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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2일 20시 17분 등록
열정과 기질  
하워드 가드너 지음 / 임재서 옮김

저자연구 

"교육은 개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이 똑같이 마쳐야 할 교과과정이 있다고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장 잘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만일 신체 지능이 매우 발달한 학생이 논리 지능과 언어 지능만 중요하게 평가하는 학교에 배치된다면 그 학생의 자존감은 낮아질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보이는데도 그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물론 신체 지능이란 축구를 하는 것부터 외과 수술을 하는 것까지 상당히 넓은 범위를 포함한다" 
- 하워드 가드너 인터뷰 中

바야흐로 IQ로 똑똑함을 대변하던 과거를 지나 EQ, NQ가 사회적 성공과 우리의 인생에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요소라고 여겨지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런 시대의 흐름에 누구보다도 큰 학문적 영향력을 행사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의 창시자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943~)이다. 하워드 가드너는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보스턴 의과대학 신경학과 교수이며, 인간의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의 발달과정을 분석하는 프로젝트제로(Project Zero)연구소의 책임자이자 운영위원장으로서, 줄곧 인간의 정신능력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30년 가까이 연구소를 이끌면서 지능과 창조성, 리더십,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저자의 교육심리 이론은 여러 나라에 도입되었으며, 그의 이론에 근거한 연구소와 단체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윌리엄 데이몬과 함께‘굿 프로젝트(Good Project)’활동을 하며,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을 길러 사회를 변화시켜나가는 데 열정을 기울였다. 존 듀이 이후 최고의 교육학 이론가로 손꼽히고 있는 하워드 가드너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에 맥아더 펠로우십(MacArthur Prize Fellowship)을, 1990년에는 미 교육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그라베마이어상(Louisville's Grawemeyer Award)을, 2000년에는 구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을 받았다. 저서로는 《열정과 기질Creating Minds》,《 체인징 마인드Changing Minds》,《 마음의 틀Frames of Minds》,《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Multiple Intelligence and Adult Literacy》,《 진선미Truth, Beauty and Goodness Reframed》등이 있다.

왜 다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인가?

우리가 어렸을 적 누구나 IQ검사라는 것을 한 적이 있다. 이 검사 하나로 영재와 둔재가 판가름되었다. IQ는 주어진 운명이었으며, 미래의 모습으로 착각되었다. 지능에 순위가 있다는 개념은 효율적인 교육체계를 구축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하나의 문제에 오직 하나의 답만이 존재하는 획일적인 교육체계하에서 IQ는 곧 학생의 점수와 직결되었다. 하워드 가드너는 지능에 대해 매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뇌 손상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예술 분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그의 연구는 뇌가 얼마든지 탁월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밝혀냈다. 그의 저서 《마음의 틀: 다중지능(Frames of Mind: The Multiple Intelligences)》에서 가드너는 일곱 가지 지능을 제시했다. 음악 지능, 신체 지능, 논리수학 지능, 공간 지능, 언어 지능, 인간친화 지능, 자기성찰 지능이 그것이며, 지능에 대한 이와 같은 새로운 개념은 전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다중지능 이론은 심리학에서 널리 알려진 단일한 지능 시각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발전되었으며,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드너가 다중지능 이론을 연구한 이유는 교육에 있어 개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라는 것이 원래 획일화된 국가적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때, 이제껏 학교의 교육은 개인이 중심이 되지 못 했던 것이 사실이다.모든 학생이 똑같이 마쳐야 할 교과과정이 있다고 해도 한사람 한사람이 가장 잘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체지능이 뛰어난 학생에게는 그 방면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드너는 교유게계를 뒤엎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중지능이론으로 교육커리큘럼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도 얘기하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다중지능은 학교 운영의 핵심 사상이 될 수 없다. 학교의 핵심 교육 철학은 그곳에서 교육받은 학생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정확한 교육 목표를 알아야만 우리는 다중지능이 그것의 성취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다중지능 이론은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개념으로 함축시켜 말할 수 있다. 바로 ‘개인화’와 ‘다원화’다. 먼저 개인화는 개인이 필요로 할 때마다 언제든 그들이 학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르칠 수 있고 편안하게 그들이 학습한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이런 개별적인 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개인교사를 고용가능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한 사람들이었으나 이제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개인화가 가능해졌다. 다원화란 한 동전의 다른 면과 같다. 그것은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수많은 다양한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학, 물리학, 음악, 천문학, 심리학 등을 배울 때 반드시 한 가지 방식으로 배울 필요는 없다. 다중지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교육 목표가 무엇인지, 개인화와 다원화를 통해 어떻게 그 목표를 성취할 것인지 알아야 한다.

가드너는 다중지능을 언어, 논리수학, 공간, 음악, 신체, 자기성찰과 인간친화 지능 등 일곱가지로 구분했다가 15년 뒤 자연 지능을 추가했다. 그는 또한 실존 지능을 새로 추가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실존 지능은 좀 더 근원적인 질무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사실 지능이라는 것을 구분짓고 분류하는 것은 임의적인 것이다. 논리수학지능만 하더라도 하나의 지능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그 안에는 또 많은 세부 지능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프로그래머에게는 논리력이 요구되지만, 필요한 연산능력의 수준은 극히 미미하며, 그마저도 계산기로 대체가능하다. 이렇듯 무수한 지능이 존재하며 개인별로 그 분포도도 천차만별이다. 개인의 강점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이를 극대화시키는 일이 이 시대, 자신의 삶의 승자가 되는 길이다.


