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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5일 21시 33분 등록
저자소개

오비디우스( Publius Ovidius Nasō,  BC 43 ~ AD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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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는 게 편리하다. 신이 있는 게 편리하니 신이 있다고 믿자.”

 신이 있는 것이 오비디우스에게는 편리해서였을까, 그의 대표작 <변신 이야기>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못하는 온갖 괴상망측한 변신이야기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로마식 버젼인 <변신 이야기>는 신화의 여러 측면 중 '변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5권에 달하는 서사시와 같은 방대한 저술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대성하고 있으며, 후대의 서양예술가들에게 창조적 예술을 위한 풍부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오비디우스는 로마사와 로마 문학사에서 흔히 ‘아우구스투스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태평성대에 태어났다. BC 43년 중부 이탈리아 펠리그니의 술모(Sulmo, 현재 술모나)의 기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베르길리우스, 호레이스와 함께 고대 로마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현대인들에게는 로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그리스.로마 신화를 집대성한 <변신 이야기>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그는 한 살 위인 형과 함께 로마에 가서 당시 엘리트 코스에 따라 법률가나 정치가가 되기 위해 수사학을 공부한다. 공부를 마친 뒤 그리스의 아테나이와 소아시아와 시킬리아를 여행하고 로마로 돌아와 하급 관리직에 취임했으나 문학에 대한 미련 때문에 관직을 버리고 시인이 된다.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 찬 로마 상류사회의 사교계에 데뷔한 오비디우스는 빼어나고 화려한 시와 작품를 통해 상류층 젊은 남녀들에게 큰 지지를 받게 된다.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등 선배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오비디우스가 로마의 문학계를 대표하여 시인으로서의 최고의 명예를 누리던 어느 날 그의 책 <사랑의 기교 ArsAmatoria>가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게 된다. 그 여파로 인해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인 흑해 서안(현 루마니아의 콘스탄차)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오비디우스가 아우구스투스의 딸과 손녀와 놀아났기 때문에 이에 분노한 아우구스투스가 그를 유배시켰다는 이야기가 있다. 오비디우스는 추방당한 뒤, 유배지에서 <비가 Tristia>)와 <흑해로부터의 편지 Epistulae ex Ponto>등의 저서를 집필했다. 오비디우스는 유배지에서 쓴 책들을 통해 유배의 고통을 표현하고, 귀향을 간청하는 다수의 시를 남겼으나 그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끝내 귀국은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로마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비참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유배된 지 10년 만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2017년 12월 로마 시의회는 오비디우스의 추방을 취소한다는 발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고대 로마 문학의 황금기를 이끈 시인의 추방이 2000년 만에 철회된 셈이다. 살아서 조국딸을 밟지 못했던 천재 시인은 사후 2000년이 지나서야 그 명예를 회복하고 조국으로 귀환을 허락받았다.

 그의 초기 작품은 <사랑의 기술>에서 드러나듯이 방종하고 관능적이며 화려한 색깔을 띄지만. 만년에는 유배생활의 영향으로 타향의 황량한 자연과 외로운 심정을 읊은 시를 많이 내놓았고 후대에 이르러 그의 시는 세익스피어(W. Shakespeare)ㆍ밀턴(J. Milton)ㆍ스펜서(Ε. Spencer)와 같은 내노라하는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작금의 현대 유럽 문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변신이야기Metamorphoseon Libri>, <여류의 편지 Heroides>, <사랑의 기교 ArsAmatoria>, <여걸들의 서한Heroides>, <비탄가Tristia>, <흑해에서의 편지Epistulae ex Ponto>, <로마의 축제일Fasti>, <여성의 얼굴화장법Medicamina FacieiFemineae> 등이 있다.



내 가슴을 무찔러드는 글귀

변신이야기 1

1.모든 것은 카오스에서 시작되었다

> 그 시기에 우주를 관통하는 통찰이 있었군.

p16
만물은 서로 반목하고 서로 방해만 했을 뿐이었다. 한 가지 질료 안에 있으면서도 추위는 더위와, 습기는 건기와, 부드러움은 딱딱함과, 무거움은 가벼움과 싸우고 있었다.

이 같은 반목에 종지부를 찍은 이는, 이런 요소들보다는 훨씬 빼어난 자연이라는 신이었다.

p18
이 밖에도 신은 맑고 투명한 아이테르(푸른 하늘)를 만들었다. 이 아이테르는 무게가 없는 것으로서, 어떤 지상적인 것으로도 더럽힐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존재다.

> 정말 순결하고 맑은 하늘에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닌가 싶다. 미세먼지로 점령당한 조국의 하늘이여. 

p19
남아 있는 흙덩어리를 강물에다 이겨, 만물을 다스리는 조물주와 그 모양이 비슷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늘 시선을 땅에다 박고 다니는 데 비해 머리가 하늘로 솟아 있어서 별을 향하여 고개를 들 수도 있었다.

> 미래를 지향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가 발전하며 문명을 가지게 됨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인간이 우주와 신에게 경외심을 가지는 유일한 이성적 존재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p21
크로노스는 자식을 낳은 족족 잡아먹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크로노스의 이러한 속성은 태어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 자체의 속성을 상징한다. 사투르누스는 자기 자식인 유피테르 6남매도 모조리 삼켰다가 다시 토해 낸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유피테르 6남매가 이로써 시간을 극복했음을 상징한다.

p22
도처에 우유의 강, 넥타르(신주)의 강이 흘렀고 털가시나무 가지는 시도 때도 없이 누런 꿀을 떨구었다.

> 언제나 시작은 에덴동산이다. 죄를 저질러서 쫓겨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사투르누스가 저 암흑의 타르타로스(무한지옥)에 갇히고 세상의 지배권이 유피테르의 손으로 넘어오자 이윽고 시대는 변하여 은의 시대가 되었다.

> 황금의 시대가 종료되고 유피테르가 실권을 잡고 은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 다음 청동의 시대, 그리고 그 다음 철의 시대가 오면서 인간은 점점 악해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순결의 시대에서 죄악의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p30
노토스의 수염은 비에 젖어 있어서 늘 무거웠다. 그의 백발에서는 늘 물이 뚝뚝 들었고, 눈썹은 늘 안개로 덮여 있었으며, 옷과 깃에서는 늘 물이 줄줄 흘렀다. 

p39
물과 불은 비록 상극이기는 하나 습윤한 온기는 만물의 근원이었다. 말하자면 물인 습기와 불인 온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 음양의 조화가 바로 이것이 아니던가. 

p48
나무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포에부스 아폴로는 다프네를 사랑했다.

