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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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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6일 23시 34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조안 B. 시울라, 고마워요~!“


한 직장 동료가 말했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뚜렷하게 주장하는 책이 좋다. 그 주장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크게 상관없다. 뚜렷한 주장을 펼친 책을 읽어야 어느 한 사람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든다.”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뚜렷한 주장이 담긴 책을 읽은 독자는 두 가지를 얻게 될 것이다. 그 주장에 동의하게 되면 자신의 사상이 더욱 확장되는 것이고, 반대하게 되면 자기 사상의 경계를 더욱 분명하게 그을 수 있을 것이다. 조안 B. 시울라는 『일의 발견』에서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역시, 그 직장 동료는 이 책을 읽은 소감을 “그냥 그랬다”고 표현했다.

비록 한 방향의 뚜렷한 주장을 하지는 않더라도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 있다. 이런 책은 독자로 하여금 보다 정확한 판단을 하도록 돕는다. 이럴 때에는 저자의 가치 중립적 태도가 답답한 것이 아니라, 고마운 경우다. 독자가 잘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도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 주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책의 결론을 독자에게 맡겨 두는 것이다. 조안 B. 시울라도 책의 결론을 열어두었다. 그녀는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보편적인 규범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일과 여가의 균형을 맞춰가며 사는 것을 선택할 것이고, 누군가는 사실상 내내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을 선택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전혀 일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일에 대한 뭔가 분명한 지침을 내려주기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말이긴 하지만, 이내 내 삶의 방식은 스스로 선택해야 함을 깨닫는다. 자존감이 낮아질 때, 흔히 사람들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확인받고자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그랬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왜일까? 일의 의미에 대한 연구를 수년간 진행하면서 분명 나름의 일가견을 갖게 되었을 터인데도,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뭘까? 독자가 선택할 영역을 철저히 넘어오지 않으려는 그 절제가 나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과제를 남겨 주었다. (이 과제에 대해서는 아래 리뷰에서 밝혀 두었다.) 그래서, 저자에게 퍽 고맙다. 아마 몇몇의 독자들에게 조안 B. 시울라는 고마운 존재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저자의 뚜렷한 주장이 더러 있기도 하다. 경영자와 고용주들에게 '정직한 직장을 만들어 달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고용인들에게는 '당신의 삶을 시장이나 고용주들에게 맡기지 말 것'을 부탁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주장까지도 꽤 덤덤한 문체로 쓴 책이지만, 저자는 고용인들의 입장을 잘 이해해 주고 잘못 알고 있던 생각을 바로 잡아 주기도 하여, 나는 따뜻한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하지만, 감상적으로 저자의 성품을 찬양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일과 삶의 의미를 찾는 이들에게 조안 B. 시울라는 탁월하게 잘 정리된 보고서를 건네 주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나는 이에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녀에게 ”고마워요. 조안 B. 시울라~! 당신으로 인해 나는 다시 한 번 내 삶과 일, 그리고 직장에 대하여 보다 깊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라고 말해 주고 싶다.

■ 일의 의미, 삶의 의미를 찾아서
- 『일의 발견』서평 & 내가 받은 선물보따리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은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원동력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나는 어느 학문을 공부하기 전에 그 학문이 어떤 것을 다루고 있는지, 그 학문이 지향하는 바와 학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다룬 책을 먼저 읽는 편이다. 역사에 대한 책을 읽기 전에 역사철학서를 읽고, 과학에 대한 책을 읽기 전에 과학 철학서를 먼저 읽었던 것이다. 이를 테면, 역사의 의미에 대하여 그럴듯한 이론을 제시하는『역사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다룬『대중과 과학기술』, 과학의 가치라는 소챕터가 마음에 들어 구입했던 『과학과 인간의 미래』 등을 먼저 손에 들었던 것이다.

일의 의미를 찾아서...

마찬가지로 나는 대학생활이 얼마 남지 않았던 20대 중반이었을 때, ‘일한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그 생각의 결과를 담은 “도대체 왜 일하는가?”라는 제목의 꽤 긴 글을 쓰기도 했다. (아쉽게도 작년에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그 글을 볼 수가 없다.) 당시, 일은 인간의 가치를 높여주는 활동이다, 사람은 일을 통하여 행복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등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6년 정도가 지났다. 의미 찾기는 우리 인생에서 단 한 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변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한 사람의 생각도 성숙하기 때문에 보다 가치 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책이다.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책이다. 저자는 일이 실제로 우리에게 주는 것에 비하여 과잉 약속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나는 저자의 이 문장을 접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6년 전, 내가 일에 대하여 생각을 하던 당시에 나는 일의 긍정적 의미만을 찾고자 노력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의 전제는 ‘일은 우리 삶을 보다 가치 있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일은 또한 우리 삶을 파괴할 수 있다.”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이 일의 파괴력은 6년이 지나는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부분적으로 경험해 왔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확실하게 느끼지 못했던 것은, 6년 동안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을 지배해 왔던 것은 일의 파괴적인 면이 아니라, 일의 유익한 면이었기 때문이리라.

