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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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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5일 16시 55분 등록
1. 저자 소개

저자
조안 B.시울라 (Joanne B.Ciulla)

리치먼드 대학교의 교수이자 젭슨 리더십 대학원에서 리더십과 윤리 분야의 석좌교수직을 맡고 있다. 템플대학교, 델라웨어 대학교,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고 UN 리더십 학회에서 리더십 연구 분야의 유네스코 석좌교수를 맡은 바 있으며, 보스턴 대학교와 라살 대학교에서 강의했다.

그녀에게는 대학 강사 시절이 있었다. 약 9년 동안 그녀는 식당에서 일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아침에는 철학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대학원 세미나에 나가고, 밤에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다. 그녀가 강사 생활과 대학원 생활을 동시에 하며 웨이트리스로 일할 때 사람들이 그녀를 대하는 방식은 각각 달랐다. 그녀는 이 때 일과 정체성에 대해 상당히 많은 생각을 했노라 회고한다.

9년간 철학을 강의하며 ‘노동자의 관점’에서 일을 생각한 후, 그녀는 ‘경영자의 관점’에서도 일을 다루게 된다. 박사학위를 득한 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과 윤리 분야의 연구원으로 일하며 경영윤리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의 경영대학원에서는 경영에 관한 필수 MBA강좌를 가르쳤다. 이후에는 젭슨 리더십 대학원에서 윤리학, 리더십, 비판적 사고에 관한 강좌를 맡았다.

그녀는 일생을 일과 노동을 철학 윤리학 경영학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연구하였다. 그녀에게 ‘일’은 평생의 화두였다. 저서 <일의 발견>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학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 ‘일’이라는 주제가 한 번도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이 책은 오랫동안 내 삶의 일부였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일이자 나를 괴롭혀온 문제였다.” 그녀에게 이 책은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저자에 대해 더 알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저자의 정보를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저자 소개와 책 내용에서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2. 가슴으로 들어오는 구절

프롤로그

9p, 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시장이나 고용주의 손에 맡겨두는 결과를 가져온다. 괜찮은 삶을 사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주들은 자기개발이나 자아실현 같은 다양하고도 추상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방법을 찾는다. 이것은 악순환을 가져온다. 고용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하고, 경영자들 또한 더 많은 것을 약속한다.

13p, 기업에는 항상 기업 문화가 존재해왔지만, 이제 기업들은 고용인들을 하나의 행복한 대가족으로 변화시키고자 시도하는 문화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업상의 저녁식사, 회사의 맥주 파티, 스포츠 행사, 친목 행사 등의 명목으로 고용인들의 여가시간을 빼앗음으로써 노동자의 소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의미를 만들어내야 할” 임무를 부여받은 경영진은 고용인들이 자신의 더 많은 부분을 필요 이상으로 일에 투자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시도했다.

15p,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도전은 ‘일’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1부. 일의 의미와 역사

21p, 마리엔탈의 시민들은 비단 일을 잃은 것만이 아니라 자기 효능감, 소속감, 규칙성 같은 일과 관련된 사회적 혜택을 상실했다.......결국 실직자들이 여가를 갖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일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구속된’ 시간이 없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간 또한 없다.

23p, 로마의 키케로는 삶의 필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진리와 그 자체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지식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학예의 이상’은 우리가 그 자체로서 추구하는 지식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생들이 직업을 갖기 위해 교양교육을 받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론적으로 볼 때 교양은 일하는 방법이 아닌, 여가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아리스토텔레스의 여가 기준을 살펴보고 나면, 여가는 단순한 자유시간 이상이다. 그것은 욕구와 필요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이며, 특정한 일을 하기 위한 기회이다.

25p, 그녀는 명함에 찍힌 직함과 상관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것, 그리고 일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5p, 유급노동이 일의 중심이 되는 문화에서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30p, “너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은 오직 너 하나 뿐이다. 다른 생물도 네가 비축한 부의 일부를 공유하지 못한다. 반면 꿀벌은 기트가고 정교한 노력으로 세상에 축복이 되는 것을 만들어낸다.

