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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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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4일 18시 18분 등록

< 저자에 관하여 >

카렌 암스트롱 --종교학자, 종교비평가

 

1944년 영국 출생

17세 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카톨릭 수녀원에 들어갔으나 7년 동안 수녀원의 엄격한 규율 및 수녀들의 언행에 크게 실망하여 신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절망감을 안고 1969년 환속했다.

7년간의 수녀 생활로 마음이 굳어버려 내면적으로도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공포와 악취, 때로는 환각에도 시달려서 자살기도까지 한 적이 있다.

비틀스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사회를 모르고 그래서 적응하기도 힘든 가운데 힘을 내어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자신의 삶을 이룩해 나가려 애썼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박사학위 취득에 탈락한 후 고둥학교 교사로 재직도 했으나 지병인 간질로 교사자리에서 내쳐지기도 하는 등 저자의 삶은 어디하나 시원한 구석이 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외모로도 남의 호감을 사지 못했고, 사회로부터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종교를 버리고 신도 버렸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 글쓰기를 하면서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그렇게 나온 책으로 호평을 받고 BBC의 종교 다큐멘터리까지 맡게 되었다.

방송 일을 하면서 이슬람을 접하게 되고 그들을 폭력적이고 악독하다고 비판만 한 것에 대해 마치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 아픔과 같은

공감을 느꼈다.

유럽 각지의 신문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마호멧 풍자만화를 게재한 것에 이슬람인들이 시위를 하자 이에 서구인들은 이슬람인들의 분노가 잘못이라고 일방적인 공격을 한 것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서구인들이 이슬람교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반감만 갖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은 이슬람인들은 그들이 예언자로 모시는 인물에 대한 모욕은 폭거이며 강간이고 심장을 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는 글을 읽고서다.

그 후 다시 종교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공부를 더 함으로써 세계 3대 종교는 일견 다른 것처럼 보이나 그 속에는 공통적으로 공감을 강조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슬람관련 책을 쓰고 이슬람권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다양한 저술, 강연, 방송 등에서

각 종교 간 조화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 했다. 무엇보다 9.11 테러 발생 후 몇 달 동안 미국에서 이슬람과 근본주의에 대해 아는 바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상원, 하원의원, 국무부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유엔에서도 강연을 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9월의 참사는 계시라고 생각했다. 즉 세상은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은 과거에 우리가 했던 행동의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일 때가 많으므로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들만

호의호식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저자는 자신의 지복은 신학공부라는 것을 깨닫는다.

 

2008년에는 그간 종교적 자유를 위해 활동한 업적을 인정받아 루스벨트 4대 자유메달과 TED 상을 수상했고, 종교 문제에 관한 세계적인 해설자들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다.

 

주요 저서로는 신의 역사, 신화의 역사, 마호메트 평전, 축의 시대,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이슬람, 마음의 진보, 위대한 전환, 신을 위한 전투, 성서등이 있다.


나선 계단에 서서

 

6 나는 신을 찾고 싶었다.

7 나는 당장이라도 온유하고 기뻐하는 사람, 감동을 주고 감동을 받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성자가 못 되란 법도 없을 것 같았다.

 

빛을 만나고 싶다

 

9 로큰롤은 내가 다녔던 수도원 부설학교에도 뚫고 들어왔다.

11 심장에서 피가 흐르고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얹은 야단스러운 성상, 라틴어로 진행되는 미사, 아일랜드 사제들, 로마 교황에 대한 복종은 지극히 영국답지 않은 모습이었으므로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유럽을 비롯 여행 다니며 들어가 본 성당 안은 각종 조각품 때문에 도리어 무서웠다.

세상에서 내가 보고 들었던 것 보다 더 진실한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12 선배 수녀들은 고통스러운 변화를 겪으면서 현대 사회에서 수녀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방향 설정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13 그 교단이 설립된 19세기에는 나무랄 데 없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운 관습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14 개혁을 둘러싸고 격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따지고 들었고 나중에는 자기가 몸담은 성직 자체에도 의문을 던졌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루터가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종교개혁을 했겠는가

17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역경을 넘어섰으니 앞으로는 일이 술술 풀릴 것만 같았다.

 

문 앞에 선 소녀

 

22 -출판사의 주문, 요구

23 영혼이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T.S. 엘리엇의 재의 수요일은 24 내 인생여정의 핵심을 찌른다.

24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우리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깨달을 때 비로소 인생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시작된다.

신화에서 계단은 의식이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는 돌파구를 상징한다.

 

< 어둠의 시간 >

 

환속한 수녀

 

34 문학은 그들이 보기에는 방종이었다.

35 ‘명심하라 너희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라고 읊조렸을 것이다.

37 수녀원에서는 너무나 당연했던 행동이 이곳에서는 미친 짓이나 다름없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0 수녀원에서 우리는 어려움을 서로에게 절대로 털어놓지 않는 법을 배웠다.