30대, 보다 본격적으로 일에 뛰어들 즈음에 나는 멋진 책을 만났다. ‘일’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일과 삶의 균형과 행복한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성찰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하여 현명한 가치관을 정립해야 하듯이, 일에 지배당하지 않고, 오히려 일을 통하여 행복을 누리려면 올바른 노동관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나의 노동관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나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가치 있게 여겨지는 일에 대한 생각들을 뒤집어 왜 그런지를 살펴보았다. 검증되지 않은 노동관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 말이 무척 믿음직했고, 그 믿음은 책을 덮으며 더욱 굳건해졌다.

서 말 구슬이 있더라도 꿰어야 보배!

이 책에서 저자는 하나의 견해를 밝히기 위하여 상당한 양의 자료를 수집하여 분석한다. 나는 이 점에서 상당한 자극을 받았다. 예를 들면, 일의 정의를 내리기 위하여 랜덤하우스, 웹스터 사전은 물론이고 고대 영어의 어원까지 살펴본다. 또한 일(work)의 다양한 활용 범위를 다루고,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주장했던 일에 대한 일가견을 총동원한다. "일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버트런드 러셀, 많이 아렌트, 존 로크, 헤겔, 프리드리히 엥겔스, 애덤 스미스와 같은 죽은 사상가들의 견해를 빌려오기도 하고, 윌리엄 브리지스라는 최근 경영에 관한 논문을 인용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일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노동, 업무와의 차이점도 분석해 놓고 있다. 이렇게 한 가지 주제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는 저자의 성실함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대단하다고 할 만하다. 이와 동시에 나의 부족한 지식에 대한 아쉬움이 들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를 만들 터인데, 나에게는 저자가 제공한 다양한 정보를 꿰어 부가가치를 창출할 만한 주견이 없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대가인 월엔 베니스는 이 책에 대하여 이렇게 평했다. “이 책은 진지하고, 깊은 생각이 담긴 중요한 책이며,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책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는 이 책의 수많은 견해와 정보, 통찰력 있는 주장을 통하여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고, 당신의 책이나 강연으로 활용할 만한 부가가치를 많이 얻었으리라.

내 안에 『일의 발견』있다

사실 처음에는 업무와 일의 개념적 차이를 아는 것이 나의 실존적 발전에 어떤 유익을 주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는 일에 대하여 한 마디씩 했던 사람들은 모두 등장하는 것 같았는데, 저자의 해박함에 입이 떡 벌어지기도 했지만, 때로는 글이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2장 일이 무엇인가, 까지는 다소 지루하게 읽었다. 하지만, 3장부터 책의 마지막 장까지 나는 이 책을 열렬히 읽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듯이 '일'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이고, 저자는 그 일에 대하여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질문을 던진 후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가견을 제시하기 위하여 정답을 추적하였다. 저자의 이러한 일의 의미와 역사를 고찰한 성실함과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를 살피며 우리가 과연 누구를 위하여 일하는지를 분석한 통찰력, 그리고 일과 삶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 혜안은 내가 이 책을 좋아하도록 만들어버렸다. 내 마음 속에 품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내가 받은 선물보따리

이 책이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이 된 것은 큰 선물보따리를 안겨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 보따리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나 과제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면 정말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모든 종류의 일, 예를 들어 공장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는가?
나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Yes"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조사하여 칼럼 하나 쓰자.

- 빈곤자들의 존재는 개인들의 게으름이 원인인가, 아니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인 당연함인가? 『빈곤의 종말』에 이런 내용들에 대한 답이 있지는 않을까?

- “일은 일 이외의 삶을 잠식한다. 일 이외의 삶은 일하는 삶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일에 대하여 내가 갖고 있던 가치에 또 다른 통찰을 포함시켜야 함을 요구하는 듯하다. 그런데 일을 통해 삶의 새로운 분야를 발견했다는 전업 주부로 살아온 40대 가정주부의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상적인 생활의 필요를 넘어서 오직 그 아름다움과 탁월성이 두드러지는 것만을 추구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아르키메데스의 반대편 극단을 걷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야 자신의 경박함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느 40대 직장인이 자신에게는 인문학적인 교양이 없어서 생각이 얕고 가볍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 당대의 걸출한 현자들이라도 당시의 시대적․사회적 지배적 사상과 문화를 뛰어넘기는 힘들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시대적인 사상에 갇혔던 사례를 조사해 보자.

- 일을 중요시한 베네딕트 교단이 사회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조사해 보자. 이를 통하여 크리스천들의 직장 윤리에 대하여 정리하자.

- 프랭클린의 노동 윤리가 가지는 장점과 한계점을 정리하여 회사 내 FT들과 공유하자.

위의 질문들 외에도 이 책이 나에게 안겨다 준 과제는 많다. 나는 이렇게 나를 공부하게 만드는 책이 좋다. 당분간 이 책의 텍스트를 보다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공부를 더 하고 싶다. 책에 곳곳에 적혀 있는 과제들을 헤아려보니 모두 26가지다. 26개의 결과를 만들어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흐뭇하다.

아쉽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아직 일의 의미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는 않았다. 아직 평생의 일터에서 내 삶의 기준이 되어 줄 노동관을 정립하지 못한 것이다. 이 책을 읽기만 했지, 내 속에서 푹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오히려 이 책을 읽기 전보다 ‘일’에 대한 생각으로 더욱 혼란스러워진 느낌이다. 하지만, 최고 ․ 최선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길을 완전히 잃어버릴 필요가 있음을 믿기에 이 혼란스러움이 싫지 않다. 아니, 조만간 확고한 일에 대한 가치관이 세워질 것 같아 기쁘다. 이 기쁨을 선사해 준 『일의 발견』이라는 책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곧 내 삶에서 일이 가지는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를. 더불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기를.


