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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5일 04시 54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책제목: 일의 발견(The Working Life) 다우출판사 2005년
2000년 아마존 비즈니스 서적 1위

글쓴이: 조안B, 시울라
현재 리치먼드 대학의 리더십 분야 교수이며 하버드대학과 와튼 스쿨에서 경영윤리를 연구했다. 전문 연구로는 리더십, 비판적 사고, 경영윤리가 있으며 저서로는 (리더십의 윤리학),(윤리, 리더십의 핵심)등이 있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주말을 잘 보냈는가 또는 뭐 했냐는 질문을 인사치레로 주고 받게 되는데 간혹 여행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이 있어 어딜 갔다 왔냐고 물으면 씨익 웃으면서 방콕(?)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꼭 있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니 이쪽도 아 네에 저는 방굴러대쉬(?)에 갔었는데 하며 한바탕 깔깔대고 자리에 앉지만 경제의 양극화 시대라는 요즘 한국에서는 여가를 맘 놓고 즐긴다는 것이 그리 쉽지 많은 않은 듯하다.

휴일을 어떻게 보내는가는 개인의 자유이겠지만 너무 피곤해서 다른 것은 생각 못하고 잠만 잔다거나 집에까지 일을 가져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주말이었다면 그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일을 합니까?”

사람들은 이 물음에 그럴듯한 대답을 하려고 하지만 심층을 들여다 보면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는 답이 거의 맞을 것이다. 물론 돈을 벌 필요가 없을 만큼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거나 자기계발이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의식 또한 어떻게 생겨난 건지에 대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일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해 오지 않았을까.

이 책은 그러한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일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었고 또 그것이 어떤 변천 과정을 통해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게 되었는지 말해주는 일에 관한 역사서이다. 지금까지 사건 중심의 세계사는 많이 들어왔지만 정작 우리가 매일 많은 시간을 바치는 일에 관한 역사 이야기는 그리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저자는 그 동안 우리가 당연시 했었던 명제들에 대해 통념을 뒤집는 날카로운 질문방식으로 일의 본질에 근접하고 있으며 호기심과 더불어 일에 관한 철학적 접근을 맛보게 해주는 완성도 높은 책이다.

고대시대부터 등장하는 현자들의 기록과 최근의 경향까지 총 망라되어 일의 역사에 관한 궁금증을 명쾌하게 풀어주고 있으며 아울러 독자들에게 일에 대한 관념을 재조명해주고 있다. 강요되지 않은 설명과 역사 속에 있었던 일의 변천사는 읽는 재미가 쏠쏠함은 물론, 무엇보다 우리가 별달리 의문을 갖지 않고 살았던 “일”에 대한 관념을 저자의 철학적 접근을 통해 폭 넓게 생각하게 하며 현재 당면한 일과 직업, 의미, 가치 등에 관한 명제를 여러 시각에서 놓고 볼 수 있다는 게 큰 수확일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한 번쯤 진지하게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지 회사는 그 동안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동기부여를 하고 나는 왜 그에 따랐는지 서로 그 심층을 분석해 볼 필요도 있다. 저자는 혹시 잘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우리에게 수당 없는 잔업을 권유하고 대면시간(face time)을 가져야 했다고 말한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혹여 잔업을 해야 했던 당신, 책상이 없어질까 해외근무를 거부하던 당신, 휴대폰과 인터넷에 둘러싸여 24시간 출동태세로 근무하는 당신,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여전히 불안하고 두렵다면 이 책을 회사보다 먼저보고 언제 날아올 지 모르는 회사의 배반에 맞설 수 있도록 무장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현재와 같은 고용불안시대에서 많은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이제 중 장년이 되어 한 번쯤 자신의 위치를 재조명해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제 직업을 구하는 많은 젊은 사람들에게 꼭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한다.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들]

1990년대가 남긴 한가지 이점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변덕스러운 세계경제에서 경제적 거래를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14p

