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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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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2일 14시 03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캠벨의 첫책이 궁금했다.

Wikipedia에 따르면 그의 이름으로 출판된 최초의 저작은 <Where the Two Came to Their Father: A Navaho War Ceremonial>(1943년, 39세). 이는 Navajo(서남아메리아 원주민 부족 이름)의 젊은 두 영웅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공연에 관한 책으로, 캠벨은 원주민 이야기에 대한 해설을 담당했다. 캠벨은 이 이야기를 후에 신화의 보편적 우주적 상징구조와 인디언 이야기의 세부사항을 실증해가는 토대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대한 신화학자의 첫책이라고 하기에 적지 않은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분명해진 것이 있다. 역시 캠벨은 한순간도 자신의 실을 놓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구나.

캠벨은 이듬해(1944년, 40세) 소설가 핸리 모턴 로빈슨과 함께 <피네간의 경야를 푸는 열쇠>(A Skeleton Key to Finnegans Wake)라는 비평서를 저술한다. 캠벨은 이 작업을 통해 자신의 대표적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1949년, 45세)의 기본 개념인 ‘영웅의 여정’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버팔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1910년, 6세) ‘인디언’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한 호기심 만만한 소년을 세상이 제대로 알아보는데는 4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던 거다. 4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의 양도 양이지만 그 밀도는 또 어떠했는가? 우드스톡에서의 치열했던 5년을 잊었는가?

공부다운 공부라곤 이제 딱 1년 해놓고 벌써부터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물들어가는 어리석은 너에게 말하고 싶다. 그냥 네게 고여 있는 것만큼을 정성껏 퍼낼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한 것 아니겠니? 첫 책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는 걸 잊지 마라. 멀고 먼 그 길을 지치지 않고 갈 수 있기 위해 잠시 쉬며 마시는 시원한 물 한잔 같은 거다. 그 물 한잔의 힘으로 또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니? 충분히 평가받지 못할까를 두려워할 에너지가 있다면 충분히 퍼올리고 있는가를 살펴보아라. 감추려고도 말고 보태려고도 말고 딱 지금 너의 모습 그대로를 그려낼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인 것이다.

첫책은 바로 너를 위한 지도다. 너는 너이기에 늘 같은 패턴을 그리게 되어있다. 네가 너를 믿을 수 없다면 그 지도는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다음에 또 비슷한 길을 걷게 될 미래의 네가 의심없이 참고할 수 있는 정직한 지도 만들기. 그것이야말로 지금 네 존재를 가득 채워 마땅한 유일한 미션임을 늘 기억했으면 한다. 미옥아. 늘 너를 지켜보고 있는 나를 믿어도 좋다. 너를 아프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사랑한다. 영원히.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머리말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 진리의 상징적 분식을 피하고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맞추어 사건의 진상을 알게 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5 _ 명심할 것!!

프롤로그 _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이런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도전적이리만치 끈질긴 암시를 던진다 13

신화는, 다함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 14

심원한 창조적 중심을 촉발하고 고무하는 특징적인 효과가 아이들 놀이방에서 굴러다니는 하찮은 동화책에도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14

최신형 오이디포스의 화신, 미녀와 야수의 속편이 오늘 오후에도 뉴욕의 42번가와 50번가 모퉁이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15

인간이 가진 심성 중에 가장 끈질기게 남는 성향은, 동물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16

유아가 최초로 적의를 갖는 대상은 최초로 애정을 투사하는 대상과 일치하고, 유아가 최초로 갖는 이상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라는 이원일체 상황이다 17

인간이라는 왕국에서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비교적 깔끔하고 비좁은 처소의 바닥 밑으로는 뜻밖에도 알라딘의 동굴이 뚫려 있다. 여기에는 보물뿐만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꼬마 정령, 그리고 우리로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거나 감히 우리 일상의 삶으로 통합하지 못했던, 불편한 혹은 억압당한 심리적인 힘이 도사리고 있다 19

자기의 발견이란, 소망스럽고도 무서운 모험의 영역을 여는 열쇠를 가져다준다는 의미에서 보면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었고,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고, 우리가 내적으로 지니고 있는 세계의 파멸...그러나 파멸이 끝난 다음에는 보다 대담하고, 깨끗하고, 보다 푸짐한 인간적인 삶으로의 눈부신 재건, 이것이 바로 우리 속에 내재하는 신화적 영역에서 오는 이 심란한 밤손님의 유혹이며, 약속이며, 공포인 것이다 21

전문가가 시험과 秘典을 관장하는 원시림 성소의 呪醫, 즉 고대 비법 전수자나 영혼의 안내자로서의 역할과 성격을 떠맡게 된다 21

의사의 역할은, 신화나 동화에서 주문으로 무서운 모험의 시련과 위기에 몰린 영웅을 도와주는 노현자의 역할과 같다. 의사는 갑자기 나타나, 무서운 용을 죽일 수 있는 빛나는 마법의 칼이 어디 있는지 일러주고, 영웅을 기다리는 신부와 보물이 쌓여 있는 성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주며, 영웅의 치명적인 상처에다 고약을 발라주고, 마침내 원수를 물리치고는 어느 황홀한 밤에 모험을 떠난 길을 되짚어 정상적인 생활이 기다리는 세계로 돌아오게 한다 21 ★_ 그래서 돌아오려면 표지를 남기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우리가 그렇게나 탐내는 아리아드네의 실도 그냥 왔던 길임을 알려주는 표시일 뿐이잖아요? 현자는 물론 그 모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람일테죠? ^^

제의의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의식적인 삶의 패턴은 물론, 무의식적 삶의 패턴까지 변화를 요구하는 “변형의 문턱”을 넘게 하려는 데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22 _ 어느쪽이든 편한쪽부터 시작하세요.

한 차례의 통과 제의가 있은 다음에는 다소 느슨한 휴지 기간이 뒤따르는데, 이 기간에는 인생을 살아갈 당사자를 새로운 시대의 형식과 적절한 감정 상태로 유도하는 절차가 있다 22 _ 휴식이 낭비가 아니라는 거 알겠지? 조바심 좀 내지마. 다 필요하니까 오는 거라는 거 얼마나 더 말해야 알아듣겠니?

신화와 제의의 주요 기능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하여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다 23

아내들은 결혼한 지 14년, 두 아이를 낳아 길러놓고도 여전히 사랑타령이나 하고 있다 24 _ 사랑의 원형을 진화시키지 못하는 가여운 사람들을 알고 있잖아.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결코 닮고 싶지 않은 모습이지? 여기서 주의할 점은...그 단계를 충분히 소화해야 다음단계로 통하는 문을 만날 수 있다는 거야. 그게 내가 오늘 내게 주어진 몫에 아낌없이 충실해야하는 이유지.

비의적 이미지는 우리 심성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만일 이 이미지들이 신화와 제의를 통해 외부로 들어오지 않으면, 꿈을 통해 내부에 나타나게 된다 24

우리는 자궁이라는 이름의 무덤에서 무덤이라는 자궁까지 완전한 순환의 주기를 산다 25

결국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일견의 상투적인 변신이야기일 뿐이다 25 ★

전통적인 통과 제의가 개인에게 과거를 향해서는 죽고 미래를 향해서는 거듭 날 것을 가르쳤듯이, 저 왕위 서임 의식은 그의 개인적인 성격을 벗기고 신명이라는 망토를 입혀주었다 27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_ 나는 이걸 무엇에 대한 일방적인 복종이라고 보지 않는다. 복종보다는 ‘화해’가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죽음의 끈질긴 재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내부에, 사회적인 무리의 내부에 끊임없는 <탄생의 재현>(우리가 이 땅에서 오래 잔존하게 되어 있다면)이 있어야 한다...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 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 뿐이다 29 _ 자기정화능력이 필요하나는 말이겠지?

창조 작업의 회복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보다 놓은 차원을 위한 위기가 따르는데, 토인비 교수는 이 위기를 묘사하는 데 <해탈>과 <변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30

유아기의 무의식...우리가 잠잘 때 들어가는 영역...우리는 이 영역을 평생토록 우리 내부에 간직한다. 우리 유아기의 도깨비들과 은밀한 협력자들, 어린 시절의 마법이 모두 여기에 있다. 뿐인가, 보다 중요한 것은 어른이 되어도 의식할 수없는 삶의 잠재력, 우리들 자신의 또 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이 황금의 씨앗은 마르는 법은 없다. 우리가 상실해버린 이 전체성의 일부라도 나날의 현실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우리의 능력은 놀라운 수준까지 신장될 것이며, 아울러 생기 넘치는 재생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도 가능하다...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세대, 나아가서는 우리의 문명 시대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얼마간이라도 건져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저 위대한 천품의 시혜자, 시대문화의 영웅(한 나라뿐만이 아닌 세계 역사상의 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0

영웅이 첫 단계에서 하는 일은, 하찮은 세상이라는 무대로부터 진정한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심성의 因果가 시작되는 곳으로 물러앉는 것이다. 그리고 영웅은 난관을 헤쳐나가되 자기 식으로 그 난관의 뿌리를 뽑고(즉 자기가 속한 문화권의 유아기 악마에게 싸움을 걸고) 한달음에 쳐들어가 C.G 융의 소위 <원형 심상>과의 동화작용을 시도한다 31 ☆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정신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각에서 보아 그렇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33

영웅은 과거 개인적, 지방의 역사적 제약과 싸워 이것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정상의 인간적인 형태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남자나 여자를 일컫는다 33

두 번째 엄숙한 과업과 행위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재생의 삶에 대해 그가 배운 바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33 ☆

귀가 안팎으로 열린 사람에게만 들리는 희미한 소명의 모험길로도 들어설 뜻을 세운 사람답게, 예사롭지 않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초라하고 질척한 거리>를 홀로 가야 했다 35 _ 사람이 이렇게 많아도 역시 외롭다. 번역되지 않은 나만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정말로 나밖에는 없단 말인가...

다리..이것은 여가수 자신의 특별한 재능이나 미덕을 상징하는 것인데, 여가수는 바로 이 두 가지에 힘입어 세상의 물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이다 36

오늘날의 우리 대부분은 가슴 안팎으로 이 미궁을 안고 있다는 이야기...다이달로스는 아리아드네에게 실을 한 타래준다. 영웅이 한 끝을 미궁의 입구에다 매어놓고 들어가면서 풀어야하는 실타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란 이 얼마나 하찮은 물건인가! 그러나 이나마 없으면 미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아무 희망도 없는 모험과 다름없는 것이 아닌가 37

장인..미궁의 공포를 연출한 장본인인 동시에 자유라는 이름의 목적을 달성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38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39 ★ _ 이 순간 나를 숨쉬게 하는 희망의 빛줄기.

