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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7일 00시 03분 등록

그림자

 

이부영 지음/ 한길사 출판

저자연구

이 책을 읽으면서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란 노래가 생각났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사춘기 시절 단순히 혼란스럽고 안개와도 같은 우리 세대를 이야기하는 노래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노래의 뜻을 이해하기 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정확하게 다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내 속엔 나도 모르는 내가 너무도 많다. 다른 사람들도 아마도 그럴 것이다. 내 속에 내가 모르는 그리고 내가 어쩔 수 없는 내가 있기에 때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내가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림자는 내 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 이부영

서울대학교 의대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신경정신과 수련을 시작하였다. 1966년 스위스 취리히 융 연구소를 수료, 융학파 분석가 자격을 취득하고 국제분석심리학회 정회원이 되었다. 독일 및 스위스 등 각지 정신병원에서 수련 및 근무하였으며, 귀국 후 서울대학교 의대 신경정신과 주임교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장을 지냈다. 그 밖에도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교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1977년 서울대학교에서 정년 퇴임 후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추대되었으며 분석심리학 전문수련기관인 한국융연구원을 설립 현재 운영 중이다

한국 융학파의 태두로서 한국에 분석심리학의 씨앗을 뿌리고 분석심리학이 하나의 분과 학문이자 정통한 정신치료술의 하나로 인식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의 관심사는 1차적으로는 당연히 환자의 치료에 있겠으나, 학문적 성취가 깊어짐에 따라 문학이나 예술 분야에 나타나는 다양한 상징 체계를 해석하고 그를 통해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 세계를 해명하는 일에도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그동안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단행본 중에서는 분석심리학을 통해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심층을 밝혀보려는 의도를 가진 '분석심리학 3부작'이 유명하며, 그 중에서도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외 한국의 민담을 통해 한국인의 무의식을 탐구한 『한국 민담의 심층분석』도 주목할 만한 책이다.

현재 제대로 된 융 선집을 출간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힘을 모으고 있는데, 번역에 충실을 기하기 위해 해마다 한 권씩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작업이 완성되는 날 한국인도 비로소 융의 세계를 좀 더 직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분쉬의학상을 비롯하여 국내외 많은 상을 받았으며, 『융 기본 저작집』(9, 솔 출판사)을 비롯한 여러 책을 번역하였으며, 분석심리학에 관련한 다수의 책을 저술하였다. – yes24

 

마음을 무찔러 온 글귀

 

P23

왜냐하면 우리는 좀 더 많은 심리학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본성을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일한 위험은 인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큰 위험인데도 우리는 너무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모릅니다. 아는 게 너무 적습니다. 우리는 그의 정신을 연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다가오는 모든 재앙의 근원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큰 위험이란 지적에 동감한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어떻게 변화할지를 모른다.

 

P25

모든 재앙의 근원이 인간에게 있다고 한 융은 사실 인간의 마음 속에서 그 재앙의 근원뿐 아니라 구원의 근원도 발견한 사람이었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다.

 

P29

분석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엄청나게 큰 세계이다.

P33

한마디로 무의식은 충동의 창고, 의식에서 쓸어낸 쓰레기장이거나 병적인 유아기 욕구로 가득찬 웅덩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성숙케 하는 창조의 샘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렇듯 프로이드와 융은 경험론자로서 다같이 살아 있는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 내용과 작용에 대하여 상당히 큰 견해 차이를 보였다. 특히 융의 무의식관은 무의식이 자율성을 가진 창조적 조정능력을 지닌 것이라는 점에서 프로이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의식이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창조의 샘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일까?

 

P35

자아 또는 ''는 의식의 중심에서 의식된 마음을 통솔하고 또한 무의식의 마음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의식의 특수한 콤플렉스이다.

 

P36

태어날 때 우리는 무의식 상태에 있다. 무의식에서 가 탄생한다. 무의식 속에 나의 싹이 있고 그것은 아이가 자라면서 싹트고 성장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극히 미약한 지각상태에서 고도의 의식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의 수준이 있다.

