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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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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5일 08시 35분 등록
일의 발견
1.저자소개

1978년 야간대학의 학생들에게 노동철학(the philosophy of work)을 강의했다. 그는 스스로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치부되는 철학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기뻤다고 말한다. 강의를 시작한 처음 9년동안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바텐더로 일하고, 요리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했으나 그,것은 학구적인 세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고마운 변화였으며,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어 식당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한 학기 동안 아침이면 철학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대학원 세미나에 갔으며, 밤에는 고급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며 일과 정체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대학강사일 때와 대학원생일 때 웨이트리스일 때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다 다름을 보며 어떤 모습이 실제 자신의 모습일까를 생각을 통해 일이 갖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깊게 사유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9년동안 철학을 강의하고 박사학위 취득 후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과 윤리 분야의 연구원으로 일했고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경영대학원에서 경영에 관한 필수 MBA강좌와 경영윤리 강좌를 가르쳤다. 이후 버지니아 리치먼드 대학교에서 젭슨 리더쉽 대학원 창설을 도왔으며 그곳에서 윤리학, 리더쉽,비판적 사고에 대한 강좌를 맡았고 1980년대 중반부터 컨설턴트로서 대기업에서 경영윤리에 관한 세미나를 주최했다.

저자는 학계의 어떤 위치에서든 “일”이라는 주제에 대해 놓아본 적이 없었기에 이 책 ‘일의 발견’은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였으며 이것은 내가 사랑한 일이자 나를 괴롭혀온 문제였다고 말했는데 과연 무엇이 저자를 그토록 이 일에 매달리게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항해를 시작했다.

2. 마음 속에 들어 온 글귀
<8> 우리 사회는 일을 지향하는 사회다. 이 사회에서는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바보가 된다” 우리는 일을 축복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일을 없애려고 하는 모순적인 문화속에서 살고 있다.
이 책은 우리 삶에서 일과 직장이 갖는 의미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서 나는 일이 실제로 루이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약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일은 우리 정체성의 주된 원천이자 개인적인 자존감과 행복의 주요 원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곡과 친구들, 종교, 공동체로부터 얻곤 했던 만족감을 대신한다. 이러한 ‘대체(substitution)’는 위험하다.
<9> 일은 우리의 지위뿐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까지도 결정한다….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이다.,,,일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은퇴나 실직은 개인을 보잘것없는 상태에 빠뜨린다. 마치 좋은 직업이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열쇠인 양 많은 사람들은 맹렬하게 성공을 추구한다.
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시장이나 고용주의 손에 맡겨두는 결과를 가져온다. 괜찮은 삶을 사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 이상의 것(something more)’을 원한다.
<13>의미를 만들어 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경영진은 고용인들이 자신의 더 많은 부분을 필요 이상으로 일에 투자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시도했다. 평범한 일이 의미 있어 보이도록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힌 것이다. 2세기가 끝날무렵, 경영진의 스로건은 “질” “헌신” 그리고 “팀워크”였다. 아 모든 경영 수단들은 조직 내에서 일의 의미를 변화시키고 통제하기 위한 시도였다.
<14> 이책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기를 바라는지, 그 선택에 관한 책이다.
1부에서는 일의 역사적 개념과 일에 대한 우리의 모순된 감정, 일과 관련된 가치들, 노동윤리를 탐색한다. 2부에서는 지난 왜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항상 자유와 통제간의 투쟁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우리의 일이 어떠했는지, 즉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어떻게 일해 왔는지를 살펴 본 후 3부에서는 일과 소비가 어떻게 우리의 삶의 방식을 지배하게 되었는지 고찰하고 있다.
‘일의 의미’를 탐색해 보도록 독자들을 초대한다. ‘일의 의미’뒤에 숨겨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가정들(assumption)을 살펴봄으로써 독자들이 일에 대한 기대를 살펴보고 일과 삶에서 해왔던 자신의 선택들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일’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어느나라 사람에게도 일과 여가, 그리고 삶의 의미는 그저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직접 그것을 찾아나서야만 한다. 이 책은 일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러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 있다.
<19> 잠시동안 일하지 않는 생활은 상상하기 쉽지만, 평생을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어떤 사람들에게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을 우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합니다” 이것이 대다수 유급노동을 하는 이유다. 때문에 우리는 일을 “직업을 갖는 것”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20>윌리엄 줄리어스 윌슨은 그의 저서 <일이 사라졌을 때>에서 일자리가 부족하면 사람들은 단지 빈곤느올 고통으로 겪을 뿐 아니라 “공식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소속감을 상실한다,,,결국 윌슨은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일은 규율, 소속감, 규칙성,,자기 효능감 같은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킨다.
<21> ‘실직’은 사람들과 도시로부터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인 듯했다.
<22>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는 평화나 적당한 미덕, 교육이 없이는 여가도 가질 수가 없다. “비즈니스에는 용기와 인내가 요구되며, 여가를 위해서는 철학이 요구된다.절제와 정의는 두가지 모두에 필요하지만 특히 평화와 여가의 시기에 더욱 요구된다. 왜냐햐면 전쟁은 사람들을 공정하고 절제하도록 만드는 반면 평화와 함께 찾아오는 상당한 재산과 여가는 오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23>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우리 삶에서 진정한 일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일’이다
<23>여가는 단순히 ‘자유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일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이며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한 기회이다. 직업을 잃었거나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결코 ‘일에서’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일할’ 자유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런 선택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4>인간의 가장 흥미롭고 독특한 점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난 후에도 스스로 일하기를 선택한다는 점이다.,,,그들은 여유롭고 한가한 삶을 원하는 만큼이나, 밖으로 나가 좋은 직업을 얻고 싶어할 것이다.
<25> 일을 통해 소득을 얻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직업을 갖는 것이 우리문화에서 그토록 바람직한 이유는 명백하다. 일은 우리에게 유용하기 때문이다. 일은 규율과 정체성, 가치를 제공한다. 일은 우리의 시간을 조직하고 우리의 삶에 리듬을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우리에게 매일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준다는 점이다.,,,유급 노동이 일의 중심이 되는 문화에서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매일 매일을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활동으로 채울 수 있을까?