33p, 개미는 돈을 쓰거나 물건을 소유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대신에 매일매일 검소하게 살아가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34p, 몇몇 사람들은 은퇴하면 ‘일로부터의 해방’과 ‘행복’이라는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의 삶 전체를 일에 바친다. 그러나 은퇴할 무렵이 되면 진정한 행복은 애쓰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34p, 어떤 사람들은 놀이를 ‘생산적인 일’처럼 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38p, 네 가지 가치가 우리의 직업 선택 방식을 결정한다. 그것은 의미 있는 일 혹은 당신이나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게 흥미롭고 중요한 일,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여가나 자유 시간, 돈, 그리고 안정이다.

42p, 우리들 대다수는 우리가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의 표상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일을 하기 위해 현재 직업이 주는 안정과 권력, 구매력을 감히 포기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44p, 일이 주는 가장 근본적인 만족은 생계를 꾸리는 데서 오는 만족감,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일 것이다.

49p, 우리는 게이츠의 이름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하는 누구가의 이름에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의 이름으로 그 의미가 변화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50p, ‘일’이라는 단어는 한 가지 활도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과 관련된 생각과 가치들의 집합을 가리킨다.......이 모든 사례들을 연결하는 공통점은 바로 ‘필요성’이다. 그것을 반드시 해야 하거나,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52p, 때로 우리는 어렵거나 불쾌한 행동, 혹은 우리가 특정 시간에 하고 싶어하지 않는 활동을 일이라고 부른다.......때로는 어떤 과업이나 활동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그것을 일이라고 부를지 말지를 결정한다.

56p, 노동, 수고, 고역은 에너지의 소비이며, 단지 소모될 뿐 아무런 성과물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노동하는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 육체적인 일을 하지만 직접 그것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57p, 노동과 일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구분된다. 첫째, 노동은 일에 비해 육체적 노력과 더 크게 관련된다. 둘째, 노동자와 노동 대상의 관계는 일하는 사람과 그 대상과의 관계와 다르다.

61p, ‘업무’는 개인적인 이득이나 사리사욕과 연관되기 때문에 보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62p, '업무‘라는 단어는 보수를 받기 위해 하는 도구적인 활동을 나타낸다. 그것은 일 노동 수고 고역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68p, 종교나 문화에 따라 일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혹은 중립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70p, 우리는 누가 돈을 더 많이 버느냐와 상관없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탄광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언어조차도 ‘앉아서 일하는 것’이 특권임을 암시한다. 우리는 의장(chairman)을 존경하고, 왕좌(throne)에 영광을 돌리며, 교수 자리(chair)를 얻고자 하고, 의회에서 한 자리(seat)을 차지하기 위해 입후보한다.

74p, 단순한 노동에 불과했던 ‘일’이 두드러지게 긍정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이다.

77p, 영적인 삶과 의지, 직업의 관계를 새롭게 강조한 것은 개인의 정체성 및 도덕성을 일과 신학에 연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장인조합이 등장함에 따라 개인의 일과 관련된 정체성은 이미 증가하고 있었다.

82p, 르네상스 시대, 신의 섭리를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일이 지니는 가치도 커졌다.

83p, 우리가 르네상스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성취를 이룬 사람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자신의 일을 조절하는 사람이다.

85p, ‘일 자체를 위한 일’이라는 개념과 ‘휴식과 쾌락에 대한 혐오’는 칼뱅과 루터로부터 비롯된 것ㅇ다.

87p,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는 우리가 일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하고 구원을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오히려 소명으로 인해 평범한 생활 속에 금욕주의가 생겨났고, 이것은 세속적인 행복의 추구를 엄격하게 제한했다.

89, 우리가 물려받은 노동윤리의 가장 오래된 첫 번째 개념은 공정함과 사회적 책임의 원칙이다. 두 번째 요소는 우리의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일’ 자체가 도덕적이고 영적을 가치를 지니고 모든 사람은 살면서 어떤 종류의 일을 하도록 신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102p, 산업화 이후부터는 일에 대한 두 가지 유형의 견해가 존재했다. 첫 번째 견해는 계몽주의적인 것, 즉 과학과 지식이 ‘진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일이 일종의 은총 받은 상태로부터 ‘타락’했다는 것이다.

