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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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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4일 22시 39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 “일과 삶의 행복한 통합”을 꿈꾸는 그녀

'일과 삶의 행복한 통합'을 연구해온 저자, 조안 B. 시울라(Joanne B. Ciulla)는 리치먼드 대학교의 교수이자 젭슨 리더십 대학원에서 리더십과 윤리 분야의 석좌교수직을 맡고 있다. 템플대학교, 델라웨어 대학교, 멜린랜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고 UN 리더십 학회에서 리더십 연구 분야의 유네스코 석좌교수를 맡은 바 있으며, 보스턴 대학교와 라살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의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교 객원 교수와 와튼 스쿨(펜실베니아 경영대학원)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한때 웨이트리스, 요리사 등 색다른 직업을 두루 경험했으며, 노동철학을 강의하면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과도 만났다. 그동안 ‘일과 삶의 행복한 통합’에 대해 고민해온 저자는 오랜 연구의 결실인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모든 ‘일’ 뒤에 숨겨진 진실을 인문학․사회학․경영학적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통찰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다양한 기업과 조직을 대상으로 한 자문 및 강연활동과 함께 여러 매체에 집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일의 발견” 외에 《리더십과 윤리학》과 《윤리, 리더십의 핵심》 등이 있다.

“일의 발견(The Working Life)”에서 저자는 세계 각국에서 사용되는 ‘일(work)’의 언어적 기원을 추적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헤겔과 루소와 마르크스, 이솝의 우화와 초기 경제학자 맨더빌, 중세 신학자들과 현대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저작을 기반으로 풍부한 현대적 사례를 곁들여가며, 일을 바라보는 인간의 생각이 어떤 변천 과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그 변화 이면에 사회 기득권자들의 어떤 속내가 숨겨져 있는지를, 일의 발견을 통해 꼼꼼하게 파헤친다.

저자는 20세기를 주름잡은 경영서와 처세서들이 만들어낸 신화를 논박하면서, 단순한 노동을 넘어 삶의 일부분, 즉 사생활과 정신의 자유까지 팔아치워야 하는 고용인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들춰내기도 한다.

“이 책은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였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일이자 나를 괴롭혀온 문제였다. 나는 이 책의 일부를 집필하고, 다시 수년간 내버려두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그러나 일과 일의 의미라는 주제는 한 번도 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저자에게 일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책의 초반부에 실린 ‘직업을 선택하는 방법’에서 저자는 “의미, 여가, 돈, 안정”이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네 가지 가치를 제시하며 독자는 어떤 가치를 가진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질문한다. 평생을 ‘일과 삶의 행복한 통합’을 연구해 온 저자가 우선시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하며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잠깐 책읽기를 접고 생각에 잠긴다.

저자는 이렇듯 ‘일의 의미’에 대해서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고 질문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지금 ‘기계 안의 유령’은 아닌지, 고용주가 건넨 달콤한 막대사탕에 속아 진정으로 자신은 돌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단을 내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 마지막 선택은 각 개인의 몫이지만 말이다.

내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할 일이 저자의 일과 무관하지 않기에 이 책과 저자에게 더더욱 관심이 갖고, 마냥 독자의 자리에만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일’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보다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더욱 궁금했을지 모른다.

저자의 머릿속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주제가 ‘일과 일의 의미’라면 내 머릿속을 한 번도 떠나지 않는 그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2)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

일은 우리 정체성의 주된 원천이자 개인적인 자존감과 행복의 주요 원인이 되기에 이르렀다. P8

몇몇 사람들에게 일은 “일상의 굴욕”이었다. 그들의 굴욕은 그들이 하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이나 상사의 멸시와 부당함으로부터 비롯된다. P11

우리는 그 일이 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주거나, 적어도 원하는 길을 가는 동안 우리를 먹여 살려줄 것이라고 기대할 때, 그 어떤 최악의 일이라도 견딜 수 있다. P12

하루가 끝날 무렵 노동자들의 얼굴을 덮고 있는 피로는 육체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일이 과업 자체의 정확하고 효율적인 수행보다는, ‘자아’를 더 많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P14

이 책은 일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러나 목저지가 어딘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있다. P15

"실직의 문제점은 당신이 단 하루의 휴가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P22

직업을 잃었거나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은 결코 ‘일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일할’ 자유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P23

인간의 가장 흥미롭고 독특한 점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난 ‘후’에도 스스로 일하기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P24