 

P37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다. 오늘의 의식이 내일의 무의식이 될 수 있고 혹은 무의식이 의식의 내용으로 바뀔 수 있다.

 

P37

종교적 수행은 어떤 면에서는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한 인격의 창조적 변환에 기여한다.

종교의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P39

무의식은 자아의식이 외곬으로 나가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의식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의 이미지를 활발히 보내서 그것을 보상한다.

이것은 욕구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식의 일방성을 깨우치고 의식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무의식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P41

무의식의 의식화과정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그림자라고 부르는 심리적 내용들이다. 그림자의 정의와 개념에 관한 융의 설명에 관해서는 뒤에 자세히 제시하게 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다만 간략하게 적는다. 그림자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다.

 

P42

우리의 무의식에는 의식과 무의식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원형이 있다. 이것을 자기 원형이라 하는데 이 또한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원형적 그림자는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으로서의 ''의 그림자에 비해 엄청나게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P42 

개인적 무의식의 내용으로서의 그림자는 의식화해서 의식에 동화하면 의식의 시야가 넓어지고 그림자의 부정적인 작용은 건설적인 기능으로 바뀐다. 그러나 집단적 무의식의 그림자는 그대로 의식에 동화할 수 없다. 그림자원형 뿐 아니라 아니마, 아니무스등 모든 원형은 그 존재를 인식할 수는 있어도 의식의 일부로 동화할 수는 없다. 그것이 지닌 강렬한 에너지는 감정적 충격의 형태로 의식에 작용하여 의식의 기능을 지배해 버리기 때문이다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전율할 만한 파괴적 충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한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무의식의 원형적 그림자에 사로잡히지 않는 면역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 속의 어두운 면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는 다는 것 만으로도 대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일까?

P43

아니마, 아니무스란 무엇인가? 아니마는 독일어의 제엘레에서 아니무스는 가이스트에서 빌려온 라틴어 용어이다. 제엘레니 가이트니 하는 말이 가리키듯 그것은 우리 마음 속의 혼과 같은 것이다. 혼이나 넋, 또는 심령이란 모두 자아의식을 초월하는 성질의 표현이며 의 통제를 받기보다는 고도의 자율성을 지닌 독립된 인격체와 같은 것을 시사하는 말이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그아 같은 독자적 인격이라 할 만한 것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란 시인과 촌장의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생각난다. 우린 우리 내면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너무도 많다. 그런데 왜 그런지 잘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P44

아니마, 아니무스는 원형이지만 무의식의 원형 중에 특수한 원형이어서 자아의식을 무의식의 심층, ‘자기에게로 인도하는 인도자 또는 매개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니마, 아니무스의 인식을 통한 인격의 통합과 분화는 자기실현의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P45

자기란 자기실현의 종착점이자 시발점이다. 자기란 전체정신,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로 통합된 전체정신이다. 그것은 인격성숙의 목표이며 이상이다. 그것은 의식의 중심인 (자아)’를 휠씬 넘어서는 엄청난 크기의 전체정신 그 자체 혹은 그 전체 정신의 중심이며 핵이다.


P47

무의식은 궁극적으로 무의식적이다. 자아가 전일의 경지인 자기의 경지에 근접할 수는 있으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기는 언제나 자아보다 크기 떄문이다. 그러므로 자기실현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그곳에는 미지의 세계가 남아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실현을 통해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완전한 인간이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것인가 보다.

 

P49

그 사람이 평생을 주로 어떤 우월 기능에 좇아 살아가고 있는 가에 따라 사고형, 감정형, 직관형, 감각형이라고 부른다. 이것을 내향형, 외향형에 따라 내향적 사고형, 외향적 사고형 등으로 구분하면 여덞가지 유형이 생기고 가장 잘 발달된 주기능 다음으로 발달된 제2기능이 어느 것이냐에 따라 다시 두 경우로 구분되어 최소한 열여섯 종류의 심리학적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유형은 유형일 뿐이다. 어찌 인간을 그렇게 단순하게만 나누겠는가


P51

그러나 열등 기능을 찾아서 그것을 살리고 발전시키면 그것은 이미 열등기능임을 그친다. 그리고 모든 정신기능을 가능한 한 골고루 발전 시킨다는 것은 전체 정신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열등기능의 의식화- 그것이 중요하다.