107p, 조합을 통해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더 큰 통제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노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 가운데 하나라 볼 수 있다.

112p, 일로부터 개인적 도덕적 사회적 물질적 이득을 거두어들이는 능력은 사람들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2부.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117p, 고용주나 경영자는 항상 자신의 뜻을 고용인들에게 강요하려는 유혹에 직면한다. 고용인들은 여러 시대에 걸쳐 직장에서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해왔다. 자유의 원칙은 이러한 관계의 중심에 있으며,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기본이 된다.

129p, 누군가가 자신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팔고자 한다면, 고용주가 얼마나 많은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사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131p, 대부분의 유급고용은 고용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자유를 포기하도록 요구한다.

132p, 우리는 취직을 할 때,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고용주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것에 동의한다.

138p, 연맹은 고용주들의 가슴에 두려움을 불어넣었고.......세 가지 혁신과 운동이 일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그로 인해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은 일터가 형성되었다. 과학적 관리법, 복지 자본주의, 그리고 경영에서의 인간관계의 접근이 그것이다.

141p, 노동자들을 장악하고 생산 속도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열쇠는, 누구나 최대한 효율적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도록 ‘일을 설계하는’ 것이다.

146p, 복지 자본주의의 이면에 자리 잡은 일반적인 생각은 고용인들을 행복하게 하거나 그들의 이익이 그들 자신의 계급적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닌, 고용주의 이익과 결합되는 공동체에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156p, 인간관계 접근으로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은 있었다. 경영자들은 여전히 “협력이란 사장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 여기며, 협력의 기술이 아닌 협력의 목적에 초점을 맞춘다.......경영자들은 갈등을 얼버무리거나 억눌러버리고, 고용인들은 자신들이 조종당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직장의 언어와 이데올로기는 발생하는 문제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157p, 노동조합은 양자 간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조절한다. 최상의 상태에 도달한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건강과 안정, 위엄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기업가들을 설득하거나 겁줌으로써 조합원뿐 아니라 모든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이나마 받도록 해주고 아울러 노동조건도 개선한다.

163p, 밀스는 인사부서의 목적이 쾌활하고 협조적인 부하들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인들의 감정마저도 조직이 바라는 대로, 조직의 손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직장 내의 정서를 통제함으로써, 고용주들은 근로자들을 소외시키지 않고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

171p, 친절하고 우호적인 경영자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조직 내의 권력과 힘의 경계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저 감추고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179p, 일은 때로 진정한 자유 시간, 특히 직업 안정성이 확보된 상태에서의 자유시간과는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사례가 주는 메시지는 조직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일터에 잇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점이다. 고용주들은 고용인들이 “부가가치”를 창출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고 믿기를 바라지만, 사실 고용인들에게 그것은 ‘자유를 상실한 대가’이다.

183p, 우리는 매일 상업화된 개별화와 쾌활함, 친절함에 노출되어 있다.

190p, 이러한 책과 이론들은 경영자들에 ‘대한’ 것인 동시에, 경영자들을 ‘위한’ 것이다.

204p, 회사 내의 팀들은 대부분 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분 좋게 느끼기 위해 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개인들의 집단’에 불과하다.

222p, 1990년대의 커다란 아이러니 중 하나는 실제 경영에 있어서는 구조조정을 강조했던 반면, 당시의 경영서들과 경영학적 수사법들은 ‘헌신’, ‘충성’, ‘신뢰’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헌신’은 노동력을 줄이고, 근로자들의 작업량을 두 배로 늘린 회사들이 특히 필요로 하는 덕목이었다. 회사가 고용인들에게 제공하는 안정성과 충성이 줄어들수록 오히려 그들에게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25p, 사회적으로 구조조정은 근로자들이 오랜 세월 동안 알고 있었거나 의심해온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즉, 고용주들과 경제는 변덕스러우며, 당신은 조직에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말이다.

227p, 정체되거나 하락한 임금을 설명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끌어들이는 혐의는 ‘세계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이다.