2. 비극과 희극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40

현대 문학은...우리들 내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참담하게 부서진 형체를 직시할 용기와 눈길을 부여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41

행복을 다루는 동화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하늘의 신화가 삶의 발자국을 뒤로 남기고 밤의 문턱에 설 준비가 된 노인의 것이듯, 동화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나라의 것이며, 현실로부터 보호받고 있기는 하나 조만간에 거덜 날 운명에 놓여있다...해피엔딩은 모순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 비극의 超絶性으로 읽히어야 한다...과거에는 삶과 죽음이 투쟁하던 곳에서 이제는 영속적인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vs 비극이란 형체의 파편이며 형체에 대한 우리의 애착이다. 희극은, 정복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거칠고, 방만하고, 꺼질 줄 모르는 환희다. 따라서 이 양자는 양자를 서로 보듬고 서로를 엮는, 단일한 신화적 주제와 경험을 나누는 용어다. 희극과 비극은, 삶을 계시하는 전체성을 본질로 공유하며 죄악신의 의지에 대한 거역)과 죽음(필멸의 형태에의 동화)의 오염으로부터 정화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사랑해야 하는 하강과 상승인 것이다 43

신화와 동화 고유의 사명은, 비극에서 희극에 이르는 어두운 뒤안길에 깔린 특수한 위험과 그 길을 지나는 기술을 드러내는 일이다 43 ★_ 나는 딱 나같은 위험을 앞두고 있는 누군가를 위한 지도를 만들고 싶은 거다. 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내 글에서 위안과 용기를 얻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단 하나의 희망. 그 희망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고단한 작업을 이리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는 나를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중요한 것은 이 땅 위에서 이러저러한 일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 이러저러한 일이 있기 전에 보다 중요하고 보다 본질적인 것이, 우리가 알고 있고 더러 꿈속에서 찾아가기도 하는 미궁 안에서 일어났어야 했다는 것이다 43

신화적 영웅의 길, 부수적으로는 지상적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는 내적인 길이다 44

행복한 가정이 다 그렇듯이, 소생한 신화와 세계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44

3. 영웅과 신

분리, 입문, 회귀...영웅은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이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스러운 모험에서, 동료들이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45

고타마 싯타르타...여덟 단계에 걸치는 명상의 과정을 넘어섰다..6년 동안 고행하면서 처철한 금욕생활 → 온건한 탁발승의 수행 방법으로 돌아섰다 46

정각을 이루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굳게 결심하고 그 보리수 아래, 부동의 자리에 앉았다...욕망과 괴로움과 욕정을, 관능적인 시녀와 함께 풀었으나 존자의 마음은 흐트러지지 아니했다...이어서 이레동안 고타마는 至福에 든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고, 이레 동안 그는 일어선 다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신이 정각을 얻었던 자리를 내려다 보았으며, 이레 동안 그는 서 있던 자리와 앉아 있던 자리를 서성거렸고, 이레 동안 그는 신들이 만든 정자에 거하면서 인연과 해탈의 원리를 반추했으며, 이레 동안 수자타가 금 그릇에 우유죽을 가져왔던 그 나무 밑에 앉아서 열반의 법열에 대한 교의를 묵상했다..폭풍이 이레 동안이나 휘몰아쳤으나 뱀의 왕이 뿌리에서 나와 넓은 덮개로 부처를 가려주었다...이윽고 이레 동안 네 번째 나무 아래서 해탈의 기쁨을 만끽했다...당분간은 홀로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부처는 자신이 깨친 도리를 전파하기로 작정하고는, 자신들이 속인들과 함께 살던 도시로 돌아가 정도의 법이라는 귀한 은혜를 두루 전파했다 48

정각은 말로써는 전할 수 없고 오직 정각에의 방법만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가르침의 궁극적인 요체는 침묵 속에서만 전수된다 48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 50 ☆

진정한 창조 행위는 죽어가는 것으로부터 세상으로 무엇인가를 가져오는 행위로 표현되며, 영웅의 부재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가 거듭난 자, 위대한 자, 창조력을 얻어 돌아오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인류 역시 한 목소리가 된다...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는...수많은 영웅적인 인물을 따라가 보아야 할 듯하다 50

회귀..영웅 자신에게는 가장 어려운 필요조건...영웅이 입문의 모든 시련을 차례로 올라가는 대신, 프로메테우스처럼 단도직입적으로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그가 의도하던 세상을 위한 홍익을 손에 넣어버린다면 그가 지닌 힘의 불균형이 부작용을 일으켜, 프로메테우스가 자기의 불경스러운 무의식이라는 바위에 갇혔듯이, 내-외적인 시련을 당하게 된다. 또 한편, 영웅이 자신의 뜻으로 안전하게 사회로 귀환하면 그가 도우려던 사람으로부터 오해받고 무시당하게 되어 결국 그의 행적은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52

제2부, <우주 발생적 순환>..성공한 영웅에게 계시로 하사된 세상의 창조와 멸망의 엄청난 환상 53

모험적인 여행은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성취하기 위한 노력,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듯하다 54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54

나는 너고, 너는 나다. 네가 어디로 가건 나는 거기에 있다. 나는 없는 곳이 없으니, 원하면 언제든지 나를 찾으라. 나를 찾는 것은 곧 너를 찾음이다 55 _ 데미안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난다. ^^

4. 세계의 배꼽

영웅의 성공적인 모험의 의미는, 생명의 흐름을 풀어 다시 한번 세계의 몸 속으로 흘러들게 하는 데 있다 55

영웅은, 영원의 에너지가 시간성 안으로 흘러드는 배꼽, 즉 세계의 배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의 배꼽은 연속적인 창조의 상징, 모든 사물 안에서 약동하는 소생의 연속적인 기적이 일어나게 하는 세계 보존의 신비인 것이다 58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60

문화는 상징적인 암시와 함께 싱싱하게 살아난다 60

신에게는 모든 것이 공정하고, 선하고, 정당하지만 인간은 어떤 것은 그르다고 하고 어떤 것은 옳다고 한다 62

미덕 역시, 최고의 직관 앞에서는 케케묵은 훈장의 읊조림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62

신 에드슈의 모자 이야기 63

이야기란 무자비하면서도 공포를 느끼게 하지 않는다. 요컨대 제때에 나고 죽는, 자기 중심적이며 투쟁하는 자아를 응시하는 탁월한 정체 불명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65

제1부 영웅의 모험

1. 출발

1. 영웅에의 소명

세상 구경이라면 할 만큼 한 태양도 이 막내딸의 얼굴을 비출 때면 오히려 제 얼굴을 붉혔을 정도였다 69

부지중에 저지른 실수는 극히 드문 것이긴 하지만 뜻밖의 세계를 드러내고,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71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이 동화에서 황금 공이 사라진 사건은, 공주에게 닥칠 어떤 운명의 첫 번째 조짐이고, 개구리는 두 번째, 무심결에 한 약속은 세 번째 조짐이다 71

전령관의 등장은 <자아의 각성>이라고 불리는 단계를 암시하고 있다 72 ☆

소명은 언제나 변용의 신비, 완성되면 곧 죽음과 탄생에 이르는, 정신적 통과 의례 혹은 순간을 개막한다 72

징그러운 동물은 무의식 심층(하도 깊어서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을 상징한다. 여기엔 징그럽고, 사랑이나 인정을 받지 못한, 미지의 혹은 지진한 요소, 원리, 그리고 생존의 본질이 우글거리고 있다 73

모험에의 소명을 알리는 전령관, 혹은 고지자는 어둡고, 징그럽고, 무섭고, 세상의 버림을 받은 존재인 것이 보통이다 73 ☆

변형의 때가 무르익은 정신은 끊임없이 이런 전령관을 산출 76 _ 꿈과 편지들..

주인공은 이전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던 사물이 이제 무가치하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경험한다...그 뒤, 주인공은 잠깐이나마 일상의 생활로 되돌아오나, 생의 의미는 느끼지 못한다. 이때, 어떤 힘에 대한 일련의 조짐이 나타난다 77 _ 갈등, 레이스, 셤공부

부왕의 이런 조처는 오히려 그 시기를 빨리 익게 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이 젊은 왕자는 육체적 쾌락에 진력을 내고, 다른 경험에 목말라했기 때문이었다 78

모험에의 소명 : 영웅의 영적 중심이 그가 속한 사회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졌음

2. 소명의 거부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타성이나, 힘에 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 81

개인이 자기 자신의 신이기를 고집하면 신의 의지, 즉 자신의 자기 중심적 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인 신 자신은 괴물로 변하는 것이다 82

뒤따르던 사냥개 입은 하릴없이 허공을 물었다 84

당사자가 유아기적 자아, 그리고 유아기적 정서 관계 및 이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85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앞을 지날 때 길 옆에 서서 <더 빨리 걸어라, 너무 느리다>하고 소리친 죄로 저주를 받아 최후의 심판 날까지 이 땅에 머물러 살게 되는 방랑하는 유태인 이야기도 있다 86

소명의 거부에 따르는 부정적인 상태가 뜻밖의 해방의 원리에 대한 행운의 계시일 수도 있다. 실제로 고의적인 내향성은 창조적인 정신의 고전적인 방편 중의 하나이고, 이를 효율적인 장치로 응용할 수도 있다. 이 방편은 심적 에너지를 심층으로 몰아 무의식적 유아기의 이미지 및 원형적 심상이라는 잃어버린 대륙을 활성화시킨다. 그 결과 의식의 분열이 다소간 일어날 수 있음도 물론이다. 그러나 인격이 이 새로운 힘을 흡수하과 통합할 수 있으면 당사자는 자기 의식의 초인간적인 단계 및 완전한 통제의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다 87

신경증적인 유형과 생산적인 유형을 비교해보면 전자는 자기 자신의 충동적인 삶에 대한 과도한 관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88 ☆

생산적인 작품치고 <신경증적> 성격의 병리적 위기가 없는 작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88

얼마를 기다려야 삶을 부정하는 마법을 깨울 힘이 생겨 두 아버지의 분노를 삭일 수 있게 될까? 92

3. 초자연적인 조력

첫 번째 보호자를 만난다. 노파나 노인..용과 맞설 호부를 준다 93

마법의 주문 : 네 발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손을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네 머리를 꽃가루처럼 내려놓아라. 그럼 네 발은 꽃가루, 네 손은 꽃가루, 네 몸은 꽃가루, 네 마음은 꽃가루, 네 음성도 꽃가루. 길이 참 아름답기도 하고, 잠잠하여라 95

모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영웅의 행동이 그 사회가 예비하고 있는 것과 일치될 때, 그는 흡사 역사적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97 ☆

러시아 원정 즈음 나폴레옹, 나는 미지의 종국으로 떠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다. 내가 그곳에 이르는 순간, 내가 불필요하게 되는 순간, 나를 갈가리 찢는 데는 한 입자의 원자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인류가 힘을 모두 합치더라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97

하늘의 바닥에 이를 때까지 102

자기 삶을 거부하던 카마르 알 자마의 운명은 의식적인 의지의 협력이 없이도 완성되기 시작했다 105

4. 첫 관문의 통과

자신을 안내하고 자신을 도와줄 운명을 인격화함으로써 영웅은 모험의 영역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이윽고 한 단계 어려운 영역의 입구에서 <관문의 수호자>를 만나기에 이른다 105 ☆

신비스러운 정도로 매혹적이고 향수를 유발할 정도로 아름다운 세이레네스로 개인과 사회에 다시 투사된다 107

초자연적인 신부가 다 그렇듯이 남편이 혹 부부간에 마땅히 지켜야할 예절을 무시하고 변덕을 부리면 종적을 감추어버린다 108

<오코주무(꿈꾸는 자, 꿈을 통해서 말하는 자)>라는 단어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동류들과는 달리 대단한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를 일컫는다. 이들이 가진 초자연적인 능력은 정글에서나 꿈속에서 정령을 만나거나 죽음과 재생의 체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111 ★

