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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30일 13시 09분 등록
저자연구

캔 윌버(Ken Wilber , 1949~)

캔 윌버는 1949 년 미국 오클라호마시에서 태어났다. 1967 년 그는 듀크 대학교에 진학한다. 전공이었던 의학에 흥미를 잃은 윌버는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동서양의 심리학과 철학에 빠져든다. 이후 듀크를 떠나 네브래스카 대학에 입학하여 생화학을 전공했으나,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그의 첫번째 저서집필에 몰두하게 된다. 1973년 윌버는 그의 첫번째 책인 <의식의 스펙트럼(Spectrum of Consciousness )>을 완성하여 동서양의 심리학을 통합시키는 독창적인 사상가로서의 입지를 마련하게 된다. 2년후 <의식의 스펙트럼>의 요약본인 <무경계>를 출간하였고, 이 책은 지금까지도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그의 책 중 하나로 남게 된다. 

책이 출간되고 난 후 1년 동안 윌버는 자신의 성공을 만끽하고, 곳곳에서 쇄도하는 강연과 행사 참석으로 바쁜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그는 곧 독서와 명상, 글쓰기라는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고, 오로지 집필작업에만 전념하게 된다. 1983년 두 번째 부인 트레야와 결혼 후 유방암으로 투병하는 아내로 인해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오랜 기간 저술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그의 보살핌에도 아내는 1989년 사망한다. 이후 윌버는 저술활동을 재개하였고, 1995년 출간한 <성, 생태, 영성>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숙한 통합이론으로 극찬받게 된다.

윌버는 90년대말에 자신의 저술을 회고하면서 그동안 전개해온 자신의 사상을 네 개의 국면으로 구분하게 된다.

첫번째 단계는 1973년부터 1977년까지로 <의식의 스펙트럼>과 <무경계>가 출간되었던 시기다. 잠재의식, 자기의식, 초의식을 망라한 의식의 스펙트럼을 제시하였고, 성장과정에서 상실한 본래 가지고 있던 상위단계의 잠재력을 회복하게 된다는 낭만적 관점을 취하던 단계다.

두번째 단계는 1978년부터 1983년까지로 '진화 혁명'의 단계다. 낭만주의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발달단계에 따라 의식의 스펙트럼이 전개해가는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게 된다.

세번째 단계는 1983년부터 1994년의 '통합적 비전: 자기, 수준 및 노선'으로 명명되는 단계다. 전반적인 의식의 스펙트럼 수준을 통과해가면서, 비교적 독립적인 방식으로 진화하는 20여개의 발달노선(신체, 인지, 정서, 도덕성, 영성 등)을 추가한 시기이다.

네번째 단계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로 윌버는 이때부터 사상한(Four Quardrants)라는 새로운 개념, 즉 주관적(의도적) 차원, 객관적(행동적) 차원, 간주관적(문화적) 차원, 간객관적(사회적) 차원을 총망라한 가장 성숙한 통합모델을 도입한다. 역사는 최후의 심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전체성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윌버의 결론이다.

1999년에는 그동안의 저술과 논문, 에세이등을 모아 총 여덟권의 <켄 윌버 전집>이 출간되었다. 윌버는 2000년 자신의 통합모델(AQAL)을 적용해 과학 분야와 사회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두뇌집단인 통합연구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콜로라도 주 덴버에 살고 있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머리말
p16
요컨데 <무경계>의 기본 메시지는 제목이 말해주는 그대로, 당신 자신의 근원적인 자각과 정체성 자체에는 본래 아무런 경계도 없다는 것이다.