41 신의 현존을 체험하는 경지에 이르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고 위대한 영혼의 스승들이 누누이 강조했던 자아의 완전한 포기가

내게는 요원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혁명 속의 옥스퍼드

 

45 수녀원에서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틀스가 누구야?

 

61 비틀스는 파티에 온 사람을 모두 하나로 이어주는 전류였다. 공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끈이었다. 몸은 파티 장에 있었지만 나는

이방인이었다.

64 나는 더는 수녀원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바깥세상 사람도 아니라는 서글픈 사실을 깨달았다.

65 다른 사람들에게는 멀쩡하기만 한 모든 것이 나에게는 낯설기만 했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정원

 

69 수련원이 세상의 전부였다. 다른 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 울타리 안에서 뺨과 턱처럼 붙어살았지만 차라리 독방에 갇혀서

살았다고 보는 것이 좋을 만큼 외로웠다.

우리는 수련원장의 눈치만을 살피고 살도록 길러졌다. 그녀의 세계관과 그녀가 우리에게 내리는 평가를 마치 성서처럼 진리로

받아들였다.

71 훈련은 다른 사람이 사랑해주거나 알아주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데 목표를 두었다.

72 우리를 단련하기 위해 고안된 냉정과 거듭되는 불친절은 나의 감정만 훼손시켜 그것을 질긴 스테이크 조각처럼 만들어버렸다.

 

불감증, 느끼지 못하는 마음

 

78 나만의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하는 교육을 그렇게 집요하게 받았으니

79 사실이 아니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런 말 하면 못 써요

80 진실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내 정신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선입견을 뒤틀어서 대낮처럼 환한 진실을 부정하게

만든 것이다.

84 월터 수녀는 일편단심 그레고리오 성가만 떠받들었고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가르쳤다.

 

신은 내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90 이냐시오의 묵상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그것은 보기, 판단하기, 행동하기다.

96 자꾸만 침묵을 깨뜨리고 못된 생각을 하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고 혼나면 울먹이는 주제에 어떻게 감히 신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말이다. 기도가 공허해지면 공허해질수록 나는 시시한 것과 사람한테서 위로를 받으려고 했다.

97 아무도 신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것을 아무도 선뜻 인정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98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분은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이었고 이제 와서 내가 신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내 안에는 종교를 거부하는,

거룩한 것에 귀를 막는 무언가가 있었다.

-자아의 확장, 발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다.

 

<계단의 악마>

 

산산이 부서진 거울

 

103 도대체 그 냄새, 부서지는 빛, 구토, 무의식으로 빠져드는 혼절은 어디서 왔을까?

실신은 관심을 끌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나는 결론지었다.

108 죄의식은 잘못된 자존심에서 나온다고 그들은 말했다.

109 쌀쌀맞아도 성직자가 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우리 대학에서도 별별 짓을 다 하는 아이들이 그냥 영성체도 하고 그런다는 거 나도 알아. 그렇게 세상과 모나지 않게 살아가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아이가 하느님 때문에 위축된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뭐라고 하셨기에 위축된다는 걸까? 항상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텅 빈 두려움

 

111 한없이 이어지는 상투어를 듣고 있으려니까 부아가 치밀었다.

나는 방어의 수위를 조금 낮추어 나한테도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113 음악을 듣는 동안 나의 영혼이 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115 마음을 달래주던 허깨비의 망사가 벗겨져 나가고 형체도 없고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고 속속들이 맹목적이고 하찮고 심술궂고 추한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엘리엇은 나선의 계단을 올라간다. 그것은 머리와 가슴이 영혼의 깨달음을 향하여 상승하는 신비적 이미지다.

그는 계단의 마귀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

116 까발려진 현실은 영혼에 깊숙이 박혀 우리가 느끼고 보는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친다.

120 나는 반 고흐가 그린 온몸을 뒤틀면서 괴로워하는 올리브 나무와 별들이 소용돌이치는 하늘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121 내가 뿌리치고 나왔던 세상이 이번에는 나를 뿌리치는 듯한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122 이번에도 나를 살려준 것은 공부였다. 공부를 할 때는 그나마 정상이라는 느낌이 돌아왔다 더 많이 읽고 공부하고 더 좋은 글을 많이 써낼수록 언젠가는 보통사람으로 돌아와서

124 그런데 번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은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125 그런 규칙을 애당초 만든 사람이 남자들이라는 사실

 

거식증, 소멸의 욕망

 

134,5 제단 주변으로 모여든 수녀들은 아주 독실한 신앙 공동체의 표상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자기들 눈앞에서 동료 한 사람이 시들어

가는 것을 수수방관하고 있었다.

 

최우등 졸업

 

145 나는 공상이 섞인 이런 설명을 들으면서 속으로 웃었다. 수다 박사에게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비밀의 정원이나 잃어버린 문학의

영역과도 같았다.

