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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6일 15시 57분 등록

사기열전 1(92째주)

11기 정승훈

 

저자 연구

사마천(B.C. 145?~90?)

 

기원전 99년에 무제의 명으로 흉노를 정벌하러 떠났던 장군 이릉이 패전을 하여 포로가 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보고받은 무제는 진노하여, 이릉의 처분 문제를 결정하기 위한 중신 회의를 열었다. 신하들은 모두들 이릉을 비난하고는 이릉의 가족들을 모두 능지 처참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사마천은 이릉의 충절과 용감함을 찬양하고 두둔했기 때문에 무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다. 사마천은 태사령의 직책에서 파면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사마천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 사형을 면하는 것은 두 가지 방법, , 어마어마한 벌금을 내거나 궁형을 받는 것 둘뿐이었다. 이 벌금의 액수라는 것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서 사마천이 태사령이라는 직책으로 받는 녹봉으로 이 벌금을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궁형을 받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회 풍조였으나, 사마천은 사기의 완성을 위해 궁형을 받아들였다(궁형으로 인하여 고환이 제거되어 그의 초상화에는 수염이 없다). 당시 나이 마흔아홉에 궁형으로 죽음을 모면한 사마천은 아버지의 대부터 편찬 중이었던 역사서 사기의 편찬을 완료하였다.

 

사마천에게 궁형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싶고, 그럼에도 끝까지 살아서 역사서를 마무리한 것이 대단하다. 그럼 마지막은 어떠했을지 궁금한데, 사마천의 최후에 대해서는 많은 역사학자들이 자연사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다른 주장을 한 학자가 있고 그 내용을 인터뷰한 신문기사가 있어 실어본다.

 

<한국일보 사마천, 궁형 치욕에 스스로 처형의 길 택했을 것” 2016. 3. 31 기사>

[인터뷰] 사기 완역 중인 김영수씨

사마천이라면 마흔 아홉의 나이에 치욕적 궁형을 택했고, 그럼에도 끝내 사기를 완성시킨 뚝심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사마천의 최후는 어땠을까. 1998년 이후 꾸준히 사마천의 고향 중국 섬서성 한성시 서촌을 드나들며 사기완역 작업을 진행 중인 김영수 전 교수는 사마천이 다시 한무제를 도발해 사형당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놨다. ‘사마천과 사기에 대한 모든 것’(창해출판)을 통해서다.

역사 서술의 전범으로 꼽히는 사기의 또 다른 측면은 뒷끝 작렬이다. 책의 구성, 인물 해석, 서술 전략 등에서 궁형을 내린 한무제에 대한 비판을 곳곳에 숨겨뒀다. 가령, 한무제를 다룬 효무본기는 하늘과 땅에 지내는 제사 봉선제기록으로 채워져 있다. 얼핏 보면 황제의 위용을 뽐낸 일을 사실대로 적어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당신이 54년 동안 황제로서 한 일이라곤 황제라 뻐기면서 제사를 여러 번 치른 것 뿐이다라는 통렬한 조롱으로도 읽힐 수 있다. 흔히 문학적이란 말로 표현되는 사기 서술의 참 맛은 이런 데 숨어 있다. 사마천이 끝내 처형을 유도해냈을 것이라는 추론은 이런 태도와 관련 있다.

사마천의 고향을 다시 다녀온 김 전 교수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사마천의 최후에 대해선 널리 알려진 바가 없다.

 

그 부분은 기록이 명확치 않아 정확히 정해진 게 없다. 지금까지 학계의 통설은 자연사한 게 아닌가 하는 정도다.”

 

-자신이 처형당하도록 유도했다는 주장인데.

 

사마천은 사형 대신 궁형을 택해 살아남은 인물이다. 궁형이란 치욕을 당한 뒤 육체는 잠시 빌렸을 뿐이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사기를 완성함으로써 사마천은 후대에 전할 자신의 목소리를 남겼다. 그 뒤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나를 모욕한 한무제에게 이제 내 몸뚱이까지 너가 거두어가라하지 않았을까. 그게 가장 사마천다운 선택이라 생각한다.”

 

-근거가 있는지.

 

예전에도 처형당했을 것이라 생각한 이들은 있었다. 몇몇 옛 기록에는 처형이라 추측할 만한 대목도 있다. 거기다 사기 자체를 읽어봐도 진하게 배어 있는 복수 관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기에 자살 관련 기록이 200여 곳에 이르는데 주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에 대한 얘기들이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자신의 죽음이 어떤 방식이어야 할 지를 두고 골똘히 생각하지 않았을까. 거기에다 사마천의 후손들도 처형당했다 믿고 있다.”

 

-후손들이 처형당했다고 믿는 근거는.

 

사마천의 후손들은 성을 잃었다. 후손들은 성의 두 글자 사()와 마()를 한 글자씩 나눠가진 뒤 성을 고스란히 쓸 수 없으니 획을 덧대어 동(), ()씨로 집안을 보존했다. 이런 방식을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궁형을 받았다 해도 자연사였다면 그럴 필요까진 없다. 역적의 집안이어야 논리적 설명이 가능하다.”

 

-후손들의 일방 주장일 가능성은 없을까.

 

이번 1권에서는 그 얘기를 약간만 던져 둔 것이다. 3권에서 사마천의 고향인 섬서성 서촌에 대한 현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제대로 밝혀볼 생각이다.”

 

-사마천 후손들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1999년 여름이었다. 사마천의 고향을 두 번째 찾았을 때다. 섬서성은 원래 비가 적은 곳인데 그 해 물난리가 났다. 그 때만 해도 사마천을 크게 기리지 않았으니 유적으로 가는 길이 곧 끊겼다. 마침 근처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았는데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자기가 동씨로 사마천의 17대손이라 했다. 먼 한국에서 관심을 가져줬다는 점 때문에 무척 고마워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사마천은 기원전 인물인데 17대손은 이상하다.

 

안 그래도 71대손을 잘 못 말한 거 아니냐 했더니, 사마천이 처형당한 뒤 역적 집안이 되는 바람에 족보를 못 만들어서 그리 된 거라는 설명이었다. 사마천 사후 성씨를 바꿔서 집성촌 형태로 살면서 엄혹한 감시를 받았다 한다. 그게 풀린 게 명나라 때였고 그 때쯤을 중시조 삼아 족보를 만들어서 17대가 됐다는 얘기다.”

