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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 10시 5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그는 28세의 젊은 나이에 그가 태어난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하나 짓고 들어가 살기 시작한다. 1800년대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 당시 산업혁명 직후 아메리카 드림 등 노동과 성공에만 관심을 쏟던 세태와 달리 직접 숲에서 집을 만들고 혼자서 자립해서 살았다.

 

1828년 부모는 저자를 콩코드 아카데미에 보냈다. 그리고 콩코드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1833년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모범생이었지만 학점에는 무관심했으며, 도서관에서 자기가 원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1837년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졸업한 뒤 교직을 지원해서 이전에 다녔던 콩코드의 그래머 스쿨에 자리를 얻었다. 그러나 콩코드의 마을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체벌해야만 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 고민 끝에 2주일 후 그만두었고, 가업인 연필제조업을 꾸려가던 아버지를 돕게 되었다. 18386월 형 존의 도움으로 작은 학교를 세웠는데, 이 학교는 진보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이나 유지되다가 존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후 그는 목수, 석공, 조경, 토지측량, 강연에 이르기까지 시간제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산책하고 독서하고 글 쓰는데 할애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는 1845년인 28세때 도시에서 월든 숲에 들어가서 손수 집을 지은 뒤 오전에는 땅을 일구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면서, 저녁에는 독서와 명상을 하였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작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1854년에 발표한 <월든>은 단순히 도시적인 삶을 등진 사람의 책은 아니다. 22개월에 걸친 월든 호수에서의 생활은 얼마만큼의 노동을 하면 가난한 어부가 즐겼던 그런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지를 소로우 자신이 직접 육체노동자가 되어 살펴본 일종의 경제실험이다. 소로우가 이 책에서 실제로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도 경제문제이고, 책의 첫 장도 <경제>라는 소제목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실험은 소로우가 자신의 고향마을인 콩코드 주민들이 부자들의 불안을 누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스러운 삶을 사는지를 지켜보면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소로우에게 나중에 큰 병에 걸리게 되면 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고생스럽게 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큰돈을 버느라고 모두 병에 걸리게 된다.

 

한 칸짜리 작은 그의 오두막에는 딱딱한 침대와 작은 책상, 그리고 손님을 위한 세 개의 의자가 전부였다. 하지만 정신활동과 육체활동은 그 누구보다도 풍성했다. 소로우는 월든 근처의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여, 계절에 따른 수량의 변화, 호수들의 생태적 특징, 어류와 조류의 번식과 행동양식, 삼림과 농부들의 모습까지 마치 자연과학자처럼 자세히 기록해두었다. 저녁이면 농업서를 읽고, 예기치 못한 손님들을 맞이하고, 참된 삶이란 무엇인지 명상을 했다. 소로우는 인간이 소박한 생활을 추구한다면 일 년에 6주가량만 일을 하면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음을 스스로 입증하였다.

 

월든 호수에 들어간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신중하게 살고 싶어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로지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시하기 위해, 삶의 가르침을 잘 배우기 위해, 그래서 죽음의 순간에 내가 잘 살았구나하고 깨닫기 위해서였습니다. 삶이란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기에 삶이 아닌 길은 가고 싶지 않았고,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체념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삶을 깊게 살아보고 싶었고, 삶의 정수를 끝까지 마시고 싶었고, 삶이 아닌 것은 모두 없애버리기 위해 강인하고도 엄격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물론 소로우가 말한 신중한 삶이란 말년에 뉴잉글랜드의 온화한 기후 속에 편안히 살고자 고향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 가서 10, 20년씩 무역업을 하는 그런 삶은 아니었다. 또한 당시 800달러가던 오두막집 한 채를 장만하기 위해 부양가족도 없는 노동자가 15년씩이나 인생을 다 바쳐야 하는 그런 삶도 아니었다. 더 나아가 노예제를 보존하고, 멕시코와 영토전쟁이나 벌이는 미국정부에게 충실한 납세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버는 그런 삶도 아니었다. 소로우는 더 많은 안락과 조악한 물건이나 얻고자 전 생애를 물질적 성공에 바치는, 절제와 지성이 없는 그런 삶을 어떻게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사람들이 소박하고 가난한 삶을 거부하고 저마다 경제인간(Homo Economicus)으로서 성공하고자 할 때 그 대가는 과연 누가 치르게 될까? 소로우는 돈벌이를 위해 베어진 월든 숲의 나무와 귀청을 찢는 철도의 굉음, 그리고 사라진 새들을 통해 그 희생자는 자연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소로우가 보기에 경제인간이란 팔수만 있다면 월든의 풍경뿐 아니라 하나님이라도 시장에 내다 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쌓아온 경제성장이란 자연을 내다 판 것일 뿐이다. 착하고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 자연 속에서 조용히 지성을 갈고 닦는 삶, 그런 인간적인 위엄이 너무나도 부족한 지금 간디와 톨스토이에게 깊은 영향을 준 소로우의 말을 직접 음미하며 소중한 가을을 맞이하길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1854년 처음 세상에 나온 월든은 초판 2,000부가 팔릴 때까지 5년이 걸렸고 그 후 절판되었지만 소로가 죽은 뒤에 자연의 소박함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고전적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 가치가 재인식되었고, 전세계에서 광범위한 독자의 사랑을 받는 미국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다던 소로. 이웃 사람들 모두가 하나 같이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삶은 없이 노동에만 전념하고 있을 때, 소로는 22개월간 조그마한 통나무집에 들어앉아 때로는 수영하고, 때로는 산책하고, 때로는 친구들을 맞이하고, 또 때로는 책을 읽고 사유하며 시간을 보냈다.

소로는 단지 유유자적한 일상을 보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아무 방해 없이 자신만의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먹고 살 방편은 물론 스스로 강구했다.

 

집도 스스로 지었고, 호두나 감자, 옥수수, 완두콩과 순무 등도 직접 경작해 먹었다. 돈이 필요할 땐 측량, 목수, 막노동 일을 해서 벌었다. 그리고 이렇게 산 결과, 그는 1년에 6주 가량만 일을 하면 모든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자유롭게 공부하는 데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에 비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으며 불필요한 것이 너무나 많다. 그가 말한 최소한의 금욕주의는 감히 내가 따라할수 없는 수준이다. 다만 이 책을 통해 직장을 그만 둔 후 잠시 갈등하는 나의 마음에 다시 한번 다잡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2017년을 보내고 2018년을 맞이하기에 알맞은 책이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소로의 첫 번째 이야기 삶의 경제학

 

8. 그곳은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숫가였다. 나는 그때 오로지 내 두 손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내가 그곳에 산 것은 22개월 동안이었다. 지금 나는 다시 문명의 세계로 돌아와 있다.

그는 말했다. “숲속에 들어간 이유가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였다.”라고. 그런데 그가 다시 문명으로 왜 돌아왔을까? 숲속에 들어간 이유를 다 찾았기 때문에? 그는 22개월 2일 동안 머물렀던 월든 호숫가를 떠날 때 그는 숲에 처음 들어 갈 때만큼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 숲을 떠났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아직 살아야 할 그는 자신이 아직 살아야 할 몇 개의 삶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하나의 삶에 그 이상 많은 시간을 내줄 수 없었다고 했다.

 

8.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외롭지는 않았는지, 무서웠는지 등등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우리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항상 궁금해한다. 우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9. 나 자신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면 나는 나에 대해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책의 주제를 나의 경험이라는 협소한 범위에 한정시켰다. 뿐만 아니라 나는 모든 작가들에게도 남의 삶에 대해 들은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 단순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를 하도록 당부하는 바이다.

나의 이야기, 나의 경험 이것이 글의 진정한 힘이다. 남의 이야기는 남의 것일뿐이니까. 책이라도 다 같은 책이 아니라고 요즘 생각된다.

 

9. 브라만의 승려들은 네 개의 불길 속에서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아니면 불꽃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거나, ‘물 이외에는 어떤 음식도 넘길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비틀어진 채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없게 되도록어깨 너머로 하늘을 쳐다보거나, 평생을 나무 밑에서 사슬에 묶인 채 살거나, 흡사 쐐기벌레처럼 자신의 몸으로 광활한 왕국이 얼마나 넓은지 재보거나, 기둥 꼭대기에 외다리로 서 있기도 한다는데, 이런 의식적인 온갖 고행들조차 내가 매일 같이 목격하는 광경들에 비해 유난히 믿을 수 없다거나 더 놀라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헤라클래스의 열두 가지 노동도 나의 이웃들이 수행하는 일상사에 비하면 하찮을 정도다. 왜냐하면 헤라클래스는 열두 가지만 끝내면 됐지만, 나의 이웃들이 어떤 괴물이든 죽이거나 사로잡아 한 가지라도 노동을 완수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대부분의 농부는 먹고 살기위해 한다. 생계가 아닌 수행의 수단은 아니다. 결국 마음가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9. 나는 우리 마을 젊은이들의 불행은 농장과 가옥, 헛간, 가축, 농기구들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데서 싹튼다고 생각한다. 그런 물건들을 얻으면 여간해서 없애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차라리 드넓은 초원에서 태어나 이리 젖을 먹고 자라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인데, 그랬다면 자신들이 노동을 바쳐야 할 밭이라는 것의 실체를 좀 더 똑똑히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그들을 흙의 노예로 만들었을까? 인간이란 원래 한 줌의 육신을 소모시키면 그만인데 어째서 60에이커나 되는 땅을 부려야만 한단 말인가? 어쩌자고 태어나는 그 순간 무덤을 파기 시작한단 말인가?

대기업의 2세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정도의 유산을 받는다. 그 유산으로 더 많은 걸 가지기 위해 노예가 될 수 밖에 없다.

 

9. 인간은 이 모든 것을 내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가능한 한 훌륭한 삶을 영위해야만 하는 것이다. 자신의 짐에 짓눌려 숨이 막힌 채 75×40피트짜리 헛간과 한 번도 청소 해 본 적이 없는 불결한 마구간, 100에이커의 땅과 경작지, 건초지, 초원, 식림지 사이로 그 짐을 끌며 삶의 행로를 기어가다시피 하는 가엾은 불멸의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런 불필요한 유산 때문에 사투를 벌일 필요가 없는 무산자들은 한 줌 밖에 안 될 육신을 다스리고 교화시키는 일도 이미 중노동으로 여기는 마당에 말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 그렇지만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살려면 인간다운 삶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틀에서 벗어난 지금 나는 너무 좋지만 가족들이 걱정이다. 모든 것을 내치고 소로처럼 살수 있을까?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지금 이 순간도 포기하면 누리지 못할 것이 너무 많이 생각난다. 이미 나는 사회의 틀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10.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모두 그릇된 생각 때문이다. 우리의 육신 대부분은 이내 흙에 묻혀 퇴비로 화한다. 흔히 필연이라 부르는 허울 좋은 운명에 속아, 어느 고서에서 말하듯 좀먹고 녹슬며 도둑이 들어와 훔쳐가고 말 재물을 축적하느라 자신의 삶을 소진하고 만다. 삶을 마감할 때나 돼서야 겨우 알게 되겠지만 이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삶이다.

항상 중요한건 늦게 깨닫는 법이지.

 

10. 그로부터 우리 인간은 고통과 근심을 감내하는 돌의 심장을 가졌으니, 니는 우리의 육신이 돌의 본성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1. 비교적 자유롭다는 이 나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한 무지와 오해 때문에 있지도 않은 근심과 필요 이상으로 거친 삶의 노고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보다 감미로운 삶의 열매를 맛보지 못하고 있다.

 

11. 실제로 노동하는 이들은 매일매일의 참된 고결함을 구할 여유가 없다. 남들과의 인간다운 관계조차 유지할 수가 없는데, 그랬다가는 그의 노동은 시장에서 값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는 기계 이외의 어떤 것도 될 짬이 없다.

 

11. 무지를 깨닫는 일이야말로 그가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일인데 말이다.

 

11. 인간 본성 중에서 가장 훌륭한 속성은 열매를 얻기 위해 꽃을 잘 가꿔주어야 하듯 아주 세심하게 다루어주어야만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이들은 물론, 우리 자신까지도 그렇게 애정 어린 손길로 대하지 않는다.

 

11. 우리 중에는 가난한 이도 있고 살기 힘겨운 이도 있고 실제로 숨쉬기조차 어려운 이도 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11.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분명 초라하며 천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온갖 경험으로 연마된 내 눈에는 그것이 보인다.

벗어낫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3. 지금도 여전히 바로 이 남의 놋쇠’(=) 때문에 살다 죽어 땅에 묻히고 있다.

