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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7일 03시 00분 등록

 <나에게 이 책은>

 

이 책은 명상으로서의 글쓰기, 내면의 자신을 소환하는 향불로서의 글쓰기,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글쓰기를 이야기 한다. 꼭 전업작가가 아니라 해도 글을 쓴다는 것이 개인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타인과의 소통과 관계 맺음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결국 삶은 뭐고 진실은 뭔지에 대해 쉽고 짧고 감각적으로 선명하게 쓰여진 책이다.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글쓰기와 작가의 관계, 글쓰기와 인생의 관계를 다뤘다고 할까. 작년에는 읽기에 무게를 실었다면 올 해는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와 글쓰기의 관계에 대해 살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덧붙여 캠벨 때부터 시와 상징에 대한 관심이 밑바닥에 깔리기 시작했는데 소로로 수면으로 떠오르더니 나탈리가 확 낚아 올렸다. 시로의 이끌림을 제대로 당겨준 책이기도 하다.

 

나탈리 골드버그


<* 저자소개로 한강타임즈 이지연 기자의 기사를 싣는다> 


소설가이자 시인. 화가이자 명상가. () 수행자이자 초콜릿 마니아.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글쓰기 선생님. 이 모두가나탈리 골드버그를 설명하는 말이다. 1986년 그녀가 혜성처럼 나타나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Writing Down the Bones)’를 출간하기 전까지 글쓰기 책이란 으레 자잘한 테크닉과 요령을 가르쳐 주는 실용서들 뿐이었다.


하지만삶의 한가운데에서 무조건 일단 쓰라는 파격적인 글쓰기 방법을 제시한 이 책은 이후 10여 가지 언어로 번역돼 150만부가 넘게 팔렸다. 가히 글쓰기 책의 혁명이었다. 수십만 독자들이 골드버그의 말에 용기를 얻어 펜을 들었고, 그녀의 글쓰기 수업은 전 세계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다채로워졌다.


도대체 무엇이 이 수많은 독자들을 움직였을까? 그것은 골드버그의 독특한 체험과 관련이 있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선불교에 빠져 가타기리 선사 등을 선생으로 모시고 오랫동안 선()수련을 해 왔다.


영어로 번역된 선지식(善知識)들의 화두를 궁리하는가 하면 발우에 수프와 샐러드를 담아 공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적 행위는 아니다. 그녀 스스로나는 선 수행자이자 유대인이라고 할 정도로, 선 수행은 마음을 가다듬고 현상을 넘어서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진정한 것과 마주하는 것에 있었다. 때문에 골드버그의 글쓰기 수업 역시 목적은이 아니라에 맞춰져 있다. 수업에 참가한 사람들은 글 자체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진실하게 들여다보는 훈련을 한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명상을 하고, 벽을 따라 걷다가 공책에 자신의 생각을 적고 사람들 앞에서 낭독한다. 그러다 벨이 울리면 다시 일어나 걷고, 명상하고, 쓴다.


이 수업에선 절대 말을 해선 안 되며, 글 쓰는 시간 역시 몇 분 정도로 제한된다. 아름답게 짓거나 꾸미는 글에 관심하지 않는 까닭이다. 묵언함으로써 표현의 에너지를 차곡차곡 안에 모으고, 적절한 때에 가감 없이 생각나는 대로 글로 적어 간다. 그리고 그걸 남들 앞에서 읽고 들으며 자신들의 욕망과 솔직하게 대면한다.


치유로서의 글쓰기, 삶으로서의 글쓰기다. 전 세계의 수십만 독자들은 이 새로운 글쓰기의 체험이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바꿨음을 증언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퍼뜨리기 위해, 멋있어 보이기 위해 글을 쓴다는 생각을 그녀는 뒤집어 버렸다.


글을무엇을 위해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 글을 쓰는 일 자체가 목적이며 삶의 가장 종요로운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새로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내 마음 속 책갈피

 

12 1974년은 내가 명상의 세계에 첫 발을 들여 놓은 해다. 그 후 1978년에서 1984년까지 나는 미네소타 주에 있는 미네소타 선원에서 다이닌 카타기리 선사로부터 정식으로 선 수련을 받아왔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저자는 명상으로서의 글쓰기를 이야기 하는구나 했다. 북리뷰 하려고 다시 책을 펼치니 서문의 첫 문장이 과연 명상과의 인연으로 시작하는구나. 유발 하라리, 켄 윌버에 이어 나탈리까지 명상을 이야기 하네. 2018년은 시와 그림, 명상의 해가 될 것인가.

 

나탈리, 선이란 글을 쓰는 것과 똑같아요.”라며 글쓰기를 언급하자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삶을 재료로 삼아 글을 쓴다는 점에서. 글쓰기 자체가 되새김, 반추, 소화를 하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성찰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 글쓰기.

 

13 학창시절 내내 나는 말 그대로 꽉 막힌 모범생이었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오직 선생님 마음에 드는 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쉼표와 마침표, 물음표의 쓰임새를 배웠고, 배운대로 문법에 맞는 글을 쓰는 데만 골몰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은 진부하고 재미가 없었다.

나는 문제아는 아니었는데 모범생도 아니었다. 그런데 교무실엔 몇 번 끌려갔고, 한 번은 학주가 내가 왜 너를 자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 문제아는 아닌데…”했던 기억이 남. 여하튼 나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있다.

 

14 존 밀턴과 쉘리, 키이츠의 시를 소리 높여 낭송하다가 기숙사 내 좁은 침대 위에 그대로 쓰러져 잠든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를 낭송하다 잠들다니! 잠들었을 때 그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면 그 사람이어디에 몰입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림을 좋아하는 딸은 스케치북에 엎드려 색연필을 손에 쥔 채 잔 적이 많다. 그 순간을 모두 사진으로 찍어 놨다. 나는 잘 때 내 곁에 핸드폰이 있다. 이건 몰입이 아니라 중독인게지.

 

아까 함석헌 선생님 관련 기사를 읽었는데 그 분이 셸리의 서풍의 노래전문을 우리말로 아름답게 옮겼다고 나오던데. 마지막 구절만 옮겨 본다. 겨울이 만일 왔거든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 너무 좋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겠다. 예언의 나팔소리라. 주역과 엮어볼 수 있는 시구가 되겠다.

