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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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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2일 10시 08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는 기원후 121426일 로마에서 아버지 안토니누스 베루스와 어머니 도미티아 루키라 사이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로마 총독, 집정관, 원로원 의원 등을 역임한 안토니누스 웨루스의 아들로 집정관執政官을 지냈으며 어머니는 두 번이나 집정관을 지낸 루키우스 카틸리우스 세베루스의 손녀였다.

마르쿠스가 8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 후에는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마르쿠스는 몸이 약하여 학교에 다니는 대신 가정 교사에게서 공부했으며,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귀여움을 받았다. 그는 원래 성실하고 근엄하여 12세 때 이미 철학자들이 입는 거친 양털옷을 걸치고 공부에 열중하는 한편 이른바 희랍적인 훈련을 받아 육신도 엄격히 절제하였다. 마르쿠스는 처음에 문학, 음악, 무용, 회화 등을 공부했으나 이윽고 철학에 이끌려 이에 전념하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17세 때,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세상을 떠나고 그 유지에 따라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후계자로 즉위하고 마르쿠스와 루키우스 베루스가 안토니누스의 양자가 되었으나, 안토니누스는 마르쿠스를 자기의 후계자로 공표하였다. 마르쿠스는 26세 때 안토니누스의 딸 파우스티나와 결혼하고 양부 안토니누스를 도와 국정에 참여하였다.

기원후 161년에 안토니누스가 세상을 떠나자 원로원에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후계자로 맞아들이려고 했으나, 마르쿠스는 선제 하드리아누스의 유지를 존중하여 의제인 루키우스 베루스를 자기와 동등한 지위로 끌어올려 두 사람이 제위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고 의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의 표시로 자기의 큰딸 루킬라와 결혼하게 하였다. 그런데 루키우스는 나태하고 향락을 즐겨, 황제가 되어서도 국정을 돌아보지 않고 막중한 책임을 소홀히 했다. 그러나 마르쿠스에 대하여는 시종 존경과 우정을 잃지 않았으며, 마르쿠스도 그를 관대히 대하였다.

독서와 명상에 잠기는 것을 무엇보다도 낙으로 삼는 내향적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는 황제로서의 책임을 한 몸에 짊어지고 나라 안팎의 치리에 골몰하며 나날을 보내는 것은 결코 달가운 일이 못 되었다. 그러나 의무 관념이 강한 그는 전력을 기울여 소임을 다하였으며 또한 자기의 이상을 국정에 반영하려고 애썼다.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온 로마 제국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가 되자 혼란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가 즉위하자마자 북방 게르만인들이 난동을 일으키고 티베리스 강의 범람, 지진 등 연이은 재난이 덮쳐왔으며, 시리아에 침입하려고 한 파르티인들과의 전쟁도 일어났다. 마르쿠스는 루키우스를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파견했다. 루키우스는 별로 한 일이 없었으나 로마군은 승리하여 166년에 개선했다.

그런데 이때 묻어온 페스트의 병독이 번져 라인 강가에까지 이르러 백성과 가축의 무리가 떼죽음을 당하였다. 이 전염병과 이에 따르는 기근의 와중에서 게르만 민족의 일파인 마르코마니인이 다른 종족과 함께 이탈리아의 북방에 쳐들어왔으므로, 마르쿠스는 루키우스와 함께 원정하여 외적을 물리치고 돌아왔으나, 도중에 루키우스가 병으로 죽자 169년 그 후에는 마르쿠스가 혼자서 나라를 다스렸다. 그러나 그의 재위 중에는 전란이 그치는 날이 거의 없었으며, 언제나 전선에서 진두지휘를 하여야 했다. 그는 인정에 의해 만인의 경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사후 1세기 동안은 많은 가정에서 그를 집안의 수호신으로 모셨다고 한다. 사학자 기번(Edward Gibbon)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치세를 평하여, “그는 로마 제국을 42년 동안 끊임없이 예지와 인덕으로 다스렸다. 그의 치세야말로 대민족의 행복을 통치의 유일한 목표로 삼은 역사상 유일한 시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이면서 스토아 철학자이다. 그래서 그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스토아 철학을 빼놓을수가 없을 것 같다. 결국 이 책 역시 스토아 철학을 얘기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 스토아 철학에 대하여

 

서기 55년경에 로마에서 노예로 태어난 절름발이가 있었다. 그는 가혹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인생은 멋지다는 생각을 하면서 생명에 감사했다. 그는 억울하게 두들겨 맞고,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았다. 한편 많은 재산과 노예를 소유하고도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하던 그의 주인은 행복한 노예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는다. 주인은 절름발이 노예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자기에게 가르쳐준다면 자유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노예는 주인에게 인간이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자신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조언한다.

 

당신이 원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지 말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게 바로 당신이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시오. 보다 행복할 수 있을 것이요.” 주인은 이 말을 듣고 그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준다. 자유인이 된 그가 자신의 역경을 통한 삶의 철학을 가르치자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학파를 이룬다. 그가 바로 에픽테토스이다.

 

스토아철학은 세네카, 무소니우스, 에픽테토스 그리고 아우렐리우스를 ‘4대 현자로 부른다. 세네카는 로마 원로원 의원이었고, 무소니우스도 명문 가정의 출신이었으며, 아우렐리우스는 당시 로마 황제였다. 그래서 더욱 노예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그는 책을 남기지 않았으나 제자 아리아노스가 그의 어록을 여덟 권으로 기록하였으며, 대중을 위한 요약판을 편집하여 삶의 안내서라고 했다. 로마 병사들은 전선으로 떠나는 출정식에서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특히 그는 강한 영적인 교훈을 남겨 초기 기독교 사상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에픽테토스의 어록 중의 한 단락이다. “당신이 소유한 것은 신이 잠시 맡겨둔 것일 뿐 참된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을 잃어버렸다 말하지 말라. 단지 그것을 되돌려준 것일 뿐, 당신에게 맡겨져 있는 동안 그것을 남의 물건인 듯 대하라. 마치 여행자가 하루 밤 숙소를 대하듯. 가진 것을 잃을까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참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월든의 저자 H 소로가 혼란스러운 도시를 벗어나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인적이 드문 호숫가로 떠나는 계기도 에픽테토스 철학이었다고 한다.

 

하버드의대 정신과 교수 E 할로웰은 에픽테토스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인생은 멋지다라는 생각을 기본자세로 삼으면 삶을 에워싸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대비할 수 있다. 세련된 지성인 가운데는 이런 생각을 어리석고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여기며 비웃는 이가 많지만, 위대한 스토아 철학자의 삶과 교훈이 상징하는 것처럼 여기에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튼튼한 학문적 뿌리가 있다.”

 

그러나 에픽테토스 후에 스토아 철학은 곧 쇠퇴하게 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의 영향이었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 보다 우월했기 때문이다. 스토아 철학이 복음전파의 바탕을 마련한 셈이다. 당시 1세기 스토아 철학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하여 라이트주립대학의 W 어번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스토아 철학자들과 기독교인들은 가르침의 유사성 때문에 서로 경쟁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경쟁에서 기독교가 스토아 철학보다 우월했던 큰 이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영생이었다. 기독교는 죽음 이후의 삶이 있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영생복락을 약속했다. 반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죽음 이후의 삶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했지만 확신이 없었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황제의 생각, 일기로 남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생애

 

5.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이자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이며 스토아 철학자였다.

황제이면서 철학자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 오현제(五賢帝) : 로마의 평화라고 이야기되는 시기의 다섯 명의 황제인 로마 제국 전성기에 로마를 다스렸던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5인의 황제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시대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각 처에 로마식 도시가 세워졌으며, 속주민도 로마 문화의 혜택을 입었다.

 

5. 그는 어려서부터 하드리아누스를 자주 알현하며 귀염을 받았는데 하드리아누스는 진리에 대한 탐구정신이 강한 이 소년을 안니우스 베리시무스라고 부르며 그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

현제는 현제를 알아보는 법이다. 후계자가 될 인물이라 생각하여 교육에 소홀함이 없었을 것이다.

 

6. 하드리아누스의 뜻에 따라 그는, 그해의 집정관으로서 하드리아누스의 후계자로 지명된 루키우스 케이요니우스 콤모두스의 딸 케이요니아 파비아와 약혼했다.

이 부분이 좀 아쉽다. 철학자답게 사랑하는 여인은 직접 결정했으면 했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나 보다. 아니면 그 당시는 여자와의 결혼이 그닥 중요한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뒤에 파혼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6. 오현제 시대에는 친자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않고, 주위에서 지켜본 유망주 가운데 가장 유능해 보이는 인물을 양아들로 입양해 황제의 후계자가 되도록 했던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인데 제대로 된 결정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왜 그는 문제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줬을까? 이 정도의 인물이면 자기의 아들이 어떤지는 알고 있었을텐데. <글래디에이터> 영화에서처럼 아들에게 모종의 계략에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6. 그는 케이요니아와 파혼하고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딸로 고종사촌간인 안니아 갈레리아 파우스티나와 약혼했다. 그는 재정관으로, 나중에는 집정관으로 선출되었으며.

권력에 욕심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아니면 로마에 대한 충정의 뜻일까?

 

7.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들 밑에서 수사학, 철학, 법학, 미술 등을 공부하게 되는데, 수사학자 프론토에게 라틴 수사학을, 헤로데스 앗티쿠스에게 그리스 수사학을을 배웠다. 스토아 철학자로부터 철학에서 지적 흥미와 정신적 자양분을 구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교육 여건에 따라 그 사람이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으로써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늘 고민해야 한다. 최고의 스승을 만난다는건 실로 행운이다. 얼마나 좋았을까.

 

7. 그는 황제로 즉위해 180년까지 로마제국을 통치한다. 하드리아누스의 뜻을 받들어 그는 함께 입양된 양아우 루키우스와 로마 최초의 공동 황제가 되어 대사제직 외에는 모든 지위와 권력을 나누어 가졌으며, 루키우스에게는 자신의 이름인 베루스를 주고 자신은 안토니누스라는 이름을 썼다.

사람은 권력욕이 강하다. 하나를 가지고 둘이서 나누어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진짜 욕심부리지 않고 나누어 가졌다. 그런데 왜 그만 황제로 칭하는걸까?

 

* 16137일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죽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뒤를 이어 새로운 황제가 되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루키우스 베루스를 공동 황제로 삼았다. 로마 역사상 최초의 공동 황제였다. 법률상 지위와 권력은 동등하였으나, 실질적인 권한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장악하고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신의의 표시로 루키우스 베루스에게 군대의 통치권을 주고, 자신의 딸 루시엘라와 결혼시켰다. 162년부터 166년까지 루키우스 베루스는 로마 동부에서 일어난 파르티아와의 전쟁에 출정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하였다.

 

168년 봄에는 알라마니족과 마르코만니족이 로마의 국경을 침범하여 도나우강 근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은 180년까지 계속되었다. 루키우스 베루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이 전쟁에 참가하였다가, 169년 전장에서 로마로 돌아오는 도중에 알티눔(Altinum 또는 Altino) 근처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로마로 돌아온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후하게 장례를 지내고 그를 디부스 베루스(Divus Verus)로 신격화하였다

 

7. 그는 전선에서 여러 해를 보내며 격무에 시달렸다. 한때 몸소 북이탈리아와 게르마니아의 전선에서 전투를 지휘했다.

