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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0일 00시 54분 등록

<나에게 이 책은>

작가 백영옥은 고전이란 몇 번의 실패와 포기 끝에 마침내읽게 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는 <월든>이 딱 그랬다. 몇 번이나 책을 열고 덮기를 거듭하다 2003년 어느 여름, 눈에 뭐가 씌었는지 아니면 마음이 그간 알맞게 발효가 되었는지 한달음에 읽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던 그 책을 박장대소 하면서까지.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017년의 끝자락에 다시 <월든>을 집어 들었다. 2003 30살의 내가 밑줄 그은 부분을 보며 과거의 나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다. 중년의 나는 '뜻대로 되는 삶'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월든>은 신이 나에게 '자유의지'라는 선물을 주었음을 상기시켰고, '삶을 의도대로 살아볼 것'을 부추겼다. 나의 의도대로 삶을 살아보는 것, 그것이 나를 창조한 신의 의도인 것을. 

 

헨리 데이비드 소로

 

저자연구를 하던 중 그가 콩고드에서 나고 콩고드에서 죽었다는 사실에 눈이 갔다. 이런 붙박이같은 삶이라니. 22세 때 형과의 여행 후 여행기까지 썼던 저자는 청혼의 실패(23), 형의 사망(25) ,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월든 호숫가에 통나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다. 이 때 그의 나이 28세였다. 그의 여행 범위는 이제 자연의 관찰내면의 탐구가 된 것이다.

 

저자의 삶을 보니 풍지관(風地觀)’ 괘가 떠오른다. 위에는 바람, 아래는 땅으로 관찰하다는 관()을 이끌어 낸 것이 풍지관이다. 관찰하고 성찰하고 살피는 것이다. 바람처럼 흐르던 저자는 월든 호숫가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 곳에서 22개월 2일 간 주변 자연의 관찰과 내면의 성찰의 결과물이 바로 <월든>이다. 스스로 자연의 관찰자라고 했다는 저자는 관찰을 통해 특유의 시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것 같다. ‘풍지관의 시각에서 정착 & 관찰 & 저자를 잘 소개한 글이 있어 아래에 싣는다. 

프랑스 인과 스코틀랜드 인의 후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콩코드에서 태어나 그곳을 영구 거주지로 정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에머슨처럼 하버드 대학을 다녔다. 그는 평생 동안 극도로 검소하게 지냈으며 아주 적은 돈으로도 독립성을 유지했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중요한 경력으로 만들었다. 불순응주의자였던 그는 항상 자신의 엄격한 원칙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는데, 이것이 그의 글 다수의 주제였다.

소로의 대작인 《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1854)은 소로가 에머슨이 소유하고 있던 월든 호숫가 땅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1845년부터 1847년까지 그곳에서 보낸 2 2개월 2일 동안의 생활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에서 소로는 의식적으로 이 기간을 1년으로 줄였으며, 책을 계절 순으로 신중하게 구성했다. 이 책은 또한 단순한 세속적인 관심사('경제'라는 장에서 소로는 오두막을 짓는 데 든 경비를 묘사하고 있다)로 시작해 끝으로 가면 별에 대한 명상으로 진행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여행 서적을 좋아하고 또 몇 권을 저술한 바 있는 소로는 《월든》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때까지 미국 책들이 접근한 적이 없는 자기발견이라는 내적인 개척 분야를 파헤친 반()여행 서적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소로의 금욕적인 생활처럼 매우 소박한 이 작품은 좋은 삶이라는 고전적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지침서나 다름없다. 자세하게 표현된 오두막 짓기 과정은 영혼을 실하게 채우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은유이다.
1852 1 30일 일기에서 소로는 한곳에 뿌리박고 사는 것을 선호하는 데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내 마음이 완전히 흐트러질지 모르기 때문에 여행을 많이 하거나 명소에 가는 것이 두렵다."

소로의 은둔과 집중의 방법은 아시아의 명상법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유사성은 우연이 아니다. 소로는 에머슨과 휘트먼처럼 힌두교나 불교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 소유물은 아시아 고전 작품 장서로, 에머슨과 공유했던 것이다. 그의 스타일은 절충적으로 그리스 어나 라틴 어로 된 고전 작품들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투명하면서도 말장난으로 가득하며, 영국 후기 르네상스의 형이상학적 작가들의 것만큼 은유로 풍성하다.

《월든》에서 소로는 초월주의 이론을 직접 시험해볼 뿐만 아니라 19세기의 총체적인 미국 경험, 즉 변방 개척지에서의 생활을 재현하고 있다. 소로는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것은 언어를 통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느꼈다. 다음은 1851년 어느 날의 그의 일기이다.

영국 문학은 초서, 스펜서, 셰익스피어, 밀턴을 포함하여 음유시인으로부터 호반시인(湖畔詩人, Lake Poets)에 이르기까지 신선하고 야성적인 기질을 지니지 않았다. 그것은 그리스나 로마를 반영하는, 근본적으로 길들여지고 문명화된 문학이다. 문학의 황야는 푸른 숲이고 야성적인 인간은 로빈 후드였다. 시인들 중에는 자연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자연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연의 역사는 우리에게 야성적인 인간이 아니라 야성적인 동물들이 언제 멸종되었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미국이 필요했던 것이다.

《월든》은 열정적인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에게 영감을 주어 《이니스프리의 호도(The Lake Isle of Innisfree)》라는 작품을 쓰도록 했다. 또한 소로의 수필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부당한 법에 대해 합법적인 개인이 불복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필요하다는 수동적 저항 이론을 담고 있으며, 이는 20세기에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 및 마틴 루터 킹의 흑인 민권운동에 영감을 주었다.

생태학적인 관심,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 독립성, 노예 폐지론에 대한 윤리적인 기여, 시민 불복종 및 평화적인 저항이라는 정치적 이론 등으로 인해 오늘날 소로는 초월주의자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작가로 남아 있다.
그의 생각들은 아직도 신선하며, 그의 예리하고 시적인 스타일과 철저하게 관찰하는 습관은 지금 생각해도 현대적이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내 마음 속 책갈피

 

26 사치품과 편의품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왔다.

미니멀리즘의 유행

 

27 사람이 대지에 깊이 뿌리를 박은 것은 그만큼 높게 하늘로 솟아오르고자 함이 아닌가?

