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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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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1일 20시 49분 등록
미완의 시대(에릭 홉스봄 자서전)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오늘날까지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 역사가이자 영국 공산당이 해체될 때까지 공산당원을 유지한 공산주의자. 스탈린과 소련의 붕괴로 공산주의의 마지막 자존심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채 혁명적 꿈을 안고 살아가는 열정의 소유자.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에릭 홉스봄은 1917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세상의 빛을 보았다. 태어나 얼마되지 않은 2살 때 부모님에 의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하였고, 빈에서 살던 중, 1929년 홉스봄의 아버지는 돈을 벌거나 빌리러 다녀 오는 도중 쓰러져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으며, 2년반뒤에 어머니도 36살의 나이로 아버지의 뒤를 따르셨다. 그후 집안의 어려움으로 다시 1931년 늦여름 베를린으로 이주하였으나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유럽대륙의 파시즘과 전쟁의 위험을 피해 1933년 다시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였다.
영국에 와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마르크스 주의에 심취하여 공산주의가가 되었으며, 고등학교를 마친 후 1936년 케임브리즈 킹스칼리지에 입학하여 역사를 전공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36년에 공산당에 가입하여 공산당원이 되었다. 공산주의자로서 1946년부터 1956년까지 ‘공산당 역사가들의 모임’에서 활동하였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을 가기전 마지막으로 일기장에 기록한 그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에릭 존 어니스트 홉스바움. 호리호리하고 젓가락 같고 구부정하고 못생기고 머리는 금발인 열여덟 살 반 먹은 녀석. 이해력이 빠르고 피상적이지만 일반 상식이 대단히 많고 이론적이고 보편적인 영역에서 남다른 아이디어도 풍부하다. 거드름을 피우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데 문제는 본인도 이것을 믿기 때문에 그만큼 더 위험하고 또 때로는 먹혀들 때가 있다는 것. 사랑에 빠지는 적은 없고 욕정을 승화하는데 상단한 재주가 있어 보이는데, 자주 그런건 아니지만 자연이나 예술을 감상하면서 맛보는 희열로 표현되기도 함. 도덕심은 전혀 없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쳤음. 어떤 사람은 그를 몹시 역겨워하고 어떤 사람은 좋아하지만 대다수는 그냥 우습게 봄. 혁명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아직까지는 신통한 지도력을 보이지 못했음. 작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자료를 주무를 수 있는 역량과 끈기가 모자름. 태산을 옮겼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만 하지 신념은 없음. 허영과 자만에 빠져 있음. 겁이 많음. 자연을 정말로 사랑함. 독일어를 까먹고 있음.”
1947년 런던 버벡 칼리지의 교수가 되어 주로 노동자와 사회인을 교육하였다. 또한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의 특별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나중에는 미국에서도 강의 활동을 하였다.
저서로는 처녀작 『원시적 반란자들』(1959), 『혁명의 시대』(1962), 『자본의 시대』(1975), 『제국의 시대』(1987), 『극단의 시대』(1994),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1994), 『예술의 힘』등이 있다.

솔직히 나의 대학생활 동안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을뿐더러 이념쪽(특히 공산주의 같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기회가 “에릭 홉스봄”을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다. 물론 ‘혁명의 시대’나 ‘자본의 시대’ 같은 책 제목은 들어본적이 있긴 했지만 저자의 이름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이념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두지 않은 이유가 하나 있다.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 중의 하나를 대학교 시절 만났던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의 순수함과 순박함이 마르크스에 의하여 완전히 바뀐 것이었다. 소위 준 ‘공산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그와의 대화는 옛날 이야기 말고는 도통 통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는 나에게도 그가 알고있는 이론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가 거부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방대한 양과 한 세기를 정리해나간 수많은 사건들, 그리고 나의 무식함으로 인한 용어의 해석 등 여러 가지가 어려웠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가는 중간중간에 인터넷을 통해 사건들의 내용과 용어들을 곁가지로 공부해 나가니 더욱 내용이 알차짐과 동시에 한 사람의 인생이 시대에 의해 이렇듯 변화될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저자의 삶은 지금도 진행중이지만 이념논쟁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을 듯 하다. 왜냐하면 그의 삶 자체를 끌어온 것은 바로 마르크스에 의한 공산주의 였으며 그 중심축이 되었던 소련과 스탈린 주의가 결국 파산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그의 꿈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자, 현재의 자본주의 제국사회도 대안이 없을 뿐 옳지 않다고 보는 그의 시각 때문일 것이다.
책 중간에도 나오지만 한 동독작가가 쓴 희곡 ‘원탁의 기사들’의 한 문구를 인용하여 쓴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의지와 열정이 왜 사그러지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