미국인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사람에게도 일과 여가, 그리고 삶의 의미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 직접 그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15p

어떤 시대, 어떤 문화에서든 근면한 사람들과 게으른 사람들은 함께 존재해왔다. 다만 판단의 기준이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27p

이솝은 시기심으로 인해 생겨난 근면함은 도둑질이나 탐욕, 인색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29p

우리는 다시 한번 “근면”이라는 도덕적 무기의 맹점을 보게 된다, 자급자족은 좋은 일이지만 기쁘고 유용한 산물(産物)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더 좋다. 30p

이 모든 사례들을 연결하는 공통점은 바로”필요성”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그것을 반드시 해야 하거나,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51p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일은 “저주”였다. 기원전 8~9세기경, 호머는 인간을 미워한 신이 앙심을 품고는 인간을 고생시키는 것이라고 썼다. 동시대의 시인이자 농부인 헤시오도스는 인간에게 노해서 그들의 음식을 땅 아래 파 묻었다고 기록했다. 65p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개인의 생각과 견해가 그의 일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물질 세계에서의 일은 영속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성인들에게는, 일을 통해 물질 세계와 접촉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궁핍이었다. 67p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은 중세초기의 가장 능숙한 농부이자 장인이자, 기술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수도사들 중 가장 낮은 지위로 간주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일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다………………..이렇듯 품질과 솜씨를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풍토는 이후 12세기 유럽에서 나타나 장인조합에 의해 형성되어 고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대한 생각이 베네딕트 수도회의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 라는 규범에서 신교도의 “일하라, 그리고 기도하라” 의 개념으로 그 우선 순위가 바뀌기까지는 이후 다시 1,00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75p

12세기 후반은 대성당 건축이 시작된 시대로 특징 지을 수 있다. 상인 및 장인조합, 그리고 전문가들은 교회의 건축공사를 재정적으로 지원했다. 조합에서는 종종 스스로의 솜씨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창문을 기증하곤 했는데, 오늘날 유럽의 중세 대성당의 창문에 목수와 베 짜는 사람 등이 그토록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노트르담 성당이 세워질 때 한 무리의 매춘부들이 파리의 주교를 찾아왔다………………당황한 주교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다소 색다른 이 결정은 교회 정책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전까지 교회는 임금노동을 승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한 지나친 통제권을 주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교회가 노예제도와 농노제를 묵인한 것은 이상하게 여겨진다. 78p

만약 종교가 중세의 아편이었다면 창조성과 미는 르네상스시대의 각성제였다………….육체와 정신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믿음에 르네상스는 손을 훈련시키는 것을 더했다………..인간이 자신의 일을 정의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될 수 없다. 즉, 일이 인간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일을 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르네상스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성취를 이룬 사람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자신의 일을 조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전형적인 르네상스인은 오늘날의 인간관과는 급격한 재조를 이룬다. 82~83p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 자체를 위한 일”이라는 개념과 “휴식과 쾌락에 대한 혐오”는 칼뱅과 루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85p

막스 베버가 지적했듯이 종교개혁은 근대인들에게 “전레 없는 내적 외로움”을 남겼다. 중세의 카톨릭 신자들은 사제와 성찬의 도움을 받아 신의 은총을 얻을 수 있었다. 칼뱅주의자들과 루터 교도들은 이것을 혼자 해나가야 했다. 87p

고대인들은 일을 강제적인 것이자 저주로 보았다. 중세 카톨릭 교회는 일에 단순히 위엄을 부여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일에 “매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신교도들은 일을 의미와 정체성, 구원의 징표를 찾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일, 즉 소명으로서의 일 개념은 일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특징을 강조했다. 일은 일종의 기도가 되었다. 일은 삶의 수단을 넘어 삶의 목적이 되었다. 일은 저주에서 소명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일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88p

공정함, 개인의 탁월성, 개인의 선함이라는 이 세 가지 기본 개념으로부터 일은 “고역” 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것이라는, 일에 대한 낭만적 개념이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는 일을 통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90p