초판 머리말
p18
우리는 자신의 자각을 인위적으로 본할하고 구분하면서 경험과 경험, 삶과 삶이 서로 투쟁하도록 분열을 만들어낸다. 예컨데 주체 대 객체, 삶 대 죽음, 마음 대 몸, 안 대 밖, 이성 대 본능 등의 분별이 그러하다

1 . 서론 - 나는 누구인가
p24
아무리 철저히 찾아보아도 이런 경험들에서는 그 어떤 정신질환적 환각으로 인한 자학적 고통의 흔적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p25
미국의 가장 위대한 심리학자였던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가 이성적 의식이라고 부르는 일상적 의식은 의식의 한 가지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다. 이 일상적 의식의 주변에는 아주 얇은 막으로 격리되어 있는, 이것과는 다른 의식 형태가 잠재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 이것은 융도 언급한 바 있고, 니체의 경우 이 얇은 막이 붕괴하면서 미치광이가 된다

p26
'자기 정체감'은 몸과 마음이라는 협소한 한계를 훨씬 넘어 확장되며, 우주 전체를 감싸 안는다. 버크가 이러한 자각상태를 '우주의식'이라고 불렀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슬람 교도들은 이것을 '지고의 본성'이라고 부른다. '지고'라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p27
이런 '지고의 본성' 경험이 워낙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인류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교리를 세우고 거기에 '영원의 철학'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본래 순수하고 비이원적인 우리의 의식이 서로 다른 경계와 정체성을 가진 '수준들' 위에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다양한 방식은 기본적으로 이런 '수준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p28
스스로 '나'를 묘사하거나 설명하거나 또는 내적으로 느낄 때마다 당신은 - 자각하든 못 하든 간에 - 마음속에 있는 내적 경험의 세계에다가 일종의 정신적인 선이나 경계를 긋는다. 그런 다음 그 경계의 '안쪽에' 있는 모든 것을 나라고 느끼거나 나라고 부른다. 반면에 그 경계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내가 아닌 것으로 느낀다. 다시 말해, 당신의 정체성은 전적으로 그 경계선을 어디에 긋느냐에 달려 있다

> 이 문단에 윌버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담겨 있다.

p29
소위 '정체성의 위기'란, 그 선을 어디에 어떻게 그을지 결정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요컨데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당신은 어디에 경계를 설정했는가?"라는 의미인 것이다

경계선의 가장 혁명적인 재작도 또는 변경은 '지고한 본성' 체험에서 일어난다. 그 지점에서는 내 정체성의 경계가 온 우주를 포함할 정도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경계선이 전부 없어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p31
생물학적으로는 몸과 마음, 정신과 육체, 에고와 육신을 서로 떼어놓거나 근본적으로 갈라놓은 어떤 근거도 없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이런 분리가 마치 전염병처럼 유행하고 있다. 실제로 심신의 분리와 그에 수반된 이원론은 서구문명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p34
합일의식에서는 그의 정체성이 우주 만물과 일체가 되지만, 초개아적 경험에서는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다만 유기체의 피부 너머로 확장될 뿐이다.

p38
'경계선'은 잠재적인 '전선'이기도 하다. 하나의 경계선은 두 개의 대립된 영토, 전투 가능성이 있는 두 진영을 만들어 내는 법이다. 예컨데 유기체 수준에 있는 사람은 환경을 적으로 보게 된다.

p40
정신분석과 종래의 심리치료 기법들 대부분은 의식과 무의식적 측면들 사이의 근본적인 분열을 치료하여 환자로 하여금 '마음 전체'와 만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치료법들은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재통합시켜서 강하고 건전한 에고, 말하자면 정확하고 받아들인 만한 자아상을 만드는 데 목표를 둔다.

인본주의적 치료의 대부분은 대개 그 목표가 이 지점(정신분석, 심리치료)을 넘어서 '에고'와 '신체'사이의 분열을 치료하는 데 있다. 즉 정신과 육체를 재통합시켜서 전 유기체를 드러내는 데 목표를 둔다

좀더 깊이 내려가면 선불교나 베단타 힌두교등이 있다. 이들은 유기체와 외부환경 간의 분리를 치료해서 온 우주와의 정체성, 즉 지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목표를 둔다. 다시 말해, 이것들은 전부 합일 의식 수준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합일 의식 수준과 전유기체 수준 사이에는 초개아적 대역이 있다.

