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윤정욱
  • 조회 수 1304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7년 4월 23일 23시 05분 등록

『떠남과 만남』

구본형 저, 을유문화사

 

3주차 (4/17~4/23)

티올(윤정욱)

 

[ 목 차 ]

 

1.    작가 분석 ---------------------------------------------------------- P. 1 ~ P. 6

 

# 1 : 역사 (인간 구본형의 역사)

 

# 2 : 단절 (구본형의 내면 탐구 보고서)

 

# 3 : 여행 (여행과 변화의 상관관계)

-      기행문의 목적 (왜 여행이었나?)

-      버리기 위한 여행 (작가가 여행을 통해 버리고 싶어 한 다섯 가지)

-      떠남과 만남 (‘만남과 떠남이 아닌 이유)

 

# 4 : (경영과 인문)

 

 

2.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 P. 6 ~ P. 16

 

 

3.    내가 저자라면 --------------------------------------------------- P. 16 ~ P. 2

 

 

[북 리뷰 INTRO]

 

변화를 공부하고 싶으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햇빛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같은 2시의 햇빛도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물빛 역시 봄엔 초록색이고, 여름엔 파르스름한 녹색이다. 가을엔 푸르며, 겨울엔 검푸르다. 나무에 잎이 나고 지는 것을 보거나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며 변화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이 왜 피어나고 또 왜 갑자기 그 활력을 잃게 되는지를 알고 싶으면 산에 가보라. 봄이 되면 산 전체가 피어난다. 그리고 겨울이면 산 전체가 웅크리고 있다. 왜 그런가?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본질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인문학적 호기심이다. 변화의 능력과 경영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문학이 죽으면 경영학이 살아 있을 수 없다. 돈은 사람이 건강할 때 필요한 것이다 (237)”

 

2000년은 작가가 변화의 삶을 살기로 작심하고 스스로를 그 첫 변화의 대상으로 삼고 실험을 거듭 한지 3년이 되는 해이자, 작가가 1인 기업가로 거듭나는 원년이 되는 해이다. 작가는 1997년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위해 약 한달 간 단식을 했고, 이를 통해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 때 스스로 변화의 증거가 되기로 결심하고, 책을 쓰기 시작한다. 매일 새벽 두 시간 스스로 선택 한 외부로부터 고립 된 시간을 가진다. 낭비의 시간이었고, 외부로 향한 관심을 안으로 거둬들이고, 스스로와 만나는 시간이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다”. 작가가 이 시기 스스로를 독려하며 즐겨 했던 말이다. 그러기를 꼬박 3, 작기는 자신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마치고, 스스로 변화가 되기로 한다. 그리고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왜 하필 여행이었을까?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것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자연이다. 해마다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고 자세히 관찰하면 매일이 다르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환경도 마찬가지다. 어제까지는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늘은 틀린 것이 될 수도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을 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표류하게 된다. 인생을 밧줄 하나 의지해서 강을 건너는 것에 비유 하자면, 빠르게 흐르는 강물은 끊임 없이 변화하는 우리의 주변환경이 될 것이고,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잡는 밧줄은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본질이 될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은 저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신만의 굵고 튼튼한 밧줄 하나를 찾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꽉 잡아야 한다.

 

이번 여행은 작가에게 있어 튼튼한 밧줄 하나를 잡고 처음 강물에 발을 내딛는 과정과도 같다. 그는 야생에 던져졌고, 그가 잡은 밧줄은 그의 길을 인도하는 등대이자 하나 밖에 없는 구명조끼가 될 것이다. 조금씩 방향이 수정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향은 정해졌고, 또 분명한 것은 그는 반드시 길 위에서 답을 찾을 것이다. 그가 늘 그래 왔듯이.

 

 

I. 작가 분석

 

# 기행문의 목적 (왜 여행이었나?) #

 

이 책이 처음 쓰여진 2000년은 작가가 1인 기업가로서 회사를 나와 독립을 한 해이기도 하며, 불타는 배에서 뛰어내려 익숙한 모든 것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새로 태어난 해이다. 스스로 변화를 실천한 해이기도 하며, 평범한 개인도 위대한 도약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해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독립을 하면서 여행을 떠난다. 한 달 반이라는 기간 동안 스스로 선택 한 고립을 통해 철저히 혼자가 된다. 왜 여행이었을까? 이 책은 내가 아는 한 저자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행문이다. 작가의 다른 책들은 대부분의 서점에서 자기계발서적으로 분류 되고, 작가 자신도 스스로를 변화경영전문가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기행문을 썼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말콤 글래드웰이 소설을 쓰고, 시집을 낸 것과 유사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궁금했다. 왜 하필 여행이었을까. 작가는 변화의 과정을 기존의 삶을 마치고, 익숙한 자신을 죽여 새롭게 태어나는 것에 비유하곤 했다. 죽음을 앞둔 시기에 떠나는 여행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 의미를 좇아가보자.

 

첫째, 자연은 항상 변화가 일상처럼 일어나는 곳이며, 변화가 일상적인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변하지 말아야 할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에 자연은 최적의 장소였고, 여행은 최고의 수단이었다.

 

“(237) 변화를 공부하고 싶으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햇빛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중략) 봄이 되면 산 전체가 피어난다. 그리고 겨울이면 산 전체가 웅크리고 있다. 왜 그런가?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인문학적 호기심이다. 변화의 능력과 경영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문학이 죽으면 경영학이 살아 있을 수 없다

 

둘째, 작가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소명의식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스스로 변화를 이루되, 더 나아지고, 스스로가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변화는 타인의 불운과 불행 위에 쌓은 것이 아닌, 더불어 하나 되고 함께 나아지는 것이었다.

 

“(315)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다. 나는 나아질 것이고 스스로가 더 좋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바라건대 다른 사람들로부터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불운과 불행 위에 나의 행복을 쌓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변화라는 주제 속에 내가 담아내고 싶은 인생이다.

