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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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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6일 01시 5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조안 B. 시울라(Joanne B. Ciulla)
#1-1. ‘책에 소개된’ 저자에 대하여
리치먼드 대학교의 규수이자 젭슨 리더십 대학원에서 리더십과 윤리 분야의 석좌교수직을 맡고 있다. 템플대학교, 델라웨어 대학교,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고 UN 리더십 학회에서 리더십 연구 분야의 유네스코 석좌교수를 맡은 바 있으며, 보스턴 대학교와 라살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교 객원 교수와 와튼 스쿨(펜실베니아 경영대학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한때 웨이트리스, 요리사 등 색다른 직업을 두루 경험했으며, 노동철학을 강의하면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과도 만났다. 그동안 ‘일과 삶의 행복한 통합’에 대해 고민해온 저자는 오랜 연구의 결실인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모든 ‘일’ 뒤에 숨겨진 진실을 인문학․사회과학․경영학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통찰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다양한 기업과 조직을 대상으로 한 자문 및 강연 활동과 함께 여러 매체에 집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리더십의 윤리학>>과 <<윤리, 리더십의 핵심>> 등이 있다.

#1-2. 책 속에서 찾아낸 저자에 대하여
대단히 열정적이다.
치밀해 보인다. 꼼꼼하게 방대한 자료의 출처를 밝힌 것과 논문, 짧은 글, 고전들, TV 프로그램 이름들 까지 세세하게 꼼꼼하게 자신의 근거에 맞는 자료들을 제시하고 있다.
경영학 이론에서 제시한 것들이 적용된 사례와 그것의 적용이 적절한지, 부당한지를 비판적으로 적고 있다.
오랫동안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여 연구해준 것 감사드린다.

2. 밑줄 그은 부분들(인용문)

프롤로그 : 일의 의미, 삶의 의미를 찾아서
8. 이 책에서 나는 일이 실제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약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일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노동관을 뛰어넘어, 이제 일은 우리 정체성의 주원 원천이자 개인적인 자존감과 행복의 주요 원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일은 때로 우리가 가족과 친구들, 종교, 공동체로부터 얻곤 했던 만족감을 대신한다. 이러한 ‘대체’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예측 불가능한 경제상황에서 고용인들은 때로 무기력 할 수 있기 때문이다.

9. 미국인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이다.
--> 직업이 없는 나는 나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10. 일에 대해 글을 쓴 학자들은, 모두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과 같은 종류의 일을 원한다고 잘못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노동자들을 면접해보면 이것은 사실이 아님을 곧 알 수 있다.
--> 요즘 알게 된 사람들 중에는 내가 직업이 없음을 밝혔을 때, 자신이 하는 일을 내게 권한 경우가 많았다.

11.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치부되는 철학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기뻐했다. 첫 시간에는 ‘소외’와 ‘잉여노동가치’d 관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설명했던 기억이 난다. ....학생들은 자본가를 꿈꾸는 근로자들이었다. 내가 “여러분이 일을 더 많이 해서 자본가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남겨줄수록 여러분의 실제 노동가치는 줄어든다.”고 설명했을 때 뒷자리에 앉아 평소에는 주로 졸고 있던 여성이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마르크스가 옳은 이유를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논리가 한때 전세계적으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사회주의를 원해서가 아니라, 공정한 사회를 바라고 잇기 때문이었다. 잉여노동가치의 착취는 정당하지 않은 듯 했다. 그것은 그녀 자신과 그녀가 하는 일을 평가절하고 있었다.
--> 일을 많이 하나 적게 하나 봉급이 똑같이 나오는 직장에서 나는 혼란에 빠졌다. 옆사람들은 내게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고, 남들 하는 만큼만 하라는 충고를 종종했었다. 직장동료들의 충고의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많이 일할 수록 손해인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었다. 슬픈 상황이었다. 일 말고는 할 게 없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11. 몇몇 사람들에게는 일은 ‘일상의 굴욕’이었다. 그들의 굴욕은 그들이 하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나 상사의 멸시와 부당함으로부터 비롯된다. 내 학생들은 감시당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신뢰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개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무능력을 탈피할 힘을 갖지 못한 것을 못마땅해 했다.

12. 식당에서 나는 발레댄서, 모델과 함께 일했다. 우리 모두는 원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지배인은 우리의 포부를 비웃고 우리를 공격하는 말로 가학적인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었다. 요즘 같으면 그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 지배인이 현재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발레댄서는 결국 주연 발레리나가 되었고, 그 모델은 <보그>지의 표지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연구원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내가 희망과 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그 일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주거나, 적어도 원하는 길을 가는 동안 우리를 먹여 살려줄 것이라고 기대할 때, 그 어떤 최악의 일이라도 견딜 수 있다.

15. 어느 나라 사람에게도 일과 여가, 그리고 삶의 의미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보두는 직접 그것을 찾아나서야만 한다. 이 책은 살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러나 목적기자 어디인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있다.

1. 왜 일하는가?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19. 어떤 사람에게는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은 우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합니다.” 이것이 대다수 유급노동을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21. 결국 실직자들이 여가를 갖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일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구속된’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간 또한 없다.
--> 나처럼 무직자는 여가란 없는 것인가?

23.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우리 삶에서 진정한 일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일’이다. 두려움, 물질적 필요, 책임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여가를 통해 스스로를 계발하는 자유를 누리게 된다.

23. 오늘날 대부분의 학생들이 직업을 갖기 위해 교양교육을 받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론적으로 볼 때 교양은 일하는 방법이 아닌, 여가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24. 인간의 가장 흥미롭고 독특한 점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난 ‘후’에도 스스로 일하기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24. 일할 필요가 없고, 일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어떨까?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25. 맥케너는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종의 호사를 누린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례는 일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에는 분명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지, 어떤 사람이 될지 등등에 대해 무숫히 많은 선택권을 갖는다. 그런 반면, 일을 할 수 있는데도 일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들은 좋은 직업을 포기하고 일하지 않기로 한 이유가 결코 게으름이나 자신의 결함 때문이 아님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필요성과 맞닥뜨리게 된다.

26. 인류학자인 마샬 살린스는 사냥-채집 사회에 대한 연구에서, 사냥-채집꾼들이 다른 문화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적게 일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아버지를 은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사냥할 때 행복하신 것 같은데, 그런 자유로운 분을 너무나 오랫동안 일에 묶어둔 것 같다.

27. 물질적인 면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대개 노동량의 증가를 수반한다.