<27>우리는 베짱이처럼 짧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고, 개미처럼 길고 빈틈없이 살 수도 있다.
<28> <개미와 베짱이>에서 이솝은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의 질문을 두고 다툰다. 이솝은 또한 매미와 개미, 꿀벌을 통해 질문의 복잡성을 탐색한다. ,,,이것은 일하는 삶이 노래하는 삶보다 낫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만약 노래하기를 원한다면 그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이솝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선택’하도록 한다.
<29>멘더빌의 꿀벌은 개미처럼 일하고 베짱이처럼 소비함으로써, 최대의 선을 가져오는 것이다.
<29>꿀벌은 꽃에서 일하고 맛있는 꿀을 만든다. 유명한 아이작 와츠의 시구를 생각해보라. “저 바쁘게 움직이는 작은 꿀벌이/ 얼마나 매순간을 빛나게 하는지/ 그리고 하루 종일 꿀을 모으네/ 활짝 핀 모든 꽃으로부터
<35> 만약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얻기 위해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유토피아’에 산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마도 우리는 놀면서 일하는 대신 일하면서 놀 것이다.
<37> 플라톤은 놀이가 아이들과 작은 동물들의 뛰어오르려는 욕구로부터 발달했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강아지들이 단지 위아래로 껑충껑충 뛰면서 느끼는 순간적인 즐거움을 생각해보라. 놀이는 종종 비 논리적이고 비 효과적이다.
,,, “만약 당신이 개미처럼 산다면, 즉 나이들어 쇠약해질 때까지 일해서 돈을 저축한다면 그것은 의미있는 인생인가>”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38> 당신이 네개의 직업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것을 선택하겠는가? 회계법인의 높은 보수를 받는 직책, 환경 단체인 그린피스에서 일하는 것, 공무원, 겨울에만 문을 여는 아스펜스키 리조트호텔레서 웨이터로 일하는 것,,,질문에 대한 답은 또 다른 질문을 이끌어 낸다. 당신이 기꺼이 포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39> 삶의 각 시기마다 서로 다른 가치들이 우선순위를 다툰다.
<44>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일할’ 기회가 아니라, 집에 머무는 것과 일하는 것 사이에서 ‘진정한’ 선택권을 각는것이다.
…우리 문화에서 일은 미덕이며 일 없이 보내는 시간은 잠재적으로 위태롭다. 일은 사람들에게 정체성과 자기가치, 그리고 자기주변의 세상을 형성하고 거기에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일이 주는 가장 근본적인 만족은 생계를 꾸리는 데서 오는 만족감,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을 구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일 것이다.
<46> 일의 의미를 탐색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은 일(work),수고(toil),업무(job)와 같은 단어들의 뜻을 살펴보는 것이다.
<48> 어떤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어떤것의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잠재적으로 강력한 행위다. 당신이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당신은 그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동물 조련사인 비키 헌은 그녀의 책 <아담과 임무>에서 아담이 창세기 2장 20절에서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임으로써 동물과 인간사이에 도덕적 관계를 창조했다고 말한다. 헌은 우리가 사람이나 동물에게 이름을 붙일 때 “ 영혼이 확장될 수 있는”이름을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사물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49> 일에 붙는 직함이나 사람들이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용어들은 직장에 대한 개념도를 형성한다. 고용주가 조직문화를 바꾸고자 할 때 그들은 자주 재명명 방법을 사용한다.
<50>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세계이다. 말은 우리가 경험한 사람과 사물, 그리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나타낸다.
‘일’이란 단어는 한 가지 활동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과 관련된 생각과 가치들의 집합을 가리킨다.
<52> 대체로 ‘일’이라고 불리우는 활동들은 우리가 다른 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래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일’을 다른 유형의 활동보다 덜 바람직한 것으로 가정한다.
<55> 일에 해당하는 두개의 아랍어 첫번째 ‘아말(amal)로 그것은 지식과 대비하는 일반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두번째 ‘선(sun)’은 무엇을 생산하거나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일(work)은 너무나 다양한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일을 하고 일터로 간다. 일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소유하는 것’이며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일’이라는 단어는 동사이자 명사이며 활동이자 활동의 산물이기도 하다.
<57>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노동’ 이라는 단어가 ‘일;로 격하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이 한 개인에 의해, 그리고 개인을 위해 행해지는 것인 반면 ‘노동’이라는 단어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행하는데 대한 개인의 기여를 암시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용어라고 말했다.
<59> 다나이드는 자신들의 남편을 죽인 자매들이었다. 이에 대한 벌로 구멍난 항아리에 물을 채우며 여생을 보내도록 운명지어졌다. 신들을 속인 죄로 시시포스도 비슷한 벌을 받았다 <오디세이>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지옥에서 커다란 바위를 쉬지 않고 언덕 위로 밀어 올려야하는 저주를 받은 시시포스를 만난다. “언덕위에서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지면 그 과정은 새로 시작된다”이러한 벌에 대해 알베르 까뮈는 신들이 “쓸모없고 헛된 노동보다 더 무시무시한 벌은 없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평한다. 시시포스와 다나이드를 괴롭힌 것은 세가지이다. 즉 소모적이고 지루한 과업, 자유의 상실, 무의미하고 헛된 일이 그것이다.
구약성경에도 ‘수고’는 벌로 묘사되고 있다. 타락후 아담음 “종신토록 수고하여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은 에덴동산을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방황하는 땅으로부터 생명을 얻어내는 힘든 노동까지 하게 된다. 이브에 대한 벌은 고통스런 출산이다.,,,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목적’이 있다면 그 자체로는 벌이 아니다. 아담괴 이부에 대한 벌은 일을 삶의 필수조건으로 만들었지만 일 자체는 더 이상 벌이 아니다. 히브리인들은 일에 보다 큰 위엄을 부여했는데 그들에게 일은 단지 벌이 아니라 ‘속죄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60>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수고나 고역도 마다하지 않는다.
<62> 사람들은 의사는 전문가로서 ‘자기 자신’을 ‘자신의 일 ‘과 동일시 하기를 기대한다. 의사에게는 업무가 ‘있지만’ 그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라는 단어는 보수를 받기 위해 하는 도구적인 활동을 나타낸다. ,,,업무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을 하는 경제적인 존재의 활동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이다.
