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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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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일 11시 50분 등록
I.저자에 대해

헨리데이비드 소로

미국 사상가 겸 문학자. 자연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人頭稅)의 납부를 거절한 죄로 투옥당했으나, 그때 경험을 기초로 쓴 《시민의 반항》은 후에 간디의 운동 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817년 7월 12일,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나 부와 명성을 쫓는 화려한 생활을 따르지 않고 아름다운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글을 쓰며 일생을 보냈다.
소로우는 생전에 자신의 저술로 어떤 경제적인 성공이나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월든 호숫가에서 통나무집을 짓고 생활한 2년간의 경험을 기록한 <월든>은 19세기 쓰여진 중요한 책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여 수감되었던 사건을 통해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의미를 깊이 성찰한 <시민의 불복종>은 세계의 역사를 바꾼 책으로 꼽히고 있다. 이렇게 그의 문학적, 사상적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으며 요즘에 와서는 19세기를 살았지만 21세기적인 환경의식을 지녔던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1862년 5월 6일, 폐결핵으로 44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1845년 문명을 등지고 월든 호수로 와서, 소박하고 원시적인 삼림 생활을 통하여 인습에 구애받지 않은 새로운 삶을 실험했다. 손수 통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2년 이상을 이 호숫가의 숲 속에 사는 동안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기회를 가졌으며, 불후의 명작이 될 <월든>의 핵심 부분을 썼다.
그의 글은 도서관에 곱게 모셔진 채 현대의 독자로부터 외면당하는 사장된 글이 아니라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면서 그들을 꾸짖고 충고하고 격려하며, 그들의 가슴에 무한한 감동을 주기도 하는 살아 있는 글인 것이다.


헨리 소로 연보   

출생 1817.7.12~ 사망 1862.5.6  
 
1817년 7월 12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출생.
1833년 (16세) 하버드 대학 입학.
1837년 (20세) 하버드 대학 졸업. 잠시 콩코드에서 교사생활. <일기> 쓰기 시작.
1838년 (21세) 형과 함께 진보적 학교 설립, 운영. 성공적인 반응
1839년 (22세) 형과 함께 한 보트 여행,
               후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의 토대가 됨
1840년 (23세) 엘렌 슈엘에게 청혼, 그녀 부모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음
1841년 (24세) 형의 건강악화로 잘 운영되고 있던 학교 폐교.
               에머슨 저택에 관리인으로 들어감
1842년 (25세) 형 사망. 너대니얼 호손, 콩코드로 이사옴.
1843년 (26세) 에머슨이 편집하는 <다이얼>잡지에 수필 기고.
1845년 (28세) 월든 호숫가 살기 시작.
1846년 (29세) 멕시코 전쟁 발발.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 반대로 인두세 납부 거부, 하루 동안 감옥 수감됨.
               메인 주의 산악 지역으로 캠핑, 사후 <메인 주의 숲>의 토대가 됨
1847년 (30세) 월든 생활 끝냄. 장기간 유럽 여행을 떠나는 에머슨의 저택 관리인이 됨.
1848년 (31세) 감옥 수감 사건에 대해 ‘시민 불복종’ 강연.
1849년 (32세) <시민 불복종>이 잡지<미학>에 실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 자비출판하나 반응 별로임
1851년 (34세) 측량으로 바쁨. 인근 마을에서 강연
1853년 (36세) <캐나다의 양키>의 일부분이 잡지<푸트남>에 발표됨
1854년 (37세) <월든> 초판 출간
1855년 (38세) <케이프코드>의 일부 잡지<푸트남>에 발표됨. 건강 악화되기 시작함.
1856년 (39세) 시인 월트 휘트먼 만남.
1857년 (40세)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 만남.
1859년 (42세) ‘존 브라운을 위한 탄원’ 연설. 같은 해 책으로 출간
1860년 (43세) ‘야생사과’ 강연(후일 책으로 출간).
               링컨 대통령 당선. 독감이 기관지염으로 악화됨.
1861년 (44세) 남북전쟁 발발. 폐결핵 판명됨.
1862년 (45세) 5월 6일 콩코드에서 사망.


단돈 28불로 지은 오두막, 걸작의 집필실 되다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남쪽으로 1마일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월든(Walden)이라는 작은 호수가 있다. 물이 들어온 내력과 나가는 길을 파악하기 힘든 신비한 호수이다. 1845년 3월 말, 27세의 젊은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호숫가 숲속에서 도끼질을 하기 시작했다. 호수 북쪽 비탈진 언덕에 자신이 기거할 오두막을 짓기 위해서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기에 저 서툰 손놀림으로는 도대체 개집 하나 만들어낼 성싶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소로의 손놀림은 부드러워지고 신속해졌다. 5월 초순이 되자 소로는 친지들과 함께 상량(上樑)을 했다. 벽을 붙이고 지붕 올리는 일이 완료되자 소로는 마침내 새로운 집에 입주했다.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다. 19세기의 진정한 자유주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2년 2개월 2일 동안의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으며, 그곳에서의 삶은 그의 작은 오두막을 어떤 거대한 건축물보다 위대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

모험은 집을 지을 때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소로는 자신의 힘으로, 그리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집을 짓고자 했다. 집이라곤 한번도 지어본 경험이 없는 이가 땅을 파고 돌을 나르고 도끼질하고 톱질하는 것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지출한 건축비는 28달러가 조금 넘은 금액이었다. 당시 하버드대학 기숙사의 1년 방세가 30달러였다니, 1년 방세도안되는 돈으로 평생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지은 것이다. 당시 1달러가 현재의 1달러보다 약 30배의 가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때, 오늘날의 돈으로 1천 달러가 되지 않은 돈으로 집을 지은 셈이다.

