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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5일 01시 14분 등록

<나에게 이 책은>

 

여기 뭔가 있다는 막연한 이끌림으로 주역에 접근하고 있는 최근. 남편 서재를 훑어보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도올 김용옥의 <주역 계사전 강의록>. 도올이 1997년 여름, 주역 계사전을 강의할 때 학생들이 직접 받아 적어 엮은 것이다. 읽어보니 도올 특유의 거칠고 쉰 음성이 지원되는 것만같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주역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주역 공부 30여 년이 되는 1997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주역 계사전 강의를 하게 된다. 그의 강의록을 통해 나 역시 한발짝 주역에 쉽고(!) 깊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한의학적 설명이 곁들여진 것도 흥미로웠다. 계사전 강의록 북 리뷰는 2주에 걸쳐 올리고자 한다.

 

1: 199776일 일요일

 

1 주역에 대한 책은 상당히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한달 동안 함께 볼 텍스트는 王弼(왕필)과 韓康伯(한강백)이 주를 단 <周易王韓注(주역왕한주>입니다. 이것 외에 주역에 관한 위대한 책 네 권과 서양에서 번역한 훌륭한 두 권의 책이 있는데, 이것들을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가장 훌륭하다고 볼 수 있는 책 네 권은 주자의 <주역본의>, 정약용의 <주역사전(周易四箋)>. 왕선산의 <주역내경> <주역외전>이고, 서양인들이 번역한 책으로는 레게의 <The I Ching>과 빌헬름의 <The I Ching>이 잘 되어 있습니다.

정약용의 <주역사전>도 읽어보고 싶다.

 

이 왕필(226-249)이라는 사람은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죽은 뒤 6년 뒤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4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을 하지요. 얼마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가 남겨놓은 주역과 노자도덕경의 註는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어, 그는 魏晉玄學 (위진현학 - ‘위진 현학’은 소위 ‘삼현(三玄)(『노자』, 『장자』, 『주역』)을 지식의 원천으로 삼아 형성된 위진 사상계의 지배적인 철학 사조를 일컫는 말)의 시조로 불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왕필이 주역에 주를 단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대략 19세 정도라도 파악됩니다. 대단한 천재였죠. 지금 여러분들의 나이가 몇 살입니까? 부끄러운 걸 알아야 됩니다. 현대 사회의 고등학교까지 교육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도 알아야 되요.

왕필은 19세에 주역에 주를 달고, 도올은 대학 3학년 때 주역을 읽고 절을 하고. 부끄러운 걸 알아야 한다는 도올의 호통.

 

이 논문과 왕필이 주역 본경에 달아놓은 주로 인하여, 한대에 유행했던 象數之學대신, 義理之學이 세력을 얻게 됩니다.

 

2 주역을 공부하는데 가장 쉽고 간결한 책이 朱子가 쓴 <주역본의>입니다. 이 책은 그냥 <역본의>라고도 부릅니다. 주자는 후대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아주 쉽게 경전을 해석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렇게 쉽게 썼으면서도 격조를 잃지 않아, 새로운 문명의 틀을 창조하는 기틀을 마련한 겁니다.

쉬우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글.


여러분들이 보는 <주역>은 전국시대 말에 성립된 것이지만, <시경> B.C. 500-700년 경에 쓰여졌다는 것이 확실히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시경> B.C. 700년 경에 불리워지던 노래들의 원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 고문명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헌이 됩니다.

詩經도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어서 자꾸 끌린다.

 

象數學(상수학)이란 우연의 세계인 ‘卦象(괘상)’의 세계를 필연적이고 수리적인 원리로 설명하려는 분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을 가장 훌륭히 해냈던 천재가 정약용입니다. 물론 우연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다 보니 많은 무리가 따르지만, 정약용의 이 책은 최초로 ‘상수지학’을 ‘의리지학’과 결합시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탁월한 책입니다. 우리보다 200년 정도 밖에 앞서지 않은 한 선배가 전라도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그 작업을 해냈습니다.

 

3 정약용은 수원성을 축조할 정도로 수학에 탁월했기 때문에, 주역도 수리적으로 설명해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 대한민국 문명에서 한자로 쓰여진 최고의 명저가 이 <주역사전>일 겁니다. 이만큼 공이 들어간 문헌이 없어요. 중국문명의 2000여 년에 걸친 주역에 대한 해섥서도 이만한 책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한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도 그냥 역사에 파묻히고 말았으니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강진 유배시절인 18084차례의 수정작업 끝에 완성했다고 한다.

 

3 여러분들이 주역을 상수학적으로 접근해가기 시작하면 많은 내용이 있는데, 이 상수학에 미치기 시작하면 또 끝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산 속에 들어앉아서 상수학을 한다는 사람들도 많고, 요즘에는 천박한 천문학적, 물리학적 지식을 부연해서 상수학 운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여러분들은 그런데 빠지지 마세요. 특히 한의대생들 중에 그런 녀석들이 많은데, 정약용의 주역사전에 2000년 동안의 주역에 관한 상수학적 가능성에 대한 모든 설명을 다 실어놨으니까 어설픈 책들은 읽지 말고, 다산의 책들을 읽으세요.

김승호씨는 괘상을 위주로 접근한 책을 냈고 나는 흥미롭게 읽었다. 공교롭게도 출판사가 다산북스인데, 도올은 이 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다.

 

정약용의 입장이 상수지학에서 의리지학을 논의했다고 한다면, 왕부지의 입장은 의리지학에서 상수지학을 용해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산과 선산의 책 세 권만 읽게 된다면, 주역에 관한 모든 내용을 다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난해해서 아직까지 해설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 손에서 이 세 권의 책이 우리 말로 번역되어 나와야 주역에 대한 우리나라 학문의 기초가 잡힐 것입니다.

 

이 사람은 생강을 갈아서 약재로 판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나가면서 이 엄청난 저술들을 했습니다. 당대에는 종이값이 비쌌는데 그가 워낙 가난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종이 주인이 종이값으로 책을 가져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실된 책이 많다고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판본으로 찍어낸 책이 16권이니, 참 대단한 겁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학자들이 몇이나 있었습니까? 지금도 중국을 무시 못하는 이유가 그 대륙 안에 몇 천명의 왕선산이 숨어 있는지 모르기때문입니다.

