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옹박
  • 조회 수 5255
  • 댓글 수 7
  • 추천 수 0
2007년 4월 9일 00시 04분 등록

소유의 종말
The age of Access


1. 저자에 대하여

제레미 리프킨 (Jeremy Rifkin)
제레미 리프킨은 과학기술이 폭주하는 사회에 대항하는 활동가이며, 자신이 설립한 경제동향연구재단(The Foundation On Economic Trends, FOET) 의 이사장이다. 그에게는 사회운동가의 면모뿐 아니라, 전세계 8개국 대통령과 지도층 인사들의 자문역을 맡을 정도로 제도권에서도 인정을 받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또한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와튼 경영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터프츠대학의 플레처 법과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한 배경도 갖추고 있다.

15권의 책을 지었으며, 그의 책들은 16개국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전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한국에 번역된 책으로는, 한국에서 출간된 순서대로 나열하면,[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생명권 정치학], [바이오테크 시대],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이 있다. 리프킨은 직선적인 세계관을 거부하며(엔트로피), 생명권을 중심으로 놓는 정치학을 주장한다(생명권 정치학). 그는 생명공학 기술의 폭주적인 발전과 그 성과를 기업과 국가가 독점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며(바이오테크 시대), 육식의 팽배가 얼마나 생명권을 파괴하는지를 고발한다(육식의 종말). 또한 정보화의 진행에 의해서 기존의 노동 양식은 '종말'할 것이며(노동의 종말), 소유에서 접속 중심의 자본주의의 재편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소유의 종말)

리프킨에 대한 극단의 평가
그에 대한 평가는 항상 극단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너른 시야로 지구적 구조와 미래를 바라보는 탁월한 사상가이자 활동가로 추앙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과학계에서 가장 증오받는 인물'이라는 「타임」지의 표현대로 그를 사이비 저술가, 기껏해야 영향력있는 선동가로 본다. 리프킨에 대한 이런 엇갈린 평가는 그의 30여년간의 활동이 언제나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열렬한 것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77년 '경제조류재단'을 창설한 이후 리프킨은 십수권의 논쟁작을 썼고, 전세계 20개국 500여개 대학에서 강연했으며, 미국정부의 각종 환경.경제정책 방향에 입김을 넣었다.

그가 가장 천착하는 문제는 기술이 환경 및 제반 사회구조에 미치는 영향. 환경과 경제가 일정하게 통합된 구조임을 역설한 <엔트로피>는 그의 초기 대표작이자 8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논쟁작 중 하나이다. 이후 리프킨은 광범한 현실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에 매진하여, <노동의 종말>에서는 정보화로 소수 엘리트를 제외한 인간의 노동이 서서히 제거되어 나갈 것이라는 노동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바이오테크 시대>에서는 산업시대와 비견될만큼 중요한 '유전자의 시대'가 인간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것이라는 전망을, <소유의 종말>에서는 문화마저 자본에 잠식되어 모든 경험과 시간이 상품화되는 '접속 시대'의 그림을 펼쳤다. 또한 부인 캐롤 그룬왈드 리프킨과 함께 열정적으로 펼치고 있는 채식운동과 녹색생활운동도 그의 활동 궤적에서 빼놓을 수 없다. 리프킨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주로 그의 과학적 엄밀성을 문제삼는다. 리프킨은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했을 뿐 정식적인 과학 교육은 받은 적이 없다. 비판자들은 그 점을 꼬집으며, 리프킨이 몇몇 과학적 사실을 수집하여 망상적인 종말론을 구성한다고 지적한다.

사실 리프킨의 초기 저작들은 '사이비 과학'이라는 지적을 받기에 충분할 정도다. <엔트로피 2>로 번역된 는 영적인 세계관을 역설하여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로부터 "학문으로 가장하여 교묘히 짜집어진 반(反) 지성적 프로파갠다"라 비난받았다. 이후 <바이오테크 시대> 등에서 드러낸 유전자 공학에 대한 반감 탓에 '기술혐오자', '신-러다이트'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그러나 추종자나 비판자 모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대중설득가로서의 그의 역량. 우리나라에서도 바람을 일으켰던 '종말' 시리즈를 비롯한 그의 책은 새롭지 않은 주장을 풍부한 실례로 뒷받침해 인상깊게 제시한다. 효과적인 선전선동술을 무기로 미국 정부의 정책결정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그 과정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주장을 퍼뜨린다.