일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지, 어떤 사람이 될지 등등에 대해 무수히 많은 선택권을 갖는다. 그런 반면, 일을 할 수 있는데도 일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좋은 직업을 포기하고 일하지 않기로 한 이유가 결코 게으름이나 자신의 결함 때문이 아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성과 맞닥뜨리게 된다. P25

일은 자신을 발견하고 창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준다. P87

'소명‘이라는 말은 ’천직(vocation)'이라는 말로 세속화되었다. 우리는 때때로 ‘소명’과 ‘천직’을 번갈아 사용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당신의 소명은 신이 결정하지만 당신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다. P87

일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발견’하거나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P101


"그는 진정한 전문가야“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가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잘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유형의 직업에서 사람들은 이미 전문가로 여겨지고 있거나,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P109

장인과 전문가는 이상적인 유형의 노동자로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그들은 일과 여가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즉, 그들의 일은 삶의 연속성을 반영한다. 둘째, 그들의 일은 그들 존재의 직접적인 확장이다. 그들 자신은 곧 자신이 하는 일이며, 그들은 자신의 일을 자랑스러워한다. 셋째. 일에 대한 헌신 덕분에 그들은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부터 존경받는 경우가 많다. 넷째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이 모두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누구도 그들이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P110

일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가 되고 싶은 것, 혹은 얻고 싶은 것에 달려 있다. 일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모리스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일을 원하려면 먼저 미래에 대한 어느 정도의 희망 혹은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P111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일한다. 그러나 노예는 ‘살아 있기’ 위해 일한다. P117-118

일반적으로 우리는 취직을 할 때,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고용주들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에 동의한다. P132

"조직인(organization man)"은 영혼의 일부를 포기해야만 했다. P158

어빙 제니스 같은 연구자들은 우리에게 “집단적 사고”의 불이익을 경계하라고 충고했다. 집단적 사고 상태에서 한 집단의 구성원들은 비슷하게 사고하기 시작하고,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보지 못하게 된다. P167

우리 모두가 이따금씩 조직 내에서 어느 정도 자신을 노출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의 직장에서 이렇게 선을 긋기란 때로 쉽지 않다. …당신 자신의 사생활과 내적 자아, 그리고 당신이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보다 공적인 측면들 사이에 경계를 긋는 것이다. 일부 직장에서는 둘 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는 것을 선호한다. 얼마만큼 보여주고 얼마만큼 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P170

《풍요한 사회》에서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일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아니라, 교육 수준이 높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의 사람들이 갖는 포부라고 주장했다. … 에이브러햄 메슬로의 “욕구단계”를 나타내는 피라미드 그림은 아직도 대부분의 경영학 교과서를 흔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 도식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고난 생리적 욕구인 음식 및 주거에 대한 요구로부터 안전과 안정에 대한 욕구, 소속과 사랑의 욕구, 그리고 자존의 욕구로 “상향”이동한다. 메슬로의 욕구 단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것은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P171

심리학자인 프레더릭 허츠버그는 직무 만족과 직무 불만족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별개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직무 만족은 직무의 내용이나 본질적인 가치에서 비롯되는 반명, 일에서의 불만족은 대개 외적인 요인들에 의해 비롯된다. P174

근로자들에게 일의 25가지 측면에 대해 그 중요성을 평가하도록 요구하자, 최우선으로 나온 것이 ‘흥미로운 일’ 이었다. P175

1970년대는 자기 분석적인 시기였고 이러한 “자기중심 세대(me generation)"의 근로자들은 실제로 보다 의미 있는 일을 원했다. P175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원하며, 그것도 훌륭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직무상, 혹은 상사들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다. P176

일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다른 사람들과 일할 때, 우리들 대부분은 적어도 일정 기간 동안은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 우리가 걸치는 페르소나와 허용되는 감정의 범위는 직업에 따라 달라진다. “전문가”로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강력하게 제어한다는 의미이다. P181

완전한 육체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한, 근로자들에게 있어 일의 가장 힘든 부분은 정서적인 노력이다. P181

대부분의 직장내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직장에서의 분노는 “분노 컨설턴트”를 위한 시장을 낳았다. 시카고에는 심지어 “분노 연구소”까지 있다. P182

항송회사는 무례하고 분노한 고객의 말을 들어주는 대가로 승무원들에게 보수를 지불하는 셈이다. P183

엘드리지 클리버가 저서 《갇힌 영혼》 지적했듯이 “집 안에서 일하는 흑인(hose nigger)"보다는 ”들에서 일하는 흑인(field nigger)"이 되는 편이 낫다. 들에서 일하는 흑인은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공손히 대해야 하는 부가적인 모욕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P197

