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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2일 00시 59분 등록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알랭드보통지음/ 박중서옮김 / 청미래출판사

 

저자연구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하다. 알랭 드 보통은 스물세 살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책들은 현재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2003 2월에 드 보통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명예인 예술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 에 레트르」라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츠베탕 토도로프, 로베르토 칼라소, 티모시 가튼 애쉬, 장 스타로뱅스키 등과 같이 유럽 전역의 뛰어난 문장가에게 수여되는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 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 내용에 바탕을 둔 TV 다큐멘터리 제작에 오랫동안 관여해왔다. 『프루스트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꿨나』는 BBC 영화제작팀에서 랄프 파인즈와 펠리시티 켄들을 주연으로 하여 제작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영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동시에 영국에서 「철학: 행복으로의 안내」라는 제목으로 6부작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됐다
.

그의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놀랍도록 기이한 첫 만남에서부터 점차 시들해지고 서로를 더이상 운명으로 느끼지 않게 되는 이별까지, 연애에 대한 남녀의 심리와 그 메카니즘이 철학적 사유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기술되어 있는 작품이다. 알랭 드 보통은 미국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20대의 재기와 30대의 깊이가 뛰어난 조화를 이룬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로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새로운 글쓰기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은 전기 형식으로 문학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저자 특유의 유머와 상상력으로 버무린 인생학 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한 프루스트의 편지와 메모들을 인용하며, 프루스트가 겪은 잡다한 사건들은 물론 사생활까지도 인정 사정 없이 들춰낸다
.

그는 또한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철학의 대중화를 시도해왔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서는 철학사 속에서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다룬 가장 탁월한 여섯 명의 정신에 눈길을 돌린다. 그리하여 돈의 결핍, 사랑의 고통, 부당한 대우, 불안, 실패에 대한 공포와 순응에의 압력 등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의 처방전이 소개된다


2009
년에 출간된 『일의 기쁨과 슬픔』은 로켓 과학자에서 비스킷 공장 노동자, 유조선 일등 항해사부터 택배 배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특유의 위트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자주 도망치고 싶은 이 ‘일’의 세계가 결국 우리 삶에 근본적인 ‘의미’를 주는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런던 히드로 공항에 상주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은 『공항에서 일주일을』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공항의 다양하고 매력적인 면면들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2012
년에는 한국의 젊은 작가 정이현과 ‘사랑, 결혼, 가족’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각각 젊은 연인들의 싱그러운 사랑과 긴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2010 4월부터 2012 4월까지 꼬박 2년 동안, 작가들은 함께 고민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상대 작가의 원고를 읽고, 서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원고를 수정하여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기초 한 남자』를, 정이현은 『사랑의 기초 연인들』을 내놓는다
.

이외에도 유머와 통찰력으로 가득한 철학적 연애소설 『우리는 사랑일까』,『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여행에 관한 에세이『여행의 기술』, 독특한 문학평론서 『프루스트 선생에게 물어보세요』, 불안에 관한 인간의 상념을 고찰한 에세이『불안』, 다양한 건축물을 조명한 『행복의 건축』 등의 저서가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 (1871 7월 10~1922 11월 18)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수필가, 평론가이다. 파리 교외의 오퇴유(현재 파리 16구에 속함)에서 출생하였다. 부친 아실아드리앵 프루스트는 전염병 예방의학의 권위자이며 모친 잔클레망스 베유는 유대계의 부유한 집안 딸이었다. 9세의 천식 발작을 시작으로 평생 동안 고통을 받게 된다. 1882 콩도르세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일찍부터 문학작품을 가까이하여 학교에서 작문과 논문으로 상을 받기도 하며 재능을 발휘했다. 졸업 후에 군대에 지원 입대하여 1년간의 복무를 마치고 파리 대학 법학부에 들어가 1893 법학사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문학 살롱과 사교계에 자주 드나드는 한편 직업은 갖지 않고 문학에 열중했다.