경비병은 <의식 혹은 도덕의 총화와 의식내에 존재하는 제약>을 상징한다 111

의식은 위험한 소망이나 비도덕적인 행위의 틈입을 미리 막는 구실을 한다 111

기지의 세계와 미지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선의 수호자는 극히 위험한 존재다. 그들과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안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과 용기를 갖춘 사람 앞에서는 위험은 그 꼬리를 감추고 만다 112

자기 생활권이라는 벽에서 한 발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영웅은 반드시 이런 괴물(몹시 위험하면서도 때로는 마법의 권능을 베푸는)과 만나야 한다 112

자기 능력을 과신하는 무모한 영웅이 관문 통과에는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13

그가 자기 뱃속에 있다고 한 무기는 다름 아닌 <지혜>라는 무기였다. 실제로 이 젊은 영웅은 전생의 부처, 바로 그 분이었다 118

우리가 五感으로 집착하고 있는 세계의 상징, 그리고 육체적인 어느 기관에 의해서는 벗어날 수 없는 세계의 상징인 그 도깨비는 미래의 부처가 덧없는 이름과 물리적인 성격의 다섯 가지 무기로 더 이상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이름 할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 여섯 번째의 무기로 바꾸어 대항하자 조복한 것이다. 이 여섯 번째 무기가, 名과 型이라는 현상계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원리의 지혜라는 천상적 벼락인 것이다 119

한 짝을 이루는 대립물(존재와 비본재, 생과 사, 미와 추, 선과 악, 희망과 공포의 기능을 통합하고 방어와 습득 행위를 일으키는 기관을 연계시키는 그 밖의 양극성)은 여행자를 향해 서로 부딛혀오는 바위이며, 영웅은 항상 이 길을 지난다 120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자아는 끈끈이 터럭에다 붙여두고 영웅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120

5. 고래의 배

영웅은, 그 관문을 지키는 세력을 정복하거나, 그 세력과 화해하는 대신, 그 미지의 힘에 빨려들어, 겉보기엔 죽은 것으로 나타나고는 한다 121 ☆

관문의 통과가 자기적멸의 형태를 취한다는 교훈을 강조하고 있다 123

괴수들은, 한 차원 심화된 내적 침묵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은 자들을 지켜주는 관문의 수호자들이다 123

비유적으로 보아, 신전으로 들어가는 것과, 고래의 입을 향한 영웅의 돌진은 같은 모험인 셈이다. 즉 회화적 언어로 말하면 둘 다 생의 구심화 행위, 거듭나는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124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 124 _ ★ 이게 ‘이륙’의 가장 정확한 설명이 아닐까?

자아에의 집착을 끊은 영웅은 왕이 자기 궁궐에서 방방을 드나들 듯이, 삶의 지평을 넘나들거나 용의 뱃속을 드나들 수 있다 124

코, 귀, 입술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신체기관으로부터 되도록 많은 양의 살을 베어낸다...혼절하기 직전, 그는 즉석에서 자기 목을 딴다 125

의식으로서의 국왕 가해는 고대 사회의 일반적인 관례였다 125

미노스 왕이 지내기로 되어 있는 수소의 희생제는 8년 주기의 마지막 해에, 전통에 따라 미노스 왕 자기 자신이 희생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의 대용물로 아테니의 선남 선녀를 바친 듯하다. 미노스가 괴수 미노타오로스가 되고, 자기를 희생시켜야 하는 왕이 폭군이 되고, 모두가 왕의 역할을 수행하던 제정 일치 국가가 사리 사욕만 아는 상업국가가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고대 국가에서는 이러한 대속물의 희생제가 관례였던 듯하다 126

2. 입문

1. 시련의 길

영웅은 거듭나는 데 필요한 충고와 호부(액막이), 그리고 이 영역에 이르기 전에 만났던 초자연적인 조력자의 밀사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어쩌면 모험 당사자가 자신의 초인간적 여행 도정의 도처에 자비로운 권능이 있어서 자기를 도와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인지도 모른다 129 ☆

그가 든 지팡이 역시 그를 돕는 조력자 중의 하나다 130 _ 지팡이는 재능과 미덕

인간의 무리는 집단의 이상에 따라 행동하는 법인데, 이 집단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법이다 132

주술사는, 그 사회 성인들의 심성에 내재하고 있는 상징적 환상 체계를 출몰시키는 역할을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주술사란, 이러한 유아적 놀이를 주도하고, 공통의 근심거리를 밝혀내는 지도자인 것이다. 133

자기 정신의 미궁이라는 미로로 내려가 어둠속을 헤매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저 시베리아의 <푸닥>과 성산에 못지않는 상징적인 것들(능히 여행 당사자를 삼켜버릴 수도 있는)에 둘러싸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신비주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것은, <자기 정화>에 이르는 길의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즉 감각이 <정화되고 스스로를 낮추어> 모든 에너지와 관심이 <초월적인 것에 집중 될> 때인 것이다 133 ☆

날개를 볼 수 있기까지는 그 정체를 드러내기 않는 이런 용은 거짓 사랑을 상징하고 있다 134 _ 뱀인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용?

적면공포증 135

우리의 선조들이 신화적 종교적 유산이 상징적 정신적 의식에 힘입어 극복해왔던 심리학적 위험들은 오늘날 우리가 혼자서 혹은 시험적, 즉흥적으로, 더러는 도움이 될 만한 지침도 없이 맞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모든 신들과 악마들의 존재를 이성의 이름으로 부정한 <개화된> 현대인인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다 139 ☆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감청하기 위해서는 자기정화를 감수하고 항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다 139 ☆

그런데 앞서간 자들이 당한 시련도 겪지 않고 너희는 지복의 낙원에 들어가려 하느냐 139

황천의 율령은 완전한 것, 이난나여, 황천의 의식에 대해서는 묻는 것이 아닙니다 141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뜻밖에도 그 자신의 자아)를 동화시킨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143

시련은 첫 관문이 문제를 심화시키고 질문은 여전히 미제로 남는다. 자아가 스스로를 죽음에 내어맡길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143 ☆

영웅은 용을 죽여야 하고 몇 번이고 위험한 장애물을 넘어야한다. 그 동안 영웅은 몇 차례의 예비적인 승리를 거두고, 일시적이긴 하나 무아의 경지를 체험하며, 이상향을 엿보게 된다 143

2. 여신과의 만남

마지막 모험은, 승리한 영웅과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스러운 혼례로 표상된다. 이로써 영웅은 천저, 천정, 혹은 땅 끝, 우주의 중심점, 신전의 성소, 혹은 마음의 가장 어두운 방 속에서 위기를 맞는다 144 ☆

잠자는 여성은 미인의 본보기 중의 본보기이며, 모든 욕망에 대한 응답, 모든 영웅의 지상적, 비지상적 모험의 은혜로운 최종 목표다...세상에 유혹하는 것, 기쁨을 약속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잠자는 여성이 지향하는 존재의 예조에 해당한다...그녀의 존재가 바로 완전성이라는 약속의 화신이며, 조직화된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오랜 방황을 끝낸 영혼의 안식이며, 한때 인류가 맛보았다가 언젠가 다시 맛볼 은혜이기 때문이며, 위안과 자양, 그리고 우리가 아득한 옛날에 그 사랑을 받던 <좋은> 어머니(젊고 아름다운)이기 때문이다 148

이런 어머니는 아르테미스처럼 우아하면서도 고약한 여신으로 전재한다...정신과 육체의 차단된 욕망의 상징 안에 얼마나 엄청난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지 확연히 보여준다 148

이렇게 해서 여신은, 개인적인 어머니는 물론 우주적인 어머니에 이르기까지, 어머니의 두 유형을 드러내면서 <선>과 <악>을 통합한다. 여신의 숭배자는 이 두 유형의 어머니를 똑 같이 묵상해야 한다. 이러한 수행을 통해 숭배자의 정신은 유치하고, 어울리지 않는 감상과 증오로부터 스스로를 정화하고, 유치한 인간이 자신의 행, 불행에 연결지어 멋대로 가른 <선>과 <악>따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본성의 법과 상으로 존재하는 불가해한 실재를 향해 그 마음을 열게 된다 152 ☆

여신은 다름 아닌, 절대 절멸의 공포와, 비인격적이지만 모성적인 평화를 하나로 조화시키는 우주적인 권능, 우주의 전체성, 대립물의 조화였다 152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여신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일 수 있다 153

영웅이 삶의 다른 형태인 입문의 과정을 진행함에 따라 여신의 형상은 그에게 일련의 변형 과정을 체험하게 한다. 여신은 항상 영웅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약속할 수 있지만 영웅보다 위대할 수는 없다. 여신은 그를 유혹하고, 인도하고, 그의 발목에 채인 족쇄를 깨뜨리게 한다. 그리고 만일 영웅의 능력이 여신에 미치면 이 양자, 즉 아는 존재와 알려지는 존재는 갖가지 제약에서 해방된다. 여성은 감각적인 모험의 정점으로 영웅을 인도하는 안내자다 153 ☆

열등한 눈으로 보면 여신은 열등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고, 무식한 눈으로 보면 범용하고 추악한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여신은 자기 존재를 알아보는 자에 의해 해방된다. 지나치게 흥분한 상태에서가 아닌, 여신이 바라는 친절하고 침착한 상태에서 그 여신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영웅은, 여신이 창조한 세계의 왕, 즉 인간으로 화한 신일 수 있는 것이다 154

입맞춤이 대수요? 그대를 껴안아줄 수도 있소 155

왕의 그릇은, 무슨 일이 있든지 이를 이기고 왕도를 가는 것입니다 156

여신은, 악타이온의 동물적 욕망으로도, 퍼거스의 결벽에 가까운 도사림으로도 파악되지 않았다. 오직 니일의 부드러움에 의해서만 그 정체가 드러났다 156

사랑은 부드러움 속에서만 뜨겁게 타오른다 157

여신(도는 여성에게 현현되는)과의 만남은 사랑의 은혜(자비, 즉 운명에의 사랑)를 얻기 위해 영웅이 맞는 마지막 재능의 시험 단계다 157 ☆

모험 당사자가 청년이 아닌 처녀일 경우에는, 그 재능이나 아름다움이나 욕망으로 보아 불사신의 배우자가 되기에 마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천상의 남편은 그녀에게 하강하여,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녀를 자기와 동침하게 한다. 만일 여자가 이 배우자를 싫어하면,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 그녀의 편견을 바로 잡히게 되고, 그녀가 바라던 존재라고 생각되는 경우 그녀의 욕망은 평화를 성취한다 158 ★

3. 유혹자로서의 여성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웅의 궁극적인 체험과 행위의 예비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의 시련은, 자각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 자각의 위기를 통해 영웅의 의식은 증폭되고, 어머니 상의 파괴자, 즉 천생연분의 신부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59 ★

삶의 상황을 수습하는 데 대한 실패는 결국 의식의 제약으로 나타나는 수 밖에 없다. 싸움이나 짜증은 무식한 자들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후회는 때늦은 각성일 뿐이다. 159