27. 개미와 베짱이, 어떤 방식의 삶이 더 좋은가?
우리는 베짱이처럼 짧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도 있고, 개미처럼 길고 빈틈없는 삶을 살 수도 있다.

30. 이솝의 <개미와 꿀벌>에서...."너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은 오직 너 하나뿐이다. 다른 어떤 생물도 네가 비축한 부의 일부를 공유하지 못한다. 반면 꿀벌은 기특하고 정교한 노력으로 세상에 축복이 되는 것을 만들어 낸다."

33. 스탠리와 단코가 인터뷰했던 백만장자들 중 한사람은 자신이 숨겨놓은 돈을 "직장을 박차고 나올 수 있는 돈"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일에서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 내키는 대로 일할 수 있었다. 당신이 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을 때, 일은 매우 다르게 느껴진다.

34. 몇몇 사라들은 은퇴하면 '일로부터의 해방'과 '행복'이라는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삶 전체를 바친다. 그러나 은퇴할 무렵이 되면 진정한 행복은 애쓰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은 일에서 벗어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단지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은 그것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습관이 된다.

37.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단지 위아래로 껑충껑충 뛰면서 느끼는 순간적인 즐거움을 생각해보라. 놀이는 종종 비논리적이거나 비효과적이다.

42. 한 휴대폰 광고는 이러한 죄책감을 강조한다. 엄마가 어린 두 딸에게 클라이언트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놀아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눈을 크게 뜬 어린 딸은 입을 삐죽거리며 묻는다. "나는 언제 클라이언트가 될 수 있나요?"
--> 가끔 일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44. 페미니스트들은 집 밖에서 일할 수 있는 선택권과 권력, 보수가 좋은 직책으로 나아갈 기회를 여성들에게 제공해주기 위해 투쟁해왔다. 그러나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일할' 기회가 아니라, 집에 머무는 것과 일하는 것 사이에서 '진정한' 선택권을 갖는 것이다.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여성을 부러워한다. 내가 일하러 나갈 때, 아이가 내 다리에 매달려봤으면 하는 상상을 종종한다. 그렇지만 나는 또 이렇게 상상한다. 아이가 배고프다고 말할 때, '엄마 지금 바쁘거든, 아빠한테 볶음밥 해달라고 해'라고 아이를 달래는 거다. 직업으로서의 일과 가정에서의 일 사이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2. 일이란 무엇인가?
단어와 어원으로 살펴보는 일의 정의


47. 단어의 의미는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과, 과거 다른 이들이 그것을 사용했던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루드윅 비트겐스타인

48.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어떤 것의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잠재적으로 강력한 행위이다. 당신이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당신은 그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52. 대체로 ‘일’이라고 불리는 활동들은 당신이 다른 것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래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일’을 다른 유형의 활동보다 덜 바람직한 것으로 가정한다.

53. 서구와 달리, 태국사람들은 일이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며, ‘일 자체는 좋은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도 태국인들은 결코 게으르지 않다. 그들은 문화는 ‘재미’를 뜻하는 ‘사눅’에 큰 가치를 둔다. 모든 활동은 ‘사눅’과 ‘마이 사눅’으로 구분된다. 사눅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근심없는 즐거움을 뜻한다. 일이건 놀이이건 상관없이 어떤 활동을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속성이 바로 ‘사눅’이다.

59. <<오디세이>>이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지옥에서 커다란 바위를 쉬지 않고 언덕위로 밀어올려야 하는 저주를 받은 시시포스를 만난다. “언덕 위에서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지면, 그 과정은 새로 시작된다.” 이러한 벌에 대한 카뮈는 신들이 “쓸모없고 헛된 노동보다 더 무시무시한 벌은 없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평한다.

59.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와 달리, 바위투성이의 땅에서 일하는 아담은 고통스런 이브의 출산은 열매는 맺는다. 고통스럽고 지루하며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라도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목적’이 있다면 그 자체로는 벌이 아니다. 아담과 이브에 대한 벌은 일을 삶의 필수적으로 만들었지만, 일 자체는 더 이상 벌이 아니다.

3. 일의 역사
아담의 ‘저주’에서 신이 내린 ‘소명’으로 그리고, ‘삶의 목적’이 되기까지


66. 부를 얻는데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모든 것을 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한다. 그들은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한다.

67.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 마음 혹은 영혼 속에 존재한다. 그곳에서 우리의 생각은 물질세계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변화로부터 안전하다.

72. 에바그리우스는 ‘무기력’을 ‘정모의 악마’라고 불렀다. 그것은 오후에 수도사들을 공격해서, 그날 하루가 마치 50시간 동안이나 지속되는 것처럼 만들었다.

77. 12세기에 이르러, 그 사람의 직업과 동일시한 성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베이커, 카펜터, 대처, 스미스, 위버, 골드스미스, 쿡과 같이, 직업으로부터 파생된 흔한 성들이 현재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라. 만약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당신은 아마 마가렛 대처에게 지붕을 고쳐 달라고 부탁하고 제임스 베이커에게는 빵 한 덩이를 요구했을 것이다.

82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고된 일이 “시간의 더딘 흐름을 충분히 채워준다”는 이우로 그것을 찬양했다. 시간은 단순히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고 채워야 할 대상이었다. ... 그는 삶이란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83 . 인간이 자신의 일을 정의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될 수 없다. 즉 일이 인간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일을 정하는 것이다.
86. 칼뱅 자신이 사치스런 소비에 대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부 사람들의 노동윤리가 ‘우리는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믿음에서 ‘우리는 물건을 사위 위해 태어났다’는 믿음으로 변화할 것임을 미처 알지 못했다.

87. 당신의 소명은 신이 결정하지만 천직은 당신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다.

4. 일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
우리는 과연 일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을까?


91. “나는 내 소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직업을 갖데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은 꿈꾸던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크루소는 자신의 “소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지만, 우리는 이야기 전반에 걸쳐서 그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일 자체이지 그것이 가져오는 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91. 그의 가장 큰 기쁨은 사물을 만들어내는 자신의 능력을 발견했을 때 솟아난다. 크루소는 자신만의 낙원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하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98. “인간은 자신의 길을 궁리하지만 신은 그의 발걸음을 이끈다.” - 윌리엄 매이크피스 새이어

99. 모든 사업가들이 자선가이거나 도덕적으로 고결하거나 계몽된 형태의 자기이익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대한 사업가의 신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저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는 사업가 영웅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이 3인칭보다는 1인칭 이야기에서 다 많이 발견되곤 한다. (리 아이아코가, 도널드 트럼프, 빌 게이츠, 샘 월튼의 자서전이 누리는 인기를 생각해보라.)