232p, 회사의 이윤을 창출한 대가로 근로자들에게는 파티나 열어주고, 고위 관리자들에게는 엄청난 상여금과 스톡옵션을 지급하는 조직에는 무언가 부정직한 것이 있다. 이것은 승자 독식의 사고방식이다.

233p, 그 중 최악은 이러한 경제 상황이 종종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주들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짓밟거나 묵과한다는 것이다.

233p, ‘기업과 정부는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고 하는 이러한 세계관의 대가는 엄청날 수 있다.

235p, 두려움의 노동윤리는 구원의 희망을 약속하지 않는다. 단지 좀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250p, 때로 사회적 시간, 상호작용 시간, 자기 시간, 조직 시간은 충돌할 수 있다. 이러한 충돌의 한 가지 결과는 기다림이다.

253p, 일을 더 빨리 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 시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더 빨리 일할수록 우리의 시간은 더 빨리 새로운 일로 채워진다.

3부. 일과 삶

259p, 숙련직과 전문직의 과업 지향이 시간 및 돈 지향으로 바뀜에 따라 그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그들이 본연의 모습을 잃게 된 것은 사실이다.

260p,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규정하는 도덕적 측면은 시계에 대한 헌신이 아닌, 일에 대한 헌신에서 드러난다. 전문가들을 고용하는 단체가 그들에게 시간과 돈으로 압박을 가한다면 그들이 하는 일의 고결함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264p, 첫째, 아마도 과업 지향적인 일이 시간 지향적인 일보다 더 자연스럽고 만족스러운 듯하다. 둘째, 아마도 우리들 대다수는 짧은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긴 자유 시간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셋째, 그러나 우리 문화에 존재하는 시간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고려한다면, 일정한 노동시간이 정해지지 않을 겨우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다.

274p, 대면 시간은 고용인들이 실제로 일을 하기보다는 이미지 형성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식이다.

277p, 여가와 자유시간은 서로 다른 두 세상에 존재한다.......자유시간은 특정한 종류의 시간을 계산해내는 특별한 방식을 말한다. 여가는 존재의 상태, 인간의 조건을 말한다.

284p, 일이 지루하거나 따분하거나, 스트레스를 줄 때, 사람들은 때때로 여가조차 만족스럽게 즐길 수가 없다.......사람들의 여가가 그들이 하는 일의 특정한 측면을 반영한다는 견해를 지지한다.

293p, 소비주의는 노동윤리가 떠난 자의 자리를 대신한다. 조직들은 이제 사람들이 일에 대해 갖고 있는 도덕적 책임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

295p, 여가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할 만한 가치가 있는 활동을 하는 시간이다. 여가는 자유로운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장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여가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것이다.

303p, 삶의 의미에 관해 질문할 때 대중적인 책들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그들을 격려해주고 해답을 주기를 원한다. 치료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가치가 개입된 대화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원한다.

309p, 의미 있는 삶이란 행복한 삶인가? 행복으로 가득한 삶은 의미 있는 삶인가

320p, 우리는 세상을 ‘인식’할 뿐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조직은 의미 있는 일을 ‘창조’해주지 않는다. 그곳은 다만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발견’하는 장소일 뿐이다.

323p, 조직이 의미 있는 일을 제공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용인들이 일을 통해서는 물론 일 바깥에서도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게 해주는 충분한 에너지와 자율성, 의지, 소득을 남겨주는 일과 보상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에필로그

331p, 내가 현대인의 일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한 가지 이유는 단지 직장 내의 불의, 경영술수, 혹은 경제적 불안정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적인 큰 그림을 살펴보았을 때, 나는 삶 자체가 더 편해져야 할 시대에 이르러서도 유급고용이 삶을 지배하는 것을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332p, 아마도 우리가 그토록 많은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333p, 이 책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보편적인 규범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일과 여가의 균형을 맞춰가며 사는 것을 선택할 것이고, 누군가는 사실상 내내 일만 하면서 사는 것을 택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전혀 일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 일의 다각적인 고찰

일과 관련된 서적은 넘쳐난다. 일할 때 시간 관리 잘 하는 법, 상사와 부하의 마음 잘 읽는 법, 직원에게 동기 부여하는 법, 직장 내 여성의 처세술 등 종류를 구분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유명 경영인들의 자서전까지 합세하였다. 그러나 어느 일면을 다루거나 단편적인 기술을 알려주는 내용들이 많다. 이런 책들은 내용이 깊지 않다 보니 수명도 짧게 마련이다. 물론, 고전처럼 시간이 지나도 빛을 잃지 않는 경영 양서도 있지만 말이다.

