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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8일 10시 17분 등록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저자연구

Friedrich Wilhelm Nietzsche(1844~1900)

"신은 죽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초인(超人)을 소망해야 한다”

초인이란 무엇인가? 

첫째, 초인이란 대지(땅)를 의미한다. 천국의 희망을 말하는 자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고, 지금 이곳에 충실한 자다. 초인이란 가장 성품이 좋은 사람이며, 힘이 넘치는 종족이다. 이러한 초인은 천국을 동경하지도 않고, 지금 이 땅을 경멸하지도 않는다. 그는 이곳이 초인으로 가득 차도록, 이 땅에 몸을 바치는 사람이다.

둘째, 초인은 신의 죽음을 확신하는 사람이다. 그는 흔히 말하는 유토피아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순응하는 자다. 자기 자신이 이 세계의 한 부분임을 잘 알고, 삶의 모순까지 견딜 줄 아는 사람이다.

셋째, 초인이란 영겁회귀의 사상마저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다. 존재의 수레바퀴는 영원히 윤회한다. 모든 것은 무한한 시간 가운데 흘러갔다가 되돌아온다. 바로 이 사상을 깨닫는 자가 초인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 망치를 든 철학자> 에서 발췌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독일 작센주 레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니체의 아버지는 그가 다섯 살 때에 뇌질병으로 사망한다. 이후 할머니집에 맡겨진 니체는 여자들만 있는 환경에서 자라게 된다. 니체는 이런 어린 시절의 환경적 영향으로 여성적이고 섬세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작곡이나 문학 등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불과 열네 살 때에는 벌써 자서전을 쓸 준비를 하기까지 했다. 니체는 사춘기가 되면서 종교에 빠져들었다. 기독교에 빠져 하나님에게 열렬히 고민의 답을 구했으나 니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이는 그 당시 니체가 썼던 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사실이다. 그 시는 슬픔과 곤란에 빠진 남자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에게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예수는 끝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니체는 이때부터 종교를 부정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종교를 벗어나게 되자, 니체의 반항아적 기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니체는 1864년 본 대학교의 신학과에 진학한다. 대학시절 술과 담배, 여자에 깊이 빠져들게 되고, 기독교를 철저히 부정하기 시작했으며, 기독교 도덕을 삶에 대한 범죄로 간주하게 된다.

니체는 결국 본(Bonn)대학의 신학과를 뛰쳐나오게 되고, 헌책방에서 우연히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만나게 되면서 철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후 니체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1870년 니체는 스물네살의 나이로 스승이였던 리츨교수의 추천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에 교수로 임용되게 된다. 이는 니체가 박사논문을 마치기도 전의 일로 그 당시 니체는 아직 학위가 없는 상태였다.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일로서, 니체의 재능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해 전쟁이 일어나자 위생병으로 잠깐 군대에 복무했던 니체는 심한 이질에 걸려 두달만에 제대하게 된다. 그후 1872년 니체는 그의 첫번째 책 <비극의 탄생>을 출간한다. 당시 <비극의 탄생>은 큰 호응을 얻지 못 했는데, 그 이유는 책의 내용이 온통 생소하면서도 사색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언어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니체는 인근에 거주하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친분을 쌓기 시작한다. 둘 모두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심취해 있던 때라, 그들은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 바그너는 니체보다 31살이나 많았기에, 니체는 바그너 부부를 부모처럼 따르게 된다. 니체는 바그너와의 교류를 통해 철학에 깊이 빠지게 되면서, 몸담고 있던 문헌학자의 길이 아닌 철학자로 점차 변모하게 된다. 바그너와의 인연으로 니체는 그의 첫번째 저서인 <비극의 탄생>을 바그너에게 헌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후 바그너의 작품세계가 변화하는 것을 변절로 간주한 니체는 바그너와 점차 거리를 두게 된다.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처럼 바그너와 니체 역시 사상적 차이로 점차 멀어지게 된다.  바그너가 <니벨룽겐의 반지>를 비롯한 후기 작품을 통해 신의 존재를 인정하며 기독교에 귀의하는 모습을 니체는 받아들일수가 없었던 것이다. 니체는 1882년 바그너가 죽기 수개월전 베네치아로 찾아가 바그너에게 이별을 고하게 된다.