 

29 얼마나 많은 가을날과 겨울날에 마을 밖으로 나가 바람 속에 들어 있는 소식을 들으려고 했으며, 또 그 소식을 지급(至急)으로 전하려고 했던가!

 

33 하지만 내 경우에 그 바구니는 역시 엮을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남이 살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팔지 않아도 될 것인가를 연구했다.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의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청개구리의 통찰력. 하나의 삶을 과대평가 하는 것은 누릴 수 있었을 다른 삶의 평가절하로 가능성의 낭비.

 

35 옷을 구입할 때 우리는 참다운 실용성보다는 새것을 좋아하는 심리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점에 더 좌우된다.

 

39 우리의 털갈이 시기는 날짐승의 그것처럼 인생에 있어 하나의 위기일 때여야 한다.

 

41 그러나 우리는 이집트의 보리가 미라에 의하여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몸에서 일단 벗겨진 옷은 보잘것없고 우스꽝스럽다. 다만 옷을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성스럽게까지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반짝이는 진지한 눈빛과 성실한 삶 때문인 것이다.

 

44 어느 면에서 아이들은 그 하나하나가 인류사를 다시 시작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도 밖에 나가 있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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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여기서 내가 말하는 비용이라는 것은, 당장에 혹은 궁극적으로 사려는 그 물건과 바꾸어야 할 생명의 양을 말하는 것이다. 이 근처의 일반 가옥은 대략 800달러 정도인데, 그만한 돈을 모으자면 부양 가족이 없는 노동자라도 10년 내지 15년이 걸릴 것이다. 이 계산은 노동자의 하루 수입을,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평균 1달러로 따진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가 자기의오두막을 마련하려면 생의 반 이상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생명의 양 =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오늘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더라. 고기를 50% 세일한다고. 싸게 사는 것도 물론 좋지만 줄이 상당하던데. 50% 저렴한 가격으로 사는 것이 기다리는 시간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겠지. ‘비용을 비용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명의 양, 시간으로 바꿔 보면 구매 결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50 상인 100명 중 97명꼴로 그 절대 다수가 틀림없이 실패한다는 이야기는 농부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52 문명이 우리의 주택을 개선해 왔으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똑 같은 정도로 개선시키지는 못했다. 문명은 궁전을 낳았으나 왕과 귀족을 낳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시니컬한 표현/비유에 담긴 이 통찰력 보소.

 

한 계급의 호화로운 생활은 다른 계급의 궁핍한 생활로 균형이 맞추어진다. 한편에 궁전이 있으면 다른 편에는 빈민구제시설과 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모든 것은 대극으로 존재하니까. 내가 따듯할 때 누군가는 춥고, 내가 배부를 때 누군가는 배고프다는 것을 잊지 말자.

 

53 이런 사정을 알기 위해 멀리 찾아볼 필요없이 이른바 문명 발전의 최신 상징인 철도의 연변에 늘어선 판잣집들을 보면 된다.

 

56 원시 시대의 소박하고 적나라한 인간 생활은 인간을 언제나 자연 속에 살도록 하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보라! 인간은 이제 자기가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배가 고프면 마음대로 과일을따먹던 인간이 이제는 농부가 되었고, 나무 밑에 들어가 몸을 가렸던 인간이 주택의 소유자가 되었다. 우리는 야영하면서 밤을 보내던 생활을 청산해 버렸다. 땅 위에 정착하고 나서 하늘을 잊어 버렸다.

일빛 이성우 사장님은 그래서 의도적으로비박을 하신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자는 게 그렇게 좋다며. 누군가는 그렇게 의도적으로 하늘의 별을 보고, 대다수는 별은 커녕 하늘을 잊어버렸다.

 

59 나는 현대식 고급주택을 하나 마련해 볼까 하다가도 그 생각을 버리게 된다. 그 이유는 이 나라의 풍토가 아직도 인간계발에 적합하도록 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 조상들이 자신들의 밀가루 빵을 얇게 썰었던 것 이상으로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빵을 얇게 썰어야 할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66 나는 이렇게 땅을 파는 일에 각별한 즐거움을 느꼈다. 거의 어느 위도에서나 사람이 땅을 파고 들어가면 일정 불변의 온도를 얻을 수 있다.

오늘 지택림(地澤臨)’ 괘를 명상(?)했는데. 땅 및 연못을 상징하는 것인데 연못 택’()을 자꾸 머리 속에서는 집 택’()으로 바꿔 생각하게 되었다. ‘내면 깊이 지은 집으로 이미지화 되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저자는 땅을 파고 들어가면 어디건 안락한 거주지를 만들 수 있다는 뜻으로 한 말인데, 내면 역시 그렇다. 자신의 내부를 파고 들어가는 훈련을 하다 보면 마음의 평정(불변하는 마음의 온도)을 얻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체험하지 못한 온도이긴 하다. 눈 감고 1분을 못있더라. 잡념이 어찌나 자욱한지. 여하튼 마음의 땅을 파는 일’, ‘불변하는 마음의 온도를 키워드로.

 

67 가령 문이나 창문, 그리고 지하실이나 다락방이 인간성의 어디에 바탕을 둔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의 일시적인 필요성이라는 이유보다 더 좋은 이유를 발견하기 전에는 건물을 아예 짓지 않기로 한다면 어떨까?

 

마치 새들이 그런 일을 할 때 항상 노래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박달새나 뻐꾸기처럼 행동하고 있다. 이 새들은 다른 새들이 지어 놓은 둥지에 자기 알을 낳으며, 이들의 시끄러운 울음소리는 나그네들을 조금도 기쁘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집 짓는 일의 즐거움을 영원히 목수에게 넘겨주고 말 것인가? 대부분 사람들의 경험에서 건축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여기저기 꽤 돌아다닌 편이지만 자기 집을 짓는 것처럼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한 사람은 만났다. 강원도 집 이웃인데 그 분은 로빈슨 크루소와 맥가이버를 합친 사람이다. 본인의 집을 1년 간 지으셨다. 거의 100% 혼자 했다. 황토벽에 지붕 올리는 것까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는데 정말 놀랍더라. 텃밭은 물론이거니와 버섯까지 키우신다. 목수셔서 작업 공간도 따로 있는데 우리 아이들 책상과 의자도 만들어주셨다. 강원도 이웃들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분이다. 그 분을 보니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 하려면 목공 기술이 필수라는 생각이 들더라. 아래 사진은 그 분이 지은 황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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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현 시점에서 내 눈에 띄는 건축미는 그 모두가, 참된 의미에서의 유일한 건축가인 거주자의 필요성과 성격에 따라, 그리고 겉모습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는 어떤 무의식적인 진실성과 기품에 따라 내부에서 외부로 점차 자라 나간 것들이다.