이건 어떤 면에서 보면 강점혁명과는 또 다른 이야기인가?


P52
그림자는 일차적으로 개인적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 자아 콤플렉스의 무의식면의 여러가지 열등한 성격경향이다. 그림자는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무의식의 요소이다.

 

P53

겉보기에는 열등한 그림자 속에 또한 창조와 성숙의 씨앗이 있다는 점을 융은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의 그림자는 상대악적 위치에 있어 그것이 의식화하여 의식에 동화할 때 그것은 분화하여 창조적 기능으로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자를 의식화해 나가노라면 우리 정신의 어둡고 밝은 면을 모두 다루게 될 것이다.

 

P57

분석심리학에서의 그림자 이미지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기에 무시할 수 없고 의식화해야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그림자로서 그것은 원시종족의 그림자관과 맥을 같이 한다.

 

P65

그림자와 떨어져 있다는 것은 무의식과의 분리를 의미하고 그림자를 통해 보배를 찾는다든가 병을 고친다는 관념은 그림자가 해로운 영향뿐 아니라 매우 긍정적인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림자의 인식을 통해 보다 깊은 무의식의 뜻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분석심리학의 설명과 유사하다.

 

P66

그림자가 죽은 자의 영혼임을 암시하고 있다. 불교에서 영상은 신불 또는 인형 모양을 본 뜬 나무조각상이나 그림의 상이며, 영공은 신불이나 고인의 상에 제물을 바쳐 공양의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P68

지금까지의 전개를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그림자는 구체적인, 살아있는 존재, 그 주인의 분신이고 영혼이며 나아가 주인의 생명이나 힘까지도 대변한다는 것이다. 그림자는 원시사회에서 영혼의 위기로 알려진 것처럼 여러 가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존재로서 각종 주술적 행위대상이 되었다.
그림자는 우리의 어두운 모습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인가 보다

 

P75

그림자의 대부분은 자아의식의 눈으로는 부정적이며 열등한 성격을 띤다. 그림자가 무의식에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경우란 대개 그 사람의 자아가 지나치게 자기의 인격을 낮추어보는 경우 뿐이다.

 

P77

희고 검게 변하는 얼굴을 가진 신, 그것은 모든 사람 안에 있는 모순된 측면을 가진 신령이다.


P78

그림자는 열등하게 보이고 또 그렇게 나타나지만 개인적 무의식의 그림자는 의식화로써 분화 발달되고 창조적으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며, 원형적 그림자인 경우 비록 그것이 불변의 충격적인 인간속성을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인식은 인간본성의 전체성을 인식하는데 필수적이다.


P79
"
우리속에 있는 미래의 인격은 아직 보이지 않으나 우리는 그 미래의 인격주변을 맴돌고 미래의 존재를 보게 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은 물론 자아의 어두운 측면에 속한다" 고 융은 말한다

P81
언제나 개인적 사회적 재앙은 우리 안에 무서운 것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를 따지는 일에 달려있지 않고 그것을 인식하느냐 인식하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P83

자기 인격의 어두운 측면이 자기 안애 존재한다는 인식은 모든 자기 인식의 필수적인 토대를 이루지만 그러한 인식은 늘 커다란 저항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을 받아드리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다.

P82

"누구나 그림자를 거느리고 있고 개인의 의식된 삶 속에 실체화되어 있는 정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그림자는 더욱 검고 더욱 진해진다"

 

P84

그림자는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정신생활의 살아 있는 조건이다. 그것이 있음으로써 사람은 사람다워진다. 삼차원의 존재가 된다. 그림자는 강력한 저항 아래 억압되어 있고 억압된 것이 의식됨으로써 정신적 대극의 긴장이 형성되는데 그것 없이는 어떠한 발전도 가능하지 않다.

