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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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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6일 04시 45분 등록
들어가기에 앞서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의 문 두드림은 내 삶에 있어서 가지치기 작업의 일환이었다. 일과 일상의 것들이 서로 얽혀 삶의 본질의 모습을 잊고 터벅거리며 걸어가는 나의 뒷모습에 대한 보살핌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주어진 ‘홉스 봄의 여정 따라잡기’에 나의 가지치기는 시작되었다. 첫 번째 가지치기를 망설이면 ‘홉스 봄’과의 여행은 여유로운 ‘일상에의 탈피’가 아니라 새로운 일로 다가올 것이 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음악에로의 몰입’에 오른손을 힘껏 들어올렸다. 한 번 빠지면 몇 시간은 허우적거리고 새벽이 옴을 미쳐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는 중독 같은 몰입에 과감하게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그 가지에선 향기 품은 생강꽃이 피어나고 새벽이슬은 꽃 사이사이마다 내려앉아 그 영롱한 빛을 발하였다. 나아가서 그 가지는 홉스 봄과의 긴 여정에서 오는 약간의 권태감에 바하와 슈베르트를 동행케 해주는 배려심 또한 잊지 않았다. 나의 첫 번째 가지치기는 완패였다.

구본형의 ‘코리아니티’ 와 함께 시작된 나의 두 번째 가지치기 역시 첫번째와 같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새벽마다 일어나서 손빨래하는 작업’
이 또한 ‘쉼 없이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할 내 앞에 가로막은 필요없는 나뭇가지’가 아니라 규칙적이고 반복되는 행동을 통한 나에게 최고의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고 창조적인 뇌로 바꾸어주는 내 영혼의 정화작업을 담당하는 가지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도 불평하지 않았던가
“왜 나는 샤워 도중에 최고의 아이디어가 떠오를까?” 라고
수십 년간 진행된 나의 손빨래 작업은 ‘코리아니티’를 읽는 동안 나에게 학급경영에 대한 반짝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고 우리 교육의 먼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다주었다.

이쯤 되면 조안 시울라와 함께하는 세 번째 가지치기는 처음부터 시작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나와 함께 일의 의미를 탐색해 보며 걸어가자’ 라는 제안
그 제안에 내가 동의한 직후부터 나의 세 번째 가지는 내 옆에서 있는 듯 떨어진 듯 하면서 나에게 신뢰를 보내고 존중해 주며 정직해 마지않은 충직한 벗이 되었음을 새삼 강조한다. 그는 나에게 명명되어진 ‘ 새벽 산책’이라는 이름이다.

‘일의 발견’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주체 못할 희열감을 맛보았다. 그것은 제3기 구본형연구소 연구원모집 1차 통과 후 가졌던 초조함이라던가 긴장감을 완전히 벗어던지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책을 읽고 쓰는 작업은 나에게 있어서 또 다른 일인가 놀이인가, 아님 한바탕 어울림의 마당인가’ 에 대한 염려도 할 필요 없고 선생님이 나를 불러 주시던 아니면 불러주지 않으시던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 같은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다는 자신감, 내가 지금까지 바쁜 나의 여정에 방해꾼으로만 여겼던 그 가지들과 함께 혼자서도 신명나는 놀이마당을 펼칠 수 있고 지나가는 나그네를 끌어들여 함께 어울려 보자고 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물론 선생님의 마당에서
‘함께 어울리고 뒹군다’ 면 내 삶에 있어서 ‘의미 있는 일’ 이 됨을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지만 말이다.

1.저자에 관해서
‘ 일과 삶의 행복한 통합’을 고민해온 저자는 웨이트리스, 요리사 등 노동현장에서의 경험과 템플대학교, 델라웨어 대학교, 메릴랜드 대학교를 거쳐 하버드 경영대학원 박사학위를 받은 현장과 이론을 두루 거친 현재 리치먼드 대학, 젭슨 리더십 대학원의 석좌 교수이다.