 

-절대 권력자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사마천이라면, 지금의 중국이 사마천을 갑자기 띄우는 것이 좀 이상하다.

 

시진핑의 집권과 관련이 있다. 중국은 2010년 되어서야 사마천과 사기를 크게 키우고 있다. 황제, 공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제사로 사마천에 대한 제사를 꼽을 정도다. 난 그게 자신감이라 본다. 이제 권력에 대한 비판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경제적 기초를 다졌고 정치적 리더십에서도 자신감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리고 독서광으로 유명한 시진핑 스스로가 사기의 팬이기도 하다.”

 

-사마천의 문학적인 역사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사마천에 대한 비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말씀대로 역사를 문학처럼 썼다는 얘기다. 내 주장을 하자면 나는 나약한 객관성보다 확실한 주관성이 낫다는 쪽이다. 나 스스로도 공부할 때 논문을 소설처럼 썼다는 이유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어떻게 보면 2004년 어렵게 얻은 교수직도 걷어차고 지금까지 사마천에게만 매달리게 된 것도 그 경험 때문일지 모르겠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18. 춘신군 열전

춘신군 황헐은 네 공자 중 한 사람으로 변설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사실상 진나라가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인재를 계속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443)

 

호랑이 두 마리가 싸우다 지치면 개도 못 이긴다

춘신군은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헐이고 성은 황이다. (445)

이름이 헐~이란다.

시경시작이 없는 것은 없으나 끝이 좋기란 드문 일이다.” 라고 했고, 역경에서는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게 마련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시작은 쉽지만 끝맺음은 어렵다는 것을 뜻합니다.“ (447)

이런 문구들이 있기에 고전이 지금도 생명력이 있다. 몇 천 년 전 사람도 끝맺음의 어려움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시간을 초월하게 만든다. 이 시대 사람들이 후대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할 줄 알았을까. 아닐 거다. 새삼 신기하다.

아버지와 아들, 늙은이와 어린이가 목을 매이고 손이 묶인 채 진나라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길 위에 끊일 날이 없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은 홀로 슬퍼할 뿐 제사를 지내 줄 남은 가족조차 없습니다. 백성은 삶을 즐길 수 없고 일가친척들은 뿔뿔이 흩어져 떠돌다가 노예나 첩이 된 자가 천하에 가득합니다.” (448)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졌다는 것이고 여러 번 이었다는 것이겠지.

 

신하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한다

황헐은 신하로서 자기 한 몸을 던져 군주를 위해 죽으려 했습니다. 태자가 왕위에 오르면 반드시 황헐을 등용할 것입니다. 그러니 죄를 묻지 말고 그대로 돌려보내 초나라와 화친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453)

 

정확한 결단만이 몸을 보존할 수 있다

참으로 당신의 존귀한 지위를 이용하여 저를 초왕에게 바친다면 왕께서는 반드시 저를 총애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이 도와 제가 사내아이를 낳는다면 당신 아들이 왕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초나라가 전부 당신 것이 됩니다.“ (458)

대단하다 이원의 누이동생은 춘신군의 아이를 임신하고 왕에게 가서 출산했다는 건데, 오빠야 권력 욕심이 있어 그랬다지만 그 여동생도 과연 그랬을까.

 

복과 불행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초나라 왕이 죽으면 이원은 반드시 궁궐로 들어가 권력을 잡고 당신을 죽여서 입을 막을 것입니다.” (460)

마지막에 이원에게 당한 일은 늙어서 사리 판단에 어두워진 탓이리라. 세인의 말에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라고 하였다. 이는 춘신군이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두고 한 말일까?” (461)

 

19. 범저·채택 열전

범저는 위나라 사람이고 채택은 연나라 사람이다. 이들은 고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살다가 서쪽 진나라로 들어가 재상이 되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쳤다.

사마천은 범저와 채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뜻을 잃지 않았고 공을 이룬 뒤에는 물러나 어진 사람을 따랐기 때문에 특별히 이들에 관한 열전을 만든 것이다. 아울러 진나라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을 설명하고 있다. (463)

 

군주가 의심하면 잠시 떠나 때를 기다려야 한다

빈객들이 술을 마시다 취하여 번갈아 가며 그의 몸에 오줌을 누었다. 이는 일부러 그를 모욕하여 나중에 함부로 나라의 기밀을 누설하는 자가 없도록 경계하려고 한 것이다. (466)

이런 수모를 겪고도 참은 범저도 대단하고 이렇게까지 한 사람도 대단하다.

당신은 제후의 유세가 따위는 데려오지 않았을 테지요. 그런 자들은 쓸모없는 놈들로 남의 나라를 어지럽힐 뿐이오.” (468)

틀린 소리는 아니다.

진나라는 삼진에게 여러 차례 시달린 일이 있어서 천하의 유세가들을 싫어하고 믿지 않았다. (469)

 

제후의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

평범한 군주는 사랑하는 자에게 상을 내리고 미워하는 자에게 벌을 주지만, 현명한 군주는 그렇지 않아 상은 반드시 공 있는 자에게 주고 형벌은 반드시 죄 있는 자에게 내린다.”라고 했습니다. (470)

신은 대부의 집을 번창시킬 인재는 나라 안에서 찾고, 제후의 나라를 번창시킬 인재는 천하에서 찾는다.“라고 들었습니다. 천하에 현명한 군주가 있으면 다른 제후들이 마음대로 인재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현명한 군주는 그러한 인재를 제후들로부터 빼앗아 오기 때문입니다.” (470)

신은 오늘 왕 앞에서 말씀드리고 내일 뒤에서 죽게 되더라도 굳이 피하지 않겠습니다. ... 어차피 한 번은 반드시 죽을 몸, 죽음으로써 조금이라도 진나라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신의 가장 큰 바람인데 또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473)

이렇게까지 자신이 있다는 건가.