“성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어디 포기하는 것이 우리뿐이겠는가?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들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20세기에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들을 기억조차 해주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가 비유한 성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가슴깊이 새겨야할 문구라고 생각한다. 성배는 우리 각각의 꿈이자 사상이며, 인생의 목표이자 유토피아일 것이다. 또한 그는 인생의 종반기에 왔음을 인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향하여 자문하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꿈꾸던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런 식으로 삶이 풀려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부질없고 어리석기조차 하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한 세기를 살아온 위대한 역사가이자 지식인인 사람을 평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세계의 수많은 대사건을 먼저 겪은 인생의 대선배로서 아직도 갖고 있는 그의 열정과 꿈은 본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내 자신이 세계를 바꾸리라는 생각은 해 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하기 어렵겠지만 그의 원대한 포부와 변치않는 꿈, 끊임없는 노력은 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배워야만 할, 아니 꼭 실행해야만 할 중요한 점이라 하겠다.


2. ‘내 마음에 들어 온 글귀’

어떤 면에서는 이 책은 개인의 경험으로 그려낸 세계사가 아니라 세계사의 경험의 내용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아니, 카를 마르크스의 말을 약간 고쳐서 써먹자면 “인간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가되 자기 마음대로 [그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선택한 상황 속에서 [그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주어졌거나 물려받았기 때문에 바로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속에서” 아니, 인간을 둘러싼 세계가 선택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데 발판이 되는, 늘 똑같지는 않지만 늘 제한된 수의 선택항을 내놓는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극단의 시대』의 뒷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머리말 : 가장 별스럽고 끔찍한 한 세기, 13P)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내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은 한 세기의 4분의 3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인 지질학적 퇴적물을 벗겨내 그 속에 묻혀 있던 낯선 사람을 드러내거나 찾아내서 다시 뜯어 맞추는 것을 뜻한다.
(제4장 베를린 : 바이마르의 종식, 103P)

육체적 경험과 맹렬한 격정이 가장 깊이 맞무린 활동은 누가 뭐래도 섹스이겠지만 그 다음 가는 것은 바로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대중 시위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이 “집단 황홀경”은 피억업자에 대한 연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완벽하고 총체적인 지적 체계가 주는 미학적 매력, 새로운 예루살렘을 염원하던 시인 블레이크와 비슷한 약간의 소망, 속물 근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적 혐오감과 함께 내가 공산주의에 빨려든 다섯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제5장 베를린 : 갈색과 빨간색, 127~129P)

앞으로 올 사회는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규칙과 확고부동한 기대의 구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기장에다 이렇게 썼다. “사회주의 국가는 묵은 관습의 단점은 없애되 장점은 살려 나가는 새로운 사회주의 관습을 만들어내야 마땅하고 또 만들어 낼 것이다.” 개인의 완전한 자유와 규칙이 없는 사회를 염원하면서 반란과 혁명에 뛰어 들었던 여느 운동가들과는 달리 보수당 성향의 공산주의자 기질이 이때부터 싹텃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6장 섬나라에서, 142~143P)

그 3년 동안 젊은이는 지적으로 실제로 어떻게 성장했을까? 첫째, 나는 그 전에도 그렇고 그 다음에도 그렇고 그때처럼 특히 문학 방면의 책을 다방면으로 골고루 읽은 적이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은 것일까? 간단하게 답하자면, 마르크스의 시각으로,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역사적 시각으로 세상을 풀이하고 싶었다.
(제6장 섬나라에서, 164~165P)