최초의 저작 《즐거움과 나날(1896)》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인지나 그 밖에 발표했던 소품과 단편을 모은 것이다. 1895부터 1899에 걸쳐서 3인칭 형식의 자서전적인 장편소설 《장 상퇴유(1952)》를 시도하였으나 미완으로 그쳤다. 러스킨 <아미앵의 성서> <참깨와 백합>을 번역하였다(1904, 1906). 후에 《모작과 잡록(Pastiches et mélanges, 1919)》과 《시평집(1927)》에 수록될 평론을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활동은 모두 '유일하고 참다운 글'을 쓰기 위한 준비라 할 수 있다. 1906년 양친을 여읜 정신적 타격을 넘어서 《생트뵈브에 반대한다(Contre Sainte-Beuve, 1954)》을 쓰기 시작하며, 이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집필로까지 이어진다. 이후 프루스트는 죽을 때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몰두하였고, 총 일곱 권으로 구성된 이 방대한 분량의 작품은 1913년부터 1927년에 걸쳐 출판된다. 대전 이후 출간된 제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로 1919공쿠르상을 받아 일약 유명해 졌을 뿐만 아니라, 이 걸작으로 20세기 최대 작가의 한 사람이 되어 널리, 그리고 깊이 영향을 끼쳤다.

 

마음을 무찔러 온 글귀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P10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뭐든지 끝없이 미루기만 하는 우리의 게으름 때문에 그런 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영원히 불가능해질 위기에 처한다면, 그런 것들은 다시 얼마나 아름다워질까요! ! 만약 이번에 그 파국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잊지 않고 루브르의 새로운 전시실을 방문할 것이고, X양의 발치에 몸을 던질 것이고, 인도로 떠날 테니 말입니다.

우리는 사실 미래에 대한 확신이라기 보단 두려움으로 잊으면서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P11

죽음의 임박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갑자기 삶에 대한 애착을 느낀다. 이것은 뭔가 전혀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 참맛을 잃어버린 대상이 어쩌면 삶 자체가 아니라, 다만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일상적인 버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다.

어려운 말이다. 죽음이 임박해지고 확실해 진다면 우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뒤로 물러났던 것들이 비로소 중요하게 다시 다가오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P12

죽음에 대한 암시와 직면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단지 반쪽의 삶을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

죽음이 입박해 질 때 비로소 삶의 의미가 진정으로 다가오게 될까?

 

나를 위해서 읽는 방법

P18

아마도 자신의 존재를 다음과 같이 충분히 요약할 수 있을 법한 인물이었다. 나는 한평생 행복했다.”

정말 행복한 인생을 산 사람이다. 저런 말을 삶의 마지막에 할 수 있다면..

 

P20

그즈음 되자 마르셀이 버젓한 직업을 가질 수 없으리라는 점은 너무나 명백해졌으며, 크게 실망한 그의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또한 그가 영원히 집안 재산에 의존한 채로 살아가리라는 점 그리고 수입도 없으며 어디까지나 딜레탕트(아마추어)에 불과한 관심을 추구하리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집에 재산만 있다면 개인 본인은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P34

보편적인 인간 본성에 관한 우리의 믿음이 이론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 이상이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암시한다. 프루스트는 이 문제를 이렇게 보았다.

 

 

P35

그러나 프루스트나 호메로스와의 보다 오랜 만남은 한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때는 위협적일 정도로 낯설어 보이기만 했던 세계들이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세계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게 된다는, 심지어 우리가 집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의 범위를 넓혀준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P37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배려의 말을 건네는 쪽은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아마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P37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인식하기는 하지만, 차마 우리 자신의 힘으로 공식화하지는 못했던 인식을 지목하는 능력에까지 뻗어나가는 것이다.

 

P38

우리의 정신은 마치 의식 속을 떠돌아다니는 특정한 대상을 잡아내기 위해서 주파수가 새로 맞춰진 레이더가 된다.

 

P39

어느 천재의 새 걸작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이 경멸했던 심사숙고를, 스스로가 억눌렀던 기쁨과 슬픔을, 스스로가 비웃었던 감정의 온 세계를, 그런 것들을 담고 있는 바로 그 책이 문득 우리에게 가르쳐준 그런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뻐하게 된다.

 

시간 여유를 가지는 방법

P45

다른 출판사들도 이런 심정에 공감했던 까닭에 프루스트는 어쩔 수 없이 자비를 털어 책을 펴냈다. (그리고 몇 년 뒤에야 쏟아진 출판계의 후회와 회개의 사과를 즐기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나 장황함에 대한 비난만큼은 그다지 빨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널리 격찬을 받게 되는 1921년 말에, 프루스트는 한 미국인 여성의 편지를 한 통 받아쓴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나이는 스물일곱에, 사는 곳은 로마이며, 매우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또 자신은 지난 3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직 프루스트의 책만 읽었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다고 했다. “저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고,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마르셀 프루스트 선생님, 부디 현학자 노릇 마시고 현실로 돌아와주세요. 선생님께서 정말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인지 저한테 딱 두 줄로 말씀해 주세요.”

