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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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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2일 16시 39분 등록

< 저자에 대하여 >

 

윌 듀랜트(WILLIAM J. DURANT) -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

문명이야기 제10권인 [루소와 혁명]으로 퓰리처 상 수상 (1968)

 

< 생애 >

 

*1885115, 미국 매사추세츠 노스 애덤스 출신

*가톨릭 부설 학교,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

*노동 계급을 교육 목적의 진보적 학교인 페레 모던 스쿨(FERRER MODERN SCHOOL) 교사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박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1917)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철학교수로 재직

*성인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 설립 (철학, 역사, 문학을 가르침)

*1913년부터 이미 문화의 확산을 생애를 통해 추구해야 할 평생의 가치로 정함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영향 받음

*고대와 현대, 서양과 동양의 모든 문명을 아우르는 역사책 저술을 위한 철저한 준비를 위해 수차례의 유럽 방문 및 세계 각지를 여행 -이집트와 근동, 인도, 중국, 일본 등지를 직접 탐방하고 일본과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 폴란드 등지를 방문. 터키와 이라크, 이란, 이집트, 유럽 등지에서 체류

*50여 년의 세월을 인류 문명사 탐구에 바침

 

< 저서 >

첫 책 철학과 사회 문제

11권의 대작 <문명 이야기 THE STORY OF CIVILIZATION> (1926)

<철학 이야기 THE STORY OF PHILOSOPHY> - 철학을 대중화시키는데 기여한 작품

역사의 교훈』 『역사 속의 영웅들, 철학으로의 초대, 천재로의 모험, 철학의 즐거움

철학의 즐거움』 『역사속의 천재탐구』 등 다수

 

< 평가 >

뉴욕타임스: 그는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로 우리가 물려받은 문화의 찬란하고 거대한

 파노라마를 보여 준다.

 

198111796세로

 

< 옮긴 이-안인희 > 실력있는 번역가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밤베르크 대학에서 수학

1995년 실러의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편지>로 제2회 한독번역문학상을 수상

2003<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로 올해의 논픽션 상 수상

옮긴 책 -<발렌슈타인 3부작> <빌헬름 텔>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 <폭력에 대항한 양심> <발자크 평전>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요하임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 1, 2> 하인리히 뵐플린의 <르네상스의 미술> 윌 듀런트의 <역사 속의 영웅들> 로로로 시리즈 중 <갈릴레이> <아인슈타인> <바흐>

 

들어가며 - 역사는 사례를 통해 가르치는 철학이다

 

8. 완성하기까지 50년이 걸린 이 대규모 기획

9. 큰 책들을 즐거움보다는 위압적인 노동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그는 아흔둘이라는 나이에 이런 작업을 완성할 능력이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다.

죽음의 이런 예고가 나를 슬프게 하지는 않는다. 내가 필요 이상 오래 살았음을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 같다.

10 역사상의 위대한 남녀의 업적과 삶에 대해 보통 사람이 듀런트 부부에게서 직접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일이 될 것이다.

11 철학으로서의 역사라는 자신의 사유를 전파하는 일에서 마지막 시도가 될 참이었다.

역사란 내게는 철학의 한 부분이다. 철학은 광범위한 전망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나는 인간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12. 듀런트는 이 책을 위해 ~~완성하려고 했지만 운명의 계획은 달랐다.

13 그는 명성보다는 명료성을 위해 싸운 철학자였다. 눈부시고 힘찬 산문으로 글을 썼으며 또한 인류가 충분한 영감을 받기만 하면 신들과 동일한 위대성의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여겼던 사람이다. 그는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과거를 공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곳이야말로 인류의 본성이 진정 어떤 것인지 찾아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5 역사속의 영웅들은 이 정신의 나라가 제공하는 축복을 받으라는 그의 마지막 유언이다.

언어의 매력을 통해 이 하늘나라의 국경선이 열리고 우리 영혼에게 잠시 방문하라 손짓한다.

Chapter 1 <문명이란 무엇인가>

 

18 문명세계에서도 남자들의 주요기능은 밖으로 나가 무언가를 벌어오는 일이다. 남자는 대단히 빛나는 존재일지는 몰라도 근본적으로 따지면 자궁이며 인간 종족의 주류인 여자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존재다.

-첫 문장부터 눈길을 끈다. 멋진 표현. 그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그 당시는 남자만 여자에게 공물을 바쳤지만 요즘은 여자도 남자에게 공물을 바치기도 한다.

19 남자는 여자가 마지막으로 길들인 동물로 마지못해 부분적으로만 문명화되었다.

문명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다. 이와 더불어 자연과 문명 사이의 깊고 끈질긴 갈등도 함께 시작되었다. 개인적 본능과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이다.

국가는 우리가 가졌던 욕심과 호전성의 본능을 원시인처럼 드러낸다.

21 사냥꾼 단계에서 얻은 본능은 부분적으로는 법과 경찰에 의해,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도덕이라 불리는 불확실한 일반적 합의에 의해 통제되었다.

가족, 교회, 학교, , 대중의 의견(여론) 의 다섯 가지 제도가 복잡한 도덕규범의 형성을 도왔다. 부모와 교사들의 권위는 20세기가 되기 이전까지는 종교와의 연결을 통해 강화되었다.

22 문명이란 문화적 창조를 격려하는 사회 질서다.

교육체제는 계급 투쟁과 종족 간의 전쟁을 통해 타협할 수 없는 요구들을 내세운 무장한 소수에 의해 약해졌다.

 -왠지 우리나라 모습이 떠오른다.

23 법은 지나친 증식과 그 편향성을 통해 또한 입법자들을 매수하는 일이 가능해짐으로써 그 권위를 잃었다. 무능한 사람들의 생산성이 밑바닥에서 종족을 번식시키고, 지적인 사람들의 불임은 정상급에 있는 종족을 시들게 했다. 이교적인 방종이야말로 이런 것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희망을 보장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방종은 보통 반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교적인 방종의 시대에 뒤이어 청교도적인 억제와 도덕적 규율의 시대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24 기독교는 질서와 예의의 원천이자 버팀목이 되었다. 역사에는 방종과 그 반대 사이의 이런 진자 운동보다 더 즐거운 전망들이 있다. 나는 볼테르와 기번의 비판적 결론 즉 역사는 인류의 범죄와 어리석음의 기록 이라는 결론에 동의하지 않겠다.

25 이 소란스럽고 더러운 강 위에, 부조리함과 고통 한가운데에, 진짜 신의 도시가 감추어져 있다. 우리에게 도전해오는 악을 향해 눈을 감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려 노력해야 한다. -과거의 창조적 정신이 기억과 전통의 기적에 의해 아직도 살아서 작용하며 모습을 다듬고 형태를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플라톤, 소크라테스, 세익스피어, 키츠, 셸리, 니체, 그리스도,

 

Chapter 2 <공자와 추방당한 신선>

 

28 수많은 세대에 걸쳐 끈질기게 이루어진 발전을 몇몇 뛰어난 개인의 업적으로 돌렸다.

29 집을 떠나 스스로도 이해할 길 없는 죽음으로 제물이 된 병사들의 탄식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호소력을 지닌다.

31 노자에 따르면 올바른 길이란 지적 활동을 하는 것과 거짓을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옛날 관습, 사고와 조화를 이루어 고요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자연이란 자연의 활동성이며 전통적 사건의 고요한 흐름이고 계절과 하늘의 웅대한 행진이며 질서다. 그것은 모든 시내와 바위와 별에 새겨져서 드러나는 길이다. 그것은 공평하고 사적이지 않으며 합리적인 질서이다. 우리가 지혜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행동의 법칙은 바로 이런 질서를 따라야 한다. 탄생 삶 죽음의 리듬을 지닌 인간의 삶은 우주 리듬의 일부다.

 

32 이들은 존재 속으로 들어오지만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기능을 모두 완수하지만 아무런 요구가 없다

모든 사물은 똑같이 자기 맡은 바 일을 다 하고 물러난다.

원래 온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휴식 혹은 사명의 완수를 뜻한다.

이런 귀환은 영원한 법칙이다

이 법칙을 아는 것이 곧 지혜다.

 

32 국가가 무질서해졌을 때 할 일은 개혁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원래의 정상적인 의무로 되돌리는 일이다. 저항이 일어났을 때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물러나서 굴복하고 참음으로써 마침내 이기게 된다. 수동성이 능동성보다 훨씬 더 자주 승리를 거둔다.

33 지혜로운 사람은 심지어 도와 지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 지혜란 말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모범과 경험으로만 전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은둔의 철학을 만났을 때 야망에 넘치던 젊은 공자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중국의 역사가들은 공자는 이 말속에 지혜가 들어있음을 깨닫고 그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고 전한다.

공자는 새로운 길을 찾아 자신이 맡은 몫을 다하고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있는 철학자가 된다

34 공자 그는 다른 사상가들을 공격하지 않았고, 논박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명성과 관직을 열렬히 소망했으나 번번이

그의 눈에 부도덕하거나 불의를 행하는 것으로 보이는 통치자들에 의해 임명을 받지 못했다.

36 이것은 완전성에 대한 권고이며 인간이 바지 입은 원숭이라는 사실을 잊은 권고이기도 하다-이게 왜 사실이어야 하나

이것은 철학에서 황금률의 하나다. 곧 개혁은 집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는 열렬히 지식을 구하느라 먹는 일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기쁨에 취하여 근심을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나이 먹는 것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43 오 불멸의 시 초나라 왕궁과 탑들은 언덕에서 무너져 내려도 시인 굴원의 노래들은 태양과 달처럼 영원히 빛난다.

