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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30일 14시 20분 등록
저자 연구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1872년 5월 18일 - 1970년 2월 2일)

“거짓과 더불어 제정신으로 사느니, 진실과 더불어 미치는 쪽을 택하고 싶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이자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러셀은 할아버지 존 러셀이 영국 수상을 역임한 귀족가문에서 출생했다. 그의 가문은 보수적이였으나, 가문대대로 기존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성향이 강했다. 이런 가풍은 훗날 러셀의 정치성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러셀은 행동하는 양심으로 시대의 불의를 결코 묵과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러셀은 어려서 양 부모를 모두 잃었기 때문에, 할머니인 러셀 백작 부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났다. 러셀은 고독한 사춘기를 보냈고, 이 시기에 몇 번의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어린 러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수학이였다. 러셀의 친형인 프랭크는 러셀에게 기하학을 가르쳐 주었고, 러셀은 훗날 이 때의 경험을 '첫사랑처럼 짜릿했다'고 회고했다. 수학의 세계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 러셀은 1890년 그의 나이 열여덦살에 영국의 명문대학인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대학에 입학한다. 이때 그를 심사했던 교수는 유명한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였다. 화이트헤드는 러셀의 천재성을 첫눈에 알아보았고, 스승과 제자는 그로부터 20년 뒤 <수학원리>라는 명저를 공저하게 된다.

1893년 대학을 졸업한 러셀은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5살 연상의 미국여인과 결혼한다. 평생에 걸친 여성편력으로 유명한 러셀의 첫번째 결혼이었다. 러셀은 저작활동뿐만 아니라 정치에 참여하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이어나간다.  1903년 그의 나이 서른살에 <수학의 원리>를 출간한다. 수학과 논리학은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저술이였다. 그후 10년간의 방대한 작업을 거쳐, 1910년 화이트헤드와 공동 저작한 <수학 원리>가 출간된다.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찬 이 책은 전문가들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학계에 그 가치를 인정 받게 된다. 그 결과 러셀은 불과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영국 왕립 학회 회원으로 임명된다.

<수학 원리>의 명성에 힘입어 러셀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트리니티 대학의 논리학과 수학 담당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교수생활을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러셀은 적극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게 된다. 반전 운동에 앞장서고, 징병에 반대하는 성명을 낸다. 그로 인해, 정부와 대중의 미움을 사게 된 러셀은 대학에서 쫓겨나게 되고, 감옥까지 가게 된다.  그와중에도 러셀은 연구와 집필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러셀은 철학의 전통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술이론'과 '논리적 원자론'을 수립한다. 

1921년 첫번째 부인과 이혼후 재혼하게 된 러셀은 두번째 결혼을 통해 아들을 얻게 된다. 그 영향으로 인해 그는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러셀은 직접 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실험적인 학교운영은 결국 실패하게 되고, 러셀은 세번째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셀은 1차 세계대전때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반전운동을 전개한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그는 전쟁자체를 반대하지 않고, 나치를 반대하고 연합군을 지지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시대가 시작되자, 러셀은 공산주의를 반대했고, 서구 자유 진영의 대표적 지성인으로 우뚝서게 된다. 그 결과 각종 훈장을 받게 되었고, 그 백미는 1950년에 받은 노벨 문학상이었다. 하지만 러셀은 권력의 편에 서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말년에 핵무기 개발을 반대하면서 다시 한번 옥고를 치르게 된다. 그는 시대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했고, 직접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가였다. 러셀은 단순히 저항적인 지식인의 삶만을 지향한 것이 아니였으나, 그의 신념이 사회의 권위에 억압받을 때 주저없이 전면에 나서서 군중에게 호소하고 몸소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970년 아흔여덟살의 나이로 눈을 감기전까지도 러셀은 베트남 반전 운동에 참여했다.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러셀이 말한대로, 그는 사랑에 대한 갈망을 채우기 위해 여든살이 되어서도 네번째 결혼을 감행했고, 지식에 대한 탐구욕으로 죽기전까지도 끊임없는 저술활동을 했으며, 인류의 고통과 그에 대한 연민과 신념은 전쟁에 대한 반대로 이어졌다. 이 시대가 낳은 진정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용기있는 철학자로서 러셀은 후대에 기억되고 있다. 저서로는 철학도들의 필독서인 <서양철학사>를 포함 70여권과 수백편의 논문이 있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머릿말
p14
서양 철학은 모두가 그리스 철학이다

프롤로그
p16
그러나 이 모든 분야의 지식은 잘 알려지지 않는 주변 분야에 인접해 있다. 우리가 그 접경지역에 이르고 이곳을 벗어날 때, 우리는 과학을 지나쳐 사색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이 사색적 활동은 하나의 탐험이며, 다른 것들 사이에서는 철학적 성격을 띤다.

실제로 미지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책을 바탕으로 신비적이거나 다른 근원적인 영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물러나서 스스로를 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과학적, 사색적 방법이다.

p18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연구할 때, 우리는 다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배우게 된다.