 

4 주역의 영어 번역은 잘된 것이 많은데, 가장 중요한 책은 제임스 레게의 주역번역본(The I Ching)입니다. 60년대 히피들의 바이블이었던 책입니다. 60년대 미국의 대학생들은 이 책이 없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세대의 분위기를 잘 모를 겁니다. 레게의 번역은 19세기 말에 번역된 것인데, 깔끔하게 잘 되어 있습니다.

 

다음에는 유명한 빌헬름의 판본입니다. 원래 빌헬름은 독일의 선교사였는데, 중국에 선교하러 갔다가 주역에 미쳐서 평생 주역을 연구했습니다.

 

출판을 못하고 있던 중에 융이 이 번역작업을 알게 됩니다. 당대에 이미 융은 프로이드와 겨루던 대석학이었는데, 이 번역본을 보고, 굉장히 놀라게 되었죠.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극찬을 하고, 앞에 유명한 서문을 썼습니다. 여기에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여러분들은 융이라고 하면 프로이드와 겨루던 사람이라는 것만 아는데 융이 주역의 서문을 썼다는 사실은 몰랐을 겁니다. 이 서문은 세계 사상사에 빛나는 논문입니다. 그리고 이 독일어판을 베인즈라는 사람이 영역을 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 위해 반세기가 소요된 셈입니다.

융이 쓴 주역 서문은 A416-17장 정도 되었던 거 같다. 프린트만 해놓고 아직 덤비지는 못했다. 서문을 써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주역 점을 쳤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왕한주에도 句讀點(구독점)이 찍히기는 했지만, 이런 걸로 봐야 한문실력이 늘지, 번역본 쳐다보고 있으면 백날 봐도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5 그러니까 괘라는 것은 64개밖에 없습니다. 주역이란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렇게 심플하게 생각하세요. 64괘의 괘의 모양이 주역의 으뜸이 됩니다.

 

[8괘와 64] 64괘는 여섯 자리이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헥사그램이라고 합니다. 이 헥사그램을 분석하면 다시 위의 세 자리와 밑의 세 자리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트라이그램이라고 하는데, 트라이그램은 여덟 개 밖에 없습니다. 트라이그램에서 짝대기만 세 개 있는 것을 순양지체인 건괘라고 하죠. 그 반대인 것을 순음지체인 곤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태괘, 이것을 리괘, 이것을 진괘, 이것을 손괘, 이것을 감괘, 이것을 간괘라고 합니다. 이 여덟 개의 괘는 각각 자연현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건괘가 하늘이고, 곤괘가 땅, 그리고 진괘가 우뢰, 간괘가 산, 리괘가 불, 감괘가 물, 손괘가 바람, 태괘가 연못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순양지체와 순음지체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음양의 妙合(묘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래서 왕부지는 “64괘 중에서 건괘와 곤괘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정말 기발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사물은 어디에 있겠어요? 그것들은 62괘에 존재합니다.

 

6 단지 여자는 음적인 부분이 좀 더 발현된 것이고, 남자는 양적인 부분이 좀 더 발현된 것일 뿐이예요. 존재하는 사물에는 음양이 섞여 있는데, 이것을 동양에서는 착종(錯綜)이라고 합니다.

 

7 [주역의 철학은 플라톤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가깝다] 왜냐하면, 주역은 생성론이고, 우주의 변화의 세계관에 관한 철학이기 때문이고, 기본적으로 理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易有太極(역유태극)”이라는 말이 나오면 자세히 해줄 테니까, 그때를 기대하세요.

 

8 물이란 것은 또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이 세상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간다는 것, 상상만 해도 기분이 시원해지지요? 이렇게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 하늘에서 어떻게 그 많은 물이 쏟아지는지 신비하지 않습니까?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여러분들은 세상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고,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여 보세요. 모든 것이 신비한 겁니다. 이런 것을 못보고, 상수학이니, 침술이니, 산에 가서 도를 닦느니 하는 것들은 다 미친 짓이에요. 물 속에는 반드시 양이 있어야 되고, 불 속에는 반드시 음이 있어야만 불이 됩니다. 장작도 비쩍 마른 장작은 그냥 조금 타다가 끝나게 되죠. 진짜 장작이라는 것은 물오른 참나무 장작이에요.

그래서 자연을 접하고 자연에서 배우는 것이 의미 있는 것 같다. 자연과 관찰. 아이들 교육에 되새겨야 할 키워드.

 

물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의 자리에 있어야만 다시 떨어질 힘이 생기고, 불이라는 것은 아래에 있어야만 다시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3, 4, 5, 6이 아니라 3, 5, 4, 6으로 되어 있으면 그것은 죽은 태극기가 됩니다.

위치가 주는 힘. 각 효의 위치에까지 의미를 부여하는 건 좀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도올 설명을 보니 그게 아니었네.

 

물이라는 것은 위에 있어야 좋은 것이고, 불이라는 것은 밑에 있어야 좋은 것이죠. 이렇듯 물 속에도 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한의학의 기본원리입니다. 이제마가 腎水(신수)에는 화가 있어야 한다고 했지요? 이제마는 腎陽이라는 말을 쓰는데, 신양이 있어야 신수가 올라갈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신양이 약한 사람이 바로 소음인들이에요. 그러니깐 비장의 북돋는 기운이 힘을 못쓰는 겁니다.  

신수가 훤하다는 말도 여기에서 온다.

 

乾三連 건은 셋이 전부 이어졌다. 離中虛 리는 가운데가 비었다. 坤六斷 곤은 여럿으로 잘렸다. 坎中滿 감은 가운데만 차 있다. 震仰x 진은 바로 놓은 대야 모양이다. 兌上缺 태는 맨 위만 비어 있다. xx 간은 엎어놓은 사발 모양이다. 巽下斷 손은 맨 아래만 끊어져 있다.

 

12 이 효사라는 것은, 점을 칠 때에 쓰는 각각의 점괘였습니다.

 

우리가 효를 영어로는 라인(line)이라고 합니다. 주역의 영역본을 볼 때, line이란 말이 의미를 새로이 지니는 전문술어임을 명심하세요. 그러니깐 이것을 단순히 ‘’이라고 번역하면 안되겠지요

 

13 이렇게 彖傳(단전)이라는 것은 원래의 經과 분리해서 생각하여야 하는, 주역에 대한 탁월한 해석이고, 하나의 독립된 논문입니다.