사회 운동가로서의 리프킨
리프킨은 1945년 미국 시카고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플라스틱 백 제조업자였고, 어머니는 자선사업으로 맹인들을 위해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리프킨은 한국 유학생이 MBA 하겠다고 많이 몰려가는 펜실바니아대 워튼스쿨에서 경제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고, 이어 터프스대 법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그 정도 학력이면 미국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전공도 돈벌이에 아주 좋은 전공이다. 그런데 리프킨의 인생을 바꿔 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건 바로 베트남전쟁이었다. 후일 리프킨도 그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자기가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에게 말한 바 있다.

리프킨은 반전운동에 참여했다. 대충 참여한 게 아니다. 그는 반전시위를 주동하기도 하는 등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런 운동 경험으로 인생관이 달라진 리프킨은 돈 버는 길을 버린 채 70년대부터 워싱턴 DC에 진을 치고, 본격적인 시민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가 제일 먼저 결성한 조직은 1971년에 만든 ‘새로운 아메리카 운동(New American Movement)’이었으며, 이 조직은 다음해에 ‘200주년 국민위원회(People’s Bicentennial Commission)’를 출범시켰다.

리프킨은 미국의 건국 200주년과 관련된 기념행사들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에 반대했다. 미국의 영광이나 뻐기려드는 정부의 기념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건국 당시의 혁명 이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기념 정신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주년 국민위원회’는 1975년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포드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200주년 개시 행사에 4만 명의 시위 군중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원래 목표했던 ‘대중혁명운동’까지 일으키진 못했다. 리프킨은 ‘200주년’이라고 하는 이슈가 사그러들자, ‘국민기업위원회(People’s Business Commission)’를 조직했다. 이건 대기업의 횡포에 저항하면서, 기존 경제 시스템의 민주적 대안을 모색하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제법 성과를 거둬 리프킨은 일부 평자들로부터 “급진적 사상의 대중화에 가장 재능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는 평을 얻었다.

리프킨은 77년에, 현재 그가 활동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경제동향연구재단(Foundation on Economic Trends)’을 세웠다. 그가 처음에 주로 다룬 이슈는 노동문제였지만 그와 동시에 오늘날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유전자 조작에 대해 본격적인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지금부터 약 20년 전인 1977년 3월,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국립과학아카데미의 돔형 구조물로 이루어진 초현대식 강당에 밀어닥쳤다. 그들은 “우리는 복제되지 않을 것이다!(We will not be cloned!)”라고 외쳤다. 이들 시위의 표적은 이 기관의 후원으로 열리고 있던 3일 간의 심포지엄이었다. 그것은 과학자, 정부관리, 기업가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유전자를 조작한 생물체의 향후 전망을 토론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였다. 그 ‘생물체’ 중에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행동주의자 제레미 리프킨이 미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생물공학의 반대자 중 한 사람으로서 공적 영역에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후 수년 동안 리프킨은 유전공학적으로 만들어진 곡물에서 유전자 특허, 나아가 생물학적 무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생물공학적 주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무척이나 다양한 것이었다. 그는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았다. 법률소송, 불매운동, 게릴라식 시위, 13권에 이르는 저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문투고 등이었다. (* 참고문헌 : 월간 ‘인물과 사상’ 99년 10월호)


2.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구절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1.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11)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
근대 경제의 중요한 특성이었던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 교환은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지는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 접속으로 바뀐다.

(13)접속 중심의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그때그때 팔아 치우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점 좌우된다.

(15)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 의식이 유희 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

[2.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37)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고 있다. - 앨빈 토플러

(45)할리우드는 수직으로 통합된 고전적 거대 기업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네트워크 경제로 변신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지식 집약 산업이 할라우드와 똑같은 납작한 원자 상태로 해체될 것이다. 할리우드는 그저 가장 빨리 거기에 안착했을 뿐이다.

