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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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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2일 23시 47분 등록
- 미완의 시대 (원제:Interesting Times) -



1.저자에 대하여


에릭 홉스봄 (Eric John Ernest Hobsbawm, 1917 ~ )

마르쿠스주의 좌파의 영국 국적 역사가.


1) 생애

1917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잉글랜드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계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빈과 베를린에서 청소년기를 지내고 영국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였다. 1947년부터 런던대학교 버벡칼리지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교직생활을 시작했으며, 1950년 <페이비언주의와 페이비언들, 1884 ~ 1914〉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2년 은퇴 후에도 활발한 저술활동을 벌이며 연구하고 있다. 1984년 이후에는 영국 아카데미와 미국 아카데미 특별회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시대 시리즈 네 권(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을 필두로 다수가 있다.


2) 정치와 사상

1931년 베를린 김나지움 시절 사회주의 학생단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공산주의와 인연을 맺었다. 1936년에는 영국공산당에 입당하여 90년대 초반까지 활동하였다. 1946년부터 1956년까지는 공산당 역사가 그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대해서는 비판 연설을 하기도 했으며, 쿠바 아바나에서 체 게바라를 위한 통역을 해주기도 하였다. 토니 블레어 집권 전후 영국 노동당의 현대화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나이 90이 넘은 지금까지 꾸준한 좌파 지식인이다.

어느 인터넷 블로그에서 그의 공산주의 배경을 적절히 서술한 부분이 있어 인용한다.

"홉스봄은 1936년 케임브리지 시절 공산당에 가입하여 1991년 해체되기 얼마 전까지 남아 있었던 "후회하지 않는 공산주의자"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때 베를린의 평범한 학생이었던 홉스봄은 자신이 역사의 전환기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치 바깥에 있기란 불가능했다." 몇 달간의 이 베를린 생활 때문에 홉스봄은 평생의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독일에서 홉스봄과 같은 청년에게 좌파 말고는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자유주의는 이미 실패했고, 홉스봄 자신도 만약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분위기상 자신도 나치 민족주의자가 되었을 거라고 회상한다. 그때는 누구나 세상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대였다. "

"2차 세계대전은 5000만 명의 희생을 초래했지만, 그것은 히틀러를 물리치는 대가였다. 소련 공산 정권의 학살을 축소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에도 새로운 시대의 탄생은 늘 희생을 동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 수백만의 생명이 희생된다 해도 마르크스 유토피아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그 믿음이야말로 바로 히틀러에 대항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였다."

"홉스봄은 자신이 공산주의에 빨려든 이유를 이렇게 나열한다. 피억압자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집단 황홀경"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완벽하고 총체적인 지적 체계가 주는 미학적 매력, 새로운 예루살렘을 염원하던 시인 블레이크와 비슷한 약간의 소망, 속물근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적 혐오감이다.(5장「베를린:갈색과 빨간색」)"


3) 평가

- 넓은 시야와 광범위한 분석

그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에서, 그는 다루는 범위는 그가 태어났던 시기인 제1차 세계대전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이르기까지 시대적인 고찰은 물론이고, 저자가 오래 있었던 영국 뿐 아니라 중유럽과 동유럽, 제3세계, 북남이 아프리카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포괄한다.

- 균형잡힌 시각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좌파임이 분명하지만,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무조건적으로 찬양하거나 신봉하는 듯한 뉘앙스를 주지 않아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어느 한 곳에 빠져 있지 않은 보편성을 추구하였다. 「미완의 시대」에필로그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역사관을 나타낸다.

“역사는...“일체감”이라는 유혹도 멀리해야 한다. 역사에 필요한 것은 기동성과 넓은 영토를 내려다보고 살필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자기의 뿌리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다...우리의 이상은...지구의 절반을 누비고 다니면서 극지방에서도 열대지방에서도 잘사는 철새라야 한다. 시대착오와 지방색 이 둘은 참으로 무서운 역사의 죄악이다.”