 

셋째, 작가는 여행을 통해 스스로의 정신적 지평을 넓히고 싶어 했다. 자신을 구속하는 일체의 의무와 책임감을 내려 놓고, 자연인으로서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고 정신적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휴식을 통한 충전의 시간을 가지고자 했다.

 

“(322) 한국의 산수 속에서 한국의 인물을 보고, 그 인물 속에서 그를 길러낸 한국 산수의 힘을 느끼는 것, 이것이 내가 여행이라는 매력적인 휴식을 통해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휴식을 통해 정신적 지평을 넓혀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한다는 것 그리고 특히 기행문을 쓴다는 것은 작가에게 있어 또 다른 하나의 실험이었다. 작가는 스스로를 변화경영 전문가에서 변화경영 사상가로 불렀다. ‘변화라는 주제는 누구나 알 것 같지만, 아무도 모르는 주제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그 필요성은 이해하고,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지만, 실제로 변화를 이뤄낸 사람은 드물다. 우리 주변 일상은 변화로 넘쳐나지만, 정작 우리의 일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 만큼 변화는 그 실체를 알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일상적이라고 느껴지는 주제일수록 더욱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작가에게 공감을 하는 것은 변화의 핵심을 꿰뚫는 그의 사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상을 떠받치고 있는 그의 유려한 문장들과 표현들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본문 곳곳에서 나타난 구본형스러운표현을 찾아보자.

 

“(152) 나는 표현력이 부족해 꽃을 보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묘사하지 못한다. 감각적 재간이 거의 없다. 그저 꽃을 보면 어떻게 생겼다고 말하는 대신 그 꽃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는 식이다

 

“(236)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우럭이 엄숙한 입을 하고 왔다 갔다 한다. 우럭은 커다란 입이 아래로 깊이 다물어져 있어 마치 무게잡는 임금님의 입매 같다. 뱀장어들은 자기들끼리 몰려 있다. 해초 더미처럼 오글오글 모여 수족관 위로 머리를 두고 꼬리질을 하고 있다

 

(28) 걷다가 신을 벗고 강물에 발을 담가봐라. 그 미끈한 부드러움 때문에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잡풀이 자라고 있는 강둑의 모래언덕을 걸으면, 발바닥에 모래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조금 들어가다가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 가벼운 저항을 느끼게 된다.

 

본문에 자주 등장하는 삐요새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아주 실험적인 표현도 등장한다.

 

“(154) “그건너희인간들이나를부르는거야. 내친구들은절대로그런이름으로날부르지않아. 내가좋아하는삐숙이가그이름을들었다면배꼽을쥐고웃었을거야. 삐숙이는알에서태어나서배꼽이없지만말야.”

 

작가 자신이 삐요새가 되어 그 마음을 나타내는 부분인데, 띄어쓰기가 모두 생략된 아주 실험적인 표현이다. 이 책 이후로도 작가는 매년 한 권 이상의 책을 발표한다. 작가의 대부분의 책은 변화혁신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지만, 그의 책이 매번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다져진 작가로서의 기본기와 자연을 묘사한 풍부한 표현, 그리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쌓은 작가로서의 내공 덕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 버리기 위한 여행 (작가가 여행을 통해 버리고 싶어 한 다섯 가지) #

 

작가는 여행을 통해 버리고 싶어 한 것이 있었다. 이번 여행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마지막 찌꺼기를 제거하고, 진정한 자아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일종의 상징적 의식(儀式)이자 자기 검열의 시간이었다.

 

“(13) 나는 여행을 통해 20년간 나를 지배해온 관습을 버리려고 했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 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성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 월급에 대한 안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유한 책임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 사실만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작가는 1997년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위해 약 한달 간 단식을 시작 했고, 이를 계기로 변화의 필요성을 통감한다. 이 때 스스로 변화의 증거가 되기로 결심하고, 매일 새벽 두 시간을 비우고 책을 쓰기 시작한다. 스스로 선택한 고립의 시간이었다. 막대한 낭비의 시간이었고, 그 동안 외부로 뻗쳐있던 관심을 안으로 거둬들이고, 진정한 자아와 만나는 시간이었다. 단식의 과정은 분명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가족은 물론 일체의 외부와 단절 된 상태에서 끊임없는 사색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단식의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작가는 마침내 변화를 결심하게 된다. 주저하며 마지못해 하는 선택이 아니라 불 타는 배 위에서 뛰어내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결단을 하게 된다.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역설적으로 작가는 진짜 세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말아야 할 본질을 찾기 위해 백척간두 절벽 위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작가가 말하는 여행은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였고, 자신과 오롯이 만나는 시간이었다. 다 쓰고 비워냄으로써 다시 채우고 더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 떠남과 만남 (‘만남떠남이 아닌 이유) #

 

이 책의 제목은 떠남과 만남이다. 책 제목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떠남과 만남은 출발과 도착의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변화에 대한 작가의 일관된 견해와 일치한다. 그것은 바로 단절을 통한 진정한 자아 회복의 과정이다.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역설이다. 익숙한 자신과의 단절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회복 할 수 있다는 것은, 여행도 마찬가지다. 지금 누워있는 곳에서 일어나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을 향해 떠나야 새로운 풍경과 그 풍경 속에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떠남만남인 것이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늘 떠나야 하는 존재다. 그것은 단순히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예정된 생물학적 죽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도 인간은 늘 떠남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존재다. 학창시절 죽고는 못 사는 단짝 친구와도 언젠가는 떠남의 과정이 있고, 뗄 수 없을 것 같은 가족과 부모와의 관계도 결국은 자신의 가정을 이루면서 독립이라는 떠남의 과정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부모의 입장이 되고, 자식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을 때 다시 한번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모든 떠남의 순간은 항상 어렵고,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버리고 가야 할 자신의 과거는 실제보다 미화되기 쉽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두려움으로 과장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길을 나서야 하는 것은 모든 떠남의 과정 뒤에는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 있기 때문이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못해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이 간절하다는 사람이 회사와 집 만을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하고, 주말에 가끔 만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학창시절의 친한 친구밖에 없다면 그 사람은 당분간 꽤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같은 이유로 스스로 혼인 적령기가 지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만약 아직 부모님과 같은 집에서 산다면 우선 부모와의 독립이라는 떠남의 과정이 있어야,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의 과정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이것은 비단 관계의 문제에만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도 떠남만남의 법칙은 유효하다. 익숙하고 편안한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떠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아와 만날 수 있다. 만나고 떠나는 것의 단절의 과정이지만, 떠나고 만나는 것은 연속적인 과정이다.