>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도 그 오래전 누군가가 했을 그 고민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책을 통해서 누군가의 솔루션을 발견하게 되면 흐뭇하다. 어려운 문제에 대한 힌트를 얻은 느낌? 그래도 나만의 정답은 내가 만들어야겠지.

제1장 소크라테스 이전
p25
이 오르페우스의 교리는 금욕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정신적인 무아지경을 강조한다

> 에우리디케의 남편 그 악기의 명인 오르페우스를 창시자로 모시는 종교

결국 그리스인의 성격에 두 가지 면, 즉 질서 바르고 합리적인 면과 제어할 수 없는 본능적인 면이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세계를 변혁시킬 수가 있었다. 니체는 이 두 요소를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고 불렀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내면에서 격렬히 충돌하던 두 세계, 우리의 내면에서도 아직도 충돌하고 있는 아폴로와 디오니소스

p26
그리스어로 사색이라는 말이 처음에는 무엇인가 '보고 돌아다닌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 철학의 바탕에 있는 근본 사상은 로고스이다. 이것은 특히 '말'과 '규칙'을 뜻한다. 이와 같이 철학적 추론과 과학적 탐구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p30
탈레스는 자석이 쇠를 움직일 수 있으므로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 끌어당김의 법칙

p31
탈레스의 견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가 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p33
아나갸시메네스는 변화란 것을 물질의 농후화와 희박화를 추진하는 외적 힘의 작용 과정이라고 보았다.

p34
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해답이 아니라 제기된 문제이다.

p38
조율된 현이 그 뒤 그리스 철학 사상에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균형의 의미에서 조화의 관념, 대립하는 높낮이의 조율, 윤리학상의 중용 또는 중도의 개념, 네 가지 기질설, 이 모든 것이 피타고라스의 발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p39
라틴어로 '계산'이란 말은 자갈을 다루는 법이란 뜻

p40
생각할 수 있는 것만이 실재이고, 완전하고 영원하며, 이에 반하여 감각으로 느끼는 것은 겉치례뿐이고 불완전하고 순간적이라고 보는 관점까지 거의 다다랐다. 이것이야말로 피타고라스 학설의 직접적인 결과로(...)

p42
(헤라클레이토스) 실제 세계는 대립하는 경향을 조절해서 평형을 회복한다. 대립물끼리 다툼의 배후에는 규칙에 따라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하나의 조화가 있는데, 이것이 곧 세계이다

활이나 현악기처럼 반대로 작용하는 장력이 서로 조화된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 자네는 두번 다시 똑같은 강물에 뛰어들수 없다

(헤라클레이토스) 우리는 대립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실은 한 상태에 있는 서로 다른 본질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이런 의미를 내포하는 말 가운데 가장 놀랄 만한 것은 '선과 악은 하나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틀림없이 선악은 하나요,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리막길이 없는 오르막길은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의 관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선의 관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 캠벨의 신화에서부터 얼마후면 읽게 될 <무경계>와 같은 책에 이르기까지 모두 선악과 같은 모든 대극은 결국 하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비유는 적절해 보인다.

p47
'많은 것을 배워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헤겔에게서 볼 수 있는 관점으로, 그 원천은 헤라클레이토스이다.

p52
여기에서 말이 의미를 갖게 되는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전반적인 의문이 생기는데, 이것은 너무나 큰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 논할 수가 없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가 변화를 부정한 사실은 그 뒤의 모든 유물론의 바탕이 된다. 그가 존재를 귀속시킨 '그것'은 나중에 실체라고 불리게 되었다. 유물론자들에 따르면, 이 실체는 모든 사물을 구성하는 불변이며 파괴할 수 없는 물질이라는 것이다

p54
엠페도클레스는 이전의 철학자들이 공기라고 부르는 것을 에테르라고 불렀다. 두 단어가 모두 그리스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테르 이론은 19세기 후반기에 전자기 이론이 파동의 전파를 제시하기 위해 어떤 매게를 요구했을 때, 다시 새로운 과학적 지위를 얻었다.

p56
엠페도클레스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추종자인 크로톤의 의사 알크마이온에게서, 건강은 상반되는 구성 요소의 올바른 평형상태이며, 질병은 그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우세할때 생긴다는 이론을 이어받았다. (...) 특히 그의 시각론은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는데, 눈에 비치는 대상에서 나오는 것과 눈에서 나오는 한 줄기의 빛이 한 점에서 만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p70
피타고라스학파는 영혼에도 조화의 개념을 적용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영혼은 육체의 하나의 조화이며, 영혼은 육체의 잘 정돈된 상태의 함수이다. (...) 우리는 영혼을 악기의 현으로 보고, 육체를 현이 감겨 있는 악기의 몸통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p76
제논의 역설 - 거북이와 아킬레우스의 이야기

p86
(프로타고라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존재하는 것에는 존재하는 것의 척도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척도이다