전쟁을 실제 겪어본 사람만이 국가를 경영할 수 있고, 군대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문과 무를 동시에 겸비한 사람은 뛰어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8. 그동안 축적해놓은 부와 제국의 진취적인 기상은 제국을 강타한 역병, 막대한 전쟁비용, 궁정의 헤픈 씀씀이, 비효율적인 관료주의, 장기적인 외교정책의 부재 등으로 점차 사그라들었다. 로마 역사상 전무후무한 안정기는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흐름을 알고 있었을까? 알면서도 바꾸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황제라 하더라도 바꾸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체질이 되버린 로마를 한 순간에 바꾸는 것은 무리였을지도. 그런데 참 이상하긴 하다. 동양인인 나는 왜 이렇게 로마에 대해 너그러운걸까? 로마가 너무 위대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이미 선입견이 되어버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8. 그는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로서 명석한 두뇌로 열심히 일한 황제라는 평가와 함께 오늘날까지 철인(哲人) 통치자로 존경받는다. 다만 그가 친자식인 콤모두스를 후계자로 지명한 것, 제위에 오른 콤모두스가 로마인에게 내려진 가장 극악한 저주라 일컬어지는 폭군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탓에 로마가 매우 불행한 시대를 맞게 된 사실은 아쉽기 그지없다.

제일 아이러니하면서도 오현제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아무리 뛰어난 철학자이자 인기있는 황제이면 뭐하나? 자식하나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했는데. 하늘에서 자기 아들이 행하는 것을 봤을 때 그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한편으로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자기자식은 어쩔수 없나 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유명한 정치인, 교육자 등의 자제들이 사고치는 뉴스는 허다하다. 자기 명성도 중요하지만 자녀들의 인성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9. <명상록>은 당대의 작가는 물론 그의 측근조차 본 적이 없는 저술로 4세기에 들어서야 알려졌고, 적어도 그 중 일부는 게르마니아 전선에서 씌어졌다.

난중일기를 보는 듯하다. 명상록이라는 말에서 알수 있듯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들을 견디기에는 글쓰기만한 것이 없나보다. 그도 이 글을 쓰면서 흔들리는 마음,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딜 수 있었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10. 남에게 보이고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난관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깨우쳐 올바른 길을 찾고자 한, 개인의 치열한 고뇌와 사색의 결과물이기에 그렇다.

 

10. 로마의 최고 권력자였던 카이사르가 쓴 <갈리아 원정기><내전기>가 전술과 전투상황을 기록하고 있다면, 그 후 20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역시 전선에서 집필된 <명상록>이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더 이상 부러울 것 없는 로마 제국의 1인자가 양심적이며 실천적인 황제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 자기 정화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황제로서 권한을 누리기도 바쁜데 이런 명상록을 쓰면서 자신을 바로 세웠다는 자체가 대단하긴 하다. 올바른 교육과 가치관이 잘 정립이 된 덕분이다.

 

10. <명상록>에는 자신의 결함에 대한 경계, 스토아학파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들려주는 충고와 반성, 귀감이 될 만한 교훈적 성격의 짤막한 경구와 인용문 그리고 신의 섭리, 인생의 무상함과 도덕적 정진과 인류에 대한 관용을 다짐하는 자세들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권력보다 철학을 사랑한 철인 통치자의 웅숭깊은 육성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에도 큰 울림을 안겨줄 것이다.

 

11. 그가 <명상록>을 로마의 라틴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쓴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전선에서 일과를 마친 지친 몸으로 자신의 생각을 외국어로 기록하는 것은 아무리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라도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헬레니즘 시대를 보니 그리스어를 하는 것은 당연한 문화였다. 로마가 그리스 지역을 포함해서 유럽 전체를 지배했지만 그리스의 문화, 예술, 문학을 넘어설수는 없었다. 그만큼 그리스의 영향은 컸다고 할 수밖에 없었고 그 당시 지배층이 그리스어를 공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의 우리가 영어를, 미국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1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인생관과 세계관은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 세계에서 발전한 주요학파 가운데 하나인 스토아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1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에픽테토스, 세네카와 더불어 대표적인 후기 스토아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철학은 플라톤과 에피쿠로스 철학의 요소들까지 내포하고 있다.

후계자 수업도 시간이 부족할텐데 철학까지 공부하는 황제이다. 아마 그의 신하들이나 아들은 그를 대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

 

13. 다양한 문명이 섞여 융합되는 가운데 원숙하고 세련된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던 로마인은 철학적 사고에서도 그리스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였다.

그리스 문화가 대단하다는 걸 연구원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그냥 그렇구나 생각했는데 책들을 읽으면서 그리스 문화, 역사, 문학이 서양 문화에 끼친 영향이 실로 지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3.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거대 제국을 건설해나가는 과정에서 개인은 도시국가라는 자족적인 활동공간을 빼앗겼다. 스토아 철학은 이 개인들이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응해가며 마련한 여러 대응 방안 가운데 하나였다. 거대해진 제국과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개인 사이에 생겨난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을 더 중시하거나 세계를 덜 중시하는 방법이 있었다. 첫 번째 방법을 택한 것이 스토아학파이고, 두 번째 방법을 택한 것이 에피쿠로스학파이다.

 

14. 에피쿠로스학파는 철저한 유물론 신봉자들로, 세계는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다. 거기에는 계획도 섭리도 없다. 신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 역시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일 뿐 인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죽음은 서로 붙어 있던 원자들이 떨어지고 흩어지는 것일 따름이다.

 

14.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력으로 행복, 즉 쾌락을 추구해야 하지만 자신의 부동심을 훼손할 정도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 에피쿠로스학파는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주장한 까닭에 사회의 지배계층과 다른 학파, 이를테면 플라톤의 사상을 계승한 아카데미이아학파와 스토아학파에 의해 매도되기도 했다. 후세 사람들이 에피쿠로스학파에 편견을 갖게 된 것은 이들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 에피쿠로스학파의 우주가 무정부적이라면 스토아학파의 우주는 질서정연하다. 우주 또는 자연은 이성에 의해 지배되며, 이성은 신이나 운명 또는 섭리와 같은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그것은 신적인 이성과 사물의 본성에 맞게 일어난다. 이런 진리를 알고 있는 현인이 추구해야 할 일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기꺼이 받아들이고 꿋꿋하게 참고 견디는 것이다. 자연에 따라오늘의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그 밖의 외적인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현인은 남 보기에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아도 행복한 반면, 왕은 아무리 많이 갖고 있어도 현인이 아닌 한 행복하지 못하다.

너무 금욕적인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답답하다. 인간의 욕망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게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닐텐데.

 

14. 스토아 철학은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사회개혁이 아닌 개인의 자아완성으로, 또 개인의 자아완성은 도덕적 수양으로 한정한다. 그리고 행복과 불행은 현실 자체보다 현실에 대한 의견이 결정하는 것으로 본다. 에피쿠로스학파가 개인의 철저한 자유를 주장한 것과 달리 스토아 철학은 개인주의적 경향을 띠면서도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의무를 권장한다. 이 때문에 로마인들이 스토아 철학에 공감한 것이다.

 

15. 스토아 철학은, 스크라테스가 몸소 보여주었던 철인의 삶에 크게 감동한 퀴프로스 섬 키티온 시 출신 제논이 창시했다. .... 제논은 그곳의 아고라라는 중앙 광장에 있는 채색주랑(Stoa Polikile)에서 강의를 했다. 그리하여 그의 제자들은 스토아학파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스토아란 이름이 붙었구나. 다른 깊은 뜻이 있는 줄.

 

15. 스토아 철학의 연구대상은 논리학, 자연학, 윤리학으로 나뉘지만 차츰 윤리학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스토아학파의 목표는 자연과 일치된 삶으로,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어떤 일에도 빼앗기지 않는 행복을 얻어내는 힘을 개인에게 부여하는 철학이었다.

자연과 일치된 삶이 가능한 걸까?

 

15. 이러한 사상은 태어남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는 그 생각 때문이지 죽음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과연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일까?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유명한 선사역시 죽음을 앞에 두고 살고 싶다라고 했다. 죽기 전에는 누구나 죽음에 초월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아우렐리우스의 죽음은 어땠을까?

 

16. 기원후 3세기에 스토아학파는 점점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스토아학파의 이론을 신플라톤 주의와 기독교 교부들이 일부 수용함으로써 많은 서양 사상가의 삶과 철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

 

I

 

19. 나의 외증조부 덕분에 나는 공공의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으로 훌륭한 선생들을 모실 수 있었고, 또 그런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과외인 셈이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을 붙여봤자 안되는 사람은 안되지만 말이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 콤모두스에게도 좋은 선생님을 많이 붙여줬을 것이다 그래도 폭군이 되는 걸 보면 사람의 본성이 중요한게 아닐까.

 

20. 루스티쿠스덕분에 나는 내 성격을 바로잡아 고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 공허한 주제로 글 쓰지 않고, 훈계하는 말을 하지 않고, 금욕가나 박애주의자인 척하지 않고, 수사학과 시학과 교묘한 말을 멀리하고, 성장(盛壯)을 하고 집안을 산책하는 따위의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

 

20. 단순한 문체로 편지를 쓰고, 자신의 행동을 취소할 뜻을 보이기만 하면 나를 화나게 하고 모욕한 자와도 당장 흔쾌히 화해하고, 책은 정독하며 읽어 피상적인 사고로 만족하지 않고, 수다쟁이들에게 성급히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또 그 덕분에 에픽테토스의 어록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가진 필사본을 나도 필사하도록 허락해주었다.

 

21. 아폴로니오스 덕분에 나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어떤 것도 행운에 맡기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나는 또 이성이 아닌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잠시라도 눈 돌리지 않고, 격심한 고통을 당하거나 자식을 여의거나 오랫동안 병을 앓아도 언제나 한결같고, 살아있는 본보기를 통해 같은 사람이 진지하면서도 상냥할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아무리 현자도 이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식이란 무엇인가. 무엇보다 자식이 눈 앞에서 죽는 것을 보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

 

21. 자신의 경험과 교습 능력을 자신의 재능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남을 가르칠 때 조급해하지 않는 사람을 그에게서 보았다. 어떻게 해야 비굴한 모습으로나 무관심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그럴듯한 호의를 베푸는 친구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21. 섹스토스 덕분에 나는 상냥함과, 가장이 다스리는 가정의 본보기와,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 어떤 것이며, 가식 없는 위엄과, 친구들에 대한 배려와, 문외한이나 이론적인 근거도 없이 의견을 내세우는 자들에게 베푸는 관용을 알게 되었다.

 

21. 그는 분노나 다른 격정의 낌새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격정에서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더없이 정감이 넘쳤으며, 칭찬하되 요란을 떨지 않았고, 박식하되 과시하지 않았다.

