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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7일 21시 46분 등록
#15 영혼의 자서전

저자 연구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년 2월 18일 ~ 1957년 10월 26일)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ού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έφ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 <영혼의 자서전> 책 한권으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누구인지 또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으니, 별도의 저자연구가 필요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전 북리뷰였던 칼 융의 <기억 꿈 사상>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자서전>은 카잔차키스의 내면에 대한 미스토리이다. 그럼 외면적으로 드러나 그의 인생은 어떠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당시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던 크레타섬의 수도 메갈로카스트로(현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미할리스 카잔차키스는 포도주 중개상으로 중산층에 속했다. 카잔차키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터키의 지배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했으며, 카잔차키스는 그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터키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자라났다. 1889년 크레타에서 터키인 관리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터키인들의 보복을 보복을 피해 카잔차키스의 가족은 키클라데스 제도 낙소스 섬으로 피신하게 된다. 유년시절을 크레타에서 보낸 카잔차키스는 1902년 아테네로 건너가 아테네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한다. 재학 도중 수필과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졸업후 그리스 섬 곳곳을 여행하며 자신의 사상을 단련시킨다. 1907년 파리로 유학을 가서 니체와 베르그송에 빠지게 된다. 그 당시 <동이 트면>이라는 희곡을 발표하여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니체와 베르그송으로부터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게 된다. 카잔차키스는 1911년 그리스로 돌아와 칼라테아 알렉시우(Galatea Alexiou)와 결혼했지만, 성격차 때문에 1925년에 이혼하고 1945년 그의 인생의 동반자가 된 엘레니(Eleni Samiou)와 재혼한다. 1912년 발칸전쟁이 일어나자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베니젤로스 총리 비서실에서 복무하기도 한다. 전쟁의 승리로 크레타는 터키로부터 독립하여 그리스에 편입되게 된고, 카잔차키스는 어렸을 때부터의 염원이었던 터키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역사의 한 장면에 동참하게 된다.

1914년 이후 카잔차키스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을 다니며 여행을 하였고, 이 여행에서 그리스 정교의 성지인 아토스 산의 수도원을 순례하는등, 이스라엘, 시나이반도,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을 여행했다. 1917년 고향 크레타 섬에 돌아와 후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의 모델이 된 요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갈탄 채굴 및 벌목 사업을 했으며, 이것은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배경이 된다.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에 의해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차대전 평화 협상에 참가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베니젤로스의 자유당이 선거에 패배하여 장관직을 사임하고 그 후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등 코카서스 지역을 여행했으며 이 지역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 난민들을 다시 본국으로 정착시키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카잔차키스는 1922년 그리스 터키 간 전쟁에서 그리스가 패배하자,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에 경도되게 된다.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훗날 루사코프 사건이 발생한 이후 소련의 공산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으로 변하게 된다.

1928년에는 크레타 에기나(Aegina) 섬에 칩거하며 훗날 그의 대표작이 되는 <오디세이아 Odíssa> 집필에 몰두한다. 1945년 카잔차키스는 정치로 다시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리스 사회당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소풀리스 연립정부의 정무 장관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같은 해 사임한다.  1946년 그리스 작가 협회는 카잔차키스와 앙겔로스 시겔리아노스를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으나 노벨상과는 인연을 맺지 못한다.  1953년 소설 <미할리스 대장>이 발간되자 그리스 정교회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았으며 이듬해 로마 가톨릭 교회도 그의 저서인 <최후의 유혹> 을 금서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이후 카잔차키스의 소설은 그리스에서 일시적으로 출간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1955년에는 그리스 왕실의 도움으로 《최후의 유혹》이 그리스에서 발간되었다.

1956년에는 국제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57년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여행했으며 일본을 경유해 돌아오는 도중 백혈병 증세를 보여 급히 독일의 병원으로 옮겨진다. 간신히 고비를 넘겼으나 독감에 걸려 같은 해 10월 26일 독일에서 사망했다. <그리스인 조르바 Víos kai politía tou Aléxi Zormpá>,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 O KhristósXanastavrónetai>와 같이 만년에 집필한 소설에 의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대표작은 근대인의 고뇌를 그린 장편 철학시 <오디세이아 Odíssa>이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작가노트
p7
나 한 개인의 삶은 오직 나에게만 지극히 상대적인 약간의 가치를 지닌다. 그 삶에서 내가 인정하는 가치라고는 그것이 지닌 힘과 끈질긴 인내심에 의존하여, 내 나름대로 <크레타의 경지>라고 이름지은 가장 높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는 노력이다.

인간의 아들이라는 불릴 자격이 있는 모든 인간은 십자가를 지고 그의 골고타를 오른다.

p8
내 영혼 전체는 외침이요, 내 모든 작품은 그 외침에 대한 설명이다

> 인생을 !로 살았다는 것이리라!

p9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

첫째,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힘껏 당겨 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p16
신과 정면으로 맞설 순간을 나는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잡아먹어서 입술과 수명과 손톱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며, 보이지도 않고 만족할 줄도 모르며, 마음이 단순한 아버지와 맞설 순간을

> 크로노스를 이겨내면 우리는 카이로스에 진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너머 영원으로.

p18
손에 닿지 않는 것을 잡아라

p20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 곳은 떠나라는 엄숙한 크레타의 격언을 당신은 아는가?

p25
나는 증조부가 아직도 내 피속에 생동하여, 조상 가운데 내 혈관 속에서 그가 가장 맹렬하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그는 머리키락을 이마 위로는 빡빡 깎아 버렸고 뒤로는 길에 땋아 내렸다. 그는 알제리아의 해적들과 친했으며 대양을 누볐다.

p29
나는 이 모든 이상한 일을 경험했지만, 거기에서 신비한 어떤 통일성을 발견하기 위해 그것들을 마음속에서 분명하게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 물이나 불이나 소금이 낭비되면 마음이 편치 않았고, 대추야자나무를 보기만 하면 환희를 느꼈으며, 사막에 들어서면 떠나고 싶지가 않았지만 - 내 마음은 더 이상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p30
나는 불현듯 그 의미를 깨달았다. 소금과 불과 물은 모두 사막에서 귀중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분명히 그것은 내가 몸속에 지닌 어느 조상이었고, 소금과 불과 물이 낭비되면 어서 그것을 건져내려고 벌떡 일어나 달려가던 베두인이었다.

