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2017년 7월 3일 01시 15분 등록

철학, 역사, 문학의 길에서 인간을 찾고자 한 윌 듀란트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를 읽다 보면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철학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물론 내용의 어려움은 여전히 있으나)에 놀라고 그 문학적 표현, 또는 철학의 문학적 접근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이는 그의 지적분야의 첫사랑이 문학이었다는 것을 알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19세의 나이에 이르러 그는 영국 문학사를 써서 뉴욕에 있는 가톨릭 출판사로 원고를 보냈지만, 보기 좋게 거절당한다. 그의 문학에 대한 첫사랑은 이렇게 끝이 난다. 1년 후(1905) 그의 나이 20세 때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인간의 혈통’, 그리고 스펜서의 철학의 종합적 체계에 있어서의 제 1원리들을 읽고,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신앙을 잃고 철학을 얻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던 신앙을 버리고 스스로 찾은 <철학>이라는 애인과 20여 년 사랑을 속삭인 후 1926년 그는 철학이야기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현대 철학이 논리와 인식론의 안개와 신기루에 빠져 있다는 불만이 생겨 그의 관심사는 다시 <역사>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철학보다는 역사에서 인간과 국가들의 속성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서 말이다. 이렇게 풋사랑 문학을 시작으로 신앙, 철학, 역사에로의 노선변경이 이루어진 셈이다. 그 노선변경의 결과가 바로 문명이야기시리즈이다.

 

그러나 40여 년 역사에 몰두한 대가로 그는 당대의 작가들과 시인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음을 깨닫고 문학에 관한 한 여든 네 살의 풋나기가 되어 84세가 되는 1970 5, ‘문학이야기’(interpretation of life)를 내놓음으로써 10대 때의 첫 사랑을 다시 찾아간다. 반세기 동안 <철학> <역사>에 몰두해 온 그가 84세에 다시 <문학>에 주목하면서 그는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가 결국은 인생의 의미와 가능성을 꾸준히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 철학자들과 다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제로는 그가 철학을 포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문학 이야기를 집필하면서 그는 작가 자신이 그의 작품 속의 어떤 주인공보다도 더욱 흥미진진하며, 작가가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 혹은 스스로를 감추기 위해 꾸며 놓은 허구적인 세계보다 그의 경력이 더욱 교훈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는 문학작품 속에서 작가라는 인간을 찾고자 하였다. ‘인간을 찾고자 한 이러한 접근은 사실 더 일찍 쓰여진 철학 이야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 바 있다. 그가 밝혔듯이 철학 이야기는 철학사라기보다는 몇몇 우뚝 솟은 인물들 주위에 사상 이야기를 배치하여 지식을 인간화하려는 시도이다. 철학자의 사상을 다루면서 그 사상을 태어나게 한 장본인인 철학자라는 인간과 그 생애를 함께 조명한다. 신이 떠나 버린 이 마당에 우리의 인생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성숙한 인간에게 있어 가장 값어치 있게 보이는 인생관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온 생애를 걸고 밝혀내고자 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문학을 첫사랑으로 품었던 윌 듀란트의 유려한 필체로 만나보자.

 

내 마음 속 책갈피

 

6장 이마누엘 칸트와 독일 관념론

 

342 예의 바르게 안전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우회로로 다가가보자. 주제를 둘러싼 테두리의 여러 점에서 시작하여,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철학의 비밀과 보물이 있는 까다로운 중심부로 더듬더듬 나아가보자.

이 조심스러운 표현이 오히려 더 무서워서 7장부터 읽게 한 주범이 되었다. 칸트는 맨 마지막에 읽음.

 

343 삼단논법으로 수천 년에 걸친 수백만 명의 믿음을 파괴하겠다고 나선 이 지성이란 무엇인가? 거기에는 오류가 없는가? 아니면 지성 또한 다른 모든 인간기관과 마찬가지로, 그 기능과 능력에 엄격한 제한이 따르는 한 기관에 불과한가? 이제 이 재판관을 재판하고, 모든 오래된 희망을 그렇게 거침없이 죽여버린 이 무자비한 혁명재판소를 조사할 때가 되었다. 이성을 비판할 때가 온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의 등장배경, 서곡으로 아주 멋지다.

 

351 그러면서도 끝까지 독일 청교도라는 엄숙한 낙인을 유지하였으며, 나이가 들면서는 어머니가 그에게 그렇게 깊이 주입한 신앙의 핵심만큼은 자신과 세상을 유지하고 싶다는 갈망을 또렷이 느꼈다.

 

352 그의 실천적 원칙 가운데 하나는 능력이 중간인 학생에게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는 열등생은 아무리 도와주어도 소용이 없고, 천재는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342페이지의 오직 보통교육이 유토피아로 가는 유일한 열쇠라고 생각했다는 것과 같은 맥락.

 

354 칸트의 삶을 규칙동사 가운데서도 가장 규칙적인 동사처럼 흘러갔다. “일어나고,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식사를 하고, 걷는다.”

규칙동사라는 표현 좋다! 규칙 가운데 다듬어진 성취들 멋지고! 이렇게 규칙적으로 사는 칸트가 그 산책길을 포기하면서까지 단숨에 읽으려 했던 <<에밀>>은 과연 의미가 있었을까. 나의 최근 3개월 최다 빈도의 규칙동사는 일찍 일어나, 커피 마시고, 필사하고, 읽고 쓰고”. 이 규칙동사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이 규칙동사를 깰 나의 에밀은 어떤 것이 될지가 관전 포인트.

 

354 칸트는 몸이 아주 약해서 스스로 철저한 섭생을 해야 했다. 그는 의사 없이 이렇게 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며, 결국 여든살까지 살았다. 일흔살에는 <아픈 느낌을 결단의 힘으로 정복하는 정신력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썼다.

그나마 신체적 통증의 단계였으니 정신력 운운할 수 있는 에세이를 쓸 수 있었던 것. 어쨌든 약한 몸을 스스로의 습관개선과 정신력으로 여든살까지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하다.

 

354 그는 양말 시는 법에도 철학을 적용하여,

 

355 칸트는 스물두 살에 전능한 젊음이 지닌 훌륭한 열망을 듬뿍 담아 이렇게 썼다. “나는 이미 지키고자 결심한 노선에 마음을 고정시켰다. 나는 나의 길로 들어설 것이며, 무엇도 내가 그 길을 좇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스물두 살에 마음을 고정시킬 노선을 정했다니. ‘나의 길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그 노선이 부럽다. 

 

355 그래서 그는 가난과 무명의 세월을 살며 거의 15년 동안 자신의 걸작을 스케치하고 쓰고 다시 썼다. 그는 이것을 1781년 쉰일곱 살이 되어서야 마무리했다. 이렇게 느리게 성숙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적도 없었다.