내면에서 외부로 스며 나가는 것, 넘쳐 나가는 것.

 

화가들이 잘 알듯이 우리 나라의 주택 중 가장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꾸밈새가 전혀 없고 소박하기 짝이 없는 통나무집들과 오두막집들이다. 그런 집들을 한 폭의 그림으로 만드는 것은 그 집들을 껍질 삼아 사는 거주자의 생활이지 밖에 나타난 외견상의 어떤 특이성이 아닌 것이다.

어릴 때 판잣집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아빠와 오빠가 집을 만들었다고 자랑했었다. 그 땐 판잣집에서 사는 가난한 친구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집을 만들다니!라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너희 아빠랑 오빠 정말 대단하다!”라며 감탄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감탄하던 어린 나와 자랑하던 내 친구의 마음이 감탄스럽다.

 

73 내가 조금 지나치게 자랑하는 것같이 보인다면 나는 나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전 인류를 자랑하고 있노라고 변명하고 싶다.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사항이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사항은 아니다.

 

74 만약 어떤 학생이 인간에게 필수 불가결한 육체 노동을 평생 계획적으로 기피해가며 여가를 얻고 말년에 은퇴 생활로 접어든다면, 그가 얻는 여가는 불명예스럽고 가치 없는 것이며, 이 여가를 유익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을 스스로 박탈한 것이 된다.

 

75 젊은이들이 당장에 인생을 실험해 보는 것보다 사는 법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또 있겠는가?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강의되고 실습되지만 삶의 예술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한 삶의 기술이 아닌 삶의 예술이라.

 

그곳에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화학은 공부하되 자기의 빵이 어떻게 구워지는가는 배우지 않으며, 기계학은 배우되 빵은 어떻게 버는가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은 발견해 내지만, 자기 눈의 티는 보지 못하며 또한 자기가 지금 어떤 악당의 위성 노릇을 하고 있는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과 비유 너무 매력적이다. 시니컬로는 역대 최고 아닌가 싶다.

 

78 물론 오래오래 살아서 차비라도 벌어놓은 사람은 언젠가는 기차를 타게 되겠지만 그때는 활동력과 여행 의욕을 잃고 난 다음일 것이다. 이처럼 쓸모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고국에 돌아와 시인 생활을 하기 위하여 먼저 인도로 건너가서 돈을 벌려고 했던 어떤 영국 사람이 생각난다. 그는 당장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쓰기 시작했어야 했다.

 

83 여러 민족들이 자신을 후대에 기념하게 하려는 방법으로 건축물을 이용해서는 안되겠지만, 추상적 사고력을 이용해서 안될 이유는 없으리라. <바가바드 기타>는 동양의 모든 유적보다도 얼마나 더 멋있는가?

요새 주역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니? 이러다가 내년에는 바가바드 기타 읽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중얼거렸다. 그런데 <바가다드 기타>가 이렇게 언급되니 원.

 

85 그러나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을 세우지 않은 사람, 즉 그런 사소한 것을 초월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하는 것이다.

 

88 그러나 나는 여가와 자립과 건강을 확보하였고, 거기에다가 내가 원하는 날까지 살 수 있는 안락한 집을 얻었던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여가, 자립, 건강, 집 중 자립이 현재로서는 제일 부럽다. 돈을 많이 벌어 확보하는 경제적 자유와는 다른 개념이다. 조셉 캠벨의 오두막 생활, 구본형 선생님의 단식처럼 구속하는 것으로부터의 자립’. 일단은 좀 덜어내며 살아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소유하는 게 많아졌다.

 

94 호박을 의자로 써야 할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무기력 때문이다.

 

95 덫에 걸린 사향쥐는 자유의 몸이 되기 위하여 세 번째 다리라도 물어서 끊는다고 한다. 인간이 자신의 탄력성을 잃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99 나는 5년 이상을 이와 같이 오직 육신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 1년 중 약 6주일간만 일하고도 필요한 모든 생활비용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름의 대부분과 겨울 전부를 나는 순전히 공부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었다.

1년에 3개월도 아니고 1년에 6주일? 정말 대단한 실험을 했고 성공시킨 듯. 올 해 읽은 책의 저자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물론 그 중 헨리 소로우가 갑이다.

 

100 예전에 내가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이리저리 생각하고 있을 때(직업에 대한 친구들의 조언을 따르느라고 겪은 서글픈 체험들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생생하게 남아서 나의 창의력을 괴롭히고 있던 때였는데) 나는 야생 딸기의 일종인 허클베리를 따서 파는 일을 여러모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101 나는 장삿속이 모든 것을 망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하느님의 말씀을 취급하는 사업이라도 장삿속에 따르는 저주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 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다른 호화 가구들, 맛있는 요리, 또는 새로운 양식의 고급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앞서 썼던 마트의 줄과 같다. 돈을 마련하는데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고 돈을 아끼는데 시간을 허비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보통 돈을 마련하고 돈을 아끼는데 시간을 허비하니 2배의 시간이 허비되고 있다. ‘시간을 쓰는절약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컨대 나는 신념과 경험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 생활한다면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일이라는 것.

이 말도 좋다. 밥벌이, 먹고 사는 것, 생계라는 말을 떠올릴 때 고단함 등의 키워드가 함께 따라오기 마련인데 그게 아니라 즐거움이 따라오게. 밥벌이의 즐거움이라.

 

102 나는 각자가 자기 자신의 고유한 길을 조심스럽게 찾아내어 그 길을 갈 것이지, 결코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의 길을 가서는 안된다고 당부하고 싶다.

 

항해하는 사람이나 도망치는 노예가 항상 북극성을 지켜 보듯이 우리는 어떤 수학적인 점에 의해서만 방향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103 전에 말했듯이 홀로 여행하는 사람은 오늘이라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동행이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출발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105 흔히 말하는 의미에서의 좋은또는 착한일은 나의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며, 내가 착한 일을 했다면 그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다.

