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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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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23일 22시 35분 등록
역사 속의 영웅들(Heroes of history, 2001)
: 윌 듀런트(Will Durant) 저 / 안인희 역 / 황금가지 / 2002년
- ‘[]’ 안의 숫자는 page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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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저자의 대화: 소고
‘기억을 증진시키는 가장 좋은 약은 감탄하는 것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역사 속의 영웅들’과 ‘윌 듀런트’를 오래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특히, 그의 ‘힘차고 간결하고 사색적인 언어’와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의 핵심을 몇 마디 말로 찌르는 통찰력은 평생 기억할 것이다.

듀런트의 책을 훌륭하게 번역한 안인희는 ‘옮긴이의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대체 얼마나 이상한 존재인가? 그토록 잔인하고 그토록 위대하고 그토록 허망하면서 또한 그토록 아름답다.” ‘역사 속의 영웅들’을 옮긴 그였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거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리라.

이 책에서 듀런트는 조금은 냉철하면서도 담담한 관찰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위대한 이들의 열매와 빛을 보여주고 때로는 감탄한다. 동시에 그들이 가졌던 어둠과 약점을 가볍게 벌려 놓는다. 그러면 어느새 우리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을 구경하는 아이가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호기심뿐이다.

'역사 속의 영웅들'을 읽으면서 나는 두 가지 즐거움을 얻었다. 대가의 숨결과 통찰력에 감탄했다는 점이 첫째다. 잘 드러나는 것 말고 자칫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그의 통찰력을 하나만 볼까. 딱 한 줄이다.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을 경우 발명의 시대는 문제를 풀기보다는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낼 것[495]’, 이 한 줄이 의미하는 바는 심오하다. 쉬운 예로 싸움을 들어보자. 사람은 처음에는 주먹으로 싸웠다. 그러다 돌로 싸우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 칼과 총으로 싸우고, 이제는 핵미사일로 싸운다. 싸움의 이유는 주먹으로 싸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 것을 지키고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싸운다. 결국,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싸운다. 싸움의 본질은 같은 수준인데, 방식은 혁신적으로 발전했다. 결과는? 이제 세계대전이라도 나면 지구는 거의 멸망이다.

이 책에서 윌 듀런트가 전해주는 통찰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혁명과 변혁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부의 편중 문제’를 꼽고 있다는 점이다. 부의 집중은 불안을 야기하고 악화되면 혁명을 부른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기원전 133년 아테네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솔론은 평화적으로 개혁을 완수함으로써 사회를 지켜내고 한 높이 더 도약시켰다. 하지만 듀란트는 이런 평화적 개혁은 드문 일이고 기적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솔론의 예와는 반대되는 경우가 책의 곳곳에 등장한다. 한쪽으로 부가 쏠리는 것을 처음부터 막고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반드시 조절을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느 정도 수준’을 알아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부의 집중이 가속화될수록 조절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냐면 부와 권력이 같이 가고, 부를 소유한 사람과 집단이 힘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칼을 댈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이유로 조절의 시기를 놓치고 혁명이 일어나면 사회는 피와 투쟁으로 얼룩지게 된다. 투쟁에서 기득권자들이 지게 되면 그들은 가장 먼저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한다. 더 많이 갖고 있던 사람일수록 잃는 것이 더 많다. 윌 듀런트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문제는 과거 어느 시점에서 이미 일어났었고 그 결과와 해결의 실마리도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는 이미 오래된 과거인 셈이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듀란트의 책에서 얻은 두 번째 즐거움은 매력적인 시대와 조직 그리고 사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솔론,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혁명, 로마제국의 부흥을 이끈 ‘철학자 왕들’, 아테네 ‘황금 시대’의 문학, 프란시스 베이컨, 예수회 등등. 이 책은 보물이 아니다. 대신에 보물찾기를 도와주는 지도다. 그리고 지도로써 이 책은 보물이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지도다. 나침반을 가진 지도다. 헤맬 수 있지만 방황은 하지 않게 해준다. 또한 이 책은 살아 있는 지도다. 좋은 곳이 어디이고 그곳에 가면서 만나게 될 경유지와 아름다운 절경과 풍치를 넌지시 알려준다. 또한 여행 중에 꼭 만나야할 매력적인 사람이 누구인지도 소개해준다. 하지만 정밀지도는 아니어서 전부 알려주지는 않는다. 너무 자세한 지도는 여행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점을 윌 듀런트는 간파한 듯하다. 현실적으로, 한 권으로 그렇게 자세히 알려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우리를 역사의 유혹으로 이끌고 역사로 화장한 철학은 역사의 지루함을 달래준다.