이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더 심해질거 같아 우리 아이들이 걱정이다.

 

13. 자신이 병들었을 때를 대비하여 돈을 벌어 그곳이 어디든 또 액수가 얼마든 낡은 궤짝이나 회벽 뒤의 양말 속, 또는 좀더 안전하게 은행 속에 쑤셔넣으려다 결국 스스로 병들고 만다.

 

13. 나는 종종 우리가 흑인 노예제라는 이 야비하고도 이질적인 노예 행태에 빠질 수 있을 정도로 천박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 그러나 무엇보다 나쁜 것은 자신이 자신의 노예 감독이 되는 일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신성에 대해서 떠들다니!

나는 노예제도가 있을 당시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14. 대중의 평가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내린 평가에 비하면 나약한 폭군에 불과하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서 하는 생각, 그것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거나 방향을 지시한다.

 

14. 자신들의 운명에 지나친 관심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죽는 날까지 화장대 방석이나 짜고 있는 이 땅의 숙녀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 마치 영원을 손상시키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시간을 죽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절망 속에서 말없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체념이라는 것은 불치병이나 다름없는 절망을 일컫는 것이다.

부모, 사회의 책임이다. 그것 밖에 모르는데 삶을 어떻게 얘기할수 있나. 나도 그랬다. 아이들에게만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15. 모두들 오늘까지 참된 것으로서 되뇌이거나 묵과하고 있는 것들도 내일이면 한낱 실체 없는 견해에 불과한 것이 될 수도 있다.

 

15. 실제로 나이가 든 이가 젊은이에게 해줄 중요한 충고라고는 없다. 그러기에는 그들의 경험이 지나치리만큼 불완전하고 그들의 삶은 너무나도 참혹한 실패였던 것이다.

 

16. 그러나 인간의 능력은 결코 측정된 적이 없고 별다른 일을 한 적도 없는 선조들에 비교해서 어떤 일의 할 수 있고 없음을 판단해서도 안 될 것이다.

 

17. 우리의 삶을 간단히 시험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어서, 지금 내 밭의 콩을 익게 해주는 바로 그 태양이 태양계의 다른 수많은 행성들도 밝혀 준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이 점만 명심했다면 어느 정도의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그 사실을 아는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17. 우리의 체질이 제각기이듯 자연과 인생 역시 다양하기 그지 없다.

 

17. 역사와 시와 신화! 그 모든 것을 통틀어도 이것보다(모든 세월을 경험하는 것?) 더 놀랍고 유익한 경험히 적힌 책을 읽은 적이 없다.

 

18. 하나의 중점에서 그릴 수 있는 반지름의 수만큼이나 많은 방법이 있다.

 

19. 거의 모든 생물체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유일한 요소는 식량이다......이런 것들을 확보하기 전에는 성공할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품고서 진정한 삶의 문제들을 자유롭게 다룰 수 없다.

 

19. 의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불가에 앉아 있는 그들 일행이 여전히 추위를 느끼고 있는데도 벌거벗은 야만인들은 불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지나친 더위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20. 이들 야만인의 강건함과 문명인의 지성을 한데 결합시킬 수는 없을 것인가?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다. 다시 원시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모를까.

 

20. 가난한 사람은 늘 세상이 차갑다고 불평한다. 그것은 육체가 느끼는 냉기라기보다는 사회적 냉대를 뜻하는 것으로, 그것이 사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21. 요즘에는 철학교수는 있지만 철학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는 대학교수직이 찬탄의 대상인데, 그것은 한때 산다는 일이 찬탄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찬탄이 요즘에도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교수이면 지성의 최고 자리이면서 안전하니까. 그래도 그들의 내력을 보면 대단하긴 하다. 그 학문을 끊임없이 해내니까.

 

22.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심오한 사상을 갖는다거나 학파를 세우는 일뿐만 아니라 지혜를 너무도 사랑하여 지혜가 지시하는 바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이며 관대하고 믿음성 있게 산다는 것이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인생의 제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22. 우리 삶에 사치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22. 삶에 필요한 이런 물건들을 손에 넣은 뒤에는 좀더 많은 물건을 얻으려하기보다는 다른 것을 원하하게 마련인데, 이제 힘겨운 노고로부터 휴가를 얻어 인생의 모험을 떠나는 일일 것이다.

 

23. 인간이 대지에 이토록 단단히 뿌리를 내린 이유는 바로 그 정도로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기 위함일 것이다.

 

23. 지금 내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대상은 주로 불만에 가득한 사람들, 자신의 험한 운명이나 시대에 대해 손을 쓸 여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빈둥거리며 불평을 늘어놓은 사람들이다. 그 중에는 자신이 할 일을 다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면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못말릴 만큼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다. 또 겉으로는 부유하게 보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떻게 없애야 할지 몰라 결국 스스로 금은으로 된 족쇄를 채우고 있는 이들에게도 이야기를 하려 한다.

 

24. 나는 날씨에 상관없이 하루 중 그 어느 때에도 그 한순간을 이용하여 기록으로 남기려 열망해 왔다. 과거와 미래라는 두 개의 영원한 시간이 합류하는 현재의 이 순간에 서서 그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25. 나는 한때 조그만 잡지사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 편집장은 내 글 대부분을 기사화하기에 부적합하다고 보았다. 그건 작가들에겐 흔히 있는 일로서 나는 헛수고만 한 셈이었다.

이 글로 볼 때 사장들이 좋아할 타입은 아니다.

 

26. 그 인디언은 남들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바구니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또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남들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다른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27. 어째서 우리는 다른 삶들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어느 한 가지 삶만을 과장하는 것일까?

 

27. 내가 월든 호수에 간 것은 보다 싼 생활비로 살기 위해서라거나 화려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방해없이 나만의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용기가 대단하다. 그리고 그의 부모들 역시 대단하다.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두었으니. 그 속사정이야 모르지만

 

27. 나는 일에 임해서 언제나 엄격한 습관을 지니려고 애써 왔는데, 그건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나에게 엄격한 습관? 없었다. 이제 만들려고 한다. 읽고 쓰고의 습관화.

 

29. 의복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대체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실용성보다는 새것에 대한 선호와 남들의 평판을 염두에 두게 마련이다. 할 일이 있는 사람에게 옷을 입는다는 행위의 목적은, 첫째 생명의 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노출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임을 상기시켜 준다면, 그는 그것이 아무리 필요하고 중요한 일일지라도 새로 옷을 구하지 않고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의식을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노력해봤는데 안된다. 어릴때 가지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허영인지 모르지만 보통남자들과 다르게 패션에 관심이 많다.

 

29. 나는 기운 옷을 입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낮춰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건전한 양심을 갖는 일보다는 유행에 맞는 옷을 입거나 적어도 깨끗하고 깁지 않은 옷을 입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깁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그 집의 형편을 생각하게 되고, 더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 보면 그 사람의 위생관념을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걸까. 그 당시는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물론 나도 어렸을때 기운 옷을 많이 입고 다녔다. 창피하기 했지만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했으니까. 요즘은 이런 사람들이 있나? 옷을 어떻게 입었느냐에 따라 사람의 첫 인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나는 부족한 사람이 틀림없다. 그러나 정말 많이 변하고 있고 나에게 변화를 주는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나 자신이 놀랄정도로 변하고 있다.

 

29. 그들에게는 기운 바지를 입느니 차라리 부러진 다리로 절룩거리며 돌아다니는 편이 쉬워 보인다.

 

30.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존중해야 할 것보다는 사람들이 존중하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30. 사람에게서 옷을 벗길 경우 그들 각자가 얼마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1.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낡은 옷을 입고 하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가지고 할 무엇이 아니라, ‘해야 할 무엇’, 또는 되어야 할 무엇인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해지고 더러운 낡은 옷이라 해도 너무나 열심히 일한 나머지 헌옷을 입고도 새 사람이 된 듯이 느껴질 때까지는, 또 헌옷을 새 술을 담을 낡은 부대처럼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새 옷을 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31. 뱀 역시 이런 식으로 허물을 벗고 쐐기벌레 역시 내적 활동과 확장으로써 애벌레의 껍질을 벗는 것이다. 의복이란 인간의 외피이며 속쇠의 번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정말 버버리같은 옷을 한번 입어보는게 소원이었다. 차 역시 벤츠아님 BMW를 타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갖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여기 나오는 말처럼 그런 껍데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으로 바뀌었다. 내면이 중요하다고. 조폭이 버버리를 입는거랑 내가 입는거랑 차이가 무엇이 있을까.

 

32. 내가 나만의 스타일로 된 옷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여재봉사는 진지한 얼굴로 사람들은 요즘 그런 옷을 만들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33. 나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되새겨 보면서 그 사람들과 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해서 내 일에 이토록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인지 생각하다가 결국 그녀에게도 나도 역시 수수께끼나 다름없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실 최근까지는 그러지 않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이런 옷을 만들어 입는단 말이오하고 말이다.

멋진 반전의 한마디. 세속에지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지를 엿볼수 있다.

 

33. 나는 종종 인간의 도움으로는 이 세상에서 아주 간단하고도 정직한 일 하나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우선 그들을 강력한 압착기 속에 집어넣은 낡은 생각들을 쥐어짜낸 다음 두 다리로 일어서지도 못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도 그중 누군가의 머릿속에 구더기가 자랄 것이고 그것이 낳은 알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부화할 것이다. 불로도 그것들을 죽일 수 없을테니 결국 헛수고를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집트의 밀이 미라에 의해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는 사실을 잊을수는 없으리라.

 

34. 어느 세대든 구세대를 비웃으면서도 거의 종교적인 열정으로 새겻을 추종한다.

 

34. 옷을 보아도 우습지 않게 하고 그것을 입은 사람을 성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은 입은 사람의 진지한 눈빛과 그 사람의 성실한 삶뿐이다.

 

35. 먼 장래를 내다볼 때 인간은 결국 자신이 노리는 바를 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비록 지금 당장은 실패한다 해도 보다 높은 목표를 겨누는 편이 나을 것이다.

 

36. 인간은 온기를 주는 집, 즉 온기의 위안을 먼저 구하고 나서 사랑의 온기를 갈구했던 것이다.

 

37. 그런데 이런 상자 속에서도 얼어죽지는 않을 텐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보다 크고 화려한 상자 속에 살며 세를 지불하느라 죽도록 고생하고 있다.

왜 그리 악착같이 집을 넓히고 사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막상 갖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빛을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맨다. 조금만 욕심을 버리면 되는데. 그저 남과의 비교에.

 

38. 인디언의 오두막 마을을 통째로 살 수 있는 그 돈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는 가난에 시달리는 것이다.

 

39. 문명이 인간 조건의 진보라고 주장한다면 문명 속에서 더 큰 희생을 치르지 않고 보다 나은 집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39. 이 지역의 평균치 주택값은 대략 800달러 정도로서, 그 정도의 금액을 모으기 위해서는 부양가족이 없는 노동자가 자신의 인생에서 10년에서 15년을 바쳐야 한다. 요컨대 일반 노동자가 자신의 오두막집 하나를 마련하는 데 인생의 절반 이상을 고스란히 바쳐야 하는 것이다.

1800년에서 200년이 지났건만 이런 일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차가 늘어났다. 앞으로는?

 

39. 이 불필요한 재산을 보유하는 데서 얻은 이점은 미래에 대비한 저축에 불과한데, 개인에 관한 한 그것은 주로 자신의 장례비로 지출될 뿐이다.

 

40. 나는 현재 이러한 이점을 얻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인지를 밝히고, 그와 동시에 아무 손실없이 그 모든 이점을 확보할 수 있는 삶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점을 제안하려는 바이다.

 

42. “거짓된 인간 사회에서는 속세의 부를 좇느라 거룩한 모든 위안은 허공에 흩어질 뿐.”

집을 소유한 농부는 집 때문에 더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질 뿐이며, 오히려 집이 그를 소유한 셈이 되고 만다.

 

42. 그것은 우리가 만든 집들이 우리가 그 집 속에서 거주한다기보다는 갇히는 결과를 야기하는 다루기 힘든 재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피해야 할 나쁜 이웃을 바로 우리 자신의 천박한 자아인 것이다.

 

42. 문명은 주택을 개선시켰지만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을 그와 같은 정도로 개선시키지는 못했다.

 

42. 문명인이 단지 조악한 필수품과 안락을 얻기 위해 미개인보다 인생의 더 많은 부분을 일하느라 보내야 한다면, 어떻게 문명인이 미개인보다 더 좋은 주거지를 가졌다고 할수 있단 말인가?

