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모닝
  • 조회 수 136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8년 1월 1일 10시 46분 등록

윌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한기찬옮김 / 소담출판사

 

저자연구


1817 미국 매사추세츠  콩코드에서 태어나 미국 콩코드에서 죽었다하버드 대학 졸업 후 가업인 연필 제조업, 교사, 측량 업무 등에 종사했지만 평생 일정한 직업에 정착하지 않고 곧 학업에 매진했다. '자연'의 저자인 초월주의자 랄프 왈도 에머슨 등과 친분을 맺었다. 자비 출판한 첫 작품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 일주일》(A Week on the Concord and Merrimack Rivers, 1849)은 젊어서 세상을 떠난 형과 선상 여행을 정리한 수필로 당시의 사회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표작 《월든 - 숲속의 생활》(Walden, 1854) 2 2개월에 걸친 숲에서 혼자 기록을 정리한 것이며, 그 사상은 이후 시대의 시인과 작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소로우의 사후 《메인의 숲》(The Maine Woods, 1864)과 《케이프 콧》(Cape Cod, 1865) 등의 여행기와 자연을 쓴 에세이, 일기, 서간집 등 수많은 작품이 출판되었다. 소로우의 작품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주제로 한 것이 많고, 자연 문학(Nature writing)의 계보에 자리매김 된다. 그의 일생은 물욕과 인습의 사회 및 국가에 항거해서 자연 인생의 진실에 관한 파악에 바쳐진 과감하고 성스러운 실험의 연속이었다노예제도 멕시코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홀로 월든의 숲에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기도 했으며인두세 납부 거부로 투옥도 당했고, 후에는 노예 해방 운동에 헌신하였다. 그의 그러한 정신은 "시민 불복종"으로 이어진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독립 운동과 킹 목사의 시민권 운동 등에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 에머슨과 함께 위대한 초월주의 철학자이며 미국 르네상스의 원천이었다. 그는 또한 자연과학자이기도 하며 주요 저작으로는 《월든》 《시민 불복종》(1849)이 있다. – 위키백과 중



마음을 무찔러 온 글귀

 

P13

나는 종종 우리가 흑인 노예제라는 이 야비하고도 이질적인 노예 형태에 빠질 수 있을 정도로 천박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 당시에 이런 말을 대 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P1

바로 자신에 스스로 내린 평가, 자신의 행위에서 얻게 된 평가의 노예이며 죄수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평가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내린 평가에 비하면 나약한 폭군에 불과하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하는 생각, 그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거나 방향을 지시한다.

내 자신에 대한 생각과 평가가 남들의 평가보다 더 냉정하고 본인을 움츠려 들게 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P15

왜냐하면 나이를 먹음으로써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 해도 인생살이에서 절대적 가치를 배우게 될 지 의심스럽다.

맞는 말인 거 같다. 나이를 먹을수록 잃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얻는 것도 많고 나이 들어가면서 깨달아 가는 것이 많다고는 생각한다. 그래도 나이 먹음이 참 아쉽다.

 

P19

또는 연료를 지나치게 사용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자신의 체온보다 외부로부터 더 많은 열을 끌어들이게 됨으로써 혹시 우리 자신을 요리하게 되는 일은 없을까? 박물학자 다윈은 티에라 델 푸에고의 원주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의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불가에 앉아 있는 그들 일행이 여전히 추위를 느끼고 있는데도 벌거벗은 야만인들은 불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지나친 더위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신기하다. 하기야 동물들이나 원주민들을 보면 추위를 어떻게 이겨내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P26

그 인디언은 남들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바구니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또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남들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다른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P27

사람들이 찬미하고 성공했다고 여기는 삶은 한 가지뿐이다. 어째서 우리는 다른 삶들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어느 한 가지 삶만을 과장하는 것일까?

성공이란 무엇일까? 삶이란 무엇일까?

 

P27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필요하다. 모든 세부 사항을 직접 감독할 것, 스스로 수로 안내인과 선장, 선주이자 해상보험업자가 될 것, 팔고 사들이는 일을 직접 하고 장부에 적을 것, 수취된 모든 서신을 읽고 발송할 모든 서신을 직접 쓰거나 읽을 것, 수입품의 하역을 밤낮이고 감독할 것, 때로는 가장 값진 화물이 저지 해안에 부려질 수도 있으므로 연안 이곳저곳을 거의 동시에 찾아다닐 것, 스스로 전보가 되어 끊임없이 수평선을 흝으면서 연안을 지나가는 모든 선박과 교신할 것, 거리가 멀고 규모가 엄청난 이런 시장에 물품을 공급해야 하므로 상품을 늘 안정되게 운송할 수 있도록 할 것,

사업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 같다.

 

P30

그것은 그녀가 이제 옷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문명국에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처럼 민주적인 뉴잉글랜드 지방에서조차 우연히 돈을 모아 옷차림과 마차 따위로 부를 과시하기만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다.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사람들은 그 사람의 옷차림으로 우선 그 사람을 평가한다.

