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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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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2일 07시 03분 등록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41주차 (1/15~1/21)

티올(윤정욱)

 

I. 작가 분석

 

가.   저자는 누구인가?

 

마르쿠스는 로마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고모부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의 양자로 들어간다. 그가 '아우렐리우스'라는 가족의 성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문이며 또 이 입양이 계기가 되어 그는 나중에 황제의 자리에도 오르게 된다. 마르쿠스는 어린 시절부터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 하드리아누스는 마르쿠스에게 '진실된 아이'라는 별명을 붙여 줄 정도로 그를 아꼈다.

 

마르쿠스는 전승에 의하면 감수성이 예민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아이로 묘사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수사학과 철학, 특히 스토아 철학에 심취했다. 학자적 소질로 가득 찬 마르쿠스는 그러나 학자가 아니라 황제가 된다. 재위 기간 그가 주로 수행했던, 정확히 말해 수행할 수밖에 없었던 활동은 그의 성격 그리고 그의 이전 경험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즉위 후 59세에 전쟁 막사에서 죽을 때까지 이민족의 국경 침범을 막기 위한 원정 전쟁을 직접 수행해야만 했다.

 

마르쿠스의 19년간의 황제 자리는 게르만의 민족 대이동의 첫 번째 파고를 막기 위한 피나는 노력으로 점철되었다. 이 노력은 로마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고 그리고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이런 결과로 인해 그는 당시의 로마인들에 의해 '현제(賢帝)'로 인정받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2006. 5. 22., 휴머니스트)

 

 

# 노예에서 황제까지 #

 

뒷골목 건달과 영웅의 차이는 힘에 있지 않다. 힘세고 싸움 잘하기로 치면 뒷골목 건달이 영웅호걸보다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건달은 건달 이상이 되지 못한다. 늙고 병들거나 더 주먹 센 사람이 나타나면 사정없이 짓밟히는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만다. 하지만 영웅은 힘을 잃어도 여전히 사람들의 존경과 권위를 잃지 않는다. 건달과 영웅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명분에 있다. 건달은 자신과 똘마니들만을 위해 살지만 영웅은 정의를 위해 산다. 그래서 영웅이 힘없이 무너진다 해도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며 따르는 것이다.

 

로마는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의 역사만도 1,500년이 넘는 나라였다. 로마가 단순히 힘만 센 국가였다면 이렇듯 오래 이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로마는 사람으로 친다면 영웅호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국가였다. 그렇다면 로마제국을 영웅호걸로 특징 지웠던 명분과 도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스토아 철학이었다. 역사상 스토아 철학만큼 당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이념은 드물다.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중에는 에픽테토스 같은 노예 출신도 있었고 세네카 같은 정치인도 있었으며,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21~180) 같은 황제도 있었다. 노예에서 황제에 이르기까지 제국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던 스토아 철학은 로마를 진정한 강자로 만든 숨은 힘이었다.

 

 

# 따뜻한 침대를 버린 꼬마 철학자 #

 

아우렐리우스는 121, 제국의 수도 로마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 로마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지배 아래 최고의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하드리아누스는 제국의 이곳저곳을 챙기느라 일평생 출장 다녔던 황제로 유명하다. 황제가 출장을 마치고 오랜만에 로마로 돌아오는 것을 기념하려고 ‘황제 로마 귀환 기념주화’라는 희한한 화폐를 찍어 냈을 정도였다. 수도에 머문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치밀한 하드리아누스의 눈에 황제가 될 재목이 눈에 안 띄었을 리 없다. 그 재목이 바로 아우렐리우스였다.

 

아우렐리우스의 집안은 할아버지가 로마 공화정 시대의 최고 관직인 집정관을 3번이나 지냈던 명문가였다. 다만, 할아버지만큼이나 유명했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그는 외가에서 자라고 있었다. 전해 오는 기록에 따르면 아우렐리우스는 황제가 사랑할 만한 소년이었단다. 그는 밤늦게까지 공부에 매달렸다. 타고난 건강 체질은 아니었지만 달리기, 레슬링, 매사냥 등으로 몸을 단련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 어린이를 기특하게 여기지 않을 어른이 있겠는가?

