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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9일 17시 07분 등록
저자연구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1939- )

프리초프 카프라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카프라는 27세 되던 1966년 빈 대학교에서 이론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졸업 후 파리대학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 버클리 대학 등에서 입자 물리학을 연구했고, 1975년부터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에서 오랜 기간 소립자 연구를 하게 된다.

카프라는 대학에 있는 동안 물리학에 대한 연구 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의 철학적, 사회적 측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으며, 동양사상에 관심이 깊었다. 그는 동양사상과 물리학을 비교하는 많은 강연과 논문을 발표했고, 그 결정체는 1975년에 펴낸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이다. 기존의 기계론적 우주관과 고전 물리학은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고전물리학과 기계론적 우주관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시 세계는 현대 물리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 그 패러다임은 동양사상에서 찾을 수밖에 없으며, 카프라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물리학을 기반으로 현대 물리학의 이론과 동양 사상의 세계관의 유사성을 이 책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은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카프라는 1982년 또 다른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The Turning Point)>을 출간한다. 이 두 저서는 서구 사회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신과학 운동에 대한 이념적 기반을 마련해준다. 신과학 운동은 1960년대 뉴에이지 운동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과 베트남전 같은 전쟁을 거치면서 핵무기, 자본주의, 환경오염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고, 그 중심에 현대과학이 있다는 자조와 반성으로부터 탄생한 과학사조이다.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동양사상은 자연스럽게 신과학 운동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고, 그 중심에 카프라가 저술한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저서들은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 영향으로 카프라는 수많은 강연과  TV 인터뷰, 다큐멘터리, 토크쇼 에 출현하게 된다.

카프라는 국제 생태문제 연구소인 엘름우드 연구소를 창설하고 새로운 생태과학 이론을 연구하는 등 현재도 신과학운동의 첨병을 자처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생명의 그물(The Web of Life)> <히든 커넥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The Turning Point)>등이 있으며,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역자서문
p14
물질의 궁극체가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며, 물질적 존재란 전일적인 것의 한 과정으로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현대 물리학의 자연관은 그 보는 방법과 과정에 있어서 전혀 대조적인 것이지만 동양사상의 견해와 거의 일치하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  물아일체(物我一體)

저자 머리말
p24
늦여름의 어느날 오후, 나는 해변에 앉아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며 내 숨결의 리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돌연 깨달았다.

> 초개아 현상. 시바의 춤을 직접 경험한 것이다.

제1부 물리학의 길
p38
기원전 5세기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심히 대립적인 관검을 극복하고자 했다. 파르메니데스의 불변의 존재라는 이념과 헤라클레이토스의 영원한 생성 이념을 융화시키기 위하여 불변의 실체를 갖는 어떤 것 속에 '존재'가 현시된다고 보고 이것의 결합과 분리가 이 세계 내의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 절충점이 동양의 전일적 사상과 거의 일치하는 것 같다

p39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인간 영혼에 대한 문제와 신의 완전성에 대한 상념은 물질 세계보다 훨씬 값진 것이라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 모형이 그토록 오랫동안 도전을 받지 않고 내려온 것은 분명 물질 세계에 대한 흥미의 결여와 중세를 일관해서 그리스도 교회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교리를 강력히 지지했기 때문이었다.

p48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아무리 명료하게 보이는 말이나 개념도 그 모두가 적용의 범위에 있어서는 꼭 어느 한계가 있는 법이다."라는 말처럼

p50
인류는 근 2000년 동안 그 합리적 지식이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더 현명해지지 못했다는 사실로 절대적 지식은 언어로써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가장 얇은 스크린에 의해 분리된, 그 건너 저편엔 전혀 다른 의식의 잠재 형태가 가로누워 있는 것이다 - 윌리엄 제임스

> 칼 융도 그 투명한 막에 대해 언급한 바가 있다. 본인은 그 얇은 막이 남들보다 더 얇았다고 말이다. 니체는 그 얇은 막이 균형을 잃고 붕괴되어, 결국 미쳐버렸고.

p53
수학이 극단적으로 추상되고 압축된 언어라는 견해가 도전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상 많은 수학자들은 수학을, 단지 자연을 기술하는 언어일뿐만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 내재하는 것으로 믿었다. 이 신조의 창시자는 "만물은 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피타고라스였다.