츤데레같으니라고. 좋은 일 많이 하셨으면서. 착한 일이 아니라 위선적인 것이 싫은 거죠?

 

106 선행을 베풂으로써 자기가 신의 아들임을 입증하려고 했던 태양신의 아들 파에톤은 하루 동안 태양의 전차를 빌려 탔으나, 궤도를 벗어나는 바람에 하늘나라의 아래쪽 거리에 있던 여러 마을을 불사르고 지구의 표면을 그을렸으며, 모든 샘물을 마르게 하고 거대한 사하라 사막을 생기게 했다.

 

변질된 선행에서 풍기는 악취처럼 고약한 냄새는 없다.

내가 넉넉하다면 분명 누군가에게 빚을 진 것이고 따라서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 빚을 진 게 아니라 해도 필요 이상의 여유가 있다면 나누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선행이 또 다른 구속이나 강제’, 또는 변질이 된다면 잠시 쉴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더라.

 

그가 베푸는 선행을 입었다가는 그 선행의 해독이 내 피에 섞이게 될까 나는 두려운 것이다. 차라리 나는 자연스럽게 악행의 피해를 받아들이는 것을 택하겠다.

 

108 세상에는 도끼로 악의 뿌리를 내려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면, 악의 가지를 치는 사람은 천 명이 있다고 하겠다.

악의 가지치기. 미친다. 진짜 비유 갑.

 

111 이렇게 2, 3년 동안 박애 활동을 하고 나면(물론 그동안 신들은 그를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부리고 있었을 것이고) 그는 위장병을 고치게 되고, 지구는 갓 익어가는 과실처럼 한쪽 볼이나 양쪽 볼에 엷게나마 붉은 색깔을 띠게 된다. 인생은 그 미숙함을 벗어나 다시 한번 살기에 알맞은 달콤한 것이 된다. 내가 저지른 것보다 더 큰 대악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으며, 나보다 더 나쁜 악인은 본 적도 없고 또 앞으로 볼 일도 없으리라.

 

112 우리가 진실로 인디언적인, 식물적인, 자석적인 또는 자연적인 수단으로 인류를 구제하려고 한다면, 먼저 자연처럼 소박하고 건강하게 되도록 하자.

 

113 칼리프들이 망한 다음에도 티그리스 강은 바그다드를 뚫고 길이 흐르리라. 그대가 가진 것이 많거든 대추야자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라. 그러나 가진 것이 없거든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될지어다.

 

116 인생의 어느 계절에 이르면 우리는 모든 장소를 자신이 살 집터로 생각해 보는 습관을 갖게 된다.

,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런데 여러 군데를 집터로 생각하면서도 정착은 못하고 있다. 그나마 강원도 집이 결혼 후 가장 오래 살고 있는 터이긴 하다. 도시에서는 영혼 있는 집터를 찾기 어렵다. 자연과 함께 하기 쉽지 않은 까닭. 교통도 생각해야 하는데 자연과 교통은 함께 하지 않는다.

 

118 그러나 나는 농장의 경치만은 그대로 소유하기로 했으며, 그후에도 손수레를 사용하는 일이 없이 해마다 경치의 소득을 거두어 왔다.

경치의 소득이란 말 너무 좋다! 경치의 소유, 경치의 소득!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군주이며,

세상에 내 권리를 의심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

 

119 그 농부는, 시인이 그의 농장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훌륭한 울타리인 운율 안에 옮겨 놓고, 거기에 가둔 채 젖을 짜고 지방분을 걷어낸 다음 크림은 전부 가져갔으며 자기에게는 찌꺼기 우유만을 남겨 놓았다는 것을 몇 해를 두고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처음 읽었을 때엔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했다가 두번째 읽었을 때에는 이야~ 멋지다 했던 문장.

 

120 여기서 내가 친애하는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되도록 오래오래 자유롭고 얽매이지 않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121 횃대 위에 올라앉은 아침의 수탉처럼 한번 호기 있게 울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웃 사람들의 잠을 깨우는 결과밖에 얻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122 아침 바람은 끝없이 불며, 창조의 시는 중단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올림포스 산은 속세를 한 발자국만 벗어나면 어디에나 있다.

 

123 이 집은 윤곽만을 그린 그림처럼 암시적이었다. 나는 구태여 바람을 쐬기 위해 밖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집 안의 공기가 조금도 그 신선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표현도 너무 시적이다. 암시적인 집, 신선함을 잃지 않은 집 안 공기.

 

126 아침은 언제나 나의 생활을 자연 그 자체처럼 소박하고 순결하게 지키라는 초대장과도 같았다. 나는 옛 그리스 사람들처럼 항상 새벽의 여신을 숭상해 왔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멱을 감았다.

 

127 중국 탕왕의 욕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날마다 그대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128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육체 노동을 할 만큼은 깨어 있다. 하지만 백만 명 중 한 사람만이 효과적인 지적 활동을 할 만큼 깨어 있으며, 1억 명 중 한 사람이 시적인 또는 신적인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깨어 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때까지 완전히 깨어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시적인 삶과 신적인 삶이 거의 동일시 되는. 내년에는 자꾸 시로 인도되는 거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

 

129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안타까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밑줄 그었을 거 같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밑줄 그었을까. 영화로 이 장면을 연출한다면? 여러 시대, 여러 공간, 젊은 손, 늙은 손, 반지 낀 예쁜 손, 하얀 손, 까만 손 등이 밑줄 긋는 장면들. 마치 씨네마 천국에서의 마지막 키스씬처럼. 의도적인 삶의 반대는 무엇일까. 기계적인 삶? 신이 선물했다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의도대로 사는 삶. 당연한 것 같은 그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터. 나는 의도대로 살고 있나.

 

135 내 생애를 통해 우표값이 아깝지 않은 편지는 한 두 통밖에 받지 못하였다.

, 못산다. 정말.

