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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8일 21시 14분 등록

숨결이 바람될 때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옮김/흐름출판

 

저자연구

 

1977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했고,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철학, 과학과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그는 이 모든 학문의 교차점에 있는 의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과학과 의학의 역사와 철학 과정을 이수한 뒤 예일 의과 대학원에 진학해 의사의 길을 걸었다. 졸업 후에는 모교인 스탠퍼드 대학 병원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하며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미국 신경외과 학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연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 받는 등 장밋빛 미래가 눈앞에 펼쳐질 무렵, 암이 찾아왔다. 환자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 오던 서른여섯 살의 젊은 의사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죽음과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의사이자 환자의 입장에서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을 보인 그는 힘든 투병 생활 중에도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는 등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다. 2년간의 투병 기간 동안시간은 얼마나 남았는가(How Long Have I Got Left?)’, ‘떠나기 전에(Before I Go)’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각각 [뉴욕타임스] [스탠퍼드메디슨]에 기고했고, 독자들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5 3, 아내 루시와 딸 엘리자베스 아카디아 등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yes24 중 발췌

의사가 된다는 것 

폴 칼라니티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이었다. 스탠퍼드대학에 입학해 영문학과 생물학을 복수 전공한 폴은 스탠퍼드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는다. 그 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 및 철학 과정을 이수하고 예일대 의대 대학원에 진학해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졸업 후 모교인 스탠퍼드대학으로 돌아와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았다. 문학에서 의학으로 넘어가는 고민의 과정이 책에 담겼다애리조나의 킹맨이라는 사막도시에서 자란 폴에게 어머니는 독서 목록을 가져와 읽게 만든다. 처음에 어머니의 강요로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후 니콜라이 고골,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제인 오스틴, 사르트르,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알베르 카뮈 등 수많은 책을 섭렵한다

"
책은 잘 다듬어진 렌즈처럼 세계를 새로운 시작으로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 

"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에 더 끌리는 편이었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뇌의 규칙을 가장 명쾌하게 제시하는 것은 신경과학이지만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것은 문학이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 

이런 생각을 가진 그가 문학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학 공부가 깊어지면서 그의 관심은 서서히 철학과 생물학 쪽으로 기운다


 "나는 언어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의 초자연적인 힘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언어는 고작 몇 센티미터 두께의 두개골에 보호받는 우리의 뇌가 서로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중략) 나는 열정, 갈망, 사랑 등 우리가 체험하는 삶의 언어가 신경세포, 소화관, 심장박동의 언어와 연관되는 뭔가 복잡한 방식이 틀림없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다
." 

 "모든 학문 분야란 인간의 삶을 특정 방향으로 이해하는 일련의 도구, 즉 어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고유한 도구를 독자에게 쥐어주며 그 어휘를 사용하도록 이끈다
. "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이 교차하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 

 "몇몇 교수가 내게 인문학부를 영영 떠나기 전에 과학과 의학의 역사 및 철학 과정 학위를 따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나는 케임브리지대학의 과학사&철학 과정에 지원하여 합격했다
." 

 이런 고민의 과정을 거쳐 그는 드디어 의학을 선택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답을 찾고 전혀 다른 종류의 숭고함을 발견하며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 

 "진지한 생물학적 철학을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의학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도덕적인 명상은 도덕적인 행동에 비하면 보잘 것 없었다
." 

죽음이 던지는 질문
 

 우리 삶의 끝에 놓인 죽음이 인간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또 자신 앞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폴 칼라니티는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꼭 생각해 보라"는 담당의사 에마의 말에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면 쉬울 텐데요.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쓸 겁니다.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어요"라고 답한다


 죽음까지 남아 있는 시간에 따라 중요한 것이 달라지는 현상을 아툴 가완디는 로라 카스텐슨 교수의 '사회정서적 선택이론'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어하는지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가설이다


 이에 따르면 젊고 건강할 때는 자신이 영원히 살 것처럼 믿는다. 이럴 때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친구를 비롯한 사회적 관계를 넓히는 일에 몰두하면서 성취감, 자아실현 등을 추구한다


 반면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순간 시야가 축소돼 삶의 초점이 '지금, 여기'로 변하게 된다


 가완디의 아버지 역시 그랬다. 척수 종양 진단을 받은 후 가완디의 아버지는 삶에 대한 초점이 좁아지고 욕구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 후로 아버지는 손주들을 더 자주 찾아봤고 특별히 시간을 내 인도로 날아가 친척들을 만났으며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을 줄였다
." 

