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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8일 11시 31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조안 B. 시울라(Joanne B. Ciulla)

리치먼드 대학교의 교수이자 젭슨 리더십 대학원에서 리더쉽과 윤리 분야의 석좌교수직을 맡고 있다. 그동안 ‘일과 삶의 행복한 통합’에 대해 고민해온 저자는 오랜 연구의 결실인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모든 ‘일’ 뒤에 숨겨진 진실을 인문학, 사회과학, 경영학적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대학 강사일 때와 대학원생 일 때, 그리고 웨이트리스일 때, 사람들이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자신의 어떤 역할이 실제 자신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 일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다. 저자가 고용인에 대해 남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노동철학을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강단에서 다양한 학생들과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사회와 제도는 일반적인 의미구조를 제공하지만, 개인이 의미를 해석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의 힘은 일에 대한 연구가 자신의 삶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을 축복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일을 없애려고 하는 모순적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일과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찾아나서는 지도를 선물한다. 그 지도위에 저자는 낭만이 아닌, 냉혹한 현실을 그대로 담아냈다. 체세를 위한 책도 아니었으며, 엄격한 사회과학 연구서도 아니었다. 지도를 그려나가기 위해, 저자는 철학자로서 사회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간극에 놓인 질문을 살펴보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 있는 일에 대한 생각들을 뒤집어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다. 노동자들의 가치를 논하기 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훌륭한 삶”속에서의 일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들을 끊임없이 했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들은 내면에 이중적 가치의 공존을 가지게 했고, 유연하게 열려있는 질문들을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질문하여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지도위에 만들어 주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비추어 보고, 사회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생각과 기대를 살펴보기를 희망한다. 또한 일과 삶에서 해왔던 자신의 선택들을 돌아보며 ‘일’ 자체가 목표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선택을 모색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저자가 손에 쥐어준 한권의 지도를 들고 그저 주어지지 않는 의미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2. 마음에 들어오는 글귀

에필로그
8-우리는 일을 축복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일을 없애려고 하는 모순적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12-나는 식당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학구적인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고마운 변화였으며, 나는 항상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 내가 대학 강사일 때와 대학원생일 때, 그리고 웨이트리스일 때,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달랐다. 하루가 끝날 무렵, 나는 어떤 역할이 실제 나일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14-하루가 끝날 무렵 노동자들의 얼굴을 덮고 있는 피로는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다.

15-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일’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 사람에게도 일과 여가, 그리고 삶의 의미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직접 그것을 찾아나서야만 한다.

일의 의미와 역사
1. 왜 일하는가?
21-도시의 공장이 문을 닫아 모든 사람들이 실직 상태에 빠지자, 시민들은 이 모든 것에 무관심해졌다. 시민들은 일뿐만 아니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능력 또한 잃었다. ‘구속된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시간 또한 없다. / “실직의 문제점은 당신이 단 하루의 휴가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23-직업을 잃었거나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결코 ‘일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일할’ 자유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25-일은 우리의 시간을 조직하고 우리의 삶에 리듬을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우리에게 매일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준다는 점이다.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매일 매일을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활동으로 채울 수 있을까? 우리들 대다수는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6-요컨대 우리는 타고난 기질 때문이 아니라 훈련과 도덕적 조건화로 인해 일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 이라면, 일에 있어서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필요일 뿐인 것이다.

27-‘일의 의미’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일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29-비록 그는 형체는 변했지만, 그의 특성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들판을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밀과 보리를 모아 자신을 위해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30-너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은 오직 너 하나뿐이다. 다른 어떤 생물도 네가 비축한 부의 일부를 공유하지 못한다. 반면 꿀벌은 기특하고 정교한 노력으로 세상에 축복이 되는 것을 만들어 낸다.
31-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적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중심이다.

33-개미는 미래를 위해 살지만, 막상 미래가 왔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아는 것은 아니다.

34-첫째, 이솝우화의 개미와 달리 개미베짱이들은 참을성이 없고, 만족을 지연시키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둘째, 그들은 일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셋째, 문제는 개미 베짱이들이 자신의 모든 시간과 돈을 일에 투여함으로써 친구, 배우자, 자녀와의 관계를 해치는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다. / 베짱이는 현재를 위해 살고 미래를 희생한다. / 꿀벌은 개미처럼 일하면서도 베짱이처럼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즐긴다.