 

P90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버럭 화부터 내는 것은 우리 무의식의 아픈 곳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며, ‘아픈 곳이란 곧 격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는 무의식의 콤플렉스인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반응을 일으킨다. 다만 무엇에 의해서 마음 속의 어떤 부분이 자극을 받느냐가 다를 뿐이다.

때론 이렇게 갑자기 나도 모르게 정말로 화가 날 때가 있다.

 

P91

나쁜것은 남에게만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괴로운 마음을 피하는 자기방어의 수단으로서 뿐 아니라 자기의 무의식적인 마음의 일부를 의식화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목적 으로도 투사현상이 일어난다.

 

P95

중국의 문화를 송두리째 파괴한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들의 문화인 처단도 그림자의 집단투사를 바탕으로 빚어진 사건이다. 비록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고 하겠으나 비슷한 집단적 단죄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고 뒤에 언급될 여러 크고 작은 사회사건을 만들어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의 배경에는 우리 인간 내면에 깊숙히 감춰져 있는 모습이 만들어 내는 것 같다.

 

P98

청렴결백한 가난한 학자와 유능한 투기꾼 마누라와 같은 결합을 우리는 현실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범죄자의 이중인격적 특질에 대해 언급하면서 융은 범죄자가 한편으로는 질병을 앓음으로써 범죄적 충동을 해송하는 경우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얌전한 모습 밑에 숨어 있는 악한 본능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무의식간에 범행을 저지르게 하는 경우가 있음을 사례를 들어 설명하였다.

 

P99

그래서 성경에 너희는 심판하지 말라’ ‘칼로 심판하는 자는 스스로 그 칼에 망하리라는 말이 있는게 아닌가

 

P101

열등 기능은 주 기능의 상대극에 있고 주 기능과 쌍을 이루고 있으므로 열등기능을 알려면 주기능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되고 반대로 열등기능을 알면 주기능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P112

그런데 몇 년도 산인지 따지면서 포도주나 코냑을 즐기고 최신 오디오로 음악을 듣고 항상 완벽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감각형이 아니고 직관형인 경우가 있다. 그의 섬세한 감각, 완벽한 옷차림은 어딘가 움직일 수 없는 격식에 매어 있고 자유롭지 못하다.

 

P115

심리학적 유형이나 열등기능에 관한 융의 학설은 그 다른 가치 체계를 다소나마 체계적으로 설명해 본 것일 뿐 이것만으로 모든 인간을 정의하고 분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어찌 인간을 몇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겠는가

 

P119

인간이 아직 풀지 못한 혹은 풀기 위해 노력해온 사건이다. 전쟁은 흔히 합법화한 집단 폭력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악의 원형, 그림자 원형의 엄청난 에너지가 도사리고 있고 이에 관련된 원형적 배열이 간여하고 있다. 그림자 원형은 적의 집단에 투사되고 그리되면 적은 인간이 아닌 일종의 괴물들로 보이고 죽여도 좋거나 죽여야 할 악의 존재로 보인다 여기에 영웅신화가 사람들의 무의식에 배열되면 인간집단은 괴물을 죽이고 괴물에 붙잡혀 있는 여인을 구출하는 영웅 원형상과 동일시 한다. 그들은 여기서 자기 행위의 의미를 나름대로 찾고자 한다

전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말 적을 괴물로 인식함으로써 정당화되고 인정될 수 있는 것일까?

P120

그림자의 집단적 투사의 가장 극명한 역사적 사례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배척과 학살이었다. 유대인에게 비난을 퍼부었던 나치와 이를 추종했던 독일인들은 유대인더러 작당한다 자기네끼리 논다 돈에 인색하다 자기네 전통만 고수하고 남과 섞이지 않는다고 욕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은 어떠했던가. 그들이야말로 아리안족의 순수한 피를 지켜야 한다며 오만했고 스스로 우월감에 젖어서 자기네끼리 작당했으며 그들 자신 또한 매우 돈에 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유대인의 학살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연구하기에 가장 좋은 사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위안부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P124
인간은 자신의 무의식성 떄문에 근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우습게 내동댕이친 사실을 인식할 때라야 비로소 그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독일은 이에 해당되는 문제의 심리적 전개에 관한 가장 교훈적인 사례를 우리에게 제공했다.