 

136 한 번이면 충분하다. 원칙만 알면 되지 무수한 실례와 응용을 구태여 들을 필요가 무엇인가? 철학자에게 소위 뉴스라는 것은 모두 가십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전성수 약사님. 고전만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 습득에도 열심이셨던 분. 의학계 최신지견을 업데이트 하는 것이 인생의 낙이셨다. 그 분이 언젠가 매일 매일의 신문을 볼 필요는 없다고, 필요한 경우 월간지나 계간지를 통해 추세, 흐름을 파악하면 되지 매일의 뉴스는 낭비라고 하셨던 적이 있다.

 

137 저의 주인은 스스로의 허물을 줄이려고 하시지만 여의치 않사옵니다.

두 번째 읽을 때 보니 저자가 공자와 맹자를 제법 언급한 게 눈에 들어온다.

 

만일 사람들이 진실만을 똑바로 보고 속임수를 용납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과 달리 동화나 <아라비안 나이트>의 이야기처럼 즐거운 것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필연적인 것과 당연히 존재할 권리가 있는 것만을 존중한다면 음악과 시가 거리에 흘러 넘칠 것이다.

 

138 사소한 두려움이나 사소한 쾌락은 참된 현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막 소꿉놀이나 하면서 인생을 배우는 어린이들이 어른들보다 인생의 참다운 법칙들과 관계들을 더 명확하게 분간해 낸다.

 

139 “이와 같이 영혼도,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으로 인해 자기의 본성에 대하여 오해를 한다. 그러다가 어느 거룩한 스승이 진리를 밝혀주면 그때에야 자신이 브라미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사건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느님 자신도 현재의 순간에 지고의 위치에 있으며, 과거와 미래를 포함하여 그 어느 시대도 지금보다 더 거룩하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가 빠르게 가든 느리게 가든 우리의 길은 우리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을 사유하면서 보내도록 하자.

 

140 하루를 자연처럼 의도적으로 보내보자.

여기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2013217일 오늘처럼(치알리아)’이라고 메모 되어 있다. 남편의 메모이다. 20132월에 이 부분을 읽었구나. 아마 강원도 집(치알리아)에서 읽은 모양이다. 저자에게는 월든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치알리아가 있다. 자연을 접하며 살겠다는 삶을 부분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우리의 의도적 공간이다.

 

 

144 나의 거처는 사색을 하기 위한 곳 뿐만 아니라 진지한 독서를 하기 위한 곳으로도 그 어느 대학보다 나았다.

 

가만히 앉아서도 정신 세계를 떠돌아 다닐 수 있는 이점이 책 속에는 있다.

독서 하는 이 = 정신적 유목민. 올 해 나의 키워드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타이틀이 될 것이다.

 

145 당신이 젊은 날의 소중한 시간을 바쳐 몇 마디나마 고전 어휘들을 공부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 어휘들은 거리의 천박함을 넘어서서 당신에게 영원한 암시와 자극을 줄 것이다.

나에게는 고전 어휘가 라틴어가 아니라 주역이 될 것이다. 주역의 괘상과 괘사를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암시와 자극, 상징과 함축이 핵심이기 때문에 이해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깨달음의 대상이니까.

 

146 독서를 잘하는 것, 즉 참다운 책을 참다운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며, 오늘날의 풍조가 존중하는 어떤 운동보다도 독자에게 힘이 드는 운동이다. 그것은 운동선수들이 받는 것과 같은 훈련과, 거의 평생에 걸친 꾸준한 자세로 독서를 하려는 마음가짐을 요청한다.

 

147 고귀한 글들은 우리가 늘상 하는 말이나 우리가 내뿜는 숨처럼 무의식적으로 발산된 것들이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의 평온한 생활이 글을 쓰는 동기가 되며, 연설가를 감흥시킬 수 있는 그런 사건과 군중을 만나면 오히려 정신이 산란해진다. 그는 인류의 지성과 감성을 향해서, 즉 모든 시대에 걸쳐 자기를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 말한다.

모든 시대에 걸쳐라는 말이 좋다. 19세기에 저자가 쓴 글을 21세기의 내가 읽고 있다. 그게 고전의 힘인갑다.

 

148 그러나 그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더 높은 그러나 아직은 접근이 불가능한 지성과 천재의 사회 쪽으로 눈길을 돌리지만, 자기의 교양 부족을 통감하게 되며 많은 재산으로도 어쩔 수 없는 무력함과 공허함을 느낀다.

 

150 이러한 문화적 유산의 더미를 딛고서만이 인간은 마침내 하늘에 오를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만약 그 작품들이 읽혀졌다면 그것은 대중들이 별을 읽듯이, 다시 말해서 천문학적으로가 아니고 점성술적으로 읽혀졌을 것이다.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인 것이다.

 

그리고 남은 평생을 무기력하게 살면서 이른바 가벼운 읽을 거리로 지적 능력을 소모시켜 버린다.

 

152 이런 독서 취향은 결과적으로 시력의 감퇴, 혈액 순환의 장애 그리고 지적 능력의 전반적인 위축 내지는 퇴보만을 가져온다.

정말 대박. 한참 웃었다 ㅋ 소주 마시면서 수다 떨면 재미있을 거 같은 아저씨. 아닌가 글로만 시니컬하고 실제 만났다면 과묵한 스타일일 수도.

 

153 그리고 인류의 기록된 예지인 옛 고전이나 경전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의욕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이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154 아마 그는 같이 이야기할 만한 사람을 찾아내지 못하여 끝내는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게다가 힘든 책을 혼자서 영웅적으로 읽어 나가고 있는 학생을 도와줄 자상함까지 갖춘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플라톤의 이름을 듣고도 언제까지 그의 저서를 읽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바로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내가 그를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그가 바로 옆집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 말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

본인 디스까지 ㅋ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들었으면 그의 책도 당연히 읽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마을 사람인데 만나보지 못한 경우에 비유하다니.

 

155 우리는 버릇이 없고 무식하며 천박한 삶을 살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 말들을 정말 듣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침이나 봄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활력을 줄 것이며, 우리에게 사물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줄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기 인생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158 왜 우리는 19세기에 살고 있으면서 19세기가 제공하는 이점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가?

21세기에 살면서 21세기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떤 걸까?

 

161 꽃처럼 활짝 핀 어느 순간의 아름다움을, 육체적 일이든 정신적 일이든 일을 하느라 희생할 수는 없는 때들이 있었다.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 내년에는 시와 그림에 시간을 써야지 하고 있었다. 내가 관심 있는 그림은 수묵화이다. 시와 수묵화는 결국 여백이 중요한 것. 상상의 여지가 있는 상징, 함축, 여백에 끌린다. 내년 키워드는 정해졌다. 시와 그림.