 

게다가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적이기까지 했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지나친 욕심과 쾌락 추구는 결국 고통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따라서 어떠한 유혹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Apatheia)을 강조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하고 절제된 생활을 했다. 십대 무렵부터 깨달은 바가 있어 따뜻한 침대를 버리고 항상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잤고, 최고의 오락거리였던 검투사 시합과 마차 경기도 멀리했다.

 

이런 꼬마 철학자 아우렐리우스의 금욕적인 태도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마음에 꼭 들었다. 황제는 그를 무척이나 귀여워하여 ‘베르시무스(Versimus)’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했는데, 뜻을 풀자면 ‘정말 진국인 아이’ 정도 될 듯싶다.

 

 

#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고 슬퍼 말라 #

 

황제는 아우렐리우스를 교육하는 데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이 꼬마 철학자가 최고의 선생에게 교육을 받도록 배려했다. 그 결과 아우렐리우스를 가르쳤던 스승만도 17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어느 사회에나 사회 지도층이 되기 위한 엘리트 코스가 있게 마련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엘리트 코스를 충실하게 밟아 나갔다. 어려서부터 공직에 올라, 재무관, 집정관, 호민관, 원로원 의원 순서로 출세 가도를 순조롭게 달렸다. 물론, 황제의 배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출세 속도였다.

 

확실히 황제는 그를 후계자 감으로 여겼던 듯하다. 이 점은 하드리아누스가 명문가의 딸과 그를 약혼시킨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이 꼬마 철학자가 하드리아누스 다음의 황제가 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렸다. 꼭 이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이 현명한 황제는 후계자로 52세의 안토니누스를 지명하고 그를 양아들로 받아들였다. , 안토니누스가 아우렐리우스를 양자로 들이는 조건에서였다. 이로써 조금 해괴한 가족이 생겨났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나이 차가 열 살밖에 안 났다. 또한, 새 아버지는 새롭게 얻은 아우렐리우스가 마음에 들어서 할아버지가 맺어 준 약혼을 깨고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버렸다.

 

가족의 모양새는 해외 토픽 감이었을지 몰라도, 이 가족을 구성한 할아버지의 선택은 정치적으로 정확하고 올바른 것이었다. 하드리아누스의 뒤를 이은 안토니누스는 훌륭하고 뛰어난 황제였다. 그가 다스리던 시대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데, 그 이유는 이 시기의 로마가 대단히 안정되고 평화로워서 도무지 기사화될 만한 사건이 없었던 탓이란다. 사람들은 그를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라고 불렀다. ‘경건한 안토니누스’라는 뜻이다. 그는 경건이 별명이 될 정도로 도덕적인 사람이었고, 또한 이성적인 삶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에도 충실했다. 이런 성품은 아들을 가르치는 데도 그대로 나타났다. 한번은 아우렐리우스가 자신을 가르쳤던 가정교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피 울고 있었다. 이를 본 안토니누스는 이렇게 아들을 위로했다.

 

“현명한 이의 철학도 황제의 권력도 감정을 절제하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단다. 그럴 때에는 네가 사나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참을 수밖에 없지······.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세상일은 모두 우주적 이성, 로고스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해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이미 그렇게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일은 마음의 평온을 깨는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을 발휘하여 우주적 이성의 깊은 뜻을 깨달아 기쁨도 슬픔도 없는 마음의 평화, 즉 부동심을 찾아야 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가르침대로 평생을 살았다. 뒤에 자식을 잃은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이렇게 자신을 타일렀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내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지만 그대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이겨 낼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참으로 강하고 건전한 삶의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위기와 시련이 닥쳐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는 로마인의 강인함은 바로 이런 스토아 철학의 이념에서 나왔다.

 

 

# 흔들리는 팍스 로마나 #

 

161,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숨을 거두었다. 마흔 살의 아우렐리우스가 그 뒤를 이어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그가 물려받은 제국은 겉으로 보기에는 팍스 로마나 그 자체였다. 전쟁도 없었고 경제도 번창했다. 그러나 겉모습만 그랬을 뿐 로마는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었다. 빈부의 차이가 심하게 벌어졌고, 세금과 착취를 견디다 못한 중소 농민들이 토지를 버리고 수도 로마로 몰려들었다. 그 바람에 숱한 사회 문제가 생겨났다. 제국은 가진 자들의 횡포를 막지 못하고 못 가진 자들의 생계를 안정시키지도 못한 채, 속주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빵과 서커스를 베풀어 사회 불만을 겨우 잠재우는 형편이었다. 아우렐리우스는 뛰어난 행정 능력으로 위태롭기 그지없는 로마를 이끌어 나갔다.