 

대부분의 기행문이 그렇듯 이 책이 갖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자연 속에서 바라 본 자신과의 대화가 아닐까 한다. 우선 우리가 일상적으로 쉽게 지나치기 쉬운 자연에 대한 작가만의 신선한 시선이 아주 중요하다. 그 자연인 품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에 대한 유래가 곁들여져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여행 안내서에 불과하지, 기행문이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바로 사색이다. 작가의 시선은 자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작가의 시선은 자신에게도 향해야만 한다. 겉으로 드러난 자연환경을 자신이라는 필터를 통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어떻게 소화시키는지에 대한 사색의 과정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가지가 아주 적절하게 소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자연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것이고, 우리는 작가와 그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고은 시인의 시집 『순간의 꽃』에는 이런 시가 있다.

 

바람에 날려가는

민들레씨만 하거라

늦가을 억새 씨만 하거라

 

혼자 가서 한세상 차려보아라

 

일상적으로 떠남과 만남을 반복하는 자연과 위대한 시인의 사색이 만나 절창이 태어났다.

 

 

II.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개정판 서문>

(6) 새로운 세상으로 나올 때는 새로운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 새로운 세상의 두려움을 미리 과장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그 잠재력과 가능성을 읽어야 한다

 

(7) 조금만, 아주 조금만 먹으면 되는데 날마다 너무 많이 퍼먹기 위해 너무도 많은 시간을 쓰고 있구나. 그러다 인생이 끝나고 마는구나.

 

★ 티올(정욱) : 작가의 다른 책 『마지막 편지』에는 작가가 제자들에게 쓴 여러 편지가 소개 되어있다. 그 가운데 나의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가 있다.

 

젊어서는 돈을 벌기 위해 젊음을 소비하고, 늙어서는 젊음을 되찾기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네

 

본문에서도 자주 인용 되었던 다산 정약용 역시 이 부분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부쳐, 정직함과 학문에의 정진을 강조하였지만 딱 한 가지 정직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예외를 두었다. 바로 자기 자신의 위를 속이는 것이었다. 욕심을 부리고, 과식하는 것을 경계했던 정약용은 유배 생활 중에 고기가 없이도 맨 쌀밥에 상추쌈을 싸서 된장을 찍어 넣고는 푸짐하게 보이도록 해서 먹으며 자신의 위를 속인 일화를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 준다. 실제로 배는 금방 꺼지지만 이렇게 해서 자신의 위를 속이면 불 필요하게 화장실에서 보낼 시간도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반성이 된다.

 

<초판 서문>

(11)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이다.

 

★ 티올(정욱) : 참 공감이 많이 되는 글이다.

 

(12)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버린 후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없다. 오직 버리기 위해 떠난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더 담아 올 수 있겠는가.

 

 

<1 : 매화 향 가득하니, 봄이다!>

 

(24) 두 번째 인생은 절대로 바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첫째, 더 자유로울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할 것이다. 둘째, 더 많이 배울 것이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진지함을 버릴 것이다. 셋째, 배운 것을 통해 기여할 것이다. 주제넘지 말 일이다.

 

★ 티올(정욱) : 작가는 마흔 넘어서의 자신의 삶을 연극의 2막이 아닌 새로운 생에 비유하고는 했다. 죽음을 각오한 정도의 변화가 아니고서는, 인생을 연극의 1막과 2막으로 경계로 나누는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었다. 새로운 연극이 다시 초연되어야 한다. 그것이 변화다.

 

(34) 낙안읍성에서 만난 대장장이. 평생에 걸쳐 연마한 솜씨 덕에 그는 그 자체로 빛나고 있었다.

 

★ 티올(정욱) : 대장장이가 벌겋게 익은 낯을 바라보는 사진이 참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사진을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윤광준 작가의 『잘 찍은 사진 한 장』이라는 책이 기억났다. 두 책 모두 사진은 윤광준 작가가 찍은 것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본문에 실린 사진이 뭔가 많이 낯설었다. 이상하게도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내 기억이 잘 못 되었나 싶어 윤광준 작가의 책을 뒤져 보았다. 57페이지였다. 역시나! 원본 사진에는 선명하게 나와 있는 그것이 본문에는 없었다. 왜 본문에서는 원본 사진에 있는 그것을 일부러 지웠을까? 내가 이 사진을 아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던 것도, 바로 장인이 그윽한 시선, 벌겋게 달아오른 낫 그리고 그것때문이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사진이 매우 좋았다. 그런데 왜 그것을 굳이 지웠을까? 그 셋이 조화를 이루면 사진이 너무 튀어 보여서였을까? 나는 본문에 실린 사진에서 그것을 지운 것은 본문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윤광준 작가의 배려였다고 생각한다. 혼자 떠난 배낭여행지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좋은 사진과 좋은 글은 항상 여운이 길어서 좋다.

 

(40) 빨리 오를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 티올(정욱) : 고은 시인의 시집 『순간의 꽃』에는 이런 시도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꽃은 문학 작품의 단골 소재이다. 김춘수의 『꽃』도 그렇고 고은의 시도 그렇다. 올라갈 때는 정상에 빨리 도착하고 싶어 걸음을 재촉하느라 미처 보지 못하다가 내려올 때서야 보았던 그 꽃’. 가족들, 친구들, 건강, 자기 자신. ‘그 꽃은 다양한 이름으로 치환될 수 있다. 처음 이 시를 보았을 때 정말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똑같이 등산을 하더라도 사람들마다 목적은 다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인 사람과 산을 오르는 과정을 즐기고 주변 풍경을 즐기는 사람과의 등산을 하는 방법에는 큰 차이가 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산을 효율적으로 탄다. 자신의 체력과 코스별 난이도를 고려해 최적의 방법을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야는 좁아지고 천천히 걸을지언정 꾸준하게 일정한 페이스로 걷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쉬는 것도 너무 오래 쉬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은 조금 다르다. 굳이 정상을 올랐다는 결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는지가 아니라 산을 오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시야가 넓혀진다.