(46)다른 산업에서 연예 산업이 조직되는 방식을 본뜨려고 애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음반업, 예술계, 텔레비전, 라디오를 아우르는 문화 산업은 물리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고 포장하고 마케팅한다. 문화산업이 재화로 쌓아두고 거래하는 것은, 현실을 모방한 세계와 의식을 고양시키는 세계로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물건과 서비스를 상품화하던 것에서 경험 자체를 상품화하는 단계로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이것은 더없이 이상적인 모델이다.

[3. 무게 없는 경제]

(83) 네트워크 경제를 염두에 두고 개발된 새로운 회계 모델에서 물리적 자본은 회계 원장의 자산 항목으로부터 비용 항목으로 이동하여 경상비로 처리될 것이고, 무형 자본은 자산 항목으로 이동할 것이다.

(84) 상품의 교환을 관리하는 것이 흘러간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다가올 접속의 시대의 특징은 개념의 교환을 관리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개념을 거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사람들도 이런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의 물리적 구현물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점점 많이 사게 된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각을 관리하고 파는 능력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85)인간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중요하지만 상업성이 없는 사유는 어떻게 되는가? 자기 인생의 길잡이가 될 만한 생각을 상업의 영역에서 가져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문명에서,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관점, 의견, 관념, 개념이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과연 있을까? 온갖 유형의 아이디어가 거대 기업들이 관리하는 지적재산권의 형태로 얽히고 설켜 있는 사회에서 우리ㅡ이 집단 무의식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미래의 사회적 담론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4. 지적 재산의 독점]

(87) 접속을 통해 유형, 무형의 자산을 공유하는 주체들의 관계를 상품화하는 것, 이것이 곧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상업 활동의 핵심이다.

(93) 체인관계는 네트워크 경제의 새로운 조직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체인망은 뿔뿔이 흩어진 독립 소기업을 강한 흡인력으로 꾸준히 모아들여, 막강한 공급자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에 편인시킨 후 접속만을 공유하는, 독립성을 상실한 임차인의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종래의 독립자영업자가 누리던 자율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100) 업계에서는 수억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생물이 진화하면서 공동으로 축적해 온 유전가 암호의 상당수가 앞으로 25년 안에 분리되고 규명되어 지적 재산권의 형태로 포장된 뒤 소수의 거대 다국적 생명과학 기업에 의해 장악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5. 서비스 세상]

(127)서비스는 물질이 아니며 손으로 만질 수 없다. 그것은 수행되는 것이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는 실행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보유하고 축적하고 상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자는 사는 것이고 서비스는 받는 것이다. 서비스 경제에서 상품화되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지 장소나 물건이 아니다. 서비스는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호소한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과 사람의 접속도 점점 금전을 매개로 한 관계로 바뀐다.

[6. 인간 관계의 상품화]

(146) 새로운 마케팅 전략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시장을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고객을 얼마나 사로잡느냐이다. 페퍼스와 로저스는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한 종류의 제품을 최대한 많은 고객에게 팔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고객에게 이런저런 다양한 제품을 평생에 걸쳐서 최대한 많이 팔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한다.

(153) 마케팅 관점이 득세하고 소비자와의 관계를 상품화하는 것이 사업의 본질로 자리 잡으면서, 소비자를 관리하는 것은 생산 관점이 득세하던 시절에 노동자를 관리하는 것만큼니아 중요하고 긴요해졌다.

(156) 아마존과 나이키처럼 메드코는 순수 마케팅 회사에 가깝다. 공장을 소유해야 하는 부담, 연구 개발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하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롭다. 이런 회사는 실질적으로 재산을 보유하지 않는다. 가장 큰 자산은 고객에 접속할 수 있는 힘, 최종 사용자와 장기적으로 상업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다. 마케팅 관점이 제조 방식보다 우우위에 올라서는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167)시간 그 자체를 사고 팔고, 삶이라는 것이 한낱 계약과 금전적 도구에 의해서 결합된 상업적 거래의 연속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될 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전통적 상호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7. 삶으로서의 접속]

(194)다시금 강조하지만 접속의 시대에는 공간이 시간에게 밀려나며, 기업들이 더 많이 차지하려고 눈독을 들이는 것은 물리적 자원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이다. (P194)

(197) CID에는 전통이 살아있는 공동체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CID는 아무런 역사적 준거점 없이 설계 내역에 따라 하나부터 열까지 몽땅 인공적으로 만들어 허허벌판에다 툭 떨어뜨린 것이다. 그것은 역사를 모르는 공동체다.