1876년 니체는 건강이 악화되면서 잠시 휴식기에 들어가지만, 1878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 1879년 건강악화로 교수직을 사임한 이후, 니체는 10여년간 유럽을 여행하면서 집필활동을 이어나간다. 여행기간 도중 친구의 소개로 루 살로메라는 지적인 여자에게 반해 청혼했지만, 결혼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관계로 그녀와의 인연을 이어나간다. 1888년 <우상의 황혼>을 출간하면서 큰 명망을 얻게 된 니체는 1889년 투린에서 마비증세를 보이며 쓰러진다. 이는 그가 과거에 앓았던 매독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으며, 이후 니체는 여동생과 어머니의 간호속에 12년간을 혼수상태에서 헤메다가 1900년 세상을 떠난다. 니체는 후반기에 정신착란 증세가 점점 심해졌다고 한다. 1889년 1월 그는 마부에게 채찍질을 당하는 말을 목격하고 울면서 그 말을 감싸안으며 쓰러졌다고 하며, 딱 거기까지가 니체가 그나마 말짱한 정신으로 살았던 마지막 순간으로 전해진다. 정신착란 증세는 결국 니체의 무의식과 의식사이에 가로놓인 얇은 막이 니체의 파괴적인 사상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되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극단적인 언어구사와 날카로운 비판적 어조로 인해 역으로 많은 비판과 비난 또한 받아온 니체는 어떤 철학자보다 넓은 사상의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를 받지만, 그에 대한 후대인들의 해석은 극단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그를 찬미하는 이들은 한없이 니체를 추켜세우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니체를 깔아뭉갠다. 니체는 쇼펜하우어와 마찬가지로, 이성 철학에 결별을 선언하고 의지의 철학을 표방했다. 허나 쇼펜하우어에게 의지는 맹목적이므로 우리의 삶은 비극일 수밖에 없었던 것에 반해, 니체에게 의지는 힘에의 의지였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니체에게 인간이라는 것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었다. 니체는 이렇듯 급진적인 사상으로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현대 철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와 더불어 현대 인문학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이기도 하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부
차라투스르라의 머리말
p11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준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존재가 없다면, 그대의 행복은 무엇이겠는가!

> 마지막 부분에 한번 더 나오는 말이다. 진리가 있다한들 그것을 품어낼 그릇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p12
나는 베풀어주고 나누어주려 한다. 인간들 가운데서 현명한 자들이 다시 그들의 어리석음을 기뻐하고, 가난한 자들이 다시 그들의 넉넉함을 기뻐할 때까지

나는 그대와 마찬가지로 몰락해야 한다

p15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 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 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대들은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p16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마라!

p17
인간은 더러운 강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바다가 되어야 한다. 더러워지지 않으면서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려면

그대들이 체험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위대한 경멸의 순간이다. 그대들의 행복,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대들의 이성과 그대들의 덕이 역겨워지는 순간이다.

p19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p21
나는 사랑한다. 자신의 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을 징벌하는 자를, 그런 자는 자신의 신의 분노로 말미암아 파멸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p22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인간은 자신 속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

세 가지 변화에 대하여
p36
여기에서 정신은 사자가 된다. 정신은 치유를 쟁취하려 하고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p37
정신이 더 이상 주인으로 신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거대한 용은 무엇인가? 너는 해야 한다. 이것이 그 거대한 용의 이름이다. 그러나 사자의 정신은 이에 대항하여 "나는 원한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가치의 창조, 이것은 사자도 아직 이루지 못하는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획득, 이것은 사자의 힘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덕을 가르치는 강의에 대하여
p42
그의 지혜는 단잠을 이루기 위해서는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참으로 삶이 무의미하고 무의미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면 내 경우에도 이것이 가장 선택할 만한 무의미가 아니겠는가

세계 너머의 세계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
p45
내가 꾸며낸 이 신은 다른 모든 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작품이자 인간의 망상이였다!