149 이른바 최우등 졸업을 기어이 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심란한 상황에서도 해냈다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게 없었다.

난 이겨내고 말 거야 한동안 나의 앞길은 희망으로 가득 차 보였다.

 

<상처 입은 짐승>

새로운 안식처

 

170 나는 명함도 못 내밀 만큼 이상해 보이는 집이 얼마 안 가서 내 집처럼 편안해졌다.

 

자폐증과의 만남

 

173 사랑하던 여인이 죽고 나서 쓴 추도문 이라는 주옥 같은 시에서 그는 의심과 믿음이 중첩된 모호하고 서글픈 세계를 탐구하는데

나는 거기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174 테니슨의 시를 읽을 때 나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모든 것이 빠짐없이 있으면서도 없는 그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었다.

177 수녀원에서 워낙 심한 말을 들으면서 살아서 그런지 내가 내뱉는 말은 선배들한테 들었던 꾸지람에 비하면 약과라는 생각을 했는데 ... 도대체 어떻게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샬럿은 암울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차곡자곡 원고지를 쌓아 가고 있었다.

179 파리는 생명, 관능, 자유, 재미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나 좀 도와주세요

 

189 수녀원에서 그 오랜 세월을 버텼다는 것이 그들 상식에서는 너무나 벗어나는 일이었다.

사실은 두 사람이야말로 수도원에서 사는 것이 여러모로 체질에 맞는지 모를 일이었는데도

 

나도 학자가 될 수 있을까

 

199 내가 먹지 않는 것은 거식증이라기보다는 나 좀 도와 달라는 호소였다.

201 종소리가 울리고 규칙이 있고 권위적인 인물이 있는 학교는 수녀원과 너무나 비슷했다.

 

나는 신과 갈라섰다

 

205 제이콥의 장애를 비롯해서 이 지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어떤 식으로는 책임이 있는 초월자가 저 하늘에 있다고 내가 정말로 믿은 적이 있었나? 없었다.

209 종교는 저능아, 약골, 장애인한테나 필요한 거라 이 말씀이네요

영국에서 1960년대에 종교는 죽었고 교회에 나오는 신도의 숫자는 뚝 떨어졌다.

211 그들은 사회에서 등을 돌리고 삶에 본질적 가치를 주는 진실을 추구하면서 돈과 세속적 성공을 거부했다. 그들은 사고 구조를 확 바꾸어버리겠다는 희망을 품고 초월적 명상을 수련했다. 전후의 다른 영국인들도 자기 변신을 추구했다. 그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살고 싶어했다. 자기들은 영국에서 예수그리스도보다 유명한 사람들이라고 바른 소리를 했다가 미국의 기독교신자들을 격분시킨 비틀스도 인도에서 몇 달 동안 스승을 모시고 명상 공부를 했다.

216 신은 나의 인생에서 사라졌지만 좋은 사람들 옆에서 매주 잠시라도 앉아 있는 것이 해로울 리는 없었다.

 

<공포의 절규>

 

자살기도

 

226 내가 튀는 행동을 한 것은 결국 도와달라는 호소였다. 그날 밤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가 얼마나 절박한 상태에 있는가를 똑똑히 알리고 싶었다. 문제는 자살 기도처럼 보이는 것이 실은 도와 달라는 절규일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이런 호소는 못 들은 척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도달할 때가 자주 있다는 것이다.

229 내가 고집만 부리지 않았어도 부모님은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업자득이었다

234 신이 있다고 해도 이 세상을 너무 엉터리로 다스린다는 말밖에는 나도 할 말이 없어

 

내 영혼은 앞으로 나아간다

 

237 서러워하기보다는 차라리 남은 것에서 기운을 얻으련다.

 

남루한 현실도 아름답다

 

246 이제는 아무리 선의를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남한테 내 인생을 맡길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내 인생을 끌어안고 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247 197011월 동성애자해방전선이 영국에서 처음으로 시위를 벌렸다.

넬슨 만델라와 마틴 루터 킹은 전 세계 학생의 영웅이었다. 나를 속박했던 전제가 결코 철옹성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249 그 시는 내 안에 깊숙이 박혀 있는 무언가를 건드렸다. 시인은 거듭해서 되돌아가지 못하리 하면서도 실은 돌아가고 그러면서 자꾸만 새로운 통찰을 하면서 천천히 올라간다. 시인은 희망을 버렸다고 말하지만 나는 묘하게도 기운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251 그 거룩한 얼굴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것은 신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한테는 오직 현재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깨달았다.

 

버릴 수 있는 용기

 

262 그렇지만 여자가 그런 식으로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남자가 무척 괘씸했다

 

마지막 결별

 

275 나를 아프게 하고 불행하게 하고 스스로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게 만든 것 말고 종교가 나한테 해준 게 무엇이란 말인가?