P125
그들은 스스로 권력을 탐하였듯이 질서를 탐하였다. 그밖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모든 개인 속에 있는 어떤 것을 상징하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온갖 열등성의 가장 놀랄 만한 인격화였다. 그는 심히 무능하고 적응되지 못한, 또한 무책임하고 정신병질적 성격으로 공허하며 유아적 환상에 찬, 그러나 들쥐나 부랑아의 날카로운 직관으로 저주받은 사람이었다그는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열등한 부분인 그림자를 엄청나게 많이 대변하고 있었고 독일인이 왜 그에게 빠졌는지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P126

아직도 지구 도처에서 전쟁이라는 집단폭력의 불길이 잡히지 않은 채 있다. 그래도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자각한 인간들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때문이라고 할까. 그러나 전쟁의 위협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전쟁은 이제 명분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인류는 뻔뻔스러워졌다.

인류에게 전쟁은 없어질 수 없는 인간의 내면 모습일지 모른다. 어떤 제도와 시스템이 도입되어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근데 왜? 정말 없어질 수 없는 것일까?

 

P127

사람들 마음 속 억압된 본능의 투사를 매우 조직적으로 앞장서서 일으킨 것은 중세의 축마사였고 이들에 합세한 민중과 교계였다. 그것은 14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나 유럽 대륙을 휩쓴 마녀 사냥의 광풍을 일으켰다.

 

P129

이것은 그리스도교적 유럽의 사회적 정치적 통일체에 깊이 숨은 불안의 표현이었을 것이며 마녀의 망치는 기성질서가 불안정하게 되어간다고 우려할 만한 징후에 대한 반동이었다. 그 시대에 교회와 국가가 보인 일종의 피해 마니아는 의심 없이 기성질서의 위기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었고 또한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적 세력과 새로운 정신적 이상이 일어나서 그동안 중세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사회제도의 중핵 자체를 위협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다고 질보르크는 술회한다.

그림자는 인간의 불안이 증폭시키고 그 대상으로 하여금 잔인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것 같다.

 

P129
그림자가 더 이상 무의식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만큼 오래도록 무의식에 잠재해 있다가 보상적인 힘을 축적하였을 때 그것은 의식을 자극하여 여러가지 장애를 일으킨다.

P130
마녀는 그 당시 남성들의 여성혐오, 여성학대의 표본으로서 남성들의 내적 인격 무의식의 여성성, 아니마의 왜곡된 이미지를 대변한다고 하는 쪽이 더 합당한 설명이 될지 모른다.

 

P131

융은 이런 말을 했다. "광신은 내적 의혹에 대한 발작이다." 서슬 퍼렇게 적을 규탄하는 것은 불안때문이다. 스스로 확신이 없을 때 사람들은 더 길길이 날뛰고 하나의 이념, 하나의 신앙, 하나의 주의에 매달린다.

인간의 불안감, 내면의 불안감이 만드는 집단적 광기이다.

 

P134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사태도 그 한 예이다. 인간들이 무의식의 그림자 원형에 사로잡히고 스스로 악마가 되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 그리고 수치스럽게도 세계의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에서 남과 북의 대결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P136

"더러운 것은 뚜껑을 덮어라" 는 일본 군국주의 시대 군인의 격언에 따라 의식  밑바닥에 눌러 있는 그들 자신의 미숙한 면이다.

 

P136

낯선 것은 배척의 대상이 되지만 그 마음 뒤에는 전염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그러므로 우리 내부의 일본인 그림자, ‘왜놈그림자를 인식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동화하여 의식의 변화를 일으키면서도 자아의식은 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모르는 장님과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러므로 집단적 그림자는 인식과 의식적인 통합이 필요한 것이다.