** 위 내용은 국제뇌교육협회(IBREA)가 발행하는 영문 계간지 <Brain World>의 앤디 헥터Andy Hunter와 하워드 가드너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들어가는 글
p13
창조성이라는 현상과 역사적 실례(개별 사례)에 대한 평생 동안의 관심을 하나로 모았다는 점에서 정점이며, 인간의 창조적 기질을 새로운 접근법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는 출발점이다.

p16
지능이 다원적이라면 창조성은 한층 더 다원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수리나 언어와 같은 특정지능의 경우 발달방법이 어느정도 연구되어 있는 데 반해, 창조성은 단일 지능이 아니기에 정형화하기는 어려운 듯 하다.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면, 창조성을 기르기 위한 도구 및 방법론들이 나오긴 하지만, 여러 특성들을 분류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1 취리히에서의 만남
p35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앨리엇, 그레이엄, 그리고 간디의 창조적인 도약을 이해할 수 있다면, 분명 인간의 창조 행위에 담긴 여러 가지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p37
내 생각에 19세기에 풍미했던 예술과 장인적 기예, 과학 이론, 그리고 지적 통합성은 더 이상 적절치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와 같은 부적합성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일곱 명의 창조적 인물들은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20세기 내내, 즉 ‘그들의’ 세기 내내 그 잠재력이 소진될 정도로 철저히 수행되고 연구된 것이다
> 19세기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현재까지 유효한 20세기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이들이 바로 가드너가 소개하고 있는 일곱명의 인물들이다.

p39
아동과 대가의 관계 : 개인의 발달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재능은 있지만 아직 미완의 대가인 아동의 세계와 자기 세계에 확신이 있는 성인 대가의 영역 간에 존재하는 불연속성과 연속성을 살펴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개인과 그가 활동하는 분야의 관계

개인과 다른 사람들의 관계
p45
반면 정치와 종교, 교육, 상업, 임상 분야 등 ‘인간 관계’의 영역에서 창조성을 논하는 일은 왠지 가당치 않다는 느낌을 주곤 한다.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보다 예술가와 과학자가 창조성 논의에 더 적합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지엽적이다. 다른 이유가 좀더 실질적인데, 정치를 비롯한 인간관계의 영역에서는 창조적인 도약이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따라서 어떤 특정한 창조적인 도약을 특정한 역사적 순간에 활약한 특정한 개인과 동일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 보는 시각의 차이일수도 있겠다.

p48
한 시대에 관해서도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이와 같은 헤겔적인 사고방식은 널리 퍼져 있다. 헤겔적 사고방식의 핵심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즉, 역사에는 고유한 추동력이 있어서 일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시대정신과  주제가 전면에 나서고 시대가 바뀌면 또다른 시대정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으로 역사가 나선형적(변증법적)으로 진행한다는 생각이다.

p51
세기가 바뀔무렵 19세기의 기본 교의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일이 급속히 그리고 연이어 일어났다. 우리의 일곱 명의 창조자들도 이 맹공격에 중대한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2 창조성의 연구 방법
p59
길포드가 생각한 창조성의 핵심 개념은 발산적 사고였다. 표준적인 지능 검사에 의해 똑똑하다고 인정된 사람들은 주어진 자료나 문제에 대해 항상 올바른(어쨌든 상투적인) 대응법을 생각해낸다. 반면,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떤 자극을 받거나 문제를 보면 아주 다양한 연상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매우 유별나고 엉뚱하기까지 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 이 발산적 사고가 바로 작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일단 IQ가 120이 넘으면 심리측정학적으로 창조성과 지능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p66
프로이트가 “창조성 문제에 직면하면 정신분석학자는 무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거나 “정신분석학은 예술작품의 본질에 접근할 수 없다”고 한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중요한 공헌을 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선 무의식의 과정에 대한 프로이트의 명료한 설명은 창조적인 행동이 창조자의 사려깊은 의도를 직접 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점에 그 핵심이 있다. 창조적인 행동의 원동력과 의미는 창조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속한 공동체 사람들에게도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p67
놀고 있는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거나, 혹은 자신이 즐거울 수 있도록 주변에 존재하는 사물을 재배열한다는 점에서 모두 창조적인 작가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창조적인 작가와 놀고 있는 아이가 하는 일은 똑같다. 창조적인 작가는 환상의 세계를 창조하고 이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즉, 작가의 환상세계에는 그의 감정이 충전돼 있다. 물론 그는 환상의 세계와 현실을 날카롭게 구별한다.

p68
프로이트의 설명에 따르면, 예술가는 권력과 부를 갈구하지만 이것을 직접 얻을 수가 없기 때문에 창조 행위에서 안식처를 구한다는 것이다. 혹은 예술가는 그들이 갈구하는 리비도적 쾌락과 오이디푸스적 쾌락을 창조 활동에서 간접적으로 얻는다는 것이다. 스키너의 행동과학적 관점에서 말하면, 사람들이 창조 행위에 나서는 것은 이전에 보상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긍정적인 강화’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었던 위대한 예술가가 흔지 않았음이 그 근거로 제시될 수는 있겠으나, 사람마다 다 똑같지는 않을 것 같다.