 

Sein의 상태에서 Sollen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즉 현상적 사물의 분석을 통해서, 그것도 아주 단순한 8괘의 심볼에서 도덕적 메시지를 끄집어 내고, 그렇게 전화시키는 주체를 군자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연결해주는 문법용어를 ‘以’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들도 텍스트를 볼 때, 하나하나의 구조를 밝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도올은 언어 감각도 좋아서 영어, 독어, 한문으로 여러 의미를 견주어 밝혀주고 구조도 설명해주니 좋다.

 

14 그래서 대상전의 “象曰”이라는 것은 ‘그 모습이 말하기를…’이라고 해석을 해야 하고, 소상전의 “象曰”이라는 것은 ‘상전이라는 책에서 이것을 해설하여 말하기를’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소상전이란 말은 ‘상’이라는 글자의 원래의 뜻에 비추어 본다면 잘못된 이름이 되겠습니다.

 

공자가 만약 十翼(십익)을 썼다면, 왜 “子曰”이라고 쓰며, 논어라는 공자의 말을 묶어 놓은 텍스트에 역에 대해 언급하는 말이 한 마디도 없겠습니까?

내 말이. 위편삼절의 주체=공자라는 등식에 비해 정작 논어에 주역에 관한 이야기가 없어서 의아했다.

 

15 텍스트를 볼 때 조금이라도 구조의 변화가 있을 때는 의심을 하고, 나름대로 가설을 세우고 분석을 해나가야지 그냥 그렇게 바라보면 안됩니다. 모든 텍스트는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조금씩의 변형과 왜곡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죠.

 

15 계사전 다음에 나오는 설괘전도 하나의 독립된 텍스트인데 주역의 심볼리즘을 설명하는 상수학적 자료가 들어 있습니다. 수많은 저자가 참여한, 지식고고학적 층대가 다양한 글로 보입니다.

 

17 이렇게 주역 전체는 1천여 년 이상에 걸쳐서 만들어졌지만, 나는 주역의 원래 텍스트 부분은 전국말기에서 전한중기까지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상당히 복잡한 고증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텍스트를 깊게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 능력은 한문실력에서 시작합니다.

 

[어학의 뒷받침 없는 철학은 아무 것도 아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영어를 공부하듯이 한문이라는 언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백남준 선생이 한자처럼 위대한 아트가 어디 있냐고 했지요? 그는 사람의 상상력을 발달시켜줄 수 있는 이 위대한 비디오 아트를 손쉽게 공부할 수 있는 한국사람들이, 왜 한문을 공부하지 않느냐고 한탄합니다.

나는 중국어를 통해 거꾸로 한자에 관심이 생긴 케이스인데, 늦은 감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어딘가 싶은 마음도 있다. 큰 애가 한자에 관심 있을 때 많이 접할 수 있게 해줘야겠다.  

 

나는 생활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과 문화의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겁니다. 지식이 축적과 언어통용의 약속의 체계는 서로 다른 것입니다. 한문을 모른다는 것은 중국문명이 21세기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영어를 모르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 될 겁니다.

 

그러니깐 젊었을 때는 무조건 많은 텍스트를 원전으로 독파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쉽게 가려고 하지 말고, 실력을 키워 나갈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젊어서 어학실력을 보장해 놓으면, 늙어갈수록 자기가 궁금해하는 문헌을 찾아서 연구해 볼 수 있고, 연구논문을 발표할 수 있기 때문에 재미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 어학의 기초를 닦아 놓지 않으면 늙어가면서 콤플렉스에 빠져서 점점 쓸모 없는 인간이 됩니다. “Philosophy without philology is nothing.” 여러분들은 어학을 철저하게 익혀서 철학을 하도록 하세요.

영어, 독어, 일어에 능통하셨던 전성수 약사님은 다양한 언어로 구글링을 통해 의약학 분야의 최신지견을 접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하셨다.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져 그게 어찌 기쁠까 했는데 요새는 좀 이해가 가려고 한다. 나도 번역본이 아닌 영어, 중국어 원문으로 소설이나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작년부터 하게 되었다.

 

[주역의 심볼리즘은 어느 한 시점에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다] 2 6번 곱하면 64괘가 나온다는 것은 세상 쉬운 거예요. 그렇게 쉬운 64괘의 도식이 천년을 쌓여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음양이라는 두 개념을 가지고 여섯자리의 괘상을 만든 사람은, 어떤 시점의 한 사람이었을 거라 이겁니다. 아마 어떤 점 치던 사람이 작대기를 갖고 놀다가 우연히 만들게 되었겠지요. 그러면, 그렇게 주역의 64괘가 만들어진 시점은 언제일까요? 64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음양을 가지고 세상을 분석하는 세계관이 정착되고 나서야 나올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음양관은 언제 세상에 나온 것입니까? 아무리 오래 거슬러 올라가도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갑골문 시대까지 거슬러 갈 수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음양가라는 중국의 학파와 관련이 있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반복해 설명하면, 64괘는 어느 한 천재의 발명이었고, 중국의 고대문명에 있어서 이것은 왓슨과 크릭이 유전자의 구조를 발견한 것만큼이나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8 [인간의 생활은 우연에 의해 지배되지만 그 근저에는 필연의 법칙이 있다. 이것이 생명의 원리이다] ‘생명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상상 못하는 우연의 세계입니다. ‘Chance’의 세계예요.

융을 읽을 때부터 우연이라는 말이 자꾸 들리는 게 우연이 아닌 거 같다.

 

여러분들이 효사에 담긴 내용을 보면, 앞뒤의 문맥이 이어지지도 않는 이상한 소리들로 채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효사가 필연이 아닌 우연의 세계라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점치는 법을 배우면 알겠지만, 384개의 효사 중에서 하나가 선택되는 것은 우연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 그런 건가요? 64괘를 다 읽어봤는데 정말 앞뒤 맥락 없는 비약이 많던데. 그게 우연의 세계라 그렇다?

 

이렇게 우연에 의해 배열된 종잡을 수 없는 384개의 효사들을, 챈스의 세만틱스, 하나의 의미체계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 64개의 괘상이라는 어떤 필연적, 수리적인 배열로 묶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주역의 64괘를 만든 사람의 천재성이고, 그것이 동양적인 생명의 원리가 되는 겁니다. 왓슨과 크릭은 인간의 우연을 결정하는 정보가 ATGC라는 네 가지 정보의 순열에 의해 결정된다는 필연적이고 간단한 법칙을 발견했지요? 20세기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하는 왓슨, 크릭의 발견과, 고대의 주역 64괘의 발견은 같은 발상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19 [주역과 과학은 각각 당대에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었다] 주역의 메시지는 단순한 거예요. – “Life is a chance, but at the core of that chance there is a necessity. That necessity I prescribe is 64 hexagrams.” 이것이 저는 주역의 모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집에 가서는 64괘를 전부 외워 오세요.