몸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
p51
감각과 정신은 도구이자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과 정신의 뒤에는 '자기'가 있다. 자기는 감각의 눈으로 찾고 정신의 귀로 듣는다

> 융이 니체를 읽고, 이 '자기'의 개념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자기'는 한 개인이 자신의 개인성을 넘어 유일자로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획득함으로써 도달하게 되는 인간의 전체성 및 완전성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p63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는 게으름뱅이들을 미워한다

> 그대의 책을 읽고 있는 이 게으름뱅이도 그대의 피를 이해하기가 당최 쉽지 않구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p84
참으로 적게 소유한 자는 그만큼 더 적게 지배된다. 찬양할지어다! 소박한 가난을!
국가가  없어지는 곳, 그곳에서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들의 삶이 시작된다

시장의 파리 떼에 대하여
p85
이 세상의 가장 훌륭한 것들도 그것을 연출해 주는 자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러한 연출자들을 군중은 위인이라 부른다

벗에 대하여
p95
추호도 자신을 숨기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분노를 일으킨다

천개의 목표와 하나의 목표에 대해
p100
인간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우선 사물에다가 가치를 부여했다.

이웃사랑에 대하여
p105
어떤 사람은 자신을 찾으려고 이웃에게로 가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을 잃고 싶어서 이웃에게로 간다. 그대들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 그릇된 사랑은 고독을 일종의 감옥으로 만들어버린다

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하여
p108
그대는 자신에게 선과 악을 부여하고 그대의 의지를 그대의 머리 위로 율법처럼 내걸 수 있는가? 그대 자신이 그대의 율법의 재판관이 되고 복수자가 될 수 있는가?
자긴 자신의 율법의 재판관이자 응징자가 되어 홀로 있는 것은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렇게 하여 하나의 별이 황량한 공간 속으로 그리고 얼음 같이 찬 고독의 숨결속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아이와 결혼에 대해
p121
창조한 자들보다 더 나은 사람 하나를 창조하려는 두 사람의 의지, 이것을 나는 결혼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의지를 실천하려는 상대방에 대한 외경심을 나는 결혼이라고 부른다.

p122
그는 천사의 미덕을 갖춘 그런 시녀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단 한번만에 한 여자의 시종이 되었고, 더군다나 이제는 자기 자신이 천사가 되어야 할 판이다.

p123
그대들의 결혼은 잠시 동안의 어리석은 행위들을 종결시키는 하나의 길고 긴 어리석음인 것이다.

베푸는 덕에 대하여
p134
아직도 발길이 닿지 않은 천 개의 오솔길이 있으며, 천개의 건강법과 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채로 무궁무진하게 남아 있는 것이 인간이며 인간의 대지다.
깨어라서 귀를 기울이라. 그대들 고독한 자여! 은밀하게 날개를 퍼덕이며 미래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 예민한 귀에 좋은 소식이 들려온다.

p136
위대한 정오란 인간이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길의 한 가운데에 서 있을 때이며, 저녁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길을 최고의 희망으로서 축복하는 때이다. 왜나하면 그 길은 새로운 아침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2부
행복의 섬에서
p146
신이란 하나의 억측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의 억측이 그대들의 창조적 의지보다 앞서지 않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신을 사유할 수 있는가? 만물을 인간이 생각할 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 그대들은 그것을 진리에의 의지라고 불러야 한다. 그대들은 자신의 감각을 그 궁극까지 사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우선 그대들에 의해 재창조되어야 한다. (...) 그대들 인식하는 자들이여, 그러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행복에 도달하게 되리라!
그대들 인식하는 자들이여, 이러한 의망도 없으면서 어떻게 삶을 참고 견디려 하는가?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것속에서, 비이성적인 것 속에서 그대들이 태어나야 할 까닭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존재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존재는 단순히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키는 것인가? 우리의 인식범위에 들어오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존재에 대한 파악은 인식을 필요로 한다. 인지하지 못 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존재여부를 판가름할 수가 있는가?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것은 신이 존재했음을 긍정한 것은 아니였던가?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다시 말해 죽음으로써 존재가 소멸되는가? 우리는 우선 이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한다.

신은 모든 곧은 것을 구부러지게 하고, 서 있는 모든 것을 비틀거리게 하는 사상이다. 무슨 말이냐고? 시간은 사라져버려야 하고, 모든 지나가는 것은 허상이어야 한단 말인가?

하나인 것, 완전무결한 것, 움직이지 않는 것, 충만한 것,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 모든 가르침, 이것을 나는 사악하고 인간 적대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불멸하는 것이란 오직 비유일 뿐이다! 시인들은 너무도 많은 거짓말을 한다

> 하나인 것, 완전무결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그것들은 오로지 비유일뿐이라고 니체는 단정한다. 이는 모든 것은 하나라는 신비주의자, 그리고 붓다의 이야기와 배치된다. 붓다가 인간의 힘으로만 모든 것과의 합일을 이루었다는 사실 자체가 단지 비유란 말인가?

p149
그대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삶에는 수많은 고통스런 죽음이 있어야 한다!