 

355 왜곡시키는 감각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순한 지식보다 우월한 것으로 찬양하려 한다. ‘순수이성은 우리 감각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 경험에서 독립된 인식을 뜻하기 때문이다. 정신의 타고난 본성과 구조에 의해 우리에게 속한 지식인 셈이다.

 

356 우리의 확실성이란 늘 무너질 위험이 있는 개연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신이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 356 내 질문은 모든 물질과 경험의 지원이 사라졌을 때 이성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357 우리는 그것을 침해하는 미래의 경험을 생각할 수 없다.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믿을 수도 있고, 언젠가는 어떤 상상 가능한 석면의 세계에서 불이 막대기를 태우지 못할 거라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2x2 4가 아닌 다른 것이 되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런 진리는 경험하기도 전에 참이다.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다.

 

358 감각은 그 자체로는 자극의 인식에 불과하다. 우리는 혀로 맛을 보고, 코로 냄새를 맡고, 귀로 소리를 듣고, 피부로 온도를 느끼고, 망막으로 빛이 번쩍임을 느끼고, 손가락으로 압력을 느낀다. 이것은 날 것 그대로인 조잡한 상태이지만 여기에서 경험이 시작된다.

 

360 인과관계 또한 선험적일까? 모든 사고의 불가결한 선행조건일까?

인과관계를 잠시 인간관계로 잘못 읽었다. 인간관계가 선험적일 수도 있을까? 누군가 만났을 때 그 관계의 유통기한을 미리 알 수 있을까? 그와의 관계가 지속적이 될 지 일정기간만 의미 있는 시절인연일지, 첫 만남에서 그 관계의 미래를 알 수 있게 된다면? 언젠가의 칼럼주제.

 

368 우리의 모든 경험 가운데 가장 놀라운 현실은 바로 우리의 도덕감각, 즉 유혹과 마주했을 때 이것이 그르다는 피할 수 없는 느낌이다.

 

368 우리 행위의 준칙이 의지에 따라 보편적인 자연법이 되도록 행위하라.

이걸 교과서에서 접했을 때는 정말 이해가 안가더라. 좀 더 풀어서 설명이 되었으면 좋았을 건데.

 

369 “본디 도덕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남들의 행복을 구하고, 우리 자신에게는 완벽을 구하자-그것이 행복을 주건 고통을 주건. 자신의 완벽을, 남들의 행복을 이루려면 자신이건 다른 사람이건 모든 경우에 인간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접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교과서에 이런 식으로 설명이 되었다면 칸트에 대해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을 터.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 참 좋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를 화두로 삼아야겠다.

 

369 이성적 인간들의 이상적 공동체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371 루소가 옳았다. 심장의 느낌은 머리의 논리보다 위에 있다. 파스칼이 옳았다. 심장은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고, 머리는 이것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자연의 박동과 심장의 박동.

 

371 “자연의 아름다움 자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늘 선의 증표라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한다(쇼펜하우어 예술론의 많은 부분은 여기에서 도움을 얻었다).

 

374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용감할 수 있었던 일부 전기 작가들은 이런 양보를 두고 그를 비난했지만, 이때 칸트는 일흔 살이었고, 몸이 몹시 약했으며, 싸움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 또 그는 이미 할 말을 세상에 다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375 타고난 능력을 더 계발할 수 있도록 불화를 일으킨다. 따라서 생존을 위한 투쟁이 전적으로 악인 것은 아니다.

안정과 권태보다는 일견 부정적인 것이 능력을 계발하는 역할을 하는 건 맞다. 헝그리 정신도 그렇고. 그런데 그렇게 능력을 계발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도덕경의 잔상이 아직도 남아서인가. 능력 계발하자고 불화라는 불쏘시개가 필요할까. ‘완전한 조화, 만족, 서로에 대한 사랑 속에서 전원적인 목자 생활’(p.375)을 하면서 재능이 영원한 맹아 상태로 감추어진들 좀 어떤가 싶은 생각이 드네.

 

376 역사의 전체적 의미는 호전성과 폭력이 점점 제한되고 평화의 영역이 계속 확장되는 것이며, 역사는 결국 이 방향으로 나아간다. “전체로 보자면 인류의 역사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완벽한 계획, 즉 자연이 인류에게 심어준 모든 능력이 완전하게 계발되는 유일한 정체(政體)를 만들어낸다는 자연의 감추어진 계획의 실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 진보가 없다면, 연속되는 문명들의 노력은 되풀이하여 높은 언덕으로 거대하고 둥근 바위를 굴려 올리지만꼭대기에 거의 다 와서 놓쳐버리고 마는 시시포스의 노력과 비슷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역사는 어리석은 짓의 끝없는 순환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는 힌두사람들처럼 지구가 지금은 잊어버린 오래된 죄를 씻는 장소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379 그는 일흔 살의 고령인데도 물러서지 않고 새로운 질서, 보편적 민주주의, 자유의 확립을 옹호한다. 노년이 이렇게 용감하게 젊음의 목소리로 말한 적은 없었다.

윌 듀란트는 칸트를 설명할 때는 유난히 나이 언급을 많이 하네?

 

379 아이 같은 노망으로 시들어갔으며, 마침내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광기의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의 감수성과 능력이 하나하나 그를 떠났다. 그는 1804년 일흔아홉 살의 나이로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조용히 자연스럽게 죽었다.

 

380 사실 칸트는 유물론의 피난처로서 공간의 주관성을 입증하려는 마음이 매우 간절했다. 그는 공간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라면 신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고, 따라서 신은 공간적이고 물질적이라는 주장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모든 실재는 일차적으로 우리의 감각과 관념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진다는 비판적 관념론으로 만족했는지도 모른다. 늙은 여우는 씹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을 입에 넣은 것이다.

 

381 또한 얻을 수 있듯이 잃을 수도 있다. 건망증, 이중인격, 정신이상 등이 그런 예다. 개념은 선물이 아니라 성취인 것이다.

 

[헤겔]

 

388 그는 친구 셸링에게 정착할 만한 곳을 알려달라고 하면서, 음식은 소박하고 책은 많고 훌륭한 맥주가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나는 정착할 만한 곳의 조건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391 일의 모든 조건에는 모순이 포함되어 있으며, 진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둘을 화해시키는 통일에 의해 모순을 해결한다. 따라서 우리의 현재 사회 체제는 자신을 좀먹는 모순을 감추고 있음이 틀림없다.

 

392 갈등은 성장의 법칙이다. 성격은 세상의 폭풍과 압박 속에서 구축된다. 사람은 강제, 책임, 고통을 통해서만 완전하게 성장한다. 심지어 고통에도 이유가 있다. 그것은 생명의 표시이자 재건의 자극제다. 감정 또한 만물의 존재 이유 속에서 자기 자리를 갖는다. “세상의 위대한 것들 가운데 감정 없이 완성되는 것은 없다.”

 

7장 쇼펜하우어

 

399 괴테는 말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끝장난 세계에서 내가 젊지 않다는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

 

400 쇼펜하우어는 1804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시골 마을의 혼란과 불결, 농부들의 비참한 궁핍, 도시의 불안과 인색에 놀랐다.