1950년대의 고용인들은 조직에 순응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들은 감수성 훈련을 경험했다. 1980년대, 이제 훈련은 ‘팀 만들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P202

훈련시키고, 코치하고, 직위에 수반되는 권력의 사용을 자제하는 능력은 사람들이 경영대학원에서 배우고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이나 성격 특성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영대학원의 학생들은 한두 개의 경영 수업만은 받을 뿐이며, 그 외의 교육 과정은 재무와 광고 같은, 사업의 다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재 진행되고 있다. P216

직장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 소득, 연금, 친구, 평판, 심지어 가족까지도 잃은 일도 있다. P221

내 인생은 회사(corporate America)와 함께 끝나는 게 아니에요. P221

신뢰는 사람들 간의 도덕적․정서적 관계이다. 신뢰를 얻는 것도 어렵고, 상대에게 신뢰를 주기도 어렵다. 그것은 정직, 상호 존중, 그리고 얼마간 지속되는 일관성 있는 도덕적 행동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를 신뢰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믿는다. 철학자 C.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뢰가 없다면 배신도 있을 수 없다.” P244

많은 가족들은 한 사람의 소득만으로는 안락하게 살 수 없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생활방식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게 되고, 따라서 자녀와 보내는 시간은 줄어든다. P247

운이 좋은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더 오랫동안 일한다. P248

우리는 시간을 가지고 무언가를 한다. - 우리는 시간을 사용하고, 시간을 낭비하고, 시간을 아끼고, 시간을 팔고, 시간을 만들어내며, 때로는 시간으로 대가를 치른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시간은 돈’이라는 관념 아래서 살아간다. P250

나이 든 사람들은 체온이 더 높아서 시간을 더 빨리 흘러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거의 모든 일이 “바로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 P250

우리가 정해진 시간에 더 많은 활동들을 끼워 맞추려고 노력할수록, 시간은 더 빨리 가는 듯하다. 오늘날 우리는 시간이 더 없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더 많기 때문에 더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P255

집안일과 자녀 양육의 업무 구조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사건 중심적인 시간 개념을 부여한다. 이것의 유일한 문제는 개인을 고립시켜 바깥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P267

맞벌이 가정은 여성들에게 부가적인 부담을 지우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아직도 집안일의 대부분을 도맡아 한다. P268

이제 사람들이 친구의 집을 예고 없이 방문하는 것은 점차 드문 일이 되고 있다. 우리는 친구들이 집에서도 바쁠 것이기 때문에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P269

이제 고용주는 고용인들이 어디 있든 상관없이 전자공학을 이용하여 그들을 구속할 수 있다. 그들은 집에서, 출근길에, 자녀의 운동경기장에서, 그리고 휴가중에도 일을 할 수 있다. 장소에서의 융통성은 근무시간에도 융통성을 부여한다. P270-271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가가 인간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었다. … 여가는 인간의 가장 훌륭하고 독특한 능력, 즉 생각하고 느끼고 반성하고 장조하고 배우는 능력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지혜를 발전시키기 위해 여가를 필요로 한다. P276

우리는 누군가가 “나는 정말이지 TV를 좀 더 볼 수 있도록 휴식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것을 거의 듣지 못한다. P282

리브친스키는 역사상 사람들이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또다른 오락거리로 유일한 것은 18세기의 독서라고 이야기한다. P282

여가와 소비재를 교환하는 십대들은 그들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일과 소비의 패턴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을 잃는다. 만약 그들이 물건을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자유시간을 포기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여가를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어떤 활동들이 자신에게 본질적으로 좋은지 발견할 시간을 갖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부모를 비롯하여 다른 권위 있는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일이다. 말썽을 일으킬 위험이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시장이 만들어내는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P289

우울할 때 쇼핑은 위안을 준다. … 소비사회에서 소비에 대한 욕구는 적어도 소비 그 자체 만큼이나 중요하다. P292

여가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활동을 하는 시간이다. 여가는 자유로운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여가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것이다. 여가가 없다면 우리는 이해하는 것이 한층 더 어려울지 모른다, P295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 자체가 정신 질환의 징후라고 생각했다. 마리 보나파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누군가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묻는 순간, 그는 이미 병에 걸린 것이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 즉 리비도(libido)가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다행히도, 우울하고 비관적인 사람들만이 삶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간혹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다. 무엇보다도,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자아성찰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P301