노동철학 강의를 통한 다양한 노동자들과의 만남 , 현장경험 그리고 폭넓은 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거쳐 이 세상에 나온 ‘ 일의 발견’을 비롯한 ‘리더십의 윤리학, ’윤리, 리더십의 핵심, 등의 저서가 있다.

저자는 ‘일’ 이라는 것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를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때로는 관찰자 입장에서 때로는 사회학자, 컨설턴트 등의 입장이 되어 객관적이고 냉정한 통찰력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저자와 만나게 된 ‘일의 발견’은 우리의 삶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일’과 ‘삶과 일의 관계’ 나아가서 ‘삶의 의미’에 대해 통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책이다. 나의 인생여정을 ‘일’이라는 것과 관련시켜 객관화 해 보면 가족을 위한 행복한 노동이었던 야산 개간하기를 시작으로 해서 품 팔기, 약초 캐서 팔기, ‘어패럴 공장에서 일하기, 미술, 음악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기, 그리고 현재의 직장에서의 오랜 근무를 통하여 저자의 이야기에 많은 부분의 공감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나의 노동의 과정은 학업과 함께 병행 된것이라 나에게는 저자와의 만남은 더욱 의미가 깊다. 또한 항상 나를 따라 다니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 즉 ‘노동이 삶의 일부요, 행복한 놀이처럼 다가왔던 그 옛날’이 저자가 말한 ‘우리는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그리워 하기 때문에 그 옛날을 그리워한다’ 라는 측면과 ‘일로 인한 여가와 삶의 의미의 상실로 인한 시대의 본능적 그리움’ 이라는 측면으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조안 시울라는 ‘일의 발견’을 통하여 나를 5시간 의자에서 꿈쩍하지 않고 앉아 있게 만든 묘약을 가진 작가다.

2. 내 마음을 사로잡은 글귀

프롤로그에 앞선 contents
- 일이란 무엇인가?
- 일꾼 길들이기
- 우리는 시간과 투쟁한다.
- 의미 있는 일, 그리고 행복한 삶

〔프롤로그〕
p 10 이 책은 처세를 위한 책도, 엄격한 사회과학 연구서도 아니다. 나는 여러 학문분야의 학자와 저자들의 저작을 인용했으며, 그들의 발등 위가 아닌 어깨 위로 올라서고자 최선을 다했다. 철학자로서 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간극에 놓인 질문을 살펴보았다. 나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가치 있게 여겨지는 일에 대한 생각들을 뒤집어 왜 그런지를 살펴보았다. 검증되지 않은 노동관은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p 11 몇몇 사람들에게는 일은 “일상의 굴욕”이었다. 그들의 굴욕은 그들이 하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나 상사의 멸시와 부당함으로써 비롯된다. 내 학생들은 감시당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신뢰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분개했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무능력을 탈피할 힘을 갖지 못한 것을 못마땅해 했다.

p 12 우리는 그 일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주거나, 적어도 원하는 길을 가는 동안
우리를 먹여 살려줄 것이라고 기대할 때, 그 어떤 최악의 일이라도 견딜 수 있다.

p14 과거의 노동자들이 단지 과로했을 뿐이라면, 오늘날의 많은 노동자들은 과로할 뿐만 아니라 과도한 통제를 받고 있다. 하루가 끝날 무렵 노동자들의 얼굴을 덮고 있는 피로는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일이 과업 자체의 정확하고 효율적인 수행보다는, ‘자아’를 더 많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p 14 이 책은 일의 지나버린 황금기에 대한 탄식이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기를 바라는지, 그 선택에 관한 책이다.

p15 이 책은 일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러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있다.