 

162, 로마의 ‘전통적인 라이벌’ 파르티아(고대 이란의 왕국)가 침략해 왔다. 철학자 황제는 전쟁에도 능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쉽사리 파르티아를 격파했을 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지방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승리와 정복은 예상치 못한 재앙을 가져왔다. 이 지방에서 유행하던 페스트가 제국으로까지 흘러든 것이다. 곳곳에 페스트가 돌았고 수많은 시민이 죽어 갔다. 큰 홍수가 거듭 일어나기도 했다. 166년에는 게르만족이 제국의 방어선인 도나우 강을 돌파했고, 169년에는 무어인이 국경을 넘보았다. 아우렐리우스는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하느라 조금도 쉴 틈이 없었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전쟁 가운데에서도 과연 철학자였다. 그의 명작 《명상록》은 반란과 침략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시절에 군대 막사와 전쟁터에서 쓰인 것이다. 이 책에는 ‘나 자신을 훈계함’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누구에게 보여 주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주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잔인하고 황량한 전쟁터에서도 아우렐리우스는 끊임없이 이성을 일깨우고 마음의 고요를 찾는 철학자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명상록》 곳곳에는 그의 인간적인 번민과 철학적 사색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세계는 우주에 비하면 미세한 점에 불과하고, 인간의 삶도 찰나일 뿐이다. ······ 인생은 투쟁이고 세계는 낯선 이를 위한 임시 수용소일 뿐이며, 죽음 뒤에 얻은 명성은 허무하다. 그런 우리에게 유일한 버팀목은 철학뿐이다. 철학은 우리 자신 속에 거룩한 정신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고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은 악이 아니라 우리의 운명일 뿐이라고 말해 준다. ······ 우주적 이성에 따라 일어나는 일은 결코 나쁜 일일 리 없다.

 

 

# 로마법이 중요하면 다른 법도 중요하다 #

 

계속되는 전쟁과 자연재해로 로마의 재정 상태는 점점 어려워져만 갔다. 아우렐리우스는 부족한 재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거나 침략을 통해 약탈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자선 바자회라 할 만한 것을 열었다. 황제가 가지고 있던 보석부터 일상에서 쓰던 가구까지 모두 거리에 내놓고 팔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위기에 부딪혔을 때 국가 지도자가 제일 먼저 앞장선다는 점을 보이기 위한 상징적인 행위였겠지만, 로마 시민을 감동시키고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는 크게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 로마의 원로원은 그에게 ‘국가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선사했다.

 

또한 아우렐리우스는 매우 관대한 사람이었다. 175년에 반란을 일으켰던 시리아의 총독 카시우스를 부하 장교들이 죽였을 때,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베어진 목을 직접 보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카시우스와 다른 이들 사이에 오간 반란에 얽힌 수많은 편지들을 읽어 보지도 않고 모두 불태웠다.

 

사실 그의 관대함은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에서 나왔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모든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다. 이 이성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우주적 이성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을 지닌 사람은 피부가 하얗건 검건, 라틴어를 쓰건 게르만어를 쓰건 간에 모두 존중해야 할 소중한 존재이다. 내가 이성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으로서 존엄하다면, 이성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이 존엄하다는 사실도 당연하다.

 

로마가 내세웠던 세계 시민주의는 바로 이 같은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의 이성이 모두 우주적 이성에 따른다면, 다른 민족이 만든 법도 로마법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 본래 있는 법칙이 민족과 문화에 따라 여러 형태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이는 우리가 말하는 자연법사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다른 민족의 문화나 풍습도 우주적 이성에 따르는 것인 만큼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정복이 곧 약탈과 파괴로 이어졌던 고대 문화 속에서도, 로마만큼은 오히려 정복당한 민족을 나와 같은 이성을 가진 동포로 보고 보호하고 존중하려 했다. 로마의 대제국은 이러한 스토아 철학의 포용과 관용 위에서 가능했다. 아우렐리우스는 이런 제국의 이념에 지극히 충실한 사람이었다.