 

43. 한 계층의 사치스런 삶은 다른 계층의 빈곤을 야기한다..... 궁전의 처마장식을 마무리하던 석공은 밤이면 움막이나 다름없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리라.

 

44. 사람들 대부분은 집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적도 없이, 이웃들이 소유한 정도의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사실상 평생 불필요하게 가난에 쪼들리고 있다.

 

44. 늘 이런 것들을 더 많이 얻으려는 궁리만 할 뿐 모자란 대로 만족하지는 못하는 걸까? 그 결과 존경할 만한 시민이 젊은이들에게 죽기 전에 여분의 장화와 우산, 있지도 않은 손님들을 위한 손님용 침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보기를 보여 가며 엄숙하게 가르쳐야만 하는 것일까?

 

45. 여관주인은 손님을 마치 사르다니팔루스나 되듯 극진히 모시기 때문에 그들의 달콤한 대접을 탐닉하다가는 얼마 안 가서 알맹이는 모두 빼앗기고 빈 껍질만 남을 테니 말이다.

저자의 이런 비유가 놀랍다. 그 많은 신화를 알고 있음은 물론이고 거기의 내용을 이 책의 내용과 접목시킨다. 부럽다.

 

46. 현세를 위해서는 가족의 저택을, 내세를 위해서는 가족 묘지를 찾았다.

 

47. 집 안을 아름다운 물건으로 장식하기 전에 먼저 벽을 깨끗이 치우고 우리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야 한다.

 

50. 인간이 자신을 깨우는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면 분명 고결하고 더욱 성스러운 삶을 영위할 것이다.

 

54. 그 시절에는 너무 분주한 나머지 책을 거의 읽지 못했지만, 그릇 받침대이자 식탁보 구실을 한 신문지 조각이 책 읽는 만큼의 즐거움을 안겨 주었고 실제로 내게는 <일리아스>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랬던 것보다 좀더 신중하게, 예를 들면 문짝이나 창문, 지하광, 다락방 등이 인간성 어디에 기반을 둘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집을 지으면 좋을 것 같다.

 

55. 집 짓는 일의 즐거움을 영원히 목수들의 손에 넘겨 줄 것인가? 사람들이 겪는 일 중에서 건축에 대한 경험은 얼마나 될까?

 

55. 이 노동의 분업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결국 어떤 목적에 귀결될 것인가?

 

57. 이렇게 해서 내게는 폭 10피트에 길이 15피트, 8피트짜리 기둥이 서고 .....집 한 채가 생겼다.

그 유명한 3m×5m 오두막집이다. 28달러짜리. 건설관련 일을 했지만 대단하다. 나도 해보지 못한 직접 집짓기를

 

59. 나는 집이 필요한 학생이면 현재 매년 집세로 지불하는 돈만 가지고도 평생 동안 쓸 수 있는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9. 예컨대 수업료는 학비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학생들이 동시대인들 중에 가장 교양있는 부류와 교제함으로써 얻는, 보다 더 값진 교육에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다.

 

60. 인간에게 필수적인 노동을 고의적으로 기피한 채 탐욕스럽게 여가를 확보하려는 학생은 실제로는 불명예스럽고 무익한 여가를 얻을 뿐이며, 여가를 유익하게 만들어주는 경험을 쌓을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학생들이 머리가 아니라 손으로 노동해야 한다는 말이오?”하고 묻는 사람도 있으리라.... 사회가 값비싼 놀이의 비용을 대고 있는 동안 학생들은 인생을 놀면서 보내거나, 아니면 그저 인생을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삶을 영위해야 한다는 것이다.

 

60. 젊은이들이 지금 당장 삶을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 이상으로 인생에 대해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60.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상을 들여다 보는 법은 배울지 몰라도 그애의 눈으로 직접 세상을 보는 법은 배우지 못할 것이다. 화학에 대해서는 배우겠지만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를 것이고, 기계학은 배우겠지만 기계를 만드는 방법은 모를 것이며,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할 수는 있어도 자기 눈의 티끌은 보지 못하거나, 그 자신이 어떤 부랑자의 위성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책을 통해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세상 모든 것을 너무 이론적으로 본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마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직장을 가지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되는 것처럼

 

61. 가난한 학생들조차 정치경제학만 공부하고 또 수업 받고 있는데, 정작 철학과 동의어인 삶의 경제학은 오늘날 대학에서 진지하게 교습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학생이 아담스미스와 리카르도와 세이의 저술을 읽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갚을 길 없는 부채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62.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저축을 하지 않다니 놀랍군요. 당신은 여행을 좋아하잖아요. 오늘이라도 차를 타고 피츠버그로 가서 그곳 구경을 할수도 있을 텐데 말이에요하지만 난 그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나는 가장 빠른 여행은 바로 자기 발로 가는 것임을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65. 그것은 만약 인간이 소박하게 살면서 자신이 농사지은 것만 먹고, 자신이 먹을 만큼만 농사지으며 더 호사롭고 값비싼 데다 양도 얼마 되지 않는 식량과 바꾸어 먹지만 않는다면 몇 라드의 땅에 곡물을 재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그 밭을 가는데 소를 쓰는 것보다 내 손으로 삽질하고 묵은 밭에 거름을 주는 것보다는 간혹 새 땅을 밭으로 쓰는 편이 훨씬 값이 싸게 먹힌다는 것.

 

68. 피라미드를 볼 때 그토록 많은 사람이 야심에 찬 어떤 멍청이의 무덤을 짓느라 평생을 바칠 만큼 타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말고는 그다지 놀라울 것이 없다. 그런 자는 나일강 속에 빠뜨린 다음 시체를 개들에게 내주는 편이 훨씬 현명하고 당당한 일이었으리라.

과거에 피라미드, 만리장성 이런 고대 건축물을 보면 웅장하고 거대한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 뒤에 그 건축물을 짓기 위해 수많은 노예와 노동자들의 피와 목숨을 담보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는 그저아름답다고는 못하겠다.

 

69. 손가락 수만큼이나 많은 직업을 갖고 나는 한편으로 마을에서 측량과 목수, 막노동 등 온갖 일을 해서 13달러 34센트를 벌었다.

 

72. 2년간의 경험에서 나는 이런 지방에서도 먹고사는 데 필요한 식량을 구하는 일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은 노력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인간은 동물처럼 소박한 식사를 할 수도 있으며, 그렇더라도 건강과 체력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73. 추운 날 흡사 이집트 인이 달걀을 부화시키듯이 조심스럽게 뒤집어가면서 빵덩어리 몇 개를 연이어 굽는 것은 적지 않은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이 빵은 내손으로 익힌 전정한 의미에서의 곡식 열매였으며 내게는 다른 어떤 값진 열매만큼이나 향기로워서 천에 싸서 되도록 오랫동안 보관했다.

 

76. 농부에서 공장 직공으로 몰락한 것은 인간에서 농부로 몰락한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기억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 줄의 문장이지만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다.

 

81. 나는 5년 이상을 이런 식으로 오직 내 손의 노동으로 먹고 살았으며, 그 결과 1년에 6주 가량 일을 하면 모든 생계비를 충당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 동의하지만, 소로 당신은 혼자 살았잖아요. 만약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데 말이죠. 그땐 어떻게 해야 하죠?를 묻고 싶다.

 

82. 내가 무엇보다 선호하는 일은 특히 내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고, 또 험하게 살더라도 나로서는 행복할 수 있으므로 지금 당장은 값비싼 양탄자나 좋은 가구, 맛있는 요리, 그리스 식이나 고딕 양식의 주택을 손에 넣기 위한 돈을 버는 데 시간을 써버릴 생각이 없었다.

 

83. 나로서는 날품팔이야말로 무엇보다 독립적인 직업이라 생각이 드는데, 특히 그 일은 한 사람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서 1340일 정도만 일하면 되기 때문이다. 해가 지는 것과 더불어 하루 일이 끝나고 나면 그는 일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다. 그런 반면 끊임없이 사업에 골몰해야 하는 그의 고용주는 일 년 내내 휴식을 누릴 짬이 없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신념과 경험 두 가지 모두에 의해, 소박하고 현명하게만 산다면 이승에서 한 사람이 먹고사는 일은 힘겨운 일이 아니라 유희나 다름 없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83. 나는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부모나 이웃의 생활방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생활방식을 신중하게 찾아서 추구하기를 바란다.

 

84. 선원이나 도망중인 노예가 북극성을 지표로 삼듯이 우리는 정확한 한 점을 지표로 삼을 때만 현명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평생의 길잡이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것만 있다면 예정된 시일 안에 목표로 삼은 항구에 도착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올바른 항로를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84. 일반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협력은 극히 부분적이고 피상적이게 마련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력이란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화음처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이 보인다. 신념이 없는 사람은 어떤 무리에 속하든 세상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갈 것이다.

 

85. 무엇보다도 혼자 여행하는 사람은 오늘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동행이 있는 여행자라면 그 사람이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다 출발하기까지 한참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85. 내가 이 일에 관여하여 모든 면에서 내가 자립한 것만큼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삶에 의무를 지워볼 생각을 하고 또 그렇게 제안해 보기까지 했지만, 모두들 주저없이 가난한 채로 그대로 살겠노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처럼 많은 방법으로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으니 한 사람쯤 인도적인 일과는 거리가 먼 다른 일을 해도 좋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이 자선에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

 

86. 실제로 사람들은 좀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든가 친절한 마음으로 선행을 하려 들지 말고 현재 있는 그 위치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모습대로 시작하라고들 말한다. 만약 내가 그런 엄숙한 어조로 설교를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보다는 먼저 착해지라고 말하고 싶다.

 

87. 변질된 선()에서 솟는 것만큼 지독한 악취도 없다.

 

87. 그러나 비교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가장 유복하게 살고 있을 때야말로 바로 우리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때까 아닐까?

 

90. 내가 원하는 것은 인간의 꽃과 열매다. 인간의 향기가 내게 풍겨 오기를, 그 성숙함으로 우리들의 인간 관계에 풍미를 더할 수 있기를 원한다. 인간의 선함이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행위여서는 안 되며, 그것은 늘 남아도는 것, 그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고 의식적이지도 않은 행위여야 하는 것이다.

 

91. 개혁자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곤궁에 처한 동포에 대한 연민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사적인 고통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고통이 사라지고 봄이 오며 자신의 침상 위로 아침해가 솟으면 그는 사과도 없이 너그러운 동포를 저버릴 것이다.

 

91. 인간의 관습은 성자들과의 관계로 오염되고 말았다.... 예언자와 구원자들조차 인간의 희망을 확립시켰다기보다는 두려움을 달래주는 데 그쳤던 것 같다.

 

92. 요컨대 만약 진실로 인디언답게, 또는 식물답게, 혹은 매혹적이거나 자연스러운 수단을 동원해서 인류를 회복시키고자 한다면 우선 자연 그 자체처럼 소박하고 넉넉해지도록 하자.

 

92. 가난한 자의 감독이 되려 하지 말고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자.

 

92. 나무마다 각기 적당한 열매를 맺고 일정한 시기가 주어져 있어 그 동안에는 싱싱하게 꽃을 피우며 그 시기가 아니면 마르고 시드느니라. 그런데 편백나무는 시기와 상관없이 언제나 정정하다. 아자드, 즉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자들 역시 바로 이와 같은 성질을 띠느니라. 그대들도 덧없는 일에 마음을 두지 말라. 칼리프 족속이 멸한 뒤에도 디즐라즉 티그리스는 유유히 흐를 지니라. 그대들의 손이 풍성하면 대추나무처럼 아낌없이 나누어 줄지어다. 그러나 줄 것이 없다면 편백나무처럼 아자드, 즉 자유로운 인간이 돼라

 

소로의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살았던 장소와 삶의 목적

 

98.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주인이니, 내가 그곳에 있는 권리를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도다.

 

98. 시인이 자기 농장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훌륭한 울타리라 할 수 있는 시에 담아 그것으로 담을 쌓고 즙을 짜고 찌꺼기를 걷어내고 가장 좋은 부분을 떠냈다는 것, 그리고 농부에게는 찌꺼기인 우유만 남겨놓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100. 가능한 한 오래도록 자유롭게, 아무런 의무도 없는 삶을 영위하라는 것이다.

 

100. 나 역시 이제부터는 농장을 냉큼 사들이지 않고, 사는 동안 내내 그 주변을 빙빙 돌 것이다.