 

이 시를 보며 내가 소홀했던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나는 지금 낮은 언덕 하나도 제대로 넘지 못하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앞만 보고 걸었을까 싶다. 앞만 보고 걷다가 산 속에서 길을 잃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46) 초봄의 추위는 겨울과 그 맛이 다르다. 사람을 어쩔 줄 모르게 한다. 봄은 늘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며 다가온다.

 

(59) 사실은 매화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으려고 했다. 매화가 피어 밤에도 하얀데, 그 밑에 평상을 깔고 앉아 달을 보며 술 한잔하려 했다.

 

★ 티올(정욱) : 마음이 벌써 하동 다압리로 달려 간다. 좋아하는 사람과 단 둘이 허름한 숙소 하나 잡아 두고, 밖으로 나와 달빛 받으며 막걸리와 갓김치를 손으로 집어 먹고 싶다. 숙소는 꼭 허름한 곳이어야 하고, 침대는 당연히 없고 온돌 바닥에 조금은 낡았지만 두툼한 이불이어야 한다. 바닥은 무조건 옛날 시골 집에서 본 노란색 두꺼운 장판이어야 하고, 그 위를 걸을 때는 쩌억 쩌억하고 장판 사이 빈 공간으로 공기 빠지는 소리도 나야 한다. 날은 매화가 피어 있어야 하니 3월 초 중순이었으면 하고, 술은 마을 회관 근처에 아무렇게나 있는 정자나 평상이면 아무 곳이나 상관 없다. 저녁 8시가 넘어 해는 졌고, 달은 밝다. 안주는 갓김치만 있었으면 한다. 젓가락은 없었으면 한다. 손으로 집어 먹어야 하니까. 막걸리 잔은 당연히 누런색 놋그릇이었으면 한다. 막걸리 잔 위로 둥근 보름달이 비치면 목에 걸리지 않게, 막걸리를 후후 불어가며 마셔야지. 적당히 취기가 돌면 보름달은 알아서 눈치껏 구름 사이로 잠시 몸을 숨겨도 참 좋겠지.

 

상상만으로도 이렇게나 행복한데 현실이 된다면 나는 울지도 모른다. 허세라고 비꼬아도 좋고, 유치한 로망이라고 비웃어도 좋다. 이런 남자의 유치한 로망에 입술이 삐죽거리며 못 이기는 척 맞춰주는 사람이 있다면 평생을 순종하며 살아야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숙소부터 땡 탈락일지도 모를 일이다.

 

(65)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하고 있는 사회는 쉬어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부가가치가 낮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몸이 고단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다.

 

★ 티올(정욱) : 얼마나 오래 일하는지 보다는 어떻게 일을 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79)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은 생각지 않는구나.

 

(88) 모름지기 달라지려는 사람은 단 하나의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106) 그의 공부는 신명의 도움을 받아 그 깊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몸과 영혼을 다하여 한 가지 일에 깊이 몰입하니 원래 총명한 사람의 깨달음이 그 끝을 알 수 없게 되었다.

 

(110) 하고 있는 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미래가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절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하나의 일을 아직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방황이다. 어떤 일에 깨달음을 얻어 밝아지면 자신이 곧 그 일의 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 티올(정욱) : ‘직장(職場)’직업(職業)’의 개념이 간혹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직장은 매일 아침 우리가 출근해서 일을 하는 장소를 말한다. 반면 직업은 직장과 관련은 있지만 그 뜻이 완전히 다르다. ‘직업은 자신이 가진 전문적인 기술로서 자기 분야에서 스스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일정한 돈을 벌 수 있는 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1인 기업가이자 변화경영 전문가이며, 작가이자 강사이다. 그리고 그의 직장은 집안 개인 서재이다. 사실 우리는 이 두 단어를 혼동해서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 OO회사 다녀라고 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직업은 있으나, 직장이 일정하지 않은 사람들도 간혹 있다. 사진작가나 전문 프리랜서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면서도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큰 혼란의 시기를 맞이 할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위험군에 속한다. 내가 그렇다.

 

(115) 보리는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고 있다. 바람이 보리밭 위를 지나면 파도처럼 물결치는 초록빛 흔들림이 여간 곱지 않다. 보리밭에 바람이 지나는 모습을 보지 않고 봄이 왔다고 하지 마라. 따가운 햇살에 뭉클뭉클 살아나는 붉은 흙들의 건강한 발기를 보지 못하고 봄이 왔다고 하지 마라.

 

★ 티올(정욱) : 보리가 바람이 파도 치는 초록빛 물결을 보고 싶다면 제주도로 떠나 보자. 제주도 가파도에서는 매년 4월 청보리축제가 열린다.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20분이면 도착한다. 매년 4월이 되면 가파도는 거칠 것 없는 바람을 싸리빗 삼아 드넓은 청보리밭을 낮이고 밤이고 쓸어댄다. 싸리빗으로 흙마당을 쓸 때 나는 소리가 청보리밭에서 하루 종일 들린다. 그래서 4월의 가파도 청보리 축제는 눈보다는 귀로 구경해야 제 맛이다.

 

(122)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와 되는 대로 수염을 기르고 배낭 하나로 떠돌기를 바랐는데, 지금 이 방안으로 찾아 드는 외로움은 무엇인가? (중략) 만일 참으로 다시 돌아갈 곳이 없이 떠도는 나그네라면 그처럼 외롭고 지친 인생은 없을 것이다.

 

(123) 함께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면 함께 있고 싶다. 함께 있다 혼자 있게 되면 그립고, 혼자 있다 함께 있게 되면 작은 일로도 서로 다툰다.

 

★ 티올(정욱) : 사람은 둘이 있을 때는 혼자 있고 싶어하지만, 정작 혼자가 되면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 인 것 같다.