인간은 이상을 위해 죽고 살 수 있는 책임감 있는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동물과 구분된다. 각각의 사람들은 개인적인 해답에 도달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히 우리 안에서만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우리 자신을 초월하거나 벗어남으로써 그것을 발견한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는 변화하는 것이고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사람들은 선행을 하고, 가치를 경험하고, 마직막으로 고난을 통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 프랭클에 따르면, 고난은 개인을 타락시키보다는 고귀하게 만든다. P301-302

E.D. 클림케는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을 영역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눈다. 첫 번째 질문은 우주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의 존재 이유와 그 목적에 관한 것이다. 가장 흥미를 자아내는 것은 세 번째 질문이다. 나는 왜,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가? 만약 목적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그것을 발견할 것인가? 목적이 없다면 내 삶은 어떤 의미나 가치를 가질 수 있는가? P306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삶 전체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삶의 행복한 부분의 총합 이상이다. 당신이 항상 행복할 필요는 없다. 행복한 삶은 고통과 슬픔가지도 포함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한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급자족이다. 그것은 스스로를 보살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결핍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는 행복이란 게 반드시 살아가면서 원하는 걸 얻는 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때때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어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과 의미는 모두 도덕성과 관련되어 있다. 행복하고 싶다면 당신은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며, 도덕적으로 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원해야 한다. P310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명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은 그럴듯하다. P314

경영프로그램들은 모두 “기계 안의 유령”, 혹은 개인의 내적 동기, 선의, 에너지를 찾고 있다. … 그중 맨 처음에 등장한 ‘과학적 관리법'은 육체를 손에 넣으려고 시도했고, 다음으로 출현한 ’인간관계론‘은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으며, 이제 몇몇 컨설턴트들은 ’영혼‘을 건드리려 한다. P317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뿐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조직은 의미 있는 일을 ‘창조’해주지 않는다. 그곳은 다만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는 장소일 뿐이다. P320

의미를 발견하고 “밝히는” 우리의 능력은 개인의 성격, 인생 경험, 가지 등에서 비롯된다. P321

의미 있는 일은 우리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정의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것을 보면 알게 된다. P322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여전히 좌절하거나 지쳐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대체로 개인의 삶에 활기를 북돋워준다.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의 가장 구별되는 특징일 것이다. P323

이 책은 저주로부터 소명으로, 그리고 그 이상의 것으로 변화한 일의 의미를 추적하고 있다. 20세기의 경영 이론들은 일의 의미와 일에 대한 경험을 구체화했다. 역사는 일에 ‘황금기’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일은 커다란 고통 또는 즐거움을 대개 우리 스스로 발견한다. 이상적인 직업을 꿈꾸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영업을 꿈꾸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P324

경영대학원과 기술학교에서 학생들이 배운 대부분의 지식은 그들이 직장에 들어갈 때쯤이면 이미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P329

진실이 항상 듣기 좋은 것만은 아니며, 우리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항상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을 ‘신뢰’한다. P330

사무실 바깥에서의 일을 가능케 하는 기술은 그것이 개인으로 하여금 항상 대기 중이거나 항상 일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않는다면, 일과 삶을 통합하는 긍정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융통성 있는 근무시간이나 원격 근무, 일자리 나누기와 같은 새로운 제도들은 긍정적이다.
내가 현대인의 일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한 가지 이유는 단지 직장 내의 불의, 경영 술수, 혹은 경제적 불안정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적인 큰 그림을 살펴보았을 때, 나는 삶 자세가 더 편해져야 할 시대에 이르러서도 유급고용이 삶을 지배하는 것을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P331

지금은 삶이 온갖 종류의 보람 있는 활동들로 가득 차야 할 시기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랜 근무시간뿐 아니라 채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스트레스와 외로움, 그리고 가정해체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왜 그런가? 한편으로 그것은 우리가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P332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그 이상의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추구하기로 결정하면, 일과 삶이 갖고 있는 가능성은 놀라울 정도로 무궁무진해진다. P332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그것을 위해 현재 포기하고 있는 것만큼의 가치를 갖는가?“ P333

모든 사람이 의미 있는 일을 원하고 발견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누구나 같은 것만을 의미 있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일이 지배하는 삶 역시, 그것이 의식적인 선택이고 개인을 행복하게 만든다면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삶을 일에 꿰어 맞추는 대신 일을 삶에 통합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P333