> 월계수가 된 다프네. 다른 신들과 달리 아폴로의 러브스토리는 가슴이 아프다.

p53
이오는 하는 수 없어서 발굽으로 땅바닥에다 제 이름을 써서 암소로 둔갑하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다.

p56
뒤따라온 목신은 쉬링크스가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겠거니 여기고 쉬링크스의 옷자락을 덥석 잡았다. 그러나 잡고 보니 손에 잡힌 것은 한줌의 갈대일 뿐이었다.

> 팬 플루트의 유래

p57
사투르누스의 딸(유노)은 이 눈을 수습하여 자기 신조인 공작의 깃과 꼬리에다 달아주었다.

> <변신 이야기> 중 몇 안되는 변장 이야기이다. 

p58
이제 이오는 어엿한 여신이 되어, 흰 옷 입은 신관들을 거느린다

> 이집트 풍요의 여신 이시스와 동일한 여신으로 추앙된다.


2 . 신들의 전성시대

p66
이것은 명예가 아니고 파멸의 씨앗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이 은혜가 아니고 파멸이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 이미 파에톤은 이성을 잃었다. 분별없는 마음은 하늘을 날고 있는 그의 모습 이외는 아무것도 보지 못 하고 있다. 닥친 후에야 깨닫는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 위해 오늘도 나는 북리뷰와 칼럼에 매진하리라.

p73
아이디오피아 사람들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열기 때문에 피가 살갗으로 몰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리뷔아가 사막이 된 것도 이때였고

> 변신은 생명체나 개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하나의 종족을 변신시키고 자연을 변화시킨 경우이다.

p77
벼락 하나에 파에톤은 수레를, 그리고 이승을 하직했다. 파에톤은 자신이 불덩어리가 됨으로써 우주의 불길을 잡은 것이다.

> 어리석은 인간의 최후 중에서 이보다도 강렬한 최후를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p78
이날 하루만은 태양이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타오르던 불길이 세상을 비추었더란다. 세상을 태우던 불길이 하루만이나마 세상을 비추었다는 이야기가 묘하다. 그러고 보면, 재앙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익한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모양이다.

p80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무 껍질이 딸들(헬리아데스)의 입을 막았다. 이 나무 껍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태양빛에 굳으면서 호박 구슬이 되어 가지에서 강물로 떨어졌다.

p88
별이 된 모자

> 제우스에 의해 신세 망친 가련한 칼리스토와 그의 아들 아르카스의 슬픈 이야기. 하늘의 별자리가 되는 것이, 신이 되는 것이 영원으로 가는 길일까? 딴 생각할 것 없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열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일듯 하다.

p96
오퀴로에는 신기가 오르자, 아폴로가 데려다 맡긴 아기(코로니스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 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기야, 세상 사람의 건강을 돌볼 팔자를 타고난 아가야, (...) 필멸의 인간 중에 너에게 목숨을 빚질 인간이 어찌 한둘이겠느냐? (...) 네 조부의 벼락이 너를 쳐서 네가 얻은 은혜를 앗아갈 터인데 이 일을 장차 어쩌랴. (...)"

> 아폴로의 아들, 의성 아에스쿨라피우스(그/아스클레피오스... 아... 이름 복잡하다)는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었다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벼락에 맞아 죽는다. 이 의성의 얘기가 책에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드문드문 언급되는 것외에 이야기가 없어 따로 조사해보았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 신화 최초의 의사이자 의학의 신이다.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워 죽은 사람들까지 살리는 신묘한 의술을 베풀지만, 하데스의 불만을 듣고 제우스가 벼락을 내리쳐 죽게 된다. 그러자 아들을 잃은 아폴론은 화가 나서 제우스에게 벼락을 만들어준 키클롭스를 모두 죽여버린다. 변신이야기 후반부에 아폴론이 귀양을 가서 1년동안 소를 돌보는 벌을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그 사건때문에 제우스가 벌을 내린 것이다. (키클롭스 :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 태어난 외눈박이 삼형제 - 브론테스, 스테로페스, 아르게스 -를 총칭하는 말)

p101
메르쿠리우스는 이 노인을 단단한 돌로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시금석이라고 불리는 돌이 바로 이 돌이다. 그래서 이 돌에는, 옛날에 거짓말하던 흔적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고 한다.

> 시금석은 직접적인 의미는 금의 품질을 판단하기 위해 사용되는 광석. 어떤 사물의 가치나 어떤 사람의 능력 등을 평가하는 데 기준이 될 만한 사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 되었다.

p104
인비디아(젤로스)는, 어둡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집에 살고 있었다. 그 집은, 햇살이 비치기는 커녕 바람도 한 점 불지 않는 깊은 계속에 있었다. 이 집 안은, 손가락이 곱을 만큼 추웠지만 불기가 없는 데다,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 있어서 늘 어둠에 잠겨 있었다

> 질투가 이런 느낌인가??

p105
인비디아의 안색은 창백했고 몸은 형편없이 말라 있었다. 게다가 인비디아는 지독한 사팔뜨기였다, 이빨은 변색된 데다 군데군데 썩어 있었고, 가슴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이 인비디아의 입술에 미소가 감돌게 할 수 있는 것은 남이 고통받는 광경 뿐이었다.

> 질투가 이렇게 흉칙한 모습이던가... 질투로 가득찬 누군가를 보게 되면 이 질투의 여신의 몰골이 떠오를것 같다

인비디아는 잠이라는 것을 알지 못 했다. 밤이고 낮이고 근심 걱정에 쫓기고, 남의 좋은 꼴을 보면 속이 상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나날이 야위어가는 것이 인비디아였다. 남을 고통스럽게 하면 하는 대로, 자신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대로 저 자신만 녹아나는 게 바로 인비디아였다.

> 질투를 참 끔찍하게 잘 표현한 듯 하다.


3 . 박쿠스의 탄생 외

p113
포에부스 아폴로의 대답은 이러했다.
"인적이 드문 데서, (...) 암소 한 마리를 만날 것인즉, 그 소를 따라가거라. 그 소가 가다가 풀밭에 눕거든 거기에 성을 쌓고, 이름을 보이오티아(소의 땅)라고 하여라"

> 테바이 도시의 유래. 왕과 왕족에게 신화로 그 지배의 명분을 부여하듯이 고대도시의 탄생 역시 모두 신화(우리식으로 말하면 전설)가 담겨 있다.

p123
전해지는 말로는, 악타이온이 그 많은 사냥개에게 뜯기어 숨이 끊어질 즈음에야..... 저 사냥의 여신 디아나(아르테미스)의 분이 풀렸다고 한다.