■ 내 마음에 들어온 글 귀


PART TWO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1. 왜 일하는가?>

p.20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한 가지 믿음이 있다. 만약 사람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쁜 마음을 먹게 된다는 것, 즉 ‘게으른 자의 마음은 악마의 작업장’이 라는 것이다.”
“일은 규율, 소속감, 규칙성, 자기 효능감 같은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 욕구를 만족 시킨다. 그러나 과연 일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가? 왜 실직자들은 ‘여가’를 통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가?”

p. 22
“실직의 문제점은 당신이 단 하루의 휴가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p.23
"실직자들이 자유롭고 한가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무심하고 냉소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여가는 단순한 ‘자유시간’ 이상이다. 그것은 일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이며,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한 기회이다. 직업을 잃었거나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결코 ‘일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일할‘자유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런 선택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p.25
"일을 통해 소득을 얻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직업을 갖는 것이 우리 문화에서 그토록 바람직한 이유는 명백하다. 일은 우리에게 유용하기 때문이다. 일은 규율과 정체성, 가치를 제공한다. 일은 우리의 시간을 조직하고 우리의 삶에 리듬을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우리에게 매일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준다는 점이다. 교육과 소득, 평화와 안전이 주어진다 해도, 유급노동이 일의 중심이 되는 문화에서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매일 매일을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활동으로 채울 수 있을까? 우리들 대다수는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p.26
"요컨대 우리는 타고난 기질 때문이 아니라, 훈련과 도덕적 조건화로 인해 일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에 있어서 ‘자연스러운’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필요일 뿐인 것이다."

p.27
"‘일의 의미’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일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유지시키고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 외에, 일이 놀이보다 더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일의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p. 28
“일하는 삶이 노래하는 삶보다 낫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만약 당신이 노래하기를 원한다면 그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주제는 ‘공평함’과 ‘자급자족’이다. 만약 당신이 일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먹지 못하여,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먹을 것을 주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이솝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선택’하도록 한다. 우리는 베짱이처럼 짧고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고, 개미처럼 길고 빈틈없는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행동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솝은 시기심으로 인해 생겨난 근면함은 도둑질이나 탐욕, 인색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p. 36
“수츠의 주장에 따르면, 당신은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일하면서 놀 수가 있다. 첫째, 당신은 일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둘째,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

p.37
"우리들 대다수에게 더욱 적절한 질문은 “만약 당신이 개미처럼 산다면, 즉 나이 들어 쇠약해질 때까지 일해서 돈을 저축한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인생인가?” 이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p. 42
"그 일을 하기 위해 현재 직업이 주는 안정과 권력, 구매력을 감히 포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의미 있는 일에 뛰어드는 것은 모험이다."

p.44
"일은 일 이외의 삶을 잠식한다. 일 이외의 삶은 일하는 삶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
“일이 그토록 대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일은 흥미롭고 만족을 주지만, 어떤 일은 그렇지 못하다. 어떤 일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가치가 있지만, 어떤 일은 삶의 다른 것들을 즐기지 못하도록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그러나 일 자체는 어떠한가?
우리 문화에서 일은 미덕이며, 일 없이 보내는 시간은 잠재적으로 위태롭다. 일은 사람들에게 정체성과 자기 가치, 그리고 자기 주변의 세상을 형성하고 거기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일이 주는 가장 근본적인 만족은 생계를 꾸리는 데서 오는 만족감,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조감일 것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종류의 일과 활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개인적 행복과 정체성이 유독 일에만 의존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우리 문화에서 유급노동은 어떻게 그토록 좋은 평판을 얻게 되었으며, 다른 문화에서도 점차 유급노동의 가치가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일’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역사적으로 모순적인 감정과 가치를 지녀왔다. “일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우리의 탐구를 시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 일이란 무엇인가?>

p.51
“상사라든지, 시간 및 에너지 사용에 관한 계약, 더러운 마룻바닥과 같은 외적 필요성은 일을 정의하는 강력한 특성이다.”
“카를 마르크스에 따르면, “작곡과 같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일이야말로 동시에 가장 진지하고 가장 맹렬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p.59
"알베르 카뮈는 신들이 “쓸모없고 헛된 노동보다 더 무시무시한 벌은 없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평한다. 시시포스와 다나이드를 괴롭힌 것은 세 가지이다. 즉, 소모적이고 지루한 과업, 자유의 상실, 무의미하고 헛된 일이 그것이다."