35-우리는 놀면서 일하는 대신 일하면서 놀 것이다. / 만약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베짱이에게 놀이는 그 자체로 목적이다. / 결국 일과 유사한 놀이를 발명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36-꿀벌은 꿀을 만드는 과정자체를 즐기거나, 꿀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즐기거나 여전히 꿀 만들기를 즐긴다.

37-예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의미가 있어보인다. 반면 일보다 노래를 더 좋아해서 죽는 것은 어리석다. /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38-이들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좋아한다. 그들은 특정 활동들에 대해 그것이 어떤 일인지, 혹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따라 가치를 매긴다.

42-결과적으로 일부 여성들, 특히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여성들은 일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43-부사장은 일하는 어머니의 욕구와, 그러한 욕구로 인해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여성의 사정을 이해했다. 그기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엄마로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는데도 왜 그녀는 성공한 투자상담사로 남기를 원하지 않았는가이다.

44-몇몇 여성들은 자신들이 힘들여 얻은 ‘좋은 직업’이 겉보기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일이란 무엇인가?
48-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어떤 것의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잠재적으로 강력한 행위이다. 당신이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당신은 그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50-구상한 세계를 생각해보라. 회사의 회의실은 ‘사고센타’라고 불리고, 기술부의 우두머리는 ‘여행과학자’, 고용인들의 고문단은 ‘행복의 척도’, 병가는 ‘가족 책임의 날’, 회사 도서관은 ‘모임’이라고 부른다. ‘유쾌한 상황’을 만들어 주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53-태국어에서는 ‘일’을 뜻하는 단어와 ‘파티’를 뜻하는 단어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 모든 활동은 ‘사눅(재미있는)’과 ‘마이 사눅(재미없는)’으로 구분된다. 사눅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근심없는 즐거움을 뜻한다. 일이건 놀이이건 상관없이 어떤 활동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속성이 바로 ‘사눅’이다.

57-‘일’은 노동의 산물을 나타내는 명사이지만, 노동은 일하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명사이다. ‘노동’은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반면, ‘일’은 다양한 행위나 그러한 행위의 대상을 가리킨다.

58-트리팔리움은 말의 발에 편자를 박기 위해 말의 다리를 묶어놓는 세 개의 기둥을 가리킨다. 이후 이 단어는 일종의 ‘고문’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그 후 다시 ‘일’이라는 의미로 변화했다. 고대 그리스어는 ‘일’이라는 뜻의 파노스는 분쟁, 처벌과 동의어이며, ‘슬픔’을 나타내는 라틴어 단어인 포에나의 어원은 일을 뜻한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다.

62-우리가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려 들거나 우리의 일에서 스스로를 멀리 하려고 할 때면 “이건 업무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3. 일의역사
66-욕망은 인간의 필요와 달리 무한한 것이다.

67-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 마음 혹은 영혼 속에 존재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생각은 물질세계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변화로부터 안전하다.

70-고대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초기 기독교인들도 일보다는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심미적인 이유보다는 금용적인 이유에서였다.

73-‘태만’은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75-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의 일은 과학적인 일이 아닌 ‘자연의 일’ 이었다. / 성 베네딕트에게 일은 직업이나 소명이 아니라, 일종의 ‘눈에 보이는’ 기도였다.

76-죄는 보이는 세계에서 행한 것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저술했다. 선과 악은 개인의 성향과 경험에 기반한 선택이다.

81-일에 관해 말할 때 우리가 가장 애용하는 묘사, 즉 ‘창조로서의 일’은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했다.

82-14세기의피헨체는 우리에게 세계를 만들어내고 자연의 형태를 바꾸는 창조자로서의 인간, 즉 호모 파베르의 이미지를 선사했다. 르네상스인은 스스로의 정신과 영혼, 육체와 두 손을 훈련시켜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어냈다. 만약 종교가 중세의 아편이었다면 창조성과 미는 르네상스 시대의 각성제였다. / 그는 삶이란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것이라고 믿었다.

82-덕이 ‘쾌락으로 환원될 수 있는 요소’ 라고 주장했다. 쾌락은 짐승 같은 충동이 아니라이성과 통찰의 원리이며, 덕은 재능이자 인내하는 능력이었다. / 일이 인간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일을 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르네상스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성취를 이룬 사람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자신의 일을 조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87-종교 개혁가들은 모두 일을 베루프, 즉 소명으로 정의했다. 소명은 일의 종류르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태도를 일컫는다. / 당신의 소명은 신이 결정하지만 천직은 당신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다.