> <변신이야기>에는 가련한 여인네들이 참 많이 나온다. 남정네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불쌍한 인간이 악타이온이다. 여신의 전신을 다 본것도 아니고, 머리와 어깨만 쳐다봤다고 기르던 개에 물어뜯겨 죽게 하다니. 한마디로 "뭘봐 썅"하고 내지른 주먹에 멋모르고 한대 맞고 황천길로 간 셈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p127
그러나 세멜레는 인간이었다. 세멜레의 육체는 인간의 육체였다. 인간의 육체는 이 천궁의 신이 내뿜는 광휘를 견딜 수 없었다. 세멜레는 이 유피테르의 광휘 앞에서 새카맣게 타죽었다

> 끔찍하게 죽거나 이상한 새나 돌 따위로 변신한 다른 여인네들보다 그나마 나은 최후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본인이 자초한 일이고, 사랑하는 신의 광휘에 타 죽었으니 말이다. 

유피테르는 이 세멜레의 뱃속에 들어있던, 아직 달이 덜 찬 아기(주신 박쿠스)를 꺼내어 자기 허벅다리에 넣고 실로 기운 뒤, 남은 달을 마저 채워 꺼냈다고 한다.

> 거듭 태어난 박쿠스

p128
그러자 유노는 별것도 아닌 이 일에 불같이 화를 내며 이 테이레시아스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가장 잔인한 신이라면 유노(헤라)를 꼽을 수 있다. 가정을 지키는 일이 그만큼이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리라. 가끔 아내에게서 유노의 얼굴을 보곤 한다. 그럴땐 신의 분노를 기억해야 한다. 새 되기 전에.

p129
그래서 유피테르는 보는 능력을 빼앗긴 테이레시아스에게 대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눈을 주었다.

p132
여위어가다가 여위어가다가 에코의 아름다운 몸은 그만 한줌의 재로 변하여 바람에 날라가고 말았다. 남은 것은 뼈뿐이었으나 곧 이 뼈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버리자 마지막으로 소리만 남았다

> 그래서 그런지, 메아리는 참으로 절절하다. 아직도 미련이 남은 것일까. 

p136
아, 그랬었구나. 내가 지금껏 보아오던 모습은 바로 나 자신이었구나. 이제야 알았구나. (...)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구나

> 사랑이 아니라 처절한 집착이다.

p138
요정들은 그(나르시스)의 시신 대신 흰 꽃잎이 노란 암술을 싸고 있는 꽃 한 송이를 찾아내었다.

> 수선화

p147
신께서는 어느 틈에 포도송이 관을 머리에 쓰시고, 포도덩굴이 감긴 신장을 들고 서 계셨습니다.

p153
그리스인들이 부르는 이 주신의 별명은 이 밖에도 얼마든지 더 있다.

> 박쿠스(디오니소스)의 별명들은 죄다 술 먹고 드러나는 인간군상들이다. 신 이름을 로마식과 그리스식으로 기억하는 것만으로 벅차다. 요정과 인간 이름까지는 무리다...


4 . 페로세오스와 메두사 외

p154
그의 뒤로는 많은 박쿠스 신도들과 사튀로스(반인반양의 목신)들이 따른다. 지팡이를 짚고 비틀거리며 걷거나, 허리가 휜 노새 잔등에 어정쩡하게 몸을 싣고 다니는 주정뱅이 노인(박쿠스의 스승인 주정뱅이 실레노스)도 늘 그의 뒤를 따른다.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서든 젊은 청년들의 환호성과 여자들의 함성, 방울북, 바라, 회향 대롱피리 소리가 울려퍼진다

> 우리 나라 밤거리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비틀거리며 활보하는 술 취한 사람들, 현란한 네온사인, 욕지거리와 환호성, 현대사회는 주신을 모시고 찬양한다.

p159
"너울이여, 티스베의 피를 마셨으니 이제 내 피도 마셔라. 그럴 때가 되었다"
이러면서 퓌라모스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자기 옆구리를 푹 찌른 뒤, 있는 힘을 다해 이 뜨거운 상처로부터 칼을 뽑아내었어.

> 그리스판 로미오와 줄리엣. 비극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세익스피어는 이 신화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p161
나무여, 이미 내 사랑의 주검을 보았고 곧 내 주검을 내려다볼 나무여, 우리의 죽음을 영원히 기억하시어 사람들이 우리 둘이 흘린 피를 되새기도록 그대 열매를 어둡고 슬픈 색깔로 물들여 주세요

> 뽕나무가 이렇게 슬픈 사연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뽕 따러 가세"란 노래를 그렇게 신명나게 부르지는 못 했을게다.

p165
쿠피도의 화살을 한 대 맞자 태양의 불길로 세상을 달구던 이 태양신이 이번에는 사랑의 불길로 타오르기 시작한 거야

> 다프네에게 그랬던 것처럼 레우코토에에 반한 것도 쿠피도의 화살을 맞아서였는데, 이 태양신의 평소의 진중한 성격을 알만하다.

p168
신주에 젖은 레오코토에의 몸이 스르르 녹으면서 주위로 향기가 퍼져나갔다지. (...) 이 나무가 바로 유향목이야

> 아폴론의 사랑 역시 둘 다 비극이었지만, 제우스 등 다른 신들에 비해 그 스토리가 아름다운 것은 아마도 찬란히 빛나는 태양의 속성 때문이리라.

p169
클뤼티에는 즉었으면 죽었지 땅바닥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대. 앉은 채로 하늘을 지나는 태양신을 눈으로 쫓았다는 거야.