- 꾸준한 신념

그는 소년기에 몸담은 공산주의를 일평생 지속한다. 20세기는 이념적으로 변화가 많은 격변의 시기였다. 많은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자신의 노선을 포기하거나 전향하였다. 저자가 공산주의자로 평생을 보낸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배경과 살아온 인생 역정의 차이는 무서웠다...영국에서 자란 지식인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던 시간을’ 또렷이 기억하는 중유럽의 지식인 같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나는 반파시즘 연대와 인민 전선의 시대에 속한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정치 문제에 대한 나의 전략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세계 혁명과 그 거점인 10월 혁명에 대한 희망과 마치 탯줄처럼 단단히 이어져 있던 세대에 들어갔다. 성장한 곳의 풍토와 혁명 운동에 투신한 시기가 남들하고 달랐기 때문에 나는 홀가분하게 공산당을 박차고 나올 수 없었다... 아무도 내 등을 떠밀지 않았을 뿐더러 나가야 할 피치 못할 이유도 없었다. (12장「스탈린과 그 후」)”



2. 마음에 들어온 글귀


1장 프롤로그

27p, 자서전을 쓰는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옛날로 다시 가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지도에 담는 것이다. 지도가 없이 어떻게 그 굴곡 많은 일생의 여정을 쫓아갈 수 있고, 언제 그리고 왜 우리가 머뭇거리고 돌부리에 채여 넘어졌는지, 우리가 기댔고 얽혀들었던 사람들 속에서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2장 빈과 유대인 소년

38p, 나의 어린 시절이 정치적 의식화의 과정처럼 보이는 것은 지나고 나서 보니까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 당시에는 노는 것과 공부하는 것, 가정과 학교가 나의 삶을 규정했다.

41p, 현실과 책에서 배운 것과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세계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54p, 나는 “유대인 아닌 유대인”으로 자유롭게 살았다. 그것은 유대교를 신봉하거나 민족의식이 강한 평론가가 ‘자학하는 유대인’이라고 꼬집는 잡다한 부류하고도 달랐다. 나는 조상들이 믿었던 종교의 관습을 지켜야 한다는 심정적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다. 한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연대를 요구하는 작지만 호전적이고 문화적으로 낙후했으며 정치적으로 공격 일변도로 나아가는 민족 국가에는 더더욱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3장 힘들었던 시절

77p, 아무리 내 인생에서소중한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고 그 때부터 생각한 모양이다.

80p, 내가 어려운 상황을 무사히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내가 현실 세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살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4장 베를린:바이마르의 종식

90p, 죽은 과거와 혁명의 수렁에 빠져 있던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사이에 임시로 마련된 중간역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이 잘 안 날 것이다.

102p, 베를린 생활을 하면서 나는 일평생 공산주의자로 살아가게 되었다. 아니면 적어도 누가 보아도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또 이제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나도 알지만 학생 때부터 헌신했던 정치적 활동 없이는 인생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103p,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 스스로를 생각하는 것이다.

5장 베를린:갈색과 빨간색

124p, 아무튼 나는 정치적으로 비판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니라 낭만적 유격대원 내지는 축구팀을 응원하는 팬의 심정으로 이 소식에 접했다.

128p, 나는 내 공산주의의 바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 “집단 황홀경”은 피억압자에 대한 연민,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완벽하고 총체적인 지적 체계가 주는 미학적 매력, 새로운 예루살렘을 염원하던 시인 블레이크와 비슷한 약간의 소망, 속물 근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적 혐오감과 함께 내가 공산주의에 빨려든 다섯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6장 섬나라에서

138p, 내가 영국에서 학자로 평생을 살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을 밟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열일곱 살의 나이에도 “나의 미래는 마르크스주의 아니면 학자 또는 그 둘 다로 풀렸으면”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말이다.

140p, 내 경우에는 재즈가 첫사랑의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외모가 워낙 자신이 없다 보니 나는 보나마나 인기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육체적 관능과 성욕을 억눌렀다. 지적 유희와 말에 온통 점령당한 나의 삶에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절대적 감성을 심어준 것은 바로 재즈였다.