99. 자신의 땅을 팔고 다이아몬드를 찾아 떠난 한 남자가 바로 자시의 뒤뜰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우리 모두는 삶에서 일을 찾아나서지만, 미국에서는 일을 찾으러 너무 멀리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00. 18세기와 19세기의 노동윤리 옹호자들은 강한 도덕성이야말로 부에 이르는 열쇠라고 설교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데일 카네기가 1936년에 쓴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나타나듯이 개인의 성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도덕성’이 아니라 ‘심리학’이 성공에 이르는 열쇠가 된 것이다.

101. “용건 없는 자 입장 불가”

105. “가치 있는 일은 휴식의 즐거움에 대한 희망, 일을 통해 만든 것을 사용함으로써 느끼게 될 즐거움에 대한 희망, 일을 통해 만든 것을 사용함으로써 느끼게 될 즐거움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일상적인 창조의 기능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한 희망을 수반한다.” - 윌리암 모리스

106. “만약 그런 일을 줄이거나 간헐적으로 만들거나 혹은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유용성을 제공함으로써 일을 덜 불쾌한 것으로 만들 수 없다면, 그 일의 산물은 그 대가만큼의 가치를 갖지 못한다.” - 윌리암 모리스
몇몇 일꾼들이 끔찍한 일을 해야 할지라도 그들이 그 직업 때문에 끔찍한 삶을 살지는 않도록 일 자체를 구조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111. 오늘날 냉수기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직업을 꿈꾸지만, 그들이 꿈꾸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작은 포도밭을 소유하거나 가게를 열거나 독립적인 컨설턴트로 일하는 것, 혹은 개인 개업을 꿈꾼다. 그것이 재즈 연주자로 사는 것이건, 로빈슨 크루소처럼 모험을 떠나는 것이건 간에 누구나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있다.

112. “일과 관련된 문제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노동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이미 시작된 것이다.” -- 루소

2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5. 일과 자유
우리는 과연 자유롭게 일하고 있는가?


116.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하러 갈 때 자신의 헌법상의 권리를 주차장이나 버스에 두고 간다. 고용주들이 이러한 권리를 공공연하게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터에서 집회의 자유, 의사의 자유, 혹은 무기를 휴대할 자유 등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현명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된다. 미국에서는 부를 창출하는 이들의 권리가 보수를 받는 사람들의 권리보다 우선시된다.
--> 박재동 시사만화집 <목 긴 사나이>에 출근하려는 남편을 붙잡고 ‘간과 쓸개’는 제발 집에 두고 가라고 만류하는 아내가 나온다.

116. 오늘날 사업체들은 간혹 최고의 엔지니어나 교사, 혹은 영업 담당자에게 고위 관리직이나 행정직으로 보상을 해준다. 이들 중 일부는 좋은 관리자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돈과 권력, 지위와 자유라는 상을 거절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117. 노예제도는 필요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일한다. 그러나 노예는 ‘살아 있기’ 위해 일한다.

121.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일하기를 원하는지 혹은 원치 않는데 대한 가정은 고용주들이 고용인들을 처우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126. 자물쇠를 채운 상태로 장시간 공장 노동을 시키는 것, 아동의 노동, 위험한 기계, 유해한 공기 등을 포함한 끔찍한 노동조건은 북부인들의 이러한 도덕적 주장을 악화시켰다.
-->우리나라 60,70년대, 80년대 초반의 노동형태와 비슷하다.

126. “그들은 미국의 흑인들보다 못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철저히 감시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처럼 살아가도록, 인간처럼 생각하도록 느끼도록 요구되기 때문이다.”

128. 부양이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신을 타인에게 팔고자 했다. 이러한 선택이 얼마간 자유롭게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다른 형태의 노예제도에서 발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기아와 폭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128. “빈곤한 자의 복종은 주인의 동의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굶어죽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하인이 되는 것을 택한 가난한 자의 동의로부터 시작된다. ”-로크

131. 농부는 원숭이가 하루 세 번의 식사를 ‘필요로 한다’고 결정하고 원숭이가 이를 위해 자신신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앞으로 살펴보게 되겠지만, 때로 고용주들은 고용인들이 갖고 있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욕구”를 충족시킨다.

131. 존 로크와 애덤 스미스는 고용인들이 실제로는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미스는 일꾼들이 자신이 만들어낸 상품이 아니라 일터에서 상실한 자유의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6. 일꾼 길들이기
그들은 우리가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해주기를 원한다.


139. 사장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할당량을 ‘유지’하는 일꾼들은 “좋은 사람”이자, 그 직종의 믿을 만한 숙련가라는 평판을 얻었다. 노동자의 산출량 제한은 “이타적 형제애”와 개인의 존엄, 그리고 “마음이 수양”을 상징했다.
--> 너무 적은 양의 일을 해서도 안되고 타인과 비교해서 너무 많은 양을 해서도 안되는 조직에서 일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140. 사징이 지켜보고 있을 때에만 일을 하는 것과 사장이 보고 있을 때에는 일하지 않는 것 간의 차이를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둘 다 도전의 제스처이지만, 하나는 직업을 유지하기 우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첫 번째는 “나는 일하고 싶지 않지만 ‘당신이’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일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는 당신이 감시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142. 슈미트는 지시에 따랐고 하루에 47.5톤의 무쇠를 운반했다. 60% 더 많은 보수를 받는 대가로 400%나 더 많은 일을 한 것이다. 그러자 다른 노동자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든 돈을 위해서든 혹은 두 가지 모두 때문이든, 그들 역시 슈미트와 똑같이 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144. 테일러는 자신의 논문 <<애 생산자들은 대학생을 싫어하는가?>>에서 협력이란 노동자들이 “지시를 받았을 때 의문을 제기하거나 제안하는 일 없이 신속히 지시받은 대로 일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술했다. 테일러는 순종을 얻어내고 할당량을 깨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용인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그들의 사리사욕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52. 현장 관리자와 문제가 있었던 한 여성은 면접 과정에서 자신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현장 관리자가 자기가 싫어하는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메이오는 일단 근로자가 현장 관리자에 대한 자기의 반감이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것임을 발견하고나면, 그 다음부터는 편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그는 싫어하는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현장 관리자를 그녀가 정말로 싫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7. 노동의 두 얼굴
우리의 일터는 왜 이토록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졌는가?

160. “단지 생계를 위해서만 일하고 일 자체와 그것이 갖는 의미를 위해 일하지 않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며 시민이 될 수도 없다.”