> 클뤼티에가 결국 해바라기로 변하리라는 것을 미리 직감할 수 있었다. 태양을 사모하는 해바라기의 슬픈 사연 ㅜ.ㅜ

p176
헤르마프로디토스의 부모는 이 기도를 듣고, 반남반녀, 어지자지가 된 아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었어

> 남녀추니, 어지자지, 영어로 허머프로다이트(hermaphrodite) 양성인의 유래다.

p182
인정 사정을 모르는 티시포네(푸리아에 세 자매중 둘째)는 피가 뚝뚝 듣는 횃불을 들고, 횃불에서 떨어진 피에 진홍빛으로 물든 옷을 입고는 배암을 띠삼아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제 집을 나섰다. 티시포네 옆으로 하나같이 무표정한 <슬픔>, <공포>, <불안>, 그리고 <광기>가 따라붙었다.

p188
나는 뱀이 될 것이오 (...) 카드모스는 살갗위로 비늘이 덮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아내 하르모니아와 함께 뱀이 된 카드모스의 삶은 기구하기 이를데 없었다. 이 신화세계에서 신들과 엮인 왕족으로 사느니 평범한 촌부로 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p194
히포테스의 아들(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이 바람이라는 바람은 다 그 동굴 감옥에다 가둘 즈음 루키페르가 하늘 높이 떠올라 산 것들에게 하루의 시작을 알릴 즈음이었다

> 바람 없는 날 아침이었다


5 . 무우사의 탄생 외

p217
어미 에우이페는 아홉 번이나 저 위대한 여신 루키나(그/에일레이튀아, 유노의 딸인 해산의 여신)를 불러 그분의 도움을 받아 딸 아홉을 낳았다고 합니다

p222
팔라스와 저 사냥쟁이 디아나는 네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있지 않느냐


p227
여신(케레스/데메테르)은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자 이번에는 땅에 명하여 농부들의 믿음을 저버리게 하고, 씨앗에 명하여 싹을 틔우지 못 하게 했어. 비옥하기로 소문나 있던 그 고장 땅은 여신의 명을 받들어 황무지로 둔갑, 농부들의 희망을 저버려도 철저하게 저버렷고, 씨앗은 여신의 명을 받들어 싹의 틔우지 않거나, 싹을 틔우더라도 곧 말라버렸다지

> 개미떼와 같은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p229
그대는 사상에 이름을 붙이되 온당한 이름을 붙여야 하오. 우리 딸을 데려간 자의 행위는 약탈행위가 아니라 조금 도를 넘은 사랑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p232
일년을 반으로 나누고는, 일년의 반은 어머니의 나라인 땅, 나머지 반은 지아비의 나라인 저승에서 지내게 한 것, 그러니까 프로세르피나는 이 두나라에서 번갈아가며 살 수 있게 된 것이지

> 페르세포네의 운명 - 씨앗의 운명을 상징한다.

p235
이 때의 제 기분이 어떠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이리 우는 소리를 들은 어린 양, 아니면 덤불 속에 숨어 무서운 사냥개의 주둥이를 보면서 굽도 젖도 못하고 있는 메토끼의 심정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 강의 신 알페이오스에 쫓기는 아레투사의 심정이 잘 묘사된 듯 하다. 


6 . 신들의 복수

p242
모두가 겁에 질려 몸둘 곳을 몰랐다. 아라크네만 제외하고. 
아라크네는 벌떡 일어났다. 아라크네의 빰은 잠깐 붉게 상기되었다가는 곧 핏기를 잃었다. 새벽의 손길에 붉게 물들었다가 해가 돋으면서 창백해지는 하늘빛 같았다. 아라크네는 제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오직 이길 수 있다는 일념으로 제 운명과 맞서려 할 뿐이었다.

> 멋지다! 이라크네! 신의 아성에 도전했고 결국 신의 경지를 뛰어넘은 휴브리스의 최고 경지를 보여준다.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신에게 파멸당한 것은 그 시대 이야기의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무지개가 지닌 여러 가지 색깔의 띠는 맞물리는 곳에서는 하나로 보이지만 여기에서 조금만 멀어지면 전혀 다른 색깔로 보이는 법이다

p248
겨루기 상대의 솜씨가 인간의 도를 넘은 데 격분한 이 금발의 여신은 신들의 비행을 낱낱이 폭로한 이 베폭을 찢어버리고는, 들고 있던 퀴토로스 산 회양나무 북으로 이라크네의 이마를 서너 번 때렸다

> 지혜의 여신 아테네가 이렇게 치졸한 아줌마였다니

p257
참을 길 없는 슬픔은 이 니오베의 몸을 돌로 화하게 했다. 산들바람도 이때부터는 니오베의 머리카락을 흩날리지 못했다

> 신에 대한 오만은 파멸을 낳는다. 하지만 니오베의 오만은 아라크네의 휴브리스와는 전혀 다르다. 니오베의 오만은 과거와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오만을 상징한다

p260
그런데 호숫가에 있던 농부들은 여신에게 그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여신은 이들에게 애원했지요.

> 변신이야기를 통해 신이 인간에게 애원을 하는 첫 장면인 듯. 물론 여인네들을 꼬시려는 남신들의 애원을 뺀다면.

p264
필로멜라를 보는 순간 테레오스의 가슴속에서는 욕망의 불길이 오르기 시작했다

> 비극의 암시. 신의 인간을 향한 욕망의 불길에는 고통을 받게 되지만, 인간대 인간의 관계에서 비뚤어진 욕망은 가해자, 피해자 모두의 파멸을 가져오게 된다.

p274
프로크네는 박쿠스 신의 광란에 쫓기는 신도로 가장하고 있었으나 사실 프로크네가 쫓는 것은 슬픔 뒤에 오는 분노였다

> 복수혈전의 서막이 오르고 있다.

p277
이 이튀스의 몸이 산 사람의 몸과 다름없이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데도 자매는 이 아이의 사지를 몸에서 발라내었다. 

> 신이나 인간이나... 신은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쳐도, 인간이 인간에게, 그것도 자식에게 이럴 수 있을까. 잠시 광분하였지만, 뉴스에 흔하게 나오는 친모에 의해 저질러진 끔찍한 범죄 사건들이 생각나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p280
보레아스(북풍의 신)는 지저분한 외투자락을 산꼭대기 위로 끌면서 땅으로 날아내려와 검은 구름에 가린 그 날개로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오리튀이아를 채어올라갔다.


7 . 영웅의 시대

p292
이윽고 달이 그 둥근 얼굴로 온 세상을 내려다보게 된 날 밤, 메데이아는 발 밑까지 치렁치렁 드리워지는 옷차림에 머리는 풀어 어깨 위로 늘어 뜨린 채 맨발로 집을 나왔다

> 마녀! 메데이아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요정이 아닌 인간으로서 최고의 스토리를 가진 마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p297
노구에서 보기에 거북하던 모습이 사라지면서, 살빛이 되살아났다. 주름살에 덮여 있던 그의 살갗은 다시 근육으로 부풀어 올랐고

> 변신이야기를 통틀어 가장 긍정적이고 해피한 변신이다. 신이 인간들을 온갖 잡새로 변신시키고 있을때, 메데이아는 노인을 젊은이로 변신시켰으니 그녀가 신보다 낫다.

p303
퀴크노스가 백조로 변신한 이야기

> 변신이야기를 통틀어 가장 많이 변신된 것이 백조인 듯 하다. 또한 백조는 그나마 선한(?) 의도로 변신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고대 그리스인들이 좋아하는 새란 얘기겠지.

p306
메데이아는 주문을 외어 검은 구름을 일으키고는 그 안으로 숨어들어가 죽음을 면했다.

p318
나는 밖으로 나가, 꿈쏙에서 본 것과 똑같은 듯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 뮈르미돈 족의 유래. 한 종족이 왕에게 신심의 대가로 주어지다니 이럴 때 보면 신도 통이 크긴 하다

p322
원래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에는 불안이라는게 도사리고 있는 법입니다.

p329
아 그런데 프로크리스였소! 프로크리스는 창에 맞은 가슴을 움켜지고 외치더군요, <오! 내 팔자여!>하고요.