149p, 수에즈 사태 이후로는 영국이 한때 제국이었다는 사실조차 아무도 믿지 않았다. 대중 문화는 영국인의 애국심과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독일에 끝내 승리한 사실을 찬양하면서 그 허전함을 채웠다.

150p, 1933년의 영국은 명문화되지 않았지만 구속력을 갖고 있었던 규칙과 의식과 발명된 전통이 삶을 이끌어나갔던 자족의 섬이었다.

153p, 자기 나라이면서도 낯설기만 한 이 나라에 1933년에 첫 발을 내딛은 10대 소년은 어떻게 적응했을까? 어떤 면에서는 나는 가족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한테 가장 좋은 친구였고 또 유일하게 가까운 친구였던 사촌들이 열어놓은 좁은 문과 통로를 통해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에 온 엘리스처럼 영국에 들어갔다.

166p, 우리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헤겔을 제대로 뒤집어엎었다고 믿으면서 뿌듯해했지만 그들이 발 딛고 선 땅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가 마약처럼 뿌리치기 어려웠던 까닭은 사상이 워낙 총체적이었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삼라만상의 이론까지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삼라만상을 보는 틀은 제공했다. 무기체와 유기체의 본성을 인간세계와 연결하고 집단과 개인을 연결하고 끝없이 유동하는 세계에서 모든 상호 작용의 기본이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

167p, 지금도 나는 “이런저런 시대에 씌어진 시의[좀 더 넓게는 사상의] 내용과 형식을 규정하는 (사회적)영향력을 분석”하려고 노력한다.

8장 반파시즘과 반전 투쟁

202p, 우리가 살았던 1930년대는 올바른 가치를 내걸고 악의 무리와 정면 대결을 벌였던 시절이다. 우리는 그것을 즐겼다. 그리고 케임브리지의 급진파 학생들 대부분이 그런 일에 시간을 많이 투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세상일에 대해서 예전의 우리와 똑같은 문제 의식을 느끼면서도 우리하고는 달리 자기들의 의분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또 거기서 좌절감을 느끼지만 우리는 불행하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9장 공산주의자가 되다

215p, 공산주의가 우리 세대의 가장 똑똑한 남녀를 왜 그렇게 많이 빨아들였는가 하는 물음과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한테 어떤 뜻이었는가 하는 물음은 20세기의 역사에서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한다......“20세기에 가장 위력을 떨친 악마의 하나는 정치적 열정”이라고 말했지만 이것처럼 20세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말은 없다. 그리고 그런 열정의 핵심을 꿰찬 것이 공산주의였다.

223p,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그들이 생각한 비밀주의는 소영웅주의나 협잡과는 거리가 멀었다.

231p, 양차 세계대전과 그 사이에 유럽에서는 오직 혁명에서만 이 세상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고 말하기는 너무나 쉬웠다...... 공산주의가 그리는 낙원은 세 가지 점에서 달랐다. 첫째, 마르크스주의는 우리가 기필코 승리한다는 사실을 과학적 방법을 입증했다. 둘째, 국제주의가 살아있었다. 우리 운동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었지 특수한 집단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셋째, 첩보, 기밀, 심문, 무장, 저항 같은 가장 힘든 상황에 언제라도 몸을 던질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235p, 우리가 정말로 몰랐거나 모르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 옆에서 벌어진 참극을 부정했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10장 전쟁

258p, 서유럽 열강은 히틀러와 싸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산주의를 무찌르는 데 관심이 많은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당의 노선을 쉽게 수용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내가 개인적으로 맛본 경험은 전쟁이 내 인생에서 6년 반을 앗아가 버렸다는 말로 가장 잘 요약된다.