 

Chapter 3 <붓다에서 인디라 간디까지>

 

48 붓다 그의 이야기는 전설로 가득 차 있어서 우리는 그가 진짜로 존재했는지도 확신할 수가 업다.

49 탄생의 본성의 비참함을 보았기에 태어나지 않음을 찾아내야 한다면

51 제자들은 그를 붓다라고 불렀다.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를 통해 신이 말씀하신다고 주장한 적이 없었다.

52 죄는 이기심 즉 개인적인 이익이나 쾌락을 좆는 일이다. 해탈이란 이기심을 극복한 고요한 상태이다.

53 삶의 강물위에 이는 순간적인 잔물결

이것이 (날씨가 더운 것) 어쩌면 많은 힌두교도들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이유가 아닐까? -ㅎㅎㅎ

54 스리랑카 중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 등지에서는 신학적으로 재구성된 불교가 번성하고 있으며 신을 생각지 않았던 붓다는 신이 되고 말았다

56 간디는 윌리엄 포리스 표트르 크로폿킨, 존 러스킨, 레프톨스토이의 영향과 점진적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가장 친절한 영혼과 가장 평화로운 정착지도 가혹하고 강한 사람의 처분에 맡겨지게 마련이다. 다윈이 거듭 그리스도에게 도전장을 내밀 것이기에

57 사람들은 왕성한 번식력으로 번영을 소멸시켰다. 네루는 신사적인 태도와 타협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58 고대 공화정 시대의 로마는 위기가 닥쳐오면 1년동안 독재관을 임명하는 것이 법률로 허용되어 있었다 그 기간이 만료되고 나서도

독재관이 계속 자리를 고집할 경우 누구나 그를 제거할 수 있었다. 합법적이든 아니든 그랬다.

 

Chapter 4 <피라미드에서 이크나톤까지>

 

60 임호텝은 이집트 역사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위대한 인물로 의사 겸건축가로 명성을 떨침

파라오들은 부자가 되자 궁전과 무덤을 위해 부를 쏟아부었다.

62 그리스의 여행가이자 역사가인 헤로도투스

63 피라미드에는 야만적으로 원시적인 요소가 있다. 그토록 난폭할 정도의 엄청난 크기를 만들어낸 일과 영원성을 향한 공허한 갈망이 그것이다.

기자의 일몰이 피라미드보다 더 위대하다

64 사제들은 이들에게 협조했다. 파라오를 신이라 선언하고 백성들에게는 왕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그 대가로 그들은 왕의 수입에서 넉넉한 몫을 챙겼다.

65 죽음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관을 만들었다.

66 섬록암 카프레의 흉상

67 이집트에서는 모든 것 위에 그리고 모든 것 아래에 종교가 있었다. 문학 통치 미술 그리고 도덕성을 제외한 모든 것에서 종교의 영향을 볼 수있다.

68 식물과 동물도 신으로 숭배되었다. 야자나무, 염소와 황소, ,

아마도 이런 신의 혈통 때문에 파라오는 그렇게 오랫동안 물리적 폭력을 덜 사용하고도 계속 통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잘 생긴 것 보다 깨끗함을 더 낫게 여겼다.

69 지상의 부나 영원한 행복을 위한 여러 도구를 신도들에게 명령하거나 팔았다.

-별별 부적을 다 팔았다. 시인은 신은 오직 한 분 뿐이라고 선언했다.-태양신

70 아내 ~를 지치지 않고 사랑했다. 시인의 대담성으로 그는 모든 타협을 내던지고

75 이사야가 나오기 640년 전에 쓰인 탁월한 유일신 사상의 표현이다.

77 원래 높이가 ~이던 것이 지금은 길이가 ~로 되었다. 세월이 조각상의 아랫부분을 침식해 옆으로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의미있고도 재미있는 표현이다.

셸리: 영국의 시인. 낭만주의의 가장 순수한 시인. 바이런키츠와 더불어 3대 시인

-이집트 시대의 다수의 광풍 -시인왕 아덴호메프4세의 안타까운 죽음

 

Chapter 5 <구약 성서의 철학과 시>

 

80 모세와 십계명에서도 그렇듯이 여기서도 종교적 신념이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단결, 도덕성, 용기 등을 강화시켜주는 것을 볼 수

 있다.

83 여기서 역사상 가장 일찍 등장하는 극히 다채로운 면모를 지닌 영웅을 볼 수 있다

-승리의 전사, 시편의 시인, 하프연주자,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밧세바,

-내면에 많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한 문명의 모든 약속을 보여주는 남자이다.

84 종교가 정의에 대한 요구가 아니고 불에 태운 제물과 경견한 노래로 변화된 것을 보고

85 그는 거기서 삶의 부자연스러운 복잡성에 당황했다. 부의 불공평, 경쟁의 괴로움, 가차 없는 착취 등에 놀랐던 것이다.

학자들이 첫 번째 이사야라 부르는 더 위대한 예언자는 이러한 사회주의 복음을 세계 문학 사상 가장 고귀한 산문으로 발전시켰다

86 이사야는 괴로워하지만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유대인들의 메시아사상의 위안을 보여준다.

88 학자들은 그를 두 번째 이사야로 부른다.

89 이 예언은 기원전 539년에 페르시아 왕 고레스2세가 바빌론을 정복한 뒤 유대인을 해방시키고 그들을 예루살렘까지 호위하면서 실현되었다. 이 중 레위기에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대담하고 가장 간결하게 기독교 윤리가 표현되어 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

90 칼라일은 욥기를 가리켜 역사상 기록된 가장 위대한 문헌의 하나다. 성서나 성서 바깥에 이와 동일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글이 쓰인 적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92 우리가 누구이기에 우주를 이해하겠는가? 철학은 전체의 빛 속에서 부분을 탐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큰 전체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이 그 최초의 교훈이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는 아마도 건강, 아름다움, 진실, 지혜, 도덕성, 행복에 대한 가장 휼륭한 정의가 될 것이다.

전도서- 이 작은 책은 성서에서 가장 쓰디쓴 메시지를 담고 있다.-무자비한 학자들은 그가 그리스정신에 물든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유대인일 것이라 여기고 있다.

93 역사를 공부했으나 이 또한 헛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역사는 동일한 것을 큰 규모로 되풀이하고 있으며 성서의 족보처럼 탄생과 죽음의 기록일 뿐이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두 가지 답변을 해준다. 하느님과 우주와 화해하라 또한 사랑으로 너의 삶을 밝게 만들어라 한 가지 답변은 <시편>에 들어있고 다른 한편은 <아가>에 들어있다

94 우리 운명이 하느님의 감독 아래 들어 있다는 확신을 지녔던 고대 유대인들

95 나는 시편보다 언어나 상상력이 더 훌륭한 것을 알지 못한다.

96 이것이 어떻게 거룩한 성서 안에 들어갔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노릇이다. 정통신앙은 대담하게도 이것을 교회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한다.

나의 유색인종 형제와 자매들은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에 대해 성서의 보증을 받은 셈

97 피로에 지친 늙은 사내라도 그 열기를 느낄 정도

육체적 결합이나 동물적 생존보다 더 큰 중요성을 갈구하는 영혼의 갈망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98 모파상은 진실한 사랑에서는 영혼이 육체를 감싸 안는다고 말할 때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한 사랑은 에고를 가장 많이 넓혀주고. 살아있는 평화로운 모든 것들에 대해 마음과 팔을 활짝 여는 일이다.

영혼이 행복하면 그 사랑도 커진다.

 

Chapter 6 <페리클레스에 이르는 길 >

 

페리클레스 (Perikles)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가군인(B.C.495?~B.C.429). 민주 정치를 실시하고 델로스 동맹 을 이끌어 그리스를 번영시켰음, 파르테논의 신전 건립 등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이룩함

오레스테스: 미케네의 왕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케네, 아르고스, 스파르타의 왕. 아가멤논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의 아들. 저주받은 탄탈로스 가문의 후손. 아버지 아가멤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어머니 클 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함

이피케네이아: 미케네 왕 아가멤논의 딸

그리스 군의 지휘자 아가멤논은 아르테미스 여신의 분노 때문에 그리스 함대가 트로이로 출범하지 못하자 신탁대로 딸을 희생 제물로

바친다. 그러나 이피게네이아를 불쌍히 여긴 아르테미스 여신은 마지막 순간 사슴으로 제물을 바꾼다.

101 헤라클레이토스-플라톤보다 300년 전에 수수께끼 같은 경구로 발전과 변화의 철학 설명

헤겔, 다윈. 스펜서, 니체 등에게 영감을 준 사상

대립이란 동일한 물건의 두 가지 측면이다. 싸움은 정의다

경쟁은 자연의 최고 법정이며 거기서 나온 판결에 항의할 길이 없다

102 사포 -그녀는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과 섬세함과 부드러움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최초의 여성교양학교설립

103 그녀가 정열, , 우미 등에 대한 선율로 노래한 가수로서 알카이오스를 능가하는 시인

104 피타고라스는 소크라테스 이전에 그리스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였다.

-그는 호기심에 넘쳐 갈리아 이집트 중동과 인도를 여행, 인과응보로 인한 재탄생 이론

-금욕, 자기 수양, 학문과 음악으로 정신을 깨끗하게 하는 단체 만듬.

-별들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보고 세계에 코스모스라는 이름을 부여한 인물

-코스모스 : 질서란 뜻. 피타고라스에게 핵심단어

우리 소망이 질서를 이룬 것,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질서를 이룬 것이 미덕

국가안의 질서가 유지되면 올바른 정부

-그리이스인에게 철학자란 피타고라스를 의미

107 아리스토텔레스는 158개 그리스 도시 국가들의 역사를 서술했지만 그보다 더 많았다.