 

P139

미국의 백인이 나타내는 특이한 몸짓이나 표정에서 흑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그들의 꿈을 살펴보니 미국인의 심성이 흑인 심성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미국인은 흑인을 노예로 부렸지만 흑인의 정신은 미국의 의식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정복자가 피정복자의 정신에 의해 정복되는 사례는 역사상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P142

그런데 문제는 지역정서가 문화의 향유를 중심으로 발전하지 않고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지에 의해 오용되어 다른 지역문화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조장한 데 있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폐해가 아닐까 싶다.

 

P142

어느 나라에나 소외된 지역과 주민이 있다. 스위스의 유라지방, 스페인의 바스크족 또한 획일주의, 독재, 전체주의가 판을 치는 곳에서는 특히 검은 그림자가 한구석에 도사리게 된다. 독재자는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것을 키우기조차 한다. 독재자는 적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집단 성원을 단결시킬 수 있다. 5.18 광주대학살은 집단적 그림자의 투사를 이용한 독재권력집단의 명백한 만행이었다. 어떤 특정 집단을 미운 오리새끼로 만들어 놓고 그 집단성원을 무조건 구박하거나 백안시하거나 혐오하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 사회의 어둡고도 불행한 일이었다. 아직도 그 상처가 다 치유되지 않은 것 같다.

P143

상대방에게 투사하고 있는 온갖 도덕적으로 취약한 이중성을 자기자신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해당 집단 성원은 스스로 노력해서 부정적인 그림자의 투사를 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권력과 이권에의 집착은 창조성의 결여에서 온다.

 

P145

다시 말해 꿈은 그가 지나치게 고상한 척하는 것이 그의 본성(자기)에서 너무나 벗어나 있으므로 수정되어야 함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꿈은 의식의 일방성을 지양하여 의식과 무의식이 합쳐진 전체성에 가까운 자세를 갖도록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내가 꾸는 꿈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P147

만약 우리가 무의식의 그림자를 진지하게 살펴보지 않고 외면한다면 그 그림자에 해당되는 외부현실의 인물을 끌어들이는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P154

그림자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보다 깊은 본능의 세계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꿈에서 무서운 짐승, 추악하고 역겹고 더러운 존재로 나타난다. 그것은 그림자인지 혹은 부정적 아니무스, 부정적 아니마, 또는 원형의 그림자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P155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이미지는 곧잘 치료사에게 투사되어 이른바 긍정적 전이라는 현상을 일으킨다. 그러나 피분석자는 그러한 능력이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한다.

 

P159

양극의 팽팽한 긴장과 조정을 통하여 목표인 중앙을 관통하는 것을 지향하는 활쏘기는 정신적 대극의 긴장을 거쳐 마음의 중심에 이르는 자기실현의 목표를 표현할 때 매우 알맞은 상징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니 나는 활쏘기를 하는 꿈을 꾼 적은 없는 것 같다.

 

P161

그림자의 일방적인 침해로 입은 오염을 벗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오염이란 자아의식의 일부가 그림자에 의해 무의시간에 동화된 상태를 말한고 상처를 깨끗이 씻는다는 것은 그림자를 의식과 구별함을 말한다.

 

P163

합리주의적 사고는 사람들을 그 체계안에 구속해 버리기 쉽다. 꿈이 제시하는 그 별세계는 보이지 않는 구속, 합리화된 세계, 남녀성의 구별이 없는 중성의 세계, 부자유하거나 부자유함을 모르고 또한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자유로운 체하며 살고 있는 세계이다.

 

P165

정신적 해리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 정신이 흩어지는 것이다. 자아가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 것이다. 다른 말로 의식이 무의식과의 교류를 중단하고 따로따로 논다든지 하게 되는 것이다.

 

P167

이 장해(정신의 해리)는 비록 고통스럽기는 하나 정신의 전체를 통합시켜 나가기 위한 것이므로 자기 실현의 목적을 가진, 의미 있는 고통이라 하는 것이며 치료란 결국 쪼개진 마음을 하나로 통합하고 그 사람이 본래 가지고 나온 정신의 전체정신(자기)을 실현시키는 데 있다.