<3. 일의 역사>

p.65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일은 ‘저주’였다."
“노예는 부유한 고대 그리스인들을 일에서 해방시켰다. 그리스인들은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활동을 ‘노예의 일’로 여겼다. 노예제도는 인간의 지위를 강등시켰을 뿐 아니라 일의 사회적․도덕적 가치까지도 격하시켰다.”

p.67
"아르키메데스는 일상적인 생활의 필요를 넘어서 오직 그 아름다움과 탁월성이 두드러지는 것만을 추구했다. 현대의 독자들에게 아르키메데스는 현학적인 속물처럼 보일 것이다.“

p.69
"육체노동에 대한 편견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p.70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실천에 대한 이론의 우위’는 대학에서도 여전히 건재하다. 몇몇 교수들은 실험 및 응용 분야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분야보다 낮은 지위를 갖는다고 믿는다. 경제학과의 이론 경제학자들은 경영대학원에서 응용 학문을 하는 동료들보다 자신들이 더 우월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대개는 경영대학원의 교수들이 더 많은 월급을 받는데도 말이다.“
“초기 기독교인들도 일보다는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p.71
"3세기에, 선교자이자 신학자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육체노동이 수치스러운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고 말한 고대 철학자들을 비판했다. 클레멘스에 따르면, 일과 배움은 둘 다 중요한 것이다.“

p.74
"단순한 노동에 불과했던 ‘일’이 두드러지게 긍정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이다."
“베네딕트는 육체적인 일에 보다 긍정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베네딕트는 수도사들에게 신에 대한 헌신의 한 방법으로써 무슨 일을 하든 ‘탁월함을 추구하라‘고 장려했다."

p.75
"성 베네딕트에게 일은 직업이나 소명이 아니라, 일종의 ‘눈에 보이는’ 기도였다. 이렇듯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이 조용히 농사를 짓고, 나무를 베고, 습지의 물을 빼내고, 방앗간을 짓고, 또한 폐허에서 구해낸 원고를 필사하면서 중세의 마을 사람들에게 미쳤을 영향을 상상해 보라. 베네딕트 교단을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으며, 중세의 마을과 도시를 발전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p.81
"일에 관해 말할 때 우리가 가장 애용하는 묘사, 즉 ‘창조로서의 일’은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했다."

p.85
"그들(루터를 비롯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보기에, 부랑과 실직은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도덕적 결함으로 인한 것이었다. 루터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게으른 거지와 부랑자들을 꾸짖었다. 그는 사람들이 가난하고 집이 없는 이유는 그들이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바로 이 시점부터 오늘날까지, 몇몇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러한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다른 주요 종교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관점에서 크게 이탈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코란에서는 거지들을 세상의 자연스런 질서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며 자선은 도덕적 ․ 영적 의무라고 생각했다."
→ 빈곤자들의 존재는 개인들의 게으름이 원인인가, 아니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인 당연함인가? 『빈곤의 종말』에 이런 내용들에 대한 답이 있지는 않을까?
이 책은 일에 대하여 한 마디씩 던졌던 수많은 사상가들의 핵심 의견을 분명하게 정리해 준다. 만약 내가 루터의 자서전을 읽으며, 그가 주장한 일의 의미와 개념을 읽었더라면 그것이 탁월한 단 하나의 견해라고 믿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속단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이는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수고해 준 덕분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덕을 더욱 충분히 누리고 싶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 자체를 위한 일’이라는 개념과 ‘휴식과 쾌락에 대한 혐오’는 칼뱅과 루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노동윤리’라고 불리는 것의 수많은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

p.86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일과 모든 노동자들을 똑같이 존중하도록 가르쳤다는 점이다."

p.87
"프로테스탄트의 소명 개념은 일에 영적인 차원을 부여했다. 그것은 결코 일이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명으로 인해 평범한 생활 속에 금욕주의가 생겨났고, 이것은 세속적인 행복의 추구를 엄격하게 제한했다."

p.88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가 일의 도덕적 가치를 형성해온 과정을 살펴보았다. 고대인들은 일을 강제적인 것이자 저주로 보았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일에 ‘단순한 위엄’을 부여했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일에 ‘매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신교도들은 일을 의미와 정체성, 구원의 징표를 찾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일, 즉 소명으로서의 일 개념은 일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특징을 강조했다. 일은 일종의 기도가 되었다. 일은 삶의 수단을 넘어 삶의 목적이 되었다. 일은 저주에서 소명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 그렇다면, 진정한 일의 의미는 무엇인가? 현대에 와서 발견한 것이 일의 궁극적인 본질이자 의미인가? 고대의 의미가 맞을 수도 있지는 않을까?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가치있게 여겨지는 일에 대한 생각을 뒤집어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 않았나!

<4. 일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

p.90
“공정함, 개인의 탁월성, 개인의 선함이라는 이 세 가지 기본 개념으로부터 일은 ‘고역’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것이라는, 일에 대한 낭만적 개념이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는 일을 통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p.92
“18세기, 벤자민 프랭클린은 프로테스탄트의 관점과 계몽주의의 이상을 조합하여 새로운 노동윤리를 만들어냈다. 그는 사람들이 인도적인 방법으로 부를 사용하여 사회를 돕기 위해서는 우선은 ‘부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랭클린 부가 사회에 이득이 되고 개인에게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적 의무가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일을 강조했다."

p.93
"프랭클린은 노동윤리를 세속화했지만 전통적인 기독교의 미덕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프랭클린에게도 여전히 부에 이르는 길은 신중함, 근면, 검약이었다. 특히 훌륭한 성품은 성공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 ‘훌륭한 성품은 21세기에서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인가?’라는 주제로 나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겠다. 심리학에 기반하여 성공을 이루었지만, 도덕적 결함으로 행복과 진리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례를 찾아보자.