식민도시라는 촉수가 없었다면 우리가 물려받은 세속의 유산 중에서 가장 소중한 유산인 그리스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08 스파르타는 스스로를 야만인들의 침략에 대항한 수문장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시민과 노예들은 군사 훈련에만 열중해 인간성과

삶의 우아함을 위한 공간이 없었다. 아테네인들은 사색과 아름다움에 헌신했다.

111 솔론의 평화로운 혁명은 역사상 용기를 주는 하나의 기적이었다.

112 재산과 상관없이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 의회인 에클레시아를 만들어냈다.

113 지속적인 게으름은 범죄에 해당하고 방탕한 삶을 사는 사람은 시민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테네 사람들이 부지런히 놀려대는 혀를 묶어 둘 수는 없었다. 소문과 중상모략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것처럼 보였다.

114 그는 황금률을 좇아 나라를 구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를 일곱 현자의 한사람에 포함시킴 나는 항상 배우는 가운데 나이가 들었다

 

Chapter 7 <아테네의 황금시대>

 

121 아테네 법은 동성애를 금지했지만 여론은 그것에 관대했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는 동성애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향연의 토론자들은 동성애를 남녀의 사랑보다 더 높은 것으로 만들고 있다.

122 그리스 사회는 남성만의 단성 사회였다. 그들은 정직함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했겠지만 행동은 언제나 달랐다. 아테네사람들은 너무 똑똑해서 선량해지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악덕을 싫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순성을 멸시했다. 어떤 민족도 이보다 더 큰 상상력이나 혹은 더 생생한 혀를 가진 적이 없었다.

125 그리스 예술은 빌려온 경외심으로 명상을 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짜 관심과 모험을 위한 것이었다.

129 멀리까지 여행한 중산층이 많아진 것과 떠돌이 학자들을 통해 사교육이 퍼진 결과 소수 지식인들 사이에서 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131 보통 한 시대의 철학은 다음 시대의 문학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에서 문학은 철학의 뒤를 쫓아가지 않았다. 시인들 자신이 철학자들이었고 자신들의 사색을 행했다.

투기디데스는 철학자 노릇을 하기 위해 역사적 인물을 위한 연설을 만들어냈다. 사변적 사색의 깊이에 예술적 형식의 탁월함이 합쳐져

132 잔인한 신에 대한 인간의 반항이라는 주제는 2200년을 살아남았다가

신은 인간의 범죄를 함께 행하면서도 인간에게 벌을 주고 있다.

133 유혈이 낭자한 이 3부작은 단순한 살인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생각한 신과 인간에 대한 강력한 고발이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이후로 이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그리스 문학의 최고봉을 이룬다. 셰익스피어조차도 이것에 맞먹을 수는 없었다.

134 그는 당시 청중이 잘 아는 이야기를 한 것뿐이다. 그가 덧붙인 것은 연극의 섬세한 구조와 진지한 시류의 유려한 흐름이었다.

고전적인 것에 경탄하고 낭만적인 것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에우리피데스가 더 좋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이다. 이성은 감정에 밀리고 불의를 미친 듯이 미워하고 더 온전한 세상을 꿈꾼다. 그가 쓴 75개의 연극 중에 18개만 남아 있지만 거의 모두가 미신, 억압, 전쟁 등에 반대하는 그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그들이 섬기는 신들이 유치하게 변덕스럽고 자애롭기보다는 잔인

하다고 말해주었다.

137 그리스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를 죽였다. 그렇구나. 그리스는 그 이야기를 축복하겠지. . 인간은 헛것! 즐거울 땐 빛나고 두려움이 없어지면 바람에 흔들리는 백지처럼 세월의 변화에 따라 춤추는 존재

139 18세기와 19세기에 자유주의와 인도주의가 되살아나면서 에우리피데스는 거의 당대의 인물이 되었다. 연극의 정점에서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으로 넘어간다. 페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그리고 소크라테스를 우스운 존재로 만든다.

139 투기디데스는 이 전투에 참여해서 그것을 (전쟁) 하나하나 기록했다. 세계 문학의 고전에 속하는 기록이다.

140 대부분 교육받지 못한 500명가량의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 법정이 열렸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국가의 신들을 믿고 있

141 으며 태양도 달도 신이라고 믿는다고 대답했다.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든 나는 내 방식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여러 번 죽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가 유죄라고 생각한 사람이 60명 더 많았다.

 

Chapter 8 <플라톤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144 지식인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섰다. 그 중에는 플라톤처럼 부자도 섞여서 공산주의 사상을 드러냈다.

145 사치가 커지고 지식이 해방되면서 도덕적 해이도 나타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신을 믿고 위안을 주는 헛소리에 매달렸다.

이집트와 아시아에서 외국의 신들이 수입되었다.

146 철학은 시민의 성실한 마음을 찾아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지성을 함양해서 신의 계율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독하는 신성에

대신하게 했다. 그러나 성적 사회적 정치적 도덕성은 계속해서 추락했다. 페르시아는 아무 어려움 없이 그리스 정치가들을 매수해서

그리스 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촉진했다. 페르시아 군대는 온통 그리스 사람들로 차고 넘쳤다.

147 그는 (필리포스2) 체력과 의지력이 강하고 스포츠에 뛰어나고 잘생긴 사라믕로서 문명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강하고 훌륭한

짐승이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의 생각은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모든 전쟁터에 자신의 신체 일부를 남겼다. 외교에서는 상냥했지만 배신도 능했다. 가벼운 심정으로 약속을 깨뜨리면서도 언제나 또 다른 약속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통치를 위해서는 어떤 도덕도 인정하지 않았으며...매수 ,거짓말, 그를 만난 사람은 데모스테네스만 빼고 누구나 그를 좋아했으며 그 시대의 가장 유능하고 가장 흥미로운 사람으로 여겼다.

149 역사상 가장 유명한 웅변가의 정열적인 열변에 달구어진 아테네 사람들은 저항을 위해 일어났다.

데모스테네스는 몸이 약하고 발음이 완벽하지 않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입에 조약돌을 절반 쯤 채우고 시끄러운 바다를 향해 연설했다. 아니면 오르막길을 달려 올라가면서 웅변을 연습했다.

151 그는 아내를 제외한 모든 적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소클라테스는 에세이를 창안한 팸플릿 작가였다.

156 민주주의 정부에 의해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일은 싫어하는 것을 넘어 경멸하게 만들었다.

158 철학자들이 왕이 되기 전까지 혹은 이 세상의 왕들과 왕자들이 철학의 정신과 힘을 갖기 전까지는 .. 도시들과 인간 종족은 사악함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161 행동의 목적은 행복이지만 행복의 비결은 미덕에 있다. 그리고 최고의 미덕은 지성이다.

162 잠과 생식활동은 자기가 죽어야 할 존재임을 느끼게 해준다며 잠에 시간을 내주기를 싫어했다.

163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었으나 자신의 성정은 다스리지 못했다. 그리고 일상의 아첨에 밀려 판단이 흐려지곤 했다.

전쟁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정신의 평화를 거의 알지 못했다. 도덕적인 측면에서도 그는 일관성이나 성숙에 도달하지 못했다.

 

Chapter 9 <로마 공화국>

 

171 신들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상상되지 않았지만

172 모든 일, 삶의 모든 국면과 시기를 지배하는 조차연적인 힘을 지닌 영으로 생각되었다.

173 로마 사람들의 가장 깊은 경건함과 가장 진지한 숭배는 생명의 어머니이자 죽은 자들의 고향이며 솟아나는 씨앗 속에 감추어진 마법의 힘인 대지를 향했다.

174 일찍이 어떤 종교도 이토록 많은 신을 가진 경우는 없었다. 사람보다 신이 더 많다고 불평할 정도였다. 이 종교가 로마인의 도덕성에 도움을 주었을까? 어떤 점에서 보면 오히려 부도덕한 것으로 보인다.

181 그는 신체가 어려움을 견디고, 입맛은 곤궁을 견디고, 생각은 사실을, 혀는 침묵을 견디도록 자신을 훈련했다.

187 당신은 부드러운 사랑을 생명 있는 모든 것의 가슴에 불어넣어 제각기 후손을 퍼뜨리게 하십니다.

189 우리의 힘을 다 쓰고 나면 우리는 잔칫상에서

190 일어나는 손님처럼 우아하게 감사를 표하며 생명의 식탁을 떠나야 한다.

죽음 자체는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직 저승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죽음을 두렵게 만든다.

미덕이란 신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즐거움을 조심스럽게 피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에 의해 인도된 능력과 감각이 함께 조화롭게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역사는 국가와 문명이 일어나 번성하고 시들고 죽는 과정이다.

191 사물의 위엄 동양과 서양의 싸움, 신앙 대 유뮬론적 과학의 싸움

 

Chapter 10 <로마의 혁명>

 

193 이것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다.

198 그는 행동의 고결함과 소박한 생활로 모든 계층의 사랑을 받았다.

199 그는 폭력에 반대하며 은퇴해서 사적인 삶으로 돌아갔다.

200 그와 동료들의 시체가 강물에 던져졌을 대 그와 친분이 있던 도시의 폭도들은 아무런 항거도 하지 않았다. 그의 집을 약탈하느라

분주했을 뿐이다. 술라는 역사상 가장 서술하기 곤란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201 그는 자신을 땡전 한 푼 없는 가난뱅이 귀족으로 만든 삶에 복수했다. 전쟁과 혁명 사이에서 틈이 날 때면 후세를 속이기 위해 회고록을 집필했다. 그는 멋대로 살았지만 쾌락이 그의 의무를 방해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신은 믿지 않았으나 미신적 습관은 많았다.