<일의 발견>은 일을 매우 다각적인 각도에서 고찰한다. 일의 의미의 변천 과정,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 일의 사회적 위치 등에 관한 역사를 철학적 경영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으로 접근한다. 그야말로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망이다. 일과 관련해서는 단편적이고 얕은 내용의 서적을 주로 보아온 나로서는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시간이 지나더라도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도 있었구나.

특히, 일을 역사적으로 짚어본 것은 인상적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일은 신의 저주였으므로, 일은 노예들이나 하는 저급한 것이었다.. 초기 기독교인들도 물질적 이득 보다 신앙의 추구를 더욱 중시했으므로, 일은 평가 절하되었다. 로마의 몰락 이후부터 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바뀌었다. 6세기에는 베네딕트 수도원을 중심으로 속죄 수단으로 노동을 받아들였고,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일이 ‘창조’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에서는 일은 인간의 소명이었다. 속세의 삶을 강조한 칼뱅과 루터 등의 종교 개혁가들은 일을 구원의 수단으로 여겼다.

미국의 일의 역사는 노예제로 시작된다. 17세기 미국 개척자들은 신대륙으로 무임으로 이동하여 그 대가로 계약제 노예로 일했다. 19세기 까지는 장인 밑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사실 이 시기는 오로지 미국에 대한 이야기였다.)

20세기에는 일의 본질을 변화키는 세 가지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것은 바로 과학적 관리법, 복지 자본주의, 경영에서의 인간관계 접근이다. 과학적 관리법에서 일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것으로 노동자들은 기계와 같이 관리된다. 복지 자본주의 개념은 노동자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 이는 노동자들의 심리까지 통제하려는 의도였으며, 목적은 회사에 대한 충성과 헌신이었다. 1980년대에는 기업문화, 팀워크, 리엔지니어링 등의 개념이 부각되었다. 일에 재미 열정 등의 심리적 요소까지 들어가게 되었으며, 직원은 충성하는 조직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들은 구조조정이라는 회오리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 비판의 희열

나는 저자가 현대 경영의 이면을 드러내 보인 부분에서 속이 뜨끔함과 함께 시원함까지 느꼈다. 다음은 그 몇 구절이다.

“복지 자본주의의 이면에 자리 잡은 일반적인 생각은 고용인들을 행복하게 하거나 그들의 이익이 그들 자신의 계급적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닌, 고용주의 이익과 결합되는 공동체에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1990년대의 커다란 아이러니 중 하나는 실제 경영에 있어서는 구조조정을 강조했던 반면, 당시의 경영서들과 경영학적 수사법들은 ‘헌신’, ‘충성’, ‘신뢰’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헌신’은 노동력을 줄이고, 근로자들의 작업량을 두 배로 늘린 회사들이 특히 필요로 하는 덕목이었다. 회사가 고용인들에게 제공하는 안정성과 충성이 줄어들수록 오히려 그들에게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회사의 이윤을 창출한 대가로 근로자들에게는 파티나 열어주고, 고위 관리자들에게는 엄청난 상여금과 스톡옵션을 지급하는 조직에는 무언가 부정직한 것이 있다. 이것은 승자 독식의 사고방식이다.”

“정체되거나 하락한 임금을 설명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끌어들이는 혐의는 ‘세계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이다.......이러한 경제 상황이 종종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주들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짓밟거나 묵과한다는 것이다.”