 그래서 어쩌면 '죽음'이 삶의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어 인간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완디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이해하는 게 축복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폴 칼라니티와 아내 루시, 그리고 사랑스러운 딸 케이디 /사진=흐름출판

▲ 폴 칼라니티와 아내 루시, 그리고 사랑스러운 딸 케이디 /사진=흐름출판

 

폴은 예고된 죽음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찾고 그것을 향해 용기 있게 걸어나갔다. 암을 극복하거나 물리치겠다고 허세를 부리지 않고, 미리 계획해둔 미래를 잃어가면서도 새로운 미래를 구축했다그가 "희망한 것은 가능성 없는 완치가 아니라, 목적과 의미로 가득한 날들"이었다그의 마지막 소망은 딸 케이디가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 때까지 살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망조차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그 딸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다. 그는 책 마지막에 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죽음 앞에서 의사의 역할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이 강해도 1주일에 100시간 이상의 노동을 요구하는 수련의 과정은 그런 소명의식을 희미하게 만든다

레지던트 시절 폴은 수술실 복도에서 동료인 마리가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수술에 들어가서 먼저 작은 구멍을 뚫어 내시경 카메라로 암의 전이를 확인한다. 확인 결과 암이 광범위하게 전이됐다고 판단되면 수술을 중단하고 15분 만에 봉합한다. 반대로 수술할 만한 상황이면 수술에 들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9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한다. 연일 계속되는 업무에 쓰러질 지경이었던 마리는 마음 속으로 "너무 피곤해, 하나님 제발, 전이가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실제 전이가 확인되어 환자의 절개 구멍은 봉합되고 수술은 취소됐다. 마리는 수술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깊은 괴로움과 수치심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폴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응급 환자가 들어왔다는 호출을 받는다. 먹던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컴퓨터 옆에 놔두고 응급 환자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응급조치를 시도했지만 그를 살릴 수 없었다. 응급실에서 나와 그에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슬픔의 감정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였다. 사무실로 와 다시 그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얼려 먹는데 수치심이 몰려 온다


 "가족이 사망한 환자에게 작별인사를 건넬 때 나는 이에 낀 초콜릿 칩을 떼어내며 굉장히 맛있다고 생각했다. 의사로 지낸 짧은 시간 동안 도덕적으로 나아지기는커녕 퇴보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하지만 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그는 진정으로 환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의사의 책무는 무엇이 환자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지 파악하고 가능하다면 그것을 지켜주려 애쓰되 불가능하다면 평화로운 죽음을 허용해주는 것이다
."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 

아툴 가완디는 의학의 발전이 '죽은 자의 역할'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고 아쉬워 한다.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면서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질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히 해 두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아툴 가완디는 현대 의학이 오히려 이런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의학의 힘이라는 게 무척 제한되어 있으며 앞으로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으리라는 점을 인정하지 못할 때 생기는 피해를 너무도 많이 목격해 왔다
."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한계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라면, 그런 인간을 돌보는 역할을 하는 직업이나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그 한계에 직면하고 분투하는 과정을 도와야 한다. 어떤 때는 병을 고쳐 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연고를 처방해 주는 데 그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그나마 아무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의료진이 개입해 환자로 하여금 희생과 위험을 감수하도록 하는 일은 더 큰 삶의 목적을 위한 것일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 

- 매경프리미엄 김기철의 책으로 세상읽기 중 발췌

 

마음을 무찔러 온 글귀

 

P23

서른 여섯 살에 나는 정상에 올랐다. 드디어 약속의 땅이 눈앞에 보였다. 길르앗에서 예리코까지, 그 너머 지중해까지. 이제 주말 휴가도 떠날 수 있다. 멋진 보트에 루시와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을 태우고서 근무 일정이 수월해 지고 삶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허리 통증 또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에게 약속했던 모습의 남편이 될 수 있으리라.