이번 주 나의 숙제 = 64괘를 순서대로 외운다.

괘상을 안보고 그린다. 괘사와 효사를 필사하고 외우는 것은 하루 1괘씩.

 

주역이 말하는 것은 음양이 뒤섞인, 64괘로 표현할 수 있는 질서의 원리입니다. 어떤 우연적인 일들도 이러한 필연적인 과정을 넘어설 수 없는 겁니다.

 

이 시대에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새로운 질서이지 단순한 자유가 아닙니다. 그러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것은 우리 사회에 전통적으로 갖춰져 있던 사상에서 찾아야 된다고 봅니다.

 

20 새로운 윤리는 그런 작은 일에까지 마음을 쓰는 심미적 감수성에서 시작합니다. 천지의 모든 것들을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새로운 윤리관이 솟아날 방법이 없습니다.

 

한달동안 집중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서원의 생활을 버틸 수가 없습니다. / 도올서원의 교육을 통해 여러분들의 인생에 변화가 오고, 삶에 비젼이 생기고,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생기게 되고, 그러므로서 21세기 우리나라의 새로운 미래가 열려야 합니다. 한달 동안, 여러분에게 나는 일종의 계약적인 신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내가 시키는 대로 한 달 동안 몸의 훈련을 쌓으십시오. 주역이라는 책은 쉽지 않은 텍스트이므로, 정신 차려서 공부하도록 하십시오.

도올서원에서 공부한 학생들 힘들지만 좋았겠다. 한달 간 집중해서 공부했던 모양.

 

2: 199777일 월요일

 

21 [지식 고고학] 우리가 텍스트를 분석할 때, 특히 한 텍스트가 여러 시기에 걸쳐 완성되었을 경우에, 텍스트를 각 시기별로 구분해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층대별로 텍스트를 구분하는 것을 지식고고학이라고 하지요. 지식고고학은 당대의 문법이라든가, 어휘, 시대배경 등등의 아주 방대한 지식체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역은 여러 시대에 걸쳐 형성되었기 때문에 지식고고학적인 분석이 필요합니다. 주역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바로 經과 十翼에 대한 지식고고학적 분석이거든요.

텍스트의 고고학적 분석이라는 접근 새롭다. 문법과 어휘, 구조 등을 통해 주역이라는 텍스트가 전국 말기 즈음 만들어졌을 거라 분석한 도올!

 

일반적으로 역은 상대부터 시작하여 주대를 통해 천여 년에 걸쳐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지만, 나는 주역의 성립을 전국 말기로 보고 있습니다. , 음양가의 성립 이후에 주역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주역>이라는 이름도 후대에 왜곡된 것이고, 원래는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맹자는 공자와 달리 아주 체계적인 사상가였고, 공자처럼 자신이 배운 경험만 주위의 제자들에게 이야기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자>에조차 주역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전국말기에 어느 천재가 주역을 만들었다고 보는 겁니다.

괴테와 셰익스피어. 경험.

 

22 효사는 주역이 형성되기 이전에 존재했던, 점쟁이들의 말의 단편일 거예요. 그러한 모든 인류의 사상들을 일시에 64괘라는 하나의 심볼리즘으로 엮어 놓아, 중국문명의 기틀을 이루었던 것이 바로 주역이 되는 겁니다. 한제국문명이라는 것은 64괘의 심볼리즘을 통해서 고도화 된 거예요. 현재 우리 사회는 컴퓨터라는 심볼 없이는 성립할 수가 없는 것처럼, 당대에는 주역의 심볼이 문명의 기틀을 이룬 겁니다.

 

하지만, 복희씨, 문왕 등의 이름에 의지하여, 이러한 신화적 권위에 기대어 문헌고증을 하는 자세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 정말 용감한 발언이다. 그러게, 주역 하면 복희씨, 문왕, 공자가 항상 딸려온다.

 

효는 아래에서부터 초, , , , , 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이야기 했었지요?

 

23 내가 우리 집을 설계할 때 6효를 가지고 했습니다.

융이 생각나네. 융은 4를 좋아했고 4를 기반으로 집을 지었다고 한 거 같은데.

 

이러한 6효의 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二位와 五位인데, 이것은 주역에서 이라고 합니다. 그 중 다섯번 째 자리는 특히 제왕의 자리로서 君位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섯번 째 효의 효사는 좋은 것이 많이 옵니다. 그 다음, 상의 자리가 문제인데. 五의 君의 자리에서 上의 자리로 올라갔으니, 더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문언전>에 보면, “貴而无位, 高而无民즉 귀하지만 지위가 없고, 높지만 따르는 백성이 없다고 했지요? 건괘 上九爻辭에 亢龍有悔라고 한 것처럼 이 자리는 후회가 많은 자리입니다. 비유하자면 五의 자리는 박정희가 새마을 운동 잘해서 어느 정도 인기 끌 때이고, 上의 자리는 유신을 통해 장기집권 한 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제일 꼭대기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주역의 세계는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모든 것이 끝나고 후회막급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나의 현재는 효의 어떤 자리에 속할까? 上의 자리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하괘의 가장 끝의 자리인 三의 자리 역시, 별로 좋지 않은 자리입니다. 이렇듯 二와 五의 자리는 중용의 덕을 지니고 있는 가장 좋은 자리이고, 初와 四의 자리는 인간의 잠재성을 나타내는, 땅에 숨어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三과 上의 자리는 過하여 지나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럼 나의 현재는 初 또는 四의 자리일까? 잠룡인가.

 

또 二와 五를 중시했다는 것을 통해 <주역>이라는 문헌의 사상이 <中庸>과 거의 동시대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재 아냐? 텍스트를 통해 시대를 짐작하니.

 

전체 여섯 효가 당위에 있는 괘가 화수기제이죠. 역으로 자리에 맞지 않는 것을 不正 혹은 不當位라고 합니다. 화수미제괘는 6효가 전부 不正한 괘입니다.

화수기제와 화수미제도 재미있는 괘인 듯.

 

25 먼저 주역과 계사의 저자가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계사는 주역을 해설한 글이지만, 단순히 해설하는 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주역을 위대하게 만들어 놓은 논문입니다.

주역의 저자가 궁금하다. 인간이긴 했던 건가.