프루스트도 처음엔 이해 해주는 출판사가 없어서 자비로 출판했다니. 조금 위로가 되긴 한다.

 

P48

이른바 신문을 읽는다고 하는 혐오스럽고도 관능적인 행위,” 프루스트는 이렇게 썼다. “그 덕분에 지난 24시간 동안 우주에서 벌어졌던 모든 불운과 격변, 5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투, 살인, 파업, 파산, 화재, 독살, 자살, 이혼, 정치가와 배우의 냉정함 등이 심지어 거기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우리에게 일종의 아침 식탁거리로 변모되며, 아울러 우리는 카페오레 몇 모금을 마시도록 권유 받는 것이다.”

 

P50

이 뉴스들은 과연 어떤 종류의 비극 또는 희극 소설로 부풀려 졌을까? 쥘 르나르? 불행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며, 센 강 좌안의 여학교에서 화학 교사로 근무하던 이 천식환자는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감전사한 마르셀 페이니? 그는 친구앞에서 전기 기기에 대한 자기 지식을 자랑하려다가 목숨을 읽었는데, 그것은 언청이는 자기 아들 세르주와 아직 코르셋도 입어 보지 않은 그 친구의 딸 마틸드 사이의 혼사를 도모하기 위해 서 였다. 그리고 비외르반의 그 말? 갑자기 전차로 뛰어든 것은 일찍이 서커스에서 뛰어넘기 묘기를 부리던 시절의 추억을 엉뚱한 상황에서 잘못 떠올리는 바람에 야기된 것이었거나 또는 일찍이 시장에서 자기 형제를 치어 죽여서 결국 말고기 스테이크로 가공되게 만들었던 그 전차에 대한 복수였는지도 모르는데, 이것이야말로 단신란보다는 문예란의 형식에 딱 어울린다. 발자크,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졸라의 영향력도 엿보이고 말이다.

어떻게 하면 뉴스에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을까?


P54

사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를 사랑하는 그런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끼치는 걱정을 이용해서, 우리가 그들에게 심어 놓고 계속해서 불러일으키는 조마조마한 마음을 이용해서 죽이고 있는 것이다.

정말 내가 정말 그러고 있는 건가?

 

P55

불행히도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와 플로베르의 바로 그 예술적 수완은 심지어 이런 단신에서조차도 저 로미오와 안나와 엠마와 관련하여 정말 중대한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을 암시하는 성향이 있다.

 

P57

그러나 만약 그 귀족이 자신은 항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봉을 우회하는 여정을 위해서 조타륜을 잡겠다며 이와 유사한 논증을 내놓는다면, 독자들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었을 것이다.

누가 자신의 목숨을 실력도 없는 사람에게 내 맡기겠는가? 그건 신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배를 향해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그러나 다른 경우, 직접적으로 내 목숨에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우린 그것에 대해서 눈을 감는다. 하지만 정말 내 목숨을 위협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P63

이 문제라면 전 영국 프루스트 요약 경연대회 출신의 어느 실력 있는 참가자가 불과 2초 만에 요약할 수 있는 정도이다. 즉 청혼할지 말지 몰라 고민하는 청년이라고 말이다.


P65

프루스트는 이런 접근 방식을 가르켜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자신은 할 시간이 없음을 이유로 들어 바쁜사람들 그들의 일이 제아무리 어리석다고 하더라도 이 느끼는 자기만족이라고 정의했다.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

P69

어째서 프루스트가 이 문제에 특히나 민감했는지를 알기란 어렵지 않다. 그의 저술은 논리적이고, 잘 구성되고, 종종 고요하고, 심지어 슬기롭기까지 한 반면, 정작 그는 그야말로 섬뜩할 정도의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영위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삶에 대한 프루스트적인 접근방식의 계발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결코 프루스트와 같은 삶을 영위하려는 욕망은 품지 않을 것이다.