270p, 영국은 아직 패하지 않았다는 생각, 당연히 전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바로 윈스턴 처칠이 국민을 위해 대변해 준 생각이었다.
다른 대안을 생각해 낼 수가 없어서 전쟁을 수행하는 민족이었던 우리는 이제 영웅심에 불타는 민족으로 바뀌었다.

284p, 그곳은 재앙의 자리였다. 그렇지만 그 피의 자리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여전히 죽음이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그곳은 비극의 자리라기보다는 희망의 자리였다.

11장 냉전

298p,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우위에 있다는 신념과 확신도 그대로 있었고 공산주의 이념이 이 세상을 바꾸어놓으리라는 믿음도 여전했지만 우리의 희망, 아니 적어도 나의 희망은 발터 벤야민이 말한 파국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진보의 폭풍에 휘말려 날개를 접을 수 없는 “역사의 천사”처럼 불가피한 비극 의식과 맞닿아 있었다. 역설이라면 역설이었지만 예전의 신념을 그래도 쉽게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고 많은 사람의 경우에는 어렵사리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 시대에 서방 어디에서나 기세를 떨치던 반공주의였다.

303p, 냉전 시대에 자유주의자가 떠들어낸 논리 중에서 정말로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은 공산주의자는 누구나 적국 소련의 첩자이며 따라서 공산주의자는 지식 공동체의 일원으로 남부럽지 않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12장 스탈린과 그 후

337p,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고 그해 말 소련의 군사 개입이 단행된 이후로는 아무리 맹목적인 열혈 공산당원이라 하더라도 제 정신이 박힌 이상은 당이 봉착한 위기를 부정할 수 없었다.

338p, 우리의 미래를 구속할 말과 행동의 내용을 끊임없이 선택하면서 견디기 어려운 긴장 속에서 버텨야 했던 그 몇 달을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339p, 우리의 정치적 미래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몰랐지만 우리는 공산주의자로서의 신념을 잃지 않고 1956년의 위기를 넘겼다. 공산당을 스스로 떠났거나 공산당에서 내몰린 사람 중에서도 압도적 다수는 그대로 좌파로 남았다.

343p, 우리 손으로 공산당사를 쓰지 않으면 반공사상에 젖은 학자가 대신 쓰기 마련이었다.

355p, 1933년 이후로 당원이라는 사실은 나한테 중요한 뜻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투사에서 지지자 내지는 동조자로 다시 태어났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몸은 영국 공산당 당원이었지만 마음은 내가 생각하는 공산주의 이념에 부합되었던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이었다.

356p, 배경과 살아온 인생 역정의 차이는 무서웠다......영국에서 자란 지식인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던 시간을” 또렷이 기억하는 중유럽의 지식인 같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나는 반파시즘 연대와 인민 전선의 시대에 속한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정치 문제에 대한 나의 전략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세계 혁명과 그 거점인 10월 혁명에 대한 희망과 마치 탯줄처럼 단단히 이어져 있던 세대에 들어갔다. 성장한 곳의 풍토와 혁명 운동에 투신한 시기가 남들하고 달랐기 때문에 나는 홀가분하게 공산당을 박차고 나올 수 없었다...... 아무도 내 등을 떠밀지 않았을 뿐더러 나가야 할 피치 못할 이유도 없었다.

13장 40대에 맞는 전환기

359p, 별 볼일 없는 고개를 넘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역사에서건 삶에서건 하나의 획을 긋는 사건을 체험했구나 하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들 때가 있다.

378p, 세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세상이 아무리 경제와 기술에서 눈부신 발전을 거두었다고는 하지만 세상의 안정은 겉보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았다......지구의 다른 곳은 사정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얼마 안가서 깨달았다.

15장 1960년대

411p, 우리는 이 나라들에서 사회 혁명은 정치적 의제에 올라와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쉰이 넘으면 아무리 인상적이고 가슴 뭉클하더라도 대규모 시위에서 무조건적인 혁명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414p, “큰 일”이 기존의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개인의 행동 안에 고착된 인습적 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 아래 종래의 정치판을 갈아엎고 종국적으로는 전통 좌파의 정치 행태에도 마침표를 찍으려는 시도가 된다.

