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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일 20시 53분 등록
저자연구

이부영(1932 ~ )

1932년 3월 황해도 봉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적부터 문학에 흥미를 느껴, 그 분야로 진로를 택하고자 했으나 전쟁통에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밤낮으로 소설만 읽으며 학교 생활을 게을리하던 그는 정신과 실습을 나간 어느날 정신과환자를 진료하는 허술한 체계를 직접 목격하게 되었고, 이에 정신과의 황량함을 개척해야겠다는 역사적 사명감에 도취되어 정신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서울대학교 의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인턴을 시작한 이부영은 정신치료를 배우고 싶었으나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고, 책을 보고 독학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어느날 타임지에서 실존분석에 대한 글을 보고 이것이 공부할만한 분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스위스의 융연구소로부터 초청제의를 받게 되고, 융의 분석심리학을 배우기 위해 스위스로 건너가 1966년 스위스 취리히 융 연구소에서 융 학파 분석가 과정을 수료하고 국제분석심리학회 정회원이 되었다. 이후 독일 및 스위스의 정신병원에서 근무했으며, 귀국후 서울대학교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로 근무했다. 그 외에도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냈고, 1977년 서울대학교에서 정년 퇴임후 한국 융 연구원을 설립하여 융의 정신분석학을 한국에 알리는 역할을 주도하였다. 그는 융 학파의 한국 수장격으로 한국에 분석심리학을 들여왔으며, 분석심리학인 하나의 학문이자 정신치료술로 인식되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융의 저서 및 분석심리학 저작의 번역 및 소개, 논문 발표에 매진해오고 있다. 

그는 2017년 정신의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정신의학계의 실태에 대해 정신분석학의 노거두로서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정도를 가야 하는데 모두 용기가 없다. 현실에 타협하고 거기서 조금 고쳐 이익을 얻고 그러면 안된다. 모두 짜깁기만 계속 하고 있다. 내가 주로 다루는 것은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의 치료이다. 그런 사람들이 분석가가 되기 위해 스스로 환자가 되어 치료(분석)을 받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나를 포함하여 환자 아닌 사람이 없다. 우리도 망상을 많이 갖는다. 병원에 입원을 안 할뿐 얼마나 많은 편견 속에 살고 있는가? 환자에게 투사하는 경우가 많다. 다 환자 탓이고 나쁜 것도 환자 탓이다. 요새 전공의들은 너무 갖춰져 있어 아무것도 안 한다. (중략) 창의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피로해지고. 획일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전공의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대의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86세의 고령임에도 시대를 통찰하는 그의 말은 귀담을만하다. 저서로는 분석심리학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심층을 밝혀보려는 의도를 가진 '분석심리학 3부작'이 유명하며, 그 중에서도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외 한국의 민담을 통해 한국인의 무의식을 탐구한 <한국 민담의 심층분석>, <융 기본 저작집> , <정신건강 이야기> 등이 있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p4
융의 저서와 프로이트의 저서를 비교해 보면 그런 느낌을 더욱 뚜렷이 받는다. 프로이트는 문장도 쉽고 분명한데 융은 문장도 복잡하고 서술방식도 아주 비체계젹이어서 비약이 심하며 신화와 종교의 방대한 숲을 헤치고 지나가야 하므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프로이트보다 융을 택했다는 사실과 많은 학자와 작가들이 융의 이론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p8
이론은 쉽게 머리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몸이 따라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분석적 심리치료의 특징이다

> 이것이 대답의 하나가 될지도 모르겠다

무의식에 대하여

무의식은 살아있다

무의식은 창조의 샘이다
p15
융은 무의식이 의식을 낳는 모체이자 기본 토대라고 보았다. 그리고 억압된 충동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본래부터 창조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p16
무의식은 또 하나의 우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우주를 쉽게 볼 수 없다. 그것은 너무나 크고 깊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더구나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 내가 아는 마음만이 유일한 정신이라고 믿는 사람 앞에서 무의식에 이르는 길은 닫혀 있을 수밖에 없다. '나'의 마음 너머에 '나'를 넘어선 어떤 커다란 의지가 존재한다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세계의 존재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초월적인 세계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세계가 우리의 마음속보다는 어디 하늘 멀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나를 넘어선 존재를 대부분 신이라고 생각한다. 

무의식은 깊고 넓다
p18
무의식은 정말 무의식적이다

p19
개인적 무의식은 개인의 삶의 특성을 나타낸다

무의식에 대한 오해와 의심
p22
호기심이나 지적인 관심만으로는 무의식의 보배를 결코 얻을 수 없다

무의식에서 또 다른 자신을 본다
p24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가 끊어질 때 사람은 마치 한 쪽 폐만으로 숨 쉬는 사람과 같이 옹색한 삶을 살게 된다

p26
우리가 우리의 내면세계, 무의식을 살피지 않으면 무의식의 내용은 바깥세상의 사람이나 집단, 사물에 투사된다. 내 안에 있는 무의식적 성향들을 밖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를 눈멀게 하는 것 - 투사 현상

투사란 무엇인가?