(198)우리의 생활공간을 소유에서 접속으로 어느 정도까지 탈바꿈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21세기를 어떤 식으로 살고 싶어 하는 가에 대한 두 가지 감수성의 우열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203) 문화라는 것이 인간이 자기 주위에 엮어나가는 <의미망>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은 우리 인간이 이 의미망을 해석하고 생산하고 유지하고 변형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

(207) 경제 영역의 핵심적 원리는 자원 이용의 효율화라고 벨은 주장한다. 정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다. 문화 영역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자기실현과 자기 고양이다.

(213) 체험 산업의 성장은 산업 혁명이 생산한 물건의 효용성이 한계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소비자는 '내가 아직 안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지고 싶은 것이 뭔가?'라고 묻지 않고 '내가 아직 체험하지 못한 것 중에서 체험하고 싶은 것이 뭔가?'라고 묻는다. - 미래학자 제임스 오길비
(236)문화는 체험의 공유다. 서로 비슷한 가치 아래 사람을 모아들이는 것이다. 반면 문화상품은 문화를 잘게 토막내어 분할하는 것이고 상업화된 오락물로 개별 판매하는 것이다.

(256)저항문화는 마케팅 전문가가 특히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다. 환경 문제, 여성 문제, 인권 문제, 빈부 문제, 이 모든 것이 이미 마케팅에 동원되었다. 사회적으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주제에 상품과 서비스를 동화시킴으로써 기업은 소비자의 마음에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픈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그런 대의에 개인적으로 동참하는 상징적 행위로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도록 유도한다.

[9.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262) 속관계에 바탕을 둔 사회에서는 그 누구건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소유하고 네트워크에 이르는 통행로를 장악한 사람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10. 탈근대]

(291)MTV는 풍자가 아니라 짜깁기다. 장보드리야르가 말한 대로 ‘커뮤니케이션의 무아지경’을 연출하는 문화적 파편들의 끝없는 나열이 있을 뿐이다. MTV는 아무런 맥락이 없는 체험이다. 그래서 무의식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299)이제 자아는 만들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자아는 끊임없이 갱신되고 재편집되는 이야기의 전개로 여겨진다.

(298) 19세기만 하더라도 사람은 고정된 자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인생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증식되는 상품과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인생은 무언가를 부단히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정>이 <존재>를 압도하게 되었다.

(308)인쇄가 자율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관념이 싹트는 것을 도왔던 것처럼 컴퓨터는 관계를 중시하는 새로운 의식의 탄생을 북돋운다.

(316)문화 상품과 체험을 파는 데 골몰하는 경제에서 개개의 영혼이 복수의 인격으로 파편화된다는 것은 문화 시장의 수가 앞으로 그만큼 늘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할 따름이다. 사람이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체험의 양이 곧 문화 상품의 시장 규모를 의미한다면 개개인이 여러 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316) 접속의 시대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연극성이다. 조직, 관계 마케팅, 공동 관심 단지, 오락 센터, 테마 도시 ,관광, 문화 상품, 가상 세계는 모두 연극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326) 지금까지 정부가 의지한 것은 지리적 기반이었다. 정부는 국토를 통치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러나 인류의 사업 범위와 교제 범위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비물질적 세계로 이동하게 되면 영토에 기반을 둔 정부의 지위가 점점 흔들리게 되지 않을까?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359)모든 나라는 시장이라고 하는 제1부문과 정부라고 하는 제2부문을 중심으로 공공 정책을 운용하면서 문화라는 제3부문은 당연시한다. 사회 자본을 수립하고 시장과 교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막중한 역할이 문화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362)공감은 <타자의 인간성을 자신의 상상력 속에 끌어들이는 노력>을 요구한다.