그의 인생은 정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탄탄대로 고속도로 바로 그 입구에 있었다. 그러니 그가 느꼈을 좌절감과 억울함이 더 크지 않았을까?

 

P35

그 말과 함께 내가 꿈꿔왔으며 곧 실현되려던 미래, 그리고 오랜 세월 부단히 노력하며 도달하려했던 삶의 정점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 허망함이 내게도 느껴지는 듯 하다. 생각해보면 우린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가? 내일을 위해서 어떤 목표점을 위해서? 그런데 그 목표점이 거의 다 왔는데 그 앞에서 좌절되는 슬픔 이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삶이란 무엇일까?

 

P41

아버지는 부드러운 애정과 차가운 근엄함을 함께 보여주었다. 우리를 안고 볼에 입을 맞추며 해주는 말이 어찌나 냉정하던지. “최고가 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란다. 최고인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보다 1점만 더 받으면 돼.” 아버지는 부성애도 농축해서 발휘할 수 있는 거라고 나름의 타협점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런 결과는 짧고 강렬한 진심 어린 애정의 폭발이었다.

나도 가끔 아이들에게 서운할 때가 있다.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한계를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버지의 숙명이자 역할이란 것을 또 이해한다.

 

P43

어린 시절 우리에게 가장 큰 수수께끼는 아버지가 왜 애리조나의 킹맨이라는 사막 도시(우리가 점점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도시)로 가족을 데려가기로 결심했을까가 아니라, 어머니를 어떻게 설득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P47

나는 어머니의 강요로 열 살 때 <1984>를 읽었는데, 책에 나오는 성애 장면에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지만 언어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을 키울 수 있었다.

우리 형제는 추천도서들을 체계적으로 읽어나가면서 무수한 작품들과 작가들을 만났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애드거 앨런 포, <로빈슨 크루소>, <아이반호>, 니콜라이 고골, <모히칸의 최후>, 찰스디킨스, 마크 트웨인, 제인 오스틴, <빌리 버드>…. 열두 살이 되면서 나는 목록에서 직접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고, 형이 대학에서 읽었다며 <군주론>, <돈키호테>, <캉디드>, <아서왕의 죽음>, <베오울프>, 헨리데이비드 소로, 장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의 작품들을 보내주었다. 그중 몇몇 작품은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서 나는 더덕 철학의 기초를 쌓았고, 그 책을 대학 입학 논술 주제로 삼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다.

목록에 있는 책들을 나도 정리해보고 아이들과 함께 올해는 같이 읽어보리라.

 

P48

어머니는 십대들이 손대는 마약의 이름을 하나도 빠짐없이 열거하며 집요하게 추궁했지만, 정작내가 그때까지 경험했던 가장 지독한 마약은 자신이 지난주에 건네준 낭만 시집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 책은 잘 다듬어진 렌즈처럼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정말 낭만적인 이야기이다.

 

P50

나는 세상물정에 밝고 대학에서만 배울 수 있는 비밀들(그녀는 심리학 전공이었다)를 아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우리는 에버게일의 근무가 끝나는 시간에 자주 만났다. 그녀는 몇주 후면 내가 만날 새로운 세계, 그 은밀한 세계를 미리 귀뜸해주는 전령과도 같았다.

첫 사랑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싱그럽고 아름답다.

 

P52

T.S. 앨리엇의 시 <황무지>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엘리엇의 은유가 내 말투에도 스며들게 되었다.

얼마나 감명 깊게 읽으면 말투 속에 스며들게 될까?

 

P54

캠프는 젊을 때 할 수 있는 목가적인 경험을 모두 선사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호수와 산과 사람들은 아름다웠고, 그곳에서 겪은 경험과 대화와 우정은 더없이 풍요로웠다.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거친 들판에 달빛이 흘러 넘쳐 전등 없이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P57

나는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유기체들이 세상에서 의미를 찾는 데 뇌가 하는 역할을 알기 위해 신경과학을 공부하면서 기능적 자기 공명영상 연구소에서 일했다.

뇌가 정말 삶의 의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까?