 

P31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낡은 옷을 입고 하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가지고 할 무엇이 아니라, ‘해야 할 무엇’, 또는 되어야 할 무엇인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해지고 더러운 낡은 옷이라 해도 너무나 열심히 일한 나머지 헌 옷을 입고도 새 사람이 된 듯이 느껴질 때까지는, 또 헌 옷을 새 술을 담을 낡은 부대처럼 느낄 수 있을 때 까지는 새 옷을 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P35

오늘날에는 주거 역시 삶의 필수품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인간이 이곳보다 더 추운 지방에서도 오랫동안 집 없이 삶을 영위했다는 실례가 있다. 사무엘 렝은 라플란드인들은 털옷을 입은 사람도 얼어죽을 만큼의 혹한 속에서도 가죽옷에다 머리와 어깨에는 가죽자루를 뒤집어쓴 채 눈밭에서 잠을 잔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렇게 잠자는 그들을 눈으로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들이 다른 종족보다 더 강인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여 말했다. 아마도 인간은 이 지상에서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정의 위안이라는 집의 편의성을 발견했을 것인데, 그 표현은 원래 가족에서보다는 집에서 구하는 만족감을 의미한 것이었으리라.

우리가 가족보단 집에 더 집착하는 걸 이야기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의 현상에 딱 맞는 지적인 것 같다.

 

P42

인간은 온기를 주는 집, 즉 온기의 위안을 먼저 구하고 나서 사랑의 온기를 갈구했던 것이다.

 

P43

한 계층의 사치스런 삶은 다른 계층의 빈곤을 야기한다. 한쪽에는 궁전이, 다른 한쪽에는 빈민수용소와 묵묵하게 살아가고 있는 가난한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파라오가 묻힐 피라미드를 짓는 데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은 마늘로 연명했을 것이고 품위 있는 무덤도 갖추지 못했으리라. 궁전의 처마장식을 마무리하던 석공은 밤이면 움악이나 다름없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리라.

노예제만큼이나 불합리한 일일 뿐만 아니라 지급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P44

사람들 대 부분은 집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이, 이웃들이 소유한 정도의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사실상 평생을 불필요하게 가난에 쪼들리고 있다.

정말 우리나라의 지금 이야기는 하는 것만 같다.


P51

나는 집 짓는 일을 마치기 전에 소나무의 적이라기보다는 친구처럼 되었는데, 그것은 비록 소나무를 좀 베기는 했으나 그 나무에 대해 휠씬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P59

이렇게 해서 나는 집이 필요한 학생이면 현재 매년 집세로 지불하는 돈만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60

젊은이들이 지금 당장 삶을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 이상으로 인생에 대해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런 방식이야말로 수학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갈고 닦아줄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서 어느 소년에게 예술과 과학에 대해 가르치고 싶을 경우, 나는 흔한 방식으로 그 아이를 교수에게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을 교수하고 실습할 지 몰라도 인생이라는 기술을 배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면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다.

 

P65

내가 농사로 번 총수입은 23달러 44센트였다. 거기에 수입 23달러 44센트, 지출 14달러 72센트 남짓이었으므로 따라서 잔액은 8달러 71센트 남짓 남았다.

정말 단출하고 검소한 삶이다.


P65

그것은 만약 인간이 소박하게 살면서 자신이 농사지은 것만 먹고, 자신이 먹을 만큼만 농사지으며 더 호사롭고 값비싼 데다 양도 얼마 되지 않는 식량과 바꾸어 먹지만 않는다면 몇 라드의 땅에 곡물을 재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그 밭을 가는 데 소를 쓰는 것보다는 내 손으로 삽질하고 묵은 밭에 거름을 주는 것보다는 간혹 새 땅을 밭으로 쓰는 편이 휠씬 값이 싸게 먹힌다는 것, 그러고 나면 여름 내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농사를 짓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그럴 경우 오늘날의 농부들처럼 소나 말이나 돼지 따위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는 사실들이다.

 

P68

한 민족이 다듬는 돌의 대부분은 그것의 무덤에 쓰일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생매장하고 있는 것이다. 피라미드를 볼 때 그토록 많은 사람이 야심에 찬 어떤 멍청이의 무덤을 짓느라 평생을 바칠만큼 타락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 말고는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다. 


P72

그러나 인간이 종종 굶는 것은 꼭 필요한 식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치스러운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아들이 물만 마셨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부인도 있다.


P73

추운 날 흡사 이집트인이 달걀을 부화시키듯이 조심스럽게 뒤집어가면서 빵덩어리 몇 개를 연이어 굽는 것은 적지 않은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이 빵은 내 손으로 익힌 진정한 의미에서의 곡식 열매였으며 내게는 다른 어떤 값진 열매만큼이나 향기로워서 천에 싸서 되도록 오랫동안 보관했다.