(364)경제는 문화와 인간성의 기본틀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와 감정,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지리적 맥락을 박탈당한 문화 표현은 총체적 체험의 그림자일 뿐이다. 물론 그림자도 엄연한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즐거움도 줄 수 있지만 원래의 무용이 전달하려고 했던 대지와의 깊은 일체감은 맛볼 길이 없다. (P373)

(383)나는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창문을 굳게 닫아놓은 집에서 살고 싶지 않다. 온 세계에서 불어오는 문화를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밖에서 불어온 문화에 덩달아 휩쓸려 가지는 않겠다. - 간디

(384)산업 자본주의가 문화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금, 노동 정신은 놀이 정신에게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놀이는 간단히 말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 범주에 해당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

(385)일이 인간 생활을 지배하고 놀이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산업 시대로 들어오면서부터였다.
(386)일과는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논다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을 얻는다.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392)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3. 독자로서의 감상

읽는 내내 아주 재미있었다. 물론 재미(fun)라기 보다는 이해와 통찰을 얻었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리프킨의 책은 처음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 '어렵고 잘 안 읽힌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의외로 쉽게 읽었다. 경험과 관심이 책읽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박민영의 '책속의 책'에 보면 '네트워크 독서'라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방법인즉슨, 1)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는다. 2) 저자의 인적 네트워크를 따라 읽는다. 3) 하나의 영역/주제어와 관련한 서적을 일정 기간 읽는다. 핵심은 집중하여 하나의 주제에 대한 깊이있는 지식을 얻는 것이며, 조점을 통해 모멘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구원 도서가 월별 주제로 묶여 있다는 의미심장하다.

탈근대화 시대를 '접속'이라는 단어 하나로 풀어버리는 리프킨의 능력이 돋보인다. 이 책을 쓰는데 6년이 걸렸으며, 350권의 책과 1천 여 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 카드와 약 2천 개의 주석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그는 성실한 천재이다. 책 한권을 쓰기 위해 책을 읽으며 나오는 여러 사례들과 현상들에서 얻어내는 통찰에 연신 무릎을 치며 감탄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머리에 계속해서 머문 생각 중 하나는 인간의 체험과 삶, 즉 문화 자체가 상품화 되는 것에 대한 우려이다. 리프킨은 이렇게 말한다.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어쩌면 접속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인지도 모른다. 산업 시대에 자연 자원이 인간의 남용으로 고갈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했던 것 처럼, 문화 자원도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언제 고갈되어 버릴 지 모른다."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비치(The Beach)> 는 파라다이스를 찾아 나서는 세 명의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태국을 여행 중이던 주인공 리차드(디카프리오)는 어느날 허름한 여관의 옆방에서 한 마약중독자 친구에게 지도가 그려진 비밀스런 쪽지 하나를 건네 받는다. 그가 말하길 "그곳은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낙원이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해변을 잉태하고 있다. 외부인이나 잡동사니 관광객들로부터 한 점 때가 묻지 않은 순수의 섬이다" 라고 했다. 리차드는 두명의 친구와 함께 '때묻지 않은 자연'을 찾아내고, 그곳에서 외부 세계의 사람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광기적인 전투를 치른다. 영화는 결국 '순수함은 영원하지 않다(Innocence never lasts forever)'는 명대사로 막을 내린다. 문화가 인간과 상업주의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모습이 안타까운 영화이다.

영화를 빛나게 하는 것은 영화의 배경이 된 태국 피피섬의 '마야 베이(Maya Bay)'이다.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가 화면에 담아낸 태양이 빛나는 완벽한 낙원으로서의 해변가의 모습은 영화의 작품성과는 별도로 관객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깎아지르는 절벽이 백사장과 나무를 둘러싼 마야해변은 방콕에서 남쪽으로 3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변으로 태국의 국립공원이다. 내가 태국에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에도 세번이나 갔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진실로 안타까운 것은, 그런 완벽한 낙원을 영화에 담기 위해 영화 제작진들이 한 행태이다. 영화의 원작인 영국작가 알렉스 갈란드의 베스트셀러 소설에서 묘사된 낙원의 이미지를 되살려내기 위해 제작사측은 마야 해변의 많은 것을 바꾸어야 했다. 불도저를 동원하여 해변을 넓히고 평평하게 하는 한편 많은 관목과 풀들을 없앴다. 그 결과 코코넛 나무가 약 100그루에서 60그루로 줄어들고 모래가 많이 씻겨내려가 백사장이 점점 좁아졌다. 세트용 야자수 100그루를 심고 사구를 낮추는 공사로 환경 훼손 소송에까지 휘말렸고 결국 폭스사는 500만바트(한화 1억5천)에 해당하는 비용을 물어야 했다.