 

26 1, 2효는 땅의 자리이고, 3, 4효는 사람의 자리, 5, 6효는 하늘의 자리이기 때문에 하늘의 자리는 위에 있고, 땅의 자리는 아래에 있다는 주역의 位를 나타내는 중립적 술어입니다.

6자리에 이런 의미까지 있다니 정말 치밀하다.

 

머리 쪽은 하늘이 되는 것이고, 다리는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의학에서 말하는 上焦와 下焦의 문제와 동일한 것이며, 세상과 사람의 몸을 보는 관점에 일관된 유기체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믿고 있는 평등이라는 가치는 허구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것은 모든 사물이 죽어 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이렇게 하늘과 땅 사이의 세계를 심볼로 표현한 단어가 乾坤입니다.

 

생명체의 기본 속성은 차등을 유지하려는 경향입니다. ‘평등(equality)’라는 것은 기회균등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 해주기 바랍니다.

 

[변화의 방향성이 같은 종류끼리 모이고, 모든 사물은 무리에 따라 나뉘어지니, 길흉이 생겨난다.]

 

28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positive prehend(파악하다)라는 것이 feeling입니다. 이 세계는 끊임없이 prehend 하면서 interaction 하면서 거대한 사회를 형성합니다. ‘라는 존재는 나의 항상성(identity)을 유지하면서 prehend를 통해 세계와 끊임없이 교섭(interaction)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늘 그러하게 보이는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라나는 것, 주역의 세계도 바로 그러한 것이지요.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것과도 일맥상통 하는 면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도 늘 그러한 일정한 모습을 띠는 것, identity를 유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뇌풍항괘처럼.

 

[在天成象, 在地成形, 變化見矣. 하늘에서 무형의 상징을 이루고 땅에서 구체적 형태를 이루니 변화가 드러난다.]

 

29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하늘이라는 것은 무형의 상징이어서 기의 세계, ‘이라는 것은 유형의 상징이어서 味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기라는 것은 코구멍으로 들어가서 폐순환을 통해 온 몸으로 들어가고, 미라는 것은 입구멍으로 들어가서 腸을 통해 몸 속을 돌게 됩니다.

 

이렇게 象이라는 말은 symbol, form이고 形이라는 것은 shape으로 번역을 하면 좋겠죠. / 象이라는 것은 形에다 어떤 form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形이라는 것은 form이 아니라 땅의 구체적인 형태를 뜻합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상과 형은, 완전히 구별되어 쓰이는 말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한탄조로 이 모양 이 꼴이라고 하는 데에도 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하늘의 원리가 있는 것.

 

그 다음, 이 象과 形 사이에서 變化가 드러난다고 했지요. 變이라는 것은 물리적인 변화에 가깝고, 化라는 것은 화학적 변화에 가깝습니다. 變과 化도 구분해서 써야 하는 말이예요. AA가 아닌 것(~A)으로 형태가 바뀌어 나타난 것이 化고, AA’transform하는 것은 變입니다. 여기 見()이라는 것은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30 주역에서, 특히 여기 계사에서 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해간다는 뜻을 포함하도록 한번은(once)’이라고 해석해야 됩니다.

 

바깥의 대기와 인체의 기운은 음기로 바뀌었는데 정신은 양기처럼 활동하게 되니 거기에서 오는 신체의 괴리감은 엄청난 거예요. 게다가 밥도 밤늦게 먹게 되죠. 늦게 밥을 먹는 것처럼 우매한 일이 없어요. 밥만 저녁 7시 이후에 먹지 않는 것 하나만 지켜도 무병장수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밥에 무언가를 먹고서 잠을 자면, 스스로는 잤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것은 타율신경만 쉬는 것입니다. 자율신경은 밤에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31 건은 쉬워서 잘 알 수 있고, 곤은 간단해서 능할 수 있다. 쉬우면 쉽게 알 수 있고, 간단하면 쉽게 따를 수 있다. 쉽게 알 수 있으면 사람들이 친하게 여기고, 쉽게 따르게 되면 공을 이룰 수 있다. 친하게 여기면 오래 갈 수 있고, 공을 이루면 넓어질 수 있다.

 

사실 知는 하늘에 속한 능력이고, 能은 땅에 속한 능력인데, 요즘은 그런 뜻으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또한 동양사상에서 有功이라는 것은 사회적 확장이요, 有親이라고 하는 것은 혈연적 지속을 뜻하는 것이지요.

 

32 이 주역의 문장과 비슷한 때에 성립했다고 보는 <예기><악기>대례필?, 대악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약 사서나 주역을 그렇게 한번 외워보세요. 그럼 우리나라 문명의 수준이 달라질 겁니다.

이렇게 자극 주시면 저 주역 외울 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아도 필사 들어갔는데.

 

공부라는 건 시간이란 말입니다. 공부는 시간이고, 시간 속에서 얻어지는 德입니다. 공부란 시간을 들여 내 몸에 얻어지는 것을 말하죠. 業이라는 것은 덕이 시간 속에서 얻어지는 것임에 반하여, 공간적으로 이루어낸 것을 말하는 겁니다. 즉 덕이라는 건 시간적 개념이고 업이라는 건 공간적 개념입니다.

 

주역의 이치는 쉽고 간단하여 인간 세상의 모든 이치를 얻을 수 있고, 인간 세상의 모든 이치를 얻어서 그에 따라 6효의 모든 자리가 이루어졌다.

 

33 성인이 괘를 만들어 하늘의 상징을 드러냈고, 거기에 말을 덧붙여서 길흉을 명백히 하였다. 강효와 유효가 서로 바뀌면서 변화가 생겨난다.

 

여기 觀象이라는 말이 재밌죠? 形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주의하세요.

 

회린이라는 것은 근심의 상징이다.

 

變化者進退之象也 변화라는 것은 나아감과 물러섬의 상징이다.

 

34 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진퇴의 문제입니다. 인간이 언제 나아가고 들어갈 것이냐 하는 것이 변화의 원리인 거예요. / 변화의 時를 알면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우선 실력을 쌓고, 주역에서 진퇴의 원리를 배우세요. 그리고 매사를 멀리 바라보세요. 한국 사람들은 너무 조급합니다.