 

22. 나는 남의 흠을 들추지 않게 되었다. 누가 야만적이거나 터무니없거나 불쾌한 표현을 쓰더라도 헐뜯거나 나무라지 않고, 대답이나 진술 또는 표현이 아니라 사태 자체를 공동으로 고찰하거나 그 밖의 다른 방법으로 적절히 일깨워줌으로써, 그가 사용했어야 할 올바른 표현을 재치있게 일러주게 되었다.

 

22. 나는 악의와 변덕과 위선이 폭군의 특징이라는 것, 우리 사이에서 귀족이라고 불리는 자들은 대체로 인정머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이 되면 적당한 위선도 필요하다. 정치라는 것이 정직한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텐데

 

22. 나는 누군가에게 시간이 없소라고 불필요하게 너무 자주 말하거나 그 말을 편지에 써서는 안 되며,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로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의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해는 되지만 피곤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의무로 해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왕이나 어떤 계급에서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지만 말이다.

 

22. 카툴루스 덕분에 나는 친구의 질책이 근거 없는 것이라도 귓등으로 듣지 않고 친구를 평상심으로 돌리려 하고, 도미티우스와 아테노도토스에 관한 회고록에서 볼 수 있듯이 스승들을 진심으로 칭송하고, 자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23. 피지배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왕정의 개념을 갖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또 철학에 대하여 지속적이고 변치 않는 존경심을 갖고, 좋은 일을 하고, 언제나 후하고, 희망을 품고,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세베루스는 질책받아 마땅한 자들에게도 솔직했으며,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친구들이 추측할 필요가 없도록 분명히 밝혔다.

 

23. 막시무스 덕분에 나는 자제력을 갖게 되고,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특히 병이 들었을 때도 쾌활할 수 있었다. 그는 상냥함과 위엄을 겸비한 원만한 성격이었고, 맡은 일을 아무 불평 없이 해냈다.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는 아우렐리우스보다 더 위대해 보였다. 영화가 적어도 틀리지는 않았나 보다.

 

24. 그분은(아버지) 붙임성이 좋았고, 당신과 함께하는 식사나 여행에 동행하도록 친구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셨다. 급한 용무로 동참하지 못한 자들을 늘 한결같이 대하셨다. .... 그분은 모든 점에서 자족하셨고, 마음이 쾌활했다.

황제니까.

 

26. 한편으로는 참고 견딜 만큼 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절제할 수도 있다는 것은 막시무스가 병들었을 때 보여준 것과 같이 완전하고 불굴의 정신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다.

 

27. 궁정에 살면서도 호위대나 화려한 의복이나 횃불 드는 자들이나 입상같은 허식 없이도 지낼 수 있고, 거의 일반 백성 수준으로 자신을 제한해도 그 때문에 국가수장으로서의 직무에 위엄과 권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깨우쳐주셨다.

 

27. 내 자식들이 멍청하지 않고 불구가 아닌 것도 신들 덕분이다. 수사학과 시문학과 다른 학문에서 더 이상 진척을 보이지 못한 것도 신들 덕분이다. 내가 거기서 큰 재능을 보였더라면 거기에 매달렸을 테니 말이다.

제 자식인 콤모두스의 나중의 행동을 본다면 이런 말이 나올까. 멍청한 것이 나를 뻔했을 지도 모른다.

 

28. 자연에 따르는 삶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풀이해서 또렷이 머릿속에서 그려본 것도 신들 덕분이다.

 

28. 가끔 루스티쿠스에게 화가 났지만 거기서 나아가 나중에 후회할 짓을 하지 않은 것 모두 신들 덕분이다.

이 부분은 그래도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네

28. 내 아내가 그토록 고분고분하고 곰살궂고 검소한 것도, 내 자식들을 위하여 유능한 스승들을 구한 것도 신들 덕분이다.

자신이 사람볼줄 알아서 그런거지 너무 운명론적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 아내와 자식을 얻었을 때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신의 뜻이었다고?

 

I권은 상당히 괜찮은 부분인 것 같다. 시간이 부족하지만 내용을 나에게 맞게 각색해봤다. 나중에 진지하게 나만의 <명상록>에 나와 관계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한번 적고 싶다.

 

나는 변경연 덕분에 인생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비록 가끔 흔들리기도 하고, 이게 무슨 짓인지 하고 회의도 들기는 하지만 어쩌면 인간이면 당연한 변화의 과정이라 생각이 든다.

 

이 모든 것이 구본형 선생님 덕분이다. 사부를 만나지 못했으면 제 2의 인생을 출발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때 11기 과정이 떡 하니 나타났다. 신들 덕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부는 돌아가셨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부분에서 전체로, 우주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동기들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웨버누나의 선명성과 자신감과 아이에 대한 교육관에 대해, 의섭 형님의 인간관계에 대해, 정학 형님의 사랑과 자본주의에 대해서, 리아 누나의 자유로움과 글쓰는 유목민의 삶에 대해, 수정 누나의 뻔뻔함과 잘남에 대해, 성한의 관찰과 행복과, 아픔을 극복하는 것에 대해, 정욱의 성숙함과 표현력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나는 교육팀 선배들 덕분에 1년의 과정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의 공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들이라고 주말의 자유가 그립지 않겠나.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을까. 그냥 공헌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다. 1년간 같이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나는 아내 덕분에 제 2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삶이 무엇이 중요한지 알았다. 비록 이 과정을 이해해주지 못했지만 그 역시 그녀 때문이 아니라 내가 부족했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나이 어린 그녀지만 오히려 나보다 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배운다. 그녀는 분명 나에게 있어 과분한 여자임에 틀림없다. 그녀와 같이 사는 것은 정말 신들 덕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평생 그녀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 덕분에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기억하며 아이들을 대해야 하건만 나 역시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요구만 하고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주지 못했다. 잘난 아이로 키우기 보다는 자연의 삶을 따르는 사람으로, 예의바르게, 타인을 도울 수 있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양육하고 싶다.

 

나는 부모님 덕분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당신들의 근검절약하고 검소한 모습에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역시 배웠다. 부족한 환경에서도 모나지 않게, 타인을 배려해야 함을 가르쳐주셨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더라도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일들 뿐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신들에게, 우주에게, 그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II

 

30. 우리는 두 발처럼, 두 손처럼, 두 눈꺼풀처럼, 위아래 치열처럼 서로 돕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 대립하는 것은 자연에 어긋난다. 화를 내고 등을 돌리는 것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경계 지음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자연은 경계가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30. 나라는 존재는 육신과 짧은 호흡과 지배적 이성에 불과하다. 책을 멀리하라. 책에 끌려 옆길로 들어서지 마라. 그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마치 죽어가는 사람처럼 육신을 무시하라. 육신은 피와 뼈, 신경과 정맥과 동맥의 촘촘한 조직에 불과하다. 호흡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라. 공기일 뿐이다.

 

31. 세 번째는 지배적 이성이다.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노인이라고, 너는 지배적 이성을 더 이상 노예로도, 이기적인 충동에 끌려다니는 꼭두각시로도 만들지 말고, 더는 현재의 운명을 불평하지도 다가올 운명을 슬퍼하지도 마라.

 

31. 불평하면서 죽지 않고, 즐겁고 참되고 신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고 싶다면 책을 향한 갈증을 버려라!

왜 책을 멀리하라, 갈증을 버려라고 얘기하는 걸까? 책들로 인해 이런 것들을 더 잘 배울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잘못된 책을 읽음으로써 신을 의심하고 이성을 멀리할수도 있기 때문일까. 잘모르겠다.

 

32.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 시간을 마음의 평정을 얻는 데 쓰지 않으면 너의 시간도, 너도 사라질 것이고, 두 번 다시 그런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시간이 주어진다고 마음의 평정을 구할수 있을까. 그보다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해보고 싶은 것을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해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32. 왜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가? 그럴 시간에 너 자신을 위하여 좋은 것을 더 배우고 우왕좌왕하기를 멈추어라...... 활동하느라 삶에 지쳐 모든 충동과 생각 일반이 향할 수 있는 목표조차 없는 자들도 빈둥대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남들 말과 행동에 너무나 많이 휘둘렸다. 타인의 시선을 많이 느끼는 나로서는 절실히 와닿는 구절이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다. 인생 2막의 이 시점. 남들과의 비교는 그만하고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자.

 

33. 전체의 본성은 무엇이고 내 본성은 무엇이며 내 본성은 전체의 본성과 어떤 관계이고 어떤 전체의 어떤 부분인지를, 네가 그 일부인 자연에 따르는 것을 늘 행하고 말하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33. 욕망에서 비롯된 과오가 분노에서 비롯된 과오보다 더 무겁다고 말했다. 화를 내는 자는 분명 어떤 고통을 느끼고 무의식적으로 위축되어 이성에 등을 돌리지만, 쾌락에 제압되어 욕망 때문에 과오를 저지르는 것은 그 과오가 어떤 면에서 더 무절제하고 남성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쾌락이 수반되는 과오는 고통이 수반되는 과오보다 더 큰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테오프라스토스의 주장은 정당하고 철학자 답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지 참. 그냥 넘기기 쉬운 과오도 그 원인이 무엇이냐를 놓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황제.

 

34.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행하고 말하고 생각하라.

 

34. 신들이 존재하지 않거나 신들이 인간사에 관심이 없다면, 신들이 없는 또는 섭리가 없는 우주에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신들은 존재하고 신들은 인간사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신들은 인간에게 진정한 악에 빠지지 않을 능력을 주었다.

스토아 학파에서 마음에 안드는 것이 신에 대한 부분이다. 이 부분만 빼면 나한테는 참 잘 맞는 철학이기도 한데 말이다. 신이 없어도 사는데 의미는 충분히 있다. 신들이 있는데 인간사가 이렇게 고통이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런 얘기를 하면 고통 그자체도 신은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신의 뜻이라고 얘기할 것이다.

 

34. 어떤 것이 인간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없다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더 나쁘게 만들 수 있을까? 보편적 자연이 무지하기 때문에, 또는 알기는 하지만 미리 대비하거나 바꿀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간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 보편적 자연이 무능하거나 솜씨가 부족해서 선인과 악인에게 아무 구별 없이 똑같이 선과 악이 주어지게 하는 과오를 저지를 수 없다.

 

34. 그러나 죽음과 삶, 명성과 불명예, 고통과 쾌락, 부와 가난, 이 모든 것은 선인에게도 악인에게도 똑같이 주어지며 명예롭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34. 모든 것은 얼마나 빨리 사라져버리는가! 우주에서는 육신이, 시간에서는 육신에 대한 기억이! 감각적인 모든 것, 특히 쾌락으로 우리를 유혹하거나 고통으로 겁주거나 허영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들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런 것들이 얼마나 싸구려이고 경멸스럽고 더럽고 덧없고 죽어 있는 것인지 깨닫는 것은 우리 이성이 할 일이다.

 

35. 이성적 분석에 따라 죽음과 관련된 인상을 모두 벗겨내고 죽음 자체를 살펴본다면 죽음은 자연의 작용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 역시 이성이 할 일이다. 자연의 작용을 두려워하는 자는 어린애 같은 사람이다. 죽는다는 것은 자연의 작용일 뿐 아니라 자연에 유익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일부분으로 신과 접촉하며, 인간의 그 부분은 대체 어떤 성질의 것인지 생각하는 것도 이성이 할 일이다.