내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사회 안에서 예술가와 예술(사실은 문학)이 차지하는 역할과 성격, 마르크스주의의 표현을 빌리자면 “상부 구조는 어떻게 토대와 연관되는가?” 하는 주제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를 꼼꼼이 분석하여 그 바탕 위에서 사회주의 체제를 점쳤다. 모든 정황, 모든 연결고리와 관계를 빠짐없이 고려하여 자본주의 문학을 분석하면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해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거창한 예언은 얼마 못 가서 나도 관심을 잃었지만 열일곱 살 때 나 스스로에게 던졌던 역사적 질문은 역사가로서 나의 연구 방향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나는 “이런저런 시대에 씌어진 시의[좀 더 넓게는 사상의] 내용과 형식을 규정하는 (사회적) 영향력을 분석”하려고 노력한다.
(제6장 섬나라에서, 167P)

우리가 활기를 잃지 않았던 이유는 세가지였다. 첫째, 우리의 적은 오직 하나, 그러니까 파시즘과 영국 정부처럼 파시즘을 막으려 하지 않는 세력이었다. 둘째, 우리는 스페인이라는 전쟁터에서 실제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중략) 학생 공산당원은 무엇보다도 좋은 성적을 따서 나중에 쓸모 있는 인재가 되는 것이 당을 돕는 길이라는 논리였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낡은 세상이 무너지고 나서 펼쳐질 새로운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안다고 생각했다. 그 점에서는 다른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판단 착오를 한 셈이었다. (중략) “우리가 살았던 1930년대는 올바른 가치를 내걸고 악의 무리와 정면 대결을 벌였던 시절이다. (중략) 요즘 사람들은 세상 일에 대해서 예전의 우리와 똑같은 문제 의식을 느끼면서도 우리하고는 달리 자기들의 의분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또 거기서 좌절감을 느끼지만 우리는 불행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에 골고루 감정과 열의를 쏟아 부었다.” 아니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굳이 나누려고 애쓰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제8장 반파시즘과 반전 투쟁, 202~203P)

공산주의가 우리 세대의 가장 똑똑한 남녀를 왜 그렇게 많이 빨아들였는가 하는 물음과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은 20세기의 역사에서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 내 친구 안토니오 폴리토는 “20세기에 가장 위력을 떨친 악마의 하나는 정치적 열정”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처럼 20세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 그리고 그런 열정의 핵심을 꿰찬 것이 공산주의였다.
(제9장 공산주의자가 되다, 215P)

자유, 평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애는 위대한 사회 혁명의 단계를 맞이한 순간에는 현실이 될 수도 있으며 그것을 체험한 혁명가는 사람들이 흔히 낭만적 사랑을 그릴 때 쓰는 말로 그 감격을 묘사한다. 혁명가는 성자를 빼놓고는 어느 누구보다도 높은 윤리의 잣대를 자신에게 들이밀며 그런 순간이 닥쳤을 때는 정말로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 ․․․․․ 그때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회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안에서 형제가 되고 자신의 개별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공동의 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점에서 이상 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이럴 수가 있는데 왜 나머지 경우에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제9장 공산주의자가 되다, 230P)

괴물처럼 모든 것을 삼키는 관료주의는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기보다는 끊임없이 닦달하면서 당근과 채찍을 주었다. 그들이 만들어가던 사회는 나쁜 사회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를 주고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교육도 시켜주고 의료 혜택, 사회보험, 연금이 보장되고 선량한 사람들이 정직하게 일하는 아주 체계가 잡힌 공동체에서 휴가를 보내고 수준 높은 문화를 서민도 즐길 수 있고 야외에서 운동도 하고 여가 활동도 할 수 있는 사회였다. 신분 차별이 없는 사회였다. (중략) 서독보다 훨씬 뒤떨어졌다는 사실, 곧 동독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치 챌 수 있었던 그런 단점 말고도 또 하나의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마치 지난 세기에 부모가 고집이 세거나 말을 안 듣는 미성년자 자식한테 엄격하게 군 것처럼 위에서 군림하는 당국에 의해 국민에게 강요되었다는 것이다. 동독 국민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아간다는 주인 의식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제9장 공산주의자가 되다, 250P)