PART ONE - 일의 의미와 역사

p 일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직업을 잃었거나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결코 ‘일에서’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일할’ 자유를 가지고 있지 않다.

p 22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는 평화나 적당한 미덕, 교육이 없이는 여가도 가질 수 없다. “비지니스에는 용기와 인내가 요구되며, 여가를 위해서는 철학이 요구된다. 절제와 정의는 두 가지 모두에 필요하지만, 특히 평화와 여가의 시기에 더욱 요구된다. 왜냐하면 전쟁은 사람들을 공정하고 절제하도록 만드는 반면, 평화와 함께 찾아오는 상당한 재산과 여가는 사람들을 오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p 23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우리 삶에서 진정한 일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일’이다.

p 25 일을 통해 소득을 얻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직업을 갖는 것이 우리 문화에서 그토록 바람직한 이유는 명백하다. 일은 우리에게 유용하기 때문이다. 일은 규율과 정체성, 가치를 제공한다.

p 29 우리는 베짱이처럼 짧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도 있고, 개미처럼 길고 빈틈없는 삶을 살 수도 있다.
p 32 맨더빌은 부자에게는 검약이 미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만약 그들이 돈을 쓰지 않는다면, 가난한 자들은 실직할 것이기 때문이다. 맨더빌의 꿀벌은 개미처럼 일하고 베짱이처럼 소박함으로써 최대의 선을 가져오는 것이다.

p 35 꿀벌은 개미처럼 일하면서도 베짱이처럼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즐긴다. 꿀벌은 다른사람들이 고맙게 여기는, 훌륭하고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서 기쁨을 얻고 의미를 찾는다. 꿀벌은 유용하고 보상을 주는 일을 상징한다. 개미는 일하는 삶, 안전한 삶의 표본인 반면, 베짱이는 놀이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경솔한 삶을 대표한다. 그렇다고 해서, 베짱이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p 매미의 노래처럼, 놀이를 하는 유일한 목적은 즐거움이다. 이솝 우화속의 베짱이는 무책임해서 굶어 죽지만, 매미는 ‘배고픈 예술가’로 그려진다. 매미는 음악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굶어 죽는 것이다. 두 개의 우화는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반면, 일보다 노래를 더 좋아해서 죽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의 대다수에게 더욱 적절한 질문은 “ 만약 당신이 개미처럼 산다면, 즉 나이 들어 쇠약해 질 때까지 일해서 돈을 저축한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인생인가?”이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p 39 삶의 각 시기마다 서로 다른 가치들이 우선순위를 다툰다.

p 50 일이란 단어는 한 가지 활동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과 관련된 생각과 가치들의 집합을 가리킨다.

p 54 모든 문화에는 “일”이라 불리는 활동을 결정하는 고유의 가치와 사회적 인식이 존재한다.

p 60 ‘업무’라는 단어는 보수를 받기 위해하는 도구적인 활동을 나타낸다. 그것은 일, 노동,수고, 고역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p 62 '업무‘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을 하는 경제적인 존재의 활동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이다. 즉, 우리는 원하는 물건들을 사기 위해 구체적인 과업들로 구성된 일을 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일, 노동, 수고, 고역의 정의는 그러한 활동들의 대가로 보수를 받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들 활동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특성들을 아울러 가리킨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실질적인 일의 의미와 우리 문화에서 일 자체가 갖는 의미는 다를지 모른다. 그러나 둘은 한데 뒤얽혀 있다. 전자는 일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일의 문화적 의미와 가치에 관한 것이다.

p 68 서양과 동양의 일 개념 차이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개인의 생각과 견해가 그의 ‘일’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부처에게는 바닥을 쓸고 닦고 연료를 모으는 것 같은 가장 비천한 일조차도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었다.

p 70 초기 기독교인들의 일 개념 - 기독교인들은 일보다는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심미적인 이유보댜는 금욕적인 이유에서였다.

p 72 사실상 사회 전체가, 필요로 하는 이상을 더 원하도록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교부들은 이것을 바로 ‘탐욕’이라고 부른다.