우리는 이 일반적인 유형과의 비교에서 우리 자신의 입장을 밝혀내야 하고 이것을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는 제약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데 필요한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160

도깨비란 자기 인간성의 미해결 수수께끼가 투영된 것, 이상은 개개인이 자기 삶을 파악하는 징후 160

최고의 단계가 끝나면 환자의 모험은 항상 어둡고, 무섭고, 욕지기나고, 마술 환등 속에서 보는 듯한 공포의 여행으로 진행되게 마련이다 160

우리는, 우리 자신의 본질을 이루는 것, 우리 친구들에게 내재해 있는 것,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기 방어적이고, 악취가 나고, 탐욕적이고 음탕한 흥분 상태, 즉 우리 조직 세포의 본질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이를 윤색하고, 회칠하고, 재해석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름에 빠진 파리, 우리가 먹을 국에 빠진 머리카락을 누군가 다른 불유쾌한 사람의 허물로 돌리려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우리가 행하는 것에는 어차피 육욕의 냄새가 나게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깨우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외없이 낭패의 순간을 경험한다 160

삶의 배후에 있는 삶을 찾아나서는 모험가는 그녀의 유혹을 물리치고, 현실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에테르 속으로 날아들어가야 한다 161 ☆

영웅은 육욕의 여신과 더 이상 순진한 평화에 안주할 수 없게 된다. 여신이, 이 시점에 이르러 죄악의 여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162

자신을 순수한 존재, 선의 정수, 부동의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순간, 그는 자유로워진다 162

후일, 페트로닐라가 하느님 사랑 안에서 완전한 인격으로 자라나자 아버지는 딸의 병을 말짱하게 고쳐놓았다 163

4. 아버지와의 화해

신이란, 한 쌍의 대립물을 초월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낸다...세상의 행복과 고통을 초월해 이으면서도 이 양자를 품고 있는 존재의 모습이다...삶의 기쁨과 슬픔을 통해 배우고, 은둔의 명상을 통해 깨친 실체는, 보편적이고 비 이원적인 존재-의식-행복이라는 동일한 실체의 두 가지 측면이기 때문이다 169

이 신의 춤추는 모습은 상징적인 글자인 옴AUM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즉 A는 깨어나는 의식상태, U는 꿈의 의식, M은 꿈꾸지 않는 잠을 뜻하는데, 이 신성한 음절을 싸고도는 침묵은 언표되지 않은 초월성이다 169

두려워 말라, 모두가 신 안에 거하리니. 오고 가는 형상(그리고 육신 역시)은 춤추는 내 팔다리의 한순간 휘저음이다. 나를 아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화해 atonment> 즉, <하나되기 at-one-ment>란 스스로 만들어낸 두 마리의 괴물(신(초자아)로 보이는 용과 죄악(억압된 이드))으로 보이는 용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자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하는데 이게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사자는 아버지가 자비로우며, 이 자비를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믿음의 중심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신의 족쇄 바깥으로 이동하고, 믿음의 중심이 이동하면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사라진다 171 ☆

여성의 마법(꽃가루라는 호부, 중재의 능력) 덕분에 영웅은, 자아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하는 아버지의 무서운 입문 의식의 경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171

지원을 보장받은 영웅은 위기를 견디어 나가고, 결국에 가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투영하고 있지만 사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171

가시모양의 벌레 한 마리가 쌍둥이에게 위험을 예고하고는 무엇인가를 입안에 넣게 했다 173 _ 조력자를 알아보려면 ‘깨끗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게 명상이 필요한 이유다.

채찍질은 삼가고 고삐는 꼭 잡고 있어야 한다. 말은 채찍질하지 않아도 자진해서 달릴 것이다. 하늘의 다섯 권역을 지나는 길로 똑바로 들어서서는 아니된다. 왼편으로 비켜가도록 하여라. 내가 지났던 바퀴 자국이 보일 것인즉 네 길잡이로 삼도록 하여라. 하늘과 땅이 똑같은 열을 받을 수 있도록 너무 높게도, 너무 낮게도 날지 않도록 하여라 175

아들아, 네 힘에 의지하기 보다는 행운이 네 길을 인도하게 하여라 176 _ 세상을 향해 열린 태도를 가지라는 말이겠지.

입문이 잘못되었을 때 입문자의 삶에는 혼란이 올 수 잇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 177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더 넒은 세계로 나갈 때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 177

비법 전수자(아버지, 혹은 아버지를 대신하는 사람)는, 유아기의 부적당한 카텍시스(리비도가 특수한 사람, 물건, 또는 관념을 향하여 집중 발현되는 현상)으로부터 놓여난 입문자에게만 의식의 상징을 베풀게 되어 있다. 이런 입문자라야 자기 강화라는 무의식적(혹은 의식적,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동기나 개인적인 선호나 혹은 증오 때문에 정당하고 비개인적인 힘을 오용할 가능성이 업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 말하면, 입문의 영광을 입는 자는, 자기 인간성을 모두 박탈당하고, 비개인적인 우주적 힘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그는 이제 거듭난 자이며, 그 자신이 곧 아버지다. 그는 끊임없이 삶의 싸움판에 나서야 한고 입문의 사제, 안내자, 태양을 향한 문 노릇을 해야 한다. 요컨대, 선악에 대한 유아기 환상을 떨치고, 희망과 공포에서 놓여나 평화롭게 존재의 계시를 이해하고 우주 법칙을 엄숙하게 경험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입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178 ★★★ _ 선발의 기준이었으려나?

만물속에 숨어 있어서 그 영혼이 빛을 발하지 않으나, 뛰어난 지력을 가진 명민한 자의 눈에는 보인다 191

아킬레우스 건. 영웅이란, 정확하게 그곳을 뚫고(그가 속한 세계와 함께) 들어가, 그의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을 잘라야 하는 것이다 192 ☆ _ 내 존재를 제약하는 매듭. 예뻐보이고 싶은 욕망, 칭찬받고 싶은 욕심,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그러니까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자꾸만 눈치보고 주저하게 만든다. 잘라낸 줄 알면 또 자라나고 없앴다고 생각하면 다시 생겨난다. 헉... 완전한 나로 설 수 없다면 다 허무한 것임을 알고도 이러는 내가 좀 싫어지려고 한다.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약점)를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192 _ 알쏭 달쏭...

욥은, 끔찍한 불가마 안에서 견디는 용기와 전지전능한 신의 성격에 대한 일반적 개념 앞에서 결코 파쾨나 굴복당하지 않음으로써, 친구들을 만족시키는 것 이상의 위대한 계시에도 맞설 수 있음을 증명한 영웅이었다 194 _ 초월해야 진짜를 만날 수 있는 거다. 명심하자!

아들이 아버지를 알 나이가 되면 시련이 고뇌가 이미 그의 내부에 태동해 있다. 세상은 더 이상 눈물의 골짜기가 아닌, 행복이 기다리는 현존의 완전한 현현이다 194

오, 당신이여, 유일한 주님이시여. 잘 되어도 당신께 감사드리고 못 되어도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195

5. 신격화

관세음보살..그는 인간으로 이 땅에 살다가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는 순간(이 순간만 넘어서면, 이름붙여지고 경계지어진 우주의 헛된 망상을 초월한 空의 무량세계가 열린다)에 이를 작파해 버리고, 모든 중생을 정각에 이르게 한 연후에야 空에 들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 그는 신의 은혜 안에서 중생을 돕는 존재로, 중생의 존재 안으로 삼투한다 196

왼손에는 늘 이 세상이라는 蓮花를 들고 있다 196

신적인 상태 : 의식의 외피가 벗겨져 나가, 모든 공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변화의 경계를 넘어서게 된 상태다 196 ☆

이 귀한 손으로 그는 만물을 쓰다듬고 다독거린다 197

시간(결코 끝나지 않는)이 끝나는 순간까지 앞서서 잔잔한 영원의 강으로 뛰어들겠다는 가오로 열반의 문턱에서 걸음을 멈추었다는 것은, 겁과 찰나의 구별에 대한 자각을 표상한다 198

보살의 양성구유적 성격, 즉 남성인 관세음과 여성인 관음의 성격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198

여성을 다른 형태로 후퇴시켰다는 사실은 완전성에서 이원성으로의 타락을 상징한다. 이어서 선악의 이원성이 나타냈고, 하느님이 걸으시던 낙원에서의 추방과 낙원의 울타리가 세워졌다 200

낙원은 대립적인 것이 공존하는 곳 200 ★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206

그분의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206 _ 그러고 살 수 있을 만큼 건강했던 거다

우리가 전수받아야 할 최상의 도리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서슴없이 이웃을 공격하는 누구에게만 자애스런 아버지의 도리가 아님을 이해하는 게 가능해진다 207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 208

그대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알면 남을 섬길 수 있으리라. 남을 능히 섬겨 내면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나를 만나면 불성에 이르리라 209

이 무지하고, 유한하고, 자위적이고, 고통받는 육신이 또 다른 육신(적)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에도 그 적 또한 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211

재생한 우리에겐 욕망도 공포도 없다. 우리 자체가 곧 욕망과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모든 신들, 보살, 부처가 우리에게, 세상이라는 연화를 든 우리의 후광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212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란 여신과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다 213

보살이 삶과, 삶으로부터 해탈의 차이를 없애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보살이 열반을 단념한다는 사실로 상징되고 있다. 열반이란 말은,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이라는 세 겹의 불을 끈다>는 뜻이다 213

내부 세계 및 외부 세계가 상호 관련되어 있다는 학설을 제공한다 214 ☆

생각이 실체가 아님을 깨닫는다.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다 215

그는 제 악몽에 쫓기며 스스로 겁에 질린 존재를 자비로이 여긴다. 그는 일어나 그들에게로 돌아와 에고를 초월한 중심으로서 그들과 함께 거한다. 에고를 초월한 그를 통하여 <공>은 자체를 현현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위대한 <대자대비로운 행위>다. 왜냐하면 이 행위로 인해 중생은 자신의 욕망적의미망이라는 세 겹의 불을 그고, 이 세상이 바로 열반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216 ☆_ 얼른 숙제를 마치고 ‘그곳’으로 가고싶은 마음뿐이었다. 대충하면 또 유급할지도 모르니까 고생스럽더라도 최선을 다해 깔끔히 해내야겠다. 그래서였구나. 나를 다 쏟아붇는다 하면서도 왠지 모를 결핍이 느껴졌던 이유가. 나의 마음은 이미 이곳에서 떠나버린지 오래였던 거다. 마음은 벌써 그곳에 보내두고 여기에선 근근히 주어진 과제만을 해치우려는 생각뿐이었다. 고통마저도 즐겨보자고 잘난척해대면서도 실은 싫었던 거다. 얼른 면하고 싶었던 거다. 이제 알겠다. ‘그곳’이란 바로 여기와 다르지 않음을. 그곳에도 기쁨이라는 금가루를 얻기 위해선 또 어쩔 수 없이 고통이라는 모래벌판을 헤매야 한다는 것을. 고통을 기쁨으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을 체화하지 않는다면 운이 좋아 ‘그곳’에 갈 수 있다고 해도 지금과 나아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바로 지금, 여기에 가진 것을 다 걸어라!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불살라버리는 거다. 일단 해보고 다음을 이야기하도록 한다!