P72

당신이 생각하는 불행의 개념을 묻는 어느 설문지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것한밤중에 잠이 오지 않을 때”, 엄마가 자기 방의 침대에 누워 계시면 그는 편지를 써서 엄마 방문 앞에 가져다 놓아서, 다음 날 아침에 엄마가 발견하게 했다.

같은 집에서 이렇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나? 마마보이인 듯 보인다.

 

P75

프루스트의 낭만적인 비관주의는 사랑을 향한 강렬한 필요성 그리고 사랑을 확보하는 과정에서의 희비극적인 미숙함이라는 두 가지의 조합에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근거를 두고 있었다. “내가 정말로 슬플 때 나의 유일한 위안은 사랑하고 또 사랑받는 것 뿐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하면서, 자기 성격의 두드러진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랑을 받을 필요성,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존중받을 필요성보다는 오히려 애무를 받고 응석을 부릴 필요성이 휠씬 더 컸다.”

 

P86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마다, 프루스트는 자신이 곧 죽게 되리라고 서슴없이 주장했다. 삶의 마지막 16년간 그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규칙성을 자랑하며 이 사실을 알렸다. 그는 자신의 통상적인 상태를 카페인, 아스피린, 천식, 협심증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으며, 이레 가운데 엿새 꼴로 삶과 죽음 사이를 오락가락한다고 표현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기에 조금 더 진지하게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했을지도 모르겠다.

 

 

P87

이 주장의 수사학적 위력에도 불구하고, 프루스트는 바로 이듬해에 드디어 죽는 데에 성공했다.

 

P91

발목을 삠으로써 우리는 신체의 무게 분산에 관해서 금새 깨닫게 된다. 딸꾹질을 함으로써 우리는 이전까지 몰랐던 호흡기 계통의 이런저런 면을 알고 적응하게 된다. 연인에게 걷어차이는 것이야말로 감정적 의존성의 매커니즘에 대한 완벽한 입문이 된다.

프루스트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는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고통을 겪고 나서야 무엇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것을 진정으로 배우게 된다.

어떤 것에 대한 결핍이 비로소 우리에게 진실을 깨닫게 해 준다.

 

P93

따라서 고통 없이 떠오른 생각은 중요한 동기 부여의 원천을 결여한 셈이 된다. 프루스트가 보기에 정신활동은 두 개의 범주로 나뉘는 듯했다. 즉 한편에는 고통 없는 생각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있다. 이는 딱히 어떤 불편에 의해서 촉발되는 것은 아니며, 기껏해야 어떻게 잠이 작용하는지, 또는 왜 인간은 잊어버리는지를 밝혀내려고 하는 순수한 소망에 의해서 영감을 얻는 것이다. 또 한편에는 고통스러운 생각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잠들지 못하는, 또는 어떤 이름을 생각해 내지 못하는 등의 괴로운 무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후자의 범주를 프루스트는 특별하게 특권으로 여겼다.

 

P93

프루스트의 말에 따르면, 사람이 지혜를 얻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생님을 통해서 고통 없이 얻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삶을 통해서 고통스럽게 얻는 것이다. 그는 고통스러운 쪽의 지혜가 휠씬 더 우월하다고 주장한다.

플루스트는 정말 고통을 삶에 적절히 잘 활용하고 이용한게 아닌가 싶다.

 

P95

우리가 정신 능력의 발달에 진정한 우선 순위를 둔다면, 우리는 만족보다는 오히려 불행한 채로 있는 편이 더 나으리라는, 그리고 플라톤이나 스피노자를 읽는 것보다는 오히려 괴로운 연애를 추구하는 편이 더 나으리라는 것이다.

 

P95

그러니 우리가 축복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여전히 무지한 채로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이리라. 가령 자동차가 잘 움직인다면, 무슨 이득을 바라고 우리가 굳이 그 기계의 복잡한 내부 작동에 관해서 배워야 할까? 연인이 충성을 맹세한다면, 우리가 왜 굳이 인간의 배신 행위의 역학에 관해서 숙고해야 할까? 우리의 모든 만남을 존중해야 한다면, 왜 우리가 사회 생활의 굴욕에 관해서 조사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게 될까? 오직 슬픔 속에 빠졌을 때에야만 비로소 우리는 어려운 진실에 맞서고자 하는 프루스트적인 자극을 받게 된다. 우리가 이불 밑에서 울부짖을 때,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도 같을 때에야 비로소.