 

The trumpet of a prophecy! O Wind,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예언의 나팔소리를 외치라, , 바람이여,

겨울이 만일 왔거든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

 

그들은 결코 내가 삶에서 실제로 겪어 나가야 할 경험들에 대해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었다. 나는 상대가 시인이라면 결혼해 줄 수도 있다는 은밀하고 의뭉스런 꿈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지만, 나 자신이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나도 한 때 작가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적인 남편의 직업은 작가 또는 정치가였다. 내가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거 같다. 나의 바람을 아는 지인이 유명 소설가의 아들과 소개팅을 주선해 준 적이 있다. 그 소설가도 이젠 고인이 되었네.

 

15 아뿔싸! 바로 요리에 대한 시였다. ‘아니, 이런 것도 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주역과 시를 엮을 수도 있다. 실제로 <시적 상상력으로 주역을 읽다>라는 책이 있다. 구매해서 읽고 있는데 훌륭한 책은 아니지만 주역과 시를 엮는 것을 참고할 수 있어서 좋더라.  

 

맙소사! 이렇게 평범한 것이 시란 말인가? 내가 매일 하는 그런 일이 시라고? 그때 무언가가 나의 뇌신경망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 나는 어느새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리고 나만의 생각과 감정이 실린 글을 써 보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나는 먼저 내 가족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요새 우리 신랑 탄력 받았다. 작년에 공저를 제안한 것이 신랑이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공저에서 감수로 마음을 바꿨고 그 역시 애초의 공저, 감수를 넘어 자신만의 글쓰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대를 이은 의업이라는 주제로 가족 이야기, 주로 아버님과 자신에 대해 쓰고 있는데 재미와 의미가 있어서 놀랐다. 꼭지글을 벌써 20개나 썼다. 나보다 더 일찍 책을 낼 것 같다.

 

16 그리고 여러분에게 안정된 삶의 방식을 가지려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당부하고 싶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시작할 때 이미 당신은 끝까지 그 일을 따라갈 깊은 안정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택산함괘와 뇌풍항괘가 떠오른다. 설명 생략.

 

뉴멕시코 대학, 라마 재단 그리고 타오스에서는 히피들을 위한 작문 교실을 열었다. /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게이들만을 위한 일요일 밤 작문 교실도 열었다.

타겟이 디테일하고 특별하다. 주역도 이렇게 타겟별로 가능할 수도 있겠다. 엄마가 읽는 주역, 직장인이 읽는 주역, 투자자가 읽는 주역 등등.

 

17 자신을 누르지 말고 감정의 파도에 실린 그 상태로 글을 몰고 가야 한다고 써 있다. 진실을 글로 나타내려면 쓰는 이가 자신의 내면 아주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만 한다는 내용이다.

연기자들의 연기를 북돋을 때 감독이 , 이 장면에서 감정선 잡고!” 뭐 그런 말을 하는데 글쓰기도 마찬가지. 남편도 요새 글을 쓰면서 자신의 내부에 수많은 검열관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고 한다. 이 글을 다른 형제들이 보면 뭐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환자들이 보면 뭐라 하지 않을까. 그런 검열관들을 물리치고 그냥 써나가려고 노력 중이라고 한다. 한번은 눈이 충혈되어 있길래 피곤한가 했더니 글을 쓰다 울었단다. 그야말로 감정의 파도에 실린 상태로 글을 몰고 간 것이다. 요새는 남편을 보며 자극을 받는다.

 

또 다른 장에는 글을 쓰려면 은밀한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하니 작업실을 정하라는 내용이 보인다. “……집에서 나가라. 설거지에서 벗어나라. 글을 쓸 수 있는 카페로 달려가라…….”

성소이야기는 캠벨 때부터 계속 강조되고 있는 거 같다. 나 역시 카페로 간다. 날이 좋을 땐 뒷산 벤치가 나의 성소가 된다.

 

18 나는 각각의 장이 그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도록 이 책을 썼다.

나 역시 각각의 꼭지글이 독립적으로 그 자체만의 장점이 있도록 써야겠다.

 

21 자신에게 글쓰기를 탐험할 수 있는 많은 공간을 허용해 주라는 말이다.

 

22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는 환자를 진료하는 중간중간 작은 진료 카드 위에 시를 적었다.

담배 속지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의 은지화처럼.

 

그의 시선집에는 이렇게 진료 카드 크기에 꼭 맞을만한 길이의 시가 많다.

 

정성껏 달여 보낸 어르신 한약

입금이 되지 않아 전화를 드렸더니

약이 맛이 없어. 맛 없어서 입금 안했어.

어르신, 저희는 중화요리집이 아닌데요.

그저 속으로 삼킬 뿐.

 

뭐 이런 거 나도 처방전에 쓸까? 아 문득 처방전에는 환자 이름과 증상, 그에 맞는 처방이 있으니 그 내용을 바탕으로 시를 쓸 수도 있겠다 싶은데. 약명시처럼. 친한 환자들 대상으로 시도해봐야지.

 

나는 감정적인 글을 쓸 때는, 적어도 처음에는 직접 손으로 쓴다. 손으로 쓰는 것이 심장의 운동과 더욱 가깝게 연결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확실히 필사를 해보니 글이 글을 쓰는 느낌, 정신이 잠깐 외출해도 몸은 기계적으로나마 글을 쓰는 느낌은 있더라. 육필원고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긴 한데 워낙 악필이라 엄두는 안난다. 하지만 시 정도는 직접 그렇게 써봐야겠다. 심장의 운동과 손놀림이라.

 

23 내면 세계가 외부 세계를 창조한다는 말은 참말이다. 하지만 이 외부 세계와 우리가 쓰고 있는 연장 또한 우리의 사유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늘에 대고 글쓰기를 하지 못할 것도 없다.

 

25 수업에서 자신이 쓴 글을 읽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학생들이 있다. 좋은 일이다. 눈물을 흘리며 글을 쓰는 학생들도 있다. 나 역시 같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쓰라고 말한다.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야만 저 반대편 심장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눈물을 넘어 진실을 파고들라. 이것이 원칙이다.

얼마 전 글 쓰다 울었다는 남편을 보고 충격 받았다. 나의 글쓰기가 감정선을 타고 흐르게 하자.  

 

26 첫 생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제일 먼저 번쩍하고 빛을 낸 불씨다. 이 불씨의 뿌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잠재력과 맞닿아 있다.

 

27 첫 생각은 참신함 그리고 영감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29 진짜 중요한 것은 작품과 더불어 우리의 삶을 꾸려나가는 과정이다.

주역의 64괘가 내가 처하는 일상의 상황, 인생의 극적인 상황에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인가를 써보고 있다.

