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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0일 22시 10분 등록

월든(124째 주)

11기 정승훈

 

저자 연구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토마스 페인, 마하트마 간디와 더불어 뼛속까지 혁명적인 인물이다. 페인이 근대 혁명의 출발인 미국의 독립운동과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인 토대를 지원했다면, 간디는 현대 문명에 의존하지 않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구축하고자 했고, 소로는 일과 명예와 돈과 통념의 노예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한 현실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주체할 수 없는 끓는 피를 소유하고 있었다. 페인이 정치적 혁명가였다면, 간디는 다분히 종교적인 혁명가였고, 소로는 문학적인 혁명가였다. 소로의 혁명이 은근히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문학적이고 개인적인 혁명은 자칫 혁명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소로가 숲속에 혼자서 둥지를 튼 것부터가 혁명과는 도통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 통념의 뿌리를 흔드는 혁명이었다. 사회 속에서 부지런히 일해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로의 부모는 성격이 서로 정반대였지만 매우 잘 어울리는 부부였다. 아버지는 조용하고 겸손하고 친절했으며, 어머니는 재치있고 총명하고 쾌활했다. 그들은 허세 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문학과 학식을 중히 여겼다. 노예제 폐지가 메사추세츠에서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자 소로의 부모는 자신의 집을 노예폐지론자들의 모임 장소로 빌려주었다. 소로의 부모는 또 산책하면서 자연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부모의 성격과 취미가 자식들에게 그대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헨리의 위로는 누나 헬렌과 형 존이 있었고, 여동생 소피아가 있었다. 헨리는 형과 함께 인디언 흉내를 내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형제들과 사이가 좋으면서도 헨리는 혼자 사색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열두 살 무렵부터 홀로 엽총이나 낚싯대를 메고 인적 없는 후미진 숲과 강 주위를 휘젓고 다녔다. 어린 시절에 월든 호수를 방문하기도 했다. 호수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는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1837년 랠프 왈도 에머슨과의 만남은 소로에게 일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들이 만나게 되는 과정은 상당히 재미있다. 소로의 여동생 소피아가 에머슨의 처형 루시 브라운과 함께 에머슨의 강연을 들었는데, 강연 내용이 오빠가 쓴 글과 같았던 것이다. 이에 소피아가 브라운 부인에게 그 글을 보여주었고, 그 글이 에머슨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49일 집으로 찾아온 소로를 보는 순간 에머슨은 소로가 예사로운 젊은이가 아님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소로는 본래 매사에 냉담한 듯한 태도를 보였으나, 이 뛰어난 지성인 앞에서는 특별히 생기발랄해졌다. 에머슨은 소로의 입에서 사회와 종교에 대한 탁월한 견해,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쏟아져나올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우정은 시작되었고, 약간의 굴곡이 있긴 했지만 소로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833년 열여섯 살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뒤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소로의 말에 따르면 그의 대학 시절이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 듯하다. 그는 나의 육신은 하버드 대학의 일원이었지만, 내 마음과 혼은 소년 시절의 정경으로 멀리 떠나 있었다. 공부하는 데 헌신해야 할 시간들이 내 고향 마을의 숲을 찾아 헤매고 호수와 시내를 탐험하는 데 소비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로는 대학에서 비교적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가 1843년의 어느 편지에서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은 주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대학 시절이 그에게 문필가이자 강사로서의 능력을 부여한 기간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출처 ; <월든>의 작가 (인물세계사)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출생. 하버드대학교 졸업 후에 토지측량을 하기도 하고 가업인 연필 제조의 일을 돕다가, 1837년 선배인 에머슨을 알게 되어 그의 집에서 3년간을 기거하며 초월주의자 그룹’, 즉 콩코드 집단에 가담, 기관지 다이얼에 번역물이나 논문을 실었다.

 

1845년 여름부터 1847년 가을에 걸친 월든 호반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쓴 숲속의 생활 Walden, or Life in the Woods(1854)은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그가 죽은 뒤에 나온 메인의 숲이나 코드 곶(1865)은 그의 순수 자연에의 접근의 기록이며, 일기(14, 1906)는 엄격한 자연관찰의 정점을 보여준 기록이다.

 

소로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18467월 멕시코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人頭稅)의 납부를 거절한 죄로 투옥당했으나, 그때의 경험을 기초로 쓴 시민의 반항 One Civil Disobedience(1849)은 후에 간디의 운동 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850년 의회에서 통과한 도망노예법에 반대하여 1854년 보스턴에서 강연을 하였고, 다시 1859년 하퍼즈 페리의 반란에 즈음하여 존 브라운 대위 변호를 여러 곳에서 강연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

 

번역가 한기찬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자 번역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캐럴 실즈의 가장 가깝지만 가장 알 수 없는 그녀를 비롯해 반지의 제왕》《대지의 기둥》《살렘스 롯등 영미소설은 물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지식의 지배》《카뮈, 지상의 인간등 다양한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첫 번째 이야기 삶의 경제학

나는 그때 오로지 내 두 손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내가 그곳에 산 것은 22개월 동안이었다. (8)

자급자족의 생활을 2년을 넘게 하며 살았다. 캠벨은 우드스톡에서 5년을 살며 책을 읽었다. 대공황시절 저렴한 월세 때문이었겠지만 소로를 알지 않았을까.

도회지 사람들이 내 생활방식에 대해 이런저런 질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독자들에게 내 일을 구구하게 늘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8)

도회지 사람들은 궁금했을 것이다. 어떻게 지냈는지, 무엇을 했는지 등등.

나는 모든 작가들에게도 남의 삶에 대해 들은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 단순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를 하도록 당부하는 바이다. (9)

그렇다. 나도 이제 내가 경험한 것들을 쓰려고 한다.

비교적 자유롭다는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한 무지와 오해 때문에 있지도 않은 근심과 필요 이상으로 거친 삶의 노고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보다 감미로운 삶의 열매를 맛보지 못하고 있다. (12)

1800년대 사람이 하는 말인데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이란 발전하는 것 같지만 아닌 모양이다.

자신이 병들었을 때를 대비하여 돈을 벌어 그곳이 어디든 또 액수가 얼마든 낡은 궤짝이나 회벽 뒤의 양말 속, 또는 좀더 안전하게 은행 속에 쑤셔넣으려다 결국 스스로 병들고 만다. (13)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작정 젊은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이를 먹음으로써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 실제로 나이 든 이가 젊은이에게 해줄 중요한 충고라고는 없다. (15)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 먹으면 젊은이에게 뭔가 이야기를 한다. 젊은이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그래서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다.

히포크라테스는 손톱을 깎는 방법까지 지침으로 남겨 놓았는데, 손톱의 길이는 손 끝에 맞춰 고르게 잘라야 하며 그보다 더 짧거나 길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확실히 인생의 다양성과 기쁨을 모두 소진시킬 정도의 권태와 싫증은 아담만큼이나 오래된 것 같다. (16)

손톱 길이도 정해놓았다니 지금으로선 이해가 안 된다. 아마 지금 너무도 당연하게 규제하고 있는 것들이 먼 훗날엔 이해 안 되는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연은 우리의 강점은 물론 약점에도 어울리게 마련이다. (18)

결국 인간의 몸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온기를 유지하는 일, 체내에 생명의 열을 유지시켜 주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는 식량과 의복과 주거뿐만 아니라 밤의 의복인 잠자리를 확보하는 데도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20)

4차 산업혁명 강사 중 기후에 관련해서 이야기하며 태양광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아무리 산업이 발전해도 사람의 에너지는 식량이라고 했다. 그와 같은 맥락이다.