2 . 그것의 절반
p46
자연은 진실한 개구리와 거짓 개구리를 키우지 않을뿐더러, 도덕적인 나무와 부도덕한 나무, 옳은 바다와 잘못된 바다 같은 것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p50
경계를 긋는 순간 대극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대극의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곧 '경게선 긋기' 과정이기 때문인 것이다

p52
지금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기울인 노력은 대극 중 어느 하나를 근절시키려는 틀에 박힌 시도였다

p53
천국은 모든 대극을 초월한 것이 아니라 한 쌍의 대립 중 좋은 쪽만을 전부 모아놓은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반면 지옥은 고통, 고뇌, 불안, 질병 등등 모든 부정적인 쪽을 모아놓은 곳을 의미하게 되었다

>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니라는 것을. 지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극이 없었던 곳이 바로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낙원이라는 것을. 

p55
모든 대극은 암묵적인 동일성을 공유하고 있다. 양극의 차이점이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그 양극들은 어느 쪽도 다른 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서로 완전하게 분리될 수 없는 상호의존적인 것으로 남는다.

p58
우리가 흔히 화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원인과 결과, 과거와 미래, 주체와 객체와 같은 모든 사물과 사건이 실제로는 단일한 진동, 단일한 파도의 마루와 골에 해당한다

화이트헤드가 말한 것처럼 우주의 개개 요소들은 '근저의 에너지 또는 현상'이 진동하는 양상, 즉 밀물과 썰물인 것이다

계슈탈트에 따르면, 우리는 대비되는 배경과의 관계없이는 어떤 대상도, 어떤 사건도, 어떤 형태도 결코 인식할 수 없다. 예컨데, 빛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어두운 배경 위로 부각된 밝은 형상이다.

p59
정지와 관련시키지 않고는 운동을 지각할 수 없으며, 안락함 없이는 수고로움을, 단순성 없이는 복잡성을, 혐오감 없이는 매력을 지각할 수 없다

따라서 한쪽을 좋아하고 다른 쪽은 몹시 싫어하더라도 그 둘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는 쓸데없는 짓이다. 화이트헤드라면 즐거움과 고통은 자각이라는 단일한 파도의 나눌 수 없는 골과 마루에 지나지 않으며, 긍정적인 마루를 강조하고 부정적인 골을 제거하려는 것은 자각이라는 파도 자체를 제거하려는 노력과 같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p64
힌두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에서 말하는 것처럼, 해방이란 부정적인 것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극'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점에 유념하도록 하자

p66
실재는 양극으로부터 자유롭다 는 모든 전승의 주장은 "실재는 모든 경계로부터 자유롭다"라는 주장과 같은 것이다. "실재는 둘이 아니다"란 말은 곧 "실재는 무경계다"란 의미이다

3 . 무경계 영토

p77
루이 드 브로이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자가 은밀하게 도입된 날, 고전물리학의 거대하고 웅장한 체계는 자신이 그 기반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적 세계의 역사상 이와 비견될 만한 대격변은 없었다"

> 양자혁명이라 일컬어지는 현대 물리학이 야기한 패러다임 쉬프트

고전 물리학자들 눈에 우주란, 시간과 공간이라는 명확한 경계에 따라 서로 분리된 사물과 사건들이 정교하게 조합되어 있는 그 무엇이었다.

p78
하이젠베르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더 이상 애초에 물질의 기본 구성요소라고 믿어왔던 그것 자체를 궁극의 객관적 실체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들은 시간과 공간속에서 그 어떤 형태의 객관적 위치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소립자 당구공이 기존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애당초 당구공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그것은 분리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원자는 개별적인 사물처럼 행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p80
물리학자 에딩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과학이 가장 멀리 발전해간 곳에서,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끌어낸 것은 결국 우리가 자연에 부여했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미지의 해변에서 이상한 발자국 하나를 발견했고, 그 발자국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심오한 이론들을 하나씩 차례로 개발해냈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발자국을 만든 존재를 재구성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보라! 그 발자국은 우리 자신의 것이다."