 

나는 동양 사람들이 일을 포기하고 명상에 잠기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은 동양 사람들이 더 바빠요.

 

163 우리가 항상 최근에 배운 최선의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생활을 조절해 나간다면 우리는 결코 권태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천재성을 바짝 좇아가라. 그리하면 그것은 반드시 시간시간마다 새로운 경관을 보여줄 것이다.

저자의 천재성은 캠벨의 bliss같은 것.

 

171 그들은 나폴레옹이 가장 드문 용기라고 말했던 새벽 3시의 용기를 가지고 있다.

 

184 내 집 마당에는 큰 소리로 우는 수탉도 꼬꼬댁거리는 암탉도 없었다. 아니 마당 자체가 없었다. 단지 어떤 것에도 막히지 않는 자연이 바로 문턱에까지 와 있을 뿐이었다.

멋지다!

 

195 우리는 너무 얽혀 살고 있어서 서로의 길을 막기도 하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200 나는 한꺼번에 스물다섯 내지 서른 명의 영혼을 그 육체와 함께 내 지붕 아래에 받아들인 적이 여러 번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빽빽이 끼여 있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헤어지곤 했다.

영혼을 육체와 함께. 표현 독특해 진짜.

 

201 국가들처럼 개인들도 서로 적당한 크기의 널찍하고 자연스러운 경계선과 상당한 크기의 중립지대를 가져야 할 것이다.

 

202 대화가 점점 심각하고 고차원적 색채를 띠면, 우리는 의자를 조금씩 뒤로 밀어 나중에는 벽에까지 닿아 더 이상 물러날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210 그의 내부에는 동물적 인간이 주로 발달되어 있었다. 육체적 인내력과 만족이라는 면에서 그는 소나무와 바윗돌의 사촌이었다. / 그러나 그의 내부의 지적인 인간, 소위 정신적인 인간은 갓난아이처럼 잠을 자고 있었다.

 

215 이 나뭇꾼의 존재는 인생의 최하층에도 천재적인 인물들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 사람들은 비록 평생 비천하고 무식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항상 독창적인 관점에서 사물을 보며,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전혀 견해가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220 그들은 약상자 없이는 산딸기도 따러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내 말의 요지는 사람은 살아 있는 한 늘 죽음의 위협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이 처음부터 산송장과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죽음의 위험은 적다고 보아야겠지만 앉아 있는 사람이나 달리는 사람이나 위험의 정도는 똑 같은 것이다.

 

231 나는 잡초들의 섬세한 조직을 가차없이 부러뜨렸으며 괭이를 가지고 불공평한 차별대우를 행사하여 어떤 종류의 식물은 줄줄이 있는 대로 다 잘라 버리고 또 다른 종류의 식물은 세심히 보살펴주었다.

 

239 금년에 숲에 밤이 열릴 것인지 아닌지 다람쥐가 걱정을 않듯 참다운 농부는 걱정에서 벗어나 자기 밭의 생산물에 대한 독점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최소의 소출뿐만 아니라 최종의 소출도 제물로 바칠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246 첫번째 여름이 끝나가던 어느날 오후, 나는 구둣방에서 구두를 찾으려고 마을에 갔다가 체포되어 투옥을 당했다. 그 이유는 내가 다른 데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나는 의사당 문 앞에서 인간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축처럼 매매하는 국가는 그 권위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러한 국가에는 세금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그는 자신의 입장을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글로 발표했는데, 이 글은 후일 톨스토이와 간디에게 깊은 감명을 주게 된다.

아 동시대인이었구나. 저자가 1817년 생, 톨스토이가 1828년 생. 간디는 1869년 생.

 

 

298 나의 천재성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 낚시와 사냥을 가라. 날마다 멀리, 더 멀리, 또 더 멀리. 그리고 시냇가이든 난로가이든 두려워하지 말고 쉬어라. 그대의 젊은 날에 조물주를 기억하라. 새벽이 되기 전에 근심에서 깨어나서 모험을 찾아 떠나라. 낮에는 다른 호수에 가 있도록 하라. 밤이면 뭇 장소를 그대의 집으로 삼아라. 이곳보다 넓은 평야는 없으며, 여기서 하는 놀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그대의 천성에 따라 야성적으로 자라라. 여기 있는 골풀이나 고사리처럼 말이다. 그것들은 결코 영국건초는 되지 않을 것이다. 천둥이 울리면 울리도록 내버려두라. 그것이 농부의 수확을 망칠 우려가 있다 한들 어떻단 말인가?

이 단락은 구구절절 마음을 울린다. 어쩜 이렇게 글이 기운 찰까.

 

밥벌이를 그대의 직업으로 삼지 말고 도락으로 삼으라.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말라. 진취성과 신념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무르면서 사고 팔고 농노처럼 인생을 보내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는데 거꾸로 지금 하는 일을 도락으로 삼으라는 것도 좋다. 켄 윌버가 접시닦이를 일상의 명상으로 삼았듯이 나도 명상하는 마음으로 약을 달인다. 단순한 행위일수록 명상으로 삼기 좋다. 그렇게 의미를 두지 않으면 단순 노가다가 된다. ‘밥벌이를 도락으로 삼으라.’ 이 말 좋다.

 

300 자신이 내쉰 공기를 다시 들이마시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은 시들고 있다.

 

우리는 매일 먼 곳으로부터 집에 돌아와야 하겠다. 모험을 하고, 위험을 겪고, 어떤 발견을 한 끝에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성격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야 하겠다.

영웅의 귀환.  

 

302 나는 야만적인 기쁨의 야릇한 전율과 함께 그놈을 잡아 날 것으로 먹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굶주린 사냥개처럼 어떤 야생적인 동물이라도 있으면 잡아먹으려고 이상한 무아의 경지에서 숲속을 헤맨 적이 한두 차례 있다.

 

소위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과 원시적이고 상스럽고 야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본능을 발견하고 있다.