 

칸트의 경우에도 자기가 생각하던 것을 계속 생각만 하다가 환갑이 다 되어서야 쓰기 시작했습니다. <순수이성비판>이니 <실천이성비판>이니 하는 그 엄청난 책들은 다 환갑이 다 되어서 쓴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이전에는 시시해 보이다가 50, 60이 넘으면 쓰윽 하면서 나타나게 됩니다. 건물은 조금조금씩 쌓아나가기 때문에, 쌓는 동안에는 잘 안보이지만, 어느 순간엔가 여러분들 앞에 우뚝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거물이 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들은 Intellectual Giant가 되어야 합니다.

 

34 융이 말하는 ‘collective’란 것은 집단이란 말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을 초월하는 보편적이고 선험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라는 뜻입니다.

 

35 그러므로 군자가 머무를 때는 하늘의 상징을 보면서 그 말들을 가지고 놀지만, 움직일 때는 모든 변화를 보면서 점을 친다.

 

36 위 문장에서 이라는 것은 사회적 행동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단순한 상을 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효사에서 변화의 방향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아무튼 점이라는 것은 필연성이 전혀 없습니다. , 점을 치는 사람이 유덕자일 경우에는 점이 제대로 나오고, 부덕한 놈이 칠 적에는 점이 잘 안나온다고 합니다. 김용옥이 던지면 근사한 점괘가 나올 지도 모르는 거죠. (웃음) 여러분들이 앞으로 계속 보시면 알겠지만, 주역의 위대성은 바로 추상적인 언어들을 나열해 놓음으로써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법조문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주역에 대한 모든 학문의 역사는 해석의 역사입니다. ‘동남쪽으로 가면 친구를 얻는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롭다.’ 괘사와 효사는 이런 식으로 매우 황당한 말이기 때문에 결국 해석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시와 같은 느낌이기도.

 

是以自天?之吉无不利 이러한 까닭에 하늘이 도와주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여러분들이 이제 주역의 맛을 보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정말 위대한 문장입니다. 읽을 때마다 고개가 숙여져요. 보면 볼수록 인간의 언어가 탄생시킨 가장 위대한 작품입니다.

 

3:  199779일 수요일

 

38 우리 동양문명이 낳은 언어로서 주역 계사를 뛰어넘는 문장은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 출현한 여러 문명들이 위대한 문자를 많이 발명했고, 여러가지 언어를 만들었지만, 나는 아마도 주역계사를 뛰어넘는 문장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잘 깨닫지 못하겠지만 인류의 문명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고, 앞으로도 인류에게 끊임없는 inspiration을 줄 문장이 바로 이 계사입니다. 내가 계사를 강의하고 있기 때문에 과찬을 하는 것으로 오해할 지 모르겠으나, 주역 계사를 읽어볼 때마다 그 위대성과 주도면밀함, 고도의 상징성, 여러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살펴본다면, 인간의 언어가 도달한 최고의 걸작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문학작품처럼 여기고 접근해도 좋을 거 같더라. 나에게는 화수미제와 풍택중부가 그랬다.

 

38 여기서 계몽주의라는 말이 나왔는데, ‘계몽이란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세요? 이 계몽이라는 말도 다 주역에서 나온 겁니다. 주역의 네번째 괘, ‘몽괘를 열었다()는 뜻이거든요. 몽괘의 은 어둡다, 어리다는 뜻입니다.

 

39 이 세계가 서구문명과 비서구문명으로 이분화된 역사적 현실을 지양해 나가는데, 서구문명의 가치관을 제외한 비서구문명에서 살아남은 위대한 문헌은 나는 주역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40 주역의 계사가 표방하는 세계관이야말로 인류문명의 미래이기 때문이지요.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학적 발견이라든가, 유기체적 세계관, 물리학에 대한 생물학의 태동 등을 보면, 앞으로 21세기 문명은 주역적 세계관으로 갈 것임을 알 수 있지요. 이러한 시점에 주역을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래, 나에게 주역이 온 것도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주역적 세계관이 나의 일상과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올 한 해는 그것을 실험하는 시간의 장이 될 터.

 

41 딸애를 키울 적에, 정조관념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자기방 하나를 올바로 치울 수 있게 해주어라. 그러면, 자기 방을 깨끗하게 치울 수 있는 애가 자기 몸을 관리 못할 수가 없다. 자기 방을 청소할 줄 아는 인간을 만들면, 그 삶에 있어서 그러한 도덕성이 확보된다.

 

42 자기 방 하나 정돈하고, 자기의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어떤 도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그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도덕성이 확보될 길이 없습니다.

 

43 그렇지만, 우리 동양문명이 모든게 뒤져가면서도 양보할 수 없었던 가치가, 분명히 주역 안에 있고, 이것은 21세기부터 발현되어 나가기 시작할 겁니다. 그러한 새로운 문명의 계기를 여러분들은 이 주역 계사에서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한문이고 뭐고 아무리 배워도 필요가 없습니다. , 이제 계사전으로 들어갑니다.

 

45 이런 도덕적인 메시지를 운명론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 주역의 저자는 64괘라는 심볼을 만든 겁니다. 얼마나 기발합니까. 이 사람들은 인간을 도덕으로 만들기 위해서 컴퓨터를 만든 겁니다. 주역에는 간단한 64괘의 상징성을 가지고 새로운 문명을 도덕적으로 건설해 보려고 하는 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주역의 빅 픽쳐! 나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다시 한번 11卦하면서 나 개인의 일상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살펴보도록 해야겠다.

 

이렇게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정신적 가치는 상형이 될 수가 없는 겁니다.

, 이 발견도 너무 좋다. 그러게 한자를 상형문자라 생각했지만 정신적 가치는 상형이 될 수가 없겠어. 한자와 상상력.

 

47 息이라는 건 쉰다는 뜻이지만, 쉰다는 건 뭐예요? 나의 에너지가 자라는 거지요. 그래서 자라난다는 뜻도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또 재미난 말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消息이라는 말을 보세요. 여러분들 이 말의 뜻을 아세요? 모른다구? 뉴스란 말 몰라요? 뉴스라는 뜻으로 쓰이는 소식이라는 말이 주역의 전문 술어에서 온 겁니다. 음양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이치, 그것이 세상의 소식이란 말이예요.

 

48 복괘 단전에 復其見 天地之心’, 복에서 우리는 천지의 마음을 본다는 유명한 말이 있지요?

 

여러분들의 운명은 여러분들의 상식적인 노력으로 개척해나갈 수 있습니다. 운명론의 최악의 사태는 기껏해야 죽는 것밖에 없어요. 갈 때 가면 되지 왜 두려워합니까? 그래서 나는 건강진단 한번 안받고 살았습니다.