신이 죽어 진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면 신의 죽음은 사는 것보다 오히려 낫습니다.” (474)

진짜일까? 아무리 충을 중요하게 여긴 시대라 해도 이건 좀 과장된 표현 아닐까

왕께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이웃 나라를 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477)

 

열매가 너무 많으면 가지가 부러진다

수도가 지나치게 크면 나라가 위태롭고, 신하가 지나치게 존중되면 군주가 낮아집니다.” (480)

그래서 너무 현명해도 재상이 되지 못한다고 했나보다.

 

머리카락을 뽑아 속죄해도 부족하다

수고는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 매우 놀라 웃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무릎으로 걸어서 문지기를 통해 죄를 빌었다. (484)

죄를 비는 행동인가보다. 웃옷을 벗은 건 무기가 없음을 보이는 걸까.

그때 단 한 끼 식사라도 대접해준 자에게는 반드시 이를 갚고, 눈을 한 번 흘길 정도의 사소한 원한에도 반드시 보복했다. (487)

그 당시엔 보답도 보복도 확실히 했나보다.

위제는 신릉군이 처음엔 만나기를 주저했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89)

죽을 일도 많다.

진나라 법에 따르면 사람을 추천한 경우 추천받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추천한 사람도 그와 같은 처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490)

 

군주가 어진 것은 하늘이 내린 복이다

군자는 의를 위해서는 어려운 일을 하다 죽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죽는 것을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쉽게 여기고, 살아서 치욕을 겪는 것보다 죽어서 영예로운 편이 낫다고 생각했소.” (495)

래서 죽음을 대하는 모습이나 죽음을 이야기할 때 마치 영예로운 것처럼 이야기한 것이구나.

몸과 이름이 모두 온전한 것이 가장 훌륭하며, 이름은 남의 모범이 될 만하지만 몸을 보존하지 못한 것이 그 다음이고, 이름은 욕되어도 몸만은 온전한 것이 가장 아래입니다.” (496)

사기열전에 나온 사람들은 이름은 남긴 것이다.

 

달도 차면 기운다

옛말에 해가 중천에 오르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 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왕성해지면 곧바로 쇠약해져 떨어지는 것은 천지의 변하지 않는 이치입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굽히고 펴는 것이 때에 따라 바뀌는 것은 성인의 영원한 도리입니다.” (498)

이는 모두 최고에 이르렀을 때 본연의 도리로 돌아오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모른 데서 생긴 재앙입니다.”

채택도 대단하다. 재상으로 있는 사람에게 대놓고 물러나라고 한다.

선비에게는 역시 우연히 때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 두 사람 못지않은 재능을 가지고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어려운 때가 없었다면 어찌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504)

 

20. 악의 열전

악의는 전국시대의 저명한 군사가로 알려져 있으나 위나라에서 태어나고 조나라에서 벼슬하다가 다시 위나라를 거쳐 연나라로 갔다. 그는 이러한 경력 때문에 종종 지조가 없다고 비난을 받는다. (507)

 

충신이 반역자가 되는 것은 하루아침이다

악의는 연나라 혜왕이 자기를 탐탁지 않게 여겨 다른 사람으로 교체시킨 줄을 알고 죽게 될까 봐 두려워서 서쪽으로 달아나 조나라에 투항했다. (512)

목숨을 쉽게 걸면서 이렇게 달아나기도 잘 하더라.

 

군주와 신하의 의는 무엇인가

신은 재능이 없어 왕명을 받들어 모시지 못하고 좌우 신하들의 마음을 따르지 못하여 선왕의 현명하심을 해치고 대왕의 높으신 덕을 해칠까 두려워 조나라로 도망왔습니다.” (513)

죽을 까 두려워서이면서 말은 이렇게 한다. ~ 말로는 못 당할 유세가들이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떠나라

태사공은 말한다.

일찍이 제나라의 괴통과 주보언은 악의가 연나라 왕에게 보낸 글 [보연왕서]를 읽을 때마다 책을 덮고 눈물을 머금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519)

?

21. 염파·인상여 열전

인상여가 염파와 서로 경쟁하는 사이이면서도 사사로움에 얽매이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을 보여 주어 결국은 자신에게 적대감을 품은 염파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아량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521)

그 아량 나도 배워보고 싶다.

 

큰 나라끼리 사귀는 데는 법도가 있다

진나라 왕은 끝내 화씨벽을 강제로 빼앗을 수 없음을 알고 드디어 닷새 동안 재계하기로 허락하고 상여를 광성전이라는 영빈관에 머물도록 했다. 상여는 진나라 왕이 비록 재계한다 하더라도 약속을 저버리고 결코 성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기를 따라온 사람에게 허름한 옷을 입혀 화씨벽을 품속에 숨겨 지름길로 도망치도록 하여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527)

진나라가 조나라에게 성을 주지 않으므로 조나라도 결국 화씨벽을 진나라에게 내주지 않았다. (529)

괜히 중간에서 상여만 곤혹을 치뤘다. 하긴 덕분에 상대부가 되긴 했다.

피를 뿌려서라도 군주의 위엄을 지킨다

신 상여와 왕 사이는 다섯 걸음도 못 됩니다. 신은 목의 피를 왕께 뿌려서라도 요청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진나라 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이 상여를 칼로 찌르려고 하였으나 상여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자 모두 뒤로 물러섰다. (530)

이건 협박 아닌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한다

나는 조나라 장군이 되어 성의 요새나 들에서 적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인상여는 겨우 혀와 입만을 놀렸을 뿐인데 지위가 나보다 높다.” (532)

전쟁을 치루는 장군의 입장에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533)

이게 적대적인 염파를 자기편으로 만든 아량이라는 건데, 글쎄 잘 모르겠다.

 

아버지와 자식은 마음 씀씀이부터 다르다

왕께서는 어찌 그 아버지와 같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와 자식은 마음 씀씀이부터 다릅니다. 부디 왕께서는 제 아들을 보내지 마십시오.” (539)

자기 아들을 이렇게 말하는 어머니가 얼마나 될까. 부족해도 인정하지 않으려 할 텐데.

왕께서 굳이 그 아이를 보내시려거든 그 아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저를 그 아이의 죄에 연루시켜 벌을 받지 않게 해 주십시오.” (539)

이런 어머니니 아들을 그렇게 키웠지. 아들 허물로 자기가 벌 받을 걸 염려하다니.