4 . 무경계 자각
p89
말은 쉬워보이지만 무경계 자각이나 합일의식을 올바로 논하는 것은 물론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논의의 매개체인 우리의 언어 자체가 '경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p94
불교의 위대한 현자 파드마삼바바의 말에 귀기울여보자. "나 자신을 아무리 찾아도 찾아낼 수 없을 때, 거기에서 찾음의 목적은 달성된다. 또한 찾음 자체도 끝난다."

p103
힌두교에선 "탓 트밤 아시", 즉 "그대가 그것이다. 진정한 그대는 궁극의 에너지 그것이며, 우주 속의 모든 것은 그 궁극의 에너지의 현시이다"라고 말한다

5 . 무경계 순간
p113
모든 시대 모든 지역의 깨달은 현자들이 합일의식은 시간의 산물, 즉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즉 무시간적인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p118
신비가에 따르면, 시간 속의 삶은 고통 속의 삶이다. 왜냐하면, 신비가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시간에서 비롯된 또는 시간 속의 문제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p120
영원이 끝없이 지속되는 시간이 아니라 무시간의 현재라는 것을 이론적으로 파악한 많은 사람들은 현재 경험하는 모든 것에, 지금 이 순간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이 무시간의 현재에 접촉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무시간의 현재순간에 접촉하기 위해 즉각적 현재에 대한 오롯한 주의를 목표로 훈련한다.
그러나 이 훈련이 그럴듯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핵심에서 벗어난 시도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 접촉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그런 접촉이 일어날 또 다른 지금 이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시간의 현재 속에 살기 위한 노력에는 이미 시간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p124
'기억으로서의 과거'와 '예견으로서의 미래'가 모두 현재의 사실이라는 점은 모든 시간이 현재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6 . 경계의 생성과 전개과정
p133
'왜 근원적 경계가 생겨나는가?'라는 물음은 실제로 근원적 경계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무엇이 존재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7 . 페르소나 수준 : 발견의 출발점
p149
스펙트럼 상의 하강과 발견의 태동은 삶에 대한 불만이 의식되는 순간 시작된다

p154
경계가 생겨날 때마다 자신의 일부분은 외부로 '투사'된다. 그처럼 투사된 부분은 이제 외부의 , 이질적인, 저 밖에 있는, 담장 건너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p164
동성애자를 미워하는 것은 그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혐오하는 것은, 자신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비밀스런 두려움의 일면을 동성애자에게서 보기 때문이다.

p166
모든 사람이 나에게만 관심을 쏟는 듯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자신의 관심이 그들에게 투사되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진 관심이 투사되어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갖는 관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p167
자신이 그런 특성이 없는데도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야말로 투사의 특징이다.

p176
자아 수준에 대한 - 즉, 페르소나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아 수준으로 하강시키도록 돕기 위한 - 고전적인 방법으로서 정신분석학이 남아 있긴 하지만, 나는 독자가 돈과 시간을 지불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더 이상 선택할 만한 치료법으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 더 효과 좋고 빠른 방법들이 있고, 분석으로 인해 통찰이 왜곡되고, 영혼의 깊이가 축소되는 경향이 있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8 . 켄타우로스 수준
p180
정말로 신체는 그저 내 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더이상 신체와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체 위에서 살아간다.

p183
자아로서의 그는 수의적이고 통제가능한 행위와만 동일시하고, '그 나머지 모든' 자발적이고 불수의적인 작용들에 대해서는 왠지 '나 아닌 것',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느낀다는 것이다.