 

P100

고통이 지적이고 창의적인 탐구를 위한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손 쉽게 간과하거나 또는 거절할 수 있는 그리고 종종 그렇게 되는 가능성을 말이다.

 

P100

온전한 삶의 기술이란 우리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개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P101

슬픔이 생각으로 바뀌는 바로 그 순간, 슬픔은 우리의 가슴에 상처를 입히는 그 능력 가운데 일부를 잃어버린다.

 

P104

베르뒤랭 부인이 그토록 심한 고통을 겪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가진 것보다도 가지지 못한 것이 항상 더 많기 때문이며, 우리를 초대하는 사람보다는 초대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더 많기 때문이다.

 

P107

박식한 사람이 되기 위한 선결조건은 바로 자신의 무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체념하고 적응하는 것이다. 적응을 위해서는 이런 무지가 영구적일 필요는 없다고, 또는 이런 무지를 개인적으로 -

즉 이 무지는 결국 그의 타고난 능력의 반영이 라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P116

비록 프루스트가 우리에게 경고한 것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진정한 삶을, 그러니까 보이는 세계 아래에 있는 현실 세계를 발견할 때, 우리는 마치 평범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감춰진 보물과 고문실, 또는 해골이 가득 찬 집에 들어갔을 때처럼 상당한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P116

이처럼 불운한 고통의 체험자들에 비하면, 자신의 슬픔에 대한 프루스트의 접근 방식은 오히려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비록 천식 때문에 교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 되고 말았지만, 또한 활짝 핀 라일락만 보아도 몸이 보라색으로 질리게 되었지만, 그는 베르뒤랭 부인의 모범을 따르지 않았다. , 그는 그 꽃이 따분하기 짝이 없다고 트집을 잡거나, 밀폐된 방안에서 한 해를 보내는 것의 이점을 떠벌이지는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P122

그 표현의 빈곤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대화 상대가 살면서 겪은 일들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한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인상의 외부에 머물면서, 마치 성에가 낀 창문 너머로 그 인상을 바라보듯 한다. 표면적으로는 그 인상과 관계하면서도, 손쉬운 규정을 벗어난 무엇인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로부터는 멀어지는 것이다.

표현에 빈곤, 내 감정의 표현의 어려움은 늘 겪는 문제이자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P123

자네의 소설에는 몇 점의 훌륭하고 커다난 풍경화가 있다네.” 프루스트는 조심해서 길을 가면서 말했다. “하지만 때로는 그 풍경화를 보다 독창적으로 그렸으면 하고 바랄 사람도 있을 걸세. 해질녘에 하늘이 불타는 듯하다는 것은 물론 사실이네만, 그 표현은 너무 자주 이야기되거든. 그리고 달빛이 은은하게 비친다는 표현 역시 약간은 진부하네.”

 

P124

클리셰의 문제란, 그것들이 잘못된 생각을 담고 있다는 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매우 좋은 생각의 피상적인 연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P124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떻게 묘사하느냐는 애초에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느냐를 어느 정도는 반영하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P125

다만 2,000년 동안 사용되었던 기성품 달 이야기가 아니라 휠씬 더 뛰어나게 달의 현실을 포착하면서도 뭔가 흔치 않은 은유를 집어 넣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가끔 오후에 하늘에는 하얀 달이 작은 구름처럼 기어올라왔는데, 그 은밀하고 내보임 없는 모습은 마치 한동안 무대에 나올필요가 없는 어느 여배우가 평상복 차림으로 객석 앞으로 가서 한 동안 자기 동료들이 출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러나 여전히 배경에 머물면서, 자신에게 시선이 모이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묘사란 무엇일까?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독창적이면서도 은유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드는 문장이다.

 

P125

프루스트의 답장에 따르면, 이보다 더 그를 괴롭혔던 사실은 언어적 규약 (‘황금빛 구체’, 또는 하늘의 물체의 경우처럼)을 따르는 것이 항상 옮다고 믿은 사람들, 그리고 무슨 말을 할 때에는 독창적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들리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구사하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클리셰의 사용이었을 것이다.

반성이 들면서 앞으로 글을 쓸 때 명심해야겠다! 다짐해 본다.

 

P126

그 방식은 그야말로 굴종적이어서, 마치 새끼 검은방울새가 그 부모 검은방울새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어른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운 것과도 유사했다고 프루스트는 주장한다.