 

(149) 아이들이 없는 교정처럼 쓸쓸한 곳은 없다

 

★ 티올(정욱) :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그곳은 돌연 쓸쓸한 풍경이 된다. 자식 넷이 북적북적했던 고향 집에서 지금은 두 분만 계신 부모님도 아마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을 것이다.

 

(152) 나는 표현력이 부족해 꽃을 보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묘사하지 못한다. 감각적 재간이 거의 없다. 그저 꽃을 보면 어떻게 생겼다고 말하는 대신 그 꽃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는 식이다.

 

(162) 숨겨놓고 혼자 즐긴다는 의미를 아는가? 벽장에 숨겨놓은 꿀단지여도 좋고 바쁜 날 잠시 겨를을 내어 찾아가는 찻집이어도 좋다. 혹은 서가에 꽂혀 있는 소년 시절의 감명 깊었던 책 한 권이어도 좋다. 마담이 괜찮은 술집이어도 좋다. 아주 어릴 적 왠지 모르게 울고 싶을 때, 저녁이 되어 어머니가 찾아 나설 때까지 숨어 있던 자기만이 아는 작은 비밀 장소처럼 그런 치유의 은밀한 장소와 시간 없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겠는가?

 

★ 티올(정욱) : 나 역시 숨겨놓고 혼자 즐기는 장소가 있다. 5년째 단골이 된 커피숍이다.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에 있는 THE WAIN-ING이라는 까페다. 왜 이곳을 선택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혼자 있고 싶을 때 난 책 한권 들고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이고 채글 보고, 밑줄을 그어 댔던 것 같다. 3년 간 끊이지 않고, 지독하게 반복되는 노래도 좋았고, 오래 머물러 있어도 항상 웃는 얼굴로 친절한 모습을 보여준 사장님도 좋았다. 처음 이곳에 와서 특이했던 점은 해가 바뀔 때까지도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모든 직원 분들이 친절했고, 내 일이라는 사명감 마저 느껴질 정도로 열심이었다. 나는 누구를 소개 받는 자리가 있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이 장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한 때는 좁은 가게 안에 3~4명이나 되는 직원 분들이 있을 정도로 바빴고, 이 곳을 찾는 사람도 많았지만, 차츰 한 명씩 줄어들고 있음을 나는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급기야 반 년 전에는 2주나 가게를 쉬기도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만의 추억과 기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장소가 늘 같은 장소에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내가 기쁠 때나, 우울할 때나, 무언가에 도전하기 위해 가장 열정적인 어느 순간에나 이 까페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편안함으로 나를 반겼다. 내가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싶을 때 조차 이 곳은 늘 같은 모습으로 내게 괜찮다 말해주는 나의 안식처였다. 내가 문제 속에서 싸우고 힘들어하고 자책할 때, 나는 이곳에서 혼자이고 싶어했고, 답을 찾지는 못했을지언정,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이 곳에 있을 때의 나의 모습을, 나의 청춘을 나는 한 없이 긍정하고 사랑한다. 항상 이기적인 사랑을 하는 나의 이기적인 욕심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앞으로 이 가게가 항상 이곳에 있어주었으면 한다는 점이다. 철새처럼 나는 이 곳에서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멀리 멀리 날아야 한다. 착하게 살려고 다짐하면서도 언젠가는 이기적인 가시를 주변에 뻗을 것을 잘 알기에, 외로울 때면 다시 이곳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창원 생활을 시작한지 5. 수없이 많은 여행을 하고, 출장을 가면서 들렸던 수 많은 맛집과 구경거리, 안식처를 통틀어 이곳이 나에게는 최고의 안식처다. 문득, 나는 누군가에게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나의 모습을 보였는지 과연 나를 그들의 안식처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안식처를 찾는 것 이상으로 내가 누군가의 안식처가 되고 싶다.

 

(167) 동백은 남도 사람들의 울타리 속 꽃이다. 그들의 애환이고, 장독대 옆의 일상이며, 간혹 밭일하다 허리를 펼 때 웃어주는 그런 꽃이다. 그들의 표현대로 암시렇지도 않은일상의 꽃이다.

 

(168) 봄 날의 아름다움이 바로 문 밖에 있으니 어디로 가랴.

 

(170) 꿈은 씨앗과 같아서 늘 그 속에서 싹이 트고 커다란 나무가 된다. 그러므로 꿈은 또한 현실이다.

 

(183) 옛사람들은 그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그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다.

 

(184) 진지함은 불완전한 노력일 뿐이다. 그는 알고 있는 지식을 소화하여 자신의 인생관과 관련시킨다. 그래서 어떤 때는 단순하다. 역설적이지만 단순하다는 것만큼 깊이 있는 것은 없다. 그는 세상에 속한 듯하지만 자신에게 속해 있다.

 