 

평소에 자신의 몸의 상태를 파악하고, 거기에 대해 예방할 것은 예방하고, 대비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맨날 잘못 살아놓고, 검사하고, 결과가 잘못 나오면 치료받고, 그렇게 살면 그런 식으로 몇 사이클만 돌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49 그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원래 자기 몸에 지니고 있던 자기방어능력, 자기면역력을 다 상실하게 되지요. 건강한 삶의 지혜만 있어도, 보약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런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고 전부 병원에만 의존하고 있어요. 나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나는 스스로 도덕적으로 살다가, 도덕적 형벌이 오면 그냥 갈 겁니다. 치사하게 병 걸릴 짓 다 해놓고 의사한테 가서 내 병 고쳐주시오. 난 이런 짓 안할 겁니다. 내가 의사이기 때문에 의료체계에 신세를 안질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인간의 도덕성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기 바랍니다.

 

후회할까 걱정하는 것은, 선택의 갈림길에서이다.

 

여기의 憂悔吝者라는 것은 후회할 상황을 우려한다는 말이고, 介라는 것은 사태의 전개상황에서의 미묘한 갈림길, 즉 어떤 상황이 선으로도 갈 수 있고, 악으로도 갈 수 있는 미묘한 갈림길을 말합니다. 여기 이 문장에 계사의 위대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점을 칠 때는, 괘사, 효사에서 길흉의 사태를 읽고, 거기서 다 결정이 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주역의 계사전에서 말하는 것은, 길흉의 사태는 계사, 효사에서 읽을 수 있지만, 우리가 실제로 후회할 짓을 안하는 그런 행동의 문제는, 실제적인 사태의 갈림길에서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산지박괘가 나왔을 때 그걸 단순히 흉한 괘라고 할 수 없듯이.

 

점이라는 것은 介, 즉 갈림길에 봉착했을 때, 내가 이리로 가느냐, 저리로 가느냐 하는 것을 물을 때 치는 겁니다.

 

점이라는 것을 군주에게 도덕성을 주기 위한 하나의 구실을 삼는 거지요. 옛날에 점을 잘 쳤던 사람들은 자기의 도덕적 메시지를 점을 이용해서 말했던 겁니다.

구조조정을 위한 컨설팅 의뢰처럼.

 

50 변해가는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도덕성이 있는 것입니다.

 

54 나는 계사를 내 평생을 통해서 수없이 읽었고, 계사를 읽을 때마다 나에겐 엄청난 깨달음이 왔어요. 그리고 계사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요. 이 계사야말로 정말 엄청난 글입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이런 감정적인 이야기를 하는지 여러분들은 이해가 안갈 겁니다. 그 감격, 진리에 대한 깨달음, 이런 것들을 나에게 끊임없이 주었던 위대한 문장인데, 그 감동을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평생을 두고 읽으면서 깨달아야 할 위대한 문장이 들어 있는 성스러운 인류 최고의 바이블을, 여러분들의 책상 위에 놓고 있다는 그런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이 계사를 읽어주기 바랍니다.

계사와 상황이 잘 맞아떨어지면 마치 성경을 읽을 때 그렇듯 감동의 눈물이 흐를 거 같기도. 나도 문학작품이 아닌 주역에서 위대한 문장을 만나볼 수 있을까.

 

56 여러분들은 지금 이천년 전 문장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천년 후의 단어를 가지고 이천년 전 문장을 해석하면 안되지요.

주역을 읽는 고고학자.

 

幽라는 것은 어둠의 세계고, 明이라는 것은 밝음의 세계에요. 원래 幽는 죽음의 세계, 명은 삶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어른이 돌아가시면 幽明을 달리했다는 말을 쓰쟎아요? / 또 하늘의 세계를 神이라고 하고, 땅의 세계를 鬼라고도 하지요. 여기서 귀신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마찬가지로 혼백이라는 말도, 하늘의 魂, 땅의 魄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겁니다. 이런 말들이 전부 음양론적 세계에서 나온 말들이예요. 그런데, 우리가 죽으면 혼백이 나뉘게 되지요. 혼백이 나뉘는 것을 죽음이라고 하는데, 사람이 죽으면 우리의 시체는 백만 남아 땅으로 들어가고, 혼은 떠서 하늘로 돌아가죠. 이렇게 혼과 백이 다르기 때문에 혼과 백에 대한 제사가 각각 다른 겁니다. 기와지붕 위에 올라가서 하늘에 대고 옷가지를 흔들면서 소리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이것은 초혼이라고 하는데, 전부 혼에 대한 제사형식입니다. 그리고 喪禮나 葬禮에서 草墳이라든가 葬地를 만드는 것 등은 백에 대한 제사형식입니다. 혼백이 그렇게 다르고, 귀신이 다르고, 사생이 다르고, 유명이 다르고, 음양이 다르고, 천지가 다르다는 것, 이것이 전부 주역의 원리예요. 그리고 이것은 천지라는 세계관 속에서 이루어진 겁니다. 그래서 知幽明之故, 주역에 통하면 이렇게 죽음과 삶의 이치를 다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상에서 넘겨 들었던 유명을 달리한다가 저런 한자였구나. 귀신과 혼백도 그렇고, 무의미하게 생각한 제사라는 것도 그렇고.

 

59 , 제식이라는 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한다면, 내가 죽은 다음에 여러분들이 내 책을 읽는다는 것도 내 혼에 대한 여러분의 제사일 수도 있는 거지요. 그 행위를 통해서 우리의 문명이 연속성을 가질 수 있다면 말이지요. 어쨌든, 이런 모든 것이 原始反終의 원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60 억울한 죽음들, 여기에는 반드시 굿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80년대 투쟁 속에서 억울한 죽음이 있으면, 신촌에서 노제 지내면서 이애주씨가 맨발로 춤추던 것이, 전부 우리나라 굿의 전통에서 나온 겁니다. 억울한 죽음들에 대한 원혼을 풀어준다는 것. 이것은 주역의 원리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61 不及이나 過나 허물이기는 마찬가지지만, 불급한 것은 대개 큰 허물은 되지 않습니다. 큰 허물은 대개 지나치는 데서 생긴단 말이죠. 지나침이 곧 허물이예요.

 

62 그러니까 모든 인간의 자유라고 하는 이 우연의 세계는 64괘의 필연에 의해 묶여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시면서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旁行而不流, 두루두루 통하지만 막나가지 않고, 그럼으로써, 64괘의 변역의 원리를 알면, 樂天知命 故不憂, 하늘을 즐길 줄 알고, 명을 알게 됩니다. 낙천지명이라, 유명한 말이죠. 고로 인간은 근심에서 벗어납니다.