동정하는 자들에 대하여
p155
언젠가 악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신에게도 지옥이 있으니,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이 그것이다."

도덕군자들에 대하여
p162
그대들의 덕이란 바로 그대들이 가장 사랑하는 자기다.

> 융의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인 자아, 자기, 그림자 모두 니체에서 비롯된 듯

p163
내가 아닌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신이며 덕이다!

춤의 노래
p190
지혜는 아름다운가? 모르겠다!그러나 늙고 늙은 잉어들도 지혜를 미끼로 꾈 수 있다

고매한 자들에 대하여
p208
영혼의 비밀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영웅이 영혼을 저버릴 때 비로소 꿈속에서 영웅을 넘어선 영웅이 그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학자들에 대하여
p221
그들은 현명한 체하지만, 나는 그들의 보잘것없는 잠언과 진리에서 오싹한 추위를 느낀다

시인들에 대하여
p224
내가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이래로 나에게 있어서 정신은 다만 정신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모든 불멸의 것, 그것도 다만 비유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p229
시인의 정신은 관객을 원한다. 그것이 비록 물소일지라도!
그러나 나는 이 정신에 지쳤다. 나는 이 정신 자체가 자신에게 지치는 때가 다가오는 것을 본다.
나는 시인들이 이미 변하여 이제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정신의 속죄자들이 오는 것을 보았다. 속죄자들은 시인들로부터 성장했던 것이다

예언자
p237
모든 것은 공허하다. 모든 것은 동일하다. 모든 것은 이미 있었던 것이다!

p238
참으로 우리는 죽기에도 너무 지쳤다. 그리하여 우리는 깨어 있는 채로 계속 살아가는 것이다. 무덤 속에서!

구제에 대하여
p247
지나가버린 것을 구제하고 그 모든 그러했다를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로 바꾸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구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 '그러했다'가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세상의 중심이 되고, 세상 자체가 된다

그 모든 그러했다는 파편이자 수수께끼고 무시무시한 우연이다. 창조적 의지가 그것에 대해 "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라고 말할 때까지는.

가장 고요한 시간
p259
어제 저녁 무렵 나의 가장 고요한 시간이 내게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무서운 여주인의 이름이다.

p262
이때 누군가가 다시 소리 없이 내게 말했다. "그대가 그것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이슬은 가장 적막한 밤에 풀위로 내려앉는 법이거늘."

가장 조용한 말이 폭풍우를 몰고 오며, 비둘기 걸음으로 오는 사상이 이 세계를 움직인다

3부
방랑자
p269
나는 방랑자이며 산을 오르는 자다. 나는 평지를 사랑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 니체는 마조히스트인 듯 하다. 니체가 고통을 긍정하는 것은  그것이 선택이 아닌 인생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리라.

p270
인간이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하는 존재가  아닌가.

내게 우연한 일들이 닥칠 수 있는 그런 때는 지나갔다. 이미 나 자신의 것이 아닌 그 어떤 일이 새삼 내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비로소 그대는 위대함으로 통하는 그대의 길을 간다! 정상과 심연, 그것은 이제 하나로 연결되었다!

p271
많은 것을 보려면 자기 자신을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한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혹독함이 필요하다. 인식하는 자로서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면, 어떻게 만사에 있어서 겉으로 드러난 근거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을 터인가!

환영과 수수께끼에 대하여
p276
나의 악마이자 불구대천의 적인 중력의 영

> 지구에서 중력은 아래로 향한다. 날아가는 자는 중력을 거스르는 자이다. 걷거나 뛰건간에 지상에 존재하는 이들은 모두 중력에 묶여 있는 것이다. 중력의 영은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들일수도 있고, 게으름과 습관과 같은 것들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초인이 되어 나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중력을 이겨내야만 한다.

p277
그 중력의 영은 한 마디 한 마디 비웃듯이 속삭였다. "그대는 자신을 높이 던졌으나 모든 던져진 돌은 반드시 떨어지기 마련이다!"