 

400 산업 노동자들은 갓 태어나 통제되지 않은 공장 시스템의 잔혹성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었다.

 

401 이 비극은 얼마나 희극적인가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뜨거운 눈물이 고여 있었다.

 

401 메피스토펠레스는 승리를 거두었으며, 모든 파우스트가 절망에 빠졌다. 볼테르는 회오리바람의 씨를 뿌렸고, 쇼펜하우어는 그 결과를 거두어들였다.

 

401 거의 모든 땅을 덮어버린 이 재앙은 정의로운 신이 이성의 시대와 불신앙에 복수한 결과인가?

 

402 유럽의 혼돈은 우주의 혼돈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며, 어차피 신의 질서는 없고 천국의 희망도 없으며, 만일 신이 있다면 그 신은 눈이 멀었으며 지구는 악으로 덮여 있다는 것이었다. 바이런, 하이네, 레르몬토프, 레오파르디, 그리고 우리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그렇게 생각했다.

 

402 그런 분위기는 그의 단도직입적 태도, 현실주의적 경향, 세상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대한 지식 등으로 그에게 흔적을 남겼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이 그렇게 경멸하던 골방 철학자나 강단 철학자 유형과는 정반대의 존재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1805년에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할머니는 정신이상으로 죽었다.

 

402 “성격이나 의지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는다. 지성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는다.”

 

402 그러나 그녀는 예민하고 흥분하기 쉬운 기질의 소유자였다.

 

403 그런 종류의 삶에 가장 어울리는 분위기를 갖춘 바이마르로 갔다.

 

403 좋은 자질은 모두 자만심에 가려져 있고, 다른 사람들의 흠을 찾는 기질을 억누르지 못해서 세상에 쓸모도 없어. (엄마가 아들에게)

 

403 미워하는 대신 낯선 사람으로서 서로 예의를 지킬 수 있었다.

 

403 그러자 우리의 철학자는 그녀가 오직 자신을 통해서만 후손에게 알려질 거라고 신랄하게 내뱉었다.

장미의 전쟁모자 버전. 쇼펜하우어나 그녀의 엄마나 독설, 신랄함을 교집함으로 갖고 있었고 그걸 서로에게 쏴댔네. 이런 것도 일종의 정신적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해야 할까. 내 안에 품은 부모의 단점을 공격하는 모습이라. 자기도 그 모습을 갖고 있으면서. 이것도 이후 칼럼주제, 정신의 자가면역질환.

 

403 이 두 사람은 이런 환경 때문에라도 비관주의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남자, 더 심한 경우 어머니의 증오를 아는 남자는 세상에 매혹될 이유가 없는 법이다.

 

404 성공과 명성을 놓치자, 그는 안으로 파고 들어 자신의 영혼을 물어뜯었다.

 

404 “……하나라도 있는 것과 하나도 없는 것 사이에는 무한한 차이가 있다.” 그는 당대의 민족주의 열병에 대한 면역이 괴테보다도 앞서 있었다.

 

405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힘이 넘치며, 아름다움도 없지 않다라고 한껏 자랑했다. 이 책이 앞으로 다른 수많은 책의 자료이자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쇼펜하우어의 사랑은 없다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시니컬한 유머감각 때문에 많이 웃으며 즐겁게 읽었고 그래서 쇼펜하우어가 비관주의를 가장한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소개된 그의 생애를 보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드러나듯 자기애와 더불어 나름 귀여운 면이 있다. 사람 자체는 매력이 있었을 거 같다. 가시 돋힌 장미 같은.

 

405 세상은 너무 가난하고 지쳐 자신의 궁핍과 피로에 관하여 쓴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책이 나오고 16년 뒤 쇼펜하우어는 책이 대부분 폐지로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구, 슬프네..

 

406 그는 그의 작업 가운데 가장 읽기 쉽고 지혜와 재치가 충만한 이 책을 쓴 대가로 기증본 열 부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낙관주의가 나오기는 힘들었으리라.

아 진짜 슬프네..

 

406 그는 일부러 막강한 헤겔이 가르치는 시간을 강의 시간으로 골랐다. 쇼펜하우어는 학생들이 자신과 헤겔을 후세의 눈으로 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렇게 먼 훗날을 내다보지 못해, 쇼펜하우어는 텅 빈 좌석들을 상대로 강의해야 했다.

쇼펜하우어의 패기는 높이 살만하다.

 

407 펜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 또 철학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지혜로 돈을 투자했다.

아전인수격일 지 모르지만 이런 사례 보면 반갑다. 볼테르도 그랬고 글을 쓰는 사람들이 꼭 투자에 초연한 것만은 아니었어. 대개 성공한 작가는 효자 책이 있어 다른 책 형제들을 먹여 살리는 구조를 갖고 있고 그걸 이상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408 법률가, 의사, 상인 등 중간계급 사람들이 그에게서, 형이상학적이고 비현실적인 것들에 관해 허세를 부리며 허튼소리를 지껄이는 것 대신 실생활의 현상들을 알아들을 수 있게 검토하는 철학자를 발견한 것이다. 1848년의 이상과 노력이 실패하여 환멸을 느끼던 유럽은 1815년의 절망을 이야기한 그의 철학을 돌아보며 갈채를 보냈다. 과학의 신학공격, 사회주의 가난과 전쟁 고발, 생물학의 생존투쟁 강조 이 모든 것이 마침내 쇼펜하우어에게 명성을 안겨주는 데 기여했다.

 

408 그는 자신에 관한 모든 기사를 열심히 읽었다. / 이 위대한 비관주의자는 말년에 거의 낙관주의자가 되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플루트를 열심히 불었고, 젊음의 불길을 꺼준 시간에 감사했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그를 만나러 왔다. 1858년 일흔 살 생일에는 모든 대륙 , 모든 지역에서 축하가 쏟아져 들어왔다. / 1860 9 21일 그는 혼자 아침 식탁에 앉았고,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한 시간 뒤 여주인은 그가 여전히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죽은 것이다.

 

409 쇼펜하우어는 상인의 아들답게 구체성이 풍부하고, 예가 풍부하고, 응용이 풍부하고, 심지어 유머도 풍부하다. 칸트 이후로 철학에서 유머는 깜짝 놀랄 만한 혁신이었다.

쇼펜하우어의 사랑은 없다문장론을 읽고 정말 많이 웃었다. 러셀 자서전도 재미있었고. 철학자들이 이렇게 웃길 수 있나, 그런데 왜 쇼펜하우어는 비관주의자라 하고 러셀은 자살의 유혹을 많이 받았을까 의아해했던 적이 있다. 비관주의자가 품고 있는 유머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품고 있는 유머, 이것도 내면에 모순을 품고 있는 현상이라고 봐야 할까.

 

410 칸트와 나 사이의 기간에 철학에서 이루어진 일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아 진짜..이 자신감.