 

 

# 끝까지 잃지 않은 담대함 #

 

아우렐리우스에게도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다. 180, 평생 전쟁과 재앙에 시달리던 고단한 황제에게 다시금 도나우 강변이 시끄럽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게르만족이 약탈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쪽에서 접근하는 또 다른 민족의 공격에 밀려 국경을 넘어왔음을 알았다. 그래서 이들을 로마 국경 안에 정착시키고 질병으로 인구가 줄어든 제국의 새로운 노동력으로 삼는 정책을 꾸준히 펼쳤다. 나아가 아우렐리우스는 아예 다시는 게르만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지 않도록 도나우 방어선 너머까지 영토를 넓히는 최후의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우주적 이성은 황제의 뜻을 알아주지 않았다. 게르만을 평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페스트로 쓰러지고 말았다.

 

죽음의 순간에도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다운 담대함을 잃지 않았다. 《명상록》에 나오는 한 구절은 그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 준다.

 

이제 헤어지는 마당에 남은 사람들을 고약하게 대하지 말라. ······ 그대의 가족과도 격렬한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부드럽게 이별하라. 자연(우주적 이성)이 그들을 그대와 결합시켰듯이 이제 자연이 다시 그대를 그들과 떼어 놓고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일 따름이다.

 

아우렐리우스가 죽은 뒤, 황제 자리는 철학자 아버지와는 다르게 야비하고 잔인한 성격의 아들 코모두스에게 넘어가게 된다. 아우렐리우스에게는 원래 많은 자식들이 있었으나 모두 병으로 죽고 코모두스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현명한 아우렐리우스였다 해도 이러한 최악의 경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듯싶다. 아들은 파탄에 이른 로마를 아버지만큼 기술적으로 통치하고 조절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코모두스의 로마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 자연을 따르라 #

 

스토아 철학은 기원전 4세기 말, 그리스 철학자 제논14)에 의해 출발한 사상이다. 원래 스토아 철학은 혼란한 사회에서 벗어나 스스로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고 한 은자(隱者)의 사상이었다. 그러나 명상과 깨달음을 강조한 불교가 역사상 많은 나라의 통치 이념이 되었고, 반성과 봉사를 강조한 기독교가 서양 중세를 지배한 이념이 되었듯, 스토아 철학도 개인의 깨달음을 넘어선 대제국의 통치 이상으로 발전해 나갔다. 개인을 훌륭하게 만드는 철학은 사회도 훌륭하게 만들 수 있음을 역사가 증명해 준 셈이다.

 

아우렐리우스의 삶은 철학적 반성을 거듭하는 성숙한 개인이 훌륭한 사회 지도자도 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 항상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도록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는 자세를 갖도록 하라. 아우렐리우스의 생애는 좋은 생활과 지도자의 품성을 어떻게 일궈야 할지 일러주는 삶의 멘토라 할 만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섭리를 따르는 삶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2017.02.17., 어크로스)

 

 

나.   왜 저자는 명상록을 썼을까?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왜 명상록을 썼을까? 그것도 전장이 한창인 막사에 말이다. 다급했던 이유라도 있었을까? 그가 썼다는 이 명상록은 그의 재위 시절 책으로 출간 되거나 사람들에게 언급 되지 않았다. 그가 180년에 사망하고 나서도, 2세기가 더 지난 4세기가 되어서야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책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왜 이러한 명상록을 썼을까? 그가 명상록을 쓴 이유에 대해 추측해 본다.

 

 

# 자기 계도 #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이 흥미롭다. 그는 로마 제국의 황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자신의 손가락 하나에 수만 수십 만의 군대가 움직이고, 온 나라의 재정이 움직였다. 산을 세우라면 산을 세울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자신, 로마의 황제였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소모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듯 하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의 양 날의 검이 되어 스스로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자신의 통치 이념 정립 #

 

본문 24~25페이지를 보면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적고 있다. 그 스스로 명상력을 쓰며 어떠한 모습의 황제가 이상적인 황제의 모습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스스로가 그러한 이상적인 황제의 모습을 갖고 있는지 반성하며, 나아가 그가 고민한대로 로마 제국을 다스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낮은 맨 땅에서 조금씩 올라가 거대한 전투 코끼리의 정점에 서 올랐던 그는 분명 멀리까지 내다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태 위태한 로마 제국이 오랫동안 번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최고 권력자인 자신의 정체성과 수양에 더욱 매진했을 것이다. 황제가 스스로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누가 자신을 따라 올 수 있을까?