 

P76

이렇게 해서 나는 먹을 것에 관한 모든 거래와 물물교환을 피할 수 있었고, 이미 집을 갖고 있었기에 옷가지와 땔감문제와 남은 셈이다. 내가 현재 입고 있는 바지는 어느 농가에서 짠 것으로,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농부에서 공장 직공으로 몰락한 것은 인간에서 농부로 몰락한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기억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농부로 전락한 것인가? 우리는 자연상태에서 더욱 더 행복했었을까? 인간이 경작을 하게 된 것은 인류의 큰 발전이었다. 이로 인해 자유가 생기고 여유 자본이 생겨나게 되었다.

 

P81

나는 5년 이상 이런 식으로 오직 내 손의 노동으로 먹고 살았으며, 그 결과 1년에 6주 가량 일을 하면 모든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여름철 대부분을 포함해서 겨울철을 모두 자유롭게 공부하는 데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전에 학교를 경영하는 데 골몰한 적이 있었는데, 그 비용이 수입과 맞먹거나 오히려 초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은 연구와 사색은 말할 것도 없고 옷치장과 양성에 돈이 든 데다가 시간까지 빼앗겼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릴 때 얻게 되는 자유인 것 같다.

 

P82

내가 무엇보다 선호하는 일은 특히 내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또 험하게 살더라도 나로서는 행복할 수 있으므로 지금 당장은 값비싼 양탄자나 좋은 가구, 맛있는 요리, 그리스 식이나 고딕 양식의 주택을 손에 넣기 위한 돈을 버는 데 시간을 써 버릴 생각이 없었다.

 

P88

그제서야 나는 나 자신을 가엾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 인부에게 싸구려 기성복점 하나를 통째로 주는 것보다 내게 플란넬 셔츠 한 벌 주는 편이 휠씬 더 큰 자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P89

그것은 한 명의 노예를 판 수익금으로 나머지 아홉명의 노예들에게 일요일만 자유를 주는 위선적인 노예 주인과 다를 바 없다.

그나마 그런 사람은 그래도 나은 축에 속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P102

내가 새를 가둔 것이 아니라 내가 새들 가까이에 둥지를 튼 격이었으니까. 나는 안뜰이나 과수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들과 더욱 가까워졌을 뿐만 아니라, 숲개똥지빠귀와 비어리, 풍금새, 들참새, 쏙독새 등 좀 더 작으면서도 삼림지에 사는 좀더 날카로운 노래꾼들과도 가까워졌는데, 여간해서는 마을 사람들도 노랫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그런 새들이었다.

자연 속에 들어가면 인간은 자연 속에 하나 개체일 뿐이다.

 

P105

매일매일의 아침은 내 삶을 자연 그자체만큼 소박하게 하라는, 또는 순결하게 하라는 유쾌한 권유였다.


P106

탕왕의 욕조에 다음과 같은 취지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매일같이 네 자신을 새롭게 하되 그 일을 영원토록 반복하라.”

멋진 말이다. 매일매일 나 자신을 새롭고 혁신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P108

내가 숲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삶이란 그처럼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고, 도저히 불가피하기 전에는 체념을 익힐 생각도 없었다. 나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모든 정수를 뽑아내고 싶었고, 강인하고 엄격하게 삶으로써 삶이 아닌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숲속에 널찍하고 반들반들하게 길을 닦아 삶을 맨 안쪽까지 몰아붙인 다음 가장 비천한 상태까지 내몰아 그 삶이 정말 비천하다고 판명날 경우 삶의 모든 천박함을 있는 그대로 뽑아서 온 세상에 공표하고 싶었다.

소로가 그렇게 해서 깨달은 삶이란 무엇일까?

 

P109

삶은 자잘한 일에 낭비되고 있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셈을 세기 위해 열 손가락 이상 쓸 일이 없다. 극단적인 경우라 해도 발 가락 열 개를 더하면 될 것이고 그 나머지는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단순하게 살지어다! 백 가지 천 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일을 줄이라. 백만이 아니라 대여섯을 셈할 것이며 장부는 간소하게 적으라. 문명 생활이라는 이 거친 바다 한복판에는 구름과 폭풍과 유사 등 온갖 것이 숨어 있기 때문에 만약 여기서 침몰하여 바닥에 가라앉거나 항구에 도착하지 못하는 사태를 원치 않는다면 추측항법을 써서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며, 따라서 사실상 여기서 성공하려면 탁월한 계산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단순하게! 중요한 일은 세가지로!!