 

죽음을 알면 용기가 솟는다

태사공은 말한다.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545)

 

22. 전단 열전

이 편은 사기열전 중에서 가장 짧지만 전기(기이한 것을 전함) 색채가 가장 짙고 소설적 특징이 매우 강하다. (547)

 

수레바퀴 축의 쇠가 목숨을 구한다

전단은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수레바퀴 축의 양끝을 모조리 잘라 버리고 쇠를 덧붙여 튼튼하게 만들도록 하였다. (549)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지.

 

기묘한 계책으로 적의 허를 찔러라

전단은 성안에서 소 1000여 마리를 모아 붉은 비단에 오색으로 용무늬를 그려 넣은 옷을 만들어 입히고, 쇠뿔에는 칼날을 붙들어 매고 쇠꼬리에는 갈대를 매달아 기름을 붓고 그 끝에 불을 붙였다. (553)

기발한 생각이다. 전단의 내용은 짧지만 어느 장군이나 유세가보다 독특하다.

태사공은 말한다.

기이한 계책과 정공법이 서로 어우러져 쓰이는 것은 마치 끝이 없는 둥근 고리 같다. 대체로 기이한 병법은 처음에는 처녀처럼 약하게 보여 적군이 (얕잡아 보고) 문을 열어 두게 하지만, 나중에는 그물을 벗어난 토끼처럼 날래져서 적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이는 전단의 용병법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554)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살아서 의로운 일을 못할 바에는 차라리 가마솥에서 삶겨 죽는 편이 낫소.”

그러고는 마침내 끈으로 나뭇가지에 목을 매고는 스스로 꽉 죄어 목숨을 끊었다. (555)

 

23. 노중련·추양 열전

이 두 편은 고상한 품성으로 이름을 남긴 전국시대의 노중련과 굴원을 중심으로 하여 한대의 추양과 가생까지 다루고 있어 서로 연관시켜 읽어 볼 만하다.

전국시대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는데, 소진이나 장의같이 권세를 끼고 이익을 좇은 자와 노중련이나 추양처럼 권력과 부를 경시하고 명예를 높이 여긴 자이다. (557)

앞에선 계속 권세와 이익을 좇은 사람들만 나와서 백이 숙제 같은 사람이 없나보다 했다.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

구후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어 주왕에게 바쳤는데, 주왕은 그녀가 못생겼다면서 구후를 소금에 절여 죽였습니다. 악후가 이를 강력하게 말리며 거세게 두둔하자 악후를 포를 떠 죽였습니다.” (564)

진짜 이랬을까? 그냥 전해 내려오는 말이겠지. 우리나라 옛이야기 중 콩쥐팥쥐의 원래 이야기에서도 원님이 팥쥐를 소금에 절여 팥쥐 엄마에게 보냈다고 한다.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를 덜어 주고 재앙을 없애 주며 다툼을 풀어 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행위입니다. 저는 이런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566)

멋진 노중련이다.

 

잠시의 부끄러움을 참고 이름을 길이 남겨라

제가 듣건대 지혜로운 자는 때를 거슬러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용감한 자는 죽음을 겁내어 명예를 훼손시키지 않으며, 충성스러운 신하는 자기 한 몸을 앞세워 군주를 뒤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567)

또한 제가 듣건대 작은 예절에 얽매이는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작은 치욕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고 합니다.” (567)

잠시 개인적인 울분과 원한을 버리고 영원히 빛날 수 있는 이름을 세웠으며, 원망에 사로잡힌 작은 절개를 버리고 대대로 전해질 수 있는 공을 세운 것입니다.” (571)

자기 생각이나 중심이 없으면 예나 지금이나 남의 말에 흔들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도 못한다. 요즘도 전문가에게 자꾸 물어보는 것이 유세가들에게 물어보는 것과 유사하다.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인다

여자는 예쁘든 못생겼든 궁중으로 들어가면 질투를 받고, 선비는 어질든 어리석든 조정으로 들어가면 시샘을 받게 마련입니다.” (575)

오늘날 임금들은 천하의 뛰어난 선비들을 무거운 권력에 눌려 엎드리게 하고, 세력 있는 지위만을 제일로 여기므로 얼굴을 돌려 행실을 더럽히면서까지 아첨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섬기게 하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친하고 가깝게 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된다면 뜻있는 선비들은 바위굴 속에서 엎드려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충성과 신의를 다하여 대궐 밑으로 들어가는 자가 있겠습니까?” (579)

 

24. 굴원·가생 열전

전국시대 이래 문학작품에는 당시 인간 운명의 극적인 성공과 실패라는 분위기로 인해 심각한 회의와 절망의 정서가 깊숙이 배어 있다. 거기에는 인간사에 영원불변하는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583)

이런 시대적 사고에 대한 설명을 해주니 좋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굴원은 왕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데 밝지 못하고 헐뜯고 아첨하는 말이 군주의 밝음을 가로 막으며, 흉악하고 비뚤어진 말이 공정함을 해치고, 단아하고 올곧은 사람이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근심하며 깊이 사색에 잠겨 [이소]를 지었다. (585)

우물물이 맑아도 마시지 않으니 슬프다

사람들의 군주된 자 가운데 어리석거나 지혜롭거나 어질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충신을 구하여 자신을 위하도록 하고, 현명한 자를 등용하여 자기를 돕도록 하려고 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깨지는 일이 거듭 생기고, 훌륭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충신이라는 이가 충성을 다하지 않고, 현명하다는 이가 지혜롭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590)

어리석은 군주 아래엔 간신만 있을 뿐이고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자가 권력을 이용한다. 우린 박근혜와 최순실이 있었다.

 

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591)

다른 것보다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어지러워 나를 알지 못하니

내 마음 말하지 않으리.

죽음 피할 길 없음을 알기에

부디 슬퍼하지 말자.

세상의 군자들에게 분명히 알려

내 그대들의 표상이 되리라.

그러고는 돌을 안은 채 마침내 멱라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595)

 

모자를 신발 삼아 신어서야 되겠는가

그는 사람들이 각기 마음속으로 생각은 나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까지도 아주 명확하게 대답했다. (597)

가생은 인사하고 길을 나섰는데, 장사라는 곳은 지형이 낮고 습기가 많다는 말을 듣고 자기 수명이 길지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더구나 좌천되어 떠나가는 중이므로 마음이 우울하였다. (598)

선비는 어질든 어리석든 조정으로 들어가면 시샘을 받게 마련이라던 앞선 글귀가 생각난다.