 

 

# 일기 / 반면교사 #

 

 

다.   역자 천병희에 대하여 :

 

옮긴이 천병희는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횔덜린의 핀다르 수용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5년 동안 독문학과 고전문학을 수학했으며 북 바덴 주정부 시행 희랍어검정시험(GRAECUM) 및 라틴어검정시험(GROΒES LATINUM)에 합격했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명예 교수로, 그리스 문학과 라틴 문학을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전 번역으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헤로도토스의 『역사』, 헤시오도스의『신들의 계보』, 아폴로도로스의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새』 『개구리』, 아리스토텔레스 및 호라티우스의 『시학』 등 다수가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그리스 비극의 이해』 등이 있다.

 

 

라.   명상록 vs 난중일기

 

 

II.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9)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당대의 작가는 물론 그의 측근조차 본 적이 없는 저술로 4세기에 들어서야 알려졌고, 적어도 그 중 일부는 게르마니아 전선에서 씌어졌다.

 

è 출간이나 계도를 위해서 쓰여지지 않은 책. 아우렐리우스는 이 책을 왜 썼을까?

 

(10) 로마의 최고 권력자였던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원정기』와 『내전기』가 전술과 전투상황을 기록하고 있다면, 그 후 20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역시 전선에서 집필된 『명상록』이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더 이상 부러울 것 없는 로마 제국의 1인자가 양심적이며 실천적인 황제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 자기정화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è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을 살펴 볼 수 있다.

 

(1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에픽테토스, 세네카(Seneca)와 더불어 대표적인 후기 스토아 철학자

 

(13) 거대해진 제국과 사대적으로 왜소해진 개인 사이에 생겨난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을 더 중시했다.

 

è 팍스 로마나의 말기, 그는 어쩌면 자신이 정점으로 서 있었던 로마 제국의 멸망을 예견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유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 철학적 사고를 통한 통치 이념을 재 정립하는 것으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14) 현인은 남 보기에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아도 행복한 반면, 왕은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현인이 아닌 한 행복하지 못하다.

 

è 보통 왕이 지나치게 청렴하고 성인 군자다운 모습을 보이면, 그를 따르는 귀족들이 싫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원로원 세력들과의 불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황제였던 자신부터 철학적 사고와 실천을 통해 모두에게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었던 같다. 다시 말해 흠 잡힐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5) 에피쿠로스학파가 개인의 철저한 자유를 주장한 것과 달리 스토아 철학은 개인주의적 경향을 띠면서도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의무를 권장한다.

 

(15) 퀴프로스 섬 키티온 시 출신 제논(Zenon)이 창시했다.

 

(15) 스토아학파의 목표는 자연과 일치된 삶으로,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어떤 일에도 빼앗기지 않는 행복을 얻어내는 힘을 개인에게 부여하는 철학이였다.

 

è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이해하기 위해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22) 플라톤학파 철학자 알렉산드로 덕분에 나는 누군가에게 시간이 없소라고 불필요하게 너무 자주 말하거나 그 말을 편지에 써서는 안되며,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동등한 법률이 적용되고 평등권과 언론의 자유에 기초한 국가와 특히 피지배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왕정의 개념을 갖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또 철학에 대하여 지속적이고 변치 않는 존경심을 갖고, 좋은 일을 하고, 언제나 후하고, 희망을 품고, 친구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28) 곤궁하거나 그 밖에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을 때마다 그럴 여유가 없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의 곤경에 처해본 적이 없는 것도 신들 덕분이다. 내 아내가 그토록 고분고분하고 곰살궂고 검소한 것도,  내 자식들을 위하여 유능한 스승들을 구한 것도 신들 덕분이다.