현명치 못한 몇몇 사람들은 지구 저편의 미개하고 비위생적인 곳까지 건너가서 10년이나 20년을 무역에 종사하는데, 그 목적은 결국 뉴잉글랜드의 안락한 온기 속에서 살다가 죽기 위해서인 것이다. (21)

인간이 대지에 이토록 단단히 뿌리를 내린 이유는 바로 그 정도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기 위함일 것이다. (23)

나는 날씨에 상관없이 하루 중 어느 때에도 그 한순간을 이용하여 기록으로 남기려 열망해 왔다. (24)

내가 월든 호수에 간 것은 보다 싼 생활비로 살기 위해서라거나 화려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방해 없이 나만의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27)

독특한 사람이다. 캠벨도 자신만의 시간과 방해받지 않고 책을 읽기 위해서였지만 월세가 싼 이유도 있었다.

나는 일반적으로 필요한 자금조차 없이 이 일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수단을 어디서 얻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29)

나는 기운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낮춰본 적이 없다. (29)

의복은 몸을 덥히고 벗고 지낼 수는 없기에 입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겐 당연한 것이다.

어떤 개는 옷을 입고 주인집에 들어오는 낯선 사람을 보면 짖어대다가도 발가벗은 도둑을 보면 짖지 않았다고 한다. (30)

마침내 할 만한 일을 찾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 일을 하기 위해 새옷을 장만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오랫동안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헌옷을 입더라도 그 일을 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31)

새옷을 입는 일보다는 새옷이 필요한 일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새롭지 않은데 어떻게 새옷이 잘 맞을 수 있겠는가? (31)

~ 나를 점검해봐야 하는 거다. 새옷이 필요한 일이란 걸 저자는 뭐로 생각한 것일까. 아마 뭔가 권위 있는 직책 같은 거 아닐까.

인간은 미의 여신도 운명의 여신도 아닌 유행의 여신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33)

어느 세대든 구세대를 비웃으면서도 거의 종교적인 열정으로 새것으로 추종한다. (34)

옷을 보아도 우습지 않게 하고 그것을 입은 사람을 성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은 입은 사람의 진지한 눈빛과 그 사람의 성실한 삶뿐이다. (34)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런 눈빛을 가졌다면 함부로 할 수 없고 특히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더 할 것이다.

그때 철로가에 있던 길이 6피트에 폭 3피트짜리 상자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인부들이 밤에 연장을 넣어두는 곳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몹시 쪼들리는 사람이라면 저런 것을 1달러에 사서 최소한의 공기가 들어오도록 구멍을 몇 개 뚫은 다음 비가 오거나 밤이면 그 속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으면 자신이 사랑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은 물론 영혼까지 자유로워질 거라는 생각을 했다. (37)

지하철 역사에 있는 노숙자들이 생각난다. 소로가 봤다면 자기가 생각한 것일 줄 알겠다.

어느 곳보다도 문명화된 대도시에서는 집을 가진 사람의 수가 전체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38)

이 지역의 평균치 주택값은 대략 800달러 정도로서, 그 정도의 금액을 모으기 위해서는 부양가족이 없는 노동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10년에서 15년을 바쳐야 한다(이는 사람에 따라 다소간 차이는 있지만 노동을 금액으로 환산한 가치를 하루 1달러로 계산한 것이다). (39)

난 숫자에 약해 그 당시의 하루 1달러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10년에서 15년이면 주택을 마련한다는 것이 IMF 전 한국의 상황과 비슷해서 신기하다. 물론 지금은 택도 없는 이야기가 됐지만.

집을 소유한 농부는 집 때문에 더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질 뿐이며, 오히려 집이 그를 소유한 셈이 되고 만다. (42)

시대가 지나도 전혀 읽는 데 맞지 않다고 할 수 없는 것들을 다루는 저자의 통찰이 놀랍다. 어쩜 후세의 나와 같은 사람이 읽을 것을 알고 쓴 것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하우스 푸어에 해당하는 말이다.

한 계층의 사치스런 삶은 다른 계층의 빈곤을 야기한다. 한쪽에는 궁전이, 다른 한쪽에는 빈민수용소와 묵묵하게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43)

피케티는 그래서 결국엔 공멸한다고 했다. 상위 0.1%90%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극명한 양극화는 0.1%를 위해서도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들이 인정할지 모르겠다.

오로라의 붉은 빛과 멤논의 음악이 울리는 아침에 인간이 해야 할 일이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전에 책상 위에 석회암 조각 세 점을 놓았다가, 내 마음속에 있는 가구들 먼지조차 아직 털지 않았는데 매일같이 그것들의 먼지를 털어야 한다는 사실에 질겁을 해서 넌더리를 내며 창 밖으로 집어던진 일이 있다. (45)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도 너무 많은 가구와 물건들이 있다. 요즘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도 혼자 산다면 그렇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살고 싶기도 하다. 아침 시간에 청소와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을 끝내고 나야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왜냐 기본적으로 해야 할 집안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산다면 이런 집안일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는데...

현세를 위해서는 가족의 저택을, 내세를 위해서는 가족 묘지를 지었다. (46)

집 안을 아름다운 물건으로 장식하기 전에 먼저 벽을 깨끗이 치우고 우리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아름다운 살림과 아름다운 생활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47)

상쾌한 봄날이 되자 겨우내 품었던 불만은 대지와 함께 녹아 버렸고 굼뜬 생활도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50)

그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얼굴빛으로 집을 칠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집이 당신을 대신해서 창백해지거나 얼굴을 붉힐 수 있게 말이다. (57)

독특한 생각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집이 필요한 학생이면 현재 매년 집세로 지불하는 돈만 가지고도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9)

이 비교는 잘못된 거 아닌가. 도시의 집세와 시골의 집을 같은 위치에 놓고 따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자가 말하는 집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자신이 캐내어 녹인 광석에서 잭나이프를 만든 아이와(그는 그 과정을 배우기 위해 필요한 책을 읽는다), 대학에서 야금학 강의에 출석하면서 아버지에게서 로저스제 주머니칼을 선물로 받은 아이 둘을 놓고 한 달이 지나면 어느 쪽이 더 많은 발전을 이룩했을까? (61)

삶에서 배운 지식과 책으로 배운 지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가장 빠른 여행은 바로 자기 발로 가는 것임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62)

그것은 만약 인간이 소박하게 살면서 자신이 농사지은 것만 먹고, 자신이 먹을 만큼만 농사지으며 더 호사롭고 값비싼 데다 양도 얼마 되지 않는 식량과 바꾸어 먹지만 않는다면 몇 라드의 땅에 곡물을 재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65)

자급자족이 된다는 거네.