162. 밀스는 사무직 노동자를 “새로운 작은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뿌리가 얕아 충성심이라고는 없으며, 항상 서두르지만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166. 그는 “부적절한” 사람들을 제거하기 위해 인성검사를 이용하는 것을 공격했으며, 조직내 갈등이 없어야 한다는 견해에 도전했다.

167. 집단적 사고 상태에서 한 집단의 구성원들은 비슷하게 사고하기 시작하고 ,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지 못하게 된다. 이륙 후 73초 만에 주주선이 폭발하여 일곱 명의 우주 비행사들이 사망한 1986년의 챌린저호 참사 같은 사건들을 그러한 집단이 내린 경정의비극적 결과를 보여준다.

168. 자신은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겠다는 등의 제안을 전혀 하지 않았고 그저 집단이 하라는 대로만 따라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회사가 자신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주어진 과제에 대해 최선을 다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168. 별자리 운세나 성적 매력에 대한 잡지 퀴즈들처럼, 심리 검사는 내적인 자아를 명확히 보여줄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문제는 우리가 직장에서 그러한 검사를 받게 되면, ‘자기 인식’을 얻은 대가로 ‘자기 노출’과 어쩌면 ‘부당한 분류’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169. 어느 회사의 인사 담당자가 입자 지원자에게 “마지막 행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으로 끝나는 자서전을 쓰라”고 요구했다고 하자. 당신이 입사 지원자라면 어떤 내용으로 지원서를 채울 것인가?
--> 글쎄, 입사 지원자라고? 그렇다면 뭘 써야 하지? 회사가 원하는 말을 쓸까? 실제로 내게 가장 중요한 전혀 엉뚱한 대답을 쓸까?

173.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결정하거나 그것에 대한 욕구를 창출하고, 욕구 충족을 위해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권력을 주장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179. 고용주들은 고용인들이 “부가가치”를 창출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고 믿기를 바라지만, 사실 고용인들에게 그것은 ‘자유를 상실한 대가’이다.

179. 고용인들의 문제는 어렵기는 하지만 회복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일을 관리하는 방식에서의 실수는 고치거나 용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잘 굴러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을 혁신하거나 개발하지 못한 회사에 대해 시장은 무자비하다.

184. 일부 서비스 종사자들은 미소짓는 서비스를 넘어, 그 이상의 것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할 때, 그들은 TWA도 좋아하게 된다.”라고 쓰인 TWA의 컴퓨터 스크린을 예로 들어보자.

184. 혹실드는 자신의 직업과 지나치게 동일시된 근로자는 정서적으로 소진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반면 직업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근로자는 스스로를 위선자로 여기며 모욕을 느낄 것이다.

8. 유망한 직장
경영 이론가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직장’은 가능한가?


189. 경영학 실용서를 통해 컨설턴트의 조언을 거의 무료로 얻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기 있는 경영서들은 경영자들 뿐 아니라 언젠가는 경영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고용인들에게 의해서도 구입된다. 오늘날 일에 관한 미사여구는 대부분 인기 있는 경영서들과 프로그램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193. “동일한 기관이라도 문화가 지배하면 가장 높은 수준의 진정한 자율성이 발생한다. 문화는 중요한 소수의 변수들을 강력히 통제한다. 그리고 그것은 의미를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저항하고 혁신하도록 장려된다.

193. “강한 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는 일을 더 기분 좋게 느끼도록 만든다. 따라서 그들은 더 열심히 일하는 경향이 있다.”
--> 코리아니티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문화의 의미가 이렇게 넓었구나. 문화 만들기는 경영의 장기적인 모습일 수 있다.

195. 강한 기업문화의 커다란 이점은 그것이 포괄적이고 자동 조절되는 사회 전체라는 점이다. 불리한 점은 그것이 억압적인 동시에 변화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부정적인 면은 고용인들이 충분히 일 바깥에서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 예를 들면 우정의 욕구 같은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일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신이 실직하게 되면 당신은 일과 소득 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 업무상 만나는 사람 외에는 만날 사람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만큼 삶이 제한적이고, 빈약해 보인다.

196. 도넛 타임 동안 일하기를 선호하거나, 금요일 오후의 맥주 파티보다는 장보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강요된 사교 모임은 문제가 된다. 사교 모임은 또한 단지 남들과 좀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을 야기한다.
--> 공무원들 중 많은 사람이 테니스는 공무원의 기본이라고 얘기한다. 자신의 인사권자가 테니스를 즐기고, 승부욕이 강하다면 당연히 테니스 동호회에 들어야 한다고 여긴다. 이것도 강요된 사교모임의 일종일 것이다.

202. 훈련 프로그램들은 때로 참여자들 사이에 일시적인 도취감을 가져오거나, 소위 호손 효과를 일으킨다. 몇몇 프로그램은 고용인들이 많은 자극을 받고,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먼지가 가라앉고 아면 다음 프로그램 때까지는 전과 다름없는 듯하다.

203. 이러한 대소동을 모두 거치면서 이상적인 조직 관리자의 이미지는 점차 변화했다. 즉 기존의 무뚝뚝한 상사에서 친절하고 지적이며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며 영웅적인, 환상을 쫒는 강력한 리더로 변화는 것이다.

204. 팀은 ‘문화’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형태의 상호적 통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팀 안에서 집단으로부터 받는 또래 압력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규칙을 지키고 , 자신의 역할을 다 하도록 만든다. 팀은 광범위한 조직문화보다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205. 팀 지도자들은 팀과 한몸이 되어야 하는 반면, 팀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08. “소비자는 언제나 옳다.”

211. ‘엔소니크’의 경영진은 임금 주고를 평평하게 만들었다. 초기에 근로자들은 “내가 더 많이 생산하는 데 왜 조와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합니까?”라며 견해에 반대했다. ... 동기부여에 대한 “공정성 이론”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생산성이 높은 고용인들이 보다 공정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생산성을 낮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214. TQM을 비롯한 경영 혁신들은 사람들에게 일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 주었는가? 다시 말해 일은 보다 즐겁고 의미 있고, 유익한 것이 되었는가? 이러한 새로운 제도들은 신회의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는가? 그것들은 약속했던 모든 것-권한위임, 훈련, 팀 구성원이 되는 기쁨-을 주었는가?

216. 만약 제도를 바꾸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변한다는 것인 듯하다. 그러나 대개는 제도를운영하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28. 린다는 일반적으로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 출근한다고 말한다 직장은 집보다 더 그녀에게 우호적이고, 그녀를 더욱 지지해준다.