사회심리학자 테레사 아마빌라는 고전적인 심리학의 설명과는 반대로, 사람들이 외적인 보상을 노릴 때보다 순수한 즐거움만으로 행동을 할 때 창조적인 해법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p75
아동과 창조적인 어른의 관계는 어른이 지닌 창조성의 중요한 차원이 유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내 믿음을 반영하는 주제이다

p79
어느 분야의 전문 지식에 정통하려면 아무리 열광적으로 몰두했더라도 최소한 10년 정도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창조적인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기 분야에서 통용되는 지식에 통달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10년 정도의 꾸준한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도약을 이룰 수 없다.

p82
일곱 가지 사례에서 드러나는 발달상의 특징
1. 세상의 일반적인 원리와 특별한 문제에 대한 유년시절의 관심
2. 처음 흥미를 느낀 문제를 탐구하다가 이 흥미를 이어받아 특정 분야를 마스터하겠다고 결심
3. 선택한 분야에 정통한 후에 모순적인 요소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요소를 창조
4. 창조자가 신기한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탐구해가는 방식
5. 고립의 시기에 주변 사람들이 행하는 격려와 지지 역할 혹은 방해 역할
6. 서서히 새로운 상징체계와 언어 혹은 표현방식을 만들어가는 모습
7. 관련 비평가들의 첫 반응과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반응이 변화하는 모습
8. 보통의 중년의 시기에 이뤄내는 좀더 포괄적인 성격의 두 번째 혁신

>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여정과 유사하다.

p83
나는 어떤 한 사람이 모든 분야가 아니라 어떤 특정 분야에서만 창조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이 책의 핵심메시지 중 하나이다. 다재다능한 사람도 유독 창조성이 극대화되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내게 그것은 무엇인가?

p84
나는 창조적인 인물이 정규적으로 창조성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일생에 한번 창조성을 폭발적으로 발휘할 뿐이라는 생각과는 배치된다.

창조성은 새로운 유형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 혹은 지금까지 무시되거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주제를 발견하는 것과 관련된다

창조적인 행위는 특정한 문화에서 받아들여질 때에만 제대로 인식된다

p89
다음 세대의 학생들이나 재능 있는 사람들은 이제 창조적인 인물의 업적에 힘입어 전혀 새롭게 변한 분야에서 작업하게 된다. 창조성의 변증법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 쿤이 주창한 패러다임 쉬프트 과정이다.

p92
그리고 스스로는 창조적이라 생각했으나 장에서는 그런 평가를 받지 못한 다른 많은 물리학자나 심리학자들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이라는 스코틀랜드식 판결을 내리면 된다. 

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
3 지그문트 프로이트
p110  
편지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상을 주는 부분은 결점 투성이인 인간 세계에 강한 매혹을 느끼고 이를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이해했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부터 그는 자신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중요한 성취를 이루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 그런 성취를 이룰 것인가였다
 > 자존감은 높았으나, 정작 무엇을 해야할지 확실히 몰랐다는 것

p111
프로이트는 언어 지능과 인성 지능이 우수했다. 즉, 언어와 인간을 다루는 분야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었다.
 
p116
프로이트의 자아 이상은 이제 꼼꼼하고 엄격한 신경 해부학자 브뤼케에서 좀더 너그럽고 키리스마가 있는, 그리고 심리학에 보다 관심이 많은 사르코로 바뀌었다
 
p118
브로이어는 안나O양을 깊은 최면 상태로 유도했을 때 주목할 만한 현상을 발견했다. 히스테리 상태에서 파펜하임은 어떤 액체도 마시지 못했다. 그런데 한 번은 최면 상태에서 어느 영국 여자친구에 대한 온갖 분노를 쏟아냈다. 쌓인 울분을 마음껏 쏟아낸 뒤에 그녀는 다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파펜하임은 잔을 입에 댄 채 최면에서 깨어났고, 이후로는 물을 못 마시던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
 
p129
그 핵심 개념은 억압이다. 좀더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방어 기제라고 하는데, 이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표상들을 의식 아래로 억누르는 심리 과정을 일컫는다. 프로이트 자신도 이 개념의 중요성을 확언한 바 있다. “억압이라는 교의는 정신분석학 이론 전체가 서 있는 주춧돌이다”
 
억압 개념은 프로이트적 세계관의 핵심이다. 우선, 의식화되지 않았지만 의식의 표면으로 튀어나오려는 일군의 표상들이 있다고 가정할 필요가 있다. 검열 기제는 의식에 닿기에 부적절한 표상들을 걸러내고 그것을 무의식 영역에 가두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전환 과정을 통해 그 불편한 표상들에 결부된 정서가 여러 종류의 증상으로 전환되는데, 이 중에는 말실수와 같은 무해한 증상도 있고 히스테리 발작과 같은 꽤 심각한 증상도 있다. 불편한 표상들이 전의식에 닿거나 의식의 층위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어야 한다.
 > 공황장애나 불면증, 우울증같은 현대인들의 정신질환이 늘어나는 이유는 억압은 많아지고 검열기제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더 자유스럽고 풍요로워보이는 이 세계에서 더 많은 억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p135
하지만 프로이트는 곧 <프로젝트>에 환멸을 느꼈다. 분명 억압을 신경학적으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부딪힌 어려움 때문에 이런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p137
프로이트는 모든 꿈에는 모종의 소원이나 환상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되었다. 꿈은 억압된 소원이 위장 실현되는 과정이며, 예전의 결심이나 근심 혹은 욕망을 마음속에서 지속적으로 처리하는 수단이다.