> 칼 융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의 발현이다. 카잔차키스도 의식과 무의식사이의 유리막의 두께가 얇았던 인물이 아닐까

p39
"여보 오늘부터는 내 발을 씻지 말아요" 외할아버지가 말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당신은 내 노예가 아니라 내 아내이고, 체통 있는 여자이니까"

> 외할아버지 짱!

p50
대지와, 바다와, 여인과, 별이 가득한 하늘과 내가 가졌던 첫 접촉은 그러했다. 내 삶에서의 가장 심오한 순간인 지금까지도 나는 어릴 적과 똑같은 열정으로 이 네 가지 벅찬 요소를 겪고 있다.

p51
어린 시절을 이렇게 세세히 회고하는 까닭은 가장 오래된 추억이 그토록 매혹을 불러일으켜서가 아니라, 이 시기에는 꿈에서처럼 언뜻 보기에 하찮은 사건이 나중에 어느 정신 분석가보다도 더 영혼의 참되고 꾸밈없는 얼굴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표현방법이나 꿈이란 무척 단순해서 지극히 복합적인 내면의 풍요함까지도 모든 피상적인 요소로부터 해방이 되는 까닭에, 오직 본질만이 남는다.

p57
나는 똑같은 것을 두 번 본 적이 없으니, 매번 새로운 양상을 부여해서 알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처녀성은 모든 순간에 저절로 새로워졌다.

> 진정한 작가!

p59
아버지는 오른쪽, 어머니는 왼쪽, 이렇게 부모가 서로 상대방을 버리고 따로 차지한 것은 내 손, 오직 내 손 뿐이었다.

p64
짐승으로부터 인간으로의 오름길을 따라가려면 고통이 가장 위대한 길잡이임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바로 그 회초리였다.

p67
"그런 것들은 다 하느님이 알아서 하시는 일이야." 선생님이 대답했다. "우린 이해를 못 해야 마땅하지, 이해를 한다면 죄악이니까."

p68
신의 계명을 따르는 자라면 누구나 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리라는 얘기를 선생님에게 들은 다음부터, 나는 그 품을 벗어나기 위해 모든 계명을 어기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 귀여워 죽겠네!

p73
니콜리오스는 교실에 다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학교에도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 정말 짠하다. 니콜리오스를 유다로 몰아세운 선생이나, 그렇다고 상처입고 학교가기를 포기한 니콜리오스나 참 극단적이다

p74
"유다였지" 그는 씁슬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그 긴 세월 유다로 살아갔을 그의 아픔이 느껴진다. 그는 왜 고작 그것을 이겨내지 못 했을까?

p90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니에게 물어 어릴 적에 내가 성스러운 수요일과 금요일에 젖을 먹었음을 알게 된 다음 나는 탄식하고 통곡했다
> 설마 진짜 탄식했고 통곡했을까... 유머코드가 기억을 과장시킨 건 아닐런지

p94
주교가 하지 않을 일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훨씬 뒤에 주교들이 실제로 하는 일들을 보자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토록 갈구하던 성자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나는 그때부터 주교들이 하는 일이라면 모두 피하려고 했다.
> 위트 쩔어~그냥~~

p108
꼼짝 않고 서서 재앙을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 혼자만이 인간의 위엄을 그대로 지켰다.

p113
글을 쓰는 사람은 억압되고 불행한 숙명을 산다. 그것은 그가 맡은 일의 본질이 어휘를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면 내적인 격렬한 흐름을 정체시켜야 함을 뜻한다. 모든 어휘는 위대한 폭발적인 힘을 내포하는 견고한 껍질이다. 그 의미를 찾아내려면 인간은 내면에서 폭탄처럼 그것이 터지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안에 갇힌 영혼이 해방된다.

p119
이곳(낙소스)에서는 자유가 존재하므로, 자유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존재하지 않았다.

p127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마침내 이해하기 시작하자 나는 그것을 불 속에 던져 버렸다

> 가치 판단의 기준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p135
온통 진흙과 피투성이가 된 기생충인 인간들이 자유를 찾아 기어다녀야 하는 이 불안정하고 갈기갈기 찢긴 지스러기 땅덩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p136
가서 난 종이 한장 받으려고 싸우지는 않았다고 전해. 난 역사를 만들려고 싸웠어!

1p55
나는 바다의 소리를 듣고 바다는 내 소리를 들으며, 우리들은 동틀 녘까지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다.

쓰라리고 찝찔한 만족감이 온몸에 넘치고 내가 흙이 아니라 바닷물로 이루어졌음을 나는 기뻐했다.

p165
"당신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보여요" 내가 그에게 말했다 "우린 모든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가 훨씬 크죠."

p168
우리들은 하찮은 쾌감을 위해 벅찬 욕망을 소모시키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 명문장에 명번역인듯!!

p174
젊음은 눈멀고 사리를 분별치 못하는 야수이다. 젊음은 먹이를 탐하지만 먹지 않고 머뭇거리기만 하며, 발길에 채는 행복을 마음만 먹고 주우면 되는데도 줍지 않고, 샘터로 가서 시간이라는 물을 쓸데없이 흘러 말라 버리게 그냥 내버려 둔다. 스스로 야수인 줄 모르는 야수 - 그것이 젊음이다.