오늘날 우리는 크루소의 유산을 공유한다. “합리적 경제인” 은 섬처럼 고립된 존재이다. 그는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고 영원히 충족되지 못한 재 무엇인가를 더 필요로 한다. 92p

나중에 스코틀랜드 버티 찰스 포브스는 덕 있는 사업가에 대한 찬양을 영구적인 예술의 형태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일과 미덕, 부는 행복과 사회적 이익으로 이어진다는 프랭클린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98p

19세기 미국을 방문한 유럽인들은 미국인의 에너지와 근면함에 아연실색했다. 특히 그들은 유한계급이 없다는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101p

산업화 이후부터는 일에 대한 두 가지 유형의 견해가 존재했다. 첫 번째 견해는 계몽주의적인 것, 즉 과학과 지식이 “진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두 번째 견해는 장 자크 루소와 같은 비평가들이 말한 것으로 일이 일종의 은총 받은 상태로부터 “ 타락” 했다는 것이다……….[에밀]에서 루소는 최상의 삶의 방식으로서 장인의 기능을 강조했다. 그의 낭만적 이상은”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사고하는 인간”으로, 말에 편자를 박는 동안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르네상스인이었다. 102p

가치 있는 일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이 잠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일뿐 그 실현가능성 여부는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주관적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만든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리스의 논점은 만약 그들이 그럴 수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거나 소유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낄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사람들은 다양한 창조적 기술을 이용하여 여가시간에 무엇을 할지에 대해 제각기 다른 희망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분한 여가와 고품질의 유용한 산물, 기술을 연마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직업을 갖고 싶어하리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일”은 객관적이다. 106p

전문가와 장인들의 덜 고귀한 측면은 훈련 및 진입과정의 복잡함이 그들 집단에게 특정 지식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해 준다는 것이다. 109p

독하게 독립적인 사람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이 필요하다. 미국인들이 민주적인 일터를 발전시키지 않은 더 그럴듯한 이유는 “아메리칸 드림”에 있다. 116p

다른 사람에 대한 삶이나 경제적 안녕에 대한 전적인 통제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타락시키지 않으면서 난폭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이는 매우 드물다. 120p

결국 고용이란 자유와 기회로 이어지게 될 일시적인 노예 상태를 의미하였다. 122p

누군가가 자신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팔고자 한다면 고용주가 얼마나 많은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사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129p

영국의 도제제도는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그 제도를 운용했던 조합은 건너오지 않았다. 133p

비숙련 노동자들은 최초로 독립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고용조-고용인 관계에서 힘을 갖기 시작했다. 이는 특히 중요한 사항인데, 왜냐하면 기계화가 장인들의 일을 서서히 단순 작업화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러한 성격을 가진 최초의 조직은 노동기사단이었다…………….결국 노동기사단은 숙련 노동자들과 힘을 합쳐 미국노동총연맹을 결성했다. 138p

테일러는 자 없이도 측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에 감탄했지만 정작 그는 산업현장에서 사람들이 그런 기술 없이도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자신의 생애를 바쳤다. 141p

한 비평가는 인간관계와 산업심리학을 “ 인간 기계를 작동하기 위한 승무원 관리하기”라고 불렀다. 150p

사무직 노동의 증가는 경영에서의 인간관계적. 심리적 접근을 새롭게 적용하도록 만들었다. 깨끗하고 매력적인 사무실에서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집과 차, 그리고 고급 주방설비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자아의 침몰” 이라든지, “권위에의 복종” 같은 작은 모욕들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했다. 그들은 직장에서의 자유”를 “시장에서의 자유”와 교환하고자 했다. 계약제 하인과 산업 노동자가 장시간의 육체노동을 그들의 알량한 아메리칸 드림과 교환했다면 “조직인(organization man)은 영혼의 일부를 포기해야만 했다. 158p

….회사를 소유하는 사람(주주들)이 회사를 경영하지 않고,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경영자)이 회사를 소유하지 않을 때, 회사가 책임 있게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161p