p144
꿈의 동인은 무의식에서 생기며, 꿈에는 무의식적 소원이 잠복해 있다. 소원은 전의식으로 표출되고자 하는데, 낮에는 검열에 의해 왜곡되지만 저항이 약해지는 밤에는 다양한 위장과 타협 형성을 통해 꿈으로 분출된다.
 
p145
나의 재능에는 한계가 있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에는 아무 재능이 없다. 양적인 것에는 아무 소질이 없다.
 > 이 말은 수학적 능력이 약한 엔지니어들에게 위안이 되는듯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경우에는 그가 해명하고자 하는 것은 현상의 법칙이더라도 주로 이미지를 통해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 아인슈타인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수학적 지능을 커버하고도 남을 만큼의 이미지 형상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수단에 불과하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래도 엔지니어들이여, 좌절은 쓸데없다. 그대들에게는 계산기가 있지 않은가?

p157
마지막 저작인 <모세와 일신교>에서는 새로운 종교를 창시했지만 정작 자신이 ‘진리의 길’을 알려준 당사자들에게 핍박받게 되는 지도자와 직접 동일시하기까지 한다.
 
p161
<꿈의 해석>은 그가 샤르코의 임상교실에서 견습생활을 시작한 지 거의 정확히 10년 만에 탄생한 업적이다
 > 책의 곳곳에 드러나는 10년, 1만시간의 법칙의 증거들에 대한 확신

p165
내 논의에서 프로이트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를테면, 그는 특정 지능을 활용하여 창조성의 절정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인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자성 지능을 통해, 그리고 아무도 공감과 이해를 보이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통해 그런 성과를 보였던 것이다
 
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p171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아는 물리학이란 세 살 무렵이면 알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p178
완전한 진공이라는 개념을 경험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이전의 과학 발달기에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 공간 개념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
 
p184
맥스웰은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을 분명하게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위치는 명백히 상대적인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관계를 표현하지 않는 용어로는 물체의 위치를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런 시점으로 오면, 어느덧 과학과 철학은 불가분의 관계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p194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수학에 뛰어난 재능이 없다고 느꼈으며, 이 분야에서는 일부러 강의를 맡지 않았고 연구도 계속하지 않았다
> 한창 수학문제집 풀이로 아이들을 닦달중인 집사람에게 넌지시 아인슈타인 얘기를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았음
 
수학은 수많은 전문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그 하나하느는 우리의 짧은 생애를 쉽게 소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그런데 물리학 분야에서 나는 어느 영역이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금방 간파했고, 내 마음을 어지럽히고 본질적인 것에서 주의를 흩트리는 다른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수학으로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만, 이 시대의 기준에 맞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돌파해야 하는 교육제도에 있어 수학은 철옹성과 같은 존재다.
 
p196
내가 생각을 전개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한 심적 요소는 마음속에 자발적으로 생겨나고 서로 결합되곤 하는 특정 기호와 다소 명징한 이미지이다.
 
관습적인 어휘나 다른 기호들은 위에서 언급한 연상과 결합 작용의 틀이 충분히 잡히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나 이차적인 단계로서 애써 찾아야 했던 것이다
 
p211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가 논평했듯이, 상대성 이론에서는 어떤 요소의 불변성이나 절대성은 상대성 법칙의 영속성과 필연성을 위해 포기되는 것이다.
 
p214
내 용어로 말하면, 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가 새로운 발견에 저항한 셈이었다
 > 본디 패러다임은 기존 체계의 격렬한 저항을 경험하는 법이다.

플랑크는 어느 정도 열광적으로 반응했지만, 상대성 이론보다는 상대성 원리라고 말하길 더 좋아했고, 로렌츠의 업적을 일반화한 이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p216
이러한 사례는 새로운 혁명적 과학 사상이 기성 세대, 즉 장의 권위자들에게 수용되는 일은 드물다는 토마스 쿤의 주장에도 부합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수용되려면 입장이 굳어지지 않은 새로운 세대가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p221
이 장엄한 회합에 참석했던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위대한 사색의모험이 마침내 무사히 해안에 닻을 내렸다”고 말했다
 > 아인슈타인 승!

p222
제 이론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사라져도 시간과 공간은 그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 시간과 공간 역시 물질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지요.
 > 공즉시색, 색즉시공

p227
공간은 이제 구부러진 형태로 생각해야 하고 중력장에는 유클리드 기하학을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p230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그걸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 

p232
대단한 위업을 달성하는 그런 소수의 과학자들도 대개는 젊은 시절에 그런 업적을 이룬다. 아인슈타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양자 역학의 주요 창안자들이 획기적인 도약을 이룬 것은 20대 시절이다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일리가 있는 얘기이다. 자연과학은 40대가 되기전에 공부해야 한다. 나같은 사람은 이미 늦은 셈이다. 나이가 드니 이 주장에 처절하게 공감한다. 철학이나 문학같은 분야는 나이가 들어서도 등단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미분, 적분, 일반상대성이론을 6,70먹은 노인이 취미로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p233
아인슈타인 자신도 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상대성 이론에 관해 사색한 만큼 백번이나 양자 역학에 대해 사색해 보았네.” 그는 양자 역학에 계속 열의를 보였지만, 이런 몰두만으로는 획기적인 도약을 이루기는 충분치 않았다. 젊음과 원숙함의 결합은 창조적인 과학 천재의 고유한 특징일 것이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20년 늦게 태어났더라면, 그의 재능과 세계관은 논리-수학 지능이 공간적 재능보다 더 중요한 양자 역학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 영웅은 시대를 타고나야 하는 법!