자연 훼손을 골자로 한 영화가 결국은 그렇게 하고야 말았다. 영화의 상업성이 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더럽게 만들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마야 베이를 찾았을 때에는 이미 더렵혀진 후였다. 이곳 저곳에 널려있는 쓰레기와, 여기저기 아무렇게 정박해 있는 배들,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불쑥 찾아와 맛사지와 타투(Tatoo)를 강요하는 잡상인들.. 우리는 리프킨의 질문을 가슴깊이 기억해야 한다.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세상, 인간관계에 항상 돈이 개입되고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4. 내가 저자라면..

모범이 될만한 최고의 책이다. 경영학, 특히 이런 미래의 트렌드 관련한 책들은 무엇보다 사용된 예시와 증거, 수치들이 중요하다. 이 책의 적절한 사례와 논지. 큰 흐름의 통찰이 돋보인다. 벤치마킹 할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표면적 현상으로부터 전체적 개념으로
역자인 이희재의 표현대로, 리프킨은 “표면적으로는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의 저변에 흐르는 조류를 날카롭게 파악하여 명쾌한 개념으로 요약”하여 우리에게 제시한다. 작은 현상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큰 흐름을 요약하는 방식이 좋다. 이러한 방식의 접근법은 자칫 과잉 일반화의 오류로 여겨지기 십상이나, 리프킨은 다양한 현상과 사례로 그러한 의심을 묵살해버린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자세한 현상적 설명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아야한다.

축소판 모델로부터 큰 흐름 설명 – 유사성 접근
개별 현상들이 전체적 트렌드를 이끌어내는데 쓰였다면, 그러한 흐름을 현실감 있게 설명하기 위해 작은 축소판의 모델을 사용했다. 내가 특히 놀랐던 것은 1장의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통해 미래 네트워크 조직의 특성을 설명한 것과 10장의 접속의 시대의 ‘새로운 인간형’을 묘사하여 설명한 부분이다. 대개의 경우 복잡한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비유’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비유에서는 세부적인 묘사를 기대하기 어렵고, 자칫 잘못된 비유는 큰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축소판의 세계를 설명함으로써 간결성과 세부성 모두를 유지할 수 있다.

각 장의 역사적 시선들 – 미래학 서적인데 왠 역사?
매 장마다 대부분 역사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반드시 나온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잇고, 미래를 가늠해 보기 위해 역사는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역사적 관점은 조안 시울라의 ‘일의 발견’에서 처럼 장황하거나 비대하지 않다. 짧고 간결하게 정리하여 한눈에 흐름을 볼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 개인적으로 학습과 학교에 대한 역사적인 문헌들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사만큼 현재를 비춰주는 것도 없구나.

전체의 지도역할을 하는 1장
첫 1장은 나머지 장들에 대한 간략한 요약이다. ‘출발 비디오 여행’에서 본 영화는 실제로 보면 재미가 반감되기 마련이지만, 이 책의 경우는 워낙 방대한 내용이라 이러한 지도 역할의 장이 처음에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예고편’ 장은 궁금증을 유발하게하며, 순항을 위한 좋은 나침반이 되어준다. 보통 학자들이 쓴 책의 서문에서 ‘1장에서 3장까지는 이것을 언급하고, 4장부터는..’ 식의 지도가 아니라, 전체 한 장을 할애하여 소리없이 자세히 전달하고 있어 1장은 책 전체 흐름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방대한 실증적 자료 – 통계치와 인용 자료
이 책을 쓰는데 6년이 걸렸으며, 350권의 책과 1천 여 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 카드와 약 2천 개의 주석이 동원되었다고? 맙소사!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자세하고 방대한 증거들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방대한 실증적 자료는 짐 콜린스의 ‘Good to Great’이후로 처음 봤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간결하게 썼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통계치를 마무리 할 때 인문학적이며 임팩트 있게 한 문장으로 요약하였으면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사부님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의 트렌드 부분에서 나오는 그런 충동적이며 선도적인 마무리 문장 말이다.