88-종교가 일의 도덕적 가치를 형성해온 과정. 고대인들은 일을 강제적인 것이자 저주로 보았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일에 ‘단순한 위엄’을 부여했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일에 ‘매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신교도들은 일을 의미와 정체성, 구원의 징표를 찾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일, 즉 소명스로서의 일 개념은 일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특징을 강조했다. 일은 일종의 기도가 되었다. 일은 삶의 수단을 넘어 삶의 목적이 되었다. 일은 저주에서 소명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함죽하게 되었다.

4. 일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
91-“내가 무엇을 잘하는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라는 개인적 질문과 “신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라는 신교도적 질문 사이에는 긴장이 존재한다.

102-산업화 이후부터는 일에 대한 두 가지 유향의 견해가 존재했다. 첫 번째 견해는 계몽주의적인 것, 즉 과학과 지식이 ‘진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장 자크 루소와 같은 비평가들이 말한 것으로, 일이 일종의 은총 받은 상태로부터 ‘타락’했다는 것이다.

103-내가 오늘 한가지 일을 하고 내일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 사냥꾼이나어부, 소 치는 사람이나 비평가가 되지 않고도, 마음먹은 대로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고기를 잡으며 저녁에는 소를 사육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비평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105-모리스는 일이 “삶의 빛”이 될 수도, 혹은 “삶의 짐”이 될 수 도 있다고 말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첫 번째 경우에는 희망이 있는 반면 두 번째 경우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가치 있는 일은 휴식의 즐거움에 대한 희망, 일을 통해 만든 것을 사용함으로써 느끼게 될 즐거움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일상적인 창조의 기능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한 희망을 수반한다.”

106-모리는 누군가가 ‘불쾌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일조차도 보다 인도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몇몇 일꾼들이 끔찍한 일을 해야 할지라도 그들이 그 직업 때문에 끔찍한 삶을 살지는 않도록 일 자체를 구조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09-법학과 의학을 비롯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독점을 유지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5. 일과 자유
110-결국 우리가 전문가나 장인으로부터 얻는, 일에 대한 환상은 자율성, 창조성, 지위, 개인적인 기술에 대한 존경, 타인에 대한 시심없는 서비스, 그리고 지배층의 통제라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

112-“일과 관련된 문제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노동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이미 시작된 것”

117-자유의 원칙은 이러한 관계의 중심에 있으며,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기본이 된다. 일할 자유, 일터에서의 자유, 그리고 일로부터의 자유.

120-노예지도는 경제적 힘과 다른 형태의 지배권을 가진 사람들이 극빈자들을 유혹하여 자신들을 위해 일하도록 강요하는 제도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125-노예제도와 계약노예제도에서는 타인의 노동을 ‘빌리기’보다는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주인이 그들을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127-한 개인이 자신의 일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고용주의 학대를 반드시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문제는 한 개인이 얼마나 많은 선택권을 ‘실제로’ 갖고 있는가이다. / 스스로를 노예화하는 행위는 오랫동안 우리 주변에 존재해왔다.

129-우리 모두는 일을 선택할 자유를 갖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실행 가능한 선택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130-우리는 착취당하는 가난한 자들이 만약 ‘착취당하지’ 않았다면 휠씬 더 못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라는 ‘착취의 논리’에 쉽게 빠져든다.

132-한 사람이 직업에서누리는 ‘자유의 양’ 이야말로 임금보다 나은 계급의 지표라고 주장한다. ‘자유의 매매’라는 개념은 때때로,특히 한 개인이 필사적으로 직업을 필요로 하고, 선택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노동의 매매에 수반된다.

135-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개방이 저자로서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기술을 민주화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하다. 그것은 장인들이 자신의 기술과 제품의 질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법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비밀을 드러냄으로써 공예의 기술과 즐거움을 세상과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을 표현한 것일까? 아마도 장인들은 산업화가 그들이 가진 기술의 가치를 폄훼했기 때문에 자신의 비밀을 포기했을 것이다.

6. 일꾼 길들이기
137-일꾼들이 갖는 힘의 한가지 원천은 그의 전문 기술이다. 그리고 또 다른 힘의 원천은다른 일꾼들과의 연합이었다.

138-과학적 관리법, 복지 자본주의, 그리고 경영에서의 인간관계 접근이 그것이다. 이들 모두는 노동자들을 길들였을 뿐 아니라 일을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회적, 심리적 경험으로 만들었다.