제2장 아테네
p94
(소크라테스) 악을 저지르는 원인은 단 한 가지 무지에 있다. 그러므로 선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선'은 지식이다. '선'과 지식의 연관성은 줄곧 그리스 사상의 특징이었다

p97
결국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뜻을 이해했다. 신만이 현명하며, 사람의 지혜는 쓸모없는 것이며, 자기처럼 자신의 지혜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01
아카데미 교육 과정의 목적은 사람들의 생각을 경험 세계의 현상에서 배후에 가로놓인 불변의 틀로, 플라톤의 말을 빌리면 생성에서 존재로 향하게 하는 것이었다

.

p108
그리스어의 이데아는 그림이나 형상이라는 뜻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데아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들고 있다. 철학없이 사는 사람들은 둥굴 안에 잡혀 있는 사람과 같다.

p109
우리가 철학을 모른다면, 우리는 동굴에 갇힌 죄수와 같을 것이다. 우리엑는 그림자, 즉 사물의 가상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철학자라면, 이성과 진리라는 햇빛이 비치는 바깥쪽의 물체를 보게 된다. 이것이 실제이다. 우리에게 진리와 아는 힘을 주는 이 빛은 '선'의 이데아를 의미한다

p114
(플라톤의 국가론) 신은 온 세계의 창조자로서가 아니라, 사악하지 않은 것들의 창조자로서만 제시되어야 한다

p121
프랑스의 철학자 G 소렐은 철학이란 본디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지혜'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p123
보통의 언어는 과거부터 내려온 단편적인 철학적 사고가 고인 곳이다

p139
(플라톤) 현대의 전문 용어로 말하면, 우리는 '존재한다'라는 실존주의적 용법과 이 명제에 붙는 연결사적 용법을 구별해야 한다. 

p146
이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만한 문호가 아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플라톤이 연극상의 최대 걸작을 썼는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무미건조한 교과서를 만들었다. 플라톤이 어수선한 대화편을 쓴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체계적인 논문을 완성했다.

p154
소크라테스틔 3단 논증의 경우, 제1전제를 알기 위해서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p168
선이란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만물이 노력하는 목표이다

p169
윤리적 문제는 우리가 인간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물을 때 생긴다

p172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우정이란 자존심을 남에게까지 연장하는 일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얼마쯤 독선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면이 있다.

p176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예술은 모방이다.

p179
비극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감을 세탁해서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데 있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카타르시스'를 뜻하는데, 자기 공포와 연민의 감정을 대리 경험하면 영혼은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p185
이 시기의 성과로서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태양중심설의 발견이다. (...) 사모스 섬의 아리스타르코스가 처음으로 이 견해를 완전히 세부적으로 설명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3장 헬레니즘
p192
기원전 200년 무렵, 지브롤터 해협에서 갠지스 강까지 그리스어로 의사가 소통되었다

p201
영혼도 하나의 특별한 물질이며, 그 분자는 육체의 구성원자와 섞여 있었다. 감각이란 대상에서 나온 것이 영혼의 원자와 충돌하는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 에피쿠로스는 죽음의 공포가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죽음 자체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203
스토아 철학자의 철학 전체를 통해서 중심적 관심을 이루고 있던 가장 중요한 논점 가운데 하나는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문제이다

p214
로마가 해낸 최고의 역할은 자기 문화보다 오래되고 뛰어난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p221
그리스인의 실패가 뛰어난 지력에서 생긴 어떤 자만심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로마인은 상상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p222
그리스의 철학 전통은 본질적으로 계몽과 해방의 운동이다. 정신을 무지의 속박에서 해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스 철학은 알지 못한 것에 대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성이 세계에 접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 철학이 과학의 친구였던 시기다

제4장 초기 그리스도교
p231
1세기 이후,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완전히 서로 다른 대립 종교로 대치하게 되었다.

p232
헬레니즘화된 제국의 시민에게는 그리스도를 유대신 여호와의 아들로 받아들이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p240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는 죄와의 싸움에 대한 많은 설명이 있다. 젊었을 때 사소한 하나의 사건이 평생 그의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매우 경미한 일이었다. 소년 시절에 그는 순전히 장난으로 이웃집 마당에 있는 배나무를 못 쓰게 만들 일이 있었다. 죄에 대한 그의 병적일 정도의 집착은 이 잘못된 행동을 확대시켰다. 그래서 그는 결코 자기를 용서할 수가없었다

죄의식은 구약성서 초기에는 국민적 결함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차츰 개인의 오점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이러한 역점의 변화는 중대했다. 제도로서의 교회는 잘못을 저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저주를 받은 죄 많은 존재로, 교회의 조정이 있어야만 구제된다

> 종교가 그렇게 강한 힘을 발휘했음에도, 암흑의 중세라고 불린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p243
그리스인의 관점은 당연히 범신론으로 끝난다. 이 범신론에 따르면, 신은 세계다

이 견해를 가진 가장 유명한 대표적 철학자는 스피노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구약성서의 창조주를 택하지만, 이것은 이 세상 바깥쪽에 있는 신이다. 이 신은 시간을 초월한 영혼으로 인과율도, 역사적 발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은 세계를 창조했을때, 세계와 함께 시간도 창조했다. 우리는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물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물을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시간은 세 겹의 현재이다. 현재라고 부르기에 어울리는 현재는 진실로 오직 하나뿐이다. 과거는 현재의 기억으로서 살아 있고, 미래는 현재의 기대로서 살아있다. 이 이론에는 나름대로의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시간에 대한 주관적 성격을 인간의 정신적 경험의 일부로 강조하는 데에 있다.