그 밖에..
- 번역이 훌륭하다. 이 책의 분량과 깊이로 가늠해보건데 이렇게 말끔하게 번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역자의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공경희, 안정효씨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타번역자임을 알게되었다. 역시.
- 책의 논리적 연결구조가 좋다. 두괄식으로 시작하여 주제를 문두에 담고 사례를 중간에, 그리고 다음 주제와 연결하여 단략 종료 – 다시 다음주제로 넘어가는 ‘연결성’이 좋아 한번 삘이 꽂히면 줄줄 읽어내려갈 수 있다.

* 몇 가지의 아쉬움은 남는다. 이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2% 부족한 제목과 소제목들
‘접속의 시대(Age of Access)’에서 ‘소유의 종말’로. 저자가 지적한 상업성이 침범하는 문화란 이것을 말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이 책의 훌륭한 번역에 매우 만족하면서도 상술의 흔적이 보이는 제목이 아쉽다. 책은 주로 새로운 흐름인 ‘접속’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제목에서처럼 ‘소유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책의 중심은 접속이지 소유가 아니다. 또한, 몇몇 장의 소제목들이 모호한 경향이 있다. 대에로 논지는 드러나지 않고 주제어만 던져주는 식인데, 좀 더 주제를 반영하도록 쓰면 어떨까? 소제목으로 엮인 단락들이 꽤 길어서 주제어 만으로는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32페이지의 소제목인 ‘네트워크의 경제’를 ‘네트워크 경제에서의 윈윈 전략’으로 바꾸는 식이다. 7장의 ‘삶으로서의 접속’은 ‘접속의 주거형태’ 혹은 ‘접속과 라이프스타일’로 바뀔 수 있을것이다.

공급자의 ‘접속’ 공급 동기?
저자는 ‘접속의 시대’에서 서버와 클라이언트로 대변되는 일시적인 사용 권리에 대해 언급한다. 영구적인 소유에서 접속으로 가기까지의 사회적, 문화적인 변화와 사용자 측면에서의 편의성과 동기에 대해 자주 언급하지만, 공급자 입장에서 접속에 대한 동기 부분의 설명이 부족한 느낌이다. 시대가 변했고 그곳에서 살아 남으려면 기업 역시 ‘접속’에 근거하여 변화해야 한다는 논지는 약하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상호 win-win의 관계가 중요하다면 공급자 측면에서도 분명 판매가 아닌 임대를 택했을 경우의 이익이 있어야 함은 자명하다. 몇 가지 사례들이 이를 설명하고는 있지만 사용자들의 이익 사례에 비해 미약하다.

구체적인 How to 언급이 있다면..
후반부의 문화와 인간관계의 상품화에 대한 경계와 함께 제시한 대안이 모호하다. 문화적 다양성을 보존해야 하며 그 역할은 NGO, 시민단체가 담당해 나가야 한다는 의도는 언뜻 비치지만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문화자본주의로 발전해 감에 따라 발생 가능한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 뒤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이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IP *.112.72.193

프로필 이미지
이기찬
2007.04.09 00:08:37 *.140.145.63
난 만화와 소설을 읽을때 '네트워크 독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

선생님의 내가 저자라면에 대한 코멘트 이후에 연구원들의 이 부분에 대한 진전이 눈에 보이는군.. 특히 옹박의 경우에는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군. 굿이야..
프로필 이미지
부지깽이
2007.04.09 06:44:25 *.128.229.88
'내가 저자라면' 좋다. 그대의 첫 책에 몇 가지를 가져다 쓰면 좋을 것이다.