소로는 왜 이런 모험을 감행했을까? 그가 보기에 사람들은 집의 노예였고 재산의 노예였고 일의 노예였다. 그는 월든 호숫가에 작은 집을 짓고 농사지어 자급자족하면서 여유있게 살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노예로서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하기 위해 그는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으면서, 그리고 최대한 여가를 즐길 생각이었다. 그것이 바로 소로가 생각하는 자유인의 길이었다. 그는 월든 호숫가 오두막에서의 삶을 낱낱이 기록했다. 그 기록이 바로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와 비견되는 명작 <월든>이다. 물론 소로의 상황은 자발적 고립이라는 점에서 외딴섬에 표류한 로빈슨 크루소의 상황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두 작품이 모두 원시적인 상황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비교해볼 수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소로는 <월든>에서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라고 말했다. 잠시라도 한눈 팔게 되면 뒤처지는 현대인에게는 시대착오적인 발언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월든>이 소로가 살았던 때보다 물질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0세기 후반, 특히 21세기에 더욱 각광받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연 속에서 홀로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토마스 페인, 마하트마 간디와 더불어 뼛속까지 혁명적인 인물이다. 페인이 근대 혁명의 출발인 미국의 독립운동과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인 토대를 지원했다면, 간디는 현대 문명에 의존하지 않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구축하고자 했고, 소로는 일과 명예와 돈과 통념의 노예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한 현실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는 주체할 수 없는 끓는 피를 소유하고 있었다. 페인이 정치적 혁명가였다면, 간디는 다분히 종교적인 혁명가였고, 소로는 문학적인 혁명가였다. 소로의 혁명이 은근히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문학적이고 개인적인 혁명은 자칫 혁명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소로가 숲속에 혼자서 둥지를 튼 것부터가 혁명과는 도통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 통념의 뿌리를 흔드는 혁명이었다. 사회 속에서 부지런히 일해 경쟁에서 이기고 성공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일반적인 상식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로의 부모는 성격이 서로 정반대였지만 매우 잘 어울리는 부부였다. 아버지는 조용하고 겸손하고 친절했으며, 어머니는 재치있고 총명하고 쾌활했다. 그들은 허세 부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문학과 학식을 중히 여겼다. 노예제 폐지가 메사추세츠에서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자 소로의 부모는 자신의 집을 노예폐지론자들의 모임 장소로 빌려주었다. 소로의 부모는 또 산책하면서 자연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부모의 성격과 취미가 자식들에게 그대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헨리의 위로는 누나 헬렌과 형 존이 있었고, 여동생 소피아가 있었다. 헨리는 형과 함께 인디언 흉내를 내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형제들과 사이가 좋으면서도 헨리는 혼자 사색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열두 살 무렵부터 홀로 엽총이나 낚싯대를 메고 인적 없는 후미진 숲과 강 주위를 휘젓고 다녔다. 어린 시절에 월든 호수를 방문하기도 했다. 호수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그는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1833년 열여섯 살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뒤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소로의 말에 따르면 그의 대학 시절이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 듯하다. 그는 “나의 육신은 하버드 대학의 일원이었지만, 내 마음과 혼은 소년 시절의 정경으로 멀리 떠나 있었다. 공부하는 데 헌신해야 할 시간들이 내 고향 마을의 숲을 찾아 헤매고 호수와 시내를 탐험하는 데 소비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로는 대학에서 비교적 좋은 성적을 얻었다. 그가 1843년의 어느 편지에서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은 주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대학 시절이 그에게 문필가이자 강사로서의 능력을 부여한 기간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에머슨과의 만남, 그리고 초월주의 운동에 뛰어들다

1837년 랠프 왈도 에머슨과의 만남은 소로에게 일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들이 만나게 되는 과정은 상당히 재미있다. 소로의 여동생 소피아가 에머슨의 처형 루시 브라운과 함께 에머슨의 강연을 들었는데, 강연 내용이 오빠가 쓴 글과 같았던 것이다. 이에 소피아가 브라운 부인에게 그 글을 보여주었고, 그 글이 에머슨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4월 9일 집으로 찾아온 소로를 보는 순간 에머슨은 소로가 예사로운 젊은이가 아님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소로는 본래 매사에 냉담한 듯한 태도를 보였으나, 이 뛰어난 지성인 앞에서는 특별히 생기발랄해졌다. 에머슨은 소로의 입에서 사회와 종교에 대한 탁월한 견해,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쏟아져나올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우정은 시작되었고, 약간의 굴곡이 있긴 했지만 소로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소로는 생계를 위해 교사 생활을 하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콩코드의 마을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체벌해야만 하는 현실을 견딜 수 없어 2주 만에 그만두었다. 형과 함께 사설 학교를 몇 년 운영하지만 형이 몸이 아프게 되자 그것마저 벗어던지고 만다. 소로는 이제 시인이자 박물학자로서 식물표본상자와 쌍안경을 들고 새로운 길을 걷기로 했다. 이 무렵 소로는 에머슨이 주도하고 있는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 운동에 매료되었다.

소로는 1837년부터 3년간 에머슨의 집에서 기거하는 동안 콩코드의 초월주의 그룹이 만드는 잡지 <다이얼>에 시와 산문을 실으면서 문필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소로는 대중보다는 개인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인간보다는 자연을 중시했는데, 이러한 사상적 성격은 초월주의와 일치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면모는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소로의 기질이기도 했다.

소로는 원래가 모험가적 성향이 강했다. 형 존과 함께 카누를 타고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을 탐험한 것도 이러한 성격에 기인한 것이었다. 안정된 교사의 길을 접고 시인의 길을 택한 것도 일종의 모험이었다.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생활한 것은 모험의 정점이었다.

그의 위대한 모험이 그에게 안락한 생활을 제공해주지는 못했다. 뉴욕에서의 작가생활 시도도 실패했고,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의 카누 여행 경험을 담은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의 일주일>은 형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듬뿍 담아 집필했건만 거의 팔리지 않았다. 다만 소로에게 안락한 생활이란 일반적인 것과는 판이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그가 불행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는 모험을 통해 인생을 충분히 즐긴 사람이었다.