삶에서 자유로워진 사람, 욕심이 없고, 대자 대비하고 현명한 사람이 요가로 자아를 통일하과 만사 평등하게 보면 일체 만유 속에서 자아를 보고 자아 속에서 일체 만유를 본다 217

위대한 다도의 달인은 천상적 경이를 체험된 순간으로 만드는 데 힘썼다. 이어서 이 경험은 그 다실에서 가정으로 확산되고, 가정에서는 국가로 침윤했다 219 _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구도도 바로 이 것이다. 내가 책과 사람속에서 체험한 경이를 내 가정으로 확산하고, 또 사회로 확산해보고 싶은 거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경이의 물줄기가 끊이지 않도록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정진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

세 번째 경이로움은, 첫 번째 경이로움(양성적인 형상)이 두 번째 경이로움(찰나와 영원의 동일성)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223 ★

남성상은 입문의 원리와 방법의 상징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경우 여성상은 입문 의식의 목적이 된다 223

방울소리는 피조물 가운데서도 가장 순수한 정신을 가진 자들이 듣는 영원의 아름다운 소리다. 따라서 이 소리는 내면의 소리다 224

6. 홍익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넘어 신을 아는 이는 바로 신에게로 간다 225 ☆

꿈은 개인의 삶이 미분화 에너지 속으로 해소되는 지점이다 226

자기 몸의 고결성에 대한 갈망, 원상 회복의 환상, 내적 외적인 <나쁜> 힘에 대한 보호와 불가괴성의 은밀하고도 깊은 요구가 심성을 형성시키기 시작한다 227

세상을 온통 경건하게 만들어버리는, 유치한 행복에 젖어 있는 무리와 진정으로 자유로운 무리 사이에는 엄청난 심연이 존재한다 232 _ 내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무리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으나 경건하기만 한 사람들이랑은 별로 안 친하고 싶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유치한 이야기가, 형이상학적 교리의 신화적 해석에 붙여질 때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는가는 저 유명한 동양 세계 신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233 ★ _주의하자!

그대 아내를 그대 품 안에서 복되게 하라 242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248 ☆

은총이란, 특수한 경우의 발원에 내려지는 삶의 에너지의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 248 _ 이를테면, 사랑의 힘!! 이런 게 바로 은총이란 말이겠지? ^^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가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249 _ 그니까 내가 하고 있는 게 스트레칭이 맞는 거구나!

생명의 원천은 개인의 핵이며, 인간은 자기 내부에서 그것을 찾아낸다 250 ★

3. 귀환

1. 귀환의 거부

근원을 투시함으로써...영웅의 임무가 수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모험 당사자인 영웅은 아직 생을 역전시키는 전리품을 가지고 귀환하는 모험을 치러야 한다 253 _ 제발 내가 쓰는 책이 내 인생을 역전시켜줄 수 있기를...제발!!

이 만세 전의 왕은 의식하의 천복 안에서 만세 전과 다름없이 자고 있었다 255

제가 기쁨을 잡으면 손 안에 남는 것은 고통뿐이었습니다...제 것이 되는 순간부터 이 모든 것은 그 본성을 벗고 불길이 되었습니다 256 ☆ _ 완전 동감이다!! 그러니 많이 가지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가진 것도 다 버리고 싶은 이 마당에...

고행만이 모든 존재의 형상과의 마지막 인연으로부터 그를 해탈로 이르게 할 터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추쿤다는 회귀하는 대신 이 세상으로부터 한 차원 더 떨어진 곳으로 물러서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감히 그의 결심이 무분별하다고 할 것인가? 257 _ 거부라기 보다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기껏 만들어 갖고 내려가 웃음거리가 된다면 그땐 정말 견딜 수 없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2. 불가사의한 탈출

주전자...과학과 영감을 넣어 끓이려 했다. 요술책의 도움을 빌려 카리드웬은 주전자에다 이 두 가지 혼합물인 시커먼 덩어리를 놓고 불 위에 얹어 1년간 끊이면, 영감의 진국이 딱 세 방울 나오게 되어 있었다 258

수련자의 명상은 그 발전 단계에 따라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수련자의 상상력은 데바타(수련자의 수준에 맞는 신성)에 의해 각급 단계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정신을 수련한 다음에야 수련자에게는 홀로 초월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이 온다 263

교리적 상징의 유용한 기능은, 개인이 무턱대고 나서지 않는 한 신의 직접적인 체험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집과 가족을 떠나 너무 오랫동안 혼자 방황하고, 심연의 거울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면, 이 무서운 만남 자체가 그에게 재앙일 수 있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꽃피어 왔던 전통적인 상징체계는 이때 영약으로 작용하여, 살아 있는 신의 치명적인 공격무대를 교회라는 신성한 공간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264 ☆

3. 외부로부터의 구조

초자연적인 힘은 주인공의 시련에 끝까지 동참하다가 마지막 단계에 나타난다. 영웅은 의식을 잃고 무의식의 상태에서 그가 살던 세계로 되살아난다. <불가사의한 도망>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웅은 자아를 지키는 대신 자아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조력자의 은혜로 영웅은 자아를 되찾는다 280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재생의 영약을 가지고 돌아가 원래 속해 있던 사회와 맞서면서 그들이 까다로운 신문과 서릿발 같은 증오와 맞서야 한다. 뭐가 뭔지 영문을 모르는 선한 사람들까지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280 ☆

4. 귀환 관문의 통과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 신화나 상징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는 바로 이것이다. 신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세계의 잊혀진 부분이다...우리가 영웅의 행위를 이해하자면 이 잊혀진 부분의 탐험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 생활에서 중요하게 보이던 두 세계의 가치나 차이는, 지금까지 전혀 다른 것으로 인식하던 <타자>와 <자아>를 동화시키는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281

정상 상태로 깨어 있는 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심층에서 솟아난 지혜와, 속세에서 유용한 분별 사이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이 존재한다...초월의 세계에서 보내진 은총은 하찮은 것으로 취급되어버리니, 다른 영웅이 나와 말씀을 새롭게 설명할 필요가 절실해진다. 하지만, 인류가 약삭빠르면서도 우매했던 몇천 년 세월을 통해 수십만 번 제대로 가르쳐지기도 했고, 그릇 가르쳐지기도 했던 것을 어떻게 다시 가르친단 말인가? 이것이야말로 영웅의 궁극적인 숙제다. 빛이 있는 세상의 언어로, 언어가 무용하나 저 암흑 세계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2차원의 평면으로 3차원의 형상을 나타낼 것이며, 다차원의 의미를 3차원의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한쌍의 대립물에 대한 정의의 시도가 무의미한데, 어떻게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는 말로 이를 나타낼 수 있단 말인가? 오로지 감각의 배타적 증거에만 급급하는 일반인에게 어떻게 저 만유의 근원인 空을 설명한단 말인가? 282★ _ 크~! 캠벨 할아부지. 어떻게 아셨어요. 바로 그게 지금 제 고민이에요. 그래도 진짜로 다행인 건 확실해요. 제가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경지가 되었다는 것이..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요? 예. 예?

귀환하는 영웅이 당면하는 첫 번째 문제는, 성취의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체험을 겪은 이후에 덧없는 기쁨과 슬픔, 삶의 범용과 소란한 외설스러움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문제다. 왜 그런 세상으로 되돌아와야 할까? ...그러나 어느 정신적 산과의가 <시메나와>를 쳐놓고 퇴로를 차단한다 해도, 시간 속에서 영원을 표상하고, 시간 속에서 그 영원을 지각하는 작업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282 ☆

그는 의식적으로(깨어있는 상태에서) 무의식의 왕국(깊은 잠)으로 내려갔고 잠재의식적 경험치를 깨어 있는 자신의 인격에 통합시킬 수 있었다 286

절연수단으로서의 백마는 초자연적인 권능을 가진 자가 설정하는 금기의 생생한 실례 289

인물과 대지 사이엔 절연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신성한 인물의 절연은 그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가 속한 사회를 위한 예방책으로 권장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있다 290

절연체가 갑자기 무력해질 때 생기는 충격적인 변화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상기시키고 있다 291

자기 모험을 완성하기 위해서, 귀환한 영웅은 세계의 충격을 견디어야 한다. 립 반 윙클은 무엇을 체험하고 왔는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의 귀환은 한낱 우스개로 끝나고 만다. 오이신은 자신의 저승 체험을 알고 있지만, 자기의 중심이 저승에 있다는 걸 잊어버렸기 때문에 역시 전락하고 만다. 카마르 알 자만은 그중에서도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에 속한다. 그는 깨어 있는 채로 깊은 잠이라는 천복의 은혜를 체험했고, 믿어지지 않는 모험이라는 튼튼한 액막이를 지니고 빛의 세계로 귀환했기 때문에 일상의 엄연한 환멸에 직면하고도 자기 확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291 ★ _ 모험의 순간을 기억해야한다. 기억하기 위해선 기록해야한다. 이 기록은 나를 일상의 환멸로부터 지켜줄 액막이가 되어줄 것이다. 내가 지난 1년의 체험을 책으로 남겨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여자의 욕정은 남자의 욕정보다 더 사나운 법. 이윽고 공주는 자기가 품었던 욕정을 깨닫고 자기 자세를 수습했다 293 _ 진짤까? 아무래도 난 여자가 아닌가부다. 그렇다고 남자도 아닌 게 분명하니..난 도대체 뭘까? @@

운명이 일상의 삶으로 구체화되는 완만하면서도 놀라운 역사다. 그러나 이 운명이 모든 이에게 다 구체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안으로 뛰어들어 이를 체험하고, 반지를 얻어 다시 현실로 귀환한 영웅에게만 가능하다 294

5. 두 세계의 스승

예수는 안내자이며, 길이며, 초월적인 세계, 귀환의 동반자다 298

아름답고 젊은 크리슈나는 우주신 비쉬누의 화신이고, 아르쥬나 왕자ㅇ는 그의 제자이자 친구다 299

네가 보고 싶어하던 모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허나, 네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다. 내 너에게 영험한 신의 눈을 줄 터인즉, 볼지어다. 궁극적인 내 요가의 권능을 300

상징이란 의미 소통의 <수레>에 불과하다...매력적이고 또 인상적이라고 하더라도 상징이란 이해를 돕기 위한 편의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의미를 실어나르는 수레를 의미 자체로 오해하면 헛된 잉크뿐만 아니라 헛된 피까지 흘리게 된다 305 ★

오직 믿는 마음이면 나를 알 수 있고 참답게 볼 수 있으며 내게 들어와 하나가 될 수 있느니라. 항상 나를 위해 일하고 오직 나만을 목적으로 알고, 진실로 나를 정성으로 믿으며,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살아있는 모든 것에 악의를 품지 않는 자, 그런 자가 내게 오느니라 306

때로는 바보로, 때로는 현자로, 때로는 왕관에 미친 자로, 때로는 방랑자로, 때로는 예언자처럼 부동하는 존재로, 때로는 자비로운 얼굴로, 때로는 귀인으로, 때로는 폐덕자로, 때로는 무명인으로...깨달은 자는 이런 상태에서도 지복의 극락을 산다. 무대 의상을 입고 있든, 벗고 있든 배우는 배우 이전의 그 자신이듯이, 불멸의 지혜를 깨친 자는 늘 그 불멸의 경지 안에 거한다 307 ★★★★★★★ _ 명심하자! 무대의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배역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좋은 배우라고 할 수 있겠니?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다면 본질을 꿰뚫는 눈을 갖는 게 우선이야. 그리고 제일 먼저 배우인 자기의 본질을 간파해내야겠지. 그다음엔 자기가 맡고 있는 배역의 핵심을 파악하는 거야. 그래서 배우의 본질과 배역의 핵심을 아름답게 섞어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배우 아니겠니? 니가 되고 싶다는 게 그런 사람 아니니?