나는 그가 최고의 저자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동양에 대해 깊지않다는 것을 아깝게 생각한다. 예를들어 '육식을 넘어서'의 제안- 자연과의 일체감-는 이미 동양의 가장 기본적인 일상이었다. 그것은 미래의 제안이 아니라 과거였다. 서양 문명의 위기와 구원이 우리가 서구화하기 위해 쉽게 버리려고 하는 것들 속에 수없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지. 한번 지나가면 다시 회기하기 어려운 것을. 다음달에 과거를 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역사는 어떻게 진화하는지 누여겨 보자.
프로필 이미지
초아
2007.04.09 07:28:05 *.145.77.73
이제 조금 맘의 평정을 찾았구나. 글속에서 힘이 빠진 모습이 보인다. 전엔 너무 의욕이 강해서, 읽는사람도 힘들었는데 반하여 지금은 평상의 모습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꼬집지 못하는 무언가 빠진 것 같다. 그걸 찾아라.

장님이 눈을 감고, 바둑수를 연상하는 것과 같이, 비단같은 글이 술술 자연스럽게 쓰여 질 때가 언젠가 올 것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하거라...

- 항상 자넬 응원하는 친구가. -
프로필 이미지
김도윤
2007.04.09 09:52:45 *.249.167.156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책의 장점들을 눈여겨보는 자신만의 시각이 마음에 드네^^
프로필 이미지
香山 신종윤
2007.04.09 14:00:45 *.227.22.4
뽑아내고 분류하는건 정말 옹박!이 최고구나. ㅎㅎ

단순히 승완선배의 충고를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내가 저자라면' 부분을 정말 옹박만의 방식으로 충분히 살펴내는 것을 보면서

'아!~ 이거구나~' 했네.

나도 다음엔 무조건 쓴소리로 찍어내는거 말고 옹박스타일을 좀 연구해봐야쓰겄네. 잘 읽었어. 땡큐~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7.04.10 20:22:17 *.55.54.44
너무 바빠서 댓글도 못남겼네요..
음.. 이번에 책은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 리뷰는 즐기며 쓰지 못한것 같아 아쉽습니다. 초아선생님 표현대로 '비단같은 글이 술술 자연스럽게 쓰여 질 때가 언젠가' 올 것이라 믿고 즐기며 해야겠습니다. ㅎㅎ
프로필 이미지
나그네
2011.10.29 19:16:34 *.83.238.14
잘 보고 갑니다 ^^ 참고해서 독후감좀 써도 될까요? 제가 어휘력이 떨어져 표현할 방법을 못찾고있었는데 정말 좋은 글들이 보이네요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72 부의 미래/앨빈 토플러 [5] [1] 香仁 이은남 2007.04.14 2878
771 『엔트로피』를 읽고.. [5] 賢雲 이희석 2007.04.09 2281
770 엘빈토플러 - 그에게서 미래를 읽다. [8] 최정희 2007.04.09 2838
769 육식의 종말 : Jeremy Rifkin [3] [1] 素賢소라 2007.04.09 2311
768 The End of Work-Jeremy Rifkin file [13] 海瀞오윤 2007.04.09 2433
767 인간적인 길(자크 아탈리) [8] 써니 2007.04.09 2432
766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18] 香山 신종윤 2007.04.22 2950
765 소유의 종말 _ the age of access [10] 時田 김도윤 2007.04.09 2252
764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안철수 [3] 신재동 2007.04.09 2347
» (05) 소유의 종말 - 제레미 리프킨 [7] 옹박 2007.04.09 5255
762 육식의 종말 - 쇠고기, 그 차가운 악 [4] 好瀞 김민선 2007.04.08 3231
761 -->[re]인크레더블을 다시 떠올리다.. file [1] 이기찬 2007.04.08 2642
760 (005) 노동의 종말 [5] [1] 校瀞 한정화 2007.04.08 2580
759 (독서005)노동의 종말/제러미 리프킨 [9] 素田최영훈 2007.04.09 2525
758 육식의 종말/제레미 리프킨 [8] [1] 香仁 이은남 2007.04.07 2686
757 [엔트로피]과학의 성경책 [4] 余海 송창용 2007.04.07 2314
756 (04)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 - 알렌 B. 치넨 [10] 옹박 2007.04.03 2302
755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을 읽고 [5] 賢雲 이희석 2007.04.03 2070
754 지금 내가 걷고 있는길 -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 [5] 최정희 2007.04.03 2111
753 Once Upon A Midlife- Allan B. Chinen file [10] 海瀞 오윤 2007.04.03 2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