 

412 의식적 지성 밑에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의지, 노력하는 집요한 생명력, 자발적 행동, 오만한 욕망의 의지가 있다.

언제가 터질 것 같은 마그마와 같은 의지.

 

413 의지는 눈이 보이는 절름발이를 어깨에 태우고 다니는 힘센 맹인이다.”

 

413 우리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이유를 찾는다.

 

413 마침내 그가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 우리가 그의 의지를 상대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보다 짜증나는 일은 없다.

 

413 어떤 사람도 논리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다. / 사람을 설득하려면 그의 이익, 욕망, 의지에 호소해야 한다.

해명의 경우는 어떨까.  오해가 있을 때 논리이해를 끌어낼 수는 없다. 그럴 이해력과 공감능력이 상대방에게 없기에 굳이 불필요한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내게는 있다. 그렇기에 애초에 입을 닫고 마음을 닫고 오해를 풀 생각을 안하는 편. 설득수단으로 이익, 욕망, 의지에 호소를 언급했다면 해명 또는 오해를 푸는 수단으로 쇼펜하우어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어쨌든 소통이란 어려운 것. 설득만이 아니라 시장(market)에서의 행동도 그러하고 인간은 이성적, 논리적이지 않다.

 

414 전체적으로 지성은, 교활한 사람의 경우처럼 위험 때문에 발달하거나, 아니면 범죄자의 경우처럼 결핍 때문에 발달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지성은 욕망에 종속되며 그 도구가 된다. 지성이 의지를 대체하려 하면 혼란이 따른다. 오직 생각에만 기초해서 행동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실수하기 쉽다.

그런가?

 

414 식량, , 자식을 둘러싼 인간의 열띤 싸움을 보라. 이것이 생각의 결과일 수 있겠는가? 당연히 아니다. 원인은 절반쯤은 생의 의지, 충만하게 살려는 의지이다.

 

415 뇌와 연결되지 않은 근육(심장처럼)은 절대 지치지 않는다.

 

416 그 결과 고비를 순조롭게 넘기는 일이나 치유는 잘 때 이루어진다.

 

416 사실 머리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머리의 가장 지혜로운 부분은 매일 밤 가장 이상하고 가장 말이 안 되는 꿈이 나타나는 현장이고,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다시 명상을 이어가는데.

 

424 매 순간 다른 방식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곧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자유롭지 않고 필연성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 자신의 모든 결단과 사유에도 불구하고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스스로 비난하는 바로 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시 말해서 마지막까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424 어떤 이상에 그것의 실현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다.

간절히 원하는 어떤 성취를 이루지 못했을 때, 정점에 이를 것 같은데 이르지 못했을 때, 신이 그 사람을 아끼는 까닭이다. 예전에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지 못했을 때, 이하늬가 미스 유니버스가 되지 못했을 때 둘 다 승리가 확연했음에도 아 신이 저들을 아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427 심지어 기억과 선견지명도 인간을 더 비참하게 할 뿐이다. 우리의 고난 대부분은 돌이켜보거나 기대하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428 삶은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에 유지된다.

무식해야 용감하다. 다만 한달 뒤가 어떤 모습일 지 예측해보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과 실행과는 다른 맥락에서 말이다. 어떤 사람을 봤을 때 첫인상과 함께 그 사람과의 관계의 유통기한을 생각해보듯이 그렇게 현재와 미래를 예견해보는 훈련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렇게 미래가 예견된다면 삶이 지탱되기 어렵겠지.

 

430 삶은 비용을 뽑을 수 없는 사업/ 행복해지려면 아이처럼 무지해야 한다. / 아이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피곤함, 충족의 보람 없음을 아직 알지 못한다.

쇼펜하우어 시대엔 그랬나 보다. 지금은 아이들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피곤함이 있다. TV에서 장난감 모델이 등장하면 현실에서 그 장난감이 판매되고, 심지어 시리즈로 나오기에 아이들은 계속 욕망한다. TV도 장난감 시리즈에도 갈증이 없는 우리 아이들이 기특하다. 자연에서 노는 것이 최고이다. 아이들의 무대는 목장이었으면 한다. 어른이 되어 농장, 시장, 전장으로 나아가는 한이 있어도.

 

430 경험이 지혜로 통합되기 시작할 때, 뇌와 몸이 쇠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경험이 지혜로 통합되지 않고 또 다른 지배나 압박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는? 쇼펜하우어 시대의 아이와 경험과 함께 나이 드는 사람의 모습은 현재와 차이가 있다. 그런데 그 차이를 불러온 원인은 무엇일까?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는 중에 있고 경험을 꼰대의 지팡이로 쓰는 늙은이는 되기 싫기 때문이다요새 며느라기라는 웹툰 유행이던데 시집살이를 겪은 시어머니가 더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원리(?)를 일반화 해보는 것도 좋겠다. 왜 어떤 영역에서는 경험이 지혜로 통합되지 않는가. 칼럼주제!

 

432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소망이나 다양한 욕망이 달라붙는 대상이라면 무엇으로든 늘 변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돈을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불가피하다. / 돈만은 모든 소망의 추상적 만족이기에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다. 그럼에도 부를 기쁨으로 전환할 방법을 모른다면 부를 얻는 데 헌신하는 삶은 의미가 없다.

 

434 대부분의 학자들은 자신의 정신이 빈곤해서 생기는 일종의 진공 흡입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강력하게 빨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 점차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기반한 독서여야 하는 이유. 또한 인용문이 많은 글을 보면 누더기 같은 생각이 들어 읽기 싫어지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에서 오는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지 찾을 수가 없다. 오직 바느질 자국에서만 주체의 흔적을 찾을 뿐.

 

434 세상 경험은 일종의 텍스트로 볼 수 있으며, 생각과 지식은 주석을 이룬다. 생각과 지식은 많은데 경험이 거의 없을 경우, 그 결과는 페이지마다 본문은 두 줄인데 주석은 마흔 줄 달려 있는 책과 같다. / 책보다 삶이 먼저라는 것.

위대한 사람들이야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고 삶의 방향을 잡아 나가지만, 개인적으로는 보통 사람은 경험과 체험 그로 인해 체득한 구체적인 무언가를 내면의 창고에 쌓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책은 그 경험들이 무르익은 후 읽으면 더 와 닿는 경우도 많더라.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히기 보다는 자연을 읽고 자연에서 놀게 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하는 편이다. 그런데 내가 책 안 읽히고 다독의 무익함을 이야기해봤자 게으른 자의 변명으로들 여기던데 확실히 쇼펜하우어가 이야기 하니 있어 보이네. 책보다 삶이 먼저다.

 

434 우리의 행복은 우리 호주머니에 든 것보다 우리 머리에 든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몇 살 때 썼을까?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행복은 머리에 든 것보다 가슴에 든 것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게 되던데.