p235
역설적이게도 아인슈타인이 말년에는 로렌츠와 푸앙카레가 된 셈이다
 > 이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진보에서 보수로 변하는 정치성향처럼 말이다.

p236
어린 시절의 천재란 주로 명민하고 신속하게 직관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직관과는 다른 이해 능력, 즉 성찰적 지혜라고 부를 만한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계속 성숙한다
 > 그나마 이 말만 믿고 덜컥 글쓰는 세계로 뛰어드려 하는 것인데 이왕 갈 거 자신있게 가즈아~

p237
나는 다른 분야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천재성이 똑같이 발현되었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20세기 초반에 발달한 이론 물리학은 그의 재능(그리고 한계)을 지닌 사람이 천착하기에 가장 적합한 분야였다.
 > 위대한 성공은 기질과 노력, 그리고 시대의 3박자가 만들어내는 셈이다.

p240
독창적인 과학자로서의 아인슈타인은 마흔 살 때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 개발자로서의 나의 삶도 근래에 거의 환갑을 맞은 듯 하다. 이제 변화를 통해 활로를 열어야 할때이다.

5 파블로 피카소
p255
다중 지능이론의 견지에서 보면, 피카소의 조숙함은 시각-공간 영역, 신체-운동 영역, 대인 영역에서 두드러졌다.
 
p256
피카소는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것을 어려워했고, 특히 숫자를 익히는 데 큰 곤란을 겪었다.
 
p263
그 나이 적에 이미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그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평생이 걸렸습니다
 
p271
피카소는 긴 생애 내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무척 어려움을 겪었다. 대개의 경우는 죽음을 아예 부정하려고 했다. 죽은 사람에 대해 입을 다물었고,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질병과 노화, 죽음을 야기하는 사람이나 요인을 두려워했다. 
>그럼 피카소는 어떻게 죽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73년 피카소는 자신에게 죽음이 왔음을 직감한다. 평생 자신의 죽음을 직시하지 않으려던 피카소도 죽음을 앞에 두고 그에 순응하게 된다. 이것은 같은 해가 그가 그린 작품 <피카소의 자화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picaso.jpg
죽음을 직시한 공포에 찬 노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가?

p282
피카소는 수십 년 후에 브라사이에게 “내가 세잔을 아냐고요? 그는 나의 유일한 스승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p283
최근에 피카소 연구에 엄청난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생겼다. 피카소가 대략 1894년부터 1967년까지 보관하던 175권의 드로잉 노트가 발견된 것이다. 이 기막힌 발견물에는 <아비뇽의 처녀들>의 스케치만 그린 노트 8권도 포함되어 있다 
>무려 8권의 스케치 노트라니, 거장은 그냥 탄생하지 않는다
 
p300
이러한 협력에는 자아의 희생이 필요하거니와, 적어도 피카소의 경우는 재능을 상당 부분 억눌러야 했다
 
p304
분명한 것은 입체주의 미술의 이미지가 상업 광고물에 아류 모방작에 이르는 다양한 시각물에 스며들어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음에도, 보는 사람들은 대개 그 이미지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 나 역시도 그러하다. 앞으로는 관심을 좀 가지고 살펴보아야겠다.

p307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해서 흉내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과거는 더 이상 내게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나 자신을 베낄 바에는 차라리 다른 사람을 모방하겠다. 그러면 적어도 새로운 면을 추가할 수는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난 새로운 걸 발견하기를 좋아한다. (…) 화가란 결국 무엇이겠는가? 다른 사람의 소장품에서 본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소장품으로 만들고 싶은 수집가가 아니겠는가. 시작은 이렇게 하더라도 여기서 색다른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p317
분명히 그는 캔버스의 가로세로 비율이나 정확한 등장인물(형상), 강조할 색조의 배합 등에 관해 아직 뚜렷이 정한 사항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미 장대한 서사시적인 작품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이렇듯 천재적인 대가들은 뛰어난 직관을 가지고 있다

p320
이와 같은 다양한 변화는 피카소가 시각적 묘사라는 상징체계를 통해 사유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p324
피카소의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정과 연인, 아이들 그리고 여름 휴양지를 찾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꾸준하게 새로운 양식과 대표작을 추구하는 과정이었다.
 
p328
메리 게도는 피카소를 일컬어 ‘비극 중독자’라 불렀는데, 피카소는 연약한 여인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비극적인 사태가 발생할 때까지 그녀들의 삶에 남아있었다고 주장했다.

p331
피카소는 어린 시절에 일종의 협약, 즉 파우스트적인 계약을 맺었다고 생각했다. 누이 동생 콘치타가 죽었을 때 자신의 재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희생할 수 있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6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p334
이 불순한 음악가들은 언제나 민족적 단결이나 종교적 자유와 같은 음악 외부의 목적을 위해 음악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스트라빈스키는 음악가라는 장인이 작업하는 소재인 가락과 리듬은 그 자체로는 목수의 대들보나 보석 세공사의 보석과 마찬가지로 표현할 내용을 막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p342
무엇을 배우든 신참자가 걸어야 할 길은 하나밖에 없다. 처음에는 학습 과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지만, 이것은 자기만의 표현 방법을 자유롭고 힘차게 추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삼아야 한다.
 