6. 삶의 자유

영웅이 지난 전장은, 모든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의 희생으로 삶을 영위하는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 자기 삶을 영위하려면 죄악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구역질나는 것이다. 이를 깨달은 영웅은 햄릿이나 아르쥬나처럼, 불가피한 죄악의 거부를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 세상의 예외적인 존재로서 자기 입장을 합리화하고 허위적인 자기 이미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자기는 선한 자를 대표하고 있다고 간주하고, 죄악을 불가피한 것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부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합리화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물론, 인간과 우주에 대한 본질에 이르기까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308 _ 작년 이맘때 도저히 받아들일수 없었던 글귀중 하나다. 모든 피조물은 다른 피조물의 희생으로 삶을 영위한다. 내가 뭐라고 남을 희생시킨단 말이야. 어쩌구. 한참을 너무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참으로 다단한 곡절을 거치고야 비로소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마운 일이었다.

애착을 떠나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라. 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네 생각을 가장 높은 자아에 모으고, 원망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되, 흐트러지지 말고 나가 싸우라 308 ☆

듣는 자들은 자기 내부에 있는 불멸의 존재에게 눈을 돌리고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다시 말해서 자기 자아의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자아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313

4. 열쇠

원래 살던 오두막이나 성에서 떠난 신화 속에 영웅은 꾐에 빠지거나, 납치당하거나 자진해서 모험의 문턱에 이른다. 여기에서 영웅은 길을 안내할 그림자 같은 부정적인 존재를 만난다. 영웅은 이를 퇴치하거나 이 권능을 지닌 존재와 화해하여 산 채로 암흑의 왕국으로 들어가거나(골육상잔, 용과의 싸움, 제물 헌납, 혹은 호부에 의지하여), 적대자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의절, 고난). 이 문턱을 넘어선 영웅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친숙한 힘에 이끌려 이 세계를 여행하는데, 경우에 따라 위협을 받기도 하고(시련),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기도 한다(조력자). 신화적인 영역의 바닥에 다다르면, 영웅은 절대한 시험을 당하고, 그 시험을 이긴 보상을 받는다. 이 승리는 세계의 어머니인 여신과의 성적 결합(신성한 결혼), 창조자인 아버지에 의한 인정(아버지와의 화해), 그 자신의 신격과, 혹은 적대적인 능력이 그의 힘에 벅찰 경우에는 전리품의 가로채기(신부 훔치기, 불 훔치기)로 나타난다. 원래 이 승리는 자기 의식의 확장이며, 존재와의 합일이다.(깨달음, 변모, 자유) 마지막 단계는 귀환이다. 영웅이 그 권능의 축복을 받은 경우 전리품은 영웅을 보호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영웅은 도망치고, 부정적인 세력의 추격을 받는다. 귀환의 관문에서 초월적인 권능의 소유자는 뒤에 남아야 한다. 영웅은 혼자서 그 무서운 왕국에서 귀환한다. 그가 가져온 전리품은 세상을 구원한다(불사약) 317 _ 일상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던 지선은 우연히 마법학교 모집공지를 보게 된다. 이런 것도 다있네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했으나, 그날 이후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아파온다. 이리저리 통증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애쓰던 지선은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마법학교 입학원서를 작성해본다. 거짓말처럼 없어진 통증. 그제서야 마법학교가 그녀가 받아들여야할 새로운 삶의 모습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결심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갑작스런 휴직결정에 대한 가족과 동료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가족들은 그녀가 무모한 결정을 후회하게 될까봐 걱정했고 동료들은 그녀의 휴직결정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했다. 지선은 이같은 주위의 완강한 반대에 잠시 혼란스러워하지만 결정을 되돌리기에 그녀의 마음은 이미 너무 먼 곳까지 가버린 것이다.

결국 휴직하고 마법학교에 입학한 그녀. 막상 들어온 마법학교는 그녀의 기대를 저버린다. 수업내용과 클레스메이트들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에 대한 실망까지 겹쳐 그녀는 자신의 결정이 잘 못된 것은 아니었나 후회를 하기 시작한다. 이런 그녀의 방황을 눈치챈 그녀에게 마법학교 교장은 ‘네 두려움이 아무리 클지라도 너는 분명히 이겨낼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마치 마법처럼 그녀의 지친 마음을 치유하기 시작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되기 시작하자 그녀는 본격적인 성장괘도에 오른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수련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삶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고, 자신의 감각기관을 최적화해 세상이 보내는 메시지를 받는 수련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선 위대한 마법사들과의 수업을 통해 원만함을 최고 미덕으로 삼는 조직에 적응하느라 스스로도 잊고 지내던 그녀만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자신의 기쁨과 세상의 기쁨이 조응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체험 이후 그녀의 일상은 아마 전에 살던 그곳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일 수 없다. 자신의 체험을 세상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결국 또 다시 봉인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흐르지 못한다면 제 아무리 깨끗한 물도 반드시 썩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신비한 체험의 세계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때로는 그 어려움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혼자서 체험의 신비를 즐기다 그것이 다할 즈음 세상에서 사라지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유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소명이 발견한 깨달음을 끊임없이 외부로 퍼나르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지극히 그녀다운 방식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한다. 그리고 세상은 그녀의 메시지로 인해 조금씩 아름다움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드디어 영광스런 귀환에 성공한 것이다.

누구든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 322

세례에 대한 일반의 해석은 <원죄를 씻는 의식>으로 되어 있다. 즉 재생이라는 측면보다는 정화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322

제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 유출

1.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동화와 신화의 패턴 및 논리가 꿈의 패턴 및 논리와 일치한다는 발견과 더불어 오랫동안 의혹의 대상이 되어왔던 고대적 인간의 기괴한 환상은 극적으로 현대인 의식의 표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326

신화가 꿈과 정확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26

제의와 신화의 기능은, 유추 작용을 통해 이를 볼 수 있게 하고 이를 촉진시키는 기능이다. 마음과 감각이 감지할 수 있는 형상과 관념은 초월적인 진리와 개방성을 암시하도록 제시되고 조정된다 330

이름과 형식을 통하여 이 세계의 얼개를 설명하는 성질이 부여되어 있을 뿐, 이들은 결국 세계를 설명하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신들은,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을 깨우며, 우리 마음을 겨냥할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331

신들의 거처는 모두 무의식의 상징, 무의식 = 형이상학적 영역 331

영웅은, 살아 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의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 331 _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자라는 의미겠지?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빛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332

2. 우주의 순환

신화가 원래 철학적 공식의 설명인지, 아니면 철학이 신화로부터의 추출물인지 지금으로서는 말할 수 없다 337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교훈적인 체험과 만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소화되어 꿈을 꾸는 당사자의 내적인 힘에 동화되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내부적 통제자가 들어앉은 방 안, 모든 것의 근원이자 끝인 상태, 즉 <마음 속에 있는 공간> 안에서 모든 것을 즐기고 의식할 수 있게 된다 338 ☆

3. 허공에서 - 공간

4. 공간의 내부에서 _ 생명

한 처음의 우주는 인간의 형상을 한 자아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내가 바로 그다(I am he)>라고 소리쳤다. 여기에서 <나>라는 이름이 생겼다. 오늘날에도 누가 말을 건네오면 <응, 나>라는 말로 서두를 삼은 연후에야 자기가 만난 다른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두려웠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두려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내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자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는 불행했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로 인함이다. 그는 짝이 있으면 했다. 그래서 그는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는 형상만큼 커졌다. 그는 바로 자기 자신인 이 형상을 둘로 나누었다....그래서 이 인간의 몸은(아내를 얻기 전에는) 쪼개진 강낭콩의 반쪽 같았다...그는 아내와 교합했고 여기에서 인간이 탄생했다 355

우주에 있어서는 개체이든 창조적인 어버이든 그 영속적인 근본은 하나이며 따라서 동일하다. 그래서 이 신화에서는 조물주를 자아라고 부른 것이다 356

사물은 <영혼>으로 아는 자는 그뿐. 다른 말은 해서 무엇하랴?

결혼...이 둘은 다시 하나의 몸, 하나의 영혼이 되어, 한 인간의 오른편과 왼편이 된다 357

남녀간의 사랑의 신비에 따르면, 애정의 궁극적인 경험은 곧 이원성이라는 환상의 배후에 <둘은 곧 하나>라는 등식의 깨달음이 있다. 이 자각은, 우주의 만상(인간, 동물, 식물, 심지어는 광물까지도)은 하나라는 자각으로 확대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애정의 체험은 우주의 체험으로 확산되고, 이 자각에 이르게 한 애인은 창조의 거울로 확대된다. 이러한 것을 체험한 남성이나 여성은 쇼펜하우어의 이른바 <도처에 널린 것을 마음대로 먹고, 원하는 모습으로 둔갑해서 이 세상을 한유하며>, <오, 놀랍도다, 놀랍도다>로 시작되는 우주적 합일의 노래를 부르는 경지인 것이다 357

5. 하나에서 여럿으로

창조된 세계에는 분명히 상호 모순적인 두 양상으로 갈라지는 위기가 온다 357

그들은 모이고, 결의하고, 계획한다 358

신화의 근본적인 모순, 즉 이중 초점의 모순이다. 우주 발생적 순환의 초기에 <신은 관여하지 않으나>, <신은 창조자이자 수호자이며 파괴자인>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가 여럿으로 나뉘는 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운명은 <우연히> 그러나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65

세계는 존재하고, 폭발하고, 해소되는 형식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366

신화는 이 고뇌(시련)을 부정하지 않는다 366

금단의 과일을 먹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밖아>졌다. 낙원의 복락은 그들에게 닫혔고, 그들은 변형의 베일의 다른 쪽에서 창조된 세상을 보았다. 그로부터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얻기 위해 수고해야 했다 366

6. 창조의 민화

광대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에서는 승리하나, 그들 자체나 그들의 업적은 무대가 초월적인 차원으로 옮겨지면 간단히 사라지고 만다 372 _ 결국 풍요로운 광대냐 고단한 영웅이냐의 선택이란 말인가?.