우리 마을에는 근방에서 가장 큰 축사가 있다고 하고 공공건물 역시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편이지만, 그럼에도 우리 카운티에는 종교의 자유라든가 언론의 자유를 위한 시설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67)

야만적이고 이교적인 종교와 문명은 웅장한 신전을 짓지만, 기독교에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한 미족이 다듬는 돌의 대부분은 그것의 무덤에 쓰일 뿐이다. (68)

한국에서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웅장한 신전(교회)를 짓고 있는데…….

다른 한편으로 이 생활에서 여가와 독립과 건강을 확보한 것 이외에도 내가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는 안락한 집도 얻었던 것이다. (71)

경제생활을 이렇게까지 기록하고 점검하다니 참 꼼꼼한 사람이다. 하긴 이걸 실험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인도 철학에 그토록 매료된 내가 쌀을 주식으로 삼는 것은 당연했다. ... 인간은 동물처럼 소박한 식사를 할 수도 있으며, 그렇더라도 건강과 체력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인간은 종종 굶는 것은 꼭 필요한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치스러운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72)

소박한 식사가 아니라 너무 과한 식사가 건강을 해치고 있다.

한때는 지갑이 비어서 한 달 이상이나 빵을 구경조차 못했던 적도 있었다. (75)

농부들은 대부분 자신이 산출한 농작물을 소나 돼지에게 먹이고는 건강에도 좋을 것 없고 값도 더 비싼 밀가루를 상점에서 사고 있다. (75)

가축에게 심지어 유전자 변이 옥수수를 먹이고 있다. 그걸 인간이 다시 먹으므로 결국 유전자 변이 옥수수를 인간이 먹는 것이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어떤 청년이 2주 동안 자신의 치아를 약절구삼아 이삭이 붙은 딱딱한 날옥수수만 먹고사는 실험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바이다. (76)

너무 가난한 나머지 호박 위에 앉아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건 가난한 것이 아니라 주변머리가 없는 것이다. 마을 집집마다 다락방에는 치워 버렸으면 딱 좋을 것 같은 의자들이 잔뜩 있다. (77)

집을 넓혀 가면 거기에 맞춰서 가구를 들인다. 점점 더 많아진다.

우리가 이사를 하는 것도 바로 우리의 가구, 우리의 허물을 없애버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77)

이사를 떠난 집에 가구가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버리고 가는 것으로 끝이면 다행인데 대부분 새 가구를 사서 새로 이사 가는 집에 넣을 것이다.

커튼으로는 돈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말도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해와 달을 제외하면 안을 들여다볼 사람도 없고 해와 달이 들여다보는 것은 오히려 바라는 바이기 때문이다. (79)

나는 5년 이상을 이런 식으로 오직 내 손의 노동으로 먹고살았으며, 그 결과 1년에 6주 가량 일을 하면 모든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81)

저자의 생계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직접 일궈서 먹고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곳의 공통점은 과소비하지 않고 먹거리도 자급할 수 있는 것으로 제한을 둔다. 어쩜 그 길이 자본주의의 양극화에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신념이 있는 사람은 어딜 가든 똑같은 신념으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같이 보인다. 반면, 신념이 없는 사람은 어떤 무리에 속하든 세상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갈 것이다. (84)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자선에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 선행이라는 일자리는 이미 만원이다. 게다가 나도 그 일이라면 꽤 해본 편인데,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일이 내 체질과 맞지 않는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85)

변질된 선에서 솟는 것만큼 지독한 악취도 없다. (87)

우리는 참 여러 경우에서 이런 사람들을 봤다. 꽃마을 신부, 사랑의 열매 등 선행을 가장하고 기만했다. 사람들에게 불신만을 만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쓰는 사람이 어쩌면 자신의 생활방식을 통해 그가 구하고자 하는 그 비참한 상황을 가장 열심히 더 만들어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 명의 노예를 판 수익금으로 나머지 아홉 명의 노예들에게 일요일만 자유를 주는 위선적인 노예 주인과 다를 바 없다. (88)

인간의 선함이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행위여서는 안 되며, 그것은 늘 남아도는 것, 그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의식적이지도 않은 행위여야 하는 것이다. (90)

청예단 전화 봉사를 해보니 18기나 모집을 했지만 4명의 자리가 다 차는 시간이 많지 않더라. 결국 선함의 행위가 아닌 본인의 캐리어를 위한 시간이다. 물론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사정도 알고, 그렇게 해서 도움이 되긴 하지만 책임감 있는 모습은 아니다. 나 역시 시작은 사례를 알기 위함이었지만, 별 일 없으면 꾸준히 지속하려고 한다.

부득이 이런 자선행위를 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 그것은 알릴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91)

그러게. 당연한 것인데 안 그런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이마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몰아내고 숨구멍마다 조금이나마 생명력을 불어 넣어 보자. 가난한 자의 감독이 되려 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자. (92)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살았던 장소와 삶의 목적 95

가능한 한 오래도록 자유롭게, 아무런 의무도 없는 삶을 영위하라는 것이다. 농장에 묶이든 감옥에 갇히든 별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100)

물질적인 것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매이게 된다. 전전긍긍한다.

여기서는 바람을 쐬러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었는데, 집 안 공기가 신선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2)

이 부분을 보니, 권정생 작가가 생각난다. 생쥐가 드나드는 방, 아니 오히려 생쥐를 위해 먹을 것을 둔 작가였다. 본인이 살던 집을 자신이 죽으면 없애라고 했다. 물론 남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 생가로 남아있다.

근처에 물이 있으면, 좋은 점은 그 부력으로 땅을 띄워 준다는 것이다. (103)

이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근처에 물이 있으면 좋은 건 사실이다.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호수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것은 거의 종교적 행사나 다름없었으며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었다. (106)

베다에서도 모든 지성은 아침과 더불어 잠을 깬다고 말하고 있다. 시와 예술, 인간 활동의 가장 훌륭하고 기념할 만한 것은 바로 이 한 시간에서 비롯된다. (107)

이름을 남긴 많은 사람들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든데…….

내가 숲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08)

뉴스라니! 시간이 흘러도 결코 낡지 않은 것을 아는 것이 그것보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는가! (113)

TV가 없어 뉴스를 듣지 못한다. 사는데 지장 없다. 물론 시사에 밝지 않은 사람 취급을 당하긴 한다.

시간이란 내가 낚시하는 냇물일 뿐이다. 나는 그 물을 마시지만, 물을 마시는 동안 모래가 깔린 바닥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얕은지를 알게 된다. 시간의 얕은 흐름은 이내 흘러가고 만다. (117)

 

세 번째 이야기 독서

자신의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조금만 더 신중을 꾀한다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학생이나 관찰자가 되려고 할 텐데, 그것은 누구나 자신들의 본성과 운명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120)

고전이란 인간의 사상 중에 가장 고귀한 내용을 기록한 것에 다름아닐 테니까. 고전은 사멸되지 않은 유일한 신탁이며 가장 현대적인 질문에도 델포이나 도도나 신전조차 주지 못한 해답을 줄 것이다. (122)

저자가 이야기하는 고전은 그리스시대의 글을 말하는 것이다. 서구에서의 그리스 시대의 동경은 상상초월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 때마다 보물함 속에 일리아스를 넣어 지니고 다녔던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글로 적힌 말은 유물의 꽃이다. (124)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은 아직 인류가 제대로 읽은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위대한 시인만이 그것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6)

이런~ 위대한 시인이 현 시대엔 없다는 거네.