 

303 야성을 선에 못지 않게 사랑하며 낚시질에는 야성과 모험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도 낚시질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어떤 때는 삶의 야성적인 면에 빠져 들어 하루하루를 좀 더 야생동물처럼 보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저자의 낚시가 나에게는 승마인 거 같다. 말을 타는 것 역시 야성과 모험이 내포되어 있다. 동물과의 교감도. 결혼하기 전부터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승마를 가르쳐야지 했었다. 내년 1-2월에는 큰 애 승마를 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진정한 인문과학’, ‘즉 인간경험의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311 자기 자신의 천재성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은 잘못된 길에 빠지지는 않는다.

 

345 이 땅에 시의 지배가 시작되면 감자콩의 잎사귀와 열매들이 우리들의 예술작품 위에 그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364 동물은 단지 은폐된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체온으로 따듯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발견하였기에 넓은 방에 공기를 가두어 두고 그 공기를 덥게 하여 그것을 자기의 보금자리로 만든다.

 

그리하여 인간은 본능의 범위를 한두 걸음 뛰어넘고 있으며, 예술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365 이제 밥을 짓는 것은 더 이상 시적인 작업이 아니고 단순한 화학적인 작업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같이 스토브를 주로 쓰는 시대에는 과거에 우리가 감자를 구울 때 인디언처럼 재 속에 묻어서 구웠다는 사실은 곧 잊혀지고 말 것이다.

시 쓰는 작업이 아닌 시적인 작업임에 주목하자.

 

불을 피우면 그 속에는 항상 어떤 얼굴이 보인다. 노동자는 저녁에 그 불을 바라다보며 낮 동안에 쌓인 찌꺼기와 먼지를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씻어낸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371 좀 더 시간이 흐르도록 해서 그 비극이 완화되고 하늘색을 띠도록 내버려두자.

 

376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모조리 비극적인 것이었다.

 

377 우물을 덮는다는 것, 세상에 그것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우물을 덮을 때 아마 그 집 사람들의 눈에서는 눈물의 샘이 터졌으리라.

우물 덮는 장면을 상상해 보니 자못 비장하다. 상징하는 바가 크다.

 

381 이런 날에는 얼음과 눈의 무게 때문에 나뭇가지들이 축 늘어지고 그 꼭대기는 날카로운 모습이 되어 소나무들이 전나무처럼 보인다.

 

그가 고양이처럼(올빼미는 고양이의 날개 달린 사촌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눈을 반쯤 감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한 30분 지켜보고 있노라니 나 자신도 졸음이 왔다.

 

382 냉기가 내 한쪽 뺨을 때리면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다른 쪽 뺨도 내밀었다.

저자 특유의 문체. 뭔가 러셀 느낌도 나고.

 

385 죽을 나누어 먹는 행위는 우정 어린 분위기와 더불어 철학이 요구하는 맑은 정신을 제공한다는 두 가지 장점을 겸비하고 있다.

 

387 이렇게 세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로 나의 집은 부풀어서 판자가 휠 정도였다.

 

407 그들은 본능적으로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유행을 좇으며 그들과는 다른 권위를 신봉하는 야성의 인간들이다.

 

마을 사람들이 인공 지식에 밝다면 그들은 자연 지식에 밝다. 그들은 결코 책에 의존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알고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낸다.

 

416 즉 길 가는 나그네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산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그것은 절대적으로 하나의 형태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한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간위산과 산풍고(山風蠱). 간위산은 산이 두 개로 꿈쩍하지 않는 모습이고 산풍고는 산 아래 바람이 있는 것. ()는 뱃 속 벌레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산사태 등 산 내부의 흔들림으로 인해 산이 무너지는 것,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전혀 꿈쩍하지 않을 산과 같은 사람이나 상황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나그네의 걸음마다 산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한 사람의 매일 매일의 모든 행동과 그의 삶의 물결을 뚫고 그의 작은 만과 내포에 이르는 데까지 종횡으로 선을 그을 것이며, 두 선이 만나는 곳에 그의 심성의 가장 높은 부분과 깊은 부분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 산봉우리들이 그의 가슴 위에 우뚝 서서 그의 가슴에 모습을 비추고 있다면, 그것은 그의 내부에도 이에 상응하는 깊이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낮고 평평한 기슭은 그가 그 면에서 깊지 않음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421 달러 한 장마다 또 다른 한 장으로 이불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는 이 추운 겨울에 월든 호수의 유일한 외투, 아니 피부 그 자체를 벗기고 있는 것이었다.

 

425 매일 아침마다 나는 <바가바드 기타>의 경이로운 우주 생성 철학에 나의 지성을 목욕시킨다. 이 책이 쓰여진 후 신들의 시대는 갔으며, 이것에 비하면 우리의 현대 세계와 그 문학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다. 그 철학의 숭고함이 우리의 개념과는 너무나도 멀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우리의 전생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샘으로 물을 길러 간다.

그렇쟎아도 바가바드 기타를 막연하게 입에 올리고 있는데 자꾸 이렇게 찬양하시면, 저 읽게 됩니다. 꼬시지 마세요.

 

월든 호수의 맑은 물은 이제 갠지스 강의 성스러운 물과 섞이게 되었다.

월든 호수의 맑은 물은 이제 갠지스 강의 더러운 물과 섞이게 되었다. 여하튼 이것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연출하면 멋질 거 같다.

 

443 눈보라 치는 겨울날이 화창한 봄날로 바뀌며 음침하고 무기력했던 시간이 밝고 탄력 있는 시간들로 바뀌는 과정은 산천초목이 그 변화를 선언하는 중대한 전기이다. 그러나 변화는 일순간에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4계절의 변화 속에 있으면서도 하루 하루는 그 변화를 극적으로는 감지하지 못하고 흘려 보낸다. 어느 순간 보니 에어컨 켠 게 엊그제 같은데 보일러 틀고 있어. 그렇게 변화는 일순간에 일어난 것 같지만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내 인생의 변화도 마찬가지 양상일 터. 지금의 조짐을 잘 살펴야 한다.

 

447 우리 역시 보다 훌륭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전망도 훨씬 밝아지리라. 우리가 항상 현재에서 살면서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작은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과거에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 애통해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런 날은 모든 악덕에 대한 일시 휴전의 날이다.

 

452 천둥을 품은 구름

이걸 괘상으로 표현한다면? 지뢰복(地雷復)?