 

<절망 속의 엑스터시>

 

대학 강단에서

 

282 솔직히 말해서 편했다. 앞으로도..그렇게 흘러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좀 따분하지 않을까? 283 좋다는 말은 너무 싱겁고 맹숭맹숭 했다. 이렇게 편하게 살자고 그 고생을 하고 아등바등하며 살았단 말인가? 그렇지만 인생은 그저 편하기만 해서는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불쑥불쑥 드는 것이었다.

289 이런 체험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신이다 거룩하다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계시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290 신앙이 없는 사람이 기독교 신비주의자와 똑같은 황홀경을 체험할 수 있다면 초월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

초자연적 현상은 아니라고 봐야 맞을 것 같았다.

 

잃어버린 박사학위

 

302 비탄에 빠져드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내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남아있었다.

303 내가 받았던 훈련은 아직도 그렇게 남아서 나를 망가뜨렸고, 나는 아직도 그것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304 옥스퍼드는 자기네 전통이 곧 법이었다.

305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나 대신 싸워주었다는 것 내가 끽 소리 못하고 사라진 게 아니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뿌듯했다.

308 그때 참석한 예배가 씨앗이었다. 그것은 내가 아는 종교만이 종교의 다가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의 씨앗이었다. 희망을 버리니까

한편으로는 속박에서 풀려나는 느낌이 들었다.

문학을 이용해서 나를 포장하려고 아등바등 하지 않고 그냥 작품 그 자체에 빠져들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할 말이 많아지고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간질이라는 선물

 

312 그토록 찾아 헤맸던 신도 결국은 뇌가 고장이 나서 신경에 문제가 있어서 본 것이었다니.

317 도스토예프스키, 반 고흐, 귀스타브 풀로베르, 풍경화로 유명한 영국 화가 에드워드 리어, 율리우스 카이사르,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모두 간질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 테니슨도.

318 알고 보니 사람들은 자꾸 원인을 다른 데로 돌리려 든다.

 

더는 잃을 게 없다

323 생명으로 들어오기를 정 바란다면 계율을 지키십시오. 주 하느님을 온 가슴으로, 온 영혼으로,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십시오.

328 수녀원에서 나온 다음부터는 나는 이런 식으로 지시하고 속박하려는 사람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330 신은 없고 하늘은 텅 비어있다. 엘리엇의 말마따나 시간은 늘 시간이고 자리는 늘 자리일 뿐이었다. 우리에게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뒤도 안 보고 앞도 안보고 있지도 않을 것을 그리워하지도 않으면서 처음으로 온전히 순간만을 의식했다.

 

<나를 향한 용기>

 

평범하게 살기 싫다

 

341 수학과의 재수 없는 젊은 선생님이 각자 얼마씩 돈을 내야 하는지 계산을 해야 했다.

342 암스트롱 선생을 반드시 꺾어놔야겠어. 나는 ...세뇌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348 이런 식으로 함부로 명령을 받고 소유물 취급을 당하는 것은 아무래도 나한테 안 좋았다.

의사는 내 병을 학교 당국에 숨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글쓰기가 나를 치유할 수 있을까?

 

347 선생님, 성 금요일이 뭐예요? 하고 어이없는 질문을 던졌다. 종교 과목을 선택한 몇 안 되는 학생을 데리고 고군분투하는 젊은 선생님을 볼 때마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348 하느님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대인 학살에 교회도 연루되어 있었고 유럽에서 벌어진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르면서 겪은 악몽은 해결할 수 없는 물음을 남겼다.

1979년은 제리 폴웰이 이끄는 도덕적 다수 운동이 미국 정치에 등장한 해이기도 하다.

349 이 운동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 이 때부터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자기기 신앙인으로 거듭 태어났다는 징표를 드러내는 것이 여러 모로 유리했다.

근대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세속 문화에서 변두리로 강등되었던 신을 다시 무대 중앙으로 올려야 한다는 충동을 느꼈다.

-근대가 아니고 비도덕적 문화에 환멸을 느낀 게 아닐까?

이 호전적 신앙을 일컫던 근본주의라는 것은 저변에 잠겨 있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영성과 신비주의도 새롭게 관심을 끌었다. 종교가 돌아온 것이다.

350 섹스 피스톨즈는 무대에서 토했고 여왕과 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씹으면서 모든 가치 모든 원칙은 죽었다고 요란하게 떠들었다.

믿음 자체가 놀림감이 되었다.

-마귀는 죽이고 도둑질하고 멸망시키러 왔다. 신을 거부하다 사탄에 붙들려 더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350 마거릿 대처는 주여 저를 당신의 평화를 위한 도구로 써주소서 라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과 함께 총리로 취임했다. 기도문과는 달리 그녀는 대단히 전투적이었고 영국의 자멸을 우려하는 대중지의 두려움을 우려먹었다. 자기가 대영제국을 되살리겠노라고 장담했다.