 

(30) 날이 새면 너 자신에게 말하라. 오늘 나는 주제넘은 사람, 배은망덕한 사람, 교만한 사람, 음흉한 사람, 시기심 많은 사람, 붙임성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겠지 라고. 그들이 이런 결점을 갖게 된 것은 무엇이 좋고 나쁜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선은 그 본성이 아름답고 악은 그 본성이 추하며, 내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나와 피가 같고 출신이 같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과 신성을 나누어 갖고 있기 때문에 나와 나에게 동적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 까닭에 그들 가운데 누구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30) 따라서 서로 대립하는 것은 자연에 어긋난다. 화를 내고 등을 돌리는 것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31)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노인이라고. 너는 지배적 이성을 더 이상 노예로도, 이기적인 충동에 끌려 다니는 꼭두각시로도 만들지 말고, 더는 현재의 운명을 불평하지도 다가올 운명을 슬퍼하지도 마라.

 

è 그가 하는 말은 곧 스토아 철학의 정수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31) 불평하면서 죽지 않고, 즐겁고 참되고 신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고 싶다면 책을 향한 갈증을 버려라!

 

(32) 어떤 순간에도 로마인답게, 남자답게 꾸밈없는 위엄과 자연스러운 호의와 독립심과 정의감을 갖고 의연하게 행하고, 다른 생각일랑 모두 버려라. 모든 행동을 네 인생의 마지막 행동으로 여긴다면, 온갖 무()목적성과 격정에 이끌려 이성적 판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과 위선과 이기심과 주어진 운명에 불만을 터뜨리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너는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다.

 

(32) 혼이여, 너는 자신을 학대하고 있구나. 그러면 너는 자신을 존중한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생은 짧고, 네 인생도 거의 끝나간다. 하지만 너는 아직도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의 혼에서 행복을 찾는구나!

 

è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 로마제국의 황제였던 그도 사람이다. 그가 이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부분에서는 그가 인간으로서 느낀 조바심이 보인다. 그 역시 신이 아니다.

 

(33) 남의 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유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기 혼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34) 모든 것은 얼마나 빨리 사라져버리는가! 우주에서는 육신이, 시간에서는 육신에 대한 기억이! 감각적인 모든 것, 특히 쾌락으로 우리를 유혹하거나 고통으로 겁주거나 허영으로 부풀어오르는 것들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싸구려이고 경멸스럽고 더럽고 덧없고 죽어 있는 것인지 깨닫는 것은 우리 이성이 할 일이다.

 

(36) 네가 3천 년, 아니 3만 년을 산다 해도, 아무도 지금 살고 있는 삶 외에 다른 어떤 삶을 잃지 않으며, 지금 잃어버리는 삶 외에 다른 어떤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36) 잃는 것은 분명히 순간에 불과하다. 아무도 과거나 미래를 잃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어떻게 빼앗길 수 있겠는가?

 

(36) 둘째,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이나 가장 단명한 사람이나 똑 같은 것을 잃는다. 가진 것이 현재뿐이라면 현재만을 빼앗길 것이고,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잃지 않기 때문이다.

 

(37) 인간의 혼이 자신의 어떤 행위나 충동을 목적에 맞추지 않고 어떤 일을 하든 계획이나 뚜렷한 목적 없이 행동할 때이다.

 

(38) 카르눈툼에서 적다.

 

(39)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질 뿐 아니라, 사물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능력이 죽기 전에 먼저 멈추기 때문이다.

 

(41) 공동체의 이익과 연관이 없다면 남들을 생각하느라 네 여생을 허비하지 마라.

 

(41) 그런 일들을 생각함으로써 네가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41) 누가 너에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하고 갑자기 물어도 이것과 이것이라고 지체 없이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일들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43) 네 생각을 화려하게 치장하지 마라. 수다를 늘어놓지 말고, 일을 많이 벌이지 마라. 오히려 네 안의 신이 남자답고 원숙하고 정치에 밝은 사람의, 로마인의, 맹세나 다른 사람의 증언도 필요 없이 이 세상에서 소환하는 신호를 담담하게 기다리는 사람처럼 제 위치를 지킨 통치자의 수호자가 되게 하라.

 

(43) 너는 스스로 똑바로 서야 하지, 똑바로 세워져서는 안 된다.