 

35. 신성을 섬긴다는 것은 그 신성을 정념과 허영, 신들과 인간들의 행위에 대한 불만에 오염되지 않게 지키는 것을 말한다. 신들에게서 비롯되는 것들은 탁월하다는 점에서 존경받아 마땅하다.

 

36. 가장 긴 삶도 결과는 가장 짧은 삶과 마찬가지이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그래도 긴 삶이 낫지 않을까.

 

36. 다음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 만물은 태초부터 같은 생김새로 순환하고 있으며, 누가 같은 광경을 100, 200년 또는 영원히 보느냐 하는 것은 아무런 차이도 없다. 둘째,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이나 가장 단명한 사람이나 똑같은 것을 잃는다. 가진 것이 현재뿐이라면 현재만을 빼앗길 것이고,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잃지 않기 때문이다.

 

36. 인간의 혼이 자신을 가장 학대하는 것은 첫째로 자기 탓으로 종양이나 이를테면 우주의 부스럼이 될 때이다. 발생하는 어떤 사태에 화를 내는 것은, 다른 모든 사물의 본성을 자신 속에 포함하는 자연에 대한 반역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인간의 혼이 다른 사람에게 등을 돌리거나 성난 사람들의 혼이 그러하듯, 해칠 의도를 품고 맞설 때이다. 셋째로, 인간의 혼이 쾌락이나 고통에 제압될 때이다. 넷째로, 인간의 혼이 위장하고는 거짓으로 꾸며 무엇을 행하거나 말할 때이다. 다섯째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목적과 관련이 있어야 하는데, 인간의 혼이 자신의 어떤 행위나 충동을 목적에 맞추지 않고 어떤 일을 하든 계획이나 뚜렷한 목적 없이 행동할 때이다. 이성적인 피조물의 목적은 가장 오래된 국가[우주]의 이성과 법규를 준수하는 것이다.

 

37. 인간이 사는 시간은 한순간이며, 그의 실체는 유동적이고 그의 지각은 불분명하다. 인간의 육신의 요소는 모두 썩게 되어 있고, 그의 혼은 하나의 소용돌이이다. 인간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고, 그에 대한 세간의 평은 불확실하다. ..... 우리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직 한 가지, 철학뿐이다. 철학은 우리 내면의 신성을 모욕과 피해에서 지켜주고, 쾌락과 고통을 다스리게 하고, 계획 없이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게 하고, 거짓과 위선을 멀리하게 하고, 남이 행하든 말든 거기에 매이지 않게 하고, 나아가 일어나거나 주어진 것을 마치 자신이 온 곳으로부터 온 것인 양 기꺼이 받아들이게 한다. 철학자는 무엇보다도 죽음을 모든 피조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해체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린다.

철학의 위대함을 깊이 깨달아가고 있다. 시간만 돈만 있다면 철학을 다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

 

38. 사람들은 왜 모든 구성 요소의 변화와 해체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가? 그것은 자연에 따르는 것이며, 자연에 따르는 일은 나쁜 것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III

 

39. 더 오래 산다고 할 때 과연 우리의 사고력이 여전히 능히 사물을 이해하고 신과 인간에 관한 일을 고찰을 통해 알 수 있을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은 늙기 시작하면, 호흡이나 소화, 상상력이나 충동 등의 능력에는 이상이 없다. 그러나 자신을 활용하고 자신의 의무를 정확히 인식하고 눈앞의 현상을 구분하고 스스로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는지 정확히 알고, 그 밖에 특히 잘 훈련된 판단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처리하는 능력은 쇠퇴한다. 그러므로 서둘러야 한다. 우리는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질 뿐 아니라, 사물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능력이 죽기 전에 먼저 멈추기 때문이다.

 

40. 부수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나름대로 전체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41. 공동체의 이익과 연관이 없다면 남들을 생각하느라 네 여생을 허비하지 마라.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왜 그렇게 할까, 그는 무엇을 말하고 생각하고 노리는 걸까 등등과 같이 너 자신의 지배적인 이성을 가지고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생각함으로써 네가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41. 생각의 고리에서 목적이 없는 것과 무익한 것, 특히 지나친 호기심과 악의를 피해야 한다. 누가 너에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하고 갑자기 물어도 이것과 저것이라고 지체 없이 대답할 수 잇는 그런 일들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42. 신성은 인간을 쾌락에 물들지 않게 하고, 온갖 고통에 상처받지 않게 하고, 온갖 교만에서 지켜주고, 온갖 수치스러운 짓에 무감각하게 한다. 그 신성은 또 그가 어떤 정염에 나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그를 가장 큰 싸움의 투사로 만들고, 그가 뼛속까지 정의감으로 가득 차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과 자기 몫으로 할당된 일은 무엇이든 진심으로 반기고, 공동체의 이익 때문에 만부득이할 때만 아주 드물게 남이 말하고 행하고 생각하는 것을 머릿속에 그려보게 한다.

 

43. 네 생각을 화려하게 치장하지 마라. 수다를 늘어놓지 말고, 일을 많이 벌이지 마라. ..... 마음을 쾌활하게 하며, 밖으로부터 도움을 구하지 말고 남들이 주는 안식도 구하지 마라. 너는 스스로 똑바로 서야 하지, 똑바로 세워져서는 안 된다.

스스로 바로 서면 얼마 좋겠나. 안되면 주위의 도움도 받을수 있는 문제 아닌가.

 

44. 그는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나야 한다 해도 품위를 지키며 정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처리하러 가는 양 담담하게 떠날 것이다.

이런 인간이 있을까? 난 없다고 본다. 삶은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45. 절도 있고 정화된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고름 같은 것이나 썩거나 곪은 상처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45. 각자가 사는 시간을 짧고, 각자가 살고 있는 대지의 구석은 좁다. 가장 길다는 사후의 명성도 짧기는 마찬가지이다.

사후 명성은 그렇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그리고 아우렐리우스 당신 이름 역시 아마 인간이 멸망하지 않는 한 계속된다. 이 점이 틀린 점이다. 다만 사후 명성을 쌓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48. 그는 자신이 소박하고 겸손하고 유쾌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도 누구에게도 화내지 않으며 삶의 목표에 이르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순결하게, 조용하게 떠날 각오를 하고, 자신의 운명과 사이좋게 지내며 삶의 목표에 이르러야 한다.

그 사람처럼 살고 싶다. 다는 안되겠지만 부분이라도 그럴수 있도록 살아야겠다.

 

IV

 

50. 인간에게 자신의 혼보다 더 조용하고 한적한 은신처는 없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당장 더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에겐 특히 그러하다.

 

50.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원수가 되어 의심하고 미워하고 싸우다가 결국에는 죽어 한 줌의 재가 되었는지 생각해보라. 이제 그런 불만은 집어치워라.

 

50. 거품 같은 명성이 너를 옆길로 들게 하는가? 그렇다면 모든 것이 얼마나 빨리 망각되는지, 얼마나 깊은 시간의 심연이 우리 앞에 있었고 우리 뒤에 올지, 갈채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너를 좋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판단력이 부족한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지 생각해보라.

아무리 그래도 갈채를 한번은 받고 싶다. 이렇게 얘기하는 당신의 명성은 지속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사고를 했기 때문에 명성이 지속되고 있겠지만

 

51. 네가 늘 가까이 하며 마음에 새겨야 할 원칙에는 다음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첫째, 사물들은 네 혼을 장악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혼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불안은 오직 우리 안에 있는 의견에서 기인한다. 둘째, 네가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은 한순간에 변하여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너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경험했는지 항상 명심하라. “온 우주는 변화이고, 인생의 의견이다.”

모든 불안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은 확실하다. 내 탓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52. 태어남이 여러요소의 결합이라면 죽음은 그 요소들로 해체되는 것이므로 조금도 곤혹스러워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성적 동물의 본성이나 그의 타고난 기질과 모순되지 않기 때문이다.

 

53.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정당하게 일어난다는 점을 명심하라.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나한테만 왜? 하고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런 자세가 일의 해결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53.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

 

53. 너를 바로잡아주고 그릇된 의견에서 벗어나게 해줄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네 생각을 바꾸어라.

 

54. 이웃 사람이 무엇을 말하고 행하고 생각하는지에 마음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이 행하는 것이 올바르고 신의 마음에 들도록 마음 쓰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여가가 생기는가.

왜 그렇게 남의 평가에, 남의 행동에, 남의 부에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

 

56. 에메랄드가 칭찬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지겠는가?

 

57. 마음의 평정을 바란다면 일을 적게 벌여라. .....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것은 십중팔구 불필요한 것이므로, 그것을 버리면 시간의 여유가 생기고 마음의 동요는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불필요한 행동뿐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도 버려야 한다.

요즘처럼 마음이 복잡한 때가 없다. 너무 하는 일이 많다. 줄여야 할 때이다.

 

57. 우주로부터 주어진 자신의 운명에 만족하고 자신의 올바른 행동과 자비로운 품성에 만족하는 선한 자의 삶이 네게 맞는지 한번 살펴보라

 

58. 너 자신을 혼란에 빠뜨리지 마라. 너 자신을 단순화하라. 누가 네게 잘못을 저지른다고? 그렇다면 그는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네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그건 잘된 일이다. 네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처음부터 우주가 너를 위하여 정해놓고 펼쳐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은 짧다. 신중하고 올바른 행동으로 현재에서 무언가를 얻도록 하라. 정신을 맑게 하되 긴장하지 마라.

 

58. 네 안에는 어떤 질서가 있는데 우주에는 질서가 없다는 것이 가능할까?

그 말되네.

 

60. 네가 아는 사람 가운데 헛된 것들을 좇느라 정작 자신의 소질에 맞는 것을 행하고 거기에 몰입하고 그것으로 만족하기를 소홀히 한 자들을 머리에 떠올려보라. 무엇을 행하든 그것에 쏟는 열성은 그 가치와 비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너는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지 않게 돼서, 싫증이 나서 그만두는 일이 없을 것이다.

 

61. 만물은 변화를 통하여 태동하고 있음을 언제나 지켜보라. ..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거기서 생겨날 것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61. 너는 곧 죽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단순하지 못하고, 담담하지도 못하고, 외부로부터 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든 사람에게 상냥하지 못하다.

 

62. 너는 시신을 짊어지고 다니는 작은 혼일뿐이다.

한번에 확 와닿는 문장이네

 

63. 시간은 생성되는 만물로 이루어진 강, 아니 급류이다. 무엇이든 눈에 띄자마자 휩쓸려가고, 다른 것이 떠내려 오면 그것도 곧 휩쓸려갈 것이다.