 

P131

프루스트는 전통에 관한 이러한 견해에 반대했으며, 스트로스부인에게도 그 사실을 알렸다.

 

모든 작가에게는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모든 바이올리니스트에게는 자기만의 음색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는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 내야 할 의무가 있다.

 

P134

자신의 정체성을 납작하게 눌러서 사회적 속박이라는 봉투 안에 쏙 들어가게 만드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 프루스트가 제안하는 것처럼, 만약 우리에게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면, 이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에게는 클리셰로부터 자유로운 차원이 있기 때문이며, 그 차원이 생각의 독특한 음색을 휠씬 더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예법을 무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우리에게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P136

나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프루스트는 1912년에 이렇게 적었다. [르 피가로]에서 어떤 기사를 보고 내게 편지를 쓴 독자들이 있을 경우, 물론 그런 일도 드물기는 하지만, 그 편지는 결국 마르셀 프레보에게 가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내 이름은 마치 잘못 인쇄된 그의 이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잘못된 이름처럼 취급당하는 것, 자기 자신만의 정체성, 자존감과도 연결된 문제가 아닐까?

 

P138

그러나 프루스트가 조용히 우리에게 알려준 것처럼, 알베르틴이 연인에게 그토록 깊은 애정을 느낀 까닭은 단지 그가 아침에 수염을 너무나 깨끗이 깎았기 때무이었으며, 그녀가 매끄러운 피부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곧 그의 지적수준은 그녀의 특정한 열의를 설명하는 데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암시한다. 만약 그가 두번 다시 면도를 하지 않겠다고 할 경우, 그녀는 내일이라도 당장 그의 곁을 떠날 것이다.

 

P140

이 유화를 본 대 부분의 사람들은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게 바라보았으며, 당대의 비평가들은 유난히 분통을 터뜨렸다. 비평가들은 그 창조자는 물론이고 그가 속한 느슨한 집단의 화가들을 인상주의자라고 경멸적인 어조로 지칭하면서, 회화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한 모네의 제어 능력이 워낙 제한적인 까닭에 유치한 물감 뒤범벅밖에는 만들어낼 수 없었으며, 르아브르의 일출 광경과는 닮은 구석이 거의 없는 그림이 나오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에 나온 미술계 주류파의 판단과 비교해 보면 이보다 더 견해차가 극명할 수는 없다.

 

P141                                                                         

이에 대한 프루스트의 답변은 우리 모두가 가진 습관에 관한 생각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현실 그 자체와는 너무나 다른 표현의 한 형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오히려 현실 그 자체로 간주되어야 마땅한 것에 순응하는 습관

 

P142

이 견해에 따르면, 현실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실제 현실과는 일치하지 않는데, 이 생각이 종종 부적절한, 또는 오도된 보고에 의해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계에 관한 클리셰적인 묘사로 둘러싸여 있는 까닭에, 모네의 [인상, 일출]에 대한 우리의 첫 반응은 르아브르 항구는 전혀 저렇게 생기지 않았다는 훼방과 불평일 것이다.

 

P144

우리의 허영, 우리의 열정, 우리의 모방 정신, 우리의 추상적 지성, 우리의 습관은 오래 전부터 줄곧 작용해왔으며, 예술의 과제란 이런 것들의 작용을 취소하는 것, 우리로 하여금 이제껏 존재하는 것들이 우리 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채 놓여 있는 깊이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채 놓여 있는 것!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런 것들을 찾아내서 볼 수 있는 눈이 곧 작가의 눈, 창작자의 눈이 아닐까?

 

P145

교훈? 삶이란 클리셰적인 삶보다도 더욱 낯선 실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검은방울새는 종종 그 부모와는 다른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마땅하다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플루플루, 미주 또는 불쌍한 작은 늑대라고 부르는 데에는 무엇인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친구가 되는 방법

P147

프루스트의 친구들은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친구가 상당히 많았고, 그의 사후에 상당수는 그를 알고 지내면서 경험한 것들을 책으로 출판했다. 이들의 평가는 더 이상 좋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프루스트야말로 교우관계의 모범이었으며, 우정의 화신이었다고 주장했다.

정말 그랬을까? 궁금해진다. 혹시 프루스트가 유명해졌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P148

그는 200퍼센트의 서비스 요금을 덧붙이기를 좋아했다.