그가 유일하게 신경 쓰는 것은 지혜와 용기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능가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자신의 잔인성을 2행짜리 경구시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감탄스럽다

202 로 우아하게 감싸고 로마를 자신의 웃음으로 가득 채우고

205 부가 늘어나고 집중되면서 상류층은 에피쿠로스식의 세속성에 빠져들었다. 예술은 종교적 주제에서 정치적 주제와 형식으로 넘어갔다. 문학은 유물론적 무신론을 설파했다. 아니면 아주 정교한 문학 작품과 경쾌한 음란성이 결합되었다.

206 공짜로 얻은 부 만큼 로마에 해를 끼쳤다. 고대세계는 이만큼 강력한, 또 이만큼 부패한 정부를 다시 알지 못한다.

207 일부일처제는 집행 유예를 선언했다.

208 사치하는 계층 아래서 대중의 빈곤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기원전 71년 스파르타쿠스에 의해 노예 반란으로 터져 나왔다.

210 우리는 카이사르가 처음에는 무자비한 선동가이며 거침없는 난봉꾼이다가 책임감에 의해 천천히 역사상 가장 신중한 청치가의

한 사람으로 변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의 결점을 보고 좋아하더라도 그가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가 여자들을 유혹하고 교도관들을 매수하고 책들을 썼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그와 대등하다고 여길 수는 없다.

213 그는 살아남아 <갈리아 전기>를 썼다.

최악의 것이 타락해서 최선의 것이 된 것이다. 카이사르가 자신도 모르게 갈리아를 고전 문명의 상속자이며 전달자로 만드는 동안 로마 공화국은 부패와 잔인성 속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214 이들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각자 조직폭력배를 두었는데 이들이 힘을 겨루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날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215 형태가 일그러진 채 정열에만 이끌리는 폭도의 무리들

민주주의는 플라톤이 표현한대로 붕괴되었다. 즉 자유는 방종이 되고, 혼란상태는 자유의 종말이 오기를 구걸했다. 민주주의를 타락하게 만든 남용, 불공평, 빈곤 등에서 교훈을 얻어 점진적인 지도 체제를 세우기를 희망했다.

216 루비콘강, 주사위는 던져졌다. 남자들이 수많은 길을 통해 결국은 동일한 종말에 이른다는 것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증거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218 그러나 이 위대한 정치가는 허영심을 이기지 못했다. 승리했을 때 머리에 썼던 월계관을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매일 썼다.

219 용서받은 것을 용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카이사르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죽음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을 대화의 주제로 제안하며 그 자신은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Chapter 11 <로마제국>

 

224 변화에 단계를 두고 예의를 다함으로써 변화를 쉽게 만드는 타고난 재능을 발휘했다.

226 아우구스티누스는 부를 복구하기가 도덕을 개혁하기 보다 더 쉽다는 것을 깨달았다.

227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제국을 얻기보다 이미 얻은 제국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 더욱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놀랍게 여겼다.

229 아이네이드는 논리적 구조가 부족하다. 그러나 논리란 본래 시와 조화를 이루는 경우가 드물다. 중세는 베르길리우스를 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천성적으로 기독교도가 된 영혼으로 여겼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 연옥, 천국을 순회하는 자기 여행의 안내자로 베르길리우스를 선택했다. 퍼셀은 디도를 음악으로 만들었다. 볼테르는 아이네이드를 고대가 남긴 가장 섬세한 문학적 기념비라고 불렀다. (베르길리우스, Publius Vergilius Maro

고대 로마의 최대 시인(7019 B.C.). 로마의 건국과 사명을 노래한 민족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s)'를 썼음. 그는 암곰이 아기 곰을 핥는 것처럼 거칠게 글을 내어 수차례에 걸쳐 다듬었다고 함)

230 자신의 기술을 자신한 그는 젊은 작가들을 위해 좋은 글을 위한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뒷날 시론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명료함과 직접성, 그리고 쓸모와 즐거움을 뒤섞을 것 등이 강조되어있다.

231 예술은 예술가와 수용자의 감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예술은 감정만이 아니다. 그것은 훈련된 형식으로 나타나는 감정이다.

평온함 속에 기억된 감정인 것이다.

호라티우스는 자신의 작품과 그것이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232 거의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 그림, 조각상 등이 바로 이 보물 상자에서 주제를 얻었다.

233 시인은 아내나 친구들에게 자주 시를 써서 보냈다. 이들은 뒷날 모여서 비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형식과 표현이 여전히 아름다운

그의 시구들은 전에는 보이지 않던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그는 겸손하게 용서를 구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고 기원 후 17년 망명지에서 죽었다. 아우구스투스는 겉치레가 없는 사람이어서 어떤 갈리아 사람이 그를 죽이러 왔지만 그가 황제일 리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234 마지막 몇 년 동안 이어진 불운은 그를 격분케하고 또 강인하게 만들었다. 그의 실패와 비극은 거의 가족 내부의 문제들이었다.

235 아우구스투스는 마침내 손녀도 아드리아해에 있는 섬으로 귀양 보냈다.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늙은 통치자는 죽음을 갈망했다.

 

Chapter 12 <네로와 아우렐리우스>

 

238 그는 세네카의 안내를 받아들였다. 이 철학자가 <온화함에 대하여> 라는 논문에서 거듭 강조하고 있는 자비심으로 통치하겠노라고 약속했다. 네로를 국사에서 멀리 떼어놓기 위해 그는 젊은이의 도덕성이 느슨해지는 것을 허용했다. 그 결과 젊은이는 값비싼 연회, 방탕한 젊은이들, 매춘부를 좋아하는 성향을 갖게 되었다.

241 네로는 죽으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나와 더불어 어떤 예술가가 죽는 것인가!

로마의 정복은 북에서 온 야만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쪽에서 온 개명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242 유대인의 가족생활은 그들에게 힘을 주는 하나의 기둥이고, 소수의 기독교 집단은 그 경건함과 단정함으로 로마인을 놀라게 했다. 오비디우스, 호라티우스, 마르티알리스의 무모한 쾌락주의, 네로의 오락과 범죄, 로마 황후들의 부정행위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은 2세기에 아우구스투스 이후 로마 역사에서 가장 금욕적이고 헌신적인 통치자들이 갑자기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244 그는 모든 분야에 재정의 방어자를 내세워 부정부패나 재정 결손을 막았다. 제국의 최고 법정 판관으로서는 공정하고 훌륭한 판결을 내린다는 명성을 얻었다. 부자에 맞서 가난한 사람의 편을, 강자에 맞서 약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247 (아우렐리우스)가 통치하는 동안 이집트와 다키아를 제위한 모든 속주들이 번창했다. 백성의 권리를 그토록 존중한 경우도 없었다.

249 그는 법보다는 모범으로 통치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에게 일절 사치를 허용하지 않았으며

모든 행정 업무를 스스로 떠맡았고, 누구든 자기에게 쉽게 접근하도록 해주었다. 머지않아 제국 전체가 그를 환영했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한다는 플라톤의 이념이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야만인들이 로마의 경계선으로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250 다뉴브 강을 따라 전투를 벌이고 있을 대 이따금 전투가 멎는 틈을 이용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으로 알려진 작은 책을 그리스어로 집필했다. 원래는 그 자신에게라는 제목이었다. 그는 공식적인 로마의 신앙을 잃어버렸고, 동방에서 온 새로운 어떤 신앙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에서 질서의 표지와 형태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기에 어떤 신비로운 지적 존재가 우주에 개입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251 그는 이 세상에 나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마지못해 인정했다.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그들 또한 인간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들은 상황의 운명에 의해 만들어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결점의 희생자들이다. 정말 선한 사람은 불행에 면역력이 있다. 어떤 재앙이 덮쳐도 그의 영혼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Chapter 13 <인간 그리스도>

 

254 사도 바올로가 십자가에 못 박힌 설교자의 존재를 의심했다면 기독교를 설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사도들은 이 설교자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단지 몇 사람이 겨우 몇 년 동안에 걸쳐 예수처럼 강력하고 호소력 있는 인물을 만들어냈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보다 오히려 더 믿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서양 남성의 파노라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 드러났다.

259 루르드

<가톨릭 교회가 공식 인정한 프랑스 남서부 북쪽 오트피레네 주에 있는 성모 발현지. 루르드 성모 발현은 1858211일부터 이곳에 있는 마사비엘 동굴에서 14세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여러 차례 일어났다. 이 동굴의 생수는 질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지금까지 수많은 환자들이 찾고 있다.>

신념을 가진 강인한 여자나 남자의 생각과 의지 속에 들어있는 힘에 대해 우리는 그 어떤 한계도 둘 수 없다.

262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기적인 욕망, 잔인성, 정욕 등을 없앨 수 있다면 유토피아는 저절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스도는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가였다. 그의 업적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덕성의 윤곽을 드러냈다는 점에 있었다.

264 에세네파를 제외한 모든 유대인 종파들이 그의 혁신에 반대했다. 특히 그가 죄를 용서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주제넘은 태도에 분개했다. 그들은 그가 의심스러운 도덕성을 가진 여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267 진리가 무엇인가? 복잡하고 시니컬한 로마의 문화와 유대인의 충직한 이상주의 사이에 놓인 깊은 차이를 보여주는 질문이었다.

268 십자가형은 유대의 형벌이 아니라 로마의 처형 방식이었다. 그리스도가 혁명가였든 아니든 그는 로마에 의해 명백하게 혁명가로서 처형당했다.

 

Chapter 14 <기독교의 성장>

 

272 산피에트로 성당은 베드로가 죽은 자리에 세워졌고, 그의 유골 위에 대 제단이 있다.

베드로가 교회를 세웠다면 바울로는 신앙을 세웠다.