<64> 아담의 ‘저주’에서 신이 내린 ‘소명’으로, 그리고 ‘삶의 목적’이 되기까지
<65>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이란 가능하면 노예들에게 떠맡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이득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저주가 될수 있다고 믿었다.
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은 ‘저주’였다. 기원전 8
`9세기경 호머는 인간을 미워한 신이 앙심을 품고는 인간을 고생시키는 것이라고 썼다.
<67> “깊은 강물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도 서로 다른 물이 흐른다. …강물은 흩어졌다가 모이고…다시 모였다가 흘러간다….다가왔다가 멀어진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 마음 혹은 영혼 속에 존재한다.,,,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개인의 생각과 견해가 그의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68> 일은 정신적 수양을 위한 한 가지 방법이다. 일의 과정은 결과보다 더 중요했다. 부처에게는 바닥을 쓸고 닦고 연료를 모으는 것 같은 비천한 일조차도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었다.
<72> 에바그라우스는 ‘무기력’을 “정오의 악마”라고 불렀다.
<73> 무기력은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일에 직면했을/때 개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심리적. 영적 조건이다. 이것은 무관심, 삶의 흥미 상실, 병적 무력증, 행동하기 싫은 것으로 나타난다.
<75> 성 베네딕트에게 일은 직업이나 소명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기도’였다.,,,사람들에게 주의를 기울여 성실히 일하라고 장려한 동시에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에 대해서는 경계한 것이다.
<77> 일은 사람들에게 신분을 확인시켜줄 뿐 아니라, 그들의 잠재적인 미덕 및 악덕과 동일시되는 것으로 가정된다.,,영적인 삶과 의지, 직업의 관계를 새롭게 강조한 것은 개인의 정체성 및 도덕성을 일과 신학에 연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81> “창조로서의 일”은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했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으며 인간은 음악과 미술을 비롯한 아름다운 것들의 창조자다.
<82> 15세기 철학자이자 건축가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고된 일이 “시간의 더딘 흐름을 충분히 채워준다”는 이유로 그것을 찬양했다. 시간은 단순히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고 채워야 할 대상이었다. …그는 삶이란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것이란고 믿었다.
<85>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 자체를 위한 일’ 일이라는 개념과 ‘휴식과 쾌락에 대한 혐오’는 칼뱅과 루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칼뱅에게 있어 일은 은총의 상징이자 구원의 수단 이었다.
<86> 루터와 칼뱅의 노동윤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람들을 구속해 온 믿음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선하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이다.
신교도들에 의해 일은 삶의 수단을 넘어 삶의목적이 되었다. 일은 저주에서 소명으로 변화했다.
<87> 모든 일이 신의 명령이라는 생각은 일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불쾌하며 보수가 적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도록 보증해 주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소명 개념은 일에 영적인 차원을 부여했다.
<88> 고대인들은 일을 강제적인 것이자 저주로 보았다. 중세 카톨릭교회는 일에 단순한 ‘위엄’을 부여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일에 ‘매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신교도들은 일을 의미와 정체성, 구원의 징표를 찾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일, 즉 소명으로서의 일 개념은 일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특징을 강조했다. 일은 저주에서 소명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90> 우리는 일을 통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90> 홀로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 크루소는 자신의 이익과 실용성에 근거한 선택을 한다. 오늘날 우리는 크루소의 유산을 공유한다. 크루소에게 일은 삶의 수단을 공급하는 ‘동시에’삶의 의미를 제공해 주는 약속인 것이다.
<92> 프랭클린은 부가 사회에 이득이 되고 개인에게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정당화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적 의무가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 일을 강조했다.
<97> 남북전쟁 후 미국에서는 <통나무집에서 백악관으로>같은 책이 쓰여졌다. 이 책에 따르면 워싱턴 대통령은 농장에서 백악관으로 왔으며 가필드는 통나무집에서 링컨은 개척자의 길에서 그랜트는 무두질 공장에서 백악관으로 입성했다.
<99> 18세기와 19세기의 노동윤리 옹호자들은 강한 도덕성이야말로 부에 이르는 열쇠라고 설교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카네게 인간관계론>에 나타나듯이 개인의 성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도덕성’이 아니라 ‘삼리하공’이 성곡의 열쇠가 된 것이다.
<101>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일과 동일시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여겼다. 그는 사람들이 많은 영역에서 훌륭한 생산자가 되기에 충분한 자유를 누리면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105> ‘일에 의미’에 대한 모리스의 흥미로운 통찰 가운데 하나는 “가치 있는 일”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모리스는 일이 “삶의 빛”이 될 수도, 혹은 “삶의 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둘의 창점은 첫번째 경우에는 희망이 있는 반면 두번째 경우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가치있는 일은 휴식의 즐거움에 대한 희망, 일을 통해 만든 것을 사용함으로써 느끼게 될 즐거움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일상적인 창조의 기능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한 희망을 수반한다.
<107> 전문가(professional)라는 단어는 원래 성직에 들어가는 사람이 공식적인 선서를 하는데 사용된 ‘공헌하다(profess)’라는 단어에서 우래했다. …종사자가 공식적인 서약이나 맹세를 엄숙히 해야 하는 사업이나 직업을 의미하게 되었다.
<108> 전문직을 특별한 직업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소는 아마도 일에서의 자율성과 공평한 서비스일 것이다. …전문가들은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수행하기 위한 비용을 “보조받는”것이다. …법학과 의학을 비롯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독점을 유지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110> 장인과 전문가들은 …일과 여가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즉 그들의 일은 삶의 연속성을 반영한다. 그들의 일은 그들 존재의 직접적인 확장이다. 그들 자신은 자신이 하는 일이며, 그들은 자신을 자랑스러워 한다. 일에 대한 헌신 덕분에 그들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존경받는 경우가 많다. 또 그들은 모두 독립적이다.