집을 살 때 역시 마찬가지이다. 눈으로 보는 것과 다만 며칠이라도 살아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105. 매일매일의 아침은 내 삶을 자연 그 자체만큼 소박하게 하라는, 또는 순결하게 하라는 유쾌한 권유였다. ....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호수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것은 거의 종교적행사나 다름없었으며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이었다. 탕왕의 욕조에 다음과 같은 취지의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매일같이 네 자신을 새롭게 하되 그 일을 영원토록 반복하라.”

좋아 보이긴 하는데. 그 큰 호수가 전용 목욕탕이라니.

 

106. 하루 중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시기인 아침은 잠을 깨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때는 졸음기가 가장 없을 때이며, 적어도 그 한 시간 동안에는 밤이나 낮이나 잠을 자는 우리의 어떤 일부가 깨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비범한 정신에 의해 잠을 깨는 것이 아니라 공장의 종소리에 따라 일어난다면 그것을 하루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날에는 거의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전날 잠들 때보다 더욱 높은 삶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결국 어둠도 그 열매를 맺는 것이며 그 자체가 빛에 못지 않게 좋은 것임을 입증하는 셈이다.

공장에서 만든 휴대폰 알람에 깨는 아침을 맞고 있는데. 규칙적인 생활이 안되다 보니 그런 것이다. 2년차에는 좀 규칙적이 될라나.

 

106. 매일매일이 자신이 지금껏 더렵혀 온 시간보다 더 이르고 더 성스러우며 더 장밋빛을 띤 시간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인생에 절망하고 점점 어두워지는 내리막길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잠시동안 감각적인 삶을 중단하고 나면 인간의 영혼 또는 그의 기관들은 매일같이 새로 활력을 얻게 되며 그의 비범한 정신도 다시금 고결한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기념할 만한 모든 사건에 아침 시간에, 그리고 아침의 대기 속에서 발산된다고 할 수 있다. 베다 에서도 모든 지성은 아침과 더불어 잠을 깬다고 말하고 있다. 시와 예술, 인간 활동의 가장 훌륭하고 기념할 만한 것은 바로 이 한시간에서 비롯된다.

새벽 두시간을 만들기 위해 연초부터 얼마나 노력했던가. 습관화가 되고 나니 정말 나의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과제 때문에 많이 깨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습관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빠지지 않은 것이 힌두교 경전인 것 같다. 모든 서양학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동양적 철학과 사유를 높이 평가하는 것 아니겠나.

 

107. 아침은 내가 깨어나는 시간이며 동이 트는 시간이다. 도덕적 개혁이란 바로 잠을 쫓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졸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토록 하루를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107. 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완전히 깨어있는 사람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런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볼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기계적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깊이 잠들었을 때조차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 새벽에 무한한 기대감을 품음으로써 다시 깨어나고 또 잠을 깬 상태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108.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새기고 그럼으로써 어떤 대상에 아름다움을 부여할 줄 아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지만, 그런 것을 보는 환경 자체를 조각하고 그릴 수 있는 능력은 그보다 훨씬 더 훌륭한 것이며, 실제로 우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

 

108. 내가 숲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삶이란 그처럼 소중한 것이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고, 도저히 불가피하기 전에는 체념을 익힐 생각도 없었다. 나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모든 정수를 뽑아내고 싶었고, 강인하고 엄격하게 삶으로써 삶이 아닌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숲속에 널찍하고 반들반들하게 길을 닦아 삶을 맨 안쪽까지 몰아붙인 다음 가장 비천한 상태까지 내몰아 그 삶이 정말 비천하다고 판명날 경우 삶의 모든 천박함을 있는 그대로 뽑아서 온 세상에 공표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고 그 삶이 숭고한 것이라면 직접 체험함으로써 그 숭고함을 알고 싶고 다음번 여행 때에는 그것에 대하여 진정한 얘기를 할 수 있기를 원했다.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악마의 것인지 하느님의 것인지 이상하리 만큼 확신하지 못하면서 다소 성급하게 하느님을 찬미하고 영원토록 기쁘게 하는 일이야말로 이승을 사는 인간의 주된 목적이라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너무 주옥같은 말이다. 강인하고 엄격하게~~

 

109. 그러나 아직 우리는 개미처럼 비천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우화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우리가 인간으로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우리의 최고의 미덕은 무익하고 피할 수 있는 불행이 닥칠 경우에만 발휘된다. 삶은 자잘한 일에 낭비되고 있다.

 

109. 단순하게, 단순하게, 단순하게 살지어다! 백가지 천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일을 줄이라.

 

109. 단순화하고 단순화하라. 하루 세 끼 식사를 할 게 아니라 필요할 때 한끼만 먹도록 하라. 백 가지 요리를 다섯 가지로 줄이라.

꼭 내게 하는 말 같다. 일단 두끼로 줄이고. 너무 풍성한 식탁을 차리지 말자. 조금은 부족하게.

 

110. 나머지 일들 같은 비율로 줄이라. 우리 삶이란, 수많은 소국들로 구성되고 끊임없이 국경이 바뀌어 결국에는 독일인조차 현재의 국경이 어딘지 말 할수 없게 된 저 독일연맹과 흡사하다. 국가 그 자체도 이른바 내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비대해서 다루기가 힘든 조직체가 되어....... 이에 대한 유일한 치료책은 엄격한 검약, 스파르타식 간소함보다 훨씬 더 가혹한 생활양식, 고양된 목표다. 국가는 지나치게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

 

110. 우리가 침목을 끌어대고 레일을 만들고 밤낮으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저 우리의 삶을 어떻게 개선해볼까 하고 주물럭거리기만 하면 대체 철도는 누가 까느냐고? 그리고 철도가 깔리지 않으면 어떻게 때가 왔을 때 천국에 올라갈 수 있겠느냐고? 그렇지만 우리가 집 안에 앉아서 우리의 일에만 전념한다면 철도를 쓸 사람이 누가 있을까? 우리가 철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철도가 우리를 타고 달리는 것이다. 철도 밑에 깔린 침목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그것 하나하나가 아일랜드 인이 아니면 미국인 같은 사람인 것이다.

 

110. 누군가 철로 위를 달리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 밑에 깔리는 불운을 맞는 셈이다.

 

111.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쫓기듯이 삶을 영위해서 인생을 낭비하는 것일까? 우리는 허기가 지기도 전에 벌써 굶어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111. 우리는 그저 무도병(舞蹈病)에 걸려 도저히 머리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는 것이다.

 

114. 허위와 기만이 가장 건전한 진실로 존중되는 반면 현실은 거짓으로 간주되고 있다.

 

114. 서두르지 않고 지혜로운 삶을 영위한다면 우리는 훌륭하고 가치 있는 것만이 영원하고 절대적이며, 하찮은 두려움과 쾌락은 현실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언제나 용기를 주는 지고의 진리다.

 

115. 사실, 영원에는 뭔가 참되고 숭고한 것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과 장소와 사건은 지금 이옥이다. 하느님 자신도 현재라는 순간에 완결되는 것이며 그 어느 시대에도 지금보다 더 거룩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현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 흠씬 젖어듦으로써만 숭고하고 고귀한 것을 파악할 수가 있다. 우주는 끊임없이 또한 유순하게 우리의 생각이 응답해 준다. 우리가 빠르게 가든 느리게 가든 언제나 우리를 위한 길은 마련돼 있다. 그렇다면 생각하면서 삶을 영위하도록 하자.

 

116.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든, 거르든 간에 조용히 당황하지 말도록 하자. 벗들이 찾아오든 떠나든 괘념치 말자.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울도록 내버려두자. 그렇게 하루를 보내기로 결심하자. 무엇 때문에 녹초가 되어 물살에 휘말려야 하는가?

 

117. 삶이 됐든 죽음이 됐든 우리가 갈구하는 것은 오로지 진실 뿐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거라면 부지런히 할 일을 하도록 하자.

 

117. 시간이란 내가 낚시하는 냇물일 뿐이다. 나는 그 물을 마시지만, 물을 마시는 동안 모래가 깔린 바닥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얕은지 알게 된다. 시간의 얕은 흐름은 이내 흘러가고 만다. 그러나 영원은 그대로 남는다.

 

117. 지성이란 식칼과 같아서 사물의 비밀을 인식하고 갈라낸다. 나는 필요 이상으로 두 손을 바삐 놀릴 생각이 없다. 내 머리가 곧 두 손이며 두 발인 것이다. 내 모든 최고의 기능은 머릿속에 집중돼 있다.

 

소로의 세 번째 이야기 독서

 

121. 제자리에 앉아서도 정신 세계를 돌아다닐수 있는 이점을 나는 책 속에서 누렸네. 포도주 한잔으로 취하는 즐거움을 나는 심오한 학설이라는 술을 마심으로써 맛보았네. - 미르우드 -

 

122.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현대의 보다 실질적인 학문을 위한 길이 되어 줄 것처럼 말하곤 하지만, 모험심에 넘치는 학생이라면 그것이 어떤 언어로 씌어지고 그 언어가 얼마나 오래된 것이든 상관없이 고전을 공부할 것이다. 고전이란 인간의 사상 중에 가장 고귀한 내용을 기록한 것에 다름아닐 테니까. 고전은 사멸되지 않은 유일한 신탁이며 가장 현대적인 질문에도 델포이나 도도나 신전조차 주지 못한 해답을 줄 것이다. 자연이 오래된 것이라 해서 자연을 공부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다. 책을 잘 읽는 일, 다시 말해서 참된 정신으로 참된 책을 읽는 일은 숭고한 운동이며, 오늘날의 관습이 존중하는 그 어떤 운동보다도 힘든 일이다. 그 일은 운동선수가 하는 것 만큼 훈련을 필요로 하며, 독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거의 평생에 걸친 꾸준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책은 그 책이 씌어졌을 때처럼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읽혀야 한다.

책과 고전에 대한 명쾌한 정의. 책의 적절한 부분에 인용하고 싶다.

 

122. 귀로 듣는 언어와 글로 씌어지는 언어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후자는 전자의 언어가 성숙하고 경험을 쌓아 이루어지는 말이다. 전자가 어머니의 말이라면 후자는 아버지의 말이고 신중하게 선택된 표현이며, 너무 깊은 의미를 갖고 있어서 귀로는 듣기 어려운 말이다. 그 말을 하려면 다시 한번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124.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 때마다 보물함 속에 <일리아스>를 넣어 지니고 다녔던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폴레옹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지니고 다녔다고 했다. 나는 현역시절 그런 책이 없었다. 늦게나마 구본형 선생님을 만난게 다행이었지만.

 

124. 책은 세계의 소중한 재산이며 세대와 민족의 온당한 유산이다.

 

124. 그 책의 저자들은 어느 사회에서든 자연스럽고도 매혹적인 엘리트로서, 왕이나 황제 이상으로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책을 경멸하는 무식한 장사꾼이 모험심과 근면함으로 그토록 갈망하던 여유와 자립을 성취하여 부와 상류사회의 일원이 되면, 마침내 어쩔 수 없이 더욱 높고 그러면서도 아직 다가갈 수 없는 지성과 천재의 사회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그럴수록 자신의 불완전한 교양과 자신이 소유한 부가 얼마나 공허하고 불충분한 것인지를 통감한다. 이때 그는 뛰어난 판단력으로 자식들에게 자신이 그토록 결핍을 느꼈던 지적 교양을 마련해 주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럼으러써 결국 그는 한 가문의 창시자가 되는 것이다.

 

125. 바티칸 궁전이 베다와 젠드아베스타와 성서, 호머와 단테와 셰익스피어 등으로 가득 채워질 때,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세기가 자신들의 전리품을 세계라는 광장에 잇달아 쌓아놓을 때 그 시대는 실로 풍요로울 것이다. 이러한 풍요로운 누적이 있을 때 인간에게 비로소 하늘에 오를 희망이 생길지도 모른다.

 

128. 인류의 지혜를 기록해 놓은 고전과 경전들 역시 어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서든 읽어 보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129. 불멸의 지혜가 담긴 그의 <대화록>이 바로 옆 선반에 꽂혀 있는데도 그 책을 읽지 않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상스럽고 비천한 삶을 영위하는 부식한 인간이다.

 

130.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일고 자신의 삶에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지금까지의 기적을 설명하고 새로운 기적을 보여줄 책이 우리를 위해 어딘가 분명 존해하고 있을 것이다.