투사는 무의식의 콤플렉스를 깨닫게 한다
p32
무의식에 잇는 것은 무엇이든지 밖으로 투사될 수 있다

p34
무의식의 모든 것이 투사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강력한 감정을 일으키는 콤플렉스가 무의식에서 배열되어 의식의 표면에 떠오를 즈음에 먼저 투사현상이 일어난다

콤플렉스의 심리학

콤플렉스란 무엇인가?
p38
전문적인 말로 하자면 감정적으로 강조된 심상군이라고 한다

p39
콤플렉스는 열등감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우월감, 기쁨, 즐거움, 행복감 또는 분노와 공포, 그 밖의 모든 강렬한 감정이 콤플렉스를 만들고 또한 콤플렉스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다. 콤플렉스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여러 종류의 세포나 조직들처럼 의식과 무의식을 막론하고 인간 정신의 정상적인 구성요소이다.

p40
융이 말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지를 안다. 그러나 콤플렉스가 그를 가지고 있음을 모른다"

p45
꿈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메마른 의식 상태에 있는 사람들

>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 경험만으로 보았을때는 당시의 의식 상태에서 기인하는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p55
자아는 의식의 중심으로서 의식계를 통괄하고 외부세계뿐 아니라 내면세계, 즉 무의식계와 관계를 맺고 교류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특수한 의식의 콤플렉스다

> 자아 역시도 콤플렉스의 일종이라는 사실

p67
자기의 페로조나를 확실히 알려면 자기가 자라온 사회의 전통과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로 가서 자기와 다른 집단의 사고, 판단, 가치관과 부딪쳐 볼 필요가 있다

> 이것이 여행이 필요한 한가지 이유이기도 하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본연의 모습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p70
내 삶의 목표를 페르조나와 일치시켜 페르조나에 따라 살아가면 자기의 본성, 곧 전체정신을 발휘할 수 없게 되고 페르조나와의 동일시가 극도에 다다르면 의식과 무의식의 단절과 해리가 일어나 여러 가지 신체적, 정신적 건강상의 문제가 생긴다. 이러한 현상은 직업생활에 충실한 중년 이후의 사람들에게서 흔히 일어난다.

> 마흔의 사춘기의 학문적 이론적 발생 이유

p71
징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작업이 곧 융이 말하는 자기실현(또는 개성화)이다

> 나에게 맞는 페르조나를 찾는 것이겠지. 나의 본성과 일치하는 페르조나

p73
페르조나는 필요한 것이다. 다만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페르조나의 극복은 그것을 버리는 데 있지 않고, 그 한계를 아는 것에 있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기 자신인 것에서부터 구별함으로써 우리는 페르조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p76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한 개성화는 중년이후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페르조나와의 구별은 중년 이후 내면세계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 시작되는 것이다

> 나의 당면 제 1과제 -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한 개성화 - 변경연 연구원 과정

p78
내향형은 객관세계의 가치보다 주체의 내면적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대신 객관세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고, 외향형은 외부적인 객관세계의 가치를 알고 잘 다루는 대신 내면 세계의 중요성을 소홀히 한다. 각기 그 장점과 단점이 다르다.

p81
분석심리학설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내향형과 외향형뿐만 아니라, 이성으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사람(사고형)과 정으로 판단하고 사는 사람(감정형), 그리고 주로 직관으로 사는 사람(직관형), 감각적으로 사는 사람(감각형) 등 네 가지의 형이 있다.

p84
사고와 감정은 서로 상극이다. 사고형은 감정형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정감을 열등하고 위험한 것으로 본다

감정형이 싫어하는 것이 따지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흥미있는 것은 어떤 학자의 심오한 학설이나 이론이 아니고 그 학설을 만든 그 사람의 개인적인 삶이다.

> 난 사고형, 내 아내는 감정형

p85
사고와 감정이 합리적 판단기능이라면 감각과 직관은 비합리적 판단기능에 해당한다.

직관과 감각 역시 사고와 감정의 관계처럼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 감각형은 감각기관에 들어온 지각에 의존하는 데 비해서 직관형은 지각을 넘어선 내면의 진실을 꿰뚫어 본다

> 난 직관형, 아내는 감각형

p90
직관이란 '무의식적인 방법으로 인식을 유도하는 심리기능'이라고 융은 말한다.

p95
열등기능의 인식은 우월기능이 어느 정도 의식되고 발달한 뒤라야 제대로 될 수 있다. 우월기능조차도 생기지 않은 단계에서는 먼저 숨어 있는 우월기능을 찾아서 그 사람의 장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

p102
선을 지향하는 사람일수록 악한 그림자를 갖는다. 열심히 살지 않고 되는 대로 사는 사람만이 그림자가 없다. 추구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그림자가 있다.

p106
그러나 우리도 남자 못지않게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외침 속에 가부장 사회가 만들어준 뿌리 깊은 열등의식이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하고, 그런 열등의식의 보상으로서는 결코 바람직한 남녀 관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여성은 남성이 아무리 날고 뛰어도 해낼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이 이 사실을 잊고 있다.

p111
중년에 이르면 남자와 여자라는 사회적 역할에 집착하기보다는 그동안 소홀히 해온 내면의 인격, 즉 남성은 여성성(아니마)을 여성은 남성성(아니무스)를 보살피고 이를 의식에 통합하도록 해야 한다.