p 73 중세에는 삶과 신에대하여 무관심하지만 않다면 구걸을 하거나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았다.
p 82 르네상스인은 스스로의 정신과 영혼, 육체와 두 손을 훈련시켜 아름답고 가치 있는것들을 만들어 냈다. 만약 종교가 중세의 아편이었다면 창조성과 미는 르네상스 시대의 각성제였다.

p 92 오늘날 우리는 크루소의 유산을 공유한다. ‘합리적 경제인’은 섬처럼 고립된 존재이다. 그는 의미있는일을 추구하고, 영원히 충족되지 못한채 무엇인가를 더 필요로 한다. 크루소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할 것이고, 어떤 인간이 될것인지에 대해 실용적이면서도 낭만적인 환상을 갖고 있었다. 크루소에게 일은 삶의 수단을 공급하는 동시에 삶의 의미를 제공해 주는 약속인 것이다.

p 99 성공의 열쇠는 무엇인가? - 18세기와 19세기의 노동윤리 옹호자들은 강한 도덕성이야말로 부에 이르는 열쇠라고 설교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나타나듯이 개인의 성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도덕성’이 아니라 심리학이 성공의 열쇠가 된 것이다.

p 101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일과 동일시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여겼다. 그는 사람들이 많은 영역에서 훌륭한 생산자가 되기에 충분한 자유를 누리면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세계를 꿈꾸었다.

p 110 결국 우리가 전문가나 장인으로부터 얻는, 일에 대한 환상은 자율성,창조성, 지위, 개인적인 기술에 대한 존경, 타인에 대한 사심없는 서비스, 그리고 지배층의 통제라는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

PART TWO -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p 115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일하러 갈 때 자신의 헌법상의 권리를 주차장이나 버스에 두고 간다.

p 129 "자선은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방편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이 풍족하게 가진 것으로부터 한 개인을 극도의 결핍에서 벗어나게 해줄 만큼 가져올 수 있는 권리를 모두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구제를 행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의 욕구를 이용하거나 그로 하여금 자신의 노예가 되도록 강요하는 것은 더 이상 정당화 될 수 없다.

p 131 일반적으로 우리는 취직을 할 때,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고용주들이 원하는 시간에,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는것에 동의한다. 즉 우리는 시간과 자유를 판다.

p 140 경영자가 노동자들을 장악하고 생산속도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열쇠는, 누구나 최대한 효율적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도록 ‘일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p 161 경영 연구자들은 외적 보상에 개의치 않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열정적인 인간 행동과 헌신을 고취시키는 잡히지 않는 영혼, 즉 “기계안의 유령‘을 찾기 위해 인간의 정신을 점점 더 깊이 파고 들기 시작 하였다.

p 167 집단적 사고 상태에서 한 집단의 구성원들은 비슷하게 사고하기 시작하고,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지 못하게 된다.

p 181 일하면서 미소까지 지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말 끔직한 일이 될 수 있다. 한슈퍼마켓의 점원들은 “저의 약속, 웃거나 인사하지 않으면 저의 1달러를 가져가세요.”라고 쓰인 명찰을 달고 있어야 한다.

p 181 전문가로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강력하게 제어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비난을 받고도 냉정하고 침착할 수 있는 간호사, 의사, 변호사, 교사에게 감탄한다.

p 182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는 동안 자기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그러나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특정한 상태의 감정을 지녀야 한다.

p 184 소외는 현대사회에서 합리적인 반응일지 모른다. 소외는 대개 일에 대한 개인의 통제나 선택의 자유가 결여됨으로써 생겨난다. 만약 일이 당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면, 왜 당신은 일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하는가?

p 192 성공한 기업에는 강한 문화와 그 문화를 이해하는 경영자들이 있다. 딜과 케네디는 강한 기업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은 위대한 조직에 속해 있다는 데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초과 근무를 하거나 한층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며 독자들을 확신시켰다.

p 193 동일한 기관이라도 as화가 지배하면 가장 높은 수준의 진정한 자율성이 발생한다. 문화는 중요한 소수의 변수들을 강력히 통제한다. 그리고 그것은 의미를 제공한다.