가령 저녁식사가 10프랑이라면, 그는 20프랑을 웨이터에게 팁으로 주었다. – 페르낭 그레그

웨이터들은 좋아했겠다. 그런데 너무 지나친건 아닐까? 오히려 상대방이 무한할 정도로

 

P149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 잊지 않았다.

단 한번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던 작품이나 또는 자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친구를 잊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모든 시를 자기 책에 집어넣지 않았으며, 그에 상응하는 만큼을 자기 삶에 집어넣었기 때문이다.” 월터 베리

멋진 말이다. 시를 책에 다 넣지 않고 자기 삶에 넣었다니, 내 가슴 속에도 이 구절을 집어 넣고 싶어진다.

 

P150

이처럼 너그러운 평결을 고려해 볼 때, 프루스트가 실제로는 우정에 관해서 극도로 신랄한 견해를 주장했다는 사실은 놀라울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우정이 가진 가치에 관해서, 또한 사실상 다른 모두의 우정에 관해서도 유별나게 제한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눈부신 대화와 디너파티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그렇다면 다른 친구들이 본 프루스트에 모습은 거짓된 혹은 과장된 모습이었을까?

 

P151

대화는 쓸모 없는 활동이다.

대화, 이것은 우정의 표현 양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상은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주지 않는 피상적인 여담에 불과하다. 우리가 평생 동안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어쩌면 단 일분의 공허함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P155

[율리스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들이 똑 같은 리츠 호텔의 상들리에 아래 나란히 앉아 있으면서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다는 점은 그보다 더 놀랍고도 휠씬 더 유감스러운 일일 수 밖에 없다.

 

P157

이와는 대조적으로 책은 우리의 산발적인 정신의 증류물, 그 가장 생생한 표명의 기록을, 영감을 주는 순간들 원래는 몇 년간에 걸쳐서 야기되었을 것이며, 멍한 응시의 기나긴 범위에 의해서 나뉘었을 순간들 의 농축물을 제공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사람이 평소에 즐겨 보던 책의 저자를 만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실망스러울 것이다, 그런 만남은 그 저자가 시간의 한계 내에 존재함을 밝혀주고, 아울러 자신 스스로도 그 한계에 종속됨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서로 다른 관점의 차이?로 인한 괴리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그가 쓴 책과 세계, 사상은 작가 그 자신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말이다.


P158

프루스트는 이 작품이 3부작 [스완네 가는길], [게르망트네 가는 길], [되찾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더군다나 뒤의 두 편은 한 권으로 엮어 간행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서 그의 계획은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후속 권들의 간행이 4년이나 연기되었으며, 그 기간 동안에 프루스트는 말하고 싶은 새로운 것들을 상당수 발견했고, 그것들을 말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3권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래의 50만 단어가 100만하고도 25만 단어 이상으로 확대된 것이다.

 

P162

책이란 우리의 습관 속에서, 사회 속에서, 우리의 악덕 속에서 우리가 보여주는 자아와는 또 다른 자아의 산물이다.

 

P164

뤼시앵 도데는 프루스트가 다음과 같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다지 부러울 것도 없는 예언 능력이었는데, 그는 인간의 마음에서 온갖 쩨쩨함 종종 감춰진 을 발견했으며, 그 사실에 경악해 마지 않았다. 가장 눈에 잘 띄지 않는 거짓말, 마음속의 다른 생각, 비밀, 거짓된 청렴성, 뭔가 숨은 동기가 있는 친절한 말, 편의상 약간 변형된 진실, 한마디로 말해서 사랑에서 우리를 걱정시키는 것들, 우정에서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것들 다른 사람들과 우리의 관계를 진부하게 만드는 것들 모두가 프루스트에게는 지속적인 놀라움, 슬픔 또는 아이러니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대작인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소설을 쓸 수 있었지 않았을까?

 

P166

이것은 프루스트가 어떤 만남에서든 남들이 자기를 좋아하고, 기억하고, 많이 생각하게끔 관심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P170

우리끼리 만들어낸 동사로 프루스트화하다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약간은 지나치게 의식적으로 친철한 태도를, 아울러 속된 말로 표현하면 끝도 없이 유쾌한 겉치레를 가리키는 것이다.