 

436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위대한 인물의 성취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내가 최근에 하고 있는 것.  조셉캠벨, 윌 듀란트, 노자, 그들과의 대화가 모두 좋았다.

 

440 우리가 시나 그림에서처럼 자연에서 쾌락을 얻는 것도 개인적 의지가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 대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자연을 좋아하나.

 

440 비극 또한 개인적 의지의 다툼에서 우리를 해방해주고 우리의 고난을 큰 관점에서 보게 해주기에 미학적 가치가 있다.

딱 와닿지는 않지만 그 와중에 귀는 기울여지는 글귀. 비극의 미학적 가치라. 고통에도 이유가 있다. 다만 대승적 희생운운할 때는 가끔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더라.

 

440 사물의 영원한 측면을 볼 때 정신은 영원에 참여하는 것이다.

 

445 …여성 전체에서 가장 탁월한 지성이라 해도 미술에서 진정하고 독창적인 성취는 단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또 어떤 영역에서도 영원한 가치를 지닌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했다. / 아시아인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서 여성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여성에 대한 독설이 마구 쏟아져 나온 이 글을 보고 쇼펜하우어가 엄마한테 화가 많이 났구나. 내면의 치유가 필요했을 터인데, 애인이나 아내한테도 위로 받을 기회가 없었구나. 그 마그마가 이렇게 터지는구나 싶어 안타깝기도 했고, 뜬금없지만 독설인데 웃기기도 했다. 요새 이런 글 쓰면 길 가다 벽돌 맞았을 터인데.

 

446 삶의 아름다움은 거짓이고 가장 큰 은혜는 죽음이라고 말할 용기를 우리는 언제쯤에나 가질 수 있을까?

 

447 쇼펜하우어에게는 계속 여가를 누릴 만한 돈이 있었으며, 그는 지속적인 여가가 지속적인 일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철학자들의 우울해지는 경향은 앉아 있는 직업의 부자연스러움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삶에 대한 공격은 단순히 배설의 기술을 잃어버린 병의 증상에 불과한 경우가 너무 많다.

 

448 삶을 망치거나 실수를 해놓고 자신을 방어할 혀가 없는 환경이나 세상에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삶의 자연스러운 한계를 받아들인다().

 

448 사실 세상은 우리 편도 아니고 적도 아니다. 우리 손에 쥐어진 원료일 뿐이며, 우리가 하는 바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

이 접근 좋다. 세상은 이 손 안에 있고 손바닥 위의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 것인지, 지옥으로 만들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는 것. 세상은 원료라는 것.

 

8장 허버트 스펜서

 

[콩트와 다윈]

 

457 그리하여 1830년대에 이르자 우주는 전반적으로 자신의 비밀을 잘 지켜냈다고 인정받았다. 절대적 도취의 한 세대가 흐른 뒤, 유럽의 정신은 모든 종류의 형이상학에 반대하는 서약을 맺는 반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458 모든 철학은 인류의 도덕적, 정치적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전해주었다.

 

459 그녀에 대한 애정이 그의 생각에 온기와 색채를 불어넣었다. / 그 기능은 인류애를 의식적 예배의 대상으로 드높여 인간 본성의 허약한 이타주의를 양육하고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459 실증주의 운동은 산업과 교역의 생활에서 영감을 얻고 사실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영국 사상의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459 실용적이고 바쁜 삶이라는 주제의 변주들이었다.

 

460 패러데이는 세상을 감전시킬 발견을 해나갔고,

 

461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지도를 그렸다는 이유로 신세계에 그의 이름이 붙여진과 마찬가지다. 허버트 스펜서는 다윈 시대의 베스푸치였으며, 동시에 콜럼버스와 비슷한 면도 있다.

 

[스펜서의 발전]

 

465 채식주의자 시절에 쓴 글은 다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힘이 너무 빠져 있었다.

채식주의자 시절에 쓴 글도 그의 글이지. 젊은 시절 쓴 글엔 혈기가 흐르고, 밤에 쓴 글에 유치가 흐르듯, 시절과 시점에 따라 글의 분위기도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 다른 글들 모두 자신의 글이라는 것.

 

465 그는 스펜서에게 매일 과학적 예측을 시로 표현하게 했다. 스펜서는 훌륭한 지구력을 가졌지만, 그 이면에는 완고한 고집이 있었다.

 

465 그에게는 선구자의 한계가 있었다. 용기 있는 솔직함과 강렬한 독창성에는 교조적 편협함이 따랐다.

 

466 그는 교사의 아들이자 손자로서 글에서 회초리를 휘둘렀으며,

 

468 스펜서는 마흔 살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까지 나의 인생은 잡다했다고 말하면 적절할 것이다.” 사실 철학자의 경력이 그렇게 일관성 없이 왔다 갔다 한 경우는 드물다.

저두요.

 

468 1852인구론에 관한 그의 에세이(맬서스가 19세기 사상에 영향을 준 많은 사례 가운데 하나다)는 생존투쟁이 적자생존 이 역사적인 표현을 처음으로 만들어냈다 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469 정신진화의 궤적/ 시작은 동질적이고 발달만 이질적/ 역사와 진보의 일반적 원리로 끌어 올린 것

469 스펜서는 시대의 정신과 함께 성장했으며, 이제 보편적 진화론의 철학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469 이렇게 나이가 든 데가 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혼자서 어떻게 죽기 전에 인간 지식의 모든 영역을 가로지를 수 있단 말인가?

 

469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의식하자 약점이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470 “나는 그냥 먹고살기만 할 생각은 없다.” 그는 말한다. “그냥 먹고 사는 것이 관심을 가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470 그러자 자신이 쓰려고 하는 책을 예약 판매하여 그때그때 돈이 생기는 대로 근근이 먹고살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470 1860년에 발표된 이 취지서는 유럽에서 440, 미국에서 200명의 예약 독자를 모았다.

 

471 내가 손익에 관계없이 출판을 책임지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 이것은 선생이 건강을 해쳐가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요한 공적 목적을 위한 협동 제안일 뿐입니다. 여불비례, J.S..

! 진짜 눈물나도록 아름답다. 이런 일화 자체가 인생의 아름다운 드라마다. 동백림 사건 때 다들 하얀 한복을 입고 공판장에 나왔는데 천상병 시인만 푸른 수의를 입고 나왔단다. 김수영 시인이 그걸 보고 동료작가들로부터 돈을 거둬서 옷을 지어 넣었다고 한다. 이런 맑고 아름다운 영혼들 덕분에 지금 우리가 여러 훌륭한 글과 사상을 접할 수 있는 것. 책에 담겨진 그 영혼들까지 읽어야 할 것이다.

 

471 미국에서 스펜서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그의 이름으로 공채 7000달러를 샀으며, 그 이자나 배당금이 그에게 갈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스펜서도 굴복했다. 이 선물에 담긴 정신이 그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보통 지인 간 돈 거래 하지 말라고 하지만, 상황에 따라 돈에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472 병과 수많은 장애를 극복한 이 정신과 의지의 승리는 인간의 책 가운데 밝게 빛나는 한 점이 되었다.