 

P115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실재일 거라고 생각한다. 만일 오직 사실만을 볼 줄 아는 누군가가 있어 마을 안을 돌아다닌다면 마을의 물방아둑은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이 우리에게 자신이 본 사실을 알려 준다 해도 우리는 그가 말하는 물방아둑이 어디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P117

시간이란 내가 낚시하는 냇물일 뿐이다. 나는 그 물을 마시지만, 물을 마시는 동안 모래가 깔린 바닥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얕은지를 알게 된다. 시간의 얕은 흐름은 이내 흘러가고 만다. 그러나 영원은 그대로 남는다. 나는 좀더 깊은 물을 마시고 싶다. 바닥에 조약돌처럼 별들이 깔린 하늘에서 낚시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하나조차 헤아릴 수 없다. 알파벳의 첫 번째 글자가 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태어난 그날처럼 현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언제나 뉘우치며 살고 있다. 지성이란 식칼과 같아서 사물의 비밀을 인식하고 갈라낸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두 손을 바삐 놀릴 생각이 없다. 내 머리가 곧 두 손이며 두발인 것이다. 내 모든 최고의 기능은 머릿속에 집중돼 있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 머리가, 짐승이 굴을 팔 때 주둥이와 앞발을 쓰는 것처럼 굴을 파는 기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그것으로써 이 언덕을 파볼 생각이다.

머리로 하자. ! 머리로 하자

 

P124

그에 반해 작가는 보다 평온한 삶이 그의 행사인 셈이고 웅변가를 자극하는 사건이나 군중은 오히려 그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 뿐이며, 인류의 지성과 치유를 위해,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시대를 가리지 않고 말을 거는 사람이다.

작가에 대한 멋진 말이다. 작가는 묵직한 글로 시대를 초월해 이해할 수 있도록 남기는 사람이다.그래서 시대를 가리지 않고 말을 건다. 나중에 기록해 놓고 다른 곳에 써보고 싶다.

 

P135

나는 삶의 여백을 아낀다. 여름날 아침에는 습관이 된 목욕을 마친 후 해뜰녘부터 정오까지 볕 잘 드는 문간에 앉아 소나무와 히코리나무, 옻나무에 둘러싸여 평온한 고독과 정적 속에서 몽상에 잠기곤 했다. 새들이 지저귀며 소리 없이 집 안을 날아다녔다. 그러다 서쪽 창으로 햇빛이 들거나 큰길을 지나는 여행자의 마차 소리에 문득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이런 계절이면 나는 하룻밤 사이에 크는 옥수수만큼이나 쑥쑥 자랐으며, 손으로 어떤 노동을 했을 때보다도 휠씬 훌륭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내 삶에서 공제되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여느 때와 할당량을 휠씬 초과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동양인들이 명상에 잠기느라 일을 하지 않는 참뜻을 이해했다.

나는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 같다. 일이 없을 때 그리고 집에서도 뭔가 하고 있지 않을 때는 내가 뒤처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저녁에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사회에서, 회사에서 조금 소회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대 부분의 현대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왜 그럴까? 왜 이리 난 조급한걸까? 무엇이 걱정되는 것일까?

 

P136

사실 인간은 자신이 일할 필요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자연의 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것이어서 인간의 게으름을 나무라는 법이 없을 테니까

내 스스로 일을 찾아낸다. 일을 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불안하다.

 

P142

철도가 발명된 이후로 사람들이 시간을 좀더 엄수하게 되지 않았을까?

 

P150

올빼미 역시 세레나데를 들려 주었다. 가까이에서 그 소리를 들으면 자연이 내는 소리 가운데 가장 울적한 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자연이 인간이 죽어갈 때 내는 신음소리를 똑같이 흉내내어 자신의 합창대 속에 영구히 보존하기라도 한 것 같다.

 

P156

지금은 온몸이 하나의 감각으로 바뀌고 땀구멍 하나하나로 기쁨을 숨쉬는 감미로운 저녁이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자유로운 자연의 느낌을 품고, 자연의 일부를 품고 돌아다닌다. 구름이 낀 데다 바람까지 부는 서늘한 날씨인데도 나는 셔츠 차림으로 돌이 깔린 호숫가를 따라 걸어 본다.

눈 앞에 자연 속을 걸어 다니는 소로가 아니 내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자연과 점점 하나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P157

나는 나뭇가지나 풀잎이 구부러진 모양이나 신발 자국을 보고 내가 없는 동안 손님이 있었다는 사실을 거의 정확하게 알아맞힐 수 있는데, 그들이 남겨놓은 사소한 흔적들, 이를테면 꽃을 떨어뜨린다거나 심지어는 반 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풀 한 다발을 뽑아 던진 모양새를 보고 또는 공중에 남아 있는 담배나 파이프 담배 냄새로 그들의 성별과 나이와 성품까지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만이 아니라, 종종 파이프 담배 냄새를 맡고도 300야드쯤 떨어진 큰길을 누군가 지나간다는 사실도 알아채곤 했다.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 자연속에 살게 되면 모든 감각이 섬세해지고 기능이 확대되는가 보다.

 

P159

비록 비 때문에 콩밭을 매지는 못했지만 그건 잡초를 뽑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만일 비가 계속 내려서 땅에 묻은 씨앗이 썩고 저지대에 심은 감자를 버리게 된다 해도, 그 비는 고지대의 풀에는 유익하며 풀에 유익하다면 내게도 좋은 것이리라

 

P161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것도 알고 보면 우주 속의 점 하나일 뿐이오. 우리가 가진 도구로는 도무지 폭을 알 길 없는 저 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주민이 서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는 것 같소? 그러니 어째서 내가 외롭다고 느껴야 하오? 우리 행성이 은하수에 있기라도 하단 말이오? 당신이 방금 던진 질문은 내가 보기엔 그다지 중요한 질문 같지 않구려. 사람들 동료로부터 고립시킴으로써 외롭게 만드는 건 대체 어떤 공간이겠소? 나는 아무리 두 다리로 애를 써봤자 두 마음이 서로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오. 우리가 가장 가까이 살고 싶어하는 것이 뭐겠소?