p343
여느 창조자와 마찬가지로 스트라빈스키 역시 처음엔 선배들의 언어를 열심히 터득했고,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도 골고루 사숙했다
 
p355
창조성 연구가 딘 키스 사이먼튼은 위대한 창조자들은 걸작이든 태작이든 작품 자체를 다량으로 창조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증거 자료를 모아놓았다. 이런 맥락에서 <별들의 왕>은 실패한 <아비뇽의 처녀들>이나 폐기처분된 <황무지>의 초고원고, 혹은 프로이트의 <프로젝트>와 비슷한 부류로 여겨야 한다.
 > 창의성은 아무때나 번뜩이지는 않는다. 그것의 전제조건은 공부의 양이다. 양적 조건의 충족 다음에야 질적 전환이 일어난다.

p358
스트라빈스키는 처음 작품을 구상하고 악보에 옮겨 적을 때 이미 작품 전반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p368
분명히 이 작품은 여러 이유로 처음 듣는 청중을 소외시킨 면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결국에는 수용되고 인정받았다. 물론 변한 것은 작품이 아니라 장이었다.
 >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전진하라!

p367
이와 비슷한 관객의 단절은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엘리엇의 <황무지>, 피카소의 <거트루드 스타인의 초상>과 <아비뇽의 처녀들> 및 초기 입체주의 회화와 같은 작품이 출현했을 때도 있었다.
 
p372
스트라빈스키는 아무리 작은 이익이라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 예술작품과 인간 자체를 엄연히 구분해야 하는 한가지 사례

p387
오전에는 피아노로 바흐의 푸가를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후 너댓시간 동안 작곡에 몰두하고, 오후에는 (…) 
> 루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위대한 인물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만의 루틴이 있다. 칸트나 항상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나가는 일화는 유명하다. 메이져 리크에서 지구최고의 투수로 불리는 LA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 또한 지독하리만큼 규칙적인 루틴에 집착한다.
 
p388
나는 영감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일을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다. (프로이트 역시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다. “영감이 내게 오지 않으면, 나는 그것을 맞으러 마중나간다”)
 > 글이 잘 안써져도 무엇이든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p389
피카소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스트라빈스키는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지적인 인물이었다 
> 각자 영감을 맞는 방법이 다르다. 닥치고 글을 쓰고, 깊이 몰입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항상 애쓰다 보면 나도 내 나름대로 영감을 맞이하는 루틴을 몇 개는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착화된 패턴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그 가능성을 무엇이든지간에 열어놓도록 하자.
 
p395
일반 청중은 더 이상 내 음악에 열광하지 않는다. (…) 청중의 그런 태도가 내 길을 막지는 못한다


7 T.S. 앨리엇
 
p407
젊은이들의 시가 대개 그렇듯 감정은 강렬했으나 명확한 표현에 담기지 못했고, 자기만 아는 언어로 쓰여졌기에 독자들로서는 뜻을 알기가 어려웠다
 > 이런 설익은 풋사과만의 매력도 있는 법이다. 

p412
산스크리트를 공부해서 힌두교와 불교의 경전을 읽었고 계속해서 시를 썼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의 용어로 말하면, 엘리엇은 다수의 정체성과 상이한 목소리를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담금질의 시간. 나 역시도 그 수준은 하찮을지언정 담금질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 중이다.

p416
이들은 영어에는 당연히 능통했지만, 본래는 외국인인지라 빅토리아 시대의 관습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감지하기 어려운 동향을 인식할 수 있었다
 
p426
오래전부터 앨리엇은 의혹과 폐허로 가득한 세상에서 모험과 탐색을 시작한다는 구상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지만, 다양한 문화에서 취한 신비적인 탐색 주제를 풍부하게 서술한 웨스턴의 책이 아직은 이런 주제와는 다른 구상을 품고 있던 엘리엇에게 매력적이고 풍요로운 수단을 제공한 셈이었다
 
p428
파운드는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산파였고, 앨리엇의 말을 빌면 더 훌륭한 장인이었다
 
p429
<황무지>의 작시 과정은 창조적인 걸작품의 탄생에는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가 된다.
 
p437
소설가 마샤 데이븐포트는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시인은 모두 요절했다. 소설은 중년의 예술이고, 에세이는 노년의 예술이다.”
 > 젊음의 극단에서 뽑아낸 진액은 더없이 향기롭고 매혹적이다. 위대한 시인들의 젊은 날의 시는 언어가 도달할 수 없는 청춘의 열기로 뒤덮혀 있다. 하지만 노년의 원숙함과 지혜가 빛나는 시 또한 위대하다. 비록 그것이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 하더라도 말이다. 

p443
“완벽한 예술가일수록, 번민하는 자아와 창조하는 자아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동시대 모더니스트인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 그레이엄의 견해에 공명하면서, 앨리엇은 미숙한 시인은 선배의 작품을 그저 모방만 할 뿐이지만 성숙한 시인은 그 핵심을 훔쳐내어 더욱 개성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빚어낸다고 지적했다.
 
p444
시인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정서를 명확히 표현하는 일련의 객관 대상이나 상황, 사건인데, 해당 정서를 환기하려면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부적인 상을 제시해야 한다
 
p455
어느 누구도 앨리엇처럼 단호하게 경계인으로만 살지 않았다
 
p458
피카소에게는 조르쥬 브라크가 있었고, 스트라빈스키에겐 디에길레프 발레단이, 그리고 앨리엇에게는 에즈라 파운드와 비비언 앨리엇이 있었다.
 