우리는 상스럽고 비천한 삶을 영위하는 무식한 인간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나는 책이라곤 전혀 읽지 못한 우리 마을 사람들의 무지함과, 아이들과 저능한 이들을 위한 책만 읽도록 배운 사람들의 무지함 사이에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하겠다. ... 우리는 소인 족이며 우리의 지적 능력은 일간신문의 칼럼 이상 날아오른 적이 없다. (129)

겨울에는 빈사 상태나 다름없는 문화회관과 나중에 주 정부가 마련해 준 어설픈 도서관을 제외하면 어른들을 위한 이렇다 할 교육시설은 없는 형편이다. 요컨대 정신적 질병보다는 육체적 질병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이다. (131)

선각자는 선각자다. 그 시기에 평생교육에 관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네 번째 이야기 삶의 소리

나는 삶의 여백을 아낀다. 여름날 아침에는 습관이 된 목욕을 마친 후 해뜰녘부터 정오까지 볕 잘 드는 문간에 앉아 소나무와 히코리나무, 옻나무에 둘러싸여 평온한 고독과 정적 속에서 몽상에 잠기곤 했다. (135)

나도 한번쯤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아무 계획없이 자연을 바라보며 지내는 삶. 지겨워서 못 견디려나.

나는 동양인들이 명상에 잠기느라 일을 하지 않는 참뜻을 이해했다. (135)

동양인 모두가 명상을 하진 않는데……. 명상을 하는 분들은 그 시간을 확실히 빼놓고 생활하더라.

집안일은 시간을 보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것이었다. (136)

정말? 난 아닌데. 집안일은 최소한의 것만을 한다. 나의 일 중 중요도에서 밀린다.

물건들 위로 햇살이 내리쬐고 그 위로 바람이 거침없이 지나는 소리를 듣는 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었다. (136)

이런 걸 집안일이라고 생각한 거구나. 저자와 나의 집안일은 다르다. 나도 햇살 좋은 날 침대는 내놓고 싶다.

기차가 이처럼 규칙적으로 정확하게 오가고 그 기적 소리가 멀리까지 울리게 되자 농부들은 그 소리에 시계를 맞추고, 그럼으로써 일사불란한 하나의 제도가 온 나라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142)

그렇다. 모든 시작은 증기 기관차로부터 시작되었다.

저녁때 숲 저편 멀리 지평선에서 들려오는 암소 우는 소리는 너무도 감미롭고 아름다워서, 처음에는 그 소리를 산과 골짜기를 떠돌며 세레나데를 부르는 어느 가수들이 내는 소리인 줄로만 알았다. (148)

새들은 거의 시계처럼 정확하게, 매일 저녁 해가 지는 시각에서 5분 안에 지저귀기 시작한다. (149)

모든 동물은 몸 안에 생채 시계가 내장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사이에 호숫가는 온통 황소개구리의 요란한 울음소리로 뒤덮이는데, 이들은 고대 술고래와 술꾼들의 정령들로서 여전히 뉘우칠 줄 모르고 이 지옥 같은 호수에서(월든 호수의 요정들이 이런 비유를 용서해 주기를, 아무튼 이곳에는 잡풀은 거의 없는 대신 개구리들은 잔뜩 있었으니까) 돌림노래를 해보려 애쓰고 있다. (151)

개구리를 술고래와 술꾼의 정령으로 보는 구나. 여름날 개구리 울음소리는 나쁘지 않은데…….

만약 길들이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방목할 수만 있다면 닭의 울음소리는 얼마 가지 않아서 암기러기 소리나 올빼미 소리를 능가하는, 우리 숲에서 가장 뛰어난 소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수탉이 낭랑한 목청을 잠시 쉴 때면 암탉이 꼬꼬댁거리며 그 빈자리를 메워줄 것을 생각해 보라! (152)

엄청난 소음일 텐데……. 언젠가 수탉의 울음소리 때문에 새벽에 잠을 못 자본 나로서는 절대 환상적인 소리가 아니었다. 저자도 수탉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 하는 소리다.

 

다섯 번째 이야기 고독

그 정도만이 아니라, 종종 파이프 담배 냄새를 맡고도 300야드쯤 떨어진 큰길을 누군가 지나간다는 사실도 알아채곤 했다. (157)

변화가 없는 곳에 조금의 변화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는 걸까.

가장 가까운 이웃도 1마일이나 떨어져 있고, 심지어 내 집에서 반 마일 떨어진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으면 인가를 전혀 볼 수가 없다. (157)

나는 외로움을 느낀 적도, 고독감이 엄습한 적도 없었지만, 언젠가 내가 숲에 들어온 지 몇 주일이 지났을 때 가까이에 있는 이웃이 평화롭고 건전한 삶에 필수 요소는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은 적이 있었다. (159)

외로움, 고독감이 없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니 2년을 넘게 살 수 있었던 거겠지만.

정신의 의식적인 노력으로써 행위와 행위의 결과에서 초연할 수가 있으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급류처럼 우리 곁을 지나쳐가게 된다. (163)

해탈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네. 나는 이 정도는 아니지만 어떤 일을 선택해야할 때 모두 좋고 모두 나쁜 선택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좋지 않은 선택도 지나고 나면 잘한 선택일 때도 있더라. 그러니 그 당시에 최선이라 생각하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상대라도 함께 있으면 싫증이 나고 좋아하는 감정도 식게 마련이다. 나는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고독만큼 상대하기 좋은 친구를 보지 못했다. (164)

연예인을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네. 가까이 있을 수 없으니 싫증이 날 수 없다. 아무리 외향형의 사람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은 필요하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더라. 사람들을 만나서 에너지를 얻지만 때론 홀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그 만남도 의미가 있더라.

, 아침의 대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샘인 이 대기를 마시지 않는다면 병 속에 담아 상점에서 팔아야 할 것이다. (167)

이럴 날이 얼마 안 남았다. 요즘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카페가 외국에는 있다고 들었다.

 

여섯 번째 이야기 손님들

나는 천성적으로 은둔자는 아니어서 마침 술집에 무슨 볼일이 생기면 그 술집에서 가장 질긴 단골보다 더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었는데, 하나는 고독을 위한 의자, 둘은 우정을 위한 의자, 셋은 친교를 위한 의자였다. (170)

어디선가 이 대목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내 집에서는 서로 너무 근접해 있어야 했기 때문에 결국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상대방에게 들릴 만큼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기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건 마치 잔잔한 수면에 돌멩이 두 개를 너무 가까이로 던지면 서로 파문을 간섭하는 것과도 같다. (171)

집 크기가 3*5m라고 하던데 그럴 만하겠다.

그들이 이르러 그 작은 집을 채우지만

원래 없었던 환대를 새삼 바라지도 않는다네.

휴식이 그들의 잔치이며 모든 일은 마음대로,

가장 고귀한 정신만이 가장 흡족해 하리니.“ (173)

나는 숲에 살면서 내 평생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손님을 맞았다. ... 사소한 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이 점에서 볼 때 마을에서 멀다는 이유만으로도 손님이 선별된 셈이었다. (175)

궁금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그가 내 관심을 끈 것은 그처럼 말이 없는 외톨이면서도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177)

그는 너무도 순수하고 천진해서, 마못 한 마리를 이웃에게 소개해야 할 때처럼 소개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179)

이건 순수하고 천진한 것보다 단순한 거 아닐까. 여하튼 복잡하지 않고 명쾌한 건 순수한 것과 통하니까.