>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만을 신봉하다 보니, 나타나는 결과다.

p59
선불교의 학도들은 그네들의 (잊어버린) '본래 면목'을 되찾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 이 본래 면목을 돌연히 기억해 내는 일이 곧 개오인 것이다

p61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 과정에서 오는 직접적인 직관적 통찰에 익숙해 있다. 그것은 모든 새로운 발견은 홀연한 비언어적인 섬광에서 튀어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이 정보와 개념과 사고 유형들로 충만해 있을 때 일어나는 극히 짧은 순간이다. 반면에 명상에 침잠하면 마음은 모든 이념과 개념을 텅 비우고 오랫동안 그 직관적 형태를 통해서만 작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p64
아인슈타인 - 수학의 법칙들이 실재에 관해 언급하는 한 그것은 확실하지 않고, 그것들이 확실하다면 실재를 가리키지 않는다

p65
오늘날 우리들은 뉴턴적인 모형은 원자의 구성단위가 많은 물질과 광속에 비견해서 작은 속도에만 타당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첫번째의 조건이 주어지지 않으면 고전적 기계론은 양자론에 의해 대체되어야 하고 두 번째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상대성 이론이 적용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뉴턴의 이론이 꼭 틀리거나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이 맞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런 모든 모형들은 현상의 어떤 범위에서만 타당한 근사치일 따름이다

> 다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아무리 명료하게 보이는 말이나 개념도 그 모두가 적용의 범위에 있어서는 꼭 어느 한계가 있는 법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p73
'공안'은 세심하게 궁리해 낸 일견 사리에 합당치 않은 난문으로서 선을 공부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논리와 추론의 한계를 깨닫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 비합리적인 언사와 역설적인 내용은 사유로써는 도저히 체득할 수 없게 한다.그것들은 사유 과정을 정지시키고자 치밀하게 의도된 것이며, 그래서 제자에게 실재에 대한 비언어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대비시켜 주는 것이다

> 사유를 정지시키고 비언어적인 체험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사리에 맞게 보인다면 모순이겠지

p90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공간은 3차원이 아니며, 시간은 별개의 실체가 아니다. 둘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4차원의 시공 연속체를 형성한다.

p91
질량은 단지 에너지의 어떤 형태에 불과하다

1915년에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체계가 중력, 즉 모든 질량을 가진 물체들의 상호 인력을 포함하는 데까지 확대된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제창하였다

p92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하면 중력은 공간과 시간을 휘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p97
아원자적 단계에서 물질은 어떤 한정된 장소에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존재하려는 경향'을 나타내며, 원자적 사건들은 확실성 있게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려는 경향'을 나타내 보이는 편이다. 양자 이론의 형식론에서 이러한 경향성은 확률로써 표현되며 파동의 형태를 취하는 수학적인 양과 연관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어떻게 입자가 동시에 파동이 될 수 있는가에 하는 까닭이다. 그것은 음향이나 물결처럼 실재하는 3차원 파동이 아니다. 그것은 공간의 특정 지점과 특정한 시간에 입자를 찾아내는 확률과 관계 있는 파동의 모든 특유한 속성을 가진 추상적이고 수학적 양인 '확률파'이다.

>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p98
물질을 뚫고 들어가 보면 볼수록 자연은 어떤 독립된 기본적인 구성체를 보여 주지 않고, 오히려 전체의 여러 부분들 사이에 있는 복잡한 그물의 관계로서 나타난다. 이러한 관계들은 언제나 그 본질적인 면에서 관찰자를 포함한다. 인간이라는 관찰자는 관찰되는 과정들의 연쇄에서 마지막 연결을 이루며, 어떤 원자적 대상물의 성질도 단지 관찰자와 대상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은 자연의 객관적인 기술이라는 고전적 이상은 이미 빛을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세계,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의 데카르트적 구분은 원자적 물질을 다룰 때에는 성립할 수 없다. 원자 물리학에서는 우리 자신을 동시에 언급하지 않고서는 자연에 관해서 결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 결국 내가 없는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105
거대한 우주와 우리 사이를 긴밀하게 연결해 주는 태양으로부터의 끊임없는 에너지의 유출이 무한히 작은 세계의 현상인 핵반응의 결과라는 것을 발견한 것은 현대 물리학이 거둔 위대한 승리 중 하나다.