140-“나는 당신이 감시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

146-복지 자본주의의 이면에 자리잡은 일반적인 생각은 고용인들을 행복하게 하거나 그들의 이익이 그들 자신의 계급적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닌, 고용주의 이익과 결합되는 공동체에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 “오늘날과 같은 대량생산의 시대에, 산업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인간을 인간다운 원칙에 기반하여 관리하는 것”이었다.

150-인간관계와 산업심리학을 “인간기계를 작동하기 위한 승무원 관리하기”라고 불렀다. 이러한 경영적 접근법은 현장 관리자와 근로자들 간의 관계, 근로자 집단의 역동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영진은 고용인들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고용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었다.

151-실험 작업장의 여성들은 상황에 관계없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험에 관련된 권위자들에게 좋은 감정과 강한 애착을 느꼈기 때문이다.

153-일에 대한 그들의 불평은 변화를 원해서라기보다는 감정적인 배출을 필요로 하기 때문인 것이다.

156-새로운 심리적 통찰을 이용하여 고용인들에 대한 통제력을 증진시키려는, 겉으로는 다소 횡설수설하면서도 친절한 남자의 역할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 경영자들은 여전히 “협력이란 사장이 원하는 것을 하는것”이라 여기며, 협력의 기술이 아닌 협력의 목적에 초점을 맞춘다.

7. 노동의 두 얼굴
162-기업들은 일과 삶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이와 싸웠으며, 때로는 개인의 삶에서 일을 더큰 부분으로 만듦으로서 승리를 거두었다. / 사무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뿐 아니라 개성까지도 팔아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밀스는 사무직 노동자를 “새로운 작은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뿌리가 얕아 충성심이라고는 없으며, 항상 서두르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163-고용인들의 감정마저도 조직이 바라는 대로, 조직의 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직장 내의 정서를 통제함으로써, 고용주들은 근로자들을 소외시키지 않고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당화 할 수 있게 되었다. / 밀스가 찬양한 19세기 방식, 즉 ‘일과 삶의 통합’이 20세기에는 재앙이 되어버린다.

164-근로자들이 일로 인해 시간을 빼앗길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미치는 조직의 영향력으로 인한, 일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개인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양편 모두 이러한 문제를 “소외”라고 부른다. 일이 삶으로부터 사람들을 소외시키든, 삶이 일로부터 사람들을 소외시키든 말이다.

171-일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아니라, 교육 수준이 높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의 사람들이 갖는 포부라고 주장했다.

172-“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전부”라고 가정하는 것은 인간의 열정, 이상, 가치가 갖는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가치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기반한 선택을 한다.

173-밀스가 말한 “새로운 작은 사람”처럼 많은 노동자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졌다. 그러한 사람들은 “침묵하는 다수”로 불렸다.

174-직무만족은 직무의 내용이나 본질적인 가치에서 비롯되는 반면, 일에서의 불만족은 대게 외적인 요인들에 의해 비롯된다.

179-일터에 있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점이다.

181-다른 사람들과 일할 때, 우리들 대부분은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은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우리가 걸치는 페르소나와 허용되는 감정의 범위는 직업에 따라 달라진다. / 근로자들에게 있어 일의 가장 힘든 부분은 정서적인 노력이다.

182-직장에서의 분노는 “분노 컨설턴드”를 위한 시장을 낳았다.

8. 배신하는 직장
190-우리는 또한 조직 내의 힘, 권력. 갈등에 관한 질문들이 왜 경영학 교과서나 대중 문학에서 논의되는 일은 드문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이러한 책과 이론들은 경영자들에 ‘대한’것인 동시에, 경여자들을 ‘위한’ 것이다.

195-가장 부정적인 면은 고용인들이 충분히 일 바깥에서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 예를 들면 우정의 욕구 같은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일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신이 실직하게 되면 당신은 일과 소득뿐 아니라 휠씬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203-직장은 전보다 더 활기차고, 희망으로 가득 채워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장이 이전보다 더 ‘진실’해졌는가?

204-미클스웨이트와 울드리지는 오늘날 스포츠팀은 점점 더 사업가처럼 활동하는 반면, 회사 조직들은 고용인들로 하여금 보다 더 스포츠처럼 행동하도록 장려한다며, 이런 상황이 얼마나 반어적인지에 주목한다. 대형 스타가 게임과 팀의 급료 전부를 차지하는 프로 농구는 팀워크의 모델이 될 수 없다.