 

들새가 들어오고 주인이 나간다

재앙이란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라.

근심과 기쁨은 같은 문으로 모이고

길함과 흉함은 한곳에 있네. (602)

 

25. 여불위 열전

여불위는 전기 색채가 풍부한 역사 인물이다. 그는 본래 한나라의 큰 상인으로 여러 제후국을 주유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여불위가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진시황의 친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대목이 이 편에 나오기 때문이다. (611)

 

진귀한 재물은 사 둘 만하다

여불위가 말했다.

당신이 모르는 모양인데, 제 가문은 당신 가문에 기대어 커질 것입니다.” (614)

자초를 권력자로 만들어 자신도 편승하겠다는 거다.

 

한 글자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가진 몸임을 숨기고 만삭이 되어 정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자초는 마침내 그 여자를 부인으로 세웠다. (617)

자초가 진시황의 아버지이고 부인은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니, 그래서 진시황의 아버지가 여불위라는 것이다.

 

26. 자객 열전

사기130편 중에서 인물을 묘사한 것이 112편이고, 그 중 쉰일곱 편이 비극적인 인물을 그린 것인데 이 편은 그런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이 편은 특정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유형이 비슷한 인물들의 활동을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면서 사마천 특유의 집필 태도를 보여준다.

자객 열전순리 열전뒤에 두어야 하지만 포악한 정치를 반대한다는 작자의 생각을 부가시킬 모적으로 진나라를 도운 여불위, 이사, 몽염 등의 열전이 있는 중간에 배열하였다. (623)

사마천이 이런 이유 때문에 중간에 넣었다는 글을 남겼나. 아님 역은이의 추측일까.

 

비수로 잃었던 땅을 되찾는다

약속을 어기면 안 됩니다. 작은 이익을 탐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하신다면 제후들의 신뢰를 잃고 천하 각국의 지지를 잃게 됩니다. 그러니 약속대로 땅을 돌려주시는 편이 낫습니다.” (626)

 

혈육을 죽이고 왕이 된다

전제는 왕 앞에 이르자 생선의 배를 찢고 비수를 잡아 요왕을 찔러 그 자리에서 죽였다. 그러자 왕의 양쪽 옆에 있던 사람들이 전제를 죽였다. (629)

왕이 되려고 형제를 죽이는 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였구나. 권력이 뭐라고.

 

충신은 지조를 위해 죽는다

조양자는 지백에 대한 원망이 너무 큰 나머지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서 큰 술잔으로 썼다. (630)

섬뜩하다. 두개골을 술잔으로 쓰다니.

오늘 일로 신은 죽어 마땅하나 모쪼록 당신의 옷을 얻어 그것을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도록 해 주신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633)

옷을 베어서라도 원수를 갚으려 한다는 것이 진짜 원수를 갚는 것과 같다고 여길 리는 없고 그거라도 해야 분이 풀린다는 거겠지.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다

그러자 섭정이 말했다.

제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여 시장 바닥에서 백정 노릇을 하는 까닭은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께서 세상에 살아 계신 동안에는 제 몸을 다른 사람에게 감히 바칠 수 없습니다.” (634)

그런 뒤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죽었다. (636)

말도 안 되지만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섭정은 제가 살아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훼손시켜 이 일에 연루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제게 닥칠 죽음이 두려워 도생의 장한 이름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638)

~ 앞에서 한 끔찍한 행동의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굶주린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에 고기를 던져 놓는다

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 (642)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아야 성공한다

부디 빨리 태자를 찾아가 전광은 이미 죽었다고 말하여 일이 새나갈 염려가 없음을 분명히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전광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645)

그 시대엔 목숨을 하찮게 여겨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자신의 뜻을 확실히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과거의 일을 현재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밤낮으로 이를 갈고 가슴을 치며 고대하던 일입니다. 이제 당신의 가르침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649)

 

자객은 한 번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다

진나라 법에 따르면 전 위에서 왕을 모시는 신하들은 한 자 한 치의 무기도 몸에 지닐 수 없었다. 낭중들이 무기를 가지고 뜰 아래에 늘어서 있으나 왕이 부르기 전에는 전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진나라 왕은 다급한 나머지 아래에 있는 병사들을 부를 겨를이 없었다. (652)

왕이 위험한 상황이 눈으로 보이는 대도 행동하지 못한다는 건 좀 이해가 안 되지만 법으로 그렇게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역은이가 부연 설명을 해주면 좋겠다.

진시황은 고점리가 축을 뛰어나게 잘 타는 솜씨를 아까워하여 용서하는 대신 눈을 멀게 했다. (655)

 

27. 이사 열전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의 문하생으로 진시황을 도와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하는 데 앞장선 사람이다.

사마천은 이사가 진나라가 여섯 나라를 통일하고 제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인정하면서도, 그와 조고의 음모를 비롯하여 2세를 도와 가혹한 정책을 펼치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것을 적어 꾸짖음으로써 역사의 죄인으로 만들었다. (659)

사마천의 기술방식은 객관적이다. 단지 뒤에 덧붙인 태사공은 말한다.”에 자신의 생각을 말할 뿐이다. 읽는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에 의한 주관적인 내용을 전달하지 않아 좋다.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자기 위치에 달려 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661)

환경만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데...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662)

위의 말만 들어도 이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진나라 왕은 이사를 장사로 삼고, 그의 계책을 듣고 모사들에게 황금과 주옥을 가지고 가서 제후들에게 유세하도록 하였다. (663)

이렇게 유세가들을 시켜 서로 이간질해서 합종하지 못하게 하면서 통일을 했다.

 

등용했으면 내치지 말라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 하나도 가리지 않으므로 그렇게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왕은 어떠한 백성이라도 물리치지 않아야 자신의 덕을 천하에 밝힐 수 있는 겁입니다.“ (666)

이사 자신이 쫓겨나지 않으려 한 말이지만 자연이치에 빗대어 이야기하니 설득력 있다.