> 과잉과 결핍의 양극단을 달리는 젊음의 특징을 잘 묘사한 것 같다

p179
아티카의 풍경은 뽐내지 않고, 미사여구에 탐닉하지 않으며, 신파조로 기절하는 발잘으로 타락하지 않고, 차분하고 힘찬 설들력을 지니며, 해야 할 얘기만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그것은 본질을 형성한다

p187
하찮은 미덕이 하찮은 악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p191
나흘째 되던 날 나는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뚜렷한 목적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생애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 흘러넘치는 무엇인가가 글이 되다. 난 그런 순간이 있었던가? 아직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쓰고 있지만, 언젠가는 쓰다보면 목적이 생기는 날도 오겠지

p192
거짓말, 모두가 거짓말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앞에 놓인 종이에다 거짓말을 장황하게 늘어놓았고, 놀랍게도 그녀에게서 굉장한 쾌감을 맛보았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모든 거짓이 정말이었을까? 나는 쾌감을 경험하는 동안 어째서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을까? 이제 와서야 글로 써가면서 나는 왜 그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을까?

> 근래 나도 유사한 경험을 한적이 있다. 글로 쓰면서 과거의 경험이 더욱 구체화되고 황홀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말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숨겨서 드러나지 않다가, 경험을 되새기고 글과 같이 외부적으로 표현되면서 그 숨겨졌던 깊이가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확실성 자체보다도 훨씬 확실한 불확실성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진리라는 이름으로 통하는 인간성의 1층짜리 건물보다 한층 더 높은 거짓이 존재한다.

p193
현실과 상상, 창조하는 신과 창조하는 인간 사이의 투쟁은 얼마 동안 내 마음을 도취시켰다. "내가 갈 길은 이것이고 이것이 내 의무이다." 빗 속에서 오락가락하며 나는 마당에서 소리쳤다. 인간은 저마다 맞서 싸울 적의 정체를 결정짓는다. 비록 그것이 파멸을 뜻할지언정, 나는 신과 싸우게 되어서 기뻤다. 그는 흙을 빚어 세상을 창조했고, 나는 어휘를 빚는다

> 올림포스의 피가 흐르는 저자가 휴브리스로 전율하는 순간이다

p199
젊은이, 물론 난 기도를 했어요. 모든 종족과 모든 시대는 저마다 신에게 나름대로의 가면을 부여해요. 하지만 모든 종족과 시대가 부여하는 모든 가면의 뒤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똑같은 신이 항상 존재하죠

> 캠벨이 말한 그대로이다

p202
춤을 추지 못하는 인간은 기도를 하지 못해요. 천사들은 입이 있어도 얘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들은 춤으로 신에게 얘기하니까요

승려님, 당신은 신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신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신은 이름으로 얽어매기에는 너무 커요. 이름은 감옥이고, 신은 자유입니다

"아!" 나는 신을 그렇게 불러요. 알라가 아니라 "아!"에요.

> 이 역시 캠벨의 얘기와 같다. 요즘 치열한 독서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거장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경지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내가 천국에 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가장 먼 길로 가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겠어요

p218
그리스의 땅을 밟으면서 나는 날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 공중에 뜬 초현실적인 꽃이 아니라,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흙을 먹어서 꽃으로 변형시키는 나무임을 점점 더 분명히 의식하게 되었다

p220
"정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녀를 놀리느라고 내가 물었다.
"이와요, 젊은이" 예기치 않았던 자부심을 보이며 그녀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세상에서 벗어나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사니까, 그런 시끄러운 얘기는 듣지 않아요."

> 그들에게 정치나 법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들은 이미 요순의 시대, 대동의 장소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p222
위대한 고전 시대의 작품을 보라.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삶의 진동으로 넘친다. 비행의 절정에서 머뭇거리는 수리가 날개를 쳐도 우리 눈에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고대 조각품은 눈에 띄지 않지만 살아서 움직인다

p226
완전한 시민이란 경기장과 체육학교를 자주 드나들어서 튼튼하고도 조화를 이루는, 그러니까 아름다운 몸을 가꾸어서 종족을 지킬 준비를 갖춘 남자였다

평온한 몸가짐, 철저히 훈련된 감정, 아름다운 체격, 이것들이 자유인의 특징이다. 노예는 항상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하고 몸은 뚱뚱하거나 병든 사람으로 나타난다

p235
그리스의 모든 지역은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성공과 실패로 넘치고 인간의 투쟁으로 가득해서, 우리들이 치하지 못할 준엄한 교훈으로 바뀌었다.

p238
"난 저 애가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얻어맞을 때에만 걱정을 합니다. 그 두가지 경우에만 말에요. 다른 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어야죠!" 아버지의 말을 나는 깊이 새겼고, 이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으리라고 믿는다

p243
평생 꿈꾸었지만 누릴 기회가 없었던 세가지는 바닷가의 작은 집과, 새장의 카나리아와, 박하 한 그릇이라고 임종의 자리에서 한숨지은 위대한 정복자는 누구였던가?

> 누구를 말하는건지 궁금하다. 알렉산더 대왕?

p250
난 언젠가 꿀에 빠져 죽은 벌을 보고는 교훈을 얻었어요

p251
"빨리요, 빨리 돌아와요. 내가 떠나 버릴지도 모르니까 빨리 돌아와야 해요" 그녀는 죽는다라는 말을 절대 쓰지 않고 항상 떠난다고 했다.