소로는 잘못된 것을 그냥 두지 못했다. 젊은 시절 에머슨과 함께 길을 걷다가 길 옆에 울타리가 쳐진 것을 보고 소로는 분개했다. 그는 하느님의 땅은 만인의 소유이므로 울타리 바깥의 쪼가리 땅만을 밟을 수는 없다며 울타리를 넘어가려 했다. 에머슨은 이를 만류하며 사유재산제가 이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성격이 어떻게 다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소로는 월든 숲에서 살던 1846년 7월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절한 죄로 투옥당한 적이 있으며, 1859년에는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을 위해 탄원서를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로의 근본적인 저항은 <월든>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소로의 저항이 잘못된 제도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든 인간의 그릇된 사고방식과의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멋진 항해가 시작되는군", 사후에 진가가 확인된 작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서일까, 안정된 삶을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소로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된다. 문필활동이 생계를 위한 직업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소로는 측량사 일을 겸해야 했다. 물론 글을 쓰는 일은 버릇처럼 계속되고 있었다. 1854년 <월든>을 출간한 이후로 소로는 어떤 책도 출간하지 않고 오직 집필에만 몰두했다. 그는 초월주의에서 벗어나 실천적인 노예제 폐지 운동을 펼쳤다. 1854년에 행한 강연 <매사추세츠의 노예제>는 비인간적인 노예제도에 신랄한 고발이었다. 이렇게 부지런하게 활동하는 사이에 몸이 약해졌던 것일까? 1859년 노예폐지론자 존 브라운이 하퍼스페리 마을 습격을 주동했다가 처형당할 때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일까? 아직 젊은 사람의 몸에 결핵이 찾아온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소로와 에머슨의 삶을 함께 정리한 하몬 스미스는 소로의 마지막 장면을 매우 감동적으로 그렸다. 스미스는 소로가 밀려오는 피로 속에서 생의 최후를 보냈지만 마지막까지 여유를 잃지 않았다고 전한다. 1862년 5월 6일, 소로는 여동생 소피아에게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의 마지막 장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나슈아 어귀를 지나쳤고, 곧 새먼 부룩도 지나칠 즈음, 우리의 배를 가로막는 것은 바람밖에 없었다.” 이때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야 멋진 항해가 시작되는군.” 그리고 잠시 후 숨을 거두었다.

5월 9일 소로의 지인들이 모인 장례식에서 에머슨은 조사를 통해 25년 동안 우정을 나눴던 친구를 회고했다. 에머슨의 이 조사는 소로와 소로의 문학에 대한 당시의 평가를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에머슨은 소로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작가로서의 업적은 적극적으로 칭찬하지 않았다. 에머슨은 자신이 좋아한 소로의 시 <연민(Sympathy)>과 <연기(Smoke)>를 언급했지만, 시인으로서 소로는 자연스러운 서정과 기교가 모자라다고 평했다. 소로의 월든 호숫가 생활을 얘기했지만 작품 <월든>은 지나가는 말로밖에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말은 큰 울림이 있었다. “가장 숭고한 사귐으로 자신의 영혼을 만들고, 짧은 생을 통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했습니다. 지식이 있는 그곳, 덕이 있는 그곳, 아름다움이 있는 그곳이 바로 그의 영혼의 집입니다.”


II. 마음을 무찔러 오는 글귀

P.17~18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걱정에서 벗어나 다른 데에 관심을 쏟아도 좋으리라. 자연은 강점은 물론 약점에도 어울리게 마련이다. 거의 불치병이라고 할 정 없이 걱정과 긴장에 싸여 있는 이들이 있다. 인간은 흔히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과장하지만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개 또 그러 다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용의주도한 우리는 피할 수만 있다면 되도 록 믿음을 가지고 살지 않으려고 결심한다. 온종일 경계하며 지내다가 밤이 되면 마지못해 기도를 드리곤 자신을 불확실성에 맡기는 것이다. 이처럼 철저 하고도 진지하게 삶을 숭배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의 중점에서 그 릴 수 있는 반지름의 수만큼이나 많은 방법이 있다. 생각에 따라서 모든 변화 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매 순간 일어나는 기적이다. 공자는 이렇 게 말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할 줄 아는 것이야 말로 참된 지식이다,"나는 한 사람이 상상의 사실을 지각 가능한 사실로 바꾸 었을 때 마침내 모든 사람이 그것을 기초로 자신의 삶을 세울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껏 언급한 근심과 걱정의 태반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그것이 과 연 걱정할 만한 일인지, 아니 조금이라도 신경을 쓸 만한 일인지에 대해서 잠 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삶에서 대체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그런 것들을 얻 기 위해서 어떤 방법들이 동원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면, 문명 속에서라 도원시적이고 개척자 같은 삶을 영위해 보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 다. 또는 상인들의 옛 장부를 들여다보거나 사람들이 상점에서 흔히 사는 물건 이 무엇이며, 주로 어떤 식료품을 비축해 두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다。 시대가 발전했다고 해도 생존의 기본 법칙에는 거의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

P.19
여기서 삶의 필수품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노력으로 획득하는 모든 것 들 가운데서 처음부터 또는 오랫동안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삶에 너무나도 중요하게 되어서 이제는 야만인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철학적인 이유에서든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들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거의 모든 생물체에게 있어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유일한 요소는 식량이다. 굳이 삼림지나 산 밑에 서 주거지를 찾으려 들지 않는 초원의 들소에게는 입맛에 맞는 얼마간의 풀과 마실 물이 필수품일 것이다. 실제로 야생의 생명체들은 식량과 잠자리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와 같은 기후대에서 살고 있는 인간이라면 삶의 필수품을 식량과 주거와 의복과 연료 같은 몇 가지 사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확보하기 전에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품고서 진정한 삶 의 문제들을 자유롭게 다룰 수 없다. 인간은 주택뿐 아니라 의복과 음식까지 만들어냈다. 따뜻한 불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자 처음에는 한낱 사치였던 불가에 앉는다는 것이 이제는 필수적인 일로 간주 되었다.

P.20
동물의 생명이란 표현은 동물의 열과 거의 동의어인 것처럼 보인다.
  • 맞다. 생명이란 열의 보존과 같다.