 

소로의 네 번째 이야기 삶의 소리

 

134. 역사나 철학이나 시 강좌를 아무리 잘 고르고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사귀고 남보다 뛰어난 생활을 영위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것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훈련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당신은 단순한 독자나 학생이 되겠는가, 아니면 보는 사람이 되겠는가? 당신의 운명을 읽고 눈 앞에 있는 것을 보라. 그런 다음 미래를 향해 걸음을 떼어놓으라.

관찰의 중요성을 소로 역시 얘기하고 있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찰하고 보고 생각하고 느끼자.

 

135. 나는 동양인들이 명상에 잠기느라 일을 하지 않는 참뜻을 이해했다.

 

139. 나 역시 지구라는 궤도 어디에선가 기꺼이 철로 수선공이 될 생각이 있으니 말이다.

 

142. 당신 자신의 길이 아닌 모든 길은 운명의 길이다. 그러니 자신의 길을 벗어나지 말도록 하라.

 

145.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누군가의 진정한 성품을 알게 됐을 경우 현재의 상태에서 더 좋은 것으로든 나쁜 것으로든 바꿀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지 않는다. 동양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개의 꼬리를 불에 구워 눌러놓고 끈으로 칭칭 감아놓는 일을 12년 동안 반복하더라도 원래의 형태를 유지할 것이다.”

한번 형성된 것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정해져 있다면 사는 의미가 있을까.

 

149. 때로는 숲 이곳저곳에서 네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우연히도 한 소절씩 잇달아 부른 데다가 아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각각의 울음소리에 이어지는 쿡쿡거리는 소리뿐만 아니라 거미줄에 걸린 파리가 붕붕거리며 내는 소리와 비슷하면서 몸집이 큰 만큼 더 크게 내는 소리까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대단하지 않나. 숲이 조용한 것도 있지만 소로의 뛰어난 집중과 관찰력이 돋보인다. 그러니 위대한 작가이겠지.

 

153. 구식 인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미쳐버리거나 따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죽어버렸을 것이다.

정말 그랬을 것 같다. 요즘 청소년들을 치료하는 좋은 방법이 될거 같다.

 

소로의 다섯 번째 이야기 고독

 

158. 자연 속에 살면서 평온한 감각을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암담한 우울이란 있을 수 없다.

너무 단정적으로 얘기하네. 소로니까 가능할 것이다.

 

159. 오늘 콩밭에 물을 주는 이슬비로 나는 집안에 박혀 있었음에도 결코 따분하다거나 우울한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내게도 도움이 되었다.

 

159. 나는 외로움을 느낀 적도, 고독감이 엄습한 적도 없었지만, 언젠가 내가 숲에 들어온 지 몇 주일이 지났을 때 가까에 있는 이웃이 평화롭고 건전한 삶에 필수요소는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은 적이 있었다. 혼자 지낸다는 건 왠지 재미없는 일 같았다.

나 역시 외로움, 고독감과 거리가 먼 인간이다. 그런 감정이 어떤 감정일지 짐작은 가지만 그럴 시간이 이제는 없다.

 

159. 이슬비가 내리는 동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는 문득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가운데 내 집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소리와 풍경에서 자연과의 감미롭고도 자애로운 친교를 느꼈다. 그것은 내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공기처럼 무한하면서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우정이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생각했던 이웃의 이점들이라는 것이 무의미해졌으며 그 뒤로는 두 번 다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은 솔잎 하나하나가 팽창하며 감응으로 부풀어 내 편이 되어 주었다.

 

160. 내가 가장 즐겁게 보낸 시간 중에는 봄이나 가을철 오랫동안 비바람이 몰아치던 때가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오전은 물론 오후 나절에도 집 안에 박혀 끊임없는 부는 바람 소리와 몰아치는 빗소리에 위안을 받았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후두둑 소리를 내는 창가에 서서 커피한잔. 그리고 빠져드는 상념. 최고지

 

163. 정신의 의식적인 노력으로써 행위와 행위의 결과에서 초연할 수가 있으며,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든 급류처럼 우리 곁은 지나쳐가게 된다.

 

163. 나는 보다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는 일이 유익함을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상대라도 함께 있으면 이내 싫증이 나고 좋아하는 감정도 식게 마련이다. 나는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고독만큼 상대하기 좋은 친구를 보지 못했다.

 

164. 생각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늘 혼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독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164. 결국 우리는 이렇게 자주 만나는 일을 그런대로 참아주고 싸움을 벌이지 않기 위해 이른바 예절과 정중함이라는 일정한 규칙을 정해놓지 않을 수 없었다.

 

165. 인간의 가치는 우리가 꼭 만져 봐야 된다고 여기는 피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165.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힘을 유지할 경우 우리는 앞의 경우와 비슷하면서도 더욱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교제를 통해 끊임없이 기운을 얻게 되고 자신이 결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165. 하느님 역시 혼자이지만 악마는 혼자 있는 법이 없다. 악마는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며 그 무리는 수도 없이 많다.

 

167. 나의 만병통치약은, ... 순수한 아침의 대기 한 모급이다. , 아침의 대기!

 

소로의 여섯 번째 이야기 손님들

 

170.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었는데, 하나는 고독을 위한 의자, 둘은 우정을 위한 의자, 셋은 친교를 위한 의자였다.

멋진 발상이다. 나도 내 집을 열고 싶은데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174. 인디언들 자신도 먹을 것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손님들에게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음식을 제대로 대접하고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인디언들도 배고픔을 참으면서도 음식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이다.

 

175. 사소한 일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이 점에서 볼 때 마을에서 멀다는 이유로만으로도 손님이 선별된 셈이었다. 나는 고독이라는 거대한 바다 안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그 바다로 교제라는 강물이 흘러들었다.

 

179. 나는 그에게(나무꾼) 혹시 생각을 글로 써보고 싶었던 적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 대신 편지를 읽고 써준 젓은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보려고 한 적은 없다고 했다. “아뇨, 글을 쓸 수 없어요. 우선 무슨 말을 써야 좋을지 알 수 없는데다가 철자까지 신경써야 한니 그거야말로 죽을 노릇 아닌가요?”

나도 그랬다. 그러나 글을 써는 건 처음이 어렵지 글을 한번 써보면 기분이 좋다. 좋은 글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이젠 글쓰기가 재미있다.

 

180. 공장없이도 살 수 있지 않겠소? 하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은 손으로 짠 버몬트 산 회색 옷을 입은 적이 있는데 좋았다고 말했다. 차나 커피가 없어도 괜찮겠소? 이 나라에 물을 제외하면 마실게 있던가요? 그러면서 자기는 솔송나무 잎을 물에 적셨다가 그 물을 마셨는데, 더운 날씨에는 물보다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돈이 없이도 살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는 화폐제도의 기원에 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과 페큐니아라는 단어의 어원과도 일치하는 돈의 편의성에 대해 말했다. ..... 그는 ... 어느 철학자보다 답변을 잘 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자기와 관련된 것으로서 그 제도들을 설명하면서 그 제도들이 보급된 진정한 이유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다른 생각은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82. 그의 경우는 갖가지 사회제도를 재창조하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종종 주저하며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지는 못했으나 그는 언제나 배후에 그럴싸한 사상을 품고 있었다.

정식적인 교육, 한번의 깨달음만 있으면 되는데.

 

182. 그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신분에 평생 무식한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더라도 인생의 최하층에 비범한 인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시하해 주었다.

 

185. 생계를 유지하는 데 시간을 온통 빼앗겨 틈도내지 못할 만큼 바쁜 사람들, 하느님 얘기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독점권을 갖기라도 한 듯 다른 의견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성직자들, 의사와 변호사들,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내 찬장과 침대 속을 염탐한 불쾌한 주부들, 잘 다져진 직업의 길을 선택하는 편이 가장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린 결코 젊지 않은 젊은이들.

 

185. 늙고 병든 사람들과 소심한 이들은 나이와 성별과 상관없이 질병과 불의의 사고와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소로의 일곱 번째 이야기 콩밭

 

191. 나는 콩에서 무엇을, 또 콩은 내게서 무엇을 배우게 될까?

 

192. 손으로 하는 노동은 그것이 설혹 거의 고역이라 할 만큼 지루하게 진행되더라도 결코 최악의 게으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한 노동은 지속적이며 불멸인 교훈을 지니고 있어서 학자에게서라면 권위있는 성과를 낳을 수 있으리라.

 

200. 나는, 다음번 여름에는 콩과 옥수수만 그렇게 열심히 심을 게 아니라 아직 그 종자를 잃어버리지만 않았다면 성실, 진리, 우직함, 믿음, 순수와 같은 씨앗도 심으리라고, 그래서 설혹 노고와 거름을 덜 주더라도 그 씨앗이 이 토양에서 자라나 나를 먹여 살릴 수 잇을지 알아보겠노라고 생각했다.

 

201. 우리는 왜 종자용 씨앗에만 관심이 있고, 인간의 새로운 세대에 관해서는 무관심한 걸까? 만일 내가 방금 열거했던 그런 품성이 그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사람을 만난다면 실로 많은 자양분과 격려를 얻을 수 있으리라.

 

202. 성실 앞에서 격식을 차려서는 안된다. 가치와 우정이라는 알맹이만 갖춰져 있더라도 비열한 행동으로 서로를 속이고 욕하고 내쫓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02. 빵이 언제나 자양분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다. 오직 인간이나 자연에서 조금이라도 관대함을 인식하고 순수하면서 씩씩한 기쁨을 공유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늘 이롭고, 뻣뻣해진 우리의 관절을 풀어주며 비록 고통의 원인은 모를지라도 우리를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해주는 것이다.

 

204. 새들의 곡물 창고인 풀씨가 풍성한 것 역시 내가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닐까? 밭에서 나는 곡물로 농부의 헛간을 채울수 있느냐는 문제는 그것에 비하면 하등 중요할 게 없다. 참된 농부라면 다람쥐가 올해 숲에 밤이 열릴지 걱정하지 않듯이, 아무 걱정 없이 밭이 생산하는 작물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포기하고 최초의 열매뿐 아니라 마지막 열매까지도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매일매일의 노동을 마칠 것이다.

 

소로의 여덟 번째 이야기 마을

 

211. 길을 잃어보기 전에는, 다시 말해서 세상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찾아내지도,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와 자신이 맺고 있는 무한한 관계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

 

212. 만약 모든 사람이 그 당시의 나처럼 소박한 삶을 영위할 수만 있다면 절도나 강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 일들은 필요 이상의 재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데 반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사회에서나 일어나게 되어 있다.

 

212. 전쟁도 인간을 괴롭히지 못했다네. 너도밤나무 대접만 필요했던 시절에는

 

소로의 아홉 번째 이야기 호수

 

216. 다음날 먹을 거라도 마련할 겸 한밤중 몇 시간을 달빛을 받으며 배에 앉아 낚시질을 하곤 했다. 그럴 때면 올빼미와 여우들이 세레나데를 부르고 간혹 가까이에서 이름 모를 새가 끽끽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는 이런 경험이 잊을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것이었다.

 

224. 그들 무리 중에는 월든이라는 노파 한 사람만 겨우 달아났는데, 이 호수의 이름은 바로 그 노파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것이다.

 

230. 햇살의 온기가 고맙게 생각되는 가을 화창한 날에 이렇게 높은 곳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면서 그 위에 끊임없이 그려지는 동그란 물살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사람은 물을 보면 편안해지는 건 공통적인 속성인 것 같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어서 그런것인가. 경주에도 월든호수와 견줄만한 보문 호수가 있다. 우리집과는 거리가 멀지만 자주 산책을 하러 가곤한다. 많은 관광인파가 싫지만 큰 보문 호수는 다 품어 안는다.

 

231. 9월 아니면 10월의 이런 날, 월든은 내 눈에 더할 나위 없이 값진 보석들로 장식된 완벽한 숲의 거울로만 보인다. 이 지상에 있는 것 가운데 호수만큼 아름답고 순수하며 커다란 형상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하늘의 물이다.

 

235. 나는 금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햇빛 밝은 시간과 여름날이라는 점에서 부유했으며 그 시간들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235. 그럼에도 내가 알고 있는 월든의 모든 특성 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 잘 보존된 것은 그 순수성이다.

 

236. 월든 곁에서 사는 일이야말로 하느님과 천국에 가까이 다가가는 길

 

239. 플린트 호수라니! 우리의 작명술은 이렇게나 빈곤하다. 하늘의 물에 인접하여 농장을 세우고는 무자비하게 그 일대를 유린한 그 불결하고 어리석은 농부가 대체 무슨 권리로 호수에 자기 이름을 붙였단 말인가?