274 그들의 엄격한 신학이 이 집단의 도덕성을 뒷받침해주었고 이런 도덕성은 세속 철학자들의 관심과 칭찬을 받았다.

275 그들의 자기 규율이 아주 발달하고 도덕적 탁월함을 얻으려는 열망에서도 진보된 사람들이라고 묘사했다.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불타는 십자가 주위에 그리스어로 이번 정복으로라는 글자가 장식된 것이 하늘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

277 칼에 대한 말씀의 승리, 그리고 기독교의 부분들에 대한 중앙의 승리는 십자군 전쟁의 실패와 종교 재판의 공포에 의해 더러워졌다. 회교도들이 이룩한 부 과학 예술 학문은 패배한 십자군 원정대의 마음에 의심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수많은 이단의 형태로 기독교 정교 신앙을 괴롭혔다.

283 방해가 없으면 문학도 없다. 음유시인들은 새벽의 사랑 노래와 저녁의 사랑 노래에 뛰어났다. 그들은 낮엔 유혹하고 밤엔 비탄에 빠졌다. 12세기 말과 13세기 초에 기사 문학은 성배 찾기를 주제로 삼았다. 이것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다는 성스러운 찬을 말하는 것으로 이런 전설을 둘러싸고 파르치팔 이야기가 생겨났다.

286 단테의 신곡은 모든 기독교 문학에서 가장 이상하고 가장 무시무시하고 때로는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288 아벨라르 이야기

289 그의 저서 <변증법>, <철학자, 유대인, 기독교도 사이의 대화>, <예와 아니오>

<기독교신학>

지혜를 향한 첫 번째 열쇠는 자주 부지런히 질문하는 것이다. 의심을 통해 우리는 탐구에 이르고 탐구를 통해 진리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이단은 폭력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억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건함과 침묵과 기도로 동료 수도사들에게 교훈을 주었다.

290 그는 자신의 신앙이 교회의 가르침 안에 있다고 확인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중세 문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송가를 만들었다.

291 중세 사람들은 종교에 모든 것을 걸었다. 로마 문명이 신들의 죽음 혹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혼란으로 인해 붕괴 되었다고 생각했다.

292 중세사람들은 수도사들의 게으름에 분노하고 수녀들의 헌신에 감사하였으며 고회의 자선사업을 높이 평가했다. 고전 문서들을 함께 탐구하고 보존하고 편집하던 성직자와 속인들은 고전 문학과 철학의 매력과 깊이를 발견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것보다 더 큰 열성으로 플라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중세의 영혼은 이제 두 개의 강력한 문화가 되었다. 그들을 통해 문명을 보존하고 전달하는 중세의 역사적 업적은 완성되었다. 그 죽음이 곧 그 완성이었다.

 

Chapter 15 < 르네상스 1: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중심으로 >

 

293 그녀가 정숙한 탓에 그녀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ca]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인문주의자. 교황청에 있으며 연애시를 쓰기 시작하는 한편 장서를 탐독하여 교양을 쌓았고 이후 계관시인(桂冠詩人)이 되었다. 성아우구스티누스와의 대화형식인 라틴어 작품나의 비밀을 집필하였고, 이탈리아어로 된 서정시 칸초니에레로 소네트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 언덕에서 그의 머리에 월계관이 씌워졌다. 보카치오는 그를 위대한 고대인들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고 이탈리아는 베르길리우스가 다시 태어났다고 선포했다.

296 그는 그녀를 피아메타 (작은 불꽃)이라 부르고 그녀의 불꽃 속에서 자신을 태우기를 열망했다. 그는 5년 동안이나 그녀에게 시와

산문들을 바쳤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이런 죽음에 대한 끔찍한 묘사로 시작된다.

297 이들 100개의 이야기 중 일부는 상당히 음탕하다. 그는 기독교 도덕률 안에서조차 문자 그대로의 기독교 신앙을 잃어가고 있는 중간 계층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르네상스는 발생 초기부터 이미 죽은 다음 천국의 불확실한 즐거움 대신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과 모험을 선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는 고대의 문학만 복원시킨 것이 아니라 그 쾌락주의적 자유로움도 똑같이 복원시켰다.

298 전해 내려오는 신앙의 교리를 의심하고 성직자가 속인과 똑같이 쾌락주의적인 것을 보며 교육받은 이탈리아인들은 지적 윤리적

금기에서 벗어났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내용. 사람을 우상으로 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299 르네상스는 두 가지 규율( 중세와 종교개혁) 사이의 막간극이었다.

300 그리스, 아랍, 유대, 이집트, 페르시아, 힌두, 중국 사람들과의 무역에 익숙해진 그들은 자기들 신앙 교리의 날카로움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교육받은 이탈리아 계층에 신앙에 대한 무관심을 가져왔는데 이러한 무관심은 이방의 종교와 폭넓은 교류를 하면서 19세기 유럽에 두 번째로 나타났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무관심이었다.

르네상스란 시간상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과 사유의 방식이다.

301 당파 싸움은 삶과 사유의 기질을 더욱 달구었다. 피렌체에는 여덞 개의 은행가 집안이 있었다. 이들은 현대 은행이 하는 거의 모든 기능을 수행했다.

303 코시모 데 메디치

39세에 토스카나에서 가장 많은 재산의 상속자, 추기경과 술탄들과도 가까운 사이

공공사업과 자선 사업에 엄청난 기부

민중은 그의 간접적인 독재를 말없이 받아들임

역사가 승인해줌- 그의 부로 많은 학자 예술가 시인 철학자를 후원했으므로

그는 재산 일부를 들여 고전 텍스트를 수집했다. 니콜로가 고대의 필사본들을 사들이느라 파산한 뒤로 코시모는 장부에 기재하지도 않고 메디치 운행에서 그가 죽을 때까지 그에게 돈을 대주었다. 코시모는 45명의 필사가들을 고용해 사들일 수 없는 필사본들을 베끼게 했다.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산 마르코 수도원과 근처 피에졸레에 있는 수도원이나 자신의 도서관에 보관하면서 이들 소장품을 선생과 학생들에게 돈도 받지 않고 개방했다.

그는 피렌체에 플라톤 연구를 위한 플라톤 아카데미를 세웠다.

304 마음을 명랑하게 하는 플라톤의 정신이 기운을 북돋우는 효모처럼 새로 일어서는 유럽 사상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305 후원자와 예술가는 함께 늙어갔다. 코시모가 이 조각가를 잘 보살펴두어 도나텔로는 돈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하고 만족스럽게 여든 살 까지 살았다. 피렌체의 모든 예술가들과 거의 모든 시민들도 그의 장례 행렬을 따랐으며, 그는 자신이 원한대로 산 로렌초 교회의 지하 묘지에 코시모와 나란히 묻혔다.

307 그와 그의 친구들은 마차에서 부를 노래를 작곡했는데 이 노래들은 사육제 기간의 도덕적 해이 상태를 보여준다.

309 로렌초의 미적인 감각성은 그의 도덕성이 견디기에는 지나치게 날카로웠다.

310 그의 가장 훌륭한 시들은 시골의 숲과 강, 나무들과 짐승의 떼와 목동들을 노래한 것들

학자 및 철학자들과 쉽게 섞이고, 농부와 어릿광대들과도 잘 어울리고, 축제 행렬에서 함께 행진하고 외설적인 노래들을 부르고 부드러운 찬가들을 부르고 애인들과 놀아나고 교황을 낳고 유럽 전역을 통해 자기 시대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고귀한 사람이라고 찬양받던 이 사람의 모습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도덕성과 매너, 복합성과 다양성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311 로렌초는 전 재산을 들여, 심지어는 가구를 저당 잡히면서까지 책을 구하려고 애썼다.

미켈란젤로는 뒷날 이 책들을 위한 훌륭한 건축물을 설계하였고, 후세 사람들은 이 도서관에 로렌초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312 로렌쵸 도서관

313 그는 학생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신 플라톤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에게 기독교는 많은 종교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글과 심각한 병에서 회복된 데 대한 감사의 심정에서 마르실리오는 다시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왔다. -고난이 있어야 하나님을 바라보는 인간의 어리석음

314 내면에 자연이 주는 모든 선물을 모아놓은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서술했다. 키가 크고 섬세한 모습에 얼굴에는 신성의 어떤 요소가 빛나고 있다. 관통 하는듯한 번득임과 지치지 않는 탐구열, 기적 같은 기억력, 종교적인 박식함 , 어려 언어에 능통한 인물로 여성들과 철학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315 모든 사람이 그에게 아첨했지만 그는 짧은 생애의 마지막까지 매력적인 온건성을 지켰다.

318 나는 너를 천상의 존재도 지상의 존재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네가 너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고 스스로 극복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너는 짐승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신과 비슷한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하느님 아버지는 인간에게만 탄생의 순간부터 모든 가능성과 모든 삶의 씨앗을 주셨다.

319 사보나롤라/ (로렌쵸)는 폭력을 싫어했다는 점을 빼고는 모든 점에서 르네상스의 인물이었다.

320 모든 폭군중에서 그는 가장 신사적이고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는 충분히 오래 살았지만 이탈리아를 위해서는 너무 짧게 살았다. 그가 죽은 이후 피렌체는 차츰 쇠퇴했고 이탈리아에는 평화가 없었다.

321 스케치를 잘하기 위해 그는 자연에 있는 모든 사물을 호기심, 끈기, 조심성을 가지고 탐구했다. -세밀한 관찰

324 수도사들이 그에게 교회를 위한 그림 한 점을 주문했을 때 그는 그 많은 인물들을 위해 아주 많은 스케치를 하였고 세부에 너무 몰두한 탓에 작품을 완성하지 못했다. <동방박사의 경배>이다.