> 노백작부인은 저자를 죽은 남편으로 생각한 듯

p255
이런 형이상학적 문제를 젊은 시절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 병리라면, 그 시절에 나는 중태였다

> 지금은 지극히 현실적인 남자가 되었지만, 20대의 나는 끝없는 번민과 고뇌에 시달리는 젊음이었다. 그 고뇌를 해결하고자 불교책을 뒤지기도 했고, 신앙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뜬구름만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p256
미래의 시구들은 아직 음악이었고, 단순한 음향을 초월하여 언어가 되기 위해 투쟁했다

> 감정과 내면의 목소리가 언어화되가는 과정

p259
자네는 구원의 길을 찾았다고 믿으며, 그렇게 믿음으로써 자넨 구원을 받는데, 나는 구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그 믿음으로 해서 구원을 받지

p264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는 행동 역시 기막히게 훌륭한 일이야. 몽둥이에 머리를 자꾸만 부딪히면 머리가 엉망으로 깨지는 사람도 많겠지만, 언젠가는 몽둥이도 부러지고 마니까

내것, 내것과 나, 나라는 관념이 내 친구에게는 무서운 감옥, 창문이나 문도 없는 지하 감옥이었다

> 신념, 신앙이 확고하다는 것은 좋은 일일텐데, 그것이 불통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p269
나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모든 사물을 변형시켜 꿈에 종속되게 하는 전능한 힘인 인간의 영혼에 감탄했다. 믿는 사람들은 불멸의 그리스도를 영원한 북극성으로 삼아 천국과 지상이 둘 다 빙글빙글 돌며 신을 섬기게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모든 근심걱정을 풀어주는 <위대한 해답>이었다. 모든 사물이 설명되며, 빛을 받고, 제자리를 찾으면 영혼은 편안히 쉬게 된다. 신앙이 없는 자들만이 회의를 품고, 오직 그들만이 투쟁하며, 길을 잃고 절망에 빠진다

그가 웃었다. "난 정신을 팔아 그 대가로 신을 받았어요. 다시 말하면 난 가짜 허섭스레기를 주고 천국을 산 셈이에요. 어때요, 내가 수지맞는 장사를 하지 않았나요?"

p270
"당신의 희생이 더 커요" 고행자가 대답했어요 "어째서요?" 
"나는 덧없는 삶을 버렸는데, 당신은 영원한 삶을 버렸으니까요"

p273
그는 옷 속에서 말라붙은 빵을 꺼내 우리들에게 주었다.
"천사들의 빵이에요." 그가 말했다 "먹어요! 날개가 돋을테니 먹으란 말에요!"

p276
나는 그 짐승이 내 체취를 맡고 도망치지 않도록 숨을 멈추었지만, 이미 너무 늦어서 나도 모르게 아주 작디작은 외침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여우는 소리를 듣고 어느 방향으로 달아났는지 미처 내가 찾아보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인간의 행복이란 항상 그렇다고 나는 생각했다

> 소리내지 말자. 그냥 느끼자. 잡을수도 없는 행복이니까.

p280
광기로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재난을 맞으리라!

p282
그리스도가 웃게끔 만들어야 할때가 왔어. 그래, 꼭 그래야지! 고뇌와 울음, 십자가는 이제 그만이야. 그리스도는 그리스의 힘세고 행복한 신들을 함께 모아 가슴에 품고, 그들을 모두 동화시켜야 해, 유대인 그리스도가 그리스인이 될 때가 되었다고.

p284
어느 나무나 모두 십자가를 만드는 재료가 되니까 모든 나뭇조각은 <진짜>랍니다.

p292
"하느님의 벌집을 봐요" 그가 비꼬아 말했다. "구멍집들을 보라고요. 한때는 꿀벌들이 살았는데, 이제는 수벌들만 살고 있으니, 가슴깨나 아픈 일이죠! 하느님의 가호가 내리기를!"

p303
"아직도 악마와 싸우고 계신가요, 마카리오스 수도자님?"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아. 지금은 늙었고, 악마도 나와 함께 늙었어. 악마에게는 힘이 없지...........나는 신과 싸우는 중이야."
"신과요! 그럼 당신은 이기리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지고 싶어. 나에게는 아직 뼈가 남았는데, 뼈가 저항을 계속하지"

> 악마나 신이나 내 안에 거한다는...다만 악마는 내가 약해지면서 함께 힘을 잃을수도 있지만, 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 신은 영원불멸이니까

p304
오름의 길. 한계단 한계단씩 올라가는 거야. 배부름에서 굶주림으로, 축인 목구멍에서 목마름으로, 기쁨에서 고통으로, 신은 굶주림과, 목마름, 고통의 정상에 앉았고, 악마는 안락한 삶의 정상에 앉았어. 선택을 해야지

p308
천국에 안부나 전해주세요. 그리고 이것은 우리들 탓이 아니라 신의 탓이라고 신에게 전해주세요. 신이 세상을 이토록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요.

p312
그녀의 젖가슴을 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평화를 찾을 수가 없게 되었죠. 위대한 수도자 성 안토니우스가 말했어요. <마음이 평화로울 때 참새가 우는 소리가 들리면 평화로움이 사라지니라> 참새가 울어도 마음이 어지러운 판에, 여인의 벌거벗은 젖가슴이라면 어느 정도이겠어요! 

p315
그러고는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났나요? 30년? 40년? 아뇨, 그렇지 않아요. 시간은 꼼짝 않고 정지했죠. 꼼짝 않고 정지한 시간을 혹시 보았나요? 난 봤어요. 30년동안 나는 그녀의 저고리 단추를 풀었고, 거기에는 끝이 없어서 늘 단추가 하나 더 남았죠!

> 영원을 경험했고, 그 영원의 순간은 그가 살아온 지난날의 과거였으며 그가 치열하게 고뇌하는 현재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장면이 되어,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그에게 현현한 것이다.

p318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속으로 새로운 십계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십계명이! 하지만 새로운 십계명이 죄악과 미덕을 어떻게 분류할지 나는 알아낼 수가 없었다.

p321
얼마 동안은 수도자의 삶이 지닌 신성한 목탁의 울림과, 새벽 기도와, 성가 영창과, 그림이 내 고뇌를 진정시켰다. 그리스도의 투쟁을 직접 경험하며 나는 나의 투쟁이 용기와, 부드러움과, 희망을 얻었다고 느꼈다. 하지만 매혹은 곧 사라졌고, 내 영혼은 다시금 버림을 받았다.

p324
이 땅의 삶을 사랑하고, 하데스의 왕이 되느니 살아서 노예가 되라고 그리스의 할아버지인 호메로스가 말했다

p331
나흐만은 화가 났다. 지팡이로 땅을 치면서 그가 소리쳤다. "아니에요! 내가 얘기한 팔레스타인은 둘과 식물과 흙을 의미합니다. 팔레스타인은 개념이 아니라 돌과 식물과 흙이에요. 우린 그곳으로 가야 해요!"

p341
성상들을 때려 부순 그들은 그것이 나무와 돌멩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고, 사상을 때려 부순 그들은 그것이 바람으로만 가득함을 깨달았다

p350
꿈과 어릴적의 열망과, 엉뚱한 예언들이 내 눈앞에서 시나이의 그림이라는 현실과 뒤섞였다. 내 머릿속에서 무르익던 숨은 결심이 갑자기 형태를 갖추었다. "저것이 내가 따라야 할 길이다!"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나는 할 바를 알았으니, 시나이로 가리라, 그곳에서 나는 눈을 뜨리라!"