17장 역사가들 속에서

461p, 모름지기 역사가라면 자기와 똑같은 역사가들만 읽는 글을 써서는 안된다.

470p, 양극화된 냉전과 이념 대립에도 불구하고 역사 연구 방법론의 쇄신을 부르짖은 다양한 학파의 개혁파들은 같은 길을 가면서 똑같은 적과 싸우고 있었으며 본인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472p,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30여 년 동안 역사학계의 보수파는 역사가 자유롭게 연구되는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에서 치고 올라가는 개혁파와 버거운 싸움을 보였다.

476p, 비유럽사는 식민지가 옛날의 제국주의 국가에서 속속 독립하고 때맞추어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면서 부각되었다. 세계사를 서양사 중심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역사로 보는 시각은 세계화가 눈에 띄게 이루어진 1960년대에 나타났다......유럽, 미국, 나머지 지역에서 연구되던 역사학들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 역사학에 접하는 대중들은 공존했지만 접촉은 거의 없었다......역사가 국민국가의 틀에서 벗어나는 데 철저히 실패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런 지역색이야말로 내가 평생을 몸담은 역사라는 분야의 주된 취약점이 아닌가 싶다.

481p, 역사가 길고 짧고를 떠나 국가와 체제, 정체성을 추구하는 집단, 냉전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수면 아래 은폐되어 있었던 힘들이 역사에 가하는 정치적 압력은 유례없이 강해지고 있고 현대 언론도 장삿속으로 역사를 전에 없이 키워주고 있다. 진짜로 있었던 과거가 아니라 자기 목적에 부합되는 과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저오디고 날조되는 역사가 늘어나고 있다. 현대는 위대한 역사신화학의 시대이다.

18장 지구촌에서

506p, 지구촌은......끊임없이 이합집산을 하는 이런 주체들의 교점이 만들어내는 집합이다......진정한 거점은...... 사람과 사람이 어울리는 지역에 뿌리를 둔 네트워크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새로운 환경에서 혹은 영구적으로 혹은 반영구적으로 둥지를 틀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일 수 있다. 이웃처럼 우리는 그들 안에서 살고 그들도 우리 안에서 산다.

508p,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도 이렇게 속삭이는 작은 유령이 있다.“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 편히 지내서는 안 되지.”

23장 에필로그

662p, 미국은 세계 질서의 하나밖에 없는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누가 세계를 위협하는지도 자기 혼자서 정의했다......9.11은 소렴이 무너지고 나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나라가 단기적으로 자신의 힘은 무한하며 그 힘을 무제한 써먹기로 마음먹은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증명했다. 하지만 우위를 과시하는 것 말고 그 힘을 쓰는 목적은 대단히 불투명하다.

665p, 20세기를 80년이 넘게 살다 보면 정치 권력과 제국, 제도가 얼마나 가변적인가를 저절로 배운다......나는 세계의 강대국들이 마이너 리그로 강등당하는 것을, 천년은 갈 것처럼 보였던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 혁명 정권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다.

667p, 역사는......“일체감”이라는 유혹도 멀리해야 한다. 역사에 필요한 것은 기동성과 넓은 영토를 내려다보고 살필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자기의 뿌리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다......우리의 이상은......지구의 절반을 누비고 다니면서 극지방에서도 열대지방에서도 잘사는 철새라야 한다. 시대착오와 지방색 이 둘은 참으로 무서운 역사의 죄악이다.

668p, “우주 쪽으로 슬며시 비껴서 있다”는 나에게도 해당된다. 역사가에게도 그것은 바람직한 자세다......그렇지만 내가 그 나라 시민으로 태어난 나라도 포함해서 어떤 나라에서도 나는 꼭 국외자라고까진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내가 살던 곳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는 느낌은 못 가졌다.