 

[ 1원리들]

 

473 운동은 물질이 시간의 경과 속에서 공간 속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질을 철저하게 분석하면 마지막에는 힘만 남는다.

 

481 보통 시간이 지나면 성장은 재생산에 자리를 내준다. 평균적으로 성장은 에너지 소비율과 반비례하며, 재생산율은 성장 수준과 반비례한다. “암망아지에게 새끼를 낳게 하면 그로 인해 적절한 크기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육사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역으로 거세된 동물, 예를 들어 식용 수탉, 특히 고양이는 거세하지 않은 경우보다 크게 자라는 경우가 많다.”

한 개체에서 성호르몬과 성장호르몬은 반비례인 것도 같은 맥락. 그런데 이 원리(?)를 아이들의 성장에 적용을 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당연히 제 2차 성징도 함께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잘 크고 있어도 성조숙증이라 하여 성억제호르몬을 맞힌다. 키가 작으면 작은대로 성장호르몬을 맞히고. 성장을 위해 성적발달을 누르는데 그걸 권하는 의사나 부모나..과학보다는 상식을 따라야 할 터인데, 잘 먹고 잘 자면 크는 아이들을.

 

488 첫 신들은 아마 꿈과 혼으로 암시되었을 것이다. (spirit)이라는 말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혼과 신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원시적인 정신은 죽음, , 무아경 상태에서 혼 또는 영이 몸을 떠난다고 믿었다. 심지어 재채기를 할 때도 숨을 내쉬는 힘에 영이 쫓겨날 수 있어, 영을 보호하기 위해 신의 축복이 있기를!”이라는 말 또는 그와 비슷한 말 이 이 위험한 모험에 따라붙었다. 메아리와 그림자는 사람의 혼 또는 영의 소리와 모습이었다.

 

495 생물학은 윤리적 안내자로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이와 발톱이 피로 물든 자연”(테니슨의 표현이다)은 정의와 사랑보다 야만과 교활을 찬양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펜서는 자연선택과 생존 투쟁의 검증을 통과할 수 없는 도덕률은 처음부터 아무 의미 없는 것, 입에 발린 말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502 그러나 우리는 공감 영역의 커다란 확장, 이타주의를 향한 충동의 큰 발달을 기대할 수도 있다. 지금도 부모는 기꺼이 희생을 한다. “자식 없는 사람들이 자식을 바라고, 때때로 양자를 들이기도 하는 것은 이기적 만족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이타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502 “끊임없는 사회적 훈육은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최대한 이익이 되도록 공감의 쾌감을 자발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으로 인간본성을 빚어나간다.” 그렇게 되면 여러 세대에 걸쳐 사회적 행동을 강요한 결과인 의무감은 사라질 것이다. 사회적 유용성을 위한 자연선택을 통하여 본능이 된 이타주의적 행동은 모든 본능적 작용과 마찬가지로 강제 없이, 기쁘게 수행될 것이다. 인간 사회의 자연적 진화는 우리를 완벽한 상태에 더 가까이 데려갈 것이다.

 

503 우리는 지나가는 파도에 불과한 존재로서 우리가 속한 거대한 존재의 바다를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이 주제를 독단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말해 어떤 것을 알 수 없다는 주장에는 이미 그것에 대한 어떤 인식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504 사는 것이 곧 토론하는 것이었던 대학 2학년 시절과 얼마나 비슷한가.

 

504 스펜서는 기계들의 세상에서 살았기 때문에 기계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무자비한 개인 경쟁의 시대에 살았던 다윈이 생존 투쟁만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509 그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짜증을 부릴 정도로 남의 간섭을 싫어했다.

후자는 나랑 비슷, 간섭과 잔소리 너무 싫다.

 

510 1869년 스펜서는 << 1원리>>가 옥스퍼드에서 교과서로 채택되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더 놀라운 일은 1870년 이후 인세 수입이 생겨 그가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큰 선물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스펜서는 늘 돌려보냈다.

 

510 “어떤 사람도 그가 쓴 책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의 정신적 활동의 가장 좋은 결과물은 책으로 들어간다.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는 열등한 결과물고 섞이지만 책에서는 분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굳이 그를 만나러 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자신의 귀에 귀마개를 집어넣고 평온하게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척했다.”

 

511 그러면서 세상은 자신이 내놓은 무거운 책들에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고 계속 굴러간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나날들을 돌아보며, 삶의 소박한 기쁨들이 아니라 文名을 얻으려 한 일이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죽은 해인 1903년에는 마침내 자신의 작업이 다 헛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511 그는 자신의 시대를 요약했는데, 단테 이래로 어떤 시대를 요약한 사람은 스펜서 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그는 대가다운 솜씨로 방대한 지식 영역을 조정하는 일을 완수했기에 그 성취 앞에서는 비판하기가 부끄러워져 입을 다물 지경이었다. 우리는 지금 그의 노력과 노고가 밀어준 덕분에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 우리가 그보다 높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가 우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9장 프리드리히 니체

 

516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전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이 아니라 힘이며, 겸손이 아니라 자부심이며, 이타주의가 아니라 단호한 지성이라는 것, 평등과 민주주의는 선택과 생존이라는 결을 거스른다는 것, 대중이 아니라 천재가 진화의 목표라는 것, ‘정의가 아니라 권력이 모든 차이와 모든 운명의 중재자라는 것. 프리드리히 니체는 그렇게 보았다.

 

516 미망과 민주주의와 이상으로 썩어가는 유럽에서 그는 그 모든 것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소용돌이였다!

 

517 전쟁을 통한 문제 해결에는 그것을 정당화할 철학이 필요했다.

 

517 저항할 수 없는 성향에 균형을 맞추고 그것을 교정하려는 시도였다.

 

517 이 구제불능의 성자는 죄인이 되기를 얼마나 갈망했던가!

 

518 소년은 손바닥에 성냥을 한 무더기 올려놓고 불을 붙여 꺼질 때까지 견디었다. / “내가 아닌 것, 그것이 나에게는 신이자 미덕이다.”/ 니체는 열여덟 살에 조상들의 신에 대한 믿음을 잃고 새로운 신을 찾으며 남은 인생을 보냈으며, 초인에서 그것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521 “나는 처음으로 가장 강하고 가장 높은 삶의 의지는 비참한 생존 투쟁에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의지’, ‘권력의지’, ‘제압하려는 의지로 표현된다고 느꼈다!”

 

521 경험 없는 상태 특유의 강렬한 상상으로 전쟁을 이상화한다. / 전사의 갑옷을 입은 소녀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523 ‘비극적 낙관주의는 불행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강렬하고 폭넓은 경험을 구하며, 다툼이 삶의 법칙임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강한 자의 태도다.