구조 조정은 계속 당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생계가 달린 근로자들로서는 매우 불안하고 앞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그러니 경영자들은 작업량을 늘리고도 헌신을 요구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회사 사정이 어려졌다면, 그것은 나라 경제와 세계 경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많은 이윤이 발생하여도 그것이 고르게 분배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보통 고위 관리자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짐작한다. (사실 보통의 근로자는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도 잘 모른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이던 현상들의 이면의 의도를 이 책을 통해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예상치 못했던 수확이었다. 하지만 씁쓸하기도 하였다. 한편, 일하면서 생각 없이 묻혀 지내지 말라는 경종이기도 했다.

- 수많은 예시 그 효과

그러고 보니 이번 연구원 과제로 제시된 책은 모두 많은 예시와 인용을 담고 있다. <일의 발견>도 그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그러나 각각 역할은 다르다. <미완의 시대>는 역사가의 자서전인 만큼 역사적 사실과 저자가 겪은 일화들이 담담하게 풀어지며 내용을 풍성하게 하였다. <코리아니티>에서는 저자의 주장과 견해를 뒷받침하고 살려주는 근거로서의 몫을 했다. 한편, <일의 발견>에 제시된 예시와 인용들은 일에 관한 다양한 사실, 견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면서 이해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키케로 등의 고대 철학자부터 피터 드러커 같은 현대의 경영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과 예를 끌어내어 재배치한 저자의 노고 또한 감탄스럽다.

때로는 예시의 나열로 그치고 마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눈 크게 뜨고’ 보지 않으면 저자의 견해는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이 부분에서 저자의 의견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면서 비판을 가하고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무엇을 주장하고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비판하려는 생각을 접었다. 일을 여러 방면으로 되짚어보면서, 독자들에게 화두를 제시하고 이끄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며 의도이다.

- 동양에서의 일의 역사와 의미는 ?

이 책을 읽으면서, 내용이 서양 그 중에서도 미국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서양과 동양의 일 개념 차이로 불교를 예로 든 문단이 단 하나 있었다. 물질적 세계는 정신적 세계보다 덧없고 열등한 것으로 여겼다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다.) 물론 저자가 미국인이고 그 곳에서 연구한 사람인지라 그 편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동양이 다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못내 아쉬웠다.

나도 동양에서의 일, 특히 한국에서의 일의 의미와 그 변천사 특히 근현대와 그 이후에 대해 당장 몇 자를 이 자리에서 적어보고 싶다. 그러나 불행히 나는 이 방면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여, 풀 만한 것이 없는 것이 애석하다. 기회가 되면, 이 분야의 책을 찾아 읽어 보던가, <논어>나 <주역> 같은 동양의 고전에서 일에 관해 풀어 놓은 부분을 찾아 볼 생각이다.
IP *.204.8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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好瀞
2007.03.26 09:22:04 *.244.218.10
이 글 다시 보니, 역시 어제 올릴 때 보던 거랑 다르게 보입니다.
아쉬운 점도 여기저기 눈에 띄네요.
올리기 전에 몇 번을 보았는데도 그 때는 왜 안보였는지...
전부터 느낀 거지만, 같은 글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옵니다.

날림으로 쓴 글이 아니라면, 정성을 들인 글이라면,
글을 마치고 난 후에도 그 여운이 오는 듯 합니다.
사부님이 전에 '하루 이틀 그 내용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를 언급하셨는데, 그 말씀에는 이런 뜻도 있지 않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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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27 02:41:37 *.140.145.63
뜻하지 않은 수확을 올리는 것만큼 책읽기를 즐겁게 만드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많이 경험했던 기억이지요.

그리고 아마도 조직안에서 고용주들의 괘씸한 일면을 한번이라도
느꼈왔던 이들이라면 저자의 고용주들에 대한 융단폭격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민선님의 댓글을 읽다 보니 오병곤 연구원이 자주 강조하는
'초고는 가슴으로, 재고는 머리로'라는 문장이 생각나네요.
그래도 전 이런 얘기를 들려주고 싶군요.

저는 제가 과거에 쓴 글을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몰아서 읽어보며
감탄하곤 합니다. 그 당시의 현장감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당시 제 사고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가끔씩은 정말 내가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었다니 하는 뜻밖의
월척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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