 

30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을 배운 다음 글을 쓰게 되면, 그것이 사업상의 서류이든 장편 소설이든 박사 논문이든 또는 여행기이든, 그 글에는 힘이 실리게 된다.

힘이 실리고 혼이 담겨야 한다. 얼마 전 꿈 속에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 유동걸 선생님과 우리 환자이기도 한 김소라 작가가 등장했다. 김소라 작가와 어딘가를 갔는데 최명희의 혼불이 진열되어 있었다. 책의 각 페이지가 불꽃처럼 디자인 되어 있어 이 책 만드려면 돈 제법 들어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책의 페이지가 이렇게 활활 타오르는 식으로 디자인 한 건 참 독창적이라는 생각도 했다. 힘과 혼이 실린 글을 쓰자.

 

34 글쓰기는 재갈을 물리지 않은 야성이 숨 쉬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으며 오직 그 순간 글 쓰는 사람과 다른 모든 것과의 연결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글쓰기 훈련으로 무장되어 있을 때 논리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요새 시에 끌리는 걸까. 논리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비약과 도약. 그것이 주는 야성과 신성.

 

37 그러다가 갑자기,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12월에 접어들어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제과점인 크로아상 익스프레스에 멍하니 앉아 있었고, 내 앞에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장시 한 편이 놓여 있었다. 내가 말해야만 했던 모든 것들이 갑자기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하나의 통일된 실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퇴비에서 한 송이 붉은 튤립이 피어난 순간이었다.

내 몸 안에서 갓 나온 붉은 아기를 대면하는 순간.

 

38 “당신의 작은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하게 만드는 건 위대한 결정자입니다. 당신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신이, 당신 배후에 존재하는 우주만물 즉 새, 나무, 하늘, , 그 밖의 무수한 생명의 흐름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에만 위대한 결정자가 당신을 도와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우주가 도와준다는 이 좋은 말을 박근혜가 망쳐 버렸어.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비료를 마련해 놓은 다음, 갑자기 당신은 한 순간 별과, 또는 당신 머리 위에 걸려 있는 거실 샹들리에와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연대가 이루어지면 당신의 몸이 열리게 되고, 이제는 그 몸이 말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을 마음 속에 그리니 좋구나. 글쓰기 전 명상 이미지로 활용해야겠다.

 

40 습작시절의 엉클어진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난 솔직히 변경연에 올라가 있는 최근의 주역 관련 글들 지우고 싶다. 차마 삭제는 못하고 이 글은 습작이라고 굳이 마지막에 넣었다. 나중에 수정보완 해야지, 낯 뜨겁다. 하지만 일단은 쓴다.

 

41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낡은 분홍색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내가 이 글을 읽을 때 낡은 분홍색 의자에 밑줄을 그었다. 세심하다는 생각이 든 거다. 나라면 그냥 털썩 앉았다에서 끝났을 거다. 낡은 분홍색 의자가 등장하면서 그 때의 분위기 한 조각을 느낄 수 있게 되어 남다른 표현이라 생각되었다. 나중에 보니 저자는 세부묘사를 강조하더라. 그런 마음이 낡은 분홍색 의자가 잊혀지지 않고 등장하게 된 배경인 것이다.

 

43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박경리 샘은 영혼을 허공에 풀어놓으라 하셨다.

 

47 ‘기억이 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보자.

 

기억이 난다. 아빠 손 잡고 유치원 밖으로 달려나갔던.

모든 아이들의 손에 선물이 들렸을 때 산타는 사라졌지.

산타를 본다고 아빠 손 잡고 유치원 밖으로 달려 나갔어.

내가 7, 아빠 나이 지금의 나보다 젊은 37.

어린 딸 손 잡고 함께 달려나간 아빠의 마음도 동심이었던

1980년 크리스마스 혜화유치원 운동장.

 

동물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줄무늬 다람쥐인가, 여우인가, 혹은 땅 밑에 사는 두더쥐인가?

 

희뿌연 콧김이 눈에 서린다.

저 멀리 설산의 눈처럼 부옇다.

머리카락 날리는 걸 보니 바람이 센데

어찌된 일인지 춥지가 않다.

나도 모르게 슬슬 다리를 땅에 박차며

마음 가는대로 달리니 머리카락 휘날림이 더욱 세어진다.

! 나는 말이 되었구나.

갈퀴를 날리며 콧김을 뿜으며

바람을 타고 나는 달린다.

 

51 그 동안 내 노트는 텅 비어 있다. 이 텅 빈 노트는 에고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음을 보여 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컴퓨터로 쓸 때엔 텅 빈 노트깜박이는 커서로 등장한다. 내가 6월에 이런 글을 썼더라. ‘…여지 없이 커서는 깜박이고 하얀 공백이 막막하게 다가온다. 돌을 바라보며 조각상을 상상하는 조각가처럼 이 공백을 잠시 쳐다본다.’

 

52 불행하게도 우리의 마음 속에는 이 두 개의 마음이 같이 살기 때문에, 때로는 그것이 동시에 글에 표현된다.

<안나 카레리나>를 쓴 톨스토이가 그랬을까. 두 부부의 모습은 톨스토이 내면의 대극.

 

게으름을 물리치고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설거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과제 하기 전에 집이 깨끗해진다.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가구도 바꾸고.

 

56 습작시절부터 자기 속의 작가를 내면의 편집자 또는 검열관과 분리시키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작가가 자유롭게 호흡하고, 탐험하며 표현할 공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여러 마음과 역할을 가진 존재가 있음을 상상하고 그 중 작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그에게 딴지 거는 마음 속 다른 존재들을 걷어내고 작가가 마음껏 숨쉬고 탐험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것.

 

57 그러니 별 의미도 없는 말에 귀를 기울여 쓸데없이 그의 힘을 키워주는 바보짓은 하지 말라.

 

멀리서 바람에 날리는 흰 빨래 / 결국 그 빨래는 마를 것이고, 아주 멀리 있는 누군가가 그것을 개서 집으로 가져 갈 것이다. 그 동안 당신은 글을 쓰면 그만이다.

 

59 “직접 경험한 것만이 체험의 전부는 아닙니다/ 여러분 속에서는 다른 이들의 삶도 들어가 있습니다.”

작년에 저자 연구를 하면서 저자들의 삶을 내 안으로 끌어 들였다. 이제 내 삶 속으로 들어온 그들의 삶과 나의 경험을 한데 꿰는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은 주역이 될 것이다.

 

62 당신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하라. 그런 다음 그 속으로 파고 들어라. 당신이 가지 못하는 곳은 없다.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하라.