p 204 팀은 ‘문화’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형태의 사회적 통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팀안에서, 집단으로부터 받는 또래 압력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규칙을 지키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도록 만든다. 팀은 광범위한 조직문화보다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p 218 ‘직장으로의 도피’라는 개념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남자들은 항상 직장을 불행한 결혼생활이나 배우자와 아이들로부터의 피난처로 이용해 왔다. 가족들은 그의 고용인들처럼 그에게 복종하거나 그를 동경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직장을 도피처로 사용한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p 219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행복한 직장에 출몰하는 유령, 바로 구조조정이라는 유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p 223 회사가 단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을 가차없이 버릴것이라는 사실을 고용인들이 감지하거나 알고 있다면 충성은 터무니 없는 것이 된다. 충성은 상호적인 개념이다. 퍼시픽 벨 사의 고용인들이 회사에 대해 가졌 던 진심어린 애정과 충성은 회사가 그들에게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엇다. 이러한 충성심이 노동자들을 저항하도록 했는지는 몰라도, 그들을 절대로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회사가 고용인들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고용인으로부터 충성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한가지 방법은 충성이라는 단어에서 도덕적 의미를 제거하는 것이다.

p 228 모든 사람이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당한 보상를 원한다. 회사의 이윤을 창출한 댓가로 근로자들에게는 파티나 열어주고, 고위 관리자들에게는 엄청난 상여금과 스톡옵션을 지급하는 조직에는 무언가 부정한 것이있다.

p 231 노사관계에 있어서 큰 모순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그 사람의 만족을 이용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일은 인간의 존엄성, 정체성, 자기표현, 그리고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갖는 유용성과 관련된다. 사람들이 일을 단순한 거래 이상으로 생각할 때 일은 그에게 더욱 의미있는 것이다.

PART THREE 일과 삶

p 287 당신은 ‘주말을 위해’사는가, ‘주말 동안만’ 살아 남는가

p 287 어떤 사람은 더 갖고 싶어서 더 오랫동안 일한다. 어떤 이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잃는 게 두려워서 일을 한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구조조정은 근로자로 하여금 더 오랫동안 일하게 만들고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고용주에 대해 덜 불평하도록 강요당한다. . 또 이들은 버는 돈이 너무 적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일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자리가 없거나 충분치 못해 허덕이는 사람도 있다.

p 249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는 뭔가 좋은 구실을 가지고 어디론가 부지런이 가고 있는시간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보여준다. 이 시계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는지 볼 수 있다. 현대의 디지털 시계는 시간을 전후의 일련 사건 자체로만 묘사한다. 그것은 앞으로만 나아갈 뿐, 당신이 ‘어디까지’왔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시간은 그저 축척되어지는 질서 정연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p 251모든 사회는 그 사회만의 독특한 ‘사회적 시간을 갖는다. 사회적 시간은 언제 무엇을 해야할지, 그 일반적인 인생경로를 결정한다. 그것은 당신에게 언제먹고 , 언제 학교에 가야하며, 언제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고 결혼을 하거나 은퇴할 것이지 말해준다.

p 253 때로는 사회적 시간, 상호작용 시간, 조직 시간은 충돌할 수 있다. 어떤 젊은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하고 싶어한다. 한 동료가 당신을 너무 오래 붙잡고 대화를 하는 바람에 기차를 놓칠 수도 있다. 당신의 상사가 당신을 너무 바쁘게 만드는 탓에 점심을 거르기도 한다. 이러한 충돌의 한가지 결과는 ‘기다림’이다. 시간이 돈이고, 소비자 중심주의가 욕구의 즉각적인 만족을 강조하는 시간지향적인 사회에서 기다림은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어려운 부분이다. 아이들에게 기다림을 가르치는 것은 양육에서 중요한 부분인 동시에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p 261 경영자들과 시계는 시간제 근로자들을 감시한다. 임금근로자들은 때로 더 많은 보수를 받고 전문가처럼 대접을 받는다. 전문가나 장인처럼 그들은 일을 마칠 때까지 더 오랜 시간 일하도록 요구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영업자인 전문가들과는 달리, 그들은 대부분은 일이 끝났어도 업무시간이 끝나기 전에는 집에 갈 수가 없다.