206-그들을 “빠르게 움직이는 팀”으로 재편성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고용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좋은 계획이네요, 우리가 스스로 ‘팀’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그 다음엔우리가 무기력하고 세밀하게 조종되는 노예라는 사실을 결코 깨닫지 못할 테니까요.”

213-“모든 사람이 회사를 위해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두려움을 몰아내라”

225-사회적으로 구조조정은 근로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알고 있었거나 의심해온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즉, 고용주들과 경제는 변덕스러우며, 당신은 조직에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말이다. / 직장은 나에게 돈을 지불하지만 나를 마음대로 하지는 못한다. 직원 야유회 같은 것을 나에게 요구하지 말라.

231-그런데 그 누구도 어떤 종류의 보상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지 근로자들에게 직접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 노사관계에 있어서 큰 모순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그 사람의 만족을 이용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232-일을 보다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드려는 시도는 본래 그 자체로는 훌륭한 의도이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부당한 임금을 받고도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기 위해 일을 더 그럴듯해 보이게 하는 것은 착취이다. / 그들은 보다 무시무시한 망령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세계경제이다.

235-실직한 근로자들은 스스로를 비난하거나 초점 잃은 분노를 품는다. 확정되지 않은 미래가 언젠가, 그들의 회사를 보다 경쟁력 있게 만들기 위해 그들의 삶은 혼란에 빠진다.

238-“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서 해가 될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이봐, 왜 그런 위험을 무릅쓰는 거야?”

일과 삶
10. 우리는 시간과 투쟁한다
248-필수품이나 자유처럼, 시간은 일의 의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250-아이들의 체온은 더 낮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이는 아이들이 오랫동안 차를 타고 가면서 “아직 멀었어요? 언제 도착해요?”라는 똑같은 질문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나이 든 사람들은 체온이 더 높아서 시간을 더 빨리흘러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거의 모든 일이 “바로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251-‘밥을 짓는데 걸리는 시간’이 30분으로 측정 되었다. ‘잠깐’은 메뚜기를 튀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칠레에서는 계란 하나를 요리하는 데 ‘아베 마리아’한 곡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진은 사도신경을 두 번 읊는 시간만큼 지속될 수 있었다. / 농경사회에서는 자연적인 사건들에 의해 시간이 도표화되었으며, 여러 문화권에서 시간과 경과를 나타내기 위해 종교적 시간들을 이용했다.

255-우리가 정해진 시간에 더 많은 활동들을 끼워 맞추려고 노력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가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는 시간이 더 없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에 더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느끼는’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 일은 협동을 요구하지만 현대의 일은 또한 ‘동시성’을 요구한다.

256-17세기와 18세기 유럽의 남성 및 여성 근로자들은 매주의 첫날에는 일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스스로 정한 그 휴일을 “성(聖) 월요일”이라고 불렀다.

269-일이 우리 삶에서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할수록 모든 활동은 점점 더 일처럼 느껴진다. 시계와 일정표는 우리의 사회생활로부터 자연스러움을 빼앗아간다.

272-전문직의 일은 대개 시간 지향적이기보다는 과업 지향적이다.

273-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데서 조직을 우리의 집으로 이동시키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다시 생활이 일의 일부여야 하는지, 일이 생활의 일부여야 하는지의 문제를 제기한다. 당신이 집에서 일한다면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274-대면시간은 고용인들이 실제로 일을 하기보다는 이미지 형성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의식’이다.

11. 여가와 소비주의
276-여가는 인간의 가장 훌륭하고 독특한 능력, 즉 생각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창조하고 배우는 능력을 이끌어 낸다. 우리는 지혜를 발전시키기 위해 여가를 필요로 한다.

277-일버레인 G.K. 체스터턴. 첫 번째는 ‘무언가를’하도록 허락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어떤 일이든’할 수 있도록 허락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아무일도 하지 않도록’ 허락되는 것이다. / 여가는 존재의 상태, 인간의 조건을 말한다. 그것은 일종의 마음가짐, 혹은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상상력 풍부한 사람들의 태도이다.

282-대중오락은 수동적인 여가를 제공한다. 대중오락은 일로 복귀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일로부터의 구원을 제공한다. 대중오락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거나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으면서 아무 때나 즐기다가 그만둘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재미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미를 남기지 않는다.