제2부 동양신비주의의 길

p123
마야의 주술에서 해방되는 것, 카르마의 속박을 부서 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감각으로 인지하는 모든 현상이 다 같은 실재의 부분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브라만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몸소 체험하는 것을 뜻한다. 이 체험이 '모크샤', 즉 인도 철학에서 해탈이라고 불리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힌두교의 바로 그 정수다.

p127
힌두교가 신화적이고 의식적인 풍미를 띠고 있다면 불교는 분명히 심리적인 취향을 띤다

> 심리적인 취향이라는 묘사는 탁월하다

p135
대승 불교가 아시아 전역으로 전파될 때 중국인과 한국인, 일본인의 마음을 고취시킨 경전은 무엇보다도 이 <화엄경>이었다. 중국인과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을 한편으로 하고 인도인을 다른 한편으로 한 대조는 너무나 커서 가히 인간 정신의 두 극점을 나타낸다고 말해질 정도다. 전자는 실제적,실용적,사회적인 정신인 반면에 후자는 상상적,형이상학적,초월적이다.

> 인도인들이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못할 행동을 하는 이유도 이런 영향을 받은 것인지....

p156
논쟁은 분명하게 보지 못 한 증거다 - 장자

p157
도가에서 개달은 가장 중요한 통찰 중의 하나는 변용과 변화가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p158
구부려라, 그러면 당신은 곧게 되고
텅 비게 하라, 그러면 당신은 가득 찰 것이며
다 닳고 해지면 새로울 것이니.

p161
우리가 도가의 변화 개념을 두고 얘기할 때, 그 변화가 어떤 힘의 결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물과 상황 속에 내재하는 경향으로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p167
경전 바깥의 특별한 전승
언어나 문자에는 근거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뚫어 보고 불성을 얻는다

>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

p168
선에 있어서 개오는 이 세상으로부터 물러남을 뜻하지 않고 그 반대로 일상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을 뜻한다

p169
당신이 선을 공부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강은 강이다. 선을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는 산은 더 이상 산은 아니고 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개오를 얻고 나면 산은 다시 산이고 강은 다시 강이다.

p171
고요히 앉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봄은 오고, 풀잎은 저절로 자란다.

제3부 대비
p176
개별적 사물들과 사건들이라는 우리의 추상적 개념을 자연의 실상이라고 믿는 것은 망상이다. 힌두교도와 불교도들은 이 망상이 마야의 주술에 걸려 있는 마음에서 생겨난 무명에 바탕을 두고 잇다고 말한다.

p177
청정한 삼매에 들게 되면 우주의 절대적 전일성을 의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p183
양자의 구조체계에서는 확실한 물리적 실체라는 개념은 이 실체가 관찰자로부터 무한히 멀리 있을 때에만 엄밀하게 정의될 수 있다

p189
관찰 대신에 참여라는 생각은 현대 물리학에서는 겨우 최근에야 공식화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비주의를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잘 알려져 있는 생각이다.

이원성이 있는 곳은 말하자면 하나가 다른 것을 보고, 하나가 다른 것을 냄새 맡고 (...) 그러나 모든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곳에서는 무엇에 의하여 무엇을 본단 말인가?
-우파니샤드

p200
고차원적인 경험은 각기 그 중심과 단계가 다른 의식들의 체험을 통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3차원적인 의식의 단계에서 이루어진 어떤 명상의 경험은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더군다나 그것이 논리의 체계 속으로 들어가면 사고 과정에 한계를 더 부여함으로써 그 표현의 가능성을 더욱 감소시켜 버린다.

p209
우리는 결코 아원자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아주 정확히는 알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 위치를 잘 알면 알수록 입자의 운동량은 더욱 애매하게 될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 측정이 대상을 변화시킨다. 

p218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은 기하학을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하였지만, (고대 그리스를 비롯한 서양인들과는 달리) 그것들을 결코 추상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규정하는 데에는 이용하지 않았다.