> 이 문단을 보면 대부분 번역된 문장은 영 아니지만, 원저는 무슨 말인지 잘 알 것 같다. 

p255
로마 카톨릭교의 지위를 강화하는데 그레고리우스는 불굴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는 마음이 조금 좁았다

> 아랫사람들이 많이 힘들었겠군

제5장 스콜라 철학
p258
로마의 중앙 정권이 쇠퇴함에 따라, 서로마 제국의 여러 나라들도 미개 시대로 빠져 유럽은 전반적인 문화의 쇠퇴기로 들어갔다. 이른바 암흑시대는 주로 600년에서 1000년까지로 계산된다

> 다시 말하지만 이 암흑시기에 그리스도교와 교회가 모든 권력을 틀어쥐고 있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서양 문화가 쇠퇴한데 반해, 젊고 힘찬 회교 문명이 인도의 대부분, 중동, 북아프리카, 에스파냐를 둘러싸며 번성했다. 더 멀리에는 당나라 때의 중국 문명이 눈에 띄는 문예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p267
(요하네스의 실재론) 신이 그 목적과 동일하다는 견해는 정통 신앙으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범신론적 신학으로 통한다

p272
회교 시대는 마호메트가 622년에 메가에서 메디나로 도망간 헤지라부터 계산된다. 632년에 그가 죽은 뒤, 아라비아인의 정복은 고자갸 1세기만에 세계를 일변시켰다

p284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설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공인된 교리가 되었으며, (...) 오늘날 다른 철학에서 이 정도로 뚜렷한 지위를 차지하고, 이 정도로 강력한 배후를 가지고 있는 것은 공산주의의 공인된 원칙인 유물변증법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다

p288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을 하나의 사심을 떠난 설계자라고 보고 있다. (...) 그러나 아퀴나스에게 신은 모든 존재의 원천이다. 유한한 사물은 단지 우연히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 존재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것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의존하며, 이 어떤 것이 바로 신이다.

p292
(토마스주의) 동시에 철학은 신학적인 목적에 예속되었던 관계를 끊게 되었다. 철학적 사고를 자유롭게 하면서 함께 나타나는 것이 과학적 연구이다.

p294
신학은 신에 대한 것과 관계가 있는 이상 이미 합리적 학문이 아니라, 오히려 계시로 인도되는 신념이다. 이 정신으로 둔스는 신의 존재에 대한 토마스주의적 논증을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토마스주의적 논증이 감각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었다.

p299
신플라톤주의적 전통으로 되돌아가는 신비 운동의 대표자는 도미니코 교단의 성직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였다. (...) 1329년,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은 이단이라는 선언을 받았다.

p300
단테는 많은 방언들 가운데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택하여, 모국어인 토스카나어를 중심으로 근대 이탈리아어의 문어를 수립했다. 그 무렵에 프랑스와 독일, 영국에서 대중어가 나왔다. (...) 라틴어 차츰 힘을 잃어 19세기 초기에 학자의 표현 수단으로는 모습을 감추었다. 17세기에서 20세기까지, 세계 공통어로서의 이 역할을 맡은 것은 프랑스어였고, 현대에는 영어가 이에 대체되었다.

p303
각 나라 국어가 번성함에 따라 교회는 철학과 과학의 지적 활동에 대한 지배력을 어느 정도 잃어버렸다.

p307
그리스 사상과 중세 사상의 주요 차이점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본다면, 그리스 사상에는 죄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 종교와 함께 원죄가 등장한 셈

p310
오컴은 신앙을 합리적 연구와의 있을 수 있는 모든 연관에서 해방시키면서, 철학을 비종교주의로 되돌리는 길을 열었다. 16세기 이후, 교회는 더 이상 이 분야를 지배하지 못했다.

제6장 근대철학의 융성
p314
르네상스가 직접적으로 인생관 전반에 영향을 준 데 반해, 휴머니즘 운동은 사상가와 학자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p316
과학적 연구가 진보해서 생긴 사고방식은 본질적으로 부활한 그리스인의 사고방식이다

p320
이탈리아에는 지나간 시대의 상징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고대문명의 유적이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은 알프스 이북 지방에서 일어난 운동보다 더 넓은 발판을 얻을 수가 있었다.

p322
철학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전체적으로 보아, 훌륭한 업적을 낳지 못했다. 이때는 오히려 자료를 재발견하는 시대였다.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위대한 시대라기보다는 특히, 플라톤 연구가 다시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p332
(토마스 모어 - 유토피아) 사물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면 공동의 복지를 존중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고 여긴다