P.20
가난한 사람은 늘 세상이 차갑다고 불평한다. 그것은 육체가 느끼는 냉기라기 보다는 사회적 냉대를 뜻하는 것으로, 그것이 사실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 그래서 늘 불평속에 삶을 산다. 그런데 그 불평이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한다고 하는가 보다


P.22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심오한 사상을 갖는다거나 학파를 세우는 일뿐만이 니라 지혜를 너무도 사랑하여 지혜가 지시하는 바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 며 관대하고 믿음성 있게 산다는 것이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만 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인생의 제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학자나 사상가들의 성공은 대체로 왕이나 남자다운 성공이 아니라 아부하는 신하로서 의 성공에 불과하다. 실제로 그들의 조상이 그랬듯이 영합함으로써만 겨우 삶을 영위해 나가는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고귀한 인간의 본보기라곤 할 수 없 다 하지만 어째서 인간은 이토록 끊임없이 타락하고 있는 걸까? 무엇이 가문 을 영락케 만드는 걸까? 국가를 쇠약케 하고 파멸로 몰아가는 사치의 본질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에 사치가 없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철학자는 외적 삶의 양태에서조차 시대를 앞서는 사람이다. 그는 동시대인들처럼 배불리 먹거나 편안히 자거나 좋은 옷을 입거나 따뜻하게 지내지 못한다. 어떻게 철학자이면 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생명의 열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P.23
인간이 대지에 이토록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이유는 바로 그 정도로 하늘을 향해 솟아 오르기 위함일 것이다.
  •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뿌리가 굳건해야 한다. 그 굳건한 뿌리는 사고에서 연유하는데 그 사고는 간접경험의 독서에서 삶을 바라보는 여행을 통해서 굳건해지는 것 같다. 내가, 내 아이에게 보내줘야 할 것은 단단히 뿌리를 내리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P.26
그 다음에는 백인이 바구니를 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 한 것이다. 그 인디언은 남들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바구니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또는 적어도그렇 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남들이 살 만한 가 치가 있는 다른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고객은 그 어떤 것이건 고객이 느끼는 가치를 선호해 물건을 선택한다. 고객의 가치를찾아야 하는게 기업의 입장


P.27
사람들이 찬미하고 성공했다고 여기는 삶은 한 가지뿐이다. 어째서 우리는 다른 삶들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어느 한 가지 삶만을 과장하는 것일까?
동료 시민들이 내게 법원의 한 자리 또는 부목사라든가 다른 어떤 생계 수 단을 제공할 가능성이 없으며,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비교적 내가 잘 알려진숲쪽으로 더욱 더 마음을 돌렸다. 나는 충분한 자 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미 갖고 있는 빈약한 준비금만 가지고 곧장 사업에 착수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월든 호수에 간 것은 보다 싼 생활비로 살기 위해서라거나 화려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방해 없이 나만의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P.29
사람에게 옷을 입는다는 행위의 목적은, 첫째 생명의 열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노출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임을 상기시켜 준다면
  • 생명의 열, 소로의 이야기대로 우리는 열을 유지하고 지키고 열을 나누기 위해서 사는거 같다


P.30
사람에게서 옷을 벗길 경우 그들 각자가 얼마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경우 당신이라면 가장 존경받는 계층에 속한 문명인들을 확실히 가려낼 수 있겠는가?
  • 가려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몸짓, 태도, 눈빛은 조금 다르겠지요. "목욕탕에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지 않냐?"라고 말했던 선배가 생각난다. 그 선배가 이글을 읽고 이야기한 것일까?


P.31
사람이 새롭지 않은데 어떻게 새옷이 잘 맞을 수 있겠는가?
  • 비유가 들은거겠지?


P.31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낡은 옷을 입고 하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가지고 할 무엇'이 아니라, '해야 할 무엇', 또는 '되어야 할 무엇'인 것이다.

P.34
일단 몸에서 벗겨진 옷은 어느 것이나 우습고 괴상해 보이게 마련이다. 옷을 보아도 우습지 않게 하고 그것을 입은 사람을 성스럽게 만들어 주는 것은 입은 사람의 진지한 눈빛과 그 사람의 성실한 삶뿐이다.

P.41
농부들은 생계 문제를 실제보다 훨씬 복잡한 공식으로 해결하려한다. 겨우 구두끈 하나를 사기위해 가축을 떼로 키우는 것이다.
  • 사실 덜 쓰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있는데 사고 싶은것, 갖고 싶은 것은 항상 돈을 열망하게 만든다


P.41
우리는 온갖 사치품에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원시적인 다른 수많은 안락함을 누림에 있어서는 가난한 자인 것이다

P.42
집을 소유한 농부는 집 때문에 더 부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난해질 뿐이며, 오히려 집이 그를 소유한 셈이 되고 만다
  • 지금도 별 다를바는 없는거 같다. 


P.42
문명은 주택을 개선 시켰지만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을 그와 같은 정도로 개선시키지는 못했다
  • 인간을 개선시키는 것은 함께 살아보려는 사고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P.45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열심히 추종하는 유행을 만든 이들은 바로 사치와 방탕을 일삼는 자들이다.

P.46
인간은 이제 자신들이 쓰는 도구의 도구가 되버렸다

P.46
현세를 위해서는 가족의 저택을, 내세를 위해선느 가족 묘지를 지었다.

P.77
실제로 짐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만큼 더 가난한 사람이게 마련이다. 이삿짐 하나하나는 흡사 판잣집 한 다스에서 나온 내용물을 실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판잣집 하나만으로도 가난한 거라면 그런 이삿짐은 한 다스만큼이나 더 가난한 셈이다. 우리가 이사를 하는 것도 바로 우리의 가구, 우리의 허물을 없애버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마침내 이제까지 살던 세상을 떠나며 기존의 것을 불태우고 새로운 가구가 마련된 또 다른 세상으로 가려는 것이 아닐까? 그건 마치 이 모든 덫이 인간의 허리띠에 채워져 있어서 그 덫을 질질 끌고 다니지 않고는 우리가 가야 할 험한 길을 갈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P.83
나는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의 부모나 이웃의 생활방식이 아니라 자기만의 생활방식을 신중하게 찾아서 추구하기를 바란

P.84
가장 고상한 의미든 아니든 협력이란 함께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다

P.89
자선은 인류에 의해 높이 평가받는 거의 유일한 미덕이다. 아니, 그건 지나치게 높이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러한 과대평가는 바로 우리의 이기심 때문이다.