> 원문을 찾아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번역솜씨가 아닐 수 없다.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신화의 패턴을 보건데 사랑하는 커플이 둘다 미남 미녀인 경우 그 결말이 좋지 않은 듯 하다.


8 . 인간의 시대

p333
높은 탑루에서 크레타 진영 한가운데로 뛰어내리든, 청동 빗장이 단단히 걸린 성문을 열어주든, 미노스 왕이 좋아할만한 일이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p335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저 자신의 신이 되어 저 자신의 뜻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의 여신은 행동하는 인간을 돌보실 뿐, 기도만 하고 있는 인간은 돌보시지 않는다.

스퀼라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 인간의 근심을 치료하는 전능한 의원인 밤이 찾아왔다. 어둠은 스퀼라를 담대하게 했다

> 여기에 박쿠스 신의 가호가 더해지면 무적의 전사로의 변신도 가능한 것이다.

p336
스퀼라가 저지른 이 전대미문의 죄악에 기겁을 한 미노스 왕은 이런 말로 스퀼라를 꾸짖었다

>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었을때, 그녀의 아비 낙랑 태수 최리의 마음이 이러지 않았겠는가. 낙랑공주는 죽임을 당했지만, 스퀼라는 죽지 않은 걸 보면 미노스왕이 그래도 딸을 사랑했나 보다

p346
다이달로스가 불운한 아들의 주검을 장사지내고 있을 즈음 수다쟁이 자고새 한 마리가 진흙밭에서 이것을 보고는 날개를 치며 재미있어했다.

> 그가 시기와 질투로 죽인 조카에 대한 천벌을 받은 셈이다.

p359
이들을 죽이는 죄를 지음으로써, 원통하게 죽은 아우들에 대한 죄의식을 닦고자 마음먹은 것이었다.

> 프로크네 자매와 마찬가지로 천륜을 져버리려 하는구나. 

p361
멜레아그로스는 불굴의 용기로 그 고통을 참아내려 했다. 그러나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였다. 그는 자신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죽어가고 있음을, 불명예스럽게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는 슬퍼했다.

p362
디아나 여신은 (...) 나머지 자매들의 몸에는 모두 깃털이 돋게 하고, 팔이 있던 곳에는 날개를 달아주었다. 여신은 이들에게 뾰족한 부리까지 주어 하늘로 불러올렸다.

> 더이상 인간으로 살기 고통스러운 이들을 구원하고자 여신이 이들을 새로 변신시켰으니 몇 안되는 훈훈한 변신케이스들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p370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바우키스는 필레몬의 몸에서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고, 필레몬은 바우키스의 몸에서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았네. (...)
<잘 가게, 할미>
<잘 가요, 영감>
이들이 이러는데 얼굴이 나무껍질로 덮이면서 이들의 잎을 막아버렸지

>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인간이 식물로 변하는 케이스들중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p374
대지가 곡식이 무엇인지 나무가 무엇인지 모르는 참으로 황량한 불모지가 있다.  저 얼어붙은 한기, 창백, 전율, 그리고 늘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는 파메스가 사는 땅이 바로 여기다.

> 기아의 여신 파메스(그/리모스)가 사는 곳답다.


변신이야기 2

9 . 헤라클레스 외

p22
참된 것에다 거짓된 것을 섞기 좋아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눈덩이처럼 불리기 좋아하는 파마 여신

> 소문의 여신. 연예계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신 중 하나다. 흔히 '짜라시'라는 곳에서 그녀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다.

p31
헤라클레스는 이 헤라가 부과한 열  두가지 난사를 무사히 치러냄으로써 헤라를 욕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헤라를 영광되게 했다. <헤라클레스>라는 말은 <헤라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p36
팔자가 기구한 인간이 하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면, 내 신들께 맹세코 말하거니와,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 독자인 내가 봐도 천부당 만부당하다. 인간만 사는 세상에서도 억울한 일이 태반인데, 신까지 같이 사는 세상에서 더 억울한 일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억울함은 인간의 생각일뿐, 신은 도덕적이거나 합리적인 이 세계의 중재자가 아닌 셈이다.

p38
유노의 딸 헤베가 지아비 된 헤라클레스의 부탁을 받고 이올라오스를 되젊게 한 것이었다.

p48
적어도, 내 기도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뷔블리스라는 내 이름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p56
이노의 옆에는 개의 머리를 한 아누비

> 아누비는 이집트 석화에서 흔히 보는 자칼의 머리를 한 사자(死者)의 신이다. 즉, 로마신화는 그리스, 로마, 이집트, 아시아 신화의 짬뽕인 셈이다. 로마가 전 유럽을 지배하고 팍스 로마나 시대를 연 이유 중 하나가 이교문화를 관용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 있다.

p62
처녀로서 약속드렸던 이피스의 제물을,
청년이 된 이피스가 드리나이다.