9. 배신하는 직장
지금,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222. 직장을 “하나의 대가족”으로 만들려는 기업의 시도는 실패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처럼 “집이란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고/ 언제든 당신을 받아주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날 직장은 가고 싶다고 해서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223. “헌신”은 노동력을 줄이고, 근로자들의 작업량을 두 배로 늘린 회사들이 특히 필요로 하는 덕목이었다. 회사가 고용인들에게 제공하는 안정성과 충성이 줄어들 록 오히려 그들에게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31. 노사관계에 있어서 큰 모순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그 사람의 만족을 이용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일은 인간의 존엄성, 정체성, 자기표현, 그리고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갖는 유용성과 관련된다. 사람들이 일을 단순한 경제적 거래 이상으로 생각할 때 일은 그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것이 된다.

232. 아마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장 효과적인 근로자 동기부여의 방법은 심리학이 아니라 경제학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기계 안의 유령에 신경 쓰지 않았다.
-->대체 ‘기계 안의 유령’이란 뭘까? 그 말이 여러번 나오는 데, 저자는 어떤 의도로 썼는지 궁금하다. 기계와 구분짓는 인간으로서 갖는 생각, 그리고 존엄성에 대해서 언급한 것일까? 경제학자들도 어떤 의미로 ‘기계 안의 유령’을 원했던 것일까? 기계를 원했나?
에서도 이것을 말한다. 기계와, 그 안에 유령(ghost)는 사는 세계가 다르다구. 그 유령(영혼)은 인간을 기계들과 구분짓는 것이라고 한다. 자율성을 가지고, 자신의 모순을 껴안고, 넘어설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반면에 기계(로봇)은 프로그램밍된 대로만 작동한다고.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에서도 기계로 몸을 완전히 대체한 인간에게 그래도 기계와 구분되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

233. ‘기업과 정부는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고 하는 이러한 세계관의 대가는 엄청날 수 있다.

233. 윌리엄 보리스의 말처럼 가치 있는 일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인간이 경제를 통제하고 경제를 책임지며, 직장에서의 개인의 노력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믿음이 없으면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234. 미래의 불확실성에 근거한 미묘한 두려움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리도록 만든다. 우리들 대다수는 어떤 막연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으로 더 오랫동안 일한다.

236. 애덤스는 자신이 아무리 우스꽝스르운 만화를 그려도, 독자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사례보다 더 우스울 수는 없다고 고백한다. 딜버트 만화는 구조조정, 리엔지니어링, 품질 팀 만들기, 컨설팅, 훈련 프로그램, 리더쉽 등을 비난한다. 독자들은 부정직하거나 모순적인 훈련 프로그램의 사례를 애덤스에게 제공한다. 사례에 나오는 한 회사에서는 무작위 약물검사제도를 시작하는 동시에 “개인 존엄성 향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43. 해리와 메리 중 누가 선택되겠는가?
해리는 미혼이고, 일 외에는 별다른 관심사가 없기 때문에 하루에 열 시간 내지 열네 시간씩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메리는 기혼이었고, 세 아이 있었으며, 교회 활동에 열심이었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여덟 시간씩 근무한다.

3부 일과 삶
10. 우리는 시간과 투쟁한다
당신은 ‘주말을 위해’ 사는가, ‘주말 동안만’ 살아 남는가?


249. 노동윤리의 구성요소인 시간은 돈과 행위의 동의어이다.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는 뭔가 좋은 구실을 가지고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고 있는 시간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보여준다. 이 세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볼 수 있다. 현재의 디지털시계는 시간을 전후의 일련 사건 자체로만 묘사한다. 그것은 앞으로만 나아갈 뿐, 당신이 ‘어디까지’ 왔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시간은 그저 축적되는 질서 정연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250. 아이들이 오랫동안 차를 타고 가면서 “아직 멀었어요? 언제 도착해요?”라는 똑같은 질문을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251. 서로 다른 문화에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한다.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겜은, 우리가 우리의 문화로부터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덮고, 시간과 공간에 대한 문화적 개념은 우리의 문화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순환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반드시 악순환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시간의 개념은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일에 대한 개념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는 것처럼 시간의 개념 또한 바꾸고 조정한다.

251. 모든 사회는 그 사회만의 독특한 ‘사회적 시간’을 갖는다. 사회적 시간은 언제 무엇을 해야할지, 그 일반적인 인생 경로를 결정한다.

253. 시간이 돈이고, 소비자 중심주의가 욕구의 즉각적인 만족을 강조하는 시간 지향적인 사회에서 기다림은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때로 시간을 ‘죽이고’ 싶어한다.)

253. 일을 더 빨리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시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 자동차, 컴퓨터는 빠르지만, 우리는 그것들과 더불어 점점 더 많은 일을 한다. 우리가 더 빨리 일할수록 우리의 시간은 더 빨리 새로운 일로 채워진다. 우리가 더 빨리 움직일수록 우리는 더 적은 시간을 갖게 된다.

255. 산업화된 국가의 노동자들은 단지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시간을 판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 시간 동안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판다.

256. 아서 헤일리는 베스트셀러 소설<<자동차>>에서,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월요일에 만들어진 차를 결코 사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257. 그는 사람들을 착실한 근로자로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탐욕스런 소비자로 마드는 것, 즉 충분한 임금과 쇼핑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가지 모두 기업에 이득이 된다.

258. 자영업자인 장인들은 자신들의 기술과 서비스를 곧바로 소비자에게 팔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는 그것’의 대가로 소득을 얻었다. 누구도 자신의 시간으로부터 소득을 얻지 않았다.
--> 나는 이것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TV에서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물건들이 나오고 그 가격을 맞추는 것을 했었는데, 최고의 장인 3명이 한달에 걸쳐 만든 우리나라 최고가의 미니어처 가격을 맞출 때, 나는 장인들이 일한 시간으로 환산해서 그 미니어처의 가격을 매겼었다. 그것을 제작하는 동안 다른 것을 제작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서, 그들의 한달 수입정도는 보장하는 가격일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실제 가격은 예상의 1/3 수준이었다. 빗나간 예상이 시간으로부터 소득을 얻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266. 가정이 일터처럼 보이는 이유
일이 개인의 시간을 몽땅 차지하건, 그 사람이 가진 에너지 전부를 조진할 때 집은 더 이상 직장으로부터의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또 다른 직장이 된다.