내가 그의 생활방식을 조금이라도 개선할라치면 그는 전혀 후회하는 기색 없이 그러기엔 너무 늦었노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직성 같은 미덕들만큼은 철저히 신봉했다. (182)

나는 개개의 손님들이 갖고 있는 특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과 젊은 여자들은 대체로 숲속에 들어온 일을 기뻐하는 것 같았다. (185)

늙고 병든 사람들과 소심한 이들은 나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질병과 불의의 사고와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185)

맞다. 너무 걱정이 많고 세상은 온통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뉴스를 봐도 그런 내용만을 보며 걱정한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으면 피곤하다. 결혼하기 전에 회식으로 늦으면 엄마가 택시도 위험하고 여자들 밤늦게 다니다 사고 난다고 걱정하셨다. 그럼 난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에 있다가도 사고 난다고. 평생을 그러고 사시니 본인은 익숙해서 괜찮은지 모르지만 듣는 사람은 여전히 괴롭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언제나 죽을 위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죽은 거나 다름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거기에 비례해서 죽을 가망이 훨씬 적은 것은 확실할 테지만 말이다. (186)

 

일곱 번째 이야기 콩밭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긴 했으나 내 콩팥을, 내 콩을 사랑하게 되었다. (190)

네 살 때 나는 보스턴에서 내 고향이 된 이 마을로 이사를 했는데, 그때 바로 이 숲과 이 들, 이 호수를 지나간 것을 선명히 기억한다. 그것은 내 기억에 각인된 가장 오래된 장면이기도 하다. (191)

이런 계기가 있어서 장소를 여기로 정한거구나. 어쩐지. 그런데 4살 때라니.

말이나 소를 거의 쓰지 않고 어른이든 아이든 고용하지 않았으며 개량 농기구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내 일은 더할 나위 없이 더뎠는데, 덕분에 콩들과는 여느 때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192)

사실이지 내 밭은 야생 들판과 경작지 사이의 연결 고리였던 셈이다. 개발국도 있고 준개발국도 있으며 미개국이나 야만국도 있는 것처럼, 내 밭은 나쁘지 않은 의미에서 준개발된 밭이었다. (194)

저자는 콩을 경작하는 것을 마치 본인의 의례처럼 한 것 같다. 그러니 비료도 심는 시기도 중요하지 않았던 거겠지.

괭이가 돌에 부딪혀 쨍그랑 소리를 내면 그 음악 소리가 숲과 하늘로 메아리쳐서, 순식간에 무한대의 수확을 거두는 내 노동에 반주 역할을 했다. 이제 내가 매고 있는 것은 콩도 아니고 콩을 매고 있는 사람도 내가 아니었다. (195)

이런 표현은 동양적 표현이다. 물아일체. 우리에겐 너무도 익숙한데 서구에선 새로운 표현이라 여겼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잡초의 섬세한 조직을 가차없이 교란시키고 괭이로 불쾌하기 짝이 없는 차별을 행사하며 어느 한 종은 속속들이 깔아뭉개면서도 또 어느 종은 꼼꼼하게 가꿔 주어야 하는 것이다. (197)

농사를 하면 원래 농작물은 잘 안자라는 것 같고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생기고 자고 나면 쑥쑥 자라있다. 특히 줄기만 자르면 말라 죽는 게 있는가 하면 뿌리째 뽑아야 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 요즘 검정비닐을 바닥에 깔고 작물을 심는다. 그러면 풀이 자라지 않는다. 그 비닐이 또 다른 폐기물이다. 유기농 농산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같이 콩들은 괭이로 무장한 내가 자신들을 구해주러 그곳에 와서는 적들을 솎아내고 참호를 잡초의 시체로 메우는 것을 보았다. (198)

역시나~

나는, 다음번 여름에는 콩과 옥수수만 그렇게 열심히 심을 게 아니라 아직 그 종자를 잃어버리지만 않았다면 성실, 진리, 우직함, 믿음, 순수와 같은 씨앗도 심으리라고, 그래서 설혹 노고와 거름을 덜 주더라도 그 씨앗이 이 토양에서 자라나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지 알아보겠노라고 생각했다(왜냐하면 그런 작물을 키우는 데는 그렇게 지력이 떨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200)

그런데 성실, 진리, 우직함, 믿음, 순수 같은 씨앗을 심고 가꾸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궁금하네. 그 다음 단락을 보니 결국 벌레에 먹히거나 생명력을 잃었다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의미일지 궁금하다. 저자의 성향상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라 여겼는데.

우리는 왜 종자용 씨앗에만 관심이 있고, 인간의 새로운 세대에 관해서는 무관심한 걸까? (201)

지금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교육시키고 돈 들이고 있지만 뭘 위해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남들이 하니까, 그렇게 안 하면 안 될 것 같으니까 하는 거다. 우린 언젠가부터 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설혹 아이들이 왜?라고 물으면 그냥 해라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다면서. 하지만 나중에도 알지 못한다.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지금 알아야 한다. 지금 알아야 할 이유가 생기는 거다. 하긴 그 답을 모르니 그냥 해라고 하는 거겠지.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땅을 재산이나 부의 주된 획득 수단으로 보는 천박한 습성에 의해(어느 누구도 헤어나지 못하는) 풍경은 일그러지고 농사는 우리와 더불어 타락하며 농부는 가장 비천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203)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바로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주변의 보잘 것 없는 것들로 이야기를 꺼내면서 결국엔 이런 큰 의미를 던진다.

참된 농부라면 다람쥐가 올해 숲에 밤이 열릴지 걱정하지 않듯이, 아무 걱정 없이 밭이 생산하는 작물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포기하고 최초의 열매뿐 아니라 마지막 열매까지도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매일매일의 노동을 마칠 것이다. (204)

인간만큼 욕심 많은 동물이 없다. 그러기에 지금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편리라는 이유로.

 

여덟 번째 이야기 마을

새와 다람쥐를 보려고 숲속을 걸었다면, 어른과 아이들을 보려고 마을을 걸어다닌 셈이었다. (206)

마을에서 늦도록 있다가 밤 속으로 걸음을 내디딜 때, 그것도 특히 칠흑처럼 캄캄하고 폭풍우가 몰아칠 때 마을의 환한 응접실이나 강연장을 나와 호밀이나 옥수수가루 한 자루를 둘러메고 숲속에 있는 나의 아늑한 항구로 항해할 때는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209)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을 숲속으로 가면서 항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다니, 그것도 상쾌하다니. 겁이 나고 귀찮은 게 보통일 텐데. 왠지 뚱냥이를 보는 것 같다. 글 쓰는 것도 그렇고.