>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얘기이지만 전적으로 옳다고 보기 어려운 주장이다

p334
(종교개혁) 16세기에 저마다가 종교적인 신념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관념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만큼 색다른 것이었다

p336
예수의 가르침과 현존 사회 질서 사이에 중대한 간격이 있다는 것은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p353
인간이 빠지기 쉬운 여러 오류에 대한 베이컨의 설명은 그의 철학 가운데 가장 빛난다. 우리는 네 가지 유형의 정신적 약점에 빠지기 쉽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것을 '우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첫째는 '종족의 우상'이다. 이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속하는 것이다. 희망적 생각이 그 한 예일 것이다. 특히, 실제로 존재하는 이상으로 큰 질서를 자연 현상에 기대하는 것이 그렇다. 다음에는 '동굴의 우상'이다. 이것은 각 개인적인 왜곡을 말하는 것으로 그 수는 무한하다. '시장의 우상'은 정신이 언어에 현혹되기 쉬워지는 경향 때문에 일어나는 오류로, 특히 철학에 유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극장의 우상'은 치계나 사상의 유파에서 일어나는 오류다. 

> 동굴의 우상이 소크라테스가 철학이 필요한 이유를 주장하는 대목에 나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p356
(토마스 홉스 - 리바이어던) 감정의 자연 상태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며, 저마다 남을 희생시켜 자기를 보존하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만인과 만인이 겨루는 전쟁 상태가 존재한다고 홉스는 생각한다.

p360
테카르트는 그때까지 가르침을 받고 말하는 대로 믿으라고 강요한 것 모두를 거부하기로 작정한다. 논리학과 기하학과 대수학만은 이 대학살에서 살아남아, 그는 이들 학문에서 네 가지 법칙을 찾아낸다. 첫째는, 분명하고 명백한 관념말고는 아무것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하나하나의 문제를, 그 해결에 필요한 만큼의 부분으로 나누어야 한다. 셋째는, 사고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에 이르는 질서를 따라야 하며, 질서가 없을 경우에 우리는 질서를 가정해야 한다. 넷째는, 우리가 빠뜨린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언제나 철저히 대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p367
(스피노자) 게다가 기존 종교를 뒤집어엎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느 한계 안에서 철학을 할 자유를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자기 시대나 그 뒤 100년 동안에도 죄악의 괴물이라고 비난을 받았다

p371
스피노자는 우리 인간의 낱낱의 지성을 신의 일부로 간주한다

정신의 본성은 사물을 우발적으로 보지 않고 필연적인 것으로 본다 (...) "정신의 본성은 어떤 무시간의 관점에서 사물을 지각한다"라는 저 유명한 말은 스피노자가 한 것이다

p381
(잠바티스타 비코) 신은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에, 세계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창조된 존재로서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다

p386
언어는 단계적인 절차를 밟아 과학적인 것이 된다. 언어 구조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문법가들은 언어에서도 또한 합리적 견해를 취하여, 언어를 의식적으로 고의로 구성된 것이라고 보는 잘못을 저질렀다

p387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언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하나는 언어를 분명하게 규정된 계산의 규칙으로 보는 극단주의적 합리주의자의 관점으로, 이는 널리 퍼져 있는 분명하고 명확한 관념이 언어 속에 내포되어 있다고 보는 리이프니치의 방식이다. 이와 반대되는 방식은 완성된 그대로의 자연의 언어를 전달의 적절한 수단으로 보는 한편, 형식화하는 시도를 왜곡으로 보고 거부하는 비코의 방식이다

> 후자가 주류라고 생각되고, 전자의 개념도 일정부분은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제7장 영국 경험론
p392
왕권 신수설의 부정과 함께, 사람들이 자기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일었고, 따라서 이제 교육의 중요성이 한결 강조되기 시작했다.

> 지금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그 당시에는 혁명적인 생각과 관념이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지금 당연하게 생각되어지는 것들 역시, 훗날 바뀔수도 있다. 그렇다고, 다시 왕권신수설과 같은 운명 결정론적인 관념이 주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현대사회가 날이 갈수록 태어나면서 쥐고 나오는 숟가락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절반이상 결정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역사는 변곡을 거듭하더라도 최선을 향해 언제나 전진한다는 것을 믿는다.

p398
(존 로크) <인간오성론>에서 처음으로 우리는 정신의 한계와 우리가 수행할 수 있는 탐구의 한계를 제시하려는 솔직한 시도를 보게 된다

p403
미국의 독립선언은 로크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자유롭고 자연적인 명증성'을 인용한 프랭클린의 말에도 반영되어 있다

p406
버클리가 생각하는 세계에서는 존재하는 것은 주체와 그 경험뿐이며 그 밖의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지각하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며, 색을 비롯한 성질이다. 성질을 지각하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진다