관찰하는 풍지관괘’, 도사리며 파고 드는 지택림괘가 생각난다.

 

64 공교육이 저지르는 가장 끔찍한 잘못은 타고난 시인이자 소설가인 어린 학생들에게서, 그들의 문학을 빼앗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문학 수업은, 어린이들에게 문학 작품을 읽게 한 다음 곧바로 문학에 대해서만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On, about이 아닌 into가 되어야 한다. 거의 모든 아이들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연필을 손에 쥐기 시작했을 때 종이에 나타나는 것은 그림이다. 주로 얼굴, 가족. 그리고 취학 전후로 일기를 쓰게 될 때 그 짤막한 일기는 아이들이 겪은 경험과 감상이 담긴 시가 된다. 얼마 전 딸이 짧은 동화를 썼다. 정말이지 아이들은 타고난 시인, 소설가, 화가이다.

 

하지만 시는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맥박이 뛰고 따듯한 피가 흐르는 언어로 된 생명체.

언어로 된 생명체! 팔딱팔딱 뛰는 활어 같은 글!

 

65 우리는 그냥 그 시에 최대한 몰입해야만 한다. 그 시를 쓰며 시인이 보았던 이미지를 다시 불러와야만 한다. 그러니 학교에서 가르치듯이, 정작 시의 온기에서는 발을 떼고 시에 대하여말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시에 머물 수 있도록 가까이 다가가라.

시인이 보았던 마음 속 이미지를 보고 시의 숨소리를 들어라.

 

77 하지만 어쩌면 그 목적지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장소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주역이 될 줄이야, 거기에 더해 시라니. 미쳐.

 

83 당신은 상상력의 힘을 빌어 이것을 얼마든지 변경시킬 수 있다. 변경된 상황에다 당신이 실제로 알고 있거나 보았던 것을 세밀하게 묘사해서 이식을 한다면, 그 글에 뛰어난 생동감이 생기며 개연성과 진실성이 배어나게 된다.

글은 다큐멘터리일 필요는 없으므로 상상력의 힘으로 만들어진 변경된상황은 거짓이라 할 수 없다. 생동감, 개연성, 진실성을 불어 넣는 상상력이라는 미원!

 

86 세부 묘사는 우리가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과 모든 순간들에 이름을 붙여 주고, 그 이름을 불러 주고, 기억하는 일이다.

 

그리고 카페의 오렌지 색 테이블에는 흑인의 아기를 낳아 키우는 금발의 친구와 마주 앉아 있는 나, 표준보다 과체중인 유태인 작가가 있다. 작가의 임무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의 삶을 이루는 실체들에 대해 경건하게 !”라고 긍정하는 것이다.

세부묘사에 대한 장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줬을 거 같다. 세부묘사는 기교라고만 생각하고 나는 생략을 많이 했던 거 같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의미에서 세부묘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말하는구나.

 

88 이것은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당신은 그저 당신 속에서 흐르고 있는 생각들을 글로 적어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박경리 샘은 박 아무개가 토지를 썼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갈수록 이해가 된다.  

 

89 아무런 재료도 준비하지 않은 채 열만 믿고 케이크를 구우려는 이들이다.

지금의 나를 이야기 하네. 주역이 재료라면 나는 관심과 열정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아는 게 없으니(재료가 없으니) 케이크가 나올 리 없고 쓸데없이 손만 데일 뿐이다. 배우면서 쓰고 쓰면서 배우는 거라고 위안, 변명할 뿐이다.

 

92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들은 시간을 팔아 돈을 벌지 않는다. 이들에게 시간은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땅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 찾아와 그 땅을 팔라고 하면, 제 정신이 있는 작가라면 결코 그 땅을 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땅을 팔면 자동차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렇게 되면 조용히 안식을 하고 꿈을 꾸는데 필요한 장소는 사라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월든 북리뷰에서도 썼듯이 싼 걸 사려고 마트 앞에 줄 서는 것도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버는 것과 아끼는 것에는 시간이 들어간다.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95 작가는 앞에 가파른 언덕이 있든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가 있든 언제나 스스로를 조율하며 몇 킬로미터의 원고라도 써낼 수 있어야 한다.

올리비에는 하루에 얼마 걷는 것을 목표로 했듯이 작가는 원고지에서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

 

작가가 영감을 받고 글을 써 내려가던 순간의 호흡이 생생히 느껴질 것이다.

좋은 글을 보면 ! 저자는 이 때 그 분이 왔구나싶은 지점이 있다. 그 순간의 호흡은 가빴을까, 숨을 멈춰 고요했을까.

 

96 영감을 받았을 당시의 숨결을 그대로 호흡할 수 있게 된다.

시를 읽는다는 것 = 영감을 받았을 당시의 시인의 숨결을 호흡한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고 호흡하듯 시를 읽으면 남다르겠다.

 

대신에 세익스피어와 테니슨, 키이츠, 네루다, 홉킨스, 밀레이, 휘트먼이들의 글을 소리내어 읽고 또 읽어 당신 몸을 그들의 운율에 맞춰 춤추게 만들어야 한다.

 

97 “바깥은 어둠 속인데, , 내 사랑…”

, 내 사랑이라는 부분에서 어릴 적 내가 불렀다는 이은하의 노래가 연상되었다. ‘당신은 아직도 내 사랑~~’하며 불렀다는데. 그리고 멀리 기적이 우네~를 기저귀로 알아 들었지.

 

멀리 기저귀 우네~

이은하의 노래를 부르는 7살의 나

바람에 날리는 하얀 기저귀

동생이 갖고 놀던 속 빈 노란 고무줄

 

99 만약 당신이 사물의 이치를 잡아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글을 쓰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셈이다. / 왜냐하면 작가는 사물의 진실을 읽는 이의 마음에 각인시키는 임무를 띠고 있고, 따라서 마음에다 사물에 대한 기록을 해나가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하기때문이다.

저자가 <종달새에게>라는 시를 낭송해 보라고 해서 검색을 해봤다. 시가 제법 긴데 단지 종달새만으로 그렇게 길게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종달새를 봤다면 그저 사진 한 장 찍고 말았을 것을.

 

100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은 시를 읽고, 시를 들어야 한다. 논리적으로 시를 분석함으로써 시로부터 멀어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그저 시가 당신의 몸 속으로 스며들게 하라.

그래서 박경리 샘과 조선조 여인들의 시집을 샀다. 다음 주 화요일에 온다고 하네.