2. 처녀 잉태

1. 어머니 우주

우주적 알의 껍질인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과>다 374

2. 운명적 모태

발달 과정의 패턴...영원과 찰라의 대화, <존재하느냐 마느냐>는 <결정적인 대화>다. 끌 수 없는 욕망은 마침내 오랏줄을 받는다. 즉 행동이 시작된다 388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인간의 이야기라는 대서사시는 목적이 서로 모순되는 분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인간의 시야도 이제는 좁아져 오직 가시적이고, 손에 잡히는 존재의 표피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389

마리아여, 축복을 받으라. 네 자궁은 하느님께서 거하실 차비가 끝났음이라. 하늘에서 빛이 내려 너에게 거할 것인즉, 그 빛은 너로 인하여 세상을 비출 것이다 390

인간이 무슨 수로 그 깊은 뜻을 헤아리랴 391

파르바티 392

가난뱅이인지는 모르나 그분은 부의 원천입니다. 무서운 분인 동시에 자비의 근원이십니다. 뱀으로 만든 옷이든 보석으로 수놓은 옷이든, 입는다면 마음대로 벗기도 할 것입니다. 비실재의 창조자이신데 근본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392

4. 미혼모의 민화

3.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첫째는 비실재적 실재의 직접적인 유출에서 신화적 시대의 유동적이나 시간을 초월한 존재에 이르는 단계, 둘째는 이 실재적 실재에서 인류 역사의 영역에 이르는 단계다. 유출은 이제 그 극점에 이르렀고 의식의 장은 이제 좁아질 대로 좁아졌다. 전에는 사상의 실체가 보였지만 이제는 그 부수 효과만 인류의 눈, 작고 현실적인 동공의 초점 앞에 모일 뿐이었다 396

이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월우의 화신이나, 운명의 팔괘라는 초월적인 지혜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희망에 따라 행동하는 완전한 인간 정신이었다 398

후앙 티는 꼬박 석 달간이나 계속되는 꿈을 꾸었는데, 이때 그는 몽중에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했다. 두 번째의 긴 꿈에서 그는 백성을 가르치는 능력을 얻어 깨어났다. 그는 백성들에게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것을 가르쳤다 399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전설을 만드는 사람에겐 탄생의 순간, 심지어는 잉태의 순간에 영웅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웅의 생애는, 그의 모험을 절정으로하는 엄청난 장관으로 그려진다 400

이러한 관점은, 영웅은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지워진다는 관점과 일치한다 400

신적인 존재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있는, 전능한 자아의 계시다. 삶에 대한 묵상은, 따라서 정확한 모방에 이르는 전주곡으로서가 아니라 자기의 내재적인 신성에 대한 명상의 형태여야 한다. 말하자면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서 선함을 얻는> 것이 아니고 <이를 앎으로써 신이 되는 것>이다 400

영웅의 첫 번째 과업은, 우주 발생적 순환의 그 전단계를 의식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과업은, 심연에서 일상의 삶으로 귀환하여 조물주적 잠재력을 가진 안간적인 변환자재자가 되는 것이다. 후앙 티에게는 꿈을 꾸는 권능이 있었는데, 이 꿈은 그가 하강하고 귀환하는 수단이다 402 ☆

문제의 숙명적인 아기는 기나긴 암흑의 기간을 견디어야 했다 409

이 어린 세상의 신참자는, 헤아리고 이름 붙여질 수 있는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권능이 있음을 배운다. 신화는 그러한 체험을 견디고, 거기에서 살아나오는 데는 범상하지 않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런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개가 힘이 세고, 영리하고, 또 지혜롭다 410

유아기 이야기는 영웅의 귀환 혹은 그 정체가 드러남으로 그 결론에 이른다 413

늪에 이르는 내리막길에는 바위가 하나 있었다. 거기에 부딪히자 물항아리가 깨어지면서 소년이 나왔다. 그는 자기 껍질이 부서지고 비로소 소년, 아주 크고 잘생긴 소년이 된 것을 몹시 기뻐했다 414

영웅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우주적 에너지 415

3. 전사로서의 영웅

인간들 사이에는 성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오는, 머나먼 땅은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배꼽이다 419

영웅이자 방랑 시인의 시구가 신통력이 있는 마법의 주문으로 울린다 421

적은 자기 지위의 권위를 자신을 위해 행사하기 때문에 적이며, 용이며, 폭군이다 422

폭군은 자만한다. 그리고 자만은 바로 폭군이 파멸하는 씨앗이다 422

도깨비-폭군은 불길한 사상의 옹호자이며, 영웅은 창조적인 삶의 옹호자다 422

영웅의 기본적인 임무는 그러한 괴물과 폭군을 퇴치하고 인간의 삶의 무대를 정화하는 것이다 423

4. 애인으로서의 영웅

적과 싸워서 장악하는 주도권, 괴물과 싸워서 획득하는 자유, 폭군의 족쇄에서 풀려난 에너지는 여성으로 상징된다 428

<영웅과 영웅의 상대역인 여성은 곧 하나>이기 때문에, 처녀는 영웅 자신의 <다른 한쪽>이다. 428

처녀는 영웅이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 영웅 자신의 운명의 이미지다. 그러나 영웅이 자기의 운명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사상에 현혹될 때, 영웅은 아무리 노력해도 장애물을 극복할 수 없다 428

즉 운명 자체(곧 처녀)가 그에게 힘을 빌려준다 431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에 대한 감상에 현혹되지 않고, 과감하게 자기 본성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자(니체의 말을 빌리면, <스스로 구르는 바퀴>인 사람) 앞으로는 어려움이 비켜나고 뜻밖의 탄탄대로가 나타나는 법이다 431 ★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뜨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 이러한 영웅이 되려면 보다 깊은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심장한 개념 작용의 결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영웅의 상징이 名劍이라면, 두 번째 영웅의 상징은 권위의 홀장, 혹은 율법서다. 첫 번째 영웅의 특징적인 모험이 신부(신부는 곧 삶이다)를 얻는 것이라면, 두 번째 영웅의 특징적 모험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곧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다 432

근원에 접한 영웅은 중심의 정적과 조화를 가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434

이게 그에게서 은총이 만방으로 퍼져나간다. 그의 언어는, 생명의 바람이다 435

하늘을 욕보이는, 교만에 찬 이 말이 그의 입술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의 위엄은 땅에 떨어졌다 436

왕이니, 신하가 복종함은 당연하나 그 왕이 신의 예배에 소홀하면 그 집 안에는 적막이 깃들이는 법 436

자기 치적의 은총을 초월적이며 근원적인 존재의 은혜로 돌리지 않고, 황제는 마땅히 자기가 누릴 바를 누린다는 입체적인 환상을 품는다. 이런 자는 더 이상 두 세계의 중재자일 수 없다 437 ★

6. 구세주로서의 영웅

아버지의 집에서는 두 단계의 이니시에이션이 구분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아들은 사자가 되어 귀환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나와 아버지는 결국 하나>라는 통찰과 함께 귀환한다 437 ☆

크리슈나는 꼽추의 몸을 발로 누르고 두 손가락으로 꼽추의 턱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구부러졌던 등이 펴지면서 곱추는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 439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각기, 크리슈나에게서 자기의 모습들을 보았다 440

아버지, 어머니, 아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과 사의 끝없는 순환일 뿐입니다 440

영웅이 변화를 가져오듯이, 무섭고 잔인한 폭군은 한 가지 편견에 고착된 인간을 표상한다 441

영웅의 임무는 아버지(용, 시험자, 무섭고 잔인한 왕)의 부정적인 측면을 살해하고, 우주의 자양이 될 생명의 에너지를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441 ★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 442

아들은 아버지를 시해하지만,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들은 원초적인 혼돈 속으로 해소된다. 이것이 바로 세계종말 그리고 재개의 비밀이다 442

7. 성자로서의 영웅

삶의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할 영웅의 유형..성자, 고행자, 출가자로서의 영웅..<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엄격하게 ‘자아’를 통제하고, 소리와 빛과 맛 같은 색에 집착하지 않고, 애증을 버리고, 고독안에서 살고, 소식하고, 말과 몸과 마음을 삼가고, 명상과 정신 집중에 전심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힘쓰고, 이기심과 권세, 자만심과 색욕, 분노와 편견을 떨치고, 마음 안에서 정일을 얻고,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능히 불멸의 존재에 값하는 사람이라 일러 무방하다 443

아버지를 찾아가는 신화 패턴에서, 영웅이 가는 곳은 세계의 드러나는 측면이기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측면이다 443

영혼은 이미 다시 없는 천복의 바다로 해소된 뒤다. 443

나폴리에서 미사를 집전하면서 신비스러운 체험을 한 토마스 아퀴나스는, 잉크와 펜을 선반에 얹어버리고 <신학 대전>의 마지막 장이 다른 손에 의해 완성되게 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내가 쓰는 시대는 끝났다. 나는 나에게 계시된 것을 써왔고, 가르쳐왔지만, 내가 보기엔 참으로 하잘것 없다. 이제 바라건대, 내가 가르치는 시대가 끝났듯이 내 삶 또한 그러하기를...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그는 마흔 아홉 살로 세상을 떠났다 444

<신비에 싸여있던> 옆얼굴이 드러나면, 신화는 부차적인 언어이며, 침묵이 궁극적인 언어가 된다 444

이 십자가의 관문 너머에 신 안에서의 천복이 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길(태양의 문)이러서 그렇다 445

8. 영웅의 죽음

영웅은 잠을 자다가도 운명의 때가 되면 일어난다. 그는 다른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있다 449

4. 소멸

1. 소우주의 끝

신화는 무수한 장애물을 돌파해야 하는, 영혼의 여로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460

인간의 모든 단계의 삶을 경험하고, 마침내 우주적 알이란 벽을 깨뜨릴 수 있게 된다. 단테의 <신곡>은 이 단계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연옥편>은 육신의 욕망과 행위에 얽매인 영혼의 참담함을, <정화편>을 육신의 경험이 영혼의 경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천국편>은 정신적 자각의 단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462 ☆

2. 대우주의 끝

에필로그

신화와 사회

1. 變身 自在者

융..신화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 478

2. 신화, 제의, 명상의 기능

개인이 실제든, 상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든, 그 사회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는 것은 존재의 근원과의 절연을 의미할 뿐이다 479

출생, 세례, 결혼, 장례, 취임 등의 종족적인 제의는, 개인의 삶의 위기 및 행위를 표준적이고 비개인적인 형식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인격체로서의 개인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사로서, 신부로서, 과부로서, 성직자로서, 추장으로서의 개인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제의를 통하여, 개인이 속하는 사회는 원형적 무대에서 옛현인의 가르침을 시연할 수 있다. 모든 구성원이 자기 지위의 기능에 따라 이 제의에 참가한다. 전체 사회는 이 제의를 통하여 마모되지 않은, 살아있는 단위로 참가자들의 눈앞에 전개된다 479

맡은 역할이 비록 하찮다고 하더라도 개인은 이 인간의, 아름다운 축제의 이미지(잠재적이긴 하나 필연적으로 그의 내부에 깃들여 있는 이미지)에서 자기 역할이 바로 자기의 본질이었음을 깨닫는다 480 ★

정직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성직자든, 매춘부든, 여왕이든, 노예든)에 충실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동사를 쓸 자격이 있는 인간이다 480 ★ _ 엄마 : 아이들에게 사랑의 원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아내 : 믿음직한 파트너, 정서적 에너지원, 직원 : 재능을 통한 공헌, 작가 : 영혼의 심지에 불을 밝힌다...아직은 <존재할> 자격이 부족해보인다. 노력하자. 정확히 묘사할 수 있어야 실행에 옮길 수 있음을 명심하자!