p199
우리의 일상적인 문제와 근심걱정 대부분은 자아가 간섭하지 않는다면 유기체가 완벽하게 처리할 과정들을 통제하고 조작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예컨데 자아는 삶 속에서 행복, 쾌락 또는 일시적인 기쁨을 만들어내려는 미혹된 시도를 한다. 현재 상황에서의 즐거움은 무언가가 본질적으로 결핍되어 있다고 느끼며, 주변을 세련된 장난감과 장치들로 채움으로써 즐거움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느낌은 행복과 즐거움을 밖에서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환상을 강화시킬 뿐이다. 이 환상은 그 자체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원천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국 자신의 기쁨을 방해하는 바로 그것을 추구하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p202
삶속에서 자아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삶 속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고, 어느 시점까지 그것은 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자아를 넘어선 곳에는 그런 종류의 의미를 넘어선 무엇이 있다. 행위는 감소하고 존재가 증가하는 그런 의미 말이다

p203
숨을 내쉴 때마다 자신을 아무 조건 없이 죽음에 내맡기는 것은 숨을 들이쉴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9 . 초월적인 나
p209
프로이트는 자신의 용기 있고 뛰어난 연구를 자아, 페르소나, 그림자에만 한정시켰다. 한편 융은 이런 수준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연구를 초개아 대역까지 밀고 나갔다. 융은 인간 자각의 초개아적 영역의 주요 측면들을 발견하고 탐구했던 최초의 저명한 유럽 심리학자였다

p211
집단무의식이란 개아적이거나 사적인 것이 아니라 초개인적, 초개아적, 초월적인 것을 의미한다

p217
자신의 괴로움을 관찰하거나 주시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는 괴로움이 없음을, 주시된 혼란에서 자유로운 상태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내면에서 고통을 느끼는 그것 자체는 고통을 갖고 있지 않으며, 두려움을 느끼는 그것은 두려움이 없으며, 긴장을 지각하는 그것에는 긴장이 없다. 어떤 상태를 주시하는 것은 이미 그 상태를 초월한 것이다. 그것들을 앞에 놓고 정면에서 보기 때문에, 더 이상 그것들이 뒤에서 습격해올 염려는 없다.

p220
이와 같은 초연한 주시를 발달시키는 데 성공하며(그렇게 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늘에 떠나니는 구름이나, 흘러가는 강물이나,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물처럼 자각의 장 안에 있는 대상들을 보는 눈과 똑같은 공평한 눈으로 자신의 심신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심신과의 관계가 다른 모든 대상들과의 관계와 동등하게 된다는 것이다

p222
환경속의 모든 대상을 마치 나 자신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신비가들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 않는 보편적인 자비란 이런 초개아적 직관으로부터 샘솟는 것이다

p229
이생에서 이루는 해탈 - 초월적인 나는 모든 전통에서 신성의 빛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원리적으로 초월적인 나는 - 당신이 신을 어떻게 인식하든 - 신과 동일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융의 메시지이고, 또한 미대륙의 원주민, 도가,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기독교를 막론한 모든 성인과 현자, 신비가의 메시지이다. 즉, 당신 영혼의 심연에는 인류의 영혼이 존재한다. 속박에서 해방으로, 마법에 걸린 상태에서 깨어남으로, 시간에서 영원으로, 죽음에서 불사로 이끌어주는 신성한 초월적 영혼 말이다.

> 모든 것들이 결국 하나로 통한다. 5월 신화로부터 시작되었던 의식의 스펙트럼이 미약하지만 한군데로 모이고 있다.

10 . 궁극의 의식상태
p233
라마나가 시사한 것처럼, 합일의식에 이르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궁극의 진실이라고 선언한다.

p235
합일의식은 특정한 파도라기보다는 물 그 자체에 가깝다

p236
기독교 신비가인 에크하르트는 "그대는 심상 없이 또한 수단 없이(길 없이) 하느님을 알게 되리라"고 말한다. 현대의 현자인 크리슈나무르티는 "진리는 가까이 있다. 진리를 찾으려 할 필요는 없다. 진리를 찾는 자는 결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p237
그것을 획득하려 하더라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이 합일의식의 가장 큰 역설이다

p241
영적 수행의 특별한 상태들에 몸을 맡기면, 확실하고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합일의식을 원하지 않는다는 당혹스럽지만 틀림없는 사실이 그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언제나 합일의식에 저항하고, 신을 피해 달아나고, 도와 싸우고 있다