1980년대말 동독의 한 극작가는 「원탁의 기사들」이라는 희곡을 썼다. (중략) 우리는 성배를 영영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배가 아니라 성배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는 아서 왕의 말은 옳지 않은가? “성배를 포기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어디 포기하는 것이 우리뿐이겠는가?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자유와 정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들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20세기에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들을 기억조차 해주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제9장 공산주의자가 되다, 254P)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우위에 있다는 신념과 확신도 그대로 있었고 공산주의 이념이 이 세상을 바꾸어놓으리라는 믿음도 여전했지만 우리의 희망, 아니 적어도 나의 희망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파국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진보의 폭풍에 휘말려 날개를 접을 수 없는 “역사의 천사”처럼 불가피한 비극 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제11장 냉전, 298P)

정치와 우정은 어쩌면 별개였는지도 모른다. 무니아 포스탄이 써준 추천서는 하나같이 독화살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기야 우정이라는 것이 가끔 만나서 가벽게 어울리는 것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우정도 불신이라는 냉전의 쓰라린 맛에 물들 수 있었다.
(제11장 냉전, 303P)

공산주의가 위기에 봉착한 1956년에 역사가 모임도 갈라졌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적어도 나만큼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치적으로 흔들림이 없는 충성스러운 공산당원으로 남아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자유 진영”의 반공주의 공세가 너무 거칠었기 때문이기도 한다. 하지만 열성 당원으로 남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중략) 결국 우리가 모스크바에 여전히 충성을 바친 것은 세계 사회주의 의 대의는 아무리 영웅적이고 존경할 만한 나라라도 소국의 지원 없이도 추구할 수 있지만 소련 같은 강대국의 지원 없이는 이룰 수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제11장 냉전, 315~317P)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는 소련을 그 이상 형편없을 수가 없는 체제로 본 것이 아니라 과거가 되었건 현재가 되었건 서양 제국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동반자로 보았고 비유럽지역이 경제사회 발전의 전범으로 삼아야 할 나라로 여겼다. 공산주의자는 물론이거니와 식민지에서 벗어났거나 벗어나려고 애쓰던 지역의 정부와 운동도 모두 미래가 소련의 존립에 달려 있었다. 공산주의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소련을 지원하고 수호하는 것이 여전히 국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그래서 우리는 의혹과 의구심을 애써 삼키고 소련을 옹호했다.
(제11장 냉전, 322P)

당은 슬기롭게도 나를 축출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의 선택이었지 나의 선택은 아니었다. 1933년 이후로 당원이라는 사실은 나한테 중요한 뜻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투사에서 지지자 내지는 동조자로 다시 태어났다. (중략) 내가 당에 남은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잉글랜드에서 영국 젊은이로 공산주의에 입문한 것이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져 갈 때 중유럽에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내가 공산당에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그저 파시즘하고만 싸운다는 뜻이 아니었다. 세계 혁명을 위해 싸운다는 뜻이었다. (중략) 결국 내가 공산당에 남은 것은 그래서가 아닌가 싶다. 아무도 내 등을 떠밀지 않았을뿐더러 나가야할 피치못할 이유도 없었다.
(제12장 스탈린과 그후, 355~357P)