P.104
광활한 지평선을 마음놓고 누릴 인간만이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P.106~107
매일 매일이 자신이 지금껏 더렵혀 온 시간보다 더 이르고 더 성스러우며 더 장밋빛을 띤 시간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인생에 절망하고 점점 어두워지는 내리막길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잠시 동안 감각적 인 삶을 중단하고 나면 인간의 영혼 또는 그의 기관들은 매일같이 새로 활력을 얻게 되며 그의 비범한 정신도 다시금 고결한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 다. 기념할 만한 모든 사건은 아침 시간에, 그리고 아침의 대기 속에서 발산된 다고 할 수 있다. 베다 에서도 “모든 지성은 아침과 더불어 잠을 깬다 고 말하 고 있다. 시와 예술, 인간 활동의 가장 훌륭하고 기념할 만한 것은 바로 이 한 시간에서 비롯된다. 모든 시인과 영웅들은 멤논처럼 오로라의 자식이며 동틀 때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 태양과 더불어 탄력 있고 힘찬 생각을 발 휘하는 사람에게 하루는 영원한 아침이다. 시간이 몇 시든, 남들의 태도와 일 이 어떻든 상관없다. 아침은 내가 깨어나는 시간이며 내 안에서 동이 트는 시간이다. 도덕적 개혁이란 바로 잠을 쫓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면 어 떻게 그토록 하루를 함부로 대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그들이 타 산에 어두운 것도 아니다. 졸음에 압도되지 않았더라면 뭔가 쓸 만한 일을 했 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육체 노동을 할 만큼 잠에서 깨어 있지만, 그중에 단 한 사람만이 효과적 인 지적 활동을 할 만큼 깨어 있는 것이며,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 중에서 한 사람만이 시적인 삶 또는 성스러운 삶에 종사하는 것이 다 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껏 완전히 깨어 있는 사람 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그런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었겠는가?

P.108
내가 숲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 한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 art 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 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였다. 삶이란 그처럼 소중한 것 기에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고, 도저히 불가피하기 전에는 체 이 념을 익힐 생각도 없었다 나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모든 정 뽑아내 고 싶었고 강인하고 엄격하게 삶으로써 삶이 아닌 것은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P.109
삶은 자잘한 일에 낭비되고 있다.

P.109
단순하게, 단순하게, 단순하게 살지어다! 백가지 천가지가 아니라 두 가지나 세가지로 일을 줄이라.(중략)
단순화하고 단순화하라. 하루 세끼 식사를 할게 아니라필요한 때 한끼만 먹도록 하라. 백 가지 요리를 다섯가지로 줄이라. 나머지 일들역시 같은 비율로 줄이라.
  • 법정스님께서 머무신곳


P.115
“영혼도 이와 같다. 영혼 역시 그것이 속한 환경 때문에 원래의 신분을 이 고 있다가 어느 성스러운 교사에 의해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브라마, 즉 지고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P.115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실재일 거라고 생각한다
  • 맞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 더 중요한 것들이 숨어있는데도 말이다.


P.122
사람들은 고전 연구가 현대의 보다 실질적인 학문을 위한 길이 되어 줄 것 처럼 말하곤 하지만, 모험심에 넘치는 학생이라면 그것이 어떤 언어로 씌어지 고 그 언어가 얼마나 오래된 것이든 상관없이 고전을 공부할 것이다. 고전이 란 인간의 사상 중에 가장 고귀한 내용을 기록한 것에 다름아닐 테니까 고전은 사멸되지 않은 유일한 신탁이며 가장 현대적인 질문에도 델포이나 도도나 신 전조차 주지 못한 해답을 줄 것이다. 자연이 오래된 것이라 해서 자연을 공부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다. 책을 잘 읽는 일, 다시 말해서 참된 정신으로 참 된 책을 읽는 일은 숭고한 운동이며, 오늘날의 관습이 존중하는 그 어떤 운동 보다도 힘든 일이다 그 일은 운동선수가 하는 것만큼 훈련을 필요로하며, 독 서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거의 평생에 걸친 꾸준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P.122~123
책은 그 책이 씌어졌을 때처럼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읽혀야 한다. 그 책이 씌어진 국민의 언어로 말을 할 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데, 왜냐하면 구어와 문어, 귀로 듣는 언어와 글로 씌어지는 언어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보통 일시적인 현상이며 하나의 소리, 하나의 말투, 방언에 불과하고 거의 미개하며, 우리는 그 언어를 동물들처럼 무의식 속에서 어머니에게서 배운다. 후자는 전자의 언어가 성숙하고 경험을 쌓아 이루어지는 말이다. 전자가 어머니의 말이라면 후자는 아버지의 말이고 신중하게 선택된 표현이며, 너무 깊은 의미를 갖고 있어서 귀로는 듣기 어려운 말이다. 그 말을 하려면 다시 한 번 태어나야 하는 것이다.

P.124
인류의 지성과 치유를 위해, 자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면 시대를 가리지 않고 말을 거는 사람이다.

P.124
그 책의 저자들은 어느 사회에서든 자연스럽고도 매혹적인 엘리트로서, 왕이나 황제 이상으로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한다

P.126
일단 문자를 배웠으면 언제까지나 인생에서 가장 낮은 맨 앞자리에 앉아 4학급이나 5학급의 한 음절로 된 말이나 되뇌고 있을 게 아니라 최고의 문학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129
어쩌면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꼭 들어맞는 말을 해주는 책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귀를 기울여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침이나 봄날 이상으로 우리의 삶에 유익하고 문제의 새로운 양상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의 삶에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지금까지의 기적을 설 명하고 새로운 기적을 보여줄 책이 우리를 위해 어딘가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 이다.

P.131
농부와 상인들이 중요시하는 일에는 충분한 돈을 쓰면서도, 보다 지적인 사람들이 가치있게 생각하는 일에 돈을 쓰는 일은 몽상으로 치부한다.