<111> 일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우리가 하는 일과 되고 싶은 것, 혹은 얻고 싶은 것에 달려 있다. …일을 원하려면 먼저 미래에 대한 어느 정도의 희망 혹은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115> 미국 사람들은 고용인이 되기보다는 고용주가 되기를 선호한다. …독립, 자유 평등과 같은 미국의 문화적 가치들에 비추어 볼 때 타인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은 “비(非)미국적인 것”에 가깝다. …그들은 자기 방식대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할 뿐이다. …미국에서는 부를 창출하는 이들의 권리가 보수를 받는 사람들의 권리보다 우선시 된다.
<116> 지독하게 독립적인 사람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미국인들이 민주적 일터를 발전시키지 않은 더 그럴듯한 이유는 ‘아메리칸 그림’에 있다. 미국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다. 개척자와 이민자들이 땅을 소유하려는 욕구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에 이끌려 이곳에 왔다.<116> ‘권력’은 경영진이 입 밖에 내지 않는 –또는 때때로 속삭이기만 하는-단어이다. 경영진으로의 승진은 더 높은 지위와 더 높은 보수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한으로써 개인에게 보상을 준다. ..경영자는 새로운 책임을 맡더라도 특정한 구속으로부터는 자유롭다.
<117> 고용주와 경영자는 항상 자신의 뜻을 고용인들에게 강요하려는 유혹에 직면한다. 고용인들은 여러 시대레 걸쳐 직장에서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했다. 자유의 원칙은 이러한 관계의 중심에 있으며,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기본이 돈다. 일할 자유, 일터에서의 자유, 그리고 일로부터의 자유
<117> ‘노예제도’는 일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위해 일한다. 그러나 노예는 ‘살기 위해’일한다.
<118> 노예들을 동기부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에게 언젠가는 자유를 주겠다고 상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현대인들은 노예들과 달리 항상 그만둘 수 있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유를 되찾을때까지 보통 여덟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항상’그만둘 수 있을까? …일터를 떠난다고 해서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122> 그들은 자유를 얻기 위해 일해야만 했다. 결국 고용이란 자유와 기회로 이어지게 될 일시적인 노예 상태를 의미하였다.
<126>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영국의 산업노동자들을 미국의 노예들과 비교했다 “ 그들은 미국의 흑인들보다 목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철저히 감시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처럼 살아가도록, 인간처럼 느끼도록 요구되기 때문이다” ..임금노동자들의 자유가 비인간적인 노동현실을 보상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129> 소도시에 살고 있고 부양할 자녀가 넷이나 되는 미혼모 역시 어디에서 일할지를 선택할 ‘자유’를 갖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다. 우리 모두는 일을 선택할 자유를 갖고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실행 가능한 선택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131> 착취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기꺼이 팔고자 ‘하는 것’을 결정하는 데 있어 누가 권력을 갖는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농부는 원숭이가 하루 세번의 식사를 ‘필요로한다’고 결정하고 원숭이가 이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131> 자유는 우리가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급노동은 고용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132> 폴 퍼셀은 자신의 책 <계급>에서 한 사람이 누리는 ‘자유의 양’이야말로 임금보다 나은 계급의 지표라고 주장한다. ‘자유의 매매’라는 개념은 때때로 특히, 한 개인이 직업을 필요로하고 선택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더욱 노동의 매매에 수반된다.
<133> 지식과 기술은 고용인을 가치있게 만들고 더 많은 힘을 실어준다. …대규모 조직에서 이런 사람은 직위가 아닌 능력에 근거한 힘을 갖는다. …사람들은 직업에서 더 많은 통제권을 갖도록 해주는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희생한다.
<135> 장인의 가치와 힘은 무언가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지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아버지들은 ‘기술의 비밀’을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스승들은 도제들에게 물려주었다. 기술의 비밀을 유지하는 것은 도제들에게 기술 지식을 전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비밀은 장인들에게 힘과 자율성을 주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장인들이 오랜 비밀 유지의 전통을 버리고 자신이 하는 일의 비결을 열심히 공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개방이 저자로서 돈을 벌기 위한 욕망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기술을 민주화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기인한것인지 궁금하다.
<137> 숙련된 미국 태생의 일꾼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속도’에 맞춰 일하고 싶어 했다. …생산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부심과 기술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일했다. 그들은 일찍 자신들의 존엄과 상대적 자유의 핵심은 이러한 통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138> 비숙련 노동자들의 동맹은 일의 역사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발전일 것이다. 비숙련 노동자들은 최초로 독립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고용주-고용인 관계에서 힘을 갖기 시작했다.
<139> 도덕률의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부분은 일꾼들이 연맹이 동의한 만큼만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것을 할당량이라 불렀다. 너무 많거나 적은 일을 함으로써 할당량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추방당했다. …할당량을 ‘유지’하는 일꾼들은 “좋은사람’이자 그 직종의 믿을만한 숙련가라는 평판을 얻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는 시간의 양을 통제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할당량의 중요성은 클 수밨에 없었다. …”나는 당신이 감시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해서 일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143> 테일러는 순종을 얻어내고 할당량을 깨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용인들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그들의 사리사욕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46>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애국심이 사람들이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보고 감명받은 몇몇 고용주들은 자신들의 조직에서 그러한 종류의 정신과 헌신을 끌어 낼 수는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간을 인간다운 원칙에 기반하여 관리하는 것 …이국 AT&T 사의 E.K홀은 고용인들의 ‘삶의 불안정성’을 인정했다. 그는 사업가의 청중들에게 “우리는 우리 근로자들이 머릿속에서 근심을 털어내고 ‘가고싶은’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도울 수단과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라고 호소했다.
<149> 경영에서의 인간관계 접근은 고용인들의 태도와 감정이 어떻게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접근법에서 일은 육체적 과정 이상의 것으로 여겨졌으며, 이때의 일의 동기는 돈 말고도 더 많은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150> 경영진은 고용인들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고용인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었다.
<153> 메이오는 심리학이 고용인들의 충성심을 얻어낼 수 있도록 경영자들을 도움으로써 고요인들이 자신의 에너지를 조직의 선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157> 노동조합의 탄생은 여전히 역사상 가장 중요한 노사관계 혁신이다. 이는 노동조합이 양자간에 존재하는 힘을 조절해주기 때문이다. 최상의 상태에 도달한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건강과 안정, 위엄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기업가들을 설득하거나 겁줌으로써 조합원들뿐 아니라 모든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이나마 받도록 해주고, 아울러 노동조건도 개선시킨다.