283-TV 시청에는 일반적으로 정신적인 노력이 거의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그것은 “TV 응시”라고 불러야 한다.

284-흥미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흥미로운 여가를 추구하고, 지루한 일을하는 사람들은 수동적인 여가에 만족하곤 한다.

287-소비는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약할 때조차 해야 할 ‘필요’를 창출한다. 그러나 그것은또한 일을 더욱 부담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들 수 있다.

288-흥미로운 것은,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십대의 학업을 방해할 뿐 아니라 호기심 많고, 상상력 풍부하고, 호전적이어야 할 시기에 “적응된 온화함”을 심어줄 수 있다는 그린버거와 스타인버그의 주장이다. / 일이 월급 이외에는 개인적인 만족을 제공할 수 없다는 냉소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290-우리의 이웃들은 원하는 것을 기준으로 사야 할 것을 생각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이웃을 알지 못하는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직장이나 TV, 광고 등에서 본 광범위한 사람들과 비교하고, 이들에 의해 설정된 기준에 비추어 소유하고 싶어한다.

291-“지역사회 운동가가 되고 싶어했던 사람은 기업 변호사가 되고, 사회복지사가 되려던 사람은 은행원이 된다. 그리고 그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이 포기한 꿈을 보상받고자 한다” / 일과 여가, 그리고 소비주의는 우리를 악순환에 가둔다. 우리는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힘든 일을 보상받기 위해 물건을 구매하여 자유시간을 사용하게 된다.

292-그러나 우리는 고객으로서 권력을 가지고 있다.

295-여가는 자유롭고, 자기 결정에 의한 것이며, 즐겁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원할 때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다. 여가는 돈이 들지 않는다. 친구나 가족과 어울리는 것. 소설책을 읽거나 단지 공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여가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활동을 하는 시간이다. 여가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것이다. 여가가 없다면 우리는 삶을 이해하는 것이 한층 더 어려울지 모른다.

12. 의미있는 일, 그리고 행복한 삶
297-“의미 있는 일과 의미 있는 삶, 그리고 행복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가 될것이다.

298-“인생은 희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고, 비극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다.”

299-“삶의 목적? 살아 있는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300-사람들이 외로움이나, 친구 또는 가족들로부터 단절감을 느낄 때 그들은 낯선 사람들이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자기 삶의 의미를 구한다.

301-‘의미치료’는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 근본 원동력 이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프랭클은 쾌락과 고통이 아닌, ‘가치’가 사람들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306-아마도 삶의 의미라는 문제는 우리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판단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삶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인 듯하다. 즉,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우리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위들-에 우리의 에너지와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307-의미는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외부의 가치 있는 활동들에 스스로를 얼마나 잘 연결시키는지에 달려 있다. / 의미 있는 삶이란 현재를 위한 삶과 미래를 위한 삶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러셀을 비롯한 수많은 철학자들은 삶의 의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러셀은 사람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308-‘의미’를 ‘창출’하는 것이아니다.우리는 그것으 ‘발견’한다. / 그는 도덕성의 기본은 다른 사람들이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310-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한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급자족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결핍되지 않은 상태이다.

311-그는 그것을 ‘몰입’이라고 부르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시간동안 사람들은 순순히 의식의 흐름을 따른다. 그들은 어떤 활동을 그 자체로 추구하고, 그 일에 완전히 몰입된다. / 특정한 유형의 과업을 할 때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 잊는다고 보고했다.

312-일의 행복의 구조를 제공한 것인가, 아니면 행복이 일의 구조를 제공한 것인가? 이것은 닭과 달걀의 문제와도 같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사실인 것이다. / 현재 우리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일터가 아닌 곳에서 이러한 행복한 순간을 제공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320-인간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뿐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조직은 의미 있는 일을 ‘창조’해주지 않는다. 그곳은 다만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인정해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마저 개인적으로 그들 주변의 의미를 “밝히지”못하는 이상,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에필로그
324-일에서 겪는 고통은 타인들에 의해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즐거움은 대게 우리 스스로 발견한다.

325-나는 현대의 경영자들이 올바른 직장을 ‘만들기’보다는 개인으로 하여금 기분좋게 ‘느끼도록’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을 비판해왔다.

332-아마도 우리가 그토록 많은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333-“우리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삶을 원하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그것을 위해 현재 포기하고 있는 것만큼의 가치를 갖는가?”이다.