p411
(버클리) 사람은 그의 눈으로 보는 것이지, 눈을 보는 것은 아니라고 한 그의 주장은 옳다.마찬가지로 사람은 그 정신으로 지각하지만, 지각할 때 정신을 관찰하면서, 정신 근처를 맴돌지는 않는다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416
흄은 먼저 "어떤 철학자들은 우리가 시시각각으로 이른바 '자아'를 깊이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자아의 존재와 존재 안에서의 자아의 연속성을 느끼고 있다고 여겨, 논증의 증거 이상으로 자아의 완전한 동일성과 단순성을 확신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p418
(흄) "정신은 하나의 극장으로, 여기에서 몇 가지 지각이 연속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극장의 비교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정신을 구성하는 것은 연속해서 일어나는 지각뿐이다. 그리고 또 우리는 이들 장면이 상연되는 장소에 대해서도 그 장면을 구성하는 소재에 대해서도 아무런 관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제8장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p429
낭만주의 운동과 계몽 운동의 관계는 어느 면에서 아폴로적인 태도와 대조되는 디오니소스적 태도를 상기시켜 준다. 이것은 르네상스와 함께 나타난 이상화된 고대 그리스의 개념에 뿌리를 둔다.

p431
철학적으로 보았을 때, 낭만주의 운동은 하나의 영향을 두 가지 반대 방향으로 미쳤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첫째는 이성을 지나칠 만큼 강조한 것이고, 그와 동시에 우리가 착수하는 문제에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머리를 돌리기만 하면 모든 어려움은 영원히 해결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희망을 품게 했다는 것이다.

p438
데카르트 이후의 유럽 철학은 우리가 살펴본 대로, 서로 다른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했다. 한편으로는 대륙 철학의 각종 합리론적 체계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 경험론의 전반적 방향이 있다. 둘 다 개인적 경험과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주관주의적이다.

p441
칸트는 명제를 서로 구별하는 방법과 함께 다른 분류 기준을 도입한다. 원칙적으로 경험과 무관한 지식을, 그는 '아프리오리(연역명제)'라고 부른다. 나중에 경험에서 나오는 것을 무엇이든지 '아포스테리오리(귀납명제)'라고 부른다

p447
(칸트) 윤리의 최고 원리는 다음과 같은 정언적 명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의지를 인도하는 원리가 보편적인 법의 바탕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행동하라." 조금은 엄격한 이 발언은, 실제로는 남이 해주었으면 하고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남에게 해주어야 한다는 뜻의 그럴듯한 말일 따름이다

p454
독일의 관념철학은 헤겔의 손에서 최종적인 체계적 모양을 갖추었다.

p456
변증법의 원리는 진행이 마지막에 이르게 되는 '절대자'야말로 단 하나이 실재라고 선언한다. 특히 이 점에서 헤겔은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는다. (...) 절대자는 우주 전체와 관련될 때야 비로소 뜻깊은 존재가 될 수 있다.

p457
헤겔은 바로 역사에서 변증법 원리를 이끌어냈다.

p458
헤겔은 여기에서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라고 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의견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 다분히 정치적인 주장이다. 

p465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헤겔은 '절대자'가 가까이에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견해로 볼 때 언제나 사건 뒤에 생기는 철학 체계를 수립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이것을 <법철학> 서문에 인상적으로 표명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둠이 닥쳐오지 않으면 날지 않는다."

p470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다루기 때문에, 외부에서 사물에 언급할 수 있을 뿐이다. 이와는 반대로 키에르케고르는 하나의 상태를 안에서 파악하는 '실존주의적' 사고방식을 인정한다. 그는 우리가 과학적으로 인간에 접근하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친다고 느꼈다. 개인의 특수한 감정은 실존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 융도 그의 자서전 <기억 꿈 사상>의 서두에서 같은 말을 했다. 과학은 일반적이기에 각 개인에게 적용할 수 없다고 말이다. 각 개인은 신화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이다.

p471
이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과대평가하는 것만큼 위험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게 좋다. 헤겔은 이성을 너무 존중해서 이성이 우주를 낳을 수 있다는 오류에 빠졌다. 케에르케고르는 정반대 의견을 내어, 이성은 우주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키에르케고르의 입장이 낭만주의를 대변한다

p473
쇼펜하우어는 자기의 재능을 충분히 의식했고, 다른 사람이 아직도 이것을 모른다고 여기면, 이 사실을 감춘다는 것은 오히려 정직하지 못 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자기 강의를 헤겔과 같은 시간에 맞추었다. (...) 한 인간으로서 그는 자만심이 강하고 까다롭고 허영심이 강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와는 달리 사물 자체와 의지를 동일시한다. 경험되는 세계는 칸트처럼 현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들 현상을 야기시키는 것은 일련의 인식불능의 누메나가 아니라, 누메나적 의지이다

> 칸트철학에서 Noumena 본체本體는 현상(Phenomena)와 대립되는 개념이다.

p475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고통에 찬 이런 상태의 해결은 불교의 신화에서 구해야 한다. 우리의 고통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우리 의지의 작용이다.

> 고집멸도!

p477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결국 세계와 세계의 분쟁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것이라면, 니체는 이와 반대의 길을 걷는다.