10 .  오르페우스의 노래 외

p69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 사람들에게 이런 풍습을 맨 처음 전한 사람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동성애를 말한다. 딴따라나 예술가들에게 동성애적 기질이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오르페우스 때문인가

72
아폴로 신은 이것을 바라보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탄식했다.
<내가 남을 위하여 슬퍼하고,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의 벗이 되고자 하니 나 또한 너를 위하여 슬퍼하리라>

> 파에톤을 잃고 슬퍼하던 모습, 또다른 아들인 의성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자 키클롭스를 죽임으로써 아들의 복수를 하던 아폴론, 큐피도의 화살을 맞고 폭풍같은 사랑에 빠지는 아폴론, 삼나무가 되어가는 퀴파리소스를 위해 울어주는 신 아폴론. 그의 모습은 <변신이야기>의 신들중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p74
유피테르가 세계의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한 마리씩 독수리를 날리자 이 두 마리의 독수리는 바로 아폴로의 신탁전이 있는 델포이에서 만나더라고 한다. 이것은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델포이라는 말 자체가 자궁이라는 뜻이다

p77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아폴로 신이 이렇게 부르짖고 있을 즈음

> 이젠 휘아킨토스를 위해 울어 주고 있는 공감형 신 아폴론

아폴로 신은 이 소년을 꽃으로 환생하게 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설움을 그 꽃잎에 새겼으니 휘아킨토스의 꽃잎에 <아이>라는 문제가 새겨져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휘아킨토스 = 히아신스. 보라색 히아신스의 꽃말 = 영원한 사랑, 자줒빛 히아신스의 꽃말 = 아폴론의 슬픔, 흰색 히아신스의 꽃말 = 사랑의 행복. 제우스는 올림포스 최고의 난봉꾼, 아폴론은 최고의 로맨티스트.

p82
그가 손가락을 대자, 이 처녀의 몸속에는 뛰는 맥박이 선명하게 손끝에 느껴진 것이었다.

p94
사실 이 나무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이 눈물이었다. 그래서 이 나무에게 듣는 수액에는 이 처녀의 이름이 붙어 오늘날까지도 <뮈르(몰약)>라고 불린다

p95
그러자 요정들이 몰려와 이 아기(아도니스)를 받아서는 제 어미(뮈라)의 눈물로 씻었다.

p107
사람들은 바람을 연상하며 이 꽃의 이름을 <아네모네(바람꽃)>이라고 부른다.


11 .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 외

p116
미다스 왕은 박쿠스 신이 가르쳐준 강의 발원지로 갔다. 그가 머리와 몸을 씻자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권능은 그의 손에서 강물로 옮아가 그 물빛을 바꾸어 놓았다.

> 변신에 의한 변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p118
그 자리에서 갈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해 말쯤, 키 높이로 자란 이 갈대는 엉뚱한 짓을 했다. 즉 남풍에 흔들릴 때마다 제가 자란 땅에 묻혔던 임금님 귀에 대한 주인의 비밀을 누설한 것이다.

>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는 삼국유사에도 존재한다. 삼국유사에서는 미다스왕이 신라의 경문왕, 이발사가 왕관을 만드는 관리, 갈대가 대나무로 대체된다. 조셉 캠벨이 신화에 입문하면서 깨달았던 인류 신화의 공통 사례의 한가지 예라 할 수 있다.

p131
그러나 아이올로스 신께서도 일단 바다로 나온 바람은 다스릴 수가 없답니다. 아이올로스 신의 동굴을 나온 바람을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바람은 땅이고 바다도 저희들 마음대로 한답니다. 하늘의 구름을 모으기도 하고 흩기도 하고 이로써 번개를 일으켜 파도를 때리기도 한답니다.

p137
이 동굴이 바로 잠의 신 솜누스의 은신처인 궁전이었다. 여기에는 햇빛도 비치지 않았다. 해가 떠오를 때도, 해가 질 때도 비치지 않았다. 이 솜누스의 궁전은 안개에 싸여 있어서 늘 어두컴컴했다. 여기에는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리는 닭도 없었고, 고요를 깨뜨리는 개나 개보다 더 귀가 밝은 거위 같은 것도 없었다.

> 잠이 온다...고요한 적막속에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는구나. 어여 마저 치고 잠의 신 솜누스의 궁전으로 가자.

p144
신들이 이 둘을 가엾게 보고 케이크스까지 새로 변신시킨 것이었다. (...) 날개를 얻었는데도 혼인의 서약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 날개(돈, 권력, 젊음 등)를 얻으면 바람 피우고 이혼하는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


12 . 트로이 전쟁 외

p152
이 세상의 한가운데, 말하자면 땅과 하늘과 바다 한가운데, 이 땅과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내려다 보이고 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이곳에 소문의 여신인 파마가 살고 있다

> 파마여신이 어떤 곳에 살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정말 탁월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p160
구름의 자식들

> 구름으로 빚어진 가짜 유노와 익시온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p169
휠로노메는 두 팔로 애인의 식어가는 몸을 껴안고 생명의 숨결이 애인의 몸을 떠나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 입술로 그의 입술을 막았네

p173
카에네오스 만세, 라피타이의 영광이여, 용감무쌍한 영웅이여, 이제는 새가 된 카이네오스 만세!


13 . 유민의 시대

p187
남에게 도움을 베풀기를 거절한 오뒤세우스에게 남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기게 했던 것입니다.

p203
여러분, 나는 나 자신의 과오를 변명하는 데 실패할망정, 저 위대한 영웅이 나와 함께 매도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만은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나 오뒤세우스는 아킬레오스의 가면을 벗길 수 있었습니다만, 아이아스는 이 오뒤세우스의 가면을 벗기지 못했습니다.

p207
장수들은 오뒤세우스의 웅변에 술렁거렸다. 웅변의 힘은 과연 위대했다. 

혼자서 헥토르를 대적했고, 불과 창칼과, 심지어는 유피테르 대신과 맞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아이아스는 분노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슬픔과 분노가 어느 누구도 정복하지 못하던 아이아스를 정복한 것이다.

> 오뒤세우스의 세치 혀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아이아스의 가슴에 박히다. 

p216
헤쿠바는 이렇게 소리치다가 바닷가로 밀려와 있는 폴뤼도로스의 시체와 폴뤼도로스를 난자한 트라키아 왕의 칼자국을 보았다.

p220
이 아우로아는 지금도 온 세상에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눈물(새벽이슬)을 뿌리고 있다.

p224
오리온의 두 딸은 베틀의 북을 뽑아들고 그 뾰족한 모서리로 저희 몸을 난자하고 있었다. 한 딸의 손길은 겨냥도 정확하지 못했고 손질도 단호하지 못했다. 이들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것이었다

> 노블리스 오블리제

p234
갈라테이아여, 가슴에 붙은 사랑의 불길이 나를 태울 것만 같구나. 내 가슴속에는 아이트나 화산이 들어앉은 것 같은데, 어쩌란 말인가, 갈라테이아, 그대는 아는 척도 않으니...


14 . 로물루스와 레무스 외

p243
스퀼라가 살아 있는 한, 바다에 들풀이 돋고, 산꼭대기 해초가 자랄지언정 스퀼라에 대한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p245
디도는 많은 사람들을 속임으로써, 버림받은 사랑의 종지부를 찍었다.