 

523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무엇이든 지나치지 않게라는, 열정이 식은 지혜의 말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 금언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와서 지성이 유일한 미덕이라는 망상이 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와서는 중용이라는 무기력한 가르침이 되었다.

 

526 신학만이 아니라 도덕도 진화론의 맥락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삶의 기능은 개별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가치 없는 유형들인 다수의 개선이 아니라……천재의 창조”, 즉 우월한 인물을 발전시키고 드높이는 데 있다는 점이었다.

 

530 이런 병에서 건강과 태양에 대한 사랑, 생명과 웃음과 춤에 대한 사랑, <카르멘>같은 남쪽 음악에 대한 사랑이 나왔다.

 

530 “위대함을 보여주는 나의 공식은 운명애다……운명애는 모든 필연적인 것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531 그 외로운 고지대에서 그의 가장 위대한 책의 영감이 찾아왔다. / 그는 조로아스터라는 새로운 스승, 초인이라는 새로운 신, 영겁회귀라는 새로운 종교를 발견했다.

 

532 나는 너무 많은 꿀을 모은 벌처럼 나의 지혜가 지겹다. 그 꿀을 달라고 뻗는 손들이 필요하다. / 그래서 그는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를 쓰고 리하르트 바그너의 혼이 베네치아를 떠나던 신성한 그 시간에 그것을 마무리 했다. 이것은 <파르지팔>에 바치는 그의 웅장한 대답이었으나, <파르지팔>을 만든 사람은 죽은 후였다.

이 밤에 정말 소름끼치는 표현이다. 바그너의 혼이 몸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에 마무리를 하다니. 그리고 지겹도록 넘치는 꿀, 이 꿀을 달라고 뻗는 손들에게 쓴 글들이라니. 나는 넘쳐서 주체할 수 없는 그런 글감, 읽는 이에게 매우 유익하고 꿀처럼 달 그런 글감이 있을 것인지.

 

532 그러나 이책이 19세기의 위대한 책들 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니체는 이 책을 출판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1부는 출판사가 찬송가집을 50만 부 주문받은 데다 반유대주의 팸플릿 주문이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늦었다. 게다가 출판사는 셰켈(유대인들의 돈)이라는 관점에서 전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마지막 남은 부분은 아예 출판하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저자가 자비로 출판해야 했다. 책은 마흔 부가 팔렸다. 일곱 부는 증정본이었다. 한 사람은 잘 받았다고 인사를 했다. 찬사를 보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외로운 적은 없었다.

할 말이 없네.

 

533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 옆에 도시를 세워라. 탐험되지 않은 바다로 배를 띄워라. 전쟁 속에서 살아라.

 

535 인간이 위대한 것은 그가 목표가 아니라 다리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서 사랑할 수 있는 점은 그가 과도기이고 파괴라는 것이다.

 

536 네 능력을 넘어선 것은 바라지 마라……네 능력을 넘어선 덕을 가지려 하지 마라. 너 자신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마라.”

 

539 연민에는 야비함과 주제넘음이 있다. 예를 들어 문병에서 우리는 이웃의 무력함을 바라보며 우월감의 절정을 맛본다. 이 모든 도덕뒤에는 은밀한 권력의지가 있다.

꼭 그런 건 아니겠지만서도 또는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병원신세 지게 될 때 정말 친한 사람의 방문만 원한다. 병원에 있을 때가 아니어도 평소에도 나 찾아오는 사람들 신경 쓰이는 판에 병문안으로 오는 사람들, 특히 교회 사람들은 최악이다. 시련에 이유가 있다는 그들의 설교가 비록 그들이 입을 열지 않아도 눈에서 쏟아지는 것이 느껴지기때문이다. 꼭 병원의 공간이 아니라 해도 잘난 사람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아픈 사람에 대해서는 다가가며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모습의 배후에는 우월감이 있는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아픈 사람에 대해서는 처음에는무심함, 무관심으로 대한다. ‘연민공감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분명 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부정적인 뉘앙스에서의 동정, 연민보다는 공감이다.

 

540 진리에 대한 사랑에도 그것을 소유하려는 욕망, 어쩌면 그 첫 소유자가 되려는, 그것을 처녀 상태로 발견하려는 욕망이 있다.

이해간다. 진부한 것이 아닌 참신함, 창의성, 나만의 것, 개성. 비록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음을 결국은 인정하게 되더라도.

 

558 출생의 우연은 없다. 모든 출생은 결혼에 기초한 자연의 평결이다. 완벽한 인간은 몇 세대의 선택과 준비 끝에야 나온다. “어떤 사람의 현재 모습은 그의 조상들이 대가를 치른 결과다.”

예쁘고 사교성 좋고 노래실력이 뛰어난 어떤 여인을 안다. 나중에 보니 그녀의 할머니가 조선의 마지막 기생에 해당되는 분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 할머니의 조부나 외조부는 광대였을 지도 모른다. 지금의 유명 아이돌들의 조상 중 그 누구는 천하게 대접받던 광대였을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조상 중 하나는 미국의 흑인노예였다. 지금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기질과 능력은 다른 시대에서는 천대받았을, 즉 조상의 희생을 딛고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존재를 씨줄과 날줄 사이에서 파악하는 것이 의미 있다 생각해오던 터였는데 역시 철학자는 있어 보이게 말을 하네.

 

570 그가 도착했을 때 니체는 두 팔꿈치로 피아노를 두들기며 디오니소스의 환희를 외치듯 노래하고 있었다.

 

570 제 정신일 때는 누리지 못했던 평화와 고요가 이제 그의 것이 되었다. 자연은 그를 미치광이로 만들고는 자비를 베풀었다. / 니체는 1900년에 죽었다. 자신의 천재성에 이렇게 큰 대가를 치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10장 현대 유럽 철학자들 베르그송, 크로체, 버트런드 러셀

 

[앙리 베르그송]

 

577 베르그송은 스펜서를 공부할수록 유물론적 기계론의 류머티즘에 걸린 세 가지 관절을 더 예리하게 의식했다. 즉 물질과 생명 사이의 관절, 육체와 정신 사이의 관절, 결정론과 자유의지 사이의 관절이었다.

 

591 ‘생명의 약진’, 즉 우리의 성장을 이끌고 이 방황하는 행성을 끝없는 창조의 무대로 바꾸어놓은 생명의 충동의 목소리이자 흐름이다.

 

592 베르그송을 읽을 때 처음 눈에 띄는 것은 문체다. 니체 같은 역설의 불꽃놀이가 아니라 꾸준한 광채를 뿜어내는 그의 문체는 빛나는 프랑스 산문의 훌륭한 전통을 보여준다. 프랑스어로는 틀리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 사람들은 모호함을 참지 못하며, 진실은 허구보다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일 베르그송이 이따금씩 모호하다면 그것은 그의 심상, 유추, 사례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유대인처럼 비유를 뜨겁게 사랑하며, 이따금 끈질긴 증명을 기발한 비유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미지 제조자는 보석상이나 부동산을 거래하는 시인처럼 조심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창조적 신화>>를 우리 세기 최초의 철학적 걸작으로 인정하면서도.