사회적인 의무와 대중적 제의와는 정반대로 향하는 다른 길이 있다. 의무의 길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회에서 추방된 자는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추방은, 탐색 모험의 첫 단계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가지 길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길은 자기 내부에서 탐색되고 또 발견되어야 한다. 성별, 연령별, 직업별 차이는, 우리 인간의 특질상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가 한동안 입고 있는 옷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부에 있는 인간의 이미지는 의상과 아무 상관도 없다....우리의 핵은 무엇일까? 우리라고 하는 존재의 기본적인 성격이란 어떤 것일까? 482

명상을 통해 입문자는 자기의 심층에 이르고, 마침내 그 껍질을 뚫고 엄청난 자각에 이른다. 그런 경지에서 되돌아 나올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그런 경지에서 미합중국, 어디어디에 사는 모모 씨라는 자기 자신을 대견하게 여길 사람도 없다. 요컨대 사회와 의무는 분리된다. 자기 자신을 위대한 인간으로 발견한 아무개 씨는 내성적이며 초연한 인간이 된다. 이것이, 나르키소스가 호수를 내려다보는 단계이며, 부처가 보리수 아래 앉아 명상을 하는 단계다. 그러나 이 단계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필요한 단계이지 목적은 아닌 것이다. 목표는 <보는 것>일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즉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이 단계가 끝나면 입문자는 본질 자체처럼, 고삐에서 풀려나 세상을 떠돌게 된다. 뿐인가? 세계라는 것 역시 그 본질이다. 개인의 본질, 세계의 본질...이 둘은 하나다. 이때부터 은거, 은둔은 필요없다. 영웅이 어디를 떠돌든, 그가 무슨 짓을 하건 그는 자기의 본질적 실재에 머문다. 그에겐 세상을 보는 완전성에 이른 눈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엔 분리 및 은둔이 있을 수 없다. 사회적 참여가 결국에는 개인의 내부에 있는 전체를 깨닫게 하듯이 추방으로 인한 유랑이 영웅을 전체에 내재하는 자아에 이르게 한 것이다 482 ☆_ 아직도 눈앞에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안달하고 있는 내 모습을 종종 발견한다. 아직 내 안의 영웅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이다. 더 버리고 더 깨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해진다. 아직도 두렵기만하다. 어찌 이리도 힘겹단 말이야. 영웅의 여정이란...

이 표적의 중심에 이르면, 이기주의나 이타주의의 문제는 사라진다. 개인은 율법 안에서 자기를 잃고, 우주의 전적인 의미와 동일하게 재생한 것이다. 세계는 그를 위해, 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신은 이렇게 말했다. 오. 모하메드여, 네가 없었으면, 내 저 하늘도 만들지 않았으리라 483

3. 오늘날의 영웅

현대 영웅의 위업은 영혼이 균형을 이루고 있던 잃어버린 아트란티스 대륙의 불을 다시 밝히는 것이어야 한다 485

현대 세계에 정신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다 485

우리는 새로운 상징이 보이게 됨에 따라, 이 상징이 지구의 갖가지 요소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한 민족 특유의 생활환경, 인종, 그리고 전통이 유효한 형식으로 화해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486

동물은 인간성의 교사가 되었다. 곧이 곧대로의 모방의 행위를 통해 인간의 자아에 대한 효과적인 제거 작업이 자행되었고, 사회는 응집력이 있는 기관으로 되어갔다 487

이제 오직 인간만이 결정적인 수수께끼다 488

인간은 그러나 <내>가 아닌 <너>로 이해되어야 한다 488

감히 소명에 응하여, 우리의 운명을 화해시켜야 하는 존재의 거처를 찾아내는 현대적 인간인 현대적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으 스스로 벗어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된다. 니체는 <그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창조적인 영웅을 이끌고 구원하여야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인 영웅이다 488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구세주의 십자가를 지는 일)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 488

역자후기

스스로를 감전 체험으로 인한 帶電體라고 감히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믿음은 私的이다 490 ★ _ 어떤 느낌인지 이해한다.

인식과 인식의 구조물이 켜를 이루고 있다기 보다는, 행간을 직관으로 건너는 듯 한 시적인 분위기가 엿보이는데, 캠벨의 글도 예외는 아니다 492

3. ‘내가 저자라면’

출발

모험에의 소명

o 영적 중심이 현실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짐

- 의미를 잃어버린 일상 _ 이런 게 삶이라면 버리고 싶다.

- <마법세계>로부터의 초대장_ 익숙한 것과의 결별, 꿈벗 여행

소명의 거부

o 익숙한 것들에의 집착

- <마법세계>의 초대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음

- 허황된 <마법>에 빠져들어 가까스로 구축해놓은 일상의 안정을 잃게 될까봐 두려움

⇒ 세상과도 자기와도 단절된 반죽음 상태의 지속

초자연적인 조력

(2010.1~2월)

o 마지막 기회라는 계시

- 거부할 수 없는 몸의 신호 _ 연구원 응시

- 장애가 기회로 _ 연구원 레이스

첫 관문의 통과

(3월)

o 스승과의 만남 _ 연구원이 되다(3월)

고래의 배

(4월)

o 연구원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휴직

- 사회적, 경제적 기득권의 포기

입문

시련의 길

(4~5월)

o 끝을 알 수 없는 나락(4~5월)

- ‘나’를 지탱해 왔던 외피의 파열

- 고삐풀린 감성의 폭주

- 지금이라도 그만둬야하는 것 아닐까?

o 추락하는 나를 구해준 스승의 한마디

- 두려워 마라. 네 안의 힘이 너를 지켜줄 것이다.

여신과의 만남

(6~8월)

o 아낌없는 자기연소의 희열

- 天福 체험

- 다시 차오르는 존재감

유혹자로서의 여성

(8~9월)

o 天福 vs 현실, 선택의 유혹

- 둘 다 갖고자 하면 다 잃게 될지도 몰라

-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아버지와의 화해

(11월)

o 나의 기쁨과 세상의 기쁨이 조응하는 신비한 체험

- 현실 : 가시화된 존재의 과제

- 자아와 현실은 같은 대상을 부르는 다른 이름

궁극적인 홍익

(9~1월)

o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라

(행복 = 자존감 x (소통)2 )

- 꿈과 현실의 단계적 화해, 가정경영일지

귀환

회귀의 거부

(2월)

o 이대로 좋은데...

- 굳이 글로 표현할 필요 있을까?

- 오해받는 건 아닐까?

- 내가 왜 그런 모험을 해야하는 걸까?

외부로부터의 원조

(3월)

o 마법의 메시지 from 스승과 동료

- 졸업여행에서에서 브리다, 데미안, 해리포터까지

o 애착을 떠나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라. 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네 생각을 가장 높은 자아에 모으고, 원망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되, 흐트러지지 말고 나가 싸우라

회귀 관문의 통과

o 지금 이 순간!!

살기 위한 자유

o 그날을 위해.. ^^

지난 1년간의 연구원 수련과정을 영웅의 여정에 대입해보았다. 칼로 자른 듯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각 단계마다 그 안에 작은 사이클을 내포하고 있어 도표로 표현하기가 부적합한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해놓고 보니 명료해지는 고마운 메시지가 있다.

연구원 수련도 일생이라는 커다란 여정의 톱니에 맞물린 하나의 작은 톱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잘 살아낸 하루가 눈부신 인생을 만들 듯 첫 책 출간이라는 과제로 완성되는 이 작은 톱니의 미션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야 삶이라는 톱니도 그만큼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것이구나. 내 삶의 어느 순간보다 치열했던 지난 1년과 그리고 더더욱 그러할 또 1년이 나를 데려다 놓을 지점은 어디쯤일까?

천리길을 한걸음에 가겠다는 허황된 욕심과 정체조차 규명할 수 없었던 지독한 두려움이 다시 나를 잡아끌 때 멈추고 돌아와 확인할 수 있는 지도가 되어줄 것 같다. 여기에 그날의 지친 나를 위해 친절히 한 구절을 덧붙여 놓아야겠다.

애착을 떠나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라. 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네 생각을 가장 높은 자아에 모으고, 원망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되, 흐트러지지 말고 나가 싸우라. 네가 그토록 원하는 삶의 자유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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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2 19:52:28 *.160.33.89
난 아무래도 네가 그리스를 다녀온 다음 부터 갑자기 달라진 것 같구나.   뭔가 그 공간이 네게 강력한 자장으로 작동했던 것이 분명해.  네가 그때 뭘 보긴 본 거야. 아마 너 이전의 너를 보았을 지도 모르고 , 너 이후의 너를  보았을지도 몰라. 
그 당나귀 똥이 주술을 건게 분명해. 아니면 흰 담장에 걸터 앉아 보았던 그 푸른 바다가 태고의 노래로 너를 일깨웠거나.  그 마법 학교가 잘되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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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4 22:54:50 *.10.44.47
주말..북페어 앞두고 식구들이랑 아름답게 놀다왔더니
그리운 사부님의 메시지..

정말 그리스가 제게 뭔가 하긴 한 것이 틀림없나봅니다.
여름 이후로 달라진 게 너무 많으니까요..  ^^

마법학교..
필요한 만큼 되어주겠지요?
주인이 소화할 수 있는 딱 그만큼만요.   ^^

사부님..정말 뵙고 싶습니다.
내일은 전화라도 드려야겠습니다.  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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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04.25 10:38:34 *.219.84.74
내공의 차이.
깊이의 다름.

존(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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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2011.04.25 22:46:55 *.10.44.47
그저 쑥스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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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3 55.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 오소희 [2] 박미옥 2011.06.02 2682
52 54. <깊은 인생> 구본형 [2] 박미옥 2011.05.18 2198
51 53.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4] 박미옥 2011.05.06 2908
» 52.<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셉 캠벨 [4] 박미옥 2011.04.22 2632
49 52.<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조엔 롤링 [17] 박미옥 2011.03.29 5202
48 51. <데미안> 헤르만 헤세 [2] 박미옥 2011.03.22 3645
47 50. <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4] 박미옥 2011.03.17 3676
46 49.<떠남과 만남> 구본형 [6] 박미옥 2011.03.06 2082
45 48. <살아남기 위하여> 자크 아탈리 박미옥 2011.02.19 2305
44 47.<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 7 [2] 박미옥 2011.02.14 2438
43 46.<강의> 신영복 [1] 박미옥 2011.02.07 2234
42 45.<사람에게서 구하라> 구본형 박미옥 2011.01.31 2778
41 44.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구본형 [2] 박미옥 2011.01.25 2546
40 43.<포트폴리오 인생> 찰스 핸디 [2] 박미옥 2011.01.17 2407
39 42. <필살기> 구본형 박미옥 2011.01.10 2530
38 41. <내 인생의 첫책쓰기> 오병곤, 홍승완 박미옥 2011.01.03 2520
37 [남편탐구]주제가 있는 독서 일기+코리아니티 박미옥 2010.12.28 1874
36 40.<코리아니티> 구본형 박미옥 2010.12.28 2037
35 [남편탐구]주제가 있는 독서 일기 [5] 박미옥 2010.12.23 1911
34 39.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 알랜 B. 치넨 [3] 박미옥 2010.12.20 2228