★ 티올(정욱) : 어떠한 개념에 대한 설명이 복잡해지는 것은 그것을 설명하는 사람이 대상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잘 모를수록 말이 어려워지고 번잡해진다. 핵심을 간파하는 혜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잡변이 많아진다. 내가 그렇다. 아무리 어려운 원리도 그것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어린아이에게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지 못한다. 나는 가끔씩 너무 진지한 모습을 보인다. 내가 불완전하다는 반증임을 잘 안다. 사뭇 진지한 듯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말들을 꾸밈으로써, 나의 텅 빈 속을 감추려는 속셈이다. 하지만 진정 속이 꽉 찬 사람은 무거움을 위장한 나의 가벼움을 쉽게 간파한다. 그는 그저 허허허 하고 웃을 뿐이다. 허허실실이 따로 없다. 소설가 김훈이 말했다. 언젠가 궁극적으로 주어와 서술어로만 이루어진 글을 쓰고 싶다고. 모든 부사어와 형용사, 불필요한 수식을 모두 다 떼어내고 주어와 서술어로만 된 글을 쓰고 싶다고. 내 무릎을 하고 치는 말이다. 모르는 게 많을 때, 스스로의 텅 빈 재능의 곳간을 감추고 싶을 때, 우리의 글에는 사족이 많아진다. 한 연구원 동기가 말했다. 자기는 이유식 같은 글을 쓰고 싶단다. 쓰는 자기도 편하고, 무엇보다 읽는 사람 입장에서 소화가 잘 되는 글을 쓰고 싶단다. 많이 반성했다. 나는 가끔 내가 쓴 글도 낯설 때가 있다. 글을 쓸 때 항상 진심을 담아서 쓴다고 해 왔지만, 나도 모르게 과했던 적은 없는지 돌아 본다. 모든 글은 형식보다는 내용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형식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내용을 잃기 쉽다. 진지함이 내면의 충실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텅 비어 있는 공간이 우리를 채우기도 한다. 우리의 신체를 구성하고 있는 뼈와 피, 살 모두 그 안은 텅 비어 있는 것과 같다. 경쾌함이 때로는 진지함 보다 더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207) 살며 만나는 어려움도 늘 그것이 최초는 아니다. 이미 누군가가 건너간 길이다. 지금 나뭇가지를 붙잡고 천애의 절벽을 발 밑에 두고 아슬아슬 건너가지만 내가 지나온 자리는 결국 나중에 길이 될 것이다.

 

★ 티올(정욱) : 서산대사의 시가 생각난다.

 

(229) 자기다운 일을 함으로써 명성과 부와 힘을 가지게 되었던 사람들,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변하게 되었던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정치에 입문함으로써 대개는 그 힘을 잃게 된다.

 

(236)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우럭이 엄숙한 입을 하고 왔다 갔다 한다. 우럭은 커다란 입이 아래로 깊이 다물어져 있어 마치 무게 잡는 임금님의 입매 같다.

 

★ 티올(정욱) :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비유는 메마른 글에 생동감을 주는 봄비와 같다. 하지만 반가운 봄비도 너무 자주 내리면 귀찮아진다. 적당한 그리고 적절한 비유는 죽은 글도 살려내는 마법과도 같다.

 

(247) 우리의 놀이가 밤이 깊어질수록 야단스러워지는 이유는 어쩌다 한 번 쉬기 때문이다. 휴식의 절대 길이가 짧다 보니, 당연히 볼 것도 해야 할 일들도 많다. (중략) 그러니 밤늦도록 놀아야 하고 마셔야 한다. 혹은 새벽까지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다시 일로 복귀해야 할 날까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휴식이 휴식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47)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문화는 우리의 휴식 시간이 짧다는 것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략) 뜸을 들일 시간이 없다. 짧은 시간에 농축되어야 하기 때문에 진해야 되고, 따라서 야만적이며 과격한 몸짓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처럼의 휴식은 또 다른 노동이 되고 만다.

 

★ 티올(정욱) : 정말 설득력 있고, 신선한 글이다. 우리의 향락적인 문화가 짧은 휴식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니. 왜 우리가 휴일이라며 그렇게 힘들게 악을 쓰다시피 고생을 해가며 노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247) 문화는 쉽게 말해 잘 노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자기가 스스로의 삶을 조직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253) 섬에서 목포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은 배 안에서 서로 만나 웃고 떠든다. 서로 마음에는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젊은 남녀의 긴장도 공기를 타고 전해진다. 비록 일상적 대화를 나누기는 하지만 뜻밖의 제안을 기대하는 아름답고 부드러운 오후의 감상이 짐짓 무관심한 얼굴 위에 농염하다.

 

★ 티올(정욱) : 정말 질투 나는 글이다. 나는 작가의 글과 문체 가끔씩 가슴을 아리게 하는 여러 비유와 표현들을 사랑한다. 그런데 정말 가끔은 작가가 내림굿을 받았나 싶을 정도로 소름 돋는 표현들을 발견한다. 이 표현이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이 책에서 본 여러 표현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다. 모든 관찰은 대상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 된다 (섬에서 목포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은 배 안에서 서로 만나 웃고 떠든다). 그리고는 대상을 향한 작가의 은밀한 상상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비처럼 날아와 그 들의 어깨 위에 살포시 앉는다 (서로 마음에는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젊은 남녀의 긴장도 공기를 타고 전해진다). 그리고는 일상 속에서 흔히 있을 법한 장면이 작가의 눈이라는 카메라 필터를 통해 한 장의 사진으로 와서 박힌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오후의 감상이 짐짓 무관심한 얼굴 위에 농염하다). 글과 사진은 다르지 않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255) 세상의 어느 문화이건 어린아이들의 세계는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현실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내부로 기어들어가 아무런 물리적 제약이 없는 정신의 세계를 넘나든다.

 

(283) 자식들의 어려움을 대신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이미 모두 죽어 없어졌을 것이다. 과로와 지나친 심려 때문에.

 

(298)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 역시 비극적이다. 그는 종속적이며 누군가가 시킨 일만 할 뿐이다.

 

(300) 적응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이라는 것이다. 변화의 핵심은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새로운 상황을 창조함으로써 스스로 그 주인이 되는 것이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자기로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이 허락한 대로.

 

(304) 감탄은 자신을 잊게 한다. 자신과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벽을 허물고 어두운 자아 속으로 햇빛을 가득히 받아들이게 한다. 나는 지금 누구와도 웃고 떠들 수 있다.

 

(308) 인간은 상징성을 벗어날 수 없다. 변화는 상징과 함께 나타난다. 결혼식은 두 사람이 만드는 하나의 세계를 상징하며 장례식은 삶과 죽음의 화해이고 이승에서의 이별이다.

 

(309) 바다는 가끔 밑바닥을 뒤집어엎어 스스로를 정화한다. 태풍과 풍랑과 해일과 파도는 바다가 스스로를 정화하는 도구들이다. 바다가 바다일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311) 필부는 일상에 매여 사는 사람이다. 일상에 매여 살고 일상 속에서 울고 웃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세상의 흥망에 책임이 있다.

 

(311) 인간은 별과 같다. 수없이 많지만 하나하나가 모두 작은 우주이다.