<159> 피터드라커응 <회사의 개념>에서 “ 회사는 사회의 대표적 기관”이라고 주장했다. 회사는 미국인들의 열망과 신념을 충족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것 즉 “제너럴모터스 사에 이익이 되는 것은 실제로 사회에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회사는 근로자 개인에게 지위와 기능을 부여하고 선량한 시민들을 양산해낸다는 것이다. …”불만족은 단조로움이나 기계적인 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인정이나 의미의 결여, 혹은 자신의 일이 사회적 관계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외의 문제는 더 많은 복지혜택과 안정성, 또는 임금을 준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소외의 문제는 사람들에게 성인으로서 책임과 위엄을 주었을 때만 완화될 수 있었다. 의미있는 일은 주로 사회적. 도덕적 성격과 관련된 것이지 특정한 일의 종류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160> 20세기의 가장 존경받는 경영 이론가인 드라커는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기업을 오랫동안 옹호해왔다. 그는 우리를 튼튼하게 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우리 사회의 믿음을 현실화 하는데도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회기관으로서 회사가 사회의 가치와 열망에 부응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161> 경영 연구자들은 외적 보상에 개의치 않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열정적인 인간 행동과 헌신을 고취시키는 잡히지 않는 영혼, 즉 “기계 안의유령”을 찾기 위해 인간의 정신을 점점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기업경영자들은 또한 일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했고 그들이 전쟁중에 보았던 것과 같은 헌신을 창조해낼 명분이나 사명, 혹은 일련의 이상을 찾아내야만 했다. 대기업에서 일이 개인에게 주는 의미는 그가 하는 업무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조직에 의해서도 형성된다. 조직에서의 일은 사회적, 심리적으로 점점 복잡해졌다. ..기업들은 일과 삶 사이에서 발생되는 소외와 싸웠으며, 때로는 개인의 삶에서 일을 더 큰 부분으로 만듦으로써 승리를 거두었다.
<162> 밀스는 사무직 노동자를 “새로운 작은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뿌리가 얕아 충성심이라고는 없으며 항상 서두르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165> 1950년대 후반의 직장은 오늘날의 직장과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두 시대의 직장 모두 집단작업을 강조하고 충성과 헌신을 장려한다. 와이트는 조직을 비판하면서도 사회의 압력을 도덕적으로 정당화 시키는 “사회윤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러한 윤리는 조직의 충성요구를 합리화하고, 진심으로 스스로를 희생하는 고용인들에게 “헌신하고 있다는 느낌”과 ‘민족’을 준다.
<166> 오늘날 우리는 합의된 가치의 부재와 도시 및 교외 공동체의 파괴를 우려한다. 직장에서는 여전히 “팀”을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증가하고 집단의 가치가 강조된다. 누구도 창조성의 상실이나 개인의 정체성이 집단의 정체성에 종속되는 문제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
<169>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자신을 노출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현대의 직장에서 이렇게 선을 긋기란 쉽지 않다.
<171> 경영자들은 “친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고용인들이 일을 통해 자기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욕구는 때로 고용인들에게 일하는 동기가 되어 주기도 하고, 일하지 않도록 만들기도 한다. 비결은 이러한 욕구를 어느정도 만족시키면서 또다른 욕구를 장려하는 것이다. …일단 조직이 고용인의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을 제공하고 나면, 그 후부터는 다른 욕구들, 즉 소속의 욕구, 자존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에 초점을 맞춰나간다. 이 욕구들은 이론상 “기계안의 유령”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172> 욕구들은 고용인들에 대항 권력을 고용주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전부”라고 가정하는 것은 인간의 열정, 이상, 가치가 갖는 힘을 과소평가하는것이다. 자유롭게 선택항 수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가치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에 기반한 선택을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선택한다.
<174> H.E.W.연구는 사람들이 흥미로운 일과 일에서의 발언권, 그리고 직무를 통해 잘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일에서 봉급 이상의 것을 원했다. 그들은 만족을 원했다.
<175> 근로자들에게 일의 25가지 측면에 대해 그 중요성을 평가하도록 요구하자 최우선으로 나온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 다음 세 가지는 일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도움과 설비, 정보,그리고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의 권한 이었다. 높은 보수는 다섯번째를 차지 했으며 직업 안정성을 일곱번째였다. …직장이 근로자들의 포부, 태도, 가치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일이 보수가 높은 일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주장했다….이 연구는 사람들이 의미있는 일을 원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176> 테걸은 일이 어떤 이들에게는 “일상적인 모욕”이며 어떤 이들에게 “구원”이 된다고 썼다. 일은 “일상의 빵뿐만 아니라 일상의 의미를, 현금뿐 아니라, 인정을 무기력뿐 아니라 놀라움을 추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원하며, 그것도 훌륭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
<181> 일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 낸다.
<184> 혹실드는 자신의 직업과 지나치게 동일시된 근로자는 정서적으로 소진 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반면 직업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근로자는 스스로를 위선자라로 여기며 모욕을 느낄 것이다. …소외는 대게 일에 대한 개인의 통제나 선택의 자유가 결여됨으로써 생겨난다.
<185> 오늘날의 고객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짖는 서비스만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187> 오늘날의 직장은 사람들의 욕구와 그들이 집단에서 일하는 방법을 분석해온 많은 심리학자, 사회학자, 경영컨설트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이들 전문가들은 일이 의미있는 것이 되기를 바랐다.
<189> 1980년대 경영자들은 좋은 충고를 갈망했다. 시장에는 경영자들의 사기를 향상시키고 근로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쓰여진 경영학 서적들이 일시적으로 넘쳐났다.
<193> 딜과 카네기는 강한 문화를 가진 기업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은 위대한 조직에 속해 있다는데서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초과 근무를 하거나 한층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며 독자들을 확신시켰다.