p 266 일이 개인의 시간을 몽땅 차지하거나, 그 사람이 가진 에너지 전부를 소진할 때 집은 더 이상 직장으로부터의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또다른 직장이 된다.

p 270 근로자들이 직장 내의 책상에서 떠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은 일하는 시간의 범위를 넓히거나 그 시간의 양을 증가시키는 데도 이용된다. 산업적으로 사고하던 시대에는 근로자가 건물 안에 있는 시간 동안만 생산을 하면 되었다. 이제 고용주는 고용인들이 어디 있던 상관없이 전자공학을 이용하여 그들을 구속할 수 있다.

p 273 우리 문화는 늘 일만 하는 사람에게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이 매우 바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시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양에 의해 그의 지위를 상당 부분 평가한다.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 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생각해 보라. “ 바쁘신 건 잘 알고 있지만..... .” 때로는 우리는 별로 바쁘지 않다든지, 시간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상당히 창피하게 여길 지경이다.
p 283 오락과는 달리, 여가활동은 사람들이 의미있는 일에서 발견하는 것과 동일한 지속적인 참여와 만족을 수반한다. 여가는 대개 생각, 학습, 혹은 기술의 개발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p 295 여가는 자유롭고, 자기 결정에 의한 것이며, 즐겁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원할 때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다. 여가는 돈이 들지 않는다. 친구나 가족과 어울리는것, 소설책을 읽거나 단지 공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여가는 우리가 소중하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활동하는 시간이다.

p 308 가치와 의미는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 가치와 의미는 삶에 임하는 사람들의 자세와 초점에 의해 드러난다. 다시 말해서 특정 유형의 탐구자들만이 그들의 탐색 방법에 따라 의미를 발견한다.누구나 세상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만, 홀로 그러한 의미에 활기를 불어넣거나 불을 밝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p 319 인간으로서 삶에 적극 참여하라.오늘날 당신은 오랜 시간 동안 일하더라도 여전히 태만할 수 있다. 그리고 의미있는 일은 ‘뇌 수술’에서 ‘쓰레기 수거’까지 어떤 것이든 포함 할 수 있다.

p. 320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뿐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조직은 의미있는 일을 창조해 주지 않는다. 그곳은 다만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는 장소일 뿐이다.

에필로그
p 331 경영 이론가와 고용주들은 ‘일을 잘하는 고용인일수록 자기 삶을 희생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렇다. TQM이 “삶의 방식”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직장 바깥에서 훌륭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일도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은 지나치게 지루하지 않게, 개인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일이 직장 밭깥에서 훌륭한 삶을 영위하는 능력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

p 333 보다 광범위한 질문은 “우리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삶을 원하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이다. 다시 말해, “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그것을 위해 현재 포기하고 있는 것만큼의 가치를 갖는가?”이다. 의미있는 일은 더물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기만 한다면 유급고용이나 자유시간을 통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의미 있는 일을 원하고 발견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누구나 같은 것만을 의미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나의 귓전을 맴도는 것은 부루크너의 ‘교향곡’이었다. 책의 흐름이 부루크너의 교향곡 흐름과 너무나 유사하였기 때문이다. 서두부분에 필요한 인내심, 그러나 포기할 수 없도록 만드는 선율과 언어의 어울림, 수학공식을 보는 듯한 팽팽한 수직적 수평적 배열 그리고 마침내 피날래 부분에 흐르는 따스함과 승리에 울림
모차르트 교향곡에 비해 3-4배는 더 길어 보이는 부루크너의 교향곡을 끝까지 듣게 만드는 그 강한 힘은 바로 후반부에 흐르는 따듯한 인간애, 그리고 신으로 향하는 겸허의 표현 때문일 것이다.