 

103 문학의 책임은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하고,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것이다.

 

110 대부분이 삼 년 이상 습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111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시인들이 장편에 도전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 처녀작 <보통 사람들>로 열광적인 반향을 일으킨 신예 소설가 쥬디스 게스트가 한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쥬디스 게스트는 추천사 써준 사람이쟎아. 이 글을 쓸 때 이미 그녀와 지인 관계였을까 아니었을까. 나는 조안리의 추천사를 받으려고 비서와 컨택했었다. 인연이 안되었고 나를 아는 김호 대표님이 써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니 감사하네.

 

112 미국인들에게 시가 여가를 보내는 좋은 친구였던 적은,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현대인도 그렇지. 하지만 나는 올해의 여가를 함께 보내는 친구로 시를 택할 것이다. 일단 두께가 얇아서 휴대하기도 좋쟎아. 시집의 휴대성이 어쩌면 나랑 맞을 지도. 시와 유목민이것도 좋은 글감.

 

하지만 강박증이 유령처럼 달라붙듯, 우리의 꿈도 계속 앞에서 어른거리는 성질이 있는가 보다. 나는 결국 꿈에 이끌렸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이 지닌 꿈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향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꿈에 의해 언젠가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 꿈은 우리가 삶 속으로 관통해 들어가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래서 꿈을 꾸고 중얼거리고 알리는 것이 의미 있다. 13개월 일하기(시간), 세계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기동성 있는 생계수단 갖기(공간), 인문학적 투자자 되기(내용).

 

117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고, 상황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정의 모습을 그냥 보여 주라는 말이다.

 

135 글을 쓰려는 사람들은 늘 자신이 누군가를 모방하려 들기 때문에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살려 내지 못한다는 걱정을 한다. 하지만 쓸데 없는 걱정이다.

 

136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과 수시로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이다. 그들은 한 작가에게 다가가, 그가 쓴 모든 작품들을 통해 그가 어떻게 움직이고 휴식을 취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전작주의. 나에게는 박경리 샘이었다.  

 

자신에게 빠져 나와 다른 누군가의 피부 속으로 옮겨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사랑하게 되는 능력이 당신 안에 있는 능력을 흔들어 깨운다는 것이다. 남의 글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당신을 더 크게 해줄 뿐 절대 남의 것을 탐내기만 하는 도둑고양이로 만들지 않는다.

괴테의 여인들처럼. 뮤즈로서의 다른 작가들.

 

137 글쓰기는 다른 작가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절대 질투심이 자리 잡아서는 안된다. 만약 누군가가 대단한 작품을 썼다면,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당신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138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있는지, 함께 도움을 주고 받을 만한 사람이 있는지 아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동탄에는 홍승완 선배가 있고, 아직 책을 내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습작 중인 소설가가 있고, 수원에는 여러 권의 책을 낸 김소라 작가가 있다. 모두 우리 환자분들이다.

 

139 “나는 창문에 낀 서리이며, 젊은 늑대의 울부짖음이며, 가느다란 풀입입니다.” 이것이 훨씬 더 진실하게 들리지 않는가.

 

나는 그대 곁에 잠시 머무르는 바람이며,

언젠가는 다시 펼칠 날개로 아이들을 품어 주고 있는 어미새이며,

당신이 보고 있는 책의 페이지를 푸르스름하게 물들이게 될 혼불입니다.

 

140 당신이 느끼는 바로 그것이 되어 그 감정을 태워버려라. 걱정하지 말라. 당신은 초조함에서 벗어나 환희에 도달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떤 감정을 잡았다거나, 그 감정과 완전히 하나가 된 바로 그 순간을 냄새 맡거나 보게 되면, 당신은 이미 위대한 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방금 감 잡고 감정 잡았다. 위에 저렇게 쓰고 나니 딱 지금의 감정과 하나가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잠시 머무르는 바람이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는 언젠가는 다시 펼칠 날개로 아이들을 품어주고 있는 어미새이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혼이 실린 책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

 

141 당신이 거리에 나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그런 고양이의 태도다.

고양이와 호랑이를 괘상으로 표현하자면 연못, 도사림을 상징하는 택괘

 

142 작가로서 우리가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로서 우리가 시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90년대 신세대, x세대, 줌마렐라 이후 무수한 신조어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 신조어에서 시대를 파악해야 한다. 요새는 노멀 크러쉬가 뜨고 있고 그와 관련된 책들이 나오고 있더라. 그런데 그런 트렌드에서 기획처럼 만들어지는 책은 유행처럼 끝날 뿐이고, 시대 속에 들어가지만 그 와중에 시간을 두고도 빛나는 고전이 있다. 그 차이는 뭘까. 안나 카레리나의 19세기 후반 러시아 귀족사회가 지금의 나에게도 의미를 주는 까닭은.

 

어떤 글을 쓰겠다고 계획했을 때 동물처럼 행동해보자. 동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동물처럼 당신이 쓰려는 이야기의 먹잇감들을 하나씩 비축해 두자.

 

143 무엇이 되었든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라. 논리적인 마음은 꺼버려라. 마음을 비워 놓고 생각이 들어가지 않게 하라.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껴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 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 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의 지층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 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투시키라.

명상으로서의 글쓰기

 

144 제일 좋은 글은 당신의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이 실린 글이다. 작품을 쓰다가 세상으로 나갈 때는 당신의 모든 것을 데리고 나가라.

 

145 또 다른 특징으로 지적된 것은 어쩌면, 아마도, 아무튼과 같은 부정형의 수식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나는 나름, 얼추, 대략, , ~ 인 것 같다 등을 자주 쓰더라.

 

146 세상이란 언제나 흑백으로 갈라지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진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 인 거 같다는 말을 덜 쓰려고 한다.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마음을 믿고 자신의 사고 속에 똑바로 서 있는 훈련을 해야 한다.

 

147 종이 위에 안개를 옮겨 놓지 말라. 설사 확실하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라.

독자의 안경에 서린 김을 닦아주지는 못할망정.

 

150 그리고 카페에서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집에서 작업을 했을 때보다 더 빨리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모래시계>

커피가 점점 줄어든다.

커피잔 바닥 갈색 동그라미.

이젠 카페에서 나가야 할 시간.

 

151 모차르트가 작곡을 할 때 아내에게 이야기 책을 읽게 한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정도 나름

 

파리에 갔을 때 발길 닿는 곳마다 카페가 많다는 사실에 나는 무척 놀랐다.