경영연구자들은 외적 보상에 개의치 않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열정적인 인간 행동과 헌신을 고취시키는 잡히지 않는 영혼, 즉 “기계 안의 유령”을 찾기 위해 인간의 정신을 점점 더 깊이 파고 들기 시작했다. 161p

밀스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소외는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가 비난한 “일과 삶의 분리”가 현대 조직에서는 “일에 대한 가장 건전한 대응”일 수도 있다. 164p

사회윤리에 대한 와이트의 비판은 공산주의에 대한 오늘날의 비판과 유사하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는 밖에서 보면 무척 좋아 보이지만, 안에서는 강압적이고 독재적일 수 있다. 165p

결국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결정하거나 그것에 대한 욕구를 창출하고 욕구충족을 위해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권력을 주장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173p

강한 기업의 커다란 이점은 그것이 포괄적이고 자동 조절되는 사회 체제라는 점이다. 불리한 점은 그것이 억압적인 동시에 변화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부정적인 면은 고용인들이 충분히 일 바깥에서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 예를 들면 우정의 욕구 같은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일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당신이 실직하게 되면 당신은 일과 소득뿐만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 195p

1950년대의 고용인들은 조직에 순응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들은 감수성 훈련을 경험했다. 1980년대, 그들은 조직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회사의 사교모임에 참여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제 훈련은 “팀 만들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202p

1990년대의 커다란 아이러니 중 하나는 실제 경영에 있어서는 구조조정을 강조했던 반면, 당시의 경영서들과 경영학적 수사법들은 “헌신”, “충성”, “신뢰”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222p

헌신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으로 충성이 보수의 대가로, 신뢰가 법적 계약으로 한정되면, 이들 용어에 담긴 도덕적 의미는 사라지고, 직장은 도덕적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된다. 225p

노사관계에 있어 큰 모순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용하는 것만큼이나 그 사람의 만족을 이용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일은 인감의 존엄성, 정체성, 자기표현, 그리고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갖는 유용성과도 관련된다. 사람들이 일은 단순한 경제적 거래 이상으로 생각할 때 일은 그들에게 더욱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일을 보다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본래 그 자체로는 훌륭한 의도이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부당한 임금을 받고도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기 위해 일을 더 그럴듯해 보이게 하는 것은 착취이다. 231~232p

루터와 칼뱅의 노동윤리는 이러한 두려움의 노동윤리 앞에서 빛을 잃었다.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와 달리 두려움의 노동윤리는 구원의 희망을 약속하지 않는다. 단지 좀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235p

냉소주의자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고 단결하여 조합을 형성하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기 때문에 혁명론자들보다도 함께 일하기가 훨씬 어렵다. 대신에 그들은 봉급을 받을 때 수동적인 저항과 비웃음으로 침묵의 파업을 행한다. 238p

문화는 일에 대한 개념을 수정하고 변화시키는 것처럼 시간의 개념 또한 바꾸고 조정한다. 모든 사회는 그 사회만의 독특한 사회적 시간을 갖는다. 251p

사람들이 시간에 맞춰 일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현상이 아니다. 과거 고용주들은 사람들을 시간에 맞춰 일하도록 분투했다. 255p

그는 사람들을 착실한 근로자로 변화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탐욕스런 소비자로 만드는 것, 즉 충분한 임금과 쇼핑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57p

현재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거나,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269p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조직으로 변화시키는 데서 조직을 우리의 집으로 이동시키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다시 생활이 일의 일부여야 하는지, 일이 생활의 일부여야 하는지의 문제를 제기한다. 당신이 집에서 일한다면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273p

우리는 우리에게 선택권을 제공하는 자유로운 사회에 살고 있지만, 아마도 그로 인해 우리의 행동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안에 불어넣은 욕구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290p

우리가 실제로 일터에서의 자유를 시장에서의 자유와 교환했다면 통제권을 되찾는 한 가지 방법은 시장에서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293p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자유는 여가의 주요한 요소이다. 294p