 

P176

독서에서는, 우정이 갑자기 그 원래의 순수성을 되찾게 마련이다. 책을 상대로 해서는 거짓된 친친철 따위 있을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이런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보낸다면,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그러고 싶어서일 것이다. 

 

P177

우정이라는 하나의 우산 아래에서 습관적으로 상충되는 두 가지 계획 애정을 지키기 위한 계획과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표현하기 위한 계획 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프루스트로 말하자면 유별나게 정직하면서도 유별나게 다감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 두가지의 합동 계획을 극단으로까지 밀고 나가서, 우정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접근 방식에 도달했다. 그 접근 방식이란 애정의 추구와 진실의 추구가 가끔씩만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예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는 우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휠씬 더 좁은 개념을 택한다는 의미였다. 즉 우정이란 로르와 유쾌한 대화를 나누는 것인 한편, 몰리에르에게는 그가 지루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안나 드 노아유에게는 그녀가 시를 못 쓴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 좁은 개념을 택함으로써 프루스트의 친구가 휠씬 더 적어졌으리라고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이 처럼 극단적인 구분은 그를 더 나은, 더 충성스러운, 더 매력적인 친구로, 아울러 더 정직하고 심오하며 나아가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고자로 만들어주었다.

친구를 향한 또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이런 마음가짐이 과연 상대방에게 그 진심까지 느껴지게 할 있을까? 의문이 든다.

 

P179

우리가 친구들에게 실젤 부친 편지보다는 더 흥미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일단 쓰고서 막상 부치지 않은 편지일 것이다. 프루스트의 사후에 발견된 문서들 중에는 그레그에게 실제로 보낸 편지 이전에 썼던 또 다른 편지가 한 통 있었다. 거기에는 휠씬 더 비열한, 휠씬 더 용인될만한, 그러나 휠씬 더 진실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프루스트는 이렇게 써 놓고도 정작 다른 편지를 보냈던 것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자체가 괴로움이자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P181

대신 이 곤란한 생각들은 다른 곳에서는 더욱 잘 개진되었다. 바로 그 원인 제공자들에게는 지나치게 상처를 줄 수 있어서 그들과 공유하기에는 곤란한 분석들을 위해서 고안된, 개인적인 공간에서 말이다. 끝내 부치지 않은 편지 역시 그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역시 또다른 그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 속 세상을 설계한 창조자란 말이 떠오른다.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서 프루스트는 할 수 없었던 말들을 투영시켰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작가란 참으로 매력적인 직업이다.

 

P182

프루스트로서는 불운하게도, 정직하고자 하는 동시에 친구를 유지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그의 소설을 실화소설로 읽은 파리 사교계 사람들의 천박한 주장에 의해서 적잖이 손상되고 말았다.

 

P183

우정을 다른 사람에게 훈계하는 영역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관해서 배우는 영역으로 바라보는 데에 대해서 아무런 분개도 느끼지 않음을 의미한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해서

이 책은 알랭드보통이 프루스트의 인생과 그의 책 속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프루스트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들에 대해서 다름대로의 카데고리화하여 목차를 정하고 각각의 내용대로 묶은 것이다. 각 장의 순서성은 연관이 없다. 어떤 순서대로 읽어도 큰 문제는 없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사실 처음 이 책에 빠지기란 쉽지가 않다. 일단 프루스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고, 문장 자체가 길고 난해하기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책 중반에 가서야 비로소 이 책의 진가를 조금씩 느끼면서 마지막에 가서 프루스트에 대해서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책 처음에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 프루스트에 대해서 조금만 친철하게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3. 이 책의 장점

이 책은 프루스트의 걸작을 읽기 위한 독서 지침서이자 가이드와도 같은 책이다. 역자 후기가 이 책의 장점을 잘 설명하는 것 같아 마음에 와 닿는다. 마크트웨인은 고전이란 누구나 다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프루스트란 작가 역시 나에겐 그런 존재였다. 정말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다. 그런 작가를 이 책은 생생하게 내 앞에 지금 앉아 있는 친구와도 같이 느끼고 이해하게 해 준다. 새삼 알랭드보통의 박식함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힘, 친절함과 섬세함에 감탄한다.

 

4. 내가 저자라면

저자의 섬세함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힘에 감탄한다. 그리고 프루스트에 대해서 그의 삶과 인생, 저작을 관통하면서 그가 진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와 같이 정리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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