고흐가 생각난다. <밤의 카페 테라스>. 파리가 그렇구나. 나도 언젠가 파리의 골목 카페에 가서 시를 읽어야지. 5촌 고모는 에펠탑 근처에서 서점을 하고 있는데...


 밤의 카페 테라스.jpg


헤밍웨이는 <움직이는 축제>에서, 자신이 앉은 테이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제임스 조이스가 있었다며 카페에서 글을 쓰는 광경이 파리에서는 얼마나 일반적인가에 대해 적고 있다.

우와 이 장면 멋지다. 남편이랑 해봐도 좋겠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광경, 당장 내가 아는 사람들과도 연출할 수 있는 장면이쟎아. 여행 가면 아이들과도 해봐야겠다. 아주 짦은 시간이라도 글을 써보는 거야.

 

152 파리에서는 길 하나마다 카페가 적어도 다섯 개씩은 있었고, 이 카페들은 모두 손님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글 쓰는 행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상에, 너무 아름답다!

 

미국이라는 내용물에는 글쓰기가 자연스러운 구성요소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러한 전반적인 분위기를 장점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당신은 혼자가 될 수 있다.

도시의 미덕 = 익명성

 

155 선승들은 작가의 방은 곧 그 작가의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내 마음이 그리도 엉망인가?

 

그것은 우리 마음이 공허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사유와 드라마를 만들어 내려는 사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나는 가수다를 한 때 잘 봤었는데 어느 순간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라이막스를 쥐어짜는 느낌이 든 것이다. 시청률을 의식하게 되면 클라이막스를 만들게 되는 거 같다. TV 프로그램이 선정적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저자 말대로 공허와 담담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끊임없는 사유와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인생에 있어서도 뭔가 자꾸 채우려는 모습도 마찬가지 아닐까.

 

156 대신 사람들을 방문하고, 거기가 어디든지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글을 쓴다.

메리 델 르 수에르. 기억해야겠다. 멋지네. 예전에 맥켄에서 일할 때 나는 홈리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전 세계 호텔이 그의 집이었다. 가족도 없어서 그렇게 호텔을 전전하며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팔더라. 그 땐 그게 좋아 보였다. 뭐 지금도 좋아 보인다. (나탈리 빙의) 그럼 리아 너도 써라. 그냥 쓰기만 해라. 너가 있는 그 자리에서 써라. 전 세계를 작업공간으로 삼아라.

 

그녀에게는 모든 장소가 글을 쓰는 작업실인 셈이다.

이 말이 나에게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글 쓰는 유목민

글쓰는유목민.jpg   

157 하지만 이런 거창한 주제는 자칫하면 사변적이고 추상적으로 변질되거나 진부한 장문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처음에 하고자 했던 말과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 하지만 이런 초조함으로 작품을 시작하게 되면 자신이 진짜 하려는 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길을 잃거나, 과연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지 회의를 품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긴장을 풀어야 한다.

지금 내가 주역 관련 책을 쓴다고 하면서 겪고 있는 감정이다. 주역은 어렵다는데 감히 선무당이 서당개처럼 짖어 대겠다는 거냐는 비아냥이 내면에서 들린다. 하지만 이유 없이 내 마음이 여기로 끌렸고 주역을 알고 싶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갈등 상황에 적용해보고 싶고 그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 또한 있다. 주역의 현대적, 일상적 재해석이 필요하다.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읽고 쉽게 해석,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논어의 자구해석에만 매달리듯 주역을 대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 긴장을 풀자.

 

158 언제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시작이 자신을 이끌어가도록 해야 한다.

결국 나의 케이스에서 시작하라는 것이다. 첫 번째 책은 나의 경험을 쓰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쉽게 썼지만 두 번째 책은 지식을 기반으로 하려니 힘들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결혼 후의 나의 경험은 드라마틱 하지 않아서 딱히 쓸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일상의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경험에서 시작하자. 그것과 주역을 꿰자. 나에게서 시작하기는커녕 나에게서 멀어져 유명인과 주역을 꿰려고 하니 그토록 글이 안개 속을 헤맨 것이다.

 

글쓰기는 발견의 기록이다. 당신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당신과 그 화제와의 관계를 발견하기를 원한다.

나와 주역과의 관계.

 

161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 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162 평범한 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배우라. 오래된 커피잔, 참새, 도시버스, 얇은 햄 샌드위치에 존경을 표해 보라.

 

이렇게 해서 남아요?

이렇게 해도 남아요.

인심 좋았던 고구려 짬뽕 사장님

 

간만에 찾아가니 얇게 썰린 단무지

단무지를 아낄 분이 아닌데

사장님이 바뀌었다

 

간판은 그대로 고구려 짬뽕

단무지가 얇아진 고구려 짬뽕

 

165 최근 뉴 오를렌스에 갔다가 우연히 그 근처의 공동묘지에 들르게 된 적이 있다. 태양은 아주 뜨거웠다. 나는 노트를 꺼냈고, 시멘트 묘비 그늘에 기대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완벽해.” 내가 말한 완벽함이란 물론 물리적 시설이 완벽하다는 뜻이 아니다.

, 스스로 이렇게 도취될 수 있는 순간이란. <블랙스완>의 엔딩은 여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의 완벽해…’라는 대사와 함께 끝난다. 물론 스스로 그 말을 내뱉기까지 표현 못할 치열함과 광기가 있었다.  

 

171 이런 두려움의 회오리 바람에서부터 진정한 천재의 목소리가 탄생되는 것이다.

 

172 그 사물이 여기 있다는 사실, 우리 인생을 싸고 있는 일부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인생을 사랑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지금 이 순간의 인생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175 대신 자신의 글쓰기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라.

 

훈련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잃지 말고 저 너머에 있는 광활한 인생을 바라보라.

 

176 유태교 전통에는 소년이 처음으로 토라(유대교의 율법서)의 맨 첫 자를 읽으면 꿀이나 단 음식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다. 공부를 하면 단 음식을 먹게 될 거라는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만드는 학습 유도 방법이다. 글쓰기도 당연히 이래야 한다.

아로

 

177 “모든 작가와 독자들은 글을 잘 쓰는 것이 그들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178 어떤 상황에서건 당신은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만이 당신을 건강하게 또 살아 있게 지탱해준다.

뇌풍항괘.

 

182 글쓰기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삶에 스며들고 있는지 볼 수 있는 눈을 키워 주기 때문이다.