사람들이 외로움이나 친구 또는 가족들로부터 단절감을 느낄 때 그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자기 삶의 의미를 구한다. 창조의 행위는 그 사람의 흔적을 이 세상에 남긴다. 300p

인간은 이상을 위해 죽고 살수 있는 책임감 있는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301p

신앙은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는 동시에 그 질문을 제거해버린다. 304p

자본주의는 삶의 수단을 제공할 뿐 삶의 목적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315p

즉, 그것은 삶들을 기분 좋게 만듦으로써 , 애초에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만들었던 권력과 갈등, 자율성에 관한 심각한 문제들을 “처리”하는 대신 그것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318p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개념을 “우리 삶에서 의미를 갖는 일”로 재정의한다면 삶의 의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의미 있는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뿐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조직은 의미 있는 일을 “창조”해 주지 않는다. 그곳은 다만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는 장소일 뿐이다. 320p

[내가 저자라면]

책을 다 읽은 후 잠깐 침대에 누워 머리를 식힐 겸 상상 속으로 빠져들어 가 본다.
만약 내가 고대 그리스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땠을까?
빨래를 하거나 걸레질도 할 필요가 없었고 쓰레기 분리수거 갔다 버리는 일도 하지 않았겠지. 또 설거지도 안 했을테고, 그저 좋은 생각만 하고 조각 같은 남자랑…...
그러다가 갑자기 문득 노예로 태어날 확률도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어 천천히 현실로 돌아와 그나마 생각도 하고 일도 하는 지금이 낫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 책의 내용은 대다수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가 경제적인 것을 감안해 유급노동에 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어느 회사에도 소속되지 않은 지적인 노동도 언급되긴 하지만 직장을 가진 사람, 다시 말해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 속에서 점철된 노동의 변천사를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회적 관점의 시각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개미와 베짱이로만 알려졌던 이솝 우화는 꿀벌과 매미가 출현하면서 재미를 더한다. 한 때 인생에서의 선택이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하고 살 것인가, 베짱이처럼 놀기만 하다가 굶어 죽는가 하는 두 가지 선택뿐이었다면 이번엔 매미처럼 예술을 위해 죽는 삶과 꿀벌처럼 사회에 기여하는 삶이 플러스되어 네 가지 선택이 있음을 알려준다.

고대 그리스시대의 일이라는 개념은 “저주”에서 시작되어 베네딕트 수도원의 신에 대한 기도의 노동 윤리로, 또 루터와 칼뱅의 프로테스탄트 소명개념으로 바뀌면서 오늘 날 우리가 가지게 된 ‘일 자체를 위한 일”이라는 개념과 “휴식과 쾌락에 대한 혐오”가 비롯되었다.
이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노동인구는 더욱 증가하고 해고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노동윤리와 첨단의 과학 발전 덕택으로 24시간 근무 체제로 진입하는 오늘날에까지 이른다.
이 과정의 서술이 시종일관 비판적이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어떤 계기로 일이라는 개념이 변화되었고 앞으로 일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임해야 하는 지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수많은 경영 이론에 대해서도 그녀만의 해석은 독특함이 있었다.