책의 표지를 보고 또 보았다. 이 그림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이 표지그림을 넣었을까? 결론은 아주 쉽게 내려졌다. ‘사람’이다 바로 사람이었던 것이다. 모두가 외롭게 던져진 군상들이었지만 그들 개개인은 모두 한 곳을 응시하는, 하나 되고픈 갈망을 지닌, 망믕이 흐르는 군상이었다..

〈일의 발견〉은 일과 일의 의미를 되돌아 보고 ‘일과 삶의 관계’까지도 통찰 해 볼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 책은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였다” 라고 말한 저자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저자는 ‘일’ 이라는 것을 노동자와 경영자 사이에 두고 그 사이를 쉼없이 기웃거리고 때로는 어루만지기도하며 징검다리 건너 듯 겅중거리며 왔다갔다 한다. 그 기웃거림은 단지 호기심에서 출발 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향하는 따뜻한 시선이요. 절제된 사랑이었다.
일의 역사를 찾아 그 역사 속에서 일의 의미를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는 작업은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라기 보다는 본능적인 그리움을 찾아 헤매는 여로와 같은 것이었다. 저자는 대부분을 ‘경영자는 고용인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었으며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그림자를 찾는 작업에 상당 부분을 할해 했지만 그는 노동자에게는 늘 깨어있기를 바라고 스스로 의미를 찾아 나가기를 바라는 동시에 경영자에게는 ’도덕적으로 가치있는 조직‘을 고용주에게 제공하기를 바라는, 경영인과 노동자 모두에게 따듯한 시선을 보내는 참다운 철학자이다.

내 유년시절에 있어서 일은 나에게 있어서는 기쁨이었고 나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그 무엇이었다. 거기에는 경영자와 고용인으로 분리될 상황도 분리될 필요성도 없었다.
내가 경영자요, 아울러 고용인이었다. 또한 보수는 시간과 자유를 판 댓가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졌음을 황홀해 마지 않는 일 자체가 주는 감사였다. 그렇다고 내가 중세 시대의 서구에 태어났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일이 일상이고 생활일 때는, 일의 속성이 가지고 있는 고통을 수반하고 때로는 일을 사이에 두고 경영자와 고용자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그러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것이다.

가까이 있으면 더 사랑하게 된다. 저자는 고용인의 손을 늘 잡고 다녔다. 그 방법은 현장경험이기도 하고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을 원치 않는 물상들 그 어디 있으랴? 저자도 경영자의 흔들의자에 잠시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저자가 이미 이야기 했듯이 우리가 함께 탐색해 보고자 노력했던 것은 단순히 ‘일’이라는 것이 아니라 긍극에 가서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논의라고 할 수 있기에 우리는 그 탐색의 테이블에서 별다른 저항감을 갖지 않는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지극히 미국적인 상황 중심으로 이야기의 전개를 가져왔지만 우리가 자칫 잃기 쉬운 여가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일과 삶에 있어서 우리들의 ‘선택’ 이라는 것에 대해 차분한 마음으로 되돌아 볼 여유를 제공해 주었다. 작가와 동행한 여정은
길고 그 목적지가 분명치는 않지만 우리 모두가 방황하는 그러한 여정은 결코 아니었다. 저자의 ‘일’과 ‘여가’ 나아가서 ‘삶의 의미’로에의 초대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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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7 04:38:59 *.140.145.63
세번의 가지치기가 인상적이군요. '음악에로의 몰입','새벽마다 일어나서 손빨래하는 작업’,'새벽산책' 저하고는 다 거리가 먼 일들이지만 님에게 어떤 지원군이었을지는 상상이 가는군요..^^

혼자서 놀 자신이 생겼다는 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번 과정이 단순히
3기 연구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일과 놀이의 경계'를
실험하는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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