p.96~97
"엘저의 작품에서 가장 일관된 메시지는 아마도 아메리칸 드림으로서의 노동윤리의 표현일 듯하다. 즉, 미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p.100
"콘웰은 가난한 사람의 아들이 되는 것이 부자의 아들이 되는 것보다 낫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가난한 소년은 성공에 이르는 길에서 도덕적인 성품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더 많이 갖기 때문이다.
18세기와 19세기의 노동윤리 옹호자들은 강한 도덕성이야말로 부에 이르는 열쇠라고 설교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데일 카네기가 1936에 쓴 《카네기 인간관계론》에 나타나듯이 개인의 성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도덕성’이 아니라 ‘심리학’이 성공에 이르는 열쇠가 된 것이다."

p.103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유재산과 자본주의 생산체제는 일로부터 얻는 창조적이고 사회적인 보상과 자신이 만들어낸 상품을 사용하는 기쁨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켰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일과 동일시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여겼는데, 특히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하고 매우 세분화된 일을 할 때 그러했다. 그의 이상은 사람들이 많은 영역에서 훌륭한 생산자가 되기에 충분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세상이었다."

p.105
"희망의 개념은 훌륭한 직업의 필수조건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에서 일은 구원의 희망을 제공할 뿐 그 일이 어떤 종류인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p.108
전문직을 특별한 직업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아마도 일에서의 자율성과 공평한 서비스일 것이다. 사회학자 탈콧 파슨스는 기업 경영자는 결코 전문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기업인은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상관없이 사리사욕만을 이기적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전문가는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타인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봉사한다."

p.109
"전문가와 장인들의 덜 고귀한 측면은 훈련 및 진입 과정의 복잡함이 그들 집단에게 특정 지식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해준다는 것이다.
법학과 의학을 비롯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독점을 유지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혹은 라틴어처럼 죽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p.110
"우리가 전문가나 장인으로부터 얻는, 일에 대한 환상은 자율성, 창조성, 지위, 개인적인 기술에 대한 존경, 타인에 대한 사심 없는 서비스, 그리고 지배층의 통제라는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하고 있다. 전문가와 장인은 바람직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p.111
“사람들은 또 다른 직업을 꿈꾸지만, 그들이 꿈꾸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작은 포도밭을 소유하거나 가게를 열거나 독립적인 컨설턴트로 일하는 것, 혹은 개인 사업을 꿈꾼다."

p.111~112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때, 즉 고용되어 일할 때에는 ‘고된 일’과 ‘더 나은 삶’을 동일시하기가 더 어렵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함으로써 우리는 이미 자신의 일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일과 관련된 문제들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노동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루소의 주장은 옳다. 자유와 권력 혹은 통제를 위한 투쟁은 오랫동안 주인과 노예들, 영주와 농노들, 그리고 고용주와 고용인들 사이에 존재해왔다. 그것은 일과 관련된 주요한 문제이다."

PART TWO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5. 일과 자유>

p.117
"고용주나 경영자는 항상 자신의 뜻을 고용인들에게 강요하려는 유혹에 직면한다. 고용인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 직장에서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왔다. 자유의 원칙은 이러한 관계의 중심에 있으며,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기본이 된다. 일할 자유, 일터에서의 자유, 그리고 일로부터의 자유."

p.118
"노예들과 달리 그들은 항상 일을 그만둘 수 있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보통 여덟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항상’그만둘 수 있을까?"

p.122
"그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일애야만 했다. 결국 고용이란 자유와 기회로 이어지게 될 일시적인 노예 상태를 의미하였다."

p. 127
"한 개인이 자신의 일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고용주의 학대를 반드시 정당화해주지는 않는다. 문제는 한 개인이 얼마나 많은 선택권을 ‘실제로’ 갖고 있는가이다 모든 사람은 삶에서 광범위한 선택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통용되는 신화이다."

p.129
"소도시에서 살고 있고 부양할 자녀가 넷이나 되는 미혼모 역시 어디에서 일할지를 선택할 ‘자유’를 갖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실행 가능한 선택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p.131
"존 로크와 애덤 스미스는 고용인들이 실제로는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p.132
임금이 상실된 자유에 대한 보상이라는 견해는 또한 몇몇 터무니없는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은 한 사람이 직업에서 더 적은 자유를 누릴수록, 더 많은 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현실은 정반대다. 표면적으로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직업일수록 더 높은 지위를 나타내고, 더 많은 돈을 받는 경향이 있다. 폴 퍼셀은 자신의 책 『계급』에서, 한 사람이 직업에서 누리는 ‘자유의 양’이야말로 임금보다 나은 계급의 지표라고 주장한다.

<6. 일꾼 길들이기>

p.137 일꾼들이 갖는 힘의 원천은 그의 전문 기술이다. 그리고 또 다른 힘의 원천은 다른 일꾼들과의 연합이다.

p.138
1900년에서 1930년 사이, 세 가지 혁신과 운동이 일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그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은 일터가 형성되었다. 과학적 관리법, 복지 자본주의, 그리고 경영에서의 인간관계접근이 그것이다. 이들 모두는 노동자들을 길들였을 뿐 아니라 일을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사회적 ․ 심리적 경험으로 만들었다.

p.146
그(찰스 슈왑)의 말에 따르면오늘날과 같은 대량생산의 시대에, 산업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인간을 인간다운 원칙에 기반하여 관리하는 것이었다.


p.158
사무직 노동의 증가는 경영에서의 인간관계적, 심리적 접근을 새롭게 적용하도록 만들었다.