P.135
퓨리라는 인디언 부족은 "어제, 오늘, 내일을 뜻하는 말이 하나밖에 없어서 어제일 경우에는 뒤쪽을, 내일일 경우에는 앞쪽을, 오늘은 머리 위를 가리키는 식으로 의사를 전달한다"는데 내가 바로 그런 식으로 살았던 것이다.

P.136
사실 인간은 자신이 일할 필요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자연의 하루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한 것이어서 인간의 게으름을 나무라는 법이 없을 테니까
  • 일을 왜 하는지에 관해서는 스스로의 개념정의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왜 일을 하는가?" "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인의 정의가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P.151
나는 올빼미가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들이 사람들을 위해 바보처럼 미 숲과 무도 잘 어울리는 울음소리로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광활한 미개척 여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그들은 황량한 어스름과 우리 모두의 충족되지 넘의 대변자이다. 온종일 태양은 어느 황량한 늪지의 수면을 비추었는 I에는 전나무 한 그루가 이끼를 달고 서 있고 몸집 작은 매들이 허공을 선회하고 박새가 상록수나무 숲에서 짹짹거리고 뇌조와 토끼가 소리 없이 돌아다닌다. 그러나 이제 좀더 음산하고 그곳 풍경에 보다 잘 어울리는 하루가 시작되면서 또 다른 종족이 그곳에서의 자연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저녁 늦은 시각, 멀리서 다리를 지나는 마차의 덜커덩거리는 소리(밤이면 이 소리는 다른 어떤 소리보다도 멀리까지 울린다, 개들이 짖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씩 먼 농가 안마당에서 슬픈 암소가 우는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그 사이에 호숫가는 온통 황소개구리의 요란한 울음소리로 뒤덮이는데, 이들은 고대 술고래와 술꾼들의 정 령들로서 여 전히 뉘우칠 줄 모 르 고 이 지옥 같은 호 수에서(월든 호수의 요정들이 이 런 비유를 용서해 주기를, 아무튼 이곳에는 잡 풀은 거의 없는 대신 개구리들은 잔뜩 있었으니까) 돌림노래를 해보려 애쓰고 있다 이들은 그 옛날 잔칫상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살려볼 생각이었을테지만, 목소리가 잔뜩 쉰 데다 음침할 정도로 엄숙해져서 즐거운 분위기는 흉내나 낼 뿐이고 술은 이미 그 풍미가 사라진 뒤여서 그저 배나 불리는 물일 뿐이었다.
  • 이 대목에서 어릴적 외갓집에서의 밤이 생각났다. 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들어, 어릴적 외갓집에서의 풍경과 소리가 가끔씩 눈에 들어온다.  


P.156
지금은 온몸이 하나의 감각으로 바뀌고 땀구멍 하나하나로 기 을 숨쉬는 감미로운 저녁이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자유로운 자연의 느 낌 품고, 자연의 일부를 품고 돌아다닌다. 구름이 낀 데다 바람까지 부는 서는 날씨인데도 나는 셔츠 차림으로 돌이 깔린 호숫가를 따라 걸어 본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없다 자연의 모든 요소가 내게는 유난히 친숙하게 느껴지 다 황소개구리는 밤의 도착을 알리듯 시끄럽게 울고 수면 건너 잔물결을 일으 기는 바람에 묻어 쏙독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에 흔들리는 오라 무와 백양나무에 대한 감응으로 나는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럼에도나의 평온한 마음은 호수처럼 잔물결만 일으킬 뿐 넘실대지는 않는다. 저녁 바람에 이는 이 자잘한 흔들림은 거울처럼 매끄러운 수면만큼이나 폭풍과는 거리가 멀다. 이제 주위는 어두워졌으나 바람은 여전히 불어 숲속에서 아우성치고 물결 은 밀려들며 어떤 동물들은 노랫소리로 다른 동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P.163
나는 보다 많은 시간을 혼자 지내는 일이 유익함을 알고 있다. 아무리 좋은 상대라도 함께 있으면 이내 싫증이 나고 좋아하는 감정도 식게 마련이다. 나는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고독만큼 상대하기 좋은 친구를 보지 못했다. 우리는 대부분 방에 박혀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과 섞일 때 훨신 더 외로움을 느낀다. 생각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늘 혼자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독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P.192
손으로 하는 노동은 그것이 설혹 거의 고역이라 할 만큼 지루하게 진행되더라도 결코 최악의 게으름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한 노동은 지속적이며 불멸인 교훈을 지니고 있어서 학자에게서라면 권위 있는 성과를 낳을 수 있으리라.

P.210
누구나 잠에서건 몽상에서건 깨어날 때마다 나침반의 눈금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길을 잃어 보기 전에는, 다시 말해서 세상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찾아내지도,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와 자신이 맺고 있는 무한한 관계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다.

P.236
나무꾼들이 호숫가 이곳저곳을 황폐화시키고 아일랜드 인들이 그 곁에 자신들의 돼지우리 같은 집을 짓고 철도가 그 경계선을 침범하고 한때 얼음 장수가 그 얼음을 걷어 간 적은 있었지만, 호수 자체는 변치 않았다.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바로 그 물 그대로인 것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생각뿐이다. 호수에는 수많은 물결이 일었지만 어떤 주름살도 영원히 남지는 않았다. 호수는 영원토록 젊음을 누리고 있으며, 지금도 물가에 서면 저 옛날 그랬듯이 수면에서 벌레를 잡으려는 듯 물에 살짝 몸을 담갔다 날아가는 제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P.237
열차는 결코 호수를 보려고 멈추는 법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기관사와 화부, 제동수, 그리고 정기승차권을 갖고 있어서 그 호수를 자주 접할 수 있는 승객들이라면 호수를 훨씬 잘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P.255
사람들은 밤이면 순순히 집 안의 온갖 소음이 들리는 바로 이웃한 밭이나 거리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의 삶은 수척해진다. 왜냐하면 그 삶은 제가 내쉰 숨을 다시 들이쉬기 때문이다. 아침과 저녁대면 그들의 그림자가 그들이 매일 걷는 걸음보다 더 멀리까지 늘어난다. 우리는 먼 곳에서 귀가해야 한다. 모험에서, 위험에서, 매일매일의 발견에서 새로운 경험과 성격을 형성하여.