p249
우리가 접근해가야 하는 것은 합일의식 자체가 아니라 합일의식에 대한 이 근원적 저항이다. 합일의식에 대한 자신의 저항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합일의식을 '성취'하려는 모든 노력을 허사로 끝날 것이다

p251
우리를 총체적인 현재로부터 달아나도록 밀어내는 아주 작은 긴장이 안쪽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각이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자연스럽게 머물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p253
전면적인 현재로부터 끊임없이 달아나는 것에는 이런 달아남을 뒷받침해주는 미래가 존재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우리는 활동할 수 있는 '또다른' 시간이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에 달아난다.

사실상 이 달아남이 시간을 창조해낸다. 무시간적인 현재경험으로부터 달아나기 때문에, 우리는 경험 자체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는 환상을 만들어내게 된다. 영원하고 총체적인 현재에 대한 우리의 저항으로 인해, 그것은 그저 스처가는 현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게 해서 경험들이 하나씩 직선적으로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현재로부터 도피하면서 그 경험들로 빠르게 달려가기 때문일 뿐이다.

p254
달아나는 것은 현재경험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시간, 역사, 운명, 죽음에 투사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근원적 저항이다.

p261
기억으로서의 과거와 기대로서의 미래 둘 다가 다만 현재의 사실로 보일 때, 이 현재를 가로막는 얇은 판은 붕괴한다

켄윌버의 사상
300
어린이에서 어른으로의 성장은 낙원에서의 추락이 아니라, 성장의 길목에서 무의식 상태로부터 출현한 하나의 곤경으로 보아야 한다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명쾌할 수가! <무경계> 는 내가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던 것들을 총망라해주었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종교와 신화, 깨달음에 대해 내가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인 것 같다. 인간의 언어와 이 세계의 구성물들을 가지고 설명가능한 범주에 있어서는 가장 탁월한 분석과 분류(경계 긋기?^^)라고 생각된다. 인문학적인 내용이지만 공돌이들이 좋아하는 체계적인 분류와 정리가 탁월하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의 파편들이 켄 윌버를 통해 탄탄하게 가공된 상태로 보기 좋게 재배열되어 먹기 좋게 밥상에 차려진다. 불과 23살의 나이에 이런 책을 썼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무경계>는 윌버의 첫 저서인 <의식의 스펙트럼>의 요약본으로 그의 저서 중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책이다. 심오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풀어낸 것이 인기의 비결이라 생각된다. 책 안에는 정신분석에서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게슈탈트 치료에서 초월명상에 이르기까지, 실존주의에서 베단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심리학과 정신요법과 신비사상을 총망라되어 있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며 개괄적인 도입부와 설명을 거쳐, 의식의 스펙트럼의 순서에 따라 책의 내용이 전개된다. 책의 태생이 요약본이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이 구성이 깔끔하다. 

의식의 스펙트럼은 '잠재의식' - '자의식' - '초의식' 또는 '전개아' - '개아' - '초개아', 혹은 '본능' - '에고' - '신성'로 구성된다. 책의 기본 메시지는 이 스펙트럼 구성요소 사이에 실제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근원적인 자각과 정체성 사이에는 본래 아무런 경계도 없을 뿐, 그 경계를 긋고 삶을 투쟁으로 이끄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는 것이다.

내 독서 생활에 있어 하나의 전기를 마련할 만큼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단점을 좀 찾자면, 메타경계을 거론하는 부분부터 좀 내용이 중언부언하는 경향이 있고, 약간은 억지스럽게 끼워맞추는 듯한 내용도 보인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옥에 티 정도 될 듯 하다.

이 책을 읽은 다음,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순간을 살아라>를 다시 읽었고, 그 다음 흥미가 생겨 닐 도날드 월쉬의 <신과 나눈 이야기>를 읽었다. 호불호가 갈리는 책들이고, 각자 개인에 따라 받아들일수 있는 정도가 대극을 이룰 정도로 크게 다를 수 있는 책들이다. 자아와 영성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해볼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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