 

65.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다, 나야말로 불운하구나!“ 천만에!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라. ”나는 이런 일을 당했는데 고통을 겪지 않았고, 현재의 불운에도 망가지지 않고 미래의 고통도 두렵지 않으니, 나야말로 행운아로구나!“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65. 너에게 일어난 일이 네기 무엇을 하거나 하지 못하게 가로막더냐? 이를테면 네가 공정하고, 고매하고, 신중하고, 현명하고, 서두르지 않고, 올곧고, 겸손하고, 자유로워지고, 그 밖에 그것만 가지면 인간의 본성이 제 사명을 완수하게 되는 다른 자질을 갖지 못하게 막더냐? 앞으로는 너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잊지 말고 다음의 원칙을 적용하라. “이것은 불운이 아니다. 이것을 용감하게 참고 견디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행운이다.”

과연 그럴까.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불치병의 사람에게도 불치병은 행운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라고 본다.

 

V

 

67. 네가 태어난 것은 느끼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행동하기 위해서인가? 너는 작은 식물들이, 참새들이..... 꿀벌들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우주를 구성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 하거늘 너는 인간으로서 맡은 일을 거부하고 네 본성에 맞는 것을 향해 달려가지 않겠다는 것인가?

모든 인간은 세상에 기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자존감의 문제.

 

68. 자연에 따르는 말과 행동은 무엇이든 네게 어울리는 것으로 여겨라. 남들의 비난이나 말 때문에 옆길로 끌려들지 말고, 행하거나 말해서 옳은 것이 있으면 너 자신이 그렇게 할 가치가 없다고 여기지 마라..... 너 자신의 본성과 보편적 자연에 따라 곧장 걸어가라. 이 두 길이 하나이다.

 

69. 대지는 그토록 여러 해 동안 내게 날마다 먹고 마실 것을 대주었고, 내가 짓밟고 다니며 온갖 용도로 써대는데도 나를 짊어지고 있지 않은가.

 

69. 너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든가 능력이 모자란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도 얼마나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하겠느냐?...... 너는 이해가 느리고 아둔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해도 이런 결점을 훈련을 통해 극복해야지, 자신의 태만을 무시하거나 즐겨서는 안 된다.

 

71. 전체적으로 단 하나의 조화가 존재하며, 우주가 온갖 물체가 결합함으로써 이런 조화로운 물체가 되듯, 운명도 온갖 원인이 결합함으로써 이런 조화로운 원인이 된다.

 

72. 두 가지 이유에서 너는 너에게 일어나는 일에 만족해야 한다. 첫째, 그 일은 너에게 일어났고, 처방되었고, 가장 오래된 원인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운명의 실로 너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우주의 지배자에게는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일도 행복과 성취, 그리고 맹세코 존속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네가 전체의 결합과 연결해서 부분이든 원인이든 조금만 잘라내도 전체는 불구가 된다. 한데 너는 불만이 있을 때마다 힘 닿는 대로 그것을 잘라내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을 파괴하고 있구나.

 

72. 매번 성공하지 못한다 해도 매사를 올바른 원칙에 따라 행하는 데 싫증내거나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마라.

 

74. 보편적 자연에 맞지 않는 일은 어떤 것도 내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말 그럴까? 전쟁이, 갈등이, 아픔이 결국 모든 보편적 자연에 맞다는 말인가?

 

74. “지금 나는 내 혼을 어떤 목적에 쓰고 있는가?” 매사에 그렇게 자문해보고 다음과 같이 또 자신에게 물어보라. 사람들이 지배적 이성이라고 일컫는 나의 그 부분에서는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75. 나의 모든 부분은 변화에 의해 우주의 어떤 부분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 부분도 우주의 다른 부분으로 변할 것이며, 이런 과정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75. 이성적인 행위는 올바른 행위라고 불리는데, 그 까닭은 그러한 행위는 올바른 길을 가기 때문이다.

 

75. 인간으로서의 개인에게 속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인간적인 것이라고 부르지 마라.

 

76. 각각의 존재가 만들어진 이유는 또한 그 존재가 만들어진 목적이며, 각각의 존재는 그것을 지향한다. 각각의 존재가 지향하는 곳에 그의 목표가 있고, 그의 목표가 있는 곳에 각각의 존재의 이익과 선이 있다.

그렇다면 노예는 노예로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다.

 

77.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본성이 참을 수 없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무지와 허영심이 지혜보다 더 강하다는 것은 끔찍하지 않은가.

 

78. 마음은 자신의 활동을 방해하는 모든 것의 방향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계획을 촉진시킨다. 그리하여 그러한 활동을 방해하려던 것이 그러한 활동에 도움이 되고, 길을 막으려는 것이 길을 열어주게 된다.

 

78. 네 안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을 존중하라. 그것은 우주 안의 가장 강력한 것과 동족이다. 네 안에서도 그 강력한 것은 다른 것을 모두 이용하고, 네 삶은 그것에 지배되기 때문이다.

나의 강력한 것은 무엇일까? 나의 강점이 아니겠나. 배움, 지적사고, 긍정, 화합....

 

79. 네 혼의 지배적이고 주도적인 부분이 네 육신 안의 원활하거나 격결한 움직임에 휘둘리지 않게 하고, 그러한 움직임과 섞이지 않고 자신의 한계를 정하게 하라.

 

80. 신성이란 바로 각자의 정신과 이성이다.

 

83. 감각적 인상에 휩쓸리지 말고, 네 능력껏 사리에 맞게 사람을 도와라.

 

VI

 

84. 이성은 악의가 없고, 악을 행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이성에 의해 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만물은 이성에 따라 생성되고 완성된다.

 

84. 내면을 보라. 어떤 사물이든 그 특질과 가치를 간과하지 마라.

 

85. 복수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네 적처럼 하지 않는 것이다.

복수는 복수를 늘 낳는다고 하잖아. 상대방이 예상하지 않는 복수를

 

85. 항상 신을 생각하며 공동체적인 행동에서 또 다른 공동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 이 한 가지를 낙으로 삼고 거기서 안식을 얻도록 하라.

 

85. 각각의 사물이 완성되는 것은 보편적 자연을 따르는 것이지 밖에서 그 사물을 에워싸거나,, 그 사물들 안에 내포되거나, 그 사물의 외부에 딸린 다른 본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86. 끊임없이 자신 속으로 되돌아감으로써 너는 마음의 조화를 더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86. 너에게 계모도 있고 생모도 있다면, 너는 계모를 보살피겠지만, 그래도 자꾸만 생모에게 되돌아갈 것이다. 지금 너에게 궁정과 철학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니 자주 철학으로 돌아가 안식을 얻도록 하라. 철학 덕분에 너는 궁정 생활도 견딜만해 보이고, 궁궐에서도 너를 견딜 만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생모와 철학의 비유라. 높은 지성의 철학자의 비유답다.

 

86. 사물이 너무 믿음직해 보이거든 옷을 벗겨서 으것의 무가치함을 꿰뚫어보고 그것이 뻐기는 후광을 걷어내야 한다. 가식은 무서운 사기꾼이다. 그리고 네가 진지한 것을 상대하고 있다고 굳게 믿을 때 가장 현혹되기 쉽다.

 

87. 이성적이고 보편적이고 공동체적인 혼을 존중하는 자는 더 이상 다른 일에는 관심이 없고, 무엇보다 자신의 혼이 이성적이고 공동체적인 자세와 활동을 견지하고 자신과 같은 부류인 자와 그런 목적을 위해 협력하는 데 관심이 있다.

 

88. 우리가 매 순간 그러하듯 공기를 한번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것이나, 네가 엊그제 태어나면서 받은 호흡 능력 전체를 네가 처음으로 그것을 낚아챘던 곳으로 돌려주는 것이나 같기 때문이다.

 

88. 그렇다면 존중할 만한 것으로 무엇이 남아 있는가? 내 생각에는 자신의 고유한 소질에 따라 활동하고 다른 활동은 자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모든 직업과 기술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89. 간단히 말하면, 그 중 한가지라도 부족한 자는 안절부절못하게 마련이고,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많은 경우 신들조차 비난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네 소질을 존경하고 존중한다면, 너는 자신을 자신에게는 상냥하게, 이웃들에게는 사이좋게, 신들에게는 순응하게, 말하자면 신들이 나누고 규정해놓은 모든 것을 찬양할 것이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고, 부러워 하지도 말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믿고 노력하면 되는 것

 

89. 너에게 어떤 일이 어렵다고 해서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길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에게 가능하고 인간의 본성에 맞는 일이라면 너도 틀림없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라.

할 수 있다는 신념, 믿음을 가지자.

 

90. 내 의도나 행동이 옳지 못하다고 누가 입증하고 깨우쳐주면 기꺼이 고칠 것이다. 나는 진리를 추구하는데, 진리 때문에 해를 입은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기만과 무지에 집착하는 자는 해를 입는다.

내 잘못이나 행동에 대하여 누가 얘기해준다는 건 이미 그 사람이 나를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 아니겠나. 잘 알지 않나. 무관심하면 아무 얘기도 안한다는 것을

 

90. 나는 내 의무를 수행한다. 다른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그래야 되는데 나는 아직 다른 것에 더 관심이 많다. , 소유욕, 허영심, 지적 명예욕

 

92. 인생에서 아직 육신이 굴복하지 않고 있는데 혼이 먼저 굴복하는 것은 치욕이다.

간단한 것으로 식욕, 성욕 등 기본적인 욕구에 굴복하는 것도 치욕이다. 모든 욕망에는 절제가 필요함을 나이가 들어가니 깨닫고 있다. 지나침은 항상 무언가를 상실하게 한다.

 

92. 늘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상냥하고, 맡은 바 의무에 대하여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철학이 만들려고 했던 그런 사람으로 남도록 노력하라. 신들을 공경하고, 사람들을 구하라. 인생은 짧다. 지상의 삶에서 맺는 유일한 결실은 경건한 성품과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다.

개인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지 않나. 이런 인간이 있을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는 노력해야겠지. 우선 나부터 변해야 주위의 모든 사람이 조금이라도 변하지 않겠나. 그렇게 믿고 있다.

 

93. 나는 육체와 혼으로 이루어졌다. 육신에게는 만물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육신은 구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혼에게는 자신의 활동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만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95. 네 몫으로 주어진 사물들에 적응하고, 운명이 네게 정해준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라.

운명을 거스르면 안되는 것인가. 무조건적 순응은 인간에게 맞지 않는 영역아닐까. 과연 몇이나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순수히 받아들일까 싶다.

 

96. 네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을 너에게 좋은 것이나 나쁜 것으로 여긴다면, 나쁜 것이 닥치거나 좋은 것을 상실할 때 너는 필시 신을 원망할 것이다. 또한 좋은 것을 상실하거나 나쁜 것이 닥친 것에 책임이 있다고 의심되는 자들을 증오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것들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많은 불의를 자행한다.

보통의, 대다수의 인간은 이럴 수밖에 없다. 이래야 인간적이지 않을까. 내가 나의 가족 살인자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신이 살인자를 용서했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96, 각자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협력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헐뜯거나 방해하거나 제거하려고 하는 자도 적잖이 협력한다. 우주는 그런 자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자들과 함께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네 몫이다.

원수도 사랑하라 이런 의미인가. 이것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다.