P.258
잡은 물고기를 꿴 줄을 들고 낚싯대를 끌며 이제 완전히 숲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얼핏 오솔길을 살금살금 가로지르는 마못이 보였다 그 순간 이상하리만큼 잔인한 기쁨의 전율과 더불어 그 먹고 싶다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때 허기가 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놈이 갖고 있는 그 야성 때문이었다. 호숫가에서 사는 동안 한두차례 먹을만한 짐승 고기를 구하러 반쯤 굶주린 사냥개처럼 정신없이 숲속을 배회한 일이 있었다. 그때 같아서는 무엇을 뜯어먹더라도 잔인할 것 같지 않았다. 아주 야만스 러운 광경을 떠올려도 기묘하리만큼 친숙하게 느껴 졌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내게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보다 높은 삶, 이른바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과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 능을 찾아볼 수 있는데, 나는 이 두 가지 삶을 모두 존중한다.
  • 두가지를 존중하면서 이 둘의 화합을 이끌어 내는 설득력. 나는 거기에 높은 지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세상은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다르지 않게 이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무경계에서 처럼 결국 두개의 경계는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일뿐 결코 다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P.263~264
약간의 빵이나 감자 몇 알을 먹더라도그 정도의 허기는 감출 수 있을 것이고 수고와 불결함은 훨씬 적을 것이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는 오랫동안 육식이나자 커피등을 그다지 즐겨 먹지 않았다. 그런 음식들에 무슨 해로운 영향이 있다 는이유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내 상상력에 그다지 유쾌하게 작용하지 않았 714문이었다. 육식에 대한 반감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 까운 것이다 모든 면에서 검소한 삶과 식단이 보다 아름다워 보였으며, 비록 정말 그렇게 하지는 못했더라도 내 상상력을 만족시킬 정 는 노력했다. 보다 높은 정신 능력 또는 시적 능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고자 하 누구든 육식을 삼갈 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음식이든 절제 하려 할 것이다. 커 비와 스펜스 같은 곤충학자의 다음과 같은 진술은 의미 심장하다고 할 수 있 다 “성충 상태에서 음식물 섭취 기관을 갖추고도 전혀 쓰지 않는 곤충들이 있 다 성충 상태의 거의 모든 곤충이 유충 때보다 훨씬 적은 음식을 섭취한다는 일반론을 도출할 수 있다. 식욕이 왕성한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고 게걸스러운 구더기가 파리가 되면, 꿀이나 다른 감미로운 음료 한두 방울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나비의 날개 아래쪽에 붙은 복부는 유충 때를 상징하고 있다. 이 쀼 때문에 나비는 다른 종에게 먹힐 운명을 자초한다. 유충 상태의 인간 역시 대 식가이다. 국민 전체가 그런 상태에 처한 경우도 있는데, 그들은 공상이나 상 상력이 결여된 국민으로서, 그 방대한 복부가 그들의 실상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P.274
요즘 세상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군. 지난 세시간동안 들은 것은 소귀나무에서 난 메뚜기 소리가 고작이었지. 비들기들도 나무위에서 모두 잠든 모양이야.
  • 고요한 일상의 상상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나는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은데.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싫지만은 않다. 이 시기가 지나면 나또한 그런 고요한 일상이 있을테니까. 아이를 돌보고 가족과 여행하고 그들과의 이야기와 친한 사람들과의 삶이 나에게는 살면서의 가장큰 힘이 된다.


P.309~310
내 친구들 중에는 내가 일부러 얼어죽을 작정으로 숲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동물은 조용한 장소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자신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불을 발견한 인간은 널찍한 방 에 얼마간의 공기를 가두고 자신의 체온을 이용하지 않고도그 공기를 데워 자 신의 보금자리를 만드는데, 그 안에서 는 성가신 옷을 잔뜩 입지 않고도 돌아다 니며 한겨울에도 어느만큼은 여름처럼 지낼 수도 있고, 창이 있는 덕분에 햇빛 을 방 안까지 들이고 등잔으로 낮의 길이를 늘이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런 식으로 인간은 본능적인 삶에서 한두 걸음 더 뛰어넘어 예술을 위한 얼마간 의 여가까지 마련한다. 내가 오랜 시간 휘몰아치는 돌풍을 맞아 전신이 무감각 해지기 시작했더라도 내 집의 따뜻한 공기 속에 발을 들여놓기만하면 이내 기 능을 회복하며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주 화려한 주거지에 사는 사람도 이 점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다. 결국 인류가 어떻게 파멸할 것인지는 을 보듯 뻔한 일인 것이다. 북방에서 좀더 혹독한 바람이 약간만 불어도 인 불 간의 목숨은 순식간에 끊어질 수 있다 우리는 혹한의 금요일이라든가 기록적 인 폭설이라는 식으로 날짜를 매기고 있지만, 그 금요일이 조금만 더 춥거나 그 폭설이 조금 만 더 심할 경우 그날로 이 지상에서 인류의 존재는 끝장나고 말 것이다.