 

P168

그림자 그 자체는 살아 있는 인간에게 인간다움이나 인간의 실체성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림자를 인식하느냐 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이다. 한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그림자에는 공부 못한 것말고도 여러가지가 있다. 가난에 대한 힘, 힘 없는 것에 대한 한

한으로 표현하니 그림자란 용어가 조금은 더 이해가 쉽게 되는 것 같다.

 

P173

자아 밖에서 자아를 위협하고 자아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실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곧 어떤 알 수 없는 자아보다 큰 것으로 무의식의 그림자, 그것도 원형적 그림자일 가능성이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자아의식의 공동화와 자아 환계 경계의 와해와 더불어 무의식의 원형적 세력의 상대적인 강화로서 자아의 자율성이 무의식의 세력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는 비극을 겪고 있다.

결국 정신병도 그림자, 내면의 나, 내 속에 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P177

투사가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 인간관계란 없다. 문제는 투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림자를 어떻게 의식화하느냐 하는 것이다.

P183

그림자의 인식은 일생일대의 과업이다. 그것은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인식되는 것은 아니고 '삶의 고통'을 통해서 만날 수 있으며 그 고통속에서 의식과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림자의 인식과 의식화가 그림자의 투사를 삼가고 자신의 그림자를 용인하는 부드러운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P184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와 함께 살고자 한다. 열등한 인격부분이 우리와 함께 살고자 한다면 그래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여기에는 말할 수 없는 갈등과 주저가 따를 것이다. 그림자의 인식이란 곧 이러한 살아있으며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의 부분을 인식한다는 것이며 인식이란 이 경우 받아들이는 것, 의식의 일부로 소화하는 것, 의식화이다. 그러니 융이 그림자의 인식을 전체인간을 부르는 어려운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 이 문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전체인간을 그 구도위에 호출할 뿐 아니라 동시에 그 사람에게 자신의 절망과 무능을 기억시키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P187
자기원형은 항상 머리에 빛나는 후광을 이고 있는 인자한 산신령과 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불친절하고 신경질적인 기인, 혹은 지극히 하잘것없는 것들로 나타난다. 그래서 곧잘 그림자와 혼돈하기 쉽다. 아니 그림자속에 자기원형의 작용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림자, 가장최초에, 쉽게 인식되는 무의식의 내용을 인식하는 작업이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다.

 

P188


그림자는 작을 때 잘 처리해야지 계속 억압하면 원형적 힘을 가세하여 그 세력이 커져서 자아의식을 위협하게 된다는 뜻이 제시되었다. 융은 말한다. "인간속에서 진정으로 창조적인 것은 언제나 당신이 가장 작게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온다. 아주 작은 것에서-눈에 띄지 않는 것에서- 그러므로 그림자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

 

P195

"그림자의 동화로써 인간은 어느정도 실체성을 갖게 된다.", " 그림자의 깨달음은 전체인간에 미치는 체험과 고통을 의미한다", "통찰되고 동화되어야 할 성질로서의 그림자" 등등에 관한 설명은 모두 그림자가 단순히 그 존재의 확인만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P197

내향적인 태도에 지나치게 치우진 사람의 무의식의 외향적 그림자를 살려야 하고, 외향적인 태도와 동일시하여 열등한 내향적 태도를 그림자로서 무의식에 가진 사람에게서는 그것을 살려내야 한다. 감정적인 사람의 무의식의 열등한 부정적 사고를 살리고, 사고형에게서는 열등한 감정을 지닌 그림자를 살려야 한다. 그것은 "전일적 인격"을 실현하는 고매한 목표 때문이라기 보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며 그로써 건강한 정신을 되찾게 하는 치유의 실제적 목표 때문이다.