 

P61

우리는 뇌 덕분에 인간 관계를 맺고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 그러나 때때로 뇌는 망가져 버린다.

 

P62

모든 학문 분야란 인간의 삶을 특정 방향으로 이해하는 일련의 도구, 즉 어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은 나름의 고유한 도구들을 독자에게 쥐어주며 그 어휘를 사용하도록 이끈다.

 

P63

축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드러운 가을바람이 불어왔고, 내 생각은 제멋대로 흘러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정원에서 들은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집어들고 읽으라.” 하지만 내가 들은 목소리는 그와 정반대였다. “책은 치우고 의학을 공부하라.” 갑자기 모든 게 분명해졌다.

때론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갑자기 분명해 질 때가 있다.


P66

의대생의 통과 의례인 시체 해부는 지극히 신성한 영역을 침범하는 작업이기도 해서, 혐오감, 흥분, 욕지기, 좌절감, 경외감 등 무수한 감정을 자아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단조로운 수업 과정의 하나가 된다. 연민과 무감각 사이에서 그때그때 감정이 교차한다. 해부실의 상황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금기를 깨는데, 해부 도중 포름알데히드가 식욕을 강하게 자극해 부리또가 간절히 먹고 싶어지기도 한다.

 

P67

시체 해부는 엄숙하고 경건한 학생들이 냉정하고 거만한 의사로 변화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부수업은 의과대생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인가? 아마도 어떤 통과의례와 같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P67

그때와 달리 의과 대학원의 수업에서는 언젠가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 기술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기에 모두들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P70

내가 맡은 시체의 위를 절개하여 열었다가 채 소화되지 않은 모르핀 알약 두 정을 발견한 적이 있다. 생전에 그는 홀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며 약병의 뚜껑을 더듬어 이 약을 꺼냈을 것이다.

그 사람의 삶이 느껴질 것 같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마치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 생생해 지지않을까 싶다.


P70

한때 시체 장사를 위한 살인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그것을 뜻하는 ‘bunke’라는 동사가 생겨날 정도였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숨을 막히게 하거나 목을 졸라, 혹은 해부용 사체로 팔기 위해 은밀하게 살해하는 것.’

해부용 시체가 이렇게 중요하고 이렇게까지 거래가 되었는지 처음 알았다. 놀랍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부용으로 기부하기를 꺼리지 않나 싶다.

 

P72

어쩌다 한 번씩 반성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마음속으로 시체들에게 사과했다. 죄의식을 느껴서가 아니라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P73

우리를 감독하던 교수는 내 행동을 보고 깜짝 놀라며 크게 화를 냈다. 내가 중요한 조직을 망가뜨렸거나, 핵심적인 개념을 잘못 이해했거나, 이후의 해부 작업에 지장을 주어서가 아니라, 너무 무신경한 태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별다른 말없이 자신의 슬픔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냈고, 그 표정은 그 어떤 강의보다도 내게 의학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의사는 기술자이기 이전에 환자를 인간적으로 보다듬을 수 있는 존재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의사를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P75

우리가 보고 있는 연습용 심전도가 누구의 것이든, 그 환자는 살아남지 못할 운명이었다. 그 페이지 위의 구불구불한 선들은 단순한 선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심실세동이 악화되어 결국 심장 수축이 멈출지도 모르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고, 사람을 눈물짓게 만들 수도 있었다.

누구에겐 삶의 중요한 순간을 오가고 있고 또 누군가는 그것으로 배우고 성장을 한다. 이 상황이참으로 아이러니한 것 같다.

 

P76

눌랜드의 책을 비롯해 여러 기록들을 보니 죽음이란 직접 대면해야만 알 수 있는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죽음의 두 가지 수수께끼인 경험적인 징후와 생물학적인 징후, 즉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철저히 비개인적인 측면들을 파헤치기 위해 의학을 탐구했다.

 

P85

나는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지만 자궁에서 빠져나오던 쌍둥이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다 자라지 못한 폐처럼, 나 역시 환자의 생명을 책임질 준비가 덜 된 것 같았다.