 

455 아픈 사람에게 의사는 현명하게도 공기와 장소를 바꾸어볼 것을 권한다. 여기 이곳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니 천만다행한 일이 아닌가?

 

기러기는 인간들보다 더 세계인에 가깝다. 그는 캐나다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은 오하이오 강에서 먹으며, 밤에는 남부 지방의 늪에서 날개를 가다듬고 잠자리에 든다.

듣고 보니 그러네. 세계인 기러기의 하루.

 

456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 속에

여지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 이 표현 좋다. 지택림(地澤臨)괘를 나는 내면 탐험의 괘로 해석했는데.

 

457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각자는 하나의 왕국의 주인이며, 그에 비하면 러시아 황제의 대제국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 얼음에 의해 남겨진 풀더미에 불과하다.

무역을 위해서가 아닌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라. 다른 차원의 실크로드. 책을 잔뜩 실은 낙타를 타고. ! 쓰다 보니 이미지가 떠오른다. ‘글 쓰는 유목민이라는 나의 타이틀에 맞는! 황소 위의 피리 부는 소년처럼, 낙타 위에서 책을 읽으며 사상을 위한 길을 개척 중인 유목민. (찾아 보니 아래와 같은 사진이!)


낙타.jpg

 

458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무런 존경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애국심에 불타서 소를 위해 대를 희생시키는 일이 있다. 그들은 자기의 무덤이 될 땅은 사랑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육신에 활력을 줄 정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애국심은 그들의 머리를 파먹고 있는 구더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

 

460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 내게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인생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그리하여 숲 생활에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쉽게 어떤 특정한 길을 밟게 되고 스스로를 위하여 다져진 길을 만들게 되는지는 놀라운 일이다.

의도적으로 살기 위해 숲에 들어간 저자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인생이 남아 있는 거 같아 숲을 떠났다. 자신의 인생을 이렇게 통제할 수 있다니!

 

461 나는 경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그는 과거를 뒤로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을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그의 주변과 내부에 확립되기 시작할 것이다.

일상의 차원에서 보자면, 그리던 바의 생활을 그럭저럭 하고 있는 편이다.

 

463 만약 당신이 공중에 누각을 쌓았더라도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누각은 원래 공중에 있어야 하니까. 이제 그 밑에 토대만 쌓으면 된다.

이런 면죄부도 좋네.

 

사람이든 버섯이든 그런 식으로 자라나지 않는다.

 

새로운 풀밭을 찾아서 다른 위로도 옮겨가는 들소는 젖 짤 시간에 통을 차서 둘러업고 울타리를 뛰어넘어 제 새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암소만큼이나 상궤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깨어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듯 말이다.

 

464 앞쪽 방면으로는 어느 정도 느슨하게, 선을 그어 놓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쪽의 우리의 윤곽을 희미하고 막연한 것으로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미래는 희미해야 한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삶이 재미가 없을 듯. 물론 주가와 부동산은 정확하게 알면 좋겠지만.

 

465 자기가 왜소한 피그미족에 속했다고 해서 가장 큰 피그미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가서 목을 매야 한단 말인가? 각자는 자기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타고난 천성에 따라 고유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466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468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나가라.

 

당신이 비록 구빈원의 신세를 지고 있더라도 그곳에서 유쾌하고 고무적이며 멋진 시간들을 가질수 있다.

 

469 자신을 개발하기 위하여 서두른 나머지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그것도 일종의 무절제이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 분석

목차만 본다면 짜임새 있다는 느낌은 없는데, <월든>이 담고 있는 내용의 가치를 생각할 때 감히 목차의 짜임새 따위를 언급할 필요가 있나 싶다. 훌륭한 18벌의 옷을 만들어 놓고 브랜드 없이 얼추 번호로 라벨링한 느낌이랄까. '숲 생활의 경제학'이 대략 1/5을 차지하는 분량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후는 여름부터 시작해서 봄으로 마무리 되는 4계절 간의 관찰, 사색,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목차에 대해 딱히 아니 감히 언급할 것이 없다. (목차가 훌륭하다는 뜻은 아니고 내용이 목차의 아쉬움을 충분히 커버한다는 뜻에서)

 

2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 –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뭘 더 보완한단 말인가. 사진보다는 삽화가 들어간 것도 좋았고, 번역도 좋았다(2003년, 강승영 번역). 클라이막스 없는 잔잔한 문체, 잔소리같은 문체, 혼자 중얼거리고 투덜거리는 문체에 담긴 방대하고 세세한 내용이 이 책의 완독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쉽고 매끄럽게 읽히기 위해 그런 거친 요소들을 다듬을 필요는 없을 거 같다. 그 다듬지 않은 거칠음이 <월든>의 매력인 것을. 

 

3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2003년 이 책을 읽고 2010년 나도 나만의 월든을 강원도에 마련했다. 저자와 같은 단절과 고립까진 아니지만 52촌이라는 타협으로 경치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월든>을 읽기 전에도 워낙 자연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남편을 만난 덕이기도 했다.

 

2017년 읽은 <월든>은 시인의 덕목인 관찰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다. 그 동안은 그저 자연 속에만 있었다면 이제는 자연 속에 가득 담긴 자유를 느끼고, 관찰하며 시를 가까이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신이 주신 '자유의지'를 헛되이 쓰지 말고 '삶을 의도대로 살게하는' 부추김이야말로 <월든>의 미덕이라 하겠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나의 강원도 월든 - 일명 치알리아(치악산+리아) - 에서는 치악산이 보인다. 치악산의 시선에서 우리 가족의 일상, 이웃들의 일상을 적어 보겠다. 내가 자연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품은 자연이 나를 관찰하는 것이다. 나의 내면, 남편의 내면, 아이들의 내면, 그리고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이웃들의 내면 관찰. 함께 하는 별과 새와 텃밭 작물들의 내면까지 관찰하는 치악산이 읊는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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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3 07:36:28 *.106.204.231

으아~~2003년에 이 책을 접했군요.

치알리아. ㅋ 온통 자기 이름으로 도배를 했군요. 근데 너무 부럽네요. 캠벨의 오두막, 소로의 오두막을 이미 가졌네요. 캠벨은 5년을, 소로는 2년을 보냈으니, 누나는 1년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바가바드 기타를 알고 있는 누나의 깊이는...

2018년을 맞이하면서 읽은 정말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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