 

P163

나는 보다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는 일이 유익함을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상대라도 함께 있으면 이내 싫증이 나고 좋아하는 감정도 식게 마련이다. 나는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고독만큼 상대하기 좋은 친구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방에 박혀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과 섞일 때 휠씬 더 외로움을 느낀다. 생각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늘 혼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독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하바드 대학의 북적거리는 교실에서라도 정말로 공부에 전념하는 학생이라면 사막의 탁발승만큼이나 격리된 셈이다.

이 이야기가 과연 150년전의 이야기인가?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다. 고독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로울 수 있다. 다들 핸드폰을 들고 온라인 상에서만 이야기를 하고 정작 앞에 있는 사람과는 어떤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

 

P164

우리는 하루 세 끼를 먹듯 만나서는 상대방에게 우리 자신이라는 저 곰팡내 나는 해 묵은 치즈를 새로운 맛이라고 내놓는 셈이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자주 만나는 일을 그런대로 참아 주고 싸움을 벌이지 않기 위해 이른바 예절과 정중함이라는 일정한 규칙을 정해 놓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은 아닐까? 반성이 된다.

 

P165

만나는 빈도를 줄이더라도 분명 중요하고 애정 어린 의사소통을 하는 데 충분할 텐데도 말이다.

만남의 깊이는 빈도와 거리가 아니다.

 

P170

나는 천성적으로 은둔자는 아니어서 마침 술집에 무슨 볼일이 생기면 그 술집에서 가장 질긴 단골보다 더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있다.

 

P171

집들이 너무 크고 웅장해서 정작 그곳에 사는 주민은 그 집에 기식하는 해충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P175

나는 고독이라는 거대한 바다 안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그 바다로 교제라는 강물이 흘러들었다. 내게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대부분 가장 좋은 침전물만이 내 주위에 쌓인 셈이었다.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편에 탐사되지도 개발되지도 않은 대륙들이 있다는 증거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실려왔던 것이다.

 

P185

나는 개개의 손님들이 갖고 있는 특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과 젊은 여자들은 대체로 숲속에 들어온 일을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호수 속을 들여다 보고 꽃을 보기도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사업가들은, 그리고 심지어는 농부들도 고독과 일거리에 대해, 그리고 내가 이런저런 것들로부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사는 일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그들은 이따금 숲속을 거니는 일이 즐겁다고 말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게 확실했다. 생계를 유지하는 데 시간을 온통 빼앗겨 틈도 내지 못할 만큼 바쁜 사람들, 하느님 얘기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독점권을 갖기라도 한 듯 다른 의견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성직자들, 의사와 변호사들,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내 찬장과 침대 속을 염탐한 불쾌한 주부들

불청객들에게도 각기 다 특성이 있나 보다.

 

P186

간단히 말해서 자유를 구하기 위해 진심에서 마을을 버린 채 숲을 찾아온 모든 정직한 순례자들이 그들인데, 나는 그런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준비가 돼 있었다.

 

P190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휠씬 많은 양이긴 했으나 내 콩밭을, 내 콩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들이 나를 대지와 묶어줘 나는 안타이오스와도 같은 힘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P201

대개 인간은 자신의 조상이 용감했든 소심했든 그 조상을 따를 뿐이다. 오늘날의 세대는 거기에 무슨 운명이라도 작용한다는 듯이 수백 년 전 인디언들이 최초의 이주민들에게 가르쳤던 바로 그대로 매년 옥수수와 콩을 심고 있다.

 

P201

그런데 뉴잉글랜드 인들은 어째서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지 않는 걸까? 어째서 자신의 곡물과 감자와 건초와 괴수에만 그토록 정신을 팔 뿐 다른 작물을 키울 생각을 하지는 않는 걸까? 우리는 왜 종자용 씨앗에만 관심이 있고, 인간의 새로운 세대에 관해서는 무관심한 걸까? 만일 내가 방금 열거했던 그런 품성이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사람을 만나다면 실로 많은 자양분과 격려를 얻을 수 있으리라.

대 부분 우리는 변화를 싫어한다. 아니 귀찮아 한다.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

 

P203

우리는 자칫하면 태양이 우리의 경작지와 초원과 삼림을 아무 차별없이 내려다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것들 모두가 햇빛을 똑 같이 반사하고 흡수하며, 우리의 경작지는 태양이 매일같이 운행하면서 내려다보는 저 찬란한 풍경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태양의 눈으로 보면 지구는 하나의 뜨락처럼 모두 똑 같이 경작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태양의 빛과 열을 그것에 상응하는 신뢰와 넉넉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이 콩의 종자를 소중히 가꾸어 가을철에 수확한다고 해서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보살펴온 이 널찍한 밭은 그 주된 경작자와 내게 의지하는 게 아니라 물을 주고 그것을 푸르게 가꾸는 보다 다정한 힘에 의지한다.