<195> 강한 기업문화의 이점은 그것이 포괄적이고 자동조절되는 사회체제라는 점이다. 그러나 당신이 실직하게 되면 당신은 일과 소득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197> 집안에서 일하는 흑인 보다는 들에서 일하는 흑인이 되는 편이 낫다. 들에서 일하는 흑인은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공손히 대해야 하는 부가적인 모욕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04. ‘팀’은 ‘문화’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형태의 사회적 통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팀안에서, 집단으로부터 받는 또래 압력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규칙을 지키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도록 만든다. …고용인들의 협력을 얻어내는 것은 항상 도전이었다. 많은 회사들이 팀을 만들아 이끌거나 “코치”하는 법을 배우는데 투자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213> TQM이론가들이 암시하는 바는 고용인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허락되고, 경영진은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등 그들을 윤리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215> 과학적관리법은 근로자들을 전문가로 변화시키고 일을 지루한 것으로 만들었다. 리엔지니어린은 고용인들을 만능일꾼으로 만듦으로써 일을 보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것으로 만든다. …리엔지니어링은 한 개인이 하는 일을 보다 흥미롭게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217> 때로 직장은 집보다 더 우리에게 우호적이고 우리를 더욱 지지해준다. 사람들에게 직장은 집이 되고 집은 직장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직장으로 도피하곤 한다.
<220> 1990년대 중반의 많은 미국인들에게 저녁 뉴스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이야기는 “꿈의구장”이었던 회사에서 해고당한 정장차림의 중년 백인 남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회사가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해치우기 싶어했기”때문에 직장을 잃은 것이다. …그들은 회사에 충성하는 조직인이었다. 직장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소득, 연금, 친구, 평판 심지어 가족까지 잃는 일도 있다. 그들이 일한 세월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조직이 약속했던 것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일만 잘하면 은퇴할 때까지 직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묵언의 사회적 계약을 고용주들과 맺은 것이다.
<222>직장은 “하나의 대가족”으로 만들려는 기업의 시도는 실패했다. 집이란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고 언제든 당신을 받아주는 곳이지만 직장은 가고 싶다고 해서 언제나 갈 수 있는곳은 아니다.
<228> 모든 사람이 일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당한 보수를 원한다. 회사의 이윤을 창출한 대가로 근로자들에게는 파티나 열어주고 고위관리자들에게는 엄청난 상여금과 스톡옵션을 지급하는 조직에는 무언가 부정직한 것이 있다.
<231> 일은 인간의 존엄성, 정체성, 자기표현 그리고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갖는 유용성과 관련된다. 사람들이 일을 단순한 경제적 거래 이상으로 생각할 때 일은 그들에게 더욱 의미있는 것이 된다. …일을 보다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본래 그 자체로는 훌륭한 의도이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부당한 임금을 받고도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기 위해 일을 더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은 착취이다.
<233> 윌슨이 말했듯이 일은 사람들에게 자기 효능감을 준다. 그리고 윌리엄 모리스의 말처럼 가치있는 일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235> 두려움은 사람들이 일을 하도록 만드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해고될거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같은 명백한 사실은 제한된 효과를 갖는다.
오늘날의 회사원들은 와이트가 말했던 조직인보다 더 오랫동안 일하고, 더 큰 압력을 참아낸다. 어떤 이들은 마치 결승선이 없는 경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경주에 남아 있는 것이다.
<239> 파업은 개인들에게 자기 자신의 이익과 다른 사람의 이익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241> 근로자들이 노조 가입을 하는 주된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존엄과 존중에 대한 욕구 때문이라고 말한다.
<247> 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전보다 더 오래 살고 있으면서도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시간은 더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더 오랫동안 일을 한다. 어떤이는 자신이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구조조정은 근로자들로 하여금 더 오랫동안 일하게 만들고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자신의 고용주에 대해 덜 불평하도록 강요한다.
<248> 필수품이나 자유처럼 시간은 일의 의미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일의 의미와 그것이 일과 삶에 대한 우리의 경험을 결정하는 방식에 대해 고찰해 볼 것이다.
<248> 시간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삶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구체화하는데 도움을 준다….중세교회에서는 시간이 신의 소유라고 말했다. 계몽주의는 시간은 그저 축적되는 질서정연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우리는 시간을 사용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시간을 아끼고, 시간을 팔고, 시간을 만들어내며 때로는 시간으로 대가를 치른다. 무엇보다 우리는 시간은 돈이라는 관념 아래서 살아간다.
<251> 문화는 일에 대한 개념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는 것처럼 시간의 개념 또한 바꾸고 조정한다. 모든 사회는 그 시회만의 독특한 ‘사회적 시간’을 갖는다.
<252> 사회적 시간과 함/게 우리는 자기시간과 조직시간을 갖는다.
<253> 기다릴줄 아는 능력은 조직 시간이 자주 자기 시간이나 상호작용시간보다 우선시 되는 세계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다.
<253> 우리문화에서 시간은 돈이다. …그러나 일을 빨리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시간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더 빨리 일할수록 우리의 시간은 더 빨리 새로운 일로 채워진다. 우리가 빨리 움직일수록 우리는 더 적은 시간을 갖게 된다. 사람들이 속도에 집중할수록 서로에 대한 인내심은 점점 줄어든다.
<254> 반면 속도는 흥분을 가져온다. ….뉴욕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더 느린 삶의 속도를 지닌 마을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보다 스스로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더 나은 것으로 평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55> 산업화된 국가의 노동자들은 단지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시간을 판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그 시간 동안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판다.
<258>게리 크로스는 “시간은 일터가 아닌곳 즉 가정에서의 새로운 생활양식 내에서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의 글에 따르면 근로자들은 집 바깥의 장소에서 시간에 맞춰 일을 함에 따라 자기 가족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일과 삶을 명확히 구분하게 되었다.
<263> 일을 마치고 집에 갈 수 있는 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간과 일에 대한 통제감을 주기 때문에 강력한 유인이 된다…자유시간에 대한 약속은 분명 사람들로 하여금 더 빨리 일하게 한다. 이 약속은 금전적인 동기 만큼이나 일을 덛 잘할 수 있도록 동기화시킨다.