351 호통을 치는 듯한 그녀의 말투, 사치스러우면서도 유난히 깔끔을 떠는 옷차림, 위로 꼿꼿이 세운 머리, 단호한 행동거지는 자타가 인정하는 우월 의식의 표본이 아닐 수 없었다.

-작가는 비판의식이 너무 강하다. 는 인정했는지 모르겠고 가 인정했다면 그것을 꼭 우월의식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책임감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타인을 보는 눈이 좁다. 좋게 받아들이는 마음도 필요하다

그 가련한 프랭클린 교수 -또 남을 비판한다. 자신의 눈으로 타인을 보는 마음

내가 경험한 바로는 확신은 사람을 냉정하게 잔인하게 비인간적으로 만들었다. 확신은 새로운 가능성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자기 밖에 모르는 거만한 사람을 만들었다.

352 종교를 지닌 사람은 특히 이런 독단에 물들기 쉽다.

-용서도 독단인가? 뭐든 하루아침에 눈에 보이는 결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복은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루살이 같은 인간이 그 모든 결과를 눈으로 다 볼 수 없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부로 짓밟기 일쑤인 신앙, 독단, 정통 이런 것들이 더욱 같잖게 보였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독단이 아닐까

그깟 열매 한 알 먹었다고 이 난리를 쳐? 도대체 무슨 놈의 신이 어쩌다 실수 한번 했다고 해서 인류 전체에 저주를 내리느냐 이 말이었다.

354 신이라는 존재는 그 분에게 좀처럼 안 풀리는 방정식 문제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355 예수가 살아있다면 아마 이 노부부가 비싼 밴을 몰고 방방곡곡으로 부와 명예를 싣고 돌아다니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재산을

가난한 사람한테 몽땅 기부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356 글로 적으면 생각이 훨씬 분명해지거든. 그것은 창조적인 자기 평가와 발견의 수단이었음

 

좁은 문으로

 

363 학교 일은 지적으로 자극을 주지도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합니다.

366 그녀는 자기 밑에 있는 교사가 이런 식으로 유명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또 자기 위주의 생각이다. 교장이 아닌 사람은 교장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내면 탐구는 언론에서 선정적 기사로 변질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때의 狂風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들...

367 그래도 나는 수녀원이 나한테 주마고 약속했던 그 밀도 있는 교양감과 초월감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나는 속세에서 살아가면서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여전히 기다리는 수녀였을까?

368 수녀원과 교회와는 모든 인연을 끊었다. 내 입으로 밝힐 때 마다 내가 영성과 결별했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할 수 있었다.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나는 변신과 초월을 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내지 못했고 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낯선 세계의 유혹

 

372 이상하게 일단 택시에 오르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자신의 내면을 거의 모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

여자들이 잿빛 인도를 으스대면서 걸어갔다

-으스댄다는 표현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열등감인가?

374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보면 인간의 몸을 빌렸다고 말할 수 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육체를 고집불통의 형제라고 불렀다.

시에나의 카타리나는 교회의 재가를 받고 스스로 굶어죽었다. (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스도로, 자신의 어머니를 성모 마리아로, 그리고 자신의 오빠들을 사도의 표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겸손한 태도로 일관하며 섬겼으며 이는 그녀가 영적으로 한층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특별히 그녀는 수도원을 벗어나 외부에서 활동하며 기도하는 도미니코회원들과 같은 삶을 동경하였다. 이 회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동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고 세속에 있으면서 성 도미니코의 정신을 따라 가능한 한 복음의 권고를 실천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회였기 때문에 그녀는 이전과 같이 집에서 자기 가족과 함께 살았다. 집에서 홀로 정적인 침묵과 고독 속에서 살았다.

그리스도가 가타리나에게 봉쇄 생활이 아닌 대중 속에 섞인 삶을 살 것을 지시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가타리나는 자신의 가족과 다시 어울리면서 시내를 돌아다니며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에 대한 봉사 활동을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하였다. 특히 나병과 흑사병 같은 무서운 전염병에 걸린 자들도 정성껏 간호해 주고, 다른 사람의 집까지 청소해주는 등 그녀의 열심은 주위 사람들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그녀로부터 영적인 권고와 지혜를 구했다. 가타리나는 그들을 가족이라고 불렀고, 그들은 그녀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가타리나를 시기하여 근거 없는 모함을 하였으나 그녀는 조금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친절히 대하며 봉사를 하였다.)

375 예수를 낳고 난 다음에도 어떻게 마리아가 처녀로 남을 수 있었단 말인가?

 

<발견과 공감>

 

387 예루살렘으로 가서 이스라엘 제작사와 같이 일해야 했다. 신학에 관한 글을 써서 밥벌이가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389 유일하게 이 프로가 잘 될 거라고 확신한 사람은 존이었다.