<7. 노동의 두 얼굴>

P.160
드러커는 이윤을 지향하고 불가피하게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회사에, 인간의 열망을 충족시키고 산업 시민을 양성하는 무모한 책임을 부여하는데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드러커는 대표적인 사회기관으로서 회사가 사회의 가치와 열망에 부응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P.171
이 피라미드 모형은 종종 문맥을 벗어난 채 차용되어서, 1960년대에 두드러진 업적을 남긴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우의 견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매슬로우는 일부 사람들의 욕구는 도식의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욕구 단계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실제 관찰과 일부 모순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감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위엄이나 신념을 포기하기보다는 차라리 굶어죽거나 죽음에 맞서는 것을 택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p.173
결국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결정하거나 그것에 대한 욕구를 창출하고, 욕구 충족을 위해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권력을 주장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p.183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하는 동안 자기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생산하는 데 지적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낸 상품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자신의 실제 감정을 항상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의 서비스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

<8. 유망한 직장>

p.195
강한 기업문화의 커다란 이점은 그것이 포괄적이고 자동 조절되는 사회체제라는 점이다. 불리한 점은 그것이 억압적인 동시에 변화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부정적인 면은 고용인들이 충분히 일 바깥에서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 예를 들면 우정의 욕구 같은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일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신이 실직하게 되면 당신은 일과 소득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p.195 무쇠 나르는 사람 ‘슈미트’는 육체적, 정신적 긴장 아래서 일했지만 상사에게 미소 지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단지 ‘무쇠를 나르기만’하면 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무쇠도 나르고, 미소 띤 얼굴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도넛을 먹어야 한다.

p.196 하워드의 놀라운 새 직장에서는 도넛 타임이나 맥주 파티 같은 사교 모임들이 의사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임에 참석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도 일종의 억압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팀 정신과 조직에 대한 헌신을 끌어내기 위해 적절히 이용되었다. 사교모임은 또한 단지 남들과 좀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을 야기한다. 기업문화가 다양한 노동자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더라도 여전히 모든 사람들은 함께 도넛을 먹어주어야 한다. 마법에 걸린 회사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종류의 일을 하도록 요구한다. 본래의 업무와 이러한 사교생활에 참석하는 일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두 가지 일 모두에 대해 평가를 받는다.

p.197
업무상 사교(business entertaining)는 사람들에게 혼란을 줌으로써, 직무관계(business dealing)에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 충성'같은 사회적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업무상 사교"는 모순 어법이다. 그것은 업무도 아니고 사교도 아니다.

p.200
1987년 캘리포니아의 한 경제지는 500개 기업의 소유주 및 회장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그들 회사의 절반이 감수성 훈련의 또 다른 형태인 일종의 의식고양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오늘날 신봉하는 것과 동일한 주제들, 즉 권한 위임, 리더십, 긍정적 사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다만 명상, 바이오피드백, 최면술과 같은 비정통적인 기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창가 있다. ‘에너지 언리미티드’라는 회사는 간부들에게 맨발로 뜨거운 석탄 위를 걸으라고 요구하면서 이 훈련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p.204
'일'을 스포츠에 비유하는 것의 또 다른 이점은 그것이 극적으로 뛰어난 기술, 목적에 대한 고귀한 헌신, 그리고 완벽함에 대한 열망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미클스웨이트와 올드리지는 오늘날 스포츠팀은 점점 더 사업가처럼 활동하는 반면, 회사조직들은 고용인들로 하여금 보다 더 스포츠팀처럼 행동하도록 장려한다며, 이런 상황이 얼마나 반어적인지에 주목한다. 대형 스타가 게임과 팀의 급료 전부를 차지하는 프로 농구는 팀워크의 모델이 될 수 없다.

p. 205
진정한 스포츠 코치는 격려하고, 도움을 주고 , 용기를 북돋워준다. 그러나 그들도 때로는 이기는 팀을 만들어낼 때에만 인정받는 불쾌한 파시스트처럼 행동할 수 있다.

p.215
과학적 관리법은 근로자들을 전문가로 변화시키고, 일을 지루한 것으로 만들었다. 리엔지니어링은 고용인들을 만능일꾼으로 만듦으로써 일을 보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것으로 만든다. 20세기의 경영이론 전체를 마감하면서, 과학적 관리법과 리엔지니어링은 모두 생산 속도에 관심을 가졌다. 여전히 ‘시간은 돈’이다.

<9. 배신하는 직장>

p.222
회사가 고용인들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고용인들로부터 충성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한 가지 방법은 충성이라는 단어에서 도덕적 의미를 제거하는 것이다. 고용인들은 다른 직장에서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주는 회사에 ‘충성’할 것이다.

p.229
우리는 앞서 ‘채찍’이 종종 윌리엄 H. 와이트가 말한 ‘온화한 치료자’로 대체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기분 좋게’ 느끼게 만듦으로써 고용주들은 근로자들이 ‘내게 무슨 득이 돌아오느냐?’고 묻지 않도록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현혹시킨다. 고용주들은 사람들이 그 본질적인 보상에 초점을 맞춰 일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p.238
만약 카를 마르크스가 오늘날에도 살아 있었다면 그는 혁명을 요구했을 것이다.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너희들이 잃을 것은 구속뿐이다.” 그러나 칸막이나 팀 안에서 일하는 오늘날의 근로자들은 단결할 수도 없고, 단결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잃을 것이 있다. 바로 그들의 직장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파업이나 저항 운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날 불화의 유일한 조짐은 사무실 벽과 칸막이 안을 장식하고 있는 딜버트 만화뿐이다.