2권

p357
낙타의 율동에 몇 시간씩 몸을 맡기다 보니 나는 왜 아나톨리아 사람들이 낙타 등에 올라앉은 듯 몸을 앞뒤로 흔들며 코란을 읽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 그들은 위대한 신비의 사막인 황홀경으로 이끌어가는 단조로운 도취의 움직임을 영혼에 전하게 되는 것이다

p360
수백년에 걸쳐 번영과 더불어 민족은 서서히 개화하고 나약해졌다. 신 또한 개화하고 나약해졌다

p361
그는 오직 한 민족, 곧 히브리 민족만을 위해 존재하는 매정하고, 악의에 차고, 피에 굶주린 신 여호와였다.

p366
나는 이것이, 타오르는 불이, 인간의 욕망으로 흠집을 내기에는 너무 단단한 화강암이 참된 신이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꽃이 만발한 과수원 울타리 너머로 몸을 내민 나는 고행자의 감동어린 말을 되새겼다. "신은 떨림과 부드러운 눈물입니다"

p367
마침내 이곳에서 십자가와 초승달이 서로 만났다

p371
"내 딸값으로 1천 파운드를 요구합니다."
(...)
결국 액수는 1파운드까지 내려간다.
이때쯤 되면 구석에서 옥수수를 갈던 여자들이 킬킬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처녀의 아버지가 일어선다.
"옥수수를 빻는 여자들을 생각해서 내 딸을 반 파운드에 내놓겠소."
결혼식 전야에 그들은 먹고 마시고 춤추며 가진 것을 모두 써버린다

p372
사막에서는 모든 목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서로 분간이 가지 않는 신과 악마의 목소리가 특히 잘 들리죠. 조심해야 합니다

> 신과 악마의 목소리를 구별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그들이 그렇게 수도에 용맹정진하는 거지

p375
너는 더 나아갈 힘이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깨달았어. 우리들은 건너지 못할 대상은 무엇이나 심연이라고 불러. 심연이나 길의 끝은 없고, 자신의 용감성이나 비겁함에 따라 모든 대상을 이름짓는 인간의 영혼만 존재할 따름이야. 그리스도, 붓다, 모세는 모두 심연을 발견했어. 하지만 그들은 다리를 놓고 건너갔지. 지금까지 수백년 동안 인간의 무리는 그들의 뒤를 따라 건너가고 있어.

p376
정상은 없고, 언덕 뿐이야. 휴식은 없으며, 투쟁뿐이고. 왜 놀라? 왜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나를 노려보지? 넌 아직 나를 모르나? 넌 내가 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겠지? 아냐, 난 네 목소리야. 난 항상 너와 함께 여행하고, 절대로 네 곁을 떠나지 않아

p384
돈만 없어지면 당장 수사가 되겠다고 나는 자꾸만 혼자 다짐했죠. 그랬더니 하느님이 날 불쌍히 여겼어요. 난 주식 장난을 하다가 돈을 몽땅 날렸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난 말했어요

p396
이곳 땅 위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들에게 평생 닻을 내리기 위한 항구가 아니라, 앞바다로 나가서 거칠고도 광포한 파도를 만나 신의 품 안에서 닻을 내리기 위해 평생 투쟁하려고 그곳을 떠나야 하는 항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스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p397
인간은 누구나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어서, 정신과 육체를 모두 다 지녔다

신과 인간 사이의 투쟁은 타협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모든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진다. 이 투쟁은 대부분 무의식적이고 잠시 동안만 계속된다. 나약한 영혼은 오랫동안 육체에 항거할 인내력이 없다. 영혼은 무거워져서 육체가 되고, 대결은 끝난다. 하지만 숭고한 의무를 밤낮으로 의식하고 책임감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육체와 정신 사이의 분쟁이 무자비하게 터져 죽을때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p398
영혼과 육체가 강할수록 투쟁은 그만큼 수확이 많고, 최후의 조화는 더욱 풍요하다.

p399
그리스도는 모든 순간에 갈등하고 승리한다

p405
동등하거나 열등한 상대와 싸운다면 화가 미칠지어다. 하지만 신과 싸우다니, 그런 병이 낫는다면 화가 미칠지어다

p407
아시겠어요? 예수는 병이 나았어요. 세상을 구하는 대신, 그는 나자렛에서 가장 훌륭한 목수가 되었답니다!

p414
우린 우선 모든 작은 욕망들부터 채운 다음에라야, 육체와 권력과 황금과 반항에 대한 열망을 경멸하는 길을 터득해야 해요. 내 애긴, 우리들이 젊음과 남자다운 모든 욕정의 삶을 한껏 살아보고, 모든 우상들을 때려부숨으로써 그것들이 바람과 꺼풀로만 가득 찼음을 알아내고, 되돌아보아도 절대로 유혹받지 않을 만큼 우선 속을 비우고 깨끗해져야 한다는 거죠

신과의 싸움을 중단하지 말아요. 그보다 더 훌륭한 수련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더 자신감을 가지고 싸우겠다며 마음속의 검은 뿌리인 본능을 뽑아버릴 생각은 집어치워요!

p421
우리들이 죽음을 정복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은 사실이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정복이 가능하다

p430
숲 속의 새 두마리가 손에 잡은 새 한마리보다 좋아 보이는 모양이야. 꼭 젊음의 샘을 찾겠다며 세상의 끝까지 찾아가는, 동화에 나오는 미친 놈 같아

p437
나는 그의 목소리와, 격한 숨결과, 고통의 외침에 점점 익숙해졌다. 나는 그리스도 못지않게 그리스도의 적이 투쟁하고 괴로워하며, 때로는 절망의 순간에 그들의 얼굴이 똑같아 보인다는 사실을 여태 모르고 살다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초인은 신의 암살자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 반항아는 신비한 매력을 지녔다. 그의 말은 어지럽게 도취시키는 유혹의 마술이여서, 심장이 뛰게 만들었다.