■ 나의 목소리: 저자되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저자가 될 수 없다. 적어도 이 책은 그렇다. 윌 듀런트는 아흔여섯의 나이로 죽기 직전까지도 ‘역사를 쓰는 철학자’였다. 60년이 넘는 시간을 철학과 역사에 바친 사람이다. 그의 대표작은 동료이자 아내인 에이리얼과 함께 저술한 총 11권의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이다. 여기서 두 사람은 110세기(11,000년) 이상의 시대에 대한 통합된 개관을 제시하였고 이것은 완성까지 50년이 걸린 대규모 기획이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좋을 때 철학을 생각하고, 어려울 때 과거를 돌아보는 그런 소인일 뿐이다. 나는 이런 책을 쓸 수 없다. 저자가 될 수 없으므로, 저자에 대한 나의 느낌을 몇 자 적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역사 속의 영웅들’에 등장하는 위대한 이들처럼, 윌 듀런트 그 역시도 위대한 인물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그랬듯이 그도 어둠과 약점을 가진 한 사람이었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한양대학교 사학과 김현식 교수는 한 서평에서 이 책이 미완성으로 남아 서양 근대의 입구에서 멈춘 점을 아쉬워했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윌 듀런트의 유작이기 때문이다. 존 리틀의 말대로 이 책은 듀란트가 ‘철학으로서의 역사라는 자신의 사유를 전파하는 마지막 시도’였다. 그는 이 책을 위해 23개의 장을 기획했지만 운명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21장을 완성했을 때 50년 넘게 함께한 동료이자 아내인 에이리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에이리얼이 1981년 10월 25일 여든셋의 나이로 떠나고, 열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듀란트의 심장도 멈추었다. 그리고 책도 21장에서 멈췄다.

마지막 작품이고 시간이 부족했던 만큼 21장까지에도 미처 못다 한 이야기가 많아 보인다. 이에 대해 김현식 교수는 ‘중세는 너무 짧고, 단테는 단지 몇 구절이다. 로렌초 데 메디치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사보나롤라는 순간이며, 체사레 보르지아는 이름만 두어 번 등장할 뿐’이라고 적었다. 듀란트의 역사관이 ‘귀족적’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듀란트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런 지적이 타당한 것이지 판단내릴 수 없다(다만, 나는 듀란트가 ‘영웅주의 사관’을 신봉하지는 않았으리라 추측해 본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제목 그대로 ‘영웅’과 ‘위대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이것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기에 내가 보기에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듀란트의 말로 표현하면 이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이것이다. ‘... 수많은 성인(聖人), 정치가, 발명가, 과학자, 시인, 예술가, 음악가, 연인, 철학자들이 살아서 말하고 가르치고 조각하고 노래하는, 정신의 나라, 하늘의 도시...’

영국의 역사가인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역사 속의 문명과 나라의 흥망을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도전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응전을 성공으로 이끄는 주체를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라고 불렀다. 역사의 흐름에서 어느 집단의 존속과 발전을 이끌어나간 주체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였다는 것이다. 유명한 인류학자인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도 같은 주장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역사 전체를 보면 그런 소수는 다수가 된다. 긴 시간이었고 셀 수 없는 사람이 오고 갔기 때문이다. 한 평생 역사와 철학에 천착한 윌 듀런트였지만 다수가 된 창조적 소수, 즉 ‘영웅’ 모두를 다루지는 못했다. 그것은 한 권의 책으로 기획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이 점을 숨기지 않는다. 두 부분만 옮겨 본다.

“이 책의 의도는 문명의 역사를 한정된 지면에 요약해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남겨진 사상과 표현의 걸작을 탐구하고 그 예를 살펴보는 것이다.[73]”, 그는 이 문장 뒤로 해서, 기원전 약 1800년경부터 135년까지의 유대인 역사를 거침없이 개관(그들의 철학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해나간다.