P.314
나는 몇 차례 유쾌한 눈보라를 겪었으며, 밖에서는 눈발이 사납게소 용돌이 치고 있는 동안(그런 때는 올빼미조차 잠잠했다) 난롯가에 앉아 몇 번인 가 즐거운 겨울밤을 보냈다. 몇 주일 동안 산책을 해도 이따금 나무를 베어 매로 마을까지 운반하곤 했던 나무꾼 몇 명을 빼놓고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자연은 숲의 가장 깊은 눈 위에까지 길을 내도록 나를 부추기곤 했다. 내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바람에 떡갈나무 낙엽이 내 발자국 속으로 쓸려들 어와 자리를 잡고, 햇살을 흡수하고 눈을 녹여 내가 발을 디딜 만한 자리가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밤이면 그 까만 자국이 길을 안내해 주었다. 누군가를 사귀려면 예전에 이 숲에 살았던 이들을 떠올리는 것 외에 별 도리가 없었다.
  • 그때의 삶이나 지금의 삶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 인간의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P.327
가장 멀리서, 가장 눈이 많이 쌓였을 때도 지독한 눈보라를 뚫고 내 오두막 을 찾는 사람은 시인이었다. 그런 날씨에는 농부도 사냥꾼도 병사도 기자도 심지어는 철학자도 기가 꺾였지만 시인의 앞길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시인은 순수한 사랑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오가는 것을 그 누가 예측 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자신의 일 때문에 의사들조차 잠든 시각에도 늘 밖으 로 불려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조그만 집을 떠들썩한 웃음소리로 울리고 진 지한 대화로 채움으로써 한동안 침묵에 잠겼던 월든 골짜기에 보상을 했다. 여 기에 비 하면 큰길은 고요하고 인적도 없었다. 우리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웃음 소리로 예포를 쏘아 올리곤 했는데, 그 웃음소리가 방금 한 농담에 대한 것이 든 앞으로 할 농담에 대한 것이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묽은 오트밀 죽 한그룻을 앞에 놓고 갖가지 새로운 인생론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철학이 요 하는 맑은 정신에다 연회의 흥겨움이라는 이점을 더한 것이었다.
  • 데이비드 소로가 어떤 부분을 정신으로 취하시는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지 않을까


P.329
인간이면 누구나 환영하지만, 그의 짐승만은 사양함. 넉넉하고 평온한 정신으로 진지하게 올바른 도(道)를 구하는 분들은 들어오시오

P.346
고요한 겨울밤이 지나고 잠에서 깨어난 나는 밤새도록 무슨 질문인가 내게 주어지고 그 질문에 대답하려 애썼으나 헛수고였다는 느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무엇을? 어떻게? 언제? 어디서? 같은 질문들 말이다. 그러나 이제 모든 생물체가 그 품안에 살고 있는 자연이 동트면서 그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 집의 널찍한 창문을 들여다보는데 그녀의 입가에는 아무런 질문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나는 이미 대답된 질문과 자연과 하루의 빛 속에서 잠을 깬 것이다.

P.400
자신의 삶이 아무리 비천할지라도 그 삶을 정면으로 대하고 살도록 하라. 피하지도 욕하지도 말라. 그 삶은 당신만큼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가난해 보인다. 남의 흠이나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잡기에 바쁘리라. 설혹 그 삶이 가난할지라도 당신의 삶을 사랑하라. 설혹 구빈원이라도 유쾌하고 신나며 훌륭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석양 의 햇살은 부자의 저택에서나 구빈원의 창문에서나 똑같이 눈부시게 빛난다. 구빈원의 문 앞에서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눈이 녹는 것이다. 마음이 고요한 사람이라면 구빈원에서도 만족스런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궁전에서처럼 유쾌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종종 가난하게 사는 마을 사람이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곤 한다. 어쩌면 아무 의심 없이 받을 수 있을 정 도로 마음이 넉넉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은 자기가 마을의 부양을 받 을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지만, 그들 중에는 부정한 수단으로 자신을 부양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훨씬 더 불명예스러운 일인 것이다


P.405
세상에서는 끝없이 진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지루해하고 있다. 그것은 가장 개화됐다는 나라에서 어떤 설교들이 행해 지고 있는지만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기쁨과 슬픔 같은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코먹은 소리로 부르는 찬송가의 후렴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들은 그 보다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개념을 신봉한다. 우리는 갈아입을 수 있는 것은 옷뿐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대영제국은 아주 점잖은 대국이고 미합중국은 일 류 강국이라고들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등뒤 에서, 만약 대영제국을 심중에 품을 수만 있다면 그 정도는 나뭇조각처럼 가볍게 떠내려 보낼 정도의 어마어 마한 조류가 흐르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다음에는 어떤 17년 묵은 매미가 땅 에서 기어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이 나라의 정부는 영국 정부처럼 식후에 한 잔하며 대화하는 중에 탄생한 것이 아닌 것이다 우리 내면의 생명은 저 강물의 물과 같다. 올해 그 강물의 수위가 유례없이 올라가 목마른 고지대로 범람할 수도 있다. 어쩌면 사향뒤쥐가 모두 익사하는 중요한 해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언제나 마른땅이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내륙 오지에 난 둑에서 과학이 그 범람을 기록하기도 전인 오래 전 강물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을 발견한다


P.408
시대보다도 오늘의 우리에게 좀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보다 선명하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특이한 책이다. 그것은 흔히 얘기하듯 자연으로 돌아가자 는 식의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상실돼 가는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힘겨운 시도의 하나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풍 부한 시적 통찰력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 책은 문명에 의지하지 않는 순결한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탐색하고 있다. 


P.409
그는 2년 2개월하고도 이틀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는 좀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월든 호숫가에 소박한 오두막을 지었다. 그 오두막은 다섯 평(3미터 × 5미터)도 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월든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가 숲속에 들어간 이유는 신중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기 위해서, 그리고 인생에서 꼭 알아야 할 일을 과연 배 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르렀을 때 제대로 살 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기 위해서였다”
  • 그래서 법정스님께서도 강원도 산골의 그 허르스름한 오두막에 들어가 그렇게 사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로의 삶과 법정스님의 삶은 철저히 닮아있다. 




III. 내가 저자라면

1.보완이 필요한 점
1)아쉬웠던 부분
  • 부록으로 월든의 모습이나 오두막의 모습들과, 월든 호숫가 근처의 사진들을 옮겨줬으면 좋았었을 법했다.


2)생각하게 된 부분
  • 법정스님께서 어떤 부분에 머물르  셨을지 짐작이 간다.

  • 간소하고 단순한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 너마나 복잡하고 많은 것들에 쌓여 있음이 보인다. 그렇지만 작가처럼 살아갈 자신은 없다. 



2. 이 책의 장점
  • 내 삶이 얼마나 많은 것을 추구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 법정스님의 오두막이야기와 짝을 이루어 읽는다면 스님의 삶과 데이비드 소로의 삶이 정말 많이 닮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네이버 도서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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