 

(312) 나는 자연을 닮아가고 싶다. 그리하여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 나를 위해 쓸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한다. 바라는 대로 되는 세상은 아니지만 세상이 만들어주는 대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312) “쓰임을 받으면 행하고, 버림을 받으면 숨는다

 

(319) 삶은 기술이 아니다. 삶은 돈이 아니다. 삶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것 또한 우리는 잘 안다. 삶은 그 자체로서 중요하다.

 

(324) 욕망을 다스리는 것이 곧 경영과 자기 계발의 핵심이다. 간절한 욕망만 남기고 나머지를 거세시켜 시간을 더하면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필요한 것은 지루한 반복과 연마 그리고 변화의 이유를 지켜야 하는 당위의 힘이다. (윤광준)

 

(326) 풍경은 여행의 목표가 아니었다. 풍경으로 비롯되는 인간과 삶의 문제가 곁들여져야 보이는 것이 의미가 되고 실천의 해법으로 바뀌는 놀라움. 풍경의 완성은 사람이었다. (윤광준)

 

★ 티올(정욱) : 낯선 곳에서 낚시를 하듯 건져내 올린 풍경에 대한 묘사는 그것만으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풍경과 함께 인간의 삶과 고뇌를 함께 건져 올려내야 한다. 그 둘이 만났을 때 풍경은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결국 풍경을 바라보는 것도,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낯선 의미를 건져 올리는 것도 그리고 그 즐거움과 그 향기에 취하는 것도 인간인 것이다.

 

(327)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든 바다에서 살 길은 스스로 헤엄쳐 나가는 일뿐이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헤엄쳐 갔다. 죽더라도 난파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발견된 인간이 되고 싶었다. (윤광준)

 

(327) 난 변화와 개혁에 성공했다. 이젠 과거의 안정과 얄팍한 자부심이 그립지 않다. 스스로 얻은 밥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맛이 더 좋다. 발목을 붙잡고 억압했던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무엇이 두려워 나가지 못했던 것일까. 가진 것이 뭐 그리 대단해 놓지 못했던 것일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삶,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전부였다. (윤광준)

 

(328)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출발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번 출발하면 되돌릴 수 없어 나아간다. (윤광준)

 

 

III. 내가 저자라면

 

√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작가의 글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쓰는 글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은 생각의 나무라는 출판사를 통해 작가가 2000년 출간한 책을 2008년 을유문화사를 통해 다시 펴낸 것이다. 을유문화사는 구본형 작가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 『일상의 황홀』, 『사람에게서 구하라』, 『떠남과 만남』, 『공익을 경영하라』 등이 모두 을유문화사와 인연이 되어 나온 책들이다. 구본형 작가가 처음부터 을유문화사와 인연이 깊었던 것은 아닌 듯 하다. 많은 책들이 2007년 과 2008년을 기해 집중적으로 재 간행되었다. 2000년부터 1인 기업가로 다시 태어난 작가가 부단한 노력의 결실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말 아시아발 금융위기의 교훈을 잊고, 세계 경제가 다시금 축배를 들어 폭발할 듯 팽창하다가 마침내 2008년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인해 다시 한번 추락을 경험하고 난 시기였기 때문에, 그의 자성적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줬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재 발간 되기 앞서 2008 2월 말, 구본형 작가는 다시 한번 남도를 찾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20여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다. 여러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재 발간을 위한 사진도 필요했을 것이고, 자신을 좇아 온 제자들을 데리고 떠나는 소풍의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재 발간을 맡은 을유문화사 담당자 직원도 동행을 했고, YES24 웹진의 담당자도 동행을 했으니 금번 남도 여행의 목적이 첫 남도 여행의 그것과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대수는 아닐 것이다. 자연이 늘 변하듯이, 사람도 변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8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남도 역시 얼마쯤 달라져 있었을 것이고, 구본형 작가 개인에게도 얼마쯤의 변화는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곳을 다시 찾았다는 사실이다. 혼자서 여행을 하며 다녔던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시 찾는다는 것은 여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의미로 작가는 분명 이 두 번째 남도 여행도 첫 번째의 그것만큼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작가는 분명 사람들과 함께 다시 찾은 남도의 곳곳에서 8년 전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길은 나섰지만, 아직은 두려운 것도 많았고, 초조해 하는 8살 어린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슴 속에서는 거친 태양 하나가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던 자신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을 것이다. 곳곳의 흩뿌려진 자신의 흔적들을 다시 보며, 8년 후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정판에서는 두 번째 남도 여행에 대한 짧은 감상에 대해 작은 에필로그 형식으로 글이 붙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도 여행을 마치고 YES24 웹진에서 올린 후기를 통해 당시의 구본형 작가와 20여명의 인연들에 대한 에필로그를 상상해 보기로 했다. 상상하는 것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다. 그래서 즐겁다.

(출처 : http://ch.yes24.com/Article/View/13945)

 

 

# 에필로그 (두 번째 남도 여행을 마치고) #

 