 

P88

나는 신으로부터 기쁨에 넘치는 새 약속을 받고 산꼭대기에서 돌아온 예언자가 된 기분이었다. 출산과정의 모든 혼란은 사라졌고, 방금 전에 나는 이 가족에게 누군가의 조카딸, 누군가의 사촌이 될 새로운 식구를 품에 안고 있었다.

 

P93

실제로 99퍼센트의 사람들이 연봉, 근무 환경, 근무 시간을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선택하는 건 직업이지, 소명이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하는 생활방식에 중점을 두고 직업을 선택하지 않을까?

 

P94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나는 모든 이가 언젠가는 마주치기 마련인, 삶과 죽음과 의미가 서로 교차하는 문제들은 대개 의학적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이런 문제들과 마주치면, 필연적으로 철학적이고 생물학적인 주제를 파고들게 된다.

 

P95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P101

그때부터 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


P105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 였다. 신경외과는 뇌와 의식만큼이나 삶과 죽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아주 매력적인 분야였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찮은 물질주의, 쩨쩨한 자만에서 최대한 멀리 달아나 문제의 핵심, 진정으로 생사를 가르는 결정과 싸움에 뛰어들고 싶었다.

죽음의 의미에서 대해서 똑바로 마주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죽음 앞에 서야 만 비로소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나마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P106

태양을 직접 응시하며 천문학을 배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결정적 순간에 환자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그저 그 순간에 서 있을 뿐이었다.

 

P112

레지던트로서 내가 꿈꾸웠던 가장 높은 이상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환자가 치명적인 두부 출혈로 병원에 들어올 때, 신경외과의와 나누는 첫 대화는 환자의 가족이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P113

젊은 시절 신앙심이 좀 더 깊었다면 나는 목사가 되었을 것이다. 내가 추구했던 건 목사의 역할이었으니까.

 

P113

고통받는 동포와 굳은 약속을 맺은 기회가 되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함께입니다. 여기 헤쳐 나갈 길이 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당신을 회복의 길로 인도할 것을 약속합니다.’

 

P116

큰 병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뇌 질환은 거기에 난해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더 해진다.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부모의 정돈된 세계는 뒤집혀 버린다. 그런데 환자의 뇌는 죽었고 몸은 따뜻하고 심장도 여전히 뛰고 있다니, 이 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재앙(disaster)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부서지는 별을 의미하는데, 신경외과의의 진단을 들었을 때 환자의 눈빛이 바로 그렇다.

 

P122

내 눈에는 그런 강인함이 절망에 맞서기 위한 불안정하고 비현실적인 낙관주의처럼 보인다. 어쨌든 수술에 직면할 때는 싸우겠다는 태도가 적당하다. 수술실에서, 쥐색의 썩어가는 종양은 뇌의 통통한 복숭아빛 주름에 쳐들어온 침략자처럼 보였고 나는 정말로 분로를 느꼈다.

병을 통보 받는 환자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분노 그리고 싸우겠다는 의지도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P124

나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수술에 성공하려는 헌신적인 노력에는 큰 대가가 따랐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실패는 참기 힘든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이런 부담감은 의학을 신성하면서 동시에 불가능한 영역으로 만든다. 의사는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려다가 때로는 그 무게를 못 이겨 스스로를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의사의 책무, 의무, 책임감은 어디까지 일까? 우리도 의사와 같이 생사를 책임지지는 않지만 때론 이와 같은 상황에 마주친다. 나의 책임, 의무는 어디까지인가? 과연 내가 짊어지어야 할 짐은 무엇인가?

 

P127

브이는 늘 정직하게 (때로는 겸손하게) 전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대다수의 과학자가 어떻게든 권위 있는 학술지에 자신의 글과 이름을 올리기 위해 부정도 묵인했지만 브이는 과학적인 이야기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타협 없이 말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주장했다.

 

P128

그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 내 삶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 같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도덕적으로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도 죽음에 직면하면 이런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순간에 이르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P129

환자는 의사에게 떠밀려 지옥을 경험하지만, 정작 그렇게 조치한 의사는 그 지옥을 거의 알지 못한다.