개인의 삶은 역사라는 더 넓은 세상에 얹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대를 잘 타고 났다는 것이었다. 시대는 우리 세대를 따라 잡았다. 특히 우리같이 자본주의의 눈부신 성공을 환영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사회주의자들의 뒤통수를 쳤다.
(제13장 40대에 맞는 전환기, 364P)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스무 해가 넘게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이 나라들에서 사회 혁명은 정치적 의제에 올라와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쉰이 넘으면 아무리 인상적이고 가슴 뭉클하더라도 대규모 시위에서 무조건 혁명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중략) 1933년 이후의 파란만장한 사태 변화를 몸으로 겪은 기성 세대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의욕이 넘치더라도 혁명은 정치적 목표가 있어야 했다. 혁명가들은 국내가 되었든 해외가 되었던 낡은 정치 체제를 뒤집어 엎고 새로운 정치 체제로 바꾸어서 새롭고 더 나은 사회를 세우거나 그 밑바탕을 깔아놓고 싶어 했다. (중략) 젊은 반항자들의 심리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은 누구한테서도 간섭받고 싶지 않다는 그런 구호였다. 자아나 초자아가 하고 싶은 것을 알량한 권위나 완력을 앞세워 못하게 막는 것을 무조건 쓸어버리고 싶다는 개인적 이상은 있었을지 몰라도 이 젊은이들은 공산주의가 되었건 그 무엇이 되었건 사회적 이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제15장 1960년대, 411~413P)

신자유주의를 비판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거의 사반세기 동안 노벨 경제학상이라는 엄청난 후광으로 화려하게 꾸몄지만 실은 세계 자본주의와 날이 갈수록 죽이 잘 맞는 경제학이라는 “과학”의 권위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
(제16장 정치 관람자, 454P)

부자와 부자한테 하도 설득당하여 부자가 없으면 망한다고 믿는 정부는 빈자에게 안겨줘야 하는 것은 경멸이 아니라 양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의 조직력이 약해지고 공산주의가 해체된 지금 위협은 이성의 적에서 생겨나고 있다. 바로 종교나 민족․부족 근본주의자, 외국인 혐오주의자, 지금 인도, 이스라엘, 이탈리아 정권을 쥔 세력처럼 파시즘의 후예거나 파시즘에 고무받은 정당들이 그들이다. (중략)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사회주의냐 야만주의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사회주의에서 등을 돌린 것을 세계는 다시금 후회할 것이다.
(제16장 정치 관람자, 459P)

역사는 설명하고 일반화해야 한다고 그들도 믿었지만 역사는 자연과학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브로델이 말하는 “총체사”이든 “모든 인간 과학의 기여를 뭉뚱 그리는 지구사”이든 내 식으로 말하자면 “호모사피엔스가 어떻게 왜 구석기 시대에서 핵 시대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를 따지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의 역사”가 되었든 그들은 역사는 포괄성을 추구하는 작업이라고 믿었다. (중략) 과거의 구석구석을 모두 흥미롭게 드러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도대체 과거에 대해 질문을 던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과거를 탐구하는 것이 바로 역사다라는 명제는 그래도 아직 도전을 받지 않았다. 그런 명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중략) 역사적 모델을 세우거나 “왜라는 굵직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시들해지고 “분석에서 묘사로”, 경제 구조와 사회 구조에서 문화로, 사실을 되찾는 것에서 감정을 되찾는 것으로, 망원경에서 현미경으로 역사 연구의 기본틀이 바뀌었다.
(제17장 역사가들 속에서, 478~479P)

이런 사람들에게 역사는 세상을 해석하는 길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아 발견의 수단 아니면 기껏해야 집단적으로 승인을 얻어내는 수단이었다. 이런 입장이 예나 지금이나 위험한 까닭은 비센샤프트(과학)라고해서 역사라는 지적 학문적 활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담론 세계의 보편성을 좀먹기 때문이다. (중략) 진짜로 있었던 과거가 아니라 자기 목적에 부합되는 과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정되고 날조되는 역사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는 위대한 역사신화학의 시대다. 역사 전문가들이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제17장 역사가들 속에서, 481~482P)

가르치기와 글쓰기의 핵은 모두 소통이다. 두 가지를 모두 즐기는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이다. (중략) 배우도 교수도 관객과 청중을 위해 공연하는 연기자다. (중략) 교수는 배우보다 더 힘든 일을 한다. 공연을 보면서 정서적 만족을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새겨듣고 써먹어야 할 구체적 정보와 사상을 청중에게 듬뿍 안겨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제18장 지구촌에서, 488P)