짙은 어둠은 칼로 자를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마을 안 거리에서조차 길을 잃는 경우가 많다는 말도 들었다. (210)
길을 잃어 보기 전에는, 다시 말해서 세상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찾아내지도,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와 자신이 맺고 있는 무한한 관계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 (211)

사실이지 나는 효과가 있든 없든 무력 저항을 할 수도 있었고, 사회에 대해 거칠게 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사회가 내게 함부로 굴도록 내버려두는 쪽을 선택했다. 절망에 빠진 것은 사회였으니 말이다. (211)

일본 책 중 [남쪽으로 튀어!]의 아빠가 생각난다. 그 아빠는 신분증을 만들지 않았다. 국가란 폭력에 대항하는 한 방법이었다. 현실에서도 주민등록증을 만들지 않던 청년이 있었다. 군대도 안 가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국가와 사회의 폭력적인, 순응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다.

만약 모든 사람이 그 당시의 나처럼 소박한 삶을 영위할 수만 있다면 절도나 강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212)

 

아홉 번째 이야기 호수

흔히 있는 일이지만 이야기를 나눌 만한 상대가 아무도 없을 때면 나는 곧잘 노로 뱃전을 두드려 메아리를 만들곤 했다. (215)

월든의 풍경은 수수한 규모이며 아주 아름답기는 하지만 장엄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곳을 찾거나 그 물가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면 관심을 가질 만한 것도 없다. (217)

월든은 소로 덕분에 유명해졌겠다.

이 호수는 수정처럼 그지없이 맑아서 그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의 몸이 기이할 정도로 석고와 같은 순백색을 띠면서 그럼에도 팔다리는 확대되고 일그러져 보이기 때문에 거의 기괴한 효과를 자아낼 정도이다. (219)

수위가 올라가는 것은 한 번, 수위가 떨어지는 것은 부분적이긴 해도 두 번 관찰했기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12년이나 15년 후에 수면이 다시 한 번 내가 알고 있는 최저 수위까지 낮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223)

관찰력이 대단하다. 기억력 또한.

호수는 이와 같은 수위 변동으로써 물가에 대한 소유권을 내세운다. 이런 식으로 물가는 탈취당하고 수목들은 그것을 점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물가를 차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수염이 없는 호수의 입술인 셈이다. (223)

호수의 이름이 영국에 있는 어떤 지명(예를 들면 새프론 월든 같은 곳)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면, 호수의 원래 이름이 월드인 폰드’(돌담으로 에워싸인 호수)였을 것이며 그 이름도 거기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25)

송파의 석촌과 비슷한 것 같다. 돌이 많은 동네여서 석촌이라는 지명이 붙여졌다고 한다.

여름철 호숫가에서 일주일 가량 야영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 호숫물 한 통을 야영지 나무 그늘에 몇 피트 정도의 깊이로 묻어 두기만 하면 얼음이라는 사치가 굳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226)

호숫물이라면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왠지 더러울 것 같다. 내가 본 호수는 그랬으니까. 그런데 월든 호숫물은 아닌가 보다.

언덕 꼭대기에서 보면 호수 거의 어디서나 물고기가 뛰는 것을 볼 수 있다. 강꼬치고기나 연준모치가 그 매끄러운 수면에 떠 있는 벌레를 물기라도 하면 호수 전체의 균형이 단숨에 깨지고 마는 것이다. (230)

이번 장은 호수편이라 그런지 묘수가 환상이다. 그림책 중에서 강꼬치 물고기 나오는 게 있어서 찾아봤는데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얼음에 구멍을 뚫어 낚시를 하는 그런 내용이었는데 아들 어려서 봤던 건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환희에서 나오는 전율과 고통의 전율은 구분되지 않는다. (231)

나타나는 행동, 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행동을 하게 된 이유와 동기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네 인생보다 얼마나 더 아름다우며 우리의 인격에 비하면 그 얼마나 투명한가! 인간은 결코 이들 호수들로부터 비열함을 배울 수 없다. (244)

 

열 번째 이야기 베이커 농장

마침내 호수 속에 허리까지 잠근 채 서서 물옥잠 위로 낚시를 던지게 됐을 무렵 나는 갑자기 구름 그림자 속으로 들어갔다. 천둥이 어찌나 요란하게 치기 시작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 방어수단도 없는 가엾은 낚시꾼 하나를 내쫓느라 저렇게 날카로운 번갯불까지 동원하고도 신들은 의기양양할 테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249)

저자의 생각이 재미있다. 자기를 내쫓으려고 번갯불을 친다고 여기다니.

처음부터 차와 커피와 버터와 우유와 쇠고기를 먹기 시작하면 그 값을 치르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또 일을 많이 하면 그 사이에 소모된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잔뜩 먹어야 한다, 따라서 오십보 백보인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것은 그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데다 덤으로 생활까지 희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다. (251)

숲에 살면서 기존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에 대한 어리석음을 말하고 있다.

여기 있는 이 물풀과 고사리들처럼 그대 자신의 본성에 따라 야생으로 자라라. ... 사람들이 수레와 헛간으로 달아날 때 그대는 구름 아래 머물라. 생업이 아니라 오락으로 먹고 살라. 대지를 누리되 소유하지 마라. 인간은 모험심과 신념이 없기에 현재의 모습 그대로 사고 팔면서,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254)

구본형 선생님께도 영향을 미친 책이겠구나 싶은 구절이다.

 

열한 번째 이야기 더 높은 법칙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게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보다 높은 삶, 이른바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과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을 찾아볼 수 있는데, 나는 이 두 가지 삶을 모두 존중한다. 나는 선한 삶 못지 않게 야생의 삶을 사랑한다.

나는 공익을 추구하는 나의 태생적인 모습과 자연 속의 삶 또한 좋아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도시적인 편리한 삶을 좋아한다. 특히 추위는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다.

대초원을 지나는 여행자는 자연스럽게 사냥꾼이 되고, 미주리와 콜롬비아 강의 상류에서는 덫 사냥꾼이 되며 세인트 메리 폭포에서는 어부가 되는 것이다. 그저 여행만 하는 여행자는 간접적이고 어중간한 사물의 모습만 보는 셈이어서 여행다운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없다. (259)

지난 주 [나는 걷는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두 권의 책을 보니 관광객들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럴 필요는 없는 건데……. 모든 사람이 이 두 저자와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사람은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 타인이 평가하는 것은 더욱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어린시절을 보낸 인간이 아니라면 자기와 같은 조건으로 생을 영위하는 어떤 동물도 함부로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261)

인터넷에 한때 사냥한 동물과 함께 사진을 올려 비난을 받았던 여성이 생각난다.

내 경우 육식에 대한 실질적인 반론은 그 불결함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물고기를 잡아서 창자를 빼내고 조리하여 먹었음에도 본질적인 면에서 허기를 채워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263)

유충 상태의 인간 역시 대식가이다. 국민 전체가 그런 상태에 처한 경우도 있는데, 그들은 공상이나 상상력이 결여된 국민으로서, 그 방대한 복부가 그들의 실상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264)

한국이 언젠가부터 먹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방송도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시작하더니 이젠 요리하는 방송이 많다. 모든 국민이 먹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공상이나 상상력이 결여된 국민이라 그런 걸까. 이제 미니멀 라이프로 가야하는 시대가 맞는 것 같다. 난 책에 대한 집착(?)만 버려도 미니멀 라이프로 가는 첫단계가 될 것이다.