변화의 사례는 대부분이 미국 중심으로 특히 현대 미국 노동의 역사가 책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이 책의 후반부는 거의 미국사례들로 점철되어 있어 미국인들의 일에 대한 의식구조를 살펴 볼 수 있는데 왜 미국인들은 유럽인들보다 그렇게 일을 많이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최근의 신간 컬처코드에서 직업에 대한 미국인의 코드분석을 “정체성”으로 설명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로워 옮겨본다.
”미국인들에게 직업이란 단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일에는 훨씬 강력한 차원, 즉 삶을 규정하는 차원이 있었다”.
또한 다음과 같이 미국인의 일에 대한 태도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 초기 때부터 있어온 노동에 대한 미국인의 접근 방식이다. 미국의 조상들이 이 대륙으로 건너와 처음 광대한 미개척지를 발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차나 한잔 해야지.”가 아니라 “일을 먼저 시작해야지.”였다. 그들은 신세계를 창조해내야 했고 신세계는 저절로 만들어 지지 않았다. 마을을 건설하고 서부를 개척해야만 했으며 대담한 정치적 실험의 기초를 다져야 했다. 그 때는 실제로 한가할 겨를이 없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조차 늘 자신이 바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인들은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 일한다.”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는 이런 면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많이 일하는 미국인들을 보고 유럽인들은 아연실색하는데 빈의 이민자인 프란시스 그룬트는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표현을 하고 있다.
“그들은 게으름의 달콤함 대신 “게으름의 공포”만 알고 있다. 상업이야 말로 미국인의 정수이다……..마치 미국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작업장이며 그 입구 너머에는 강력한 비문이 걸려있는 듯하다.”용건 없는 자 입장불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직업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이나 가치를 확인하며 살고 있다. 또한 일에 의해 생활리듬이 결정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며 인간관계나 그 외 여러 활동들이 일과 상당히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만약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거나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부분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위험한 생각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아니면 회사에서 통고가 올 때까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시울라 여사는 이런 독자들에게 삶을 일에 꿰어 맞추는 대신 일을 삶에 통합하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독자는 자신이 다니는 회사한테 속았을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들지만 반면 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 주는 부분이 그 느낌을 상쇄하고 있다.
저자는 계속 묻고 있다.
과연 일은 우리의 삶을 향상시켰는가? 일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하는가? 일터에서 당신은 행복한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기를 바라는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이 그것을 위해 포기할 만큼의 가치를 갖는가?..
이런 연립방정식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당신이 통제권을 가져라!”이다.
삶은 계속되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망각하지 말자고 시울라여사는 말한다.

만약 저자를 만나게 된다면 이번엔 이쪽에서 묻고 싶다.
“시울라님, 당신은 자신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IP *.74.127.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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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07.03.25 07:07:35 *.145.83.50
향인 님!
그댄 예전에는 어찌하여 그렇게 성격이 급하고 좌판을 때리는 속도가 맘의 진행보다 빨랐던가요?
그래서 남자도 몇번 만나보 질 않고 궁둥이를 차 버럿지는 아니 했는지.

이잰 그 급한 성정은 없어지니 글속에서 멋진 영체가 보입니다.
조금 더 지루하리 많큼 천천히 걸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입니다.
리북은 저자의 본글보다 더 쉽고 감동적이라야 하는데

"마치 구선생님 사이트에서 본문보다 덧글이 더욱 좋듯이"

수고 했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제 남해에서 만나는 마지막 문이 남았군요. 최선을 다 했으니 하늘의 명운을 기다리는 수밖에...

입 큰 아구를 먹을 기회를 사부님께서 주시겠지요.
~~~~정말 수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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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7 02:13:31 *.140.145.63
이 책의 정체성과 메시지에 대한 일갈이 짧고도 명쾌하군요.
이런걸 쾌도난마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향인님 별칭으로
추천하고 싶기도 하구요..ㅋㅋ

'일에 관한 역사서', '당신이 통제권을 가져라!'

한편으로는 앞으로 연구원들이 졸업을 위해서 탄생시켜야 할
책의 주제들이 이런 방식으로 찾아질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은 사실 그렇게 새로운 주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선으로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는 저자 스스로의 고민이 아주 새롭게 다가
갈 수 있는 한 권의 책으로 나왔으니 말입니다.

향인님은 어떤 주제로 책을 쓰실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군요.
한가지는 확실히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매우 재미있는 책일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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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3.27 14:52:01 *.48.44.248
재밌는 사람인가 봐요. 제가 , 다들 그러시니...ㅎㅎ
열심히 하겠습니다.
초아샘, 기찬님 그럼 남해에서 뵙지요. 정말 감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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