 

P133

그는 1밀리미터의 손상 때문에 괴물이 되었다. 무슨 수술이든 위험보다 이익이 더 클 거라는 가족과 외과의의 판단 하에 결정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나면 가슴이 아프다. 매슈가 열두 살에 140킬로그램의 몸무게로 살아갈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끔찍한 일이다. 1밀리미터의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것인가?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P142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온다. 우리 의사에게도 환자에게도 살고, 숨 쉬고, 대사 작용을 하는 유기체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속수무책으로 살아간다. 죽음은 당신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이 순간에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P148

내 인생의 한 장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책 전체가 끝나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사람들이 삶의 과도기를 잘 넘기도록 도와주는 목자의 자격을 반납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이 되었다. 내 병은 삶을 변화시킨 게 아니라 산산조각 내버렸다. 형형한 빛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비춰주는 에피퍼니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내 앞길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

 

P161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

죽음은 삶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죽음을 기다리고 반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죽음으로 인해 삶이 더 완벽해지고 완결 지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P169

예전에 내가 맡았던 환자들처럼 나는 죽음과 마주한 채 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에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입장이 갈린 채, 의학을 계속 파고들지 아니면 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예전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서,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버둥거렸다.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보내도록 끊임없이 고민한 작가의 고뇌가 공감이 된다.

 

P172

죽음에 직면하고 보니 더 미뤄선 안 되고 급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를 가져도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죽음은 모든 고민의 폭을 단순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죽음 앞에서 그렇게 중요한 문제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P174

몇 년 전, 나는 다윈과 니체가 한 가지 사실에 동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물을 규정짓는 특징은 생존을 향한 분투라는 것이다.

 

P180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 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I can’t go on. I’ll go on).”

이 책을 선전하는 많은 기사와 소개서에서 보았던 문구이다. 그는 단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자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도 예전에 본인이 이루었던 성과에 비하면 보잘 것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것 자체가,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가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P184                                                                         

복숭아빛을 띈 익숙한 뇌 주름이 내게 다정하게 손짓하는 것 같았다.

정말? 정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P193

중병에 걸리면 삶의 윤곽이 아주 분명해진다. 나는 내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은 그대로였지만 인생 계획을 짜는 능력은 완전히 엉망진창이 됐다.

 

P195

에마는 심지어 내가 생각지 못할 때에도 나의 이 정체성을 늘 염두에 두었다. 그녀는 몇 년 전 내가 의사로서 도전했던 일을 해낸 것이다. , 환자의 영혼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받아들이고, 환자가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지점으로 되돌려놓았다. 에마가 나에게 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의사란 병만을 단순하게 고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삶이 무너진 환자의 일상을 복원시키고 유지시켜주는 것도 병을 치료하는 데 큰 하나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P198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삶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삶이 무너져 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P214

나는 신탁과도 같은 지혜의 말을 듣고 위안을 얻고 싶었다.

이게 끝은 아니에요.” 에마가 말했다. 분명 그녀는 지금껏 환자에게 천 번도 넘게 이 말을 했을 것이다. 나 역시 환자에게 비슷한 말을 했었으니까. 불가능한 답을 구하는 환자에게 의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끝의 시작도 아니에요. 그냥 시작의 끝인 거예요.”

 

P234

그 메시지는 간단하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아이에게서 얻었을 기쁨과 그 아이를 두고 가야하는 아쉬움이 얼마나 컸을까.

 

P247

나는 폴의 침대 곁으로 돌아갔다. 바이팝 마스크의 콧대 위로 그의 검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폴은 부드럽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했다. “난 준비됐어.” 바이팝을 떼고 모르핀을 맞으며 생을 마무리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P252

이 책에는 모자란 시간과 싸우는 절박함, 중요한 얘기를 꼭 전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폴은 의사이자 환자로서 죽음과 대면했고, 또 그것을 분석하고, 그것과 씨름하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는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다.

 

P253

그는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와 오랜 시간 씨름했고 이 책은 그 본질적인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에머슨은 이런 글을 남겼다. “보는 자가 언제나 말하는 자이다. 그의 꿈은 어떻게든 말로 표현되며, 그는 장엄한 환희 속에 그 꿈을 널리 알린다.” 용감한 보는 자 폴은 이 책을 쓰면서 말하는 자가 되었고, 우리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죽음을 대면하라고 가르쳐주었다.