268. 집에 세 자녀를 보모와 함께 두어야 하는 곤경에 처한 서비스 근로자들이, 언젠가는 자신도 자수를 하고, 한 끼 식사를 세 시간 동안 준비하고, 분재를 재배할 시간을 갖게 되리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270. 당신이 집에서 일한다면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273. “바쁘신 건 잘 알고 있지만.....” 때로 우리는 별로 바쁘지 않다든지,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상당히 창피하게 여길 지경이다. 결국 중요한 인물들은 시간이 없고, 덜 중요한 인물들은 시간이 더 많다. 그러지 않은가?

274. “대면 시간”, 즉 일과 후 직장에 남아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면 시간은 고용인들이 실제로 일을 하기 보다는 이미지 형성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의식’이다.
--> 일찍 퇴근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을 본다.

274. 일찍이 알베르 카뮈가 말했듯이, 일이 없으면 ‘삶 전체가 타락한다.“ 그러나 자유시간이 없어도 삶은 타락할 수 있다.

11. 여가와 소비주의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는 사람들


277. G.K 체스턴은 여가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고 기술했다. “첫 번째는 ‘무언가를’ 하도록 허락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도록 허락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이자 아마도 가장 드물고 귀중한 부분)는 ‘아무 일도 하지 않도록’ 허락되는 것이다.

277. “여가와 자유시간은 서로 다른 두 세상에 존재한다. .... 자유시간은 특정한 종류의 시간을 계산해내는 특별한 방식을 말한다. 여가는 존재의 상태, 인간의 조건을 말한다” - 세바스티안 디 그라치아
282. 많은 사람들이 TV 시청을 즐기거나 그것에 익숙해져서 TV가 없으면 적적해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을 ‘간절히’ 바라지는 않는다.

284. 흥미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흥미로운 여가를 추구하고, 지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수동적인 여가에 만족한다.

287. 소비는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약할 때조차 일을 해야 할 ‘필요’를 창출한다.

288. H.W. 마쉬의 1991년의 연구에서는 십대들이 대학에 들어갈 돈을 저축하기 위해 일하는 경우 지루한 일을 할 때조차도 성적이 향상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반면 십대들이 자동차나 CD 플레이어 같은 사치품을 사기 위해 일을 하는 경우에는 일의 종류에 상관없이 성적이 떨어졌다.

289. 만약 그들이 물건을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자유시간을 포기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여가를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어떤 활동들이 자신에게 본질적으로 좋은지 발견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부모를 비롯한 다른 권위 있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일이다. 말썽을 일으킬 위험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시장이 만들어내는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의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293. 우리의 수입 이하로 생활하는 것은 수입을 초과하여 생활하는 것만큼 즐겁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일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더 많은 융통성을 허락한다. 부채와 소비 욕구로 인행 우리는 싫어하는 일에 얽매여 우리가 좋아하는 다른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

294. ‘과잉정당효과’즉, 사람들은 이미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한 추가적인 대가를 지불 받으면 필요 이상의 것을 얻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지 않으려하기도 할까?

12. 의미 있는 일, 그리고 행복한 삶
직장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삶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298. “인생은 희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고, 비극이라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다”- 호레이스 월폴.

299. 삶의 의미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에 존재한다. - 푸시 프리먼

300. 사람들이 외로움이나, 친구 또는 가족으로부터의 단절감을 느낄 때 그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자기 삶의 의미를 구한다. 창조의 행위는 그 사람의 흔적을 이 세상에 남긴다.- “나는 창조한다. 고로 존재한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의미있게 여기는 이유도 이것이다.

301.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은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왜 나는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가?”처럼 부정적인 방식으로 제기되면 우울한 것이 사실이다.

302. “만족을 지연시키는 것은 고통을 먼저 만나서 경험하고 그것을 극복함으로서 즐거움을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삶의 고통과 즐거움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훌륭한 삶의 방식이다.” 이것은 살아가는 방식뿐 아니라, 자본주의와 노동윤리에 대한 진술이 될 수도 있다. 그는 우리가 ‘고통’이라는 좋은 투자를 위해 ‘행복’이라는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305. E.D. 클림케는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영역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질문은 우주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의 존재 이유와 그 목적에 관한 것이다. 가장 흥미를 자아내는 것은 세 번째 질문이다. 나는 왜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가? 만약 목적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그것을 발견할 것인가? 목적이 없다면 내 삶은 어떤 의미나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 너무 철학적이다. 철학에서 하는 질문을 모두 동원한 듯하다. 이건 삶만을 묻는 것은 아니다.

308. 가치와 의미는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가치와 의미는 삶에 임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초점에 의해 “드러난다.”

310. 인간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310.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삶 전체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삶의 행복한 부분의 총합 이상이다. 당신이 항상 행복할 필요는 없다. 행복한 삶은 고통과 슬픔까지도 포함한다..... 그는 행복이란 게 반드시 살아가면서 원하는 걸 얻는 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때때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어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312. 사람들은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탁구를 치는 동안, 그리고 뜀박징르 하거나 모형 비행기를 만들 때, 혹은 훌륭한 소설책을 익는 동안 몰입을 경함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칙센트미하이가 묘사한 몰입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행복한 순간이라는데 동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혹은 가장 적당한 장소가 일터라고 결론 내리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313. 많은 이들의 삶은 다나이드의 ‘새는 물항아리’와 같다. 그들은 조금씩 행복을 채워 넣지만, 항아리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은 삶 전체이지 일연의 지나가는 사건들이 아니라고 강조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317. 맨 처음에 등장한 ‘과학적 관리법’은 육체를 손에 넣으려고 시도했고, 다음으로 출현한 ‘인간관계론’은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으며, 이제 몇몇 컨설턴트들은 ‘영혼’을 건드리려 하고 있다.

322. 의미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정의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것을 보면 알게 된다.

324. 일에서 겪는 고통은 타인들에 의해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즐거움은 대게 우리 스스로 발견한다.

328. 나아가 우리 삶의 다른 측면들이 직장에 예속될 때, 우리는 일고 삶 ‘모두’에 대한 통찰력을 잃는다.

328. 정직한 직장은,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하는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330. 직장 내에서 가장 흔한 거짓말은 ‘성적’에 관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평균이하이며 왜 그러지를 말해주는 것보다는 평균 이상이라고 말해주는 편이 더 쉽고 시간이 덜 걸린다. 다른 이를 존중하는 사람은 그에게 진실을 말해줘야 한다고 느낄 뿐 아니라 그가 진실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진실’은 그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울 것이다.