390 신앙을 공개된 자리에서 다른 주제처럼 성역 없이 한번 실컷 까보자는 거지요.

존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내가 교회의 마수에서 빠져나오기 천만 다행이라 고 늘 말했다.

392 내가 주로 화가 난 것은 무조건 지적으로 순응하라는 교회 당국의 아집이었다.

그레타 수녀님이 했던 말을 나는 잊어버릴 수가 없다. 부활의 역사성을 뒷받침하는 논증은 사실이 아니지만 어디 가서 그런 말은 제발

하지 말아달라던.

-그레타 수녀가 종교를 대변하는 사람도 아닌데 실명까지 말하며 비난조로 말하는 것은 역시 수녀로 머물기에는 어려운 사람이다.

20세기 후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아직도 인격화된 신이 이 세상을 만들었고, 인간의 역사를 다스린다고 믿고, 로마 제국의 변방에서 이름 없이 죽었던 한 젊은 유대인 사부가 신적인 존재였다는 사실을 믿는지 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진실을 따르려면 정직해져야만 했다. -휴우....

393 나는 그런 독단적 교리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를 까발리고야 말 것이다.

 

최초의 기독교인

 

394 그가 (바울) 예수의 단순하고 인자한 말씀을 비틀어버리는 바람에 그 이후로 기독교는 끝내 처음의 정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말았다.

395 예수는 자기가 신이라고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신성이 아니라 인성이 강조된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한없는 헌신과 순종을 가상히 여긴 하느님이 예수를 신과 소통하는 특별한 지위로 끌어올려 키리오스 곧 라는 호칭을 준 것이다.

396 기독교를 세운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사도 바올로였다.

401 나의 신앙 생활은 공식 교리를 받아들이기 위한 안간힘의 연속이었다.

402 우리는 정설 곧 바른 이론보다는 정행 곧 바른 실행을 중시합니다. 예수에 대한 공식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고서 어떻게 기도교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성지의 망아 체험

 

408 할 말도 없으면서 뭐 하러 말을 합니까

409 베들레헴은 우리한테는 영적 탐구의 변함없는 상징이었다.

410 거기에는 신도 없었고 성자들이 경험했다고 하는 황홀경도 없었다. 그저 나를 잊어버리는 체험뿐이었다.

 

타자의 발견

 

412 그들이 던진 교묘한 질문에 예수는 넘어가지 않았다. 무심하고 몰인정한 발언은 그들이 참다운 영혼의 가치에 얼마나 둔감한 사람들인가를 보여주었다.

413 유대교는 그 나름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지니고 있었고 기독교만큼이나 다채로웠다. 예수가 이 도시에서 2천 년 전에 죽은 다움에도 나는 상상도 못했지만 유대교는 나름대로 계속 성장하고 발전해 온 종교였다. 아무리 하찮은 일에도 종교적 잠재력이 있었다.

유대교에서는 일상생활의 모든 활동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사였다. 순간순간이 신과 만나는 기회였다.

유대인은 율법 하나를 준수할 때 마다 신에게 다가서면서 일상생활을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415 예수한테 질문을 던진 것은 그저 예수를 덫에 빠뜨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지금 예시바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유대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논쟁도 엄연히 예배의 한 형식이었다. 두 세 사람이 모여서 토라를 함께 공부하면 그들 사이에 신이 내려와 계신다 라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율법공부를 통해 유대인은 신에게 다가섰다. 유대교에 그토록 반기를 들었던 바울로도 사실은 새로운

이스라엘을 새로운 세계에서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참신한 길을 모색한 것이었다. 이 일을 하게 된 덕분에 나는 다시는 기독교를 동떨어진 종교로 보지 않게 되었다.

423 불쌍한 친구가 갈릴리에서 설교하는 모습이 들어가는 거지요

하루하루를 바올로와 함께 살다 보니 이 인간의 천재성과 비장한 삶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열정과 창조성과 개종자들에게 그가 느꼈을 애정에서 감동을 받았다.

트레 폰타네 (이탈리라의 국보)

바울로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 예수가 영예롭게 돌아오고 새로운 신앙이 지구 끝까지 퍼져나갈 줄로 알았다. 그렇지만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쓸쓸히 죽었다.

-저자가 얼마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 보이는 구절

바울로의 야무진 꿈은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자기 손으로 시동을 걸긴 했지만 그 뒤

천년 동안 교회가 어떤 길을 걸을지 내다보았더라면 그는 절망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저자는 확실히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따지니

사람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의 고통이 나를 깨웠다.

 

 

429 세속 국가인 영국에서 주류 종교에 대한 나의 비판은 호평을 받았다.

나 같으면 그런 질문에 더 멋지게 대답했을 텐데 하고 속으로 건방지게 생각한 적도 많았다

-솔직한 사람이다.

430 텔레비전은 덧없는 매체다.