 

P254

역으로 말하자면, 불치병을 헤쳐 나가는 방법은 서로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며, 감사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역경은 역으로 서로를 다시 깊은 사랑으로 묶어준다.

 

P255

이렇게 내가 당신 가슴에 머리를 대고 있어도 숨 쉴 수 있어?”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이게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폴과 내가 서로의 삶에 깊은 의미가 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P257

폴은 암 진단을 받은 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는 우리가 욕실 거울에 걸어둔 그림을 보면서 울었다. 그 그림에는 내게 남은 모든 날을 이곳에서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수술실에서 보낸 마지막 날에도 울었다. 폴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줬고,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불치병에 걸렸어도 폴은 온전히 살아 있었다.

폴은 스스로에게 솔직했기에,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드릴 수 있었지 않나 싶다.

 

P263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싸우는 데에서 의미를 발견했고, 이 책에도 그렇게 썼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는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폴에게 주어진 삶이었고, 그는 그 삶으로부터 이 책을 써냈다. 그래서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지금 이대로 완결된 작품이다.

 

P264

폴은 평생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그의 아내이지 목격자였다.

그녀가 있었기에 폴도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P272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권한다. 폴의 책 마지막 문단에 이르면 큰 소리로 읽어보라. 그러면 똑같은 긴 문장이지만 발로 박자를 맞출 수 있는 것 같은 운율이 느껴질 것이다. 브라운의 글을 읽을 때처럼 그 흐름을 타고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내려가게 될 것이다.

영어로 읽지 못함이 아쉽다. 시에 심취했던 폴의 성향이 반영된 것 같다. 운율을 맞추기 위해 노랙했던 것 같다.

 

P278

그가 말하는 죽음과 인생의 의미는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피와 땀이 얼룩져 있는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다. 칼라니티의 글을 읽으면서 특히 감동적인 부분은 비록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으나,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평소 하던 수련의 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장면이다.

왜 그랬을까? 정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은 의사로서의 자기 자신, 의사로서의 모습이었기 때문일까? 폴에게 중요한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단 삶의 과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P280

죽음을 뒤 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애쓰다가 결국 죽음에 붙들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P281

이 책을 다 읽고 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웃고 있는 부부와는 다르게 우리는 샘솟는 눈물을 억누를 길이 없다. 부부는 왜 웃고 있겠는가? 웃지 않으면 그들이 먼저 울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면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 상황에서 아이를 낳기로결정한 것도 대단하다. 폴은 아이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아쉽고 미안했을까.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해서

이 책은 저자가 충격적인 암 선고를 받은 순간을 시작으로 해서 다시 건강 했었던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다시 투병생활을 하는 이야기로 돌아와 부인 루시의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었다. 처음 이 책의 내용을 모르고 접한 나는 처음장을 접하면서부터 가슴이 먹먹해 지기 시작했고 책으로 빨려 들어갔다. 앞 부분에 화두를 던지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처음부터 책의 내용에 빠져들기 쉽게 구성되어 있는 것 같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글쎄 모르겠다. 그냥 저자 폴의 삶에 숙연해지고 그의 삶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놀랍고 또 놀라웠다.

 

3. 이 책의 장점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책은 많다. 그런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 란 책은 거의 없다. 사실 그런데 두 문장은 어떤 면에서 보면 같은 말인 것 같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삶을 살아갈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 의사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죽음으로 가는 길, 암을 통보 받고 삶을 마감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우리 모두는 죽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선 아무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은 곧 인생의 완결이자 완성이다. 끝이 아닐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잘 모른다. 누구나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만 아무도 함부로 이야기하진 못한다. 저자는 내가 이 직업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죽음을 뒤쫓아 붙잡고, 그 정체를 드러낸 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서 였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4. 내가 저자라면

저자가 목격한 두 눈 똑바로 마주친 축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저자는 때론 나약해지고 슬퍼하면서 때론 담담하게 자신의 죽음을 향해 걸어갔다. 죽음을 수 없이 봐 온 저자는 죽음에 의미에 대해서 고민했었고 결국 본인이 죽음 앞에 서서야 비로소 죽음을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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