효과적인 삶의 토대는 궁극적으로 일이란 무엇이고, 지구상에서의 제한된 시간 동안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으로부터 시작된다. P333

이 책은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였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일이자 나를 괴롭혀온 문제였다. 나는 이 책의 일부를 집필하고, 다시 수년간 내버려두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다. 그러나 일과 일의 의미라는 주제는 한 번도 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P334

그들이 이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어떻게 훌륭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할 때,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P334





3) ‘내가 저자라면’ - “나비효과를 아시나요?”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기를 바라는지, 그 선택에 관한 책이다. ‘일의 의미’ 뒤에 숨겨진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가정들을 살펴봄으로써,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과 기대를 알아보고, 일과 삶에서 해왔던 자신의 선택들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즉,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일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1부에서는 일의 역사적 개념과 일에 대한 우리의 모순된 감정, 일과 관련된 가치들, 노동윤리를 탐색한다. 2부에서는 지난 백 년간의 경영 이론에 대한 비판과 그 이론들이 일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보여준다. 3부에서는 일과 소비가 어떻게 우리의 삶의 방식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저자가 이 책을 쓸 때 수년간 내버려두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듯 나 역시 이 책을 몇 번이나 내려놓았는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처음에는 우화 등의 재미있고 쉬운 서술로 흥미를 끌었으나 곧 역사적이거나 객관적인 사실들을 나열함으로 인해 책을 읽는 재미를 떨어뜨린다. 물론 저자가 그 사실들을 독자에게 알리기 위해, 들인 노력과 공을 생각하면 쉽게 읽혀서도 빠르게 읽어서도 안 된다는 것은 안다. 왜 이렇게 책이 잘 읽히지 않을까? 가독성이 떨어지는 책의 구조 때문일까? ‘미완의 시대’처럼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고도로 요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이 들게 하는 것일까? 저자는 나의 아픈 곳을 ‘톡톡톡’ 건드린다.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사실이나 용서하고 지우기로 한 기억들이 슬금슬금 기어 나오도록 한다.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어려웠나 보다. 나의 머릿속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또한 경영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통해 현재 조직에 몸담고 일을 하는 ‘고용인’들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을 주리라 생각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작되는 로봇처럼 느껴질 테니 말이다. 학부 때 경영학을 복수전공하지 않아 아쉬워하던 나에게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평가와 비판을 100%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지 혼란스러웠다. 경영학에 대한 도덕적인 의심과 함께 선입견이라는 무서운 안경을 씌어준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도록 좀 더 가볍게 나비처럼 살포시 독자에게로 다가와야 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일’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갖고 있거나 관련 연구를 하는 학자들을 위해 쓰인 책처럼 너무 복잡하다. 나는 방대한 양의 정보로 소수의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시는 편을 선호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일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일과 삶의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저자는 희망하지 않았을까? 저자의 희망은 이루어질까?


하지만 이 책은 중요하다.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을 하게 될 학생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일을 하기에 앞서 ‘일과 일의 의미’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일을 선택한다면 좀 더 덜 후회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만,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덜할 것이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의 역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일의 의미를 제시했다면, 그것을 통해 미래의 일의 의미를 예측하고 전망했더라면 독자에게 설익은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는 낙이라도 선물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것마저 다양한 풍경을 제시하되, 독자에게는 그 안에서 자신의 눈과 마주친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자신의 미래를 그리길 소망하였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마지막 장 ‘의미있는 일, 그리고 행복한 삶’이 아주 흥미롭게 읽혔다. 저자는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은 그것을 위해 현재 포기하고 있는 것만큼의 가치를 갖는가?“ 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의미 있는 일을 원하고 발견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것만을 의미 있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효과적인 삶, 즉 행복한 삶의 토대는 궁극적으로 일이란 무엇이고, 지구상에서의 제한된 시간 동안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마음속에 ‘명확한 그림’을 그리고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이라도 붓을 들자. 그것이 ‘행복’이라는 보물섬에 닿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IP *.27.8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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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7 02:01:24 *.140.145.63
글을 읽는내내 임효신님이 저자에게 직접 묻고 싶은게 많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읽는 이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것
은 일단 저자가 책을 통해 던진 화두가 꽤 성공적이라는 증거가 아닐지

저자도 아마 님같은 독자와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매우 행복해 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녀에게 그런 기회를 한번 부여해
보시면 어떨지.. 깜짝 메일이나 그녀의 블로그에 질문을 올리는 식으
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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