"틴토레토와 베로네제 그리고 총독 궁전의 훌륭한 방들을 아름답게 단장한 다른 화가들에 대해 우리는 공평한 대우를 하지 않았다. 코레지오, 첼리니 그리고 이탈리아를 ‘세계의 빛’으로 만든 다른 헌신적인 영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또한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10년 동안의 작업도 그냥 지나쳤다.[371]", 듀란트는 미켈란젤로를 미흡하게 다룬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그에 대한 감탄으로 몇 문장을 더한다. 거기에 신과 우주 그리고 인간 존재의 신비로움을 두 문장으로(두 장이 아니라) 표현(아니 농축)한다. 이로써 그는 17장 ‘베네치아의 일몰’을 마무리한다.


■ 저자의 목소리: 인용
- ‘인용’에서 별다른 표기가 없을 경우, 저자의 말이다.
- ‘*’ 표시는 간단한 설명과 나의 느낌이다.

[9] 역사는 예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

[10] 내게 있어서 역사란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삶과 현실의 광범위한 전망을-당신의 태도를 현실이나 삶의 특정한 부분을 향해 이끌어가는 광범위한 전망 말이다. ... 당신은 적어도 두 가지 방식으로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과학을 통해서이다. 그것은 외계 현실의 모든 양상을 물들이고 있는 다양한 과학을 공부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광범위한 전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공간 속의 사물보다는 오히려 시간 속의 사건들을 공부하는 것이다. ... 역사는 시간 속의 사건들을 탐구함으로써 철학적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결론적으로 나는 자신이 역사를 쓰는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12] 그는 명성보다는 명료성을 위해 싸운 철학자였다. 눈부시고 힘찬 산문으로 글을 썼으며, 또한 인류는 충분한 영감을 받기만 하면 신들과 동일한 위대성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여겼던 사람이다.
- 존 리틀(Jhon Little)

[17] 대부분의 국가들은 아직도 자연 상태, 즉 사냥꾼 단계에 머물러 있다. 군사적 팽창은 음식, 연료, 혹은 원료를 위한 사냥에 해당한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국민의 먹는 방법이다. ... 국가는 아직 불안하다. 국가의 탐욕은 미래의 필요와 결핍에 대한 방어다.

[18] 어떤 경제 체제도 축적 본능에 호소하지 않고는, 그리고 훌륭한 보상을 통해 더 우수한 능력을 이끌어내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다... 어떤 개인도 어떤 국가도 자기 보존을 위해 싸우려는 의지가 없이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어떤 사회나 종족, 종교도 번식하지 않고는 유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축적의 욕심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산발적 도둑질, 대규모 강도질, 정치적 부정 부패 등이 널리 퍼질 것이고, 부(富)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집중되어 마지막에는 혁명을 부를 것이다.

[21] ... 현재 우리의 이교적인 방종이야말로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증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종은 보통 그 반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연속 장면의 한 가지는 이교적인 방종의 시대에 이어 청교도적인 억제와 도덕적 규율의 시대가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22] ... 역사에는 방종과 그 반대 사이의 이러한 진자 운동보다 더 즐거운 전망이 있다. 나는 저 볼테르와 기본(Gibbon)의 비관적 결론, 즉 역사는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의 기록’이라는 결론에 동의하지 않겠다.
* 윌 듀랜트의 낙관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40] 많은 것들이 죽어야 할 순간에 혁명이 나타난다.

[43~43] 우파니샤드 구루들 중에서 가장 사랑스런 인물 야즈나발키야가 제자인 슈웨타케투에게 이것을 설명하는 말을 들어보자.
“거기 그 무화과 열매 하나를 가져와라.”
“여기 있습니다, 선생님.”
“그것을 쪼개라.”
“쪼갰습니다.”
“거기 무엇이 보이느냐?”
“아주 작은 씨앗들이 보입니다, 선생님.”
“그 중 하나를 쪼개봐라.”
“쪼갰습니다.”
“거기 무엇이 보이느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친애하는 그대여, 네가 감각하지 못하는 이 가장 섬세한 정수(精髓)-바로 이 가장 섬세한 정수에서 이 큰 나무가 자라 나온다. 내 말을 믿어라....... 이 가장 섬세한 정수야말로 온 세상의 혼이다. 그것이 실체다. 그것이 아트만(자아)이다. 타트 트밤 아시-그것이 바로 너다, 슈웨타케투야.”
“선생님, 내가 더욱 많은 것을 이해하도록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그렇게 되어라.”