<시적상상력으로 주역을 읽다>의 소제목

 

183 분노를 붉은 튤립으로 변형시키고, 슬픔을 회색빛 낙엽으로 가득 찬 오래된 골목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185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서 있는 이 시공간을 이해하기 위해로 바꿔보면 어떨까. 앞에서도 세계 속으로라고 표현했길래 시대 속으로라고 바꿔 읽어봤다.

 

그 상처가 나를 강하게 만들고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우리의 글 속에는, 그것이 쓰여지던 순간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 순간의 환경이 모두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187 한 시간 동안 육필로 쓴 글은 언제나 많은 분량이었다.

 

188 케이트와 나에게는 글쓰기, 서로 나누는 것 그리고 우정이 모두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하루 그것도 일주일이 시작되는 월요일을 통째로 글쓰기를 하는 시간으로 할애했다.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 앞길이 막막하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갈까 생계가 걱정스러운 바로 그런 시절 케이트와 내가 월요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189 “나탈리, 너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있는 거야. 저 계단, 너의 집 현관, 자동차, 옥수수밭 그리고 구름하고도 관계를 맺어야 해.”

무경계

 

모든 것이 우리를 통해서 글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관통하는 글쓰기만이, 흐르는 피가 땅에 스며들 듯 다른 곳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힘이 생긴다.

 

나는 글쓰기에 들어가기 전에 10분간 나는 ……의 친구다. 내 친구는 ……식으로 간단한 마음 풀기를 한다.

워밍업, 명상, 글쓰기

 

192 그는 아내와 실랑이 끝에 술이 떡이 되도록 만취했으면서도 자신의 주인공인 산티에고 노인이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항해를 계속하도록 했다.

 

우리는 작품 속과 작품 바깥이라는 두 가지 세계를 하나로 묶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하루 자체가 좋은 시였다.

 

이 말은 종이에는 멋진 시를 적으면서 자기의 삶에는 침을 뱉지는 말라는 뜻이다. 책상에서 시를 치우고 부엌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194 처음에는 겁이 나서 시 하나를 써주고 50센트씩 받았는데, 그 다음 해에는 1달러로 인상했다.

무슨 자판기도 아니고 금액과는 상관 없이 주문하면 어쨌든 시가 쓰여진다는 게 신기하다.

 

197 그리고 만약 내가 돈이 부족하다면, 정말 부족하다면, 자신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영광을 달라고 적었다. 그는 지갑 속에 항상 내가 준 시를 간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갑 속에 돈이 아닌 시를 지니고 다니는 마음, 시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시인에게 후원을 하게 되는 순환이 아름답다.

 

198 즉흥 글쓰기 창구는 글을 떠나 보내는 데 더없이 좋은 훈련이다. 자신이 쓴 글을 완전히 떠나 보내는 것. 그럴 수 있을 때 당신은 작가로서 완전하게 설 수 있다.

자신이 쓴 글의 방생. 어휴, 근데 이것도 뭐 어느 정도 경지가 되어야.

 

199 그 형식만이 가지고 있는 호흡을 눈여겨 보라. 맨 첫 문장이 무엇이었나? 어떻게 끝을 맺었는가? 같은 형식의 글을 많이 읽으면 그 형식이 당신의 의식에 저절로 각인이 된다. 그래서 직접 글을 쓰려고 할 때 그 구조에 맞는 글을 쓰게 된다.

의식과 무의식. 오늘 아침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횡단보도의 하얀 페인트 줄이 마치 음효로만 이루어진 주역의 곤괘같다는 생각을 했다. 곤괘는 땅을 상징하는데 횡단보도에 잘 깔려 있네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내 마음 속 생각과 현실의 이미지가 그렇게 연결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요새 내가 주역의 괘상을 마음 속에 많이 그리고 있다 


 곤괘.jpg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비약시키는 방식은 버리고

, 시는 이미지로 비약되는구나.  

 

<텅 빈 유리잔>

비워진 커피만큼

나는 글을 쏟아냈을까.

 

제목은 그 시에서 사용한 단어를 반복하기보다는 그 시에 또 다른 느낌을 더해주는 것으로 정해야 한다.

 

201 많은 하이쿠 작품을 읽다 보면 그 안에는 반드시 독자들의 마음을 도약시키는 순간이 들어 있음을 보게 된다. 독자들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초월적인 세계를 일깨우는 순간이다. 바로 이런 순간 우리는 신을 경험하며 저절로 !’하는 감탄사를 터뜨리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하이쿠가 가지는 미덕이다.

 

녹순이2.jpg


녹을 것이 걱정되어 녹순이.  

냉동실에 녹순이를 넣었다.

동심이 냉동보관 되었다.

 

202 그 짧은 행간에 신과 접촉하는 경험을 담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문학의 형식도 배워야 하지만 우리는 또한 인생이라는 형식을 채워 나가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생의 형식에도 훈련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206 이미 잘 쓰는 글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새로운 개척지를 개간하고 미지의 세계 속으로 나아가는 것을 주저한다.

나는 잘 쓰는 글이 무엇인지 모르나봐. 글쓰기의 새로운 개척지를 개간하고 싶은데. 시와 소설을 쓰고 싶다

 

207 내 말은, 우리 삶에는 반드시 미쳐 버려야 할 시기, 사물을 바라보는 일상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LSD에 취하지 말라. 그저 아무도 모르게 사흘 동안 숲속에 들어가 지내 보라. 당신이 말을 겁내는 사람이라면, 말 한 마리를 사서 말과 친구가 되어라. 자신을 규정하는 경계를 확장시켜라. 잠시 동안이라도 그 경계선 끄트머리에서 살아 보라.

말 한 마리 사래. 빵 터졌다. 상상 속에서라도 해보라는 건가. 경비행기 사고 야간비행 할게요.

 

숙명에 대한 깊은 고찰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더욱 생동하게 만들고, 현실에 충실하게 만들며,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만들어 준다.

일상에도 자주 등장하는 팔자.

 

데이비드는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통념적인 사고 너머로 비상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언젠가는 땅에 착지하리라는 것을, 그래서 미네소타라는 단단한 땅을 밟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자신이 발견한 특별한 시야를 명료하게 펼쳐 보여 주리라는 것을 믿고 있다. 그는 익숙한 땅을 박차고 날아오름으로써 자신에게 더 많은 공간을 허락해 준 것이다. 정확한 문장에만 집착했다면 뻔한 정교함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아이디어의 발상만이 아니라 좀 더 많은 공간을 허락하여 비상을 하고, 영웅적 비상에서 깨달은 것을 품고 착지(귀환)하여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보여라.

 

208 스스로에게 방황할 수 있는 큰 공간을 허용하라.