냉소적 접근법 은 내가 그 무렵에 낸 두 권애 책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431 결국 종교는 하나의 예술형식, 지극히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보아야지 이것을 자꾸만 거룩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마음속으로 결론 내렸다.

435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악의적으로 미워하는 풍토를 발전시킨 서양이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또 다른 오해를 키우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십자군은 자기네 땅에 살고 있던 유대인한테 손을 내밀 생각도 못했고 이슬람한테 배우려는 생각도 못했고 자기들의 공포와 원한을

다스릴 줄도 몰랐다. 그들은 자기들이 정신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죽이고 망가뜨리고 태우고 모독하고 부수었다.

437 십자군 이야기는 인간의 고통, 광신, 야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주변 어디서나 십자군을 방불케 하는 공격성과 만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을 알아보는 게 어떨까 가령 아브라함을 모두 인정하는 세 종교가 받드는 신은 똑같은 신이었다.

신의 역사를 한번 써보는 것이 어떨까?

 

< 빛을 향해 한 걸음 >

 

신의 역사를 찾아서

 

447 나한테서 벗어나 다른 생명체로 다가서는 몰아의 경지

449 인간의 욕구가 투사된 것이 신이었다. 그러나 합리성이 지배하는 근대의 밝은 빛은 차츰 이런 거룩한 무대 장치 없이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451 어쨌든 그 망할 놈의 신한테 넘어가서 수녀원에 들어갔고, 그 얼어 죽을 완벽주의 때문에 나 자신한테 넌더리를 치게 되었고 신의

 무관심 때문에 나는 퇴짜를 맞았다는 가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 신이 누구한테 필요하다는 건가

452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은 하찮은 농담거리는 아니었다.

453 위대한 신화를 보면 남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번번이 길을 잃는다.

영웅은 낡은 세상과 낡은 길을 버리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남의 괴물이 아니라 자기의 괴물과 싸우고 자기의 미궁을 탐색하고 자기의 시련을 감내해야만 자기 삶에서 빠져 있었던 것을 결국 찾아낼 수 있다.

454 성배 전설에 나오는 황무지는 사람들이 사회의 인습만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남들이 기대하는 행동만 하면서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곳이다.

456 10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바꾸는 일을 하는 것이 종교다.

종교는 도덕의 미학이요 윤리의 연금술이다.

457 구도라는 것은 지금 여기서 얼마나 알차게 사는가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전히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458 교단이 이런 식의 순응을 강요하는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종교를 창시한 분들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외롭고 위험한 도전

 

459 모든 종교는 공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460 나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낸 다음 남들한테도 비슷한 괴로움을 안기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461 바깥 세상에서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일어났는데 내 안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란 법이 있을까?

462 나의 삶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되지도 않은 해석을 하면서 내 생각을 묵살할 때 나도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비참한 느낌이 들었던가

463 이런 아픔을 내가 느꼈다면 남한테도 그런 아픔을 입혀서는 안된다

 

나를 버리고 나를 만나다

 

470 모든 위대한 종교는 탐욕에 뿌리를 둔 공포와 아집에 젖어있는 이기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누누이 역설한다.

엑스타시스 즉 자아의 밖에 선다는 뜻

나를 버릴 때 비로소 평소의 경험을 뛰어넘는 다른 가능성에 눈뜨면서 가장 창조적으로 살 수 있다.

473 이슬람교가 나타나기 전의 아라비아는 폭력과 야만이 지배하는 어지러운 세상이었지만 이제는 경건함과 자비로움이 넘친다.

 

침묵은 나의 스승

 

478 나중에는 거의 침묵을 귀로 듣는 경지까지 올라갔다. 나는 그 침묵이 편했고 거기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대화 때문에 자꾸 끊기는 일이 없어지니까 책에 적힌 단어들이 내면의 자아로 직접 말을 걸기 시작했다. 침묵은 나의 스승이 되었다.

482 나는 독학으로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였지만 아마추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마추어는 어차피 자기가 좋아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아닌가

483 그렇게 오래도록 기도하면서 맛보고 싶었던 환희를 나는 공부를 하면서 찾아냈다.

성 베네딕투스도 수도사들에게 거룩한 공무를 하는 시간을 갖도록 만들어서 비슷한 체험을 맛볼 수 있게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484 위대한 예술도 그렇지만 최고의 신학도 보편을 지향한다.

 

이해하려면 나를 던져라

 

491 신앙은 결국 인생이 아무리 비극적으로 보여도 거기에는 궁극적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키워 나가는 것이었다.

492 신을 알고 나서 내가 더 따뜻하고 마음이 넓어져서 사랑을 베푸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면 그렇게 만든 신학은 훌륭한 신학이다.

495 인간은 타인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신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496 자아는 삶의 중심에서 내려오고 그 자리에 남들이 들어앉는다. 그래서 성스러움을 체험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이기심의 껍질이 허물어진다.