> 이전에는 서구인들의 합리성이 우월한 것으로 강조되었지만, 이제 세계는 동양문화의 비합리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p235
우리는 지구상의 환경에서는 공간과 시간에 미치는 중력작용이 아주 작기 때문에, 그것들은 별로 대수로운 것은 못 된다. 그러나 행성, 항성, 은하계 등과 같이 지극히 질량이 큰 천체를 다루는 천체 물리학에서는 시공의 만곡은 상당히 중요한 현상이다

p256
그래서 현대 물리학은 물질을 부동적이고 비활성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그 율동의 패턴이 분자, 원자, 핵의 구조에 따라 결정되는 연속적인 율동과 진동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또한 동양의 신비가가 물질 세계를 보는 방식과 같다. 그들은 우주가 움직이고 진동하고 춤추는 것이므로 동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 즉 자연은 정적인 균형이 아니라 동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p262
힌두교의 성인들은 우주를 주기적으로 팽창, 수축하는 것으로서 묘사했으며, 한 창조의 시작과 끝 사이의 상상할수조차 없는 시간을 겁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고대 신화의 스케일은 실로 망연할 정도다. 인간의 마음속에 그와 비슷한 생각이 또다시 일기까지는 무려 2,000년이 걸렸다.

p266
질량은 에너지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발견은 소립자에 관한 우리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게끔 해주었다. 현대 물리학에서 질량은 이미 어떤 물질적 실체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 이것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러한 소립자들은 다만 상대성 이론의 용어에 의해서만, 즉 공간과 시간이 4차원적인 연속체로 통합되는 구조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립자들은 당구공 같은 정적인 3차원 물체로서가 아니라 시공에서의 4차원적 실체로서 묘사되어야만 한다.

p269
조지프 니덤은 "유럽철학이 실체에서 실재를 찾으려고 했던 반면에 중국 철학은 그것을 관계에서 찾으려고 했다"

> 신영복 선생의 저서 <강의>에도 나오는 동양사상을 관통하는 핵심적 가치

p273
마흐의 견해로는 물체란 단지 다른 물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관성을 갖게 된다

> 결국 만물은 관계의 틀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독야청청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존재는 비존재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p290
동양의 허와 같이 물리적 진공은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소립자 세계의 모든 형태를 지닐 가능성을 갖고 있다. (...) 불경에서 말하듯이 "색즉시공, 공증시색"이다.

p309
모든 것들은.... 춤추며 그 율동에 의하여 소리를 내는 원자들의 집합이다. 그 무도의 율동이 변할 때 그것이 내는 소리도 역시 변한다.....

p313
그리하여 현대 물리학은 모든 아원자적 입자가 에너지 무도를 한다는 것뿐 아니라 창조와 붕괴의 고동치는 에너지 무도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p327
대칭에 대한 동양 철학적 태도는 고대 그리스인들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극동의 신비적 전통들은 대칭적 모형들을 상징이나 명상의 방편으로 자주 활용하지만, 대칭의 개념이 그들의 철학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한것 같지는 않다. 기하학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자연의 속성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소산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그것은 근본적인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p332
S행렬 이론에 있어서 중요한 새로운 개념은 강조점을 대상물로부터 사건으로 옮겨 놓는 것이다. 그 기본 관심이 입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반응에 있다는 것이다. 대상물로부터 사건으로의 그러한 전이는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 둘 모두에 의하여 요구되고 있다.

p349
S행렬 이론은 단지 그 궁극적 결론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물질에 관한 일반적 견해에 있어서도 동양적 사고에 매우 가까이 근접하고 있다. S행렬 이론은 아원자적 입자의 세계를 사건들의 동적인 그물 조직으로서 기술하며, 근본적 구조나 실체로서보다는 변화와 전환을 강조한다.

p353
변화와 번역에 의하여 생성되는 그 역동적인 모형들의 개념으로 인하여 <역경>은 어쩌면 동양사상에서는 S행렬 이론에 가장 가까운 비유가 된다. 두 체계에서 강조되는 것은 대상물보다는 작용면에 있다.

> 개체의 존재가 아닌, 개체들간의 관계로부터 개체의 속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p359
부트스트랩 가설은 물질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의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법칙이나 등식, 원리 등의 근본적 실체들을 모두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수백 년 동안 자연 과학의 본질적 요소가 되어 왔던 또다른 개념을 파기한다.

p360
어느 하나를 설명하려고 하면 우리는 다른 모든 것을 전부 알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분명히 불가능하다. 과학을 그토록 성공적으로 만들어 준 것은 근사치가 가능하다는 발견이다. (...) 결과적으로 단번에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할 필요가 없이 근사적 방법으로 자연의 상이한 국면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과학적 방법이다. 모든 과학적 이론들과 모델들은 사람들의 진정한 본성에 대해서 근사치들에 불과하다.