326 그는 너무 많은 능력들을 지녔기에 그들을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328 이것은 레오나르도의 가장 위대한 그림 중 하나다. 오직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

<성 안나와 성모와 아기 예수> 만이 이 그림을 능가하는 걸작이다.

이 단순한 직사각형 방은 로도비코 공작이 좋아한 교회에 소속된 도미니크 수도사들이 식사하던 장소였다. 이 식당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벽면에 최후의 만찬 장면을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수도원장은 (바사리의 말을 믿어도 된다면) 공작에게 가서

329 레오날도의 게으름을 불평하며 그가 어째서 때로는 몇 시간씩 붓질 한 번 안하고 그림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레오나르도는 공작에게 이유를 설명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공작은 수도원장에게 이것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예술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실행이 아니라 구상에 있고 (바사리가 덧붙인 말에 따르면) 천재적인 사람들은 일을 가장 적게 할 때 가장 많이 일한다. 이번 일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다 - 하나님의 아들에 어울리는 모습을 구상하는 것, 유다의 모습을 찾아내는 일 , 너무나 자주 보는 수도원장의 얼굴을 어쩌면 유다의 모델로 사용하게 될 지도 모르겠노라고 슬쩍 덧붙였다.

- 푸하하하하 너무나 멋진 표현

330 한 예술가가 하나의 그림 안에 그렇게 많은 영혼을 드러낸 경우는 두 번 다시 없었다. 그는 이들 사도들을 위해 수도 없이 습작 스케치를 했다.

331 사색에 대한 적

332 수많은 방해, 쉬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끌리는 관심사, 안기아리 전투와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사정도 그의 구상의 통일성과 예사롭지 않은 끈질긴 영성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335 그의 예리한 눈길은 이런 동작들을 열정적인 호기심으로 살펴보고 매끄러운 펜은 그것을 스케치하고 기록했다. 새들이 공기의 흐름과 압력을 이용하는 방법을 관찰했다.

336 지식을 향한 정열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귀한 특성이다.

수많은 민족들과 세대들이 미신과 경박한 믿음을 가지고 삶의 짧음과 품위 없음을 잊기 위해 겉만 꾸미는 것에 마음이 슬퍼질 때

337 그림은 레오나르도에게 해부학 비율과 원근법, 빛의 구성과 반사, 물감과 오일의 화학을 탐구하도록 만들었다.

339 노년은 동맹 경화증의 탓이라고 여기고 이는 운동 결핍이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340 그는 르네상스의 어떤 화가보다 더 자유롭게 그리스도의 초상화를 다루었다.

어떤 주절에서는 겸손과 열렬함으로 신에게 말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신을 자연 자연의 법칙 필연성과 동일시했다. 마지막까지

신비적인 범신론이 그의 신앙이었다.

341 삶을 향한 그의 사랑은 종교적 희망에 자리를 내주었다. 하루를 잘 보내면 그 잠이 달다 그렇듯이 인생을 잘 보내면 그 죽음이 달다.

우리 중에 누가 이토록 다양한 세계를 가진 남자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을까? 그는 실천 보다는 착상이 훨씬 더 많았다.

귀치니아르디니, 스포르차

342 그는 아마도 모든 시대에 걸쳐 가장 풍요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업적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원천으로부터 한 사람이 왔다는 것,

그가 인류의 가능성에 대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주었다는 사실에 경탄하게 된다.

 

Chapter 16 <르네상스 2>

 

346 니콜라오 5(토마조 파렌투첼리) 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좋은 교황이 되는 것, 로마를 재건하는 것, 고전 문학 학문 예술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교황청 도서관을 설립하고 가톨릭교회와 고전 세계 교회와 르네상스를 하나로 통합했다.

349 시스티나 예배당 건설, 바티칸 도서관 재건

율리오 2세는 사건과 인간을 통제하는 강력한 통치자였다. 그의 밑에서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는 자기들의 과업을 완수했다. 그의 내면의 이교적인 측면이 (추기경의 욕실에 장밋빛 누드화를 그리게 되는) 시스티나 성모를 그린 경건성과 나란히 발전했다.

351 그는 분명 서둘러 공부하고 플라톤과 라에르티우스와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책들을 훑어보고 학식 있는 사람들과 겸손한 담화를 나눈 다음 자신의 최고 구상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352 이와 같은 지혜의 전당은 일찍이 그려진 적이 없었다. 젊은 기독교도는 갑자기 모든 이교도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놀라운 정도의 이해력과 공감을 가지고 그들을 원래의 특성대로 그려놓았다. 신학자들이 그들을 바라보면서 서로 오류의 가능성을 나룰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교황은 두 기록 사이에서 인류의 사색의 협조적인 과정과 창조를 명상할 수 있었다. 이들 <성체 논쟁><아테네 학당>은 르네상스의 이상이었다.

353 글은 그림이 타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354 이 귀족적인 모임은 기독교 신앙과 윤리를 잃어버렸다. 그들에게는 에피쿠로스의 정원이 게세마니 동산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이 시기에 사보나롤라는 청교도적이고 거의 금욕적인 개혁의 열화와 같은 복음을 설고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자주 그리로 찾아가 그의 말에 귀기울였으며 다시는 그를 잊지 않았다.

356 일은 언제 끝나나? 내가 예술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 일을 모두 마칠 때

357 메디치 추기경을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다. 그는 상냥하고 온건했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너그러웠다.

358 역사가 귀치아르디니는 그를 순결한 사람이라는 평판과 흠잡을 데 없는 매너를 가진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경건하고 나무랄 데 없는 생활을 한다고 찬양했다. 인문주의자들은 아우구스투스 시대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359 자기들에게 사제로서의 절제와 경건함을 기대하는 외국인들을 비웃었다. 루터는 그 꼴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에라스무스는 그 꼴을 보고 매혹 당했다.

361 그는 아름다움을 향한 사랑과 부의 습관으로 파괴된 선량한 사람이었다.

362 보통사람은 밭을 갈고 수레를 끌거나 짐을 지고 동이 틀 무렵부터 어스름이 질 때까지 일을 하고 나서 저녁이면 생각을 위한 근육이라곤 조금도 남지 않는 삶을 살았다.

362 마키아벨리는 종교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품었지만 대기에는 정령들이 산다는 가능성을 암시했다.

364 너무나 쉽게 잊힌 인물 (피에트로 폼포나치 하도 작아서 친구들은 그를 페레토, 작은 피에트로라고 불렀다.

366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철학자들이 안 된다고 하는데도 신앙을 지켰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사람은 따로 있다.

한 사람이 남는다. 분류하거나 어디에 자리매기가 힘든 사람이다. 자신이 기도한 거의 모든 일에서 실패한 사람, 그러면서도 이 세대의 다른 어떤 인물보다 더 뚜렷한 흔적을 남긴 사람

367 언어를 그토록 당당한 경제로 사용하는 젊은이 앞에서 말이란 얼마나 허약하게 보이는 것인가? 이 순간부터 체사레 보르자는 마키아벨리의 사색에서 영웅이 되었다,. 비스마르크가 니체 사색의 주인공이 된 것과 비슷하다. 여기 권력의 의지의 화신에게서 도덕성은 선악을 넘어서 있다.

이것은 가장 정직하고 부도덕한 책이다.

370 하드리아노 6세는 성과 혀와 펜이 로마에서 아주 느슨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기독교의 수도가 죄악의 소굴이 되었다는 로렌초와 루터의 의견에 동의했다.

인문주의자와 시인들에 대해서도 마음을 닫았다.

371 한직을 얻을 속셈으로 하느리아노를 찾아온 친척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정직한 삶을 살라는 말을 들었다.

372 교황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개선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탄식했다.

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독일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로마가 신앙심 깊은 교황을 견디지 못한 것은 범죄이며 어리석은 일이었다.

372 이렇게 훌륭하게 출발해서 그렇게 비참한 종말을 맞은 교황은 일찍이 없었다.

뷔리당의 당나귀

 

Chapter 17 <르네상스 3>

 

383 바깥은 검소하지만 내부는 온갖 부와 사치를 다하여 베네치아 예술과 화려함으로 치장된 건축물이었다. 바이런은 이곳에서 술판을 벌였고 바그너는 여기서 죽었다. 베네치아는 적들조차 그 통치 방식에 경탄하고 심부름꾼을 보니 통치 구조와 기능을 탐구하게 했다.

그러나 베네치아 문화는 역사상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색채가 화려하고 값비싸고 감각적으로 매혹하는 문화다.

388 기독교는 잊히고 오비디우스가 그린 로마의 분위기가 다시 나타난다.

389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 만남에 나타난 고요한 감정의 깊이다. 이상화되지 않고 심오하게 현실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이 얼굴은 르네상스 회화가 이룩한 기적의 하나다.

우뚝 솟은 산들은 인간의 어리석음 위에 떠 있는 초자연적인 실체처럼 언제까지나 그의 기억과 풍경 속에 남았다.

390 마치 시간이 그의 모든 재능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처럼 그는 느리게 발전했다.

391 그는 빈곤의 온갖 단계를 두루 경험한 뒤 재치와 팬으로 넉넉한 돈을 벌어들였다.

유명한 사람들은 그의 풍자에 등장하는 일을 면하기 위해 그에게 돈을 지불했다.

394 미켈란젤로 이 작품들이 이른바 살과 피를 찢고 나온 것임을 우리는 안다. 그의 정신과 마음에서 터져 나온 것들로 한 가지를 완성한 다음이면 그는 출산의 고통으로 약해진 시간을 견디곤 했다.