> 플라잉 스톤! 날아야 한다. 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초인이 되기 위해.

p279
뒤쪽으로 뻗은 이 기나긴 오솔길, 이 길은 영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밖으로 뻗은 저 기나긴 오솔길, 그것은 또 하나의 영원이다.
그 두 길은 서로 모순된다. 그것들은 서로 정면으로 부딪힌다. 그리고 여기, 이 성문에서 두 길이 마주친다. 성문의 이름은 그 위쪽에 순간이라고 씌어 있다

> 아직도 인간이 가보지 못한 천개의 오솔길이 있다. 그 길의 끝은 영원이며 같은 곳에서 만나지만, 그 길들은 엄연히 다른 길들이며 모순되기까지 한다. 두 길이 만나는 곳의 이름은 순간이라기 보다는 영원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곧은 것은 우리를 속인다. 모든 진리는 굽어 있으며, 시간 자체도 하나의 둥근 고리이다

>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과학적으로 이를 입증해냈다. 사실 과학이라는 개념 자체도 하나의 만들어진 허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p280
나와 그대, 우리 모두는 이미 존재했었던 것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 니체의 영원회귀사상

원하지 않는 행복에 대하여
p289
행복이 뒤에서 쫓아온다. 내가 여인들 꽁무니를 쫓아다니지 않기 대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어쨌든 행복은 여인이다.

왜소하게 만드는 덕에 대하여
p301
작은 행복을 겸손하게 얼싸안는 것, 그들은 이것을 순종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느새 또 다른 작은 행복을 향해 곁눈질한다. 겸손하게.

사실 그들이 한결같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즉 그 누구로부터 고통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겁함이다. 이미 그것이 덕이라고 불기고 있긴 해도.

그들에게 있어서 덕이란 겸손하고 양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늑대를 개로 만들었고, 인간 자체를 인간 최고의 가축으로 만들었다.

p302
"우리는 우리의 의자를 한가운데에 놓았다"라고 그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말했다. (...)
하지만 이것은 범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그것이 중용이라고 불리고 있긴 해도.

> 범용과 중용사이. 중용을 벗어나면 만용.

감람산에서
p310
어떤 자에게 있어서 고독은 병자의 도피를 말한다. 다른 자에게 있어서 고독은 병자들로부터의 도피를 말한다

배신자들에 대해
p321
그대도 잘 알다시피, 즐겨 합장을 하고 손을 무릎에 얹은 채 편안히 살고 싶어하는 그대 마음속의 비겁한 악마, 이 악마가 그대에게 "한분의 신이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귀향
p327
빛 속에서보다는 어둠 속에서 시간이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 그럴듯 한데,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일천한 나의 내공

p329
인간은 인간사이에 살면서 인간을 잊어버린다. 모든 인간에게는 너무나 많은 겉치례가 있다.

특히 착한 자를 자칭하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독성이 깊은 파리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들은 철모르고 쏘아대며 철모르고 속인다.

> 우리 사회에도 많은 부류들이 이러하다. 나는 착한 자를 자칭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보다 낫다는 것인가?!@!

중력의 영에 대하여
p341
내가 중력의 영과 적대적이라는 것, 바로 그것이 새의 천성임을 말해준다

>  그래, 니가 갑이다.

타조는 가장 빠른 말보다도 더 빠르게 달리지만, 아직도 그 머리를 무거운 대지에 무겁게 처박고 있다. 아직 날지 못하는 인간도 타조와 같다.

p342
가벼워져서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신을 사랑해야만 한다

병약한 자와 허약한 자들의 방식으로 사랑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자들에게 있어서는 자기애조차도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다.

요람에 들자마자 사람들은 우리에게 묵직한 말과 가치를 지참금으로 넣어준다. 선과 악. 그 지참금은 이렇게 불리며, 그 지참금 때문에 우리의 삶이 허락된다

p343
인간 자신에게는 오직 인간만이 짊어지기 무거운 짐이다! 인간이 그의 어깨에 너무나 많은 낯선 것을 짊어지고 헐떡거리며 가기 때문이다. 인간이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자기 등에 마음껏 짐을 싣도록 하기 때문이다.
트겨히 외경심을 품은 강인하고 끈질긴 자, 그자는 낯설고 무거운 말과 가치를 너무나 많이 짊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에게는 이제 삶이 사막으로 보인다!

p346
나의 가르침은 이렇다. 언젠가 나는 것을 배우려는 자는 우선 걷고 달리고 뛰어오르고 기어오르고 춤추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나는 것을 한꺼번에 배우지는 못하는 법이다!