p112
남성의 아니마는 '기분'으로 표현되고 여성의 아니무스는 '생각' 또는 '의견'으로 표현된다

> 평소와 반대의 표현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부부싸움을 반복하는 사람들, '우리는 성격이 안 맞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보면 무의식의 미숙한 아니마와 미숙한 아니무스가 서로 자극하고 서로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의 과거 생활사를 보면 서로 상대방에게 둘도 없는 이상적 남성상과 여성상을 보고 결혼한 경우이다. 그런데 그들이 서로의 모습에서 본 그 이상적인 남성상과 여성상은 또한 바로 그들 자신의 아니무스, 아니마의 인격상의 일면이었던 것이다.

p119
집단은 항상 인간의 무의식의 신화층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고 인간들은 집단속에서 쉽게 분별을 잃고 무의식의 원형상들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p121
개성화란 그 사람 자신, 즉 그 사람의 전체가 되는 것이다

p129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꿈을 보는 특징적 태도는 "꿈은 감추지 않는다.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 이것은 무의식을 '창조의 샘'이라는 관점으로 보았기에 가능한 자세이다.

p131
상징이란 융에 의하면 결코 남김없이 말로 다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말로 최선의 표현을 하고도 못다 한 어떤 의미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이미지를 남김없이 알고 있는 것처럼 설명하거나 이해한다면 그것은 상징이 아니고 표징Sign으로 설명하고 이해한 것이다

p138
정신현상에는 원인 결과의 원리에 따라 진행되는 현상뿐 아니라 비인과적 동시성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무의식은 절대지를 지니고 있어서 시공간을 상대화할수 있다는 것이다

> 이것이 바로 집단 무의식

p148
융은 선불교에 대하여 여러 긍정적인 논평을 가한 뒤에 서양에 이에 비길 만한 것이 있다면 정신치료일 것이라 말한 일이 있다. 즉 분석을 수행에 비기고 있었던 것이다

p162
임상에서 환자의 고통이 왜곡된 가족관계의 증상인 경우를 너무나 자주 보고 있다

p169
환자가 당신이 하는 말의 내용을 듣고 반응하는지 아니면 당신이 말할 때 손을 이렇게 여러 번 내저은 것을 보고 반응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p180
융의 분석심리학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본래 인간이 전체로서 살게 하는 창조적 원동력이 있다."

p185
융은 항상 자기의 입장은 현상학적 입장이고 자기의 심리학은 사실의 학문이며 그 점에서 자연과학의 입장과 같다고 보았다. "생각은 믿음의 적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융은 동양에는 서양에서 볼 수 있는 종교와 과학사이의 갈등이 없으며 "동양에는 인식하는 종교가 있고 종교적 인식이 있다"라고 했다. 

p190
정신분석에서도 무의식은 점점 소홀히 다루어지고 자아심리학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p192
세상일에는 나의 이성적 숙고와 간단한 자기성찰, 혹은 상식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융이 말했다. 간단한 충고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어린 시절의 본능적 체계를 파헤지면서 복잡하게 분석하는 것은 심각한 기술적 오류라고.
숲이 우거진 길을 산책하면서 복잡한 머리를 식히거나 우선 하룻밤 잠만 자고 난 다음 생각하면 해결될 일도 많다.

> 결국 문제를 보는 우리의 생각과 태도가 문제라는 것


내가 저자라면

융의 정신분석학의 입문서로 아주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알차다. 이전에 이미 융의 책을 읽었고, 정신분석에 관한 내용을 조금은 알고 있어서 그런지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수월했으나, 융의 이론을 모르고 봐도 특별히 어려운 부분은 없는 책이다. 아주 쉽게 잘 쓰여진 듯 하다. 다만, 군데군데 내용의 흐름을 끊는 단락들이 조금 있다. 예를 들면 52쪽에 나오는 느닷없는 공익칼럼은 책의 내용 및 주제와는 별 관련이 없어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저자는 현재 한국 융연구원의 원장 겸 이사장으로 고령에도 불구하고, 제자들과 활발한 연구 및 저술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자는 제자들과 함께 융의 저술에 관련된 책을 1년에 한권씩 출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책 역시 그 일환으로 출간된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융이 만년에 제자들과 함께 일반 대중을 위해 그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 - <인간과 상징>을 펴낸 것과 유사하다.

개론, 입문서라서 용어 설명과 이론에 대한 소개가 주를 이룬다. 쉬운 설명과 해설이 돋보인다. 내가 볼때 단점은 책이 너무 앏다. 물론 그 단점은 내게 연구원 북리뷰 과정에서 최고의 장점이기는 하나, 일반독자들에게 무엇인가 아쉬움을 남길 수 있는 부분이다. 책 한권 가격에 200페이지가 안되면 책이 좀 가벼워 보인다. 너무 쉽게 쓰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수도 있고, 의도적인 것일수도 있겠다. 책의 실제 내용과는 별개로 독자가 책이 부실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독서를 시작할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인간과 상징>을 비롯한 융의 저서들을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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