 

241. 가장 아름다운 어느 한 풍경에 굳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이려면 가장 고귀하고 훌륭한 인물의 이름을 따야만 했다.

 

244. 자연에게는 그것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주민이 없다..... 자연은 그들이 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저 혼자 번성한다. 그런 자연을 놔두고 천국을 논한다는 것이야말로 이 지상을 모욕하는 일이다.

 

소로의 열 번째 이야기 베이커 농장

 

251. 나는 아담하면서 밝고 깨끗한 집에서 살고 있는데, 그건 이렇게 낡은 집의 1년치 집세보다 돈이 더 들지도 않았고, 그가 하려고 들기만 한다면 한두 달 안에 근사한 집을 세울 수도 있노라는 말도 했다. 또한 나는 차도 커피도 버터나 우유나 날고기도 쓰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사기 위해 애써 일할 필요도 없으며, 애써 일하지 않으니 식품값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얘기도 했다.

나한테도 해당되는 얘기다. 커피를 끊는다? 애들을 위한 우유를 끊는다? 고기를 끊는다? 정말 하나같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그 모든 것을 버린다면 시간과 돈, 여유가 생기는건 사실이다.

 

252. 그러나 그는 자신이 미국으로 온 것을 득으로 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매일같이 차와 커피와 고기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일하고도 진정한 미국이라면, 그런 것들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생활양식을 추구할 자유가 보장된 나라, 국가가 노예제도나 전쟁이나 그 밖에 불필요한 지출을 위해 국민을 강제하지 않는 나라여야 한다.

 

252. 만약 그와 그의 가족이 소박하게 산다면 여름철에는 오락삼아 허클베리를 따러 다니며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 말에 존은 크게 한숨을 지었고 그의 아내는 양손을 허리에 댄 채 멍한 시선을 지었는데, 두 사람 모두 과연 자신들에게 그런 일을 시작할 만한 밑천이 있는지, 또는 그런 일을 해낼 많난 산수 능력이 있는지 궁리해 보는 눈치였다.

 

253. 안타깝지만 존 필드는 계산을 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54. 생업이 아니라 오락으로 먹고 살라. 대지를 누리되 소유하지 마라. 인간은 모험심과 신념이 없기에 현재의 모습 그대로 사고 팔면서, 노예와 같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255. 그들의 삶은 수척해진다. 왜냐하면 그 삶은 제가 내쉰 숨을 다시 들이쉬기 때문이다. 아침과 저녁때면 그들의 그림자가 그들이 매일 걷는 걸음보다 더 멀리까지 늘어난다. 우리는 먼 곳에서 귀가해야 한다. 모험에서, 위험에서, 매일매일의 발견에서 새로운 경험과 성격을 형성하여.

 

256. 아일랜드에서 물려받은 가난과 가난한 삶에서, 그의 선조의 할머니로부터의 수렁 같은 삶에서, 그 자신도 그의 후손도 습지를 걸어다니는 갈퀴가 달린 두 발에 날개 달린 신이라도 신기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소로의 열한 번째 이야기 더 높은 법칙

 

258. 지금도 내게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보다 높은 삶, 이른바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과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을 찾아볼 수 있는데, 나는 이 두가지 삶을 모두 존중한다.

 

261. 흔히 젊은이가 숲에, 자신의 가장 본원적인 부분에 이끌리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는 사냥꾼이나 낚시꾼으로 숲을 찾아가다가 마침내는 시인이든 자연주의자든 자기에게 맞는 목표를 판별하여 엽총과 낚싯대를 버리게 되는 것이다.

 

262. 그들은 대체로, 그 동안 내내 호수를 바라볼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긴 줄에 꿸 만큼 고기를 낚지 못하면 운이 없다거나 시간을 버렸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263. 생선과 모든 다른 육식에는 본질적으로 불결한 면이 있다. 나는 집안일이 어디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매일매일 말쑥하고 보기 좋은 모양을 갖추고 집 안에서 온갖 악취와 보기 흉한 물건들을 치우려는 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노고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263. 약간의 빵이나 감자 몇 알을 먹더라도 그 정도의 허기는 감출 수 있을 것이고 수고와 불결함은 훨씬 적을 것이다.

 

264. 보다 높은 정신 능력 또는 시적 능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육식을 삼갈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음식이든 절제하려 할 것이다.

나는 식탐부터 버려야 한다. 도무지 절제가 안된다.

 

264. 식욕이 왕성한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고 게걸스러운 구더기가 파리가 되면 굴이나 다른 감미로운 음료 한 두 방울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264. 우리의 상상력을 거스르지 않을 소박하고 정결한 음식을 마련하고 조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육신에 음식을 줄 때 상상력에도 음식을 주어야 할 것 같다.

 

265. 인간이 육식동물이라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까? 실제로 인간은 대부분 다른 동물들을 먹이로 삼음으로써 삶을 영위할 능력도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265. 실제 경험이 어떻든 나는 인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육식을 버리게 될 운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은 미개인 부족이 보다 개화된 부족과의 접촉을 통해 서로 잡아먹는 일을 버리데 된 일만큼이나 확실하다.

육식이 점점 더 활성화 되고 있다. 동양마저 서양을 따라하고 있다.

 

266. 아침의 희망 위에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또는 저녁의 희망 위에 차 한잔을 끼얹는다고 생각해 보라! , 이런 음료의 유혹을 받다니 얼마나 타락한 것인가! 음악조차 사람을 취하게 만들 수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이렇다니.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사람 말도 일리가 있다. 결국 커피는 무수한 광고와 상술에 의해 내가 유혹당한 것이니까. 솔직히 커피 없이도 살수 있다. 그치만 음악은.

 

268. 우리는 평생을 놀라우리만큼 도덕적으로 지낸다. 덕과 악덕 사이에는 한시도 휴전이 없다. 선은 결코 손해 볼 수 없는 유일한 투자다.

 

269. 순결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며 불순함은 우리를 파멸시킨다. 매일같이 내면의 짐승이 죽어가고 있으며 신성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확신할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270. 노력하는 데서 지혜와 순결이 나온다. 나태에서는 무지와 관능이 나올 뿐이다. 학생에게 있어서 관능이란 정신의 게으른 습관이다. 불순한 인간은 대체로 게으른 인간이며, 난롯가에 앉아 있는 인간, 해가 떴는데도 엎어져 있는 인간, 피곤하지 않은데도 쉬고 있는 인간이다. 불순함과 모든 죄악을 피하려면 마구간 청소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일하라.

소로의 정신세계가 나와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실천하는 인간이고 나는 아니라는 것이다.

 

271. 우리 모두 조각가이며 화가이고 우리가 쓰는 재료는 바로 자신의 살과 피와 뼈다.

 

소로의 열두 번째 이야기 동물 친구들

 

소로의 열세 번째 이야기 따뜻한 집

 

296. 나는 내 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될 벽난로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다. 사실이지 그 일에 너무 공을 들인 나머지, 아침부터 바닥에 벽돌을 쌓기 시작했는데도 저녁이 될 때까지 바닥에서 불과 몇 인치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그날 바마 그것들은 내 베개가 되고 말았다.

 

297. 카토가 말하기를, 가장은 무릇 자신의 소박한 오두막에다 기름과 술 창고, 통들을 잔뜩 마련함으로써 어려운 때에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그에게 유익하고 덕과 영화를 줄 것이다.”

 

306. 세계 각처의 제후와 농부, 학자와 야만인, 이들 모두가 여전히 몸을 녹이고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숲에서 얼마간의 땔감을 필요로 하고 있다. 나 역시 땔감 없이 살 수 없다.

땔감대신 난방 연료를 사용하기 전까지 인류는 오로지 나무에 의존했는데 참 신기하다. 그렇게 오랜시간 베어내고 사용했는데도 민둥산이 별로 없다. 자연의 위대함인가 인류의 똑똑함인가.

 

309. 불을 발견한 인간은 널찍한 방에 얼마간의 공기를 가두고 자신의 체온을 이용하지 않고도 그 공기를 데워 자신의 보금자리를 만드는데...... 이런 식으로 인간은 본능적인 삶에서 한두 걸음 더 뛰어넘어 예술을 위한 얼마간의 여유까지 마련한다.

 

309. 결국 인류가 어떻게 파멸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인 것이다. 북방에서 좀더 혹독한 바람이 약간만 불어도 인간의 목숨은 순식간에 끊어질 수 있다. 우리는 혹한의 금요일이라든가 기록적인 폭설이라는 식으로 날짜를 매기고 있지만, 그 금요일이 조금만 더 춥거나 그 폭설이 조금만 더 심할 경우 그날로 이 지상에서 인류의 존재는 끝장나고 말 것이다.

 

소로의 열네 번째 이야기 예전의 주민과 겨울 손님들

 

325. 어떤 날씨도 내 산책을 결정적으로 막지는 못했다. 그것은 차라리 외출이라고 해야 할 것이, 왜냐하면 나는 종종 너도밤나무나 황색자작나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또는 소나무들과의 오랜 교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깊은 눈 속을 헤치고 8마일이나 10마일 거리를 걸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327. 우리는 묽은 오트밀 죽 한 그릇을 앞에 놓고 갖가지 새로운인생론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철학이 요하는 맑은 정신에다 연회의 흥겨움이라는 이점을 더한 것이었다.

 

329. 나는 그가 세상이라는 길가에 만국의 철학자들이 쉬어갈 여관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간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야 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환영하지만, 그의 짐승만은 사양함. 넉넉하고 평온한 정신으로 진지하게 올바른 도()를 구하는 분들은 들어오시오.”

 

330. 은둔자와 철학자와 앞서 말한 바 있는 정착민 이 세사람이 나눈 대화로 내 조그만 집은 늘어나다 못해 휠 정도였다. 그 집의 점 1인치마다 기압말고도 어느만큼의 중량이 가해졌는지 차마 말할수 없을 정도다. 이렇게 솔기가 벌어지고 말았기에 그후 물이 새지 못하도록 권태라는 뱃밥으로 그 무수한 구멍을 메워야 했다.

 

330. 어디서나 그랬듯이 그곳에서도 나는 종종 결코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리곤 했다. <비슈누 푸라나>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집주인이라면 저녁때가 되면 집에 머물러, 소젖을 짜는 시간만큼, 또는 원한다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손님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나 역시 손님접대라는 이 의무를 이행하려고 소 떼 전체의 젖을 다 짜도록 기다려 보곤 했지만 마을에서 사람이 오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소로의 열다섯 번째 이야기 겨울동 물들

 

335. 겨울철이면 나는 채 여물지 않은 달디단 옥수수 반 부셸을 문 밖의 눈 위에 뿌려놓고는 그것에 끌려 다가온 다양한 동물들의 행태를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

 

335. 그놈은(다람쥐) 그 거리 전체를 걷든 데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이렇게 머뭇거리며 세심한 주의를 쏟든 데 바친다.

 

343. 그것은(산토끼) 흡사 자연이 이제는 보다 위풍당당한 혈통을 내지 못한 채 발끝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소로의 열여섯 번째 이야기 겨울 호수

 

346. 고요한 겨울밤이 지나고 잠에서 깨어난 나는 밤새도록 무슨 질문인가 내게 주어지고 그 질문에 대답하려 애썼으나 헛수고였다는 느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 어디서? 같은 질문들 말이다.

 

350. 사람들이 정작 바닥을 재보지도 않은 채 그토록 오랫동안 호수 바닥이 없다고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350. 호수에서 가장 깊은 곳은 정확히 102피트였다.

31m 호수치곤 꽤 깊네

 

355. 한 인간의 일상적인 행위와 삶이라는 물결의 길이와 폭을 통해 그만의 작은 만과 후미진 곳까지 이어지는 선분을 그려준다. 그 선분이 교차하는 곳이 바로 그의 성격이 지닌 높이이거나 깊이가 될 것이다. 한 인간의 깊이와 숨겨진 바닥을 알려면 그의 물가가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고 인접한 시골이나 환경이 어떤지 알기만 하면 될 것 같다.

 

361. 물통의 물은 금방 상하는데 얼음의 맛은 변치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흔히들, 이것이 바로 애정과 지성의 차이라고 한다.