맹자

 

[베네데토 크로체]

 

597 1883년에는 삶의 무자비한 공격 보통 이런 사건이 사람의 마음을 신앙으로 돌려놓곤 한다 을 받았다. 크로체 가족이 머물던 카사미촐라라는 작은 도시에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베네데토는 양친과 유일한 여동생을 잃었다.

 

598 회복기의 조용한 일상 덕분에 크로체에게는 학문에 대한 취향이 생겼다. 아니, 이미 있던 취향이 더욱 도드라졌을 것이다.

 

598 그는 평생 연구자로 살았고 글과 여가를 사랑했다. 그가 정치에 끌려 들어가 교육부 장관이 된 것은 그의 뜻을 거스른 일로, 정치인들로 이루어진 내각에 철학적 위엄을 보태기는 했을 것이다.

 

606 예술의 본질은 외화가 아니라 잉태에만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말보다 아름다운 생각이나 감정을 가진 적이 없는가? 예술가의 정신 속에 어떤 내적인 이미지가 들었는지, 또는 우리가 감탄하는 작품이 그 관념을 실현하는 것인지, 아니면 놓치는 것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까?

 

607 어쩌면 우리도 언젠가는 가장 어두운 진실에서도 빛나는 아름다움을 볼 만큼 영혼이 강하고 맑아지는 날이 올 것이다.

 

[버틀런드 러셀]

 

617 그는 선험적인 것에 대한 열망, ‘삶보다 완벽을 사랑하는 태도 탓에 삶의 문제에 실용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세상의 산문에 대한 시적 구원을 하는 화려한 그림들로 나아갔다. 예를 들어 부보다 예술을 존중하는 사회를 생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예술은 부에서 자라는 꽃이 될 수밖에 없다. 예술이 부를 대체할 수는 없다. 메디치 가문이 등장한 뒤에야 미켈란젤로가 나타났다.

 

617 러시아 민중의 문맹 상태를 오히려 기뻐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신문이 매수된 시대에는 글을 아는 것이 오히려 진실을 얻는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618 사람들은 주저앉아 생각할 수 있었고, 삶을 분석하는 동안은 삶이 정지해주었다. 그 거대한 바다 같은 인간들 속에서 우리의 철학자에게 새로운 시각이 생겨났다.

 

618 이런 개방된 정신, 이런 현실주의, 사실을 특정한 패턴에 맞게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려는 이런 태도를 나는 다른 문명에서는 본 적이 없다.

, 중국 어디에 이런 면이? 현실주의인 것은 알겠는데

 

619 이제 그는 시간과 다양한 삶으로 원숙해진 나이 들고 지혜로워진사람으로 보인다.

 

11장 현대 미국 철학자들 산타야나, 제임스, 듀이

 

624 남부나 동부 유럽인의 격한 정열에 물들지도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원시적 환경과 과제에 의해 신체적으로는 억세고 정신적으로는 직접적이고 단순하게 빚어져 있다. 이것이 링컨과 소로와 휘트먼과 마크 트웨인을 생산한 미국이다.

 

[조지 산타야나]

 

627 다양하고 아름다운 전망이 앞에 더 밝게 펼쳐지도록 영혼의 창을 최대한 깨끗하게 닦으라고 말한다/ 인식론의 거미줄을 쓸어내자고 제안한다.

 

628 그것은 그 순간의 경험이다 이 색깔, 이 형태, 이 맛, 이 냄새, 이 특질이다. 이것이 진짜세계이고, 이것을 지각하는 것이 곧 본질의 발견이다. / 생명이 어떤 삼단논법보다도 낫기 때문이다.

 

634 이런 시는 사람들이 산문 같은 삶을 감당하도록 도와준다.

 

671 영국이 세워지고 나서 셰익스피어가 나오기까지 800년이 필요했고, 프랑스가 세워지고 나서몽테뉴가 나오기까지 800년이 필요했고, 프랑스가 세워지고 나서 몽테뉴가 나오기까지 800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671 창의적인 개인주의자와 욕심 많은 개척자를 선택하여 끌어왔다.

 

671 부는 예술의 서곡이다. / 우리 영혼의 무질서는 이런 발전 속도 탓이다. / 우리 정신이 우리 몸을 따라잡고, 우리 문화가 우리 소유를 따라잡을 것이다. / 우리가 부만이 아니라 자유까지 숭배할 때, 우리 또한 우리의 르네상스를 누릴 것이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 분석)

철학에 문외한인지라 감히 목차에 대한 언급은 하지 못하겠다. 윌 듀란트 스스로는 스콜라 철학을 완전히 생략한 것은 무도한 일이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인식론을 무시한 것은 사과할 생각이 없다는 저자의 말에도 동의한다. 다만 어차피 중국철학, 인도철학도 생략한 김에 굳이 현대 유럽철학자들과 미국철학자들까지 소개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사실 칸트부터 어려워졌기에 후반부로 가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했기에).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장한 피날레로 마무리 했어도 좋았을 성 싶다.

 

2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아무래도 유럽과 미국에 기울어져 있다. 아쉬운 점은 그 역시 언급한 중국철학과 인도철학, 즉 동양철학의 생략이라고 하겠다. 아래 인용한 그의 문명이야기(동양문명)의 일부를 보면 한국에 대한 그의 제한적 이해를 알 수 있고 아무래도 동양철학과 문명의 이해에 대해서도 역시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부분은 그저 아쉬워 하되 이해해야 하는 점인 거 같다. 저자의 유럽, 미국의 배경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태생적 한계라는 말을 쓰는 것이지 않을까.

 

히데요시는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독한 한 조선장수가 모니터호나 메리맥호를 미리 표절한 듯한 철갑선을 고안해 히데요시의 함선을 연이어 격파했다.” – 문명이야기(동양문명)

 

3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이 책의 장점은 윌 듀란트가 의도했듯이 철학사의 인간화라고 하겠다. 윌 듀란트의 문학적 표현과 더불어 해당 철학이 탄생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과 철학자의 생애가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마치 시공간 여행을 통해 철학자들을 취재한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보는 것 같은 현장감마저 있다. 철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 이를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따듯함이 전해져 더욱 인간미 느껴지는 책이다. KFC 할아버지의 키를 조금 줄이고 체중은 조금 덜한 비주얼의 윌 듀란트가 그러한 너그럽고 푸근한 인상으로 조근조근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다. 물론 그 옛날 외할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우며 졸았듯이 어려운 이야기에서는 졸음을 참을 수 없었지만, 그마저도 감사하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고대-현대 철학의 시간적 흐름은 괜찮으나 유럽, 미국 위주의 기울어짐은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철학의 쉬운 전달이 이 책의 주된 방향이라 할 때, 현대 유럽, 미국 철학은 생략할 것이다.

IP *.18.218.23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