>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있는데, 카잔차키스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책을 읽다가 한번도 해보지 못 했던 발상에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p439
무엇이든 내가 닿으면 빛이 되고
무엇이나 내가 떠나면 숯이 된다
분명히 나는 불꽃이니라

p445
그대의 신격화된 영웅은 이제 위선자로 몰락했다. 그는 그대를 속였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제 그는 기독교적인 주제를 가지고 <파르지팔>을 작곡했다.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고 디오니소스의 전차를 표범으로 끌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 영웅은 패배하여 십자가 밑에 쓰려졌다.

> 계속되는 대결구도는 끊이지 않는다. 그리스도 대 호메로스, 아폴론 대 디오니소스, 니체 대 말년의 바그너, 그리고 신 대 인간.

p446
그대 내면의 비평가는 시인을, 그리고 진리는 아름다움을 이겼다. 하지만 이제 쇼펜하우어까지도 그대 이성의 격정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삶은 살려는 의지뿐 아니라, 그보다 강렬하게 지배하려는 의지이다. 삶은 자신의 존속에 만족하지 않고 뻗어 나가 무엇인가를 차지하려고 했다

p447
우리들은 시간의 수레바퀴에서 변함없이, 똑같이 회귀한다. 따라서 가장 덧없는 사물들까지도 영원성을 얻었고, 가장 무의미한 우리의 행동들은 가늠하기 불가능한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p455
서러움을 받는 자로 하여금 위안을 얻어 주인 앞에 참고 머리를 조아리며 현세의 삶을 인내하게 만들기 위해 내세의 보상과 벌을 심어 놓은 종교는 얼마나 교활한가!

p464
니체는 나에게 모든 낙관적인 이론을 불신하라고 가르쳤다. 인간의 여자 같은 마음은 끊임없이 위안을 필요로 하며, 지극히 날카롭고 궤변적인 이성이 언제라도 그 욕구를 열심히 충족시키려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p465
희망이 가장 결핍된 신앙은 나에게 - 비록 가장 참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 분명히 가장 용감한 신앙으로 여겨졌다.

p466
니체까지도 공포에 굴복했던 순간을 겪었다. 영원 회귀가 그에게는 끝없이 이어지는 순교로 생각되었으며, 두려움에서 그는 위대한 희망을, 미래의 구세주를, 초인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초인은 또 하나의 천국, 가엾고 불행한 인간을 기만하고 그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견디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신기루일 따름이었다.

p475
붓다로다!

자비롭게 두 팔을 내민 그리스도는 심연을 가로막고 서서, 내가 그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도와주었다

p476
욕망은 불꽃이요, 사랑도 불꽃이요, 미덕과 희망과 나와 너, 그리고 천국과 지옥 또한 불꽃이라고 이 악마는 자꾸만 소리쳤다. 

p478
그리스도와는 달리 붓다는 인간들만 골라내지 않고, 만물을 불쌍히 여기며, 만물을 구원한다
마음속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힘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형성되고 사라지는 우주를 의식한다. 

p483
나는 구원으로부터 구원 받았다

p484
구원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순간에 그의 말과 행동이 지닌 가치를 계산하기 때문에 노예입니다. <나는 구원을 받을까? 저주를 받을까?> 그는 떨면서 묻습니다. <나는 천국으로 가는가,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가?> .... 희망을 간직하는 영혼이 어찌 자유로울 수 있겠나이까? 희망을 간직한 자는 현세의 삶과 내세를 모두 다 두려워하고, 공중에 애매하게 매달려 행운이나 신의 자비를 기다립니다

인류를 구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자가 구세주이니라

p485
나는 길거리로 나가 무척 서두르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사람들의 물결에 섞여 들였다.

p488
정상적인 사람은 살고, 투쟁하고,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어디서 어디로 왜 따위를 묻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 얘기는 끝나지 않았어요.

p489
당신이 걸린 건 성자의 병이라 부르죠

p492
붓다는 나에게 만물을 처음 보듯 반가이 맞으며, 만사를 마지막으로 보듯 작별을 고하는 능력을 부여했다.

p505
그리스도는 붓다의 씨앗을 깊은 곳에 감추어 두었다. 그렇다면 붓다가 누런 승복 깊숙이 싸서 감춘 씨앗은 무엇일까?

p507
그렇다. 레닌은 또 하나의 구세주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인류의 절망과 희망을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가면이요

> 이제 가다가다 사회주의에 경도되는 우리의 카잔챠키스

p511
성녀 테레사는 웃었다 "기도시간에는 기도를 해요" 그녀가 말했다 "메추라기 시간에는 메추라기를 먹고요" 그녀는 육체와 영혼에 양분을 공급하는 두 행위에 똑같은 열성을 보이며 충실했다

> 우리는 밥 먹을때는 밥만 먹고 놀때 화끈하게 놀고 일할때 일에 집중하는 단순함을 잊어버렸다.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고, 다시 건강을 찾기 위해 돈을 쓰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p521
프란체스코에게는 <현자의 돌>이란 인간이 구하기 어려운 외적인 어떤 요소이기 때문에 자연 법칙을 어겨야만 구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신비한 연금술의 기적을 통해 그는 현실을 안정시키고, 인류를 필연성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내적으로는 그의 육체를 모두 흙으로 바꾸었어요.

p532
본디 길로 되돌아왔을 때 내 마음은 인간의 고통으로 가득했고,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란 오직 남들을 구원하는 길뿐임을 알았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투쟁만으로 충분했으리라. 나는 또한 세상은 헛것이 아니라 실재하며, 인간의 영혼은 붓다가 주장하듯 바람이 아니라 살의 옷을 입었다는 진실도 깨달았다.