실제 경험이 어떻든 나는 인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육식을 버리게 될 운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265)

저자가 살던 시대엔 채식주의자가 있었을까. 지금 반대쪽에선 엄청난 양의 육식을 하고 있지만 또 다른 쪽에선 채식주의를 지키며 사는 사람도 꽤 있다. 내 주위에도 있다. 동기 수정이 생각난다.

거친 노동을 장시간 계속하는 것에 대한 가장 심각한 반대 이유는, 그런 노동을 하고 나면 거칠게 먹고 마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66)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인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는 식욕이 인간을 더럽히는 것이다. 질이나 양이 아니라 감각적인 맛을 탐닉하는 것이 문제다. (267)

노력하는 데서 지혜와 순결이 나온다. 나태에서는 무지와 관능이 나올 뿐이다. (270)

 

열두 번째 이야기 동물 친구들

좀더 멀리 가는 것도 좋은데, 왜냐하면 쓸만한 미끼감은 거리의 제곱에 비례해서 증가한다는 공식을 발견했거든. (276)

재미있는 사람이다.

또 어쩌면 그는 아킬레스처럼 저 멀리서 분노를 품고 있다가 이제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복수를 하거나 구하러 온 것일지도 몰랐다. (282)

개미 전투 묘사 장면은 개미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저자의 말처럼 치열한 전투장면이다. 관찰의 힘이 대단하다. 성한이 생각나는 이야기다.

내가 목격한 개미 전쟁은 웹스터의 탈주노예법이 통과되기 5년 전, 폴크 대통령 재임시였다. (285)

그럼 대대적인 개미 전쟁이 인간의 역사와 연관이 있다는 거네. 갑자기 공원에 나가 개미들을 관찰하고 싶어졌다. 물론 지금은 겨울이니 개미가 없을 테지만. 봄이 되도 이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꼭 관찰해봐야겠다.

이따금 내게 멋지게 골탕을 먹이고는 저 멀리에서 떠오를 때면 그놈은 길게 끄는 섬뜩한 울음소리를 냈는데, 그것은 새라기보다는 이리의 울음소리에 더 가까웠다. (289)

갑자기 앞으로 책은 이런 장면이 나오면 홀로그램으로 모습을 보여주며 소리까지 나오는 4D 기능을 장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종이책이 아닌 e북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아비가 무엇인지 찾아보니 천둥오리 비슷한 것 같았다.

 

열세 번째 이야기 따뜻한 집

농부들은 보기 흉한 갈퀴로 그것들을 훑듯이 따서 매끄러운 풀밭을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어 놓는다. 그들은 경솔하게도 열매들을 부셸과 달러만으로 계산해서는 이 초원의 전리품을 보스턴과 뉴욕에 팔아치운다. 그렇게 팔린 열매는 잼으로 바뀌어 도시에 있는 자연 애호가들의 구미를 돋워 주는 것이다. (292)

저자가 지금의 농사나 수확을 본다면 자신이 살던 시절은 그나마 양반이라고 생각할거다. 인간은 더 돈의 노예가 되었다. 수확 방법뿐 아니라 파종부터 돈으로 계산한다. 갑자기 지금 월든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찾아보니 직접 다녀온 사람이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려놓았다.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닌 다른 곳에 복원된 오두막과 동상까지. 호수의 물은 정말 맑았다. 내가 생각한 호수가 아니다.

일이 이렇게 더디게 진행된다면 그만큼 더 오래 견딜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296)

일의 진도가 안 나가면 답답해하거나 못 견디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독채인 데다 이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훨씬 크게 느껴졌다. 모든 시설이 방 하나에 다 들어서 있었다. (297)

이제는 손님 접대가 손님을 격리시키는 최상의 기술이 되었다. 또한 손님을 독살하려는 의도라도 있는 양 요리에 대한 일마저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299)

위생과 보건이라는 이유로 방들을 구분하고 특히 주방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비록 물에 흠씬 젖어서 납덩이처럼 무거웠지만 이 통나무들은 오래 탔을 뿐 아니라 불길도 훨씬 거셌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물에 젖었기 때문에 더 잘 타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잔불이 그렇듯 송진이 물에 갇혀 더 오래 타는 것일지도 모른다. (305)

젖은 나무는 타지 않는 걸로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송진이 묻어있는 나무라면 저자의 말처럼 오래 강하게 타긴 할 것 같다.

내 집은 양지바른 데다가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고 천장이 낮아서 겨울철에도 한낮에는 거의 언제나 불을 꺼두고 지낼 수 있었다. (309)

결국 인류가 어떻게 파멸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인 것이다. 북방에서 좀더 혹독한 바람이 약간만 불어도 인간의 목숨은 순식간에 끊어질 수 있다. (309)

맞다. 지금 온난화 진행으로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 이제 겨울은 더 길고 더 추워질 것이다. 그럼 더 많이 난방을 할 것이고 이게 결국 악순환이 될 것이다.

 

열네 번째 이야기 예전의 주민과 겨울 손님들

내 기억으로도 몇 군데에서는 소나무가 마차 옆구리를 긁곤 했고 이 길을 걸어서 혼자서 링컨 마을로 가야 했던 여자와 아이들은 공포심 때문에 그 길 대부분을 뛰어가다시피 했었다. (314)

그러게. 나도 한 달 혼자살기를 하고 싶다곤 했지만 막상 하려니 어디를 해야할지, 어느 계절에 해야할지 생각이 많다. 지인이 있는 곳은 자유로운 생활이 어려울 것이고 비용이 적게 드는 곳은 보완이 걱정이 된다. 그럼 아는 사람이 없는 안전하고 따뜻한 계절에 해야하는데 이런 조건을 다 갖추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 수희양 선배에게 조언을 구해봐야겠다. 산사에 수행하러 들어가신다고 했었는데, 그 분은 불교신자이니 가능한 거겠지. 여하튼 좀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이런 계절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눈이 꽤 쌓이면 한두 주일 동안은 그 어떤 방랑자도 내 집 근처를 얼씬하려 들지 않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들쥐만큼이나 또는 쌓인 눈에 묻힌 채 먹을 것 하나 없이 오랫동안 살았다는 가축이나 가금만큼이나 아늑하게 살았다. (324)

아늑하게라니... 하긴 눈 속에 고립된 걸 좋아하던 책 속 주인공도 있었다. 홍천 골짜기 화전민들이 살던 터에 집을 짓고 사는 고종사촌도 겨울, 눈이 많이 오면 꼼짝 못한다고 하더라. 지금이야 난방도 되니 괜찮지만 1800년대는 그리 따뜻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열다섯 번째 이야기 겨울 동물들

나는 또 콩코드에서 나와 아주 가까운 밤친구라 할 수 있는 얼어붙은 호수가 우는 소리도 들었다. 마치 뱃속이 불편하거나 꿈자리가 사나워 자리에 누워서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기라도 하는 듯 했다. (334)

얼음이 얼고 갈라지는 소리 아닐까.

겨울철이면 나는 채 여물지 않은 달디단 옥수수 반 부셸을 문 밖의 눈 위에 뿌려놓고는 그것에 끌려 다가온 다양한 동물들의 형태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335)

뇌조는 싹과 건강한 음료만을 먹고 사는 자연의 여신이 키우는 새인 것이다. (338)

뇌조라는 새의 먹성이 신기하다. 그러니 여신이 키우는 새라고 하나 보다.