 

옛것으로 지금을 비평하지 말라

어떤 일이든 옛것을 본받지 않고 오랜 시일 이어졌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668)

사사로이 학문하는 자들은 서로 모여 이미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허망한 것이라고 합니다.” (668)

청컨대 모든 문학과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이것을 없애도록 하고 이 금지령을 내린 지 삼십 일이 지나도 없애지 않는 자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을 가하여 성단으로 삼으십시오. 의약, 점복, 농사, 원예에 관한 책은 없애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배우고 싶은 자는 관리를 스승으로 삼으면 됩니다.” (669)

이사가 사사로이 학문하는 자들을 견제하려고 실용학문만을 남기고 없애고자 분서갱유를 한 것이다.

 

남의 신하가 되는 것과 신하로 삼는 것은 다르다

대체로 큰일을 행할 때는 작은 일을 돌아보지 않으며 큰 덕이 있는 사람은 일을 사양하지 않습니다.” (672)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유하자면 준마 여섯 필이 끄는 수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이오.” (679)

선재의 옛 신하를 모두 제거하고 폐하께서 믿을 수 있는 자를 새로 두어 가까이 하십시오.” (680)

정권이 바뀌면 사람을 다시 자기 사람으로 기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자칫하면 아첨하는 간신들만 남게 된다.

제 몸조차 이롭게 못하면서 어찌 천하를 다스리랴

이사는 두렵지만 벼슬과 봉록을 소중히 여겨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결국 2세 황제의 비위를 맞추어 용서를 빌고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683)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을.

남이 나를 따르게 하면 나는 존귀해지고 남은 비천해지지만, 내가 남을 따르면 내가 비천해지고 남이 존귀해집니다.” (684)

한비자는 자애로운 어머니에게는 집안을 망치는 자식이 있지만 엄격한 가정에는 거스르는 종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684)

예나 지금이나 같다. 자애로운 어머니라기보다 자식에게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는 어머니가 더 맞겠다.

지금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근본 원인에는 힘쓰지 않고,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들을 망치는 근원을 일삼는다면 성인의 이치를 살피지 못하는 것입니다.” (685)

현명한 군주는 홀로 결정하기 때문에 권력이 신하에게 있지 않습니다.” (686)

이 말은 조고에게 휘둘리지 말라는 것일까. 조고는 어릴 때부터 2세 황제를 가르쳐왔기에 2세 황제는 조고의 말이라면 맹신했다고 어느 글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폐하께서는 궁중 깊숙한 곳에서 팔짱을 끼고 계시면서 신과 법률에 밝은 시중과 더불어 일을 기다렸다가 안건이 생기면 그것을 상의해서 처리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대신들은 감히 의심스러운 일을 말하지 못하며, 온 천하가 훌륭한 군주라고 칭찬할 것입니다.” (688)

조고가 아예 원천봉쇄해버렸다. 이사가 나중에 죽기를 각오하고 충언을 했지만 이마저도 조고가 모함하여 그 일가를 멸했다고 하더라.

사슴을 말이라고 한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이 무거운 줄을 알고 2세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이라고 했다. (696)

그 유명한 위록지마란 말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조고는 황제의 옥새를 꺼내어 찼지만 곁에 있던 신하 가운데 따르는 자가 없고, 궁전에 오르자 궁전이 세 번이나 무너지려고 하였다. 조고는 자신이 황제가 되는 것을 하늘이 허락하지 않고 신하들도 받아들이지 않음을 알고 시황제의 손자 자영을 불러 옥새를 주었다. (697)

세상 사람은 모두 이사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형을 받고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 근본을 살펴보면 세속의 말과는 다르다.” (698)

사마천의 사기 열전은 사실과 다르다는 견해도 있다. 마치 옆에서 본 사람처럼 썼는데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는 것과 진시황의 유서를 위조했다는 근거가 없다는 거다. 사마천이 사심이 들어간 내용이라는 견해다.

 

28. 몽염 열전 (700)

진나라가 통일된 뒤, 몽염은 흉노를 압박하고 십여 년간 북방을 지키면서 만리장성을 쌓아 진시황에게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여기서 사마천은 몽염 형제를 혹평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진시황의 영토 확장 정책이 백성에게 수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701)

장군은 명령에 따르는 거 아닌가. 영토 확장 정책은 위에서 만든 것인데 그럼 그 정책을 따르지 않았어야 했을까, 아님 다른 나라로 가야 했을까.

 

충신은 대신들과 다투지 않는다

몽염에게는 궁궐 밖의 일을 맡기고 몽의는 언제나 궁궐 안에서 정책 수립에 참여하여 둘 다 충신이라는 평을 받으니, 여러 장수와 대신들도 감히 그들과 다투려 하지 않았다. (704)

 

한 사람의 지혜로는 군주 자리를 지키지 못한다

조고가 큰 죄를 지었을 때 진나라 왕은 몽의에게 법에 따라 다스리도록 명령했다. 몽의는 법을 곡해하지 않고 조고의 죄가 사형에 해당하므로 환관 명부에서 그를 삭제하였다. 그러나 시황제는 조고가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용서하고 그의 관직과 작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705)

그럴 거면 뭐 하러 법에 따라 다스리도록 명령했나 싶다. 결국 진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이다.

원컨대 대부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신이 정당한 죄로 죽게 하여 주십시오.

도리는 다스리는 자가 죄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무고한 사람에게는 벌을 내리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죽음도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고 정당하게 죽겠다는 말인데 황제에게 전해지지도 않았다니 결국 억울하게 죽었다.

몽염은 이름 있는 장수로서 이러한 때에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고 늙은이를 모시고 고아를 돌보며 모든 백성을 안정되고 평화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력히 간언하지 않고 도리어 시황제의 야심에 영합하여 공사를 일으켰으니 그들 형제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

과연 간언했으면 진시황이 들었을까. 아마 반대한다고 더 빨리 죽임을 당했을 것 같다.

 

29. 장이·진여 열전

장이와 진여는 전국시대 말기의 유생으로서 서로 친밀한 정을 나눈 사이이다.

그러나 진나라와 한나라의 복잡한 정치적, 군사적 대립 속에서 두 사람은 친구에서 원수라는 비극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713)

어쩌다 그리 됐는지 사뭇 궁금하다.