>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모두와 자기 자신을 구원한다는 결론은 모든 성인들에게 공통적이다.

p535
당신은 시를 쓰죠.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뻔뻔스럽게도 가난과, 압박과, 악행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아요. 우리들의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변형시켜 놓고 나서 당신은 다 잊어버려요. 인간의 고통을 잊게 만드는 그까짓 아름다움이 뭐에요!

p540
우리들이 갈망하면서도 충분한 힘을 들이지 않았던 대상은 <비존재>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원하는 대상을 우리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범벅을 하면 그것은 형체를 갖추게 된다. 현실이란 우리들의 욕망과 고난에 종속되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p552
그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하나의 표어랍니다. 그는 인간의 속성들을 잃었고, 전설이 되었어요

> 우상숭배의 전형

p557
보아하니 나는 수선화로 뒤덮인 붓다의 초원에서 온 사람인 모양이었다

p558
하지만 나같은 사람은 미안합니다만, 현세와 인간밖에는 관심이 없다오

p581
"당신의 신은 누구인가요?" "붓다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하지만 입술이 다시 움직였다. "아니, 아니에요, 에파포스랍니다"

p589
나는 의문을 품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해답은 찾지 못하고 그림자와의 싸움을 벌이는 데 싫증이 났다. 질문들은 끊임없이 새로워졌으며, 해답은 자꾸만 달라졌다

풀어지지 않는 추측의 매듭을 칼로 베어 자른다는 행동만이 해답을 찾는 길인지를 실험할 때가 무르익었다

> 어이, 카잔차키스! 매듭을 끊어야 할 시점이 왔군!!

p602
인간이 흘린 눈물로 세상의 모든 물방아를 돌릴 수 있지만, 신의 방앗간은 돌리지 못 한다.

p604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란 우리들이 충분히 갈구하지 않았으며, 비존재의 음산한 문턱을 지나 전진하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들의 피를 쏟아붓지 못한 무엇이다

p619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었다

붓다는 세상 사람들이 빠졌다가 구원을 받는 한없이 깊은 새까만 눈이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에 해답을 얻지 못했던 나를 괴롭히는 철학의 온갖 문제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으며, 니체는 새로운 고뇌로 나를 살찌게 했고, 불운과 괴로움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도록 가르쳤으며,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사상으로는 걔중에 조르바가 가장 나아보인다

p633
그리스도와 붓다와 레닌은 빛을 잃었고, 나는 크레타의 흙에 휩쓸려 들어갔다

p644
만일 작가가 자신의 고뇌와 희망뿐 아니라 우주 전체의 , 그리고 세상에서 지극히 하찮은 존재인 곤충이나 조가비나 물 한방울의 고뇌와 희망도 그렇게 보이기만 한다면!

내가 심한 고통이나 기쁨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되찾는 유일한 길은, 어휘의 마력으로 고통과 기쁨을 흘리는 것임을 나는 여러 해 전부터 잘 알았었다

p645
나는 글을 썼고, 지웠다. 나는 적당한 어휘들을 찾기가 힘들었다. 때로는 따분하거나 영혼이 결핍되었으며, 때로는 점잖이 못하게 화려했고, 또 어떤 때는 따스한 체취가 없이 추상적이고 속이 비었다. 시작할 때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알았지만, 제멋대로 떠오르는 어휘들이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어 가기도 했다

그는 두레박을 끌어올렸다. 거기에는 황금이 가득했다. 그는 황금을 쏟아버렸다. "신이여 당신이 보물을 잔뜩 소유했다는 것을 저도 압니다. 하지만 마실 물만 주십시오. 저는 목이 마릅니다" 그는 다시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마셨다. <말씀>은 그런 것, 장식이 없어야 한다

p647
인간은 서두르지만 신은 그렇지 않다. 

언젠가 조르바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난 마치 불멸하는 존재처럼 행동하죠. " 그것은 신에게나 어울리는 행위였지만, 죽을 운명을 타고난 우리 인간 또한 교만이나 과대망상증에서가 아니라, 위에 존재하는 무엇에 대해서 영혼이 느끼는 불굴의 열망으로 그 길을 따라야 한다. 신을 흉내내려는 시도야말로 단 한순간이나마, 털끝만큼이라도,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p651
절대적인 자유는 혼돈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에 인간은 그런 자유를 옹호할 수가 없다. 만일 인간이 절대적인 자유를 지니고 태어난다면, 그리고 만일 그가 세상에서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의 첫 의무는 부여받은 자유를 한계짓는 일이다.

p660
우리 인간들은 그걸 옛날 얘기라 부르지만, 장미넝쿨은 그걸 장미꽃이라고 부른단다.

p669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든 문제와, 자기보다 훨씬 우수한 본질과 싸움을 벌인다. 우리들의 가장 깊은 비밀, 표현할 참된 가치를 지닌 유일한 비밀은 표현되지 않고 항상 그대로 남기 때문에, 가장 위대한 승리자까지도 패배자로 나타난다

하지만 슬프도다, 우리들에게는 유일하게 불멸한 부분인 <아!>를 인류에게 전할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어휘! 어휘! 슬프도다. 나에게는 다른 구원의 길이 없었다. 내가 거느리는 군사라고는 스물네 개의 글자, 스물네 개의 납 인형 병사들뿐이었다