> 카르타고의 디도여왕은 전설적인 인물인데, 이 책에서는 참 찌질하게 나오는 것 같다.

p253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죽는 것 자체가 아니었네, 나는 그 괴물이 나를 잡아 통째로 삼키는 광경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네. (...) 이 괴물은 우리 동료들을 잡아 서너 번 땅바닥에다 패개기치고는, 먹이를 감싸쥐고 뜯어먹는 사자처럼, 그렇게 우리 동료들을 먹지 않았나.

> 아카이메니데스는 죽음보다는 두려움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본만화 <진격의 거인>에서는 집채만한 거인들이 사람들을 삼키고 뜯어먹는 장면이 나온다. 만화의 모티브가 신화에서 온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p259
키르케는 화해의 손을 내밀면서 장군에게 지아비가 되어달라고 했고, 장군은 지아비가 되어 줄테니 혼인선물로 우리를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라고 요구했네

> 신화 모험의 여정 중 초월적인 장애물이 조력자로 변하는 순간이다.

p265
슬픔은 결국 이 카넨스의 골수부터 녹이기 시작했어요. 결국 카넨스는 이렇게 녹아 사라져버렸어요.

p271
이 목동은 그 자리에서 야생 감람나무가 되었다. 이 야생 감람나무 열매를 맛보면 누구든 그 목동이 얼마나 야비한 인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욕지거리를 한 야비한 혀가 녹아 이 열매의 맛이 되었다는 것이다.

p273
아이네이아스의 함대의 대부분이 이렇게 해서 바다의 요정이 된 것이었다.

> 무생물이 변신한 케이스중 가장 출세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배가 바다의 요정이 되었으니, 변신이야기를 통틀어 최고의 발탁 승진이 아닐 수 없다.

p275
아이네이아스의 몸에서 죽음이 앗아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씻어내고는, 영생에 필요한 부분만 남겨두었다. 베누스 여신은 아들의 몸을 정죄하고, 신들이 쓰는 향수를 뿌린 뒤 그의 입술에다 달디단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발라주었다. 아이네이아스는 이리하여 신이 되었다.

> 로마의 지배자들을 칭송하는 오비디우스의 본격적인 썰이 시작되는 대목이다. 책의 묘사는 이집트에서 죽은 파라오를 영속케하고자 미이라를 만드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p284
그는그제서야 변장을 풀고 젊고 잘생긴 본 모습을 드러내었다. 세월의 흔적인 주름살을 벗고 베르툼누스신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포모나 앞에 나타난 것이다. 흡사 태양이 그의 얼굴을 가리던 구름을 벗겨버린 것 같았다.

p285
누미토르의 외손자들은 외조부가 잃었던 왕권을 찾아 되돌려 주었다. 그리고 팔릴리아에 이들은 로마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p287
무서운 칼날 아래 목숨을 잃은 장인들과 사위들의 피는 새로 생긴 물길로 흘러들어갔다.

p288
로물루스 왕의 육신은 투석기가 쏜 납탄이 하늘에서 녹듯이, 그렇게 녹아 대기 속으로 비산했다. 하늘에서 그는 신들의 보좌에 어울리는 새 몸을 얻었다.


15 . 카이사르의 승천 외

p295
당시 이 도시에는 사모스 사람이 하나 있었다.

> (역자주) 오비디우스는 퓌타고라스의 철학, 특히 영혼 윤회설에 관한 가르침을 장황하게 소개함으로써 이 <변신 이야기>의 철학적 기초를 돋보이게 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권위를 빌려 글을 뒷받침하고자 한 것이다

p297
돼지와 염소의 경우는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을 테지요. 하지만, 양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대접합니까? (...) 그토록 양순하고 순진한 동물인 소는 인간에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이런 신세가 되어야 합니까?

p298
소의 목에다 쟁기때를 매어 굳은 대지를 갈고, 여기에서 곡식을 수확한 인간이 이번에는 그 쟁기 때를 벗기고 그 벗긴 자리를 도끼로 내려칩니다. 이런 인간이 배은망덕한 동물이 아닙니까?

> 듣고 보니 인간만큼 잔인한 피조물도 없는 것 같다. 어찌 신의 잔혹함을 원망하랴.

p299
그대들이여, 차가운 저승 땅을 두려워하고 있는 그대들이여. 왜 스튁스의 땅을 두려워합니까? 빈 이름뿐인 어둠의 땅, 시인의 망상에나 존재하는 땅,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땅을 왜 그렇게 두려워합니까? 그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육체라는 것은 화장단에서 재로 화하건, 땅 속에서 오랜 세월 썩어 없어지건, 한번 없어지면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영원합니다. 이 영혼이라는 것은, 원래 있던 곳을 떠나면 다른 집을 찾아들어가 거기에 다시 거합니다.

p301
밤하늘의 달도 같은 모양으로 뜨고 지는 것은 아닙니다. 달이 차는 중이면 오늘보다는 내일이 크고, 기울고 있는 중이라면 내일보다는 오늘이 큰 법입니다.

p303
농도가 짙어진 불은 응고하여 공기가 되고, 공기는 물이 되며 물은 압력을 받으면 흙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주에 소멸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뿐입니다. 새로운 형상을 취할 뿐입니다. 태어남이라는 말은 하나의 물상이 원래의 형상을 버리고 새 형상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 형상대로 있기를 그만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변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변하여 이것이 될지언정 그 합은 변하지 않습니다

> 만물의 변화. 질량 보존의 법칙. 오비디우스의 이야기가 아닌 피타고라스의 말이지만, <변신 이야기>를 통틀어 가장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멘트로 보인다. 

p306
클리토리움에 있는 어느 샘물을 마시면 술을 끊게 된답니다. 이 물은 마신 사람은 평생 물을 술로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지방사람들은 달리 설명합디다만, 이것은 이 샘물에 술과는 다른 방법으로 마음에다 불을 지르는 어떤 요소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 지금의 내게 연구원 과정이 그렇지 않을까. 이전과는 달리 항상 뭔가에 취해있는 느낌이다. 누가 내 마음에 불을 지른거야. 그래도 가끔 술은 먹어줘야 한다. 넥타르만 먹다보면 마치 신이 된듯한 오만함에 빠져 신에게 천벌을 받을 수 있으니, 가끔씩은 술을 먹으면서 인간다움을 느껴야 한다.

p310
위에서 말한 동물들은 모두 다른 동물의 몸에서 생겨나지 않습니까?

p317
자, 요정이여, 그대가 당한 슬픔의 고통을 내가 당한 이 고통에 견주려오?