우리는 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악과선, 고통과 사랑스러움, 파괴와 숭고함을 뒤섞은 듯 보이는 우주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거나 혼돈에 질서를 사물에 의미를 형태나 생각에 고귀함을 부여하는 지적인 의지를 보면 우리는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삶과 법칙에 아주 가까이 다가간듯한 느낌을 얻는다.

 

Chapter 18 <종교개혁 1>

 

396 교회의 일부 책임자들은 인간적이고 부패하고 엇나가고 억압적이고 강요하는 속성을 드러냈다.

397 늑대들이 교회를 통치하면서 기독교 양 떼의 피를 먹으며 살고 있다.

398 성직 계급이 왕들보다 더 화려한 연회를 베푼다.

401 위클리프는 교황이야말로 사도 요한이 예고한 반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는 묵시록의 짐승이라고 했다.

406 중세 기독교가 유연한 그리스도의 모습위에 견고하게 구축한 도덕적 독단적 구조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고 있었다.

409 성상의 숭배, 고해 성사, 교황의 오류 없음을 거부하고 위클리프에 뒤이어 예정설을 받아들였다.

411 체사레 보르자는 기독교 윤리를 산산조각 내고 교황국을 위해 나라와 세수를 확보하느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실천했다.

412 그러나 이렇게 모은 돈은 정치적 부패와 도덕적 해이, 그리고 성직자나 속인들 사이에 성적인 면허증을 만들어냈다.

루터는 뒷날의 회상에서는 1510년의 로마가 혐오스러웠다고 서술했다. 교황들은 세속의 황제들보다 나쁘고 교황청에서 열두 명의 벌거벗은 소녀들이 저녁 식사 시중을 든다고 했다.

에라스무스- 그 시대 가장 탁월한 문필가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413 그는 라틴어를 완전히 습득하고 고전 작품들을 더 많이 읽어 작품에서 즐거움을 얻었다.

고전에 대한 이런 사랑은 젊은 성직자의 정통 신앙을 망가뜨리고 그리스도 윤리에 대한 이교적인 경탄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 책 중독증은 악덕과 똑같이 많은 돈이 들었다.

414 고전이라는 포도주에 취하고 여성이라는 암브로시아를 향락하는 공허하고 가벼운 젊은이였던 그는 학문에 정진하고 그리스어로 이루어진 신약 성서를 편집하기로 결심했다. 종교개혁가 및 인문주의자들의 판단도 비슷한 것이었지만 그는 진짜 기독교의 정수인 신약 성서가 독단과 세월에 의해 어두워지고 가려졌다고 보았다.

415 토머스 모어와 함께 머물던 1511년에 그는 가장 유명한 책 <어리석움 예찬>7일 만에 썼다. 이 책은 그의 생전에 40판을 거듭했다. 뒷날 밀턴은 이 책이 케임브리지에서 모든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보았다.

{우신 예찬, '어리석은 신에 대한 예찬'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인문주의적 풍자이다. 1509년에 알프스를 넘으면서 그는 이 책에 착상했다. 그리고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의 집에서 열흘 동안 머물면서 "장기를 두는 기분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작은 책은 인류가 어리석음 때문에 그 존재를 이어가고 있다는 말로 시작된다.

424 독일 가정은 겨의 교회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교리 문답사 아버지는 사제 노릇을 했다. 성직자들은 세속의 사람들처럼 행동했다. 일부 성직자들은 첩을 데려갔다고 한다.

경건한 사랑과 세속적인 탐욕, 하느님을 위한 자기 포기와 신을 잊은 자기 탐색 사이의 대비

425 하나님의 종들 중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설교와 영혼의 보살핌을 게을리 했다.

Chapter 19 <종교개혁 2>

 

433 그는 자연의 충동과 자신이 습득한 신념을 화해시킬 수가 없었다. 그가 배운 하나님은 사랑보다는 공포의 하나님이었다.

443 그는 카톨릭교회의 거의 모든 측면을 공격했고 그를 보호해주는 존재라고는 권력과 후원 의사가 확실치 않은 독일 제후 몇 명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양심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를 뿐이다.

447 신약 성서가 일반에 보급된 것이 종교 당국이나 정치 당국에 타격이었다.

448 신약 성서는 성직자의 세속성, 사도들의 공산주의, 가난하고 억압받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공감 등을 밝혀주었다.

450 제후와 귀족들이여 그리고 특히 눈먼 주교와 마친 사제와 수도사들이여 이 해로운 반란이 당신들 말고 다른 누구 때문이라고도 탓할 수 없다. 성서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들의 마음은 성서에 반대하고 있다. 일시적인 통치를 하면서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의 화려하고 자랑에 찬 삶을 살기 위해 백성을 약탈하는 일밖에 하지 않는다.

 

Chapter 20 <가톨릭 종교 개혁>

 

470 가톨릭 종교 자체가 예술이 되었다. 감각적인 요소들이 금욕적이고 신학적인 요소를 없애버렸다. 이탈리아 예술가와 학자들은 가톨릭에서 개종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가톨릭 자체를 학문과 예술로 개종시켰기 때문이다.

471 이탈리아는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얻을 수 있는 진리를 위해 그것을 망칠 수가 없었다. 수많은 글과 캐리커쳐에서 엄청난 욕설이 성직 계층에 쏟아졌다.

472 1534년 그는 추기경들에게 교회의 도덕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명했다, 다시 이행하라고 명했다. 바오로 교황은 활발한 개혁을 연기했다. 하지만 그가 추기경으로 임명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통합과 헌신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교황은 로마의 모든 성문을 잠그고 돌아다니는 수도사들을 체포라라고 명령했다. 로마는 이제 외적인 경건함과 도덕성이라는 천성에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477 그녀는 자신이 고통과 악의 세계를 떠나 그리스도의 영원한 친구가 되기 위해 떠난다고 확신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478 로마의 이교적 정신이 자기 마음에서 거룩함을 없애기 전에 도망쳤다.

480 그들은 자신들을 채찍질하고 금식하고 얇은 셔츠만 입고 불도 때지 않은 방의 마룻바닥에서 잠자고 맨발에 거의 알몸으로 눈 속에 서서 육체를 단련시켜 정복했다. 그가 거기에 감정과 상상력의 열정을 부어 넣어 그의 작은 책자는 현대 역사에 감동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481 그들은 예수회를 조직해 무신앙과 교회를 해체시키려는 다른 힘들에 맞선 전쟁에서 병사 노릇을 하기로 했다.

482 그가 죽었을 때 많은 로마 사람들은 거센 바람이 마침내 멈추었음을 느꼈다. 그의 추종자 중 일부는 슬픔과 함께 안도감을 느꼈다.

483 그렇게 작은 그룹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그렇게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역사상 드문 일이었다. 공식적으로 설립된 지 20년이 지나자 예수회는 가톨릭 종교개혁이 만들어낸 가장 빛나는 산물이었음이 드러났다. 루터는 교황의 우위에서 일반 공의회로 되돌아갈 것을 호소했다.

485 예수회 수도사들의 월등한 학식은 논쟁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487 성직자들의 도덕성과 규율을 증진시키기 위해 많은 작은 개혁들이 도입되었다. 교황청의 권위에 제한을 두었다.

488 공의회는 루터의 반란을 점화시킨 잘못된 악습들을 인정했다.

가톨릭 국가나 개신교 국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계속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그러나 성직 계층의 도덕성은 개선되었다. 순결은 유행이 되었다.

489 예수회의 정신은 자신만만하고 명확하고 정력적이고 규율이 있는 군사적인 교회의 정신이 되었다.

 

Chapter 21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491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은 르네상스(셰익스피어), 종교 개혁 (엘리자베스) 계몽주의 (베이컨) 가 하나로 합쳐져 천재와 역사가 폭발적으로 집약된 시대였다.

493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삶이 점차 약해져서 용서할 수 없는 고통과 비탄의 연속이 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신앙을 잃어버린 것을 탄식했다. 이렇듯 신학이 생물학에 패배하는 데 대한 원망이 ...영국 문학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쓰라린 고발이 되었다.

494 그 문체의 행복한 화려함 한가운데로 거의 냉소적인 고통의 외침이 터져 나온다.

그는 묘지가 모든 위대함의 종착역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비천한 용도로 되돌아가나 대왕의 고귀한 재가 간 길을 뒤쫓아가다보면 그것이 술통 구멍 마개가 되었다고 상상하지 말란 법이 있나?

495 그는 가장 불친절한 야수도 인간보다는 더 친절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496 셰익스피어가 죄 많은 인간에 대해 이토록 우스꽝스러운 우월감을 지녔고, 이토록 겁이 많아서 삶을 소화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497 이 세계의 악의 한복판에 축복과 즐거움이 있다. 악당들 한 가운데 영웅과 성인들이 있다. 지친 배우겸 극작가는 런던의 소모적인 무질서와 군중 속의 외로움을 떠나 스트랫퍼드 고향 집의 푸른 풀밭과 가족의 사랑으로 돌아가 강인한 남자로서의 삶에 대한 사랑을 다시 얻는다.

499 그렇다 거기 살고 있는 모든 존재도 흩어지고 만다.

실체 없는 이 무대가 스러지듯이 구름 한 조각

남기지 않고 없어질 걸

우리는 꿈을 만든 것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져 있으니

우리의 작은 삶은 잠으로 완결되는 법

아마 딸과 손자의 기쁨에 취한 세익스피어 자신일 것이다.

500 그러나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그는 이제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영원성이 아니라 성숙함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501 프랜시스 베이컨은 세익스피어와 얼마나 다른가. 감정은 지성에 종속되고 패배는 희망에 의해 극복되고 삶의 흥망성쇠는 미래의 인간 정신의 승리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전망 속에 파묻혔다. 그토록 압도적인 패배를 뚫고 이와 같은 낙관주의가 살아남은 적이 있었던가?