 

97. 신들이 나에 대하여, 그리고 나에게 일어날 일에 대하여 어떤 결정을 내렸다면, 그것은 최선의 결정이다. 지혜 없는 신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은 완벽한 존재이니 실수가 발생할수 없다는 전제하에서만

 

97. 신들이 나에 대하여 따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더라도 아무튼 우주에 대해서는 결정을 내린 것이고, 그러한 결정의 부수 현상으로서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나는 마땅히 반기고 포용해야 한다.

 

99. 이 세상에서 단 한 가지 진실로 가치 있는 것은, 평생을 진리와 정의와 더불어 살아가며 거짓말쟁이들과 불의한 자들에게도 호의로써 대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행동하기 어렵다.

 

100. 너에게 주어진 물질의 양에 만족하듯이 너에게 주어진 시간에도 만족하라.

 

100.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바로 하기로 마음먹는 그 자체이다. 그 점에서 너는 성공한 것이다. 또한 우리가 한번 하기로 마음먹은 것들이라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101. 벌 떼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한 마리 벌에게도 유익하지 못하다.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집단주의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VII

 

102.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너에게 달려 있다. 네가 보아온 사물을 새롭게 보도록 하라. 바로 그것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매일 같이 보이는 것들도 새롭게 보이면 분명 전과는 다르게 보인다. 두 눈 똑바로 크게 뜨자.

 

103. 이 일을 하는 데 내 사고력은 충분한가, 그렇지 못한가? 충분하다면, 나는 내 사고력을 보편적 자연이 부여한 도구로써 이 일에 쓸 것이다. 충분하지 못하다면, 내 의무가 아닌 한, 더 잘해낼 수 있는 사람을 위하여 그 일에서 물러서거나 최선을 다해 이 일을 수행하되 내 지배적 이성에 힘입어 지금 이 순간 공동체의 이익에 적절하고 유익한 일을 해낼 수 있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혼자 하는 일이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든 나는 언제나 공동체에 유익하고 공동체와 조화를 이루는 것만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104. 미래에 일어날 일로 불안해하지 마라. 미래로 가야 한다면, 네가 현제의 일에 쓰고 있는 바로 그 이성으로 무장하고 그리고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7. 변화를 두려워 하는 사람이 있는가? 변화 없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 도대체 있기나 한가? 보편적 자연 가운데 변화보다 더 친근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실제 변화는 인간 쉽게 받아들이질 못하는 것 아닌가. 일을 하면서도 손에 익숙한 일이 하기도 편하다. 그런데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불쑥 해야 한다고 얘기하면 난감하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107. 시간은 벌써 얼마나 많은 크리쉽포스를, 얼마나 많은 소크라테스를, 얼마나 많은 에픽테토스를 삼켜버렸는가.

이건 정말 괜찮은 표현이다.

 

107.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을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을 것이다.

 

108. 넘어진 자들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다..... 무지하여 본의 아니게 실수를 저지르고,.... 무엇보다도 그가 너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하라.

 

109. 네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 마치 벌써 갖고 있는 양 연연해하지 마라.

 

111. 인간의 목숨은 익은 곡식 이삭처럼 베어진다. 한 사람은 존재하고, 다른 사람은 사라진다.

 

111. 신들이 나와 내 아들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거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112. 진정한 대장부라면 얼마나 오래 사느냐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고 삶에 집착해서도 안되네. 그는 그런 일들은 신들에게 맡기고, 운명은 아무나 피할 수 없다는 여인들의 말을 믿으면서 사는 동안 어떻게 하면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는지 고찰해야 하네

 

113. 과거를, 그토록 많은 왕조의 변천을 눈앞에 떠올려 보라. 그러면 미래사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미래사는 과거사와 같은 성질의 것이고, 현재의 리듬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116. 다만 명심하고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스스로에게 아름다운 자가 되기를 원하라.

 

117. 고통을 당할 때마다 상기하라. 고통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며 키를 잡고 있는 마음을 더 열등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117. 졸음이나 고열이나 식욕부진 같은 여러 가지 불쾌감도 사실은 고통과 같은 것이지만 우리가 고통인 줄 모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라.

 

118. 행복하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은 아주 적다는 점과, 네가 위대한 사상가나 과학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버리더라도 그 때문에 자유롭고 겸손하고 공동체적이고 신에게 순종하는 존재가 되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점도 명심하라.

 

119. 현재는 나에게 언제나 이성적 미덕과 공동체적 미덕, 다시 말해 인간이나 신의 기술의 질료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이나 인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새로운 것도 아니고 다루기 힘든 것도 아니며, 오히려 친숙하고 다루기 쉬운 것이다.

 

119.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되 흥분하지도 나태하지도 위선자가 되지도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인격을 완성하는 것이다.

 

119. 신들은 불사의 존재이면서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그토록 보잘것 없는 그토록 많은 인간을 참고 견뎌야 하는데도 짜증을 내지 않는다. 아니, 신들은 온갖 방법으로 인간을 돌보고 있다. 하거늘 너는 머지않아 죽게 되어 있는데도 돌보기를 단념한다. 너도 그 보잘것 없는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면서 말이다.

 

VIII

 

121. 진실이 어디 있는지 제대로 인식했다면, 남들이 너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생각은 버리고 길든 짧든 남은 인생을 네 본성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으로 만족하라. 따라서 네 본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숙고하고,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에도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너의 과거 경험은 내가 얼마나 많이 길을 잃고 헤맸으며 어느 곳에서도 참다운 삶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121. 그 삶은 인간 본성이 요구하는 것을 행하는 데 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도와 행동의 원천이 되는 원칙을 갖고 있으면 된다. 어떤 원칙 말인가? 선악에 관한 원칙이다. 그 원칙에 따르면, 인간을 정의롭고 신중하고 용감하고 자유롭게 만들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선이 아니며, 방금 말한 것들과 반대되는 것들을 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악이 아니다.

선에서 출발한 행동은 언제나 떳떳하고 자유로운건 사실이다. 착은 일은 언제나 사람을 춤추게 한다.

 

122.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이 행동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지?”“내가 이 행동을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자문해보라. 잠시 후면 나는 죽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성적이고 공동체적이고 신과 동일한 법의 지배를 받는 존재에게 어울리믄 일이라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122. 첫째, 평정을 잃지 마라. 만물은 보편적 자연에 따르고 있으며, ..... 둘째, 사물을 응시하여 그 실체를 파악하되, 선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인간의 본질이 요구하는 바를 지체없이 행하라.

 

123. 보편적 자연이 하는 일이란 여기 있는 것을 저리로 옮기고, 변화시키고, 여기서 들어올려 저리로 나르는 것이다. 만물은 변화에 불과하므로 새로운 것과 마주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물은 친숙한 것들이고, 운명의 배분은 공평하다.

 

123. 너는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 그러나 오만을 억제할 여유는 있다. 쾌락과 고통을 제어할 여유가 있으며 명예욕을 초월할 수도 있다.

 

124. 후회는 뭔가 유익한 것을 놓친 데 대한 일종의 자책이다. 그런데 선은 반드시 유익한 것이므로 착하고 선한 자라면 선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진실로 선한 자는 쾌락을 놓쳤다고 해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쾌락은 유익한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니다.

 

127. 주제와 활동과 원칙과 말뜻에 주목하라. 네가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너는 오늘보다는 내일 선한 자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128. 인간의 낙은 인간다운 일을 하는 것이다.

 

128. 너에게는 세 가지 관계가 있다. 하나는 너를 담고 있는 그릇[육신]과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모두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의 원천인 신적인 원인과의 관계이고, 나머지 하나는 너와 더불어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129. “나는 지금 내 이 혼 안에 어떤 악도, 어떤 욕망도, 간단히 말해 어떤 동요도 생겨나지 못하게 할 능력이 있다. 나는 오히려 만물의 참된 본성을 보고는 각자의 사물을 그 가치에 따라 이용한다고 자신에게 말함으로써 인상들을 없애버려라. 자연이 네게 준 이러한 능력을 상기하라.

 

129. 선조들이 대를 이으려고 얼마나 노심초사했겠는지 생각해보라 하지만 누군가는 마지막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다시 일족 전체가 죽는다.

 

129. 너는 하나하나의 행동으로 네 인생을 구상하되, 그 행동이 나름대로 목적을 달성하면 이에 만족해야 한다.

 

130. 겸손하게 받고, 흔쾌히 내주어라.

 

131. 네 인생 전체를 그려보고 낙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네가 겪었고 겪을 온갖 어려움을 한꺼번에 떠올리지 말고, 그때그때 현재의 일과 관련하여 이번 일에서 참을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해보라. 스스로 인정하기가 부끄러울 것이다. 나아가 너를 짓누르는 것은 미래도 과거도 아닌 언제나 현재라는 사실을 상기하라.

 

131. 이 모든 것이 악취요 가죽 자루에 든 썩은 피다.

 

133. 내가 나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는 타인도 의도적으로 괴롭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133. 현재의 시간이 너에게 선물이 되게 하라. 사후의 명성을 더 추구하는 자들은, 후세 사삼들도 지금 자신들을 성가시게 구는 자들과 똑같은 자들이라는 것.

 

134. 어떤 외적인 일로 네가 고통받는다면, 너를 괴롭히는 것은 그 외적인 일이 아니라 그에 대한 네 판단이다. 또한 그 판단을 당장 지워 없애는 것은 너 자신에게 달려 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다.

 

135. 이러저러한 사람이 너에 대해 악담을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자. 너는 악담을 하더라는 말만 전해들었을 뿐, 그 때문에 네가 해를 입었다는 말을 전해 들은 것은 아니다. 아이가 앓고 있는 모습을 본다고 하자. 나는 그 모습은 보지만, 내 아이가 위험한 것인지는 보지 못한다. 그러니 언제나 첫인상만 고집하고 마음속으로부터 첫인상에 뭔가를 덧붙이지 마라. 그러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137. 우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자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자는 자신이 누구이며 우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이 가운데 하나도 모르는 자는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는지 말할 수 없다.

가슴을 찌르는 말이다. 아직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가치 있는 존재인지 잘 모르겠다.

 

138. 특정한 악은 그 악을 행하는 자에게만 해를 입힌다. 그러나 그도 원하기만 하면 특정한 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

 

138. 정신의 쏟아짐과 사방으로 퍼져나감도 그런 것이어야 하고, 쏟아져 없어짐이 아니라 확장이어야 한다. 장애물과 무리하게 격렬히 충돌하거나 아래로 떨어져서는 안 되고, 버티고 서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비춰야 한다. 그러나 정신을 통과시키지 않는 것은 햇살을 빼앗길 것이다.

 

139. 화살이 가는 길 다르고, 정신이 가는 길 다르다. 정신은 조심할때도, 면밀한 검토할 때도 똑같이 목표를 향하여 곧장 나아가기 때문이다.

화살은 장애물이 있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

 

IX

 

141, 고통을 두려워하는 자는 언젠가는 우주에서 일어날 일도 두려워하게 될 텐데, 이것은 이미 불경죄를 짓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과 쾌락, 죽음과 삶, 명예와 불명예 등 보편적 본성이 동등하게 대하는 것을 스스로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불경죄를 짓는 것이다.