죽은 여우를 보자 사냥개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힌 듯 모든 추적을 중단한 채 시체 주위를 소리 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340)

이렇게 띠를 두른 듯 껍질이 벗겨졌으면서도 나무들은 한여름이 되자 다시 싱싱하게 우거지는 둣이 보였고, 대부분 키도 1피트씩은 더 자랐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그런 겨울을 겪고 나자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죽어버렸다. 들쥐 한 마리가 이런 식으로 소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위아래가 아니라 빙 둘러가며 해치울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342)

산토끼 한 마리 먹여 살리지 못하는 전원이란 더할 나위 없는 불모지일 것이다. (344)

벌이 살 수 없으면 인간도 살 수 없다고 들었다. 벌이 식물의 번식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이 있어야 동물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다.

 

열여섯 번째 이야기 겨울 호수

주위 언덕에 사는 마못들이 그렇듯 호수 역시 눈꺼풀을 닫고 3개월이나 그 이상 동면에 들어간다. (347)

많은 사람들이 월든 호수가 지구 반대편으로 뚫려 있다고들 믿고 있었다. (350)

호수에서 가장 깊은 곳은 정확히 102피트였다. 그 뒤로 수위가 높아졌으므로 거기에 5피트를 더해 107피트가 될 것이다. (350)

실제로 찾아보니 깊이가 107피트라고 나온다. 저자의 경제활동을 수치로 계산한 것도 그렇고 이럴 때보면 문학가 같지 않다.

멀리서 보면 고체로 된 하늘을 길거리로 운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358)

얼음을 파서 가져가는 채빙, 한국에서도 한강의 얼음을 가져다 팔았다.

월든 호수의 어느 부분은 액체 상태에서는 종종 녹색으로 보이다가도 일단 얼고 나면 같은 자리에서 봐도 청색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361)

얼음이 청색이라? 얼음은 투명한 흰색이라고만 생각했다.

 

열일곱 번째 이야기

채빙 일꾼들에 의해 얼음 위에 큰 구멍이 생기면 대체로 호수가 일찍 녹게 마련인데, 그것은 추운 날에도 바람에 일렁이는 호숫물이 주변의 얼음을 잠식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 이 호수는 유난히 깊은 데다가 얼음을 녹이거나 잠식할 물의 흐름이 없기 때문에 인근의 다른 호수만큼 빨리 녹는 법이 없다. (366)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얼음 속의 기포 자체가 볼록렌즈처럼 작용하여 얼음 아래쪽을 녹인다. (368)

저자가 아는 것이 많다. 그저 풍경만을 묘사하지 않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다.

숲속에 들어와 사는 데 한 가지 매력은 봄이 오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볼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369)

날이 따뜻해지면 강가에 사는 이들은 한밤중에 대포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건 마치 얼음 족쇄가 산산조각이 나기라도 하는 것 같은 소리다. 그리고 나면 며칠 안에 얼음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만다. (370)

단 한 차례의 이슬비에도 풀빛은 한층 더 짙어진다. (382)

봄의 색은 연녹색으로 시작한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 은행나무 잎이 봄에 나올 때 보면 너무도 작다. 그러다 비가 한 번씩 오면 잎의 크기가 눈에 띠게 커지고 색도 짙어진다. 여름이 온 것이다.

만약 주위의 인적 드문 숲과 초원이 없었다면 우리네 마을의 삶이라는 것은 더없이 침체했을 것이다. 우리는 야생이라는 강장제를 필요로 한다. (386)

그래서 도심 구간에 공원은 필수다. 인공호수이지만 석촌 호수가 있고 주위에 나무가 있음으로 송파는 도심임에도 그나마 낫다.

독은 결코 유해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어떠한 상처도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387)

 

열여덟 번째 이야기 맺음말

의사들이 환자에게 공기와 환경을 바꿔 보라고 권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390)

나는 숲에 처음 들어갈 때만큼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 숲을 떠났다. 그때 내게는 아직 살아야 할 몇 개의 삶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하나의 삶에 그 이상 많은 시간을 내줄 수 없었던 것이다. (394)

사람이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면서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보통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395)

나도 요즘 이걸 실감하고 있다.

얼음을 사 가는 남부인들은 월든 호수에서 나오는 얼음의 청색을(그것이야말로 순수하다는 증거인데) 더럽게 여기고는, 비록 흰색을 띠긴 했으나 잡초맛 나는 케임브리지의 얼음을 더 선호했다. 사람이 좋아하는 순수성은 지구를 에워싸고 있는 안개 같은 것이며, 그 너머에 있는 담청색 하늘이 아니다. (397)

인간의 어리석음.

거짓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을 말하라. 어떠한 진실도 거짓보다 나은 법이다. (400)

자신의 삶이 아무리 비천할지라도 그 삶을 정면으로 대하고 살도록 하라. 피하지도 욕하지도 말라. (400)

쉰이란 나이가 되어서야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

남아도는 부로는 없어도 상관없는 것만 살 수 있다. 영혼의 필수품을 사는 데 돈은 필요 없다. (401)

세상에서는 끝없이 진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지루해하고 있다. (405)

현대인은 점점 더 말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강한 자극만을 원하며 느리고 변화가 없는 것을 못 견뎌한다. 자연을 잃었다.

앞으로도 동틀 날은 얼마든지 있다. 태양이란 아침에 뜨는 별일 뿐이다. (406)

멋진 표현이다.

 

역자 후기

무엇보다도 풍부한 시적 통찰력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 책은 문명에 의지하지 않는 순결한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탐색하고 있다. (408)

월든은 그가 22개월 2일 동안 월든 호숫가 숲속의 조그만 오두막에서 지낸 삶의 성과로서,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일종의 답변서이다. (410)

사람들의 궁금증에 대한 답변서가 맞다. 경제적 부분은 실험 보고서 같더라.

감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경험 덕분에 그는 그의 가장 유명한 논문이며 중요한 정치론인 시민 불복종 의무에 대하여를 쓰게 되었다. (411)

소로와 비슷한 유시민의 글이 생각난다. 한 번의 퇴고도 없이 써내려갔다던 항소이유서.

F. 케네디 대통령, 마틴 루터 킹 목사, 윌리엄O. 더글라스 대법원 판사 등은 그의 사상에 전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이었다. (411)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목차는 주제별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다. 시간 순도 아니고, 계절 순도 아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삶의 경제학이 가장 내용이 많고 저자의 철학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각 주제별로 저자의 철학을 알 수 있게 한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저자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실었으면 어떨까 한다. , 어떤 점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선 법정스님이 그의 영향을 받았고 직접 월든을 찾았다고 한다.

 

3. 이 책의 장점

170년이나 지나서 봐도 전혀 손색이 없는 책이다. 오히려 지금과 시기적으로 적절한 내용도 있다.

삶의 모습이 이럴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이론으로가 아닌 실제 삶으로 보여주는 실천적인 모습이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주제별로 내용을 정해서 쓴 것도 좋지만 시기별로 월든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 초반 정착할 때, 익숙해지고 나서, 떠나오며, 이런 순서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아들이 성인이 되면 1달 혼자살기를 해볼 계획이다. 그때 기록을 해놓고 이런 순서로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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