 

63 神无方而易无體라. / 나는 이 구절을 대학교 3학년 때 읽으면서, 그 때 누가 나에게 이런 강의를 해줬겠어요? 혼자 앉아 가지고 읽고 또 읽다가, 그 때 읽던 판본이 여기 있습니다. 하여튼 혼자 읽다가, 여기서 나는 좍 눈물을 흘렸어요. 주역을 놓고, 무릎을 꿇고 절했어요. 서양 철학은 갔다. 여기서 나는, 플라톤부터 헤겔까지의 모든 역사가 끝났다고 외쳤어요. 이걸 읽고, 동양철학으로 방향을 잡고, 거기서 내가 대만유학을 떠난 겁니다. 神无方而易无體, 이것이 내 인생을 뒤바꾸어 놓은 명언이예요.

도올의 주역 강의를 동영상으로 찾아서 봐야겠다. 그 음성 그대로 감동을 전달 받고 싶다.

 

顯諸仁 藏諸用이라(역은 예민한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일상생활에서는 자신을 감춘다). 이것도 정말 기막힌 말입니다. 정말 계사는 죽여줘요. 어떻게 인간의 언어가 이렇게 압축되고, 이렇게 끊임없이 사람을 매혹시킬 수 있는가. 계사는 읽을 때마다 경이롭습니다. 계사는 경이로와요.

 

66 여기서 덕이라는 것은 시간성이고 업이라는 것은 공간성입니다. 덕은 나의 존재를 통해서 쭉 연속되어 가는 귀신의 세계를 말하고, 업은 사회적 연대성의 문제를 말합니다.

 

68 한의학에서는 하늘의 원리를 다스리는 대표적인 약이 인삼이고, 땅의 원리를 다스리는 대표적인 약이 熟地黃이라고 합니다. / 그리고 여러분, 진피라고 알아요? 귤껍질 말린 것을 진피라고 하는데, 이게 별 것 아닌 거 같지만 유명한 약재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늘의 원리를 다스리는 약인데, 이것을 써서 실제로 사람을 고쳐보면, 놀랍습니다. 효험이 좋아요. 이렇게 주역의 원리, 하늘과 땅의 원리에 의해서 짜여진 약재들이 인간의 하늘과 땅을 전부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약재의 이름도 하나같이 멋지다. 當歸는 마땅히 돌아간다(회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71 내 나이가 50인데,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주역계사는 내게 끊임없는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계사를 읽으면서 많은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4: 1997710일 목요일

 

78 학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어도 그 새끼가 화답하네. 나에게 좋은 술잔이 있으니 너와 함께 마시고 싶구나.

 

외면적 표현은 굉장히 심플한 효사지만 그 메타포가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주역은 이런 의미에서 효사 자체가 엄청난 시일 수도 있어요.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게 하거든요. 마치 시경의 한 싯구같기도 하고……

나도 풍택중부의 저 말이 너무 좋았다.

 

81 인간의 silence는 그저 단순한 침묵이 아닙니다. 모든 침묵 그 자체가 웅변이고 語가 함축된 默이죠. 침묵도 말이라는 거야. 이 語와 默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중요한 언어의 밸런스인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침묵할 때와 주장할 때를 잘 가려서 살아야 돼요. 아무 때나 함부로 얘기해도 안되지만, 또 때에 맞게 말해서 사태를 결정적으로 전환시킬 수도 있는 겁니다. 욕도 아무 때나 해서는 안돼요. 욕이라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죠. 욕도 때에 맞게 해줘야 상대방에게 깨달음이 올 수도 있고 내 화가 풀릴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語默이라는 것은 동양에서 상당히 중요한 삶의 테크닉이며 리듬인 것입니다.

도올은 욕 잘할 거 같음. 요새 모 드라마에서 김선아 욕이 대단한 모양이던데.

때에 맞는 찰진 욕은 그걸로 예술이다.  

 

87 <주역>에서는 이 대인이 참 중요합니다. 아무리 자신이 용이라 해도 반드시 혼자 힘만으로는 성장할 수 없어요. 이게 주역의 원리이고 커뮤니티의 원리입니다. 인간은 개체적 존재로만 존립할 수 없어요. 글자 그대로 인간은 기가 교감되는 사람의 사이란 뜻이쟎아요? 그러니까 실세의 용이 되려면 반드시 인간 사회에서 대인을 만나야 돼요.

 

여러분들이 혼자 주역을 공부하려고 해봐, 얼마나 어렵겠어요. 하지만 내가 30년 공부한 것을 강의로 들어가면서 공부하니까 머리 속에 탁탁 들어오쟎아요. 이게 점프예요. 집약된 정보를 한꺼번에 들여마시는 엄청난 점프입니다.

그러게요. 혼자 공부하려니 막막했는데 20여 년 전의 강의록을 통해 이렇게 작게나마 점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연애를 통해서도 인성의 도약을 만나기도 하죠. 나도 그런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성관계처럼 대인을 만나는 좋은 케이스가 없어요. 이만큼 짙고 밀접한 관계가 없거든요. 이별하면서 상대방이 던진 그 가슴 아픈 한마디가 인생에 엄청난 비약을 줍니다. 물론 학교에서 위대한 스승을 대인으로서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경우겠죠. 하지만 친구들 중에서도 대인으로 삼아 엄청나게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만났을 때 딱! 압도를 당하는 사람이 분명 있더라니까요. , 저 친구는 이쪽 방면에서 있어서만큼은 저렇게 엄청난 공부를 쌓았구나, 그러면 내가 자극 받고 분발하게 되어 조금 지나고 나면 다시 그 친구와 비슷해지면서 도약을 느끼게 됩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대인을 만날 때 점프하는 겁니다.

 

용의 심볼이 뭔지 여러분들 알고 있나? 물에서는 고래처럼 살 수도 있고 뭍에서는 걸어다닐 수도 있고 날아서는 하늘을 휘어잡는, 그렇게 三世를 왔다 갔다 하는 동물이쟎아요. 대단한 imagination이죠. 구오에 이르면 그 삼세를 다 아우르고 승천의 시기에 접어든 겁니다.

그러고 보니 용이 대단하네. 3세를 아우르고 승천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역시 멋지다.


(2부는 다음 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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