일정표를 봤는데, 이번 여행은 놀고 먹는 여행인 듯 합니다 (웃음) 길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사연, 즐거움, 아픔, 외로움, 살기 위한 발버둥을 보게 되겠지요. 이런 자취를 각자의 눈높이로 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뭔가 배운다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편한 마음으로 잘 시작하기 위해 떠난다고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2008 2 29. 나의 두 번째 남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8년 전 여행을 떠났을 때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이번 여행은 스무 명 남짓의 동무가 생겼다. 길을 떠난 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흥분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그들과 소통할 것이다. 여행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각자 일상을 떠나 2 3일의 일정으로 이곳에 모였다. 일상으로부터 떠남을 통해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이 있을 수 있었다. 이 인연도 언젠가는 다시 떠남이 있을 것이다. 모든 만남은 떠남을 전제로 하지만,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 새로운 만남을 기약할 수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떠났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떠남을 반복한다. 여행이 삶의 일부인 줄 알았는데, 삶이 여행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일행은 매화가 가장 일찍 핀다는 낙안읍성으로 향했다. 매화 꽃이 만개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였다. 일행들도 많이 아쉬워했지만, 점심으로 나온 꼬막 정식의 두툼하고 쫄깃한 꼬막은 매화의 못다 핀 매화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음식을 함께 나누면 식구가 된다고 한다. 새 식구들을 옆에 두고 서울에 두고 온 원래 식구들이 꼬막 무침의 양념 사이로 언뜻 보이기도 한다.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순천만 대대포구로 향했다. 순천만 갈대밭을 한 바퀴 도는 사이 어느 새 해가 지고 있었다. 순천만은 낙조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동행 한 스무 명의 눈에 낙조가 내려와 고스란히 담기는 것을 보았다. 우리 모두는 해를 눈에 품고 근처 저녁 식사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오고 가는 술잔 속에서 사람들이 웃음 소리가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혼자서 남도 여행을 했을 때와는 또 다른 행복이다. 우리는 길 위에서 만났지만, 지금은 함께 길을 걷고 있다. 서로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하게 좌절하며, 비슷한 불안을 가지고 있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서, 웃음의 파도가 착 하고 가라앉는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아졌다. 그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는 굳이 반복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하다가 정이 든 사람이 대다수예요. 처음엔 이 일을 하면서 살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하기 싫고 그만두고 싶은 고비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런데 정상까지 가지 못하고 언덕 어딘가에서 그치면 자기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좋아하는 일에도 고통이 따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을 넘어서면 뽕맛을 알게 됩니다. 내게는 글쓰기가 그랬어요. 정말 쓰기 싫은 날도 있지만, 내게는 글쓰기가 최고입니다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들 중에서도 재능이 있는데 노력하지 않아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에 비해 처음엔 별 볼일이 없었는데 활동을 하면서 성장의 폭이 큰 사람도 있습니다. 성실함은 미련하게 보일지 몰라도, 난 그게 좋아요. 나이가 먹고, 사람들을 많이 접할수록 재능이 아닌 지속으로 사람을 판단하게 됩니다

 

윤광준 선생도 말을 보탠다.

 

팔방미인이 밥 굶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아요. 재능이 많은 사람은 넘칠 만큼 많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이 그 재능을 제대로 발전시키는 것은 드물어요. 어느 순간 스러져 버리죠. 오히려 굼벵이들이 큰 성과를 내고, 오래 살아남습니다. 지속에는 재능으로 얻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분명 있습니다. 여러분도 열심히 자기 일을 하다 보면 지속의 힘이 인간에게 더 중요하다고 깨닫게 되는 지점이 있을 겁니다. 재능보다는 지향의 목표가 있는 이들이 더 나은 결과를 보여줍니다. 여기저기 눈 돌리지 말고 목표는 하나로만 잡으세요. 욕망을 단순화시킬수록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의미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마세요. 그저 그 일이 좋다는 맹목적인 이유로 덤벼들어 10년만 파고들면 멋진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지음(智音)이란 윤광준 선생을 두고 하는 말일까.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첫 날이 끝났다.

 

둘째 날, 보길도를 가기 위해 순천에서 해남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차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의 호위를 받으며, 우리는 쓰임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언제부턴가 실용이라는 말이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실용음악학원은 대체 어떤 음악을 가르치는 학원이란 말인가. 음악으로 대표 되는 예술 분야에서도 실용의 가치를 따진다. 하지만 윤광준 선생과 나의 공통된 생각은 바로 세상에서 실용이 차지하는 공간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근원에 대한 질문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어요. , 철학이 없으면 실용도 없는 겁니다.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내 본질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고, 거기에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면 성과가 드러납니다

 

버스를 타고 해남에 도착한 우리는 노화도로 가기 위해 배릴 탔다. 노화도에서 보길도 사이에 보길대교가 생기면서 노화도로 가는 것이 쉬워졌다. 윤선도의 풍류가 살아있는 곳, 어부사시가의 배경이 된 세연정을 거쳐 우리는 보길도 서남쪽에 있는 뾰족산으로 향했다. 예정에 없었던 일정이었다. 높지는 않지만 바위가 많아 쉽지 않은 코스다. 로프를 잡으며 천천히 오르다 보니, 어느 덧 정상이다. 나는 등산이 좋아, 북한산 옆 집을 구할 때 몇 년이고 매주 북한산을 올랐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자연 속에 파묻혀 혼자가 될 수 있는 경험은 언제나 소중하다. 작은 산을 오르는 것은 그 자체로는 대단한 수고가 아닐 수 있지만, 정상에 오른 성취는 다른 큰 산을 오르는 힘이 된다.

 

낮은 산이라도 정상을 정복했다는 만족함은 대단해요. 이렇게 살면서 작은 성취를 맛봐야 큰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게 힘이 되어 주는 거예요. 그런 느낌도 없이 끝도 없이 계속 노력만 해야 한다면 어떻겠어요? 중간에 포기하기 마련이죠. 동백나무 터널을 나오니까 기분이 어때요? 정상이 보이니까 더 힘이 나죠? 인생의 목표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작은 일을 하나씩 하나씩 성취하면서 좀 더 큰 목표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날 뾰족산 정상에서 다 함께 둘러 앉은 우리 스무 명은 그 자체로 완벽한 자연 경관이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영혼이 몸 속에서 쑤욱하고 빠져 나와 남해 바다를 건너 어디론가 한 없이 뻗어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들 중 일부는 몰랐던 일상 속의 자신의 모습과 조우하는 이도 있었을 것이고, 또 일부는 닿을 듯 닿지 않는 이상 속의 자신과 포옹을 하고 돌아온 이도 있었을 것이다. 일상을 떠나와 여행을 하면서 이곳에 왔지만,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여행을 떠나 온 지금도 우리 모두는 한 장소에 있지만, 지금 이 순간 저마다 남해 바닷바람을 타고 짧은 여행을 다녀 왔다. 여행은 이렇게 의도치 않은 공간에서 의도치 않은 행동으로 우리에게 의도치 않은 충만함을 가져다 준다.

 

우리의 여행은 항상 현재진행형이다.

IP *.87.107.169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