 

142. 마음의 타락이야말로 우리를 둘러싼 숨 쉬는 대기의 오염과 변질보다 더 무서운 역병이다. 대기의 역병은 동물로서의 우리를 공격하지만, 마음의 역병은 인간으로서의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142. 죽음을 멸시하지 말고, 죽음에 기뻐하라..... 지금 네 아내의 자궁에서 아이가 태어날 순간을 기다리듯, 네 혼이 거죽에서 떨어져나갈 시간을 기다려라.

 

143. 무엇을 행하는 것뿐 아니라, 무엇을 행하지 않음으로써 불의를 저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143. 상상을 지워버려라. 충동을 억제하라. 욕망을 꺼라. 지배적 이성을 네 것으로 만들어라.

 

143. 이성이 없는 동물에게는 하나의 목숨이 배정되어 있고, 이성이 있는 동물에게는 하나의 이성적 혼이 배정되어 있다.

 

144. 공통된 요소를 나눠 갖고 있는 것들은 같은 부류를 찾는다.흙의 성질을 가진 것은 모두 흙으로 모여들고, 물의 성질을 가진 것은 함께 흐르며, 공기의 성질을 가진 것도 그러하다.

 

145. 이성이 있는 동물만이 서로를 향한 노력과 상호 호감을 망각하고 있으며, 유독 이들만이 서로 합류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도망쳐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자연이 강자이기 때문이다.

 

145. 이성도 전체를 위하여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데, 그 열매에서 이성 자체와 같은 종류의 다른 것들이 생겨난다.

 

145. 일을 할 때는 소처럼 일하지도 말고, 동정이나 찬탄받기를 원하는 자로서도 일하지 마라. 공동체적 이성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멈춰 서기만을 원하도록 하라.

 

146. 오늘 나는 모든 방해에서 벗어났다. 아니, 모든 방해를 내던져 버렸다. 왜냐하면 방해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 판단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근심, 문제는 남이 아니라, 일이 아니라, 나로 인한, 나의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다.

 

147. 너 자신의 지배적 이성과 우주의 지배적 이성과 네 이웃사람의 지배적 이성을 향해 곧장 달려가라. 너 자산의 지배적 이성에게로 달려가는 것은 네가 그 이성을 올바른 이성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우주의 지배적 이성에게 달려가는 것은 네가 그것의 일부임을 상기하기 위해서이다. 네 이웃 사람의 지배적 이성에게 달려가는 것은 그의 행동이 의도 때문인지 무지 때문인지 알고 그의 지배적 이성도 네 지배적 이성과 같은 종류인지 고찰하기 위해서이다.

 

150. 철학이 하는 일은 단순하고 겸손하다. 나를 잘난 체하는 허영심으로 잘못 인도하지 마라.

 

150.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네 이름을 알지도 못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곧 네 이름을 잊어버릴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금은 너를 칭찬하지만 머지않아 비난할 것인지 생각하라.

 

151. 상실은 변화에 불과하다. 보편적 본성은 변화를 좋아하며, 만물은 보편적 본성의 뜻에 따라 생긴다.

 

152. 이 비참한 삶, 이 불평불만, 이 원숭이 짓거리에 신물이 난다. 왜 너는 불안해하는가?? 무슨 새로운 것이라도 있는가? 무엇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가? 어떤 원인 때문인가? 원인을 잘 살펴보라. 질료인가? 질료를 잘 살펴보라.

 

153. 신들은 힘이 없거나 아니면 힘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신들에게 힘이 없다면, 너는 왜 기도하느냐? 신들에게 힘이 있다면, 너는 왜 이런저런 것을 물리치거나 이런저런 것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어느 것 때문에도 슬퍼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느냐?

이렇게 기도하는 자체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53. 수중에 없는 것 때문에 노예처럼 비굴하게 애태우는 것보다 수중에 있는 것을 자유인답게 이용하는 편이 더 좋지 않겠는가?

 

155. 무엇보다도 신의가 없다거나 배은망덕하다고 누구를 탓하려거든 그 생각을 너 자신에게로 돌려라.

 

156. 네가 어떤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는가? 네 본성에 맞는 어떤 행동을 한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 대가를 바랄 것인가?

 

X

 

158.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네가 본성상 참을 수 있거나 아니면 본성상 참을 수 없다. 따라서 본성상 참을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면, 불평하지 말고 네 본성에 따라 참도록 하라. 그러나 본성상 참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역시 불평하지 마라. 그 일은 너를 없앤 뒤 저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158,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태곳적부터 미리 정해져 온 것이다. 그리고 원인들의 밀접한 연결은 태곳적부터 네 존재와 네게 일어날 일을 함께 엮어놓았던 것이다.

제일 싫어 했던 것이 운명론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운명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끔 들기도 한다.

 

159. 나와 종류가 같은 부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한, 나는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오히려 공동체에 유익하도록 모든 노력을 쏟고 그와 반대되는 것은 삼가게 될 것이다. 이런 원칙들을 지켜나가면, 동료 시민에게 유익한 일을 하나씩 실행하고 공동체가 부과하는 의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시민의 삶이 행복하리라고 네가 생각할 수 있듯이, 삶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160. 사물은 각각의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로 해체되기 마련인데 말이다. 해체란 사물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분산되거나 고체 성분이 흙 성분으로, 기체 성분이 공기 성분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161. ‘지혜롭다함은 모든 대상을 정확하고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공감한다함은 보편적 자연이 할당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고매하다함은 우리의 사고하는 부분을 육신의 순탄한 또는 거친 운동과 허튼 명성과 죽음 등등보다 더 높이 고양시키는 것임을 명심하라.

 

163. 만물이 유기적으로 어떻게 변하는지 꿰뚫어보는 학문적 방법을 습득하고 항상 이에 전념하여 이 분야에서 수련을 쌓아라.

 

165. 네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산 꼭대기에서 살듯이 살아라. 어디서나 우주의 시민으로 사는 것이라면 여기에서 살거나 저기에서 살거나 전혀 다를 바가 없다.

 

165. 존재하는 모든 개체를 고찰하되 이미 그것이 해체되고 변하고 있음을. 그러니까 썩거나 흩어지고 있음을, 또는 모든 것은 죽기 위하여 태어났음을 명심하라.

 

166. 나의 지배적인 정신은 내게 무엇인가? 나는 지금 그 정신을 어떤 것으로 만들고 있으며, 나는 지금 그것을 대체 어떤 목적에 사용하고 있는가? 그 정신에 지성이 결여되어 있지는 않겠지?

 

168. 무엇에 화를 내거나 불만스러워하는 자는 누구나 제물로 바쳐질 때 버둥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돼지와 같다고 생각하라. ...... 또한 이성적 동물에게만 일어난 일들에 스스로 순종하는 것이 허용되었으나, 무조건 순종하는 것은 모든 존재에게 필연임을 생각하라.

 

168. 무슨 일을 하든지 단계마다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것이냐?”

 

169. 너는 소박하지도 선하지 않다고 너에 관해 어느 누구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게 하라. 너를 그렇게 판단하는 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라. 모든 것은 너에게 달려있다.

 

170. 네가 네 본성에 맞게 행할수 있는 것은 모두 즐거움으로 간되어야 하기에 하는 말이다. 그리고 본성에 맞게 행하는 것은 어디서나 가능하다.

 

173. 헤어지는 것도 자연의 섭리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헤어지는 것을 준비해야 하는 나이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지만 그래도 끝이 얼룩지지 않게 헤어지고 싶다.

 

173. 너 자신에게서 시작하고 너 자신부터 먼저 살펴보라.

 

173. 너를 인형처럼 줄로 조종하는 것이 네 안에 숨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것은 우리의 언변이고, 우리의 삶이며,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그것은 인간이다.

 

XI

 

177. 너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무엇을 행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로 인하여 덕을 본 것은 너다.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그 일을 결코 멈추지 마라.

 

178. 삶은 익은 곡식처럼 거둬들여야 하오.

 

178. 나뭇가지는 남이 베지만, 인간은 이웃을 미워하며 등을 돌림으로써 스스로 이웃과 자신을 분리한다. 인간은 그렇게 하고도 그와 동시에 공동체 전체에서 자신을 베어낸 것을 알지 못한다.

 

179. “어떤 자연도 기술에 뒤지지 않는다.” 기술은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맞다면, 가장 완전하고 다른 자연을 모두 포괄하는 그 자연은 어떤 기술자의 창작 재능에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180. 혼의 구체가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혼이 무언가를 향해 뻗어나가지도 않고 안으로 오그라들지도 않고, 확장되지도 않고 수축되지도 않고, 오히려 불빛으로 밝아져 그 불빛으로 만물의 진리와 자신 안의 진리를 볼 때이다.

 

180. 누가 나를 경멸한다면? 그것은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알아서 할 일은 경멸받을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나를 미워하게 된다면?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내가 할 일은 누구나 친절하고 호의적으로 대하고, 특히 그에게는 그의 잘못을 기꺼이 지적해주되 나무라거나 내가 참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지 말고, 저 유명한 포키온처럼- 그가 진심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점잖고 신사답게 지적해주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은 그런 것이어야 하며, 어떤 일에도 화내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을 신들에게 보여야 한다.

 

182.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들이 자연에 맞는다면, 그것들을 즐겨라. 그러면 그것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에 어긋난다면 네 본성에 맞는 것을 찾고, 명성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네 본성에 맞는 것을 추구하라. 자신의 고유한 선을 찾는 자는 누구나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3. 첫째, 네가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염두에 두되, 우리는 서로를 위하여 태어났다고 생각하라. 둘째, 식탁 앞에 앉아 있거나 침상에 누워 있거나 그 밖의 다른 상황에서 그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생각해보라. 셋째, 사람들이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화를 내서는 안된다. 넷째, 너도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라. 다섯째, 사람들이 실제로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너는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184. 여섯째 몹시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하면, 인생이 한 순간이며 잠시 뒷면 우리 모두 묻히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184. 일곱째,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지배적 이성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견을 근절하고, 그들의 행동이 끔찍하다는 판단을 내버릴 각오를 하라. .... 어떤 모욕도 너에게 치욕을 안겨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남이 그렇다고 말하는 까닭에 수많은 잘못을 저질러 강도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84. 여덟째, 우리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하는 그들의 행동보다는 그러한 행동에 대한 우리의 분노와 슬픔이 얼마나 더 괴로운 것인지 생각해보라.

 

184. 아홉째, 네 호의가 꾸민 것이나 위선이 아니고 진지한 것이라면 누구든 당해낼 적수가 없다.

 

185. 이 아홉가지 원칙을 무사 여신들의 선물로 여기고 항상 명심하라. 그리고 아직 살 날이 남아 있는 동안 드디어 인간이 되기 시작하라. ...... 화가 날 때는, 남자다운 것은 분노가 아니라 온유함과 상냥함이며, 이런 태도가 더 인간적일 뿐 아니라 더 남자다우며.......인간의 성격은 감정에서 자유로워질수록 그만큼 더 힘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슬픔이 나약함의 표시이듯, 분노도 나약함의 표시이다. 이 두 경우 모두 인간은 상처받고 항복하기 때문이다.