 

P204

밭에서 나는 곡물로 농부의 헛간을 채울 수 있느냐는 문제는 그것에 비하면 하등 중요할게 없다. 참된 농부라면 다람쥐가 올해 숲에 밤이 열릴지 걱정하지 않듯이, 아무 걱정 없이 밭이 생산하는 작물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포기하고 최초의 열매뿐 아니라 마지막 열매까지도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매일매일의 노동을 마칠 것이다.

욕심을 버리는 단계를 넘어서 깨달음을 얻어야 가능한 단계가 아닐까 싶다.

 

P207

내게는 마을이 하나의 거대한 뉴스 편집실처럼 보였는데 한켠에서는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 예전에 스테이트 가의 레딩 사처럼 호두며 건포도, 소금, 옥수수 가루 같은 식품들을 팔았다. 어떤 이들은 전자의 상품, 즉 뉴스에 대한 왕성한 식성을 갖고 있고 더할 나위 없이 튼튼한 소화기관을 갖고 있어서 한길가에 언제까지라도 꼼짝도 않고 앉아 뉴스가 부글부글 끓어 오르다 지중해이 계절풍처럼 자기들 곁을 속삭이며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


P212

만약 모든 사람이 그 당시의 나처럼 소박한 삶을 영위할 수만 있다면 절도나 강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 일들은 필요 이상의 재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데 반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사회에서나 일어나게 되어 있다. 포우프가 번역한 호머 역시 조만간 적절하게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갈 것이다.

 

P256

아일랜드에서 물려받은 가난과 가난한 삶에서, 그의 선조의 할머니부터의 수렁 같은 삶에서 그 자신도 그의 후손도 습지를 걸어다니는 갈퀴가 달린 두 발에 날개 달린 신이라도 신기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P258

지금도 내게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보다 높은 삶, 이른바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과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을 찾아 볼 수 있는데, 나는 이 두 가지 삶을 모두 존중한다. 나는 선한 삶 못지 않게 야생의 삶을 사랑한다.

 

P272

너는 어째서 찬란한 삶이 가능한데도 이곳에 머물며 그토록 뼈빠지게 일하며 살고 있는 거지? 저 별들은 여기만이 아닌 다른 들판 위에서도 반짝이고 있는데 말이야. 하지만 어떻게 이곳을 벗어나 그쪽으로 자리를 옮긴단 말인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금욕 생활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 정신을 육체 속으로 내려 보내 그 육체를 구원하며, 자신을 더욱 존중한다는 것 뿐이었다.

 

P298

폭풍이 몰아치는 밤에 기분 좋게 쉴 수 있는 집이며 없는 것이 없으되 불필요한 가사 노동을 할물건은 아예 없는 집이다. 한눈에 집 안의 모든 보물을 볼 수 있고 꼭 필요한 물건들은 모두 못에 걸려 있다. 그곳은 부엌이며 식품저장실이며 객실이며 침실이며 창고이며 다락방이다.

꼭 필요한 것만 있는 검소한 집이다. 마음 속이 채워져 있다면 집안이 무엇이 있든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채워야 할 것은 집안이 아니라 내 마음 속이다.

 

P299

이제는 손님 접대가 손님을 격리시키는 최상의 기술이 되었다. 또한 손님을 독살하려는 의도라도 있는 양 요리에 대한 일마저 은밀하게 이루어진다. 나는 여러 차례 남의 사유지에 들어가 법률적으로 퇴거 명령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한 적은 있어도 실제로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간 적은 그렇게 많지 않다.

 

P309

내 친구들 중에는 내가 일부러 얼어죽을 작정으로 숲에 들어오기라도 한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동물은 조용한 장소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자신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불을 발견한 인간은 널찍한 방에 얼마간의 공기를 가두고 자신의 체온을 이용하지 않고도 그 공기를 데워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드는데, 그 안에서는 성가신 옷을 잔뜩 입지 않고도 돌아다니며 한겨울에도 어느만큼은 여름처럼 지낼 수도 있고, 창이 있는 덕분에 햇빛을 방 안까지 들이고 등잔으로 낮의 길이를 늘이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간은 본능적인 삶에서 한두 걸음 더 뛰어넘어 예술을 위한 얼마간의 여가까지 마련한다. 내가 오랜 시간 휘몰아치는 돌풍을 맞아 전신이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더라도 내 집의 따뜻한 공기 속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이내 기능을 회복하며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주 화려한 주거지에 사는 사람도 이 점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 결국 인류가 어떻게 파멸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인 것이다. 북방에서 좀더 혹독한 바람이 약간만 불어도 인간의 목숨은 순식간에 끊어질 수 있다.