> 니체는 고통이 꼭 필요한 것이며, 인간자체가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그는 비극속에서 정감의 대행적인 정화를 보는 것이 나이라, 있는 그대로의 삶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본다. 쇼펜하우어가 비관주의적 결론에 다다른 데 반해, 니체는 낙천주의적 관점을 취한다. 

p479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 이론(초인)은 하나의 윤리적 선언문 형태로 기술되는데, 그것은 문체상 성서를 모방하고 있다. 니체는 대문호로, 그의 저서는 철학이라기보다는 시적 산문에 가깝다.

제9장 공리주의 이후
p486
마르크스의 조금 감정적인 이론은 이와는 달리 나름대로 헤겔의 철학에 근원을 둔 비타협적 이상주의를 유지해 간다. 여기에서 마르크스 이론의 목표는 폭력적 수단으로 현존 질서를 완전히 변혁하는 일이다

p490
최대 대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리는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손에서 그것은 자유방임과 자유무역을 정당화하는 것이 되었다

p498
(로버트 오언) 그의 실천은 사업을 경영하여 이익을 올릴 수 잇고, 초과 근무를 하지 않아도 일하는 사람에게 꽤 많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로버트 오언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볼 수 있으며, 현대 정치에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p499
사회주의에 철학적 바탕을 주는 일은 마르크스에게 남겨지게 되었다. 이 점에서 그의 경제학은 리카도의 노동가치설을 바탕으로 삼았고, 철학적 논의의 수단은 헤겔의 변증법을 바탕으로 했다. 

p502
(칼 마르크스) <포이어바흐의 테제> - 철학자는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을 뿐이다. 참다운 과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다

p505
마르크스의 잘못은 부자가 더욱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더욱더 가난해져서, 마지막에는 이 모순의 변증법적 긴장이 높아지고, 혁명을 불러일으키는 결과가 된다고 가정한 점에 있었다. 역사적 사실은 조금도 그렇지 않다.

> 러셀도 틀렸다. 혁명의 발발여부를 떠나서 빈익빈부익부는 로그함수와 같이 가파르게 심해지고 있으며, 그로 인한 양극화가 유발시킨 사회갈등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물론 제도적인 보완을 통해 정부와 국가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나, 미래의 역사가 어떻게 변할지 그 누가 장담하겠는가

p509
논리적 순서는 인식 순서의 역순

p512
우리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고 있다고 절대로 확신힐 수 없다. 탐구에 대한 이 일반이론을 퍼스는 오류론이라고 부른다. 이에 관련해서 그는 진리란 결국 사회가 안정되는 의견이라 말한다.

p515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우리는 자의식을 물질 세계의 대상과 마주보고 있는 하나의 실재물이라고 하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

제10장 현대철학
p530
오늘날 통용할 수 있는 기준은 단 한 가지 유능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뿐이다.

p537
과학적 철학자들은 얕잡아보는 어조로 '형이상학적'이라고 부르면서 이에 대한 과학적 대용품을 찾으려는 나머지, 오히려 스스로 형이상학적 함정에 빠진 일이 매우 많았다.

과학적 진술과 과학적 절차의 중요성은 이들의 수학적 의식 때문에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과학의 여러 발견은 엄격하고 막혀버린 뉴턴의 세계관을 얼마쯤 뒤엎고야 말았다. 과학자들은 이 세계관을 확대하려고 하기는 커녕, 문제를 적당히 해석할 때, 알맞은 결과가 나오는 수학적 이론의 도움을 빌려 문제를 다루는 일에 안주해왔다.

p539
(브래들리) 사고는 늘 사물의 참다운 모습을 왜곡한다. 그것은 단순한 가상을 낳는다. 그 까닭은 사고가 실재하는 것에 분류나 관련의 다른 틀을 강요하여 실재를 왜곡한다

> 실재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봐야 할듯 하다. 사고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나, '왜곡'이라는 단어는 너무 오버스러워 보인다

p543
베르그송에게 논리 자체는 극복되어야 할 힘이다. 이런 뜻에서 베르그송은 비합리론자라고 평해도 좋을 것이다.

p544
인간은 진화를 거치면서 지능이 본능을 넘어서는 동물이 되었다. 베르그송은 분명히 루소가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를 조금 불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인간의 지능은 본능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어서, 인간에게 자유를 빼앗고 말았다. 지능이 스스로 자기 개념적인 속박을 세계에 강요하여, 왜곡된 세계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능을 해방의 힘으로 보는 합리론의 이론에서 매우 먼 거리를 온 것이다.

지능은 세계를 기하학적으로 본다. 지능에는 공간이 있지만, 시간은 없다. 그러나 삶은 시간으로 흘러가는 실천적인 일이며, 여기에 직관이 개입한다.

p546
베르그송의 이론은 경험의 논리적인 특징보다도 오히려 심리적인 특징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이런 뜻에서 그것은 심리학 이론의 어떤 경향과 일치한다.

p550
세기의 전환기 이래 미국 철학의 지배적 세력은 수정된 형태의 프래그머티즘이었다. 이 운동의 최대 대표자는 존 듀이이다.

p555
한 인물이 자기 노력으로써 향상할 수 있다는 관념은 꽤 최근에 나온 것이다. 중세에는 신이 정해준 지위에 모든 사람이 앉게 되고, 신이 정한 질서에 손을 대는 것은 죄를 저지르는 일이라는 관념을 일반적으로 널리 받아들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원죄를 믿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까

p564
하이데거의 사고에서 흥미로운 점은 무無가 적극적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p572
실증주의 운동의 언어분석학파는 논리실증주의와 마찬가지로 모든 정통적인 철학적 혼란은 언어의 조잡한 사용법의 결과라는 원리에 서있다. 모든 의문은 올바르게 공식화하면, 명확한 대답이 나온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p576
비트겐슈타인은 프레게와 러셀의 이론을 이용하여 쇼펜하우어의 현상 세계를 보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애썼다.