[85] 철학은 전체의 빛 속에서 부분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큰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이 그 최초의 교훈이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라는 것은 아마도 건강, 아름다움, 진실, 지혜, 도덕성, 행복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가 될 것이다.

[104~108] 솔론의 평화로운 혁명은 역사상 용기를 주는 하나의 기적이었다.
* 솔론(기원전 594년)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음. 그의 개혁방식

[117] 그리스 사람들은 예술이란 삶에 종속된 것이며, 삶은 모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이라고 생각하였다.

[122] 보통 한 시대의 철학은 다음 시대의 문학이 된다. 한 세대 동안 사색이나 탐구의 영역에서 논쟁이 이루어진 사상이나 문제들은 이어지는 세대에 가서 연극, 허구, 시 문학의 배경이 되곤 한다.

[122] 사변적 사색의 깊이에 예술적 형식의 탁월함이 덧붙여졌기 때문에 아테네 황금 시대 문학은 셰익스피어와 몽테뉴가 나타나기 전에는 건드릴 수 없 정도의 높이에 도달하였다.

[134] 부의 한가운데서 빈곤이 늘어났다. 영리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벌 기회를 준 다양성과 교역의 자유는,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전보다 더 빨리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잃어버릴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 가난한 사람들은 법령 제정이나 혁명을 통해 부자들을 약탈할 음모를 꾸몄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항해 방어 조직을 만들었다.
[135] 중간 계층과 부유한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질투심에 힘을 주는 것이라고 여겨 불신하기 시작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불평등한 부에 의해 바보가 되어버린 엉터리 평등이라고 여겨 불신하기 시작했다.
* [134], [135]는 기원전 399년, 플라톤이 활동하던 아테네에 대한 설명이다.

[144] 역사는 신문과 마찬가지로 이름과 날짜는 바뀌어도 사건은 언제나 똑같다.

[150] 통상적으로 ‘미덕’이란 두 극단 사이에 있는 황금의 중간(황금률)을 뜻한다. 정치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계층들간의 타협의 기술이다. 모든 사람은 불평등하게 만들어졌다. 부자연스런 평등이 강요되면 상류층은 즉각적으로 반발할 것이다. 그리고 불평등이 부자연스러운 정도가 되면 하류층이 반항할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 나오는 부분.

[168] 그는 신체가 어려움을 견디고, 입맛은 곤궁을 견디고, 생각은 사실을, 혀는 침묵을 견디도록 자신을 견디도록 자신을 훈련하였다. 적군(로마)의 역사가인 리비우스에 따르면 그는 ‘전쟁터에 맨 먼저 뛰어들고 맨 마지막에 떠나는’ 사람이었다.
* 여기서 그는 한니발을 말한다. 기원전 221년 스페인의 카르타고 군대는 26세의 그를 장군으로 뽑았다.

[172] 로마가 그리스를 군사적으로 정복한 데 이어 천천히 그리스가 문화로 로마를 정복하였다. 이렇게 합쳐진 고전세계의 유산이 자라 로마의 도로들과 알프스를 넘어 북유럽으로 건너갔고, 여가 시간이면 당신과 나에게도 넘어와 있다.
* 윌 듀랜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요약 이상의 명료함’과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79] 이것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 호라티우스
* 10장 로마의 혁명에는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 책에서 놓치면 안 될 부분 중 하나다.

[234] 철학은 논리나 배움이 아니라 이해와 받아들임이다.

[245]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겠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가 19장 26절) 이 말은 세계사를 요약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시장 경제를 아주 훌륭하게 요약해 놓은 말이다.

[282] 르네상스는 두 가지 규율(중세와 종교 개혁) 사이의 막간극이었다.
[284] 르네상스란 시간상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과 사유의 방식이다.
* [282], [284]는 르레상스에 대한 윌 듀랜트의 명료한 표현을 잘 보여준다.