<264> ‘근무시간 자유선택제’는 고용인들에게 자신의 노동시간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근무시간 자유선택제는 20세기의 가장 급진적인 경영혁신이다. 이 제도는 근로자들이 자신의 삶에 일을 끼워맞출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근로자의 만족과 사기를 증진시키기 위해 고안 되었다.
<269> 일이 우리의 삶에서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할수록 모든 활동은 점점 더 일처럼 느껴진다. 시계와 일정표는 우리의 사회생활로부터 자연스러움을 빼앗아가버렸다. 사람들이 친구의 집을 예고없이 방문하는 것은 점차 드문일이 되고 있다. …’건배’의 인기가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세계-이따금씩 신중하게 계획을 잡아서 친구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의 우연한 만남이 곧잘 이뤄질 수 있는 곳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을 반영한 것임을 알았다.
<271> 신기술은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었지만 그것은 잠재적으로 우리를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내내 고용인으로 만든다. …일에서 시간과 장소의 한계를 제거한 결과 직장생활, 가정생활, 조직시간과 자기시간의 경계에 놓여 있던 벽이 제거 되었다….컴퓨터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 것처럼 우리의 일을 그 지도자들 보다도 더 집요하게 감시할 수 있다.
<273> 오늘날의 사람들은 ‘확실한 일’을 통해서 자신의 지위를 나타낸다.
<274.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왜 우리는 다른 활동보다 일하는데 그토록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존재한다. …일은 사람들의 생활에 몰래 침투해서 삶을 지배했다. …일이 없으면 삶이 타락한다 그러나 자유시간이 없어도 삶은 타락할 수 있다.
<276> 여가는 특별한 경험이다. 그것은 자유롭게 선택된, 그 자체로 좋은 활동들로 구성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여가를 갖기 위해일을 한다고 말했다. 여가는 인간의 가장 훌륭하고 독특한 능력, 즉 생각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창조하고 배우는 능력을 이끌어 낸다. 우리는 지혜를 발전시키기 위해 여가를 필요로한다.
<277> G.K.체스턴은 여가는 ‘무언가를’’어떤일이든’ “아무일도 하지 않도록’ 허락된것이라 하였고 사회학자 세바스티안은 우리를 인간으로서 완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여가’라고 주장했다.
일 안에 사회적 계층이 존재하는 것처럼 일 바깥에도 사회적 계층이 존재한다.
<282> 대중오락은 수동적인 여가를 제공한다….대중오락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거나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으면서 아무때나 즐기다가 그만 둘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재미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의미를 남기지 않는다. …오락과 달리 여가는 사람들이 의미 있는 일에서 발견하는 것과 동일한 지속적인 참여와 만족을 수반한다. 여가는 대게 학습, 혹은 기술의 개발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리브친스키는 주말이 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창출하고 일에서 결여된 개인적인 보상을 보충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오락을 원한다. TV시청과 같은 오락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이 우리의 힘과 자원을 몽딴 소진시켜 TV시청외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도록 만들거나 TV시청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으로 만든다면 잘못된 것이다.
<284>스탠리 파커는 “우리의 사고방식 저변에는 항상 일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의 자유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이 지루하거나 따분하거나 스트레스를 줄 때 사람들은 때때로 여가조차 만족스럽게 즐길 수가 없다. …흥미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흥미로운 여가를 추구하고 지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수동적인 여가에 만족한다.
<287> 소비는 개혁가들이나 고용주들, 정부의 어떤 계획들보다 더 일과 시간의 관계를 단단히 매듭으로 연결한다. …소비주의는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약할 때조차 일을 해야할 ‘필요’를 창출한다. …십대들조차 자신의 여가를 소비와 교환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치품을 사기 위해 일하는 ‘중산층의 십대’가 증가하고 있다….십대의 고용이 일에 대한 존중을 불러 일으키기 보다는 일이 월급 외에 개인적인 만족을 제공할 수 없다는 냉소주의적인 생각을 갖게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십대들 대부분이 하찮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289> 여가와 소비재를 교환하는 십대들은 그들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일과 소비의 패턴에 빠져들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을 잃는다. 만약 그들이 물건을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자유시간을 포기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여가를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어떤 활동들이 자신에게 본질적으로 좋은지 발견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
<291> 일과 여가 그리고 소비주의는 우리를 악순환에 가둔다. 우리는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힘든 일을 보상받기 위해 물건을 구매하며 자유시간을 사용한다.
<293> ‘여가’의 가장 결정적인 특징은 본질적으로 유익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가 행위를 할 때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지 그 행위 자체를 즐긴다….여가는 자유롭고 즐겁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원할 때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다.여가는 자유로운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여가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것이다. 여가가 없다면 우리는 삶을 이해하는 것이 안층 더 어려울지 모른다.
<296> “의미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어떤이들에게는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일을 뜻한다. 다른 이들은 사회에 기여하는일, 또 다른 이들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원한다.의미있는 일의 본질과 그에 대한 욕구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철학적 질문의 모태가 되는 질문에 직면한다. 즉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일의 의미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들은 우리가 왜 여기에 있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개인이 발견한 의미와 문화가 만들어낸 의미에 대한 분석을 수반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의미있는 일과 의미있는 삶 그리고 행복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가 될 것이다.
<301> 우리는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우리 자신을 초월하거나 벗어남으로써 그것을 발견한다. 프랭클린은 삶의 의미는 변화하는 것이고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사람들은 선행을 하고 가치를 경험하고 마지막으로 고난을 통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306> 아마도 삶의 의미라는 문제는 우리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판단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삶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인듯 하다..우리는 삶의 가치나의미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한다
<309. 우리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행복하기’위해 행복을 추구한다. 인간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누군가를 감옥의 텅빈 독방에 가두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최악의 고문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죄수에게 자유뿐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상호작용까지 박탈한 것이다…현재 우리의 문화에서 사람들은 일터가 아닌 곳에서 행복한 순간을 제공하는 활동에 참여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의 삶은 일에서 오는 피로와 다시 일을 하기 위한 회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삶은 다나이드의 ‘새는 물항아리와 같다’ 그들은 조금씩 행복을 채워넣지만 항아리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313> 20세기가 끝날무렵 ‘그 이상의 것’에 대한 분명한 갈망이 경영학 서적에서는 ‘정신’이나 ‘영혼’같은 단어들이 제목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317> 과학적 관리법은 육체를 손에 넣으려고 했고 인간관계론은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으며 이제 영혼을 건드리려 하고 있다.