> 테세우스의 아들, 히폴뤼토스는 계모 파이드라가 요구하는 불륜의 사랑을 거절하고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p333
카에사르의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고

> 오비디우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아우구스투스에 대한 칭송이 시작된다

p335
여신의 품을 빠져나온 영혼은 하늘 높이 솟아 달에 이르기까지 날아오르다가 드디어 긴 불꽃의 꼬리가 달린 별이 되었다.

그(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카에사르의 이름 이상의 위대한 이름으로 기억했다. 아가멤논이 그 아버지 아트레오스보다, 테세우스가 그 아버지 아이게오스보다, 아킬레오스가 그 아버지 펠레오스보다 더 유명하게 된 것과 비슷하다

> 애쓴다, 오비디우스

p336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를 얻는 나는 여원히 살 것이다

> 아, 오비디우스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수천년을 뛰어넘어 그의 책을 붙들고 과제를 하고 있는 나를 보라. 



내가 저자라면

오비디우스가 신화를 하나의 개념, 즉 변신 이야기로 파악한 것은 '변화와 변신'을 인간 세상의 작동원리로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 구본형 <신화 읽는 시간>

 화려한 문장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만, 정작 사상적인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총 15권에 달하는 긴 이야기지만 단 몇 개의 패턴들로 모든 이야기들에 대한 분류가 가능할 것 하다. 신들의 변신은 주도적이고 인간들의 변신은 거부할 수 없는 수동적 징벌의 형태를 취한다. 신은 인간이나 그럴듯한 동물로 변하는 반면, 인간은 하찮은 동물, 식물, 돌, 바위, 샘물 등의 무생물로 변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해외출장을 가서 가장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음식점이 중국 식당인데, 중국 식당의 메뉴판을 보면 다양한 메뉴 종류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몇번 중국 식당을 다녀보면, 그 메뉴가 그 메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똑같은 레시피에 단지 소스만 바꾸는 것으로 수십가지의 음식이 탄생하는 것이다. <변신 이야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어떤 신이 나오느냐, 그리고 어떻게 신의 분노를 일으켰는지, 그 결과 어떤 것으로 변신했는지만 다를뿐 그 이야기의 구조는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신 이야기>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 소스의 다양함과 함께 감칠맛을 내는 온갖 조미료가 적절히 버무려져있기 때문이다. 구전되는 신화와 전설을 모아 오비디우스가 잘 요리한 셈이다. 

 이야기는 툭하면 삼천포로 빠진다. 이야기에 연하여 이야기가 이어지는 식이다. 구전체로서는 나쁘지 않지만, 책으로서의 구성은 좋지 않다고 보여진다. 책의 구성과 목차에 일관성이나 구조의 치밀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이야기하고 싶은 순서대로, 그리고 현 지배자와 지배체제에 대한 계몽적 아부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을 뿐이다. 맨처음과 마지막을 보면 시대나 시간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대부분의 책의 내용과 구성은 그렇지 않다. 

 신화에서 교훈을 찾고자 한다면, 인간의 감정이나 죄악의 종류에 따라 이야기를 배치하는 것이 좋다.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신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면 각각의 신이 주인공이나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오는 이야기별로 구성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신화가 은유이며 메타포라는 것을 생각해 볼때, 신의 이름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어 책을 구성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지식함양을 위한 백과사전식 서술에 지나지 않을 듯 하다. 따라서 인간군상의 다양한 모습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그에 맞는 신화를 버무리는 구조가 신화를 잊어가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한 하나의 장에는 여러 가지 신화가 등장할 수 있다. 질투, 연민, 맹목적인 사랑, 강압적인 사랑, 집착 등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신화들만 묶어도 얇은 책 한권은 나올 듯 하다. <변신 이야기>에서 신의 분노를 가장 크게 일으키는 이야기들은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것들이다. 이 오만함도 실상 들어가보면 여러 형태가 존재한다. 과거에 대한 오만함, 혹은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부여된 외적인 소유물들에 대한 오만함이 있고, 그와 달리 자신의 능력과 스스로에 대한 넘치는 자부심으로 표현될 수 있는 오만함(휴브리스)도 있다. 이 내용들을 하나의 장에서 대칭적으로 배치한다면 좋은 구조가 될 것 같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나 신에게 수탈당한 가련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도 슬프지만, 인간에게 있어 천륜을 저버릴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극적일 수 밖에 없다. 하여 그런 스토리를 모아 한 장으로 구성하고, 개개의 스토리에 대해 상황이나 심리적인 묘사를 더 추가한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곱씹어볼 수 있는 의미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역자(이윤기)가 서두에서 밝힌 번역원칙은 좀 아쉬웠다. 로마작가가 로마시대에 썼다고 해서 꼭 로마어 표기를 따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생각은 더 굳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스 신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는 그리스어를 본문에 사용하고, 각주에 로마식 표기를 사용하는 것이 더 나았으리라 본다. 책을 보는 내내 보기가 불편했고, 각주를 자꾸 찾아보게 되어 독서에 단락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책을 다 보았지만, 대표적인 신들의 이름외에는 로마식 표기는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인간은 항상 변신을 꿈꾼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현실에서는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드물다. 외부적인 요인으로 변신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 어쩔수 없는 상황에 이끌리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현실에 순응하여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타자의 의지로 인한 변화는 무력하다. 비자발적인 변신을 신의 의지로 착각하지도 합리화하지도 말자. 나 자신의 의지로 변하지 않는 한 그것은 퇴보, 퇴화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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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08:21:10 *.124.22.184

그렇죠? 로마식 표기가 어색해서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죠. 저도 그랬어요. ㅎㅎ

경종씨가 나의 신화를 어떻게 만들지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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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3:56:05 *.103.3.17

나의 신화...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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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20:52:41 *.140.208.61
밤의 적막을 깨트리는 키보드 소리로 지어진 북리뷰, 읽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마감이 휩쓸고 간 월욜 저녁, 클리토리움의 샘물 대신 술한잔 잘 하셨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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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3:58:44 *.103.3.17

족집게십니다. 암브로시아를 안주 삼아 넥타르 한잔 하고 박쿠스와 인생이 뭔지 얘기하고 싶은 날들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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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1 07:30:16 *.48.44.227

나 자신의 의지

외부적인 요인으로 변신을 강요당하는 일

이 두가지가 인생의 고민이지요~~

자신의 의지로 책을 읽고 글 쓰며 연마가 된다 해도

글쓰는 능력은 신이 주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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