 

210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갈증을 느껴,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려라.

사마천과 박경리가 생각나서 박경리 샘의 시, <사마천>을 옮긴다.

 

그대는 사랑의 기억도 없을 것이다.

긴 낮 긴 밤을

멀미같이 시간을 앓았을 것이다.

천형 때문에 홀로 앉아

글을 썼던 사람

육체를 거세 당하고

인생을 거세 당하고

엉덩이 하나 놓을 자리 의지하며

그대는 진실을 기록하려 했는가

 

214 글쓰기 훈련에 자신을 충실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몰입하는 사람만이 자기 인생에도 몰입할 수 있다.

 

215 글쓰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에게는 진실을 말할 신성한 임무가 있으며, 그 임무는 종이에서부터 걸어 나와 우리의 인생 전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드시! 그렇지 못하다면 작가로서의 우리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우리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도 넓어진다. 이런 이유로, 인생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쓰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큰 도전이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라.

 

217 모든 일을 다 해 보고 나서 자신에게 예정되어진 운명이 글쓰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이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게 된다.

신내림과 같은 운명.  

 

218 중요한 것은 수많은 전술의 변화와 상관없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글쓰기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219 작가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나머지 인생 동안 가야 할 길이다. 나는 이 사실을 다시 또 다시 기억할 것이다.

글 쓰는 유목민

 

225 비슷한 처지의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에게 당신의 인생을 알려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끌고 나가게 된다.

 

고독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 고독을, 당신의 더 깊은 곳을 탐사하는 내시경으로 이용하라.

표현 좋다. 내면 탐사하는 내시경.

 

226 하나의 작은 자극이 때로는 위축된 창조력을 되살려 줄 때도 있다.

 

227 나에게 이 담배는, 그러니까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하는 일종의 버튼이다.

나는 믹스커피이긴 한데. 커피를 줄여야 해. 그러니 앞으로는 커피잔만 앞에 놓아야겠다. 글쓰는 아바타를 접촉하는 버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만 된다면 얼마든지 파격적인 변신을 해도 좋다.

나는 요새 주역의 괘상으로 만물을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248 내면에 있는 풍요로움을 외부에 있는 작품으로 연결시키는 것.

 

257 그런데 당신은 이제 자신의 소박한 인생에 매료되어 자리를 떠날 줄 모르게 된다. 평범한 존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이 가진 위대한 힘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당신 마음의 움직임과 변화를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259 당신의 무의식과 의식이 만나 서로를 깨닫고 하나가 되는 시점이다. 이것이 작품이다.

무의식과 의식의 결혼식. 자녀로서의 작품.

 

266 일요일 밤 11, 원고 타이핑을 끝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탈리, 책을 완성한 것 같아.”

2018 817일 금요일 밤 11시 치알리아. 딸의 생일이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피아노 치고 실컷 놀았다. 지친 아이들을 재우고 책상 앞에 앉아 아껴 두었던 마지막 한 줄의 타이핑을 끝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리아야, 아이가 태어난 거 같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몹시 화가 났다. 갑자기 내가 이용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267 “난 방금 책을 끝냈어요.” 이젠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갈 거예요.”

 

그러고 난 다음날 아침 나는 울고 있었고, 오후에는 최고로 신이 났다.

마지막 장을 끝낸 그날 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가족들 몰래 울었다.’à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 서문이다. 도대체 글을 어떻게 써 나가면 책을 완성하고 이리들 울까. 글쓰기의 과정 속에서 여러 감정을 대면하기 때문일까. 떠오른 김에 <시장과 전장>의 서문 일부를 옮겨 본다.

 

‘…왜 사람에게 슬픈 이야기가 필요한가, 왜 작가는 피흘려가며 슬픈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 왜 전쟁의 비극은 시처럼 아름다운가. 언어와 글이 생김으로써 사랑과 외로움과 예술이 생겨나고 모든 것이 생겨나고참으로 언어와 글자는 진실이 아니다. 예술가는 언어의 진실을 캐려다 지쳐서 가는 사람. 가까워지려는, 창조하시는 신에게 가까워지려는 염원만 남기고 가버리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과연 괜찮은 것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싸우는 게 제일 힘들었죠.

 

270 (옮기고 나서) 글을 쓴다는 것이, 자유와 진실을 추구하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진정한 연민을 키워가는 끊임없는 훈련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독자의 눈으로목차의 좋은 점, 아쉬운 점, 잘못된 점 분석

목차에 장(Chapter)이 없다. 시집이 보통 이런 식이었던 거 같은데, 저자는 시인이라 목차 구성도 시집처럼 했나? 챕터가 있으면 순서대로 읽어야 할 거 같은 부담이 있는데 글 모음집처럼 되어 있고 시처럼 소제목의 각 글이 독립성을 띄고 있어 되는대로 읽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그러다 보니 좀 중복되는 내용들이 있다.

 

2 보완이 필요한 점(독자의 눈으로이런 내용은 아쉬웠다. 이런 부분은 이해가 안됐다)

1) 저자가 권하는 시 목록이 한 페이지 정도 있으면 좋겠다. 최소한 이 책에 언급된 시인과 그들의 대표적인 시 목록이라도. 쉘리의 <종달새에게> 등 중간 중간 시인과 시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도 하지만 일반인으로서는 좋은 시를 고르기는 커녕 접하기도 쉽지 않다.


2) 워크북 형식으로 글쓰기 훈련 예시가 실리면 좋겠다. 본문에 '나는 기억이 난다'로 시작하는 글을 써보라, 시집 한 권 중 아무 페이지나 열어 그 시의 첫 줄에서부터 이어 써라 등 여러 훈련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이것만 따로 정리되어도 실생활에서 연습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3 이 책의 장점(독자의 눈으로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나와 글쓰기의 관계를 살펴보게 한 점이 좋았다. 시를 읽는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환기해준 점 역시 좋았다. 시를 읽으며 음율을 느끼는 것이 영감이 왔을 때의 시인의 호흡이자 시의 숨소리라는 것. 그렇게 시를 읽는 것은 신을 만난다는 것.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을 이렇게 해결하겠다)

1) 소제목의 글이 다른 글과 연결되기보다는 그 자체로 독립성을 꾀하다 보면 글들이 모였을 때 중복되는 위험이 있다. 강조가 잔소리가 되는 것이다. 나라면 조금 더 덜어낼 것이다. 2) 본문에서 제안한 글쓰기 훈련 예시를 따로 실어 활용도를 높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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