 

(45) 네 판단력을 존중하라. 너의 지배적인 이성에 자연과 이상적 동물의 본성에 어긋나는 의견이 있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그 판단력에 달려 있다. 판단력은 신중함과 사람에 대한 친밀감, 신들에 대한 복종을 보장한다.

 

(45) 무엇보다도 각자는 현재라는 짧은 순간을 살고 있다는 점

 

(48) 자신에게 일어난 것과 자신을 위하여 운명의 베틀이 짠 것을 사랑하고 반기고, 자신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신성을 더럽히거나 무수한 상념들로 어지럽히지 않고, 신에게 순종하고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지 않고 정의에 어긋나는 짓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그 신성을 편안하게 간직하는 것뿐이다.

 

(48) 그는 자신이 소박하고 겸손하고 유쾌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으며 삶의 목표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49) 작은 불길은 자신에게 무언가 떨어지면 꺼져버리지만, 환한 불길은 그것들을 금세 자신에게 동화시켜 집어삼키며 그것들로 인해 더 높이 솟아오른다.

 

(49) 사람들은 시골이나 바닷가, 또는 산속에서 자신을 위한 은신처를 찾는다. 너도 무엇보다 그런 것을 그리워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너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너 자신 속으로 은둔할 수 있기 때문이다.

 

(50) 늘 그런 은둔의 기회를 마련해 자신을 새롭게 하라. 네 원칙들은 눈앞에 떠올리기만 해도 당장 근심을 모두 쫓아주고 네가 돌아가야 할 것들에게로 아무 불만 없이 너를 보내줄 수 있도록 짧고 근원적이어야 한다.

 

(51)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지 생각해보라. 대지 전체가 한의 점에 불과한데, 네가 살고 있는 이곳은 얼마나 작은 모퉁이인가, 그러니 여기서 너에게 찬사를 보내는 자들이 있어봐야 얼마나 되겠으며, 그들은 또 어떤 자들이겠는가.

 

(51) 첫째, 사물들은 네 혼을 장악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혼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불안은 오직 우리 안에 있는 의견에서 기인한다. 둘째, 네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은 한 순간에 변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너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경험했는지 항상 명심하라.

온 우주는 변화이고, 인생은 의견이다.”

 

(54)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죽음이 지척에 있다.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동안 선한 자가 되라.

 

(55) 후세 사람의 평판에 매달림으로써 자연의 선물을 소홀히 하는 것은 시의 적절하지 못하다.

 

 

III.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독자의 눈으로) :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을 분석

 

목차의 내용이 따로 없다. 1권에서 12권으로 분류 되어 있다. 그 구분이 어떠한 방식으로 되어 있는지 찾아보지 못했다. 시대 순인지 장소에 대한 구분인지 좀 더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분명 따로 순서를 정해서 볼 필요는 없다. 어느 곳을 펼쳐 놓고 읽어도 충분하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독자의 눈으로) :

 

원문을 얼마나 그대로 충실히 옮겨 왔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는 했다. 문장이 워낙 매끄럽고, 다듬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 있다. 이런 책을 이런 내용을 로마 시대 황제가 썼다고? 아니 대체 왜? 그 만큼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자, 오늘 날 그대로 읽어도 막힘이 없는 문장 들이었다. 후대 철학자들에게 분명 사상적 가르침이 되었을 법한 책이다. 역자(천병희 명예교수)의 고집스러운 노력을 신뢰하는 수 밖에 없다.

 

 

3) 이 책의 장점 (독자의 눈으로) :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등등

 

# 매 권을 마치며 #

 

형식 상으로 공통된 특징이 보였다. 항상 “~에서 적다 (형식상 특징)”로 매 권을 마무리 한다. 이를 통해 그가 어느 시기에 어느 전장을 돌아다녔는지도 유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저자의 눈으로) : 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황제가 되기 까지 #

 

어린 아이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할아버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자신의 양아버지를 이어 황제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자못 흥미롭다. 이 책의 말미에 그러한 내용도 짤막하게 들어가면 어떨까 싶다. 아마 그리스 로마 고전을 우리 말로 번역하는 것에 평생을 바쳐온 역자가 용서해 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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