331. 역사적인 큰 그림을 살펴보았을 때, 나는 삶 자체가 더 편해져야 할 시대에 이르러서도 유금 고용이 삶을 지배하는 것을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332. 우리가 흥미로워할 일이나 훌륭한 소비, 여가 안정 가운데 하나와 기꺼이 교환하려 한다면 우리는 통제권을 되찾고 아마도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거래에서 우리는 소비 욕구를 억누르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를 가장 자유롭게 할 것이다.

3. 책을 읽고
#1.
책의 제목 <<일의 발견>>처럼 일에 대한 무언가를 꽉 끄집어 내주길 바랬었다. 내가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막연한 것)을 저자가 찾아주길 바랬었다. 저자는 이 책은 일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고, 그 목적지는 책을 읽는 각자에게 달린 몫이라고 했지만, 내 목적은 ‘그래도 괜찮은 직업(일) 몇 개 제시하겠지. 그거 찾아보자.’ 였다. 다시 말해서 내 여행의 목적은 저자가 찾아주길 바랬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많은 문제의식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문제의식만을 준 것은 아니다. 책에 밑줄 그은 부분을 옮겨 적고 보니 저자는 물음을 하면서 바로 다음절 혹은 다음 장에서 답을 하고 있다. 그리고는 에필로그에서 뚜렷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은 의미 있는 삶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는 않았지만 내게 필요한 얘길 해주었다.

저자가 했던 질문들은 이러하다. 일은 꼭 해야만 하는 것인가? 일은 선택의 문제인가? 만일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면 일을 하지 않을 것인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경영 쪽에서 본다면 일을 더 잘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방법은 괜찮아 보이는가? 그 방법은 사람들을 일을 더 잘하게 만들었는가? 사람들이 어떻게 쉬는가? 여가(쉬는 것)는 일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여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일과 삶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 많은 질문에 일일이 다 대답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다 대답 못하겠다. 저자는 기껏 열심히 설명하고, 여러 철학자와 연구자들의 자료를 찾아서 제시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몇 개의 키워드들이고, 그것들로부터 연상되는 느낌들이다. 키워드들은 시시포스, 유토피아에서의 일, 아리스토텔레스, 행복, 노예와 다름없는 혹은 노예보다 못한 노동을 하고 있는 공장의 노동자들, 회색 플란넬을 입은 남자, ‘슈미트’라는 남자, 몸값을 조금 높이고 몇 배의 일을 한 남자, 메리와 해리, 카네기 <인간관계론>, 여가, 일하는 원숭이, 현대인의 휴식 TV 시청, 소비 등이다.
메멘토(자신의 경험을 15분동안만 기억하는, 그리고는 제멋대로 기억을 조합해내는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능가하는 내 기억이 적절하고 멋진 연구자료를 기억해 낼리 없다. 기억하고 싶다면 대충 기억나는 것을 더듬어 책을 다시 찾아 읽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이게도 밑줄 그은 부분을 옮겨적으면서 다시 음미해 보니, 저자는 일관되게 자기의 여정으로 나를 끌어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매 절마다 끝낼 때, 자신이 설명한 것에 대해 그래도 아직 덜 설명된 부분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음 논제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절에서 ○○에 대해서 살펴보겠다’하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게다가 각장에 붙인 이름과 함께 그 장의 논제에 대해서도 적어둔 것이 이정표가 되도 나름대로 이정표가 되었다. 각자의 목적지는 각자의 몫이라고 해 놓구선 결국은 자기 목적지로 이끈 것 같다.

#2.
저자는 자신이 연구에 몰입하는 동안 매우 행복했고, 결론을 그렇게 잡은 것 같다. 일이 삶과 너무나 얽혀 있어서, 일의 의미를 찾는 것을 결국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라고. 자신의 직업을 말하는 것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는 것과 동일시 되는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은 일을 떠나서 살기 어렵다. 일 안에서 자신을 규정하고, 일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3.
저자는 개미, 베짱이, 개미베짱이, 매미, 벌의 삶에 빗대어 일과 삶을 이야기한다. 개미처럼 살고 싶어하지 않지만, 개미처럼 살아야하는 현대인의 대부분은 개미베짱이를 꿈꾼다. 나 또한 한동안 이런 삶을 원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개미처럼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사는 문제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내게 지금의 휴식이 잠깐동안 개미베짱이의 삶을 맛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일의 의미를 고찰하면서 역사 속에서 일의 의미가 달라졌듯이 살면서 일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그러길 바란다. 삶 속에 얽혀 들어 있는 의미를 간단히 풀어낼 수 있는 엉킨 실타래라면 너무 뻔해서 지루한 삶이 될 것이다. 다행히도 일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르듯이 일과 여가 사이의 선택도 다를 것이다. 저자가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고찰해 가며 알려주었듯이 일이란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고 선택한다면 괜찮은 삶을 살 거란 것이다. 일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었으니 선택의 각자의 여정에 달린 것이다.

#4-1. 내가 가진 ‘일’의 ‘이미지’ 그리기
책을 읽기 전 ‘WORK'의 느낌을 그림으로 그려두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을 그리기로 했다. 물론, 책이 일에 대한 내 무의식적인 느낌이나, 생각을 바꿔줄 것으로 기대했고, 그것을 기록해 놓기 위해서다. 이 방법은 반복 학습을 하지 않는 한 정확한 어휘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주는 느낌만을 주로 기억하는 내게 맞는 방법 같아 시도해 보았다. 어떤 물건이나 상징적인 무엇인가를 그리지 않고, 점과 선, 면으로 그려서 이미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필압이 나타날 수 있는 연필로 하면 좋다는 조언을 따라 마음가는 대로 해보았다.
#4-2. 읽기 전 이미지
그리고, 그림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책을 읽기 전, 내가 생각하는 ‘일’에 대한 것은 자꾸 머리 속에 시시포스가 생각났다는 거다. 일은 시시포스처럼 고된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시시포스를 그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차분히 아래에서 위쪽으로 반복되는 계곡처럼 보이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패턴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시시포스의 바윗돌 같은 검은 원들이 능선처럼 구부러진 선 위에 올려졌다. 돌덩이가 많은 것처럼, 해야 할 일들은 많고, 갈수록 능선은 더 가파르다. 세로로 이어진 곡선에서는 능선들은 모두 다 하나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다.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한꺼번에 골짜기로 몰리는 수가 있다. 다 그렸다 싶었을 때, 자꾸 빗금으로 된 짧은 선을 넣었는데, 나중에 보니 매우 장식적이었다. 그래도 일은 괜찮게(아름답게, 보기좋게) 보이는 구석이 있어야 한다고 무의식에서는 주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전체적으로는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데, 그것이 내가 일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와 같다. 찌르는 날카로운 선과 칠흙같이 어두운 부분이 없는 것으로 봐서 안심이다. 일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나, 나쁜 감정은 없어 보인다.
#4-3. 읽은 후 이미지
다 읽고 난 후에 두 번째 그림을 그릴 때는 삶과 일의 연관성에 주목했던 것 같다. 그 둘은 꼬여있고, 분류해 낼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다. 어차피 꼬여있는 줄이란 둘이 거의 같은 굵기이거나, 거의 같은 장력을 낼 만큼 강해야 제대로 꼬이고, 튼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지배했었다. 그리면서 딴 생각하지 말아야 했었는데, 줄로 생각하고 보니, 대등한 조화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다 꼬이지 않은 윗부분이 어디(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바탕에 줄을 그었다. 상승하는 이미지가 나도록. 줄을 긋고 났을 때, 이번 바탕줄은 첫 번째 그림에서 보여주는 계곡같은 느낌이 아니다. 좀더 편안한 세상의 이미지다. 넓은 세상을 성큼성큼 다가가는 뭔가가 떠올랐다. 일과 삶이 이렇게 얽혀들어 가면서 세상에 던져지길 바란다.