8 마사 그레이엄 
p468
이사도라의 성공요인은 제자나 양녀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주로 그녀의 카리스마 넘치는 태도와 몸의 본능적인 움직임에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이사도라는 통상적으로 새로운 무용전통의 창시자가기보다는 고독한 선구자로 여겨진다
 
p478
다른 많은 뛰어난 무용가들도 반복해서 감상할 수 있는 영상 화면을 경멸했다. 그들은 단 한 번의 공연이 주는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어했다
 
p483
좀 인상적인 예를 들자면, 한 시즌에 마사 그레이엄 같은 무용가가 창조하는 새로운 작품의 수는 옆에서 지켜보는 구경꾼이 보기에 아연실색할 정도이다.
 
p488
그레이엄이 “당신이 나를 망치고 있어요.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단 말예요”라고 소리치면, 호스트는 조용히 대꾸했다 “젊은 예술가한테는 담쟁이처럼 타고 넘어갈 벽이 필요한 법이오. 나를 그 벽으로 생각하시오.”

p498
던컨이나 데니스에게는 팔을 들어올리는 것은 곡물을 재배하는 것을 뜻하고 손을 흔드는 것은 비가 내리는 것을 암시했다. 팔은 반드시 곡물이 되어야 하는가? 손은 반드시 비가 되어야 하는가? 손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손이 다른 어떤 것의 빈약한 모방에 불과한 게 아니라 손 동작 자체만으로 얼마나 광대한 특성을 의미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 우리의 극적인 힘은 에너지와 활력에서 나온다
 
p510
앨리엇이나 피카소와 같은 다른 혁신적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위기 체험은 그레이엄 예술을 손상시키기는커녕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었다
 
p521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차이점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 있지 않다. 비밀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감정을 객관화하고 명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W.H. 오든 역시 야심만만한 젊은 시인에게 비슷한 충고를 한 바 있다. “시는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언어로 만드는 것이다.”
 
p522
그녀는 안무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억에 의존합니다. 내가 인생을 이해한 방식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한 방식에서 많은 걸 얻지요. 우리가 읽고 마음 깊이 흡수한 것이 보석처럼 우리의 존재를 이루는 겁니다”
 
작곡가 에드가 바레즈가 그녀 면전에서 했던 말을 반복해서 말하길 좋아했다. “모든 사람이 재능을 타고 나지만, 대부분은 겨우 몇 분 동안만 그 재능을 간직한다.”
 
p526
한가지 대죄가 있다면 그것은 범용이다. 그게 내 믿음이다
 
p531
“마사, 당신은 신이 아니에요.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인간임을 인정해야 해요.”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살고 있던 사람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다. 
> 마사 그레이엄이 가지고 있던 예술혼은 신을 향한 휴브리스였던 것이다.
 
9 마하트마 간디 
p542
역사가 윌리엄 쉬러의 말을 빌면, “이는 역사상 개인 소유의 무역 회사가 인구가 밀집한 광대한 아대륙을 철권으로 통치하고 사익을 위해 착취한 유일한 사례였다.”
 
p546
종교와 사회 및 정치 지도자가 되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 검열이 무척 심한 편이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초자아가 강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잊어버리거나 사소하게 여기는 문제가 이들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로 여겨진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마틴 루터 킹, 장 자크 루소, 에이브러엄 링컨 같은 이런 별종의 인간들은 어린 시절에 저지른 사소한 잘못까지도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반추했으며, 심지어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잘못을 보상하려고 했다.
 > 숨 막힌다. 평범한 사람이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 정신병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p550
여기서 우리는 간디 성격의 중요한 일면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기회가 문을 두드리면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나야 하고 자신과 가족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해도 그 기회를 붙잡는다는 점이다.

p 556
힌두교 교리에서는 가장이 어느 시점이 되면 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대신 종교적 고행자로서 은둔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소위 바나프라스타가 그것이다.
 
p560
1914년에 간디가 마지막으로 고향 인도로 돌아간 후에 스무츠는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그 성자가 우리 땅을 떠났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 ㅋㅋㅋ 스무츠의 괴로움을 짐작할 만 하다.
 
p562
나는 영국법을 어겨야 했다.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보다 더 높은 법, 내 양심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영국에 대한 첫 번째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다 
> 그리스 신화에서 안티고네가 국가의 법을 어기고 내면의 법에 따라 버려진 오빠의 사체를 찾아 장례를 치른 것과 같다. 
 
p565
그는 신념의 세기를 강조하기 위해 자기의 존재, 자기의 생명을 걸었던 것이다
 
p576
종교는 정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종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그러나 아무런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 이런 사상을 악용하고 있는 무리들이 있어서 큰 문제다.

p588
간디의 성격에서 가장 문제가 된 측면은 정치 투쟁을 함께 하는 측근들과의 관계와 가족과의 관계가 날카롭게 대조된다는 점이다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은 나랏일을 하는 사람은 가정일을 돌볼 겨를이 없다는 이유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p593
간디는 완전히 부도덕하거나 아예 도덕관념이 없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유럽의 유대인들에게 학살의 현장으로 조용히 걸어가라고 독려했을 정도였다. 이런 행동이 학살자의 공감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의 친애하는 친구에게”라는 인사말을 적은 편지를 직접 히틀러에게 보내서 그의 전술을 바꾸고 우대인을 용서하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히틀러가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간디와 히틀러 같은 양 극단의 돌 I 들이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더라면 인류 역사상 전쟁이라는 것은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p609
아인슈타인이 추상적인 사고 실험을 통해 자연 질서를 통잘했다고 한다면, 간디는 적절한 변수를 통해 인간을 통찰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p610
나의 전문분야는 행동이다 – 마하트마 간디
 
p614
이들 창조자 가운데 오직 간디만이 어떤 집단이나 분야에 속한 성원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성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말을 걸려고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이력과 재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뜻이 통하는 그런 이야기와 사상과 존재 방식을 창조하고자 했던 인물이였다
 