그대들의 길을 어디 있는가> 라고 나는 나에게 길을 물을 자들에게 대답했다. 말하자면 모두가 가야 할 그런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낡은 서판과 새로운 서판에 대하여
p349
선과 악이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창조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나는 비유로 말하며 시인들처럼 절뚝거리고 말을 더듬는다. 그리고 참으로, 나는 아직도 시인이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p355
그들, 이 착한 자들은 양보하고 참고 견딘다. 그들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따라서 말하고, 바닥에서부터 복종한다. 그러나 복종하는 자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다.

p357
선과 악이라고 불리는 낡아빠진 망상이 있다. 이 망상의 수레바퀴는 지금까지 예언자와 점성가 주위를 돌고 있었다.
한때 사람들은 예언자와 점성가를 믿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든 것은 운명이다. 그대는 당연히 해야 하기 때문에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사람들은 모든 예언자와 점성가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든 것은 자유다. 그대가 원하기 때문에 그대는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 형제들이여, 별들과 미래에 대해서 지금까지는 망상만 있었을 뿐 아무것도 알려진 것은 없었다.

빼앗지 마라! 죽이지 마라! 사람들은 일찍이 이런 말들을 신성하다고 했다. 이러한 말들 앞에 사람들은 무릎을 끓고 머리를 수그리고 신을 벗었다.

모든 삶 자체에 빼앗음과 살해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러한 말들이 신성하댜고 불림으로써 진리 자체가 살해되지 않았던가?
혹은 모든 삶에 대해 모순되고 그 삶을 거역하는 것을 신성하다고 부른 것은 죽음의 설교였던가? 아, 형제들이여, 부숴버려라, 낡은 서판을 부숴버려라!

p365
세계에 지친 자들! 하지만 그대들은 아직 한번도 대지에 등을 돌린 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대들은 여전히 대지를 탐내고 있으며, 대지에 대한 자신의 권태를 아직도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p369
가르쳐 날게 할 수 없는 자에게는 보다 빨리 추락하는 법을 가르치도록 하라!

치유되고 있는 자
p385
인간에 대한 커다란 권태, 그것이 나의 목을 졸랐고 나의 목으로 기어들어 왔다.

나의 발꿈치는 들려졌고 나의 발가락은 그대를 이해하려고 귀를 기울였다. 춤추는 자의 귀는 발가락에 있지 않은가!

더없이 추악한 자
p463
신의 동정이든, 인간의 동정이든 간에, 동정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짓이다. 도와주지 않으려 하는 것이 돕겠다고 달려드는 덕보다 더 고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즉 동정은 오늘날 모든 왜소한 인간들에 의해 덕 자체라고 불린다.

제 발로 거지가 된 자
p470
우리가 암소들로부터 배울 것이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되새김질이다.

p471
올바르게 주는 것이 올바르게 받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그리고 제대로 베푸는 것이 하나의 솜씨이며, 선의를 드러내는 명장의 교묘하기 그지없는 최후의 기술이라는 것을

정오에
p486
가장 적은 것, 가장 조용한 것, 가장 가벼운 것, 도마뱀의 바스락거림, 한번의 숨결, 한 번의 스침, 순간의 눈길, 바로 이처럼 작은 것이 최고의 행복을 만든다. 조용!

차원 높은 인간에 대하여
p517
불행 때문에 바보가 되기보다는 행복 때문에 바보가 되는 것이 낫다. 절름거리며 걷기보다는 둔탁하게라도 춤추는 것이 낫다. 그러므로 나에게서 지혜를 배워라. 가장 나쁜 것조차도 두 가지의 좋은 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

학문에 대하여
p530
맹수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자라났던 것이며, 인간이 자신 속에 숨겨두고 두려워하는 짐승도 여기에 포함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것을 내면의 짐승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길고도 오래된 공포, 이것이 마침내 세련되게 다듬어지고 영적으로 해석되고 정신적인 것으로 성장하면서, 오늘날 학문이라고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밤산책자의 노래
p565
고통 또한 쾌락이고, 저주 또한 축복이며, 밤 또한 한낮의 태양이다. 가라. 아니면 배우라. 현자 또한 바보라는 사실을.