 

362. 아침이면 나는 <바가바드 기타>의 저 거대한 우주적 철학에 내 지성을 목욕시킨다. 그 경전이 씌어진 이후 신들의 시대는 지났으며, 오늘날의 세계와 그의 문학은 그에 비하면 보잘 것 없고 하찮기만 하다. 그 철학의 숭고함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미칠 수 없이 먼 것이기에 그것이 혹시 전생에 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길 때도 있다. 나는 경전을 내려놓고 내 우물로 물을 길러 간다. 그런데 그 우물가에 내가 만난 사람은 다름 아닌 브라마와 비슈누와 인드라의 사제인 브라만의 종인 것이다. 브라만은 아직도 갠지스 강변 자신의 사원에 앉아 베다를 읽고 있거나 빵껍질과 물병만 가지고 나무 밑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362. 순결한 월든 호수의 물이 갠지스 강의 성스러운 물과 섞인다.

 

소로의 열입곱 번째 이야기

 

367. 봄에는 태양이 대기와 지면의 온도를 상승시키면서 영향력을 발휘할 뿐 아니라 태양열이 두께가 1피트가 넘는 얼음을 통과하여 얕은 물의 경우 밑바닥에서 반사열을 만들어 수온을 높이고 얼음 아래쪽을 녹인다.

 

367. 얼음도 나무처럼 결이 있어서 얼음 덩어리가 문드러지거나 여기저기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래서 벌집모양을 하게 되면, 이 기포의 방들은 그 위치가 어디든 간에 물의 표면이었던 부분과 직각을 이룬다.

소로의 관찰이 숨막힌다. 과연 그의 전공은 무엇일까. 과학자에 준하는 관찰력이다.

 

368. 요컨대 하루는 1년의 축소판이다. 밤은 겨울이며 아침과 저녁은 봄과 가을, 정오는 여름이다. 얼음이 깨지거나 울릴 때는 온도의 변화를 의미한다.

 

369. 숲속에 들어와 사는 데 한 가지 매력은 봄이 오는 것을 느긋하게 지켜볼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370. 날이 따뜻해지면 강가에 사는 이들은 한밤중에 대포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건 마치 얼음 족쇄가 산산조각이 나기라도 하는 것 같은 소리다. 그리고 나면 며칠 안에 얼음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만다.

 

371. 시냇물의 혈관은 빠져나가는 겨울의 피로 가득하다.

 

375. 인간이란 사실 녹고 있는 진흙덩이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사람의 손가락 끝도 물방울의 응결에 불과하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육신의 녹고 있는 진흙덩이가 각기 한도껏 흘러가 이루어진 것이다.

 

376. 부드러운 설득력을 가진 해동이 쇠망치를 휘두르는 토르보다 힘이 더 세다. 해동은 녹이는 데 반해 토르는 산산조각을 낼 뿐이다.

 

378. 풀은 봄의 불길처럼 언덕 비탈에서 타오른다. 그것은 마치 대지가 내부의 열기를 내뿜으며 돌아오는 태양을 맞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그 불길은 노란색이 아니라 녹색이다. 영원한 젊음의 상징인 풀잎은 긴 초록색 리본처럼 땅에서 여름 속을 향해 솟아나다 추위의 제지를 받지만, 새로운 생명으로 땅 속에서 지난해 마른 잎의 뾰족한 끝을 치켜들며 이내 다시 솟아난다.

 

381. 계절 하나하나가 모두 제각기 최상인 것과 마찬가지로, 봄이 온다는 것도 혼돈에서 우주가 생성되고 저 옛날 황금시대가 실현되는 일인 것이다.

 

382. 상쾌한 봄날 아침에는 모두의 죄가 용서받는다. 이런 날은 악덕도 쉬는 것이다. 봄의 태양이 타오르는 동안에는 아무리 부도덕한 죄인이라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순수성을 회복함으로써 이웃의 순수성도 알아보게 된다. 어제만 해도 이웃을 도둑이나 주정뱅이, 호색가로 여기고는 그를 가엾이 여기거나 경멸하면서 세상에 대해 절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최초의 봄날 아침 태양이 밝고 따스하게 빛나며 세상을 재창조할 때 평온하게 일에 몰두하고 있는 그와 마주치게 된 당신이, 그의 지치고 방탕에 물든 혈관이 고요한 기쁨으로 가득 차서 새날을 축복하고 있으며 갓난애 같은 순수함으로 봄의 감화를 흠씬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의 모든 허물도 순식간에 잊을 수 있는 것이다.

 

383. 덕의 싹이 여러 번 자라지 못하게 되면 저녁의 자비로운 숨결로도 싹을 보존할 수 없다. 저녁의 숨결로 더 이상 싹을 보존할 수 없으면 곧 인간의 본성이 금수의 본성과 다를 바가 없게 되는 것이다.

 

385. 삼라만상이 이러한 빛 속에서 살고 있는게 분명하다. , 죽음이여, 그대의 가사는 어디 있는가? , 무덤이여, 그대의 승리는 또 어디 있단 말인가?

 

388. 이것으로 나의 숲속 생활 첫해가 끝났으며, 이듬해 역시 처음과 다름이 없었다. 마침내 나는 184796일 월든 호수 곁을 떠났다.

 

열여덟번째 이야기 - 맺음말

 

390. 의사들이 환자에게 공기와 환경을 바꿔 보라고 권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390. 기러기는 우리 인간보다 훨씬 세계적으로 활동한다. 기러기는 캐나다에서 아침식사를, 오하이호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밤이면 남부의 늪지대에서 깃을 가다듬는다.

그렇네. 그가 가본 나라가 나보다 더 많을 듯.

 

391. 우리는 호기심 많은 승객이 그러하듯 좀더 자주 우리가 탄 배의 고물 난간 너머를 내다봐야 하며, 뱃밥이나 만들고 있는 멍청한 선원들처럼 항해해서는 안된다.

 

391. 사람이 기린을 얼마 동안이나 쫓아다니며 사냥하겠는가? 도요새와 멧도요 역시 좋은 사냥감이긴 하지만, 내 생각에는 자기 자신을 사냥하는 편이 훨씬 더 고귀한 사냥일 것 같다.

그대의 눈을 내면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 속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곳을 보게 되리라. 그곳을 여행하라, 그리하여 자신의 우주에 통달하라.”

죽을 때까지 사냥해도 자기 자신을 잡지 못한다. 잡는 것만 성공한다면 그는 정말 성공한 인생이다.

 

391. 우리 자신의 내면은 해도에 하얀 공백으로 있지 않은가? 발견하고 보면 그것 역시 저 해안처럼 시커멓게 보일 수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우리가 찾으려는 것이 나일 강과 니제르 강, 미시시피 강의 수원일까? 아니면 이 대륙의 서북항로일까? 과연 그런 것들이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들일까?

 

392. 자신의 극지방을 탐험하라. 필요하다면 식량으로 고기 통조림으로 한 배 가득 싣고 가되 빈 깡통은 표지가 될 수 있도록 높이 쌓으라. 고기 통조림이 그저 고기를 보존하려고 발명된 것일까? 아니다. 차라리 자신의 내면에 있는 완전한 신대륙과 신세계를 찾아나설 콜럼버스가 되어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 항로를 열라.

 

392. 사람은 누구나 왕국의 군주이며, 그 앞에서는 러시아 황제의 제국도 한낱 소국, 얼음 위에 솟은 조그만 얼음덩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자신을 존경할 줄 모르는 인간이 애국자가 되어 소()를 위해 대()를 희생시키는 일도 왕왕 벌어지고 있다. 그런 자들은 자신의 무덤을 만들 땅은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육신에 활력을 넣어 줄 정신에는 아무런 공감도 하지 못한다. 애국심이란 그런 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구더기에 다름아니다.

 

392. 그 의미는 단지 정신세계에도 대륙과 바다가 있다는 사실(인간은 누구나 그 정신세계 속에 있는 지협이거나 조그만 만일 뿐이지만, 아직 그 자신이 탐험하지 않은 땅이다), 그리고 각자의 바다, 각자의 대서양과 태평양을 탐험하기 보다는 추위와 폭풍과 식인종들과 싸우며 정부의 배를 타고 500명의 선단을 이끌고 수천 마일을 항해하는 편이 훨씬 쉽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데 불과하다.

그렇긴 하지. 자신을 탐험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은 이미 성인의 반열에 오르지 않을까.

 

393. 마침내 내면으로 저 심스의 구멍이라도 찾을지 모를 일이다.

대단한 표현이다. 글을 쓸려면 이런 인용이 많이 필요한데.

 

393. 너 자신을 탐구하라.’ 여기에는 눈과 용기가 필요하다. 패배자와 도망자만이 전쟁에 나가며 겁쟁이들만이 이 일을 피해 입대하는 것이다. 이제 서족 멀리 길을 떠나라.

 

394. 미라보(프랑스 혁명당원)사회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법에 정식으로 맞서려면 어느 정도의 결의가 필요한지 확인하기 위해 노상강도질을 했다고 한다. 그는 군대에서 싸우는 병사는 노상강도를 하는 데 필요한 용기의 절반도 채 필요하지 않다. 잘 생각해 보고 굳게 결심을 했을 경우에는 명예와 종교도 결코 장애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군인이었지만 그의 말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394. 분별 있는 사람은 종종 훨씬 더 신성한 법을 따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사회에서 가장 신성시 되는 법으로 간주되는 일에 정식으로 맞서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결국은 일부러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도 자신의 결의를 시험하게 된다. 무작정 사회에 대해 이런 태도를 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법에 따르면서 스스로 찾아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공정한 정부라면 결코 맞서는 태도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394. 나는 숲에 처음 들어갈 때만큼 확실한 이유가 있어서 숲을 떠났다. 그때 내게는 아직 살아야 할 몇 개의 삶이 더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하나의 삶에 그 이상 많은 시간을 내줄 수 없었던 것이다.

 

395. 그리고 그 점은 마음이 가는 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세상의 큰길은 얼마나 닳고 부스러졌으며, 또 전통과 순응의 바퀴자국은 얼마나 깊을 것인가! 나는 선실 여행보다는 세상의 돛대 앞, 그 갑판 위에 서기를 원했는데, 그 자리에서라면 산 속의 달빛도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배 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

 

395. 나는 경험에 의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배웠다. , 사람이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자신있게 나아가면서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은 받아들이고, 어떤 일은 내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게 된다. 요컨대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로운 법칙이 확대되면서 보다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 유리하게 해석됨으로써 보다 높은 존재의 질서에 대한 허락을 받고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삶을 단순화하는데 비례하여 삼라만상의 법칙은 덜 복잡해질 것이며, 고독도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며 약점도 약점이 아니게 된다. 설혹 공중누각을 세운다 해도 그 일은 헛수고가 되지 않는데, 누각이란 것은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 그 아래 기초만 만들면 되는 것이다.

자신이 꿈꾸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삶을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396. 나는 잠을 깬 사람이 또 다른 잠을 깬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아무 경계가 없는 곳에서 말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참된 표현의 기초라도 마련하려면 아무리 과장해도 부족하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어 본 사람치고 자신이 지나치게 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낀 사람이 있을까? 미래와 가능성이라는 면에서 볼 때 우리는 아주 느슨하게, 아무것도 이밀 확정짓지 말고, 마치 우리의 그림자가 태양 앞에서 보이지 않는 땀을 흘리듯이 분명치 않은 흐릿한 윤곽선만 그은채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언어에 스며 있는 덧없는 진실로도 설명되지 않은 진술의 불충분함을 끊임없이 드러내야 한다.

 

397. 지금 영국에서는 감자병을 없애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 이상 널리 퍼지고 훨씬 더 위험한 머리병을 없애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없을까?

 

397. 얼음을 사 가는 남부인들은 월든 호수에서 나오는 얼음의 청색을(그것이야말로 순수하다는 증거인데) 더럽게 여기고는, 비록 흰색을 띠긴 했으나 잡초맛 나는 케임브리지 얼음을 더 선호했다. 사람이 좋아하는 순수성은 지구를 에워싸고 있는 안개 같은 것이며, 그 너머에 있는 담청색 하늘이 아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들이 많은가. 그 중에 나도 끼지만. 확실히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397.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각자 자신의 일에 유의하고 자신이 타고난 대로 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397. 어째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토록 서두르며 또 모험을 감행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동료들과 보조를 맞추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사과나무가 떡갈나무만큼 빨리 성장하느냐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봄을 맞고 있는 그가 굳이 여름으로 계절을 바꾸기라도 해야 할까?

 

399. 결국 우리가 어떤 일에 부여할 수 있는 외관이란 것은 진실만큼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진실만이 오래가는 법이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현재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엉뚱한 자리에 있다. 우리는 무한 충동으로 하나의 상황을 상정하고는 그 속에 자신을 집어넣기 때문에 동시에 두 가지 상황에 처하는 경우도 있어서 빠져나오기가 그만큼 더 어렵다.