3. 내가 저자라면
3-1.
“‘일과 (??)’에서 ()안에 들어갈 단어는?” 이라는 퀴즈가 있다면, 나는 단번에 손을 번쩍 들고 ‘성공이요’라고 정답인 냥, 신나서 이야기 했을 것이다. 책을 펼치면서도 확신의 마음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목차를 읽으면서 고개가 갸웃 둥 해지기 시작했다. 진지함과 무개감이 느껴지는, 검고 굵은 촌스런 궁서채의 글씨와 제목들, 무언가 다른 것을 ‘발견’하는 책이 되리라는 새로운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3-2.
저자는 모든 활동은 ‘사눅(재미있는)’과 ‘마이 사눅(재미없는)’으로 구분된다고 했다. 사눅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근심없는 즐거움을 뜻한다. 일이건 놀이이건 상관없이 어떤 활동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속성이 바로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일에 대한 낭만적 환상은 매일 아침 자명종 소리에 산산조각이 난다.

저자는 현대인의 냉혹한 현실을, 철학, 사회학, 인문학, 경영학의 접점에서, 역사를 통해 성찰하고 있다. 일이 고대시대의 ‘저주’에서 출발하여, 현대의 ‘삶의 목적’으로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내가 품고 있는 일에 대한 수많은 감정과 현상의 뿌리깊은 근원을 보게 된다. 저자는 근원의 지도를 펼쳐 보이면서, 일의 의미를 찾는 것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활동들과 스스로를 얼마나 잘 연결시키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즉, 의미 있는 삶이란 과거를 위한 삶과 미래를 위한 삶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며, 균형사이에 존재하는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일’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일과 여가, 그리고 삶의 의미는 그저 주어지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과거와 미래의 경계, 오늘에서 직접 그것을 찾아나서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나는 여기서 ‘역사’에 대한 성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이번 연구원 과정에서 제시한 3권의 중심에는 ‘역사’가 태풍의 눈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개인이든 사회든, 어떤 현상이든 사실이든, 무언가를 드러내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의 힘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의 역사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가져온 단편적인 시각과 사고의 빈약함이, 어디서 구멍이 뚫려있었는지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내 개인의 역사 또한 그러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살펴봐야 한다.

3-3.
2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에서는 쓴웃음을 몇 번이고 지었다. 단 한번도 고용주라는 포지션에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끊임없이 고용인의 입장에서, 다소 편협하게 책을 읽어 나갔다. 저자는 고용인이 되는 것은 노동과 시간을 판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사생활과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경영학의 역사를 ‘일꾼 길들이기’로 규정하고, 고용인들을 위해 발전한 학문이라고 고백한다. 고용주들의 목소리만 있을 뿐, 고용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말한다. 고용인의 삶의 역사를 가진 내가, 몇 개 안되는 경영서를 읽으면서, 늘 답답하게 생각해오던 가려운 부분을 저자가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3-4.
이 책의 흥미 있는 코드는 ‘물음’이다. 책 속에는 수많은 물음들이 숨어있다. 다음에는 어떤 질문들이 모습을 드러낼지 기대하며 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물론 시간에 쫓기는 나에게 더디 읽게 하는 단점이 있었으나, 나의 사고를 풍성하게 해주는 더딤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그래서 시간의 제약 없이 이 책을 읽을 수 없음이 아쉬웠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읽어가면서, 나에게 다가오는 물음들에 답을 달아본다면 멋진 책 한권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3-5.
이번 칼럼에서도 썼다시피 우리가 창조신의 자손이라면, 우리의 골수 속에는 창조성이 이미 출렁이고 있다. 그것은 일의 의미를 외면에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안에 존재하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급자족이라 하였다. 그것은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는 능력, 나의 내면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힘을 갖는 상태를 말한다. ‘해야만 하는 나’ 아니라, ‘선택하는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나’로, 나의 권리를 회복해 갈 때. 다른 사람들도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힘도 회복해 갈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행복사회는 모두가 꿈꿀 권리를 갖고, 선택하는 힘을 갖는 그런 세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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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7 03:39:58 *.140.145.63
일의 의미를 외면에서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안에 존재하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 매우 공감이 가는 대목입니다.

나의 사고를 풍성하게 해주는 더딤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느림과 더딤
의 미덕을 설명해 주는 이야기로군요. 써먹어야겠어요..^^

다시 생각해봐도 '질문을 품고 산다는 것'은 우리를 평범한 속에서
특별하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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