징조
p571
이러한 광경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아니 잠시 동안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엄밀하게 말해 지상에는 이러한 일을 잴 수 있는 어떠한 시간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저자라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 이론(초인)은 하나의 윤리적 선언문 형태로 기술되는데, 그것은 문체상 성서를 모방하고 있다. 니체는 대문호로, 그의 저서는 철학이라기보다는 시적 산문에 가깝다." - 서양의 지혜 p479

러셀의 말대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철학을 담고 있는 시적 산문이라고 보는게 적절하다. 이 책은 비유와 은유로 빛나는 시적 경구로 가득차 있다. 마치 성인의 잠언집을 연상케 하는 이 책은 실상 파괴적이고 선동적인 언어로 가득차 있다. 

그동안 다른 저자들의 책을 통해 니체를 만나왔다. 많은 이들이 니체를 찬미했으며, 띄엄띄엄 다른 저자들의 맥락을 통해 해석되어지는 니체의 경구들은 하나같이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들이였다. 멀리서 다른 사람들의 언어를 통해 만나왔던 니체는 <에덴의 동쪽>의 반항아 제임스 딘이었다. 반항적이였으며, 파괴적이였지만 인간적이었다. 서양고전 북리뷰로 니체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차라투스트라씨는 나에게 버겨운 사람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난후 니체는 나에게 더이상 제임스 딘이 아니였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처럼 얼굴을 뒤덮은 수염을 목까지 늘어뜨린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되어 내게로 다가왔다. 반항적인 표정으로 윙크를 날리던 제임스 딘은 이제 지구의 종말을 예언하며 사람들로부터 미치광이 취급을 받는 길거리 노숙자의 행색으로 나에게 얘기한다. 

"믿던지 말던지 니 마음대로 하라"

책의 70%는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로움(?)으로 가득차 있었으나, 그 나머지 30%만으로도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솔직히 그 70%는 말인지 막걸리인지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검색을 해보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저작 중 제일 마지막으로 읽는 것이 권장된다고 한다. 니체철학에 익숙하지 못 한 사람들에게는 그저 별나라 얘기같은 산문시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니체의 삶과 철학, 저서를 친절히 설명해 주는 <사람을 보라>를 읽고, 그 다음 <우상의 황혼>, <도덕의 계보>, <선악의 저편>, <안티크리스트>를 읽는 것이 좋다고 한다. 특히 <우상의 황혼>은 니체 철학의 정수가 담겨있으므로 니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봐야 한다고 한다. 그 후 <비극의 탄생>을 읽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즐거운 학문>을 읽은 다음, 마지막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 정보를 접하고 내린 나의 결론은 당분간 니체를 잊기로 했다.

잠시 이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차라투스트라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를 얘기한다. 조로아스터는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인물로 그의 사상은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분법적 사고를 부정한다.  

"신은 죽었다"라는 경구는 결국 삶을 긍정하자는 것이다. 인간은 본인들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를 부정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그 결과 신에게 기대고 있는 것이다. 니체는 이 불완전성은 인간의 일부이므로 이를 긍정하고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지배해 온 낡은 도덕과 형이상학, 신앙, 가치와 같은 모든 부정적(니체 관점에서) 인 것들에 대한 사망선고인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비행술을 가르친다.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자신의 삶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날아가려는 자는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다. 또한 심각해지지 말고 세상을 가벼운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이는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인 니코스 카잔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사상적 토대가 된다.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춤추는 법과 웃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영원회귀 사상은 니체철학에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인데, 그 요지는 세상만물이 생성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은 변화하며, 힘에의 의지가 끊임없이 작용하여 영원히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돈다는 것이다. 사실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확실한 것은 니체는 생성의 세계만이 존재하고, 인간이 완전한 세계라고 믿는 존재의 세계, 다시 말해 이데아는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영원회귀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사실을 긍정하고, 이를 허무주의로 받아들이지 않고 극복해나가는 위버멘쉬(초인)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이라는 가정을 하기 어려운 책이다. 내가 저자라면 쓰지도 않을, 아니 쓰지도 못 할 책이기에 더더욱 할 말이 없다. 하나 예상되는 것은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을 쓰다가 정신이상 증세가 오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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