508 엘리자베스 여왕은 성인이나 현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격한 기질과 정열을 지닌 여성으로서 삶을 사랑했다.

509 아버지의 독재를 이어받았지만 인간적인 요소와 매력으로 그것을 온건하게 만들었다.

510 그는 철학자처럼 글을 쓰고 왕자처럼 살았다. 그는 이성이 돈을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몰랐다.

511 지위를 추구하면서 베이컨은 이따금 원칙을 희생시켰다. 하원은 제임스 왕의 최고 측근인 베이컨을 미워했다. 베이컨은 23개의 부패 사례를 들어 고발당했다.

512 암호로 된 유명한 문장을 찾아냈다. 나는 지난 50년 동안 영국에서 가장 공정한 판사였다. 그러나 하원은 지난 200년에 걸쳐 가장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당당한 산문으로 이성의 혁명과 약속을 선포한다. 철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베이컨에게 비밀의 사랑이며 가장 행복한 성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직책으로부터의 피난처였다.

513 하느님이 내게 완전한 철학 책을 쓸 기회를 주신다면, 깊고도 참된 사색의 도움으로...인간의 삶의 질서를 더 낫게 만드는 것, 이것이 내가 목표로 삼는 일입니다.

514 제임스1세는 학문을 대단히 사랑하는 선의의 인물이었다.

515 그러나 마지막 부분의 완성은 ...나의 힘을 넘어서는 일이고 내 희망의 저편에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 계획의 각 부분들이 만들어내는 광채가 전체의 거만함을 용서해주고 있다.

515 <학문의 진보>를 따라가면 베이컨 정신의 광범위함과 예리함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예사롭지 않은 겸손함으로 자신의 생각들을 가리켜 악사들이 악기를 조율할 때 내는 것 같은...

516 <노붐 오르가늠>도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그 모든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가장 빛나는 영국 철학의 산물이며 이성의 시대를 향한 최초의 명료한 외침이었다.

517 첫 번째 구절들이 벌써 철학을 압축하고 귀납법 혁명을 예고하고 산업 혁명의 징후를 예고하고 있으며 홉스, 로크, 존 스튜어트 밀에게 경험론 철학의 자극이 되었다.

우리의 생각에서 우상들 518 혹은 시대의 망상과 오류를 쓸어버려야 한다.

우리는 소망스러운 사유의 논리적 기만을 없애야 한다.

520 베이컨의 지혜는 세속적인 것이다. 그는 형이상학을 신비주의나 무분별의 영역으로 떠넘겼다.

521 철학은 오로지 이성에만 근거한다. 그리고 과학은 물리적 원인과 작용의 용어들을 사용해 순수하게 세속적인 설명을 찾을 뿐이다.

522 학문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문을 도덕성에 종속시켰다. 학문의 확장이 자비심에 아무런 득도 가져오지 못한다면 인간성에는 아무런 이득도 없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미덕을 이야기할 때면 평소의 열광이 줄어들었다. 미덕은 온건한 형태로 실천되어야 한다. 사악한 사람이 경솔하게 선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524 그는 굴종의 지경까지 자신을 추구했고 신들을 분노하게 할 정도로 자부심이 강했지만 우리 역시 이런 약점들을 가지고 있기에 그가 비춘 빛으로 그의 성품을 용서하기에 충분하다

그의 이기심은 그의 항해를 위한 바람이었다. 남들이 우리를 보듯이 우리가 자신을 본다면 충격이 될 것이다.

526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의 시대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었다.

527 원한다면 나를 때려라 다만 내 말을 들어라 사람들이 그것들을 비난하게 내버려둬라 다만 그것들을 관찰하고 무게를 달아보라

528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함께 모여 백과사전을 썼을 때 그들은 이 책을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헌정했다. 그는 이른바 예술도 과학도 아직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과학과 예술에 관한 사전 계획을 제안했다. 달랑베르는 열광의 황홀경에 잠긴 채 베이컨을 가리켜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보편적이며 가장 능변인 사람이라고 불렀다.

529 실제 경험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사고를 믿지 않았고 소망으로 오염된 결론들을 믿지 않았다. 그는 철학과 삶에서 이성과 종교 두 가지 모두를 위한 공간을 두었다. 그러나 그는 전통과 권위에 의존하기를 거부했다.

오늘 날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기독교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과학 및 철학의 확산과 함께 힘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 현대의 드라마는 베이컨을 통해 전 세계에 그 프롤로그를 말했던 것이다.

 

귀 있는 이여, 들어보라 (옮긴이의 글)

 

531 그는 50년에 걸쳐 인류의 문명사를 관찰한 열한 권의 대규모 저작을 쏟아냈다.

그는 마지막 생생한 목소리로 자신이 탐구한 532 역사의 지혜를 후세에게 들려주고 있다.

532 경구가 지닌 힘차고 간결하고 사색적인 언어가 이 거대한 내용을 담아낸다. 이미 역사의 수많은 흥망성쇠를 관찰했던 이 눈길은 인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나 절망을 넘어 담담한 관찰자의 냉정함을 보인다.

533 그의 관찰은 유연하고 매력적이다.

가족 종교 법 교육 대중- 문명을 떠받치는 다섯 기둥으로 봄

부의 편중 문제

여기서 역사는 영웅의 역사이다. 영운은 한결같이 위대함과 더불어 인간적인 약점을 지녔다.듀런트는 이들의 위대성을 깎아내리지는 않지만 슬그머니 미소를 띈 채 거침없이 그들의 약점을 털어놓는다.

514 약점은 그의 위대성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 인간은 대체 얼마나 이상한 존재인가?

535 죽기까지 인류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통찰을 계속했던 그 삶의 흔적을 만나고 그 깊은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우리 삶이 참으로 경이롭고 또 노년을 존경하는 마음이 뭉클 솟아난다.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역사의 교훈을 귀담아 들어보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536 윌 듀런트의 재치 넘치는 경구들과 뛰어난 문체는 읽을 때 마다 거듭 특별한 기쁨을 선사했다.

538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은 역사를 맥락으로 읽어야 비로소 어느 정도 제대로 읽게 된다.

역사의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눈길에는 현재 나의 상황과 문제에 대한 생각과 의문들이 나도 모르게 투영되게 마련이다.

해석학이라고 부르는 학문의 방법

 죽음을 향해 이미 문을 활짝 열어 놓은 나이 든 대가들이 뱉어내는 그 이중화음을 ,삶의 잔인한 진실을 귀 기울여 들어보라


< 내가 저자라면 >

 

윌 듀런트 지음/ 안인희 역/ 김영사

 

세계적 베스트셀러 철학이야기의 저자로 잘 알려진 미국의 철학자이자 역사가 윌 듀런트(18851981)가 남긴 마지막 책이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바로 문명 이야기11권을, 인물 중심으로 압축하여 정수만 모은 책이다. 평론가들은 이 책에 대해 설명도 정확하고 명석하며, 비판도 정곡을 찌르나 결코 불쾌하지 않은 표현을 했다며 이론의 인용이나 다른 모든 면도 학자답게 어물어물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고 찬탄한다.

이 책은 <들어가며>로 시작해서 장장  21개의 제목으로 역사를 풀어나간다.

 

위대한 책을 쓴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위인이나 역사에 대해 비난이나 치기로 비평하지 않으면서도 비평할 수 있는 눈과 필력을 가지는 것이다.

깊은 인식으로 높은 곳에서 전체를 내려다보나 따뜻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자기주장을 글 속에 명료하게 숨겨놓는 것이다. 읽는 사람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글이 품위가 있고, 부드러운 표현 속에 직설도 있어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다 읽은 소감은 틀림없이 듀런트는 도덕적이고 신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인류에 대해 큰 사랑을 품었던 학자로서의 마지막 노년의 열정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있는 인류의 한 사람인 나에게까지 흘러오다니

감동이었다.

90세가 넘어서도 위트 넘치는 구절에서 날 폭소하게 만든 분, 인간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그가 여자들을 유혹하고 교도관들을 매수하고 책들을 썼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그와 대등하다고 여길 수는 없다.’

혹은 너무나 자주 보는 수도원장의 얼굴을 어쩌면 유다의 모델로 사용하게 될 지도 모르겠노라고 슬쩍 덧붙였다.’

이 외에도 수많은 구절이 있는데 이런 표현력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통찰을 얻고 표현하며 타인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지 감탄했다.

읽는 동안 나는 그 역사의 현장으로 가 있는 것 같은 현장감과 스릴마저 느꼈다.

이 한권으로 책 읽는 내내 충만한 기쁨을 얻었다.

이 분이 수 년에 걸쳐 쓰신 책을 일주일 만에 읽고 내 부족한 필력으로 그려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무엇보다 책을 쓰는 바쁜 중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을 뭉클하게 그리고 있어서 더욱 감동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완벽하게 완수하고, 부인과 함께 글을 쓰고, 책을 내는 행복을 누렸던 듀런트는 하나님께 5달란트 받고 배로 남긴 바로 그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역사에 관한 작은 지식이라도 있어야 윌듀런트의 글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역사에 관한 단순한 길잡이만이 아닌 것이다.

 

또 한사람 감탄할 사람은 바로 역자인 안인희 교수이다. 그녀의 적절한 표현은 이 책에 더욱 빠져들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분을 처음 알았지만 단번에 매혹되었다.

앞으로도 이 분의 번역이라면 두말 않고 읽을 것 같다. 번역도 하지만 본인의 글도 왕성하게 쓰고 있는 작가이다.

다들 이곳저곳에서 읽고 쓰고 고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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