<10 우리는 시간과 투쟁한다>

p.253
일을 빨리 더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시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 자동차, 컴퓨터는 빠르지만, 우리는 그것들과 더불어 점점 더 많은 곳을 가고 더 많은 일을 한다. 우리가 빨리 일할수록 우리의 시간은 더 빨리 새로운 일로 채워진다. 우리가 더 빨리 움직일수록 우리는 더 적은 시간을 갖게 된다. 사람들이 속도에 집중할수록 서로에 대한 인내심은 점점 줄어든다. 또한 빠르게 돌아가는 삶은 스트레스를 유바라고, 사람들은 자유시가니 전혀 없다고 불평한다.

p.258
그들은 단지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시간을 파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 시간 동안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파는 것이다. 초기 장인들은 원하는 댈 오고 갈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p.266
우리는 집에서 "나는 오늘 여섯 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빨래와 청소를 해야 하고, 잔디를 깎아야 하고, 저녁식사도 준비해야 해"라고 말한다. 이런 일은 네 시간, 여섯 시간, 혹은 여덟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 하하하. 혼자 살면서 이 말에 지극히 공감한다. 한참을 웃게 되네.

p.268
할에 따르면,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사회생활은 일과 분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다 자연스럽게 여가를 즐길 수 있다는 ㅈ것이다. 일로부터 더 많은 보상을 얻는 전문직이나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경우에는 일이 때로 여가를 방해하기 때문에 여가시간을 위한 일정을 따로 계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p.271
신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었지만 그것은 잠재적으로 우리를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고용인으로 만든다. 일련의 법정소송에서 고용인들은 전화를 받는 것에 대한 초과 근무 수당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11. 여가와 소비주의>

p.276
여가는 인간의 가장 훌륭하고 독특한 능력, 즉 생각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창조하고 배우는 능력을 이끌어 낸다. 우리는 지혜를 발전시키기 위해 여가를 필요로 한다.

p.282
대중오락은 일로 복귀하는 것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일로부터의 구원을 제공한다. 이것이 괜히 그럴듯하게 꾸며낸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다움과 같은 사실을 생각해보라. TV를 더 보고 싶다는 이유로 일하러 가기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어떤 사람들은 TV 드라마를 매일 보고 싶어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월드 시리즈 게임을 보기 위해 하루 동안 휴가를 내고 싶어하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나는 정말이지 TV를 좀더 볼수 있도록 휴식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했다.

p.286
살아가면서 일과 여가를 분리시키는 데는 특정한 재능이 필요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꾸리는 데 요구되는 육체적, 정신적 긴장에 압도된 나머지 여가활동에 참여하지 모한다. 그들에게는 삶과 일을 분리하는 것이 그 둘을 통합하는 것보다 더 유익할 것이다.

p.287
십대들조차 자신의 여가를 소비와 교환한다. 과거의 십대들은 가족을 돕거나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몇몇 학생들은 그래야 하지만, 점차 자신이 원하는 사치품을 사기 위해 일하는 ‘중산층 십대’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p.294
모든 사람에게 여가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좋아하는 일,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쓸 수 없다면 삶은 황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보수를 받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보수 없이 하려고 했던 일에 대한 대가를 지불받게 되면 그 활동을 통해 느끼는 즐거움이 감소하게 된다고 연구자들은 보고하고 있다.

p.295
여가는 자유롭고, 자기 결정에 의한 것이며, 즐겁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원할 때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다. 여가는 돈이 들지 않는다. 친구나 가족과 어울리는 것, 소설책을 읽거나 단지 공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여가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활동을 하는 시간이다. 여가는 자유로운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여가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것이다. 여가가 없다면 우리는 삶을 이해하는 것이 한층 더 어려울지 모른다.

<12 의미있는 일, 그리고 행복한 삶>

p.296
‘의미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어떤 이들에게 의미 있는 일은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일을 뜻한다. 다른 이들은 ‘사회에 기여하는’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원한다. 의미 있는 일의 본질과 그에 대한 욕구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철학적 질문의 모태가 되는 질문에 직면해야만 한다. 즉,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p.308
개인들은 자신의 직업에서 특정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이 칼이나 기계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내 삶의 목적은 암 치료법을 발견하는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이 일하는 목적이 그들의 삶의 목적이 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웨이트리스는 자신의 삶의 목적이 그녀가 일하는 목적과 같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p.309
우리는 또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이란 행복한 삶인가? 자선 사업가의 사례에서, 우리는 그녀가 객관적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그녀의 삶이 의미를 갖지만, 주관적으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보면 의미있는 삶이 행복한 삶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한다. 행복으로 가득한 삶은 의미있는 삶인가? 이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p.310
인간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누군가를 감옥의 텅 빈 독방에 가두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최악의 고문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죄수에게서 자유뿐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행위와 상호작용까지 박탈하는 것이다. 포로 수용소의 생존자들은 종종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활동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에 미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행복에 대한 보편적인 요구와 우리 문화에 널리 퍼져있는 불행은 일을 지향하는 문화의 산물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우리는 오직 일을 통해서만 행복을 얻는다. 그것은 극도의 피로와 회복이 반복되는 과정이다.