 

P198

그림자의 의식적 표현 이라는 말의 '의식적','의도적'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거기에는 전체정신을 실현하려는 노력, 분열된 정신을 하나로 묶으려는 의지, 자신의 행동을 한편으로 체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관찰하는 자아가 있다. 그것은 그림자의 표현에 어느 정도의 방향과 절도를 부여하고 분화발달의 목표에 접근한다.

 

P201

그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부감은 항상 대상을 잘 모를 때, 대상에 자기 무의식적 내용이 투사되었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P205

원형은 자아의식이 소화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콤플렉스이므로 자칫 잘못하면 자아가 여기에 휩쓸려 원형의 영향아래 꼼짝 없이 사로잡혀 지리멸렬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잠재성 정신병에 꿈의 해석을 삼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11

"밝은 것을 상상한다고 밝아지지 않는다. 어둠을 의식화함으로써 밝아지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불쾌하고 그래서 인기가 없다.

뭔가 철학인 말이다. 어둠을 봐야만 밝아지는 것이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있다.

 

P211

전체성은 완전한 것이 아니다. 원만선이다. 그림자의 동화로써 인간은 어느정도 실체성을 갖게 되고 그의 동물적 충동영역이나 원시적인 혹은 고태적인 정신이 의식의 광추(光推)에 나타난다. 그럼으로써 그것들은 허구와 환상의 도움으로 억압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인간은 그 자신이 바로 풀어야 할 어려운 문제가 된다.

 

P216

평소에 근엄한 사람들이 그날만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이를 테면 그림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그림자는 분장의 주인공에 완전히 부합되어 포복절도할 지경이었으나 본인들은 아랑곳없이 마음껏 복수인간의 연기를 멋지게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의 축제는 개인의 이면, 감춰진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완충작용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P218

가면극이 민중의 양반에 대한 적개심의 표현이며 울분의 해소라는 점에서 심리적 세척의 목적이 있다고는 보지만 비단 민중 뿐 아니라 지배계급에게도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했을 것이고, 그림자를 공개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사회의 통기구로서 의식 무의식 대극간의 건강한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P239

그래서 여기에는 이야기를 전하는 민족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그런데 여러 민족의 이야기를 모아서 비교해 보면 뜻밖에도 그 속에는 공통된 주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P242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태도는 결국 본능의 보살핌이라는 마음과 다를 바 없다.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은 본능에 가까운 정신기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권선징악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권선징악의 등식과는 다른 심리적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선은 흉내 내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고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P302

자유민주주의는 시끄러운 법이다. 링 위에서 권투하듯 일정한 룰 안에서 그림자가 표현될 수 있고 개성이 숨쉴 수 있는 유일한 체제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정착하려면 첫째 공정한 언론이 살아 있어야 하고, 공정한 법이 운엉되어야 하고, 개성 있는 교육이 이루져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누가 하겠는가. 다름 아닌 사회 현장에 있는 하나하나의 개인이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해서

1장과 2장의 그림자의 분석심리학적 개념에 대해서 설명한 장이 전체적인 그림자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앞의 장이 너무 어렵지 않았나 싶다. 초보자인 나에게는 아직도 사실 조금은 어렴풋이 이해된 상태이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역시 어렵다. 그런데 그림자란 용어가 조금은 이해를 하는 데 있어서 여러가지 혼란을 가져오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다른 용어는 없을까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림자는 책에서 나온 것 처럼 우리 문화에서 다양한 형태의 함축적인 의미를 많이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더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기에 그림자란 용어 정의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다.

 

3. 이 책의 장점

개인적으로는 민속문화속 그리고 우리 이야기 속의 사례를 분석한 장이 제일 쉽고 재미있었다. 그림자라는 어려운 개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4. 내가 저자라면

글쎄 사실 잘 모르겠다. 어려운 내용이라서 내가 어떻게 써 보겠다고 감히 할 말이 없다. 아직도 머리속이 조금은 어질어질 하다. 과연 내가 이해한 내용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차라리 그림자의 문화적 대응 사례가 오히려 중간쯤 적절하게 비유가 되어서 조금 더 이해를 도와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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