3부 창조성의 조건
 
10 다양한 분야의 창조성
p624
자신이 도약의 문턱에 왔음을 감지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윌리엄 버틀러 에이츠의 말을 빌면, 그는 인생의 완성보다 작품의 완성을 앞세운다
 
p637
정당한 근거 없이 숫자의 마술을 부릴 생각이 없었음에도 본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창조성의 10년 규칙을 발견했다.
 
p646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는 과학 이외의 분야에도 확장해서 비유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다른 분야에도 지배적인 패러다임이 존재하는 시기가 있었음을 분명히 나타낼 수 있다. 18세기 후반 서양 고전음악은 하나의 작곡 패러다임을 수용했으며, 오늘날의 영국 법정도 분쟁을 다루는 몇 가지 패러다임을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 있다
 
p654
창조적인 인물의 특징적인 모습은 창조성의 삼각형에서 어떤 부조화, 혹은 부드러운 연결의 결여를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안다는 점이다.
 
p662
창조적인 인물들이 분명치 못하고 어눌하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두뇌가 정상이며 마음 맞는 이들은 충분히 자기 말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시험하려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에필로그
p677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 – “현대성이란 파편화된 삶이며 시간의 급속한 변화이고 조각난 경험이다.”
 
685
그러나 어린 시절, 거의 유아기의 감각과 시점을 보유할 수 있는 자만이 창조적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들레르가 말한대로 천재란 유년기를 다시 찾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p687
내가 보기에 소위 포스트모던한 시대의 결정적인 특징은 의도적인 장르 혼융이다. 역사적 선례와 관습에 대한 과감한 무시이며, 모든 진지함에 대한 도전이고, 스타일과 외양 및 정체성의 변화무쌍이며, 혼돈스러운 표면 이면에서 어떤 의미나 구조를 찾는 노력의 포기이고, 창조와 해석의 무한한 자유이다.
  

내가 저자라면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은 창조성과 그를 뒷받침하는 기질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인물 평전이라 할 수 있다. 연구논문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어떤 확실한 한가지 결론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1부 창조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에서는 어떤 식으로 전체 연구의 틀에 대해 설명하고 어떤 접근방법을 취할 것인지 설명한다. 전문적인 분야이므로 그 연구의 방향이나 위인들을 어떤 관점과 틀에 맞춰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거의 없을 듯 하다.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진 점이 매우 훌륭하다. 

<2부 현대의 창조적 거장들>이 이 책의 본 내용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T.S.엘리엇, 마사 그레이엄, 마하트마 간디를 1부에서 소개한 틀에 맞추어 분석하고 위인들의 일화를 통해 그 창조성의 단면을 들여다 본다. 각 장 사이사이에 <간주곡>이라는 꼭지는 저자가 독자를 위한 되새김질을 하는데 사용된다. 

<3부 창조성의 조건>은 단 한개의 장으로 이루어지며, 이 책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결론을 제시하다기보다는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는 수준이다.

책은 가드너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저자 자신이 읽고 싶어하는 스타일의 책으로 쓰여졌다. 전문용어는 거의 쓰지 않았으며, 꼭 필요한 시각 자료들만이 포함되었다. 간단명료했고, 복잡한 주제의 경우에는 중간중간 서술내용을 요약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으며, 앞에서 언급한 <간주곡> 파트는 독자를 위해 신중히 배치되었다. 하여 책의 구성에 관해서도 내가 왈가불가 할 부분이 없는 듯 하다.

위인들의 생을 다루거나 일화를 기반으로 하는 책들은 우선 위인들끼리의 공통점을 뽑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책을 쓰는 것보다는 자료 수집 및 기획에 있어서 더 큰 통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위인들을 다루는 책을 쓰게 된다면, 업적이나 전문분야를 가지고 단순한 줄 세우기식 나열을 하기보다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모습들을 다루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간디의 가정, 소크라테스의 마누라, 피카소의 연인들과 같은 식이다. 역사서로 친다면 정사인 삼국사기보다는 야사와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삼국유사와 같은 책이 될텐데, 특정한 분야의 학자가 아닌 이상 자료수집의 한계로 책을 쓴다는 것은 공상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지금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이야기하자. 가능성이 현실이 되려면, 일단은 위인들의 삶을 많이 읽어야 하는 수밖에 없다.그들은 살아있는 과거다. 내가 죽은 다음에도 살아남을 과거들이다. 그들의 엑기스를 추출해서, 이름표를 붙인 공병에 하나하나 넣어두는 거다. 이미 엑기스만 추출된 상태로 시중에서 파는 것들도 있을텐데, 그것들은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 그거든 저거든 다 모아서 집어넣은 다음 푹 삭히면서 기다리다 보면, 그것들은 새로운 맛으로 우러날 것이다. 술로 변하는 것도 있을테고, 젓갈로 변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내 안에서 발효가 된 것이니, 이제 그것들은 내 것이다. 한숟가락씩 푹푹 떠서 내 글에다 뿌릴수도 있고, 여러 종류의 술만 한데 묶어서 소백산맥(소주-백세주-산사춘-맥주)를 능가하는 폭탄주를 제조하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나의 열정과 기질도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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