p.311
심리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행복 연구는 '일이 행복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만들어낸다'는 아렌트의 견해를 지지하는 듯하다. (중간 생략) 그는 사람들이 드물게 절정에 이르거나 최적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관찰했다. 그는 그것을 "몰입(flow)"이라고 부르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시간 동안 사람들은 순순히 의식의 흐름을 따른다.

p.318
결국 ‘작장에서의 영성’은 대중 심리학과 일시적으로 유행했던 경영학 이론이 항상 해왔던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즉, 그것은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듦으로써, 애초에 사람들을 기분나쁘게 만들었던 권력과 갈등, 자율성에 간한 심각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대신 그것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p.319
직장 내의 기도 모임은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고용인들의 욕구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의 징후이다. 진짜 문제는 일이 그들의 에너지와 시간뿐 아니라 일 이외의 의미 있는 활동과 공동체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마저 박탈한다는 점이다. 만약 고용주들이 ‘그 이상의 것에 대한 고용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그 해답은 기도 모임이나 영혼 발견 세미나에 있지 않다. 고용주들은 ‘직장의 구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그리하여 고용인들이 승진이나 상여금, 혹은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일 바깥에서도 훌륭한 삶을 영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시간과 융통성을 그들에게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고용주들이 유일한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p.320
“조직은 의미 있는 일을 제공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분명 사람들은 조직 내에서 흥미롭고 매력적인 직업을 발견할 수 있고 실제로도 발견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본 것처럼, 의미 있는 일에 대한 욕구가 개인의 ‘삶의 의미’라는 보다 광범위한 질문과 연관되어 있다면, 고용주들이 그러한 것을 제공할 만한 위대한 통찰력을 갖고 있을 거라고 믿을 근거는 없다…조직은 의미 있는 일을 창조해주지 않는다. 그곳은 다만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는 장소일 뿐이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뿐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조직은 의미 있는 일을 '창조'해주지 않는다. 그곳은 다만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는 장소일 뿐이다.

p.321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실한 상황 혹은 실재를 파악해야만 한다. 의미 있는 일의 객관적 요소는 일 자체의 도덕적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고용인들은 존엄과 존중을 가지고 처우 받아야 한다.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이라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p.322
의미 있는 일은 의미 있는 삶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조직에서 행해지는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일은 그 안에 무언가 좋은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 가장 의미 있는 직업은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타인들을 돕거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물건을 생산하도록 하는 일이다.

<에필로그>

p.332
아마도 우리가 그토록 많은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우리는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p.333
우리는 삶을 일에 꿰어 맞추는 대신 일을 삶에 통합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책은 다만 일에 대한 비판적인 묘사일 뿐이며, 새로운 직업 현실을 고려했을 때 우리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효과적인 삶의 토대는 궁극적으로 일이란 무엇이고, 지구상에서의 제한된 시간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으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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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7 04:45:47 *.140.145.63
내가 받은 선물보따리는 하나하나 읽다보니 감탄스럽군요..^^
26개의 과제를 끄집어 낸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걸 벌써 이루고
난뒤의 기쁨을 미리 맛보시는 모습에 말입니다..

책의 결론을 열어두었다. 자기주장이 강한 책도 좋지만 이렇게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 좀 더 긴 여운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꼭 한번 읽어봐야할 책이네요..^^
프로필 이미지
귀한자식
2007.03.27 11:05:56 *.252.33.160
희석님의 글은
쉽고도 저자를 잘 담아내어 좋습니다.
그 안에 자신의 깨달음과 생각을 공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저도 이 책 읽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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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52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 알렌 치넨 [14] 香山 신종윤 2007.04.03 2480
751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 중년의 발견 [7] 好瀞 김민선 2007.04.03 2267
750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 마음에 좋은 약 [6] 時田 김도윤 2007.05.18 2201
749 뒤 늦은 소감...&lt;일의 발견&gt; [6] 바람처럼 2007.04.03 2041
748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생명의 나무 ) [10] 써니 2007.04.03 2281
747 매 순간의 중년을 꿈꾸며 [6] 素賢소라 2007.04.03 2395
746 (독서004)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3] [2] 素田최영훈 2007.04.03 2079
745 인생으로의 두 번째 여행/알렌 치넨 [3] 香仁 이은남 2007.03.31 2210
744 당나귀 인생을 치료하다. [3] 余海 송창용 2007.03.30 2150
743 女自의 발견 [5] 김귀자 2007.03.30 2158
742 (004) (수정됨)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계속되는 내적 변화 [4] 한정화 2007.04.02 2092
741 IT 타짜가 전하는 '사람' &amp; '소통' file [5] 이기찬 2007.03.29 2158
740 일의 발견(Working Life)을 읽고 [2] 엄승재 2007.03.26 2409
» 『일의 발견』을 읽고 [2] 이희석 2007.03.26 2222
738 일의 발견 - 조안 시울라 [1] 최정희 2007.03.26 2072
737 (03) 일의 발견 - 조안 시울라 [12] 옹박 2007.03.26 2228
736 003 일의 발견 - 일의 분석을 통한 자아발견 [2] 양재우 2007.03.26 2202
735 일의 발견, 조안 시울라 [6] 신종윤 2007.04.13 2650
734 일의 발견, 삶의 발견 file [5] 한정화 2007.03.26 1718
733 삶의 방식으로서의 일의 발견 [1] 素賢소라 2007.03.28 1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