> 쓴다는 것은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내적인 느낌을 심상으로 만들어 이를 체험해야 한다는 말일 텐데, 그런 노력이야말로 일생에 거쳐 얼마나 큰 인내와 관찰력을 요구하고 있는가? - 생각의 탄생 中

p670
신에 대한 명상을 하며 내 영혼이 그때그때 느끼던 용기와, 신뢰와, 좌절의 양상에 따라 대답은 자꾸만 달라졌다

나는 신의 세가지 피조물인 나비가 되려는 벌레와, 본성을 초월하려고 물에서 뛰어오르며 나는 듯한 물고기와, 배 속에서 비단실을 뽑아내는 누에에게 늘 매혹되었다.

p683
아니죠, 자유로부터 자유가 되어, 그 너머로

p684
40년 동안이나 헤메어도 신을 찾지 못했던 고행자가 있었죠. 어떤 시커먼 물체가 가운데 나타나 그의 앞을 가로막았어요. 하지만 어느 날 아침에 알고 보니 그것은 그가 너무나 좋아해서 선뜻 버릴 마음이 없었던 낡은 털옷이였지요. 그것을 버리자 그는 당장 앞에 나타난 신을 보았어요....이봐요, 당신이 나에게는 낡은 털옷이죠, 잘 가요!

p691
내가 예술품을 만들었다고 누가 그러던가? 나는 예술품을 만들지 않았고,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어. 이성이나 규칙이 나에게는 너무 답답해. 나는 물고기처럼 나는 안전하고 편안한 물에서 뛰처나와 광증으로 가득 찬 보다 가벼운 하늘로 들어가지

p710
내 축복을 받고 싶다면, 아들아 내말을 듣거라. 나는 세상을 만들었지만 , 미처 다 끝내지는 못 했다. (...) 네가 창조를 계속하라. 세상에 불꽃을 당겨 불로 만들어서 내 땅에 내놓으라

균형은 정체를 정체는 죽음을 의미한단다

p716
불가능해! 난 받아쓰게 할 줄을 모르겠어. 난 연필을 손에 쥐어야만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 카잔차키스는 타고난 글쟁이인가? 나는 평소에는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많이 생기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연필을 한번 써볼까?? ㅎㅎ 아직 수행과정이니 이것저것 다 시도해보자!!!



내가 저자라면

책은 분량의 문제로 상,하 두권으로 이루어져있다. 한권의 두께 역시 얇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두권의 책으로 카잔차키스의 내면을 모두 읽었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가 어떤 생각을 하면 살았는지에 대한 짐작과 그의 고뇌만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책에는 카잔차키스의 내면의 일생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어 있으나, 상, 하권 따로따로 봐도 상관없을 정도로 연속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책속으로 들어가면 일생을 통해 그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인물들과의 직간접적인 만남이 그려진다. 칼 융의 자서전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이후에는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통상 가깝다고 여겨지는 인물들에 대한 내용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카잔차키스와 50여년을 함께 했던 동반자 엘레니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전 칼 융의 북리뷰에서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융이나 카잔차키스나 모두 어린 시절 부모와 가족들과 같은 환경에 깊은 영향을 받지만, 장년이 된 이후에는 그런 것들로부터 받는 영향을 스스로 분리해낸 것은 아닌가 싶다. 장년이 되어 페르소나가 붕괴할때 그들이 스스로 구성했던 가정과 가족은 가장 큰 페르소나의 일부로 부정해야 할 대상이었을수도 있고, 사랑했던 이들이었기에 누구보다도 자신의 글에서 자신과 분리해내어야 할 대상이였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언젠가 나에 대한 책을 쓰게 될때, 가족을 나의 일부로 내 책에 끌어들일 것인지, 아니면 가족을 배제하고 내면의 흐름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연예인들의 예를 들면 가족을 무대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유형이 있기도 하고, 가족에게 가는 스포트라이트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이들도 있다. 쓰다보니 쓸데없는 고민인 듯 하다.

칼 융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과 유사하게 내면의 경험이 책의 전부다. 하지만 본업이 원래 작가라서 그런지 융보다는 읽기가 쉽다. 곳곳에 카잔차키스의 위트가 반짝반짝 빛난다. 어린시절을 회고함에 내면적 정신의 흐름이 담겨있었지만 그것은 재미진 일상의 사건들과 결합되어 전혀 딱딱하지 않았다. 신을 찾고, 신에 반목하고, 다시 굴복했다가 또다시 대립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불교에서 그 종착지를 찾은 듯 했다. 붓다는 신과 초인의 모순과 단점을 상쇄시키는듯 했지만 결국 붓다는 카잔차키스의 최종 종착지는 아니였다. 결국 최종종착지는 그가 태어났던 섬 크레타였다. 그는 사회주의와 성 프란체스코를 거쳐 마침내 인간세계에 천착하게 된다. 결국 철학은 심연에서 종교와 신앙을 만날수 밖에 없고, 그 심연의 끝은 다시 그가 처음 떠났던 그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돌고 돌아 도착한 그곳이 누군가에게는 그냥 쉽게 도달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얀 전쟁, 은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와 같은 소설을 쓴 소설가 안정효의 번역은 안정적이었다. 소설가로서의 베이스와 다수의 책을 번역한 프로번역가는 카잔차키스의 내면의 독백을 최대한의 싱크로율로 복제해내었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만큼 , 좋은 번역을 만나는 것도 책을 읽는 기쁨중의 하나인 것 같다. 이전에도 생각하던 부분이지만, 변경연 과제도서로 외국저자의 책을 읽을 때마다 번역이라는 분야에 더 관심이 가게 된다. 내 마음과 정신, 사상을 번역하여 독자에게 전달하는 원저자의 역할만큼이나, 다른 이의 생각과 사상의 결과(책)를 다른 언어로 재창조하는 것 또한 매력적인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에게 소설가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훌륭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그는 번역을 하면서 글쓰기 실력을 늘림과 함께 번역 활동으로 창작과 창작사이의 시공간을 채운다고 했다. 좋은 번역가는 좋은 작가인 셈이다. 언젠가 좋은 원서를 번역하는 제 2의 창작을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하는 삼천포로 빠지는 생각을 잠시 해보며 북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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