> 언어도 마찬가지다. 느낌에 대한 언어표현은 언제나 근사치일수밖에 없다.

p362
의미론적으로 모든 개념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거의 과학적이라고 볼 수 없다.

p363
니덤에 의하면 중국인들은 자연 법칙이라는 서양의 고전적인 개념에 대응할 만한 말초자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에 가장 비슷한 말은 리理인데, 그것을 신유학파의 성리학자 주희는 '도에 포함되어 있는 무수한 혈맥과 같은 모형들'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리理는 법칙이란 의미가 내포되었지만 전체의 부분들이 전체의 부분으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 법칙에 순응해야 하는 그런 법칙들이다. 부분들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구성하는 전 유기체에 있어서 다른 부분들과 함께 제자리에 정확하게 맞아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 김용규 선생이 강의했던 내용이 떠오르는군. 필연의 자연 법칙을 의미하는 단어 리理

p375
시인이 한 개의 모래알에서 세계를 본다면, 현대의 물리학자는 세계를 하나의 강입자에서 본다

맺음말
p382
모두는 단지 실재에 대한 기술이나 표현에 불과한 것이고 따라서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들 중에 어느 것도 이 세계의 완전한 상을 제공할 수는 없다

p385
나는 과학과 신비주의를 각각 추론적인 것과 직관적인 것 두 능력을 지닌 인간 정신의 상보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p386
과학은 신비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고, 신비주의는 과학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인간은 그 둘을 필요로 한다

3판 후기
p416
우리는 우리 주변의 실재를 연관 관계의 그물로 보듯이, 우리의 기술들도 관찰된 현상들을 나타내는 상호 연관된 그물을 형성할 것이다. 그런 그물에서는 일차적인 것도 이차적인 것도 없으며 어떤 토대들도 없을 것이다.

p424
우리는 양자적 실재가 거시 현상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저자라면


꽤 오래전에 공돌이라면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당위감에 집어들었다가 얼마 못 읽고 내팽게친 책이다. 고전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뒤짚은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과의 차원 높은 통섭이 이 책 안에 담겨 있다. 베스트셀러와 명저의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가장 잘 팔리는 분야인 크로스 오버, 고차원적인 통섭과 깊은 통찰까지.

책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 '물리학의 길'은 개론적인 내용으로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아우르고 있다. 2부 '동양 신비주의의 길'은 말 그대로 현대물리학과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는 동양 사상들에 대한 내용이다. 힌두교, 불교, 도교 등 깨달음과 자연합일을 통한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불교, 도교와 같은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은 터라 2부를 재미있게 읽었다. 3부 '대비'는 두 사상간의 직접적인 비교와 현대 물리학 이론에서 발견하는 동양 사상의 진리를 담고 있다.

후반부의 S행렬과 같은 물리학 이론에 대한 설명은 어렵다. 무늬만 공돌이인 내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물리학도나 정통 공돌이 정도는 되야 볼 수 있는 수준이다.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재미가 없다. 아무리 명저자라도 물리학자인 카프라 역시 '지식의 저주'를 완벽하게 피해가지는 못 한듯 하다. 물론 그것이 의도된 바라면 다른 이야기이지만. 내 생각에는 너무 세부적인 설명은 오히려 독이 될수도 있다고 본다. 내가 저자라면 적정한 선에서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고, 특징적이고 중요한 포인트만 짚고 넘어가는 식으로 글을 전개할 것 같다. 저자가 설명한 물리학 이론들이 글의 전개에 있어 확고한 배경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기술논문이 아닌 이상 그것들을 일일이 나열한 필요는 없다고 본다. 책에 나오는 S행렬 이론을 예를 들면, 골자와 핵심적 내용만 동양사상과 연계하여 서술하고, 대부분의 이론적 내용은 부록의 형태로 담아내면 좋을 것 같다.

책의 서두에 인용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밝힌 바와 같이, 인류의 사상사에 있어서 두 개의 다른 사상의 조류가 만나는 지점에서 가장 풍요로운 발전이 이루어진다. 그 발전은 구 시대의 패러다임을 전복시킬 수 있는 일종의 도약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한 비교와 공통점 찾기가 아닌 새 시대의 화두를 제시하는 시대적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은 내가 지향해야 할 전범인지도 모르겠다. 문과와 이과와의 접목을 위한 책을 구상하는 내게 이 책은 정통 크로스 오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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