역사책을 쓴다는 것은 한 나라의 정치와 세계의 정치에 깊이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인데 정치와 역사를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제18장 지구촌에서, 497P)

나는 어릴 때부터 꿈꾸던 삶을 살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이런 식으로 삶이 풀려버린 것을 아쉬워하는 것은 부질없고 어리석기조차 하겠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젊었을 때 내가 그 글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도 비슷한 말을 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제18장 지구촌에서, 508P)

프랑스 언어와 문화가 세계에서 맡았던 역할을 지키려는 프랑스의 끈질긴 수호 노력은 좌절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본질적으로 복수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류를 동질화시키려는 세계화 조류에 맞서서 모든 언어를 지키고 민족과 문화의 특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또 어차피 질 수밖에 없다고 처음부터 접고 들어가서는 안 되는 싸움이다.
(제19장 마르세예즈, 546P)

자기도취, 미국적인 것의 의미를 자꾸만 따지는 버릇, 지적으로 무게를 잡는 것은 미국 문화의 세가지 고질병이었는데...
(제22장 루스벨트에서 부시까지, 645P)

다른 나라와는 달리 미국의 국가 이념에서 미국은 그저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줄기차게 이루어내는 나라라야 한다. 다른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우월하고 전 세계가 인정하는 모범으로 자리 잡은 최고의 나라, 가장 위대한 나라로만 미국은 스스로를 인식한다. 한 축구감독의 말대로 “승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부다.” 외국인한테 미국이 참 희한한 나라로 보이는 것은 그런 점 때문이다.
(제22장 루스벨트에서 부시까지, 652~653P)

미국적 가치관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것은 평등주의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개인주의적인, 다시 말해서 반권위주의적이고 이율배반적이지만 기묘하게 합법화된 무정부주의다. 평등주의의 유산이라고 한다면 높은 사람한테 먼저 숙이고 들어가지 않는 태도 정도라고나 할까. 누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미국 안에서 또는 미국에 의해서 일상적으로 힘이 사용되는 방식이 유럽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거칠고 잔인하기조차 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제22장 루스벨트에서 부시까지, 654P)

우리의 문제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 혹은 자신의 한계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인다. “미국의 세기”가 정점에 이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고충이다.
(제22장 루스벨트에서 부시까지, 660P)