 

400. 자신의 삶이 아무리 비천할지라도 그 삶을 정면으로 대하고 살도록 하라. 피하지도 욕하지도 말라. 그 삶은 당신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가난해 보인다. 남의 흠이나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잡기에 바쁘리라. 설혹 그 삶이 가난할지라도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

너무나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내가 제일 잘나갈 때 제일 불쌍함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400. 마음이 고요한 사람이라면 구빈원에서도 만족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궁전에서처럼 유쾌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종종 가난하게 사는 마을 사람이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400.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라. 옷이든 친구든 새것을 구하려고 애쓰지 말라. 헌옷을 뒤집어쓰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옷은 팔되 생각은 갖고 있으라. 친구가 모자라지 않도록 신께서 보살펴 줄 것이다. 설혹 평생을 거미처럼 다락방 구석에 갇히더라도 생각만 잃지 않는다면 세상은 내게도 똑같이 클 것이다.

가난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너무나 명료하게 정리해주었다.

 

401. 철학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세 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군대라도 그 장수의 목숨만 빼앗으면 혼란에 빠뜨릴 수 있지만, 비천하기 짝이 없는 인간에게서라도 그 생각을 빼앗을 수는 없다.” 많은 감화에 자신을 굴복시켜 가면서까지 스스로를 개발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그것은 낭비일 뿐이다. 겸손은 어둠이 그렇듯이 천상의 빛을 드러내 준다. 가난과 빈약함의 어둠이 주위로 몰려드는 순간, “보라, 삼라만상이 눈앞에 전개되지 않는가!” 설혹 크로이소스의 재산이 주어진다고 해도 우리의 목적은 여전히 똑같을 것이고, 우리의 수단역시 본질적으로는 매한가지임을 상기해 보자.

 

401. 가난 때문에 활동범위가 제약되면, 그래서 가령 책이나 신문을 사서 읽은 형편이 되지 못한다해도, 그것은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경험만을 하도록 제한받는 것뿐이다. 그럴 때는 어쩔수 없이 가장 중요한 에센스를 산출할 재료를 구할 수 밖에 없으리라. 아주 빈한한 삶이야말로 가장 감미로운 삶이다. 그런 삶에서는 빈둥거릴래야 그럴 수 없다. 낮은 생활 수준에서는 높은 수준의 아량 때문에 잃는 법이 없다. 남아도는 부로는 없어도 상관없는 것만 살 수 있다. 영혼의 필수품을 사는 데 돈은 필요없다.

 

401. 이웃들의 관심사와 대화 내용은 주로 의상과 풍속에 관한 것이지만, 아무리 치장해도 거위는 거위일 뿐이다.

 

402. 나는 내 분수에 맞는 삶을 즐거워한다. 나는 눈에 잘 띄는 화려한 행렬 속에 끼어 걷기보다는, 그럴 수만 있다면 이 우주의 창조주와 함께 걷고 싶으며, 이 부산하고 신경이 곤두서고 부산하고 진부한 19세기에서 살기보다는 이 시대가 지나가도록 잠자코 앉거나 선 채 생각을 하고 싶다.

 

402. 내가 갈 수 있는, 그리고 그 위에서는 어떤 힘으로도 나를 제지할 수 없는 유일한 길을 가고 싶다.

 

402. 나그네가 소년에게 앞에 있는 늪을 가리키며 바닥이 단단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소년을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나그네가 탄 말의 뱃대끈까지 물에 잠기자 나그네가 다시 소년에게 말했다. “네가 이 늪의 바닥이 단단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랬더니 소년이 이렇게 대꾸했다. 바닥은 단단해요. 하지만 아저씨는 아직 절반도 들어가지 못했어요.” 사회라는 늪과 유사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것은 나이든 소년인 것이다.

조바심을 내지 말고 서두르지 말자. 그리고 사회라는 것에 너무 빠지지 말자.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필요하다.

 

402. 사랑이 아니라, 돈이 아니라, 명성이 아니라 내게 진실을 달라. 나는 기름진 음식과 술로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에 앉아 아첨으로 시중을 받았으나 거기에는 성실과 진실이 없었기에 결국 그 야박한 식탁에서 허기진 채 물러나고 말았다.

 

403.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인간의 평생을 살아본 이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인류의 생애에서 봄철에 불과할 수도 있다.

 

403.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하루의 거의 절반을 깊이 잠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여기고 이 지구상에 확고한 질서를 마련해 놓았다. 우리야말로 심오한 사상가이며 야심만만한 존재가 아닌가! 나는 숲에 깔린 솔잎 사이에서 내게서 숨으려고 애쓰는 벌레를 보면서, 어째서 그놈이 그런 천박한 생각으로 어쩌면 자기의 은인이 될지도 모르며 자기 종족에게 유쾌한 정보를 알려 줄 수도 있는데 내게서 그토록 머리를 감추려는 것인지 자문할 때마다. 저 위에서 인간이라는 벌레를 굽어보고 있는 훨씬 더 큰 은인과 지적 존재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404. 세상에서 끝없이 진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형언할 수 없을만큼 지루해하고 있다....우리는 갈아입을 수 있는 것은 옷뿐이라고 생각한다.

 

404. 우리 내면의 생명은 저 강물의 물과 같다. 올해 그 강물의 수위가 유례없이 올라가 목마른 고지대로 범람할 수도 있다.

 

406. 그것이 단순한 시간의 흐름만으로는 결코 밝아 오게 만들 수 없는 저 아침의 특성인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저 빛은 우리에게는 어둠일 뿐이다. 그날은 바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날 동터 올 것이다. 앞으로도 동틀 날은 얼마든지 있다. 태양이란 아침에 뜨는 별일 뿐이다.

 

역자 후기

 

408. 이 책은 흔히 얘기하듯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상실돼 가는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힘겨운 시도의 하나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풍부한 시적 통찰력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 책은 문명에 의지하지 않는 순결한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탐색하고 있다.

책을 덮는 이 순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2017년을 보내고 2018년을 맞이하는 지금 이 시간에 가장 적절한 책을 읽는 것 같다. 지금의 내 선택이 결코 틀리지 않고 얼마간 흔들리고 있는 내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408.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그의 스승이자 친구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나 엘러리 채닝과 함께 산책과 대화를 나누면서 평생을 콩코드 마을 주변에서, 특히 콩코드의 황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인물이었다.

책속에서 나온 철학자와 시인이 이 두 사람이었구나. 정말 좋은 친구를 두었다.

 

409. 1842111일 그의 형 존 주니어가 파상풍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월든 호수로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 형의 죽음 때문이었다. 월든 호수 옆에 땅을 가지고 있던 콩코드의 위대한 현자에머슨은 그가 그곳에 살도록 허락해 주었다. 처음에 그는 책을 한 권 쓰기 위해 호수를 찾았다. 그것은 <콩코드와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이라는 책으로, 존 소로 주니어를 기리기 위한 책이었다.

소로가 불법으로 땅을 점유하여 집을 지은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네. 시민 불복종에 대한 책을 썼는데 그러한 불법을 하는 건 그의 사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409. 그는 22개월하고도 이틀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좀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월든 호숫가에 소박한 오두막을 지었다. 그 오두막은 다섯 평(3미터×5미터)도 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역시 위대한 철학자, 작가 답다. 나올때도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222에 초점을 맞추었다.

 

409. 내가 숲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만 생각하던 문제를 그는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행동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다.

 

409. 74일 월든으로 들어간 그는 이튿날 월든 호숫가에서 죽은 형의 생일을 맞이했다. ...“내가 처음 숲속에 거주했을 때, 다시 말해서 낮뿐 아니라 밤도 보내기 시작했을 때는 우연찮게도 독립기념일인 184574일 이었는데....”

의도한게 아니라면 기막힌 우연이다. 어쩌면 위대한 그 분이 이렇게 그를 이끌었을 수도

 

410. <월든>은 그가 22개월 2일 동안 월든 호숫가 숲속의 조그만 오두막에서 지낸 삶의 성과로서,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일종의 답변서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은둔자로 여기고 있지만, 소로는 호숫가에 사는 동안에도 사회에 등을 돌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종종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고, 친구와 호기심 많은 이웃들이 그의 오두막을 방문하기도 했다. <월든>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내 집에는 의자가 세 개 있었는데, 하나는 고독을 위한 의자, 둘은 우정을 위한 의자, 셋은 친교를 위한 의자였다.”

 

410. 누군가 자신의 세금을 대납했다는 사실을 안 소로는 격분하며 감방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세금을 낸 사람이 그가 아니므로 자신은 마땅히 감방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경험 덕분에 그는 그의 가장 유명한 논문이며 중요한 정치론인 <시민 불복종 의무에 대하여>를 쓰게 되었다. 그는 그 논문에서, 모든 이에게 우리가 하는 행동과 당국의 행동에 대해 의문을 품도록 권하고 있다. 부당한 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법을 준수하는 데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수정하려고 노력하면서 성공을 거둘 때까지만 준수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당장 그 법을 어겨야 할 것인가?”

나는 어떤가. 당연히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책을 보면서, 그를 보면서 달라지고 싶은데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마음만은 그를 따른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 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을 분석)

첫 번째 얘기부터 삶의 경제학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딱딱하고 읽기 어려웠다. 두 번째 이야기가 먼저하거나 월든으로 들어가다는 식의 도입부분의 글을 써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자연, 인간, 노동, 경제 전반에 관한 이야기가 좋기는 하나 인간 특히 사랑에 관해서 어떤 얘기가 없는 것이 아쉽다.

 

보완이 필요한 점 (독자의 눈으로- 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등 등)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그는 한창때인 28세에 월든 숲으로 들어갔다. 그가 보통사람과는 다른 것을 알겠지만 그렇다고 여자를 초월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그에게는 가슴 아픈 사랑을 가지고 있다. 같은 여자를 두고 형과 라이벌관계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썼더라면 조금 세속적이긴 해도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저자 스스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직접 노동을 하고 집을 짓고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삶을 영위할수 있고 오히려 집과 노동이 주인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삶보다는 훨씬 가치있는 삶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는 혼자 독립적인 생활을 할 때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만약 소로 자신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하고 더 큰 집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혼자가 아닌 가족을 이루었을 때의 삶을 영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해주었으면 좋겠다. 열 번째 이야기에서 존 필드 가정과의 대화를 통해 일부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조금더 폭넓은 부분까지 이를테면 교육, 직업 등에 있어서 소로의 삶의 철학을 듣고 싶다.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등 등)

나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인가? 부족하다면 얼마를 더 가져야 할까?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가진 자유스러움과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한다고 스스로를 생각했지만 나보다 더 많고 좋은 것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면 애써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나도 가지고 싶다라는 마음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내가 너무 자본주의적 인간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물론 시대적 상황과 가족이 아닌 혼자라는 그이기에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해보지만 그의 삶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헛된 것을 쫓으며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당장 소로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남은 인생 그가 걸었던 것처럼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항상 생각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갈수 있도록 해야겠다.

 

자연주의자라고는 칭호답게 월든 호수의 사계, 동물과 식물 등을 묘사하는 그의 소위 글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월든 호수 하나를 가지고 호수편과 겨울호수편으로 따로 나누어 실을 만큼 뛰어난 문장력과 관찰력, 글의 양에 혀를 내두른다. 책상에 앉아 월든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만끽할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자연에 대해, 그리고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관찰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저자의 눈으로- 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보완할 점에서도 밝혔듯이 28세의 혈기넘치는 청년이 아무리 자연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월든에서 살았다지만 나 같은 범인으로서는 여자 그리고 사랑에 대한 부분이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형과 한 여자를 두고 사랑을 하고 거절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부분에 대한 소로의 감정과 사랑에 대한 그이 생각을 알고 싶다.

 

삶을 최대한 단순화해서 노동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강조를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저자처럼 농사짓고 살수는 없는 법이다. 다른 일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저자가 주장하는 삶을 살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당시 농사를 제외한 다양한 부분, 그것이 일이 됐든 직장이 됐든 그 부분에 대해 얘기를 좀더 나누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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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2 11:56:35 *.18.187.152

기상씨가 엄격한 습관이 없는 거면 도대체 누가? -_-^

알렉산더 대왕의 일리아스 이야기가 월든에서도 나오네요. 서재가 된 전장. 역사적으로 이런 사례를 찾아봐도 좋을 거 같아요.

저도 소로의 '관찰'에 시선이 많이 가더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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