<320>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뿐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조직은 의미있는 일을 창조해주지 않는다. 그곳은 다만 우리가 의미있는 일을 ‘발견’하는 장소일 뿐이다. 회사나 사회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인정해준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마저 그들 주변의 의미를 “밝히지”못하는 이상,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우리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를 대신해서 결정하고 의미를 아야기해 달라고 하는 특정한 게으름 혹은 주의의 결핍 때문이다. …의미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가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정의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그것을 보면 알게 된다. …의미있는 일이 항상 편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때로 고통이나 고된 일 혹은 스트레스를 수반한다. 의미있는 일을 하는 사람도 대체로 좌절하거나 지쳐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대체로 개인의 삶에 활기를 복돋워준다.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의 가장 구별되는 특징일 것이다. 의미있는 일은 구체적인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중요한 활동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325> 일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보면 더 나아졌는가? 더 나은 것은 어떤의미인가? …일이 삶의 물질적 조건들을 향상시켰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삶의 질’을 향상시켰는가?우리의 직업은 우리를 더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가?
<326> 임종할 때 사무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할 사람은 거의 없다.
<327> 기업의 입장에서 정직한 직장이 되기 위해 첫 단계는 ‘심리적 조작’이나 ‘공허한 선전’에 해당하는 지침들을 포기하는 것이다. …기업이 쉽게 해고 가능한 저급의 노동력을 활용함으로써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그 대가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 한번 잃어버린 신뢰와 선의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사람들을 고용하고 해고하고 훈련시키는 일에는 비용이 든다.
<329> 경영자들은 고용인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줌으로써 그들이 그것에 대비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결국 그것이 “근로자들을 성인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331> 경영 이론가와 고용주들은 ‘일을 잘하는 고용인일수록 자기 삶을 희생한다는’생각을 버려야 한다. 직장 바깥에서 훌륭하고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일도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일은 지나치게 지루하지 않게 개인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일이 직장 바깥에서 훌륭한 삶을 영위하는 능력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역사적인 큰 그림을 살펴보았을 때 나는 삶 자체가 더 편해져할 시대에 이르러서도 유급고용이 삶을 지배하는 것을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지금은 삶이 온갖 종류의 보람있는 활동들로 가득 차야 할 시기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랜 근무시간뿐 아니라 채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스트레스와 외로움, 그리고 가정해체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왜 그런가 ? 그것은 우리가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우리는 자유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일이 삶을조직화하고 분명하게 내재된 보상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그것이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일단 “그 이상의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그 이상의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추구하기로 결정하면 일과 삶이 갖고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진다.
<333> 우리는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삶을 원하는지 알고 있고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기꺼이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는가? ,,일이 지배하는 삶 역시 그것이 의식적인 선택이고 개인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삶을 일에 꿰어맞추는 대신 일을 삶에 통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책은 이에 대한 비판적인 묘사일뿐이며 우리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효과적이 삶의 토대는 궁극적으로 일이란 무엇이고 지구상에서의 제한된 시간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으로부터 시작하다.
<334> 이 책은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였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일이자 나를 괴롭혀온 문제였다.

3. 내가 저자라면…(소감)

우선 구성을 살펴보면 1부는 일의 역사적 개념을 일의 어원 및 이솝 우화, 철학자들을 통한 철학적 접근으로 일의 개념에 대해 정의하였고 2부는 과연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에 대해 관찰해 봄으로 일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고 3부는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질문에 비추어 시간과 여가의 관계, 소비와 일의 밀접한 관계들을 살펴봄으로 일의 의미와 삶의 의미를 다루었다.

저자는 철학자의 관점에서 일과 삶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고찰토록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비판하고 있는데 일은 우리의 사회적 지위, 상호작용까지 결정하고 일을 잃을 경우 소득뿐 아니라 가족까지 잃을 수 있는데도 일이 우리 생활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은 물론 특히 십대들조차 자신의 여가를 소비와 교환함으로써 부모가 일에 지배를 받게 되었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지적하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십대,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조차 하지 않고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그 선택이 얼마나 많은 후회를 남기게 될지 염려스럽다.

또한 저자는 현대인의 삶을 비판하고 있는데,지금은 삶이 온갖 종류의 보람 있는 활동들로 가득 차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회사원들은 더 큰 압력을 참아내며 어떤 이들은 마치 결승선이 없는 경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뿐 아니라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경주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라고 설파한다.
그렇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해고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여가를 포기하고 가정이 해체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일에만 집중하고 매달리고 있는가. 정작 바깥에서 활동적이며 흥미로운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일을 더 잘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행복을 오로지 일에서만 찾으려고 하며 일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둠으로 스스로 선택권을 포기하고 있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일'발견해 내는 방법과 그 일을 통해 '행복한 삶'을 추구 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지독히도 고용인 입장에서 다루어졌다는 것이다. 분명 고용주들은 고용인 이상으로 많은 스트레스와 더 많이 일에 매달려 있는 것이 현실이며, 고용인들과 함께 이루어 내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용주가 고용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하여 동기부여 코저 하는 모든 활동들에 대해 고용주들이 고용인들을 이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양 비하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일이 우리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나 역시 일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처럼 일을 즐기고 있고, 내 삶 중에서 일을 떼어 놓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단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거나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일의 어원과 역사를 이해하는 좋은 공부가 되었고 내게 일은 어떤 의미일까? 일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삶을 일에 꿰어 맞추는 대신 일을 삶에 통합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질문토록 이끌어 내고 있으며 나아가 일에 대한 의미와 나의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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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7 02:21:44 *.140.145.63
저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지독히도 고용인 입장에서 다루어졌다는
지적에 일리가 있어 보이네요. 저자 스스로도 고용인의 경험에 비추어
고용주로서의 경험은 없어 보이니까요.

은미님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고용주들의 대다수는 아마도 저자의
비판에 대해 쉽게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
각을 해봅니다. 저 역시 고용주의 경험을 갖게된다면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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