 

186. 너는 특히 지배적 이성이 빠지기 쉬운 네 가지 미로를 늘 경계해야 하며, 그 미로가 보인다면 매번 이렇게 말하며 당장 제거해야 한다. “ 이 생각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 생각은 공동체를 해체할 수 있다. 네가 말하려는 것은 네 본심이 아니다.”.... 네 번째 미로는 너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네 안의 신적인 부분이 덜 존경스럽고 죽게 마련인 부분, 즉 육신과 육신의 조야한 의견들에 패배하고 굴복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87. 삶의 목표가 늘 한결같지 않은 사람은 전 생애를 한결같이 살 수 없다.

 

189. 에픽테토스는 어떤 사람이 제 자식에게 입맞출 때 내일 이 아이가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야라고 마음속으로 속삭여야 한다.

 

190. “우리의 자유의지를 빼앗아가는 자는 아무도 없다.” 에픽테토스의 말이다.

 

XII

 

191. 네가 생을 마감하게 되어 다른 것은 모두 포기하고 네 지배적 이성과 네 안의 신적인 요소만을 존중하고, 언젠가는 삶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자연에 따르는 삶을 시작하지 못한 것을 두려워한다면, 너는 너를 낳아준 우주에 어울리는 인간이 될 것이다.

 

192. 너는 육신, 호흡, 정신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의 두가지는 네가 돌봐야 한다는 점에서 네 것이지만, 세 번째 것만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네 것이다.

 

193. 어째서 사람들은 저마다 어느 누구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면서도 자신에 관해서는 남들의 판단보다 자신의 판단을 덜 평가하는지 나는 자주 의아하게 생각했다.

 

194. 도저히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것들도 연습해보라. 많이 써보지 않아 다른 일에는 느린 왼손도 고삐는 오른손보다 더 단단히 잡는다. 왼손이 이 일을 익혀두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두 손으로 친다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했다. 가능하더라.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익히니 되더라.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했다. 욕은 먹지만 그래도 써지기는 하더라.

 

194. 네 기본 원칙들을 적용할 때는 팡크라티온 선수처럼 해야 하고, 검투사처럼 해서는 안된다. 검투사는 사용하던 칼을 떨어뜨리면 죽지만, 팡크라티온 선수는 자신의 주먹을 항상 갖고 있어서 그 주먹을 꽉 쥐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도구나 다른 것에 의존하지 마라.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지하라는 뜻이 아닐까.

 

195. 신은 의도적이든 궁지에 몰려서든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인간은 궁지에 몰려서만 실수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

 

195. 인생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놀라다니 이 얼마나 가소롭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인가!

 

196. 등불은 꺼질 때까지 비추며 빛을 내뿜는다. 하거늘 네 안의 진리와 정의와 절제는 되기도 전에 먼저 꺼지겠느냐?

 

196. 적절하지 않으면 행하지 말고 진실하지 않으면 말하지 마라. 네 욕구는 너에게 달려 있다.

 

196. 항상 전체를 보되, 네게 인상을 주는 모든 것을 원인과 질료와 목적, 그것이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는 시간으로 구분함으로써 정확히 규명하라.

 

197. 첫째, 목적없이 무턱대고 행동하지 마라. 둘째, 공동체에 유익한 것만을 네 행동 목표로 삼아라.

 

197. 모든 것은 의견에 지나지 않고, 의견은 너에게 달려 있음을 명심하라. 따라서 원할 때는 의견을 버려라.

 

197. 모든 행위의 총화인 인생도 적절한 때에 끝나기만 하면 끝났다고 해서 해를 입지 않으며, 그 일련의 행위를 제때에 끝내는 자도 해를 입지 않는다.

 

198.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을 늘 명심하라. 첫째, 어떤 행동을 하든 무턱대고 행하거나 또는 정의 자체가 행하는 것과 다르게 행해서는 안 된다. 둘째, 개개의 존재는 씨가 뿌려졌다가 혼을 받을 때까지, 혼을 받았다가 혼을 돌려줄 때까지 어떤 성질을 띠며, 어떤 성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성분들로 해체되는지 생각해보라. 셋째, 네가 갑자기 공중으로 들어올려져 인간사와 그 변화무쌍함을 내려다보게 된다면, 그와 동시에 대기와 하늘에 사는 얼마나 많은 무리[천체]가 네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지 보게 된다면, 너는 인간사를 경멸하게 되리라는 점을, 네가 아무리 자주 들어올려져도 똑같은 광경을, 모든 것이 천편일률적이고 덧없음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점을 생각하라. 게다다 이런 덧없는 것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점도 생각하라.

 

199. 네가 무엇인가를 불쾌히 여긴다면, 너는 첫째, 모든 일은 보편적 자연에 맞게 일어나며, 둘째, 잘못은 남에게 있으며, 셋째, 일어나는 모든 일은 늘 그렇게 일어났고, 일어날 것이며, 지금도 도처에서 그렇게 일어나고 있으며, 넷째, 개인과 전 인류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한가를 잊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피와 씨의 공동체가 아니라 정신의 공동체이다.

 

200. “너는 대체 어디서 신들을 보았기에, 또는 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기에 신들을 그토록 공경하는가?”라고 묻는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라. 첫째, 신들은 맨눈으로도 보인다. 둘째, 나는 아직 내 혼을 본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내 혼을 존중한다. 마찬가지로 신들의 경우에도, 나는 신들의 권능을 매번 경험함으로써 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에 신들을 공경한다.

내가 늘 하는 질문이다. 대답이 궁금했는데 구체적이지 않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무경계에서도 봤지만 오직 체험만이 답인데 그것을 설명하는건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치 이 변경연 과정이 널 어떻게 달라지게 했는데 라고 묻는다면 명확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오직 해 본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 것이다.

 

200. 개별 사물의 전체적인 실체와 그 질료와 원인을 꿰뚫어보고, 온 마음으로 올바른 것을 행하고 진실을 말하는 데 인생의 구원이 달려 있다.

 

202. 너를 그 국가로 데려다 준 자연이 너를 그 도시에서 내보내기로서니 뭐가 가혹한 일이란 말인가?

그것은 관리가 배우를 고용했다가 무대에서 해고를 하는 것과도 같다.

 

203. 너는 어느 쪽에도 책임이 없다. 그러니 호의를 품고 떠나라. 너를 해고하는 자도 호의를 품고 있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을 분석)

 

독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보니 목차가 없다. 1권을 제외하고는 내용이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 각 권별로 뚜렷한 구분이 어렵게 느껴진다. 원제처럼 자기자신에게 쓰는 글이므로 목차가 필요하겠나 싶다.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등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로마의 황제의 시선이 궁금했고, 스토아 철학자로서의 의견이 궁금했는데 너무 국한된 주제이고 무거운 주제인 보편적 이성, 지배적 이성, 우주, 죽음, 만물, 변화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중복적으로 내용을 다루어 자주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던 점도 있었으나 너무 많은 중복은 재미를 반감시키기도 했다. 사실 이 책은 출판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명상록이다 보니 태생적으로 이런 단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 것도 좋으나 나와 같이 철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아래아 같은 부분은 옮긴이의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라는 존재는 육신과 짧은 호흡과 지배적 이성에 불과하다. 책을 멀리하라. 책에 끌려 옆길로 들어서지 마라. 그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30페이지)

 

불평하면서 죽지 않고, 즐겁고 참되고 신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맞고 싶다면 책을 향한 갈증을 버려라!(31페이지)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등 등)

 

인생의 후반부에 접어든 나에게 죽음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남아 있는 헛된 물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모든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안다면 얼마나 알 것인가? 스토아 학파에 대한 전문지식이나 철학에 대해서도 모르는 내가 그의 의견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다. 나도 그처럼 한때는 감히 철인이 되고 싶어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40, 이제 죽음에 가까운 나이가 되다보니 그런 철인이 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 어쩌면 황제의 그 자리가 우리가 보기엔 그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자리로 보이지만 실상 그 자리에 앉은 그는 어쩌면 이런 끊임없는 자기 수련이 아니였으면 모두가 우러러 보는 황제의 길을 걷지 못하고 한길 낭떠러지로 떨어졌을 것이다. 이 책에서 그런 그의 번민과 고뇌가 느껴졌다. 결국 내가 말하는 자유로운 삶 역시 나의 의견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가 자유롭다면 자유로운 것이고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자유롭지 못하는 것이다. 한 때 절름발이 노예였던 에픽테토스, 그는 가혹한 삶을 살아야 했지만 인생은 멋지다는 생각을 하면서 생명에 감사했다. 그는 억울하게 두들겨 맞고,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았다. 한편 많은 재산과 노예를 소유하고도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하던 그의 주인은 행복한 노예를 보며 깊은 감명을 받는다. 주인은 절름발이 노예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자기에게 가르쳐준다면 자유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 노예는 주인에게 인간이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자신의 생각이라고 멋진 말을 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봤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미는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누구도 조종하지 못하는 지금의 나의 삶을 사랑하지 않고, 타인의 삶과 비교하며, 남들이 가진 것에 대해 시기하며 부러워하는 나를 보면서 한 순간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나 자신을 더 사랑하며, 남은 인생 타인의 의견과 시선에서 벗어나 자연을 따르고 우주가 나를 데려갈 그 순간을 준비해야 함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저자의 눈으로- 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삶과 죽음, 자연을 따르는 삶, 우주, 이성 등 다시 생각해도 너무 무거운 주제이다. 내가 황제였다면 이런 주제는 마지막 뒷부분에 중복되는 부분을 덜어내고 배치했을 것이다. 다른 주제별로 그것에 대한 황제의 생각, 스토아 철학에 대한 생각이 포함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금욕주의인 스토아학파와 맞지는 않겠지만 사랑에 관해서, 이성이 아닌 감성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제어할 것인지, 평등과 자유에 대한 주제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사상을 풀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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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9 17:40:54 *.18.187.152

기상씨의 명상록 리뷰 이제야 읽었네요. 1권은 나도 흉내내고 싶은 거였는데 기상씨는 이미 시도했네. 11기 동기들의 키워드를 보니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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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6 숨결이 바람될 때 - 미완성의 인생, 책으로 삶의 의미가 완성되다 file 보따리아 2018.01.29 2003
4885 #42 숨결이 바람 될때 (윤정욱) [1] 윤정욱 2018.01.28 2994
4884 숨결이 바람 될 때 송의섭 2018.01.28 1272
4883 #42 숨결이 바람될때 (이정학) 모닝 2018.01.2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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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 명상록 [1] ggumdream 2018.01.22 1663
4880 #41 명상록 (윤정욱) 윤정욱 2018.01.22 1388
4879 # 41 명상록(이정학) [1] 모닝 2018.01.21 1391
4878 명상록 송의섭 2018.01.21 1335
4877 #41 명상록 (정승훈) 정승훈 2018.01.21 1282
4876 명상록 보따리아 2018.01.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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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4 #40 대통령의 글쓰기_대통령에게 배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_이수정 알로하 2018.01.16 1333
4873 #40 - 대통령의 글쓰기(이정학) 모닝 2018.01.16 1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