫동안 고통 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몫을 기억하고 성숙의 생성을 위해 젊은 시절의 영웅주의를 버림으로써 자아팽창과 원시성을 피한다.

〔268〕 젊은 시절에 확립해 놓았던 개인적인 확신, 헌신들, 가치관, 그리고 사회적 역할이 중년에 이르러 파괴된다. 이는 마치 황금나무의 가지와 잎들이 소용돌이 속에서 없어졌다 다시 형성되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298〕아마 더욱 기적적인 것은 사람들은 위기에 깊숙이 빠졌을 때 치유의 힘을 발견해 낸다는 점이다.

〔301〕 아이러니 하지만 나의 중년이야기에 관한 연구는 처음에는 순수하게 지적인 작업이었지만 나중에는 곧 가슴과 영혼에 관한 문제가 되었다.


3. 내가 저자라면

[157] 중년의 여행은 근본적으로 내적 탐험이며 무의식으로의 순례여행이다. 그 여행은 내면을 향한 심리적인 것이고 세상의 모험을 통해 물질적 보상을 찾으려고 헌신하는 청춘의 영웅적 탐구와는 완전히 다르다.

인생은 끝임 없는 긴 탐색의 여정이다. 칸트가 고민한 필연의 길이든, 아님 우연의 길이든 우리가 묵묵히 걸어가야만 하는 길인 것이다.

이에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갖가지 상황을 맞게 되고 이에 따른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한없이 걸어간다.

우리는 이 길에서 알랜B 치넨을 도중에 만났다. 그는 화려하지도 돋보이지도 않으면서 우리에게 쉼 없이 속삭인다. 옛날이야기로, 동화와 신화로 때론 그의 이야기도 간간히 곁들이면서 보이는 풍광에 한 눈 팔지 말기를 당부하며 내면의 속삭임에 귀 기울어 보라고 끊임없이 조언한다. 넘어져 아파할 때는 아픔은 통찰의 전주곡이요. 지혜의 문이라고 했다. 향기로운 내음에 감동하지 못할 때에는 〈책임〉 때문에 〈순수〉를 상실했을 뿐이며, ‘의식’의 사고가 답을 찾지 못할 때에는 꿈의 요정들이 성공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경우가 있음을 이야기 해 주기도 한다.

그는 우리가 ‘젊음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길은 ‘마법의 길’이였기에 ‘젊음의 발작적 창조의 불꽃’을 비롯한 미적 감각과 이상을 인정한다. 또한 악에 대한 영웅적 힘을, 실패의 풍광을 보고 타인을 탓했음에 대하여 그것이 우리의 속 좁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외적 관계 때문이라고 다독거린다. 긴 여정의 길에서 동행자를 잃었을 땐 그것은 ‘운명’이라는 것을 말해주며 열심히 걷다보면 ‘행운’이라는 새로운 벗을 만날 수 있음을 암시해 준다.
가는 길이 가끔은 지루해 질 때, ‘농’을 던지고 맛깔스러운 유머로 작가자신도 ‘중년의 길’을 걷고 있음을 말해주며 남자에게서 망설임의 여성성이 보일 때는 여성성속에 숨어있는 남성적인 면을 살며시 보여주며 염려하지 말아도 됨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가끔은 나도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그에게 질문도 던지고 싶어진다.
우리의 잠재의식 즉 저 의식의 밑바닥과의 대화를 잠시 멈추고 ‘내면의 여행’ 뿐만 아니라
주위의 풍광 즉 관계 속에서의 색다른 반응을 생각해 보자고, 나아가서 결혼한 중년들의 내면과 결혼하지 않은 중년의 내면세계를 서로 비교해 봄도 매우 의미 있음을 이야기 해 주고 싶다.

「 상어는 사나운 동물이며 자기의욕구만 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자기중심이란 상징을 나타내고 있다. 」
나는 백만장자가 만난 ‘도적’이 아님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적어도 나 자신에 대해 거저
얻으려 하기보다는 ‘열심히’ ‘정성을 다해’ 라는 것 다음에 얻음을 바랬다고 하는 위안이다.
그러나 ‘상어’가 아님을 전혀 부인할 수 없다. ‘베풂’에 인색하지는 아니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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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7.04.03 11:06:14 *.99.120.184
중년을 거치는 동안 과거의 자신과 대면하다 보면 많은 상처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따라 두번째 여행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남에게 상처를 입힐까봐 자신의 상처는 생각지 않는 모습이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남해에서 지낸 모습으로는 충분히 베풀고 사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좋은 글 가슴에 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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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4.03 11:25:06 *.99.241.60
얼굴을 직접뵈오니
만나기전 제가 본 글속의 이미지와 많이 닮았더군요.
여행이라는 것은 늘 가슴을 설레는그 무엇이 있나봐요
남해에서도 그렇고,
하지만 누구와 같이 가느냐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연구원의 길도 여행처럼 많은 경험과 추억이
같이 하는 길이었음 합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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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4.04 09:06:44 *.114.56.245
알랜이 분류한 중년의 예외일까요? 저는 아직도 끝없은 외부로의 여행과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이 행복합니다. 특히 오지로의 여행, 생각만 해도 행복하네요. 그 속에 지적, 내면의 여행도 함께 따라 다닌다고 위로하면서 그러나 나의 마음 끌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렵니다.
모두에게 행복한 미소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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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4.05 01:58:30 *.70.72.121
만나서 반가웠답니다. 개성도 강하고 힘도 느껴지고 앞으로 대단한 진면목을 보여주실 것 같아요. 어쩐지 든든하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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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4.05 12:56:28 *.55.54.44
와.. 내가 저자라면 부분을 칼럼처럼 풀어서 쓰니까 좋네요.. 저도 따라해봐야겠어요. 귓가에 소근소근 들리는 듯한 문체가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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