 

목이 달아나도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

여자는 이 말을 따라 마침내 그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장이에게로 시집갔다. (715)

중국은 오래 전부터 이혼도 재혼도 자유로이 할 수 있었나보다.

장이와 진여는 이름과 성을 바꾸고 함께 진으로 가서 어느 마을의 문지기 노릇을 하며 끼니를 이었다. (716)

 

명분이 있어야 도울 수 있다

나이가 많은 무신을 먼저 왕으로 세워 조나라 백성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725)

천하가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왕이 되는 때입니다.” (726)

진나라 말인 것 같다. 사기열전이 인물 위주로 쓰여 졌지만 어느 정도 역사순으로 쓰여진 것 같다.

 

이익 앞에서는 친구도 원수가 된다

장이와 나는 공이 같은데 지금 장이는 왕이 되고 나는 후가 되었다. 이는 항우의 일 처리가 공평치 않은 것이다.” (731)

친구가 아니라 아버지뻘이라고 했는데... 문지기로 있을 때도 발끈한 걸 장이가 참으라 해서 목숨을 부지했거늘.

 

지조 있는 신하가 왕을 구한다

지금 왕께서는 참으로 아무런 음모도 모르는데 함께 붙들렸소. 공들이 모두 죽는다면 누가 왕께서 반기를 들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 주겠소!” (735)

 

30. 위표·팽월 열전

용 두 마리가 싸울 땐 기다려야 하듯 위표와 팽월은 진나라 말기의 빠른 변화 속에서 여유롭게 처신했다.

이들은 결국 왕이 되었다가 한 시대의 호걸답게 죽었다는 것이 사마천이 말하는 요지이다. (741)

 

인생은 흰 망아지가 문틈으로 지나가는 것처럼 짧다

천하가 어지러우면 충성스러운 신하가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지금 천하가 함께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있으니 도의상 반드시 위나라 왕의 후예를 왕으로 세우는 것이 옳습니다.” (743)

위표는 어머니의 병을 돌보아야 된다는 핑계로 귀국을 요청하였다. (744)

충과 효를 중요하게 여겼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용 두 마리가 싸우면 기다려라

나는 늙었지만 여러분이 억지로 간청해서 우두머리가 되었소. 그런데 약속을 해 놓고도 지금 늦게 온 자가 많으니 그들의 목을 다 벨 수는 없고 가장 늦은 한 사람만 죽이겠소.” (746)

지략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자들이지만 오직 자기 몸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751)

 

31. 경포 열전

항우는 서초의 패왕이 되었을 때 경포를 구강왕에 봉하였다. 그 뒤 항우의 숙적 유방이 반간계를 써서 경포를 한나라에 투항하게 하고 회남왕으로 봉했다. 이는 그가 산 시대가 혼란스러우므로 가능한 일이다. (753)

 

형벌을 받은 뒤에 왕이 된다

장년이 되어 법에 연루되어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경형을 받게 되자, 경포는 너무 기뻐 웃으면서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내 관상을 보고 형벌을 받은 뒤에 왕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말한 거겠지.” (755)

얼굴에 먹물을 들인 사람이 왕이 될 수 있나.

 

팔짱만 끼고 앉아 어느 쪽이 이기는지 보면 안 된다

영포는 매우 화가 나서 이곳으로 온 것을 후회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으나, 물러나와 숙소로 가 보니 의복과 음식과 시종 등이 한나라 왕이 있는 곳과 같으므로 생각보다 좋은 예우에 매우 기뻐했다. (762)

목숨까지 끊으려고 한 사람이 옷과 음식 같은 걸 보고 기뻐했다는 것은 어이없다.

 

천하를 다스리는 데 어찌 썩은 선비를 쓰랴

여름에 한나라는 양나라 왕 팽월을 삶아 죽여 소금에 절이고, 소금에 절인 살덩이를 그릇에 담아 제후들에게 두루 내려 주었다. (764)

이게 정말 사실일까. 너무 잔인하다. 하긴 현대의 가치관으로 과거를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이긴 하다.

 

왜 낮은 계책을 쓸까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은 1000만 명이나 되지만, 영포는 늘 가장 포악한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고 공적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이 될 수는 있었지만 자신도 세상의 큰 치욕을 피하지는 못했다.” (770)

 

32. 회음후 열전

한신은 진나라 말기 농민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로 젊을 때는 굶기를 일삼을 정도로 가난했다.

한신의 공이 지나치게 높아 군주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자 유방은 그를 꺼리게 되었다.

항우가 죽은 뒤 한신은 초나라 왕으로 옮겨 갔다가 죄를 지어 회음후으로 강등되고, 결국 반역하려다 멸족의 화를 당하였다.

사마천은 이 열전을 쓰기 위해 한신의 고향을 방문하고, 마을 사람들이 제공한 소재를 토대로 해서 한신의 인물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그려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773)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간다

회음후 한신은 회음 사람이다. 처음 평민일 때에는 가난한 데다 방종하였으므로 추천을 받아 관리도 될 수 없고, 또 장사를 해서 살아갈 능력도 없어 늘 남을 따라다니며 먹고 살아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싫어하였다. (775)

이랬던 사람이 어떻게 유방도 꺼리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소하가 달아난 한신을 쫓아간 이유

소하가 말했다.

다른 장수들은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한신에 견줄 만한 인물은 없습니다. 왕께서 계속 한중의 왕으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습니다만, 반드시 천하를 놓고 다투려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는 함께 일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 (778)

천하는 마음을 얻는 자의 몫이다

제후들끼리 먼저 관중으로 들어가는 이가 왕이 되기로 약속하였으므로 왕께서 관중의 왕의 되셔야 합니다.” (782)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왕이라니 어찌보면 참 쉬워 보인다.

 

싸움에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하지 않는다

내가 듣건대 병법에 의하면 병력이 열 배가 되면 적을 포위하고 두 배가 되면 싸우라.’라고 했소.” (785)

광무군이 사양하며 말했다.