맺는말
p580
우리는 그 어떤 윤리적 전제를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는 한, 논의를 시작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사람의 행동이 그가 살고 있는 사회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사람의 행동이 사회제도의 그 어떤 개혁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윤리적 전제가 무엇이든 이와 같은 바탕에 서면, 왜 갑의 행동이나 을의 행동 어느 쪽을 채택해야 하는지 논증할 수 있다. 유의해야 할 중요한 점은 '당위'를 내포하는 전제가 없으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 <서양의 지혜>는 저자의 명저로 알려진 <서양철학사>의 입문판 버젼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스철학부터 중세 및 근대 철학을 거쳐 현대철학까지 서양의 모든 철학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맛보기식 입문서로 만만히 볼 책은 아닌듯 싶다. 각 철학원론들에 대한 핵심적인 정리와 함께 저자의 날카로운 인식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학파와 인물에 대한 서술이 시대별로 균형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러셀의 비평과 통찰이 서양 철학사의 전반을 꿰뚫고 있다.

변경연의 7월 과정은 철학과 함께 한다. 서양철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동양철학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사실 동양사상은 철학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고, 학문적 의미로 본다면 철학이라 함은 서양 특유의 세계관이나 인식론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인문학이 각광을 받고, 대중적인 철학자들이 매스컴에 빈번하게 나오면서 이전보다는 철학이 대중에게로 가까이 온 느낌이지만, 서양철학과 그에 대한 한국어 표현의 기저는 난해한 언어구사에 있는 것은 아닐까 새삼 느낀 독서였다. 사실 어떤 사상과 사고를 그대로 전달하기에는 언어는 극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도구이다. 그래서 사용되는 것들이 은유와 시詩라고 할 수 있는데, 서양 철학서적들은 대부분 직접적인 서술로 일관한다. 직접 대놓고 말하면 독자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 할 때도 많다. 특히 직관적인 사람들은 논리적인 언어의 배열에 취약한 측면이 있다. 내 경우 철학서의 문장들을 보면 마치 글자가 하나하나 분리되어 공중으로 붕붕 떠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철학서적만 보면 난독증이 도지는 것은 내 독서역량이 아직 미약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중들에게 1차 철학서는 암호나 다름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해설서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2차 철학서적은 그나마 낫지만, 그것도 주의깊게 독해해야 하는 수고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는 철학자들이 각광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번역서의 경우에는 독자들이 2차 번역을 해야 할 정도의 수고를 겪으며 책을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철학번역서라면 독자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수 밖에 없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마음이었다. 번역된 문장의 원문을 추측하느라 생고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고민이 좀 있었다. 러셀의 원문을 아무리 잘 번역해놓았더라도 철학원론들에 대한 설명은 분명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것들이 태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번역의 난해함으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러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있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교하는 부분은 많은 철학교양서에서 다루는 것으로 표면적인 것들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쉽지 않았다. 번역자(정광섭)은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니, 자신은 원저를 이해하고 번역을 했겠지만, 읽기 힘들게 번역된 문장들이 많았다. 러셀이 일부러 어렵게 철학사와 그 특징적인 이론을 꼬아놓았을리는 없다고 치면, 원저의 난해함보다는 번역의 문제로 인해 번역서를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장을 그대로 직역해놓은 것들이 많아서 신경써서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다. 

아무리 책을 힘들게 읽은 원인을 번역 문제로 돌리려고 해도 실상 그 이유는 철학 원론 및 그 서술방식에 익숙하지 못한 나에게 있다. 옹색한 변명을 좀 하자면 신영복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서양철학은 하나의 학문일 뿐이다. 탐색은 계속 하겠지만, 몇 번 입어봤는데 맞지 않는 옷이라면 억지로 우겨넣으며 입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여전히 지식에 대한 허영적 욕구 때문에 가끔 서양철학교양서를 읽어보곤 하지만, 차마 범접하기 어려운 현학적 사고의 깊이와 그들만의 추상적 개념들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이 책 맨 뒷장의 출판사 서평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러셀의 또 다른 명저 <서양철학사>에 비하여 서술이 간소하고 평이해 누구나 읽기 쉽다."

지금 상태로는 나중에도 러셀의 <서양철학사>를 읽을 일은 없을 것만 같다. 뜨거운 여름 철학의 향연이라... 장마가 올라오려는지 날씨는 후덥지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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