499 이런 아픔은 공감할 줄 아는 영혼을 지닌 사람이 치러야하는 작은 희생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렇게 남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데서 나는 기쁨도 맛보았다. 내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남의 가슴으로 들어가는 버릇을 둘이다 보니 나만의 프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국 문제는 자아인 것이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늘 자신을 넘어서야 한다.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양보한다는 뜻이다.

501 그게 아니더라도 원한과 분노와 이기적 근심이 안에 꽉 차 있으면 일이 잘 되지 않는다.

 

다시 좁은 계단을 오르며

 

504 모세는 신이 있는 곳에 와 있었지만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비밀은 이 무지의 구름에 있었다. 그것은 지식을 주지 않는다.

506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도 신성하다는 것을 우리는 여기서 깨달아야 한다.

망가진 세상에서 우리가 마음에 그릴 수 있는 것은 자취를 감춘 신뿐이다.

뛰어난 신학자와 스승은 결국 저 너머에 있는 것은 무라고 망설임 없이 인정했다.

508 우리의 임무는 망가진 세상을 고치는 것이다. 그것을 못하는 종교는 쓸모가 없다

509 12억이나 되는 사람들이 믿는 신앙을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만행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되면 과거에 서구가 저지른 근시안적 행위와 정책이 지금의 문제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지금 하는 행동은 과거에 우리가 했던 행동의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일 때가 많다.

510 미국에서 나는 외국인이고 국외자다. 런던으로 돌아와도 주변인이긴 마찬가지다. 내가 관심을 갖는 종교와 영성의 문제에 영국인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지복은 신학 공부였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23쪽 분량의 긴 머리말, 8꼭지의 본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차례속의 글 제목을 보면 어둠, 악마, 상처, 짐승, 공포, 절규, 절망, 두려움 등 접하고 싶지 않은 단어가 나오다가 마지막으로 가면서

다행히 용기, 공감, 빛이 나온다.

내 성향으로는 책방에서 이 책을 만났다면 제목만 봐도 내려놓았을 것이다.

어두움에서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온 사람의 이야기로 저자는 너무나 애절하게 본인의 얘기를 털어놓고 있는데 나는 책 읽는 동안 무덤덤했다.

저자가 강의하러 다니고 외국인인데다 사람들이 볼 때 책으로 성공해서 그렇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내 얘기를 쓰면 소설 몇 권이야

하는 식의 얘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저자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자아 확장, 자기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과 별 다름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주제에 맞는 책을 썼다. 책 제목이 <마음의 진보>이기 때문이다.

제목대로 그녀는 자신의 마음과 씨름하다가 공감이라는 진보된 마음을 얻었다.

그 진보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하여 자신의 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또한 그녀는 행동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긴 사람이다.

저자는 17세에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녀원으로 간 고집 세고 대담한 성격이었다.

처음에는 대체로 야단맞고 울고 했다고 하지만 그녀는 내 외적인 어려움을 딛고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확대시켜 나갔다.

 

그렇지만 그깟 열매 한 알 먹었다고 이 난리를 쳐? 도대체 무슨 놈의 신이 어쩌다 실수 한번 했다고 해서 인류 전체에 저주를 내리느냐는 표현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슬람교는 공감하면서 자신이 몸 담았던 종교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나보다.

이런 심성이라면 내가 신이라도 안 만나 줄 것 같다. 이런 류의 표현은 여기저기 나온다.

또라이, 뿅 갔다, 까발리다, 씹어댔다, 욕을 퍼붓고, 겁을 주니, 캬 죽이는 대사네

뜯어말리다, 미칠 것만 같았다 등등의 표현은 읽기가 거북했다.

 

좁고 지저분한 사무실에서 매캐한 담배 연기 속에서 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줄거리를 짜냈다.’

란 문구에서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그 망할 놈의 신한테 넘어가서 수녀원에 들어갔고, 그 얼어 죽을 완벽주의 때문에 나 자신한테 넌더리를 치게 되었고 신의 무관심 때문에 나는 퇴짜를 맞았다는 가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 신이 누구한테 필요하다는 건가란 표현은 마치 악마의 전도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이 그러하니 거룩하신 신과 조우가 될 리 만무다.

모든 행동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그것을 왜 신의 책임으로 돌리는가?

왜 신에게는 공감을 못하는가?

자신이 스스로 수녀원을 찾아갔고 스스로 나왔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려하다가 어려웠지 언제 한번 나를 도와달라며 겸손하게 무릎 꿇어 보았는가 묻고 싶다.

저자는 굉장히 자아가 강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원한과 분노와 이기적 근심이 안에 꽉 차 있으면 일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신에 대한 분노를 하루빨리 청산하고 드디어 신의 손을 잡고 인생의 어려움을 더욱 강하면서 쉽게 헤쳐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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