제가 듣건대 싸움에서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존속시키는 일을 말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지금 저는 싸움에서 지고 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포로에 불과한데 어떻게 그러한 큰일을 꾀할 수 있겠습니까?” (788)

아녀자에게 속은 것도 운명이다

만약 한신이 도리를 배워 겸양한 태도로 자기 공로를 뽐내지 않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한나라에 대한 공훈은 주공, 소공, 태공망 등에 비할 수 있고 후세에 사당에서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811)

 

33. 한신·노관 열전

사마천이 보기에 주나라 초기 제후로 봉해진 인물은 대부분 조상의 음덕과 선행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나라 초기 제후들은 민간에서 시대의 흐름을 타고 일어나 자기 역량에 따라 세력을 구축한 차이가 있었다. (815)

주나라 땐 조상 덕이고, 한나라 땐 자기 역량이라는 건데 이건 사마천의 사견 아닐까.

한신과 노관도 공을 세워 왕으로 봉해졌고 고조와 친밀한 유대 관계를 유지했음에도, 당시 상황은 그들이 한나라를 떠나 반역의 길로 치닫게 만들었다.

이 편에 나오는 한신은 회음후 한신과 성과 이름은 물론 살았던 시대까지 일치하는데 역사가들은 이 두 사람을 구별하면서 전자를 한왕 신이라 하고, 후자를 회음후 한신으로 일컫는다. (815)

 

한나라 조정에 반기를 든 한신

제가 한나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앉은뱅이가 일어서기를 잊지 못하고 장님이 보기를 잊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형세로 보면 돌아갈 수 없을 듯합니다.” (822)

 

배반과 투항을 일삼은 노관과 그의 족속들

고조가 평민일 때 죄를 짓고 피하여 숨어 지낸 적이 있는데 노관은 언제나 그를 따라다녔다.” (823)

 

빈객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변란의 조짐이다

, 슬프다! 대체로 계책의 설익음과 무르익음과 성패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깊구나!”

사마천이 많이 아쉬웠나보다. 이렇게까지 표현한 것은 처음이다.

 

34. 전담 열전

이 편은 전담과 그의 사촌 동생 전영 및 전횡이 진나라 말기에 번갈아 왕이 되었다가 패망하는 과정, 즉 유방이 제나라를 평정하는 과정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 (833)

 

왕의 피를 물려받은 이가 왕이 되어야 한다

전담은 거짓으로 자기 종을 묶고, 젊은이들을 데리고 관아로 가서 종을 죽이는 시늉을 하였다. (835)

 

독사에게 물린 손은 잘라야 한다

초나라 희왕이 말했다.

전가는 동맹국의 왕으로서 곤궁한 처지가 되어 우리에게 왔으니 그를 죽이는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오.” (837)

서로 서로 위험에 처하면 다른 나라로 피신하고 그 나라 왕은 거둬준다.

 

원망하는 마음은 반란의 불씨가 된다

항왕은 포악한 사람이므로 왕께서는 교동으로 가셔야 합니다. 만일 가시지 않으면 틀림없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819)

 

평민에서 일어나 번갈아 왕이 된 세 형제

한신은 마침내 제나라를 평정하고 자신이 제나라의 임시 왕이 되고 싶다고 요청하였다. 그러자 한나라에서는 그를 진짜 왕으로 세웠다. (841)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

전횡의 절개는 고상하여 빈객들마저 그 의리를 삼하여 따라 죽었으니 어찌 이보다 더한 현명함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의 사적을 열전 속에 넣었다.” (844)

35. ···관 열전

이 편은 한나라 초기 개국공신이며 유방의 충성스러운 장수였던 번쾌, 역상, 하후영, 관영의 행적을 서술하고 있다.

이 편은 다른 열전의 구성과는 달리 전투와 전공 등의 사실을 반복하여 나열하고 있다.

특히 사마천은 여기서 번쾌의 손자 타광의 전언을 근거로 하여 서술함으로써 역사를 기록뿐 아니라 현장 체험을 통한 검증과정의 일환으로 파악하였다. (845)

앞에서도 직접 찾아가 후손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용맹스럽고 기개가 넘치는 번쾌

그는 개 잡는 일을 생업으로 하면서 유방과 함께 숨어 살기도 했다.” (847)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데 어찌 술 한잔을 사양하리

항우가 물었다.

더 마실 수 있겠소?”

번쾌가 말했다.

신은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데 어찌 술 한잔을 사양하겠습니까?” (850)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장별 제목은 사기열전과 같을 것이다. 소제목들은 역은이가 붙였을 텐데 적절하다. 각 장의 내용이 길지 않지만 소제목이 있으니 두꺼운 책의 부담이 적어진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각 장별 제목에 그 장에 해당하는 설명이 있다. 역은이가 추가했을 것 같은데 이걸 보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 내용을 알고 보니 흥미가 반감된다.

 

춘추전국시대라 나라들이 많다. 그 당시의 나라 이름이 적힌 중국 지도가 있었으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고방식 등에 대해서 배경이 될 만한 것들을 넣어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중간 쯤 나오긴 하지만 그 당시 사람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 어떤 의미이다.’ 또는 첩이나 부인의 청을 들어주는 범위가 정치도 포함된다.’ 등등

 

시간 순서가 아닌 인물 중심으로 하다 보니 뒤로 갈수록 반복되는 부분도 많고, 인물도 겹치고 많은 나라들이 계속 연관돼서 나오니 정리가 안 되는 느낌이다. 인물에 관점을 두고 읽으면 되지만 독자의 성향에 따라 정신없다 여길 수도 있다.

3. 이 책의 장점

중국 역사를 모르고도 읽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역사보다 사건과 인물 위주로 쓰여져서 흥미롭게 읽힌다. 간혹 너무 많은 나라들 간의 연결이 복잡하게 보이긴 하지만.

 

긴 설명이 필요한 것은 해당 편 뒤에 실었지만, 간단한 것들은 따로 주석으로 처리하지 않고 바로 옆에 씌여 있으니 읽기 편하다.

 

공자의 제자도 논어에 나오는 각 제자에 해당하는 말들을 묶어놓아 보기에 좋았고 그 제자의 성격과 공자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한국 역사 인물을 각 역사서에서 모아 서로 다른 표현으로 인물 열전을 만들어도 좋겠다.

 

전체를 다시 역사순으로 정리해서 겹치는 내용을 정리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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