669p, 일체감은 다른 누구인가에 맞서서 정의되는 것이므로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은 어느 누군가와는 이질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것은 참극으로 이어진다.

672p,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3. 내가 저자라면


일단 구성을 보자. 1장부터 16장까지는 대체로 연대순이고, 17장과 18장은 역사가로서 저자의 견해 서술이며, 19장부터 22장까지는 저자와 인연이 깊었던 지역인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라틴아메리카, 제3세계 여러 나라와 미국에 대한 회상이다. 역사가의 자서전이지만 연대기적 서술에만 머무르지 않고, 역사가로서의 저자 자신을 피력한 17장과 18장을 넣은 구성은 적절해 보인다. 19장부터 22장까지 그의 관심국가들을 회상한 부분은 공간에 따르는 구성으로서, 앞부분에서의 시간대에 따르는 서술을 보완한다.

좀 더 세부의 구성을 보자. 여기서 아쉬운 점으로 느껴지는 바가 있다. 전체의 내용으로 보면 빼도 좋을 듯한 예시며 등장인물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이고 저자가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은 감안하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예시며 등장인물들은, 전에 내용을 접한 적이 있거나 잘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저 생소하고 머리에 잘 안 들어올 수 있다.

많은 예시와 등장인물은 내용을 풍성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요 없는 부분은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맥을 끊어놓는다. 전체의 내용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잔가지를 조금 더 쳤더라면, 그를 잘 모르는 독자들과 근현대사가 취약한 독자들에게 부담이 덜했을지 모른다. 어떤 책이든 타겟 독자층이 모든 사람일 수 없다. 어느 부류이며 집단일 수 밖에 없다. 저자가 이 책의 독자층을 근현대사 배경지식과 관심이 어느 정도 있고 저자에 대해서도 낯설지 않은 층을 대상으로 했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실제로 그의 책들은 대중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는 종류의 책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반 다수의 독자들에게는 부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문체를 보자. (사실 이 부분은 ‘내가 역자라면’이라는 제목을 달아야 좋을 듯 하다.) 이 책의 영어체 원문은 문장이 상당히 호흡이 긴 것으로 추측된다. 난해한 표현도 많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쉽지 않았겠으나 역자는 생소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표현으로 번역을 적절히 하였다. 근현대사에 대한 식견을 꽤 갖추고 있어 뒷받침이 되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수식에 수식이 꼬리를 무는 명사구가 있는 문체를 그대로 옮겼다는 것이다. 한 문장이 열 줄에 달하는 것도 종종 눈에 띄었다. 영문에서는 이런 식의 문장이 자주 있지만, 우리나라 말의 구조와 비교하면 어색한 구조이다. 이런 문장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주부와 서술부 사이에서 헤메기 쉽다. 이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독자의 몫인가? 어쨌든 내가 역자였다면 중간에 한 번 끊어주고 표현을 조금 쉽게 바꾸어, 호흡을 좀 더 가뿐하게 했을 듯 하다.
IP *.142.24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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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7.03.12 23:34:00 *.140.145.63
김민선님의 리뷰에서 느껴지는 첫번째 느낌은 '깔끔한 분석'이군요.
중간중간 소제목으로 한방씩 시원하게 정리해주신 덕에 리뷰자체도
빡빡해지기 쉬운 이 책의 특성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독자와의 호흡과 소통에서 이런 측면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이 책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분들에게 정갈한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깔끔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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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3.13 00:50:46 *.72.153.12
저도 이기찬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김민선님 저자부분 정리한 것 한눈에 쏙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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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이
2007.03.13 09:19:45 *.56.151.105
홍차에 띄워진 레몬향이 입맛을 돋구어 차를 마시기전 꼴까닥~ 침을 삼키게 할 만큼.. '미완의 시대'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한다. 뭘까.. 호정이 가진 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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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3.13 12:16:11 *.244.218.10
과찬이십니다.
여러 분들이 올리신 다른 글들을 읽을 수록, 시간을 보낼수록,
제 자신의 부족함을 더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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