불에 의지해 본능, 추위에 적응할 힘을 잃은 인간이 결국 조금만 추워져도 멸망하고 말 것이란 말인가?

 

P314

그러나 자연은 숲의 가장 깊은 눈 위에까지 길을 내도록 나를 부추기곤 했다.

 

P324

이런 계절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눈이 꽤 쌓이면 한두 주일 동안은 그 어떤 방랑자도 내 집 근처를 얼씬하려 들지 않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들쥐만큼이나 또는 쌓인 눈에 묻힌 채 먹을 것 하나 없이 오랫동안 살았다는 가축이나 가금만큼이나 아늑하게 살았다.

눈이 번거로운 손님들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P326

어떤 때는 눈이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저녁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면 집밖으로 나온 나무꾼의 깊은 발자국이 나 있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난롯가에 나무 부스러기가 쌓여 있고 집 안에는 그가 피웠던 파이프 담배 냄새가 자욱하게 배어 있었다.

 

P327

시인은 순수한 사랑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오가는 것을 그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자신의 일 때문에 의사들조차 잠든 시각에도 늘 밖으로 불려나오는 것이다.

 

P330

집주인이라면 저녁때가 되면 집에 머물러, 소젖을 짜는 시간만큼, 또는 원한다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손님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나 역시 손님 접대라는 이 의무를 이행하려고 소 떼 전체의 젖을 다 짜도록 기다려 보곤 했지만 마을에서 사람이 오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P334

나는 또 콩고드에서 나와 아주 가까운 밤친구라 할 수 있는 얼어붙은 호수가 우는 소리도 들었다. 마치 뱃속이 불편하거나 꿈자리가 사나워 자리에 누워서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기라도 하는 듯 했다.

얼어붙은 호수가 우는 소리란 어떤 소리일까? 땅이 우는 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 소리는 마음속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P343

산토끼들과는 아주 익숙해졌다. 그중 한 녀석은 겨우 내내 집 밑에다 굴을 파고 살았는데 나와는 겨우 마루 한장을 사이에 두고 있었던 셈이다. 그놈은 매일 아침 내가 움직이는 기척을 내기 시작하면 황급히 튀어나가다가 마루판에 머리를 쿵쿵쿵 부딪쳐서 나를 놀래키곤 했다.

산토끼가 어찌 보면 함께 사는 식구와 같이 된 것 같다.

 

P346

자연의 여신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고 우리 인간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이미 오래 전 그렇게 마음을 굳힌 것이다. “오 제왕이시여! 우리의 눈은 이 삼라만상의 경이롭고 다양한 장관들을 감탄에 차서 쳐다보며 그것을 영혼에 전하고 있나이다. 밤은 어김없이 이 눈부신 창조물의 일부를 가리지만, 다시 낮이 찾아와 땅에서 하늘의 평원에 이르는 이 위대한 작품을 우리 앞에 펼쳐주나이다.”

 

P354

만약 우리가 자연의 모든 법칙을 알고 있다면, 어느 한 지점에서의 모든 특수한 결과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사실 또는 실제 현상 한 가지에 관련된 기술만 알면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불과 몇 가지 법칙밖에 알지 못하며, 따라서 우리의 추론 결과는 무효인 셈이다. 그것은 물론 자연의 혼란이나 불규칙성 때문이 아니라 계산에 필요한 인자를 모르기 때문이다.

 

P362

아침이면 나는 [바가바드 기타]의 저 거대한 우주적 철학에 내 지성을 목욕시킨다. 그 경전이 씌어진 이후 신들의 시대는 지났으며, 오늘날의 세계와 그 문학은 그에 비하면 보잘 것 없고 하찮기만 하다. 그 철학의 숭고함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미칠 수 없이 먼 것이기에 그것이 혹시 전생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 때도 있다.

P369

숲속에 들어와 사는 데 한가지 매력은 봄이 오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볼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호수의 얼음은 이윽고 벌집 모양으로 녹기 시작하여 그 위를 걸으면 발이 빠졌다. 안개와 비, 따듯한 태양이 차츰차츰 눈을 녹이고 낮은 점점 눈에 띌 만큼 길어져 간다.

봄이 서서히 오는 것을 매일 느끼는 것도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호수를 바라보면서 매일 조금씩 내 곁이 오는 봄을 느끼는 모습을 상상하니 머리가 절로 맑아지는 것 같다.

 

P370

날이 따뜻해지면 강가에 사는 이들은 한밤 중에 대포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건 마치 얼음 족쇄가 산산조각이 나기라도 하는 것 같은 소리다. 그리고 나면 며칠 안에 얼음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만다. 악어 역시 대지의 진동과 더불어 진흙 밖으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P375

인간이란 사실 녹고 있는 진흙덩이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사람의 손가락 끝도 물방울의 응결에 불과하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육신의 녹고 있는 진흙덩이가 각기 한도껏 흘러가 이루어진 것이다. 좀 더 온화한 풍토라면 인간의 육신이 어느 만큼 확장되며 흘러가게 될 것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P381

계절 하나하나가 모두 제각기 최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봄이 온다는 것도 혼돈에서 우주가 생성되고 저 옛날 황금시대가 실현되는 일인 것이다.