[298] 인간은 자기가 되고자 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이것은 신의 최고의 선물이요, 인간이 받은 최고의 놀라운 축복이다. 짐승은 어미의 몸에서 나올 때 제가 가져야 할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최고의 정신(천사들)은 시작부터 영원히 지속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다. 하느님 아버지는 인간에게만 탄생의 순간부터 모든 가능성과 모든 삶의 씨앗을 주셨다.
- 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307] 그는 너무 빨리 한 가지 일이나 주제에서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에 관심이 있었다. 그에게는 하나의 통합하는 목표, 주도하는 이념이 없었다. 이 ‘보편인(universal man)'은 빛나는 부분들을 이어 붙여놓은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많은 능력들을 지녔기에 그들을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321] 그는 자기 시대 가장 위대한 과학자나 엔지니어나 화가나 조각가나 사상가가 아니었다. 그냥 이 모든 것을 합친 사람이었고 각 분야에서 최고 거장들과 경쟁하였다.
[322] 그는 ‘르네상스의 인간’이 아니었다. ... 그리고 ‘보편인’도 아니었다. 그의 다양성 안에는 정치가나 행정가의 자질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는 르네상스 그리고 아마도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 여기서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말한다.

[321] 하루를 잘보내면 그 잠이 달다. 그렇듯이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음이 달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336] 율리우스 2세(교황): 일이 언제 끝나나?
미켈란젤로: 예술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가 필요하다고 믿는 일을 모두 마칠 때입니다.
*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로마의 시스티나성당 천장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미켈란젤로는 1508년 5월 이 그림을 그리고 시작했고, 완성하는 데 4년 반이 걸렸다. 이 그림은 ‘천지창조’다.

[346] 이것은 가장 정직하고 부도덕한 책이다.
* 니콜로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을 지칭한다. 윌 듀랜트다운 표현이다.

[371~372] 우리는 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악과 선, 고통과 사랑스러움, 파괴와 숭고함을 뒤섞은 듯이 보이는 우주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거나, 혼돈에 질서를, 사물에 의미를, 형태나 생각에 고귀함을 부여하는 지적인 의지를 보면, 우리는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삶과 법칙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 듯한 느낌을 얻는다.

[466] 그렇듯 시간마다 우리는 익어가고
그렇듯 시간마다 우리는 썩어가고
그래서 이야기 하나가 열린다.
- 셰익스피어, ‘뜻대로 하세요(1600년)’ 2막 7장 中
* 나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나는 어떤 이야기인가?

[471] 사람은 이곳으로 오는 것과
여기서 떠나감을 견디어야 한다오.
성숙함이 전부요.
- 셰익스피어, ‘리어왕(1605년)’ 5막 2장 中
* 셰익스피어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은 영원성이 아니라 성숙함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488] 경험의 진짜 방법은 우선 촛불을 켜는 것이다(가설). 이어서 촛불을 수단으로 삼아 길을 비추고, 비로소 적절한 경험을 시작해서...... 그것으로부터 공리를 이끌어낸다(‘첫번째 결실’, 잠정적 결론). 그리고 이렇게 확정된 공리로부터 다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실험 자체가 판정을 내려야 한다.
-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 귀납법에 베이컨의 설명이다. 그는 과학의 철학자였다. 과학과 철학에 그의 방법론과 사상은 큰 영향을 미쳤다. 귀납법은 현대 과학의 방법이 되었고, 경험의 강조는 홉스, 로크, 존 스튜어트 밀에게 경험론 철학의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498] 인간의 오성은 메마른 빛이 아니라 의지와 어떤 주입물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과학은 ‘누군가가 원하는 대로의 과학’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을 참이라고 믿으려 하기 때문이다.
-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 베이컨은 ‘학문의 대혁신’을 위한 첫발자국으로 ‘지성의 배제’를 강조했다[487-488]. 머리 속에서 전(前)개념, 선입견, 억지, 이론 등을 깨끗이 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이성의 무가치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확실한 사실의 수집, 경험, 이성적 관찰, 엄밀한 실험을 강조했다. 그가 보기에 이성은 경험의 적이 아니라 친구였다. 그런 그를 윌 듀런트는 ‘이성의 시대를 알리는 수탉’, ‘이성의 시대의 맨 앞에 자리매김’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IP *.147.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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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5.15 00:07:46 *.72.153.12
승완선배의 리뷰는 잔잔하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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