파스칼이 말한 “머리가 모르는 가슴의 사연”,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인연이 깊거나 자기가 선택한 집단한테 느끼는 정서적 일체감에 내가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일체감은 다른 누군가에 맞서서 정의되는 것이므로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느 누군가와는 이질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중략) 낡은 체제가 허물어지고 낡은 정치 형태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국가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새로운 체제, 국가, 민족 운동, 일체감을 느끼는 집단의 입맛에 맞게 새로운 역사를 생산하는 것은 세계적 산업이 되었다.
(에필로그, 669P)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에필로그, 672P)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덮으면서 마음에 남는 감동은 상상 이상 이었다. 처음 알게된 한 사람의 저자가 글을 통하여 이렇듯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아마도 책이 아니라 영화였다면 절대 덜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 2가지는 말하고 싶다. 만약 내가 저자였다면 독자의 읽는 편의를 위해 이 2가지는 꼭 보충하였으리라 생각한다.
첫째, 홉스봄이 태어나면서부터 이어지는 친척들의 구도이며, 개개인에 대한 상세한 설명, 시대를 이리저리 건너뛰며 나오는 그의 무수한 일화들은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로서 이해하기에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 물론 나의 서양역사에 대한 무지함과 이념에 대한 무관심이 제일 큰 요소였겠지만 직장인으로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읽다 보니 중간중간의 내용들이 이어지지 않아 전체적인 틀을 이해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만약 책 처음이나 중간에 홉스봄의 친척구도 즉, 족보와 그가 이동한 나라와 연대기등을 그림으로 추가하였다면 더욱 쉽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둘째, 저자의 원고 자체가 그러한지는 모르겠으나 번역본으로 보는 ‘미완의 시대’는 국어실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쉽게 내용이 들어오지 않았다. 수많은 전문용어와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지명(유럽, 미국, 라틴계열의 이름은 2,3번 읽어도 들어오지 않았다)까지 있는데다 문장의 길이가 길어 제대로 끊어읽기를 하지 않으면 전혀 내용파악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로 인해 이해가 되지 않는 단락은 최소 2,3번씩 읽어야만 했다.(마치 노래방에 가서 랩을 할 때 숨쉴 곳을 찾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독자의 폭이 넓으면 넓을 수록 이 부분은 더욱 신경썼으면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위의 단점은 이 책의 장점에 묻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앞선다. 워낙 좋은 점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서전을 통한 역사의 습득”이라는 일석이조의 장점을 가지기 때문이다. 개인의 전체적 삶을 조명함과 동시에 개인의 삶을 쫓아가다 보면 어느새 한 세기의 역사흐름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나라의 역사만이 아닌 유럽과 미국, 소련 그리고 제3세계였던 남미까지 한꺼번에 아우르는 그의 역사 서술능력은 왜 그가 세계적인 역사학자일 수 밖에 없는 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또한 기억에 의한 접근이 아닌 저자의 뛰어난 기록습관에 의한 서술이라 많은 일화와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책의 또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에 대하여 몇가지를 서술하자면,
첫째, 홉스봄은 본인의 삶 자체를 성공했든 아니든 간에 만족스러운 삶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본인의 강점이 있듯이 저자도 본인의 강점과 꿈을 쫓아 역사학자, 공산주의자가 되었으며 90세의 나이까지도 초지일관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만족스럽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삶을 사는 동안 공산주의자로서,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차별을 받았을지언정 일관된 그의 삶은 누가 뭐라고 하던 간에 행복한 삶이었으라 생각한다. 일관된 삶이 비록 쉽진 않았겠지만 “세상은 바뀌었지만 희망은 변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은 그의 삶 자체를 대변해 주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저자의 ‘올바른 세상을 원하는 순수함’이다. 저자는 영국 공산당이 해체되고 마지막 중심축이었던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도 계속 공산주의자로 남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올바른 세상을 원하는 순수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물론 이 이면에는 현재의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점 특히, 정부 권력자들에 의한 노동자들의 핍박과 어려움을 반드시 풀든가, 아니면 그의 사상인 사회민주주의로 회귀하든가 하는 전제가 있겠지만 그가 보수적 공산주의자로 남은 이유는 전 세계, 전 인류가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소망때문이 아니었나란 생각이 든다.(젊었을 때 그는 물론 혁명에 의한 변화를 요구하였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보편타당성을 원하는 방향으로 다소 수정이 된 것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끊임없는 도전의식’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백번 공감하는 말이다. 지금 전세계는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벗어나 새로운 위험을 맞고 있다. 종교나 민족․부족에 의한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테러에 의한 위협도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문제점 또한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다. 빈부의 격차, 돈에 의한 살인․자살의 증가, 기아의 위협까지. 이러한 연유로 저자는 현재의 젊은이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개인적 이상보다 더 큰 포부와 꿈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으며, 미국은 ‘세기’가 정점에 오른 국가로써 뚜렷한 방향성 없이 나아가지 말고 제 할일을 하라고 끊임없이 역설적으로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저자의 말처럼 지금 21세기를 맞이하기까지의 시간에는 수많은 영웅과 선민들이 생명이 요구되었다. 지금의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며 하루하루 더욱 신중하고 고민하며 살아가야만 하겠다. 나 하나의 노력이 비록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좋아지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 삶이라 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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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2 22:45:47 *.140.145.63
양재우님 반갑습니다.. 저는 꿈벗과 연구원들을 좋아하는 대표적인
방외지사입니다.. 저자가 일기장에 썼다는 그 당시 자신에 대한 평가는
신랄하고 냉정하면서도 웬지 정확해 보이는군요..^^

그리고 성배에 대한 해석이 인상적이군요.. 요즘에는 성배를 있는
그대로의 단편적이고 물질적인 실체로 이해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분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프에서 조만간 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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