4. 내가 저자라면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와 함께 일의 의미를 탐색해보도록 독자들을 초대한다. ‘일의 의미’ 뒤에 숨겨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가정들을 살펴봄으로써, 독자들이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기대를 살펴보고, 일과 삶에서 해왔던 자신의 선택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일’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저자는 질문을 하면서, 독자를 끌어들인다. 일에 대해 역사적 고찰을 하면서 질문형식으로 논제를 제기하고 여러 철학자들의 의견과 고전에 나타난 의미를 보여주었다. 질문하는 것은 자신이 이끌고자 하는 길에 몰두하게 하는 적절한 방법인 것 같다. 우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질문-답’이라는 프로그램이 작동되어, 질문에는 답을 모르고 있더라도 대답을 하게 된다. 그것이 적절한 자신이 만족하는 적절한 대답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적절한 대답이 아니라고 여긴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것을 더 주의 집중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1부는 철학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 같다. 철학이 적절한 질문으로 뭔가를 시작해서 그것에 대해 답을 찾는 데, 대부분이 그런 형식으로 된 것 같다. 1부를 읽을 때는 ‘철학’ 교과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2장 일이란 무엇인가?’와 ‘3장 일의 역사’는 그렇다.

2부에서는 여러 가지 노동과 사례들이 경영기법들이 등장하는 데, 이것들을 읽을 때마다 나의 직장생활과 우리나라 기업들의 과거와 현실을 생각해 봤다.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탐색하기에 적절할 것 같다. 처음에 볼 때는 왜 이런 ‘경영의 역사’를 하나하나 소개했을까? 궁금했었다. 결국은 일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2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해가는 과정이었다.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나는 이런 경영사례들을 읽으면서, 쓴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일(경영 기법)은 일하는 사람을 소외시키고,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을 냉소적 비판자로 만든다. 저자가 책을 여기까지만 섰다면 독자에겐 별로 의미 없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3부의 도입부도 그렇다. 일을 보는 눈이 희망적이지 않게 한다. 맨 마지막장인 12장에 이르러서야 일을 그래도 해야하는 할만한 것으로 만든다.
삶과 뒤얽혀진 그것만 한가닥을 뽑아 버릴 수 없는 상황까지 제시하면서 행복한 삶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보라고 이야기하려고 긴 여정을 준비한 것 같다.
얼핏 보면 저자는 자기의 주장을 하지 않은 듯 한데, 저자가 제시한 질문과 인용한 답변들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행복한 삶을 살기위해 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일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개개인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이란 것이 모두 다르다는 의미로 삶의 의미를 찾는 목적지가 다르다고 말한 것으로 여기고 싶다.

그렇게 밝게 끝을 내주어서, 일의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꿔준 것을 무척 고맙게 여긴다.
그렇지만, 행복이라고 언급해 버린 것이 서운하다. 내가 저자라면 자신의 관점을 내비치지 않고 일과 삶에 대한 탐색으로 이끌 수 있을까? 그것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기본 바탕으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제시하는 것들이 그것을 빼고 얘기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을 다 빼버렸다면 책을 다 읽고 덮고 났을 때, 더욱 서운해 질 것 같다.
IP *.72.1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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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26 06:55:38 *.167.160.37
그렇게 약한 손가락에서 이렇게 힘찬 글이 나오다니...
난 항상 자기번민에서만 헤메이는 정화인줄 알았는데 많은 이를 리더해가는 강한 발걸음이보인다.
완주를 정말 축하한다. 이렇게 매력있는여인을 누가 사랑해주어야 할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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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26 10:13:20 *.180.46.15
초아 선생님, 저에겐 좋은 친구들이 아주 많습니다.
제가 헤맬때, 그냥 헤매게 놔두지 않는 친구들이요.

선생님...죄송한데요. 이젠 사랑타령 그만해요. 그거 아니고도 괜찮거든요. 충분히 살만하고 좋은데, 자꾸 큰딸 생각하시는 거 아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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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2007.03.26 22:35:18 *.142.241.211
네... 처음이랑 다른 느낌. 정화님 글들을 읽으면서 다른 모습이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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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7 03:56:19 *.140.145.63
그림이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ㅜㅜ
솔직히 이미지에 대한 설명없이 볼 때는 머리가 아팠는데 쪽집게
설명을 읽고나서 다시 보니 그 뉘앙스를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보이지 않는 것까지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니까요..^^)

아버지를 은퇴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사냥할 때 행복하신 것 같은데, 그런 자유로운 분을 너무나 오랫동안 일에 묶어둔 것 같다.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낚시를 참 좋아하시는데 아직까지도 자식들 걱정에 좋아하시는 낚시를 자주 즐기지 못하십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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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27 05:28:49 *.72.153.12
민선님, 이기찬님, 제가 정말 많이 좋아졌나요?
몇주 안에 많이 좋아질 거란 생각은 안하고, 나답게 쓰자라고 속으로 다짐하면서도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자신으로 쓰기'를 많이 가렸던 것 같습니다.
자기 것으로 쓰라는 말을 자주 쓰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려운 책을 이해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조금 덜게 된게 더 편한한 글쓰기가 된 것 같습니다.

같이 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려요. 계속 모니터 부탁해도 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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