 

P394

나는 숲에 처음 들어갈 때만큼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 숲을 떠났다. 그때 내게는 아직 살아야 할 몇 개의 삶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하나의 삶에 그 이상 많은 시간을 내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또 부지불식간에 어느 특정한 길 하나에 들어서서 스스로의 걸음으로 그 길을 다져 놓는 것인지 놀라울 정도다 숲에서 산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내 집문에서 호숫가까지 내 발걸음으로 길이 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 길을 밟은 지 벌써 5,6년이 지났음에도 그 길은 여전히 선명하기만 하다.

 

P403

사랑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명성이 아니라 내게 진실을 달라. 나는 기름진 음식과 술로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에 앉아 아첨으로 시중을 받았으나 거기에는 성실과 진실이 없었기에 결국 그 야박한 식탁에서 허기진 채 물러나고 말았다.

 

P404

지금 이글을 읽는 사람 중에 인간의 평생을 모두 살아 본 이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인류의 생애에서 봄철에 불과할 수도 있다.

봄이었으면 진심으로 좋겠다.

 

P405

저 위에서 인간이라는 벌레를 굽어보고 있는 휠씬 더 큰 은인과 지적 존재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큰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것 같다.

P406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시간의 흐름만으로는 결코 밝아 오게 만들 수 없는 저 아침의 특성인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저 빛은 우리에게는 어둠일 뿐이다. 그날은 바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날 동터 올 것이다. 앞으로도 동틀 날은 얼마든지 있다. 태양이란 아침에 뜨는 별일 뿐이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해서

목차가 약간은 병렬 나열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수를 둘러싼 각 요소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서술하고 있는데 조금은 중복되는 면들도 있고 어떤 장에서는 지나치게 세세한 서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호수와 그 주변을 둘러싼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압축해서 서술했으면 어떨까 한다. 특히콩밭 장이나 베이커 농장 등은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흐름이었다.

 

3. 이 책의 장점

월든은 2017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오히려 더 와 닿는 책이 아닐까 싶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 삶을 단순하게 사는 것, 명상과 사색을 통해 삶을 탐구하는 것 등 책이 쓰셨던 시대보단 오히려 지금 우리에게 맞는 내용이 아닐까 싶었다. 우린 소로가 살던 시절보다 모두 세상이 발전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발전이란 무엇이 더 좋아졌다는 의미일까? 기술이 발달되어 더 편리해진 점? 먹을 것이 풍부해진 점? 그런데 우린 그때 보다 더 행복해 졌을까? 오히려 더 삶은 바빠지고 인생은 허비되고 있고 뜻 모를 일에 일생을 낭비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자문을 해 본다. 월든이 이미 150여년전에 했던 질문을 말이다.

 

4. 내가 저자라면

호수에 들어간 이유와 그 속에서 느낀 성찰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호수 주변 상황에 대한 관찰과 서술은 조금만 함축한다면 조금 더 책의 주제와 핵심 내용에 대해서 독자들이 더 집중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IP *.44.153.208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72 #40 대통령의 글쓰기 (윤정욱) [1] 윤정욱 2018.01.16 1263
4871 대통령의 글쓰기 [1] 보따리아 2018.01.16 1266
4870 #40 대통령의 글쓰기 (정승훈) 정승훈 2018.01.14 1300
486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1] 송의섭 2018.01.08 1337
4868 #3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글쓰기가 너를 자유롭게 할지어니…_이수정 알로하 2018.01.08 1364
4867 #3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 글쓰기란 닥치고 쓰는 것 [1] ggumdream 2018.01.08 1271
4866 #3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윤정욱) file [1] 윤정욱 2018.01.08 1247
4865 #3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1] 뚱냥이 2018.01.08 1255
4864 #39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이정학) 모닝 2018.01.07 1313
4863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 - 언제 어디서든, 글쓰는 유목민 file 보따리아 2018.01.07 1425
4862 #39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정승훈) 정승훈 2018.01.06 1359
4861 #38월든: 헨리 소로, 월든의 자연인_이수정 알로하 2018.01.01 1729
4860 월든 송의섭 2018.01.01 1405
4859 #38 월든 [1] 뚱냥이 2018.01.01 1249
4858 # 38. 월든 - 나는 삶을 단순화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1] ggumdream 2018.01.01 1577
» #38 - 윌든(이정학) 모닝 2018.01.01 1361
4856 #38 월든(정승훈) 정승훈 2017.12.30 1420
4855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 삶을 '의도대로' 살게 하는 부추김 file [1] 보따리아 2017.12.30 2019
4854 나는 걷는다 1 file 송의섭 2017.12.25 1331
4853 #37 나는 걷는다: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_이수정 알로하 2017.12.25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